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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82) - 어뢰정들의 활약 /blog.naver.com/imkcs0425/60116108903


82. 어뢰정들의 활약

1942 년 12 월 들어서 칵터스 항공대와 미해군은 과달카날 근해에서 일본군의 보급을 차단하는데 노력을 집중했다. 타사파롱가 해전의 참패이후 미해군이 일본해군과의 야전을 회피함에 따라 어뢰정들이 도쿄급행을 저지하는 선봉에 나서게 되었다.
당시 툴라기에는 어뢰정 모함 맥팔랜드의 지원을 받는 미해군의 어뢰정들이 항상 10 척 이상 작전가능상태에 있었다. 툴라기의 어뢰정들은 엘코 77 급 (= PT - 20 급 ) 어뢰정들이었다.

( PT - 20.Elco 77-footers 배수량 : 35 톤 , 길이 : 23m, 폭 : 6m, 속력 : 40 노트 , 무장 : 21 인치 어뢰 4 발 , 12.7mm 기관총 4 정 , 승무원 12 명 )

다나카 제독은 1942 년 12 월 3 일에 10 척의 구축함을 이끌고 다시 드럼통 수송을 실시했다.
해안감시대원의 보고에 이어 미군의 정찰기가 다나카 함대를 발견하고 보고하자 곧 헨더슨 비행장에서 돈틀레스와 아벤저 15 대로 이루어진 공격대가 와일드캣의 호위를 받으면서 출격했다.
다나카 제독의 함대도 제로기의 보호를 받고 있었으므로 다나카 함대 상공에서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져서 미군기 2 대가 격추되었다.
폭격 결과는 실망스러워서 구축함 마키나미에 피해를 입혔을 뿐이었다. 게다가 미군 지휘선상의 혼란으로 인하여 툴라기의 어뢰정들에게 출격명령이 떨어지지 않아서 다나카 함대는 무사히 드럼통을 투하하고 돌아갔다. 다나카 제독은 12 월 7 일에도 11 척의 구축함으로 드럼통 수송을 시도했다.
칵터스 항공대가 다시 공습을 가하여 구축함 노와키에게 지근탄 1 발을 가하여 기관실과 보일러실을 침수시키고 , 17 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나머지 구축함들의 피해는 경미했다. 다나카 함대 상공을 지키던 제로기들의 반격을 받아서 최고위급의 돈틀레스 조종사 중 1 명인 조셉 세일러 소령이 격추되어 전사했다.
이번에는 툴라기의 어뢰정 8척이 다나카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2 척은 코컴보나와 에스퍼란스 곶 사이를 감시했고 , 2척은 과달카날 섬의 서북쪽에서 초계 중이었으며 , 주력 4 척은 사보 섬 남쪽의 후미진 곳에 잠복하고 있었다. 12 월 7 일 오후 11 시가 좀 넘은 시간에 초계 중인 어뢰정 2척과 다나카 함대는 사보 섬 동남쪽 해상에서 거의 동시에 서로를 발견하였다.
하필이면 이때 어뢰정 1 척의 엔진이 말썽을 일으켜서 나머지 1 척도 어뢰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동료를 위하여 연막을 쳤다. 그러나, 어뢰정의 출현에 놀란 다나카 함대는 어뢰회피 동작을 취하면서 11 시 30 분에 함수를 돌려 북서쪽으로 달 아나기 시작했다.
15 분 후인 11 시 45 분에 냉정을 되찾은 다나카 제독은 다시 방향을 바꾸어 사보 섬 남쪽을 통하여 아이언바텀사운드에 진입했다. 그때 사보 섬에 잠복해 있던 4 척의 어뢰정이 기습을 가해왔다. 미국 어뢰정들은 12 발의 어뢰를 발사하고는 그대로 다나카 함대에게 돌진하면서 12.7mm 기관총으로 사격을 가 했다.
일본함대의 관심을 어뢰정 자체에게 끌어들임으로써 구축함장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발사한 어뢰를 회피하는데 신경을 쓰지 못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이들 중 존 실즈 소위가 지휘하는 PT - 59 정은 일본구축함 오야시오에서 불과 90m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하면서 기관총탄을 퍼부어 오야시오의 승무원 10 여명을 사살하는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PT- 59 정도 반격을 받아 25mm 기관포탄과 13mm 기관총탄 10 여발을 맞았으나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일본구축함의 함장들은 미국어뢰정들의 계략에 속지 않았다. 일본구축함들은 접근하는 어뢰정들을 25mm 기관포와 13mm 기관총으로 상대하는 동시에 달려오는 어뢰의 항적을 확인하여 모두 회피했다.
그러나 , 어뢰정의 출현에 위협을 느낀 다나카 제독은 수송임무를 포기하고 그대로 철수했다.
이로써 어뢰정들은 수송임무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용감하게 오야시오를 공격했던 PT - 59 정은 12 월 9 일 밤에 큰 전과를 올렸다. 동료 어뢰정 1 척과 함께 에스퍼란스 곶 부근을 초계하던 PT - 59 정은 드럼통을 감싼 그물을 끌고가는 일본군의 상륙주정을 발견하고 총격을 가하였다.
그떄 PT - 59 정의 정장 실즈 소위는 근거리에서 부상한 상태의 일본잠수함 I - 3 호를 발견했다.  PT- 59 정은 즉시 2 발의 어뢰를 발사하여 모두 명중시켰다. I - 3 호는 순식간에 침몰하여 소위 1 명을 포함한 4 명만이 살아남았다.  이들 생존자들은 과달카날에 상륙하여 I - 3 호의 비참한 최후에 대하여 보고했다.  I - 3 호 잠수함은 당시 드럼통을 수송하던 중이었다.
일본해군은 구축함에 의한 드럼통 수송에 더하여 잠수함을 이용하여 드럼통 수송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드럼통을 잠수함 내부에 싣고 야간에 과달카날 앞바다에서 부상하여 드럼통을 해상에 투하했다.

