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기푸진지 포위
제 132 연대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과달카날의 미군 지휘관들은 오스텐 산 점령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제 14 군단장 패치 소장은 1942 년 12 월 28 일에 제 2/132 대대를 비행장 방어임무에서 해제하여 제 132 연대장 넬슨 대령의 휘하로 복귀시켰다.
다음날인 29 일에 패치 소장은 휘하 지휘관들과 회의를 거쳐 1943 년 1 월로 예정된 총공세를 앞두고 기푸진지를 반드시 점령해야 한다는 방침을 확인했다. 제 2/132 대대를 돌려받은 넬슨 대령은 기푸진지 남쪽의 27 번 고지 점령에 제 2/132 대대를 투입하기로 결정하고 , 제 2/132 대대장 조지 페리 중령에게 즉시 이동명령을 내렸다.
넬슨 대령의 작전계획은 제 1 대대및 제 3 대대가 북쪽에서 기푸진지를 압박하는 동안 기푸진지의 남쪽에 있는 11 번 고지에서 출발한 제 2 대대가 남쪽으로부터 27 번 고지를 점령하여 북 , 동 , 서의 세 방향으로부터 기푸진지를 포위한다는 것이었다.
작전시작은 1943 년 1 월 1 일 오전 6시 30 분이었으나 , 제 2/132 대대의 이동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24 시간 연기되었다. 제 2/132 대대가 정글을 뚫고 11 번고지로 이동하던 1942 년 12 월 31 일에 제 132 연대장 넬슨 대령이 말라리아로 쓰러져 알렉산더 조지 대령으로 교체되었다.
1943 년 1 년 1 일 오전 9시 15분에 전선에 부임한 조지 대령은 곧 전선을 시찰하면서 부하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제 132 연대의 공격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병사들이 단발적인 일본군의 저격을 너무 무서워하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린 그는 전선에서 저격병에게 노출되어도 계속 움직이면 저격병들이 맞추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일본군 저격병들이 노리는 최전방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쉴새없이 돌아다니면서 부하들의 방어태세를 점검하고 즉석에서 지시를 내렸다. 신임 연대장을 못 알아본 미군 병사 몇 명이 당장 몸을 낮추라고 소리질렀으나 그는 개의치 않고 꼿꼿이 선 채로 돌아다니면서 시찰을 계속했다.
일본군 저격병이 그를 노리고 몇 발을 쏘았으나 모두 빗나갔다. 이로써 조지 대령은 정글에서 기동 중에 적의 저격을 받아도 그 자리에 멈추는 것보다 계속 이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입증한 후 부하들에게 진격 도중 일본군의 저격을 받더라도 전진을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하라고 명령했다.
1943 년 1 월 2 일의 공격에 동원될 화력은 더 강해졌다. 해병 제 3/10 대대의 75mm Pack Howitzer 12 문과 제 247 야포대대의 105mm 곡사포 12 문에 더하여 제 90 야포대대 A 포대의 155mm 곡사포 4 문이 새로 투입되었다. 2 일 아침이 되자 미군의 야포들이 일본군 방어선을 집중포격했고 , 이어서 6시 30 분부터 보병이 진격을 시작했다.
북쪽에서 공격한 제 3/132 대대의 공격은 어느 정도 전진했으나 기푸진지의 주 방어선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고 , 애당초 작전목표도 일본군의 주의를 붙잡아 두는 것이었다. 오후 2시에 제 3/132 대대는 출발선에서 약간 전진한 선에서 멈추고 방어태세로 전환했다.
제 3/132 대대는 15 명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 4 명의 전사자와 8 명의 부상자를 기록했다.
동쪽에서 공격한 제 1/132 대대도 마찬가지로 기푸진지의 외곽방어선을 따라 동쪽 포위망을 완성하자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제 1/132 대대는 25 명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2 명의 전사자와 4 명의 부상자를 기록했다.
( 27 번 고지점령 상황도. 원본은 여기로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Guadalcanal/maps/USA-P-Guadalcanal-XII.jpg )
주공이었던 제 2/132 대대의 공격은 성공했다. 1 일 저녁에 일본군에게 들키지 않고 27 번 고지 남쪽의 11 번 고지에 도착한 제 2/132 대대는 2 일 아침 6시 30 분에 야영지를 떠나 27 번 고지를 향하여 북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행군은 험난했다.
11 번 고지와 27 번 고지와의 거리는 직선상으로는 1,600m 밖에 되지 않았으나 , 지형의 기복이 너무 심하여 실제 행군 거리는 5,500m 에 달했다. 미끄럽고 급한 경사길은 병사들의 행군을 더디게 만들었고 , 병사들의 군복은 땀으로 흠뻑 젖었으며 , 얼굴로 쉴새없이 땀이 흘러내려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신 일본군도 미군들이 설마 이런 지형을 통하여 공격해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므로 이 방면의 방어는 전무했다. 오전 9시 7 분에 제 2/132 대대의 선두가 총 한번 쏘지 않고 27 번 고지의 정상에 도달했다. 미군의 공격은 완전히 기습을 달성했다.
