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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고전 유신론과 기독교 신학/박영식.서울신학대

I. 문제제기
철학이 질문하는 사유라면, 신학은 답변하는 사유일까? 철학자
바이셰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개별 학문들이 자신의 학문적 대상을
구체적으로 한정하고 있는 반면, 철학은 근원적인 질문이며 모든 존재
하는 것의 밑바탕인 뿌리를 캐묻는 질문으로서, 특정한 대상에 국한되
지 않고 존재 일반의 근거를 묻는다.1) 신학자 틸리히에 따르면, 존재
의 근원적인 근거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철학과 마찬가지로, 신학도
존재의 근거와 의미를 묻는다.2) 철학이 존재에 대한 물음이라면, 신학


1) Wilhelm Weischedel, Der Gott der Philosophen. Grundlegung einer Philosophischen
Theologie im Zeitalter des Nihilismus, Bd. 1 (Darmstadt: WBG, 1971), 1-38.
2) Paul Tillich, Systematische Theologie, Bd. 1 (Berlin/New York: de Gruyter, 8. Au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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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하나님에 대한 물음인데, “하나님”이 이러한 존재질문의 “대답”이
된다는 점에서 철학과 신학은 상관관계에 놓인다.3) 따라서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에서는 철학자들이 문제 삼는 궁극적 대상과 신학이 붙잡
고자 하는 하나님이 서로 다른 대상일 수 없다. 틸리히의 표현에 따르
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철학자들의 신과 동일한 하
나님이다.”4) 철학자들이 묻고 포착하려고 했던 그 신이 바로 아브라
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성서의 하나님이며, 성서의 하나님은
철학자들의 신과 동일시된다.
이러한 철학과 신학의 밀월관계는 단순히 틸리히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기독교 신학의 여명기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
날까지 지속되어 왔다.5) 엄밀한 의미에서 신학(theologia)이란 신
(theos)에 대한 언설과 사유(logos)라고 할 때, 기독교 신학의 가장 중요
한 주제는 하나님이라 할 수 있는데, 신앙의 하나님 이해를 보편적으
로 통용시키고자 기독교 신학은 그 시초에서부터 이미 널리 전제되고
있었던 철학자들의 신을 수용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기독교화된 형이상
학적 신(神)과 성서의 하나님을 동일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독교 사상의 역사 속에는 철학자들에 의해 정초되고 철
학자들에 의해 지지되던 신 관념과 성서의 하나님 사이의 간격을 분명
하게 의식하고 양자의 다름과 어긋남을 뚜렷하게 주장하는 이들이 있


1984), 30.
3) 앞의 책, 193.
4) Paul Tillich, Die Frage nach dem Unbedingten. Schriften zur Religionsphilosophie:
Gesammelte Werke, Bd. V (Stuttgart: Evangelischer Verlag, 1964), 184.
5) Wolfhart Pannenberg, “Die Aufnahme des philosophischen Gottesbegriffs als domatisches
Problem der frühchristlichen Theologie” in Grundfragen systematischer Theologie.
Gesammelte Aufsätze, Bd. 1 (Göttingen: Vandenhoeck&Ruprecht, 2. Aufl., 1971),
296-346는 이러한 수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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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는데, 그 중 대표자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을 거론할 수 있다. 1662년 8월 9일 파스칼이 서거한
후, 그의 정신적 유산을 정리하던 사람들은 그의 양복 안감에 만든 주
머니 속에서 쪽지를 발견했는데, 거기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하지만 철학자들과 지식인들의 하나님은 아닌 (⋯), 예수 그리
스도의 하나님”이라 적혀 있었다.6) 이는 파스칼이 자신의 신비적 체
험에 근거하여 작성한 후 소중하게 간직해 온 메모였고, 데카르트적
합리성에 기초하여 철학자들이 상정한 관념의 신과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신앙체험적 하나님 사이의 대립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17
세기 파스칼에 의해 부각된 철학자들의 신과 성서의 하나님 사이의 대
립은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에 대한 19세기의 사상사적 비판을 거쳐 20
세기의 불운한 사건들에 자극을 받아 칼 바르트, 본회퍼, 몰트만 등의
신학자들에 의해 다시금 신학적으로 조명되고 공명을 얻게 된다.7)
본 논문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신학의 영향 아래
인간의 사유에 의해 사유된 철학자들의 신, 곧 고전 유신론8)의 유래와


6) Bernhard Casper, “Das Fragen nach Gott und der <Gott der Philosophen>”, Volker Michael
Strocka (Hg.), Fragen nach Gott (Frankfurt am Main: Verlag Josef Knecht, 1996): 59-81,
59에서 재인용. 이것은 파스칼 자신의 메모에 근거하면 “은총의 해, 1654년 11월 23일
월요일, 교황이자 순교자인 성 클레멘스의 날 (⋯) 저녁 10시 30분에서 대략 자정 30분
까지” 경험했던 “불”, 곧 뜨거운 성령체험 또는 신비체험의 결과였다.
7) 물론 성서의 하나님과 철학자들의 신 사이의 대립과 모순을 부각하기 보다는 양자 사이
의 유사성과 일치성을 강조하려는 시도도 칼 라너와 한스 큉을 비롯한 일련의 가톨릭
신학자들과 틸리히와 판넨베르크에게서 나타난다. 따라서 여전히 기독교 신학의 내부
에서는 철학자들의 신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의 관계설정이 논쟁 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8) 존 쿠퍼/ 김재영 옮김, 『철학자들의 신과 성서의 하나님』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1)는
이 논문과는 다른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 책의 원제목은 범재신론(Panentheism)이며, 부
제는 철학자들의 다른 신(The Other God of the Philosophers)이다. 쿠퍼는 이 책에서 ‘철
학자들의 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 개념을 고전 유신론에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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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의 역사를 기독교 신학과 연관하여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고전 유
신론 이후의 하나님 언설의 가능성을 제언하고자 한다. 이러한 질문과
관심 아래, 본 논문은 먼저 기독교 신학의 신론형성에 토대를 제공했
던 고전 유신론의 유래와 특징을 드러내고(II), 향후 기독교 신학 형성
에 중요한 토대가 되었던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신학을 통해
고전 유신론이 기독교 신학 내에서 어떻게 수용, 전개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 서술한다(III). 하지만 기독교 신학 내에서 확고한 자리를 확
립하게 된 고전 유신론의 형이상학적 신이 19세기에 이르러 그 절정에
도달하는 동시에 붕괴의 과정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고전 유신론과 형
이상학의 붕괴에 직면하여 20세기 신학은 그 자신의 하나님 이해를 어
떻게 새롭게 정립해 나갔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IV). 끝으로 앞의 논
의를 정리하면서 고전 유신론의 궤도에서 벗어나 새롭게 전개되어야
할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 언설의 몇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V).


