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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르네 지라르의 최근 저작『클라우제비츠를 완성하다』를 중심으로/정일권.한동대



I. 슬픈 현대와 계몽된 묵시록
1.『 클라우제비츠를 완성하다』
지라르의 최근 저작『클라우제비츠를 완성하다』1)는 프로이센 출신의
장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의 미완의 저서인
『전쟁론』(Vom Kriege)을 다루고 있다. 클라우제비츠는“전쟁이란 정치
적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전쟁은
정치적 수단과는 다른 수단으로 계속되는 정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의 전쟁들을 직접 목격한 증인으로서 현대의
전쟁의 성격을 이해했다. 결투(the duel),상호적 행위(reciprocal
action), 그리고 극단으로 치닫는 분쟁 확대(escalation to extremes)와
같은 개념들은 역사의 독특한 법칙을 반영하는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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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ené Girard, Achever Clausewitz: Entretiens avec Benoît Chantre (Paris: Carnets
Nord, 2007).


있다고 지라르는 분석한다. 폭력을 통제하기는커녕 정치는 전쟁이 지나
간 자리를 따라가게 되었다. 전쟁의 수단들이 목적 자체가 되었다. 지라
르는 클라우제비츠가 역사의 가속화에 마음을 다 빼앗긴 증인이었음을
보여준다.
지라르는 이 책, 특히 5장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의“슬픔”
(Tristesse de Hölderlin)에서 극단으로 치닫고 가속화되는 현대사회의
새로운 비극과 슬픔에 대해서 서술하면서“묵시록적 이성”과“묵시록적
직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묵시록적 근대성으로 접어든
뜨겁고도 피곤한 현대사회의 새로운 슬픔에 대한 지라르의 근본인류학
적 분석을 위해“슬픈 현대”(Tristes Modernes)라는 제목을 정해 보았
다. 이는 현대 구조주의 사상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프랑스의 사회인류
학자 레비- 스트로스의『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다.『 슬픈 열대』가 사라져가는 소위 야만적이고 원시적 문화에
대한 슬픔이라면,“ 슬픈 현대”(Tristes Modernes)는 묵시록적 근대성의
상처받기 쉬움과 연약함 그리고 타자와의 폭력적인 근접성 속에서 살
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의 더욱 더 뜨거워진 모방 욕망에 대한 슬픔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조사한 네 원주민 부족의 원시
사회와 문화이해를 통해 서구를 지배해온 문명과 야만의 개념을 통렬
히 비판하고 있다. 물론 지라르의 인류학적 해석학은 제의, 특히 희생제
의의 레알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신화를 낭만적으로 이해하는 레비-
스트로스의 신원시주의적 경향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지라르는 소위 야
만적 사고 속에 은폐된 희생양 메커니즘을 폭로하는 기독교의 문명사
적 업적을 비판적으로 변증하면서도, 이 폭로로 새로운 묵시록적 전환
도 논의에 포함시키고 있다.
야생적 사고의 신화 속에서 제외와 제거의 논리를 분석한 레비- 스
토로스의 구조주의적 신화 해석의 업적을 지라르는 높이 평가한다. 신
화 속의“급진적인 제거”에 대한 구조주의적 이해는 신화의 실제적 기
원이 희생양 메커니즘에 존재한다는 자신의 테제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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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르는 본다. 그러나 레비- 스트로스는 신화 속에서 급진적인 제외와
제거의 논리들을 발견하지만 그것을 실제적이고 사회적인 사건과 연관
시키지 않고 단지 사고의 추상적 발생을 반영하는 것으로만 보았다고
지라르는 비판한다. 즉 신화에서 어떤 신이 추방되는 것은 단지 논리
적·언어적 작용과 상응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신
화에게 독립된 의미를 부여하고, 반대로 제의는 평가절하시켰다. 하지
만 지라르는 신화와 제의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성을 강조하고, 둘 다
모두 희생양 메커니즘에 그 공통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초
석적 폭력이 신화와 제의 모두의 메트릭스다.2)
문화는 변했지만 욕망하고 질투하는 인간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류의 근본인류학적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문화초월
적인(transcultural) 희생양 메커니즘에 대한 성찰과 함께 우리는“슬픈
현대”와 그 질투사회와 피로사회에 대한 근본인류학적 반성을 시도하
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아직 국내 번역되지 않은 지라르의 이 최근 저
작 중 주요한 부분을 번역, 소개하면서 관련 논의들을 덧붙이고자 한
다. 특히 지라르의 이론을 레비- 스트로스, 헤겔, 쉘링, 코제브, 클라우제
비츠, 횔덜린, 니체, 하이데거, 레비나스 등의 사상과의 관련성 속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저자는 지라르 이론의 학제적 연구 중심지로 성장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 인문학부의 학제적 연구 프로젝트『세계질
서- 종교- 폭력』의 박사후기 과정으로 있으면서 프랑스어 판의 영어 번
역본을 출판 이전에 함께 읽고 연구했다. 본고는 이 연구과정에 어느
정도 기초해 있다.
지라르는 이 책 중에서 독일 튀빙엔에 위치한 횔덜린이 은거했다는
탑을 방문한 이후의 깊은 감동을 적고 있는데, 아마도 2006년 튀빙엔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49


2) René Girard, Das Heilige und die Gewalt (Zürich: Benzinger, 1987), 168; Wolfgang
Palaver, René Girards mimetische Theorie. Im Kontext kulturtheoretischer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Fragen (Münster-Hamburg-London: LIT Verlag, 2003),
236-7.


신학부가 지라르에게 레오폴드- 루카스상을 수여한 즈음인 것 같다. 튀
빙엔 신학부는 바로 튀빙엔의 3인으로 불리는 쉘링, 헤겔, 횔덜린과 관
련된 곳이다. 2006년 이 영예로운 수상식에 저자는 오스트리아 인스부
르크의 지라르 학파 멤버들과 함께 참여해서 지라르와 이야기를 나누
었다. 또한 그 때 동료와 함께 횔덜린이 은거했다는 튀빙엔의 탑도 방
문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2005년에는 독일에서 지라르 이론
의 국제적이고 학제적인 학술대회인『폭력과 종교에 관한 콜로키움』
(Colloquium Violence and Religion)이 개최되었는데, 이 때에도 지라
르를 직접 만나서 흰두교의 쉬바 신화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
이 있다. 이 책의 대담자이면서 프랑스 지라르학회(l’Association Recherches
Mimétiques) 회장이기도 한 브누아 샹트르(Benoît Chantre)
도 2005년 이 콜로키움에 참석했는데, 저자도 이 콜로키움의 정회원으
로 활동하고 있다. 이 묵시록적인 책은 이렇게 독일과 프랑스의 미묘한
경쟁관계, 튀빙엔 신학부와 헤겔, 쉘링 등의 독일 관념론 철학 그리고
횔덜린의 은거, 그리스 동경과 독일 낭만주의, 니체와 하이데거의 사상
등을 배경으로 두고 이해해야 한다.


