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근대성과 변혁사상
이 글은 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을 살펴보고자한 것이
다. 이러한 문제를 고찰하기 위한 방법이나 소재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나, 여기에서는 중국 태평천국의 배상제교,1) 한국의 동학, 일본
의 천리교만을 대상으로 하고자 한다.2)
이 논문에서는 종교 교단의 ‘자아’를 그 교단이 섬기는 최고신으로
1) 배상제교는 상제교라고 불리기도 한데, 여기서는 배상제교라고 칭한다. 예를
들면 최진규, 「태평천국 상제회와 전통종교」( 전남사학 18, 2002)를 참
조. 배상제교 교인들의 모임은 배상제회, 또는 상제회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데 여기서는 배상제회라고 부름.
2) 동학의 ‘한울님’을 이 글에서는 ‘하늘님’으로 부른다. ‘한울님’하면 현재 천도
교 교인들의 신앙대상과 일치되어 과거 동학 교단의 최고신에 대한 인식을
이해하는데 다소 방해를 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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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보고 논의를 진행시킨다. 종교 교단은 영어로 ‘body’라는 단어를 쓰
기도 한다. 그 ‘몸체’에 대응하여 ‘정신’에 해당하는 것이 ‘교리’라고
한다면, 한 종교 단체의 교리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신관’
이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은 최고신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관념은 한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자아’
처럼 긴 시간을 통해 다양한 경험들이 서로 중첩되면서 형성되는 것
으로 순식간에 또는 어느 한 가지 요소만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
다. 종교 교단의 최고신도 관련 당사자들의 다양한 인식들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 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인
식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근대3) 종교의 ‘자아’, 즉 최고신에 대한 인
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제1장), 그러한 자
아와 대립하거나 갈등을 일으킨 타자는 어떠한 존재였고 또 어떠한
갈등관계에 있었는지,(제2장) 또 이들 교단은 외부의 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최종적으로는 변혁사상으로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제3장) 고찰해보고자 한다.
‘근대성’과 ‘변혁사상’에 대해서 언급해두고자 한다. 근대, 근대성의
의미와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서양’의 영향이다. 그래서 천
리교, 동학, 배상제회에서 근대성을 찾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한다
면 그들 종교가 가지고 있는 서양의 ‘근대적인 모습’4)을 찾는 것이
다.5)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보통 근대종교의 주요한 요소로 ‘정교분
3) 여기서 ‘근대’란 한중일 세 나라 전체를 염두에 둔다면 뚜렷한 시점을 잡기는
어려우나, 대략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엽에 이르는 기간을 말한다.
4) 윤석산, 「동학가사에 나타난 근대의식 연구」, 한국학논집 25, 1994, 110쪽.
5) ‘근대성’이란 바로 ‘서양의 근대적 모습’인 것이다. 물론 서양의 근대적인 모
습이 어떤 것인지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현대도 먼 훗날에는 근대에 포함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근대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히 확정될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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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09
리’, ‘신앙의 자유’, ‘교리의 근대화’를 든다.6) 한편 동학의 근대적인
모습은 ‘인간중심의 인간관과 만인 평등주의’,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난 근대적 역사관과 민족주의 정신’,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개혁
과 각성의 정신’ 등이 지적된다.7)
사실 천리교, 동학, 배상제회는 그 조직이 태어난 시기로 볼 때,
어쩔 수 없이 ‘근대적 성격’, 즉 근대성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
다. 그러나 시대적, 사회적인 한계 때문에 이들 교단은 전근대성, 반
근대성도 동시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혹은 ‘종교’자체가 서구의 역사
적 흐름에 비추어 보면 전근대, 즉 중세 시대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배상제회의 회원들이 전개한 우상파괴운동은 반전통적
인 것, 즉 근대적인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
전통적인 것으로 평가된다.8) 그렇기 때문에 ‘근대성’ 논의는 자의적
으로 될 가능성이 많다. 더구나 동아시아의 3종교를 비교하여 ‘근대
성’을 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다소 각
도를 달리하여 근대성의 본질적인 측면에 주의하고자 한다.9) 말하자
면 시대가 새롭다고 하는 관념, 서양에 대한 인식, 그리고 전통적인
6) 사카구치 미츠마사, 「일본의 근대화와 금광대신의 신앙」, 한국종교연구회회
보 , 1994, 70참조. 무라가미 시게요시(村上重良)가 거론한 것임.
7) 윤석산, 「동학가사에 나타난 근대의식 연구」, 97, 103, 104, 110쪽 참조.
8) 김성찬, 「태평천국 종교정책의 실상과 종교이념의 구조」, 명청사연구 15집,
2001, 85쪽 참조.
9) 볼프강 벨쉬는 근대 사유의 주요한 특징으로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작의 열정’
을 든다. 그것은 개혁이나 갱신이 아니며 단순한 부흥도 아니다. 문제는 근본
적인 시작, 최초의 토대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하는 정신이라고 한다.
(박연수옮김, 우리의 포스트 모던적 모던 , 책세상, 2001, 186-187쪽 참
조) 또는 주체가 객체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파악하여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을
근대성의 핵심내용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이진구, 「한국개신교에 나타난 ‘근
대성’」,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식 , 2004) 16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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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질서와의 갈등에 주목한다. 이러한 점들에 대해서 세 종교의 신관
(자아), 이러한 자아에 대응한 타자, 자아의 타자에 대한 갈등의 산
물로서의 변혁사상 등을 다룬다.
2. 자아의 형성
1) 천리교의 자아-천리왕명의 형성
천리교(天理敎)가 종교단체로서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1853년 이후다.10) 1853년에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 1798-1987)
는 자기의 막내딸을 오사카 거리로 보내 처음으로 ‘천리왕명(텐리오
노 미코도, 天理王命)’이라고 하는 신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외치도
록 하였다. 그 다음해에 그는 최초의 종교적인 의례인 ‘순산 허락’
(오비야 유르시)을 임신한 딸에게 베풀었다.11) 신도가 처음 몰려들
기 시작한 것은 이 보다 8년이 더 지난 뒤부터였다.
당시 교조 미키는 ‘출산의 신’, ‘살아있는 신’등으로 알려져 있었
다.12) 출산뿐만 아니라 눈병, 발병에 걸린 사람들, 심지어는 정신병
에 걸린 사람들도 미키를 찾았다.13) 나카야마 미키는 이들의 적극적
10) 천리교 교단이나 일반 학계에서는 천리교의 시작을 1838년, 즉 교조 나카야마
미키가 신비한 종교체험을 하여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때부터로 본다.(나카
야마 미키의 종교체험에 대해서는 임태홍, 「다중인격의 측면에서 본 나카야마
미키의 신비체험」, 종교연구 37, 2004 겨울호 참조. 천리교측 경전자료로는
天理敎敎會本部, 本稿天理敎敎祖傳, 1-9쪽 참조.)
11) 임태홍, 「종교적 상징을 통해서 본 나카야마 미키의 사상」, 신종교연구
11, 2004, 313쪽 참조.
12) 天理敎敎會本部, 本稿天理敎敎祖傳, 天理敎道友社, 1956 / 2000,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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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11
인 호응을 기반으로 교단의 틀을 잡아갔다.
천리교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천리왕명(天理王命, 텐리오노
미고토)14)’이라고 하는 신은 처음부터 분명한 모습과 성격을 가진
신은 아니었다. 천리왕명은 ‘원래의 신’, ‘진실한 신’이라고 천리교 경
전 맨 처음에 소개되어 있다. 유일신이며 남녀 혼성적인 신이고 절
대최고의 신이다. 모든 인간을 낳고 자연을 만들어 낸 신이기도 하
다. 그러나 사실 나카야마 미키가 종교체험 초기에 경험한 신은 다
신교적인 ‘신들’이었다.15) 일본의 민간에서 흔히 믿는 신들, 예를 들
면 뱀의 모습을 한 신, 터주신 등 다양한 모습이었다. 이외에도 10
가지 이상의 민간 신들, ‘하늘의 장군’ 등도 나타났다.16) 현재 천리
교 교전에 묘사된 유일 신적인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1868년에 일어난 명치유신 직후부터 나카야마 미키는, 나중에 천
리교 경전이 된 친필(오후데사키) 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1875
년경까지 집필이 계속된 이 경전은 미키가 자신의 의지로 집필한 것
이 아니라 신의 의사에 완전히 압도당하여 무의식적으로 집필하였다
고 한다.17) 이 당시에 등장한 신의 이름으로 ‘어버이신(親神)’, ‘월
13) 道友社편, ひながた紀行-天理敎敎祖傳細見, 天理敎道友社, 1993
/ 1999, 270쪽의 표 참조.
