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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93) -코컴보나 점령 /blog.naver.com/imkcs0425/60117039474


93. 코컴보나 점령

제 25사단이 오스텐 산을 소탕하고 , 해병제 2 사단이 크루즈 곶에서 1,400m 정도 전진하자 제 14 군단장 패치 소장은 해병제 2사단과 제 25사단을 동원하여 코컴보나를 점령하고 , 포하 강까지 진격하는 제 2 차 공세를 계획했다. 패치 소장은 코컴보나 부근의 일본군 주력이 과달카날 섬 남쪽으로 도망가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오스텐 산 소탕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코컴보나에서 남쪽으로 통하는 통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병력을 파견했다.
찰스 비치 대위가 지휘하는 이 병력은 제 147 연대 제 2 대대 I 중대를 기간으로 하여 , 화기중대인 M 중대의 1 개 소대 , 대전차 중대의 1 개소대 , 전투공병 , 의무대 , 그리고 통신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치 부대는 1943 년 1 월 7 일에 2척의 전차양륙정에 탑승하여 야음을 이용해서 에스퍼란스 곶을 지나 남하하여 9 일 오후 1 시 15분에 과달카날 서해안의 뷰포트 만에 도착했다.
뷰포트 만에는 벨기에 선교사인 에머리 클럭 신부가 전쟁 전부터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해병대는 과달카날에 상륙한 직후인 1942 년 8 월에 클럭 신부에게 위험하니 미군의 교두보 내로 철수하라고 권고했으나 신부는 거부하고 계속 남아서 해안감시원으로 활약하면서 미군을 위하여 원주민 일꾼을 조달해 주는 역할도 맡았다.
일본군은 이 지역까지 간섭할 여력이 없었으므로 뷰포트 만 주위는 사실상 클럭 신부가 지배하고 있었다. 비치 부대는 1 월 11 일부터 정글 속으로 진군하기 시작하여 14 일에는 부아리 마을에 도달했고 , 최종적으로는 코컴보나에서 남쪽으로 약10km 정도 떨어진 타파난자에 도달하여 코컴보나로부터 남하하는 통로를 차단했다. 그러나 , 일본군은 남쪽으로 후퇴하지 않았다.
코컴보나 공세를 앞두고 패치 소장은 오랜 전투로 지친 해병제 2사단의 제 2해병연대와 제 8 해병연대를 교두보 내로 철수키고 , 대신 제 147 연대의 제 1 대대 및제 2 대대 , 그리고 제 182 연대의 제 1 대대 및제 2 대대를 배속시켰다. 그러자 해병제 2사단은 제 6해병연대 소속 3개 해병대대와 육군의 보병대대 4 개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므로 , 패치 소장은 해병제 2 사단을 임시로 CAM(Composite Army- Marine) 사단으로 개칭했다.
CAM 사단은 포병연대인 제 10해병연대와 아메리칼 사단 포병대의 화력지원을 받을 예정이었다.  CAM 사단의 남쪽에서는 제 25보병사단이 CAM 사단과 나란히 서쪽으로 진격할 계획이었다.  제 25사단 구역의 북쪽은 제 27 연대가 , 남쪽은 제 161 연대가 담당하고 , 제 35 연대는 기푸진지를 점령한 후에 사단예비대로 대기했다.
1943 년 1 월 17 일에 저니 중령의 제 1/27 대대가 66 번 고지의 남서쪽에 있는 ' 뱀 ( snake)' 이라고 불리는 능선을 점령하고 , 22 일까지 목표인 87 번 고지 부근을 정찰하면서 공격을 준비했다.  그동안 제 161 연대는 제 27 연대의 남동쪽에 있는 X 및 Y 고지를 점령했으며 , 공격이 시작되면 Y 고지에서 북상하여 88 번및 89 번 고지를 점령할 예정이었다.

 

( 제 14 군단의 공격상황도. 1943 년 1 월 22 일 상황. 원본은 여기로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Guadalcanal/maps/USA-P-Guadalcanal-XIX.jpg)

 

1 월 22 일 아침이 되자 제 25사단의 4 개 야포대대가 87 번 고지에 55.5 톤의 75mm, 105mm 및 155mm 포탄을 쏟아 부었다. 이때 미군 포병대대는 상당히 빠른 속력으로 포격했는데 예를 들어 105mm 곡사포를 장비한 제 8 야포대대는 1 문당 1 분에 14.5 발의 속력으로 포격을 가했다.
22 일 오전 6시 30 분에 포격이 끝나자 남쪽에서는 제 1/161 대대가 Y 고지로부터 88 번 고지를 목표로 북상하기 시작했고 , 제 27 연대는 1 대대를 선두로 뱀 능선으로부터 진격을 시작했다. 제 1/27 대대의 선두인 C 중대가 뱀 능선과 87 번 고지의 중간 지점인 87F 고지를 기어오르려고 하자 87 번 고지의 일본군들이 사격을 가하여 전진을 중단시켰다.
그러자 제 1/27 대대의 81mm 박격포들과 37mm 대전차포들이 87 번 고지에 집중사격을 가하여 일본군들을 침묵시켰고 , 7시 45분부터 진격이 재개되었다. 87 번 고지에 접근한 제 1/27 대대는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돌격했으나 일본군들은 이미 달아나버린 후였다. 이리하여 22 일 오전 9시 10 분에 제 27 연대는 그날의 작전목표를 달성했다.
원래 87 번 고지 서쪽의 88 번및 89 번 고지는 제 161 연대가 점령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제 161 연대는 아직 깊은 정글에서 헤매고 있었으므로 제 1/27 대대장 저니 중령은 부하들에게 진격명령을 내렸다. A 중대가 87 번 고지를 지키는 동안 B 중대가 450m 정도 떨어진 88 번 고지를 점령했고 , 이어서 C 중대가 900m 정도 떨어진 89 번 고지를 오전 10시 35 분에 점령하고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 갤로핑호스 지역인 57 번고지에서 바라본 뱀 능선과 87 번 , 88 번및 89 번 고지의 모습.
오른쪽으로 가면 코컴보나 남쪽의 90 번 고지에 이른다.  대략적인 방위는 사진의 왼쪽이 남쪽 , 오른쪽이 북쪽이며 사진의 윗쪽이 서쪽 , 아랫쪽이 동쪽이다.)