II. 고전 유신론의 유래와 특징
신에 대한 숭배와 신에 관한 관념은 인류 역사와 더불어 오래 전
부시키는 한편, 그가 개관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범재신론은 ‘철학자들의 다른 신’이라
고 명명한다. 하지만 그는 양자를 플라톤과 플라톤주의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자라나온
다른 가지로 이해한다(30). 그는 한편에서는 최근 20세기까지의 주류 신론이 고전 유신
론(classic theism)이라고 단언하면서(24), 다른 한편에서는 “고전적 유신론에 대한 현대
의 거의 모든 대안들”이 범재신론의 특징을 지닌다고 주장한다(32). 결론적으로 쿠퍼가
서구의 사상사 속에서 범재신론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신론들을 훌륭하게 서술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그가 “아우구스티누스적-칼빈주의 전통의 철학적 신학”으로 되돌아
가면서 “고전적 신론에 호감을 갖고 있다.”(525)고 한 고백을 본 논문은 받아들이지 않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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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 존재했을 뿐 아니라 다양하게 변천되어 왔다. 따라서 인류의 역
사와 더불어 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도 무수하게 쏟아져 나왔을 것
인데, 이러한 신에 관한 언설들 중 과연 무엇이 신적 존재에 적합한 타
당성을 지닐 수 있을지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에서도 신들에 관한 다
양한 이야기들은 존재하는 만물의 기원과 유래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
되었는데, 다양한 신들의 존재론적 출처를 비판적으로 추론하면서 유
일한 신적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철학적 시도는 플라톤과 아리스
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유래한다. 플라톤은 당시의 신화적 신학
(theologia fabulosa)에서 철학적 신학(theologia naturalis)으로의 전환
을 최초로 감행했으며, 그가 설정해 놓은 철학적 신학의 단초는 아리
스토텔레스에게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9) 비록 플라톤이 당시 유
행하던 시인들의 신학 곧, 신들에 대한 신화적 묘사를 신학(theologia)
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그가 신들에 대한 언설이 따라야 하는 규
범(typos)을 제시함으로써 신화적 신학 또는 시적 신학을 비판하고 철
학적 신학의 단초를 놓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플라톤은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아르케를 묻는 고대
그리스 사유의 전통 속에서 신을 “존재하는 모든 것들 모두의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을 쥐고”10) 있는 존재로, “만물의 척도”11)로 파악하는
한편, 신에 대한 언설이 신적 본질에 엄밀하게 적실해야 한다고 보았


9) Oswald Bayer, Theologie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shaus, 1994), 23; 또한
Weischedel, Der Gott der Philosophen (1971), 48. 특히 당시 통용되고 있을 법한 ‘신
학’(theologia)이란 용어가 플라톤에 의해 특정한 개념이 되었다는 지적은 근원적으로
베르너 예거의 연구에 기인한 것이다: Werner Jaeger, The Theology of the Early Greek
Philosophers (London: Clarendon, 1948).
10) 플라톤/ 박종현 역주, 『법률』 (서울: 서광사, 2009), 326(715e).
11) 앞의 책, 328(71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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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며, 이러한 생각에 따라 신적 본질에 대한 두 가지 규범을 제시한
다.12) 1) 신은 선하다. 신은 모든 선함의 원인이지만, 악을 포함하는 모
든 사건의 원인일 수는 없다. 따라서 신은 무죄하며, 악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 2) 신은 불변한다. 전적으로 선하고 완전한 신은 자신의
말을 바꾸거나 자신을 변화시켜 자신과 다른 존재가 될 수 없다. 따라
서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은 그 자신에게 모순될 수 없는 단일적이고
통일적인 존재이기에, 선함과 동시에 악함의 원인이 될 수 없으며, 변
할 수도 없다. 또한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은 변화무쌍한 이 세상의 시
간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영원하다. 이처럼 영원성, 완전성, 단일
성, 선함 그리고 불변성에 초점을 맞춘 신에 대한 규정은 시인들의 신
화론적 신 이해에 대한 이성적 비판에 근거한 비신화화작업이라고 할
수 있으며13), 향후 기독교 신학의 철학적 신론 형성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플라톤에게서 시작된 철학적 신학의 단초는 그의 제자인 아리스
토텔레스에 의해 보다 발전된 형태로 드러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모든 존재자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운동 속에 있다. 하지만 모든
운동에는 운동을 시작하게 하는 원인이 있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철학
은 이처럼 운동하는 존재의 근원과 원인을 밝히는 형이상학이며, 바로
존재의 운동을 가능케 하는 원인들의 원인으로서 “제일원인이며 통치
하는 원인”인 신을 규명하는 작업으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아리스
토텔레스에게 신학은 모든 운동의 제일원인을 규정하는 “제일철학”
이다.14) 신적 존재는 모든 운동하는 존재들에 대해 항존자로 머물러


12) 신에 대한 규정은 플라톤의 『국가』 379a-383c; 우리말 번역으로는 박종현 역주(서울:
서광사, 1997), 171-182.
13) Bayer, Theologie (1994), 24.
14) Weischedel, Der Gott der Philosophen (1971), 54-59 참조. 인용은 54,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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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면서 운동의 최초의 원인자라는 사유는 일견 논리적인 모순에 직
면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제일원인인 신은 불변하고 영원한 항존자로
서 그 자신에겐 아무런 변화와 움직임이 있을 수 없지만, 다른 운동에
자신이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부동의 존재가 어떻게 다른 존재자
의 움직임에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가? 이 수수께끼에 대해 아리스토
텔레스가 제시한 대답은 “사랑받음으로써”이다.15)
여기서 드러난 것을 주목하면 고전 유신론에서 순수한 사유를 통
해 사유된 신으로서 모든 운동과 변화의 제일원인으로 자리매김 되며,
불변성으로서의 완전성, 무시간성으로서의 영원성, 그리고 제일원인
으로서의 자존성은 신적 존재의 본질규정으로 등장한다.


