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문다 포격
니미츠 제독은 타사파롱가 해전에 의하여 큰 타격을 입었던 남태평양해역군의 순양함 부대를 재건하기 위하여 중순양함 1 척 ( 루이스빌 ) 과 경순양함 4 척 ( 내쉬빌 , 센트루이스 , 컬럼비아 , 아킬레스) 를 급히 남태평양해역군에 파견했다. 그리하여 12 월 말까지 제 67기동부대의 진형이 다시 갖추어지자 헐지 제독은 야간에 문다 비행장을 포격하기로 결심했다.
제 67기동부대의 사령관은 12 월에 부임한 월든 리 아인즈워스 소장이 맡았다. 재건된 제 67기동부대는 중순양함 1 척 ( 루이스빌 ), 경순양함 6척 ( 호놀룰루 , 헬레나 , 내쉬빌 , 센트루이스 , 컬럼비아 , 아킬레스), 그리고 구축함 5척 ( 플레처 , 오배넌 , 드레이튼 , 람슨 , 니콜라스 ) 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중 컬럼비아는 신형의 클리블랜드 급 경순양함 중 남태평양 해역에 처음으로 도착한 함정이었고 , 뉴질랜드 해군 소속의 아킬레스는 독일의 포켓전함 그라프쉬페를 자침으로 몰아넣은 라플라타 강 해전에 참가했던 함정이었다. 제 67기동부대는 하와이를 출발한 제 161 연대전투단을 실은 수송함대와 에스피리투산토 근해에서 합류하여 과달카날까지 호송했다.
1943 년 1 월 4 일 아침에 수송함대를 무사히 룽가 정박지까지 호송한 제 67기동부대는 곧 문다 포격을 위하여 북서쪽으로 향했다. 도중에 제 67기동부대는 둘로 갈라졌다. 아인즈워스 제독은 경순양함 3척 ( 내쉬빌 , 센트루이스 , 헬레나) 과 구축함 2척 ( 플레처 , 오배넌 ) 으로 이루어진 포격부대를 이끌고 직접 문다비행장을 포격하러 뉴조지아 섬에 접근했다.
그 동안 티즈데일 소장이 이끄는 중순양함 1 척 ( 루이스빌 ), 경순양함 3 척 ( 호놀룰루 , 컬럼비아 , 아킬레스), 그리고 구축함 3척 ( 드레이튼 , 람슨 , 니콜라스 ) 으로 이루어진 지원부대는 뉴조지아 섬의 남동쪽에서 일본함대의 출현에 대비했다. 헨더슨 비행장을 출발한 블랙캣이 뉴조지아 동북방 방향으로 나아가서 일본군의 함정이 없다는 걸 확인한 다음 문다 비행장 상공을 선회했다. 날씨는 이상적이었다.
하늘에는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어서 바다는 칠흙같이 어두었으므로 일본군이 육안으로 아인즈워스 제독의 함정을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SG 레이더를 장비한 아인즈워스 제독의 포격부대는 밝은 대낮에 항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항로를 찾아갈 수 있었다.
게다가 렌도바 서방 해상에 잠수함 그레이백까지 배치되어 제 67기동부대의 항해장교들에게 중요한 참조점 역할을 했다. 구축함 플레처를 선두로 한 아인즈워스 제독의 포격부대는 26 노트의 속력으로 렌도바 섬의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북서쪽으로 변침하여 뉴조지아 섬의 남해안과 평행하게 달리면서 포격을 시작했다.
1943 년 1 월 5 일 새벽 1 시부터 플레처의 뒤를 따르던 기함 내쉬빌에서 6 인치 함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내쉬빌의 첫번째 일제사격이 정확하게 문다 비행장 지역을 타격했다. 문다 비행장 상공의 블랙캣으로부터 탄착수정이 필요없다는 보고를 받은 포격부대는 일제히 포문을 열어 사격을 시작했다. 미해군이 자랑하는 6 인치 함포의 속사능력은 대단했다.
블랙캣의 승무원들은 문다 비행장 전체가 마치 거대한 백열전구처럼 반구형으로 밝게 빛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끔씩 일본군의 탄약고나 연료저장고에 포탄이 명중하여 거대한 폭발과 함께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일본군의 반격은 미약했다.
일본군의 해안포가 센트루이스를 향하여 몇 발의 포탄을 발사했으나 형편없이 빗나갔다. 곧 블랙캣으로부터 일본군 해안포의 위치를 보고받은 구축함들이 5 인치 함포로 반격을 가하여 해안포를 침묵시켰다.
( 문다비행장 포격상황도)
오전 1 시 50 분이 되자 포격부대는 포격을 마치고 신속히 남하하여 철수했다. 아인즈워스 제독의 포격부대는 50 분간 지속된 포격에서 문다 비행장에 6 인치 포탄 3,000 발과 5 인치 포탄 1,400 발을 쏟아부었다. 일본군의 피해는 상당했다.
다음날 문다 비행장 상공을 비행한 미군의 정찰기는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버린 비행장의 모습을 발견했으며 , 하루 종일 문다 비행장에서는 미군 항공기를 향하여 단 1 발의 대공포도 발사하지 못했다. 임무를 마친 포격부대는 28 노트의 속력으로 철수하여 5 일 아침 9 시에 과달카날에서 남쪽으로 30km 떨어진 해상에서 미리 철수해 있던 지원부대와 합류했다.