제 25사단장 콜린스 소장은 마타니카우 강 동쪽의 49 번 고지에서 제 27 연대의 진격상황을 지켜보다가 오전도 되기 전에 제 27 연대가 그날의 작전목표를 달성하자 곧 계획을 바꾸어 그날 중으로 코컴보나 방면으로 북상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려면 북쪽에서 작전 중인 CAM 사단과 작전구역을 조정해야 했다.

헐지 제독으로부터 " 행동도 빠르지만 생각은 더 빠른 "

(" quick on his feet and even quicker in his brain") 즉 순발력이 아주 뛰어난 장군이라는 평을 들었던 콜린스 소장은 즉시 지프를 타고 제 14 군단 참모장인 로버트 스프라긴 준장이 있던 66 번 고지로 달려갔다.
콜린스 소장의 설명을 들은 스프라긴 준장은 즉석에서 군단장 명의로 코컴보나 부근을 CAM 사단에서 제 25사단 담당 구역으로 변경하는 명령을 발령했고 제 14 군단장 패치 소장은 사후에 이 명령을 추인했다.  콜린스 소장은 이어서 89 번 고지로 달려갔다.
중간에 도로가 끝나자 지프에서 내려서 89 번 고지에 도착한 콜린스 소장은 제 27 연대장 맥클록 대령에게 즉시 코컴보나를 향하여 북쪽으로 진격을 개시하라고 명령했다. 22 일 오후 2시에 저니 중령의제 1/27 대대는 북쪽으로 진격을 개시했다.
89 번 고지와 90 번 고지 사이의 계곡에서 소수의 일본군들이 소총 사격을 가하면서 저항했으나 , 105mm 곡사포를 장비한 제 8 야포대대의 화력지원을 받은 제 1/27 대대는 일본군들을 간단히 제압했다.
이후 제 1/27 대대는 순조롭게 진격을 계속하여 90 번 고지를 지나 오후 5시에 코컴보나 남동쪽의 98 번 고지에 도달했다. 뒤따라온 제 2/27 대대와 제 3/27 대대도 90 번 고지에서 야영준비에 들어갔다. 제 27 연대의 쾌속진격에 따라 야포대대들도 마타니카우 강 부근에서 크루즈 곶 부근까지 전진했다.


( 코컴보나 점령 상황도. 원본은 여기로 http://www.ibiblio.org/hyperwar/USA/USA-P-Guadalcanal/maps/USA-P-Guadalcanal-XX.jpg)

코컴보나 공격은 1943 년 1 월 23 일 아침에 실시되었다. 제 1/27 대대는 98 번 고지에서 출발하여 남쪽과 동쪽에서 코컴보나에 쇄도했다. 일본군의 주력은 이미 서쪽으로 철수했으므로 저항은 미약했다. 오후 3시 10 분에 제 1/27 대대는 산발적인 저항을 제압하고 코컴보나를 점령했다.
제 1/27 대대가 코컴보나를 점령하는 동안 제 3/27 대대는 99 번 고지 쪽으로 북상하여 동쪽에서 진격해 오는 CAM 사단과의 사이에 갇힌 일본군들을 포위했고 , 제 2/27 대대는 90 번 고지에서 서쪽으로 진격하여 97 번 고지를 점령했다.  제 25사단의 북쪽에서 공세를 개시한 CAM 사단은 북쪽은 제 6해병연대 , 남쪽에서는 제 182 연대가 1 월 19 일에 공세를 시작했다.
해안 쪽의 제 6해병연대는 구축함의 효율적인 화력지원 하에 비교적 순조롭게 진격을 시작했으나 , 내륙에서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제 182 연대의 진격이 늦어짐에 따라 진격을 중단했다.  CAM 사단의 진격은 콜리 곶 지역의 방어임무에서 해제된 제 147 연대가 제 182 연대의 전선에 증원된 1 월 22 일에 비로소 재개되어 23 일에 코컴보나를 점령한 제 27 연대와 연결했고 , 99 번 고지 동쪽에 포위된 일본군들을 최종적으로 섬멸한 것은 1 월 24 일 오후 3시였다.
이번 공세에서 CAM 사단은 200 명 이상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 경전차 1 대 , 150mm 평사포 3 문 , 37mm 대전차포 2 문 , 중기관총 2정을 파괴했다. 코컴보나를 점령한 제 27 연대는 포하 강을 향하여 서쪽으로 진격했다.  이때쯤부터 보급이 점차 어려워지기 시작했으나 , 일본군 최대의 보급항이었던 코컴보나가 함락되자 보급품을 가득 실은 미군의 상륙주정들이 몰려들어 보급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다.
내륙에서는 30 여명의 일본군이 100 번 고지 전방에서 진격하는 제 2/27 대대에 맞서서 저항을 시도했으나 , 방어선을 우회하여 후방에서 들이닥친 G 중대의 공격을 받고 순식간에 몰살당했다.
이후 제 27 연대는 순조롭게 진격하여 1 월 25 일까지 포하 강 유역을 점령했다.
이제 제 17 군 사령부가 있던 코컴보나까지 상실하고 과달카날 섬의 서북쪽으로 쫓겨난 일본군은 해상철수가 아니면 그대로 섬멸당할 위기에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