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드하벤 격침
패치 소장은 과달카날 섬의 지휘권을 인수했을 때부터 과달카날 섬의 서해안에 1 개 연대를 상륙시켜 일본군을 양쪽에서 협공하고 싶어했으나 , 당시 제 14 군단은 그만한 병력을 상륙시키고 보급을 유지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던 중 1943 년 1 월에 6척의 전차상륙정이 툴라기에 도착하여 칵터스 해군에 추가되면서 제 14 군단의 자체적인 상륙 및 해상보급 능력 이 획기적으로 증가했다.
여전히 일본군 배후에 상륙작전을 실시하고 싶어하던 패치 소장의 지시로 서해안 상륙가능성을 연구한 제 14 군단의 참모들은 증강된 1 개 대대 정도의 병력이면 칵터스 해군의 능력으로 충분히 상륙시키고 보급을 유지할 수 있다고 1 월 23 일에 보고했다.
상륙부대는 제 2/132 대대를 주축으로 제 132 연대의 대전차 중대 , 제 3/132 대대의 화기중대인 M 중대 , K/3/132 중대의 1 개 소대 , 75mm Pack Howitzer 를 장비한 제 10해병연대의 F 포대 , 그리고 공병대 , 의무대 , 정보 및 신호부대 등으로 이루어져 제 132 연대장인 알렉산더 조 지 대령이 지휘했다.
서해안의 뷰포트 만에는 이미 I/147 중대가 상륙해 있었으나 , 패치 소장은 조지 부대를 뷰포트 만보다 더 북쪽에 상륙시키길 원했다. 아메리칼 사단의 작전참모인 동시에 제 14 군의 참모인 폴 가반 중령이 적당한 상륙지를 물색하기 위하여 파견되었다.
가반 중령이 이끄는 분대 규모의 정찰대는 코컴보나에서 출발하여 I/174 중대가 장악한 타파나자 마을을 통과하는 오솔길을 따라 뷰포트 만 까지 간 다음 과달카날 섬의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적당한 상륙지를 물색했다. 가반 정찰대가 누구 곶 북쪽의 베라휴 마을을 상륙지점으로 정하자 뷰포트 만에서 소형범선인 코코라나에 1 개 분대를 태워 베라휴 마을로 파견했다.
베라휴 부근에서 소수의 일본군이 저항함에 따라 미군 1 명이 전사하자 뷰포트 만에서는 추가로 2개 분대를 더 파견하여 저항하던 소수의 일본군들을 몰아내고 1 월 31 일 오후 4 시에 베라휴 마을을 장악했다.
( 과달카날 전투의 최종단계. 원본은 여기로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Guadalcanal/maps/USA-P-Guadalcanal-XXI.jpg)
그러자 31 일 오후 6시에 쿠쿰에서 제 2/132 대대를 중심으로 한 조지 부대가 6척의 전차상륙정에 분승하여 브리스코 대령이 지휘하는 구축함 4 척 ( 플레처 , 래드포드 , 니콜라스 , 드하벤 ) 의 호위를 받으면서 베라휴 마을을 향하여 출발했다.
( DD-469 드하벤.USS De Haven (DD-727).
배수량 : 2,050 톤 , 길이 : 115m, 폭 : 12.1m, 속력 : 38 노트 , 항속거리 ; 15노트로 12,000km, 승무원 : 329 명 , 무장 : 5 인치 주포 5문 , 40mm 보포스 대공포 10 문 , 20mm 기관포 7 문 , 21 인치 어뢰발사관 10 문 , 폭뢰투하궤도 2 조)
1943 년 2 월 1 일 오전에 헨더슨 비행장을 폭격하러 왔던 일본군 폭격기가 조지 부대를 싣고 항해 중인 수송선단을 발견했다. 일본군 폭격기들은 수송선단에 대한 폭격을 시도하지 않았지만 1 대가 구축함의 대공포화에 의하여 격추되었다. 미군은 모르고 있었지만 1943 년 2 월 1 일은 일본군의 제 1 차 철수가 예정된 날이었다.
