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미투 운동과 일본
Ⅱ. 시오리 사건의 공론화 과정
Ⅲ. 이토 시오리와 ‘사회적 2차 가해’
Ⅳ. 가해자 야마구치의 2차 가해:
권력형 성범죄에서 ‘남녀 간 스캔들’로
Ⅴ. 시오리 사건과 일본 지식사회의 흐름
Ⅵ. 나가며
• 국문초록
2015년 4월 3일 일본에서 이토 시오리는 성폭행을 당했다. 2017년 10월 20일 ?블
랙박스?를 출간한 이토 시오리는 일본 미투 운동의 선구자로 꼽힌다. ‘시오리 사건’은
일본사회의 미투 운동과 성의식 변화를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참조모델이다. 성문제
는 사회적 감정대립을 유발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피해를 폭로했을 때 사회와 가해자
의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일종의 ‘2차 가해’의 한 국면이며 그 사회의 의식구조
와 성문화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는 젠더 감수성이 높은 사람과 지식
사회가 존재한다. 이들은 성대결을 중재하고 설득하여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인권의식
을 높인다. 그리고 이들 지식계 역시 미투 제기자에 의해 각성한다. 요컨대 이 글은
시오리 사건 공론화 이후,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2차 가해’와, 이러한 백래시에도 불
구하고 미투에 의해 서서히 변모하는 지식사회의 움직임을 통해 이토 시오리의 미투
운동의 실상과 일본사회의 성 인식의 변화의 국면을 究明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
서 본고는 이토 시오리의 발언과 직접행동이 ‘현재진행 중인 일본사회의 미투 운동과
* 이 글은 2018년 11월 東アジア若手硏究者合同硏究フォーラム‘東アジアの知疎通と還流’에서 발
표한 원고를 한국어로 바꾸고 보완한 것이다.
10.18219/ddmh..106.201906.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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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식 변화’에 기여하는 국면에 대한 조명이다.
주제어 : 미투운동, 성폭력, 2차 가해, 페미니즘, 야마구치 노리유키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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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미투 운동과 일본
2017년 10월 5일 미 일간 뉴욕타임스가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
타인(Harvey Weinstein)의 성추문을 보도했다.1) 동월 15일 여배우 알리사 밀라노
(Alyssa Milano)가 과거에 성폭행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MeToo’를 쓰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될 것이라고 트위터에 올리면서 시작된 미투 성고발 캠페인은 10월에
만 58개국, 통계 170만 건을 넘었다.2) 와인스타인 컴퍼니 직원, 세계적인 여배우
기네스 펠트로(Gwyneth Kate Paltrow), 우마 서먼(Uma Thurman)의 연이은 폭로로
와인스타인은 할리우드에서 추방되었다. 성폭력을 당한 분노의 목소리는 ‘#MeToo
(나도)’의 해시태그로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각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일본은 어떠한가. 2015년 후생노동성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일하는 여성의
3명중 1명이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 치한피해의 경험이 있는 여성은 60%에 이른
다.3) 또한 2015년 내각부 조사에서는 성피해를 당해도 경찰에 상담을 하는 사람은
4%에 그쳤다. 일본에서는 성폭력 피해여성이 경찰에 가해자를 고발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설사 고발한다 해도 가해자가 체포되거나 기소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15명당 1명꼴로 여성이 “이성에게 강제적인 성교를 당했다”고 답했다.4) 일본의 성폭
력에 대한 관련법에는 쌍방 합의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데이트 강간은 일본인에게
낯선 개념이다.5) 도쿄 조치대(上智大) 미우라 마리(三浦まり) 교수는 “일본에서는
1) In 2014, Mr. Weinstein invited Emily Nestor, who had worked just one day as a temporary
employee, to the same hotel and made another offer: If she accepted his sexual advances,
he would boost her career, according to accounts she provided to colleagues who sent them
to Weinstein Company executives. The following year, once again at the Peninsula, a female
assistant said Mr. Weinstein badgered her into giving him a massage while he was naked, leaving
her “crying and very distraught,” wrote a colleague, Lauren O’Connor, in a searing memo asserting
sexual harassment and other misconduct by their boss. Jodi Kantor and Megan Twohey,「Harvey
Weinstein Paid Off Sexual Harassment Accusers for Decades」, ?The New York Times?, 2017,10.05.
2) 「セクハラ告発 欧米で社会現象に 「#MeToo」」, ?東京新聞?, 2017.12.25, 夕刊 3면.
3) 「記者の目: 世界に広がる#MeToo 小さな声を積み上げよう=中村かさね」, ?每日新聞?, 2018.2.9.,
東京朝刊 12면.
4) 「「話せる社会」に変えられる」, ?世界?903号, 2018.1., 173면.
5) 「성폭력에 관대한 일본, 여성들 침묵 깨나」, ?한국일보?, 2018.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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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성폭행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만 했다. 이런 사회에서 피해자들은 자신의 문제에 지원을 호소하거나 정의를 찾는
대신 공격당한 사실 자체를 잊으려 한다.”고 말했다.6) 이처럼 일본에서 피해자의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는 것은 성피해가 터부시 되는 사회 때문이다. 용기를 내서
이야기를 해도 오히려 비난하는 사회를 목도하면서 피해자는 발언을 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성문화를 보면서 해외 미디어들은 “일본사회의 반응은 이상하다”고
지적한다.7)
실제로 미국, 유럽 각국에서 성폭력 피해 사례를 고백하는 ‘미투(#MeToo)’ 운동이
활발한 가운데 유독 조용한 나라가 일본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2017년 말 이토
시오리에 의해 미투가 시작된다. 이토 시오리의 성폭행사건은 2015년에 있었는데
이토가 2017년 10월 ?블랙박스(Black Box)?를 출간했을 때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촉발하면서 일본에서도 이토 시오리의 사건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이토는 ?블랙박
스?에서 자신이 당한 성폭력과, 발부된 체포장이 취소되고 기소되지 않는 사법시스템
의 부정의에 대해 쓰고 있다.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이토의 행동에 용기를 얻었다
고 전했다.8) 그래서 이토 시오리는 일본판 미투의 시작이었고 그 사건은 ‘시오리
사건’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일본 미투의 시작점인 이토 시오리를 통해 성폭행 피해
자의 현실과 내면뿐만 아니라 일본사회의 성의식과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시오리 사건’은 일본사회의 미투 운동과 성의식 변화를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참조모델이다. 성문제는 의도치 않게 성대결과 사회적 감정대립을 유발한다.
