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이야기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김방룡.성균관대

1. 시작하며
1860년 동학의 출현이후 한국에는 수많은 신(민족)종교들이 출현
하였다. 구한말과 일제시기에 출현한 수많은 신종교들은 조선왕조의
몰락과 서구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과정에서 이들에 대한 저항적 성
격을 띠고 출현하였다. 그리고 1910년 국권이 침탈된 이후 일제에
대한 저항과 민족의 독립을 향한 민중들의 염원과 열망을 간직한 채
창교되었다. 1916년 소태산 박중빈의 대각(大覺)에 의하여 출현한
원불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근 들어 동아시아 문화권 속에서 한국의 사상 및 문화적 보편성
과 그 특수성을 모색하려는 학문적 움직임이 일고 있다.1) 이는 우
리와 역사적 경험이 크게 다른 서구의 이론을 통하여 우리의 역사와



1) 2004년 금강대학교에서 ‘동아시아 불교사 속의 한국불교’라는 국제학술대
회를 들 수 있다. 2005년 10월 28일 전북대에서 열린 제 18회 한국철학
자대회의 주제도 ‘동아시아시대, 공존과 평화’였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8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문화를 해석해 오던 것을 지양하고, 오랜 기간 동안 상호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은 동아시아 문화권 속에서 우리를 이해하려한다는 점
에서 바람직한 모색이라 생각한다. 동아시아 종교에 나타난 근대성
과 변혁사상을 주제로 하여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한․중․일 삼국의
대표적인 종교를 중심으로 논의하는 움직임은 그 의미가 남다르며,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의 하나로서 원불교를 살펴보는 것은 타당하다
고 생각된다.
동아시아 국가는 과학과 기술을 중시하여 산업혁명을 통하여 막강
한 자본을 축척한 서구 제국주의 세력에 의하여 개항을 강요받거나
침략을 당했다는 공통의 근대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
한 경험은 일본․중국․한국 등의 동아시아 삼국이 동일한 것은 아
니다. 일찍이 제국주의 길에 합류하여 침략자로서의 등장한 일본의
근대경험과 식민지 사회 속에 처한 우리의 근대경험은 분명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점은 유의해야할 문제이다.
한국사회에 있어 반봉건운동은 여러 주체들이 있지만 실질적인 주
체는 동학을 필두로 한 신종교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신종교 운동
은 수많은 민중들이 참여했으며, 스스로 신앙공동체에 참여하여 새
로운 세상을 만들어보려는 의지로 충만해 있었다. 따라서 신종교를
통하여 한국사회의 근대성을 찾으려는 기도와 그 변혁사상을 살펴야
할 학문적인 당위가 성립된다.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이란 주제는 이미 (원불교) 학계에서
많이 다루어진 내용이다.2) 어떤 의미에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 표어에서 볼 수 있듯이 원불교의 출현은 근대적 특
징을 물질의 개벽으로 보고 이를 변혁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신의 개


2) ‘원불교학’은 이미 원광대학교와 영산원불교대학에 원불교학과가 만들어져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고 있다. 또 원불교학회, 원불교사상연구원, 소태상사
상연구원 등 전문 연구기관을 통하여 많은 연구성과물이 생산되고 있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83


벽을 주장한 종교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
사상의 특징을 규명하고, 이를 통하여 한국종교 나아가 동아시아 종
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의 특징을 비교 규명하려는 것은 학문적 의
의가 크다 하겠다.
본고에서는 다음의 몇 가지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근대성과 변혁사상이란 무엇인가?
둘째, 원불교의 근대성은 무엇인가?
셋째, 원불교의 변혁사상은 무엇인가?
넷째,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2. 근대성과 변혁사상
‘근대’란 시대를 구분하는 단위로 서구사회를 기준으로 하여 출현
한 말이다. 이 때 근대는 경제적으로 산업혁명, 정치적으로 의회민
주주의, 종교적으로 종교개혁 등을 의미하며, 前근대의 중세봉건사
회와는 분명히 다른 특징을 드러낸다. 철학에 있어서도 근대철학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르네 데카르트의 말을 통해 드
러나듯이, 이성을 통하여 사물을 해석하는 인식론 즉 합리주의가 철
학의 중심으로 떠오른 시기이다. 역시 신학(神學)이 중심이었던 중
세와는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성’이란 근대적인 성격을 의미하며 개인의 가치와 권리가 존
중되며 계약에 의하여 상호 이익을 관철하거나 조종하는 사회를 말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8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한다. 물론 서양의 역사적 전통 속에서는 중세와의 ‘단절’이 전제되
어 있다. 그러나 이 ‘근대성’이 세계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게 된 직접
적인 계기는 불행히도 제국주의 세력이 힘에 의하여 식민지를 쟁탈
하고 그곳에 자기들의 가치체계를 강요한데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근대성이란 이중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다.
그런데 이러한 서구의 근대적 특징을 ‘근대성’이라고 일반화할 수
있는 것일까? 또 동아시아의 전통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서구의
‘근대성’을 무조건 추종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겪은
근대적 경험을 통하여 ‘동아시아의 근대성’, ‘한국의 근대적 성격’을
일반화하려는 기도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와 같은 질문을 우리는 수없이 던져 본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근․현대사가 서구의 제국주의 세력의 강요에 굴복함으로서 세계사
에 편입되는 순간부터, 서구의 근대적 경험은 우리에게 빠르게 강요
되어졌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관계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근대성’이라 할 때 그 말은 서구화를 의
미한다. 그리고 서구의 문명은 선진적이며 우리가 변화되어야할 목
표와 방향이 그곳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서구의
근대 모델을 ‘근대성’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보편적이고 상위적인 가
치로 전제한 후, 동아시아 종교에 있어서 그러한 ‘근대성’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하는 점만을 찾게 되면 주체성을 상실할 수 있다.
서구사회에 있어서 근대는 중세의 교황-왕-영주-가신으로 구성
된 사회체제를 전복하고, 상공인(브르조아)이 새로운 사회의 주인으
로 등장하면서 출현하였다. 따라서 서구의 ‘근대’에 있어서 변혁이란
바로 중세 봉건질서를 무너뜨리고 의회 민주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종교와 철학의 영역에 있어서는 중세 신학이 가진 ‘도그마’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85


