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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개신교원리를 중심으로/황민효.호남신학대

I. 들어가는 글
20세기 위대한 신학자이자 예언자였던 폴 틸리히를 가장 잘 표현
하는 명칭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문화신학자’(a theologian of culture)
일 것이다. 종교와 문화의 문제는 틸리히의 평생을 걸친 관심사였고,
그는 자신의 학문적 삶의 대부분을 종교와 문화 간의 관계, 또는 그리
스도교와 세속 사회의 관계 설정 문제에 대한 대답을 추구하는데 보냈
다. 틸리히는 가장 이상적으로 문화와 종교가 결합된 상태를 “신
율”(theonomy)이라고 부르며, 세상 가운데에서 신율적 표현을 발견해
내고 그것에 학문적인 체계화를 제공하며,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을
책임 있는 문화신학자라면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하였다.1)


1) 틸리히에 따르면, 문화신학에는 세 가지 임무가 있는데, 첫 번째 임무는 종교와 문화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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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와 1930년대의 전후 유럽의 상황가운데 종교사회주의2)
는 틸리히에게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기독교 사회윤리로 생각되었으
며, 종교사회주의야말로 정치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황폐해진 전후
독일을 재건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이며,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
는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졌다.3) 틸리히는 종교사회주의가 부르주아


의 관계에 대한 일반 종교분석, 다시 말하여 모든 문화적 표현들을 분석하기 위하여 종
교나 문화의 제 개념들과 그 상호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임무는 “종교는 문
화의 의미 (실체)를 제공하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을 제공한다”는 그의 정의에서 잘 나
타나고 있다. 두 번째 임무는 앞서 결정된 형식과 의미의 관점에서 역사적이고 문화적
인 구조를 (또는 종교적인 유형학과 문화사 철학의 관점으로 모든 문화적 표현들을) 분
석하는 것인데, 이 분석은 틸리히는 역사-문화적 구조들에 세 가지 주요한 형식들인 ‘자
율,’ ‘타율,’ 그리고 ‘신율’ 분석에서 잘 드러난다. 마지막 세 번째 임무는 종교적 관점에
서 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종교적 체계화를 이루는 것인데, 이것은 종교적 의미를 생동
감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문화체계를 비판하거나, 시대의 신율적인 표현들을 찾는 것
즉, 종교-문화적 체계화의 실현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Paul Tillich,
What is Religion? trans. James Luther Adams (New York, Evanston, and London: Harper
& Row, 1969), 155-181.
2) ‘종교사회주의’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블룸하르트(Christoph Blumhardt), 쿠
터(Hermann Kutter), 라가츠(Leonhard Ragaz)였다. 물론 이전에도 기독교와 사회주의
간에 여러 접촉들이 있었으나, 체계적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이들에 의해서라 할
수 있다. 유럽사회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 아래 자본주의 체제
를 구축해 나갔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가 비약적인 경제적 성장과 부를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빈부의 격차와 불평등은 물론 인간을 하나의 노동력이나 부를 축적
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비인본주의적 경향이 심화되게 되었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
의 불평등과 비인본주의적 경향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 있는 예언자적 사회
참여를 고무하였다. 종교사회주의 운동은 유럽전역에서 일어났으나 특별히 종교적 지
원이 가능했던 스위스와 독일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Wilhelm and Marion Pauck. Paul
Tillich:His Life and Thought. Vol. 1: Life (New York:Harper & Row, 1976), 69-70.
3) 틸리히는 자신의 자서전 ?경계선상에서?(On the Boundary)에서 그가 어떻게 종교사회
주의자가 되었는지를 이렇게 말한다: “처음으로 나는 정치적 상황에 매우 민감하게 되
었다. 1914년 이전의 모든 독일 지성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정치에는 다소 무관심한
편이었다…. 독일 제국의 몰락과 제1차 세계대전 마지막 해의 혁명을 맞아서야 나는 그
전쟁의 정치적 배후가 되는 문제들, 곧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상관관계, 부르주아 사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89


문명을 붕괴시킴을 통하여 유럽사회에 새로운 시작, 즉 종교와 세속문
화의 결합을 가져오는 카이로스(kairos)를 예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하였다. 따라서 그는 종교사회주의에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기초를 제
공하고자 노력했다. 즉, 종교적 전통과 문화적 혁명의 간격을 메울 신
율적 기대를 종교사회주의에 투영한 것이다.
이 논문은 틸리히가 제시하는 종교사회주의를 분석하는 것을 목
적으로 한다. 하지만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거
나 기술하기보다, 그의 종교사회주의를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인 ‘개
신교 원리’(the Protestant principle)를 중심으로 파악하고 그의 종교사
회주의정신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어떠한 의미가 있
는지 살펴보려 한다. 이 작업을 위해 먼저 II장에서는 틸리히의 종교사
회주의를 개신교 원리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분석할 것이다. 다음으로
III장에서는 종교사회주의의 핵심인 개신교 원리가 구체적으로 어떻
게 적용되고 있는지 특히 틸리히의 역사 해석이 가장 자명하게 드러나
는 『사회주의자의 결단』(Die Socialistiche Entscheidung)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IV장에서는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가 오
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논의할
것이다.


회의 위기, 계급 간의 분리 등의 문제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관념을 뒤흔들
고 그 관념에 악마적인 채색을 할 만큼 위협적이었던 전쟁의 어마어마한 압력은 전쟁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인간사회를 다시 뜯어고치고자 하는 소망을
통해 그 출구를 찾게 되었다. 종교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요청이 메아리치자 나는 그 소
리에 귀를 기울였으며 또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Paul Tillich, on the Boundary:
An autobiographical Sketch [New York: Charles Scriber’s Sons, 1966],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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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일반 분석
― 개신교 원리를 중심으로
1. 종교와 사회주의의 공통기반: 예언자적 태도
틸리히에 의하면, “종교사회주의란 종교적인 전망의 근본적 본질
과 초월성을 세상을 형성하려는 내재적인 의지의 구체성과 연합하고
자 하는 시도”4)라 정의될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종교사회주의는 사회
주의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측면을 긍정하고 또한 종교적인 영역에
담겨있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표현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종교와 사
회주의 양자의 창조적 종합을 통하여 현실에 직면한 실존의 부정적 결
과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측면은 무엇이며, 종
교적 영역에 존재하는 사회주의적 요소는 무엇일까? 분명 종교와 사
회주의는 너무나 다른 실체들인데, 그 둘이 창조적으로 종합될 수 있
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일까? 틸리히는 종교와 사회주의 둘 사이의
연결고리와 가능성을 실존에 대한 비판적 태도 즉, 예언자적 태도로부
터 찾는다.
틸리히에 따르면 역사-문화적 실존 또는 현실상황에 대하여 세 가
지 태도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역사 의식을 결여한 성례전적 태도,
역사적으로 비판적인 이성적 태도 그리고 종교사회주의가 취하고 있
는 예언자적 태도가 그것들이다.5)