6) 「미투, 일본은 왜 묵살하나……성폭행 당한 女기자 절규」, ?중앙일보?, 2018.3.8.
7) 「(フォーラム) 「#MeToo」どう考える?: 1 声を上げる」, ?朝日新聞?, 2018.1.15., 朝刊 オピニオン
1 9면.
8) 「(ひもとく)セクハラ被害者・加害者, ねじれる認識千田有紀」」, ?朝日新聞?, 2018.6.2., 朝刊21면.
아마존 재팬의 구매후기에서 제니엑스(Jennyxxx)는 이토의 용기 있는 말에 눈물을 흘렸고 일본의
보도수가 해외보다 적은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토가 전하고 제기한 점을 받아들였으
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마츠다(Matsuda)는 자신이 상사에게 강간당한 경험을 구매후기에
썼다. 강간당하기 전 자신은 그 누구보다 솔직했는데 그녀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고 했다. 그녀는 이토 시오리의 “강간은 영혼의 살인”이라는 주장에 공감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하는 책이라고 극찬했다. 세이바(セイバ)는 용기 있는 여성의 고발이 드라마 제작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썼다. 아이디 없이 쓴 독자는 여성, 여자아이를 가진 부모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며 이토를 응원한다고 했다.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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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는 피해를 폭로했을 때 기성사회와 가해자의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일종의 ‘2차 가해’9)의 한 국면이며 그 사회의 의식구조와 성문화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는 젠더 감수성이 높은 사람과 지식사회가 존재한다. 이들
은 성대결을 중재하고 설득하여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인권의식을 높인다. 그리고
이들 지식계 역시 미투 제기자에 의해 각성한다.
결론적으로 본고는 시오리 사건의 공론화 이후,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2차 가해’와,
이러한 백래시에도 불구하고 미투에 의해 서서히 변모하는 지식사회의 움직임을 통
해 이토 시오리의 미투 운동의 실상과 일본사회의 성 인식의 변화의 국면을 구명(究
明)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은 이토 시오리의 발언과 직접행동이 ‘현재진
행 중인 일본사회의 미투 운동과 성의식 변화’에 기여하는 국면에 대한 조명인 셈이
다. 그래서 2장은 사건의 공론화, 3장은 사회의 ‘2차 가해’, 4장은 성폭행 가해자
야마구치 노리유키의 ‘2차 가해’, 5장은 이토의 미투 이후 일본 지식사회의 움직임을
고찰하고자 한다.
유의할 점은 본고의 필자가 임의로 ‘이토 시오리는 피해자, 야마구치 노리유키는
가해자’라고 설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초기 증거 확보 실패로 검찰이 기소를 포기
해 이토 시오리는 형사 재판 자체를 받지도 못했다. 이로 인해 야마구치 노리유키는
형사 책임이 없다. 하지만 증거법정주의의 법리와, 사실은 다르다. 이 사건에서 정신
을 잃은 이토 시오리가 택시에서 내려져 호텔로 옮겨지는 사실이 CCTV와 증언을
통해 입증되었다. 야마구치 노리유키도 성관계를 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일본사회는 야마구치를 성폭력 가해자로 인정하고 그의 직장 무대인 방송계에서 퇴
출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토 시오리는 미투 운동의 시작점으로 일본사회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다만 직접증거 확보가 어려운 성범죄의 특성상, 세부 법리, 논리 다툼이
치열하게 발생한다. 이 지점에서 ‘2차 가해’가 발생한다.
9) 이토 시오리는 ?블랙박스?에서 ‘2차 피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글에서 ‘2차 가해’라는
말을 사용한다. ‘2차 피해’와 ‘2차 가해’의 개념 차이와 효과에 대해서는 권김현영, 「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의 문제」, 권김현영 엮음,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2018.3.30.,
22~70면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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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시오리 사건의 공론화 과정
<사건의 경위>10)
2013년 가을 쯤
이토가 뉴욕에서 야마구치를 알게 됨.
후일 TBS의 뉴욕지국장, 야마구치, 그녀 3인 점심식사
2015년 3월 25일 이토가 야마구치에게 일을 찾고 있다는 메일을 보냄
2015년 3월 26일 야마구치가 기고한 ?週刊 文春?이 발표
2015년 4월 3일
‘일시 귀국중의 야마구치’와 에비스에서 처음 둘이서만 식사. 두 번째 식당에서
기억을 잃은 그녀는 미나토 구에 있는 호텔에 끌려감.
2015년 4월 9일 이토 시오리, 하라주쿠(原宿) 경찰서에 피해 상담을 받으러 감
2015년 4월 15일 이토, 다카나와(高輪) 경찰서의 경부보(警部補)와 호텔 감시카메라 영상을 확인
2015년 4월 18일
야마구치가 그녀의 메일로 「많이 취해서 돌봐주려고 했다. 합의 하에」라고
주장
2015년 4월 23일 야마구치, 워싱턴 지국에서 해임
2015년 4월 30일 이토 시오리, 다카나와 경찰서에 피해신고서를 제출
2015년 6월 8일 나리타공항에서 야마구치 체포 직전, 체포장 집행이 취소.
2015년 8월 26일 사건 입건
2016년 5월 30일 야마구치, TBS를 퇴사
2016년 6월 9일 야마구치, ?総理?(幻冬舎) 발매
2017년 7월 22일 불기소 확정
2017년 1월 27일 야마구치, ?暗闘?(幻冬舎) 발매
2017년 5월 18일 ?週刊 新潮?에 이토 시오리 첫 인터뷰 실림
2015년 4월 3일, 로이터 재팬의 인턴이었던 이토 시오리(1989년생)는 TBS 워싱턴
지국장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이토 시오리는 뉴욕
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던 시절 알았던 야마구치 TBS 워싱턴 지국장을 도쿄 에비스
(恵比寿)에서 만났다.11) 야마구치와 단둘이 식사한 이토는 2차 술자리에서 기억을
10) 「特集 被害女性が告発 「警視庁刑事部長」が握り潰した 「安部総理」べったり記者の 「準強姦逮捕
状」, ?週刊 新潮? 5月18日号, 新潮社, 2017, 24면.