2. 현대사회의 새로운 비극
이 책은 지난 200년간의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에 대한 연구서다. 유
럽, 서구 문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세계 전체의 종말의 가능성에 대해
서 논하기에, 이 책은 지라르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묵시록적인 책이
다.”지라르는 자신의 평생 연구를 비교 인류학을 통한 원시종교의 연
구로 제시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닮게 되는 상황에서 다시금 차이를
다시금 도입하게 하는 메커니즘은 바로 희생제의였다. 그에 의하면 인
류는 희생제의의 결과다. 인류는 종교의 자녀들이다. 프로이드를 따라
서 지라르가 초석적 살해라고 부른 것, 곧 무질서의 원인으로서 비난받
고 동시에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자로서 여겨지는 희생제의의 희생양
25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의 살해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이것이 바로 성스러움의 논리(logic of
the sacred)였고, 세계 신화들은 이 논리를 숨기고 있었다. 문화의 진화
과정 중에서 결정적인 사건은 지라르에게 있어서 인류의 폭력의 메커
니즘을 폭로하는 기독교의 계시였다.3) 기독교는 종교를 탈신성화시켰
다. 탈신성화는 절대적 의미에 있어서 좋은 것이지만, 상대적인 의미에
서 나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데, 이는 우리가 그 탈신성화의 결과
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라르는 말한다. 두
차례의 세계 전쟁들, 원자폭탄의 발명, 몇 차례의 인종 말살들 그리고
환경 재앙들, 우리는 이제 묵시록적인 상황을 보고 있다. 그리스도의 수
난은 인류의 희생제의적 기원을 단 한번으로 영원히 폭로했다. 그것은
성스러움(the sacred)을 해체하고 성스러움의 폭력을 계시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신적인 것(the divine)이 모든 종교들 안에 존재한다는 것
을 또한 확증했다고 지라르는 말한다.4)
클라우제비츠는 갑자기 가속화된 역사의 진행에 대한 전혀 뜻밖의
직관력을 가졌지만, 곧바로 그것을 위장하고 자신에 책에서 보다 테크
니컬하고 학자적 논문의 어조를 부여하고 있다고 지라르는 분석한다.5)
이 책의 제1장 극단으로 치닫는 분쟁 확대(Escalation to Extremes)에
서 소위 18세기의“신사들의 전쟁”(gentleman’s war)이 포기된 시대에
살고 있었던 클라우제비츠가“현대사회의 비극”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
를 가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6) 극단으로 치닫는 추
세(trend to extremes)는 바로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에 있어서 폭력
적인 무차별화의 상태와 견줄 수 있다고 한다.7)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51
3) René Girard and Benoît Chantre, Battling to the End: Conversations with Benoît
Chantre (East Lansing: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2010), ix. 이 책은 영문 번
역본이다.
4) Ibid., x-xi.
5) Ibid., xii.
6) Ibid., 5.
7) Ibid., 8.
지라르에 의하면 클라우제비츠는 모든 세계 신화들에서 볼 수 있는
“짝패들의 비극적 투쟁”의 상태를 어렴풋이 보았다.8) 적들이 점차적으
로 서로를 닮아가는“폭력적인 모방”이 세계의 모든 신화들과 문화들의
뿌리에 있다. 바로 이 원칙이 다시금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을 클라우제
비츠는 본 것 같다고 지라르는 말한다.“ 상호적인 행동”(Wechselwirkung),
특히 인간들간의 상호적 모방의 관계에 대해서 지라르는 천착
한다.9) 상호적 행위가 글로벌화에 의해서 너무나 증폭되어서 이제는 전
지구적인 상호성이 발생하게 되었고, 그렇기에 가장 작은 하나의 사건
도 지구 다른 편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라르에게 있어서 나폴레옹으로부터 빈 라덴에 이르기까지 극단으로
치닫는 분쟁 확대(escalation to extremes)가 역사의 독특한 엔진이 되
었음을 본다. 클라우제비츠가“절멸전쟁”(war of extermination)의 가능
성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20세기가 그 가능성에 실제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지라르는 말한다.10) 클라우제비
츠의 절대전쟁 개념에 의하면 사람은 싸움이 벌어지면 두려움 때문에
점점 잔인해지고 전쟁 그 자체에 매몰되고 비이성적 상태에 빠져서 왜
싸우는지를 잊어버리고 단지 상대를 죽이고 때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절대전쟁은 한쪽이 완전히 전멸할 때까지 하는 전쟁이
다. 최대한의 극단적인 전쟁이다.
동물들은 민족학자들이 지배의 네크워크라 불리는 것 안에서 자신
들의 폭력을 억눌러서 담을 수 있는데(containing) 반해, 인간은 상호성
을 통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서로를 너무나 많이 모방하고 그
렇기에 서로를 향한 유사성이 끊임 없이 증가하고 증폭되고 만다. 바로
상호성으로 인한 내부 폭력을 통제하지 못해서 초기의 인류는 스스로
를 파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초기 인류 집단은 작은 집단이었고 세
25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8) Ibid., 24.
9) Ibid., 10.
10) Ibid., 18.
계의 다른 집단과 상호작용을 전개할 수 없었다. 현대에 와서는 바로
전 지구적인 상호작용으로 인해서 묵시록이 참된 위협이 되었다. 현대
사회에 와서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조그만한 신
화조차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클라우제비츠가 결투의 법칙
(law of the duel) 뒤에서 어렴풋이 본 무차별화로 향하는 분쟁 확대의
위험에 연약하게 노출되어 있다. 두 집단이“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는
경향”으로 흐르게 되면 갈등 해소 노력은 자주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
리스도는 인류로부터“희생제의적인 목발”을 제거해 버린 후에 우리에
게 끔찍한 선택을 남겨놓았다고 지라르는 말한다. 폭력을 믿든지 그것
을 믿지 않든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지라르는 동물들 사이에는 복수
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폭력적 상호성으로 인한 내부 폭력
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희생제의를 고안한“모든 종교들의 위대함”과 그
“희생제의의 임시적 기능”을 폐지시킨“기독교라는 예외”를 지라르는
동시에 논한다.11)
3. 인정투쟁과 모방욕망: 지라르, 헤겔 그리고 코제브
지라르는 자신의『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Mensonge romantique
et vérité romanesque)이 1961년 프랑스에서 출판되었을 때,12)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헤겔의 위대한 평론가, 알렉산드르 코제브(Alexandre
Kojève)의 후계자로 보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당시 많은 사
람들은 지라르의 이론을 새로운 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이는 모방적 욕망은 헤겔 이론에 있어서의 인정투쟁 개념이 새롭게 표
현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라르는 헤겔의 이론을 배경
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헤겔의 인정
투쟁 개념과 동일하다는 것은 부인한다.13) 생사를 건 인정투쟁(Aner-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53
11) Ibid., 19-21.