에 대한 비판과 이성을 도구로 하여 모든 영역에 있어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접근하려는 경향성을 띠었다. 그리고 이러한 서구의
근대성과 개혁의 모습은 그들에게 있어서 자연스러운 발전과정이었
으며,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서구의 근대성은 군국주의자의 모습을 띠고 야만스
럽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민족의 내적 모순과 외세의 침탈 상황에서
유학자들이 ‘위정척사’를 내걸고, 동학도들이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
를 들었고 개화파들이 개화를 주장하게 된다. 우리민족사에 있어서
근대에 접근하는 모습은 이처럼 다양하게 분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
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민족에 있어 근대의 시기는 ‘일제시대’와 ‘분단
시대’로 압축할 수 있다. 특히 이 두 시기의 분수령이 되는 민족해방
을 우리 스스로 힘으로 이루어내지 못한 결과 민족의 분단과 동족간
의 극한적인 대립을 경험하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근대화의
과정은 친일파와 친미 사대주의자, 민족분열주의자, 매판자본가 등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였다. 한마디로 근대화의 과정에 있어서 ‘변혁’의
주체와 대상이 뒤바뀌어지고 혼돈되어진 것이다.
서구 사회의 시대구분은 흔히 ‘전근대 / 근대 / 탈근대’로 나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근대성’과 ‘탈근대성’의 문제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로 대두된다. 그러나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
리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철학적이며 종교학적 문제는 아니다. 이는
한 때 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포스터모던’ 논쟁이 어느 사이 조용
히 수그러지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사
회는 ‘전근대 / 근대 / 탈근대’의 시대구분이 어려우며, 더군다나 그러
한 구분으로 철학과 종교의 영역을 다루는 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
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종교학계에 있어서도 ‘근대성’에 대한 보다
조심스러운 접근이 요구되어진다고 하겠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8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동학․대종교․정역․증산교․원불교․보천교․금강대도 등의 근
대 민중종교들의 출현은 사회적 모순과 외세의 침투가 가열되는 시
대상황 속에서 사회적 모순구조를 타파하고, 민족적 정체성을 각성
시키고, 민족문화의 주체의식을 현양하고자 하였다. 이들의 공통적인
사상 중의 하나는 ‘후천개벽사상’이며, 이는 인간과 사회의 변혁을
종합적으로 압축시킨 말이다.
‘개벽’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19세기말 민중종교들은 당시 시대
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것을 꿈꾸고 그것을 예언하는 메시아를 찾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
도의 정신적 아미노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신적 공항상
태의 원인은 동아시아 기본질서의 붕괴에 따르는 혼돈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즉 청나라의 붕괴와 서구세력의 등장은 중국을 중심
으로 하는 기존의 동아시아 질서를 완전히 흔들게 되는 역사적인 사
건이었다.3) 그리고 이러한 대 변혁은 당시 지배층은 물론 민중들에
게 심각한 위기의식과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
식의 발로가 수많은 민중종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질서를 받아들이게 한 사유체계는
화이론(華夷論)에 근거한 것이다.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조선의 지
배층은 철저히 화이론을 숭배하였으며, 명나라를 받들고 오랑캐를
업신여기는 사상에 투철해 있었다. 이러한 화이론적 질서가 깨치게
된 사건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었다. 양란을 통하여 급부상한 일
본의 존재와 명나라를 물리치고 중국의 주인으로 등장한 청나라의


3) 물론 화이론에 입각한 조선의 지배층의 움직임은 위정척사 운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위정척사운동의 중심에 화서 이항로를 중심으로 하는 화서학파가 있
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존화의 대상인 명나라가 사라지자 도학의 전통을 공
자 → 맹자 → 주자 → 송시열로 계승된 것으로 주장하며 조선사회에 소중화의식
을 고착화시켰다. 이렇게 화이론의 입장에서 서양은 오랑캐 금수로 여겨지게
되며, 소중화의 입장에서 척결해야 될 대상으로 인식되어진 것이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87