11) 이토 시오리는 취직을 알아보던 중 뉴욕에서 알게 된 야마구치에게 TBS워싱턴 지국의 공석 여부를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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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야마구치가 이토의 몸 위에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토 시오리의 ?블랙박스?는 2017년 10월에 간행되었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2017년 5월 29일 2017년 10월 24일
기자회견 <사법기자클럽>에서 1차 시행 <외국인특파원협회>에서 2차 시행
내용
① 성폭행사건에 대한 보고
② 불기소처분(2016.7.22) 보고
③ 기자회견 당일, 검찰심사회(구성원 : 시민
11명)에 심사를 신청
① 검찰심사회 불기소 타당 결정
(2017.9.22)에 대한 보고
② ?블랙박스?출간(2017.10.20), 홍보
※ 검사심사회의 최종 결정으로 형사
재판에 실패하자 이토는 10월경
‘민사소송’ 시작
야마구치에
영향
※ 야마구치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따라 적
극적인 변호를 할 필요가 없는 상황
①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런 일은 없다고 주장’
② ?総理?의 코멘테이터로 자주 방송에 나오
던 야마구치가 방송12)에서 사라짐(2017년
5월 18일 ?週刊 新潮?의 보도로 야마구치
의 방송출연이 어렵다는 여론이 형성)
①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
: 11월에 다음달 ?Hanada?(12월
호)에 실을 기사 준비
사건 초기 이토 시오리는 자신이 당한 성폭력을 숨거나 흔히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
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경찰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했지만 사건은 혐의불충분으
로 불기소(2016.7.22) 되었다. 하지만 이토 시오리는 도쿄지검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
메일로 상의했다. 야마구치는 TBS 워싱턴 지국에서 프로듀서로 일할 기회를 제안했고 두 사람은
2015년 4월 3일 비자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만났다.
12) 다음은 야마구치가 TBSテレビ퇴사 이후 방송에 출연했던 목록이다. 확실히 2017년 5월 18일
이후부터는 방송출현이 거의 없다. 敎えて!ニュースライブ; 正義のミカタ(朝日放送); モーニング
ショー(テレビ朝日); スーパーJチャンネル(テレビ朝日); ビートたけしのTVタックル(テレビ朝
日)-2016年11月20日, 27日; Mr.サンデー(フジテレビ・関西テレビ); ニュースザップ(BSスカ
パー!)-2016年8月2日, 11月22日; 眞相深入り!虎ノ門ニュース(DHCシアター)-2016年10月18日,
2017年1月31日; 直撃LIVE グッディ!(フジテレビ)-2017年3月24日; 情報プレゼンター とくダネ!
(フジテレビ); そこまで言って委員会NP(読売テレビ)-2017年4月2日; ワイドナショー(フジテレ
ビ)-2017年4月9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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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2017년 5월 29일 ‘검찰심사회’에 불복 신청을 했다. 또한 그녀는 같은 날 사법
기자 클럽에서 첫 기자 회견을 열어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는데 반향을 일으키
지는 못했다.13) 오히려 회견 후 그녀는 ‘2차 피해’에 해당하는 협박 및 비난성 메일을
받았다.14)
그런데 이토 시오리가 2년이 지나 갑자기 언론을 이용해 사건을 폭로하게 된 배경
이 있다. 이토 시오리도 처음에는 보수적인 일본사회에서 자신의 사건을 언론에 공개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법적 투쟁이 여의치 않자 이토 시오리는 언론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토 시오리가 사건을 외부에 공론화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5월 18일
?週刊 新潮?에 실린 첫 인터뷰가 작은 반향을 일으키고 가해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도하면서부터였다. 사회적 지지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확인한 이토 시오리는
동월 29일 시민 11명이 검찰의 결정을 재심하는 검찰심사회에 심사를 신청하고 기자
회견을 단행한다. 이 기자 회견은 여론의 지지와 검찰심사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이 확연하다. 회견은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검찰심사회(2017.9.22)에
서 불기소 타당이라는 결론도 내렸지만, 이토 시오리는 미디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토는 2년 넘게 법정 투쟁에 나서지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면서 민사소송과
언론투쟁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이토 시오리는 언론인이었던 자신의 경력을
성폭행 사건에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검찰심사회에서도 지자 이토 시오리는 2017년 10월 20일, 자신의 성폭력 피해
경험, 일본의 사법제도와 수사 과정의 문제점, 미디어보도의 한계 등을 다룬 ?블랙박
스?15)를 출간했다. 또한 1차 회견이 기대만큼 언론화 되지 않자 그녀는 외국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자신의 이력을 활용해 동월 24일 외국인특파원협회에서 외신을
상대로 2차 기자 회견을 했다. 이미 미국에서 동월 15일부터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일본의 미투 운동의 선구자로 조명될 수 있었다. 외국에서 이 사건에
주목하자 일본사회 역시 이토 시오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형성되었다.
이와 같이 책 출간과 함께 반향이 시작됐다.16)
13) 「미투, 일본은 왜 묵살하나……성폭행 당한 女기자 절규」, ?중앙일보?, 2018.3.8.
14) 「(フォーラム) 「#MeToo」どう考える?: 1声を上げる」, ?朝日新聞?, 2018.1.5., 朝刊9면.
15) 이토 시오리의 책은 한국에서 김수현이 번역해 ?블랙박스?로 2018월 5월 25일 발행되었다. 이토
시오리, 김수현 역, ?블랙박스?, 미메시스, 2018. 이후 이토 시오리는 동년 10월 한국을 방문했다.
16) 「MeTooが忘れ去られても, 語ることができる未来に向けて」, ?現代思想?7月号, 靑土社, 2018,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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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가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책이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할
때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사회의 보수적인 성문화와 관행의 벽에 가로 막혀
있을 때 그녀의 목소리에 응답해 준 것은 외국 언론이었다. 2017년 말경 BBC 인터
뷰17)와 뉴욕타임스의 1면18)에 이토 시오리 기사가 나가고 나서야 일본사회는 이토의
목소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외신의 주목으로 이토는 일본 미투의 선구로 간주되고
“여성들이 일본사회의 상하관계 속에서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지 얘기되며, 성폭력과
직장 권력의 괴롭힘의 문제가 빛을 보게 했다”고 평가되었다.19) 또한 AP통신은 2018
년 2월 28일 「일본에서 ‘미투’라고 말하는 것은 비난 받고 무시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의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분석했
다.20) 이처럼 2015년 이토 시오리 사건은 2017년 미국의 미투 운동과 결부되면서
일본에서 재조명되었다. 그러면서 일본 미투의 시작은 이토 시오리로 명명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토 시오리가 처음부터 자신의 사건을 사회에 드러내고
직접행동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근 2년 동안 경찰, 검찰 등 사법 제도를
통해 형사 재판을 원했다. 이 기간의 경험이 이토 시오리가 일본의 사법시스템과
성문화를 인식하게 되는 토대가 되었으며 ?블랙박스?를 쓰고 미투 운동으로 나아가
게 되는 문제의식을 갖게 했다. 그런 점에서 ?블랙박스?는 이토 시오리가 바라본
일본사회의 문제점이자 자기변호의 책이었다. 그 견해에 공감하지 않는 지점에서
9면.