12) René Girard, Mensonge romantique et vérité romanesque (Paris: Grasset, 1961).
kennungskampf)은 헤겔의『정신현상학』의‘자기의식’편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다. 헤겔 사상의 역사발전 법칙을 주인과 노예의 투쟁으로 이해
한 코제브는 헤겔의『정신현상학』에서 논의된‘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을 논평했는데, 그에 의하면 주인이란 생계를 걸고 인정투쟁을 포기하
지 않는 사람이고, 노예란 생계를 부지하기 위해 인정투쟁을 포기한 사
람이라는 것이다. 헤겔 사상의“위험”은 역설적이게도 그것이“폭력에
대한 충분히 급진적인 개념”으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고 지라르는 주장한다. 그래서는 그는 헤겔과 클라우제비츠를 함
께 읽는 것이 유익하다고 조언한다.14)
지라르는 욕망의 주체와 중개자와의 거리를 논하면서 외적 중개와
내적 중개에 대해서 말한다. 주체와 욕망 중개자의 거리가 가까울 경우
주체와 중개자 사이에는 욕망의 경쟁이 가능해진다. 즉 내적 중개의 경
우 모방은 감추어지고 중개자와의 경쟁이 심화된다. 내적 중개의 주체
는 자신의 모방을 감춘다. 주체는 욕망의 중개자를 모방하지만, 그 모방
은 중개자에 의해서 제지된다. 중개자는 모델인 동시에 장애물이
(model-obstacle) 된다. 라이벌은 점차적으로 서로 닮아간다. 경쟁은 쌍
둥이를 만들어낸다. 이 매력-혐오(attraction-repulsion)가 르상티망이
라는 모든 형이상학적인 병리학의 기저에 존재한다고 지라르는 분석한
다. 모델인 동시에 장애물에 대한 나의 숭배 그리고 그의 존재 자체에
대한 나의 형이상학적 욕망이 나로 하여금 살해하게 한다.15) 현대는 욕
망의 자발성을 옹호하고 욕망의 중개자와 모방을 감춘다. 현대로 들어
오면서 독창성과 자발성이 강조되고 모방은 경시되고 있지만, 그 안에
는 모방의 새로운 형태가 숨겨져 있다. 질투, 증오, 혐오감과 같은 현대
적인 감정이 확산되는 것은 오히려 타인에 대한 병적인 관심과 모방이
감추어지지만 만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라르는 르상티망이야말로
25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13) Girard and Chantre, Battling to the End, 30.
14) Ibid., 32.
15) Ibid., 31.
전형적인 현대인의 감정이자 질병이라고 진단한다. 이미 스탕달과 토크
빌이 이 전형적인 현대인의 질병을 분석했고, 니체도 이것에 대해서 지
적했지만, 지라르에 의하면 니체는 이 르상티망에 대한 비판의 대상을
잘못 정했다고 보았다.16)
II. 전체성의 신화와 폭력 그리고 묵시록적 합리성
1. 영원회귀의 종식과 묵시록적 전환
지라르에 의하면 클라우제비츠는 역사의 본질적인 폭력 그리고 인
류가 언젠가는 세계를 파괴할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고 말한다.
나폴레옹 전 쟁이후로 독일과 프랑스의 역사 그리고 유럽의 역사가 점
차적으로 가속화되어 간다고 지라르는 보았다. 하나의 상징으로서의 나
폴레옹의 양면성에 대해서 지라르는 말한다. 헤겔은 나폴레옹을 세계정
신의 구현으로 보았지만, 클라우제비츠는 그를“전쟁의 신”으로 보았
다.17)
살해되고 이후 신성화된 희생양의 중심적인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발견되는 복음서와 여러 신화들 사이의“유사성들”에 대해서 지라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로 이 유사성 때문에 기독교를 잘못 해석하게
되었다. 지라르에 의하면 합리주의는 신화의 옛 반사작용을 그대로 계
속해서 사용함으로 함정에 빠지게 되었다. 모든 다른 종교들과 기독교
를‘혼동’하는 것은 결국 다른 종교와 같이 그것을 폭력적인 종교로 만
들게 된다. 지라르는 횔덜린의 도움을 받아 기독교와 원시종교의“본질
적인 유사성과 차이”에 대해서 보여준다. 지라르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하나님은“성스러운 차이의 놀이”(play of sacred difference)에 의해서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55
16) Ibid., 12.
17) Ibid., 33.
통제되는 시스템 밖에 존재한다.18)
제3장 결투와 상호성(Duel and Reciprocity)에서 지라르는 본래 선
물에는 독이 들어있었다고 말한다. 독일어로 Gift는 선물인 동시에 독
을 의미한다.19) 마르셀 모스가 연구한 원시부족들 사이에 만연되어 있
는 선물의 문화 혹은 증여의 문화(포틀래취와 쿨라 등)를 지라르는 상
호성과 폭력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했다.20) 고대의 시스템들은 폭력적 상
호성을 단 한 번에 영원히 제거하는데 있어서 무능했기에 주기적으로
“재로부터 다시금 태어나야만 했다.”지라르에 의하면 우리는 이 영원
회귀에 관한 사실을 그리스와 인도 종교들의 날카로운 직관력을 통해
서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전통은 다
른 종교 전통과는“급진적으로 달라서”“종교들의 영원 회귀”를 종식시
켰다.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전통은 최초로 군중의 지배권을 전복시키
고 다른 각도에서 폭력적 만장일치를 보았으며 상호성의 원칙을 정확하
게 보여주었다. 기독교는 인류를“희생제의적 목발로부터 해방시켰고,”
동시에 우리의 운명에 대해서 보다 성숙한 자세로 책임지게 만들었다.
지라르에 의하면 오늘날의“진보주의”는 기독교로부터왔지만, 또한 기독
교를 배신하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는“묵시록적 정서의 희석
현상”으로부터 파생되었다. 기독교는 점차적으로 종말론적 감각을 상실
했고 그 결과 역사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묵시록적 혹은
종말론적 감수성의 약화 혹은 상실과 관련해서 레비- 스트로스와 헤겔
에 대해서도 지라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언급한다. 레비- 스트로스는
제의와 희생제의들에 대해서는 본질적으로 무관심했고, 오직 그가“야생
적 사고”라고 부른 신화들만 연구하고자 했다. 지라르는 헤겔의 변증법
도“너무 합리주의적이고 충분히 비극적이지”않다고 말한다. 즉“그것
25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18) Ibid.,50.
19) Ibid., 60.
20) René Girard, “Gewalt und Gegenseitigkeit,” in Sinn und Form 54/4(Juli/August
2002), 437-454.
은 날개를 퍼덕이지 않으면서 갈등을 통과해서 날아가는 것과 같다.”21)
지라르에 의하면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바로 초석적 폭력과 관련
이 있다고 본다. 흰두교와 불교의 영원회귀의 역사관도 이와 관련된다
고 볼 수 있다.“ 고대 인도는 서구가 상상하기 힘든 정도의 포기를 위
한 역량을 소유하고 있었다”(capacity for renunciation)고 지라르는 적
고 있다.22) 저자는『세계를 건설하는 불교의 세계포기의 역설- 르네 지
라르의 미메시스 이론의 빛으로』에서 서구가 상상하기 힘든 정도의 포
기의 역량, 곧 흰두교와 불교 전통의 세계포기(world-renunciation) 속
의 은폐된 희생양 메커니즘을 분석해 보았다.23) 신화에 근거한 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성경적 계시는“전복적인 힘”과24)“전복적이고 폭발적
인 진리”를25) 품고 있는“묵시록적인 능력”(apokalyptischer Kraft)으로
역사 속에 등장한다.26) 전통적 보호메커니즘과 통제메커니즘에 대한
전복적이고 묵시록적인 세력인 기독교와는 달리 불교의 세계포기 속에
서 우리는“희생제의적 비축”과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신성
한 오해들”을27) 발견할 수 있다. 전통적 사회를 유지하고 보호하던 희생
양 메커니즘을 폭로하는 전복적이고 폭발적인 기독교의 복음서와는 달
리 신성한 반대 구조와 축제적 무질서를 대변하는 세계포기와 그 포기
자들은 일종의“저장된 카오스”(contained chaos)28)로 이해될 수 있다.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57
21) Girard and Chantre, Battling to the End, 63-4.
