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협소설은 그동안 상반되는 두 가지 관습적 시선으로 말미암아 진지한 학술적 접근의 대상이 되기 어려웠다. 그 하나는 무협소설의 가치를 과도하게 과장하는 애호가들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무협소설을 수준있는 문학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 싸구려 오락물로 취급하는 전통적 문학관념의 시선이다.
무협소설에 대해 마니아적으로 열광하는 애호가들은 종종 그것이 갖는 대중문화로서의 성격을 망각한 채 무협소설에서 이른바 고급문학의 흔적을 찾아내려 했다. 따라서 당연히 중점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그 장르적 특수성이나 수용과정에서 파생되는 텍스트 외적인 효과는 오히려 중시되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접근방식이 그동안 고급문학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무협소설의 가치를 뒤늦게나마 온전하게 재평가하는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것은 학술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자신들의 주관적인 호감에 보다 품위 있는 명분을 붙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이런 부류에는 단순히 무협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학술연구자의 모양새를 한 이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어, 학술적 접근과 애호가적 취미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어왔다.
반대로 무협소설의 문학예술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이들은 무협소설을 진지한 학술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에 반대해왔다. 이들은 무협소설을 대중들의 말초적인 흥미를 자극하는 소비품이자 오락물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고, 더 나아가서 대중들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봉건주의의 잔재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것이 대중들에게 아무리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학예술의 울타리 안에서 논의하는 것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대중들이 그것에 심취하는 현상 자체를 외면하려 하기도 했다. 무협소설이라는 것을 문학사 속에 위치하는 하나의 문학현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상반되는 듯 보이는 이러한 두 입장은 사실은 동일한 기준을 전제로 출발하고 있다. 그것은 무협소설의 가치를 이른바 고급문학과의 비교를 통해서 평가하는 것이다. 그 가치를 과장하는 입장은 무협소설, 특히 金庸의 무협소설을 고급문학의 덕성을 풍부히 갖춘 것으로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고급문학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무협소설의 문학예술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바라보는 시각과 평가하는 입장이 어떤 것이든, 무협소설을 논하는 기존의 관점은 문학예술에 대한 고정적인 가치 기준을 바탕으로 한 ‘고급문학-통속문학’의 도식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무협소설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가 지금껏 공통적으로 처해있던 한계였다.
다행히 근자에는 이러한 도식적 틀을 넘어서는 연구들이 시도되고 있다. 기존에 부분적으로 시도되었던 장르적 특성에 대한 접근이나 텍스트 너머에 대한 이해도 보다 확대되고 있고, 사회학적인 측면에서의 연구도 적지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의미 있는 점은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서, 무협소설에 대한 학술적 차원의 접근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가 비로소 정리되고, 또한 논의되어야 할 주요 쟁점들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본고에서 의도하는 바는, 근래의 연구에서 얻어진 이러한 성과들을 바탕으로, 향후 무협소설 연구가 주목해야 할 쟁점들을 간추려보고, 그에 대해 기존의 연구가 취하는 입장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다. 주요하게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무협소설은 1949년 이후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성행하기 시작한 이른바 ‘신파 무협소설’이고, 그 가운데 특히 대표적 작가라고 할 수 있는 金庸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기존의 연구 가운데 앞에서 언급한 이른바 애호가적 수준의 접근이나, 중국의 연구 경향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한 한국 연구자들의 논문은 검토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2.
