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렌넬 섬 해전 (1) - 시카고 피격
1943 년 1 월 23 일에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이 해군장관 프랭크 녹스와 함께 누메아에 도착하여 헐지 제독과 과달카날의 정세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서 니미츠 제독과 헐지 제독은 일본군이 다시금 과달카날에 대규모의 병력을 상륙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정찰기의 보고에 의하면 라바울과 부인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일본군의 선박들이 집결하고 있었고 , 항공모함과 전함들을 포함한 강력한 일본함대가 과달카날 북쪽의 온통자바 환초 부근을 떼지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니미츠 제독과 헐지 제독은 제 14 군단이 과달카날을 완전히 차지하는 것은 빨라야 1943 년 4 월 초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에 이미 교체가 결정된 해병제 2사단의 철수를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두 사람의 직속상관인 미함대 사령관 킹 제독이 발끈하고 나섰다. 킹 제독은 해병제 2사단의 교체 지연 문제와 관련하여 니미츠 제독과 헐지 제독에게 보낸 준엄한 어조의 전문에서 " 기다리고 , 연기하고 , 질질 끌기 " (" wait, delay and linger") 가 과달카날 전역의 표어가 된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킹 제독의 전문을 받고 화들짝 놀란 니미츠 제독과 헐지 제독은 부랴부랴 해병제 2사단을 최대한 빨리 철수시킬 계획을 세웠고 , 우선 1942 년 8 월 7 일에 해병제 1 사단과 같이 상륙했던 제 2해병연대를 1943 년 1 월 31 일까지 철수시키기로 했다.
그리하여 수송함 4 척을 중심으로 한 수송함대가 칵터스 항공대에 증원할 항공요원들과 보급품들을 싣고 1943 년 1 월 27 일에 누메아 항을 떠났고 , 호위를 위하여 기펜 제독의 제 18기동부대가 같은 날 에파테 기지를 출항했다. 헐지 제독은 이번 기회에 만일 야마모토 제독이 도전해오면 박살내기 위하여 휘하의 거의 모든 함정을 동원했다.
당시 출동한 함대는 경순양함 4 척과 구축함 4 척으로 이루어진 아인즈워스 제독의 순양함 부대 , 신형전함 노스캐롤라이나와 인디애나를 중심으로 한리 제독의 전함부대 , 드윗 램지 제독의 새러토가 기동부대 , 그리고 셔먼 제독의 엔터프라이즈 기동부대로서 수송함대의 후방 약 400km 에서 640km 거리를 두고 뒤따라갔다.
제 18기동부대를 포함하면 합계 항공모함 2척 , 호위항공모함 2척 , 신형전함 3 척 , 순양함 12척 , 구축함 25척에 달하는 강력한 세력이었다. 그러나 , 일본해군은 함대를 보내어 미국함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대신 지상발진 항공기를 동원하여 제 18기동부대를 공격했다.
제 18기동부대 사령관 로버트 기펜 소장은 기함인 중순양함 위치타를 타고 호위항공모함 체난고 및 스와니와 함께 카사블랑카에서 지구 반바퀴를 돌아 막 남태평양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는 대서양과 북아프리카에서의 경험 때문에 잠수함의 위협에는 과도하게 예민한 반면 현재 과달카날 근해에서 가장 큰 위협인 항공기의 위협에 대해서는 둔감했다.
제 18기동부대는 호위항공모함 2 척 (체난고 , 스와니 ), 중순양함 3 척 ( 위치타 , 시카고 , 루이스빌 ), 경순양함 3 척 ( 몽펠리어 , 클리블랜드 , 컬럼비아), 그리고 구축함 8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 와일드캣 29 대 , 돈틀레스 8 대 , 아벤저 24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헐지 제독은 기펜 제독에게 수송함대보다 앞서서 항진하여 1 월 30 일 오후 9시에 과달카날 근해에서 구축함 4 척으로 이루어진 브리스코 대령의 제 21 구축함 전대와 만나 슬롯 지역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기펜 제독은 처음부터 실수를 했다. 시간에 맞추어 상봉지점에 도달하려면 속력이 느린 호위항공모함은 먼저 출발시키고 순양함 부대가 뒤따라가서 일본항공기의 항속거리 한계점 부근에서 합류하여 과달카날로 향했어야 하지만 기펜 제독은 처음부터 호위항공모함과 함께 1 월 27 일에 에파테를 출항했다.