4) Paul Tillich, Political Expectation, ed. James Luther Adams (New York, Evanston, San
Francisco, and London:Harper & Row, 1971), 57.
5) 실상 역사-문화적 실존에 대한 태도를 세 가지 유형론으로서만 설명하는 것은 매우 단
순한 분석임에 틀림없다. 예를 들어, 틸리히가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실존적 상황에 대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91


첫째, 역사 비판 의식을 결여한 성례전적인 태도(the sacramental
attitude)는 신적 존재의 내재성에 근거하여 어떤 것을 성별화하거나,
특정한 대상이나 행위에 거룩함을 부여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즉,
특정한 상징들에 궁극성을 부여함을 통하여 성별화와 거룩함의 기초
위에 세우려는 시도이다. 실상 이 성례전적 태도는 틸리히의 세 가지
문화 유형 중 하나인 ‘타율’의 논의와 일맥상통한다.
타율은 종교적 영역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종교는 자신
에게 주어진 모든 종류의 비판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다시 말하
여, 무조건성(unconditionedness)과 불침해성(inviolability)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특별한 종교적 상징들로 도피하곤 한다. 무조건적인 의미
가 특정한 상징에 의하여서만 표현되고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종교적
인 영역에서만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함을 통하여, 종교적인 상징들은
다른 문화적 상징들과는 다르게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종교적 상징들은 모든 종류의 비판들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
라 보호받는 절대성을 가지는 것이다. 틸리히는 타율을 ‘신앙적 타율
성’(a belief-ful heteronomy)6)이라고도 부르는데 종교적 상징의 근거
를 이 세상을 초월한 실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타율적 상황에서 종교적 초월성은 쉽게 사라지고 만다. 왜냐하면 타율
은 자신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유한한 상징을 절대화하는 틸리
히가 ‘마성화’(demonization)라 부르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
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타율은 ‘종교적 자기높임’(hubris)의


한 무관심 역시 우리가 쉽게 일상에서 마주하는 주요한 태도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틸리히가 세 가지 태도로 단순화하는 것은 물론 체계적 진술을 좋아하는
그의 선호일수도 있지만, 그의 세 가지 문화유형론(타율, 자율, 신율)과 병행하여 설명
하기 위해 단순화한 것으로 보인다.
6) Tillich, What is Religion? (1969),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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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7) 틸리히에 의하면, 비록 근대 이후 비판적
정신들의 부흥으로 인하여 성례전적 태도가 예전과 같은 권위를 가지
고 있지 않더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종교적 자기높임의 태도는 여전히
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으며, 절대 간과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8)
둘째, 역사 비판 의식을 소유한 이성적 태도(the rational attitude)
는 무조건적 의미나 불침해적 상징을 지향하는 성례전적 태도와는 다
르게 문화적 형식을 지향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성례전적인 요
소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가능한 한 순수
한 형식을 창조하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창조를 통하여 성례전적 요소
를 배격하고 문화적 상징들을 통해 상실된 종교적 기반 또는 거룩함의
현존을 재건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성적 태도 역시 틸리히의 세 가지
문화 유형 중 하나인 ‘자율’의 논의와 다르지 않다.
자율의 개념은 모든 문화적 창조물은 스스로를 결정할 수 있는 자
유와 독립된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사고에 근거하고 있다. 즉, 자율은
‘종교로부터 문화를 해방시키려는 유한한 형식의 절대화’라고 할 수
있다.9) 틸리히는 자율적 태도를 ‘비신앙적 태도’(the unbelief-ful attitude)
라고 규정한다. 물론 모든 문화-창조적 행위들에는 항상 종교적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문화적 행위는 그 어떠한
의미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형식, 율법, 의도로써의 자
율적 태도는 항상 비신앙적이다.10) 왜냐하면 역사 비판 의식을 가지
고 미래를 창조해 나간다 할지라도, 궁극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 인위
적으로 유한한 형식들의 통일을 지향하기 때문에 결국 종교적 기반을


7) 앞의 책, 75.
8) Tillich, Political Expectation (1971), 59.
9) Tillich, What is Religion? (1969), 74.
10) 앞의 책, 77.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93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성적 태도나 자율적 비판을 통한 실존 변혁은 결코 완전하게 성
취될 수 없다. 주어진 거룩함을 요청되는 거룩함으로 대치하고자 하는
노력이나 미래를 위한 반성, 창조적인 활동들을 통해 세상을 변혁시키
려는 노력은 결국 궁극적 의미를 상실한 공허함이 되고 말기 때문이
다. “실재로부터 분리되게 만든 간격을 극복하고자 하지만 필연적으
로 오히려 그 간격을 깊게 만드는 것, 이것이 모든 반성들의 비극이다.
자신이 요청하는 미래를 창조해내지만 또한 동시에 그 미래의 도래를
감추는 것이 모든 반성적 태도들이 가진 황폐성이다.”11)
셋째, 종교사회주의가 취하고 있는 예언자적 태도는 앞서 말한 두
가지 태도들의 종합이자 고차원적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예언자적 태
도는 미래를 예언하는 점술이나 특정한 윤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예언
자적 태도는 꼭 이루어져야 할, 간절히 대망하는 미래를 오늘날 우리
에게 주어진 것들과의 살아있는 관계 속에서 파악한다. 예언자적 태도
는 성례전적 거룩함을 가지고 있으나 오직 율법과 형식을 보급하는데
있어서만 그럴 뿐이고, 또한 성례전적 무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우나
‘이성적 정화’(rational purgation)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그보다 자
신의 예언자적 의식의 정당성을 성례전적 거룩성의 기반으로부터 끌
어내고, 이성주의가 요청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게 적절한 형식을 요청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틸리히의 ‘신율’의 논의와 동일한 것을 발견하
게 된다.
틸리히는 가장 이상적으로 문화와 종교가 결합되는 상태를 ‘신
율’(theonomy)이라고 부른다. 신율은 자율이나 타율과는 다르게 ‘무
조건적인 의미의 의미’와 ‘조건적인 의미의 형식’이 완전하게 조화를