무협소설 연구에서 주요하게 거론되는 쟁점 중의 하나는, 그것과 전통적 俠義類 소설과의 관계이다. 90년대 들어서 구체화되기 시작한 무협소설 연구는 그동안 문학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무협소설을 정식으로 ‘문학사 혹은 소설사’의 맥락 속에 복원시키면서, 그것의 전통문학에 대한 계승적 측면을 강조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글쓰기 방식이나 또는 소재의 측면만을 놓고 보더라도, 무협소설이 전통적인 俠義類 서사나, 최소한 청대의 협의소설과 같은 뿌리에서 뻗어나온 것이라는 점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무협소설을 단순히 전통적 俠義類 소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근대 시기에 들어 출현한 무협소설이라는 장르가 갖는 성격을 온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줄거리나 등장인물에 대한 평면적인 분석을 넘어서서, 무협소설이 창작되고 소비되는 구조, 그리고 작품 속의 내용과 전혀 다른 시공간적 배경에 존재하는 독자들이 그것에 심취하게 되는 이유 등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근래에 나온 연구들이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거듭 말하거니와 오늘날의 무협소설이 생겨난 것은 20세기 들어와서의 일이다. 청 말에 나온 신소설(新小說)이 20세기 초 현대문학의 등장과 함께 구(舊)소설이 되어버리고, 그 구소설이 나름대로 근대적 성격을 띠며 근대 통속소설이라는 장르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무협소설이 탄생했다. 그러니 무협소설은 엄연히 근대적 장르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협소설은 일반적 俠義類 서사와는 분명히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 무협소설은 꿈이나 유토피아의 동경 이상의 구체적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무협소설은 제국주의의 거세 위협에 대한 공포의 기억과, 전통 중국에 대한 동경과 추억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무협소설을 제국주의의 폭력적 침탈과 함께 시작된 중국 근대의 역사, 그리고 현대로 넘어오면서 중국인들이 겪어야했던 자기 정체성의 변화, 이에 따른 중국인들의 공동의 문화에 대한 노스탤지어 등이 만들어낸 중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상상행위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근래의 연구에서는 무협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근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즉 부분적으로 유사점을 찾을 만한 기존의 전통문학 유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직접적인 계승관계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무협소설의 등장을 근대라는 시공간과 연계시키면서, 俠義類 소설과 구별되는 무협소설의 작가와 독자가 될 요건을 ‘근대국가의 국민’이라는 신분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유경철은 俠義類 서사의 독자로서의 중국인이 고대 국가 체계 내에서의 중국인인데 반해, 무협소설의 독자로서의 ‘중국인’은 무력하기는 했지만 근대 국가기구 하의 중국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임춘성은, 무협소설의 작가들이 오사 신문예의 자양분을 섭취하는 데 성공한 이들이며, 무협소설은 오사 신문학의 공세 아래 패퇴한 통속문학의 일부분이면서도 자각적、비자각적으로 오사 신문학과 동일성을 인식하고 상호침투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에게 있어서 무협소설은, 전통적 서사와의 외관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실체이며 전형적인 근대적 의식의 산물인 것이다.
또한 무협소설의 이러한 근대적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金庸의 소설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유경철은 金庸의 소설이 ‘중국인들의 중국 상상으로서의 무협소설의 핵심적 위치에 있으며,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위력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텍스트이다. 그래서 金庸 小說의 중국 상상의 내용이 무협소설의 그것을 가장 잘 대변하리라 확신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金庸에게서 봉건주의의 그림자를 보는 袁良駿의 입장과는 상반되는 것이며, 또한 金庸의 소설 속에서 전통문학의 품격을 찾아내려는 嚴家炎의 생각과도 거리가 멀다.
무협소설을 근대적인 의식에 따라 탄생된 것으로 보는 이러한 시각은, ‘고급문학-통속문학’의 도식적 틀에서 벗어나 보다 진전된 논의를 하기 위한, 지극히 타당한 접근법으로 보인다. 다만 문제로 남는 것은, 과연 金庸의 창작을 무협소설을 대표하는 사례로 볼 수 있는가이다. 金庸의 소설에서 보이는 독특한 역사소재 차용과 근대적 민족 정체성에 대한 배려는, 오히려 金庸의 소설을 여타 무협소설과 구별되어지게 해주는 특징들이다. 그런 점에서 金庸의 소설은, 俠義類 서사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타 무협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무협소설이거나, 혹은 무협소설과 유사한 외피를 썼지만 실상은 무협소설이 아닌 다른 이야기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무협소설, 특히 金庸의 무협소설이 근대적 의식의 소산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에서 내세우는 그 근대적 성격의 핵심은, 그것이 이른바 ‘중국인다움’을 잘 파악하여 형상화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세례를 받은 이후에 비로소 만들어진 민족적 정체성으로서의 ‘중국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가 金庸의 작품을 통해서 가장 잘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견해에 따르면, 金庸의 무협소설은 단순한 흥밋거리나 좁은 의미의 문예 텍스트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된다.