14) ‘천리왕명’은 불교의 ‘전륜왕(轉輪王)’에서 유래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본
말로는 ‘덴린오’라고 하는 데 이 말이 ‘덴리오(天理王)’로 변하였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高木宏夫, 「宗敎敎團の成立過程-天理敎の場合-」, 東
洋文化硏究所紀要6, 1954, 289쪽.)
15) 이하 천리교의 초기 신관에 대해서는 임태홍, 「민간신앙의 측면에서 본 일
본 천리교 교조의 신관-나카야마 미키의 초기 신관을 중심으로」( 역사민
속학 16, 2003)을 참조.
16) 임태홍, 「민간신앙의 측면에서 본 일본 천리교 교조의 신관」, 370-376쪽
참조.
17) 天理敎敎會本部, 本稿天理敎敎祖傳逸話篇, 天理敎道友社, 1976 / 1997,
30-31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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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일신(月日神)’등이 있다. 천리왕명은 이렇듯, 미키가 종교체험을 통
해서 경험한 여러 신들과 경전 집필 중에 경험한 많은 신이 섞여져
복합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천리왕명은 일본인의 전통적인 신관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성의 측면에서 보면 전근대적인 성격이
많다. 다만 차츰차츰 유일신적인 성격이 강조된 점은 서양 종교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8) 이점을 근대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배상제교의 자아-황상제의 형성
배상제회19)는 홍수전(洪秀全, 1814-1864)과 풍운산(馮雲山,
1822-1852)을 중심으로 1846, 7년경에 중국 남부의 광서성(廣
西省)의 험준한 산악지방에서 형성된 신앙집단을 일컫는다. 이들 집
단은 특히 서양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이 단체가 ‘배상제회’로 불리
게 된 것이다.
18) 미키의 신이 “인간을 구제하기 위해서 내려왔다”( 本稿天理敎敎祖傳, 1
쪽)라고 하는 발언이나, 미키 자신과 천리왕명, 그리고 자신의 집터를 함
께, 하나의 성체(聖體)로서 신성시하는 삼위일체의 사상, 유일신 지향의
관념, 아울러 절대자이며 창조자로서의 신관으로부터 이러한 추측이 가능
하다.
19) 앞서 소개한 천리교의 경우는 명치유신 직전(1867년)에 당시 일본 전국의
신사를 관리하고 있던 요시다(吉田) 신사에 인가 신청을 하여 종교단체로
정식적인 인정을 받았다. 동학의 경우는 천리교처럼 정부의 인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최제우가 관가에 처음 붙잡혀갔다 석방된 후(1862년
10월 이후), 반공개적으로 포교활동을 한 바 있다. 이들 두 교단에 비하면
배상제회는 반란을 일으킨 1850년까지 비밀단체적인 성격이 매우 강한 조
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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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13
1843년에 홍수전이 배상제교를 창시하고, 홍수전으로부터 포교를
받은 풍운산이 1845년에 배상제회 결사를 조직해나가기 시작했
다.20) 1843년은 홍수전이 과거시험을 네 번째 낙방하고, 관리로서
출세하는 것을 포기한 해였다. 이때 홍수전은 우연히 자기 서가에
꽂혀있던 권세양언(勸世良言) 이라는 그리스도교 선전 책자를 읽
었는데, 이 책으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21) 그 깨달음이란
다름 아니고, 자기가 6년 전, 그러니까 1837년에 세 번째 과거시험
에 떨어진 충격으로 40여일간 병상에 누워있었을 때, 비몽사몽간에
경험한 이상한 체험이 바로 그리스도교에서 이야기하는 여호와 하느
님, 즉 상제(上帝)와 만나는 체험이었다는 것이다. 그때 홍수전은
자기가 예수도 만났다는 것을 권세양언 의 기록에 나타난 설명과
계시로 알게 되었다.
배상제교의 교리는 이후에, 광주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광서
성에서의 포교활동과 그곳에서의 배상제회 형성(1844년경), 광주의
한 교회에서 경험한 기독교 교리 공부(1847년)와 우상파괴운동
(1847년)등의 경험을 통해서 차츰차츰 형성되어갔다.
초기 배상제회에서 홍수전은 ‘홍선생’으로 불렸다. 실질적인 관리
자는 친구인 풍운산이었는데, 홍수전은 그 배상제회의 교조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었다.
배상제회의 지도자들은 1850년 여름에 회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
려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22) 태평천국을 건설하고 나서 배상
20) 고지마 신지 지음, 최진규 옮김, 유토피아를 꿈꾼 태평천국의 지도자-홍
수전 , 고려원, 1995, 51-52, 77쪽 참조.
21) 홍수전의 신비체험에 관한 기록은 주로 T. Hamberg의 The Visions of
Hong Siu Tsheun and Origin of the Kwang si Insurrection
(Hong Kong: The China Mail Press, 1854)에 근거한 것이다. 이
하 홍수전의 종교체험에 대해서는 모두 이 책(pp.9-13)에서 인용한 것으
로 주석표시는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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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제회라는 단체는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태평천국 그 자체가
배상제회였기 때문이다. 이후 태평천국은 청나라에 대항하여 정책적
으로 태평천국 국민들에게 선전과 교육활동을 강화하였다. 특히 종
교교육이 강화되었는데 중국어로 된 성경책을 출판하거나 홍수전의
신비적인 체험을 소개하는 선전물을 출판하였다. 이들 자료에 나타
난 종교사상이 바로 배상제교의 교리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배상제회의 신관념은 기본적으로 서양 기독교의 신관으로
부터 큰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특히 홍수전은 서양 선교사들
이 제작한 기독교 선전책자 권세양언 을 읽고 자신이 그 이전에 경
험한 신비체험을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 권세양언 이전에 경험한 종교체험 자체도 기본적으
로는 홍수전의 최고신에 대한 이미지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23)
한편 기록에 따라서는 같은 종교체험 내용이라도 전통적인 중국의 신
관에 따라서 소개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태평천일 이라고 하는 자
료가 있는데, 여기에는 최고신이 ‘천부상주황상제(天父上主皇上帝)’
라고 되어있다. 또 자료에 따라서는 최고신을 ‘천부’라고 하기도 하
고 ‘황상제’, ‘상제’등으로 표현된다. 특히 ‘상제’는 중국에서 전통적으
로 고대의 최고신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어온 개념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서양의 유일신 ‘여호와’의 이미지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
다.24)
22) 태평천국 운동에 관해서는 羅爾綱, 太平天國史稿(貴縣羅氏著), 文海出版
社, 1983, 3-8쪽참조.
23) 홍수전의 신비체험에 관해서는 임태홍, 「홍수전의 종교체험과 그 사상-샤
머니즘 측면으로부터의 고찰」, 명청사연구 21, 2004, 222-226쪽참조;
고지마 신지, 유토피아를 꿈꾼 태평천국의 지도자-홍수전 , 41-49쪽
참조.