17) Although speaking out about abuse and rape is difficult in almost all circumstances, women
living in certain countries face insurmountable obstacles when seeking justice. Japan is one
of those places. Entrenched cultural norms which don't even allow the word rape to be
mentioned, have silenced women almost entirely. But one person refused to be quiet-journalist
Shiori Ito. The man in question has publicly denied all allegations(2017년 12월 15일 BBC인터뷰
내용 http://www.bbc.co.uk/programmes/p05r58zm).
18) The journalist, Noriyuki Yamaguchi, the Washington bureau chief of the Tokyo Broadcasting
System at the time and a biographer of Prime Minister Shinzo Abe, denied charge and, after
a two-month investigation, prosecutors dropped the case. Then Ms.Ito decided to do something
women in Japan almost never do. She spoke out. Mokoto Rich, 「Speaking out on rape」, ?The
New York Times?, 2018.1.2., p.1.
19) 「「1人じゃない」が出発点 ウーマンリブ運動を主導」, ?東京新聞?, 2018,02.09., 朝刊26면.
20) 「미투, 일본은 왜 묵살하나……성폭행 당한 女기자 절규」, ?중앙일보?, 20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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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2차 가해’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블랙박스?와, 피해자의 목소리에
대한 백래시로서 기성사회와 가해자의 ‘2차 가해’를 통해 당시 이토 시오리의 미투의
전개와 반동, 일본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사회적 2차 가해를 살펴본다.
Ⅲ. 이토 시오리와 ‘사회적 2차 가해’
‘시오리 사건’이 3년 넘게 전개된 것은 검찰의 혐의 불충분에 의한 불기소 결정의
‘배경’이 중요한 원인이다. 사실 이토 시오리는 성폭행을 당한 후 5일이 지나서야
경찰을 찾았다. 사건 초기 그녀는 경황이 없던 탓에 산부인과에서 성폭행을 확증하는
검사나 수면유도제 및 강간 약물 검출을 위한 검사도 받지 않았다. 즉 성폭행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피해자와 수사경찰관이 ‘정황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여건 때문에 수사와 사법절차의 진행과정에서
일본사회의 의료시스템, 보수적인 성문화와 사법시스템의 미비점 등이 노출되었다.
의료제도, 수사과정과 사법제도가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자회견
으로 세상이 알게 된 이후에는 피해자가 일반 시민의 의심과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이토 시오리는 ‘의료, 사법 미비, 시민 비난’의 세 가지를 ?블랙박스?에서 사회
에 의한 “2차 피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피해자의 목소리를 통해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살펴보자. 먼저 이토 시오리가 지적한 것은 자신이 초기 증거 확보에 실패한 이유다.
그녀는 당시 블라우스가 젖어 있어 야마구치 티셔츠를 빌려 입고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온 후 야마구치가 빌려 준 티셔츠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남은 옷은
세탁기에 돌려 버렸다. 이후 이토는 가까운 산부인과로 갔다. 이 작은 산부인과는
결혼 전에 신부의 건강진단을 주요 업무로 하는 곳이었다. 여의사는 “언제 (피임에)
실패하신 거예요?”라고만 물어 볼 뿐 성폭행을 당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이토 시오
리 입장에서는 부인과의 강간키트, 강간사건에 필요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증거
채취도구가 필요했다.21) 병원을 나선 그녀는 제대로 된 검사를 위해 성폭력 피해자를
21) 伊藤詩織, ?Black Box?, 文藝春秋, 2017, 6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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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하는 NPO에 전화했지만 직접 와야 한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NPO는 직접 이야
기를 하지 않으면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토는 그곳에 갈 힘이 없었
다. 그녀는 이때 NPO가 전화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면 사건을 빨리 해결했을 것이
라고 말한다. 이러면서 이토는 성폭행 진단검사, 혈액조사, DNA채취 등을 하지 못하
고 시간을 보내버린 것이다.
이토 시오리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응해 주는 부인과를 겨우 찾아 방문한 것은
2015년 4월 17일이었다. 이때는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2주가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녀는 적절한 검사를 기대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를 담당하는 병원조차 그녀에
게 시간이 지났다는 말을 할 뿐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다. 의사와 간호사의 태도는
성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인권 의식의 결여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이토는 병원 의사
의 반응,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NPO의 대응을 지적한다.
강간 피해여성의 심리적 상처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의료시스템이 피해자에게는
사회적 ‘2차 가해’였다. 이 연장선에서 이토는 피해자가 종합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원스톱 지원 센터22)의 불충분을 지적했으며 레이프 키트(성범죄채취키트)를
늘리고 의료관계자의 성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23) 성폭력 의료 대책의 미비는
성문화 및 사회인식과 결부되어 있다. 사실 초기 증거확보가 지체된 것은 이토 시오리
가 강간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그녀는 야마구치가 강제적인
성행위를 했다는 것은 인지했지만 강간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강간은 모르는 사람
에게 당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24)
일본사회는 정말 강간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낫기 쉬운 상처”로 인식하
고 있다는 것인가? 이토 시오리는 이러한 분위기와 성 인식을 경찰 조사 과정에서도
22) 원스톱 지원 센터에서는 성피해를 당한 직후에서 산부인과의 진찰이나 성감염증 검사, 카운슬링,
결찰이나 변호사와의 연락 등 종합지원을 한 곳에서 제공하는 시설이다. 긴급피임약이나 체액
등 증거채취를 빨리 하기 위해 필요하며 심신에 고통을 받은 피해자들의 부담경감을 위한 목적이다.
일본은 2020년까지 도도부현(都道府県)에 최저 한 곳을 설치할 방침이다. 내각부에 따르면 현재
38도도후현(都道府県)에 39개가 있지만 시즈오카(静岡)나 도야마(富山)등 9개의 현은 아직 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이다. 「ワンストップ型施設拡充急務 性被害支援足りず」, ?東京新聞?, 2017.11.27.,
朝刊24면.
23) 「伊藤詩織"著者インタビューまずは知ってほしいジャーナリスト伊藤詩織さん Black Box ブ
ラックボックス」, ?女性のひろば?470号, 日本共産党中央委員会, 2018.4., 32~33면.
