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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천주실의』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儒佛道)의 대화/김명희.서강대



I. 들어가는 말
‘적응주의’란 선교초기 예수회의 선교정책으로서 예수회원들이
사목하는 지역의 상황과 환경에 ‘맞게’ 전개하는 ‘맞춤식’ 선교방법이
다. 선교지 문화에 적응을 통한 선교, 즉 적응주의 선교에 있어서 전제
가 되는 것은 토착종교와의 대화다. 예수회의 아시아 선교가 시작되었


* 본 논문은 2011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
되었으며[NRF-2011-358-A00047], 3년 연구과제인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한 원효의
화쟁영성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및 에노미야 라쌀의 신비주의와의 비교분석을 통
하여‒” 중 제2차년도의 연구과제에 해당된다. 제2차년도는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와 에노미야 라쌀의 신비주의”에 대해 연구할 예정이었으나 리
치와 라쌀을 한 논문에서 다루기에는 지면상 어려움이 있어 이번에는 리치의 적응주의
만 다루기로 하였다. 이 논문 후에 이어서 라쌀의 신비주의에 대해 연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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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16세기에는 종교와 정치, 사회, 문화가 일치하던 ‘종교적 최대주의
문화형태’1)의 사회였다. 이 시대에 선교지의 문화와 사람들을 이해하
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선교지의 토착종교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래
서 선교초기 예수회 선교사들은 선교지에 도착함과 동시에 현지 종교
와 조화와 화해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프란체스코 하비에르(Francisco
de Javier, 1506-1552)와 알렉산드로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
1539-1606),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를 비롯한 수많은
예수회의 선교사들은 인도, 일본, 중국 등지에서 힌두교, 불교, 유교
문화에 ‘적응’하며 그리스도교의 토착화와 종교 간의 대화에 힘을
쏟았다.
16세기 중국의 선교사로 파송된 예수회 신부 마태오 리치는 당시
중국사회의 주류였던 유교문화에 적응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전파하
였다. 리치는 유교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습득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진정한 ‘중국인’이 되어 그리스도교를 중국인들에게 전파하려고 애
썼다.
리치의 적응주의 선교는 특히 그리스도교와 유교와의 대화를 통
해 추구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유교사회와 문화 속에서 추진된 리치의
적응주의가 어떻게 종교 간 대화의 모델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예수회의 적응주의가 종교간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필
자의 논문에서 밝힌 바 있다.2) 이것을 토대로 여기서는 리치의 적응주
의가 어떻게 종교간 대화의 모델이 될 수 있는지 리치의 저서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리치의 많은 저술 중 대표저서인 『천주실의』의 그리
스도교와 유 ․ 불 ․ 도의 대화를 분석해 리치에 있어서 종교간 대화의 원


1) 브루스 링컨/ 김윤성 옮김, 『거룩한 테러』 (경기도: 돌베개, 2005), 116-135 참조.
2) 김명희, “예수회의 적응주의와 종교간 대화,”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4집 (2012), 67-
1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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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 조망하고자 한다. 『천주실의』는 리치의 불교와 도교에 대한 반박
글로서, 리치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와 구별되는 두 종교의 신개념과
도덕론을 논박한다. 동시에 유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본 논문에서는 리치와 중국 선비와의 대화내용을 기록한
『천주실의』를 분석해 리치의 종교간 대화의 특징과 한계, 의의를 탐구
하고자 한다. 이러한 해석학적 분석 결과를 토대로 21세기 한국사회
가 필요로 하는 종교간 대화의 원리를 전망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다음의 순서로 진행될 것이다. 먼저 ‘리치의 문화적응
주의’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문화적응주의는 리치의 종교간 대화의
토대가 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둘째, 『천주실의』에 나타난 그리스도
교와 유 ․ 불 ․ 도의 대화를 해석학적 방법으로 분석, 고찰할 것이다. 지
금까지의 연구서들이 그리스도교와 유교와의 대화 혹은 그리스도교
전교서로서 『천주실의』를 조명하였다면, 본 논문에서는 유 ․ 불 ․ 도, 특
히 불교에 대한 리치의 이성적 대화의 논거들을 탐구하려고 한다. 이
를 위해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의 존재론적, 도덕적 대화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리치의 유 ․ 불 ․ 도 삼교와의 대화에 대한 분석은 본 연
구서가 처음이다. 특히 불교 중심의 시각에서 『천주실의』를 분석하였
다는 점에서 본서가 갖는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셋째, 위의 분석 결과
를 토대로 리치의 종교간 대화의 특징과 한계를 제시하고자 한다. 결
론부분에서는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리치의 적응주의가 한국의 종
교간 대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논할 것이다.
마태오 리치의 종교간 대화에 관한 연구서들이 국내외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마태오 리치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여 2010
년 9월에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주최로 열렸던 ‘동서양 문명의 만남,
도전과 기회’라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에서 남태욱이 “종교 간 평화
로운 공존을 위한 실제적 대화: 마테오 리치를 중심으로”(「신학과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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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 제18호, 2011 봄)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남태욱은 이 논
문에서 리치의 적응주의와 종교간 대화의 일반론에 대해서만 언급하
였지 리치의 종교간 대화에 대한 심층적 분석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리치가 시도한 유 ․ 불 ․ 도 세 종교와의 대화를
『천주실의』를 통해 상세히 분석하고자 한다.


II. 리치의 문화 적응주의
예수회 선교사 마태오 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는
문화적응주의 선교방법을 통해 중국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였으며,
마침내 최초의 천주교회를 창립하였다. 그는 17세기 이래 동서 문명
교류를 촉발한 “위대한 문화매개와 융합의 사도”라는 찬사를 받았
다.3)
1552년 10월 6일 로마 교황령에 속한 중부 이탈리아의 마체라타
(Macerata)에서 출생한 리치는 1571년에 예수회 수련원 산트 안드레
아(Sant’ Andrea)에 들어갔고, 1580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4) 리치가
중국선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예수회의 동방선교의 시발자인 프란
치스코 하비에르(Francisco Xaver, 1506-1552) 때문이었다. 일본에 도
착해 선교를 시작한 하비에르는 일본인들이 “중국인들도 모르는 그리
스도교의 교리가 참일 수 없다”5)는 반박에 중국선교의 필요성을 절감
하였다. 이후 하비에르의 뜻을 이어받아 발리냐노(Alessandro Valignano,
1538-1606) 신부가 고아에서 루지에리(Michaele Ruggieri, 1543-1607)
3) 송영배,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 (서울: (주)사회평론), 2012, 236.
4) 앞의 책, 236-237.
5) Haas, Hans, Geschichte des Christentums in Japan, Bd. 1(Tokyo: Nabu Press, 1902), 221.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45
를 마카오로 불러들였고(1579년), 루지에리는 마태오 리치를 불러들
여(1582년) 함께 중국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6)
루지에리와 리치는 자신들이 노략질이나 폭력을 일삼는 포르투
갈이나 카스틸리아(스페인)에서 온 상인(즉 야만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중국의 경전들과 관습들을 배우고 이해하고자 하였다.
또한 기회 있을 때마다 당시 서방의 최고 명품들을 지부(知府)나 총독
에게 선사하고 동시에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우수한 서방의 기
기를 제시함으로써 자기들이 결코 ‘야만인’이 아님을 입증하고자 하
였다. 이러한 노력들은 훗날 유럽의 과학문명을 중국에 본격적으로 소
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루지에리와 리치는 중국인들로부터 혐오감을
사지 않기 위해 일본에서 성공적인 선교경험을 토대로 불교식의 복장
과 삭발을 한 서방의 승려로 행동을 했다. 그들은 조경(肇慶)에서 최
초로 세운 천주교회의 이름에도 ‘선화사’(僊化寺)라는 불교식의 이름
을 부여했다.7) 하지만 불승보다는 학자들이 사회적으로 더 존경의 대
상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 리치는 1595년 소주(韶州)에서 구태소(瞿太
素)의 권유를 받아 승복을 벗고 유생복(儒生服)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삭발한 머리와 수염도 다시 길렀다.8) 또한 유가의 서(書)를 통독하면
서 상류층(士人)과의 교류에도 힘썼다. 이제 리치는 서승(西僧) 혹은
번승(番僧)이라고 불리던 것에서 서사(西士)로 불리면서 중국 사회에
쉽게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당시에는 승려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
승복차림으로는 지배층들에게 접근하기조차 힘든 형편이었으므로
중국사대부들과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개선책을 요하게 되었다.9) 리
6) 송영배,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2012), 18-19.
7) 앞의 책, 238-239.
8) Hoffmann-Herreros, Matteo Ricci. Den Chinesen ein Chinese sein-ein Missionar sucht
neue Wege (Mainz: M. Grünewald, 1990),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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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는 내면과 외면 모두를 중국화 했을 뿐 아니라 중국문화에 적응함으
로써 중국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는 완전한 중국인
으로 귀화하기 위하여 별호(別號)를 서태(西泰), 이름을 마두(瑪竇),
성을 리(利)라고 하는 중국식 이름으로 바꾸었다(1595년). 리치는 그
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의복과 외관, 생활방식, 모든 외적인 모습
에서 ‘중국인’이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10) 그는 천주교의 교리와 서
양의 철학, 과학, 학술 등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서양의 문명을 중국인
들에게 알리는데도 힘썼다. 마침내 리치는 1596년에 난창에서 예수회
원으로서 종신서원을 하였다.11)
리치의 적응주의 사상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었다. 초대교회의 선
교사였던 바울이 고린도인에게 보낸 서신에서 잘 드러난다: “유대인
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고린
도전서 9:20)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고린도전서 9:22) 리치의 궁극적 목
표는 적응주의 방법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중국인들이 받아들이게 하
는 것이었다.
리치는 중국의 도덕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 중에서도 ‘예의’에 대
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방문 때마다 보여주는 예의범절에 리치는
주목했다. 중국인들이 방문 시 주고 받는 선물 풍습은 후에 리치에게
유용한 선교수단이 되기도 하였다.12) 그는 예의바르고 학덕 있는 사
9) 失澤利彦, 『中國とキリスト敎』 (東京: 近蕂出版社, 1972), 24-25.
10) Hoffmann-Herreros, Matteo Ricci. Den Chinesen ein Chinese sein-ein Missionar sucht
neue Wege (1990), 66.
11) 김혜경,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 역사와 의미』 (서울: 서강대학교 출판부, 2012), 237.
12) Bettray, Johannes, Die Akkommodationsmethode des P. Matteo Ricci S. I. in China
(Rom: Univ. Gregorianae, 1955), 25.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47
람으로 간주되어 중국인들이 외국인에게 갖는 적대감을 극복할 수 있
었다. 또한 그는 어떠한 정치적인 이권에도 개입하지 않았으며, 정치
와 종교의 관계에 있어서는 명백한 구별을 지었다.
리치가 가톨릭교회에 충실하면서도 비(非)그리스도교 문화에 개
방적인 자세를 취하였던 것은 그가 소속된 예수회의 선교전통 때문이
었다.13) 예수회의 선교정책에서는 ‘선교지의 적응’ 자체가 선교였다.
중국에 그리스도교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교대상
에 대한 적응이 필요했다. 이것은 예수회원은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
및 사도직 대상의 삶의 방식과 수준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이냐시오
영성에 근거한 것이었다.14) 또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구상의 다양한
문화에 적합하게 표현하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과 목적에도
잘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중국에서의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선교는 크게 여섯 가지 방향
에서 모색되었다.
첫째, 생활양식의 변화였다. 유럽의 선교사였던 리치는 처음엔 일
본식의 불승으로서, 이후에는 중국유교의 문인학자로서 생활양식을
바꿔가며 선교지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힘썼다. 리치는 중국인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학자들과의 만남을 자주 가졌으며, 그들에게 서양과
학을 소개함으로써 서구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였다.15) 리치는
중국의 각종 풍속과 예절을 익히는데도 힘을 기울였으며, 필요할 때에
는 중국하층사회의 말투나 태도까지 모방하려 하였다. 이러한 리치의
시도는 ‘문화적 적응’을 통해 중국의 유교사회에 그리스도교가 정착
13) 이규성,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적응주의 도입과 그 발전과정에 대한 신학적 고
찰”, 「가톨릭신학」 제21호 (2012), 170.
14) 앞의 논문, 181.
15) 김혜경,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 역사와 의미』 (2012), 238.