22) Ibid., 68.
23) Ilkwaen Chung, Paradoxie der weltgestaltenden Weltentsagung im Buddhismus.
Ein Zugang aus der Sicht der mimetischen Theorie René Girards. Beiträzur
mimetischen Theorie 28 (Wien/ünster: LIT Verlag, 2010).
24) René Girard, A Theater of Envy: Willam Shakespear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283.
25) René Girard, Das Ende der Gewalt. Analyse des Menschheitsverhängnisses
(Freiburg/Basel/Wien: Herder, 1983), 264.
26) Palaver, René Girards mimetische Theorie. Im Kontext kulturtheoretischer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Fragen, 318.
27) Girard, Das Ende der Gewalt. Analyse des Menschheitsverhängnisses, 272.
태초로부터 감추어져왔던 사실을 폭로하는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전복
적, 폭발적 그리고 묵시록적 메시지로 작용해왔다.
“폭력의 불예측성”이야말로 새로운 현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
다고 지라르는 주장한다. 고대 제의의 가장 최근의 한 형태로서의“정
치적 합리성”은 실패했다고 말한다. 인류는 이제 클라우제비츠가 전쟁
과 같은 얼굴을 가진 것으로 어렴풋이 내다본 순전히 상호적인 세계로
접어들었다.29) 극단으로 가속화되어가는 현대사회에 대한 클라우제비츠
의 묵시록적 직관에 대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지라르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의 삼위일체론과 관련해서“전사 영웅주의”는“폭력적 종교”와 관
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30)
2. 전체성의 신화와 폭력 그리고 타자: 지라르와 레비나스
레비나스의『전체성과 무한』은 지라르의『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
실』과 같은 해인 1961년에 출판되었다. 지라르는 레비나스의 헤겔 비판
이 필요하다고 본다.31) 또한 헤겔과 국가의 신성화의 문제도 비판적으
로 논의되었다. 개인이 자기- 의식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타자성과의
직면에서다. 주체는 (타자와의) 관계를 제외하고서는 어떤 의미도 지니
고 있지 않다. 비록 그 관계가 대결(a duel) 형태를 지닐지라도. 지라르
에 의하면 레비나스는 분명 전쟁광이 아니었고 분명히 전쟁을 통한 갱
신을 믿지 않았지만, 레비나스의 입장에는 평화주의에 대한 비판이 존
재한다. 전쟁을 넘어서 레비나스는 모든 상호성으로부터 정화된 타자와
의 관계성을 생각했다고 지라르는 본다. 전체성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
25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28) Friedhelm Hardy, The Religious Culture of India. Power, Love and Wisdo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553.
29) Girard and Chantre, Battling to the End, 68.
30) Ibid., 84.
31) Ibid., 71.
하는 초월을 레비나스는 추구한다. 레비나스는 국가와 전체주의를 공격
했으며, 그는 헤겔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모든
존재론은 개인을 도시에게 개체를 전체에 희생시킨다는 의미에서 전쟁
적이다(warlike). 그러므로 전쟁에 의해서 그 본질이 계시되는 존재론
을 우리는 피해야 한다. 윤리적 관계, 대결(duel) 자체도 포함하는 오리
지널한 관계야말로 전체성으로부터의 탈출을 가능하게 한다. 레비나스
가“헤겔을 완성시켰다면”, 지라르는 스스로 클라우제비츠의 미완의 기
획을 완성시켜서 종결시키고자 한다고 말한다. 레비나스가 철학의 영역
에서 그 논리적 귀결까지 논의함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면, 지라
르 자신은 인류학의 영역에서 유사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레비
나스는 헤겔을 통하여 서구 철학적 전통 전체를 넘어서 나아가고자 한
다고 지라르는 분석한다.32)
지라르에게 있어서“전체성의 본질”과“비밀”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계시되고 폭로되었다. 이것은 전쟁이라는 시련, 곧 모든 존재론의 본질
적으로 폭력적인 성격에 대한 계시일 수 있다. 그러나 지라르에 있어서
레비나스가 보지 못한 것은 폭력의 뿌리에 존재하는 경쟁의 모방적 성
격에 관한 것이다. 레비나스가 전체성을 탈출하는 과정은 성스러움에서
거룩함으로(from the sacred to the saintly), 상호성으로부터 관계성으로
옮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영웅주의로부
터 성자다움으로의 변화”와 비교할 수 있다. 헤겔의 오류와 프로메테우
스적인 희망을 넘어서 지라르는“묵시록적 합리성”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성자의 모델이 단 번에 그리고 영원히 인류 역사의
한 부분이 되었고, 또한 옛 영웅의 모델을 대체하게 되었다. 영웅적 모
델을 재건하고자 하는 시도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라르에
의하면 타자에 대한 이론은 전체성을 극심한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데,
그것이 전체성의 전쟁적인 본질을 계시하기 때문이다. 지라르에게 있어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59
32) Ibid., 97.
서“전체성은 실제로 신화이며”, 또한 규제된 교환 시스템이며, 상호성
을 감추고 있는 모든 것이다.“ 전체성을 탈출한다는 것은”지라르에게
있어서 두 가지를 의미한다: 무차별화된 폭력의 카오스로 퇴행하든지
아니면 타자로서의 타자라는 조화스러운 공동체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
는 것이다. 지라르는 내적 중개의 시대로의 진입 이후 전지국적 차원에
서 진행되는 무차별화의 증가의 문제와“타자와의 폭력적인 근접성”의
문제에 대해서 논한다.33)
현상학에 타자개념을 도입해서 이것으로부터 서구문화 전반의 전체
주의적 성격을 비판한 레비나스의 사상은 문화 일반의 희생제의적 성
격에 천착하는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지라르도 희생양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성경적 정신과 같이 객
과 고아와 과부와 같은 약자, 타자, 희생양에 대한 우선적이고도 윤리적
선택을 시도한다. 하지만 지라르는 모방욕망하는 인간 일반에 대한 보
다 소설적인 근본인류학적 성찰로 인해서“타자와의 폭력적인 근접성”
이라는 새로운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또한 타자와 약자도 동일하
게 모방욕망하고 질투하는 인간이라는 이해에서 출발해서 보다 역동적
이고 드라마틱한 해석학을 요청하는 듯 하다.
지라르는 이 책에서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부정적 무차별화라는 묵
시록적 상황에서‘올바른 거리’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지라르에게 있어
서 전체성을 탈출한다는 것은 그 메커니즘을 전복시키는 것을 의미한
다. 더 이상 자신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은폐된 비밀이 없는 전체성은
순전한 폭력으로 변하게 된다. 지라르는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전통이
인류에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일 수도 있다는 니체의 말이 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완전히 선한 하나님을 모방하도록 초
대한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신들을 모방하는 것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들은 항상 말하기를 디오니소스와는 항상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그
26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33) Ibid., 98-100.
