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제2차 자바해 해전(3) - 전멸
이제 엑서터 함대의 유일한 희망은 피해를 입기 전에 스콜에 진입하는 것이었다. 엑서터는 시간을 벌기 위하여 1942년 3월 1일 오전 11시 5분에 14,500m 떨어진 아시가라 와 묘코에게 어뢰를 발사했고 5분 후인 오전 11시 10분에는 포프가 5,500m 거리에서 역시 아시가라와 묘코에게 좌현으로부터 어뢰 4발을 발사했다. 아시가라와 묘코는 어 뢰를 피하기 위하여 360도 회전해야만 했다. 포프는 이어서 엑서터의 함수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내려와 나치와 하구로를 향하여 우현으로부터 마지막 5발의 어뢰를 발사했 다. 어뢰는 모두 빗나갔다.
2차 자바해 해전.
아케보노 전방의 구축함은 이카즈치가 아니라 이나즈마이다. 이카즈치는 전투가 끝난 후에 도착했다. Paul S. Dull, Naval Ianstitute Press, 1978, P.86
일본군도 어뢰로 반격했다. 오전11시 19분에 가와카제가 2발의 산소어뢰를 발사했다. 1분 후인 20분에는 나치가 4발을 발사했고 21분에는 야마카제가 4발을, 다시 22분 에는 하구로가 4발을 발사했다. 모두 빗나갔다.
오전 11시 20분에 명중한 20cm 포탄 1발이 스콜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던 엑서터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누가 발사했는지 불명확한 이 포탄이 가동중인 보일러 5개 중 4개 가 위치하던 우현의 A보일러실에 명중하면서 보일러 4개가 부서졌고 주증기관이 끊어졌다. 주기관은 멈추었고 전원이 나가면서 8인치 주포와 4인치 부포는 작동을 멈추었 다. A보일러실의 화재로 인하여 인접한 4인치 탄약고는 침수시켜야 했다.
엑서터는 침몰할 위험은 없지만 움직일 수 없었고 싸울 수도 없어서 나포될 위기에 처했다. 고든 대령은 함을 자침시키는 방법 밖에 없었다. 오전11시 35분에 퇴함명령이 떨 어졌다. 승조원들은 선저판, 응축기 냉각수 흡입구, 탄약고의 침수밸브를 모두 열고 추진축에 폭발물을 설치하여 폭발시킨 다음 질서정연하게 퇴함했다. 고든 대령에게 매 일 신선한 오리알을 공급해 주던 오리 몇마리는 놓아 주었으며 오리들은 보르네오 방향으로 헤엄쳐 사라졌다. 전기가 나가서 대형구명정을 내릴 수 없었으므로 승조원들 은 물에 뜨는 것들을 집어 던진 다음 바다에 뛰어들었다. 최종적으로 고든 대령을 포함한 652명이 이나즈마를 비롯한 일본함정에게 구조되었으나 152명은 포로생활 중에 사 망했다.
고든 대령은 퇴함 명령을 내리기 직전 인카운터와 포프에게 생존자를 구하지 말고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에 따라 구축함들은 엑서터 주위를 돌면서 다시 한번 연막을 친 다음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엑서터가 침몰하는 순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8/HMS_Exeter_%2868%29_sinking_a fter_the_Battle_of_the_Java_Sea_on_1_March_1942.jpg
엑서터는 승조원이 퇴함하는 동안에도 굴뚝에서 연기를 뿜으면서 관성으로 계속 나가고 있었으므로 일본군은 계속 공격했다. 추가로 20cm 포탄 1발이 후방 Y포탑에 명중했 으며 일본함정들은 접근하여 21발의 산소어뢰를 쏘았다. 이들 중 이나즈마가 발사한 2발이 오전 11시 45분에 우현에 맞으면서 침수가 빨라졌다. 오전 11시 50분에 엑서터 는 오른쪽으로 뒤집어지면서 침몰했다.
이날 현장에는 미국잠수함 퍼밋이 있었으나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함장 문 채플 소령은 일본구축함 1척을 노리고 불과 550m 거리에서 어뢰 3발을 쏘았으나 모두 빗나갔다.
인카운터와 포프는 스콜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철수 명령을 받는 순간 엑서터 뒤에 처져 있던 인카운터는 일본군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오전 11시 35분에 인카운터는 아시가라 또는 묘코가 발사한 20cm 포탄의 지근탄에 큰 피해를 입었다. 포탄의 파편이 기관실로 뚫고 들어와 흡입관을 부수고 윤활계통을 파괴했다. 베어링이 과열되면서 자욱한 연기가 퍼져 기관실의 인원은 대피해야 했다. 기관은 멈추었고 전원이 끊어지면서 함포도 1문을 제외하고 작동을 멈추었다. 이제 인카운터도 엑서터와 같 이 침몰할 위험은 없었지만 도망칠 수도, 싸울 수도 없어서 나포될 위기에 처했다. 인카운터의 함장 존 모건 소령은 자침 및 퇴함명령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인카운터는 오후 12시 6분에 침몰했다. 승조원 157명 중 8명이 사망했고 모건 함장을 포함한 149명은 다음날 이카즈치에게 구조되었다. 이카즈치의 함장 쿠도 슌사쿠 소좌의 명령에 따 라 생존자들은 좋은 대접을 받았으며 부상자들은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마카사르에 상륙하자 전혀 다른 대접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결국 포로 생활 중에 38명이 사망했다.