24) 예를 들면, 태평천국의 상제는 모든 사람이 믿고 숭배해야하는 신으로 묘
사되어 있는데, 중국의 전통적인 상제는 단지 천자만이 제사나 정치적인
의식을 올릴 수 있다. (柳父章, ゴッドは神か上帝か, 2001,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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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15
이상으로 살펴보았듯이 ‘황상제’는 기본적으로 서양종교의 신이지
만 중국적인 모습, 전통 동양적인 신의 모습도 가지고 있었다. 천리
교의 천리왕명과 비교해보자면 더욱 서구화된 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동학의 자아-하늘님의 형성
동학의 신 ‘하늘님’은 최제우의 문장가운데에서는 ‘상제’, ‘천주’,
‘하늘님’, ‘귀신’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각 개념들이 사용되는 문
맥도 다양하여 하늘님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예를 들면, 주문에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라고
하였을 때, ‘천주’는 우리가 모시는 신(侍天主), 조화를 정해주는 신
(造化定), 영원히 잊지 않으면 모든 것을 알게 해주는 신(永世不忘
萬事知)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안심가」에는 다른 모습의 하늘님이 그려져 있다. “한울님 하신말
씀 지각없는 인생들아 삼신산 불사약을 사람마다 볼까보냐. 미련한
이 인생아, 네가 다시 그려내서 그릇 안에 태워놓고 냉수 한잔 떠다
가 물에 타서 마셔 보라”25)라고 하였다. 여기에 묘사된 하늘님은 또
다르다. 사람에게 말을 거는 신의 모습, 불사약을 내려주는 신의 모
습, 민간의 주술적인 방법으로 불사약을 먹게 하는 신의 모습이 그
것이다. 이러한 신의 이미지가 앞서 제시된 주문의 ‘천주’ 개념과 중
230쪽 참조) 왕경성(王慶成)은, 홍수전의 신들은 기독교의 유일신과는
달리 중국 사회의 관념을 반영한 ‘일제론(一帝論)’, 또는 ‘다신적인 일신론’
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王慶成, 「太平天國的一神論-一帝論」( 太平
天國的歷史和思想), 中華書局, 1985, 307쪽.)
25) 안심가, 용담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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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첩되어 동학의 신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최제우는 하나의 문장을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서 새로운 문
장을 써내면, 그 전의 문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문장은
계속적으로 신도들에게 전해졌기 때문에, 신도들이 상상하는 최고신
의 이미지는 계속적으로 새롭게 중첩되면서 변모하는 것이다. 이러
한 과정은 ‘하늘님’이라고 하는 신의 개념이 성장해가는 것이라고 설
명할 수 있다.
최제우 뒤를 이은 2대 교주 최시형과, 3대 교주 손병희도 자신들
의 문장을 경전으로 추가시켰다. 최시형도, 손병희도 나름대로 독자
적인 신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앞 교주의 신관을 전면적으
로 부인하지는 않고 자신의 신관을 덧붙여가는 형식으로 동학의 신
관을 계승하였다. 말하자면 동학의 ‘하늘님’도 앞서 살펴본 천리왕명
과 황상제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해온 것이다.
동학의 하늘님은 또 ‘천주’, ‘상제’ 등의 용어에서 보듯이 당시 북
경을 통해서 전래된 천주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최제우가
1860년 4월에 종교적인 체험을 하였을 때 그가 경험한 신은 인격신
적인 모습을 가진 신이었다. 공중에서 최제우에게 말을 걸고, 최제
우와 대화를 나누는 신이었다. 당시 유교적인 관념에 압도된 지식인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신의 모습이었다. 「포덕문」에 나타난 ‘상제(上
帝)’는 이미 ‘음양이기(陰陽理氣)’로 설명되는 유학적인 ‘상제’가 아
니라 초월신적인 천주교의 ‘상제’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
나 그러한 신의 이미지도 「논학문」 등에 나오는 ‘귀신’의 이미지와
함께 중첩해서 고려해야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예를 들면
「도덕가」에서 최제우는 “천지역시 귀신이오, 귀신역시 음양인줄, 이
같이 몰랐으니”26)라고 하였는데, 그는 여기에서 ‘귀신도 음양’이라고
26) 도덕가, 용담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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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17
정의하였다. 이 구절은 원래 중국에서 전해진 무속의 ‘귀신’을 비판
적으로 설명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하늘님’도 그렇게 설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간단히 천리교, 동학, 배상제회의 최고신이 형성과정을
살펴보았다. 최고신의 개념을 각 교단의 ‘자아’라고 본다면 이러한
자아는 순식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울러 각기 전통적인 신관의 영향을 받기도 하면서 또 서양으로부
터의 영향도 있었다. 서양종교의 신관으로부터 가장 강한 영향을 받
은 ‘자아’는 황상제였다. 그 다음이 동학의 하늘님이고 천리교의 천
리왕명이 상대적으로 그 영향이 작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가 바
로 동아시아에서 근대가 시작된 시점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신관 자체에 서양의 근대성이 내포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미 살펴보았듯이 각 교단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3. 도전으로서의 타자
1) 천리교의 경우-태양신
천리교는 명치유신 직전(1867년)에 요시다 신사에서 종교 활동에
관한 허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요시다 신사는 막부에서 전국에 있
는 대부분의 신사(神社)에 대한 관리권을 이양 받은 신사였다. 천리
교가 허락을 받은 것은 하나의 ‘신사’로서 활동을 인정받은 것이었다.
신 이름도 천리왕명이 아니라 ‘천리왕명신(天理王明神)’이라고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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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하였다.27)
그래서 적어도 형식상으로 천리교는 최고신인 천리왕명을 모시는
단체가 아니라 ‘천리왕명신(天理王明神)’이라는 작은 신을 모시는
신사가 되었다. 최고신 천리왕명은 수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인 ‘천리
왕명신’이 된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 명치유신이 발생하였다.
명치정부는 제정일치의 신도(神道)국가 건설을 목표로 새로운 종
교정책을 의욕적으로 전개해나갔다. 신도와 불교를 분리시키고 전국
의 신사를 조사하여 불교적인 것은 모두 제거하도록 하였다. 신도관
련 업무를 담당하는 신기관(神祇官)을 세워서 종합적이고도 혁신적
인 종교정책을 폈다.
소위 신도 국교주의적인 정책이 전개되었는데 그러한 정책이 지향
하는 바는 고사기 나 일본서기 에 등장하는 신들과 역대 천황의
영령을 받들고 다음에 지방의 유명 신사와 국가의 공신들을 두고 가
장 밑에는 각 마을의 수호신과 조상령에 대한 숭배를 두는 신들의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었다.28) 천황의 조상신인 태양신(天照大神,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을 최고신으로 하고 그 밑에 수많은 잡신을 거
느리는 구도였다.
이에 따라 천리교가 승인장을 제출하여 인가를 받은 바 있는 요시
다(吉田)신사의 권한도 취소되고,(1870년) 천리교의 종교 신앙은
불법적인 것이 되었다. 천리왕명도 불법적인 신이 되었다. 그 다음
해는 민간종교 활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수험도(修驗道)
도 폐지되고,(1872년) 굿이나 주술적인 행사가 모두 금지되었
다.(1873년) 현대적인 의료 활동을 저해하는 민간주술적인 병 치료
나 기도굿을 행하는 자는 모두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1874년) 이
27) 道友社편, ひながた紀行-天理敎敎祖傳細見, 108-110쪽 참조.
28) 야스마루 요시오 지음, 이원범 옮김, 천황제 국가의 성립과 종교변혁 , 소화,
2002년,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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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19
러한 조치는 모두 천리교가 종교단체로서 존립할 수 있는 기반을 빼
앗는 것이었다. 특히 민간주술적인 신앙을 기반으로 한 천리교로서
는 심각한 도전이었다.
1869년부터 1882년 까지 약 13년간에 걸쳐 기록된 천리교 경
전, 즉 나카야마 미키의 친필(오후데사키, お筆先) 은 바로 이러
한 시기에 집필된 것이다. 이 기간 중에 미키는 관헌에 수시로 불려
가거나 구치소에 구금되었다. 친필 은 미키 자신의 기록이 아니라
미키를 사당으로 삼고 내려온 최고신 ‘천리왕명’이 쓴 것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천리왕명은 자신을 ‘가미(神)’, ‘월일(月日)’, ‘어버이(お
や)’라고 칭하면서 인간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이제부터는 신의 힘과 윗사람의 힘을 서로 겨룬다고 생각하라. 아
무리 힘센 자도 있으면 나와 보라. 신의 쪽에서는 갑절의 힘을 낸
다”( 친필 , 3-83,4)29)
“아무리 큰 신사(국가신도), 높은 산(통치자)도 방심 말라. 어느
때 월일(月日)이 뛰어나갈는지 모른다.”( 친필 , 6-92)
통치자들의 노골적인 위협에 대해서 ‘천리왕명’이 일종의 경고를
내린 것이다. 명치정부는 천리교가 하나의 종교단체로 정부의 인가
를 받도록 요구하였다. 미키는 정부의 포섭 정책에 끝까지 버티다
사망하였다. 정부의 인가를 받는다는 것은 천리왕명이 태양신 아마
테라스오미가미의 밑에 위치하는 잡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었다.
