32. 제2차 자바해 해전(1) - 출항
자바해 해전의 주간전투에서 하구로에게 20cm 포탄 1발을 얻어맞은 엑서터는 네덜란드구축함 윗더위드와 함께 28일 0시경에 수라바야에 입항하여 홀랜드 부두에 계류했 다. 수라바야항의 현지인 인부들은 달아난 상태였으므로 엑서터의 승조원들은 스스로 포탄에 맞은 보일러실을 수리했다. 엑서터의 곁에는 자신의 폭뢰가 해면으로 굴러떨어 져 폭발하면서 프로펠러에 손상을 입고 발전기가 망가진 윗더위드가 계류했다. 잠시 후 제58구축함분대의 구축함 4척이 포프와 함께 입항했다.
요크급 중순양함 엑서터. https://en.wikipedia.org/wiki/HMS_Exeter_(68)
보일러에 손상을 입어 최대 속력이 16노트로 줄어든 엑서터의 전망은 암담했다. 당시 수라바야의 연합군 승조원 사이에는 수라바야항을 봉쇄하기 위하여 엑서터를 항구 입 구에 자침시킬 것이라는 풍문이 돌았다. 엑서터의 함장 올리버 고든 대령은 28일 낮에 수라바야의 공동묘지에서 엑서터의 전사자를 위한 장례식을 주관했다.
28일 하루동안 자바해 해전의 생존자들이 수라바야에 도착했다. 먼저 정오경에 인카운터가 코테네어의 생존자 113명을 싣고 입항했다. 오후에는 미국잠수함 S-38로부터 엘 렉트라의 생존자 54명을 넘겨받은 네덜란드초계정이 입항했으며 잠시 후에는 드루이터의 생존자 58명이 탄 구명정이 도착했다. 미국잠수함 S-37은 드루이터의 생존자 60 명이 탄 구명정을 발견하고 거기 섞여있던 미군수병 2명을 태웠다. 그리고 구명정에 5일치 식량과 물을 보급한 후 수라바야 항구가 보이는 곳까지 예인해주었다.
28일 오후 2시에는 육상공격기들이 제로기의 호위를 받으면서 수라바야를 공습했다. 연합군은 전투기 16대를 내보내어 요격했으나 저지하지 못했다. 자바항공사령부는 28일 하루동안 최선을 다하여 접근 중인 일본선단을 공격했다. 아침에 B-17폭격기 3대가 동부자바침공부대를 공습했다. 오후에는 빌더비스트 8대와 알 바코어 1대가 공습했고 이어서 B-17폭격기 6대와 LB-30폭격기 1대가 같은 선단을 공격했다. 폭격의 효과는 미미했다. 폭격기들이 전개한 마디온 비행장은 28일 밤에 소개 했다.
제58구축함분대가 수라바야를 출항하던 28일 오후 5시에 엑서터도 헬프리히 제독으로부터 3척의 구축함(인카운터, 포프, 윗더위드)과 함께 수라바야를 떠나 실론섬의 콜롬 보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엑서터의 함장 고든 대령은 인카운터의 함장 존 모건 소령, 포프의 함장 웰포드 블린 소령, 그리고 윗더위드의 함장 쇼텔 소령을 엑서터로 불 러 오후 5시 20분부터 회의를 가졌다. 구축함장들은 고든 대령으로부터 수라바야를 떠나 탈출한다는 소리에 안도했으나 목적지가 호주가 아닌 콜롬보라는 말을 듣자 의아하 게 생각했고 마지막으로 탈출경로를 알게 되자 경악했다. 고든 대령은 구축함장들에게 순다해협을 통하여 탈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라바야에서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려면 3가지 경로가 있었다. 가장 가까운 경로는 자바 동해안과 발리 서해안 사이의 발리해협을 통과하는 경로였으나 일부 구간의 폭이 좁 은데다가 수심이 얕아서 엑서터가 통과하기에는 위험했다. 두번째 경로는 발리 동해안과 롬복섬 서해안 사이의 롬복해협을 통과하는 경로였다. 이 경우 수심과 폭은 충분했으나 발리의 덴파사르 비행장과 셀레베스의 켄다리2 비행장 에 전개한 일본기의 공습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지막 경로는 수라바야에서 북상하여 자바해를 가로지른 다음 자바 동해안과 수마트라 사이의 순다해협을 통과하는 경로였다.