III. 고전 유신론의 수용과 전개
그렇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유래한 신적 존재에
대한 본질규정은 기독교 신학 내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 철학자들의 신이 불변성으로서의 완전성, 무시간성으로서의 영
원성, 제일원인으로서의 자존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면, 기독교 신학
의 하나님은 어떻게 이해되었는가?
후대 기독교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신학형성이 고전 유신론의 원류가 되는 플라톤주의에 깊은 영
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고백한다. 그는 그리스어에서 라틴어


15) 앞의 책, 56; 조대호 역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서울: 문예출판사, 2011),
283: “그것은 사랑을 받음으로써 운동을 낳고, 나머지 것들은 운동을 함으로써 운동을
낳는다”(1072b 3 f.). 이로 인해 다른 모든 것은 그를 향해 놓이게 되며, 신적 존재는 존
재의 제일원인이면서 궁극적인 목적으로 설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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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번역된 플로티누스나 포르피리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것을 하나
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로 회상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말을 쓰고
있지만 “실은 여러 가지 논증으로” 기독교의 진리와 “같은 내용을 설
명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밝힌다.16) 물론 그는 이들의 책에
서 성육신과 관련된 말씀(요1:14; 빌2:7-11)을 읽지 못했지만, 그럼에
도 하나님의 아들이 “시간 이전에 그리고 시간을 초월하시어 당신과
같이 영원하시고 불변하시다는 것”을 읽었다고 말한다.17) 더 나아가
그는 하나님에 대해 “참으로 존재하는 실체는 항상 있어 변치 않는 존
재”라고 말한다.18)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 철학자들의 신을 자신
의 신학에 수용하면서 적어도 성육신이 누락되어 있음을 인식하면서
도 전체적으로는 그들의 신학적 궤도를 따라가며 신적 존재의 항구성
과 불변성을 언급한다.19)
특히 그는 악의 문제와 관련해서 한편에서는 창조신앙의 관점에
서, 다른 한편에서는 플로티누스의 우주론에 입각해서 악을 실체가 아
닌 존재의 결핍으로 본다.20) 악의 문제는 향후 기독교 신학에서 해결
하기 어려운 난제로 등장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선한 창
조에 입각하여 존재하는 모든 실체가 선하다고 주장하며, 악은 실체개
념과는 달리 존재의 결핍으로 이해함으로써, 향후 신정론 전개의 실마


16) 어거스틴/ 선한용 옮김, 『성어거스틴의 고백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224과
또한 227: “아무튼 나는 이 책을 통해 나 자신 안으로 들어가라는 권고를 받고 당신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 영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었
던 것도 당신이 나를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17) 앞의 책, 225.
18) 앞의 책, 229.
19) 플라톤주의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은 앞의 책, 238-241 참조.
20) 플로티누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우주론적 유사점에 대해서는 Hermann Häring, Das
Problem des Bösen in der Theologie (Darmstadt: WBG, 1985), 44-52을 참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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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 제공해 놓았다.21)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주의의 전통을 따랐다면,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기대어 신적 존재의 본질규정에서 단순성,
완전성, 불변성, 영원성 등의 개념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22) 특히 아
퀴나스의 경우, 하나님의 본질규정에 따르는 위의 개념들을 먼저 정의
한 다음, 이것을 통해 신적 본질이 그러함을 논한다. 예컨대, 하나님의
영원성을 말할 때, 그는 먼저 영원성이 무엇인지를 논한다. 영원성은
시간의 시작과 끝이 없다는 것이고, 운동을 담보하는 시간 개념과는
달리 불변성을 담보로 한다. 따라서 불변하는 존재인 하나님은 영원하
다.23)
이처럼 소위 술어가 주어를 규정하는 방식의 전형은 일반성을 담
보로 하여 신학적 주장의 보편성을 정초하려는 시도로서, 특히 아리스
토텔레스의 철학을 도용한 그의 신 존재 증명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
다. 여기서 시도되는 다섯 가지 증명은 ‘모든 사람은 이것을 신이라 부
른다.’(et hoc omnes intelligunt Deum) 또는 ‘이것을 우리는 신이라 부
른다.’(et hoc dicimus Deum)로 귀결된다.24) 이는 고전 유신론이 기독
교 신학 내에서 신적 존재에 부여한 특성을 주어로 삼고, 이 특성을 근
거로 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연역하는 방식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이
러한 변증론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주의를 칭송하면서 거기에
서 파생된 범신론적 철학들을 비판할 때도 나타난다. 즉, 아우구스티
누스는 플라톤주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부활을 간과했다고 비