11) Tillich, Political Expectation (1971),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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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는, 즉 문화와 종교의 온전한 종합을 일컫는 말이다.12) 물론 자율
이 종교적 타율의 횡포를 견제하는 데 있어서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고 인간의 본성을 지켜 내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것도 사실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율은 타율을 극복하는 가운데 신적인 기반으
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버렸다. 이것이 바로 자율이 가진 한계요, 실
패인 것이다.13) 이와는 반대로 자율적인 형식을 배제한 타율은 사실
상 불가능하며, 신념의 힘을 잃고, 급기야는 마성적 수단으로 전락하
고 만다.14) 결국 그 자신 역시 신율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할 수밖에 없
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와 문화 간의 진정한 관계는 모든 문화적인 창조물이
그들의 근원인 영원성의 의미, 무조건적인 의미들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신율적 문화’(a theonomous culture)이다. 신율의 상태에서는
문화는 종교에 의하여 굴복되거나 억압되지 않는다. 또한 종교는 문화
안에 융해되지도 않는다. 틸리히에 따르면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한 진술은 “종교는 문화의 실체요,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15)
라는 문구이다. 이 진술에서 종교는 모든 문화에 깊이와 의미를 부여
하는 궁극적 관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화는 그것들을 통하여 종교의


12) Tillich, What is Religion? (1969), 74-5.
13) 틸리히는 역사상 이루어진 가장 온전한 신율의 예로써 ‘초기와 고중세 시기’(the early
and high Middle Ages)를 든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모든 문화적 창조물(예를 들어, 건
축, 회화, 철학, 윤리 등)에서 종교적 성격들을 보았으며, 그들의 모든 삶의 생활이 종교
적인 가치와 규범에 의하여 성별되었다. 거기에는 종교와 이성 간의 투쟁이나 분열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자율과 타율의 관계는 상호 투쟁적
관계로 변화하였고, 신율로부터 분리되었다. 진정한 종교와 문화의 일치는 신율이기
에, 신율로부터 분리된 자율과 타율은 인간정신의 비극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앞의
책, 75).
14) 앞의 책, 76.
15) Paul Tillich, The Protestant Era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48), 57.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95


깊이가 표현되는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구조와 형식을 뜻한다. 바로 이
관계가 틸리히가 상호내재성을 주장하는 종교와 문화 간의 신율적 관
계인 것이다.16) 종교사회주의가 취하는 예언자적 정신은 신율과 동일
한 방식으로 주어진 거룩함과 또 요청되는 거룩함이 만나는 것을 그리
고 그 둘 사이의 긴장들 속에서 거룩한 의미가 필연적(이상적) 형식에
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례전적 태도와 비판적 태
도는 신율을 추구하는 예언자주의의 정신에서 일치하게 되는 것이
다.17)


2. 종교사회주의의 핵심: 개신교 원리
그렇다면 종교사회주의가 취하는 예언자적 태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를 의미하는 것일까? 앞서 예언자적 태도란 신율의 추구와
다르지 않음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예언자적 태도는 신율을 긍정함
과 동시에 신율로부터 분리된 자율과 타율을 비판하는 태도라 정의할
수 있다. 이 예언자적 비판 과정은 틸리히가 ‘종교적 유보’(reservatum
religiosum)와 ‘종교적 책임’(obligatum religiosum)이라 부르는 두 가
지 개념을 통하여 잘 드러난다. 틸리히에 의하면, 이상적인 신율의 상


16) 종교와 문화사이의 신율적 관계는 틸리히의 예술작품 분석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만
일 누군가가 라벤나(Ravenna)의 모자이크 작품에, 시스틴 성당(the Sistine Chapel)의
벽화에, 램브란트(Rembrandt)의 그림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 그는 이것이 종교적 경
험인지, 혹은 문화적 경험인지를 물을지 모른다. 아마 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경험은 형식의 측면에서는
문화적인 것이고 실체적인 면으로는 종교적인 것이라고…. 인간문화의 가장 위대한
단계는 실존의 조건하에서 온전한 자율적인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유한성의 아
래에서 무한을 추구하는 가운데 이해될 수 있다”(Paul Tillich, The Interpretation of
History [New York:Charles Scribner’s Sons, 1936], 49-50).
17) Tillich, Political Expectation (1971),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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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에서 문화와 종교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모든 문화는 실
현된 종교이고, 모든 종교는 문화로써 실현된다.”18) 그러나 모든 문화
에는 신적인 형식과 마성적인 형식이 서로 얽혀 있는 까닭에, 종교는
항상 문화에 대하여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즉, 문화에 대
하여 ‘아니요’라고 말하는 ‘종교적 유보’의 태도를 취함과 동시에 문
화에 대하여 ‘네’라고 말하는 ‘종교적 책임’의 태도를 함께 취하는 것
이다.
종교는 문화적 형식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에 종교적 책임을 배
제한 종교적 유보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진정한 것이 될 수 없다. 동시
에 종교적 유보가 없는 종교적 책임은 곧 무한정자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기에 또한 진정한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틸리히는 “문화와 사회
주의에 대한 유일하고 올바른 접근은 종교적 유보와 종교적 책임이라
는 두 가지의 요청들에 의하여서만 결정될 수 있다”19)고 주장한다. 이
러한 방법으로 틸리히는 종교적 실체와 사회정치적 실체의 관계를 역
동적이고 변증법적 관계에 의하여 파악한다. 따라서 스툼(John R.
Stumme)이 지적하듯이, “하나님의 나라의 역설적인 침투의 전망에서
파악된 종교적 책임과 종교적 유보의 변증법적인 관계는 틸리히의 정
치 이론의 근본 원리들을 제공하였다”20)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종교적 유보와 종교적 책임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개신교
원리(Protestant principle)’와 ‘가톨릭 실체(Catholic substance)’의 관계
에서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다. 틸리히에 의하면, 개신교원리는 무한
정자와 한정자 간의, 즉 하나님과 세상 간의 진정한 관계성을 표현하


18) 앞의 책, 63.
19) 앞의 책, 64.
20) John R. Stumme, Socialism in Theological Perspective:A Study of Paul Tillich,
1918-1933 (Missoula, MT:Scholars Press, 1978), 216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97


는 예언자적 비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언자적 비판의 원리로서 개
신교 원리가 강조하는 것은 양면적이다. 개신교 원리는 부정적 측면에
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무한한 간격을 강조함과 동시에 또한 긍정적 측
면에서 인간과 하나님 간의 이러한 간격이 은혜에 의하여 다리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먼저 개신교 원리의 부정적 측면은 유한한 실재와 무한한 실재,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 즉 인간과 하나님사이의 무한한 간격을 강
조하며 특정한 인간적 요소나 역사적이고 유한한 실재를 신성화
(divinization)하는 것을 배격한다. 인간으로부터 신으로 이르는 모든
길은 닫혀 있다. 모든 유한한 존재는 유한할 수밖에 없으며 오직 신만
이 무한하고 궁극적이다.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무한함을 꿈꾸
며 자신들, 혹은 자신들의 사상이나 체계를 궁극적인 것으로 삼고자
한다. 이러한 우상적이고 마성적인 경향을 여러 정치적, 사회적, 문화
적, 그리고 종교적 운동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신적인 것
을 지시하는 하나의 상징을 무조건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거룩함
을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을 거룩함 그 자체로 삼고자 시도하며, 유한
한 것을 무한한 것으로까지 높이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유한한 실
체를 무한한 실체로까지 높이는 모든 행위는 마성적인 것이고,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이에 반하여 개신교 원리의 긍정적 측면은 실상 틸리히가 ‘가톨릭
실체’라 부르는 원리와 동일한 것이다.22) 이 ‘가톨릭 실체’ 또는 개신