24) 伊藤詩織, ?Black Box?, 文藝春秋, 2017, 6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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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했다. 이제 두 번째로 성폭력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과정과 사법제도의 문제
를 살펴보자.
“재현”이라고 불리는 이 작업은 사건 현장에서 행해지는 것이 많다. 문자 그
대로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상황을 재현해서 사진을 찍는 것이 목적이다. 그
장소에 가지 못해 다카나와 경찰서의 맨 위층 유도장 같은 곳에 갔다. (중략)
남성 조사관들만 있는 유도장에서 인형을 상대로 강간 상황을 재현했다. 한 명
의 조사관이 내 위로 사람 같은 인형을 놓았다. “이런 느낌?”하면서 인형을 움
직인다. 플래시가 터지고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다. “처녀입니까? 답하기 어려
우실주도 있지만.” 다른 조사원들에게도 이전부터 몇 번이나 들은 말이었다.
이 이상한 질문에 대해 나는 “도대체 이 사건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겁니까?”라
고 답했다. 나는 이 질문을 몇 번이나 들었는데 이러한 굴욕은 조사 시스템, 그
리고 교육의 문제다. (?Black Box?, 129~130면)
이토 시오리는 사건 발생 후 5일이 지나 경찰서를 찾았는데 관할 경찰서의 수사관
을 만난 것은 7일째였다. 수사관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한 이토 시오
리의 진술을 듣고 “1주일이나 지났으면 어렵겠는데……, 자주 있는 일이라서 사건으
로 수사하기는 어렵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이토 시오리는 수사관의 발언과 발상을
잔혹하게 느꼈다. 게다가 어렵사리 시작된 수사에서 이토 시오리는 여러 번 사건
과정을 진술하면서25)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특히 검증 차원에서 행동으로
재현하는 수사 방식은 견디기 어려웠다. 사건을 진술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압박이
상당하다. 남자 경찰관에 둘러싸여 인형으로 강간을 재현하고 카메라의 플래시 세례
를 받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인 셈이었다.26)
25) 사건이 5일이 지난 후 이토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 하라주쿠서(原宿署)로 가서 강간 사실을 말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쉐라톤 호텔은 다카나와서(高輪署) 관할이라 다카나와 서에서 다시 강간
사실을 처음부터 말해야 했다. 또한 경시청으로 사건이 이관된 후 또 다시 처음부터 진술을 해야
했다.
26) 최근 한국에서도 이런 방식의 조사 방식이 문제가 됐다. 그래서 한국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3월 10일 수사기관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 당시 상황의 재연을 요구한 것은 2차 피해 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검찰에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또한 인권위는 검찰총장에게 피해자가
직접 재연에 참여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규정과 현장검증이 필요한 경우라도 피해자의
성적 불쾌감이나 굴욕감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하도록 권고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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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체포 영장까지 발부되었지만 경시청 간부의 개입으로 체포가 중지된 사건은
사법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 이것은 이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그래서 이토 시오리는 2년 동안의 투쟁 끝에 형사소송이 좌절되자
언론을 통해 외부를 향해 발언을 감행한 것이다. 이토 시오리식 미투는 많은 지지를
이끌어냈지만 가부장적인 사회의 백래시와도 직면해야 했다. 세 번째로 사회의 2차
가해를 살펴보자.
그날 나는 어째서 호텔에서 바로 경찰에 가지 않았던 건가. 나는 그 후에 몇
번이나 스스로를 질책했다. 마음 속 어딘가 내 안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건 단지 악몽을 꾼 거라고. 그럼에도 사정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
이 “왜 바로 경찰에 가지 않았어?” 라고 하면 괴로운 마음이 들곤 한다. 마치
목이 졸리는 것 같다. 우선 안전한 곳에 가고 싶다고 제일 먼저 생각했다.
(?Black Box?, 243~244면)
이토 시오리가 잡지와 신문, 방송과 책 ?블랙박스? 등을 통해 사건을 폭로하자
피해자인 이토를 향한 사회의 비난도 뒤따랐다. 이 사건은 가해자인 야마구치가 성행
위를 인정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굳이 성폭행 사실을 입증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검찰의 ‘혐의 없음’이 환기하듯, ‘성관계의 강제성’ 여부가 이 사건의 가장 핵심 사안
이었다. 그래서 이토 시오리는 자신이 강제로 성폭행을 당하던 상황과, 피해자로서
받은 정신적 충격・혼란 등을 이야기해야 했다.
하지만 언론을 통한 이토 시오리의 해명이 도리어 주된 비난의 빌미를 제공했다.
한국에서 언론사에 기자로 취업하는 것은 ‘언론고시’로 불릴 만큼 어려운 일이다.
이는 일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취업을 목적으로 유명 저널리스트인 야마구치를 이용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냐는 의심과 비판이 가장 비등했다. 안희정 사건 1차 재판에
서 김지은의 ‘피해자성’이 불인정된 것처럼, 이토 시오리도 ‘피해자성’을 의심받으며
사회적 2차 가해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사회적 비난은 이토의 ?블랙박스?를 통해서도 표출되었다. 아마존 재팬의 댓글을
보면, 아이디 없이 쓴 독자는 이토가 정규 루트를 통하지 않고 야마구치를 이용해
‘상황 재연’ 요구는 인권침해”」, ?연합뉴스?, 2019.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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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에 입사하려고 했다는 점, 자기실현을 위해 사내권력에 기대는 점은 청렴결백하
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상대의 실명을 거론하여 일방적으로 내용을 간추려 책을
출판하는 것이 과연 사회정의일까?”라는 식의 의문이 제기된다. 독자는 이토가 “자신
이 상상(추리)한 것을 반복하는 사이에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저널리스트라고 하면서 상상만으로 발언하는 것은 자신의 신용을 떨어트리는 것”이
라고 일침을 가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민사재판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출판한
것은 출판사의 전략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의심할 수 있으며 가해자, 피해자의 양쪽
목소리를 들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독자는 NPO에 심신미약으로 갈 수 없었다고
하지만 정말 자신이 도움을 받고자 했다면 택시라도 타고 상담을 받아야 했다고
비난했다. NPO에서 절차를 알려줬다고 해도 이토가 결국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가 자신에게 강간을 물어보지 않은 것을 탓하지만, 환자가 먼저
피해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이상 프라이버시 차원에서 의사가 먼저 강간을 언급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피해 당사자가 의사에게 물어봤어야 했다고 지적되었다. 이토
시오리가 피해자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이 모든 것을 먼저 해주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이토의 삶의 이력과도 맞지 않았다. 이처럼 베스트셀러 ?블랙박스?를 통해 성폭
력 피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는 동시에 의심과 비난 또한 격증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꽃뱀이다”, “야당의 정치 조작이다”, “북한 공작원이다”, “재
일한국인이다”27) 등의 2차 가해가 이루어진다. 이토 시오리가 산부인과를 갔으면서
도 의사에게 성폭행 피해사실을 알리거나 절차를 묻지 않고 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채 5일 후에야 경찰서에 간 게 ‘꽃뱀’의 빌미가 됐다. 특히 성폭행을 당한 직후 가해자
인 야마구치에게 미국 취업과 비자를 문의한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그 문의를 한 메일에 대한 답장이 없자 경찰서에 갔기 때문에
취업을 목적으로 한 ‘꽃뱀’이라는 의심이 확신으로 이어졌다. 또한 가해자인 야마구
27) 특히 인접국인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재일한국인으로 호명되는 게 이색적이다. 이토 시오리
는 기자회견에서 가족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성을 감추었는데 그게 “재일한국인”이라서 숨겼다는
억측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사회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이 “민족혐오”로 발전하는 순간이다.