14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중국어에 대한 인식이다. 리치와 중국문인들과의 긴밀한 유
대관계는 철학, 종교, 과학에 관한 많은 토론과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집필하면서부터 본격화 되었다. 이를 위해서 중국어 습득은 필수적이
었다. 리치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상대방을 모르고 나만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면서,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 중국에서 절대적인
것이 언어라고 하였다.16)
셋째, 신앙선포를 위한 수단으로서 과학을 활용하였다. 리치는 선
교정책의 일환으로써 서방과학—지리학, 지도제작법, 천문학, 기하학
등—을 소개하고, 서양기기와 지도, 서양화 등을 들여와 중국인들에
게 관심을 얻고자 하였다. 리치에게 있어 과학은 신앙을 전파하기 위
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17) 서광계(徐光啓), 구태소
(瞿太素), 이지조(李之藻), 진량채(陳亮采) 등은 리치에게서 서양의
과학을 배웠으며, 자연히 천주교와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리치가 제작
한 세계지도는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에게 세계관에 대한 획기적인 변
화를 가져다주었다. 그의 세계지도를 통해 지구는 더 이상 평면이 아
닌, 공처럼 둥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국 전통의 우주론인 천원지
방(天圓地方)설이 부정되었다. 또한 중국을 중심에 두고 조공을 바치
는 야만국들로 둘러싸인 중국 중심적 지리관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18)
넷째, 이성을 통한 토착문화의 접근이었다. 리치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중국인들에게 보다 더 쉽게 전수하기 위해 이성적 접근 방법을
택하였다. 그는 중국의 불교 및 유교문화를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
스의 사상을 통해 분석, 조명했다. 특히 합리성에 근거한 포괄적 체계
16) 앞의 책, 239-240.
17) 앞의 책, 240-241.
18) 송영배,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 (2012), 116-119.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49
를 추구하는 스콜라철학적 성향은 유교와 그리스도교 융합의 토대가
되었다.19) 『천주실의』에서 보여주듯이 리치는 신학과 철학의 시각에
서 불교와 유교를 해석하여 이해하였으며, 그리스도교 역시 스콜라철
학의 토대 위에서 유교와의 비교를 통해 소개하였다. 유교와 그리스도
교의 이성적 대화를 위해 전제되었던 것이 한어(漢語) 학습과 유가경
전의 통독이었다. 리치는 중국인들과의 교류에 있어서 언어와 사상의
이질감으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을 없애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육
경(六經) ․ 자(子) ․ 사(史) 모두 통달할 수 있을 때까지 숙독하였고, 그
의 언사(言辭)에 이러한 경문(經文)들을 자주 인용하려고 노력하였
다.20)
다섯째, 위로부터의 선교정책이다. 이는 아시아 선교에서 보여준
예수회 초기 적응주의 선교정책의 특징이기도 하다.21) 리치는 중국의
상류층인 유학자들과 다양한 학문적 영역에서 문화교류를 하며 그리
스도교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상위층과의 교류는 ‘위로
부터의 선교’에 있어서 필수 조건이었다.22) 당시 일반화된 불교의 방
식대로 하층민을 상대로 하는 기존의 선교방식은 중국에서의 선교활
동을 합법화 시키고 리치 자신의 지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포기해
야 했다. 그 대신 민중을 지도하는 사대부계층들과의 학술적, 철학적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일에 집중하였다. 리치는 서광계
19) 데이비드 E. 먼젤로/이향만, 장동진, 정인재 역, 『진기한 나라, 중국. 예수회 적응주의
와 중국학의 기원』 (경기도: 나남, 2009), 45.
20) 『천주실의』 상권 제2편에서는 서사(西士)의 한번 발언에 중용, 서경, 시경, 역경, 예기
등의 문구를 인용하고 있다(마테오 리치 지음/송영배 외 5명 옮김, 『천주실의』(서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99-103 참조). 하권 제6편에서는 서사의 발언에 유가경
전을 8번이나 인용한다(앞의 책, 288-291 참조).
21) 김명희, “예수회의 적응주의와 종교간 대화” (2012), 67-122 참조.
22) 앞의 논문, 97.
15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徐光啓, 1562-1633)가 말하는 것처럼, 역불보유(易佛補儒), 즉 불교
를 대체하고 유교의 부족한 부분만을 보충함으로써 중국의 문인들을
휼륭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고자 하였다.23) 그는 유가들과의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유가의 복장을 하고 언사에서 경전의 인용을 통해 유교
에 대한 학식을 나타내려 하였고, 천문, 지리, 풍속, 철학, 논리에 관해
자주 이야기 하며 사대부들이 그를 흠모하게 하고자 하였다.24)
더욱이 리치는 그가 가지고 있던 서양물건들을 황제에게 드림으
로써 그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1601년 리치는 신종(神宗)에게 진공
품25)을 진상할 수 있었고, 이후 중국황제의 지지를 얻어 예수회는 중
국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여섯째, 문서선교 정책이다. 리치의 주된 선교대상이 치자계층인
유가들이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선교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중 하나
가 문서선교다. 리치는 그리스도교와 서방과학에 관한 번역 및 저술을
23) 송영배,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2012), 86-88.
24) 당시 이심제(李心齌), 이탁오(李卓吾), 구태소(瞿太素), 엽향고(葉向高) 등과 같은 명
유(名儒)들이 리치와 교분을 쌓았고 양광총독(兩廣總督) 곽응빙(郭應聘), 예부상서
(禮部尙書) 서광계(徐光啓), 태복사소경(太僕寺少卿) 이지조(李之藻), 소주지부(蘇
州知府) 조심당(趙心堂) 등과 같은 관리들과도 깊은 교류를 맺었다. 리치는 이들 사대
부에게 그들의 관습과 전통사상을 존중해주고, 유교와 천주교를 융화시켜 천주교를
신봉하게끔 유도하였다. 그 결과 이 가운데 상당수가 천주교의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
으며, 그와 왕래하며 교제한 유가가 100여명이 넘었다. 그들은 리치와 다른 신부들의
신변을 보호 해주고 선교활동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리치의 저작, 번
역활동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박영신, 『마테오 리치의 適應主義的 宣敎方法에 관한
一考察』,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4, 22).
25) 천주성상(天主聖像), 천주성모상(天主聖母像), 일과경(日課經), 다색 유리 및 성인
유물이 든 십자가, 만국여지도, 자명종, 프리즘, 대서양금(大西洋琴), 코뿔소뿔, 거울
및 대소의 병들, 사각루(沙刻漏), 복음성경, 서구식 의복과 은화 등. 명신종(明神宗)은
여러 진공품 가운데 자명종을 특히 좋아했으며, 자명종의 수리를 위해 선교사들의 북
경 내 거주를 허락하기도 했다(失澤利彦, 『中國とキリスト敎』, 1972, 63).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51
통해 중국의 지배층인 유가들에게 신뢰를 얻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문서선교는 중국 전역에 그리스도교를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장점을 지
니고 있었다. 리치는 루지에리와 함께 십계명을 번역했으며, 저술로
는 동서문명을 융합한 『기인십편』(畸人十篇, 1608)과 중국, 조선, 월
남, 일본에서 큰 영향력을 미친 『천주실의』(天主實義, 초판 1595, 수정
판 1603)가 있으며, 이 외에도 『기인십규』(畸人十規, 1584), 『사행설』
(四行說, 1598), 『이십오언』(二十五言, 1604), 『천주교요』(天主敎要,
1605), 『변학유독』(辯學遺牘, 1610) 등이 있다. 특히 동서 문명교류의
관점에서 볼 때 리치의 가장 큰 업적은 유크리드의 『기하원본』(幾何
原本, 1605)의 번역소개이며,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 1608)
의 제작이다. 『곤여만국전도』는 중국 전래의 ‘천원지방’(天圓地方)설
을 뒤엎었고 중국 중심의 천하관을 부정했다.26)
리치는 중국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저술했던 책들이 일본에도 전
해져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를 바랐다. 일본인 또한 중국문자를 쓰기
때문에 한문으로 쓴 리치의 책들이 일본인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것
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리치는 파비오 데 파비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그레고리력과 곤여만국전도 등의 세계지도와 함께 『천주실의』나 『교
우론』등을 일본으로 보내줄 것을 부탁하였다. 히라카와 스케히로는
저서 『마테오 리치.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에서 리치는 서양
과학을 중국을 거쳐 일본에 전해 준 ‘문명전달의 회로’였다고 소개하
고 있다.27)
리치는 이렇게 여섯 가지로 대표되는 적응주의적 선교방침들을
꾸준히 실천하여 서양문물을 전파하고 유가들과 황제의 호기심을 유
26) 송영배,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 (2012), 241.
27) 히라카와 스케히로/노영희 옮김, 『마테오 리치.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 (서울:
동아시아, 2002), 369.
15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발하여 그들에게 접근하는 데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는 유럽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의 의복, 우리의
모습, 우리의 생활방식과 우리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중국인이 되었
다.”28) 이렇듯 문화적 적응을 통해 리치는 중국인들과 사상적인 측면
에서의 이질감을 없애고 천주교를 유교에 적응시킴으로써 천주교 전
파의 완전한 성공을 얻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들을 진정한 천주교인으
로 만드는 것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것은 문화적 적응주의 선교정책이
갖는 한계점이었다.
III. 『천주실의』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의 대화
마태오 리치가 그리스도교의 중국전교에서 보여준 선교방법은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를 통한 보유론적(補儒論的) 적응주의 선
교였다. 송영배는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에서 마태오 리치가 『천
주실의』에서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융합을 시도했다고 기술하고 있
다.29) 여기서 ‘융합’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여러 종류의
것이 녹아서 하나로 합침”이란 뜻으로서, 그리스와 오리엔트의 두 문
화가 융합해 출현한 헬레니즘 문화가 해당된다.30) ‘융합’은 어느 특정
한 종교문화체계에 압도되어 자신의 본래적 특성을 상실하는 종합적
28) Hoffmann-Herreros, Matteo Ricci. Den Chinesen ein Chinese sein-ein Missionar sucht
neue Wege (1990), 66.
29) 리치의 중국의 적응주의 선교를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융합’으로 표현하는 경우는 여
러 곳에서 발견된다(데이비드 E. 먼젤로, 『진기한 나라, 중국. 예수회 적응주의와 중국
학의 기원』, 2009, 91-114 참조).
30) 민중서림 편집국 편, 『엣센스 국어사전』 (경기도: 민중서림, 2007), 1841.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53
혼합주의(Synthetischer Synkretismus)를 의미한다.31) 따라서 송영배
가 사용한 리치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융합’이란 표현은
자종교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종합적 혼합주의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
리치가 『천주실의』에서 추구한 것은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종합적 혼
합주의로서의 융합이라기보다는 두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그리스도
교와 유교의 조화였다. 사전적 의미로 조화(調和)란, “서로 잘 어울리
게 함. 또는 잘 어울림”을 뜻하며32), 대화(對話)는 “마주 대하여 이야
기를 주고받음”을 의미한다.33) 조화와 대화는 두 주체간의 상즉상입
(相卽相入)의 상호소통을 뜻한다. 리치는 중국선교에서 유교와의 상
호존중의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교와 유교와의 조화를 꾀했던 것이다.
리치의 유교와의 대화는 ‘공생적 혼합주의(Symbiotischer Synkretismus)’34)
의 특징을 띠고 있으며, 대화의 목적은 중국인들에게 그리스도교에 대
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리치의 유
교문화에 대한 적응주의적 선교정책은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정체성
을 상실하는 혼합주의적이고 변증법적인 ‘제3의 그리스도교’를 창출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리치의 적응주의 선교는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융합이기보다는 대화와 조화 혹은 융화(融和)의 시도였다. 리치에게
적응과 융합, 적응주의와 혼합주의는 상이한 개념이다. 리치의 적응
주의는 주체(정체성)는 변하지 않는,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방편의 의
31) 김명희, “교신과 조신의 대승적 믿음을 통해 본 종교간 대화의 해석학 ‒ 원효의 『대승
기신론 소 ․ 별기』를 중심으로”, 「宗敎硏究」 제54집 (2009), 229.
32) 민중서림 편집국 편, 『엣센스 국어사전』 (2007), 2112.
33) 앞의 책, 599.
34) ‘공생적 혼합주의’란 상호 본래성을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지평이 확장되고 더욱 깊어
져 가는 상태를 일컫는다. ‘상즉상입(相卽相入)의 대화원리’와도 같다(김명희, “교신
과 조신의 대승적 믿음을 통해 본 종교간 대화의 해석학 ‒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 ․ 별
기』를 중심으로,” 2009, 229).
15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미에서의 적응이었다.
리치는 명대후기 양명학파가 유학을 불교와 도교에 혼합해 제설
통합 한 것 대신에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유교와
조화를 추구하는 종교 간의 대화를 제안하였다.35) 그는 유교와의 대
화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신앙관을 넓혀나갔다. 리치의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대화의 과정이 잘 나타난 것이 『천주실의』다. 리치는 『천주실
의』에서 왜 그리스도교가 불교나 도교가 아닌 유교와의 대화를 모색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상세히 밝히고 있다. 『천주실의』 전체가 불
교에 대한 비판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주요사상을 중국에 알림과 동시
에 유교와의 조화(調和)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풍응경(馮應京,
1555-1606)은 『천주실의』 초판 서문에서 “『천주실의』 는 중국의 육경
(六經)의 말들을 두루 인용하여서 그 ‘사실됨’(實)을 증명하고 불교나
도교에서 ‘헛됨’(空)을 논하는 잘못을 깊이 있게 비판하고 있으며, 나
아가 무아론(無我論)의 근원지인 인도를 공격하고, ‘중도’(中道, 天)
로써 ‘중국의 도리’를 교화하고 있다”고 소개한다.36) 『천주실의』에서
는 천주(天主, 하느님)가 허(虛, 無)가 아닌 실(實, 有)임을 논증한다.