21) Charles W. Kegley, ed. The Theology of Paul Tillich (New York:Pilgrim, 1982), 53.
22) 물론 틸리히는 종종 ‘개신교원리’와 ‘가톨릭실체’를 구별하여 사용하곤 한다. 예를 들
어, 정통 가톨릭주의에 대해서는 개신교원리의 자기비판의 원리가 없다고 비판하는
한편, 개신교주의에 대해서는 거룩함의 기반인 가톨릭실체가 결여되어 있다고 비판
한다. 그러나 길키(Langdon Gilkey)가 옳게 지적하는 것처럼,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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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원리의 긍정적 측면에 의하면, 유한한 상징들은 단지 유한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무한성과 궁극성의 담지자가 될 수 있다. 왜냐하
면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는 유한한 상징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
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개신교 원리는 세속적인 삶이나
유한한 형식에만 사로잡혀서 거룩함을 보지 못하는 또는 거룩함을 상
실하는 세속주의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한다. 거룩한 것, 또는
신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하여 나타나고, 교회의 약함을 통하
여 나타나며, 또한 성례전의 유한한 매체들을 통하여 드러난다. 모든
유한한 실재는 신적인 것을 드러내는 상징이 될 수 있으며 초월적 의
미들을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유한함과 무한함, 일시적인 것과 영원
한 것, 하나님과 인간, 성스러움과 세속은 결코 단순하게 이원론적이
나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3. 개신교 원리의 대적: 마성화(Demonization)와 범속화(Profanization)
개신교 원리가 저항하는 첫 번째 대적은 ‘마성화’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모든 실존적 존재 안에는 ‘형식을 형성하는 삶의 자질’과 ‘형
식을 파괴하는 삶의 자질’이 함께 존재한다. 즉, 특정 형식에 구속되고
자 하는 경향이 있는 동시에 그 형식으로부터 탈피하여 자유롭고자하
는 경향, 곧 형식을 극복하고자 하는 경향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두 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톨릭실체는 개신교원리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가톨
릭실체는 개신교원리를 통해서만 온전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Kegley, The Theology
of Paul Tillich [1982], 51-52). 그러나 길키처럼 이 둘을 변증법적 관계로 보는 것은 적
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개신교원리는 틸리히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율의 표현이 아니
라 그 자체로 자율과 타율이 조화를 이룬 신율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틸리히의
개신교원리는 이미 그 자체에 틸리히가 가톨릭실체라는 기준을 통하여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99


지 경향은 상호보완적인 것이지만, 이 두 가지 경향이 상호 배타적인
형식으로 나타날 때, 특히 자신의 제한적인 형식을 깨뜨리려 하거나
자신의 심연의 깊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갈망을 분출하는 가운데 마성
적인 것들이 나타난다.23)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형식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무조
건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형식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는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
면 “은혜는 형식을 인정하고 무조건적 형식을 긍정함으로써 형식을
돌파하고자 하지만, 마성적인 것은 무조건적 형식에 자신을 복종하지
않으면서 그 형식을 돌파하는 것”24)에 있다. 다시 말하여, 성스러운 것
은 은혜의 방향으로 인도하는 반면에, 마성적인 것은 파괴적인 방향으
로 인도하는 것이다.
마성화의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자기높임의 형태로 나타난다. 마
성화는 어떠한 도덕적, 문화적 형식이나 계시의 매개체들이 자신들의
궁극적 가치나 위치를 주장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들은
그것들이 지시하는 거룩한 것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것들 자체는 거룩
한 것이 아니다. 거룩한 것이 되고자 하는 주장은 그들을 마성적으로
만든다.”25) 마성화는 작게는 개인적 영역에서는 물론이요, 크게는 경
제, 정치 체제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틸리히는 자본주의(capitalism)와
국가주의(nationalism)를 20세기 초 유럽사회의 두 지배적인 마성적
운동들이라고 주장한다: “그것들은 자율적 경제의 마성화인 자본주
의와 지배하는 백성의 마성화인 국가주의이다.”26) 자본주의는 경제


23) Tillich, The Interpretation of History (1936), 84-85.
24) 앞의 책, 86.
25)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III (Chicago: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3),
104.
10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1집(2015년 6월)


활동이라는 창조적 측면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한 개인을 파멸
시키는 파괴적 측면과 철저히 결합시켜서, 물질 숭상주의(Mammonism)
라는 마성화를 이루었다. 또한 국가주의는 국가의 창조적 측면과 유익
을 제공하는 측면을 파괴적 측면들(예를 들어, 자기 정당화, 폭력, 그
리고 살인)과 철저히 합일시켰다.27) 이러한 마성화는 창조적인 면과
파괴적인 면을 철저히 결합함으로써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력
과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마성적인 운동은 단지 세
속적인 영역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인 영역에서도
마성화는 뚜렷하게 아니 더욱 거짓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마성화는 결코 세속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
해야 한다. 마성은 종교에 있어서 가장 거짓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경
전이나, 무오성의 교리, 또는 성례전적인 체계에서 절대성을 특정화
시키는 어떠한 종교도 마성적인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인 마성화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거짓된 이유는 그것이 신적인 것에 호소하기 때
문이다. 어떤 종교들은 수많은 마성적인 것들을 하나의 체계나, 하나
의 성스러운 책이라는 경전이나, 성스러운 전통이나, 성스러운 계급
이나, 또는 심지어 성스러운 사회체계에까지 집결시킨다.28)
타율의 성격이 지배하는 곳이면 그 어디에서나 자기높임의 가능
성, 마성화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마성화를 극복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오직 은혜만이 이러한 마성화를 극복할 수 있다. 하지


26) 앞의 책, 119.
27) 앞의 책, 120-121.
28) James Luther Adams, Paul Tillich’s Philosophy of Culture, Science and Religion (New
York: Harper & Row, 1962), 51.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101