21)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정론의 영향과 그에 대한 비판적 대안에 대해서는 존 힉/ 김장생
옮김, 『신과 인간 그리고 악의 종교철학적 이해』 (서울: 열린책들, 2007), 특히 제2부 참조.
22) 이에 대해서는 토마스 아퀴나스/ 정의채 옮김, 『신학대전 1』 (서울: 바오로딸, 2008) 참조.
23) 앞의 책, 433. (q. 10. 2.); 이와는 달리 칼 바르트는 신적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술어를 재
정의한다. 이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후에 다룰 것이다.
24) 앞의 책, 146-175(q.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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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하지만, 이를 통해 플라톤주의가 상정한 신적 영원성이나 단일성,
완전성, 불가시성을 부정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이들이 놓친 것을 보
충할 뿐이다.25)
이처럼 플라톤과 그의 후속적인 영향인 신플라톤주의는 기독교
신학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아리스토텔
레스의 철학적 신학은 중세의 아퀴나스에게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 신
학은 이들의 철학적 신학을 수용하면서, 성서에 묘사된 하나님에 대한
본질규정을 첨가한다. 그 중 하나는 창조와 관련된 신적 전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과 부활과 관련된 성육신론이다. 플
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신은 전능한 창조자로 규정되지 않았
다. 플라톤에게 신은 주어진 질료에 형상을 부여하는 제작자로서 이해
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세계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신은
이방인들조차도 자명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전능자로 이해되었고,
신의 창조행위 또한 ‘무로부터의 창조’로 규정되었다.26) 하지만 신의
전능성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강조가 고전 유신론의 틀을 뒤흔들었다
기보다는 오히려 더 강화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에게 신학은 고전 유신론의 전통을 따라 참되지 못한 신화를 비판하며
하나님의 참된 존재를 규정하는 작업으로 이해되었다. 기독교 신학에
서 신의 전능성은 고전 유신론의 토대가 되는 개념들, 불변성, 영원성,


25) 아우구스티누스/성염 역주, 『신국론: 제1-10권』 (왜관: 분도출판사, 2004), 특히 제10권
참조.
26) A. Augustinus, Sermo 240, 2, 2: “신이 전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방인을 내게 보여달
라. 그리스도를 부정할 수는 있지만 신이 전능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Jan
Bauke-Rueck, Die Allmacht Gottes (Berlin/ New York: Walter de Gruyter, 1998), 6 각주
12에서 재인용.
박영식|고전 유신론과 기독교 신학 59


자존성과 아무런 충돌 없이 융합되어 들어갔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에 관
한 기독교의 주장은 기존의 신화비판적인 철학적 신학과는 분명 다른
방향을 지닌다. 영원의 영역에 항존해야 할 신적 존재가 시간의 영역
안에 들어왔다는 주장은 신화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으며, 신화적 신학
을 극복하고 설립된 고전 유신론의 체계에서는 지탱될 수 없는 관점이
다. 만약 기독교 신학이 하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을 자신의 신
학적 중심축으로 삼는다면, 초월적이고 항구적인 신적 영역과 시간적
이고 가변적인 현상의 영역 사이의 이분법을 고수하던 고전 유신론과
는 다른 궤도로 자신의 신론을 전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육신은 신의 불변성에 치명적인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
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십자가 죽음은 자기 밖의 존재에 의해
서는 아무런 영향도 받을 수 없는 신적 자존성에 흠집을 낼 수밖에 없
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은 적어도 고전 유신론
에서는 인간 사유의 로고스에 의해 비신화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신
화론적 요소로 간주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에서도 제일원인으로서의 신에
관한 논의가 아무런 비판없이 그대로 수용되며, 제일원인으로서의 신
은 신적 불변성을 정초시키며, 변화무쌍한 시간의 영역과는 무관한 신
적 영원성을 정초시킨다. 여기서 제일원인으로서의 신 개념은 신의 영
역과 세상의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할 뿐 아니라 분리시켜 놓는다. 왜
냐하면 제일원인은 여타의 존재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불변성과
완전성을 정초시키기 때문이다. 이로서 가변적이고 시간적인 세상의
영역과 무시간적 신적 영역은 완전히 분리된다. 하지만 동시에 제일원
인으로서의 신은 물리적 세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형이상학적
‘원인’(causa)라는 점에서 세상과 연결되어야만 했다. 기독교 신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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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시간의 연결을 ‘예정’ ‘예지’ ‘섭리’라는 개념 등으로 메우지만,
형이상학적으로 정초된 이러한 개념들이 과연 성서적 하나님 이해에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인지는 논쟁될 수밖에 없다.


IV. 고전 유신론과의 결별
고전 유신론에 대한 비판은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
다. 왜냐하면 서구 형이상학의 토대와 절정은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적
으로 사유된 신 관념에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론
적 토대를 정초시키려 했던 서구 형이상학적 사유는 모든 존재의 근원
을 제1원인으로서의 신에게 찾는다. 이때, 신적 본질은 감각적 인지가
아니라 신적 이성을 통해 파악되지만, 결국 신적 이성을 포착하고 신
적 본질을 규명해 내는 일은 신적 로고스에 상응하는 인간 이성의 힘
에 놓여 있다. 결국 서구의 형이상학의 역사는 인간 정신의 위대성의
역사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 정신이 구상해 놓은 가상적 존재로서의
사유된 신에 대한 결별에서 그 절정에 도달한다. 이러한 서구 형이상
학 역사의 절정과 붕괴를 니체는 신의 죽음에 대한 선언으로 분명히
한 것이다.27) 니체의 신 죽음의 선언은 형이상학적으로 짜 맞춰진 궤
도에서 현실성을 잃어버리고 꼭두각시 노릇만을 할 수밖에 없는 무기
력한 인간상에 대한 고발이면서도 동시에 서구 형이상학이 만들어낸
우상들이 그 빛을 잃고 하나의 “우화”28)로 전락했음에 대한 최종판결
이며, 가상적 존재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 인간 정신의 또 하나의


27) Friedrich Nietzsche, “Die Fröhliche Wissenschaft Nr. 125,” in Werke in vier Bänden,
Bd. IV (Salzburg: Das Bergland-Bund, 1985).
28) Friedrich Nietzsche, “Götzen-Dämmerung,” in 앞의 책, 385-386.
박영식|고전 유신론과 기독교 신학 61