『천주실의』는 무(無)와 공(空)을 내세우는 도교와 불교에 대한 그리스
도교의 논박서이자 천(天) 혹은 상제(上帝)를 숭상하는 중국의 원시
유교와의 화해를 모색한 대화록이다. 송영배도 『천주실의』는 그리스
도교의 본질적 내용인 계시신학 부분이 빠져 있기 때문에 교리서
(catechism)라고 볼 수 없고, 유교적 문화 풍토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수용하고 그것에 입문하게 할 수 있는 전교예비대화록(Pre-evangelical
Dialogue) 이라고 평한다.37)
35) 데이비드 E. 먼젤로, 『진기한 나라, 중국. 예수회 적응주의와 중국학의 기원』 (2009),
104.
36)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 (2012), 19.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55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유(有)와 무(無) 논쟁에서 시작된 『천주실
의』 상권의 유신론(有神論)에 대한 담론은 하권의 도덕론으로까지 확
장된다. 풍응경은 다시 한 번 초판 서문에서 “불교에서는 사람이 인륜
을 버리고, 할 일을 그대로 놓아두면서, [매사에] 집착하지도 물들지도
말라고 너절하게 말하며 요점은 윤회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으로
“윤회의 이론이 허탄”하다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불교는 개인의
일을 도모하는 데 지혜와 힘을 다하고 자기 몸 밖의 일에는 경계선을
그어서 나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불교는 자기 어버이만을 오로지
어버이로 받들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대하려”한다는 것이다.38)
리치는 『천주실의』에서 유신론적 신앙관과 인륜의 도덕성에 있
어서 불교가 유교나 그리스도교에 반(反)하고 있는데 반해, 유교의 유
신론적 신앙관과 도덕론은 그리스도교와 유사하다는 것을 논증해 보
인다. 이런 의미에서 『천주실의』는 불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비판서
라고 할 수 있다. 리치는 『천주실의』를 상, 하권으로 나눠 상권(제1~4
편)에서는 유신론적 담론을 통해, 하권(제5~8편)에서는 도덕론의 입
장에서 불교를 논박하고 있으며, 동시에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유사성
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리치는 그리스도교와 중국의 유 ․ 불 ․ 도에
대한 비판과 적응의 모색을 통해 중국의 상류계층에게 그리스도교를
알리고자 하였다. 비록 그의 불교와 유교와의 대화가 포괄주의적 태도
를 견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 안에서 그리스도교와의 접촉
점을 찾아 가는 리치의 노력은 당시 동서문명 교류에 토대가 될 수 있
었다.
다음은 『천주실의』에 나타난 불교에 대한 리치의 논박을 중심으
37) 송영배,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 (2012), 29.
38)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 (2012), 19.
15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로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대화의 목적과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대화 목적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대화 목적은 교육받고 개명된 중국의 사대
부들에게 그리스도교가 낯선 유럽의 종교가 아니라는 것을 제시함으
로써 그리스도교를 보다 더 쉽게 널리 전파하려는 데 있었다. 리치는
그리스도교의 효과 있는 선교를 위해 복음의 토착화가 중요과제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럽문화와 함께 들어온 그리스도교 복음을
유럽의 옷을 벗기고 중국문화라는 의복을 입히는 토착화의 작업이 필
요했다.39) 리치의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대화는 그리스도교의 토착화
와 예수회 적응주의 선교정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유학자와 그리스도
교 사제 사이의 대화 형태로 작성된 『천주실의』는 유교와의 대화를 통
한 그리스도교 전교서이다. 리치는 『천주실의』에서 허무(虛無)의 종
교관을 가지고 있는 불교와 도교에 대해 논박하면서 유교와 유사점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교를 중국인들에게 전파하고자 힘썼다. 『천주
실의』(1603)는 17세기 이래로 동서철학, 유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교류
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40)
리치는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유교가 그리스도교에서 배
척할 대상이 아닌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더욱
이 그는 중국의 고전에서 그리스도교의 주요개념들을 찾아내어 중국
고전들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
39) 이규성,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적응주의 도입과 그 발전과정에 대한 신학적 고
찰” (2012), 179.
40) 이정배, 『간(間)문화 해석학과 신학적 상상력』 (서울: 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2005)
참조.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57
다.41) 리치는 중국의 원시유교를 그리스도교적으로 해석하였고, 그리
스도교에서 선포하는 주요교리가 외래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중국의
문화 전통 안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밝혀냈다.42) 리치가 모색한 유교
와 그리스도교의 대화는 근대 동서 문명교류에 토대가 되었다.
리치가 보유론적 적응주의 선교방법을 선택한 것은 당시 아시아
의 3대 종교로 자리매김한 유교, 불교, 도교 가운데 유교가 가장 높은
평을 받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와도 유사한 점이 많다고 판단되
었기 때문이다. 리치는 유교가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에 의거해서 종교
적, 도덕적 차원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이론체계
라고 보았다.43) 그는 중국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였으며 원시유교전
통에서 지혜를 발견하여 이를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인정하고 수
용하고자 하였다.44) 특히 리치가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원시유
교였다. 원시유교의 유신론적 신앙과 도덕적 측면이 천주교와 유사성
을 지닌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유사성은 그리스도교가 유교와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이 되었다.
2.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의 존재론적 대화
마태오 리치는 『천주실의』상권에서 불교의 무(無)와 공론(空論)
을 비판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유신론적 신앙관이 원시유교의 상제관
(上帝觀)과 유사하다는 것을 밝혔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
41) 『천주실의』에 잘 나타나 있다.
42) 김혜경,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 역사와 의미』 (2012), 245.
43) 이규성,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의 적응주의 도입과 그 발전과정에 대한 신학적 고
찰”(2012), 190.
44) 앞의 논문, 179.
15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의 존재론적 대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리치는 중국 고유의 천(天) 숭배사상이 천주교의 하느님숭배사
상과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천주실의』에서 “우리(서양)
의 천주(天主)는 바로 (중국의) 옛 경전에서 말하는 ‘하느님’(上帝)”이
라고 제시하면서, 하느님(上帝)과 천주는 단지 이름만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였다.45) 공자조차도 지존자, 즉 하느님은 하나이지 둘이 될 수
없다고 인식하였다는 것이다.46) 주송(周頌)과 상송(商頌), 대아(大
雅), 주역(周易)에서도 하느님(上帝)을 유일한 지존자로, 백성을 굽어
살피고, 농사를 돌보시고, 왕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인격신으로 언급
하고 있다.47) 리치는 유가들의 육경(六經)에 나타나는 ‘상제’(上帝)와
‘천’(天)을 천주교의 하느님과 같다고 보았다. 이처럼 리치는 그리스
도교와 유교와의 대화의 접촉점을 원시유교의 유신론적인 신관에서
찾았다. 반면에 후대 신유학은 주희 등의 주석가들에 의해 무신론적
이학(理學)의 색체를 띠게 되면서 리치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특
히 이기설(理氣說), 태극설(太極說), 만물일체설(萬物一體說)은 리
치가 수용할 수 없는 종교적 사상들이었다. 리치의 그리스도교와 유교
의 만남의 절대적 기준은 존재론적 신을 상정하는 ‘유신론’(有神論)
이었다. 리치는 형이상학적 원리(理)로 전환된 상제개념은 그리스도
교의 하느님개념과 만날 수 없다고 파악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유신론
적 신관 때문에 리치는 불교와 도교의 공무설(空無說)을 숭상할 수 없
음을 분명히 하였다.48) 리치에게 있어서 종교 간 대화의 기준은 아리
45)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2012), 99와 103.
46) 앞의 책, 100.
47) 하느님(상제)을 왕을 부르신 존재, 풍년을 가져다 준 존재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런 상
제를 공경하고 섬겼음을 소개하고 있다(앞의 책, 100-103 참조).
48) 앞의 책, 73.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59
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와 실체개념이었고, 이를 토대
로 그는 신유학과 도교, 불교를 비판하였다.49)
리치는 불교의 공(空)과 도교의 무(無)를 그리스도교의 유(有) 개
념과 비교하여 허무의 텅빈 무와 공으로 이해하였다. 불교와 도교의
무와 공은 그리스도교의 존재자로서 ‘하느님’과 만날 수 없었다. 리치
는 하느님을 ‘공허한 것’으로 이해한 불교와 도교를 논박하였다.50)
“이제 ‘공’이니 ‘무’니 하는 것은 절대로 그 자체[속]에 아무것도 갖고
49) 『천주실의』 제2편에서 리치는 존재와 실체개념을 가지고 불교 및 도교, 그리고 신유학
에 대해 그리스도교와 비교하면서 비판하였다: 플라톤은 경험적 사물들로부터 추상
화되어 그들에 대한 보편성과 불변성을 보증해 주는, 이성적 사유의 대상을 ‘관념’으
로 정의한다. 이 관념들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경험세계의 시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
지 않다. 이러한 플라톤의 관념론을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비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개개 사물을 바로 그 사물이게끔 인식
시켜 주는 그 사물의 ‘보편성’과 ‘불변성’, 즉 그 ‘원리’ 또는 ‘형상’은 가변적인 경험세
계 속의 개별화된 개개 사물들 속에 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입장에 근거해 리치는
송명 이학(理學)의 ‘이’(理)가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개념과 상치된다고 주장한다. 그
것은 ‘이’(理)는 개체의 ‘형상인’(form)인으로서, 결코 자기 스스로에 의해 독립적 ․ 주
체적으로 존재하는 ‘실체’(自立者, Substance)가 아닌, 사물에 종속되어 있는 ‘속성’
(依賴者, Accident)이기 때문이다. 현실적 경험세계의 개개 사물들은 자체 안에 그 자
신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재료로서의 ‘질료’(質者, matter)와 동시에 그 구성의 원리
로서의 ‘형상’(模者, form)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질료’와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만물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 밖에 있는 ‘궁극적 원인’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끌려가고 있다. 따라서 형상인으로서 이(理)는 궁극적 원인이자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로서 ‘하느님’과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이 리치의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토마스 아
퀴나스의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을 통해서 속성으로서의 ‘이’(理)가 ‘하느님’, 즉 최초
의 운동자이자 만물의 창조주인, 그리고 자기의 존재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궁
극적 ‘인도자’ 또는 ‘원인자’로서 존재하는, ‘절대적 이성적 존재’인 하느님과 다르다
는 것을 주장한다(송영배,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 2012, 32-33). 이러한 관점에서
리치는 불교와 도교의 무(無)와 공(空)이 실체로서 존재자가 될 수 없음을 비판하였다.
50)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2012), 15 참조.
16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만물들에게] ‘형상’[性, form]과
‘질료’[形, matter]를 부여하여 물체가 되게끔 하겠습니까? 사물은 반
드시 참으로 존재해야만 비로소 ‘사물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참으로
있지 않으면 사물은 없는 것입니다.”51)
리치가 신유학과 도교, 불교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교의 시각에서 비존재, 비실체론적 이(理) ․ 공(空) ․ 무(無)론
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도교와 불교, 신유학에서는 만물과 인간 삶
의 근거가 되는 유신론적 인격신(天主)이 등장할 수 없다. 리치는 “도
교나 불교에서 ‘무’니 ‘공’이니 하고 말하는 것은 천주의 도리와는 서
로 크게 어긋나므로 그것을 숭상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52) 하지만 리
치는 도교와 불교를 “통렬히 배척”하는 중국 선비에게 “도교나 불교
의 무리도 역시 천주이신 위대한 아버지께서 내셨으니 우리의 형제”
라고 일깨워준다.53) 그는 우리가 해야 할 도리는 배척이 아니라 그들
을 이치로써 깨우치게 하는 것이라면서, 그 동안 유교의 서적들이 이
치를 통해 도교와 불교가 잘못된 것을 밝히지는 않고 두 종교를 미워
하며 오랑캐들처럼 그들을 배척하고 이단으로 물리쳤다고 비판한
다.54) 리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타종교에 대한 무조건적 비판과
배타적 태도가 아니라 이성을 통해 옳고 그름을 논변하는 것이었다.
논리적 대화 과정을 통해 마침내 여러 종교가 하나의 종교로 귀결될
수 있다고 리치는 확신했다.
51) 앞의 책, 77.
52) 앞의 책, 73.
53) 앞의 책, 74.