만 그 어디에도 우리가 완전히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은 주어지지 않
는다. 단지, 종교적 영역에서 주어진 유일한 확신은 마성적인 것은 영
원함 아래에서, 영원한 그 순간에 결국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온 힘을 다하여 마성화에 저항해
야만 한다. 그리고 이 마성화에 저항하는 비판적 정신이 바로 개신교
원리인 것이다.
개신교 원리가 저항하는 두 번째의 대적은 ‘범속화’이다. 앞서 개
신교 원리의 긍정적 측면 또는 가톨릭 실체에 의거하여 틸리히는 종교
적인 영역을 포함한 모든 실존의 영역에는 신적 성격 즉, 거룩성이 있
음을 주장하였다. 범속화는 거룩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세속에 물드는
것을 의미한다. 틸리히는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세속화’(secularization)
라는 용어보다 ‘범속화’(profanization)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왜
냐하면 종교적 영역에서 나타나는 자기초월성의 상실을 표현하기 위
해서는 범속화가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범속’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자기초월성에 저항’ 말하자면
성전 문 앞에 머물러있는 것, 거룩성 바깥에 서있는 것을 정확하게 표
현하고 있다.”29)
범속화는 모든 거룩함의 담지자들(특히 종교)로부터 거룩함 또는
초월성을 빼앗아 유한한 것들 중 하나가 되게 한다. 물론 모든 종교적
행위에는 세속화된 요소들이 있다. 그러나 종교는 자신을 통하여―또
는 성경, 성례전, 직제들과 같은 종교적 상징들이나 행위들을 통하여
― 무한정자를 매개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종교가 자기초월적 요소
를 상실해 버린다면 종교는 더 이상 종교로서 작용할 수 없는 것이다.
틸리히에 따르면 범속화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일어날 수 있다. 하


29) Tillich, Systematic Theology Ⅲ (1963), 87.
10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1집(2015년 6월)


나는 ‘제도화’(institutional)라고 부르는 방향과 다른 하나는 ‘환원
화’(reductive)라는 방향이다. 제도화는 종교가 제도화되면서 거룩성
을 잃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종교의 제도 자체가 문제라 말할 수
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하고 살아가는 모든 삶은 다 제도화 되
어있기 때문이다. 형식 없이는 삶이 역동성을 가질 수 없듯이, 제도화
없이는 심지어 종교도 실현될 수 없다. 그러나 종교의 제도화가 가지
는 가장 큰 문제는 무한한 방향을 향하여 유한한 것을 초월하는 대신
에, 종교 스스로가 유한한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즉, 종교가 일련의
규정된 활동에 얽매이고, 명문화된 교리를 수용하면서, 하나의 사회
압력 단체나 정치 단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30) 그러나 종교 생활 속
에 있는 세속화의 위험을 제거하고, 순수한 자기초월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시도는 유토피아적 오류가 될 수밖에 없다. 모든 형태의 개인적,
사회적 종교에서는 항상 세속화의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장 세속화된 형태의 종교도 그들 자신 속에 거룩함과 존엄성
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종교의 모호성은 이러한 거룩함과 세속화의
긴장에서 온다.
두 번째 범속화의 방향은 환원적인 것이다. 이러한 환원화는 “문
화는 종교의 형식이며, 도덕은 그 심각성의 표현이다”31)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종교를 문화나 도덕으로 환원시킨다.
여기서 종교는 모든 문화의 기능들처럼, 자기초월성을 상실한 하나의
문화의 창조물로 여겨진다. 종교는 심리학적 또는 사회학적인 소산물
로 여겨지며(포이에르바하나 프로이트가 주장하듯), 하나의 이데올
로기나 환상(마르크스나 니체가 주장하듯)으로 여겨진다. 결과적으


30) 앞의 책, 99.
31) 앞의 책, 100.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103


로, 종교는 문화 안에서도 그리고 도덕 안에서도 그 중요성과 필요성
이 부정된다. 종교는 문화 창조성의 기능에서 그 위치가 주어지지 않
거나, 혹은 도덕에도 종교가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정신의 모든 기능 속에 집을 가져야 할 종교가 그 모든 기능 속에서 집
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32) 틸리히는 근대 이후의 시대에서는 제도
화의 문제보다 환원화의 문제가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위험이라고 말
한다.
이처럼 개신교 원리는 완성된 성취에 대한 인간들이 가진 순박한
신념과 비극적이고 마성적인 모든 인간적 자기 높임의 시도들에 저항
하는 원리이다. 그러나 개신교원리가 저항하는 것은 조직화된 종교적
형식이나 체계도 아니고, 문화 내의 성취나 가치도 아니다. 개신교 원
리가 부인하는 것은 바로 모든 조직화된 종교와 세속적 문화 내에 자
리 잡은 자기 절대화 그리고 거룩함을 잃어버린 범속화인 것이다.


III. 개신교 원리의 적용: 틸리히의 역사 해석
우리는 종교사회주의의 핵심인 개신교 원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틸리히의 역사 해석, 특히 정치철학을 중심으로 살
펴보고자 한다. 이른 30년대 독일 ‘국가사회주의’(NAZI)가 대중들의
큰 지지를 얻어갈 때, 틸리히는 그 마성과 위험성을 미리 예견했던 예
언자 중 하나였다. 그는 여러 강연들을 통하여 국가사회주의의 정책이
나 실천을 단순히 비판하기보다, 그것이 지닌 철학적 근원을 비판함으
로써 불합리성을 주장하였다. 이 강연들을 모은 것이 바로 1933년 저


32) 앞의 책, 101.
10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1집(2015년 6월)


작인 『사회주의자의 결단』이다.33)
틸리히에 따르면 역사 해석은 두 가지의 물음들로 단순화될 수 있
다. 하나는 ‘어디로부터’(woher)라는 물음이고, 다른 하나는 ‘어디
로’(wozu)의 물음이다. 틸리히에 의하면, ‘어디로부터’의 물음은 그가
‘근원의 신화’(the myth of origin)라고 부르는 것에 의존하고 있다. 실
존적 존재라면 누구나 ‘어디로부터’ 즉, 자신의 근원을 관심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라도 자신의 근원을 찾고 싶어 하고 가능한 한 보존하기
를 원한다. 근원에 대한 집착은 사람들로 하여금 민족적, 지역적, 혈연
적 전통에 관계시키고, 역동적이고 권위적인 전통이 가지고 있는 근원
적 힘에 관계시킴으로써 유대감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실존적 존재를 근원적인 힘과 전통에 관계시키는 ‘어디로부
터’의 물음은 모든 보수적이고 낭만주의적 사상의 근본이 된다.34) 그
러나 근원에의 집착은 ‘어디로’의 물음이 물어지는 순간 모호성에 빠
지게 된다. 즉, “어디로 가야하는가?”라는 당위적이고 무조건적인 물
음 앞에서 인간은 단순히 근원에만 얽매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
고, 삶의 궁극적 의미와 변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틸리히에
따르면, 새롭고, 궁극적인 성취에 관하여 묻는 ‘어디로’의 질문은 모든
진보적인 특히 정치학에서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적, 또한 사회주의
적 사상의 근본이 된다.35)


