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언: 근대성과 변혁의 문제
21세기를 맞이하여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인류는 과거의 시대를
회상하기보다도 오히려 급변하는 미래를 맞이하기에 여념이 없는듯
하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와 시시각각으로 발전하
는 과학문명의 혜택 속에서 과연 인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
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것이, 지금 이 시각에도
끊이지 않는 세계도처에서의 분쟁과 갈등상황은 오히려 인류를 불안
에 떨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인류는 지금 여기에 서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자신을 규정하면서 살아가는 실존적인 존재임이
강조되기도 한다.
시간의 역사에 서 있는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
를 속단하기 보다는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과거를 뒤돌아보고 참다
4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운 인간성의 발견을 통해 미래의 좌표를 설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때 현재는 분명 과거에 비해 보다 나은 모습으로 이해하고 ‘퇴보’
가 아닌 ‘발전’의 시각에서 오늘을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은 아주 자
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그 발전의 척도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미래의
좌표설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만 한다는 것도 주지
의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근대성’논의는 비록 해묵은 듯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근대성(modernity)’이
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에서 익히 알 수 있듯이 특정 시대가 아닌 ‘바
로 지금’이라는 뜻의 임의적인 단어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1) 즉
‘현재, 지금의’라는 뜻은 고정된 시점이 아닌 어느 시기에서건 그 시
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시간성을 규정하는 단어로서 항상 새롭게 현
재를 바라볼 수 있는 유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
미에서 최근까지의 ‘탈근대성’논의도 근대성 논의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21세기에 처한 인류에게 있어서도 ‘근
대’는 여전히 작용하고 있고 또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할 때
‘근대성’의 문제는 항상 새로운 정의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 OED에 의하면 근대성에 내포된 영어단어 ‘modern’은 6세기의 라틴어
‘modernus’에서 온 말로 ‘바로 지금’이라는 뜻이다. 이어서 영어의 형용
사 modern은 다음의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지금 있다. ② 먼 과거와
구별하여 현재 및 그에 가까운 무렵의, 또는 그것에 속하고 있는 지금 시
대의, 또는 그것에 속해 있는, 또는 태어난. 역사상의 용법으로는 통례적
으로 (고대 중세와 대비하여) 중세 이후의 시대 및 그 시대의 사건, 인물,
작가 등을 가리킨다.(야나부아키라, 서혜영 역 번역어 성립사정 일빛,
2003, p.59에서 재인용, 여기서 저자는 말하기를, modern의 번역어로
서 ‘근대’가 널리 사용된 것은 대략 1890년쯤의 일로 본다. 이 시기에 ‘근
대’라는 용어의 사용은 서구․문화․과학․산업 등과 관계 깊은 하나의 가
치개념을 내포한 것으로 본다. ‘근대’라는 말이 시대구분을 가리키는 말로
정식 사용된 것은 195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 시대구분용어로 사
용된 것은 ‘근세’라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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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45
근대성에 관한 논의에서 흔히 빠지지 않는 단어들을 떠올린다면
국민국가, 18세기 계몽사상, 이성주의, 개인주의, 합리성, 산업화,
자본주의, 과학 등등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전 세계적인 현상으
로서의 근대화에 그 기원을 찾을 때는 언제나 ‘서구 유럽’이라는 지
역 명칭도 빠질 수 없는 단어이다. 이상의 단어들은 모두 오늘날 근
대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할 때는 여지없이 비판의 소지를 지니고 있
음을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대체로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다
음의 두 가지 근대성 의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2) 하나는
물질적 부의 증대와 그를 뒷받침하고 있는 기술의 진보 및 끊임없는
혁신이다. 이것은 근대성을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인식하
되 외형적으로 매우 물질적인 특징을 지닌다. 다른 하나의 근대성
의미는 ‘중세’라는 개념이 구현하고 있는 편협성과 교조주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권위의 제약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미는 전자
에 비해 저항적이고 전투적이며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인 특징을 지닌
다. 오늘날 근대성의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할 때는 역시 전자보다는
후자에 보다 큰 비중이 두어져야 하리라 본다. 그 이유는 전자의 의
미가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치우치면서 탈근대(post-modern)
논의를 통해 부정적이고 사악한 것으로 지목되어온 사실을 의식할
때 영원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인간의 참된 해방을 담보할 수
있는 근대성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서부유럽이 16세기 이래 대략 200~300년간에
걸쳐 이룩한 일련의 사회, 문화, 경제, 정치면에서의 총체적인 변화
를 근대화(modernization)라고 지칭한다.3) 이렇게 서구로부터
2) Wallerstein, Immanuel, 1993b. “The End of What Modernity?”
Address to President’s Forum. The End of Modernity. Bucknell
University. pp.1~3(김경일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백산서당,
2003, p.96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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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시작된 근대화가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근 500년
이 흘렀다면 근대성은 결코 한 시대에 머물 수 없는, 인간의 끊임없
는 자기성찰의 과정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른바 근대성은 시간의
특수한 경험과 역사의식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인식’에 다름 아니라는 견해에 동의하고자 한다.4) 실제로 어원상
‘modern’은 ‘ancient’에 대립되는 의미로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에 이르러 ‘오래된’ 것에 대립되는 ‘새로운’이라는 개념으로 대두하였
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움’이란 지나간 시대의 것과는 다
른, 오히려 더 나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근대성은 질적인 초월을 포
함하는 역사의식이라고도 이해될 수 있다. 마치 동아시아 철학사에
서 실학(實學)이라는 용어를 시대별로 다양하게 적용해왔던 경우와
대비해 볼 때 서구의 근대성 논의는 자신이 속해있는 시간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전환의 노력이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5) 어쨌든 근
대성이 지니는 이러한 보편적 의미는 지역별로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이전의 시대와 대비해서 질적인 새로
움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면 언제든지 사용가능한 단어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상의 근대성 의미에서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개념이 있
다면 그것은 주저하지 않고 ‘변혁’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3) 임현진 「사회과학에서의 근대성 논의」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비판 역사문
제연구소편, 역사비평사, 1996, p.190.
4) 박지향 일그러진 근대 푸른역사, 2003, p.28참조.
5) 동아시아 철학에서 ‘실학(實學)’이라는 용어는 주로 유교사상 내에서 규정
되어 왔다. 즉 유교가 불교나 도교에 대해서 우월한 것이라는 점에서 스스
로 실학이라고 일컫고, 이후에 유교사상내에서 성리학의 관념론적 성향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실사구시(實事求是), 실용(實用)의 학문을 실학이
라고 규정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실학은 특정시대의 특정학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사상사내에서 자기 학문의 질적인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
대적인 명칭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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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47
‘전통의 탈피’ ‘낡은 것에서 새로움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서 혁
신해야만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낡은 시대
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며, 근대를 저해하는 기성의 수구세력을 물리
치기위해서는 혁명이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종교개혁, 산업
혁명, 시민혁명, 공산혁명과 같은 세계사의 주제들은 근대성의 전개
에서 등장하는 주요한 변혁의 역사이다. 심지어 1968년 ‘파리의 5
월혁명’과 ‘프라하의 봄’은 부패타락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판의
상대로 삼은 동일사건의 두가지 현상으로서,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제3의 근대의 시작이었음을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6) 그만큼
근대성은 혁명적인 사회변동을 요구해왔고 역사발전을 위해서는 끊
임없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근대성 논의를 한국사회로 옮겨와서 바라보게 되면 역사
적으로 19세기말엽은 한국사의 시대구분을 위한 많은 사실들이 노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7)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상공업자의 사회진출과 자본축적, 일부양반층의 몰락과
서민층의 매관매직과 사회진출, 산업의 발달과 지방도시의 상공업적
융성 등은 전통적인 봉건사회 내부의 변혁을 현저하게 나타내는 징
조라고 본다.8) 일반 사가(史家)의 견해에 따르면 1876년 개항의
6) 이마무라히토시, 이수정 역 근대성의 구조 민음사, 1999참조.