54) 앞의 책, 74-75.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61
“우리[서양]나라의 주변 나라들에도 상고 시대에는 삼교에 그치지 않
고 수많은 종교의 지파가 얽혀 있었습니다. 후대에 우리나라의 선비
들이 바른 이치로써 분석하여 이해시키고 선행으로써 감화시켰기 때
문에 지금은 오직 천주교 하나만을 따르고 있습니다.”55)
리치는 유럽의 다양한 종교들이 이성적 대화를 통해 천주교라는
하나의 종교로 귀결되었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유교, 불교, 도교 등이
대화를 통해 천주교로 귀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유 ․ 불 ․ 도 종교인들
도 모두 하느님의 피조물들로서 그리스도교의 형제라고 생각한 리치
는 그들과 쉽게 대화의 자리로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리치의 타종교
에 대한 입장은 그리스도교 중심의 포괄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가 공무설(空無說)을 주장하는 불교와
도교에 대해 무조건적 배타성을 견지하지 않고 이성적 대화를 시도하
였다는 점은 당시 크게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3.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의 도덕론적 대화
리치에게 있어서 유교와 그리스도교가 만나기 위한 두 번째 접촉
점은 도덕적 가르침이었다. 리치는 중국인들이 유신론적 신앙이 아닌
도덕적 헌신의 예(禮)와 덕(德)을 통해 구원을 추구한다고 믿었다.56)
그는 중국 사대부들의 학파가 제시하는 도덕적 이상이 대부분 그리스
도교의 이상과 일치한다고 파악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교의 윤리적 가
르침들을 칭송하기까지 하였다.57) 리치에게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 도
55) 앞의 책, 75.
56) Ricci-Trigault, 1장 10절, 104; 데이비드 E. 먼젤로, 『진기한 나라, 중국. 예수회 적응주
의와 중국학의 기원』 (2009). 107.
16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덕이었다. 때문에 그는 공자를 받드는 의례도 종교적인 것으로 해석하
지 않았다.58) 문관들이 향을 사르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공자의 신성
(神性)을 인정해서도 아니고, 공자에게 소원을 비는 것도 아니었다.
유교의 도를 깨친 스승으로서 그를 기념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였다.
더욱이 기념제로서 공자의례는 그리스도교의 참된 희생(犧牲)의 의
미를 담지하지 않았다.59) 리치는 유교를 종교로서, 공자를 신적 존재
로서 인정하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후에 그리스도교의 우상숭배금지
와 관련해 벌어질 공자의례 논쟁을 예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60)
리치에게 유교는 종교적 측면보다 윤리와 도덕적 측면에서 그리스도
교와 만날 수 있는 토착문화로 각인되었다.
리치는 『천주실의』 하권에서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윤리구도에
대해 상세히 논하고 있다. 그는 『천주실의』 제5편에서는 불교의 전생
설과 윤회설 및 살생계를 비판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재계(齋戒)61)와
소식(素食)62)에 대해 조명하였다. 제6, 7, 8편에서는 불교와 도교의 도
덕론을 논박하면서 그리스도교의 도덕적 가르침을 유교와의 비교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다음은 리치의 도덕적 가르침에 관한 유 ․ 불 ․ 도
와의 대화 내용을 세 가지 범주에서 조망하고자 한다.
57) Harris, George L., “The Mission of Matteo Ricci, S.J.,” Monumenta Serica 25(1966), 127.
58) 히라카와 스케히로, 『마테오 리치. 동서문명교류의 인문학 서사시』 (2002), 167.
59) 리치의 『보고서』 제1권 10장 참조(앞의 책, 167-168).
60) 앞의 책, 169.
61) 재계(齋戒)란, 종교의식을 치르기 위해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하
는 것을 말한다.
62) 소식(素食)이란, 음식에 고기나 생선 따위를 쓰지 않고 채소류만으로 만든 음식을 가
리킨다.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63
1) 생태 및 절제의 도덕론
『천주실의』 제5편에서는 불교의 윤회설과 살생계를 논박하면서
생태 및 절제의 도덕론에 대해 논하고 있다. 리치는 불교의 윤회사상
은 그리스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지어낸 “기괴한 이론”이 전해진 것이
라고 비판하면서, “인도는 미미한 나라”로서 “문화나 예법의 가르침
도 없고 덕을 실천하는 풍조도 없다”고 논박한다.63) 덧붙여 윤회설이
잘못된 도리를 표방하고 있음을 그리스도교의 시각에서 논증한다.64)
리치는 만일 윤회설이 정설이라면, 결혼도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다.
63)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2012), 233-234.
64) 리치는 불교의 윤회설이 잘못된 도리임을 여섯 가지 이유를 들어 논박한다. 첫째, 사람
은 본래 존재[본성]의 지능[靈, intelligence]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없어질 수 없다. 따라서 그 지능대로라면 사람의 영혼이 다시 태어날 경우 전생을 기억
해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둘째, 하느님이 창조 시 사람과 짐승에게 각
각 다른 혼을 부여했는데, 만일 사람이 죽어 내생에 짐승으로 태어난다면, 짐승의 혼
중에는 영특한 혼과 우둔한 혼이 구별되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그 또한 불가능하다.
셋째, 세상의 혼에는 생혼(초목들의 혼), 각혼(짐승들의 혼), 최상급의 혼(사람들의 혼)
이 있는데, 만약 윤회로 인해 짐승과 사람의 혼이 하나로 된다면 이것은 세상의 통론을
어지럽히는 것이기에 모순이 된다. 넷째, 사람의 혼은 다만 자기의 몸과 합할 뿐이지
남의 몸과 합해질 수는 없다. 더욱이 새나 짐승들과 같은 다른 부류의 몸과 사람의 혼
이 합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리치는 “사람의 영혼이 혹시 다른 사람의 몸에
가탁해 있거나 혹은 짐승의 몸에 들어가 현세에로 환생한다”는 석가모니의 말은 허튼
소리라고 비판한다. 다섯째, “사람의 혼이 짐승으로 변한다”는 말은 사람들이 전생에
저지른 부정한 짓거리가 어떤 짐승의 짓거리를 닮았기에, 천주께서 그들을 벌한 것이
라고 의심해서 생긴 말이지, 사실 천주가 내린 벌이 아니다. 사특한 사람들은 평생 자
기의 인륜 도덕을 파괴하며 마음속에 쌓아 둔 악행을 멋대로 하려고 하기에 이들은 짐
승으로 변하는 것을 형벌이 아닌 오히려 은혜로 여긴다. 하지만 지극히 공정한 천주는
절대 그런 불공평한 벌은 주지 않는다. 따라서 리치는 윤회라는 거짓되고 허황한 말은
악을 막고 선을 권하기에도 무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입힌다고 비판한다. 여
섯째, 불교인들이 살생을 금지하는 것은 도살당하는 소나 말이 돌아가신 부모의 후생
(後生)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서다. 그러므로 리치는 사람이 짐승으로 변할 수 있다
는 말을 전면 부정한다(앞의 책, 238-246).
16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즉 나의 배우자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환생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
다.65) 또한 야단치고 부리는 하인도 전생에 형제나 친척, 임금이나 스
승, 친구일 수 있다는 것이다.66) 천주교의 교리에 따르면 채소와 땔감
뿐 아니라 짐승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살해해 생명을 보양시키는 일에
사용할 수 있는데, 리치는 불교의 윤회설은 그렇지 못하다고 비판한
다.67) 한 마디로 불교는 윤회설을 주장하면서 초목과 채소의 피는 가
볍게 여겨 먹는 것을 허용하고, 짐승의 피는 중하게 여겨 살생을 금지
시키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68) 그리고 불교의 살생의 금계
가 오히려 가축의 양육을 크게 해치게 된다고 주의 시킨다. 일예로, 이
슬람교도들이 교리로 인해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되자 돼지가 멸종위
기에 처해졌다는 것이다. 이렇듯 ‘어떤 것’을 사랑하여 금기시 하면 결
국 ‘그것들’을 해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그것’을 살해하면 오히려 ‘그
것들’을 살리는 것이라고 리치는 주장한다.69) 리치는 『천주실의』 제5
편에서 불교의 윤회설을 논하면서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서로 상반되
는 생태도덕론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리치는 재계(齋戒)와 소식(素食)을 살생의 금계 때문에 한
다면 그것은 작은 동정심일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재계
와 소식에 대해 소개한다. 즉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지은 잘못(不善)
에 대해 비록 용서를 받았다고 해도 자신은 그것을 기억하며 부끄러워
하고 후회한다는 것이다. 고로 반성하는 자로서 희희낙락할 수 없기에
마땅히 “밥과 반찬을 적게 먹고 반찬 중에서 고기의 맛을 물리치고 오
65) 앞의 책, 247.
66) 앞의 책, 248.
67) 앞의 책, 255.
68) 앞의 책, 257.
69) 앞의 책, 258.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65
로지 담백한 채소만을 섭취”하게 되어 자연히 재계와 소식을 실천하
는 것이라고 주장한다.70) 리치에 따르면 재계와 소식의 절제생활은
사람이 도덕적인 생활을 하게 해주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먹고 마시는
일로 사람들은 사욕과 쾌락에 사로잡힐 수 있고, 도(道)를 배우고 실천
하는 일에 게을리 할 수 있다.71) 나아가 자기 생명마저 잃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72) 그런데 올바른 선비(君子)는 재계와 소식을 통해 도덕
을 닦는 일에 쾌락을 느끼고, 덕을 실천하는 일에 즐거움을 맛보게 된
다.73) 이처럼 리치는 『천주실의』제5편에서 불교의 윤회설과 재계 및
소식에 관한 비판적 담론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생태 및 절제의 도덕론
을 대안으로서 소개하고 있다.
2)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도덕적 행위와 응보론
제6편에서는 인간은 의지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선행과 악행을
하게 되고, 이에 따라 천당과 지옥의 상벌로써 선악의 응보를 받게 된
다고 설명한다. 『천주실의』에서 중국 선비가 “군자(君子)가 선을 행함
에는 아무런 다른 의도(intention)가 없다”고 말하자, 리치는 그러한 입
장은 불교나 도교의 공무설(空無說)에서 나온 논의라고 반박한다.
“의를 없애라!”(滅意)는 이론은 이단, 즉 불교나 도교의 말이며 유교
선비들의 본연의 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74) 리치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에 인간의 행동에는 ‘이성적 욕구’(意, rational appetite, 즉
will)가 있으며, 의지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선행과 악행을 실천하게
70) 앞의 책, 259-260.
71) 앞의 책, 263.
72) 앞의 책, 264.
73) 앞의 책, 266.
74) 앞의 책, 275.
16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되고,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한 상벌의 평가를 받게 된다고 말한다.75) 리
치에게 ‘의’(意)란 의지(will) 또는 자유의지(free will)를 의미한다. 따
라서 중국 선비가 말하는 “의도가 없는”[無意] 순수한 도덕행위를, 리
치는 “의지가 없는” 행위로 이해하였고, 중국 선비에게 그것이 불가능
함을 논증하였다.76) 그에 따르면 불교와 도교는 인간 존재를 무(無)나
공(空) 혹은 무아(無我)나 무존재(無存在)로 보기 때문에 거기에는 의
도하는 행위의 주체가 있을 수 없다. 도덕적 주체가 없는 한 행위의 의
지 혹은 자유의지가 부재하게 되고, 그런 행위는 도덕적 행위가 될 수
없다. 리치는 의지는 마음에서 발동하는 것으로서 쇠나 돌이나 초목들
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의지도 없다고 말한다.77) 따라서 무아(無我)와
무자성(無自性)을 주장하는 불교는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없을 뿐더러
그것에 대한 선악의 상벌도 천주로부터 받을 수 없게 된다. 리치는 무
위론(無爲論)을 주장하는 『노자』와 『장자』에도 “하지도 말고, 생각도
말고, 논변하지도 말라!”라는 비도덕적인 말이 있다고 비판한다.78) 반
면에 유교에서는 “의지를 성실히 함”(誠意)으로써 “마음을 바르게”
(正心) 하라는 의지론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긍정적 평가를 내린다.79)
리치는 『대학』(大學)의 첫머리를 인용하여 “[바른 마음이] ‘자신을 수
양하여 집안을 가지런히’하고 ‘나라를 다스려서 천하를 태평’하게 하
75) 송영배,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2012), 28. 리치는 선행을 하는 사람은 ‘올바른 의
지’[正意]의 세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급은 천당에 오르고 지옥[의 고통]을
면하려는 의지이고, 중급은 천주의 은덕을 두텁게 입은 것에 보답하려는 의지이며, 상
급은 천주의 성스러운 뜻에 화합하여 순명하려는 의지라고 말한다(마테오 리치, 『천
주실의』, 2012, 304).
76) 앞의 책, 275.
77) 앞의 책, 282.
78) 앞의 책, 278.