존재는 화이론적 입장에 있던 조선의 지배층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명․청교체기를 경험하면서 조선의 지배층은 두 가지의 경향성을
띠게 된다. 그 하나는 주자학자들이 소중화사상으로 무장하게 된 것
이며, 다른 하나는 주자학을 부정하고 실학을 주장하게 된 것이 그
것이다. 민중들 속에 있어서도 위기의식은 마찬가지로 나타나게 된
다. 민중들의 위기의식은 풍수도참과 참위설의 유행, 정감록류4)의
예언 비기의 유행을 통하여 표출되었다.
명․청 교체기부터 민중들 속에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한 위기의
식은 청나라가 영국에 멸망하는 사건을 경험하면서 극에 달하게 된
다.5) 서구의 출현은 동아시아질서가 세계사의 질서로 편입되는 중요
한 순간이었지만, 한․중․일 삼국에 있어서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
서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가 던져져 있었다. 구한말 민중종교사상
에 나타난 ‘변혁사상’은 기존의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가 붕괴됨
에 따른 위기의식의 발로로서 민중들의 입장에서 출현하게 된 것으
로 해석할 수 있다.
민중들의 위기의식은 새로운 메시아의 갈망, 대란이 다가오며 그


4) 오늘날 유행하는 정감록이라는 한 묶음의 책엔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내
용이 점차 첨가되어 한 가지 계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예언비서들
이 집약되어 있다. 그러나 그 원본은 명칭으로도 알 수 있듯이 역시 감결
감인록 이라 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논해본다면 정감록이라는 명칭
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 책은 열 두 개의 비결이 수록된 책이다. 그 중에서
도 징비록(懲毖錄) 이라든가 감결 또는 감인록 등에 나오는 논술의
주인공이 대부분 「정공(鄭公)」이라는 데서 정감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즉 한양을 도읍으로 하는 이조 왕세가 5백년만에 쇠망하고, 앞으
로 계룡산에 신도가 열리게 될 터인데 그 새 왕조의 창시자가 정도령이라
는 예언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류병덕의 주장)
5) 보천교의 ‘천자등극설’이 이를 보여준다. 즉 새로운 천자가 우리 땅에서 출
현하여 동아시아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한다는 포부를 드러내 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안후상의 주장)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8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때 살아남기 위한 피난처 모색 등 개별적인 차원에서 모색되다가,
동학의 창도이후 종단을 형성하면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들은 ‘역易’의 시대적 운도관념을 통하여 후천개벽을 예언하였다.
또 미래 한국이 ‘도덕의 부모국’ ‘정신의 지도국’이 될 것이라 예언하
면서 실질적으로 한국이 새로운 동아시아의 주인으로 등장하려는 포
부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힘의 논리가 지배적인 19세기의 상황 속에서 이들의 이상
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웠다.


3. 원불교의 근대성
원불교의 핵심은 ‘일원상’으로 표현되며, 그 실체는 은(恩)사상이
라 할 수 있다. 이는 소태산 박중빈의 깨달음의 내용이자 원불교 신
앙의 목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종교의 본질적 측면에 있어서는 시
대성을 초월하며 근대성에 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불교의 교리,
시대인식, 포교방법과 의례 등의 모습에서 근대성을 논할 수 있다.
종교에 있어서 근대성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서양의 경우
근대는 神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변화를 가져온다.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을 통하여 인간은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 욕망이 긍정되고 자유
를 누리게 된다. 종교개혁의 핵심은 중세가 몰락하고 새롭게 사회의
주인으로 떠오른 시민세력의 요구에 맞추어 신학(神學)과 제도를 새
롭게 해석하고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변화된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신학이 전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종교의 근대성
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89


한규무는 ‘개화기 종교운동의 근대화’라는 글을 통하여 근대화를
‘삶의 질의 향상과정’으로 정의하고 있다.6) 이러한 주장은 눈여겨 볼
만하다. 그가 제시한 기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삶의 질’의 유형 지향점 극복대상
인간(human)으
로서의 삶의 질
생존․자유․평등․교육(인권신장)
→ 인간으로서 반드시 가져야할 권리
(=인간․사회․정부가 반드시 지켜
야할 의무)
빈곤․질병․문맹․
무지와 봉건적인 사
고․관습․제도
국민(people)으
로서 삶의 질
민주․법치․참정(민권신장)
→ 국민으로서 반드시 가져야할 권리
(= 정부가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
부패한 정부․관리나
불합리한 제도
공민(citizen)으
로서 삶의 질
윤리․도덕․질서(시민의식함양)
→ 국민으로서 반드시 가져야할 권리
(=공민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의무)
사회의 비윤리․부도
덕․무질서
민족(nation)으
로서 삶의 질
독립․화해․통일(민족자주․공존)
→ 민족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의무
제국주의 국가나 민족
분열․분단고착세력
이러한 기준을 통하여 원불교를 살펴볼 때7) 원불교야말로 한국의
‘근대성’을 자각한 종교라 할 수 있다. 원불교의 교리와 교사의 곳곳
에서 위에 제시한 근대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있어서 근대적 경험이 일제에 의한 식민지적 상황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듯이 일본의 종교정책 또한 근대 민족종교의
전개과정과 그 성격에 있어서 질곡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일제는
민족종교의 성격이 강한 단군계․동학계․증산계의 경우 많은 탄압