미키가 사망한 뒤, 천리교 지도부는 정부에 인가신청을 냈다.
1908년에 천리교는 결국 정부의 인가를 받아 구로즈미교(黑柱敎),
금광교(金光敎) 등과 함께 국가신도 체제에 편입되었다. 천리교는
‘교파신도(敎派神道)’에 포함되고 천리교의 신 천리왕명은 명치정부
29) 친필 은 천리교교회본부편의 친필 (천리문화사, 2000)을 나타내며, 숫
자는 친필 에 표시된 ‘호’와 ‘문구 번호’다. 이하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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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가 원래부터 그리고 있던, 태양신을 중심으로 한 신들의 체계 안에 편
입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최고 유일신적인 지위를 포기한 것이다.30)
이러한 경향은 사실 나카야마 미키가 최초로 종교체험을 하던 당
시의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천리왕명 자체가 최고 유일신으
로서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즉 천리왕명은 또 한편으로 ‘하늘의
장군’이라는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서 ‘장군(將軍)’이란
막부가 천황으로부터 부여받은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란 칭호
의 약칭이다. 장군이란 천황을 대신하여 군사적으로 최고 위치에 있
는 자라는 뜻이지, 최고통치자란 뜻은 아니다. 미키가 스스로를 ‘하
늘의 장군’이라 한 것은 바로 ‘하늘의 천황’이 될 수 없는 한계를 스
스로 인정한 것과 같다. 즉 천리왕명(나카야마 미키)은 최고의 존재
인 태양신(천황)보다는 격이 낮은 것이다.
2) 배상제교의 경우-염라요
홍수전은 반란을 일으키기 4, 5년 전에 가까운 친척인 홍인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신이 세상의 나라들을 구획하고 대양을
만들어 서로 경계를 지어준 것은 마치 아버지가 자기 재산을 아이들
에게 분배해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모두 아버지의 의지를 존중하
여 평화스럽게 자기 재산을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어찌해서 지금
만주인들은 무리하게 중국에 침입하여 자기 형제들로부터 재산을 빼
앗고 있을까?”31)
30) 이 당시 천리교의 경전은 국학자나 신도학자의 손에 의해서, 기기신화(記紀
神話) 등 신도 사상에 맞추어 해석되어 사용되었다. (福嶋信吉, 「이십세기
초엽의 천리교, 그 전통과 근대」, 한국종교연구회회보 , 1995, 93-95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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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21
홍인간의 다른 기록에는 이런 말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중
국에서 태어났다. 18성이나 되는 크기를 가지고 만주 개놈들의 3성
으로부터 억압을 당하고 있다. 5억조의 중국인을 가지고 수백만의 요
괴들로부터 억압을 당하고 있다. 정말로 치욕스럽기 짝이 없다.”32)
전자는 T. Hamberg의 기록이고 후자는 1859년부터 태평천국
의 조정을 책임진 홍인간의 진술을 듣고 태평천국의 관리가 기록한
것이다. 어느 것이나 홍수전이 홍인간에게 비밀스럽게 털어 논 이야
기라고 한다.
홍수전은 본격적으로 포교를 시작하면서 위와 같이, 청나라 만주
족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리고 1848년경에 집필된 글 가운
데는 만주족 황제를 암시하는 ‘염라요(閻羅妖)’나 만주족과 그들을
따르는 중국인들을 지칭하는 ‘요마’를 사용하면서 그들을 타도하자는
주장을 하였다.33)
1848년은 홍수전이 배상제회내부에서 양수청과 소조귀가 홍수전
과 풍운산 보다 더 큰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때였다. 양수청과
소조귀는 친구사이였는데 배상제회가 발생한 광서 산악지방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샤머니즘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배상제회의 회
원들을 장악하였다. 이들의 등장으로 배상제회는 정치적이고 전투적
인 종교단체로 변모하였다.
배상제회의 세력이 커지면서 이들은 공공연히 청나라 만주족을 비
난하고, 1850년경에는 결국 반란을 일으켜 청나라에 대항하였다.
‘황상제’의 군대는 남경에 진격하여 중국의 남부를 제압하고 거기에
31) T. Hamberg, The Visions of Hong Siu Tsheun and Origin
of the Kwang si Insurrection, p.29.
32) 洪仁玕, 英傑歸眞, 臺北 大華印書館, 1968년.
33) 洪秀全, 原道覺世訓, (羅爾綱篇註, 太平天國文選, 上海人文出版社,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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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서 ‘천경(天京)’을 두고 새로운 국가를 세웠다.
황상제는 앞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기본적으로 서양 종교의 신관으로
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황상제가 타자로 인식한 대상은 전통
적인 중국의 악신, 즉 염라왕(홍수전은 염라요라고 부름)이었다.
염라요는 청나라 조정의 천자를 비롯한 통치자들을 상징하는 용어
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이에 대응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대립적이었
다.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태양신의 하위신으로 만족하였던 천리교의
천리왕명하고는 달랐다.
3) 동학의 경우-태극, 천주, 태양신
동학의 하늘님의 경우는 타자는 어떤 존재였을까? 성리학의 태극,
서양의 천주, 일본의 태양신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조선시대의 관료들은 최제우를 처형하기 전에 심문하면서 그의 주
장을 ‘이단의 요사한 설(異端邪說)’로 단정하고 조정의 ‘교화(敎化)
가 밝지 못했음’을 탄식하였다.34) 당시 조선시대의 ‘바른 도(正道)’
는 다름 아닌 유학, 특히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은 궁극적인 존재로
인격신을 섬기지 않는다. 예를 들면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는 궁극
적인 존재인 태극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태극은 단지
천지만물의 리(理)일뿐이다. 천지로 말하자면 천지 가운데 태극이
있다. 만물로 말하자면 만물 가운데 각각 태극이 있는 것이다.”35)
34) 고종실록 원년 2월 29일자, 경상감사의 보고에 대한 대왕대비의 지시.(「고․
순종신록 중 동학관련 기사」, 동학연구 7, 2000.9, 153-154, 원문은 156
쪽 참조).
35) 朱子語類卷一,理氣上(黎靖德편, 소나무, 2001): 太極只是天地萬物
之理. 在天地言, 則天地中有太極. 在萬物言, 則萬物中各有太極. 未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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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23
태극은 모든 사물에 각각 존재하며 만물 가운데 들어있는 어떤 이치
에 불과하다. 인격성을 갖춘 하늘님과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태극’
을 하늘님의 타자로 보기도 어렵고 또 태극과 하늘님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존재한 것도 아니었다. 조정에서 일본 태양신처럼, ‘태극’을
중심으로 모든 신들을 조직하는 정책을 편 것도 아니었다.
다만 최제우는 관리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 성리학적인 사상을
수용하였다. 예를 들면 관리들 앞에서 그는 “하늘의 명을 성이라 하
고(天命之謂性),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며(率性之謂道),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한다.(修道之謂敎), 이 세 가지 단초를 가지고 사
람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데 이것이 어찌 부당 한가”36)
라고 항의하기도 하였다.
그의 「논학문」, 「도덕가」 등에 나타나는 유학적인 개념에서 그러
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천지는 알지만 귀신은 모른다. 귀
신이란 바로 나(하늘님)다.(知天地而無知鬼神, 鬼神者吾也)”(「논
학문」)라고 한 표현에서 그러한 것을 알 수 있다. “천지역시 귀신이
오, 귀신역시 음양”(「도덕가」)이기 때문에 하늘님은 ‘음양(陰陽)’이
라고 할 수 있다.