글래스포드 제독은 롬복해협을 선호했으나 팔리서 소장이 순다해협을 끝까지 밀어붙여 관철시켰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엑서터는 바웨안섬 동쪽으로 북상하여 보르네오 남 해안을 따라 일본함정과 비행기가 득실거리는 자바해를 통과한 다음 남하하여 밤에 순다해협을 돌파해야 했다.
팔리서 제독이 순다 해협을 고집한 논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순다해협의 일본군은 상륙해안을 지키는데 집중하느라 수마트라 쪽으로 바짝 붙어서 통과하는 엑서터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엑서터가 하 루종일 자바해를 가로지르면서 일본군에게 발견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인데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둘째로는 해상에 나온 일본함정들의 연료가 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팔리서 제독의 계산에 따르면 일본함정들은 상륙이 끝나면 연료보급을 받으러 항구로 돌아가야 했으므로 엑서터를 저지하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는 일본군의 허점을 찌를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충분히 일리있는 주장이었다. 일본인들은 명색이 해군제독이라는 자가 그런 엉뚱한 탈출경로를 택할 정도로 멍청 하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할 것이었다.
순다해협을 통과하는 경로는 팔리서 제독이 참모들과 함께 심사숙고한 결과였다. 그러나 장고 끝에 악수라고 이 경로는 완전한 실패작이었다. 솔직히 롬복해협을 통과하더라 도 엑서터가 탈출에 성공했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호위하던 구축함까지 포함해서 생각했을 때 그나마 롬복해협을 통하여 탈출하는 편이 순다해협보다는 확률이 훨씬 높았 다. 순다해협을 통하여 탈출한다는 생각은 위험을 계산한 계획이 아니라 그냥 요행을 바라는 도박이었다. 그건 팔리서 제독의 명백하고 커다란 실수였다.
블린 소령으로부터 순다해협을 통하여 탈출한다는 소식을 들은 포프의 승조원들은 비탄에 빠져 먼저 헬프리히 제독을 저주했고(회의 당시 고든 대령은 순다해협을 통한 탈출 명령을 내린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으므로 구축함장들은 헬프리히 제독의 명령이라고 생각했다.) 이어서 자신들의 어뢰를 저주했으며 급기야는 어뢰를 보급해 준 구축 모함 블랙호크까지 저주했다.
엑서터의 함장 고든 대령 또한 순다해협을 통하는 탈출로는 그냥 저승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고든 대령은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팔리서 제독은 참모들과 함께 심사숙고해 서 나온 결론이라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좋은 소식은 엑서터의 수리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오후 11시가 되면 4개의 보일러를 가동시켜 속력이 24노트까지 올라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불합리해도 명령은 명령이었다. 고든 대령은 회의를 마치면서 구축함장들에게 오후 7시에 출항할 것이니 즉시 돌아가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이때 윗더위드의 함장 쇼텔 소령이 제동을 걸었다. 그는 승조원들이 상륙했기 때문에 오후 9시가 되어야 출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쇼텔 소령은 일본군이 자바에 상륙하고 일본함정이 탈출로를 막기 위하여 달려오는 중이라 단 몇시간 차이로 탈출 성공과 실패가 갈릴 수 있는 이 중요하고 긴박한 시기에 폭격받고 혼란 한 수라바야 시내로 승조원의 상륙을 허가한 것이었다. 고든 대령은 단호한 태도로 출항 연기는 불가하니 윗더위드는 오후 9시에 출항하여 뒤따르라고 명령했다. 그럴 경우 윗더위드는 자정 즈음에 엑서터를 따라잡을 것이었다.
1942년 2월 28일 오후 7시에 엑서터는 인카운터 및 포프와 함께 수라바야를 떠나 마지막 항해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