구축함 4 척으로 이루어진 브리스코 함대는 철수하는 일본군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될수 있었으므로 일본군은 14 대의 99식 함상폭격기를 투입하여 공습을 가하기로 했다.
일본기들이 과달카날 상공에 도달했을 때 브리스코 함대는 2개로 갈라져 있었다. 구축함 드하벤과 니콜라스가 호위해 온 전차상륙정 3척은 먼저 베라휴에 도착하여 양륙 중이었고 , 플레처와 래드포드는 3척의 전차상륙정 을 호위하여 에스퍼란스 곶을 막 지나는 중이었다. 미군의 호위전투기들은 모두 항해 중인 플레처와 래드포드 상공에만 몰려 있었으므로 베라휴 앞바다에서 경계하고 있던 있던 드하벤과 니 콜라스의 상공은 텅 비어 있었다.
오후 2시 50 분에 과달카날의 통신소에서 일본기 접근 경보를 발했고 , 잠시 후 일본기들이 드하벤과 니콜라스 상공에 나타났다. 2척의 미국구축함은 즉시 대공사격을 가하면서 회피운동을 시작했고 , 일본기들은 각각 드하벤과 니콜라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드하벤을 노린 일본기는 6 대였는데 이때 드하벤의 함장 찰스 톨멘 중령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톨맨 중령은 일본기들이 1,500m 고도까지 내려온 이후에야 대공포의 발사명령을 내렸다. 고도 1,500m 라면 이미 급강하폭격 항정에 들어간 이후이고 , 아무리 늦어도 10 초 내에 폭탄 투하 고도인 500m 에 도달한다.
1,500m 고도에서부터 대공사격을 실시해서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대공포화나 전투기의 방해가 전혀 없이 급강하를 실시한 일본기들은 대단한 명중율을 기록하여 , 드하벤은 순식간에 명중탄 3 발과 지근탄 1 발을 얻어맞았다. 첫번째 명중탄이 함교를 직격하면서 함장 톨맨 중령을 포함한 함의 지휘부가 몰살당했고 , 이어서 2 발의 폭탄이 더 명중했다.
드하벤은 상륙한 조지 부대 병사들이 경악한 얼굴로 지켜보는 가운데 2 분 만에 함수부터 침몰했다.
이로써 드하벤은 1942 년 9 월 21 일에 취역한 지 133 일 만에 짧은 생애를 마치면서 연합군의 주요 수상전투함으로는 마지막으로 167 명의 승무원들과 함게 아이언바텀사운드의 묘지에 합류했다.
양륙을 끝낸 전차상륙정 LCT- 63정과 LCT- 181 정이 즉시 달려가서 부상자 38 명을 포함한 드하벤의 생존자 146 명을 구조했다.
( LCT- 181 정에 구조된 드하벤의 생존자들 )
니콜라스는 운이 훨씬 좋았다. 8 대의 일본기가 니콜라스를 노리고 폭탄을 투하했으나 지근탄 1 발로 키에 손상을 입고 2 명이 전사했을 뿐이었다. 일본기들은 드하벤 , 니콜라스 , LCT- 63정과 LCT- 181 정의 대공포화 및 뒤늦게 달려온 미군전투기에 의하여 3 대가 격추되었다.
드하벤의 격침에도 불구하고 상륙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그날 오후까지 조지 부대는 무사히 상륙을 마쳤고 , 전차상륙정들과 이제는 3척으 로 줄어든 구축함들은 교두보로 돌아갔다. 한편 과달카날 북해안을 따라 전진하던 제 147 연대는 1943 년 2 월 1 일자로 드 카레 해병준장의 지휘에서 벗어나서 아메리칼 사단장인 세브 리 준장의 지휘 하에 들어갔다.
이날도 제 147 연대는 야포와 구축함의 함포사격 지원을 받으면서 보네기 강 하구의 일본군 진지를 공격했으나 점령하는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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