6) 한규무, 「개화기 종교운동의 근대화」, 동양학 37권(단국대 동양학연구
소), 2005, 160쪽.
7) 많은 신종교 가운데 ‘인간의로서 삶의 질’, ‘공민으로서 삶의 질’을 향상하는
부분에 있어서 뚜렷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민족으로서
삶의 질’ 부분에 있어서는 적극적인 입장이기 보다는 온건한 노선을 취해
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90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을 가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일제에 저항하거나 동조 내
지 적응하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특히 신도, 유교, 불교, 기독교를
제외한 종교에 대하여 유사종교 내지 사이비종교로 몰아 강력한 탄
압이 실시되던 상황 속에서 많은 민족종교가 불교적인 외피를 쓰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원불교의 경우 ‘불법연구회’로 출현하게 되
는 이유 또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근대성
과 보편성의 가치가 친일성, 반민족성 등의 문제를 안고 출발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한계가 내재하고 있으며, 이 시기 원불교의 모습
은 관점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신종교는 거의 반봉건의 가치를 내걸고
있으며, 따라서 근대성을 표방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원불교의
여타의 신종교에 비하여 근대성에 대한 분명한 자각과 대안을 제시하
고 있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몇 가지 예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가 출현하면서 불법의 시대화ㆍ생
활화ㆍ대중화를 선언한 점을 들 수 있다. 당시 불교는 억불정책의
상황 속에서 침체되어 불교본연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
한 상황 속에서 불법연구회의 출현은 근대 개혁불교의 한 모습을 우
리 사회에 제시하였다. 소태산 박중빈은 불교혁신론 을 통하여 “외
방의 불교를 우리나라의 불교로, 과거의 불교를 현재와 미래의 불교


8) 종교란 ‘민족적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가’, ‘세계 내지 우주 보편의 가치가
우선해야 하는 가’ 하는 문제가 등장한다. 즉 불교와 기독교 등 소위 보편
종교들의 모습은 민족적 가치보다 인류보편적 가치를 우선하고 있는 모습
을 보이고 있어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다
음으로 식민지적 상황 속에서 종교가 민족적 가치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또다른 관점의 차이를 잉태할 수밖에 없다. 1919년
3.1 운동이 한참 일어날 때 소태산 박중빈은 당시 그의 제자 9명에게 사
무여한의 자세로서 산에 가서 기도할 것을 명하고 있으며, 이것이 원불교
성립의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소태산의 입장과 태도는 원
불교의 성격을 이해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91


로, 산중 승려 몇몇 사람의 불교를 일반 대중의 불교로 혁신한다”고
하였으며, 또 “앞으로의 불교는 세간 출세간을 나누어 볼 때 세간생
활에 필요한 인생의 요도를 더 밝혀야 하며, 모든 교리를 운전하는
제도와 방편도 시대와 인심에 따라 쇄신해야 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근대불교로의 혁신의 모습은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佛法是生活
生活是佛法)이라는 원불교의 표어9) 속에서 단적으로 표현되고 있
다. 즉 원불교는 구체적인 생활을 떠나 불법을 실현하려 한 것이 아
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불법을 찾고, 다시 불법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하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성(聖)의 속화(俗化) 현상
이며, 다시 속(俗)의 성화(聖化)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둘째, 불법을 주체로 하였지만 유불도 삼교융합적인 입장을 취하
였으며, 나아가 기독교 사상까지 포용하는 통종교의 입장을 취한 점
이다.10) 나의 종교만이 최고의 진리이고 다른 종교에 대하여 배타적
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진리가 있으며 나아가
궁극적인 진리는 서로 하나로 통한다고 원불교는 해석하였다. 이러
한 원불교의 입장은 종교다원주의에 입각한 관점으로 이는 근대의
종교가 나아가야할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9) 正典 5쪽. 大宗經 序品, 15, 18쪽. 敎義品. 833쪽.
10) ‘원불교는 불교인가 아닌가?’ 하는 논의는 원불교 내부와 외부에 있어 끊이
지 않고 제기되는 문제이다. 이는 원불교의 정체성 문제에 관련되어 중요
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원불교와 비슷하게 불교와 신종교의 성격을 둘 다
간직하고 있는 진각종과 천태종의 경우 해방 이후 불교종단에 편입된 반면
원불교의 경우 독자적이 종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한 때 원불교의 성
장세가 두드러지다가 최근 들어 진각종과 천태종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어서 이러한 점이 더욱 예민한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통불교’와
‘통종교’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원불교의 모습이며, 통종교라 함은
구체적으로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 동학, 증산교의 6대 종교의 가치를
통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9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이러한 원불교의 입장은 적극적으로 종교 간의 윤리를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는데,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의 삼동윤리(三同
倫理)가 그것이다.11) 삼동윤리란 동원도리(同源道理), 동기연계
(同氣連繫), 동척사업(同拓事業)을 말한다. 동원도리란 우주만유
의 근본된 이치는 하나로서 서로 하나로 기운이 통함을 말한다. 동
기연계란 모든 존재가 다 생생한 하나의 기운으로 통한다는 것을 말
한다. 동척사업(同拓事業)이란 어느 지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
목적은 하나라는 생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삼동윤
리는 모든 종교가 하나로 상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잘 제시하고 있
는 것이다.
셋째, 과학과 물질에 대한 긍정이다. 전통적인 종교에 있어서 물
질은 배격하고 극복하여 할 과제였다. 원불교가 탄생하던 시기만 하
여도 과학 또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소태산 박중빈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를 내어걸고 과학과
도덕을 일치시키는 이념을 제시하였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정신 도
덕을 축으로 하여 물질과 과학을 활용하자는 의미이다. 정신 도덕을
축으로 한다는 점에 있어서 서양의 근대정신과 차별성이 보이며, 과
학과 물질을 긍정한 측면에 있어서 전통적인 정신과 차별성이 보이
는 것이다. 과학과 물질을 긍정한 원불교의 입장은 분명 근대성의
표현이라 할 것이다.
넷째, 차별제도를 철폐한 것이다. 신분차별 철폐와 남녀차별을 철
폐하여 평등한 사회를 이루어 나가는 것은 근대성의 중요한 요소이
다. 조선 유교사회에 있어서 가장 큰 사회문제는 신분제도를 통한
차별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원불교정전 에서는 <과거 불합리한 차
별제도의 조목>을 통하여 이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즉 “① 班