7) 한국사의 시대구분문제는 1967년과 1968년에 개최된 한국경제사학회 심
포지움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바 있으며, 이 때는 식민사학의 체계적인
극복을 시도한 것이었다. 이 결과 1970년 단행본이 출간된 것이 한국경제
사학회 편 한국사 시대구분론 을유문화사(1970)이었다. 이후 1990년
대에 들어와 다시 논의가 재개되는데, 한국고대사연구회의 한국사의 시대
구분 신서원(1995), 국사편찬위원회 국사관논총 50집(1993), 단국대
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의 시대구분」 한국학연구 제1집(1994), 차
하순 외 한국사시대구분론 소화(199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사의
시대구분에 관한 연구 (1995) 등이 대표적인 연구성과이다.
8) 유원동 「한국사에 있어서 근대의 기점」 한국사 시대구분론 한국경제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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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시기를 전후하여 근대의 기점을 잡기도 하는데,9) 우리나라가 직접
유럽세력의 위협을 받아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사상적으로나 정치적
으로 혹은 군사적으로 스스로 과감한 개혁을 시도했던 시기를 따지
면 근대의 기점을 1860년대로 소급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10) 대
체로 19세기 후반은 한국 사회 내에서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근대성을 향한 개혁의 물결이 출렁이던 시기였음은 분명하다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당시에 참된 근대성
을 향한 변혁의 주체가 기성의 지배층보다는 피지배층으로 살아왔던
민중들이었으며, 그 자발적인 각성에 따라서 갑오 민중봉기로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주목되는 사실은 그
러한 기층민중들을 결집시키고 각성시켜 나갔던 주된 문화적 힘이
바로 종교였으며 이 때 종교는 기성의 전통종교와는 궤도를 달리하
는 ‘신종교(new religion)’라는 점에서 근대성 논의와 관련한 새로
운 가치부여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의 기성종교라고 할
수 있는 유교 불교 도교는 기층 민중들과 일정한 괴리를 지니고 있
었고,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망(大望)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상
은 다름 아닌 민중 층에서 등장한 신종교였다고 본다. 이러한 신종
교운동은 1860년에 창시된 동학을 위시로 하여 구한말의 민중역사
를 주도해 나갔으며, 암울한 식민치하에서도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다양한 형태로 일제에 저항해 나가는 등 근대성의 전면에서 활약해
회 편, 을유문화사, 1970, p.143.
9) 개항을 기준으로 한 근대화의 기점은 가까운 중국과 일본의 경우 각각 시
기를 달리하고 있다. 중국은 1842년으로 아편전쟁을 치르고 영국제국과
더불어 남경조약을 체결한 것이 기점이 되고, 일본의 경우 1854년 덕천막
부가 미국 페리제독의 함포외교에 굴복하여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한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
10) 이선근 「근대화의 기점문제와 1860년대의 한국」 한국사 시대구분론 한
국경제사학회편, 을유문화사, 1970,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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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49
나갔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근대성의 이념을 따지고 변혁
의 논리를 찾고자 한다면 이처럼 한국의 근대사에 등장한 신종교운
동은 분명 간과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본 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위에서 상술한 근대성과 변혁의
문제에 착안하여 한국의 근대사에 등장한 신종교운동의 한 단면을 통
해서 그 속에 나타난 참된 근대성과 변혁의 논리를 설명하는데 있다.
여기서는 특히 구한말의 종교가인 강증산(姜甑山, 1871~1909)의
사상체계를 대변하는 대순진리(大巡眞理)를 중심으로 그 근대성과
변혁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11) 따라서 이하 본문에서는 먼저 강증산
의 대순진리에 나타난 근대성의 내용을 살펴보고 이어서 그 주된 변혁
사상의 체계를 서술하기로 하겠다.
2. 대순진리의 근대성
1) 한국의 근대사회와 대순진리의 출현
한국의 근대사회와 더불어 등장한 대순진리는 기본적으로 유신론
을 골격으로 하며 그 신앙의 대상은 최고신격으로서의 구천상제이다.
신앙의 발단이 된 시대는 19세기 말엽의 조선조이며, 신앙의 정점에
서 있는 종교가는 강증산이다. 그 교설에 나타난 사상적 특징은 무
11) 현재 강증산을 신앙하는 교파는 수십여개에 이른다. 각 교단에서 사용하는
경전과 신앙체계도 상이하여 강증산의 사상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기가 용이
하지는 않다. 다만 논리전개를 위해서는 부득이 필자의 입장에서 현대종단
인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 경전을 전거(典據)로 하며, 이 때 대순진리
는 강증산을 중심으로 하는 교학체계를 대변하는 용어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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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엇보다도 신앙의 대상으로 자임(自任)되는 그의 위격이며, 고통받는
민중을 구제하는 권능의 소유자가 출현했음을 밝히는 것이다. 당시
의 조선사회는 안팎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그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
기 위한 민중들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히 전개되었던 시기
이기도 하다.
조선은 19세기 중엽이후 안으로 중세사회체제를 극복하고
근대사회체제를 이루어가야 했으며 밖으로는 서구 열강의 침략
을 막고 국권을 수호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당시의 사회세력들은 자신이 처해있던 계급적 입장에서 사회모
순을 인식하고 나름대로 그 해결방식을 구해가고 있었다.12)
여기서 주목할 것은 갑오 동학혁명(1894)과 같은 사회운동은 민
중이 사회변혁운동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그 저력의 형성기반을 종교
적 심성에서부터 찾고 있었으며, 이것은 한국근대종교의 새로운 이
정표를 제시하는 기틀이 되었다는 점이다. 일찍이 동학의 종교운동
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에 입각하여 전개되었던 바 최고신
(天主 또는 하님)의 역사(役事)는 언제나 민중의 편에 서서 새로
운 운수를 베푸는 것이었다.13)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이념을 제
시하는 것은 당대의 종교적 과제가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러한
12)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역사입문 3 근대․현대편, 풀빛, 1996, pp.24~25.
13) 龍潭遺詞 安心歌. 「개벽시(開闢時) 국초(國初)일을 만지장서(滿紙長
書) 나리시고 십이제국(十二諸國) 다버리고 아국운수(我國運數) 먼저하
네 그럭저럭 창황실색(愴惶失色) 정신수습(精神收拾) 되었더라」; 夢中
老少問答歌 「천운(天運)이 둘렀으니 근심말고 돌아가서 윤회시운(輪廻時
運) 구경하소 십이제국(十二諸國) 괴질운수(怪疾運數) 다시개벽(開闢)
아닐런가 태평성세(太平聖世) 다시정(定)해 국태민안(國泰民安) 할것이
니 개탄지심(慨歎之心) 두지말고 차차차차 지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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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51
동학의 이념을 창조적으로 실현하고 이상세계를 향한 새로운 세계관
을 제시하고자 했던 인물이 바로 강증산이다. 그는 스스로 권능자의
소임을 천명하면서 당시의 민중들에게 삶의 희망을 가져다주었던 ‘다
가선 하느님’으로 등장하였다.14)
「나는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
와서 천하를 대순하다가 삼계의 대권을 갖고 삼계를 개벽하여
선경을 열고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려고 너의 동방
에 순회하던 중 이 땅에 머문 것은 곧 참화 중에 묻힌 무명의
약소 민족을 먼저 도와서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주려 하노라.
나를 좇는 자는 영원한 복록을 얻어 불로 불사하며 영원한 선
경의 낙을 누릴 것이니 이것이 참 동학이니라. 궁을가(弓乙
歌)에 조선 강산(朝鮮江山) 명산(名山)이라. 도통군자(道通
君子) 다시 난다」라 하였으니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
신자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 하리라고 전하니 이는 대선
생(代先生)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代先生)
이로다」15)
위의 구절에 나타난 요지는 먼저 최고신의 강림배경과 그에 대한
새로운 신앙을 제시하는 것이다. 최고신은 곧 상제이며 ‘천하대순(天
下大巡)’을 통해 지상에 강림하는 과정을 밟는다. ‘대순’이라 함은 최
고신 상제의 현현(顯現)을 교의적으로 표현한 용어이다. 사멸에 바
진 세계창생을 건지기 위해 권화적(權化的)으로 강림한 상제가 자신
의 사명과 역사를 담아서 ‘대순’이라는 개념 속에 표현하였던 것이다.