에게 너무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스도만이 이 점에
있어서 접근가능하다고 지라르는 적고 있다. 그리스인들은“모방할 수
있는 초월의 모델”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이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
라, 모든 고대 종교들의“바로 그”문제였다. 고대 종교에 있어서 절대적
폭력은 오직 카타르시스적인 기억과 희생제의적 반복 속에서만 선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미메시스적인 것을 계시하는 동시에 그
것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한다. 니체는 디오니소스를 모방
하기로 추구했다. 즉 소위“디오니소스적인 철학자”가 되기를 추구했다
고 지라르는 지적한다.
그리스도가“성스러움과의 거리”를 회복시켰다면, 상호성은 우리를
서로에게 너무 근접시켜서“부패한 성스러움”, 곧 폭력을 생산한다. 원
시사회에서 폭력은 바로“신들의 근접성”(god’s proximity)과 하나였다.
신들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출현하지 않는데, 이는 폭력이 더 이상 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라르에 의하면 횔덜린은 헤겔과
클라우제비츠와 동시대인으로서 유일하게“인간들 사이의 근접성이 가
지는 위험”에 대해서 이해를 했다고 본다. 실제로 그리스인들은 인류와
뒤섞이는 신, 상호성의 신, 모방적 짝패와 전염되는 광기의 신을 디오니
소스라 불렀다. 디오니소스는 신들이“너무 가까이”(too close) 왔을 때
느끼는 공포를 의미한다.34)
“묵시록적 전환”이라는 제목 하에35) 지라르는“도시의 전체성”을 폭
로하고 폭발시키는“그 타자(the Other)”(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역사 속
에 진행되고 있는 묵시록적 과정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스도가 디오니
소스를 대체했지만, 니체는 이 사실을 보기 원하지 않았다고 지라르는
적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폭력은 그 정당성을 상실했다. 오직 르상티망
만이 지속적으로 증폭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우리로 하여금 채택하도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61
34) Ibid., 101-2.
35) Ibid., 103-8.
록 한 직선적인 시간은 신들의 영원한 회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또한 죄 없는 희생양들의 머리를 가운데 두고 이루어지는 화해도 불가
능하게 만들었다. 지라르는 그리스 비극이 자신의 이론적 발견에 있어
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것이“신화적 해결”에 의
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많은 짝패들(doubles)과 결투(duel)
을 발견할 수 있다. 쌍둥이 사이의 경쟁이 항상 어떤 살해에 선행되는
데, 그 살해로 말미암아 일치가 다시금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일치는
모든 인류사회가 필요로 하는“거짓 평화”다.“ 도시의 전체성”(Totality
of the city), 적과 같은 형제들의 이중성, 그리고 희생물의 일치성: 바로
이것이 희생양에 근거한 양극화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도시는 제3의
희생양에게 자신의 폭력을 집중시킴으로, 그 폭력을 통제해왔다.“ 묵시
록적인 과정”은 모든 인류의 기초들을 거꾸로 전복시킨다: 동의하시는
희생양의 일치성, 전쟁의 이중성, 그리고“임박한 전체성의 폭발”. 이제
는 더 이상 신들을 제작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희생자의
자리에 대신 오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희생양은“신성화되기 이전에 이
미 신적이었다”(is divine before becoming sacred).“ 하나님, 곧 오시는
타자”는‘회칠한 무덤들’을 전복시킨다. 그 타자는(the Other) 전체 시
스템을 파괴한다.36)
십자가에 달리신 자를 통해서“폭력에 대한 진실”이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알려졌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선포한 진실, 곧“모든
인류문화의 폭력적 기원”에 대한 진실을 계시했다. 이 본질적인 진실을
귀 기울여 듣기를 거부하는 것은 원시적 세계의 회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인데, 그럴 경우 그것은 니체가 희망했던 것처럼 디오니소스의 얼굴
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전체적인 파멸의 세계가 될 것이다.“ 디오니소
스적인 카오스”는 무엇인가를 설립하는 카오스였다. 오늘 우리를 위협
하는 것은 보다 더 급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폭력에 관한
26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36) Ibid., 104.
진실을“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폭력에 매료당하는
것에 저항해야 한다. 희생제의적 메커니즘에 대한 그리스도의 폭로는
지속적으로 폭력을 악화시켰다.“ 타자의 오심”은 전체성을 파괴하는 과
정 중에 있다. 지라르는 이것이(기독교)“ 종말론의 대가”라고 본다. 지
라르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오시는 타자”(the Other who is coming)
이며,“ 그 자신의 상처받기 쉬움 가운데서도 시스템 안에 공포를 야기
시킨다.”작은 원시적 사회에서 타자는 무질서를 몰고 오는 이방인이었
고 항상 결국 희생양으로 살해되게 된다고 지라르는 적고 있다. 즉 타
자와 약자를 희생양으로서 변호하고 구원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러나
지라르는 기독교의 묵시록적인 업적과 대가에 대해서 동시에 지적한다.
그러므로 성서는 어린아이 시절의 희생양 메커니즘을 포기한 이후의
“인류의 성숙함”을 요청한다.37)
3. 올바른 거리: 횔덜린의 슬픔과 은거
제5장“횔덜린의 슬픔”(Tristesse de Hölderlin)에서 지라르는 타자
와의 폭력적인 근접성과 무차별화라는“큰 비극”의 시대 속에서“올바
른 거리”와 은거의 지혜를 권하고 있다. 지라르는 이 묵시록적인 상황,
곧 가속화되는 부정적 무차별화의 시대 속에서 미메시스적인 소용돌이
에 저항할 수 있는“올바른 거리”를 대안으로 제시한다.38) 지라르는“긍
정적인 무차별화”의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점차적으로 정치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는 현대사회의“부정적 무차별화”에 대해서 지적
한다. 그에게 있어서 현대사회는 최선의 사회인 동시에 최악의 사회다.
많은 희생자들이 살해되었지만 또한 이전 시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되기도 했다. 기독교의 계시가 가능성들을 해방시켰는데, 그 가능
성들 중에는 경이로운 것도 있고 무시무시한 것도 있다.39)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63
37) Ibid., 105.
38) Ibid., 134.
지라르에게 있어서 모방되어야 할 그리스도의 측면이 있다면 그것
은 그의 철수(withdrawal)이다. 횔덜린은 바로 이“드라마틱한 발견”을
했다고 지라르는 적고 있다.40) 횔덜린의“침묵”에 대해서 연구해야 한다
는 것이다. 이 위대한 시인은 클라우제비츠와 헤겔과 동시대인이었다.
지라르는 횔덜린이 튀빙엔에 최종적으로 은거하게 된 것을 일종의“절
대자에 대한 거부,”곧 유럽의 전쟁 도발을 지지하는 모든 낙관론자들
로부터의“급진적인 거리”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횔덜린은“슬
픔”으로 어느 날 갑자기 동시대인들에게 말하는 것을 중단했다.41)“내
적 중개”로 특징지워지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큰 비극”에 대해서 지라
르는 분석한다. 모방과 그 양면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상호성에서
관계성으로, 부정적 전염에서 긍정적 전염으로 옮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보인다고 그는 말한다.42)
그리스인들의 시대에는 폭력적 상호성은 곧 신, 다른 말로 하면“폭
력적 성스러움”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스러움에 특유하게 매
료당하는 것은 폭력에 의해 전염당하는 것과 같다. 티레시아스와 오이
디푸스와의 충돌은 신화적 대결(duels)에 대한 좋은 상징이었다.43) 지라
르에게 있어서 복음서는“심오한 인류학적 의미”를 지닌다. 십자가에
달리신 자는“폭력의 메커니즘들”을 은폐하려는 시도들을 종식시킨다.