11) 鼎山宗師法語, 道運編, 34. 35. 36. 37장.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93


常의 차별이요 ② 嫡庶의 차별이요 ③ 老少의 차별이요 ④ 男女의
차별이요 ⑤ 種族의 차별이니라.”12)라고 하여 이에 대한 철폐를 강
력하게 주장하고 이를 실천하였다.
예를 들어 남녀평등의 경우를 살펴보면, 여자 성직자가 남자와 동
등하게 지위와 역할이 지워지고 있다. 심지어 최고 의결기관인 수위
단원의 남녀 비율이 동등하다. 이러한 점은 남녀평등과 신분철폐 아
동존중 등의 사회적 차별의 극복문제에 대하여 원불교가 철저한 의
식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섯째, 사회 의례의 개선이다. 즉 기존의 예법을 개혁하여 시대
에 맞는 새로운 예법을 제정한 것이다. 양반중심의 질서가 아닌 모
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적 질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예법이 바뀌
어야 한다. 유교의 문화가 깊이 지배하던 당시 사회에서 새로운 예
법을 제정하고 이를 실행한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 있는 일이며, 새
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근대로 나아가려는 원불교
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4. 원불교의 변혁사상
변혁사상이란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출현한
다. 일제시대와 해방 후 분단시대 그리고 박정희의 유신독재정권 그
리고 광주의 민중들을 총칼로 짓밟고 등장한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
까지 우리사회는 변혁사상을 필요로 했다. 변혁사상에 의하여 부조
리한 현실에 대항하였으며, 저항과 투쟁의 구체적인 실천을 통하여