79) “儒者, 以 ‘誠意’ 爲 ‘正心.’”(앞의 책, 275).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67
는 뿌리와 바탕이[라 했으니], 어찌 [인간의] 의지(will)가 없을 수 있겠
습니까?”라며 중국 선사에게 유교도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인간
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고 알려준다.80) 리치는 불교나 도교와는 달
리 유교야말로 그리스도교와 동일하게 인간의 이성적 의지와 자유의
지를 통해 선악의 행위를 판별해 실천하고, 그 행위의 결과에 따라 천
당과 지옥의 상벌을 천주로부터 받게 된다고 이해하였다.
또한 리치는 『천주실의』에서 도덕적 행위의 근거가 되는 그리스
도교의 천당지옥설과 불교의 윤회설이 서로 다름을 논증하였다. 불교
에서 사용하는 허망한 존재(虛無)라는 것은 잘못된 개념인데, 그리스
도교에서는 허무가 아닌 실유(實有), 즉 실재하는 존재를 지극한 이치
(理)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나아가 불교인들이 말하는 악인들의 윤
회와 선인들의 극락왕생은 이로움(利)만을 말하는 데 그칠 뿐이라고
비판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천당과 지옥은 이로움과 해로움을 명백히
드러내어 사람들을 의로움(義)에로 인도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불교는 사람들이 윤회에서 벗어나 극락왕생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종교인데 반해, 그리스도교는 지옥과 천당의 의미를 밝혀 사람들로 하
여금 의롭게 살게 하는데 그 목적을 둔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치는 현
명한 사람들은 천당과 지옥이 없다고 해도 덕을 닦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81) 그리스도교에서는 불교에서처럼 보답(응
보)을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니라, 보답이 없을 지라도 덕 자체가 목적이
되어 덕을 닦는 일에 힘쓴다는 것이다. 선한 행위의 보답은 하느님이
‘나 자신’에게 하는 것이지, 자손이나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해 이루는
것이 아니다. 즉 불교의 윤회설처럼 나의 행위의 응보가 내생의 다른
80) 앞의 책, 275-276.
81) 앞의 책, 310.
16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몸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리치는 불교의 인과응보를
통한 윤회의 도덕론은 “우주 안의 변함없는 이치를 혼란스럽게 만드
는 것”이라고 비판한다.82)
중국선비가 천당과 지옥의 존재를 묻는 말에 리치는 “무릇 사물
의 부류는 각각 본성에 따라 ‘목적’(志向)이 있어서, 그것이 목적에 이
르게 되면 반드시 안정되어 멈추게” 되는데, 사람들이 지향하는 모든
소망들은 이 세상에서 그 목적을 이루기가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이
세상에서는 모두가 불만족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삶의 궁극적 목적
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온전한 복락을 얻기 위
한 ‘곳’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곳’이 바로 내세의 천당이라고 리치는 말
한다. 이와 같이 리치는 불교의 윤회설과는 달리 인간의 소망을 성취
할 수 있는 최종 목적지로서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천당이 존재해야
함을 역설하였다83)
천당과 지옥은 하느님(天主)과 같이 실재적 존재로서 인간의 선
악의 행위에 대한 응보에 관여한다.84) 리치는 천당과 지옥의 개념은
유교 경전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의미론적으로 이미 여
러 곳에서 표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시경』, 『상서』 등에서 “위에 계시
도다!”, “하늘에 계셨습니다.”, “하느님(上帝)의 좌우에 계시도다!”라
는 표현이 천당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다.85) 리치는 천당이 있으면
지옥은 저절로 있는 것으로서 둘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고 하면서, “문
왕(文王)과 은나라의 임금들과 주공(周公)이 모두 천당에 올라가 있
다면, (폭군인) 걸(桀)임금과 주(紂)임금, 도척(盜跖)은 반드시 지옥에
82) 앞의 책, 313.
83) 앞의 책, 314-315.
84) 앞의 책, 314-318 참조.
85) 앞의 책, 321-322 참조.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69
내려가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86) 따라서 리치는 유교의 서적에 천
당과 지옥이 분명히 언급되지 않았더라도 천당과 지옥의 존재를 믿을
것을 당부한다.87) 천당과 지옥의 응보는 불교와 유교도 믿는 것으로
유가 중에 지혜로운 이들 역시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88) 리치에게 ‘군
자’(君子)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천당과 지옥
의 이치를 믿는 자다.89)
리치는 천국을 존재론적으로 실재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천
국은 “하느님이 선한 사람들을 위하여 만든 완전한 복락의 처소”다.
“항상 유쾌하고 즐거워하여, 근심과 분노와 슬픔과 통곡의 고통이 없
는 곳이고, 항상 한가하고 평화로워 위험이 없는 곳”이다.90) 선인(善
人)이 가는 천당은 그리스도교인의 궁극적 목표다. 천당과 지옥의 존
재는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적 선한 행위(혹은 義로운 행위)를 하게 함
으로써 마침내 “복락 즉 천당”에 이르게 한다.91) 하지만 리치가 이해
한 불교와 도교는 그리스도교와 같은 목적론적 구원관을 제시하지 않
는다. 사람들은 행위(업)의 결과에 따라 다시 윤회의 세계에 태어나야
한다. 그 윤회의 세계는 꼭 천당인 것은 아니다. 업의 정도에 따라 다양
한 세계에 태어난다. 리치가 보기에 이러한 불교의 윤회관은 그리스도
교의 (일회적) 천당과 지옥보다는 도덕적 책임을 불러일으키기에 부
족하다. 이번 생(生)에 나쁜 업을 쌓았더라도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
악업을 선업으로 바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의 구원관은 한 번의 삶이 영원한 지옥과 천당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
86) 앞의 책, 322.
87) 앞의 책, 324-327.
88) 앞의 책, 329.
89) 앞의 책, 326-328.
90) 앞의 책, 333.
91) 앞의 책, 330-336.
17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람들은 현세의 삶에서 선업을 쌓는 일에 전력해야 한다. 따라서 리치
는 그리스도교의 천당과 지옥의 응보론이 인간을 도덕적 삶으로 인도
하는데 불교의 윤회관보다 더 구속력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리치는 천당이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은총으로 가
는 곳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선한 행위를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천당으로만 묘사하였다. 리치는
그리스도교의 특수성-예수그리스도-보다는 보편성-도덕론-을 통해
유 ․ 불 ․ 도(儒佛道)와의 대화를 모색하였다.
이와 같이 리치는 『천주실의』 제6편에서 그리스도교의 실재적 존
재론을 통해 인간의 의지의 작용으로서 선악의 도덕적 행위와 천국과
지옥의 응보적 도덕론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그리스도교의 도덕론
은 도덕적 행위의 주체로서 ‘나’(我)가 전제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리치는 무아론(無我論)과 (허)무의 세계관을 내세우는 불교와
도교에서는 그리스도교에서와 같이 의지의 작용으로서의 의(義)로운
도덕적 행위가 불가능하다고 파악하였다. 더욱이 그는 불교의 윤회론
은 내생에 태어날 다른 몸에게 인과응보의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에 이
상적 도덕론으로서 회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
는 도덕론적 대화에 있어서 불교와 도교를 무조건적으로 배타하지 않
았다. 오히려 유교인일지라도 천당과 지옥의 도리를 왜곡한다면 그는
군자가 될 수 없다고 경고하였다.92)
이렇듯 리치의 유 ․ 불 ․ 도와의 대화는 무조건적인 배불보유론(排
佛補儒論)의 입장이 아니었다. 리치는 종교 간 대화의 보편적 주제인
도덕론의 관점에서 유 ․ 불 ․ 도와의 대화를 모색하였으며, 그리스도교
92) “그렇다면 [천당과 지옥의 도리를] 왜곡하고 반대하는 이는 반드시 군자가 아닐 것입
니다.”(앞의 책, 330).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71
의 도덕론을 중심으로 세 종교의 도덕론을 평가하였다. 그는 불교의
윤회설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유교 경전에서 조차도 천당과 지옥의
이치를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리치는 그리스도교의 천당과
지옥론의 의미를 밝히면서 모든 이들이 천당과 지옥의 존재를 믿을 것
을 당부하였다.
3) 도덕적 수양론
『천주실의』 제7편에서 리치는 유교와의 비교를 통해 제6편의 도
덕론을 ‘도덕적 수양론’으로 발전시켰다. 리치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
의 선(性之善)은 가능태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닦아 계발하는 본성수
양(習性)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93) 그는 인간의 도덕적 자기완성
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유교의 성선설(性善說)을 그리스도교적으로
변용하여 논지를 펼쳤다. 리치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性
善)는 것은 하느님(천주)으로부터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양선
(良善)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양선은 인간이 선으로 나갈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만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은 자기의 이성적인 의지의 실
현을 통해 본성적 선을 계발해야 한다는 것이다.94)
리치는 사람의 본성은 원래 선(善)하지만, 인간이 선택한 자유의
지에 따라서 선도 악도 다 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악한 행위는 본성이
악해서가 아니라, 선의 부재(無善)에서 오는 결과라는 것이다.95) 인간
의 성정(性情)은 선하지만 덕을 쌓은 사람만이 선하다.96) 리치는 선을
93) 송영배,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 (2012), 28.
94) 리치는 ‘도덕수양론’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원인설을 토대로 전개하고 있다. 앞의 책,
40.
95) 이러한 리치의 입장은 악의 문제로 고민했던 중세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
와도 일치한다.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 (2012), 345.
96) 앞의 책.
17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본성의 선인 양선(良善)과 덕행의 선인 습선(習善)으로 구분하였다.
양선은 천주가 우리에게 본래부터 부여한 선으로, 인간의 공로가 전혀
없는 선이다.97) 반면에 습선은 인간들 스스로 배워서 쌓아올릴 수 있
는 선이다.98) 습선이 곧 덕이다. 타고난 본성이 아무리 선하더라도 그
것을 꾸며 줄 덕이 없다면 칭찬받을 수 없는 것이다.99)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이성(intellect, 司明者)의 기능은 추론
을 통하여 사물이나 사태에 대한 시비(是非)와 선악을 변별해주는 인
식능력인데 반해, 이성적 욕구, 즉 의지(will)의 역할은 인간이 도덕적
선을 구현할 수 있게 해준다. 리치는 이런 아퀴나스의 생각을 중국적
으로 변용하여, 인간의 이성(司明, reason)의 큰 공능은 사회적 의(義)
의 인식에 있고, 이성적 의지(司愛, will)가 추구하는 것은 인(仁)의 실
천에 있다고 보았다. 올바른 선비(君子)는 어짊(仁)과 도의(義) 모두
를 소중하게 여긴다. 또한 오직 이성만이 인의 선함이 어디에 있는지
를 인식할 수 있다.100) 그런데 인은 의의 최고의 핵심이다. 인이 지극
하면 이성의 활동이 더욱 분명해지는데 군자의 배움은 인을 위주로 한
다는 것이다.101)
리치는 ‘어짊’(仁)이란 천주를 사랑하고 남(사람)을 사랑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102) 천주를 사랑하는 것과 남을 사랑하는 것은 둘이지
만 하나다. 즉 동전의 양면과 같다.103) 그는 『논어』에서도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97) 앞의 책, 346.
98) 앞의 책, 346-347.
99) 앞의 책, 348.
100) 앞의 책, 355.
101) 앞의 책, 356.
102) 앞의 책, 358.
103) 앞의 책, 363.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73
서, 어떻게 진실 되게 하느님(上帝)을 섬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반문
한다.104) 리치는 그리스도교의 인간윤리가 중국인들(유교)이 추구하
는 윤리이상, 곧 인(仁)과 의(義)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중에서도 인간다운 사랑의 실천, 즉 인(仁)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면
서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윤리이상이 동일함을 제시하였다.105)
리치는 인(仁)의 도리를 통해 불교와 도교를 비판하였다. 천주가
인간들에게 내려 준 공부란 부처나 노자가 말하는 허망(空)이나 없음
(無)이라는 고요한 관념적인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주의 가르
침은 모두 참된 정성(誠)과 사실(實)들로써 사람의 마음을 오묘한 사
랑의 도리(仁道)로 인도하는 가르침이라고 한다.106) 따라서 리치는
불교나 도교의 가르침은 인(仁)의 실천이 없는 관념적 가르침이라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비판은 리치가 불교나 도교를 허무주의적 종교로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불교에서도 대승불교의 보살
도와 같이 자비로서 인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교리가 있다는 것을
리치는 간과하였던 것이다.
이렇듯 리치는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의 도덕적 가르침을 통해
종교 간의 대화를 시도하였다. 송영배는 리치의 『천주실의』가 그리스
도교의 핵심내용인 계시신학 부분을 빼놓은 채 작성되었다고 비판하
지만,107) 리치가 계시신학을 다루지 않았던 것은 계시신학이 유 ․ 불 ․
도, 특히 유교와의 대화 시 장애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리스도교의 특수계시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와 타종교와
의 대화 시 주된 걸림돌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108) 리치는 그리스도교
104) 앞의 책, 369.
105) 송영배,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 (2012), 41-42.
106) 마테오 리치, 『천주실의』 (2012), 376.