대순이라고 할 때의 대(大)는 크기, 높이, 넓이에 있어서 한량없
14) 이경원 韓國近代 天思想 硏究 성균관대박사학위논문, 1999, p.137 참조.
15) 대순진리회 교무부 典經권지1장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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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는 정도를 가리키며, 순(巡)은 ‘순시’(巡視) ‘순회’(巡廻) ‘순찰’(巡
察)과 같이 “자세히 살피면서 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로써 볼때
‘대순’의 교의는 첫째 신앙대상이 되는 최고신 상제의 현현과, 둘째
상제의 광구천하의 역사 그리고 그 유지(遺志)를 숭신(崇信)하며
귀의(歸依)하는 실천수행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본다.16)
위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대순의 과정에서 인간으로 강림한 상
제는 당시의 민중들에게 새로운 신앙을 불러일으키게 되는데, 그것
은 각종 비결서나 동학사상이 모두 인간상제의 탄생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즉 한반도라고 하는 지정학적 특수성은 많은 성현을 배출할
수 있는 터전이며 만인이 갈망하는 대선생(大先生)을 대신하는 새
로운 선생의 출현이 당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당시의
동학은 최수운의 순교이후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신앙 활동이 궁지
에 몰렸으며 종종 서학으로 오인되거나 유교적 설명으로 그 고유한
정체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17)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그 신앙적 권위가 보다 구체화되어 드러난 것이 대순진리
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대순진리는 강세한 강증산이 구천상제임을 믿는
것이다.18) 강세한 상제의 권위는 최고신으로서의 자격을 지니며 그
16) 이경원․최동희 공저 대순진리의 신앙과 목적 대순사상학술원, 2000, p.51
참조.
17) 이 점은 대순신앙이 동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게 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음의 聖句는 이를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 典經교운1장 9절 「상제
께서 어느 날 김 형렬에게 가라사대 ……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
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
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母岳山金山寺) 삼층전(三層殿) 미륵금불(彌勒金
佛)에 이르러 三十년을 지내다가 최 제우(崔濟愚)에게 제세대도(濟世大
道)를 계시하였으되 제우가 능히 유교의 전헌을 넘어 대도의 참 뜻을 밝히
지 못하므로 갑자년(甲子年)에 드디어 천명과 신교(神敎)를 거두고 신미
년(辛未年)에 강세하였노라」고 말씀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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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53
절대권능을 행사하는 것으로 이어지는데 상제에 대한 신앙의 참된 본
질은 그와 같은 권능의 주된 내용이 무엇이냐에 달려 있다. 그것을
윗 글에서 살펴보면 ‘사멸에 빠진 세계 창생들을 건지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주는 것’이다. 궁극에 가서는 ‘영원
한 복록을 얻어 불로불사하며 영원한 선경의 낙을 누릴 것’이 신앙의
목적이 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근대사회로의 진입에 따른 대순진
리의 출현은 당시의 전통사회에 대한 비판과 극복을 통해 새로운 사
회로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 주된 근대성을 발견하게 된다.
2) 사회문제의 진단과 처방
전술한 바와 같이 대순진리가 발생한 19세기 말의 한국사회는 격
변과 동요의 시대였다. 정치․사회․경제적인 모순은 물론이며 그
사회를 지배하는 전통적 가치관마저도 혼란을 겪어야만 했던 시기가
바로 19세기 말엽이다. 대순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상제가 활동했던
시기는 이러한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로 전환되는 과정에 놓여 있
다. 따라서 대순진리의 근대성 이념에 있어서도 당시의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중심으로 상제 증산에 의해 해석되고 제시된 방향들
에서 찾을 수 있다 하겠다.
19세기말엽의 한국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조선후기 사회의 총체적
이고도 구조적인 모순에 기인하므로 그 부면은 전반에 걸쳐서 드러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농․빈농의 격차와 경제적 수탈로 인
한 농민층 실업문제, 토지문제, 정부와 민중의 갈등에서 생겨난 전
쟁의 문제, 외국의 간섭과 침탈로 인한 민족문제, 전통적으로 억압
18) 대순진리회 교무부 刊 대순지침 p.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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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받아 온 여성문제, 이 외에도 가정문제, 노인문제, 학원문제 등의 많
은 문제가 발생하고 또한 산재해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문제해결은
현대사회에서의 경우라면 개량적이거나 체제변혁적인 방법을 동원하
여 개선해나갈 수도 있겠지만, 당시는 그 모순을 극복하기도 전에
다시 식민지적 모순으로 빠져들고 말았던 때였다. 1세기가 지난 지
금에 다시 이 시대의 사회문제를 새삼스럽게 거론한다는 것은 무의
미한 일일지도 모르나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와 같은 문제의 부면이
상존하는 사회를 살고 있으므로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당시의 사회문제 가운데 민족, 인종, 식민지문제 등에 대한
내용이 대순진리에서 언급되고 있다. 1897년 대한제국 성립 시기를
전후하여 발발한 청일전쟁, 삼국간섭, 러일전쟁 등의 일련의 사건은
한국 민족의 주권을 위협하는 대외적 상황으로서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권침탈이 끊임없이 자행된 역사였다. 급기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조선에서의 합법적인 지배를 획
득하게 되고, 조선은 주권을 상실한 채 식민지적 역사를 강요받게
된다. 이 시기의 대순진리를 살펴보면, 조선의 식민지화는 곧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인해 발생한 동양의 위기임을 밝히고 있다.19)
다만 그 과정에서 조선민족을 보존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본에 잠시
위탁한다는 의미에서 천하 통일지기(一時天下統一之氣)와 일월대
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일본에 붙인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식민지적 역사를 의미한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조선민족에게 부
여된 인(仁)의 품성을 통해 조선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
히 민족주의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가르침으로 볼 수 있다.20)
19) 典經공사1-13. 「이제 동양(東洋) 형세가 그 존망의 급박함이 백척간두
(百尺竿頭)에 있으므로 상제께서 세력이 서양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공
사를 행하셨도다.」
20) 典經공사2-4. 「상제께서 어느날 가라사대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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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55
다음으로는 사회평화를 저해하는 집단간의 전쟁, 계층간의 갈등에
관한 문제이다. 이 시대 국내의 상황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정부에 대한 반란, 항일의병투쟁, 동학농민전쟁 등의 혼란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농민전쟁이나 의병투쟁의 원인에 대해서
대순진리에서는 대내․외적인 위압에 대한 자발적인 항거로 보되 당
시의 세태를 더욱 흉동시키는 요인으로 파악했다.21) 그 전도(前途)
에 있어서는 크게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마침내 동학군이 크게 패멸
되고 의병 또한 약세로 접어들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였다.22) 하지만
그 취지와 목적에 있어서는 가치를 높이 사고 있다. 이는 동학농민
전쟁을 발발시킨 전봉준이나 의병투쟁에 앞장선 최익현에 대한 평가
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전봉준에 대해서는 “전 명숙은 만고 명장이라.