12) 正典 제2 교의편, 원불교전서 , 42쪽.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9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왔다.
변혁사상은 그 변혁의 대상을 놓고 구분해 보면 사회변혁과 인간
변혁으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사회변혁과 인간변혁은 서로 유기적으
로 연결되어 있어서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여 진행할 수는 없다. 그
러나 무엇을 중심으로 하며, 우선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봄으로
서 그 성격을 구분할 수 있다. 민중종교의 경우 동학과 대종교 등이
사회변혁을 중시했다면, 증산교와 원불교는 인간변혁을 중시했다고
할 수 있다.
원불교의 변혁사상은 사상적 배경은 크게 동학과 정역, 증산교 등
당시 민중종교의 후천개벽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시대는 선천
과 후천의 변역시기에 처하여 있으며, 선천의 세계는 상극적 질서가
중심이었다면 새로운 후천의 세계는 상생적 질서가 중심이라는 신념
을 가지고 있었다. 소태산 박중빈은 이러한 인류세계의 문명의 대전
환을 전제하고서, 새롭게 도래할 후천세계의 주인공으로 살아나가는
인간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그의 관심을 집중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상황 속에서도 도덕적이고 지성을
갖춘 인간을 만드는 훈련을 교화의 중심에 놓았던 것이다.
원불교의 변혁사상의 성격을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강자 약자의
진화상 요법’과 ‘병든사회와 그 치료법’을 통해서 이다.
먼저 ‘강자 약자의 진화상 요법’13)을 살펴보자.
1. 强․弱의 大旨를 들어 말하면 무슨 일을 물론하고 이기
는 것은 强이요, 지는 것은 弱이라, 강자는 약자로 인하여 강
의 목적을 달하고 약자는 강자로 인하여 강을 얻는 고로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바탕하여 親不親이 있나니라.
2. 강자는 약자에게 강을 베풀 때에 自利利他법을 써서 약
13) 正典 제3 수행편, 최초법어, 원불교전서 , 85-86쪽.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95
자를 강자로 진화시키는 것이 영원한 강자가 되는 길이요, 약
자는 강자를 선도자로 삼고 어떠한 천신만고가 있다 하여도
약자의 자리에서 강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진보하여 가는 것
이 다시없는 강자가 되는 길이니라. 강자가 강자 노릇을 할
때에 어찌하면 이 강이 영원한 강이 되고 어찌하면 이 강이
변하여 약이 되는 것인지 생각 없이 다만 자리타해에만 그치
고 보면 아무리 강자라도 약자가 되고 마는 것이요, 약자는
강자되기 전에 어찌하면 약자가 변하여 강자가 되고 어찌하면
강자가 변하여 약자가 되는 것인지 생각 없이 다만 강자를 대
항하기로만 하고 약자가 강자로 진화하는 이치<理>를 찾지 못
한다면 또한 영원한 약자가 되고 말 것이니라.
다음으로 ‘병든사회와 그 치료법’14)을 살펴보자.
사람도 병이 들어 낫지 못하면 불구자가 되든지 혹은 폐인
이 되든지 혹은 죽기까지도 하는 것과 같이, 한 사회도 병이
들었으나 그 지도자가 병든 줄을 알지 못한다든지 설사 안다
할지라도 치료의 성의가 없다든지 하여 그 시일이 오래되고
보면 그 사회는 불완전한 사회가 될 것이며, 혹은 부패한 사
회가 될 수도 있으며, 혹은 파멸의 사회가 될 수도 있나니, 한
사회가 병들어가는 증거를 대강 말하자면 각자가 서로 자기
잘못은 알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하는 것만 많이 드러내
는 것이며, 또는 부정당한 의뢰생활을 하는 것이며, 또는 지도
받을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를 잘 받지 아니하는 것이며, 또는
지도할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로써 교화할 줄을 모르는 것이며,
또는 착한 사람은 찬성하고 악한 사람은 불쌍히 여기며, 이로
운 것은 저 사람에게 주고 해로운 것은 내가 가지며, 편안한
14) 正典 제3 수행편, 원불교전서 , 88-89쪽.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9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것은 저 사람에게 주고 괴로운 것은 내가 가지는 등의 공익심
이 없는 연고이니, 이 병을 치료하기로 하면 자기의 잘못을
항상 조사할 것이며, 부정당한 의뢰생활을 하지 말 것이며, 지
도받을 자리에서 정당한 지도를 잘 받을 것이며, 지도할 자리
에서 정당한 지도로써 교화를 잘 할 것이며, 自利주의를 버리
고 이타주의로 나아가면 그 치료가 잘 될 것이며 따라서 그
병이 완쾌되는 동시에 건전하고 완전한 사회가 될 것이니라.
위의 두 내용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즉 대립되어 있는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강자와 약자가 서로를 잘못된 점을 반
성하고, 서로 손을 잡고 도와서 강자와 약자가 같이 진화하자는 것
이다. 이는 ‘간디의 무저항주의’나 기독교에서 “오른 쪽 빰을 때리면
왼 쪽 뺨도 마주 내 주어라”하는 가르침을 연상시킨다. 대립되어 있
는 강자와 약자가 서로 ‘자리이타’의 정신으로 돌아감으로서 사람의
병과 사회적 병이 함께 치유될 수 있다는 진단을 하고 있다.
이러한 원불교의 변혁사상은 사회적인 불의에 대하여 직접적인 항
거를 강요하지 않는 대신 개인적 신앙과 도덕적 훈련을 통하여 이상
적인 인간이 됨으로서 이상적인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는 신념이 내
재되어 있다. 이는 <개교의 동기>15)에 잘 나타나 있다.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 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생활
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 고해가 없
으리요.
15) 正典 제1 총서편, 원불교전서 , 21쪽.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97
그러므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아, 파란 고해
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변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
니라.
원불교의 변혁의 구체적인 방법은 위에서 제시하고 있는 바와 같
이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는”것이다. 일제 식민시대 속에서도
소태산 박중빈은 이상적인 인간과 이상적 사회의 모델을 제시하고
그를 위하여 구체적인 훈련을 통하여 자신의 힘을 키우는 길을 제시
하였으며, 반봉건 반외세의 직접적인 정치 사회적인 저항은 강요하
지 않았다.
원불교가 제시한 변혁의 방법은 동학과 대종교가 일제에 대하여
직접적인 저항과 투쟁을 실천한 모습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어쩌면
소태산은 정치가 담당해야 될 개혁과 종교가 담당해야 할 개혁의 영
역이 다르다는 자각을 하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종교에 있어
서 변혁이란 직접적으로 사회의 모순에 대하여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끊임없이 강하고 지성을 갖추며