107) 송영배, 『동서철학의 충돌과 융합』 (2012), 29.
17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의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을 통해 유 ․ 불 ․ 도와의 대화를 모색하고자 하
였다. 그는 종교간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은 보편성을 실재적 존재론에
근거한 유신론적 신개념과 도덕성에서 찾았다.
4. 종교의 혼합주의 비판
리치는 『천주실의』 제7편에서 불교와 도교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
였다. 유학자들이 불교와 도교를 폐지시키지 못하고 사원(寺院)이나
도관(道觀)을 세워 ‘신상’(像)에 절한다고 질책하였다. 우주에 주인
곧 천주는 한 분뿐인데, 다른 주인들을 모시면서 숭배한다는 것은 큰
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109) 리치는 불교와 도교는 이단으로서 그리
스도교만이 참 종교임을 표방하였다. 불교와 도교의 교리들은 천주
(天主)를 존숭하지 않고 오직 자기 한 몸만 높이 보게 하는 거짓교리라
는 것이다. 리치가 특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불교의 윤회설이었
108) 물론 리치는 『천주실의』 제8편에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강생한 구세주이자 하느님
(天主)과 동일한 존재로서 예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성자(聖者)로서 예수는 “하느
님을 부지런히 흠숭하며, 겸손하게 스스로를 다스리는” 자였고, “말하는 바나 행하는
바는 사람들을 뛰어넘어서 [행하는] 모두가 사람의 힘으로는 반드시 미칠 수 없는”
것을 행한 신적 존재라고 기술하고 있다. 리치는 한(漢)나라 명제(明帝)가 이러한 예
수의 특별한 행적과 존재에 대해 알고 사신을 서양에 파견해 성경을 구해 오라고 지
시했는데, 사신이 잘못하여 중도에 인도에 들러 불경을 가져오게 되었고, 그래서 불
교가 중국에 전파되었다고 안타까워하였다. 그러면서 리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불교에 속임을 당하여 올바른 도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고 통탄하였다. 리
치의 이 말 후에 『천주실의』의 대화자 중국 선비는 천주교로 개종할 것을 결심하였다.
비록 유신론과 도덕론이라는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주제를 통해 유불도와 대화하면
서 그리스도교를 소개하였던 『천주실의』였지만, 결어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로 마무리 하면서 중국선비의 개종을 끝으로 책의 집필을 완료하였다(마테오 리
치, 『천주실의』, 2012, 423-431).
109) 앞의 책, 379.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75
다. 인간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일이나, 짐승들도 불법(佛法)을 들으면
도리를 이룬다는 주장이 리치에게는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교리
였다. 윤회가 사실이라면 혼인 또한 ‘올바른 도리’가 될 수 없다고 역
설하였다. 윤회설에 따르면 굳이 남녀가 결혼해 인류를 이어나갈 필요
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출가자들의 결혼 금기에 대해서도 인류를 멸
망시키는 일이라며 통렬히 비판하였다.110)
리치는 불교의 불상숭배와 불경(佛經)암송에 대해 “천주의 바른
도리를 크게 해치는 이단”으로 규정하였다.111) 그는 불경암송을 통해
서 천당에 간다면 죄가 크고 악이 극에 달한 사람도 천국에 갈수 있게
되는 모순이 생긴다고 논박하였다. 불경암송이란 불경을 큰 소리로 읽
거나 ‘나무아미타불’을 암송하는 것이다. 자기 의지에 따른 도덕적 행
위 없이 불경의 단순 암송하나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하는 불교 교리
를 리치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무아미타불’을 헤아릴 수 없이 큰 소리로 외운다면, 전에 지은 죄
를 면하고 죽은 후에 화평하고 행복하게 되며 재앙이 없어진다고 합니
다. 이와 같이 쉽다면 바로 지옥에서도 천당에 올라갈 수 있지 않겠습
니까?”112)
리치는 천주(天主)의 은총을 구하지 않고,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
치지도 않으며, 마땅히 지켜야 될 계율을 논하지 않는 불교와 도교에
대해서 거짓교리를 내세우는 종교라고 비판하였다. 리치에게 참된 종
교란 천주에 대한 믿음과 인과응보의 올바른 도덕적 가르침을 따르는
110) 앞의 책, 381.
111) 앞의 책, 382.
112) 앞의 책, 383.
17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천당과 지옥을 통해 사람의 사후 도덕 심판에
대해 정당한 교리를 내세우는 종교인데 반해, 불교와 도교는 그렇지
못하다고 리치는 판단하였다.113)
리치는 귀신과 마귀들이 들어간 불교와 도교의 우상들은 사람들
을 거짓으로 유혹하여 우상숭배자들의 영혼을 지옥으로 떨어지게 만
든다고 경고하였다. 그는 사람들이 “상들을 조각하여 황금을 칠한 자
리에 안치하고 절하고 제사지내니, 슬픈 일”이라고 통탄하였다.114)
이와 같이 불교와 도교의 우상숭배론과 도덕론에 대해 비판적 태
도를 보이고 있는 리치는 당시 중국인들의 삼함교(三函敎)주장—“유
교, 불교, 도교가 몸은 하나요 머리는 셋”115)—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
였다.116)
“삼교(三敎: 유교, 불교, 도교)는 세 사람에 의하여 세워졌습니다. 공
자는 노자의 도리에서 취함이 없이 유가(儒家) 학파를 세웠습니다. 석
가모니는 도교와 유가학파에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또한 중
국에 불교를 세웠습니다. 무릇 세 종파는 자기의 뜻이 서로 같지 않았
습니다. 그러나 이천년 후에 그 세 사람의 뜻을 억측하여서 그것을 억
지로 같다고 한다면, 역시 속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세 종교는 하나
[도교]는 무(無)를 숭상하고, 하나[불교]는 공(空)을 숭상하며, 하나
[유교]는 ‘진실로 있음’[誠有]을 숭상합니다. 세상에 서로 동떨어진
사실 중에서 허(虛)와 실(實), 유(有)와 무(無) 보다 더 거리가 있는 것
은 없습니다.”117)
113) 앞의 책, 383.
114) 앞의 책, 385.
115) 앞의 책, 386.
116) 앞의 책, 386-390 참조.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77
리치는 유 ․ 불 ․ 도 삼교는 서로 주장하는 바가 전혀 다른 종교로서
억측하여 하나로 통합할 수 있다고 보는 종교적 혼합주의에 대해 철저
히 반대하였다. 또한 그는 각 종교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
체성으로 변용하는 종교 간의 혼합주의적 융합을 거부하였다. 리치는
불교와 도교는 무(無)와 공(空)을 숭상하는 종교로서 그리스도교에
반(反)하는 종교라고 인식하였고, 반면에 유(有)를 내세우는 유교는
그리스도교에 가까운 종교라고 이해하였다. 중국인들의 삼함교가 불
합리 하였던 것은 불교와 도교는 유교와는 전혀 다른 교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불교는 살생을 금하는 데 반해, 유교는 희생제물을 써서 제
사를 지내야 하는 것처럼, 삼교는 각각 근본 계율이 달라 서로 만날 수
없다고 파악한 것이다.118)
“삼교를 [한꺼번에] 따르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따를 만한 교파가
하나도 없게 되는 편이 낫습니다. 따를 만한 교파가 없으면, 반드시 따
로 바른 길을 찾을 것입니다. 저들 셋을 [동시에] 좇은 사람은, 교리에
여유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도 얻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바른 도리를 배우지 않고서, 사람들이 꿈속에서
떠들어 대는 도리를 좇아가야 합니까?”119)
“진리는 오직 하나일 뿐입니다. 도리가 진리와 꼭 맞아떨어지면, 따라
서 [어느 믿음이든] 영화롭게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진
리]를 얻지 못하면, 뿌리가 깊게 박힐 수 없습니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도리가 확정되지 못합니다.”120)
117) 앞의 책, 388.
118) 앞의 책, 389.
119) 앞의 책.
120) 앞의 책, 389.
17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결국 리치는 참된 ‘도리’를 전하는 종교는 그리스도교뿐이라고
믿었다. 잘못된 도리를 전하는 유 ․ 불 ․ 도(儒佛道)가 혼합주의적 삼함
교(三函敎)가 되어 중국인들을 오히려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
다. 그는 참된 도리를 가르치지 않는 종교들 간의 혼합주의적 만남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다.
많은 이들이 리치의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만남을 ‘융합’으로 표
현하는데, 이것은 리치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는 융합의 의미로
서 혼합주의적 대화가 아닌 그리스도교 중심의 포괄주의적 대화를 추
구하였다. 그리스도교만이 하나의 참된 진리를 갖고 있으며 유교나 불
교, 도교의 신자들은 그 진리를 배우고 따라야 함을 역설하였다. 리치
의 유 ․ 불 ․ 도와의 대화의 목표는 중국인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것이었다.
IV.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리치의 적응주의적
대화의 특징과 한계
지금까지 『천주실의』에 나타난 마태오 리치의 유 ․ 불 ․ 도와의 대
화를 해석학적 방법을 통해 고찰하였다. 이 분석결과를 토대로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리치의 적응주의적 대화가 갖는 특징과 한계를 조망
해 보고자한다. 비록 리치의 종교간 대화가 포괄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의 적응주의적 대화의 노력들이 타종교‧타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만은 틀림없다. 종교
간 대화의 모델로서 리치의 적응주의는 21세기 다종교‧다문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특징과 한계’를 통해 미래의 종교간 대화를 위
한 새로운 대화방법을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79
다음은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리치의 적응주의적 대화가 갖는
특징과 한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1. 대화의 특징
1) 보편성을 통한 대화
종교 간의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 간의 ‘다름’에서
오는 간격을 화해하지 못해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교의 ‘다름’
은 종교의 정체성과 특수성으로 나타나 타종교 ․ 타문화 간에 배타적
태도를 발생시킨다. 이 배타성이 종교 간의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는
주요인이 되어 왔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
고 종교는 문화의 실체라고 정의하면서 종교와 문화의 긴밀한 연관성
에 대해 강조한다. 즉 종교와 문화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를 갖
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문화가 다른 문화와 만나 조화를 이
루기 위해서는 두 문화의 실체로서 작용하는 종교 간의 대화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다. 특히 종교와 사회가 일원화 되었던 16세기에 유럽
과 아시아가 만나기 위해서는 두 대륙의 종교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
다도 중요하였다. 그래서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된 마태오 리치
는 중국의 종교들인 유교, 불교, 도교와의 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리치의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와의 대화는 종교의 공통점, 즉 보
편성을 통한 대화였다. 이것은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공통기반을 출발
점으로 추구하는 종교 간의 대화 유형과 일치 한다. 『천주실의』에서
리치는 유신론(有神論)과 도덕론이라는 종교의 동일성 혹은 보편성
을 통해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 간의 대화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그
리스도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특별계시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
으로 하는 ‘차이’의 대화는 시도하지 않았다. 물론 『천주실의』제8편
18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말미에 예수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121)전체적으로 하느님(天主) 개념
만을 가지고 불교의 공(空)과 도교의 무(無), 유교의 상제론(上帝論)
에 대한 비판적 담론을 전개하였다. 실재적 존재론, 즉 유신론(有神
論)을 토대로 하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Deus)은 유교의 상제(上帝)
와 만나 천주(天主)라는 이름까지 얻게 되었다. 반면에 비인격적이고
무신론(無神論)적인 불교의 공(空)과 도교의 무(無), 신유학의 이치
(理)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상치되는 개념이었다. 리치는 불교와
도교의 공무설(空無說)을 반박하면서 원시유교의 상제와 같은 개념
으로서 그리스도교의 천주를 설파하였다.
리치의 종교간 대화의 두 번째 주제는 도덕론이었다. 리치는 『천
주실의』에서 불교의 윤회설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의 다
양한 도덕론을 기술하였다. 나아가 그는 실재적 존재론의 시각에서 도
덕론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 간의 대화를 모색하였다. 모
든 종교가 공유하는 도덕적 담론은 종교의 공통기반으로서 종교 간의
대화를 가능케 한다.122) 때문에 리치는 도덕을 통해 그리스도교와 유
교가 만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반면에 연기적 존재론을 배경으로
하는 불교의 윤회설은 도덕론마저도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양태
를 보인다고 리치는 판단했다. 리치가 도덕적 대화를 통해 만난 유교
는 종교라기보다는 도덕적 가르침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그는 훗날
로마교황청과 타 수도회에서 문제 삼은 공자숭배 및 조상제사도 도덕
론의 입장에서 충분히 수용하여 화해할 수 있었다. 리치에게 공자와
조상은 더 이상 우상이 아니었다. 중국인들은 도덕적 예(禮)로서 공자
121) 각주 109 참조. 또는 앞의 책, 423-427 참조.