백의 한사로 일어나서 능히 천하를 움직였도다.”라고 하거나, “전 명
숙이 거사할 때에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賤人)을 귀하게 만
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서 잘 되어 조선 명부가 되었느
니라.”라고 하였으며, 최익현에 대해서는 “최 익현의 거사로써 천지
신명이 크게 움직인 것은 오로지 그 혈성의 감동에 인함”, “일심의
종의 차별로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가 없고 청국으로 넘겨도 그 민족이
우둔하여 뒤 감당을 못할 것이라. 일본은 임진란 이후 도술 신명사이에 척
이 맺혀 있으니 그들에게 맡겨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그들에게
일시 천하 통일지기(一時天下統一之氣)와 일월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
를 붙여주어서 역사케 하고자 하나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인(仁)
이니라. 만일 인자까지 붙여주면 천하가 다 저희들에게 돌아갈 것이므로
인자를 너희들에게 붙여주노니 잘 지킬지어다」고 이르시고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 될 것이오. 저희들은 일만 할뿐이니 모든 일을 밝게 하여주라. 그
들은 일을 마치고 갈 때에 품 삯도 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
접이나 후덕하게 하라」 하셨도다.
21) 典經행록1-23. 「전 봉준(全琫準)이 학정(虐政)에 분개하여 동학도들
을 모아 의병을 일으킨 후 더욱 세태는 흉동하여져 그들의 분노가 충천하
여 그 기세는 날로 심해져가고 있었도다.……¨
22) 典經행록1-23, 공사 1-2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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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힘이 크니라, 같은 탄알 밑에서 임낙안(林樂安)은 죽고 최면암(崔
勉菴)은 살았느니라. 이것은 일심의 힘으로 인함이니라.”와 같은 설
명이 그것이다.23) 이외에도 일진회와 아전들 간의 싸움이 있어서 이
를 말리는 일을 한다든지, 민심이 흉흉하여 전주에 민란이 발생하므
로 자연현상으로 다스린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무고한 인명을 보호
하고 사회적 평화를 지향하기 위한 의식으로 볼 수 있다.24)
한편 계층간의 갈등문제, 출신성분문제, 여성문제 등도 당시 사회
의 심각한 문제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반상제도(班常制度)는 조선
시대의 국가 사회적 신분제도를 통칭하는 말로서 크게는 양반(兩班)
과 상인(常人)으로 구분되며, 세부적으로는 상위의 지배계층인 양반
과 중간계층인 중인(中人), 일반 피지배계층으로서의 농민(農民:
常人)과 최하층의 노비 등으로 이루어졌다. 양반은 상인에 대해 법
제적, 경제적, 교육적으로 특권을 누리며 군림하였고, 상인은 양반에
대해 온갖 착취와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면서 생활해왔다. 조선후기
의 농민반란은 그렇게 누적된 농민들의 원한이 분출되어 나온 것에
다름 아니다. 대순진리의 시각에서는 사회구조에 있어서 그러한 반
상의 구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하층민들을 우대해야 할 것
을 역설하고 있다.25) 출신성분에 있어서도 적자와 서자를 차별하는
풍습은 반상의 구분만큼 심각한 것이었으며, 이 또한 사회구조의 모
순으로 폐지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보았다.26) 여성문제에 있어서는
23) 전봉준에 대해서는 典經공사1-34, 典經교법1-2 참조. 최익현에 대
해서는 典經공사1-24, 典經교법3-20 참조함.
24) 일진회와 아전의 싸움에 관해서는 典經행록3-14 참조, 전주민란에 관해
서는 典經행록 3-25 참조바람.
25) 典經교법1-9. 「지금은 해원시대니라. 양반을 찾아 반상의 구별을 가리
는 것은 그 선령의 뼈를 깍는 것과 같고 망하는 기운이 따르나니라. 그러
므로 양반의 인습을 속히 버리고 천인을 우대하여야 척이 풀려 빨리 좋은
시대가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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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57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남존여비의 관습을 비판하고, 남성과 같이 동
등한 관점에서 대우하여야 하며, 여성 자신이 또한 스스로의 입지를
세울 것을 강조하고 있다.27) 이외에도 학원문제의 실태를 비판하고
관리나 봉록의 공리에 치우치지 않은 참된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역
설하기도 하였다.28)
이상에서 개괄한 당시의 사회문제에 대한 진단은 모두 그 시대가
처한 사회구조의 모순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대순진리에서 바라본
사회관의 핵심은 보다 초월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이는
그 시대의 사회구조를 넘어선 통시적이고 세계적인 문제에 대한 설
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무도병(無道病)과 약으로서의 안심(安心)안신(安身)에 관한 설명
이다. 즉 당시의 사회는 이미 구조적으로 커다란 병을 앓고 있었는
데 그것은 한마디로 인륜도덕을 상실한 무도병(無道病)이었다고 본
다. 그러한 무도병은 이미 한국사회를 포함한 세계적인 양상이었으
며, 그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견지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26) 典經 교법1-10. 「상제께서 비천한 사람에게도 반드시 존대말을 쓰셨도
다. 김 형렬은 자기 머슴 지 남식을 대하실 때마다 존대말을 쓰시는 상제
를 대하기에 매우 민망스러워 「이 사람은 저의 머슴이오니 말씀을 낮추시
옵소서」하고 청하니라. 이에 상제께서 「그사람은 그대의 머슴이지 나와 무
슨 관계가 있나뇨. 이 시골에서는 어려서부터 습관이 되어 말을 고치기 어
려울 것이로되 다른 고을에 가서는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다 존경하라.
이후로는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구별이 없느니라」 일러주셨도다.
27) 典經교법1-68. 「후천에서는 그 닦은 바에 따라 여인도 공덕이 서게 되
리니 이것으로써 옛부터 내려오는 남존 여비의 관습은 무너지리라.」
28) 典經교운1-17. 「이 세상에 학교를 널리 세워 사람을 가르침은 장차 천
하를 크게 문명화하여 삼계의 역사에 붙여 신인(神人)의 해원을 풀려는
것이나, 현하의 학교 교육이 배우는 자로 하여금 관리 봉록등 비열한 공리
에만 빠지게 하니 그러므로 판 밖에서 성도하게 되었느니라」 하시고 말씀
을 마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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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병에는 큰 형세도 있고, 작은 형세도 있다.
큰 병에는 약이 없고, 작은 병에는 간혹 약이 있다.
그러나 큰 병의 약으로는 안심(安心)과 안신(安身)이 있다.
작은 병의 약으로는 사물탕 팔십 첩이 있다.
기도문: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至氣今至願爲大降
큰 병은 무도(無道)한 데서 나오고, 작은 병도 무도한 데서
나온다.
그 유도(有道)함을 얻으면 큰 병은 약을 쓰지 않아도 낫고,
작은 병도 약을 쓰지 않아도 낫는다. (…해석생략)
의통(醫統)
그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무도이며,
그 스승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무도이며,
그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무도이다.
이 세상에 충(忠)이 없고 효(孝)가 없고 열(烈)이 없어졌
다. 그러므로 천하가 모두 병이 들었다.
병세(病勢)
천하의 병이 생긴 자는 천하의 약을 쓰게 되면 그 병이 곧
낫는다.(…해석생략)
대인(大仁) 대의(大義)를 지니면 병이 없을 것이다.(…해
석생략)
천하의 흐름을 아는 자는 천하의 살아나는 기운을 지닐 것
이고, 천하의 흐름에 어두운 자는 천하의 죽는 기운을 지닐
것이다.29)
29) 典經행록5-38. 「상제께서 거처하시던 방에서 물이 들어있는 흰병과 작
은 칼이 상제께서 화천하신 후에 발견되었는데 병마개로 쓰인 종이에 吉花
開吉實 凶花開凶實의 글귀와 다음과 같은 글들이 씌어 있었도다. 病有大
勢 病有小勢 大病無藥 小病或有藥 然而大病之藥 安心安身 小病之藥 四物
湯八十貼 祈禱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至氣今至願爲大降 大病出於無
道 小病出於無道 得其有道 則大病勿藥自效 小病勿藥自效 至氣今至四月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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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59
윗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든 사회적 부조리와 문제는 어떤 정상
적인 궤도로부터 이탈된 병(病)의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병
에는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을 작
은 것이라 한다면 하나의 집단 나아가 세계적 규모에 이르는 것은
큰 것이 된다. 그런데 사회는 개인을 기본 단위로 하므로 개인의 병
리현상은 반드시 사회와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작은 병이나 큰 병
은 모두 동일한 원리에서 파생된다고 할 때 그 원인적 규명을 무도
(無道)라고 하였다. 이 때 도(道)는 한 개인을 건강하게 하고 안정
시키는 도리이면서 사회전체를 안정시키는 질서와도 같다. 그 질서
가 어그러지고 자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데서 무도(無道)가 형성
된다. 즉 충(忠)과 효(孝)와 열(烈)이 없어진 세상이 무도인 것이
다. 이것이 곧 병세를 형성하게 되고 나아가 세계적인 흐름으로 지
배하게 되었다고 본다.
