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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89) -갤로핑호스 전투 (2) /blog.naver.com/imkcs0425/60116696345


89. 갤로핑호스 전투 (2)

둘째날인 1 월 11 일 공격은 식수부족으로 실패했다.  전반적으로 솔로몬 제도의 섬들에는 샘물이나 시냇물이 풍부했기 때문에 식수부족으로 곤란을 겪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 1943 년 1 월 들어 맑은 날이 며칠 지속되자 공격개시일인 1 월 10 일에는 고지대인 갤로핑호스 지역에서 지표수를 볼 수가 없었다.
식수 문제를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던 연대보급장교가 급히 66 번 고지 남쪽의 샘에서 물을 길어다가 전방으로 보급했으나 급조된 엉성한 계획 하에 전방으로 보급되던 식수는 대부분 후방 병력들이 마셔버렸다. 그 결과 제 3/27 대대는 10 일과 11 일 이틀 이상을 처음에 출발할 때 채워넣은 수통 하나에 의지해야만 했다.
11 일 아침이 되자 제 3/27 대대는 식수가 보급될 것이라고 믿고 야포사격 이후에 53 번 고지를 향해 진격했다.  그러나 엑스톤 고지를 넘었을 때 53 번 고지에서 쏘아대는 일본군의 박격포 때문에 전진이 멈추었다.  일본군의 박격포 때문에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 타는듯한 갈증에 시달리던 제 3/27 대대의 병사들은 차례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어느 소대는 정오가 되기 전에 10 명 이외에는 모두 갈증으로 정신을 잃기도 했고 , 그 와중에 I 중대장 존스 대위는 오후 1 시경에 일본군이 발사한 박격포 파편에 부상을 입어 후송되었다.
결국 제 3/27 대대장 부시 중령은 철수명령을 내렸고 , 제 3/27 대대는 저녁때까지 52 번 고지로 철수했다.
제 27 연대장 맥클록 대령은 지쳐버린 제 3/27 대대를 후방으로 빼고 , 예비대인 미첼 중령의 제 2/27 대대를 52 번 고지에 파견했다.  제 3/27 대대는 후방인 54 번 고지 부근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한 후제 2/27 대대에게 식수를 보급하는 일에 투입되었다.  제 2/27 대대는 12 일 아침이 되자 야포의 준비사격 후에 공격에 나섰다.
G 중대는 북서쪽으로 진격하여 정오 경에 제 1/27 대대와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F 중대는 정면의 엑스톤 능선 방면으로 공격했으나 강력한 일본군의 기관총 사격에 막혀 실패했다. 전날 일본군들은 후퇴하는 제 3/27 대대를 따라와서 엑스톤 능선을 점령하고는 북쪽의 심스 능선에 있던 기존의 방어선과 연결했다.
예비대인 E 중대까지 투입되어도 엑스톤 능선을 돌파하지 못하자 제 2/27 대대장 미첼 중령은 엑스톤 고지의 북쪽을 돌아서 심스 능선을 공 격하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에 따라 엑스톤 고지를 우회한 F 중대와 E 중대는 심스 능선의 일본군들로부터 역시 치열한 사격을 받았다.
그동안 엑스톤 능선의 남쪽 방면을 공격한 제 2/27 대대의 화기중대인 H 중대는 기습적으로 엑스톤 능선의 남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81mm 박격포로 엑스톤 능선의 일본군들을 모두 쫓아내어 버리고는 심스 능선에서 전투 중인 E 중대와 F 중대에게 지원사격을 해주었다.
이러한 지원 사격에 힘입어 E 중대와 F 중대는 서서히 전진했으나 결국 해가 지기 전에 심스 능선의 절반만 점령한 상태에서 방어선을 편 성했다. 이날 저녁에 강력한 일본군의 기관총 진지를 정찰하던 웰든 심스 중위가 일본군의 기관총 사격으로 전사했다. 심스 능선은 이 심스 중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 갤로핑호스 전투 상황도. 1943 년 1 월 12 일과 13 일의 상황 )