122) 대표적 예로 마하트마 간디를 들 수 있다. 간디는 신을 ‘도덕’과 ‘양심’으로 정의하면
서 무신론자까지 진리 안으로 포섭한다. 그에게 도덕적 가치는 종교의 실질이다. 도
덕이 곧 종교의 본질이라는 간디의 주장은 모든 종교가 만날 수 있는 접촉점이 된다.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81
와 조상에 제사를 지낸다고 이해하였다.
이렇듯 리치의 종교 간 대화는 특수성이 아닌 보편성을 기반으로
추구되었다.
2) 포괄주의적 대화
리치의 대화는 혼합주의적, 다원주의적 대화도 아닌 포괄주의 대
화였다. 불교와 도교, 유교가 혼합되어 있는 ‘삼함교’에 대한 비판서로
서 저술된 『천주실의』에서 리치는 불교와 도교에 대해서는 배타적 입
장을, 유교에 대해서는 포용적 입장을 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치의 최종 목적은 중국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데 있었다. 리
치는 유 ․ 불 ․ 도 세 종교와 대화를 하지만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하는
포괄주의적 대화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리치의 대화는 오늘날 종교간 대화의 유형으로서 잘 알려져 있는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 중 칼 라너(Karl Rahner)의 성취이론적
포괄주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리치가 유교와의 대화를 시도하지만
종국에는 종교적 추구들이 그리스도교에 의해서 성취된다는 성취이
론적 포괄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천주실의』에서 리치는 유 ․ 불 ․ 도 삼
교가 그리스도교에서 가르치는 하느님의 바른 도리를 배우기를 권하
고 있다고 주장한다.123)
한편 타종교의 신관에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의 비육화적 말씀
을 찾았던 리치는 자크 뒤퓌(Jacques Dupuis)의 포괄주의적 다원주
의124)와도 관계한다. 리치는 중국인의 본성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제
123) 앞의 책, 389.
124) 예수회 신부 자크 뒤퓌는 저서 『종교다원성의 신학』(Christian theology of religious
pluralism)에서 성취이론에 의거한 타종교들의 ‘한시적’ 역할론을 넘어서, 그들의
‘영속적’ 역할을 허용하는 모델을 제시한다. 뒤퓌는 구원의 원천으로서의 영원한 하
18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1본성이 이미 고대 유교의 절대신 상제에 대한 믿음으로 내재되어 있
음을 주장하면서,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유교의 상제는 이름만 다를
뿐이라는 혁신적인 주장을 편다. 이처럼 타종교의 신관에서 그리스도
교의 하느님의 비육화적 말씀을 찾았던 리치의 입장은 포괄주의적 다
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리치의 유교와의 대화에 있어서 그리
스도교의 선교와 개종이라는 분명한 목표와 불교와 도교의 공무설(空
無說)에 대한 배타적 입장은 리치를 자크 뒤퓌의 포괄주의적 다원주
의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분명한 것은 리치가 시도한 유 ․ 불 ․ 도
와의 만남이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
교 중심의 포괄주의적 대화에 머무는 한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3) 적응주의적 대화
마태오 리치가 중국에서 수립한 선교정책은 중국문화의 적응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위해 중국의
종교들-유교, 불교, 도교-과의 대화를 시도하였으며, 특히 유교와 적응
주의적 대화를 모색하였다. 예수회의 적응주의 방법의 다섯 가지 유형
―방법적, 문화적, 인식적, 종교적, 사회적 적응과 대화―을 통해 리치
의 적응주의적 대화의 특성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겠다.125)
느님과 그 역사적 구현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비육화적 말씀(Logos asarkos)과
육화된 말씀(Logos ensarkos)으로 구분한다. 비육화적 말씀은 온 인류를 비추는 진리
의 빛으로서의 말씀이다. 육화된 말씀은 이 영원한 비육화적 말씀의 구체적이고 결
정적이며 보편적인 현현이다. 하느님의 비육화적 말씀의 현존과 활동은 예수 그리스
도의 육화 사건 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류 역사 속에서 타종교 전통들과 위대한 현
자들에게도 하느님의 비육화적 말씀이 작용한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와 타종교는 하
느님의 구원사를 풍요롭게 하는 상보적인 동역자다. 뒤퓌는 ‘교회 밖에 구원 없다’를
‘세상 밖에 구원 없다’로 바꾼다. 그는 그리스도 중심적 구원론과 종교다원성의 다원
주의를 통합한 ‘포괄주의적 다원주의’를 제안한다.
125) 예수회 적응주의의 다섯 가지 유형에 대해서는 김명희의 “예수회의 적응주의와 종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83
첫째, 방법적 적응과 대화다. 리치는 우선 ‘위로부터의 선교’를 시
도하였다. 그는 중국의 사대부 지배층과 황제와의 만남을 통해 그리스
도교를 전파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리치는 상류층이었던 유학자들의
복장뿐 아니라 생활방식도 답습하였고, 사대부들이 읽는 유교의 경전
을 공부했으며, 서양의 과학문명을 그들에게 전해주기도 하였다.
둘째, 문화적 적응과 대화다. 리치는 중국유교사회의 생활양식을
비롯해 사상과 철학, 종교 전반에 걸쳐 배우고 익히며, 중국의 고전들
을 서양의 언어로 번역해 유럽에 전하였다. 역으로 서양의 과학과 기
술,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중국의 언어로 번역해 중국에 소개하기도 하
였다. 마침내 리치는 동서문화 교섭의 주역이 되었다. 그는 유교의 조
상의례나 공자공경 조차도 문화의례로서 이해하였기에 유교문화와
의 대화는 리치의 적응주의 선교정책에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었다.
셋째, 인식적 적응과 대화다. 리치가 엘리트층들과의 대화를 위해
서 필수적이었던 것은 언어였다. 언어야말로 낯선 문화와 사람들을 이
해하는 열쇠였던 것이다. 중국어를 익힌 리치는 중국인들의 고전들을
읽을 수 있었고, 원시유교경전을 그리스도교의 시각에서 재해석해 그
리스도교와 유교의 만남을 꾀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사상과 철학, 종
교적 개념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인식적 적응이야말로 위
로부터의 대화와 문화적, 종교적 대화에 전제조건이 되었다.
넷째, 종교적 적응과 대화다. 리치는 중국 유교의 상제(上帝)와 천
(天)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을 이해시키면서 유
교와의 대화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인격신의 개념이 희
박한 불교와 도교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취하며 거부감을 드러냈
교간 대화”(「한국조직신학논총」 제34집, 2012, 67-122)를 참조하기 바란다. 본 논문
에서는 이 예수회 적응주의의 다섯 가지 대화유형을 토대로 리치의 종교간 대화의
특성을 고찰하겠다.
18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다. 리치에게 비인격적 무신론(無神論)의 종교인 신유학(理學)과 불
교(空論), 도교(無論) 등은 거짓 도리를 가르치는 이단종교였다. 인격
신과 창조주로서의 하느님 개념이 그들에게는 부재했기 때문이다. 유
교에 대한 리치의 적응과 대화의 노력은 도덕과 윤리, 문화적 측면에
서 가능했지, 종교적 대화에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리스도교의 인격
신관은 종교간 대화의 주요 장애로 등장하였다.
다섯째, 사회적 적응과 대화다. 이것은 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실시되었던 예수회 초기 선교방식이다. 한마디로 ‘아래로부터의 선
교’로서, 지배층이 아닌 피지배층의 인권과 정의를 위한 예수회 선교
사들의 사회적 적응을 말한다. 중국의 상류층과의 교섭을 통해 중국사
회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고 했던 리치에게서는 사회적 적응과 대
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바로 이점이 후에 리치의 적응주의 선교가 받
은 비판 중 하나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리치의 중국선교는 문화적응주의로서는 크게 성공
을 거두었으나 종교적 적응과 대화에서는 그 한계점을 드러냈다. 이러
한 한계점을 극복한 이가 20세기에 등장한 예수회 선교사 에노미야 라
쌀(Hugo Makibi Enomiya-Lassalle, 1898-1990)신부다. 그는 인격신관
의 장애를 극복하고 그리스도교와 불교와의 대화를 성사시켰다. 라쌀
은 일본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그 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동안 선불교
와 만나게 되었고, 선수행을 그리스도교의 기도와 접목시켜 ‘그리스
도교적 선수행’이라는 명상법을 창안하여 유럽, 특히 독일에 보급하
였다. 그는 20세기 동서 문명 교류의 주역이 되었다.126)
126) 에노미야 라쌀 신부의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대화’는 본 논문의 후속편으로 연구될
예정이다. 향후 진행될 라쌀의 논문에서는 리치가 극복하지 못했던 비인격적 신관의
종교(특히 불교)와 인격신의 종교(특히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대화의 장에서 만날
수 있는지 해법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85
2. 대화의 한계
1) 선교를 목표로 한 그리스도교 중심적 소극적 대화
마태오 리치는 중국선교를 위해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정책을
따랐다. 특히 리치가 적응주의 선교에 있어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위
로부터의 선교’와 ‘문화적 적응’이었고, 이것은 곧 중국의 지배층과의
대화와 그들의 종교이자 문화인 유교와의 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치의 유교와의 대화는 그리스도교의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포괄주의적 대화의 한계를 보였다. 리치에게는 그리스도교 외의 모든
종교가 선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비인격적 신관을 가지고 있
는 신유학과 불교, 도교는 리치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리치의 목표대로 『천주실의』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던 중국 선비
는 결국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저도 집으로 돌아가 목욕하고 와서 하느님의 참된 경전을 받들며 [선
비님을] 스승으로 모셔 절하고 성교회에 입문하고자 합니다. ‘이 성교
회 외에는 이 세상에서 올바른 도리를 얻을 수 없고, 내세에서는 하늘
의 복락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명백하게 알았습니다.”127)
중국선비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교와 유교, 불교,
도교와의 만남을 모색한 『천주실의』는 모든 종교의 가르침 중 그리스
도교의 가르침이 우위에 있다는 것으로 여덟 편에 걸친 대화를 종결하
고 있다. 참된 도리를 전하는 종교는 그리스도교뿐이라는 리치의 신념
이 반영된 것이다. 잘못된 도리를 전하는 유 ․ 불 ․ 도(儒佛道)가 혼합주
127) 앞의 책, 428.
18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의적 삼함교(三函敎)가 되어 중국인들을 혼란에 빠뜨린다고 우려한
리치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통해 중국인들을 올바른 진리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였다.
결국 리치에게는 유교와 불교, 도교, 모두가 상즉상입(相卽相入)
을 위한 적극적 대화의 대상이 아닌, 선교를 위한 소극적 대화의 대상
이었다. 그러나 리치는 기존의 유학자들처럼 불교와 도교에 대해 무조
건적으로 배타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성적 논변을 통해 불교 및 도교
와의 대화를 시도하였고, 그들을 그리스도교 안으로 포섭하려 하였다.
리치는 불교와 도교의 무리도 천주의 자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128)
리치가 보여준 유 ․ 불 ․ 도와의 대화는 포괄주의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
는 그리스도교 중심의 ‘소극적 대화’였다.
2) 불교와 도교, 신유학에 대한 불이해: 존재론적 대화의 한계
리치의 유 ․ 불 ․ 도와의 대화에 있어서 결정적 장애 요인이 되었던
것은 서양의 유(有)적 ․ 실재적 존재론이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존재론에 근거한 실재(有)로서의 신개념을 인격
신 개념과 연결시켜 수용한 리치는 비인격신으로서 공 ․ 무 ․ 이(空, 無,
理) 개념을 받아드릴 수 없었다. 실재적 존재론의 입장에서 파악한 불
교의 공론(空論), 도교의 무론(無論), 신유교의 이론(理論) 등은 그리
스도교의 유신론적 신관에 상치되는 그릇된 가르침이었다. 더욱이 실
재적 존재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불교의 윤회설은 모순적 윤리를 양
산하기까지 하였다. 리치는 실재적 존재론의 시각으로는 불교와 도교
의 연기적(緣起的) ․ 비실재적(無的) 존재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허무
의 무(無), 텅빈 공(空)으로 이해한 리치의 도교와 불교의 진리관은 그
128) 앞의 책, 74-75 참조.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87
리스도교의 가르침으로 대체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인격신
과 비실재적 존재로서의 ‘무(無), 공(空), 리(理)’에 대한 리치의 이해
부족에서 오는 존재론적 대화의 한계였다.
V. 나가는 말
지금까지 『천주실의』를 중심으로 마태오 리치의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儒佛道)의 대화를 살펴보았다. 예수회의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된 리치는 예수회의 적응주의 선교정책에 발맞춰 중국문화에 ‘적
응’을 통한 그리스도교 선교를 추진하였다. 문화 적응의 과정에서 중
국 문화의 중심에 종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리치는 유교, 불교, 도교
와의 만남을 시도하였다. 그는 원시유교에서는 그리스도교와의 유사
점을, 불교와 도교에서는 상이점을 발견하였다. 특히 리치는 유교가
잘못된 도리를 주장하고 있는 불교와 도교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배타
할 뿐 논리적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였다. 그
리하여 그는 저서 『천주실의』에서 불교와 도교의 잘못된 교리를 논박
함과 동시에 그리스도교와 유교와는 유사성이 있음을 논증하였다. 리
치의 유 ․ 불 ․ 도와의 대화는 그리스도교의 전파를 위한 것이었다.