도덕성을 완비한 인간을 양성하는 길이라고 소태산은 생각하였다고
보여 진다.
원불교의 변혁사상이 구체적으로 교리 속에 표출된 것은 사요(四
要)라 할 수 있다. ‘공도자숭배․타자녀교육․지자본위․자력양성’의
사요는 원불교의 신앙문 속에 나타나 있다. 즉 ‘일원상’으로 표상되
어진 진리의 모습은 사은(四恩)의 형태를 띠고서 나타난다. 천지․부
모․동포․법률의 사은이란 신앙의 구체적인 대상이다. 따라서 사요
는 사은 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불공(佛供)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사요란 불공의 대상을 관념화하거나 그 방법을 기도나 제사의 형식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9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
자체가 불공이라는 혁신적인 사고를 보여주고 있다. 사은의 신앙이
사요를 통하여 ‘처처불상 사사불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원
불교의 변혁은 신앙의 구체적인 실천의 방법으로 제시되어 있음을
살필 수 있다.
5. 결론: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의 의의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이란 주제를 받아들고 문득 떠오른 것
은 ‘부조리’란 말이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까뮈의 ‘부조리’란 말이 왜
그토록 강하게 필자의 뇌리를 스치고 간 것일까? 아마도 한국사회에
있어 ‘근대’라는 시기가 가지고 있는 가치의 혼돈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의 신종교(민족종교)는 구한말과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이후
한동안 민중들의 가장 중요한 의지처가 되었으며, 한국 사회를 이끌
어 가는 중심동력의 하나였다. 그러나 근 현대사의 전개과정에 있어
서 어느 순간부터 주변부의 힘으로 밀려나 있다. 거기에는 많은 이
유가 있을 수 있다. 신종교에서 제시한 많은 이념과 사상 속에는 철
학적․종교적으로 가치 있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져 있었지만, 그러
한 가치들은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로 전락했다. 그리고 우리 정신의
중심부엔 서구철학이 자리하게 되었다. 어쨌든 한국 근대의 철학과
사상의 한 중심축을 담당한 신종교의 사상이 그 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가장 성공적으로 우리사회에 정
착한 원불교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민족내부의 봉건이라는 적과 민족 외부의 제국주의 세력의 야욕은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99
근대화의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극복해야할 대상이었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원불교의 선택은 ‘반봉건 친개방’ 정
책을 취한 개화파의 입장과 동일한 노선을 띠었다고 평가할 수 있
다. 그러나 원불교는 개화파가 취했던 외세의 도움을 통한 방식과는
달리 철저하게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교육과 자력에 비중을 두었다
는 점에서 원불교만의 독자적인 특징이 나타난다.
‘근대성’과 ‘변혁’ 또는 ‘근대성’과 ‘민족’이라는 가치는 전혀 대립적
인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의 근대사에서 현실적으로 대립
되어 나타났다. 해방이후 분단의 역사에서 남한의 지배층은 분단세
력과 군부독제세력, 매판자본 세력 등으로 형성되었고, 대부분의 신
종교들은 이에 동조하거나 무관심 속에서 살아왔다. ‘근대성’이란 좋
은 의미이지만,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일제와 해방 이후 미국의 힘
에 의하여 강요되었으며 친일 혹은 서구화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었
다. 일제시대 민족탄압의 일환으로 일제에 의하여 자행된 민족종교
에 대한 탄압은 해방 이후 서구적 가치에 경도된 이들 지배층에게
전이되었다. 민중종교는 봉건․미신․사이비 등으로 비추어졌으며,
그로 인하여 세력이 위축된 측면이 강하다.
‘민중’과 ‘민족’을 중시한 변혁의 움직임은 민주정부가 들어서기
이전까지 우리 사회에 있어서 저항과 투쟁 등의 자기 희생적 실천을
통하여 진행되어 왔다. 극명하게 사회적인 모순이 드러날 때 ‘모순’
‘상극’의 질서를 해결하는 1차적인 방식은 저항과 투쟁일 것이다. 그
리고 2차적인 방식은 원불교적인 방식일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개인과 관점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다.
이제 우리 민족은 ‘분단시대를 넘어 통일의 시대’로 가고 있다. 새
로운 시대적 가치가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소태산 박
중빈의 예언대로 ‘물질이 개벽’되었다. ‘돈’이란 한마디가 많은 가치를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100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지배할 만큼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정말로 ‘정신을 개벽’해
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정신세력을 확장하여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는’ 모델과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의 모습이 원불교 교단에 나
타나야 할 때이다.
과거는 현재를 규정하고, 현재는 미래를 규정한다. 그러한 의미에
서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평가가 이루
어져야 할 것이다. 원불교의 ‘처처불상 사사불공’ 사상이야말로 신앙
의 극치이며, 변혁사상의 극치라 생각한다. 이러한 사상이 더욱 사
회적인 공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과 진
지하고 정직한 실천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01
<국문초록>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김방룡
본고는 근대의 대표적인 민족종교 중의 하나인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을 다룬 논문이다. 먼저 한국의 근대성과 변혁사상의 담론을
살펴보고 민족종교의 출현기에 있어서 근대성과 변혁사상이 지닌 의
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탈근대의 맥락에서
‘근대성’이란 의미를 살펴야 하며, 또한 변혁사상이란 변혁의 대상과
변혁의 주체 그리고 변혁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함을 강조하다.
근대성에 있어서 원불교는 여타의 민족종교 보다 근대적 종교로서
의 구체적인 모습을 띠었다. 특히 교리, 시대인식, 포교방법과 의례
등의 모습에서 원불교의 근대적 성격이 두드러짐을 밝혔다. 원불교
의 변혁사상은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를 통
하여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사회의 변혁사상을 표출하고 있다. 그리