성경의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인류의 폭력에 내맡
긴다. 바로 이러한“역설적인 이유로”해서 성경과 복음의 하나님은 고
대의 신들보다 더 폭력적으로 보인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희생양들을
숨겼다. 유대- 기독교의 계시는 신화가 항상 침묵하고 있는 것들을 노
출시킨다. 그러나“큰 역설”은 기독교가 인류에게 자신들의 폭력을 계
26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39) Ibid., 131.
40) Ibid., 51.
41) Ibid., 44.
42) Ibid., 109.
43) Ibid., 115.
시함으로 극단으로 향하는 가속화를 유발시켰다는 사실이다. 현대사회
는“희생제의적 배출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옛 희생제의적 메커니즘의
작동이 힘들게 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제 성숙한 어른처럼
자신들의 폭력에 대해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기독
교는 인류로 하여금 자신들의 폭력에 대해서 신들을 비난할 수 없도록
만들었으며 스스로 성숙하게 책임지도록 만들었다.44)
지라르에 의하면 1806년은 결정적인 해다. 바로 이 해에 헤겔은 자
신의 창문을 통해서“말 위에 탄 세계정신”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클라우제비츠는“전쟁의 신”에게 가까이 끌리게 되었다. 같은 해에 횔
덜린은 이후 그의“광기”로 불리는 상태로 잠기게 되었다. 횔덜린은 튀
빙엔의 어느 목수가 소유하고 있는 탑 안에 들어가 40년 동안 은거했
다. 방문자들이 왔고, 사람들이 그와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는 대부분 하
루 종일 그의 작품들을 낭송하면서 보내거나, 완전한 침묵 가운데 몸을
엎드려 지냈다고 한다. 그의 옛 시절 친구들, 곧 피히테, 헤겔, 쉴러와는
달리 횔덜린은 절대자를(the Absolute) 믿기를 중단했다. 그러나 횔덜린
은“과도한 광기”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고 지라르는 본다. 지라르는
이 횔덜린의 침묵의 고상함에까지 도달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지라르에 의하면 횔덜린은 우리가 그동안 믿어온 것처럼 그리스 동
경에 의해서 훨씬 덜 사로잡혔다. 지라르는 오히려 횔덜린이 당시의 고
전주의와 관련된“이교주의로의 복귀”를 두려워했다고 본다. 횔덜린은
두 극단, 곧 신적인 것의 부재와 그것의“치명적인 근접성”사이에 분열
했다고 본다. 이는 횔덜린의 주요한 두 작품,『 히페리온-그리스의 은둔
자』(Hyperion oder Der Eremit in Griechenland)와『엠페도클레스의
죽음』(Der Tod des Empedokles)에서 잘 나타난다고 적고 있다. 횔덜린
의 영혼은 노스텔지아와 공포, 이제는 텅 빈 하늘을 의문시하는 것과
“화산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사이를 오고 갔다. 반대로 횔덜린의 모든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65
44) Ibid., 118.
친구들은 신들의 부재에 너무도 불안해 하였기에 그것의 귀환을 열렬
히 갈망했다. 그러나 신들은 죽었다. 왜냐하면 기독교를 통한 희생제의
적 메커니즘의“불안정화”(destabilization) 때문이다. 지라르에게 있어
서 신들의 부재와 절대자의 현존은 연관된 주제들이다. 즉 신들의 부재
가 절대자의 현존을 야기한 것이다. 만약 하늘이 텅 비어 있다면 우리
는 무엇으로 그것을 다시 채울 것인가? 지라르에 의하면 이 질문은 또
한 니체가『즐거운 학문』아포리즘 125번에서 제기한 질문이기도 하다.
횔덜린의 동시대인들은 이 진공상태를 다시금 채우기 위해 그리스를
바라보았다. 횔덜린도 잠시 동안 이 함정에 빠졌지만 그의 은거와“깊
은 슬픔”은 보다 더 위대한 명료함을 보여준다고 지라르는 본다.45)
지라르는 횔덜린의 가장 위대한 시들 중 하나의『파트모스의 찬가』
(Patmos)의 첫 구절에 주목한다. 이 구절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논
평되었는데, 특히 하이데거가 이 구절에서 과학기술에 의한 세계의 틀
지우기(Gestell, enframing)를 본 이후로 특히 그러했다. 이 구절들은
디오니소스의 귀환을 널리 알리기보다는 그리스도의 귀환을 훨씬 더
크게 알린다:46)
신은 가까이 있건만
이해하기 힘들어라.
그러나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는 법
지라르는 횔덜린의 이 구절들을 하이데거처럼 해석하지 않는다. 하
이데거는 이 구절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이교주의로의 복귀를 권장하
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고 본다. 1962년 독일 슈피겔(Der Spiegel)
지와의 인터뷰에서 하이데거가 남긴“수수께끼 같은”말,“ 신만이 우리
26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45) Ibid., 121.
46) Ibid., 121.
를 구원할 수 있다”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리스 종교의 귀환을 추
정하게 했다고 지라르는 적고 있다. 지라르의 의하면 하이데거의 이 말
에는“디오니소스의 어떤 것”,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를 대신하는 헬레
니즘에 대한 노스탤직한 선택이 담겨져 있다. 횔덜린은 헬레니즘으로
향하는 위대한 고전주의적 경향성은 만약 그리스도에 대한 불편한 느
낌만 많지 않다면 기독교와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지라르는 평
가한다. 하이데거는 독일 계몽주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횔덜
린은 당시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공유하고 있었던“이교적인 것으로
의 양면가치적인 방향선회”에 대해서 보다 큰 저항을 했다고 지라르는
이해한다. 횔덜린을 인용하는 많은 사람들은 하이데거의 발자취를 따른
다고 지라르는 지적한다. 즉 그들은 횔덜린이 깊은 기독교적 사상가였
다는 사실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고 지라르는 평가한다. 이와 같이 지라
르에 의하면 횔덜린의“침묵,”“슬픔”그리고“은거”는 독일 역사의 가
공할만한 가속화가 발생했을 때 이루어졌다.47)
4.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디오니소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해서 지라르는 그 영원회귀를 발생시키
는‘엔진’, 곧 희생양들에 대한 집단적 살해에 대해서 지적한다. 그러므
로 영원회귀는 집단적 살해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참된 기초인 폭력은
진정한 기초가 되기 위해서 은폐된 채로 남아 있어야만 했던 것인데
기독교에 의해서 최초로 고발되었다. 니체는 초석적 살해의 메커니즘을
보았다고 지라르는 본다. 지라르에 의하면“니체의 일생의 비극은”성경
에 의한 이 (영원회귀)의“전복을 보았지만 그것을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대신 니체는“디오니소스에게 승부를 걸음으로
써 의미를 재부여하고자 시도했다.”48) 기독교는 제의적, 희생제의적 종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67
47) Ibid., 123-4.