리치가 ‘역불보유론’(易佛補儒論)의 입장을 보인 것은 그의 종교
간의 대화가 존재론과 인격신의 개념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리치는 이 두 개념을 가지고 『천주실의』에서 불교와 도교에 대해 논리
적으로 반박하면서, 역불보유론의 근거를 제시하였다.
그는 크게 두 방향에서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와의 존재론적 대화와 도덕적 대화였다. 존재론적 대화에서 리치는
공무론(空無論)을 내세우는 불교와 도교는 무신론(無神論)의 종교라
18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고 논박하였고, 인격신으로서 상제(上帝)를 표방하는 (원시)유교에
대해서는 호의적 태도를 보였다.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유신론적(有神
論的) 신관에서 공유점을 찾은 리치는 이를 토대로 유학자들이 주류
를 이루고 있는 중국의 상류층에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파하려고
하였다. 리치는 도덕론을 통한 대화에서도 실재적 존재론에 입각해 불
교의 윤회설을 해석함으로써 불교 윤리의 모순을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리치는 종교혼합주의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다. 그
는 유 ․ 불 ․ 도 세 종교가 혼합되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리치의 유 ․ 불 ․
도 대화의 목적은 세 종교의 잘못된 교설(敎說)을 그리스도교의 가르
침으로 바로잡는 데 있었다. 이것은 혼합의 의미에서가 아닌 그리스도
교 중심의 포괄적 의미에서의 대화였다. 세 종교 혹은 네 종교의 도리
를 동시에 믿는 것이 아닌, 하나의 올바른 도리를 찾아내 믿는 것이 중
요하였다. 리치는 그 하나의 올바른 도리가 그리스도교라고 확신하였다.
이렇듯 그리스도교 중심의 포괄주의적 대화는 리치의 대화가 갖
는 한계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 당시 리치의 적응주적
방법을 통한 보유론적(補儒論的) 대화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중세의
배타적 종교관에서 벗어나 타종교, 타문화와의 대화를 시도한 것은 향
후 다종교 ․ 다문화 시대에 전개될 종교 간의 대화에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었다. 비록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포괄주의적 대화였다고 하더라도
유교문화의 적응을 통해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조화와 화해를 모색하
였고, 동서문명의 교량적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종교간 대화의 모델
로서 리치의 적응주의가 갖는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지만, 특히 그리스도교와 불
교가 종교인구분포의 양대 산맥을 이룬다. 두 종교가 차지하는 종교
인구의 총인구대 비율은 52.5%로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불교
도이거나 그리스도교도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89
는 종교간 갈등의 중심에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있는 이유다. 특히 갈
등 사례의 대부분이 불교와 개신교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
타난다. 이러한 종교간 갈등의 중심에는 한국 개신교의 배타적 신앙관
이 자리하고 있다. 개신교가 미국으로부터 한국에 전래되었을 당시 한
국의 문화 형성의 중심에 있던 유교와 불교에 대한 적응의 노력은 찾
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선교초기 개신교가 보여준 타종교에 대한 배
타적 태도는 오늘까지 이어져 종교 갈등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129)
예수회 선교사였던 리치 신부가 적응주의에서 추구한 종교간 대
화의 노력들이 한국의 교회에서도 요구된다. 그러나 리치가 보여준 실
재적 존재론에 입각한 신유학과 불교, 도교와의 대화의 한계는 한국의
개신교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리치의 종교간 대화의 근거가 된 존재
론과 인격신개념을 뛰어넘어 비실재적(無) ․ 연기적(緣起的) 존재론
과 비인격신 개념까지 품을 수 있는 종교간 대화의 원리를 발견해야
한다. 그럴 때 무아(無我)와 공(空), 연기(緣起)의 세계관을 표방하는
불교와 유신론의 종교인 그리스도교 간의 화해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이
다.130)
129) 일예로 유교의 조상제사와 불교의 불상숭배에 대해 한국의 개신교는 ‘우상숭배’라
고 비난하며 지속적으로 배타적 태도를 보여 왔다. 이것은 제사로 인한 가정 내 갈등
이나 ‘봉은사 땅 밟기’ 혹은 ‘불상훼손’과 같은 그리스도교와 타종교 간의 갈등을 일
으키는 장애요인이 되었다.
130) 이 새로운 종교간 대화의 원리는 향후 진행될 에노미야 라쌀 신부의 그리스도교와 선
불교와의 대화에 관한 연구논문에서 제시 될 것이다.
19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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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91
국문 초록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 『천주실의』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儒佛道)의 대화
본 논문은 16세기 중국의 선교사로 파송된 예수회 신부 마태오 리
치가 적응주의 선교에서 보여준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儒佛道)와
의 대화를 분석해 종교 간 대화의 원리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리치의 적응주의 선교는 그리스도교와 유교와의 대화를 통해 추
구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유교사회와 문화 속에서 추진된 리치의 적응
주의가 어떻게 종교 간 대화의 모델이 될 수 있는지 그의 저서 『천주실
의』를 통해 살펴보았다.
『천주실의』는 리치의 불교와 도교에 대한 반박글로서, 리치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와 구별되는 두 종교의 신개념과 도덕론을 논박하
였다. 동시에 유교와 그리스도교 간의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리치와 중국 선비와의 대화내용을 기록한 『천주실의』
를 분석해 리치의 종교간 대화의 특징과 한계, 의의를 밝혔다. 분석 결
과를 토대로 21세기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종교간 대화의 원리를 전
망하였다.
본 논문은 먼저 ‘리치의 문화적응주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문화
적응주의는 리치의 종교간 대화의 토대가 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둘
째, 『천주실의』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의 대화를 해석학적
으로 분석, 고찰하였다. 지금까지의 연구서들이 그리스도교와 유교와
19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의 대화 혹은 그리스도교의 전교서로서 『천주실의』를 조명하였다면,
본 논문에서는 유 ․ 불 ․ 도, 특히 불교에 대한 리치의 이성적 대화의 논
거들을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의 존재론적‧도덕적 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셋째, 앞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리치의 종교간 대화의 특
징과 한계를 제시한 후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리치의 적응주의가 한
국의 종교간 대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논하였다.
논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리치는 크게 두 방향에서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와의 존재론적 대화와 도덕적 대화다. 존재론적 대화에서 리치
는 공무론(空無論)을 내세우는 불교와 도교는 무신론(無神論)의 종
교라고 논박하였고, 인격신으로서 상제(上帝)를 표방하는 (원시)유교
에 대해서는 호의적 태도를 보였다.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유신론적
(有神論的) 신관에서 공유점을 찾은 리치는 이를 토대로 유학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중국의 상류층에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전파하
려고 하였다. 리치는 도덕론을 통한 대화에서도 실재적 존재론에 입각
해 불교의 윤회설을 해석함으로써 불교 윤리의 모순을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리치는 종교혼합주의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다. 그
는 유 ․ 불 ․ 도 세 종교가 혼합되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리치의 유 ․ 불 ․
도 대화의 목적은 세 종교의 잘못된 교설(敎說)을 그리스도교의 가르
침으로 바로잡는 데 있었다. 이것은 혼합의 의미에서가 아닌 그리스도
교 중심의 포괄적 의미에서의 대화였다. 세 종교 혹은 네 종교의 도리
를 동시에 믿는 것이 아닌, 하나의 올바른 도리를 찾아내 믿는 것이 중
요하였다. 리치는 그 하나의 올바른 도리가 그리스도교라고 확신하였다.
그리스도교 중심의 포괄주의적 대화는 리치의 대화가 갖는 한계
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기 당시 리치의 적응주의적 방법을
통한 보유론적(補儒論的) 대화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중세의 배타적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93
종교관에서 벗어나 타종교, 타문화와의 대화를 시도한 것은 이후 다종
교 ․ 다문화 시대에 전개될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었다. 비록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포괄주의적 대화였다고 하더라도
리치는 유교문화의 적응을 통해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조화와 화해를
모색하였고, 동서문명의 교량적 역할을 하였다. 바로 이점이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리치의 적응주의가 갖는 의의라고 하겠다.
19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Abstract
Matteo Ricci’s Accommodationism
as the Model of Interfaith Dialogue
― Dialogue between Confucianism/Buddhism/Taoism and
Christianity as Represented in Tianzhu Shiyi(The True
Discourse of the Lord of Heaven)
Kim, Myong-Hee
MEST-NRF Research Professor
Sogang University
Seoul, Korea
This paper analyzes the dialogue between Confucianism/
Buddhism/Taoism and Christianity spread by way of Accommodationism
of Matteo Ricci. This approach adopted by the Jesuit
priest who was sent to China in the 16th century served as a foundation
for the principles that can help define the interfaith dialogue.
Ricci’s accommodationist approach was pursued via the dialogue
between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 This study explored
how Ricci’s Accommodationism introduced to the Confucian
society and culture came to be the model of interfaith discourse by
looking at his book Tianzhu Shiyi(The True Discourse of the Lord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95
of Heaven).
Tianzhu Shiyi is Ricci’s refutation of Buddhism and Taoism. In
this book, he argued against the concept of deity and morality of
these two religions as opposed to those of Christianity while examining
the possibility of reconciliating Confucianism and Christianity.
The focus of this study was placed on the conversation between
Ricci and a Chinese scholar in Tianzhu Shiyi to analyze the
characteristics, limitations and significance of Ricci’s interfaith
dialogue. Based on the analysis, the principles of the interfaith
discourse – much needed in the twenty-first century South Korea
– were reviewed.
The first to be analyzed was Ricci’s cultural Accommodationism
it was crucial as it was the founding stone of his interfaith
exchange. Secondly, the hermeneutic interpretation was conducted
on the dialogue between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Buddhism/
Taoism as seen in Tianzhu Shiyi. While the existing studies
shed light on Tianzhu Shiyi with a primary focus on the Christianity-
Confucianism discourse or its evangelistic nature, this study
examined Ricci’s rational basis for argument with regard to Confucianism/
Buddhism/Taoism, particularly to Buddhism, concentrating
on the ontological and moralistic discourse between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Buddhism/Taoism. Thirdly, the aforementioned
analysis was used to identify the characteristics and
limitations of Ricci’s interfaith dialogue and to find out how his
Accommodationism could contribute to advancing the discourse.
The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19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9집(2014년 9월)
Ricci attempted the discourse in two different directions – the
ontological and moralistic dialogue between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
Buddhism/Taoism. In the ontologicaldialogue, Ricci
refuted that Buddhism and Taoism – which assert the emptiness
and nothing(空無論) of things – were the religion of the atheists.
He showed a more favorable attitude toward(primitive) Confucianism
that had Shangdi(上帝) as its supreme deity. Having found a
common ground in the theist belief of Christianity and Confucianism,
Ricci sought to spread the teachings of Christianity to the
upper class members of China, which were primarily comprised of
Confucian scholars. Even in the moralistic discourse, Ricci interpreted
the Buddhist belief of the cycle of life and death(samsāra)
based on the existential ontology to criticize the contradictory
nature of Buddhist ethics.
Furthermore, Ricci attempted to put a stop to religious syncretism.
He warned against the fusion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The purpose of the interfaith dialogue that Ricci intended
was to correct the fallacious teachings of the three religions
with those of Christianity. This did not mean a fusion in its sense
but inclusion that centered on Christianity. What was important to
him was to find and believe in the one true way, not to believe in
the three or four religions together simultaneously. Ricci was assured
that that one true way was the way of Christianity.
None other than this inclusive approach centered on Christianity
was the limitation of Ricci’s discourse. Nonetheless, the
discourse that ventured to ‘complement Confucianism’ based on
김명희 | 종교간 대화의 모델로서 마태오 리치의 적응주의 197
Ricci’s accommodationist approach was one groundbreaking attempt.
The escape from the exclusive and closed medieval view
and the endeavor to initiate the inter-religious and inter-cultural
conversation served as an excellent precedent for the interfaith
dialogues that are to follow in the age of multi-religion and multiculture.
Although limited by the discourse’s inclusive nature with
a purpose of evangelizing the non-believers, Ricci aimed to reconcile
Confucianism and Christianity based on the accommodationist
approach to the Confucian culture, thereby bridging the Eastern
and Western cultures. This is precisely why Ricci’s Accommodationism
holds considerable significance today.
‖ 주제어 Keywords ‖
마태오 리치, 적응주의, 천주실의, 종교 간의 대화, 그리스도교와 유 ․ 불 ․ 도
와의 대화
Matteo Ricci, Accommodationism, Tianzhu Shiyi(The True Discourse of the
Lord of Heaven), Interfaith Dialogue, Dialogue between Confucianism
/Buddhism/Taoism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