일본사회가 보는 “재일한국인”은 잠재적 범죄자인 동시에 사건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의심할
수 있는 민족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이토 시오리는 “재일한국인”이면 당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하고 강한 반문을 했다. 재일조선인과 혐오 표현의 문제에 관해서는 梁英聖(마츠이 야요리), 김선미
역, ?혐오표현은 왜 재일조선인을 겨냥하는가?, 산처럼, 2018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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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가 여당인 아베 정권의 실세와 친한 유력 저널리스트였다는 점에서 야당의 정치
조작이라는 풍문도 돌았다.
이러한 비난하에서 결국 세간에서는 이토가 취직자리를 얻기 위해 권력에 기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넘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인생을 망치려한다는 비난까
지 횡행했다. 현재 민사소송 중인 그녀는 ‘2차 가해’로 인해 더 이상 일본 언론사에서
일하기 어려워 영국과 일본을 오가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28) 이처럼 이토 시오리
가 의료제도 외에도 체감한 ‘성피해자 보호시스템과 사법체계’의 미비, 그리고 보수
적 사회의 백래시가 야기한 ‘2차 가해’는 다음과 같다.
<사회적 2차 가해>
경찰
①반복되는 진술(사건이 이관 될 때마다 사건의 경위를 처음부터 다시 말해야함→피해
자가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겪는 트라우마에 대한 고려가 없음)
②강간사건이 “자주 있는 일”로 치부→ 사건으로 조사하는 것은 어렵다고 함
③스스로 자료 수집(CCTV영상 확인→사건을 마주해야 하는 부담감)
④사건의 재현→남성조사관들만 있는 곳에서 인형을 상대로 강간의 상황 재현
⑤사생활 침해→“처녀”의 여부를 질문
검찰 ①기소가 불가능하다고 미리 판단→ 소극적으로 사건을 다룸
언론
①언론의 냉랭한 반응(사건의 흐름을 보고 보도여부 판단)
②?週刊 新潮?에 사건을 다루었지만 자신의 이름이 아닌 피해자A로 게재(피해자가
자신의 이름이 아님) ③야당의 정치 조작 ④재일한국인으로 호명
직장
①같은 언론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대면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②일본 기업에 소속되거나 일본에서 일하는 것을 포기 ③보복의 가능성
가족 ①기자회견 후 가족을 취재할 가능성 ②가족이 받는 주위의 시선
개인
①개인정보 유출로 협박, 메일이 쇄도 ②명예욕, 꽃뱀, 정치적의도가 있다는 억측
③피해자 이미지 고착 ④책 판매수익, 유명세 이용한 일자리 획득 목적 비난
필자가 봤을 때, 사실 이토 시오리가 다양한 2차 가해를 받은 것은 가해자가 유력
저널리스트이며 증거를 확보하기 힘든 성폭행의 특이성, 가부장적 남성사회의 오랜
관행과 성문화 때문이지만 본인이 촉발한 측면도 있다. 책 ?블랙박스?에서 그녀는
‘피해자 되기’의 함정에 빠져 있다. 초기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이토 시오리는 자신의
28) 「성폭행 당했는데 꽃뱀이라고? 성폭행 피해자가 직접 파헤친 블랙박스」, ?조선닷컴?, 20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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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을 토대로 자신을 완전무결한 피해자로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성폭행 피해
자로서의 무지와 혼란 그리고 취업 목적으로 접근한 ‘꽃뱀’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순수성’을 강조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이토 시오리는 책 초반부터 성문제에 관한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처럼 자신을 설명한다. 그래서 그녀는 성폭행 이후 자신이 성폭
행 피해자로서 해야 할 초기 조치를 ‘친절히’ 안내하지 못한 시스템에게 책임을 전가
하고 심지어 지인에 의한 강압적 성관계가 강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언급
까지 했다.
그런데 ?블랙박스?에서 그녀는 정치부보다는 사회부 기자를 지망하는 저널리스트
였고 대학 입학 전부터 언론인을 꿈꿨으며 졸업후 방송국 인턴까지 체험한 인물이었
다. 또한 일본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지내면서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으며
고등학교 때는 친구와 성추행을 당하지 않는 법을 연구까지 했다. 또한 고등학교부터
시작된 미국 유학과 유럽에서의 대학 생활 등을 통해 타지에서 자신의 신변을 보호해
야 하는 위험사항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토는 미국에서 데이트 강간약물이
사회적 문제가 된 맥락을 책에 소개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굉장히 진취적이었고 오랜 외국 생활을 했으며 (예비) 언론인으로서
교육과 경험을 쌓은 그녀가 성폭행 직후 산부인과 여의사가 성폭행 여부를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거나 자신이 당한 일이 강간인 줄 몰랐다고 얘기하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심신이 모두 지친 상태라고 하지만
그녀는 외국에서 공부를 한 엘리트 여성으로 정보를 취급하는 저널리스트다. 인터넷
을 검색하면 이토가 증거수집 및 사후 대처를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29) 게다가 작은 아버지는 전직 검사 출신이었고 친한 친구는 간호사
였으며 성추행 문제로 회사를 그만둔 친구도 있었다.