위대한 절정을 의미한다. 즉, 인간에 의해 사유된 신과의 결별 선언이
며, 지금까지 인간 정신의 토대로 놓여 있던 형이상학적 정초에 대한
해방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이미 포이어바흐에 의해 현실적인 인간이 살아가는 현실세계로
부터 무한히 추상화된 신에 대한 비판이 가해졌고, 신과 인간의 관계
를 전복시키는 독해가 시도되었으며, 그 결과 신이 아니라 인간이 신
의 창조주임을 선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29) 즉, 철학자들의 신은 설
령 ‘보다 더 큰 것을 사유할 수 없는 존재’로 설정된다고 하더라도, 결
국엔 인간에 의해 ‘사유된 신’으로서 사유하는 자의 사유의 확장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이다.30)
이러한 고전 유신론의 형이상학적 신에 대한 비판의 연속선상에
서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울림을 우리는 하이데거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31) 그는 “신이 어떻게 해서 철학 속으로 들어와 문제로 등장하게
되는가”32)라는 물음을 통해 서구 형이상학에서 일어난 신학과 철학
의 암울한 밀월의 역사를 고발하고자 한다. 그는 존재와 존재자 사이
의 존재론적 차이를 망각해 버리고 인간적 사유에 의해 존재의 근원을
정초시키고자 했던 형이상학적 사유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33) 앞
의 논의와 관련해서 말한다면, 이것은 고전 유신론의 제일원인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신적 존재를 모든 것을 정초시키는 제일원인과 동
일시함으로써, 불변성과 무시간적 영원성에 갇혀 버린 이 신에게 “인


29) 루드비히 포이어바흐/ 김쾌상 옮김, 『기독교의 본질』 (서울: 까치, 1992), 87: “신의 의
식은 인간의 자기의식이며 신의 인식은 인간의 자기인식이다.”
30) Casper, “Das Fragen nach Gott und der <Gott der Philosophen>”(1996), 75-76.
31) 하이데거의 신에 대한 국내 연구로는 신상희, 『하이데거와 신』 (서울: 철학과현실사,
2007) 참조.
32) 마르틴 하이데거/ 신상희 옮김, 『동일성과 차이』 (서울: 민음사, 2000), 47.
33) 앞의 책, 54.
6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간은 기도할 수도 없고 제물을 바칠 수도 없다.” 즉, “자기 원인 앞에서
인간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을 수도 없고, 또 이러한 신 앞에
서 그는 음악을 연주하거나 춤을 출 수도 없다.”34) 이러한 고전 유신론
에 대한 철학적 비판은 신화론적 신학과 결별하고 철학적 신학을 내적
기반으로 삼고 있었던 기존의 기독교 신학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과정신학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화이트헤드는 아리스토텔레
스의 철학에서 유래한 제일원인, 부동의 동자와 같은 기독교의 신학의
신 관념은 기독교의 역사에 “비극을 야기해 온 오류”라고 꼬집는다.35)
왜냐하면 이러한 고전 유신론의 형이상학적 신은 황제의 이미지와 결
합되어 나사렛 예수에 의해 계시된 사랑의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한 철
학적 원리로서 역사 속에서 무자비한 폭력, 지배와 강제를 정당화시키
기 때문이다.36)
이러한 일련의 비판들은 철학자들의 신, 곧 인간의 사유에 의해
사유된 고전 유신론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이처럼 고전 유신론의 형이
상학의 역사가 무르익은 시점에서 신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의 확장임
이 드러났다고 한다면, 이제 기독교 신학은 인간의 사유가능성에 정초
된 우상을 대신하여 무신론에 굴복해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사유
저편에서 도래하는 하나님을 새롭게 말해야 하는가? 니체의 신 죽음
의 선언은 단순히 무신론의 도래만을 암시하지 않고 새로운 신의 도래
를 동시에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고전 유신론에 대한 비판에서 오늘
날의 신학은 오히려 하나님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발견할 수 있지 않
을까? 이제 기독교 신학은 고전 유신론으로부터 유래한 형이상학적
신, 철학자들의 신이라는 안경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성서의 하나님을


34) 앞의 책, 65.
35) 화이트헤드/ 오영환 옮김, 『과정과 실재』 (서울: 민음사, 2005), 648.
36) 앞의 책, 649.
박영식|고전 유신론과 기독교 신학 63


발견해야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고전 유신론에 대한 비판을 유연하
게 수용하고, 신앙 안에 돌입해 들어오시는 하나님을 담아낼 새로운
신학적 틀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 20세기의 신학은 기존의 철학자들의 신과 신앙의 하나님 사
이에 괴리를 메우기보다는, 고전 유신론에 대한 비판을 오히려 관철시
켜야 나갔다. 20세기 초에 불트만이 하나님 언설이 인간의 자기이해
와 연관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는데, 이것을 ‘신 인식은 곧 인간
의 자기인식’라는 포이어바흐의 선언과 혼돈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불트만은 기독교 신학이 하나님을 말할 때 하나님을 인간적 사유의 대
상으로 설정하고 하나님에 대해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말할 수 없다
는 점을 비판하면서, 하나님 언설은 오직 그 분과의 관계 안에서, 신앙
과 복종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37) 즉, 하나님은
인간적 사유에 의해 이성이 규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인
간의 실존 안으로 돌입해 들어오는 분, 그래서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분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 바르트는 불트만과는 비록 많은 면에서
다르지만, 고전 유신론의 비판이란 점에서 동일한 신학적 사유의 방향
성을 지시했다. 그에 따르면 이제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은 통속적인
개념들의 최고치가 적용되어야 할 객관적 대상이 아니다. 역으로 고전
유신론의 개념들은 신앙의 하나님을 통해 도리어 의문시되며 전혀 새
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초기 바르트는 인간의 가능성과 대립하는 하나
님의 가능성을 강조해 왔는데38), 그러한 그의 신학적 방향설정은 말
년에 이르기까지 지속된다. 말년의 바르트에 따르면 인간이 주체가 되