제2대 교주 최시형은 이러한 노선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하늘
님을 여성의 몸속에서 자라나는 태아와 같은 존재, 즉 인간이 정성
스럽게 키워내야 하는 존재로 해석하였다. 최제우의 ‘시천주(侍天
主)’개념이 ‘양천주(養天主)’개념으로 바뀐 것이다.37) 하늘님은 모
든 사람들이 자기 몸속에 배태하고 있는 존재가 되었다. 최시형은
天地之先, 畢竟是先有此理. 動而生陽, 亦只是理, 靜而生陰, 亦只是
理.
36) 윤석산역주, 道源記書,문덕사 , 1991, 37-38쪽, 원문은 154쪽.
37) 양천주의 개념에 대해서는 윤로빈, 「동학의 세계사상적 의미」, ( 동학사상
과 동학혁명 , 청아출판사, 1984 / 1992, 149-15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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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또 살아 있는 새가 다른 새를 잡아먹는 것을 비유하면서 ‘이천식천
(以天食天,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러
한 최고신의 모습은 주자가 정의하는 태극의 존재방식과 유사하다.
다만 하늘님은 인간이나 살아있는 생명체에 내재하는 존재로 삼라만
상 모든 것에 반드시 내재해 있는 ‘리’와는 다르다. 말하자면 기존의
신관을 유지하면서 유학적인 관념을 수용한 것이다.
한편 하늘님과 천주의 관계를 살펴보자.
유학의 궁극적인 존재인 ‘태극’이 인격성을 결여한 ‘신(神)’이라고
한다면 ‘천주’는 인간적인 성격을 지닌 인격신이다. 최제우가 최초로
종교체험을 하면서 만난 신도 그러한 신이었다. 최제우는 처음에 홍
수전 처럼 서양 종교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다. 이러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것이 그가 하늘님의 한자명칭으로 ‘천주(天主)’를 사용한 것
이다. 당시 천주교는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무자비한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신의 이름인 ‘천주(天主)’
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매일 외우는 주문에도 ‘천주’라는 명칭
이 사용되었다.
최제우는 또 제자들이 “서양의 도와 다른 것이 없습니까?” 하고 묻
자 “양학(洋學, 천주교)은 우리 도와 같은 듯 하나 다름이 있고,
(하늘님께) 비는 것 같으나 실지가 없 느니라. 그러나 운인 즉 하나
요 도인 즉 같으나 이치인 즉 다르니라.”라고 한 것이다.38) 이상과
같은 내용을 정리한다면 최제우의 하늘님과 서양 천주교의 신 ‘천주’
는 어떤 대립적인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태평천국의 황
상제와 염라요의 관계처럼 극한 적인 대립의 관계도 아니고 천리교의
천리왕명과 태양신처럼 상하로 구분될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다.
천도교로 바뀐 시기의 하늘님은 어떠했을까? 1910년, 대한제국이
38) 「논학문」, 동경대전 : 何道以名之 曰天道也 曰與洋道無異者乎 曰洋
學如斯而有異 如呪而無實 然而運則一也 道則同也 理則非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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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25
멸망하고 식민지시대로 들어섰다. 이때는 최고 통치자가 일본 총독으
로 바뀌고 일제는 한반도에 국가신도체제를 도입하기위해서 갖가지
정책을 시행할 때였다. 그 맨 위에는 바로 천황의 태양신이 있었다.
그런데 동학은 특히 일본에 대해서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강한 반감
을 보여준 종교다. 손병희는 이미 일본제국주의가 들어오기 전부터
일본에 가 그곳에서 1905년까지 머물면서 유학생들과 함께 동학의
사상적인 개조작업을 시도하였다. 동학 명칭을 천도교로 바꾸고 동
학의 하늘님 개념도 새롭게 바꾸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하
늘님은 사람 자신이다라고 하는 ‘인내천(人乃天)’의 사상과, 자신이
하늘님이라는 것을 체득하라고 하는 ‘체천(體天)’의 사상이었다.
‘천도교’나 ‘인내천’은 그 문자에서 이미 일본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예를 들면 천도교(天道敎)는 나카야마 미키가 창시한 ‘천리교(天理
敎)’와 그 명칭이 유사하다. ‘사람이 바로 하늘이다’라고 하는 개념은
사람이 바로 신이라는 개념, 즉 일본의 전통적인 ‘생신(生神)’의 신
관념과 유사하다. 일본의 천황을 신으로 섬기는 그런 관념에서도 사
람과 신을 동일시하는 사상을 읽을 수 있다.
하늘님 개념은 동학시대의 하늘님 개념에서 상당히 ‘인간화’되었다.
하늘님은 최제우가 세웠던 하늘님의 인격신적인 모습도 가지고 있으
면서 인간에 내재한 신, 인간이 깨달아가는 신, 나아가 인간 자신이
하늘님이라고 하는 신관이 추가된 것이다. 일본 태양신의 자손으로
살아있는 신이라고 하는 천황은 그 혼자만 신이다. 그러나 천도교
인내천 사상은 모든 사람이 신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동학의 하늘님과 ‘태극’, 하늘님과 ‘천주’에서 그렇듯이 천도교의 하
늘님과 ‘태양신’도 극단적인 대립관계를 피한 형태로 신관의 개념정
립이 이루어 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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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4. 응전으로서의 변혁사상
1) 천리교의 개혁 사상
페리가 일본의 막부를 위협하여 일본이 개국한 것이 1854년이었
다. 그로부터 14년 후인 1868년(미키 71세)에 명치유신이 일어났
다. 나카야마 미키가 친필 을 쓰면서 교리를 세워나간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명치유신은 외국세력의 부단한 압박과 이에 따른 일본
사회 내부의 정치적, 사회적 동요에 따른 것이었다.
일본 민중은 명치유신 전후로 정치, 경제, 사회적인 혼란에 휩싸
이고 전통적인 가치관과 생활 풍습이 부정되는 대변혁을 겪었다. 이
들의 불만이 전국각지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표현되었는데, 미키의
가르침 가운데에는 그러한 불만이 적지 않게 묘사되어 있다.
“ ‘당인(唐人)’이 일본의 땅에 들어와 멋대로 하는 것이 신의 분노,
점점 일본을 도울 계획을 세워 당인을 신의 멋대로 하리라”( 친필 ,
3-57)
“지금까지는 ‘가라(漢, 韓)’가 멋있다고 말하였지만 앞으로는 꺾일
뿐이야”( 친필 , 3-89)
“높은 산(통치자)의 진짜 중심인물은 당인(외국인)이야”( 친필
3-57)
여기서 ‘당인’이나 ‘가라’는 근대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중국인들
또는 한반도 사람들을 가리킨다. 미키는 모든 외국인들, 특히 서양
인들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고대의 경험과 근대의 경험이 중첩된 표
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일본 내부의 통치자를 겨냥한 발언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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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27
“오늘까지는 큰 신사(기성 종교) 높은 산(통치자)은 뽐내며 멋대
로 하고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어버이(천리왕명)가 대신하여 마음대
로 한다. 이것을 배반하면 당장에 갚을 테야”( 친필 , 14-30, 31)
이러한 발언은 비록 신의 말이라고는 하지만,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엄중히 반하는 공격적인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변
혁의 사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혁명사상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사
상이다.
나카야마 미키의 이러한 사상은 ‘천리왕명’이라는 자아의 입장에서
발언된 것이다. 천리왕명은 그 시대를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나카야마 미키가 처음 ‘천리왕명’을 만나게 되는 장면을 살펴보면
“나는 원래의 신, 진실한 신이다. 이 집터에 인연이 있어서 이번에
세상사람 모두를 구제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왔다”39)고 하였다.
미키는 자신을 태초부터 신에 의해서 예정된 사람으로 여겼다. 이
러한 사상은 그가 1882년부터 언급하기 시작한 ‘진흙바다 이야기
(泥海古記)’에 잘 나타나 있다.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40)
천리왕명은 전 인류에게 즐거운 삶을 향한 길을 가르치려고
미키를 현신으로 삼아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것은 최초에 태
어난 자녀수와 같은 연수가 지나면 원래의 집터(미키가 살던
집터)에 데리고 와서 신으로 예배를 받도록 하겠다는 태초의
약속에 의한 것이었다.