33) Gregory Baum, “Paul Tillich on Socialism and Nationalism,” Studies in World
Christianity (1996/1), 97.
34) Paul Tillich, The Socialist Decision (New York: Harper & Row, 1977), 4. 여기서 틸리히
가 사용하는 ‘낭만주의적 사상’ 또는 ‘낭만주의’라는 용어는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낭만주의 사조’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틸리히가 낭만주의라는 용어로 표
현하는 것의 의미는 현실 비판적이지 못하며, 역사 안에서의 완성을 꿈꾸는 이상적이
고 유토피아적인 기대를 의미한다.
35) 앞의 책, 5.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105


앞서 타율과 자율이 본래 상호보완적이었던 것처럼, ‘어디로부
터’와 ‘어디로’의 물음은 상호 대립적이라기보다 상호보완적으로 보
아야 한다. 틸리히에 의하면, ‘어디로부터’의 요청은 근원의 성취를 대
망하기 때문에, ‘어디로부터’의 물음은 ‘어디로’의 물음에서 그 성취
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이 둘 사이의 대립은 ‘진정한 근원’(the true
origin)과 ‘실제적 근원’(the actual origin)이 서로 다를 때 시작된다. 이
상과 내가 경험하는 실제가 대립될 때, ‘실제적 근원’을 보존하려는 보
수적인 ‘어디로부터’의 물음과 실제적 근원을 비판하며 성취를 지향
하는 진보적 ‘어디로’의 물음 간의 대립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두 가
지 신화의 이론적 기초로부터 틸리히는 ‘정치적 낭만주의’(political
Romanticism)와 ‘부르주아 자유주의’(bourgeois liberalism)를 분석한다.
틸리히에 따르면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 즉 나치(the
Nazi)는 정치적 낭만주의, 그중에서도 혁명적(급진적)인 형식에 속한
다. 나치즘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낭만주의는 근원의 신화로 돌아감을
통하여 새로운 이상적 세상을 이루려고 한다. 정치적 낭만주의가 가진
장점은 부르주아 가치 체계로 인해 생겨난 현대 사회의 비 인본주의적
측면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 의
식을 신화적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종말론적 희망과 연합한 까닭에 나
치즘은 큰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특정 인종, 특정 정당,
특정 지도자를 거룩한 것이나 고귀한 것으로 여기는 정치적 낭만주의
는 마성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36) 실존에 대한 비판의식을 소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정치적 낭만주의가 집착하는 근원 즉, ‘어디로
부터’의 물음은 ‘어디로’라는 비판적 물음을 억압하는 한에서만 유지
될 수 있는 것이다.


36) 앞의 책, 14-15.
10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1집(2015년 6월)


이에 반하여 ‘어디로’의 물음을 묻는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계몽
주의적 자율성’(Enlightenment autonomy)이라는 이름으로 근원의 신
화를 성공적으로 돌파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 정신이 본
래 비판적 사고와 전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점차적으로
세속화되고 왜곡됨으로써 부르주아적 자유주의는 더 이상 ‘어디로’
의 물음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까지 극단화되었다. 바이스코프
(Walter A. Weisskopf)는 부르주아 자유주의가 세속화된 이유로 이성
이 존재론적 이성으로부터 기술적 이성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37) 다시 말하여, 부르주아 자유주의적 가치에 따라 삶의 역
동성과 생명력에 관심하던 존재론적 이성이 유한한 것에만 관심을 가
지며, 물질적인 진보의 개념으로 모든 행위와 의미를 판단하는 기술적
이성으로 변질된 까닭에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비판적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따라서 존재론적 이성 아래에서의 힘의 생명력은 이성적이거
나 기술적인 효율성으로 대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직 종교사회주의만이 ‘어디로부터’와 ‘어디로’의 변증법적 개
념을 올바로 제공할 수 있다. 틸리히에 의하면, 사회주의의 원리는 세
가지의 상호작용―근원의 힘, 조화의 신념의 붕괴 그리고 요청의 강
조―에 근거하고 있다.38) 사회주의의 원리는 정치적 낭만주의가 주장
하는 ‘근원의 힘’(the power of origin)을 긍정하고, 부르주아 원리의 전
제인 ‘무조건적 요청에 의한 근원적 결합을 깨트리고 나오는 것’(the
breaking of the bond of origin by an unconditional demand)을 긍정한다.
그러나 부르주아 원리의 형이상학적인 핵심인 조화에 대한 신념은 부


37) Walter A. Weisskopf, “Tillich and the Crisis of the West,” in The Thought of Paul
Tillich, ed. James Luther Adams., Wilhelm Pauck., and Roger L. Shinn. (San Francisco:
Harper & Row, 1985), 66.
38) 앞의 책, 100-101.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107


정한다. 이러한 세 가지의 상호작용은 사회주의에 있어서 ‘기대’(expectation)
라는 상징에서 결합된다. “사회주의는 근원의 신화에 반대
하여, 또 조화의 신념에 반대하여 기대의 상징을 높인다. 이 기대의 상
징은 근원의 신화와 조화의 신념이라는 두 가지의 요소를 다 가지고
있지만 또한 동시에 이 둘을 초월한다.”39)
그러나 사회주의는 이러한 성취를 오직 예언자적 전통에 근거함
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사회주의는 ‘근원적인 신화들의 종교적인
가치들’(the religious values of myths of origins)과 또한 그러한 신화들
에 대해 ‘이성적-협동적 사회구조’(a rational-cooperative social order)
안에서 행하여지는 ‘예언자적 비판’(the prophetic criticism)을 상호 연
관시키는 종교사회주의가 되어야 한다.40) 다시 말하여, 사회주의 원
리는 이성적 비판정신과 예언자적 비판정신의 창조적 종합에 의해서
만 진정한 가치를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합은 ‘신율’과 동일
한 것이다. 신율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하여 준동하는 사회주의
의식이다. 신율이 가지는 미래의 소망은 과거의 완성 즉, 진정한 근원
의 성취이다. 따라서 종교사회주의는 유한한 존재가 자신의 무조건적
인 근원으로 향하고, 그 의미를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개신교 원리에
충실한 ‘신율적 사회주의’(theonomous socialism)가 되어야 한다.
틸리히는 정치적 낭만주의와 부르주아 원리 간의 투쟁으로 인하
여 야기될 수 있는 비극적인 결과들을 지적한다. 만일 부르주아 원리
가 완전한 승리를 거둔다면, 더욱 심화되는 위기들을 불러일으킴으로
써 현재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요, 만일 정치적 낭만주의 또는 군사
적 군가주의(militant nationalism)가 승리하게 된다면, 유럽 사회를 붕


