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시호스 전투
제 27 연대가 갤로핑호스 전투를 치르는 동안 제 35 연대는 43 번및 44 번 고지로 이루어진 시호스 지역과 기푸진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제 35 연대가 제 25사단으로부터 받은 명령은 기푸진지를 포위하고 있던 제 132 연대를 교체하고 , 기푸진지 서쪽의 시호스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이 임무를 위하여 제 35 연대에는 로이 고긴 중령의 제 3/182 대대와 제 25사단의 기병정찰중대가 추가로 배속되었다. 제 35 연대장 맥클루 대령 ( McClure) 은제 2/35 대대와 기병정찰중대로 하여금 제 132 연대와 교체하여 기푸진지를 포위하도록 했다.
시호스 지역은 일리엄 뮬렌 중령의 제 3/35 대대가 공격하며 , 제임스 리어 중령의 제 1/35 대대는 처음에는 연대 예비대로서 12시간 간격을 두고 제 3/35 대대를 따르다가 제 3/35 대대가 일단 시호스 지역을 점령하고 나면 서쪽으로 공격을 실시하여 마타니카우 강과 시호스 지역 사 이의 일본군을 소탕할 임무를 맡았다.
제 3/182 대대는 오스텐 산 북쪽 기슭에 포진할 사단포병대를 보호하면서 제 132 연대와 제 27 연대 사이의 간격을 메꾸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지역에는 일본군의 전차가 없었고 , 또한 정글 속으로 75mm Pack Howitzer 를 끌고 들어가기가 어려웠으므로 제 35 연대의 대전차 중대 와 야포중대 병력은 모두 보급부대로서 300 명의 원주민 인부들과 함께 라이트 도로의 종점에서 전선까지 보급품을 운반하는 일에 투입되 었다.
( 시호스 전투 상황도.원본은 여기로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Guadalcanal/maps/USA-P-Guadalcanal-XVII.jpg )
제 35 연대는 1943 년 1 월 7 일에 교두보를 출발했다. 도중에 제 2/35 대대는 기푸진지로 빠지고 , 제 3/35 대대와 제 1/35 대대는 남쪽으로 내려가서 8 일 밤에 27 번 고지에서 남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야영했다.
제 3/35 대대의 박격포들은 기푸진지에 남았으나 기관총들은 대대 주력과 행동을 같이 했다.
9 일 아침에 더 남서쪽으로 내려간 제 3/35 대대는 9 일 밤에는 27 번 고지에서 남서쪽으로 1,400m 떨어지고 , 목표지점인 시호스 지역의 43 번 고지로부터는 남동쪽으로 1,800m 떨어진 지점에서 야영했다.
그날 저녁에 제 3/35 대대장 뮬렌 중령은 시호스 지역의 남쪽 고지인 43 번 고지에서 남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낮은 고지가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야영한 후 11 일 아침에 공격을 실시하기로 했다.
10 일 아침에 제 3/35 대대는 그날의 목적지인 43 번 고지 남쪽의 낮은 고지를 향하여 출발했다. 선두의 K 중대에는 화기중대인 M 중대에서 2정의 기관총이 배속되었다. 정오 경에 K 중대는 43 번 고지에서 남동쪽으로 약 6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대대의 이동로를 감제할 수 있는 작은 고지를 발견하고 M 중 대의 기관총 2정과 1 개 분대를 남겨 고지의 방어를 맡기고 북서쪽으로 계속 진격했다.
K 중대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약 100 여명의 일본군이 갑자기 고지를 습격해왔다. 기습을 당한 소총수들은 고지에서 쫓겨났고 , 일본군은 2정의 기관총 중 1 정을 파괴하고 , 2 번 기관총의 사수를 사살하고 부사수에게 부상을 입혔다. 즉시 후퇴명령이 떨어졌으나 기관총 섹션을 지휘하던 윌리엄 푸니어 병장은 루이스 홀 기술상병과 함께 사수가 없어진 2 번 기관총에 달라 붙어서 일본군을 향하여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경사면을 기어오르는 일본군이 기관총 사각 아래에 놓이자 푸니어 병장이 기관총을 들어서 총구를 아래로 내렸고 , 홀 상병이 방아쇠를 당 겼다. 노출된 고지에서 외롭게 저항하던 두 사람은 결국 일본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전사했다.
그러나 2 명이 일본군을 저지하는 동안 미군의 증원군이 도착하여 제 3/35 대대는 중간에서 허리가 잘릴 위기에서 벗어났다. 목숨을 바쳐 대대를 구한 푸니어 병장과 홀 기술상병에게는 명예훈장이 추서되었다. 그날 저녁에 제 3/35 대대는 목적지인 43 번 고지의 남쪽에 위치한 작은 고지에 도착하여 야영했다.