대순진리에서 바라본 사회의 구조적인 병은 바로 위와 같은 무도
(無道)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유도(有道)를 회
복한다면 말하자면 도덕으로서의 인륜을 회복함에 따라 모든 병을
낫게 하고 또한 진정한 사회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본다. 인륜의
기본은 군․신(君臣), 부․자(父子), 사․제(師弟)에 있다. 임금
과 신하가 서로의 도리를 다하여야 하며, 부모와 자식이 또한 서로
의 도리를 다하고, 스승과 제자가 서로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어느
한 쪽이라도 자신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그 인륜은 성립할 수가
없다.30) 서로의 도리를 충실히 행하는 것이 곧 인(仁)이며 의(義)
禮章 醫統 忘其父者無道 忘其君者無道 忘其師者無道 世無忠 世無孝
世無烈 是故天下皆病 病勢 有天下之病者 用天下之藥 厥病乃愈 聖父
聖子 聖身 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辦斷 大仁大義無
病 三界伏魔大帝神位遠鎭天尊關聖帝君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
30) 典經공사3-40. 「상제께서 어떤 공사를 행하셨을 때 所願人道 願君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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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라고 보아 그러한 실천이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31) 도덕
을 체인하고 실현하여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동요도 없는
상태, 이것이 바로 대병지약으로서의 안심․안신이라고 보고 있다.
궁극적으로 대순진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회문제의 근
본이 도덕의 망각에서 생겨나는 것임을 밝히고, 그 해결이 병에 대
한 치료의 과정(곧 의통)과도 같이 도리를 실천해 나가는 것임을 강
조하는 데 있다. 그 약으로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안심․안신의 기
도이며 이를 통해 완전한 건강을 회복한 상태를 대인(大仁)․대의
(大義)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3) 참된 근대성으로서의 해원(解冤)
그렇다면 대순진리에서 바라본 참된 근대성의 이념은 한마디로 어
떻게 요약될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상제이면서 대종교가로서의 강증
산에 대해 모든 신앙인이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사상인 ‘해원(解冤)’
이념에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해원’이념은 증산의 활동에
있어서 주된 역사에 해당하는 ‘천지공사(天地公事, 1901~1909)’
에 기저 이념으로 작용한 것이기도 하다. 다음의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천지공사의 활동에서 이념적 근거로 삼은 것은 바로 ‘해원(解
冤)’이었다.
君 願父不父 願師不師 有君無臣其君何立 有父無子其父何立 有師無學
其師何立 大大細細天地鬼神垂察의 글을 쓰시고 이것을 천지 귀신 주문
(天地鬼神呪文)이라 일컬으셨도다.」
31) 仁에 대해서 성리학적 본체 개념으로 보지 않고 실천의 결과 개념으로 보는
것은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의 설명에서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 論語
古今註권8, 23b, 24a 「……若仁之名必待行事而成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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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61
또 상제께서 가라사대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
각하여 반목 쟁투하느니라. 이를 없애려면 해원으로써 만고의
신명을 조화하고 천지의 도수를 조정하여야 하고 이것이 이룩
되면 천지는 개벽되고 선경이 세워지리라」 하셨도다.32)
선천세계의 모든 한계는 상호간의 반목 투쟁으로 인한 원(怨)이
쌓였다는 데 원인을 두고 있으며, 그 개별적 원(怨)들이 모여서 전
체적인 원(冤)을 이룬다고 본다. 따라서 후천선경을 이루기 위해서
는 반드시 그 원의 고리를 해소하는 것에 의해 가능하다고 한다. 작
은 것에서 큰 것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데서부터 보이지 않는 세계
에 이르기까지 해원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함에 따라 혁명적인 사회
변화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 과정적이고도 극적인 변화
의 가치를 개벽이라고 하므로 이러한 개벽은 개인에서부터 사회, 나
아가 세계전체에 이르는 혁명적 변화로 규정되고 있다.
해원이란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부터 사회전체 나아가 세계 만물에
이르기까지 그 누적된 원(冤)을 해소하는 것이다. 사회문제의 발생
도 이러한 원이 쌓인 결과이며, 그 해결방향도 근본에 도사리고 있
는 원을 해소하는 것에 의해 가능하다고 본다. 앞서 살핀 사회문제
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궁극적으로 해원의 이념에 정초하여 해결방
안을 제시하며, 나아가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데서 그 가치가 드
러나고 있다.
해원의 이념과 관련한 사회문제의 해결을 천지공사에서 찾아보면
국가, 민족, 제도, 관습, 여성문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나타난다.
먼저 국가와 민족의 해원에 있어서 행해진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의
조선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에 관한 공사가 있다. 중국은 당시에 세
32) 典經 공사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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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계에 비할 수 없는 물중지대(物衆地大)로서 대중화(大中華)의 예
악(禮樂)문물(文物)을 지니고 오랫동안 오랑캐의 칭호를 받는 청에
게 정복되었으니 그 원한이 크다고 보고 장차 그 국토를 회복하게
되는 것으로 공사를 처결하였다.33) 일본에 대해서는 소위 삼한당
(三恨堂)으로 규정하고 임진란 이후 도술신명사이에 척이 맺혀 있
다고 보았다. 따라서 조선을 청국이나 서양이 아닌 일본으로 넘김에
따라 그 척이 풀려 해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34) 조선국에 대해서
는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에 붙여 국운을 돌린다고 하고 단주의
해원도수를 적용하는 것으로 공사를 처결하였다.35) 이후 조선민족은
일만이천 도통군자로 창성하여 그 영화와 복록을 누리는 것으로 민
족해원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36)
당시의 제도나 관습에 있어서 천지공사에서는 반상의 구분, 적서
의 차별 등을 모두 없앰으로서 사회적 원을 푸는 일이라고 보았다.
여기에는 천지공사의 상징성과 대표성이 잘 나타나 있다. 해원시대
이므로 양반을 찾아 반상의 구별을 가리는 것은 그 선령신의 뼈를
깍는 것과 같고 망하는 기운이 따르므로 양반의 인습을 버리고 천인
을 우대하여야 척이 풀려 빨리 좋은 시대가 온다고 하였다.37) 학교
문제도 이와 관련하여 천지공사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즉 “상제께서
김 경학의 집에 대학교를 정하시고 「학교는 이 학교가 크니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였으니 천한 사람에게 먼저 교를 전하리라」”고 하여
무당을 불러 가르침을 베푼 것은 천인을 우대하는 모범을 보이고 그
해원을 이룰 수 있도록 한 것이다.38) 계층간의 갈등에 있어서도 또
33) 典經공사 3-18 참조.
34) 典經예시 74, 공사 2-4 참조.
35) 典經공사2-3.
36) 典經권지1-11, 예시 45절.