호위항공모함은 18 노트로 속력이 느린데다가 함재기의 이함시마다 바람부는 방향으로 변침하여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했으므로 도저히 시간 내에 상봉지점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러자 기펜 제독은 29 일 오후 2시에 호위항공모함을 2척의 구축함과 함께 제 18기동부대에서 분리한 뒤 24 노트의 속력으로 북상했다.
이리하여 기펜 제독은 상봉시간을 지키는데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일본항공기의 행동반경 내에서 스스로 항공엄호를 벗어던지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다. 기펜 제독의 판단 착오는 계속되었다.
호위항공모함들을 분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18 기동부대의 레이더가 북서쪽에서 일본정찰기를 포착했다. 당시 제 18기동부대 상공에는 호위항공모함의 와일드캣들이 CAP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나 기펜 제독은 무선침묵에 집착하여 시카고에 탑승한 전투기 유도팀이 와일드캣들을 일본정찰기 쪽으로 유도하기 위하여 교신하는 것을 금지했다.
사실 일본군은 29 일 오전 9시 40 분에 이미 잠수함의 보고로 제 18기동부대의 출현을 알고 있었다. 이제 정찰기의 보고로 미함대의 정확한 위치와 침로 , 속력을 알게 된 일본군은 제 26 항공전대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1 월 29 일 오후 2시 35분에 라바울에서 제 705 항공대 소속 1 식육상공격기 16 대가 어뢰를 장비하고 이륙했다.
10 분 후인 2시 45분에는 부갠빌 섬 북부의 부카 기지에서 제 701 항공대 소속 96식 육상 공격기 22 대가 이륙했다. 22 대중 15 대는 어뢰를 장비하고 있었고 , 7 대는 야간정찰기였다.
29 일 오후 6시 50 분이 되자 제 18기동부대의 상공을 지키던 와일드캣들이 철수했다.
잠시 후 북서쪽에서 제 705 항공대의 1 식 육상공격기들이 나타났다.
이때 제 18기동부대는 렌넬 섬 북방 80km 해상에서상봉지점을 향하여 북서쪽으로 24 노트의 속력으로 항진하고 있었다. 당시 제 18기동부대는 리벳 형태의 진형을 취하고 있었는데 , 구축함들이 순양함들에게서 3.2km 전방을 앞서 나가면서 반원형으로 전개하는 이 진형은 잠수함의 위협에 대해서는 이상적인 진형이며 , 수상전투에도 비교적 효율적인 진형이었다.
그러나 , 순양함들의 측면과 후방이 완전히 드러나기 때문에 대공방어에는 불리한 진형이었다.
대공방어에 가장 효율적인 진형은 원형진이다. 해가 지기 전에 제 18 기동부대의 레이더가 90km 거리에서 일본기들을 발견했으나 보고를 받고도 기펜 제독은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함대의 침로나 속력 또는 진형을 바꾸라는 명령도 , 공습을 받으면 개별 함정들은 어떻게 행동하라는 명령도 내리지 않았으며 , 심지어는 대공전투에 대비하라는 경고도 내리지 않았다.