39) 앞의 책, 101.
40) 앞의 책, 77.
10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1집(2015년 6월)


괴시키는 자기파괴적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오직 부르
주아 자유주의와 정치적 낭만주의의 혁명적인 요소들을 이용함과 동
시에, 이 둘로부터 야기되는 마성적 요소들을 비판할 수 있는 개신교
원리를 기준으로 하는 종교사회주의만이 사회적 불일치, 사회적 폐해,
또 혼란으로부터의 탈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41)


IV. 나가는 글: 오늘의 신율을 찾아서
틸리히는 사회주의가 20세기 초, 전후 유럽 사회를 위한 가장 적
합한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속적 상징에 불과한 사회주의는
신율적 전망으로부터 비판적으로 형성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틸
리히가 주장하는 ‘종교사회주의’이다. 물론 종교와 사회주의는 너무
나 다른 실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예언자적 정신 즉, ‘개신
교 원리’의 빛에서 서로 결합될 수 있다. 유한성과 무한성, 거룩함과 세
속의 경계선을 비판적으로 움직이는 개신교 원리를 기준으로 하는 종
교사회주의는 자기절대화라는 마성에 빠진 정치적 낭만주의의 위협
과 기술적 이성을 통해 비 인본주의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부르주아 자
유주의의 범속화의 위협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1) 앞의 책, 160-162. 틸리히는 종교사회주의에도 분명 마성화의 위험성이 존재함을 말한
다. 모든 분파주의에는 바리새주의의 악마적 요소가 있듯이, 만일 종교사회주의가 자
신으로 초월하는 영원한 운동이 되기보다 스스로를 절대시하고 높이게 된다면, 분파
주의의 길을 간다면 또 하나의 마성으로 변질될 수 있는 것이다(Paul Tillich, The
Religious Situation [New York: Meridian Books, 1956], 179-180). 또한 종교사회주의가
자신의 초월성을 보존하기보다 세속적-인본주의적 방식으로 종교를 해석하게 된다면
범속화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109


그렇다면 틸리히의 이런 주장은 오늘 날에도 유효한 것일까? 물
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틸리히가 살았던 전후시대와는 많이 다르
다. 오늘 날 사회주의는 더 이상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틸
리히의 종교사회주의는 더 이상 현대 사회에 접촉점과 영향력을 잃어
버린 것이 아닐까? 결코 그렇지 않다.
틸리히가 미국으로 건너간 후 종교사회주의에 대해서 거의 언급
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바이스코프(Weisskopf)나 오케피
(Terence O’Keeffe)가 주장하듯, 그가 과거에 가지고 있던 정치적 관심
이 보다 존재론적이고 실존적인 신학으로 옮겨간 것일 수도 있지만,42)
그보다는 미국이라는 낮선 환경과 사회주의 특히 마르크스주의에 비
판적인 사회 풍토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톤(Ronald Stone)이
주장하는 것처럼 틸리히가 마르크스주의를 지속적으로 대화 파트너
로 삼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종교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결코 버린
적은 없었다.43) 왜냐하면 종교사회주의를 통해 틸리히가 주장하고 싶
었던 가장 중요한 핵심이 그의 평생의 강조점이었던 개신교원리이기


42) Walter A. Weisskopf, “Tillich and the Crisis of the West” (1985), 76f; Terence O’Keeffe,
“Paul Tillich’s Marxism,” Social Research 48/3 (1981), 476-477.
43) 스톤은 비록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틸리히의 저술이 1933년을 기점으로 멈춰졌다고
할지라도, 그의 개신교주의가 평생을 통해 파트너로 삼았던 것은 마르크스주의였다
고 주장하였다(Ronald Stone, “Paul Tillich: on the Boundary between Protestantism and
Marxism,” Laval Theolologique et Philosophie 45 [Oct, 1989], 400). 그러나 스톤의 해
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물론 틸리히가 마르크스의 비판-특히 자본주의를 향한 비판-
에 호혜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반종교적 성격과 유물
론적 사고에 늘 비판적이었다(Richard Quinney, “The theology of culture: Marx, Tillich
and the prophetic tradition in the reconstruction of the social and moral order,” Union
Seminary Quarterly Review 34/4 [1979], 404). 그 외에도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유토피
아적 역사관과 마르크스주의적 인간론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그것이 가진
한계를 늘 직시하고 있었다(황민효, 『폴 틸리히의 신학 I』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8], 2장을 참조).
11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1집(2015년 6월)


때문이다.
부정적 측면에서 하나님과 인간과의 무한한 간격을 강조하고, 긍
정적 측면에서 인간과 하나님 간의 간격이 은혜에 의하여 다리 놓일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주장하는 개신교원리는 본질적으로 고전적 개
신교의 칭의교리 즉, ‘은혜에 의하여 신앙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받
음’(justification by grace through faith)과 동일하다. 인간의 자기 높임
에 저항하고, 범속화에 저항하는 개신교 원리는 바로 신율의 기준이
요, 그리스도인 예수(Jesus as the Christ)의 십자가의 상징이 전해 준 기
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여전히 그리스도교의 중심 되는 상
징이요, 기준이 되는 한 틸리히가 종교사회주의를 통해 주장하고 싶었
던 그 정신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성화와 범속화의 위협은 여전히 위협적이라는 걸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개인은 물론, 집단, 나라 그
리고 가치 체계에서도 자기 절대화에 빠진 마성적 주장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모든 사회 가치 체계가 세속적 기준에 의해 결정
되는 범속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심지어 세상의 거룩함의 상징이 되
어야 할 교회 역시 범속화의 위험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
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실시한 한국 교회 신뢰도 조사 결과에서 한
국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교회의 범
속화로 인한 결과라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오늘날 마
성화와 범속화가 서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연결되어버린 것이 아닌
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공리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결과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는 필요에 따라 자유방임과 규제를 자유
롭게 넘나들며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득 불평등의 도구가 되
어버렸다.44) 또한 모든 것을 효율성이라는 기준으로 파악하는 가운데
사람의 가치는 물론 도덕, 예술까지도 대상화, 도구화시켜버렸다. 공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111


리주의적 자본주의는 오늘 날 우리가 매일같이 직면하는 가장 위협적
인 마성화와 세속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45)
물론 오늘날 사회주의 사상이 세상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도 사회주의가 다시 예전과 같은 힘을 얻는 것은 불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틸리히가 종교사회주의의 핵심으로
주장한 개신교 원리는 여전히 마성화와 범속화를 비판하고 대항하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 만연한 마성
화와 범속화에 대항하기 위해 개신교 원리가 과거의 사회주의를 대신
하여 어떤 세속적 사상이나 가치를 새로운 대화 파트너로 삼아야 할지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에 민감성을 가진 그리고 책임