37) 典經교법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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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63
한 “촌 양반은 읍내의 아전을 아전놈이라 하고 아전은 촌 양반을 촌
양반놈이라 하나니 나와 너가 서로 화해하면 천하가 다 해원하리
라”39)고 한 것은 천지공사가 지닌 평화지향성을 잘 나타내주는 내용
이다. 사회발전의 과정에 있어서 천지공사의 처결에는 이미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구별을 없애고 천인을 우대함으로써 참된 해원의 이
념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문제의 해결도 해원의 이념 하에서 천지공사로 처결된 것임을
살펴볼 수 있다. “이제는 해원시대니라.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놓았으나 이후에는 건곤의 위치를 바로
잡아 예법을 다시 세우리라.”는 내용과 “후천에서는 그 닦은 바에 따
라 여인도 공덕이 서게 되리니 이것으로써 옛부터 내려오는 남존 여
비의 관습은 무너지리라”는 것은 천지공사의 해원이념이 사회문제로
서의 여성문제에 적용된 바라 하겠다.40) 또한 청춘과부가 수절하는
폐단을 고쳐 젊은 과부는 젊은 홀아비를, 늙은 과부는 늙은 홀아비
를 각각 가려서 친족과 친구들을 청하고 공식으로 예를 갖추어 개가
케 하는 것으로 공사를 보는 것도 이러한 여성해원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41)
이상과 같이 천지공사에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념적 방향
성을 제시하면서 다양한 부면에서 그 가치실현을 주도하는 부분이
나타난다. 대순진리에서 사회변동의 어떤 측면을 말하더라도 그 저
변에 흐르는 이념은 결국 해원이며, 이는 한 개인에서부터 사회, 국
가, 세계에 이르는 전 우주적인 범위를 포괄하고 있다. 대순진리의
신앙적 실천도 바로 이러한 해원을 행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으며,
38) 典經교운1-32.
39) 典經공사1-25 .
40) 典經공사1-32, 교법1-68.
41) 典經공사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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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그 해원이 전체적으로 실현된 사회를 이상사회로 상정하게 된다. 따
라서 대순진리가 지향하는 참된 근대성의 이념은 바로 ‘해원’이라는
단어로 압축될 수 있으며, 인간의 참된 해방과 보다 나은 세계로의
질적 전환은 이러한 해원에 대한 광범위한 해석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3. 변혁사상으로서의 천지공사론
1) 천지공사의 주재자, 구천상제(九天上帝)
대순진리의 근대성과 관련하여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변혁사상은
그 출발점에서 이미 유신론적 신앙체계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즉 강
세(降世)한 강증산이 바로 최고신 구천상제임을 신앙하는 것이 대순
진리이므로 근대성을 향한 사회변혁의 배경에는 이미 강력한 상제신
앙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순진리가 일면 타력적인 신앙이 위
주가 되어있다는 혐의를 부인할 수는 없으나 기성의 전통종교를 극
복하고 나온 신종교로서 서구적인 유일신론과는 궤도를 달리하고 있
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42)
최고신 상제의 권능이 드러난 역사는 일반적인 사상운동과는 성격
42) 본 고에서 상술할 수는 없지만 대순진리의 신관의 특징은 최고신 상제의
존재를 중심으로 여러 군신(群神)들과의 관계에 의해 구성되는 체계적인
통일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즉 신의 세계가 인간사회와 비슷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는 것은 전통적인 유신론에서의 피조물
적 인간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간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결
과를 낳는다.(졸고 「대순사상의 신관연구」 종교연구 34집, 한국종교학
회, 200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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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65
을 달리한다. 인간의 유한성을 넘어선 초월적이고도 무한권능을 행
사하는 것이며, 세계전체의 변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창조력을 지
닌다. 말하자면 종교가로서 어떤 신앙대상을 드러내어 중개자로서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신앙대상이 될 만한 절대권
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제로서의 신격(神格)을
확보하고 민중이 보다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끔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상제의 권능을 단적으로 드러낸 개념이
바로 ‘천지공사’이다.
시속에 말하는 개벽장은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비겁에 쌓
인 신명과 창생을 건지는 개벽장(開闢長)을 말함이니라. 상제
께서 대원사에서의 공부를 마치신 신축(辛丑)년 겨울에 창문에
종이를 바르지 않고 부엌에 불을 지피지 않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음식을 전폐하고 아흐렛동안 천지공사를 시작하셨도
다. 이 동안에 뜰에 벼를 말려도 새가 날아들지 못하고 사람들
이 집 앞으로 통행하기를 어려워 하였도다. (공사1장 1절)
윗 글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비겁에 쌓인 신명과 창생을 건지는 개
벽장’이 바로 강세한 상제이며, 천지공사는 그렇게 만고에 쌓인 원을
풀어서 영원한 선경의 낙원을 누리기 위해 상제의 권능을 발휘한 역
사이다. 상제가 상제이기 위한 속성이 곧 천지공사로서 드러나며 하
나의 이론적 이해를 넘어선 신앙을 요구하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의
새로운 신앙체계로서 제시된 것이 곧 ‘천지공사’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천지공사의 성격은 오직 상제의 권능에 의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새로운 세계를 여는 변혁된 세계관을 담고 있다 하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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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그 삼계공사는 곧 천․지․인의 삼계를 개벽함이요 이 개벽
은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 하는 일이 아니고 새로 만들
어지는 것이니 예전에도 없었고 이제도 없으며 남에게서 이어
받은 것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다만 상제에 의
해 지어져야 되는 일이로다. (예시 5절)
윗 글에서 보면 상제의 천지공사는 “예전에도 없었고 이제도 없으
며 남에게서 이어 받은 것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다
만 상제에 의해 지어져야 되는 일”이라고 하였듯이 최고신 상제가 지
니는 독보적인 위격과 함께 그 역사도 유일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 독창적인 가치를 가리켜 ‘개벽(開闢)’이라고 하며 이와 같은 개벽
을 주도하는 자는 다름 아닌 ‘상제’이다.
본래 ‘개벽’이라는 말은 ‘천지가 처음으로 열림’43)이라는 뜻으로
‘개천벽지(開天闢地)’의 준말이다. 문헌상 ‘개벽지초(開闢之初)’44)
‘자개벽이미문(自開闢而未聞)’45) ‘상기개벽수고지초(上紀開闢遂古
之初)’46)등에서 나타나 있듯이 이 세계의 처음 시작을 지칭하는 용
어이다. 아직까지 고전적으로는 직선적인 시간관념을 내포하는 용어
로서 별로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은 막연한 시초를 가리킨다고 할 것
이다. 하지만 최수운이 용담유사(龍潭遺詞) 에서 밝혔듯이 “십이제
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런가”47)라고 한 것은 개벽이 윤회적이고
순환적인 사관에서 도출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때 개벽은 역
사의 혁명적 전환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용
43) 辭源 「指天地之初開」, 常務印書館, 1987, p.1763.
44) 史記補史記, 「三皇本紀」.
45) 文選권10, 紀行 下, 瀋安仁岳, 西征賦.
46) 文選권11, 遊覽宮殿, 王仲宣, 魯靈光殿 賦幷序.
47) ‘夢中老少問答歌’의 내용 가운데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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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67
어이다. 마찬가지로 상제의 천지공사는 삼계를 개벽하는 공사라고
하였으므로 그 독창적이고도 혁명적인 역사를 강조하고 있음을 주목
할 필요가 있다. 그 전거가 전경 의 공사편을 통해 서술되고 있음
으로 오늘날의 대순진리가 성립되었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씀을 계속하시기를 「九년간 행하여 온 개벽공사를
천지에 확증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들이 참관하고 확증을 마음
에 굳게 새겨두라. 천리는 말이 없으니 뇌성과 지진으로 표명
하리라.」 상제께서 모든 종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별안간 천둥치고 땅이 크게 흔들렸도다. (공사3장
38절)
상제의 천지공사는 신축년(1901)부터 시작되어 기유년(1909)까
지 9년간의 역사로 종결되었다. 그렇게 대순진리의 근간이 되는 천
지공사는 강세한 상제가 그 권능을 발휘한 역사적 전거로서 기록되
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2) 선․후천 개벽과 지상선경
대순진리의 발생배경이 상도(常道)를 잃은 과거의 우주사를 배경
으로 한다면 천지공사는 곧 선천과 후천의 역사를 가름하는 분기점
이 될 수 있다. 선천은 상극원리에 지배되어 인간사물이 원을 맺은
시대이며 후천은 그러한 원이 해소된 지상낙원의 세계이다. 선천의
세계를 그냥 내버려두면 인간사물이 파멸지경에 이르게 될 것으로
진단함으로써 상제의 강세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상제가 행한 천지
공사는 선천의 파멸지경으로부터 인류를 영원한 선경의 낙원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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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는 창조적 역사이며 변혁된 세계관을 요구한다.