37) R. Bultmann, “Welchen Sinn hat es, von Gott zu reden?”(1925), Glauben und Verstehen,
Bd. 1(Tübingen: J.C.B.Mohr, 9. Aufl., 1993): 26-37.
38) 오성현, “초기 바르트(1919-1923)와 슐라이어마허”, 「한국조직신학논총」 13(2005):
113-138.
6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고 근원이 되는 일반적인 진리와 하나님이 주체와 근원이 되는 궁극적
진리는 구분되어야 한다. 일반적 진리의 확실성은 인간 자신의 확실성
에 근거하지만, 궁극적 진리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은 참된 질문들
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유일하게 참된 질문을 제기하는 주체”
이다.39) 여기서 신앙의 하나님은 인간의 사유 대상이 아니라 사유된
신과 사유하는 인간에 대한 심판자로 등장한다.
니체가 인간의 사유의 위대함이 만들어낸 거대한 형이상학적 신
상을 철학의 망치질로 파괴했다면, 현대신학은 19세기의 자연신학적
시도들을 비판하면서 신앙의 하나님을 그 사유의 중심에 세움으로써
고전 유신론에 정초해 있던 신상들을 계시의 빛 속에서 해체시켜 나갔
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흐름의 한 극단을 마르틴 루터로부터 시작
하여 본회퍼를 거쳐 몰트만에 이르는 십자가 신학에서도 엿볼 수 있
다. 고전 유신론의 수용과정에서 의식했으나 치밀하게 밀고 나가지 못
했던 하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은 루터에 이르러 새롭게 주목
을 받는다. 루터는 「하이델베르크 논박문」 (Disputatio Heidelbergae
habita)에서 신학자는 “일어나는 일들을 인식함으로써 하나님의 보이
지 않는 본질을 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보이는 것, 하나님
의 뒷면을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쳐다보고 인식하는 자”라고 말한
다.40) 루터에게 참된 신학자는 곧 “십자가의 신학자”인데, 그는 하나
님이 아닌 일반적인 사태에 관한 관찰과 사변적 이성을 통해 신적 본
질로 나아가는 자가 아니라, 성서에 계시된 고난과 십자가, 약함과 어
리석음에서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이다.41) 이러한 하나님에 관한 사변


39) Karl Barth, Kirchliche Dogmatik IV/3-1 (Zürich: TVZ, 3. Aufl., 1979), §69: Die
Herrlichkeit des Mittlers, 184.
40) Franz Lau(Hg.), Der Glaube der Reformatoren. Luther ‧ Zwingli ‧ Calvin (Bremen: Carl
Schünemann, 1964), 26-48. 인용은 제19항과 제20항.
박영식|고전 유신론과 기독교 신학 65


적 추론에서 기독론적 신학으로의 방향전환은 현대신학에서 디트리
히 본회퍼를 통해 강렬하게 등장한다. 그는 무신론 시대의 도래를 감
지하면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인식시켜” 주신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
는데, 이것은 “그의 전능하심이 아니라, 그의 약함, 그의 수난으로” 도
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42)
본회퍼가 보여준 기독교 신학의 급격한 방향전환은 하나님을 더 이상
“연장된 세계의 일부”로 파악할 수 없으며, 통속적인 전능에 상응하는
존재로 파악할 수도 없으며, 오직 “예수의 존재에 참여”함으로써만 경
험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43) 루터로부터 시작해서 본회퍼에게 이
어지는 십자가 신학의 단초는 몰트만에게서 삼위일체론적 십자가 신
학으로 확장되어 만개되는데, 몰트만은 대표적으로 『십자가에 달리
신 하나님』의 부제가 말하는 바대로 ‘기독교 신학의 근거와 비판’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찾고자 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일원인
으로서의 신 관념에서 파생된 무감정의 원리를 비판하면서 고대 신학
이 거부했던 성부수난설을 삼위일체론적으로 해석하여 변형적으로
수용한다.44)


41) 앞의 책, 제21항: “영광의 신학자는 악을 선이라고 하며, 선을 악이라고 한다. 십자가의
신학자는 실재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42) 디트리히 본회퍼/ 손규태 ‧ 정지련 옮김, 『저항과 복종-옥중서간』 (서울: 대한기독교서
회, 2010), 680, 681.
43) 앞의 책, 710, 711.
44) 물론 여기서 몰트만은 성부 하나님의 죽음을 긍정하진 않는다. 다만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의 죽음 안에서 아들보다 더 깊은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신다. Jürgen Moltmann,
Der gekreuzigte Gott. Das Kreuz Christi als Grund und Kritik christlicher
Theologie (München: Chr. Kaiser, 1972) 참조.
6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이처럼 20세기 기독교 신학이 보여준 거대한 판도변화는 고전 유
신론의 궤도에서 전개된 기존의 형이상학적 신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새로운 하나님 이해를 위한 방향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불변성으로서
의 완전성, 무시간성으로서의 영원성의 개념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
는 제일원인으로서의 자존성에 정초된 고전 유신론은 계시신학에 의
해서나 과정철학에 의해서나 십자가 신학에 의해 기독교 신앙과는 결
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전 유신론의 신 개념은 칼 바르트가 말년
에 언급한 “스스로 만족하고 자신 안에 패쇄된 어떤 고독한 신”이며
“자신의 영예 안에 갇힌” 신이며, “긍휼히 여기지 못”하는 “비복음의
신들일 뿐이다.”45)


V. 나가는 말: 고전 유신론 이후의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고전 유신론의 유래와 전개, 비판의 역사를 기독교
신학과 연관해서 살펴보았다. 여기서 최종적으로 도달한 지점은 인간
정신에 의해 사유된 신에 대한 인간 자신의 결별 선언이다. 고전 유신
론의 영향 아래 형이상학화된 기독교 신학은 신적 존재의 본질규명에
몰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신적 존재의 자명성과 그 본질규정은 사실상
인간 사유의 자명성과 그 가능성에 기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
유의 운동은 몸을 가진 동물과는 구분되며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우위성을 전제함으로써 가능했을 것이며, 이 사유의 우위성은 자기관
조적 사유의 존재인 신적 존재의 존재론적 우위성을 지시하는 동시에,
신적 존재의 자명성을 인간존재의 사유의 힘에 의해 규정되게끔 하는