…… 마찬가지로, 진융의 작품을 대륙(mainland)과 홍콩, 타이완 그리고 여러 지역의 화교들을 통합시키는 기제(mechanism)로 본다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1950년대 신문에 연재되면서부터 수많은 중국인들이 그의 작품을 애독하고 끊임없이 연속극과 영화로 재생산되는 것을 보면 중국인들이 진융(金庸)을 통해 다시 통합(integration)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The Imagined Community)’나 에릭 홉스봅의 ‘만들어진 전통과 전통 만들기’라는 개념에 기대어, 무협소설이 중국인들로 하여금 그러한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근대적인 ‘중국’을 형성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전통적인 공동체 모델과 정치적 구심점이 모두 와해되어버린 상황에서, 무협소설은 ‘상상적’인 방식으로나마 중국인들이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응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구축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金庸의 무협소설을,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로 제국주의 열강의 폭력적인 식민지 침략이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마무리되고 대륙에는 새로운 정치적 구심점이 형성된 상황에서, 홍콩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고 보는 듯하다. 식민적 거세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홍콩이라는 공간이, 사분오열된 이른바 ‘華人의 후예’들이 먼 옛날 위대한 하나로 존재했던 기억을 되살리고 그 기억을 마침내 현실로 재현시키려는 욕망을 발산하는데 가장 적합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金庸의 무협소설이 창작되는 시점이, 대륙에서 강력한 중앙집중적 권력이 등장하여 그 구심력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리고 있던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중후반까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와 같은 분석에 설득력이 더해진다고 할 수 있다. 대륙의 대중들이 文化大革命 시기에 권력의 핵심을 향해 보내던 광신에 가까운 열광의 밑바닥에 깔린 욕망과, 독자들이 金庸의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영웅들에게 심취하는 현상의 이면에 잠재된 욕망은, 그 거리가 결코 먼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비록 대륙의 권력이 이념적으로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낯선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오랜 분열과 식민지적 침탈로 인해 무기력해진 중국을 다시금 강력하게 통합시켜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金庸의 무협소설은 무의식중에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金庸의 무협소설이 수행했다고 하는 이러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과연 金庸의 작품을 특징짓는 특수성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는 의문이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러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은 단지 金庸의 작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역사를 소재로 하는 담론 일반이 공통적으로 수행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역사 담론이 만들어지는 가장 주요한 이유가, 근대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것을 대중들의 머릿속에 마치 이전부터 있었던 기억처럼 심어주는 것이었다. 이른바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는 바로 국가가 기록한 근대적 ‘역사’ 그 자체였고, 그런 점에서 역사는 아무리 실증적인 모습을 띠고 있더라도 그 어떤 픽션보다도 더 ‘허구’적인 성격을 가지는 민족주의적 담론이었던 것이다.
…… 프랑스 역사학파가 이러한 고증적인 학문을 발달시키게 된 요인은 19세기의 국가기구에서 유래하였다. 역사가는 오랫동안 왕권을 위해 봉사해왔다. 19세기에 국가는 많은 역사기관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면서 연구를 적극 장려했다. 그리하여 19세기에는 국가 관료로서 봉급을 받는 역사가들이 많이 늘어났다. “국가 자신이 스스로 역사가가 되었다.”
…… 역사 연구는 조직화되고 더욱 합리화되었다. 그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하나의 국가 속에서 실현된 일종의 방법론적인 혁명이었다. 역사 연구는 당연히 국가에 충성을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역사가의 담론이 그때부터 국가에 대한 담론이 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 역사는 권력을 기술했다. 역사는 권력의 지평이고 권력을 비추는 거울이다. 또한 역사는 권력의 의미이자 권력과 동체이다. 가브리엘 모노의 확신대로 ‘역사의 세기’였던 19세기에 국가는 자신의 권력을 확립했다.