미키가 신으로부터 신의 사상으로 명을 받은 것은 1838년 10월
의 종교체험 때였다. 이때는 바로 신이 태초에 약속한 그 시간이었
다. 이러한 것을 보면 미키, 즉 천리왕명이 인식한 그 당시는 지구
39) 天理敎敎會本部, 本稿天理敎敎祖傳, 1쪽.
40) 천리교교회본부, 천리교교전 , 1974 / 1990, 33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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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 맞이하는 획기적인 때이다. 천리왕명
자신이 미키의 몸을 빌려서 직접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이기 때문이
다. 종교지도자 미키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신앙으로서 자각한
것은 바로 이러한 경위에 의한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그는 명치정부가 등장하고, 서양 사람들이 밀려들고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시대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대라
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이 축적되어
미키의 종교체험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렇다면 신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에 천리왕명은
인간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친필 에 묘사된 미키의 문장, 즉 신
의 말을 따르면 다음과 같다.
“세상 사람들의 가슴속을 맑게 하는 이 청소. 신의 빗자루야 단단
히 두고 보라”( 친필 , 3-52)
“이 길은 안이나 세상이나 차별 없다. 온 세상 사람들의 가슴속을
청소하는 거야”( 친필 , 15-47)
가슴속을 청소하는 것이 미키가 제시한 구원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원은 서양 기독교의 심판의 이미지가 강하다. 다만
서양의 심판이 처벌의 의미가 강하다고 한다면 미키의 심판은, 적어
도 경전에 드러난 것으로 본다면 억압과 차별이 없어지는 심판이다.
천리교에서는 매일 수행할 때 “나쁜 것을 쫓아버리고 도와 주소서
천리왕명”이라고 한다. 또 “나쁜 것을 쫓아버리고 구제를 서두른다.
모든 인간을 맑게 한다. 감로대”41)라는 기도를 한다. 여기서 ‘나쁜
것을 쫓아버린다’라는 의미는 도덕적 수양의 의미가 강하나, 주술적
인 측면에서의 각종 나쁜 질병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카야마 미키는 포교 초기에 산모의 출산을 도와주거나 주술적으로
41) 「미가쿠라우타(みがぐらうた)」, 村上重良, みがぐらうた․おふでさ
き, 平凡社, 1977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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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29
각종 병을 치료하는 구제를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키의 신 천리왕명은 기본적으로 일본 전통
적인 신관의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았다. 그리고 천황의 태양신과의
관계에서도 대립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보다는 그 밑에 위치하는 경
향이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천리교의 사회 변혁 사상도 그러한 한
계를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천리교의 변혁사상은 강력
한 사회개혁보다는 종교적 수양운동을 지향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간다 히데오(神田秀雄)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서 천리교 변혁사상
의 한계를 읽을 수 있다.42)
“동학은 구미 열강이나 일본 세력의 침략에 대한 강한 위기
의식을 기반으로, 혁명 운동을 지도하는 이념이 되었다.” “그
러나 그 시기의 일본 민중종교는 혁명적인 사회 운동을 지도
할 수 있는 주체로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민중의
대외적인 위기의식은 제국주의적인 국민국가 건설이나 전쟁에
동원되는 경향이 현저하였다”
천리교의 변혁사상은 현실의 정치체제를 개혁하는 정신으로 발전
되지는 못하고 오히려 현실에 끌려가는 사상이 되었다. 세상을 바꾼
다는 이념은 정치체제와 사회를 바꾼다는 의미보다는 자기 분수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 주변의 일상을 바꾸는 이념으로 변질되
었다. ‘대청소’의 이념도 모든 부조리, 힘 있는 것들을 전부 쓸어내
버리는 혁명의 사상이 아니라 마음의 티끌을 씻는 수양의 사상이 되
42) (神田秀雄), 「19世紀日本における民衆宗教の誕生と伝統的コスモロジー」国
際宗教学․宗教史会議東京大会、2005.3.27 シンポジウム: 新宗教の誕生
と伝統的宗教の変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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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었다. 다만 이러한 사상은 사회적인 운동차원에서 보면 ‘개혁’의 사
상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있는 것이다.
2) 배상제교의 혁명 사상
근대 중국은 혁명의 시대이기도 하다. 태평천국의 경우는 성공한
혁명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한때는 양자강 이남의 전역을 점령지로
하고 북경 근방까지 공격해 들어갈 정도였으니 거의 성공한 혁명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864년경에 홍수전이 사망하고 태평천국이 멸망하자 배상제교와
그 사상은 일소되었다. 그러나 제2의 홍수전이라고 자청한 손문과,
홍수전의 혁명운동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은 모택동은 여전히 홍수전
의 ‘혁명이념’과 그 논리를 따랐다.
우선 홍수전이 서양인들을 형제로 여겼듯이 손문과 모택동이 추구
한 사상, 즉 ‘삼민주의’와 ‘사회주의’는 철저하게 서양인들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아울러 이 두 사람이 집요하게 척결하고자
한 것은 바깥의 ‘외세’가 아니라 내부의 ‘요마’들이었다. 홍수전과 태
평천국인들이 근대 초기에 형성해나갔던 ‘황상제’라고 하는 ‘자아’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 모습을 바꾸어 이후의 중
국에도 계속 살아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배상제회와 홍수전의 변혁사상은 삼국의 변혁사상 중 가장 ‘혁명’
적이다. 혁명이란 그야말로 하늘의 ‘명(命)’이 바뀌는 것으로, 통치
구조가 바뀌는 것이다. 말하자면 통치구조와 조직을 바꾸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인 경향은 이미 황상제의 성격에서 예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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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31
황상제는 서양 기독교 신 관념의 압도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
다. 특히 우상에 대한 거부감과 청나라 조정을 염라요라 지칭하며
표현된 적개심으로부터 그러한 경향을 읽을 수 있다.
홍수전은 황상제와 염라요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요마를 격멸하자
고 호소한 「원도각세훈(原道覺世訓)」을 작성한 후, 2년이 지나지
않아 광서성의 금전(金田)에서 반란을 일으켜 청나라 조정을 향해
창끝을 겨누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그 전단계로 우상파괴 운동이 있었다. 1848
년 10월경 그는 배상제회 리더인 풍운산과 회원들을 데리고, 지방의
토지신인 감왕묘(甘王廟) 등의 신상을 파괴하였다. 이러한 파괴활동
을 교리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천조서」의 계율 중 “사신(邪神)을
예배하지 마라”라는 구절이었다.43)
이전에 홍수전은 광주(廣州)에서 로버츠라고 하는 미국인 목사 밑
에서 약 2개월 정도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특히 악마숭배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로버츠의 영향이 컸다.
이러한 경향이 현실 정치적으로 청나라 만주족을 향하게 된 것이
다. 홍수전의 논리로 청나라 만주족의 천자는 이미 천명이 사라진
‘천자’이며 하늘에 있는 황상제의 군대가 토벌해야할 대상이었다. 그
들은 개혁이 아니라 그 존재를 허락할 수 없는, 혁명의 대상이었다.
홍수전이 이러한 극단적인 변혁사상을 갖게 된 것은 그 근원을 더
듬어 올라가보면 역시, 그 자신이 참다운 신인 황상제의 아들이라고
하는 자각에 의한 것이다. 그 신은 서양 종교의 신이기 때문에 당연
히 중국에 처음 나타나는 신이고 중국의 역사는 새롭게 시작되었다
고 하는 시대인식을 낳은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그 바탕에 매우 종
교적인 전제를 깔고 생성된 것이지만, 눈에 나타나는 현상만을 본다
43) 고지마 신지, 홍수전-유토피아를 꿈꾼 태평천국의 지도자 , 87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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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면, 즉 ‘종교’라고 하는 중세적인 측면을 가리고 본다면, 새로운 근대
적인 인간으로서 ‘홍수전’이 등장하고 근대국가의 맹아로서 ‘태평천국’
이 나타난 것이다.