첫번째 잠수함 수송은 성공했으나 , 두번째 수송에 나섰던 I - 3 호가 그만 PT - 59 정에게 격침당하고 만 것이었다.  이후 일본군은 수송방식을 바꾸어 잠수함의 외부에 드럼통을 매달고 잠항한 상태로 잠수함 내에서 조작하여 드럼 통들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하고 , 나중에는 어뢰의 탄두를 제거하고 대신 식량이나 의약품 등을 넣어서 해안에 발사하는 고육지책까지 동원했다.

( I - 3 호 잠수함.(伊一型潛水艦)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38598230 )

1942 년 12 월 11 일에 다나카 제독은 다시 10 척의 구축함을 동원하여 드럼통 수송을 시도했다.
다나카 함대가 뉴조지아 섬 북방에 이르자 450kg 짜리 폭탄을 적재한 돈틀레스 14 대가 P - 38 전투기 및 와일드캣 의 엄호를 받으며 공습을 가했다. 그러나 , 일본구축함들은 재빠른 회피운동으로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제 다시 어뢰정들이 나서야 할 때였다.
어뢰정들은 3척으로 이루어진 편대 단위로 나누어져 다나카 함대를 기다렸다. 이들중 레스터 갬블 소위가 이끄는 어뢰정 편대가 타사파롱가와 에스퍼란스 곶 사이에서 다나카 함대를 발견했다. 갬블 소위는 즉시 무전으로 동료 어뢰정들에게 일본함대의 출현을 알림과 동시에 휘하 어뢰정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미국어뢰정의 출현을 예상하고 있던 일본구축함들은 즉시 탐조등을 비추면서 사격을 가했으나 어뢰정들은 용감하 게 고속으로 육박하면서 근거리에서 일제히 12 발의 어뢰를 발사하고는 반전하여 달아났다. 그날은 마침 달이 밝아서 육안에 의존하는 원시적인 조준기 밖에 가지지 못한 어뢰정들에게 유리했다.
12 월 12 일 새벽 1 시 , 어뢰정들이 발사한 어뢰 중 2 발이 일본구축함 데루즈키에 명중했다.
데루즈키는 순식간에 동력을 상실하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다나카 제독은 구축함 가와카제와 스즈카제에게 데루즈키를 도우라는 임무를 맡긴 다음 수송임무를 포기하고 철 수했다.
카밈보 만 근처에서 초계를 하고 있던 플랭크 프리랜드 소위의 PT -44 정은 갬블 소위의 무전을 받고 달려가던 중 에 서쪽으로 고속항진하는 다나카 함대를 발견했다. PT- 44 정은 즉시 변침하여 전속력으로 다나카 함대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때 데루즈키를 돕고 있던 구축함 가와카제와 스즈카제가 PT -44 정을 발견하고 사격을 가했다.


Frank Freeland's PT 44


PT- 44 정은 불타는 데루즈키 때문에 이 2 척의 일본구축함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일본군의 사격은 정확했다. 최초의 일제사격이 어뢰정에 명중한 순간 프리랜드 소위는 부하들에게 당장 바다로 뛰어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 그의 뒤를 따라 즉시 바다에 뛰어든 승무원은 1 명 뿐이었고 , 나머지 승무원 9 명은 고속정의 후미에 있는 구명대를 가지러 갔다.
그 순간 일본군의 포탄이 휘발유가 가득찬 연료탱크에 명중하여 , PT -44 정은 엄청난 폭발과 함께 말 그대로 산산 조각이 났다. 충격파로 인하여 수중에 있던 프리랜드 소위의 하반신이 일시적으로 마비될 정도로 격렬한 폭발이었다. 미처 배를 떠나지 못한 승무원 9 명은 순식간에 몰살당했다.
에스퍼란스 곶 해안을 초계하던 다른 어뢰정 1 척은 피그 암초에 좌초하여 , 동료 어뢰정이 끌어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날이 밝아서 툴라기에 기지를 둔 ' 칵터스 해군 ' 소속의 초계정 PC-476 호가 달려와서 암초에서 끌어 내었다.
PC-476 정은 또한 부근에서 버려진 일본군의 상륙주정 하나를 발견하고 수색하여 유용한 문서 몇 장을 노획했다.  어뢰에 맞은 데루즈키의 승무원들은 4 시간 가까이 화재와 싸우면서 배를 구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했으나 12 일새 벽 4 시 40 분에 불길이 폭뢰저장고를 유폭시켰다.
데루즈키는 일대 폭발과 함께 아이언바텀사운드에 침몰했다. 이날의 시도를 마지막으로 구축함을 이용한 일본해군의 드럼통 수송은 끝이 났다. 누적되는 구축함들의 피해를 견디지 못한 야마모토 제독은 12 일 오후 육군 측에 구축함을 이용한 드럼통 수송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이후 과달카날에 대한 보급은 잠수함만을 이용하여 실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