고 구체적으로 ‘강자 약자의 진화상 요법’과 ‘병든사회와 그 치료법’
등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음을 밝혔다.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은 식민지와 분단의 상황에 있어서 직
접적인 저항과 투쟁의 방식이 아닌 내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종교적
체험과 실천을 강조하여 왔다. 이러한 원불교의 방식은 한국의 근대
민족종교로서 성공한 하나의 모델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원불교는 다른 민족종교와 함께 근대성인
가치지향이 탈근대적인 가치체계에 의하여 비판을 받고 있으며, 변
혁 또한 시대에 맞추어 적극적인 방식으로 전개하지 못함으로 인하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10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여 일정한 한계를 노정시키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주제어
원불교, 근대성, 개혁사상, 신종교, 민족종교, 동학, 대종교, 소태산, 박중
빈, 물질개벽, 정신개벽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03
<Abstract>
The modernity and revolution-thought
in Won-Buddhism
Kim, Bang-ryong
I dealt with the modernity and the revolution-thought in
Won-Buddhism in this paper. Won-Buddhism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national religions. First of all, I studied on the
modernity of Korea and the discussions of revolution-thought.
And I considered the meaning of them in the period of
appearance of national religions. It involved consideration from
the interrelationships of premodernity, modernity and demodernity.
The revolution-thought should have stressed on the subject, the
object and the character of revolution.
In the angle of modernity, Won-Buddhism showed concrete
looks as a modern religion than any other national religions.
Especially there were modern appearance of Won-Buddhism in
its doctrine, its spirit of the times, its method of propagandism
and ceremony.
Its revolution-thought was appearanced directly in its slogan,
‘As material civilization develops, cultivate spiritual civilization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10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accordingly’. And that thought was showed in ‘principles by which
the inferior and superior can progress’ and ‘the diseases of society
and the treatments’. The modernity and revolution-thought of
Won-Buddhism was emphasized on the self-sacrificing religious
experience and practice not on the method of direct resistance and
fighting in the state of colony and division. This method of
Won-Buddhism had become an successful model in Korean
modern national religion.
Nevertheless nowadays the modern value system of Won-Buddhism
and other national religions are criticized by the demodern
value system. I think that it had partly limitations by unfolding
passive resistance in that times.
Key-words
Won-Buddhism, revolution-thought, modernity, new religion, national
religion, Donghak, Daejonggyo, Sotaesan, Parkjungbin, development of
material civilization, development of spiritual civilization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원불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05
<참고문헌>
원불교전서
원불교 교고총간 (영인본), 원불교출판사, 1994.
정산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편, 전통사상의 현대화와 정산
종사 , 원불교출판사, 2000.
정산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편, 평화통일과 정산종사의 건
국론 , 원불교출판사, 2000.
류병덕, 원불교사상의 전개 , 교문사, 1990.
류병덕, 탈종교시대의 종교 , 시인사, 1982
송천은, 열린시대의 종교사상 , 원광대학교출판국, 1992.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원, 동아시아 불교사 속의 한국불교 , 2004.
한민족철학자대회조직위원회, 동아시아시대, 공존과 평화 , 한민
족철학자대회, 2005.
박맹수, 「원불교 민족운동에 관한 一硏究」, 한국근세사에서 본
원불교 , 원화, 1991.
신순철 , 「1918년 길용리 방언공사의 간척공사 연구」, 한국근세
사에서 본 원불교 , 원화, 1991.
김낙필, 「원불교의 유교수용에 관한 연구」, 한국근세사에서 본
원불교 , 원화, 1991.
안동준, 「소태산 일원상의 도덕적 고찰」, 한국근세사에서 본 원
불교 , 원화, 1991.
전명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교육사상과 그 전개」, 한국근
세사에서 본 원불교 , 원화, 1991.
심대섭, 「원불교 四要의 기본 성격과 현대적 조명」, (한국원불교학
회, 원불교학 제 3집), 1998.
이은봉, 「미래종교에 대한 원불교적 대응」, (한국원불교학회, 원
불교학 제 4집), 1999.
[Provider:earticle] Download by IP 114.207.181.34 at Tuesday, April 9, 2019 7:07 AM
www.earticle.net
10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박광수, 「세계보편윤리와 정산종사의 삼동윤리」, (한국원불교학회,
원불교학 제 4집), 1999.
한규무, 「개화기 종교운동의 근대화」, 동양학 37권(단국대 동양
학연구소), 2005.
김재영, 「보천교 天子登極說 연구」, (한국종교사학회, 한국종교사
연구 제9집), 2001.
안후상, 「불교총본산 조계사 창건고」, (보조사상연구원, 보조사상
15집), 2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