44) 장하준은 지난 2세기 동안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더 심해졌다고 주장한다. 특별히 1980
년대 이후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득불균형이 심해졌으며, 심지어 부의 불평등의 문제
는 소득 불평등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미 불이익을 안고 있는
빈곤층 출신의 사람들을 어린이가 모래주머니를 다리에 차고 인생의 경주를 시작하
는 것에 비유하면서, 그들은 가장 공정한 시장에서도(만일 이런 시장이 있다고 가정하
더라도)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고 말한다. 부자들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오늘날 시장
에서의 경쟁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강의』 [서울: 부키,
2014], 9장).
45) 자본주의와 공리주의에 관한 주목할 만한 비판으로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참조하라. 피케티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에서 부
의 불평등이 확대되는 원리로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을 항상 앞선다”라는 명
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소득양극화와 불평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않으
면 19세기 세습자본주의로 회귀할 위험이 있음은 물론 사회정의를 유지해오던 근본
적 가치들을 상실할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토마 피케티, 『21세기 자
본』 [파주: 글항아리, 2014]). 물론 피케티는 후에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의 공식으
로 실제 불평등 확대를 설명하기에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음을 시인했지만, 현재 자본
주의 체제하에서 불평등이 계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
장하였다. 센델은 공리주의와 자유방임주의가 얼마나 세상에 만연해 있으며 그들의
해결책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모호한 것인가를 주장하면서, 시민적 덕성과 공공선이
라는 도덕적 가치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다(마이클 센델, 『정의란 무엇인가』 [파주: 김
영사, 2009]).
11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1집(2015년 6월)


있는 문화신학자라면 누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교회를 위해 시
대적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신율의 표현을 찾아내어 마성화와 범속화
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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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115
국문초록
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 개신교원리를 중심으로
틸리히는 자신의 학문적 삶의 대부분을 종교와 문화 간의 관계,
또는 그리스도교와 세속 사회의 관계 설정 문제에 대한 대답을 추구하
는데 보냈다. 틸리히는 가장 이상적으로 문화와 종교가 결합된 상태를
“신율 (theonomy)”이라고 부르며, 세상가운데에서 신율적 표현을 발
견해내고, 그것에 학문적 체계화를 제공하며,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을 책임 있는 문화신학자라면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하였
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전후 유럽의 상황가운데 종교사회주의는
틸리히에게 있어서 가장 바람직한 기독교 사회윤리로 생각되었으며,
종교사회주의야말로 정치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황폐해진 전후 독일
을 재건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이며,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
일한 대안으로 여겨졌다.
이 논문은 틸리히가 제시하는 종교사회주의를 분석하는 것을 목
적으로 한다. 하지만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거
나 기술하기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그의 종교사회주의를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인 ‘개신교 원리’(the Protestant principle)를 중심으로 파악하
고 그의 종교사회주의 정신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이 작업을 위해 먼저 II장에서
는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를 개신교 원리를 중심으로 간략하게 요약
할 것이다. III장에서는 종교사회주의의 핵심인 개신교 원리가 구체적
11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1집(2015년 6월)
으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특히 틸리히의 역사 해석이 가장 자명하
게 드러나는 『사회주의자의 결단』(Die Socialistiche Entscheidung)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IV장에서는 틸리히의 종교사회
주의가 오늘 날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분석할 것이다.
분석을 요약하면, 종교사회주의는 성례전적 태도와 비판적 태도
의 종합을 추구하는 예언자적 태도에 기초하며, 이 예언자적 태도에서
개신교 원리와 공통 기반을 가지고 있다. 예언자적 태도에 기초한 개
신교 원리는 모든 조직화된 종교와 세속적 문화 내에 자리 잡은 자기
절대화 그리고 거룩함을 잃어버린 범속화에 저항하는 강력한 원리가
될 수 있다. 또한 틸리히는 역사를 해석하면서 종교적 전통과 문화적
혁명의 간격을 메울 신율적 기대를 종교사회주의에 투영하였다. 틸리
히는 종교사회주의가 무조건적 근원을 향하고, 그 의미를 성취하고자
노력하는 즉, 개신교원리에 충실한 ‘신율적 사회주의’(theonomous socialism)
가 될 수만 있다면 유럽사회에 새로운 시작, 즉 종교와 세속문
화의 결합을 가져오는 카이로스(kairos)를 예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하였다.
물론 오늘 날 사회주의 사상이 세상에서 점점 더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의 핵심인 개신교
원리는 여전히 가치 있는 개념이며, 현대 사회의 마성화와 범속화를
비판하고 대항하는 데 있어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황민효|폴 틸리히의 종교사회주의에 관한 연구 117
Abstract
A Study on Paul Tillich's Religious Socialism
in terms of the Protestant Principle
Hwang, Minhyo
Associate Professor
Honam Theological University & Seminary
Kwangju, Korea
Paul Tillich is one of those Christian theologians who have
seriously invested one’s life to examine the question of the
relation of religion to culture. Tillich tried to find a creative
synthesis between culture and religion with the concept of
“theonomy.” In the twenties and thirties religious socialism, for
Tillich, was an appropriate response in terms of Christian social
ethics. He believed that religious socialism can reconstruct the
politically and socially distorted post-World War I Germany and to
present a ‘new’ path for restructuring the world as a whole.
The purpose of this study lies in exploring Paul Tillich’s
concept of religious socialism. In order to appreciate the nature
and magnitude of Paul Tillich's religious socialism, this paper
begins with a summary of Tillich's idea of religious socialism in
terms of the Protestant principle, which is the kernel of Tillich’s
11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1집(2015년 6월)
theological system(section II). Then, in next section, I explore
Tillich’s interpretation of history focusing on his book The
Socialist Decision(Section III). In the final section, I argue Tilich’s
religious socialism is still a valuable method in resisting
demonization and profanization of the world.
According to Tillich, religious socialism is based on the
prophetic attitude, which seeks a synthesis of the sacramental
attitude and the rational attitude. In this prophetic attitude, we find
a common ground between religious socialism and the protestant
principle. The Protestant principle protests against all naïve belief
of perfection in history, the tragic demonic self-elevation of
human beings, and the profanizationn of human culture. In the
Socialist Decision, Tillich tried to lay out the true meaning of
historical dialectic and the theoretical foundation of religious
socialism. If religious socialism can be identified with the
theonomous socialism that is finitude oriented toward its
unconditional ground, it can be the hope and possibility of truly
transforming human society, a kairos. Of course, socialism has
lost its power and influence today. However, Tillich’s spirit of
religious socialism, which is nothing other than the protestant
principle, still a valuable means to resist to divinize or to profane
any element of human or historic re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