특히 자신은 술과 ‘데이트 강간 약물’을 함께 먹어서 기억을 잃은 것 같다고 주장하
지만 그녀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경찰의 현장 탐문 조사에 따르면 그녀는 상당량의
술을 급하게 마시고 다른 좌석의 사람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실이 드러났다.
29) http://shioriblackbox.com 이 사이트는 이토 시오리에 관련된 기사, 이토 시오리를 위한 응원,
미디어에 게재된 기사로 구성되어 있다. 첫 화면은 「체포장이 발행된 사건이 왜 직전에 집행되지
않았는가」의 제목이 큰 글씨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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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안에서의 토사물도 증언되어 그녀는 술에 취한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책을 읽고 반문을 했고 시민 11명이 다수결로 결정하는 검찰심
사회에서도 검찰의 판단을 인정했다.
하지만 술이든 약물이든 이토 시오리가 정신을 잃고 호텔에 실려 들어간 사실은
입증되었고 모두 인정했다. 그래서 서양 언론에서는 정신을 잃은 그녀가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를 당한 것으로 봤다. 이는 엄연히 성폭행이다. 그러나 아직 일본에서
이런 유형의 범죄를 단죄할 법적 근거가 없다.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자
는 혐의를 다툴 수밖에 없다. 여기서 첨예한 충돌이 발생한다. 흔히 여성운동가는
성폭행 피해자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책이름 ?블랙박스?가 “밀실처럼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는 담당 검사의 말을 반영한 제목이듯, 방에서 일어난 성폭
행 문제는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의 목소리에 공감하고 귀를 기울이
는 게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래서 현재 사법체계는 ‘증거주의’에서 ‘정황주의, 피해
자 진술의 신뢰성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 실정이지만 ‘죄’에는 상대방이 있다. 억울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피해자의 발언에 대한 세심한 검증은 필수불가결
하다. 야마구치는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되었기 때문에 이토 시오리는 피해자이면
서도 입지가 매우 협소했다. 사정이 이러할 때 사건에 대한 언론과 지식인, 사회와
국민의 판단과 지지, 여론 재판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이토는 2년 만에 자신의 사건을 미디어에 폭로하기 시작했다. 1차 기자
회견을 통해 언론에 호소했지만30) 반향이 미미하자 외국 언론의 힘을 빌려 자신의
입장을 드러냈다. 이토 시오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언론은 성폭력
을 다루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왜 이것이 OK가
아닌지 계속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31) 마침 미국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되면
서 이토 시오리는 일본 미투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다. 일본 내부가 아니라 외국의
언론의 지지가 이토 미투의 초기 동력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 국내에서도 이토 시오리를 지지하는 여성들이 서서히 등장하기
30) 이토 시오리는 기자회견 후 인터넷상에서 격한 협박을 받았다. 그녀는 자택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런던으로 이주했다. 「撲滅へ 「WeToo」 伊藤詩織さん 「参加しやすいように」」, ?每日新聞?, 2018.03.17, 東京夕刊 9면.
31) 「성폭행 당했는데 꽃뱀이라고? 성폭행 피해자가 직접 파헤친 블랙박스」, ?조선닷컴?, 20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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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다. 예를 들면, 유명 작가인 하야시 마리코(林眞理子)도 이토 시오리 사건에
대해 언급하면서 일본의 여성은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32) 미우라
루리(三浦瑠璃)는 남성과 여성이 대등함, 경제적 자립과 약자 배려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고 여자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33) 이에 대해
이토 시오리는 미우라 루리와 같이 ‘NO라고 하지 않으면 NO가 아니다’가 아니라
‘YES가 없으면 동의가 아니다’라는 교육을 언급한다. 이처럼 이토의 용기가 남성사
회의 강한 반감을 불러 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성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성 의식의
개선을 꾀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컨대 ‘블랙박스’가 함의하듯,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된 사건의 진상은 삼자인
타인이 알기 어렵다. 이토의 ‘피해자성’ 문제를 차치하고 그녀의 투쟁이 성폭력 피해
고발이 극히 낮은 일본사회에 파장을 미친 것은 확연하다. ?週刊 新潮?의 편집장이
실명과 얼굴을 밝히고 폭로한 투쟁의 방식이 일본에서는 아주 낯선 것이었다고 지적
한 것처럼,34) 저항방식이 새롭게 발명되고 있다. 이는 뉴미디어를 활용한 미국의
미투 운동(#me Too)과 결부되었다. 이로써 여성운동의 세계적 동시성과 지구적 연관
성이 강화되고 삶에 대한 자기결정과 사회관계에 대한 공동결정의 학습과정이 새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특히 문화적 지체의 현상이 두드러지는 권력형 성범죄가 이슈
32) 林眞理子, 「夜ふけのなわとび」, ?週刊 文春?6月22日号, 文藝春秋, 2017, 51면.
33) 「#MeToo運動が意味するもの」, ?潮? 4月号(710号), 潮出版者, 2018, 181면.
34) 사실 일본사회에서 실명을 거론한 것은 이토가 처음이 아니다. 사회적 파급력은 미미했지만 미투
이전에도 있었다. 길을 묻는 두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고바야시 미카(小林美佳)는 자신의 감정을
핸드폰에 기록해 두었다가 2008년 4월 ?성범죄피해를 만나는 것(性犯罪被害にあうということ)?
을 출판했다. 고바야시는 성폭행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이해’를 바라고 있고, 보통으로 살기 위해선
(피해를 당한) 나를 받아줄 사회가 절실하다고 이야기 한다. 고바야시는 “10년이 지나도 실명으로
고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1907년
형법제도가 제정된 후 110년이 지난 2017년 7월 친고제가 폐지되고 강간죄의 명칭이 ‘강제 성교
等 죄’로 바뀌어 남녀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 고소 없이 기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폭행, 협박을 증명하지 않으면 처벌이 어렵고 피해자가 공포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경우는
“저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의한 것이다”라고 하는 해석이 지금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이에
고바야시는 “나도 법 개정 검토에 출석해서 폭행, 협박에 대한 요건은 없애야 한다고 전했다.