48) Ibid., 95-6.
교들을 생산하기 위해서 은폐된 채 남아 있어야만 했던 것들을 폭로했
다. 기독교적 계시는 그 자신이 제공하는 바로 그 지식의 역설적인 희
생양이다. 그리스도는 희생자들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왔다. 미메시
스 이론은 신화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하기보다는 그리
스도의“수난과 원시종교 사이의 근본적인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밝히
려고 한다 기독교는 지라르에게 있어서 반대로 된 초석적 살해다.49)
원인이 무엇이든간에, 니체의 광기는 분명히“십자가에 달리신 자”로
부터“디오니소스”로의“지속적이면서도 점차적으로 가속화되는 전환”
때문이었다고 지라르는 분석한다. 디오니소스를 선택한다는 것은“폭력
의 다산성”을 신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의하면 니체는 그리스도
가 디오니소스의 자리를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대신하게 되었다는 사
실과 또한 그리스도가 그리스적 유산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보기를
원하지 않았다. 지라르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달리신 자는 디오니소스를
파괴하지 않고“일으켜 세운다”(raises up). 그러나 지라르에 의하면 니
체는 지속적으로 디오니소스를 십자가에 달리신 자에 대항하는 것으로
묘사했다.50) 이처럼 지라르는 희생양 메커니즘에 기초한 고대적 영원회
귀의 순환론적 역사관 이후로 일종의 묵시록적 세력으로 등장한 유대-
기독교 전통의 탈신성화 과정과 직선적 역사관의 업적을 변호하지만,
동시에 마지막 희생양으로 온 십자가에 달리신 자의 역설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는 복음서와 신화의 급진적인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말한다.
지라르는 헤겔에 의해 작성되고 쉘링과 횔덜린에 의해서도 분명히
이해되었던『독일 관념론의 가장 오래된 체계 계획』(Das älteste
Systemprogramm des deutschen Idealismus)의 내용을 언급한다:“ 이
성과 가슴의 유일신론,”“상상력과 예술의 다신론”바로 이것이 우리에
26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49) Ibid., xv.
50) Ibid., 125-9.
게 필요하다. 우리는“새로운 신화”를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이성의 신
화”여야 한다.51) 쉘링은 신화에 대한 뛰어난 직관력을 소유하고 있다.
니체도 그러하다.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자의 수난이“성스러
움을 완전히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였거나, 보기를 원치 않았
다고 지라르는 분석한다. 이것이 니체의『즐거운 학문』의 아포리즘 125
번의 의미라고 본다. 낭만주의는 기초의 심연, 곧 모든 세계 신화들이
은폐하고 있는“무차별화된 군중의 마그마”를 어렴풋이 보았다. 그것은
숭고한 동시에 무시무시하다.52)
서구의 폭력에 대한 독특한 민감성은 전통적 희생제의적 질서를 전
복하고 폭발시키는 묵시록적 기독교의 영향사에서 탄생했다. 전통문화
는 폭력이 쉽게 노출되지 않고, 절대적 평화라는 기만적인 인상을 주
기도 한다. 지라르는『리그베다』제10권의 푸루샤 찬가(讚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이는 우주적 푸루샤, 즉 최초의 인간(原人)의
각 부분으로부터 만유(萬有)가 전개되었다는‘거인 해체’에 의한 창조
신화다. 신(神)이 푸루샤를 희생제물로 제사를 올리자 그의 몸을 통해
서 카스트 제도가 파생되었다고 한다. 지라르에 의하면 푸루샤는“희생
제사를 드리는 군중에 의해서 살해되었다.”바로 이 초석적‘살해’로
부터 모든 실재가 탄생했다. 이 푸루샤 찬가는 초석적 신화이지만,“ 폭
력은 이상하게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지라르에 의하면 이
창조신화는“너무나 오래되어서 폭력이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 것 같
다.”이것은“사물에 대한 절대적으로 평화스러운 베다적 개념”이다.53)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69
51) Ibid., 126.
52) Ibid., 178.
53) Ibid., 135.
III. 결론: 계몽된 묵시록과 해방적 성숙성
기독교는 문화 발생에 있어서의 종교의 중추적 역할을 계시했다. 기
독교는 참으로 종교를 탈신비화시켰는데, 이는 고대 종교가 기초하고
있는 것, 곧 신성화된 희생양의 효율성이라는 오류를 지적하고 있기 때
문이다. 폭력을“담을 수 있는”(to contain) 유일한 시스템이었던 희생제
의의 상실로 우리 가운데 폭력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희생제의가 살아
지자 남은 것은 모방적 경쟁이며 그것은 극단적으로 가속화된다. 지라
르에게 있어서“묵시록은 역사 속의 기독교의 성육신 외에 다름 아니
다.”희생제의의 완전한 상실은 반드시‘폭발’을 촉발시키는데, 왜냐하
면 희생제의가 우리를 지탱하였던 정치적- 종교적 체계였기 때문이
다.54)
지라르는“현대의 무차별화”와 글로벌화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그는 현대사회가 가져온 긍정적인 발전을 인정하는 동시에 새
로운 위험에 대해서 경고한다.55) 현대사회는 이전의 사회보다 더 나빠
질 수 있다. 희생양 메커니즘이 폭로된 이후 등장하는 새로운 위험들을
경고하는 지라르는“묵시록적인 사상가”다.56) 전 지구적으로 무차별화되
는 글로벌화 시대의 종교, 폭력 그리고 평화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논의
하기 위해서는“계몽된 묵시록”이 요청된다. 지라르의 학제적 응용을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뒤피는 이 위협적인 묵시록적인 시대에는 새로
27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54) Ibid., 198-9.
55) Palaver, René Girards mimetische Theorie. Im Kontext kulturtheoretischer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Fragen, 315.
56) Palaver, René Girards mimetische Theorie. Im Kontext kulturtheoretischer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Fragen, 316: “ein apokalyptischer Denker.” 정치학과 묵시
록의 상관성을 미메시스 이론으로 분석하는 연구들은 다음을 참고하라: Hamerton-
Kelly, Robert G. & Johnsen, William (eds), Politics & Apocalypse (Studies in
Violence, Mimesis, and Culture Series) (Michigan: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2008).