3) 동학의 개벽 사상
최제우의 시대인식은 ‘개벽’사상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자신이
사는 시대를 하원갑이 지나고 상원갑이 열리는 시대로 보았다. 그리
고 “하원갑 지내거든 상원갑 호시절에 만고 없는 무극대도(無極大
道) 이 세상에 날것이니”44)라고 하여 자기 자신의 동학이 바로 새
시대의 ‘무극대도’라고 하였다. 또 「용담가」에는 “한울님 하신말씀 개
벽 후 오만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 나도 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
하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하니, 나도 성공 너도 득의 너희집안 운수
로다”라고 하였다.
지난 50,000년과는 다른 시기가 왔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시대가 그 이전시대와 어떻게 다
른지 그는 “유불도 누천년 누천년에 운이 역시 다했던가, 윤회같이
둘린 운수 내가 어찌 받았으며”(「교훈가」) 라고 한다. 유교 불교가
수천년을 이 땅에 영향을 미쳐왔는데 이제는 그러한 가르침이 통용
이 되지 않은 새로운 시대가 온 것이다. 나카야마 미키와 홍수전이
자기시대를 천지를 창조한 신이 강림하는 시대로 본 것과 같이, 최
제우도 엄청나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는 그 시기에 자신이 살고 있
음을 노래하였다.
그렇다면 상원갑의 좋은 시절, 개벽후 오만년만에 새롭게 열리는
44) 「몽중노소문답가」, 용담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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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33
세상이 바로 후천 개벽의 세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사상을 ‘변혁’
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변혁의 사상이란 분명히 인간이 주체
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위에 소개한 개벽사상은
세상이 바뀌어진다는 것으로 인간의 능동성은 배제되어 있다. 개벽
사상의 이러한 한계성에 주목하여 일본의 가와세 다카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45)
동학의 사상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세상을 바꿈(世直
し)’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자동사로서의 ‘세상이 바뀜(世直
り)’, 즉 지금까지의 세계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한다
고 하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사상이다. 여기에서 필자가
‘세상 바뀜(世直り)’이라고 하는 조어(造語)를 사용한 것은,
동학의 기본적인 성격은 주체적으로 현실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것 보다는 동학의 가르침을 신앙하면서 자연스럽게 천운이 변
해가는 것에 맡긴다라고 하는 경향이 현저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지적과 같이 ‘개벽’의 사상은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성
격이 강하다. ‘개벽’ 자체는 우주적 차원의 대변환이기 때문에 인간
이 참여할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최제우는 또 다음과 같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자
신의 기개를 표현하고 있다. “때로구나, 때로구나. 내 그 때로구나.
다시 오지 않을 때로구나. 만년에 한번 태어나는 대장부로 오만년
만의 때로구나. 용천검(龍泉劍) 잘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 하
리.”46) 오만년에 한번 오는 때인데 어찌 칼을 쓰지 않을 것인가 하
45) 가와세 다카야, 「동학․텐리교․오모토의 신관념과 그 사상」, 동학학보 8호,
2004.12, 205쪽.
46) 「검결」, 용담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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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고 노래하였다.
이러한 포부는 해석여하에 따라서는 혁명적인 내용으로도 들린다.
사실상 최제우가 관가에 붙잡혀서 심문을 받을 때는 이 「검결」의 내
용이 문제가 됐다. 관리들은 이 「검결」이 지닌 위험성을 주목하고
결국 그를 사형시켰다.
개벽사상은 앞에 든 인용문처럼 좁게 해석할 경우, 변혁의 사상이
라고 하기 어렵다. 「검결」에 나타난 표현과 함께 해석할 때, 즉 좀
더 넓은 의미로 개벽사상을 해석할 때, 비로소 변혁의 사상이 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 오만년 만에 맞이하는 절호의 시대를 사는 인
간으로써 용천검을 써보지 않고 무엇하겠는가하는, 바로 이 구절에
변혁의 사상이 깃들어 있다.47)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다고 하는 시
대적 자각이 변혁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낼 수는 없으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인
간이 되는 것은 가능하다. 최제우의 개벽사상은 인간의 측면에서 보
면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다만 그 용천검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 하는 것은 언급되지 않았
다. 만약 통치조직 또는 통치구조 전체 또는 조선의 국왕을 향하고
있다면 혁명의 사상이 되는 것이요, 자기 주변 마을에 머문다면 ‘개
선사업’이 되는 것이요, 좀 더 넓은 사회로 확대된다면 개혁의 사상
이 되는 것이다. 만약 자기 마음으로만 향한다면 종교적 수양이 되
는 것이다. 개벽사상 자체는 혁명사상도 될 수 있고, 현실에 부딪혀
47) 보통 동학의 개벽사상은 이렇게 넓은 의미로 사용하여 변혁사상으로 본다.
예를 들면 김한식은 “후천개벽은 역사적 순환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의
해 이뤄지지만-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무위에 의한 역사라는 표현이 가
능하다-, 동시에 특정 조건을 구비한 인간에 의해 성취된다는 것이다”(「실학
과 동학의 변혁사상」, 동학학보 9권1호, 2005년, 81-82쪽)라고 하였는
데, 이러한 언급은 바로 개벽사상이 가지고 있는 수동성과 능동성을 지적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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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35
굴절이 되어 한낱 수양의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최제우는 주위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중에 자기를 ‘천황씨’로 부
를 날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48) 이러한 발언의 구체적인 뜻은 알
길이 없다. 천황씨가 조선 국왕을 의미하는 것인지, 중국의 천자를
의미하는 것인지 명확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개벽의 사상이 ‘혁명’적
인 것인지는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
다만 관변기록 중에 나오는 최제우의 발언을 보면,49)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용천검의 칼끝이 외세, 즉 외부
에서 쳐들어오는 서양 사람들을 향한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용
천검이 추구하는 것은 국가체제의 전복이 아니라 나라를 보존하고 백
성을 편안하게 하며 나아가 ‘벼슬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벼슬자리’운운하는 것은 당시 관리들의 동학을 폄하하기 위해
조작된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최제우의 선조도 임진왜란 때 일본군
을 막아내고 큰 공을 세워서 높은 벼슬을 하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최제우도 그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검결」을 지었을 가능성이 있다.
말하자면 국가 체제의 전복이아니라 조선의 국왕을 보좌하고 백성을
지키는 ‘무관’으로서의 사명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는 것이다.
개벽사상의 수동적인 측면, 즉 세상이 바뀐다는 사상은 또 한편
생각해보면 당시 한반도에 사는 지식인의 한계를 설명하기도 한다.
중국이 압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세계에서 세상의 변혁은 이미 다
른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조선의 지식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러
한 변혁의 시대를 이용하여 우리의 능동성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주
어진 세계의 흐름 안에서 적응해나가고자 하는 모습이다.
아울러 동학의 개벽사상은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갈등의 ‘회
피’라고 할 만한 경향이 보인다. 변혁사상이 추구하는 가장 본질적이
48) 윤석산 역, 도원기서 , 49쪽 참조.
49) 「高宗実録審問記録」高宗1年2月29日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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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고 근본적인 과업은 사회의 통치체제와 통치질서 그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최제우의 용천검이 향해야 할 곳은 바로 그러한 통치질서의
정점에 서있는 조선의 국왕이다. 그러나 ‘개벽사상’은 체제내적인 ‘갈
등’을 회피한다.
전통적인 중화주의적 관념에 따르면 천하를 통치할 수 있는 천명
은 중국의 천자에게만 내린다. 그런데 최제우는 서양인들이 중국을
멋대로 하는 것을 보고 천명이 서양인들에게 내렸다고 보았다. 1860
년, 그러한 천명이 최제우에게 돌아온 것이다. 중국인들을 제압하고
세계를 지배하게 된 서양인들은 장차 한반도로 들어오는데, 이들은
천명을 받은 최제우에 의해서 제압당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후천
개벽의 시대가 시작된다. 갈등의 해소, 즉 문제의 해결방식이 현실
과 직접 부딪히는 방식이 아니라 이렇게 서양인들, 중국적인 천명으
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해결하고자 한다.
