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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83) - 12 월 공세 준비 /blog.naver.com/imkcs0425/60116230466


83. 12 월 공세 준비

비록 대규모 공세를 펴기에는 병력이 부족했지만 패치 소장은 1942 년 12 월 내내 수세적 태도만 취하지는 않았다.  미군은 1943 년 1 월로 예정된 대규모 공세를 앞두고 우선 교두보 남쪽의 오스텐 산을 점령하기 위한 국지적 공세를 계획했다. 1942 년 12 월 초까지만 해도 오스텐 산에는 일본군이 거의 없었다.
11 월 말과 12 월 초에 걸쳐 오스텐 산 일대를 정찰했던 제 132 연대의 정찰대는 일본군이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12 월 중순에 접어들자 오스텐 산에 일본군이 있다는 증거가 나타났다.  12 월 12 일에 소수의 일본군이 오스텐 산 방면으로부터 교두보 내로 잠입하여 보조활주로 부근에 주기되어 있던 P- 38 전투기 1 대와 유조차 1 대를 파괴한 사건이 일어났다.
패치 소장은 12 월 14 일에 제 132 연대의 작전참모가 이끄는 40 명 규모의 정찰대를 오스텐 산으로 파견했다.  정찰대는 오스텐 산 부근에서 기관총 4 정과 박격포 2 문을 갖추고 참호에 틀어박힌 1 개 소대 규모의 일본군에게 공격을 받고 후퇴했다. 이로써 오스텐 산에 일본군이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오스텐 산 부근을 지키는 일본군들은 오카 아키노스케 대좌가 지휘하는제 124 연대 , 제 228 연대 및제 10산포연대의 잔존병력들이었다. 오카 부대의 주력은 주로 오스텐 산 정상의 서북쪽에 있는 27 번 고지와 31 번 고지 사이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 이 지역에는 1,400m 걸쳐 토치카가 줄지어 늘어선 강력한 방어선이 축조되어 있었다.
오카 부대는 오스텐 산에 배치된 이래 거의 보급을 받지 못하여 , 병사들은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 후송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많은 병사가 아무런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토치카나 참호에서 그대로 죽어갔다. 그러나 , 그런 상황에서도 일본군들은 미군에 결코 항복하려 하지 않았으며 , 광신적인 열정을 가지고 미군에게 악착같이 저항했다.

( 오스텐 산 부근 지형도. 남동쪽의 산 표시가 오스텐 산의 정상이며 , 정상에서 서북쪽의 검은 막대가 일본군의 주 방어선. 원본은 여기로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Guadalcanal/maps/USA-P-Guadalcanal-X.jpg )

1942 년 12 월 16 일에 패치 소장은 교두보의 서쪽 방면의 방어를 책임지고 있던 존 아더 해병대령에게 12 월 8 일에 상륙한 제 132 보병연대를 사용하여 오스텐 산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르로이 넬슨 대령이 지휘하던 제 132 연대는 실전경험이 전혀 없었다. 넬슨 대령은 윌리엄 라이트 중령의 제 3/132 대대를 선봉으로 내세우고 , 얼립스트라 중령의 제 1/132 대대를 예비대로서 뒤따르게 했다.
조지 페리 중령의 제 2/132 대대는 제 132 연대의 지휘에서 벗어나 교두보 내에서 방어를 담당했다. 105mm 곡사포를 가진 제 246 야포대대와 75mm Pack Howitzer 를 보유한 해병제 2/10 대대가 화력지원을 담당했다. 물론 필요하면 추가로 화력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1942 년 12 월 11 일 현재 과달카날의 미군은 해안포를 제외하고 75mm Pack Howitzer 28 문 , 105mm 곡사포 36 문 , 155mm 곡사포 12 문 , 155mm 롱톰 평사포 6 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해병제 2/10 대대의 75mm Pack Howitzer 들은 교두보 남쪽에 방열했고 , 제 246 야포대대의 105mm 곡사포들은 그보다 북쪽인 전투기용 보조활주로 부근에 방열했다.
일본군 방어선에 가해지는 타격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미군은 105mm 곡사포와 75mm Pack Howitzer 의 포탄 비행 시간을 계산하여 동시에 목표지점에 떨어지도록 75mm Pack Howitzer 를 약간 늦게 발사했다. 이것을 일제사격 ( Time on Target = TOT) 이라 부르는데 이때가 세계 최초로 실전에서 TOT 사격을 실시한 사례였다.

( 미육군의 M2 105mm 곡사포.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63950644 )

보급을 위하여 제 57 공병대대가 남쪽으로 도로를 내기 시작했다. 공병대는 12 월 20 일까지 교두보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35 번 고지까지 지프가 다닐 수 있는 도로를 개통했다.
미군은 이 도로에 12 월 19 일 전사한 제 3/132 대대장 라이트 중령의 이름을 따서 라이트 도로 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육군의 M2 105mm 곡사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