운 기술윤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57) 기독교 계시는 점차적으로 희생
제의를 제거함으로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성을 가속화시켰다. 기독교의
도래는 일종의“해방적 성숙성,”곧“반(反) 희생제의적 교육”을 의미한
다고 지라르는 본다. 그러나 기독교는 또한“상처받기 쉬운 전통”이기
도 하다. 기독교는 자신이 계시한 메시지와 급진적으로 새로운 정보, 곧
성스러움에 대한 급진적인 탈신비화와 폭력적 기원의 메커니즘에 대한
결정적인 지식의 높은 기준에 어울리게 살지 못하기도 했다.58) 그러므
로 인류는 자신의 폭력과 모방을 인정하면서 과거의 본능적 희생양 메
커니즘을 포기한 채, 우리의 연약한 사회시스템에 대한 묵시록적 성숙
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그리고 타자와의 올바른 거리를 유지하면서 평
화를 지향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주제어
르네 지라르, 현대사회,헤겔, 클라우제비츠, 횔덜린, 니체
René Girard, Apocalyptic Modernity, Hegel, Levinas, Hölderlin
접 수 일2013년 6월 5일
심사(수정)일 2013년 8월 21일
게재 확정일 2013년 8월 30일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71
57) Jean-Pierre Dupuy, “Die Ethik der Technologie im Zeitalter der drohenden
Apokalypse,” In Aufgeklärte Apokalyptik: Religion, Gewalt und Frieden im
Zeitalter der Globalisierung, ed. Palaver, Wolfgang, Exenberger, Andreas and
Stöckl, Kristina, 229-249. Edition Weltordnung-Religion-Gewalt 1 (Innsbruck:
Innsbruck University Press, 2007).
58) Ibid., 141.
참고문헌
Chung, Ilkwaen. Paradoxie der weltgestaltenden Weltentsagung im
Buddhismus. Ein Zugang aus der Sicht der mimetischen Theorie
René Girards. Beiträge zur mimetischen Theorie 28. Wien/Münster:
LIT Verlag, 2010.
Dupuy, Jean-Pierre. “Die Ethik der Technologie im Zeitalter der drohenden
Apokalypse.” In Aufgeklärte Apokalyptik: Religion, Gewalt und
Frieden im Zeitalter der Globalisierung. ed. Palaver, Wolfgang,
Exenberger, Andreas and Stöckl, Kristina, pp. 229-249. Edition
Weltordnung-Religion-Gewalt 1 (Innsbruck: Innsbruck University
Press, 2007).
Girard, René. Mensonge romantique et vérité romanesque. Paris: Grasset,
1961.
. Das Ende der Gewalt. Analyse des Menschheitsverhängnisses.
Freiburg/Basel/Wien: Herder, 1983.
. Das Heilige und die Gewalt. Zürich: Benzinger, 1987.
. A Theatre of Envy: William Shakespear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1.
. Achever Clausewitz. Entretiens avec Benoît Chantre. Carnets Nord.
Paris. 2007.
. Battling to the End: Conversations with Benoit Chantre. East Lansing: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2010.
Hamerton-Kelly, Robert G. & Johnsen, William (eds). Politics &
Apocalypse (Studies in Violence, Mimesis, and Culture Series)
(Michigan: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2008).
Hardy, Friedhelm. The Religious Culture of India. Power, Love and Wisdo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4.
Palaver, Wolfgang. René Girards mimetische Theorie. Im Kontext kulturtheoretischer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Fragen. Münster-
Hamburg-London: LIT Verlag, 2003.
27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국문 초록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최근 저작『클라우제비츠를 완성하다』
는 프로이센 출신의 장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의 미완의 저서인『전쟁론』(Vom Kriege)을 다루고 있다. 본고에서는 아
직 국내 번역되지 않은 지라르의 이 최근 저작 중 주요한 부분을 번역,
소개하면서 관련 논의들을 덧붙이고자 한다. 특히 지라르의 이론을 레
비- 스트로스, 헤겔, 쉘링, 코제브, 클라우제비츠, 횔덜린, 니체, 하이데거,
레비나스 등의 사상과의 관련성 속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희생양 메커
니즘에 의해서 내부 폭력을 통제하면서 스스로를 보호한 전통적 사회
질서와 그 영원회귀의 사상이 기독교 의해 탈신성화 되면서 이제는 내
적 중개와 부정적 무차별화로 특징지워지는 묵시록적 상황으로 변했다.
현대사회는 최선의 사회이기도 하지만, 최악의 사회, 특히 상처받기 쉬
운 연약한 사회가 될 수도 있다. 지라르는 횔덜린의 슬픔, 침묵, 은거에
대한 논의에서 현대인들에게 타자와의 폭력적 근접성으로부터 올바른
거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레비- 스트로서의 소위 야만적인『슬픈 열
대』를 염두에 두면서 본고는 뜨겁고도 묵시록적인『슬픈 현대』에 대해
서 근본인류학적 성찰을 시도하고자 한다. 지라르에 의하면 기독교는
인류를 희생제의적 목발로부터 해방시켰고, 동시에 우리의 운명에 대해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73
서 보다 성숙한 자세로 책임지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전지국적 차원에
서 무차별화된 시대 속에서 평화를 위해서는 우리의 상처받기 쉬운 운
명에 대한 보다 성숙하면서도 계몽된 묵시록적 합리성이 요청된다.
27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6집
Abstract
Tristes Modernes: Religion and Peace in a
Globalized World
Commens on René Girard’s latest Book Achever Clausewitz
Chung, Il-kwaen
Lecturer
Handong Global University
Pohang, Korea
Tristes Modernes, my comments on Ren? Girard’s latest Book
Achever Clausewitz are named after Tristes Tropiques which was
written by Claude Levi-Strauss, French anthropologist and one of the
founders of structural anthropology. Lévi-Strauss saw the world of
the so-called savage mind vanishing around him. He visits the last
remnants of indigenous tribes in the interior of Brazil, peoples who
are being wiped out by the encroachment of western-modern
civilization. The sadness of his title seems to be due in part to his
realization of his culpability in this loss. The fifth chapter of Girard’s
book Achever Clausewitz is entitled Tristesse de Hölderlin. By
meditating on Tristesse de Hölderlin, Girard seems to deal with the
greaty tragedy of our era of internal mediation and negative undifferentiation.
His book is an apocalyptic book. According to Girard,
by revealing the founding murder, Christianity destroyed the
ignorance and and superstition that are indispensable to such religions.
Our modern civilization is the most creative and powerful ever
known, but also the most fragile and threatened because it no longer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275
has the safety valve of archaic religion. Girard has the impres-sion
that Clausewitz held the key to understand the tragedy and sadness of
the our apocalyptic modern world. Tristes Modernes are comments
on the fragile, vulerable and apocalptic modernity.
Concerning the increase in undifferentiation at the planetary level
and our entrance into an era of internal mediation, Girard speaks of
the apocalyptic turn. The linear time that the Crucified forced us to
adpot makes the eternal return of the gods impossible, and thus also
any mimetic reconciliation on the head of the innocent victims. But ,
according to Girard, ancient India had a capacity for renunciation that
the West does not imagine. In my book, Paradoxie der weltgestaltenden
Weltentsagung im Buddhismus. Ein Zugang aus der Sicht der
mimetischen Theorie René Girards (Paradox of world-constructing
world-renunciation in Buddhism. In the light of mimetic theory of
René Girard), I have argued that this unimaginable capacity for
renunciation in India and also in Buddhism(sacred institution of
world-renunciation) could be understood as a kind of sacrificial
institution. The sacred anti-structural institution of world-renunciation
as safty valve could be thought of as a kind of contained chaos
and the contained violence. This festive institution of world-renunciation
seems to be an institution to contain violence.
For Girard, Christian revelation acclerated a trend to extremes by
eliminating more and more sacrifices. Girard argues that the West’s
failing resides in its refusal to see the coming of Christianity as a
liberating maturity, and anti-sacrificial education. Girard recommends
a apocalyptic wisdom of right distance in our violent proximity
to the o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