자아와 타자가 맞서는 상황에서 타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자아를 둘러싼 다른 ‘타자’를 주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을 바
꾸자’라고 하는 변혁의 사상을 ‘우주가 바뀐다’라고 하는 ‘개벽사상’으
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5. 맺음말
이상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천리교를 살펴보면 서양 기독교 신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
고 일본의 민간신앙적인 성격이 강했다. 명치정부가 들어서면서 국
가신도체제에 편입되지 않고자 저항을 하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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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37
속되어 위에서 마련한 종교정책을 따르게 되었다. 이것은 근대화된
명치정부의 강력한 힘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최고신 천리왕명이라
고 하는 신 자체가 지닌 태생적인 한계에서도 기인한 것이었다. 말
하자면 천황의 태양신에 예속되기 쉬운 성격의 신이었다. 결국 천리
왕명은 천황의 권위나 최고신으로서 태양신에 대한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할 정도의 교리까지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현실
적으로 종교단체가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개혁사상으로 표현되
었다.
배상제회의 황상제는 본질적으로 서양 기독교의 신 ‘여호와’ 그 자
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동학의 하늘님보다 더 기독교적이다.
다만 중국의 전통적인 신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점은 하늘
님이나 천리왕명과 유사하다. 홍수전은 서양의 여러 나라를 친구의
나라로 보고 청나라 조정은 요마의 무리들로 인식하고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무리들을 조정하는 악신으로 ‘염라
요(閻羅妖)’를 지목하였다. 이는 황상제의 아들인 홍수전과 염라요
의 아들인 청나라 천자와 대립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아관념은
결국 혁명사상으로 발전되고 급기야 반란으로 치달았다. 남경에 세
워진 태평천국은 그러한 결과였다.
동학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서양 천주교의 신을 바탕으로 신관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하늘님’이라고 하는 신관은 그 위에 성리학적인
신관, 즉 비인격적인 ‘태극’이나 ‘귀신’의 관념도 수용하여 독특한 신
관, 즉 내재적이면서 초월적인 신관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천도교시기에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변하자 ‘인내천’의 사상을
내세워 새로운 변신을 꾀하였다. ‘사람이 바로 신’이라는 이러한 ‘근
대적인’ 종교 사상은 일본의 ‘살아있는 신(生神)’의 관념에 적극적으
로 대응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동학의 개벽사상은,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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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의 신관념이 성리학의 ‘태극’, 천주교의 ‘천주’, 일본의 태양신과 극단
적인 대립을 피해온 것과 같이, 정권을 전복하는 혁명사상으로 발전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를 우주적 차원에서 조망함
으로써 현실적인 갈등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동아시아 근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사는 시대를 지
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역사적인 시기로 보고 자신이 처한 사회현실
을 바꾸거나 또는 그 현실이 바꿔지기를 기원하였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근대성의 자각으로 발전되고, 각 사회마다 그 강도나 모습에서
차이는 있지만 근대의 변혁운동으로 전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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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39
<국문 초록>
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임태홍
이 글은 천리교, 동학, 배상제교를 통해서 동아시아 종교의 근대
성과 변혁사상을 살펴본 것이다. 여기에서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
라는 자각을 ‘근대성의 자각’이라 하여 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
혁사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천리교는 서양 기독교 신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고 일본의 민간
신앙적인 성격이 강했다. 명치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신도체제에 편
입되지 않고자 저항을 하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예속되어 정부에서
마련한 종교정책을 따르게 되었다. 이것은 근대화된 명치정부의 강
력한 힘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천리왕명이라고 하는 신 자체가 지
닌 태생적인 한계에서도 기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을 현실적으
로 종교단체가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개혁사상으로 표현되었다.
배상제회의 황상제는 본질적으로 서양 기독교의 신 ‘여호와’ 그 자
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중국의 전통적인 신관념에서 완전히 벗어
난 것은 아니었다. 홍수전은 서양의 여러나라를 친구의 나라로 보고
청나라 조정은 요마의 무리들로 인식하고 타도해야할 대상으로 보았
다. 이는 황상제의 아들인 홍수전과 염라요의 아들인 청나라 천자와
대립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념은 결국 혁명사상으로 발전되고
급기야 반란으로 치달았다. 남경에 세워진 태평천국은 그러한 결과
였다.
동학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서양 천주교의 신을 바탕으로 신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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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위에 성리학적인 신관념도 수용하여 독특한
신관을 형성하였다. 천도교시기에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변하자
천도교는 ‘인내천’의 사상을 내세워 새로운 변신을 꾀하였다. 개벽사
상은 본질적으로 세상과 시대, 나아가 우주가 저절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개벽사상은 「검결」에 나타난 사상과 함께 더 큰 의미로 생각
해보면 새 시대를 맞이한 사람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사상이기도 하
다. 그런 점에서 변혁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개벽사상은
‘하늘님’이 타자와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세상이 바뀐다’고 하는 구
호는 타자와 자아사이의 치열한 대치관계를 무력화시키는 효과가 있
다. 갈등을 ‘회피’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동아시아 근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사는 시대를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다른 역사적인 시기로 보고 자신이 처한 사회현실을 바꾸
거나 또는 그 현실이 바꿔지기를 기원하였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근대성의 자각으로 발전되고 그러한 자각은 각 사회마다 그 강도나
모습에서 차이는 있지만 근대의 변혁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주제어
동아시아, 근대성, 변혁사상, 천리교, 동학, 배상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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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41
<Abstract>
Modernity and Revolutionary Thought
in East Asian Religions: Modern
Experiences of Tenrikyo, Donghak, and
Worshippers of God
Lim, Taihong
This paper examines the modernity and the revolutionary
thought in the East Asian religions through analyzing the
thoughts in Tenrikyo(天理敎), Donghak(東學), and Worshippers of
God(拜上帝會).
The writer expecially focuses the consciousness of the
modernity in the religious bodies, and discuses the modernity and
the revolutionary thought of the religions. The consciousness of
the modernity, in other words is that the religious members
realize the dawn of a new era.
Tenrikyo, the Japanese new religion which was greatly
affected by the traditional folk belief, protested to the Meiji
government not to subject to the National Sinto(神道) system.
However, it finally was dominated by the government religious
policy. There were two reasons why the Tenrikyo could not
powerfully protest to the government. one was that the Meiji
government’s political power was too strong for the body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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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동학학보 제9권 2호(통권 10호)
protest. The other was that the supreme god of Tenrikyo itself
had the tendency to admit the High God of the National Sinto
system, or Amaterasu Omikami which is the Sun Goddess of
Denno(天皇)’s Ancestor. This characteristic tendency produced the
mild reform thought.
Donghak, the Korean new religion, basically received the
Catholic’s concept of the supreme God. Also the God of Donghak
was affected by the traditional belief such as demon as well as
the Great Absolute, the High Being of confucianism. Into the
colonial era, Donghak, renamed to Tendokyo, presented the new
conception of God. That is “Man is God(人乃天)”, which is
seems to have received the idea of “Denno is God” in the
National Sinto system of Japan. This view of God produced the
revolutionary thought, or the Creation(開闢) thought. To tell the
truth, “the Creation” could not be a revolutionary thought,
because it is not the reformation by the mankind, but by the
God’s power. However into the new ear, man cannot be avoided
reforming the society. In this meaning, “the Creation thought”
also become a revolutionary thought. Merely, the feature of the
thought is that there is a tendency of avoidance. It avoids the
clash between man and society, and between you and me,
because it gives the message that only God makes a change.
Worshippers of God worshiped the God of Protestant as their
supreme God. lt was, however, also a little effected by the
traditional religious belief. Because of having faith in the same
God, Hung Xiuquan, the founder of the Worshippers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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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종교의 근대성과 변혁사상 143
regarded the Westerners as his friends. on the other hand, the
imperial court of Qing was considered as a group of devils
which were must be destroyed by Hung and his troops. This
sort of thought, afterwards, developed to the revolutional
movement.
Like above, the leaders of the East Asian religions regarded
the age they lived in as the entirely different one in the world’s
long history. And so, they hoped to reform their own societies.
This kind of conception can be said to be the consciousness of
the modernity. Such a consciousness, although various in the
strength and appearance of social movements according to the
social circumstances, was developed to the reform movement of
modern times.
Key-words
East asia, Modernity, Tenrikyo, Donghak, Worshippers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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