상제께서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제재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것이 곧 개벽이니라. 만물이 가을 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
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 지어다.」라고 말씀하셨도다. (예
시 30절)
즉 대순진리에서는 상제의 천지공사 시기(1901~1909)를 기준
으로 하여 그 이전은 선천이 되고 그 이후는 후천이 된다. 이 시기
의 신종교가들은 모두가 자신이 살던 시대를 선․후천의 교차기로
파악하고 후천시대의 도래를 예언하며 그 자신의 위상을 정립하려고
노력하였다. 마찬가지로 대순진리 또한 이 시대의 역사적 전환기를
선․후천으로 구분하여 그 신앙의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하
지만 여기서 대순진리의 선․후천론이 여타 종교가의 이론과 구분지
을 수 있는 특질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권능자의 창조력을 강조한 새
로운 신앙의 수립이며, 인물 강증산은 그러한 신격을 담지한 신인
(神人)으로서 자리매김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계시나 예언 또는
사회적 계몽운동의 주체로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신격을 지
닌 권능자로 자임함으로써 신앙의 중개자가 아닌 신앙의 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천지공사를 기준으로 한 선천과 후천의 시대구분은 새로운 변화에
따른 메카니즘을 구성한다. 마치 동양철학의 전통적 사고방식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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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69
변하는 음양론(陰陽論)에서처럼 음은 그 속에 양을 내포하고 양은
또 그 속에 음을 내포한다. 음과 양은 서로 극단적으로 성질을 달리
하지만 서로를 이루어주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의 관계이다.48) 마찬
가지로 다가오는 후천의 모습은 선천의 과정 속에서 잉태된 것이며
선천은 또한 후천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선천이 양의 과정
이라면 후천은 음의 과정이기도 하다. 선천과 후천은 서로 유기적으
로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이 시대 선천의 말기에 대해 종말
이 아닌 말세로 규정하고 있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49) 말세는
당대의 역사를 새롭게 규정하고자 하는 인간의 통찰력에 기인한 용
어로서 그것을 선언한 사람의 주체적인 역량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
라 보다 변혁된 신세계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대순진리에서 말
세를 선언한 자는 다름 아닌 최고신 상제이다. 상제는 그와 같은 말
세선언을 통해 ‘천지공사’라고 하는 대역사의 당위를 보장받으며 나
아가 후천세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후천세계로의 변화는 무극대운(無極大運)으로 묘사되며, 조화로
써 개벽된 지상선경을 지향한다. 선천을 지배했던 구질서와 구가치
관을 버리고 새로운 질서, 새로운 가치관이 요구되는 시대가 후천이
다. 이렇게 개벽을 통해 맞이하는 이상세계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질
수 있는가. 다분히 관념적인 설명으로 흐를 수밖에 없지만 그 주요
한 개념이 되는 것을 현대종단의 교리에서 찾는다면 바로 음양합덕
(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寃相生) 도통진경(道
通眞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음양이 합덕된다 함은 구체적으로 모
48) 相反應合, 陰陽對待의 관계, 또는 相補的인 관계라고도 한다.
49) 「이제 말세를 당하여 앞으로 무극대운(無極大運)이 열리나니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 공
정(天地公庭)에 참여하라.」고 이르시고 그에게 신안을 열어주어 신명의
회산과 청령(聽令)을 참관케 하셨도다.( 전경 예시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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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든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이 해소되고 화합의 시대를 맞이하는 것을
가리킨다. 일부일처제는 물론이고, 과부와 홀아비의 재가를 허용하
며, 남녀평등을 이루고, 적서와 반상의 구분이 없는 사회가 그 주된
내용이 될 것이다.50) 「선천에서는 하늘만 높이고 땅은 높이지 아니
하였으되 이것은 지덕(地德)이 큰 것을 모름이라. 이 뒤로는 하늘과
땅을 일체로 받들어야 하느니라.」51)고 한 것도 음양이 합덕된 시대
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인조화는 신과 인간의 합덕된 양상
을 말한다. 조화는 ‘調和’와 ‘造化’의 합성어이다. ‘서로 어울려서 하
나가 된다’ 또는 ‘조화되어서 새롭게 탄생한다’ 등의 뜻으로 풀이될
수 있다. 신과 인간이 존재방식은 다르지만 그 고유한 가치를 지니
고 서로 만날 때 인간세계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신이 인간을 필
요로 하고 인간이 또한 신을 필요로 하여 어울려 하나가 될 때 새로
운 시대의 신인간(新人間)이 탄생할 수 있다. 해원상생은 앞에서
근대성의 이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참된 인간해방을 뜻하고 나아가
인간 상호간에 다시는 원이 발생하지 않는 상생의 관계로 맺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도통진경에서는 이 모든 관계의 이념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하나의 전체세계를 이룬 모습을 표현하는 것으로 참
된 지상낙원이 펼쳐지게 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상과 같은 후천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주
체적이고도 능동적인 참여가 요구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먼저 “모든
일에 조심하여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죄를 멀리하여 순결한 마음으
로 천지 공정(天地公庭)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로 주어져
있다. 이로써 후천은 상제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세계가 아니
50) 과부와 홀아비의 재가에 대해서는 <공사 2장 17절>에, 남녀평등에 대해서
는 <교법 1장 68절>에, 적서의 명분과 반상의 차별을 없애는 것에 대해서
는 <교법 1장 10절>에 언급되어 있다.
51) 典經교법 1장 6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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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71
라 인간의 주체적인 참여와 역사의식이 요구되는 상징적 표현임을
실감하게 한다.52)
3) 성사재인(成事在人)의 실천론
후천을 향한 인간의 참된 참여의식을 일깨우기 위해서 대순진리에
서는 먼저 ‘천지가 사람을 쓰는 때’라고 하는 성숙된 인간의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간의 각성을 일깨우는 가르침으로 대순
진리에서는 전래의 운명론적 관념을 혁파해야 함을 다음과 같이 강
조하고 있다.
「선천에는 모사(謀事)가 재인(在人)하고 성사(成事)는 재
천(在天)이라」 하였으되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
이니라. 또 너희가 아무리 죽고자 하여도 죽지 못할 것이오.