따라서 공습이 시작되는 순간까지 일부 함정들은 공습이 목전에 다가왔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정도로 제 18기동부대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반면 일본공습대의 지휘관은 훨씬 용의주도했다 그는 제 18기동부대의 진형을 보는 순간 이 진형의 약점을 파악했다. 일본기들은 북서쪽에서 그대로 달려들지 않고 20km 전방에서 남쪽으로 우회하여 취약한 서쪽 측면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선두에서 돌입하던 1 식 육상공격기는 구축함 왈러에게 어뢰를 발사했고 , 2 번째 일본기는 기펜 제독의 기함 위치타에게 , 3 번째 일본기는 시카고에게 어뢰를 발사했다. 그러나 미군 함장들의 조함능력은 훌륭했다. 어뢰가 발사되자 함장들은 교묘한 조함으로 모든 어뢰를 피하면서 근접신관을 장비한 5 인치 양용포로 반격을 가하여 1 대를 격추했다.
일본기들의 1 차 공습을 무사히 넘긴 기펜 제독은 최악의 사태는 벗어났다고 생각했으나 착각이었다. 잠시 후제 701 항공대의 야간정찰용 96식 육상공격기들이 제 18기동부대의 상공에 도달하여 물에 뜨는 조명탄을 투하하여 어뢰를 장비한 96식 육상공격기들을 유도했다.
오후 7시 31 분부터 어뢰를 장비한 96식 육상 공격기들이 역시 남쪽으로 우회하여 동쪽으로부터 공격해 들어왔다.
선두에 섰던 비행대장기를 포함한 2 대가 근접신관을 장비한 5 인치 대공포탄에 피격되었는데 그 중의 1 대가 시카고의 좌현 선수 쪽에 추락했다. 불타는 항공유가 갑판을 덮으면서 순식간에 시카고는 타오르는 횃불처럼 어둠 속에서 뚜렷하게 형체를 드러냈고 , 그러자 일본기들은 일제 히 시카고를 노리고 어뢰를 발사했다.
시카고의 함장 랄프 데이비스 대령은 교묘한 조함으로 몇 발의 어뢰를 피햿으나 시카고를 노리는 어뢰가 너무 많았다. 30 일 오후 7시 45분에 어뢰 1 발이 시카고의 우현에 명중했다.
( CA- 29 시카고.
배수량 : 9.300 톤 , 길이 : 183m 폭 : 20.1m, 속력 : 32 노트 , 승무원 : 621 명 , 무장 : 8 인치 주포 9 문 , 5 인치 부포 4 문 , 21 인치 어뢰발사관 4 문)
어뢰의 탄두가 폭발하자 큰 격실 2 개가 순식간에 침수되고 후방 보일러실도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으며 추진축 4 개중 3개가 망가지고 함교에서 키를 조절할 수 없게 되었다. 보수반이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시 2 번째 어뢰가 우현에 명중하여 3 번 보일러실과 전방 기관실을 침수시키고 마지막 남은 추진축마저 멈추게 만들었다.
잠시 후 기함 위치타도 1 발의 어뢰를 맞았으나 천만다행으로 불발탄이었다. 뇌격을 마친 일본기들은 8시 15분에 제 18기동부대 상공을 떠났다.
( 렌넬 섬 해전 상황도. 시카고의 피격상황)
어뢰 2 발에 맞은 시카고의 피해상태는 엄중했다. 그러나 철저한 보수훈련을 받은 시카고의 승무원들은 곧 화재를 진압하고 , 격벽을 보강하고 , 어뢰로 인한 수선하 구멍을 틀어막고 양동이로 함내의 바닷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시카고의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무사했으므로 함내의 조명과 동력을 공급할 수 있었다.
기펜 소장은 이제 브리스코 함대와의 상봉을 단념하고 시카고를 에스피리투산토로 예인하기로 결심했다.
30 일 새벽 1 시 경부터 중순양함 루이스빌이 4 노트의 속력으로 시카고를 예인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시카고에서는 보일러 중의 하나에 다시 불을 넣고 , 배수펌프를 작동시키면서 동시에 중유를 방출하여 11 도에 이르던 기울기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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