4 일째인 1 월 13 일이 되자 다시 전방에 식수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 제 2/27 대대는 최종 공격에 나섰다.  F 중대는 심스 능선을 완전히 점령하고 북쪽에서 53 번 고지를 공격하기로 했으며 , E 중대는 심스 능선을 내려와 엑스톤 능선과 심스 능선 사이의 계곡을 통과하여 동쪽에서 53 번 고지를 공격하기로 했다.
13 일 아침이 되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제 심스 중위를 전사하게 만든 강력한 일본군의 기관총 진지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E 중대의 선두와 기관총 진지와의 거리는 불과 20m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60mm 박격포가 포격을 가하기 위하여 심스 능선 끝까지 물러났으나 능선의 길이가 짧아서 포신을 거의 수직으로 세워도 포탄이 일본군의 기관총 진지를 넘어갔다.
그때 제 2/27 대대의 부대대장 에반스 대위가 나섰다.  그는 4 명의 병사를 이끌고 아군의 엄호사격 하에 일본군의 기관총 진지에서 불과 10m 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허리 높이의 장애물 뒤쪽까지 기어서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바로 어제 심스 중위가 전사한 장소였다.
그때 갑자기 일본군 진지로부터 수류탄 몇 발이 날아왔다.  그중의 1 발은 정확하게 5 명의 정중앙에 떨어졌으나 천만다행으로 불발탄이었다.  10 년 감수한 에반스 대위와 4 명의 병사들은 즉시 수류탄을 2 발씩 던진 다음 폭발과 동시에 함성을 지르면서 돌격했다.
무모하리만큼 용감한 돌격에 당황한 일본군은 그대로 얼어붙었고 , 일부는 도망치기도 했다. 5 명의 미군은 10m 의 거리를 순식간에 돌파했다.  선두에서 돌격한 에반스 대위는 첫발을 발사한 후에 소총이 고장나자 소총을 집어던지고 권총을 꺼내들었고 , 5 명은 곧바로 일본군 진지에 뛰어들어서 닥치는대로 일본군을 사살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얼굴로 이 용감한 돌격을 지켜보던 E 중대원들이 곧 달려와서 순식간에 일본군들을 섬멸했다.  에반스 대위의 용감한 행위에 고무된 제 2/27 대대 병사들은 52 번 고지에서 쏘아대는 81mm 박격포의 화력지원을 받으면서 심스 능선의 나 머지 지역들을 파죽지세로 제압하고 북쪽과 동쪽으로부터 53 번 고지에 쇄도했다.
이 용감한 행위로 에반스 대위는 명예훈장을 받았다.  제 2/27 대대 병사들이 심스 능선을 거의 다 점령할 때쯤 마침내 식수가 고갈되어 진격이 중단될 위기를 맞았으나 그때 마침 스콜이 내렸 다.  스콜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으나 병사들은 웅덩이에 고인 물과 자신들의 옷을 짜서 나온 물을 마시고 생기를 되찾고는 공격을 지속할 수 있었다.
제 2/27 대대 병사들이 심스 능선을 소탕하는 동안 제 25사단의 야포대대 3개가 53 번 고지를 강타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30 분에 야포 사격이 끝나자마자 E 중대와 F 중대는 동쪽과 북쪽으로부터 동시에 53 번 고지에 돌입하여 정오 경에 고지를 완전히 점령했다.
이로써 제 27 연대는 갤로핑호스 지역을 점령하여 작전목표를 완수했다. 제 2/27 대대는 53 번 고지에서 70mm 야포 1 문을 파괴하고 , 다수의 소총 , 기관총 및 척탄통과 약간의 탄약을 노획했다.  12 일과 13 일에 걸친 전투로 제 2/27 대대는 31 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미군이 확인한 일본군 전사자는 170 명으로서 모두 제 38사단의 제 228 및제 230 연대 소속이었는데 대부분 많이 굶어서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E 중대와 F 중대가 53 번 고지를 점령하는 동안 G 중대는 53 번 고지 북쪽의 정글에 배치되어 있던 일본군들을 소탕했다.
이후 1 월 15 일부터 22 일까지 제 161 연대가 53 번 고지와 마타니카우 강의 남서쪽 지류 사이의 지역을 소탕했다. 그동안 제 27 연대는 동쪽의 시호스 지역과 기푸진지를 공격하고 있던 제 35 연대의 작전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갤로핑호스 지역 부근의 일본군을 소탕하는 한편 다음 작전을 위하여 서쪽으로 정찰대를 내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