유경철 등은 金庸의 창작으로 대표되는 무협소설에 ‘중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상상 행위’라는 특징을 부여함으로써 그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역사를 소재로 한 근대적 담론 일반이 보여주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정형화된 형태의 역사 서술부터 역사적 소재를 다루는 다양한 문학예술 장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것이 구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객관적 진실 이면에 의식적、무의식적 욕망에 기초한 이러한 상상을 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하면, 金庸의 무협소설이 중국의 대중들 속에서 발휘하는 역할은, 유경철의 주장처럼 金庸의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속에 차용된 역사적인 소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4.
무협소설 연구에서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쟁점은 무협소설, 특히 金庸의 무협소설을 역사소설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유경철 등은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 무협소설은 시대적 특성과 사회적 상황에 대한 묘사와 표현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는 무협소설이 역사적 사건을 다룰 때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협소설은 역사적 사건의 의미와 그 전망을 탐색하거나 반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바로 무협소설이 歷史小說과 다른 점이다.
그는 金庸이 ‘중국’이라는 국민국가를 상상해내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고, 그러한 ‘왜곡’과 ‘망각’이 단지 무의식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강렬한 염원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에서, 金庸의 창작을 역사소설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성찰과 반성보다는 상상에 더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金庸의 소설은 역사소설이 될 수 없다고 여긴다. 그에 논리에 따르면,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망각’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 사건의 의미와 전망에 대한 ‘탐색’과 ‘반성’, 그리고 ‘성찰’ 같은 것들이 어떤 창작을 ‘역사소설’이 되게 만들어주는 주요한 징표가 된다. 그런 기준을 바탕으로 그는, 작가인 金庸 자신이 역사소설이라고 주장하는 <鹿鼎記>도 ‘작가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역사소설로 볼 수 없다’고 과감하게 단언한다.
그런데 그의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그는 자신이 金庸의 창작을 역사소설로 볼 수 없는 이유라고 들었던 일부 사항들을 같은 논문 내에서 금방 번복한다. 金庸의 소설은 ‘전망’과 ‘성찰’이 없기 때문에 역사소설이 될 수 없다고 해놓고 같은 논문에서 상이한 언급을 하고 있고,
…… 金庸 小說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金庸 小說을 역사소설 혹은 ‘서사시(史詩)’로 보고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는 바로 金庸의 강호가 역사적 문제를 다루고, 사고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주장의 타당성은 그다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金庸이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과거에 대해서 나름대로 성찰하고 중국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반성’이 없다는 언급도 곧 뒤집어버린다.
金庸이 역사에서 무협소설의 제재를 택한 것은 무협소설의 현실성 강화라는 의미 이상의 차원으로 발전한다. 그는 역사를 반성하고 상상하는 데까지 나아갔던 것이다.
그의 논리 전개가 갖는 더 큰 문제점은, 그것이 역사소설을 단순하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소설도 ‘소설’인 이상에는 역사적 사실에 허구가 개입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역사소설의 유형 가운데는 허구적 서사와 역사적 지식의 결합 정도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역사적 사실의 충실한 반영에 치중하는 고전적인 역사소설이 있는가하면, ‘현재의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배경적 장치나 허구적 효과(또는 상상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매개체로 역사를 사용할 뿐 역사 그 자체에 대한 심미적 숙고는 하지 않는’ 역사소설도 존재한다. 심지어 그가 金庸의 창작이 역사소설이 될 수 없는 대표적인 이유라고 꼽은 ‘상상을 통해 재구성한 과거’라는 것도, 현대적인 역사소설이 보여주는 다양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
…… 기존의 역사와는 다른 대안적 역사를 구성하려는 욕망에서 유토피아적/디스토피아적 양식의 적극적인 차용이 일어난다……
상실된 역사의 회복 또는 현재에 억압되어 있는 다른 가능성들을 그려보려는 이런 환상적 양식과의 공유는 역사소설에서 전통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미메시스의 전통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상과 같이 역사소설에 관한 여러 가지 견해를 놓고 보아도, 金庸의 창작을 굳이 역사소설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발견되지 않는다. 역사 서술 자체가 어떤 면에서 보면 근대적 민족 공동체를 정립하기 위한 권력의 상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마당에, 허구를 불가결한 요소로 가지고 있는 역사소설에 ‘사실’이나 ‘반성’과 같은 협소한 개념을 덧씌우는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하다.