미군의 선두가 고지 정상에 도착했을 때 고지 정상에서 불과 90m 떨어진 지점에는 75mm 산포 1 문이 배치되어 있었고 , 일본군들은 포에서 약 30m 떨어진 지점에서 완전히 경계를 풀고 쉬고 있었다.
홀연히 남쪽에서 나타난 미군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일본군들이 급히 산포 쪽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늦었다. 미군들은 소총의 일제사격으로 일본군들을 간단히 처치했다. 곧이어 후속부대가 잇달아 도착 , 11 시 30 분까지 대대 전체가 고지 정상에 도달하여 곧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제 2/132 대대도 해병대처럼 일부 장비들의 보급이 부족한 경향이 있었는데 야전삽도 그중 하나로서 참호를 파는데 큰 지장을 받았다.
미군이 개인호와 기관총호 및 박격포호를 완성하기도 전에 기습의 충격에서 깨어난 기푸진지의 일본군들이 총공격을 가해왔다. 일본군은 박격포 , 척탄통 , 기관총 , 소총은 물론 약간의 야포까지 자신들이 가진 모든 화력을 총동원하여 공격을 가해왔다.
미군도 개런드 소총으로 응사했고 , 60mm 박격포는 일본군이 척탄통이 발사할 때마다 대응사격을 가하여 침묵시켰다. 제 2/132 대대는 40 분 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일본군의 첫번째 공격을 물리쳤다. 일본군은 그날 총 7 번이나 27 번 고지를 공격했으나 그때마다 반격을 받아 큰 희생을 내고 물러났다.
제 2/132 대대에서는 8 명이 전사하고 , 70 명이 부상을 입었다. 해가 지자 제 2/132 대대는 너무 노출된 고지 정상을 피하여 남쪽으로 90m 쯤 내려와서 방어선을 편성했다. 일본군들은 밤새 남하하여 3 일 새벽까지 제 2/132 대대를 북쪽 , 북서쪽 및 남서쪽 방면에서 포위했다.
1 월 3 일 아침이 되자 일본군들은 공격을 시작했으나 미군의 야포에 막혀서 제 2/132 대대의 방어선에는 제대로 접근해 보지도 못했다. 북사면을 기어오른 일본군들이 제 2/132 대대의 방어선 전체를 감제할 수 있는 27 번 고지 정상에 기관총을 배치하였으나 곧 해병제 3/10 대대가 쏘아대는 75mm Pack Howitzer 들의 집중사격을 받아 흔적도 없이 날아가고 말았다.
미군의 야포사격을 모면하기 위하여 일본군들은 속임수를 썼다. 일본군은 야포 사격이 시작되면 즉시 가까운 미군 방어선에 박격포 사격을 가하였다. 일부 미군 병사들은 아군의 야포가 오인사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포격을 중단하라고 외치기도 했으나 파견나온 전방관측 장교는 이런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포격을 지속시켰다.
저녁이 되자 결국 일본군은 물러갔다. 제 2/132 대대는 다시 27 번 고지 정상으로 올라가서 방어선을 편성했고 , 화기중대인 H 중대가 정상에 수냉식 기관총들과 60mm 박격포들을 옮겼다.
1 월 3 일과 4 일에 걸쳐 기푸진지 북쪽의 제 3/132 대대와 동쪽의 제 1/132 대대는 전선을 정리하기 위한 제한적 공세만을 실시했다.
1 월 4 일 , 제 132 연대는 현재의 방어선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병사들은 참호를 통나무로 보강하고 , 참호 앞쪽으로는 철조망을 쳤다. 제 132 연대장 조지 대령은 각 중대마다 1 개 소대의 수냉식 기관총들을 배치하여 화력을 보강했고 , 연대의 81mm 박격포들은 29 번 고지에 배치하여 필요시 집중적인 화력지원이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이로써 기푸진지의 북쪽 , 동쪽 , 남쪽에 걸친 강력한 포위망이 완성되었다. 제 132 연대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전투손실과 함께 전투피로증 , 말라리아 및 설사병에 시달리던 제 132 연대는 더 이상 공세를 실시할 여력이 없었다. 제 132 연대는 1943 년 1 월 9 일에 제 25보병사단 소속의 제 35 연대에게 방어선을 물려주고 후방으로 빠질때까지 방어에만 전념했다.
제 132 연대는 22 일 동안 지속된 전투에서 제 3/132 대대장 라이트 중령을 포함하여 115 명의 전사 및 실종자와 238 명의 부상자를 기록했다. 동 연대는 전투보고서에서 같은 기간 동안 일본군 400 명에서 500 명 정도를 사살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기푸진지 내의 일본군 병력이 모두 합쳐 약 500 명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이 숫자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려우나 상당한 피해를 입힌 것은 확실하다. 비록 기푸진지 자체는 여전히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었으나 , 제 132 연대의 공격은 일본군의 교두보 정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가장 중요한 작전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제 14 군단은 오스텐 산의 일본군에게 병력의 움직임이 노출될 걱정없이 1 월 공세를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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