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최종 공세
1943 년 1 월 25 일에 제 25사단이 포하 강에 도달했을 때제 14 군단은 과달카날의 일본군 전부를 추격하여 완전히 섬멸할 충분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과달카날의 일본군을 전멸의 위기에서 구한 것은 미군 측의 판단착오였다. 1943 년 1 월 마지막 주부터 2 월 초에 걸쳐 미군 사령관들은 일본군이 조만간 과달카날에 새로운 지상군을 투입하여 대규모의 반격을 실시하려 한다고 믿고 있었다.
1943 년 2 월 6 일에 작성된 제 14 군단의 정보보고서는 일본군이 함재기 150 대에서 175 대를 포함한 항공모함 2척 , 전함 5척 , 순양함 8척 , 구축함 28척 , 지상발진항공기 304 대의 호위를 받는 수송선 11 척을 투입하여 1 개 보병사단을 과달카날에 상륙시키려 한다고 예측하고 있었다.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 헐지 제독은 강력한 일본함대가 2 월 7 일 또는 8 일 경에 공격해 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항공모함 2척 , 호위항공모함 3 척 , 신형전함 3척 , 구형전함 4 척 , 그리고 다수의 순양함과 구축함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6개 함대를 준비했다.
일본함대에 맞설 미국함대 세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헐지 제독은 피지 방면에서 방어임무를 맡고있던 구형전함 4 척까지 불러들였다. 제 14 군단장 패치 소장은 패주하는 일본군에 대한 추격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작전의 중심을 점차 일본군 추격에서 일본군의 상륙에 대한 방어로 옮겨갔다.
따라서 일본군에 대한 추격속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덕분에 1 만명이 넘는 일본군들이 무사히 과달카날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제 14 군단의 방침이 공격에서 방어 위주로 바뀌었다는 첫 조짐은 1 월 25 일에 나타났다.
패치 장군은 이날 하달한 명령에서 당시 제 14 군단의 선두에서 포하 강에 도달한 제 25사단 제 27 연대에게 추격을 속행시키는 대신 후속하던 CAM 사단이 제 2 연대를 추월하여 일본군을 추격하도록 명령했다. 제 25사단은 일본군의 해안상륙에 대비하여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CAM 사단은 1943 년 1 월 26 일 오전 6시 30 분부터 포하 강을 건너 진격을 시작했다.
해안쪽은 제 6해병연대가 담당했고 , 내륙 쪽은 제 182 연대가 진격했으며 , 제 147 연대가 예비대로 뒤따랐다. 진격은 순조로웠다.
CAM 사단은 낙오한 일본군 패잔병들로부터 가벼운 저항만을 받으면서 꾸준히 전진하여 26 일에는 900m 를 진격했고 , 27 일에는 2 배인 1,800m 를 진격하여 누에하 강에 도달했다.
이날 패치 소장은 CAM 사단의 예비대인 제 147 연대가 제 6해병연대와 제 182 연대의 전선을 모두 인수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 제 182 연대는 아메리칼 사단으로 복귀시켜 교두보 방어로 돌렸다. 패치 소장은 제 147 연대도 CAM 사단에서 빼내어 제 6해병연대만 남게 된 CAM 사단은 사실상 해체되었으나 , 제 147 연대는 당분간 CAM 사단장이었던 드 카레 해병준장이 지휘했다.
( 제 14 군단의 최종공격상황도. 원본은 여기로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Guadalcanal/maps/USA-P-Guadalcanal-XXI.jpg )
제 147 연대의 공격은 1943 년 1 월 30 일에 시작되었다. 오전 7시에 진격을 시작한 제 147 연대는 누에하 강을 건너 빠른 속력으로 진격하여 오전 11 시 52 분에는 선두의 정찰대가 보네기 강을 건넜다. 그러나 , 제 147 연대는 여기서 강력한 일본군의 저항에 직면했다.
약 900 명의 일본군이 보네기 강 하구에 강력한 진지를 만들고 틀어박혀 제 147 연대의 진격을 저지했다. 31 일에 제 3/142 대대가 보네기 강의 상류 쪽에서 강을 건너 남쪽에서 일본군 방어 진지를 압박했다.
제 147 연대는 야포 사격과 함께 구축함 앤더슨과 윌슨의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일본군 진지의 동쪽과 남쪽에서 강력한 공격을 가했으나 끝내 일본군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고 물러났다.
보네기 강 하구를 지키던 일본군들은 철수하는 일본군의 후위 임무를 위하여 1 월 14 일에 새로 상륙한 야노대대였다.
야노대대는 라바울에 잔류한 제 38사단의 병력 중에서 주로 30 대 이상의 보충병들을 중심으로 편성되었는데 비록 나이 많은 병사들이라고는 해도 최근에 도착하여 체력이 충분했으므로 기아에 허덕이던 기존의 일본군들보다는 월등한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결국 제 147 연대는 보네기 강 하구의 일본군 진지를 점령하지 못한 상태로 1 월 31 일을 넘기게 되었다. 1943 년 1 월 10 일부터 31 일에 걸친 제 14 군단의 공세는 성공적이었다.
이 기간 중제 14 군단은 4,000 여명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 105 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 야포 42 문 , 대공포 10 문 , 대전차포 9 문 , 박격포 및 척탄통 141 문 , 기관총 240정 , 소총 323 정 , 무전기 18개 , 레이더 1 조 , 트럭 13 대 , 트랙터 6 대 , 승용차 1 대 , 그밖에 탄약 , 지뢰 , 화염방사기와 다량의 문서를 노획했다. 미군의 피해는 전사 및 실종 189 명 , 부상 약 400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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