역사소설에 관한 고전적인 이론을 제시한 루카치는 역사소설을 ‘작가가 현재를 역사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던 19세기 초반의 혁명적 혼란기에 하나의 장르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루카치의 경우는 ‘현재를 역사로 파악한다는 것’이, 격동하는 사회의 내적 구조와 변화의 방향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로부터 사회 진보에 대한 루카치적인 윤리관의 색채를 빼버리고 근대의 민족주의적인 욕망을 투영하기만 하면, 그것은 곧 전혀 무리없이 金庸의 무협소설에도 해당되는 정의로 바뀐다. ‘金庸의 무협소설은 (오랜 식민적 침탈로 무력해진) 현재를 (새로운 민족적 구심력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는) 역사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던 60년대 혁명적 혼란기에 (기존의 무협소설과는 차별화되는) 하나의 장르로 등장했다.’
5.
金庸 무협소설에서 보이는 회의적 색채와 허무주의, 혹은 이른바 ‘反 武俠小說’적인 모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金庸 무협소설에 대한 연구가 불가피하게 집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그러한 모습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것이, <笑傲江湖>에서 강호의 전통적인 질서와 가치가 조롱당하는 것과 <鹿鼎記>에서 기존의 무협소설 등장인물 유형이 와해되는 것이다. 전형준은 그러한 현상을, 金庸이 추구해오던 무협소설 세계가 붕괴 혹은 해체되어 가는 가파른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무공을 전혀 할 줄 모르고 게다가 기존의 예교적 가치마저도 지키지 않는 <鹿鼎記>의 주인공 衛小寶가 등장함으로써 전통적인 무협소설이라는 장르는 붕괴된 것이고, 따라서 金庸은 더 이상 창작을 지속할 수 없어서 결국 절필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같은 현상을 두고 유경철은 다른 해석을 내린다. 그는 여타 작품들의 인물 유형과는 판이하게 다른 衛小寶라는 인물의 등장을 ‘反俠’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즉 金庸은 기존 무협소설의 등장인물 유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인물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바로 기존의 ‘俠’의 유형을 뒤집어놓은 이른바 ‘反俠’이라는 것이다.
…… 즉, 衛小寶는 金庸의 전작들이 기반하고 있던 문제의 틀을 넘어선 새로운 문제의 구성 위에서 탄생하고 활동한다. 여기서 새로운 문제의 구성이란 국민으로서의 내이션(nation)의 차원에서 과거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鹿鼎記>의 전복성과 前作에 대한 부정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反俠’의 동원은 기존의 협으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예를 들어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金庸이 직면했던 딜레마), 혹은 기존의 협으로는 제기조차 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할 수 있게 해주었다. ‘反俠’이 기존의 협과는 범주를 달리하는 협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그는 더 이상 ‘漢族의 俠’이 아니라 ‘國民의 俠’이다.