45) 칼 바르트/ 신준호 옮김, 『개신교신학입문』 (서울: 복있는사람, 2014), 16, 17.
박영식|고전 유신론과 기독교 신학 67


순환론에 빠지게 된다. 즉, 신적 존재는 인간 정신과 사유의 가능성을
확증해 주는 반면, 그 자신의 자명성은 이것에 의해 도리어 정초되는
순환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질송이 지적했듯이 중세 스콜
라 철학의 신 존재 증명에서 명확하게 드러날 뿐 아니라 근대의 주체
성의 철학에서도 활용된다.46)
고전 유신론과 이성적 사유의 순환론은 오늘날 새롭게 만나게 되
는 세계 경험 앞에서 무능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처럼 인간에 의
해 사유된 신은 정신뿐 아니라 몸을 지닌 현실인간을 깊이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전 유신론의 신은 자기 원인적 존재로서 고통당하지
않으며 자기 밖의 그 무엇에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이기에, 현실세계
가 당면한 고통을 감지할 수 없다.47) 결국 고전 유신론으로는 인류와
세계를 그 고통의 참혹한 역사에서 건져낼 수도 없으며, 그들의 고통
조차도 이해받을 수가 없다.
오늘날 고전 유신론의 사유된 신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된 기독교 신학은 옛 친구와의 밀월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하나님 이
해의 모험을 떠날 수밖에 없다. 고전 유신론의 비판에서 새롭게 열리
게 된 지평은 무엇이며, 기독교 신학이 떠나야 할 그 모험의 방향은 어
디인가?
첫째, 인간 정신에 의해 사유된 신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
으로 방향전환이 요구된다. 인간에 의해 포착되고 개념화되는 신이 아
니라 인간 정신에 파장을 일으키며 돌입해 들어오는 신앙의 하나님을


46) Étienne Gilson, God and Philosoph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41), 85 이
하 참조.
47) 이는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셀무스가 신의 자비하심(misercors)을 변호하고자 할 때 분
명하게 나타난다. 안셀름/ 공성철 옮김, 『프로스로기온』 (서울: 한들, 2005), 80-81(Cap.
VIII).
68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기술해야 한다. 존재 일반에서 출발하여 성서적 개념을 해명하는 사유
가 아니라, 성서적 표상에서 출발하여 일반적 개념을 비판적으로 사유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신론의 구성개념이 일반성과 보편성
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구체성과 특수성에 근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철학자들의 신과 종교 일반의 신을 모색하기 이
전에 출애굽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에 집중하고,
이를 통해 기독교적 하나님 이해의 독특성을 드러냄으로써, 달리 이해
된 신 관념들과의 유사성과 차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
시 말하면 기독교 신학은 보다 철저히 기독교적일 필요가 있다. 고독
한 절대자가 아니라 세상과의 사귐 안에서 고통당하는 자와 함께 울고
함께 버림받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기독교 신앙의 하
나님 이해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 고전 유신론의 사유방향은 시간적으로는 고고학적이며, 철
학적으로는 존재론적이라 할 수 있다. 고전 유신론은 존재의 유래와
출처, 근원을 캐묻는 형이상학적 사유의 귀결이다. 하지만 이제 기독
교 신학의 하나님 사유는 미래적이며, 구원론적으로 방향정위를 할 필
요가 있다.48) 블로흐에게서 빌려온 몰트만의 표현대로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자신의 존재로 갖는다면, 그 하나님
을 우리는 이미 가질 수 없으며, 오직 희망하고 기다릴 뿐이다.49) 이때,
하나님은 더 이상 존재의 출처나 근원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미래로
이해되며, 인간의 사유에 의해 포착된 사유된 신이 아니라, 자신의 미


48) 발터 카스퍼(Walter Kasper)는 고전 유신론의 형이상학과 새롭게 전개될 기독교 신학
의 차이를 유래를 묻는 과거지향적 사유와 다가올 미래를 묻는 사유의 차이에서 찾는
다. W. Kasper, “Gott und die Zukunft”, in Martin Hengel und Rudolf Reinhardt(Hg.),
Heute von Gott reden (München: Chr. Kaiser Verlag, 1977), 7-24.
49) 몰트만/ 이신건 옮김, 『희망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22-23.
박영식|고전 유신론과 기독교 신학 69


래와 함께 도래할 하나님으로 기다려져야 할 것이다.
셋째, 플라톤에게서 시작된 고전 유신론은 신에 대한 시적이고 감
성적인 언어들을 제거하고 개념적인 언어들을 통해 신을 포착하고 규
정하고자 했다. 고전 유신론의 과제가 신에 대한 본질규정이었다면,
오늘날 하나님 사유의 과제는 시적이고 감성적인 언어를 회복하여 성
서에 나타난 하나님-상(그림)을 시대에 적합하게 해석학적으로 드러
내는 데 있다. 신화(mythos)는 로고스(logos)의 전(前)단계가 아니라
로고스의 원천이다. 기독교 신학은 비신화화 작업을 통해 로고스에 의
해 포착된 신을 말하지 않으며 도리어 로고스에 의해서 포착될 수 없
고 사유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를 지시해야 한다. 기독교 신학의 초
점은 영원히 머물러 있는 동일자로서의 신적 본질규정에 있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하나님 아닌 모습으로 변화시켜 인간과 세계의 삶 안으
로 침투해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변화와 행위에 있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은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자신을 묶어두지 않고 항상 새롭게 자신
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담아낼 수 있는 구체성을 담지한 그림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신학의 언어는 그 논리적 정합성 때문에 언
제나 그림 언어로 대체될 순 없지만, 상징적인 그림 언어를 제거해 버
린 개념어로만 이루어질 수도 없다. 이런 점에서 오스발트 바이어의
지적대로 기독교적 신론 구성은 “형이상학과 신화론 사이”50)에서 이
루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넷째,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삶의 현실에서 추상화된 사유된 신에서
삶의 현실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살아있는 하나님에 대한 사유로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고전 유신론은 세계와 연장선상에 있는 신 관념
을 구성했지만, 결국 그 신은 세계와 아무런 관련 없는 독존하는 존재