시호스 지역에 대한 공격은 1943 년 1 월 11 일 날이 밝음과 동시에 실시되었다. K 중대가 정면을 공격하는 동안 L 중대가 서쪽으로 우회했고 , I 중대가 예비대로 K 중대의 뒤를 따랐다. 정면공격을 감행한 K 중대는 적의 강력한 기관총 사격을 받아 첫 1 시간 동안 90m 전진하는데 그쳤으나 , 서쪽으로 우회했던 L 중대가 일본 군을 서쪽에서 후려쳤다.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기습을 당한 일본군은 크게 동요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K 중대와 예비대였던 I 중대가 돌격을 감행하여 정오 경에 43 번 고지를 점령했다. 제 3/35 대대는 여세를 몰아 바로 북쪽으로 진격하여 오후 6시 31 분에는 44 번 고지까지 점령함으로써 하루 만에 시호스 지역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제 3/35 대대가 시호스 지역을 점령하자 이어서 제 1/35 대대가 남쪽과 서쪽 지역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제 3/35 대대와 12시간 간격을 두고 뒤따라온 제 1/35 대대는 A 중대를 남쪽에 배치하여 중요한 식수원인 샘물을 지키고 , B 중대를 북쪽에 배치하여 제 3/35 대대와 연결하면서 C 중대가 중앙에서 서쪽으로 공세에 나섰다. C 중대의 공세는 얼마 가지 않아서 일본군의 방어진지에 막혀 멈추었다.
( 시호스 남서쪽 지역 소탕작전상황도 )
1 월 13 일이 되자 보급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제 35 연대의 2개 대대가 정글 속에서 이동한 거리는 6,300m 가 넘었으며 현지인들이 맨손으로 걸어도 하루가 넘어 걸리는 거리였다.
미군은 B- 17 을 이용하여 보급품을 투하했다. 물자투하용 낙하산이 모자랐으므로 많은 보급품들을 두꺼운 천으로 단단히 포장한 다음 저공으로 비행하면서 그대로 떨어뜨렸다.
이런 식으로 13 일에 3.2 톤 , 15 일에 4 톤의 보급품을 투하했는데 , 회수율은 품목마다 달랐다.
전투식량의 85% 가 회수된 반면 탄약의 회수율은 15% 에 그쳤고 , 5갤런짜리 깡통에 담은 식수는 거의 회수하지 못했다.
다행히 15 일부터 시호스 지역의 북쪽인 50 번 고지까지 물자수송용 보트들이 도착하기 시작함에 따라 보급문제는 해결되었다.
( 미군이 마타니카우 강 상류에서 운용했던 물자수송용 보트들.
왼쪽의 보트는 미군 보트이며 오른쪽 보트는 일본군 보트를 노획한 것이다.)
그동안에도 C 중대의 공격은 계속 실패했다. 13 일에도 C 중대는 2 번 공격했으나 실패했으며 , 14 일에도 2 번 공격하여 모두 실패했다. 제 2/35 대대장 리어 중령은 야포사격을 요청했으나 사단 포병대가 정확한 사격제원을 획득하여 야포사격이 가능해진 것은 1 월 15 일이 되어서였다.
C 중대의 공격이 계속 실패하는 동안 시호스 지역 동쪽의 일본군들이 제 3/25 대대를 고립시키기 위하여 B 중대 전면에 거듭 공격을 가하다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격퇴되었다.
B 중대 전면이 비교적 안전해졌다고 판단한 리어 중령은 1 월 15 일의 공격에 B 중대를 동원하기로 했다. C 중대의 1 개 소대가 일본군 전면에 남아 고착견제하는 동안 B 중대가 남쪽으로 우회하여 일본군의 후방인 서쪽으로부터 일본군 방어선을 공격하기로 했다.
C 중대의 주력은 북쪽으로 이동하여 B 중대의 방어선을 물려받았다. 15 일 오전 9시 35분부터 제 64 야포대대의 105mm 곡사포 12 문이 30 분간 553 발의 포탄을 일본군 진지에 쏟아부었고 이어서 남쪽으로 우회한 B 중대가 서쪽으로부터 일본군 진지에 쇄도했다.
B 중대는 최후까지 저항하던 일본군 13 명을 사살하고 , 12 명을 사로잡았으며 , 70mm 산포 2 문 , 경기관총 3정 , 그리고 약간의 탄약을 노획했다. 일본군에게는 식량이 전혀 없었으며 , 포로 중 6 명은 너무 쇠약하여 걸을 수도 없을 정도였고 , 미군이 확인한 무덤만 78 개였다.
다음날인 16 일에 B 중대는 화기소대인 D 중대로부터 기관총 1 개 소대를 증원받아서 시호스의 남쪽과 남동쪽 및 동쪽 지역을 소탕했다. 일본군의 저항은 거의 없었으며 미군의 전진을 막는 것은 오직 험한 지형 뿐이었다. 18 일에 마침내 제 35 연대는 시호스 지역과 그 남쪽 및 남서쪽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시호스 지역과 주변 지역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제 1/35 대대는 144 명 , 제 3/35 대대는 414 명의 일본군을 사살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미군이 공격하기 전에 이미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한 일본군을 포함한 수치로 보인다. 일본군의 포로는 합쳐서 17 명이었다.
이외에도 제 1/35 대대는 경기관총 9정 , 소총 112정 , 권총 18 정을 노획했고 , 제 3/35 대대는 70mm 야포 2 문 , 중기관총 및 경기관총 35정 , 소총 266정 , 권총 26정을 노획했다.
갤로핑호스 지역에 이어 시호스 지역도 미군 수중에 들어옴으로써 이제 기푸진지의 일본군들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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