유경철에 따르면, 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金庸이 직면했던 딜레마란, 俠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서 재구성한 상상의 역사로부터 현실의 역사로 되돌아왔을 때 직면하게 되는 여전한 현실의 벽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金庸은 기존 스타일의 무협소설에서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과 江湖라는 시공간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했지만 그렇다고 현실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고, 金庸의 작품에 드러나는 허무적인 색채는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의 좌절이 반영된 것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金庸의 소설이 <鹿鼎記>를 제외하면 중국에 대한 낙관적이고 건설적인 상상으로 귀결되는 예가 없다는 점, 그리고 金庸 소설의 결말이 대단원을 맞이하지 못하고 협객들이 江湖에서 떠나는 것으로 대단원을 대신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기존 무협소설이 처해있는 문제의 중심에는 한족 중심의 사고가 깔려있고, 따라서 金庸은 <鹿鼎記>에서 그것을 버리고 衛小寶를 ‘反俠’ 즉 이른바 ‘국민의 협’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딜레마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金庸 무협소설에서 보이는 회의적 색채와 허무주의, 혹은 이른바 ‘反 武俠小說’적인 모습을 설명하는 위와 같은 관점들은 金庸 무협소설에 대한 해석의 폭을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그것을 단지 장르의 성쇠라는 측면에서만 이해하는 것이나 또는 현실의 문제에 대한 金庸의 대응전략이라는 측면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그러한 현상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 한계를 갖는다.
金庸 무협소설이 보이는 그런 모습은, 앞서 언급한 金庸의 창작시점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金庸의 작품이 주로 창작되는 시기는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중후반까지이다. 이 시기는 대륙에서 새롭게 통일을 이룩한 권력이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실현해 가는 무렵이었고, 그것이 文化大革命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집약되어 나타나는 상황이었다. 대륙의 대중들은 강력한 중앙집중적 권력에 스스로를 동일시하면서 열광했고, 文革은 대중들의 그러한 욕망이 가감없이 표출된 서사시적인 드라마나 마찬가지였다. 金庸의 무협소설은 이러한 대륙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해서 창작되고,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비슷한 시기 대륙에서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보상할 만큼 강력한 권력에 대한 대중적 욕망이 표출된 결과물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홍콩에서 나타난 金庸의 무협소설 현상은, 대륙의 文革이 정치적으로 억압되고 문화적으로 순치되어 전개된 식민지형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金庸 무협소설의 허무적 색채는 바로 이러한 거대담론적 측면으로부터 동전의 양면처럼 자연스럽게 파생된 것이었다. 文革 시기 권력 중심에 대한 대중들의 비이성적 열광 이면에는, 그것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과 두려움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金庸의 무협소설이 근거로 삼고 있는 대중들의 강렬한 민족주의적 열망 이면에는, 숨길 수 없는 구성원 개인으로서의 회의와 불신이 잠재해 있었다. 거대담론이 충족시켜주는 집단적 대중의 욕망 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개인들의 정신적、 정서적 공백이 존재했던 것이다. 金庸은 자신이 표면적으로 의도했던 바와 무관하게, 창작 속에서 여러 가지 형식으로 이러한 공백을 드러내게 되었다. <笑傲江湖>의 경우가 기존에 존중되던 모든 가치를 다 회의하는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그러한 허무주의를 노출한 예라면, <鹿鼎記>의 경우는 무협소설을 대표하는 기존의 영웅적 주인공의 형상을 비틀어 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대중적 욕망의 양면성을 노출한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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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文摘要】
從前, 關于武俠小說的硏究一般都不免缺乏學術性和深刻性. 這是由于兩種習慣化的考察觀點. 一個是過于愛好武俠小說的讀者的觀點. 他們盡量誇張武俠小說的文藝美學的價値. 另一個是尊崇傳統文學觀念的所謂‘正統文學硏究者’的觀點. 他們把武俠小說看做不足登大雅之堂的低賤娛樂品. 本論文批判以上的兩種觀點都根據于?高級文學-通俗文學?兩分法考察武俠小說.
本論文旨在對于最近武俠小說硏究新傾向的批判性檢討. 主要論點是第一, 武俠小說和傳統的俠義類小說之間的關係. 第二, 武俠小說的近現代性和金庸的國家意識形態. 第三, 金庸的武俠小說是否歷史小說? 第四, 金庸武俠小說的虛無色彩或者所謂‘反武俠小說’的特徵.
주제어: 金庸, 武俠小說, 歷史小說, 近現代性, 國家意識形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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