50) Bayer, Theologie (1994), 22.
70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였다. 이와는 달리 앞으로 전개되어야 할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은 세
계 안에서 인간과 자연의 삶과 함께 연동하는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으
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바르트는 자신의 마지막 강연에서 기독교
신학을 “신인학”(Theanthropologie)51)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오늘
날 신학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과 역사를 포괄하는 세계와의 밀접한 관련성 안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은 세계를 위하시는 하나님이며, 우리의 세계
는 곧 하나님의 세계여야 한다. 물론 세계는 추상적 의미에서가 아니
라 구체적인 삶을 담아내는 개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제 기독교 신학은 세계와 연동하는 생명의 하나님, 살리시는 하나님,
삶의 하나님에 대해 보다 집중해야 할 것이다.52)
다섯째, 고전 유신론의 형이상학적 신학에 대한 해체작업이 보다
철저히 요구된다. 모든 신학적 시도에는 그 나름의 해석학적 틀이 전
제될 수밖에 없는데, 계속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고전 유신론은 여전
히 지금까지 기독교 신학이 하나님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해석학적
틀로 기능하고 있다. 예컨대 포스트모던 신학이나 여성신학, 또는 아
시아 신학처럼 다양한 신학적 각도에서, 불변성, 영원성, 자족성, 완전
성과 같이 지금까지 기독교 신학이 물려받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해
체하고 새롭게 구성하는 작업들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방향전환 속에서, 고전 유신론 이후의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
은 더 이상 인간의 사유에 의해 포착되어 사유되고 규정되는 신이나
불변성과 영원성과 자존성 안에 자신을 고립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인


51) 칼 바르트/ 신준호 옮김, 『개신교신학입문』 (2014), 18.
52) 예전에 개별적으로 전개된 ‘생명신학’이 최근에 생명신학협의회라는 이름 아래 교단
과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연구하고 작업하는 일로 이어져 가고 있다. 논문집으로는
「오늘의 생명신학」 제1집과 제2집이 신앙과지성사에서 출판되었다.
박영식|고전 유신론과 기독교 신학 71


간과 세계의 미래를 향한 신실함에 있어 변함이 없으며, 시간성 속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영원하며,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얽
매이지 않고 자신을 자유롭게 계시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분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으로서 폐쇄적이고 독존적인 인간존
재를 자신과의 사귐으로 부르고, 이 세상의 불의와 억압에 고통당하는
자들과 연대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죽음으로 걸머질 뿐 아니
라, 예수의 부활을 통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현실을 인내로써 기다
리게 하는 하나님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그 하나
님은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와 함께 오실 분으로, 그 날에 비로
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온전히 알게 될’(고전 13:12) 여전히 기다림
의 대상이 되는 숨어계신 하나님(deus absconditus)이다. 인간에 의해
사유될 수 없는 하나님의 미래를 기다림이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다.


7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참고문헌
바르트, 칼/ 신준호 옮김. 『개신교신학입문』. 서울: 복있는사람, 2014.
몰트만, 위르겐/ 이신건 옮김. 『희망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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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국문초록
고전 유신론과 기독교 신학
본 논문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유래한 고전 유신론
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 이해를 위한
새로운 방향정위를 모색하고자 한다. 불변성과 영원성, 자존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고전 유신론은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신
학형성에 근본적인 토대 역할을 하며 계승되고 발전되어 지금까지도
기독교 신론 구성의 중요한 개념틀로 작동한다. 하지만 기독교 신학이
하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을 중시할 때, 불변성과 무시간적 영
원성, 제일원인으로서의 자존성에 기초한 고전 유신론의 틀을 붕괴될
수밖에 없다.
본 논문은 고전 유신론에 의해 구성된 형이상학적 신, 곧 철학자
들의 신은 성서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는 다르다는 입
장을 지지하며, 철학자들의 신이 19세기에 이르러 철학자들에 의해
어떻게 비판되었는지를 살핀다. 또한 형이상학의 붕괴와 함께 실효성
을 잃어버린 고전 유신론에 대한 대안을 기독교 신학은 어디서 발견했
으며,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 이해를 어떻게 새롭게 구성해 나가려고
했는지를 살핀다. 이와 더불어 고전 유신론 이후에 전개될 기독교 신
앙의 하나님 이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박영식|고전 유신론과 기독교 신학 75
Abstract
The Classical Theism and Christian Theology
Park, Young-Sik
Assistant Professor
Seoul Theological University
Bucheon, Korea
This paper seeks to explore new directions for understanding
of the Christian faith in God while it considers the history of
classical theism derived from Plato and Aristotle critically. The
classical theism with immutability, eternity and aseity is the
fundamental frame in the formation of Christian theology and is
inherited and more developed since Augustine and Aquinas. Even
until now it works as an important conceptual framework of the
construction of a Christian God. But when Christian theology
emphasizes God's incarnation and death on the Cross, the
framework of classical theism based on the conceptions such as
immutability, non-temporal eternity, aseity and prima causa could
not avoid being collapsed.
This paper supports that the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 is different from metaphysical God of philosophers
constructed by the classical theism which came to drastic criticism
7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43집(2015년 12월)
in the 19th century. Also, we make clear where Christian theology
discovered new possibilities of the God-talk as a viable alternative
to the classical theism lost with the collapse of metaphysics. We
must go forth in this direction and deepen this perspective of God
after classical theism more and more.
‖ 주제어 Keywords ‖
고전 유신론, 형이상학,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틸리히, 몰트만, 바르트,
본회퍼
Classical theism, Metaphysic, Augustinus, Aquinas, Tillich, Moltmann,
Barth, Bonhoeff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