내가 놓아주어야 죽느니라. (교법 3장 35절)
즉 모사재인(謀事在人)과 성사재천(成事在天)은 동양전통의 운
명론에 입각한 술어이다. 하늘(天)의 의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52)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典經구절을 참고해 볼 수 있다.; 신 원일이 개벽
공사를 빨리 행하시기를 상제께 간청하니라. 상제께서 「인사는 기회가 있
으며 천시는 때가 있으니 그 기회와 때를 기다릴 것이니 이제 기회와 천시
를 억지로 쓰면 그것은 천하에 재화를 끼치게 될 뿐이며 억조의 생명을 억
지로 앗아가는 일이 되리라. 어찌 차마 행할 바이냐」고 말씀하셨으되 원일
이 「방금 천하가 무도하여 선악을 분별하기 어려우니 속히 이를 잔멸하고
후천의 새 운수를 열어주시는 것이 옳을까 하나이다」고 말하면서 간청하니
상제께서 심히 괴로와 하셨도다. (공사2장-24절) 여기서 개벽공사의 집행
은 인사와 천시라고 하는 보편적 시각에 바탕을 두는 것으로 한 개인의 판
단과 욕심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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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있겠지만 크게 나누면 인격신(人格神)적인 천과 최고원리로서의 천
이 있다.53) 어떤 의미를 지니더라도 하늘은 인간에게 있어 경배의
대상이며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존재로 믿어왔다. 인간의 행위에
당위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도 하늘이었으며 인간의 잘못에 대해 징
벌하는 권위도 하늘이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천인관계(天人關係)
에 입각하여 살아왔던 역사가 곧 선천이다. 하지만 후천의 시대는
인간이 지닌 위상이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그것은 ‘모사재천(謀事
在天) 성사재인(成事在人)’이라는 자각이 지배하는 각성된 인간을
말한다. 즉 ‘일을 꾸미는 것은 하늘에 달려있고 그 일을 이루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늘에서 일을 꾸민다 함은
최고신 상제의 강림으로 행해진 천지공사의 역사를 말하고 사람이
이룬다 함은 그 공사의 이념에 입각하여 실천하는 인간주체를 강조
한 말이다. 인간주체의 능동적인 참여없이는 상제의 천지공사도 의
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성사재천(成事在天)에서 성사재인(成事在人)으로 의식전환
을 강조하더라도 가치본원으로서의 하늘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아
니다. ‘일이 마땅히 왕성해지는 것은 천지에 달려 있지 반드시 사람
에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없으면 천지도 없다.’54)
라고 한 구절을 상기해 볼 때 하늘과 인간은 상호 의존관계임을 명확
히 하고 있다. 따라서 대순진리에서 바라본 인간의 위상을 다시 규정
한다면, 신앙의 대상이 되는 천지공사와 상제는 모든 실천을 위한 근
53) 풍우란의 중국철학사에서는 天의 뜻을 크게 다섯가지로 분류한 바 있다. 첫째
는 땅과 상대되는 개념으로서의 物質之天, 둘째는 인격적 상제개념으로서의
主宰之天, 셋째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運命之天, 넷째로 자연의
운행과도 같은 自然之天, 다섯째로 우주의 최고원리로서의 義理之天이 그것
이다.(馮友蘭 中國哲學史上, 三聯書店有限公司, 1992, p.43)
54) 典經교법 3장 47절 「事之當旺在於天地 必不在人 然無人無天地 故
天地生人用人 以人生 不參於天地用人之時 何可曰人生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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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73
거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고, 인간은 그와 같은 실천을 통해 후천
의 새로운 세계를 주도해 나가는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가치를 지닌다
할 것이다.
4. 결 언
이상에서 살펴본 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은 기존의 근대성
논의에 분명 간과할 수 없는 하나의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그것은
한국사회를 중심으로 근대의 시기에 등장한 신종교로서 사회변혁을
위한 신앙적 입장을 제시하고 이에 걸맞는 이념을 주창하고 있기 때
문이다. 그 주된 이념으로서 언급된 ‘해원’과 ‘후천개벽’의 논리는 비
록 종교이념으로 대두되었지만 한국 근대사회의 민중들로 하여금 참
된 근대성을 지향하게 하는데 하나의 견인차역할을 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근대성의 기원이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인 아메리
카에서 발견된다는 점에 대부분의 역사가와 사회과학자들이 동의하
면서, 서유럽의 특수한 경험이 보편적 현상으로 탈바꿈 했다는 점도
인정해야만 한다.55) 근대화의 길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가 될
수 있음은 그 오랜 역사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듯이 동아시아의 근
대성, 특히 한국의 근대성 역시 상당히 독특한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근대서양의 도전에 대한 의식적 반응
이었다고 하겠지만 식민지적 모순까지 겪으면서 주입된 근대성의 모
델은 분명 한국적인 것이었다고 하기에는 미흡할 수밖에 없다. 여기
55) 박지향, 위의 책, pp.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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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에 한국근대의 신종교운동은 어떤 타율적인 사회변동을 거부하고 민
족 주체적인 입장에서 창조적인 역사의식을 발휘함으로써 민족의 위
대한 활로를 개척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한국적인 참된 근대성을
발휘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대순진리의 사상에서 보여준 상기
의 근대성 논의는 이러한 한국 신종교에 대한 평가의 연장선상에서
그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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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75
<국문초록>
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이경원
한국의 근대사회와 더불어 등장한 대순진리는 기본적으로 유신론
을 골격으로 하며 그 신앙의 대상은 최고신격으로서의 구천상제이다.
신앙의 발단이 된 시대는 19세기 말엽의 조선조이며, 신앙의 정점에
서 있는 종교가는 姜甑山(1871~1909)이다. 당시의 조선사회는
안팎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그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민중들
의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히 전개되었던 시기이다. 일찍이 동
학의 종교운동은 輔國安民의 기치에 입각하여 전개되었던 바, 이러
한 동학의 이념을 창조적으로 실현하고 이상세계를 향한 새로운 세
계관을 제시하고자 했던 인물이 바로 강증산이다.
대순진리에서 바라본 참된 근대성의 이념은 강증산의 핵심사상인
‘解冤’에 있다. 이 ‘해원’이념은 증산의 활동에 있어서 주된 역사에 해
당하는 ‘天地公事(1901~1909)’에 基底 이념으로 작용하였다. 해
원은 한 개인에서부터 사회, 국가, 세계에 이르는 전 우주적인 범위
를 포괄한다. 대순진리의 신앙적실천도 바로 이러한 해원을 행하는데
있으며, 그 해원이 전체적으로 실현된 사회를 이상사회로 보았다.
또한 대순진리에서는 전래의 운명론적 관념을 혁파해야 한다고 한
다. 즉 후천의 시대는 인간이 존귀한 시대로서 인간주체의 능동적인
참여 없이는 상제의 천지공사도 의미가 없다. 한국근대의 신종교로
서 대순진리는 민족 주체적인 입장에서 창조적인 역사의식을 발휘하
고 민족의 위대한 활로를 개척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한국적인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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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대성을 드러냈다고 본다.
-주제어
대순진리, 구천상제, 해원, 천지공사, 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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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77
<Abstract>
The modernity and revolution thought
in Daesoon doctrine
Lee, Gyung-won
With the rise of modern society in Korean, Daesoon doctrine
appeared. Basically, its framework is theism and its object of faith
is Gucheonsangje(九天上帝) as the supreme god. It appeared for
the first time in the 19th century’s Joseon period, and there was
Gang, Jeong-san(姜甑山(1871~1909) on the summit of this faith. It
was the time when there was increased disorder at home and
abroad, and the movement of the masses for dispelling fear was
greater than ever. As the religious movement of Donghak(東學)
was deployed based on Bogukanmin (輔國安民,Helping the national
affairs and comforting the people) from the early stages, it is
Gang, Jeong-san, who sought to realize this ideal of Donghak and
present a whole new view of the world toward Utopia.
From Daesoon doctrine’s point of view, the ideology of true
modernity lies in the key idea of Gang, Jeung-san, ‘Haewon(解冤,
paying off each other’s grudges). This idea of ‘Haewon’ worked
as a fundamental idea of ‘Cheonjigongsa (天地公事,1901~1909))’,
which was a major history of Jeong-san activities. The Haewon
encompasses the whole universe ranging from an individual to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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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nation, and to the world. The religious practices of Daesoon
doctrine also aim to fulfill this Haewon, and the society where
the Haewon was realized in general was regarded as an ideal
society.
In addition, it was argued that the traditional fatalistic notions
should be destroyed in Daesoon doctrine. In other words, since it
is the era of Hucheon(後天, the latter world) when human beings
are high and noble, the Cheonjigongsa of God means nothing
without active participation of human subjects. As a newly‐risen
religion of the modern times of Korea, it is considered that
Daesoon doctrine showed Korean modernity in a way that it
sought to exhibit creative awareness of history from the standpoint
of independent nation and find a way out for the nation.
Key-word
Daesoon doctrine, Gucheonsangje, Haewon(解冤), Cheonjigongsa,
Hucheon(後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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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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