포프는 오전 11시 45분에 운좋게 스콜 안으로 진입했다. 뒤쫓던 일본군은 포프가 시계가 15m 밖에 되지 않는 스콜 속으로 달아나 버리자 추격을 늦추었다. 다카하시 제독은 연료가 달랑거리던 제5전대를 반저르마신으로 회항시킨 후 주대부대를 이끌고 천천히 추격했다.
정오에 포프는 첫번째 스콜에서 벗어났으나 오후 12시 10분에 2번째 스콜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함장 블린 소령은 남쪽으로 변침했다. 어떻게든 일본군의 눈을 피하 여 남하하여 밤에 롬복해협을 통과할 생각이었다. 승조원들은 후방탄약고에서 4인치 포탄을 꺼내어 비어버린 전방탄약고로 옮겼다. 오후 12시 15분에 포프는 2번째 스콜에 서도 벗어나 적의 관측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오후 12시 30분에 0식수상관측기 1대가 포프를 발견했다. 그러자 치토세에서 10대의 0식수상기를 추가로 파견했다. 블린 소령은 글래스포드 제독에게 전투기를 보내달라고 절규했으나 이미 연합군에게는 그럴 여력이 없었다.
미츠비시 F1M 영식수상관측기. https://en.wikipedia.org/wiki/Mitsubishi_F1M
오후 1시부터 11대의 0식수상기가 개별적으로 60kg짜리 폭탄을 1발씩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포프는 3인치 대공포 1문으로 적의 조준을 방해하면서 교묘한 조함으로 처음 의 몇발을 피했다. 그러나 3인치 대공포가 75발을 발사한 후 고장이 나버렸다. 이제 남은 건 50구경 대공기관총 4정이었는데 총탄이 폭격고도까지 올라가지 못했으므로 무 용지물이었다. 블린 소령은 그래도 교묘함 조함으로 대부분의 폭탄을 피했으나 마지막 11번째의 폭탄이 함미 바로 왼쪽에 떨어졌다. 이 지근탄은 명중탄 못지않은 피해를 입 혔다. 폭탄이 좌현 프로펠러 바로 옆에서 폭발하면서 포프의 왼쪽 추진축이 프린스오브웨일스의 경우처럼 제자리를 벗어나 고속회전하면서 마치 채찍처럼 추친축이 통과하 는 경로의 격벽들을 부수었다. 이어서 바닷물이 추진축이 통과하는 경로를 따라 급속하게 밀려 들어왔다.
나카지마 B5N 97식함상공격기. https://en.wikipedia.or g/wiki/Nakajima_B5N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후 1시 35분부터는 항모 류조에서 보내온 97식함상공격기 6대가 1,000m 고도에서 폭격을 시작했다. 97식함상공격기는 1대당 250kg 짜리 폭탄 1발과 60kg짜리 폭탄 4발을 가지고 있었다. 폭탄은 모두 빗나갔으나 포프는 이미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침수는 점점 심해져 함미가 물에 잠길 정도였으며 프로펠러 하나 가 지고는 직진하기도 어려웠다. 블린 소령이 함을 자침시키고 퇴함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승조원들이 함저에 4.5kg 짜리 자침용 폭약 2개를 터뜨렸다. 비밀서류는 폐기했으며 폭뢰는 봉인해서 버렸다. 준비를 마친 승조원들은 질서정연하게 구명정과 구명뗏목을 타고 퇴함했다.
포프가 침몰하는 순간. 일본수상기가 찍은 사진이다. http://www.navsource.org/archives/05/225.htm
승조원들이 모두 퇴함하고 포프가 우현으로 쓰러지는 순간 주변 해면에 포탄이 떨어졌다. 아시가라와 묘코가 접근하여 포격을 실시한 것이었다. 묘코가 발사한 20cm 포탄 1 발이 이미 함미가 물 속에 잠긴 포프의 후방함체에 명중하면서 침몰이 빨라졌다. 오후 2시 20분에 포프는 함미부터 침몰했다. 묘코와 아시가라는 포프의 침몰을 확인하고 바 로 돌아갔다. 포프의 승조원 152명 중 1명이 사망했으며 생존자 151명은 20시간 후 구축함 이카즈치에게 구조되었다. 인카운터의 생존자와 마찬가지로 포프의 생존자도 이 카즈치 함상에서는 제대로 된 포로대접을 받았으나 마카사르에 상륙한 후 가차없는 대우를 받았다.
이로써 제2차 자바해 해전이 끝났다. 일본군은 중순양함 1척과 구축함 2척으로 이루어진 연합군 함대를 전멸시켰으나 명중율은 실망스러웠다. 일본군이 발사한 20cm 포탄 은 중순양함 아시가라와 묘코에서 1,171발, 나치와 하구로에서 288발, 합계 1,459발이었으나 명중탄은 3발 뿐이었으며 그나마 의미가 있는 건 처음에 엑서터를 강타한 1 발 뿐이었다. 5인치 포는 아시가라에서 14발, 이나즈마가 279발을 발사했다. 93식산소어뢰는 순양함들이 24발, 구축함들이 11발, 합계 35발을 발사했으며 명중한 것은 이 나즈마가 발사한 2발이었으나 의미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