곧 헨더슨 비행장을 출발한 와일드캣들이 멀리 수평선상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부인 기지를 출격한 일본군의 99식함상폭격기 4 대가 태양을 등지고 갑자기 나타나서 제 67기동부대에게 폭격을 가했다. 미함정들은 재빨리 회피기동했으나 아킬레스의 3 번 포탑에 1 발이 명중했고 , 호놀룰루 부근에 3 발의 지근탄이 떨어졌다.
폭격을 마친 일본기들은 철수 과정에서 경순양함 헬레나가 발사한 5 인치 양용포에 의하여 1 대가 격추되었고 뒤쫓아온 와일드캣들에게 1 대를더 잃었다. 이때 헬레나는 5 인치 양용포에서 신무기인 Mk32 근접신관 (VT = Variable Time) 을 사용하여 일본기를 격추했는데 , 이것이 실전에서 근접신관을 사용한 세계 최초의 사례였다.
( 근접신관)
대공포의 명중율을 높이기 위하여 적기와 일정한 거리에 접근하면 자동적으로 터지는 근접신관을 개발하려는 노력은 1930 년대부터 진행되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던 영국은 30 년대 후반에 적의 항공기에 접근하여 그늘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폭발하는 광학식 근접신관을 실용화시켰으나 이 광학식 근접신관은 야간에는 무용지물이 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영국은 이런 약점을 없애기 위하여 레이더를 사용하는 지연신관을 연구하고 있었으나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1940 년에 미국에게 일체의 자료를 넘겼다. 자료를 넘겨받은 미국은 처음에는 국방연구원에서 근접신관을 연구하다가 진주만 기습 이후 전쟁에 뛰어들게 되자 1942 년 봄에 존스 홉킨스 대학을 중심으로 87개의 회사와 110개의 정부기관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연구 프로젝트로 확대했다.
이때부터 근접신관 개발에는 가속도가 붙어서 그해 8 월 12 일에 체서피크 만에서 실시된 시험에서 경순양함 클리블랜드가 3 대의 표적기를 모두 격추함으로써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이 개발한 근접신관은 기본적으로 전지로 작동하는 소형 레이더로서 , 적기로부터 반사되는 레이더파를 분석하여 거리가 18m 이내로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포탄을 폭발시키는 원리였다.
관건은 포탄에 들어갈만한 소형 레이더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미국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5 인치 포탄에 장착할 수있도록 레이더를 가진 신관을 1/2 파인트 ( 약 237ml) 우유병 크기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 1/2 파인트 우유병 )
처음 생산된 5,000 발의 근접신관은 실전평가를 위하여 태평양에 공급되었는데 헬레나가 사용한 근접신관은 이 물량 중의 일부였다. 이후 근접신관은 1943 년 말까지 200 만개 이상이 생산되었고 , 1944 년부터는 매일 4 만개 이상이 생산되어 종전시까지 총 2,200 만개 이상 생산되었다.
이러한 기록적인 대량생산에 따라 생산단가도 엄청나게 내려가서 처음에 1 개당 732 달러에 달했던 가격이 종전에 즈음해서는 18 달러까지 떨어졌다. 처음에 연합군은 이러한 근접신관의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미해군과 영국해군의 군함에서 , 그것도 해상사격만 허용했다.
그러나 , 1944 년 말부터는 어차피 일본이나 독일이 근접신관의 원리를 알아도 복제해서 실전에 사용하기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육군에서도 널리 사용하기 시작하여 실제로 종전시까지 사용한 근접신관은 육군이 더 많았다. 육군같은 경우 근접신관을 사용하여 포탄이 땅에 떨어지기 직전인 공중 약 1 - 2m 높이에서 폭발하게 만들면 참호에 숨은 적을 살상하는데 커다란 효과가 있었다.
보병이 가장 흔히 엄폐하는 뚜껑이 없는 개인호는 근접 신관을 사용한 이런 형태의 포격에 대해서는 거의 소용이 없었다. 155mm 이상의 대구경포로 근접신관과 지연신관을 섞어서 적의 참호선에 발사하면 기존의 접촉신관과 지연신관만 사용할 때보다 훨씬 큰 효과를 볼수 있었으므로 이러한 근접신관의 사용은 미군 포병대의 전투효율을 크게 높여 주었다.
이러한 근접신관은 특히 미해군이 가미카제에 대항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1944 년 10 월 1 일부터 45 년 1 월 31 일까지의 자료를 보면 5 인치 양용포로 가미카제 1 대를 격추하는데 필요한 포탄의 갯수는 일반적인 시한신관의 경우 1,162 발인데 비하여 근접신관의 경우는 310 발에 불과했다.
근접신관의 등장은 미국함정들의 설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애당초 장거리 수송선단의 대잠초계를 위하여 3 인치 함포를 장비하고 있던 호위구축함들은 태평양 방면에서 작전하면서 해안 교두보 근해에 정박한 수송함들을 방어하고 상륙한 지상군들을 함포사격으로 지원할 임무가 추가되었다.
이에 따라 신형 호위구축함들은 일본군의 가미카제로부터 자신과 수송함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기존의 3 인치 함포 대신 근접신관을 사용할 수 있고 지상포격에도 효과적인 5 인치 양용포를 장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5 인치 이상의 구경을 가진 포에서만 사용가능하던 근접신관의 소형화도 진전되어 종전 즈음에는 3 인치 대공포에도 사용가능한 근접신관이 나왔으나 미해군의 중요한 대공포인 40mm 대공포에 사용가능한 근접신관은 종전시까지 끝내 실용화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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