‘피해자는 강하게 저항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법률이 가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HOW
ABOUT JAPAN? #MeTooは日本にも広がるか」, ?Newsweek 日本版? 12月15日号, CCCディアハ
ウス, 2017, 26면.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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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되면서 기존 가부장 질서와 남성 지배의 문화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을 중심으로 한 성평등의 목소리가 일상의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새시대의 문화
혁명화 되고 있는 과정에서 이토 시오리와 같은 피해자들이 여전히 강고한 가부장사
회의 폐해(2차 가해 등)를 온몸으로 짊어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Ⅳ. 가해자 야마구치의 2차 가해 : 권력형 성범죄에서 ‘남녀 간 스캔
들’로
1. 사법부 불신과 권력형 성범죄
이토 시오리의 움직임이 확대되면서 가해자 야마구치 노리유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토 시오리는 사회의 2차 가해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반박과 2차 가해에도
대면해야 했던 것이다. 사실 불기소가 확정되어 야마구치는 자기변호를 굳이 할 필요
가 없었다. 하지만 2017년 10월 이토 시오리가 ?블랙박스?를 내고,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을 했으며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여론을 조성하자 야마
구치도 11월부터 준비를 시작해 ?Hanada?의 12월호, 2018년 1월호에 자신의 의견을
편지 형식으로 썼다. 당시 야마구치는 TBS 워싱턴 지국장을 역임했고 ?総理?
(2016.6.9)의 저자로 일약 스타가 된 유명 저널리스트이자 아베 신조 총리의 최측근
기자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2017년 5월 18일 이토 시오리가 ?週刊 新潮?에 첫
인터뷰 기사를 기고한 후 6월부터 방송에서 서서히 퇴출되어 출현하지 못하는 상황이
었다.
이토 시오리가 ?블랙박스?에서 사법부 불신과 관련해 가장 핵심적으로 언급하는
점이 야마구치 노리유키의 지위였다. 체포장이 취소되고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는
배경에는 거물급 저널리스트 야마구치와 그 인맥의 힘이 작동했다는 게 이토 시오리
의 판단이다. 이는 일종의 정치적 음모론이자 성폭행의 성격을 ‘권력형 성범죄’로
간주하는 이토 시오리의 주장이다. 야마구치의 인맥은 어떠한가.
야마구치는 2017년 5월 8일 ?週刊 新潮?의 취재를 받은 감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는
데 아베 총리의 아키에(昭恵) 부인이 ‘좋아요’를 눌렀다.35) 또한 ?週刊 新潮?가 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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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에게 취재의뢰서를 메일로 보냈는데 야마구치가 실수로 그 건으로 상의하는 내
용을 기타무라가 아닌 잡지사 메일로 전송해 버린다. 여기서 기타무라는 일본 국내외
의 정보를 다루는 내각정보조사실의 우두머리인 정보관을 역임하고 있는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를 가리킨다. 기타무라는 이미 5년이나 정보관을 하고 있고 관방부장
관 취임 소문이 돌고 있는 인물이다. 정치 저널리스트인 스즈키 토이치(鈴木棟一)에
따르면 기타무라는 아베의 최측근이자 아베가 좋아하는 관료였다.36)
왜 2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 나오는 것인지 이상하지 않나요. 그녀도 취직을
도와주기를 바랬던 사심이 있었기 때문에 술 마시러 갔으니 남녀문제의 다툼.
…… 그 취직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인지. 최근 야마구치 씨도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고 있고. 이러한 것이 고발의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요.37)
또한 인용문과 같이 이야기한 사람은 나리타공항에서 예정된 야마구치의 체포를
중단시킨 경시청 형사부장 나카무라 이타루(中村格)였다. 나카무라는 1986년 경찰청
입청조(警察庁入庁組)의 에이스로 민주당 정권시절에 관방장관 비서관을 역임하고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한 후는 해임될 예정이었지만 “꼭 하게 해주십시오”하며 스가
(菅) 관방장관에 무릎을 꿇었다. 이처럼 위기관리능력이 탁월한 그는 미래에 경찰청
장관이 틀림없이 된다고 스가 관방장관이 평가하고 있는 인물이었다.38) 당시 수사관
A는 상부로부터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토 시오리에게 고백했다. 나카무라는
TBS와 관련된 사람을 체포하는 것은 큰일이라고 여겨 자신의 판단으로 중지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전직 검사였던 이토의 작은 아버지나 경시청 기자, 변호사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35) 「特集「準強姦逮捕状」の「安部総理」ベッタリ記者にアッキが「いいね!」した"女の敵」, ?週刊 新潮?
5月25日号, 新潮社, 2017, 127면.
36) 「「安部総理ベッタリ山口敬之を救った刑事部長と内閣情報官の栄達」」, ?週刊 新潮? 7月13日号,
新潮社, 2017, 51면.
37) 「「安部総理ベッタリ山口敬之を救った刑事部長と内閣情報官の栄達」」, ?週刊 新潮? 7月13日号,
新潮社, 2017, 50면.
38) 「特集 被害女性が告発 ‘警視庁刑事部長’が握り潰した ‘安部総理’べったり記者の‘準強姦逮捕状’」, ?週刊 新潮? 5月18日号, 新潮社, 2017, 25면.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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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카무라 이타루 경시청 형사부장이 관할서인 다카나와 경찰서의 조사에
개입하여 체포장을 중지(2015.6.8)하지 않았다면, 야마구치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 ?총리?39) 출판(2016.6.9)과 그 이후의 코멘터리 활동은40) 불가능했을 것이다.41)
선거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만약 아베 총리를 예찬하는 책을 쓴 저자가 강간으로
기소되면 목전의 선거가 큰 영향을 받는다. 수상의 이미지가 나빠지고 출판사도 피해
를 입게 된다.42) 따라서 아베 신조를 다룬 출판물을 간행, 홍보하려 했던 야마구치가
강간 스캔들에 휘말리면 여당이 치명상을 입을 우려 때문에 권력 상층부가 강간
사건을 무마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토 시오리의 관점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음모론이 인정되면 이 사건은 권력형 성범죄이자 정치적 추문이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수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불합리하며
사법부 불신은 정당한 것이 된다. 야마구치의 주변 인물이 모두 일본사회의 권력의
중심에 있고 총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이토 시오리의 문제가 성폭력
문제와 더불어 일본의 권력사회와의 싸움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로써 이토
시오리는 권력형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다.
2. 언론매체 기고를 통한 가해자의 반격, 성스캔들
사실 이토 시오리의 정치적 음모론은 무작위 시민으로 구성된 검찰심사회의 판단
에 의해 일정부분 부정되었다. 또한 야마구치는 형사소송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토
시오리의 2차 기자 회견과 미투 운동에 따라 여론재판이 시작되고 방송 출현이 힘들
어지면서 자신이 쌓아올린 저널리스트로서의 명성이 무너져가자 잠자코 있던 야마구
39) 야마구치는 총리의 후기에서 “나는 정치가와 친하기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것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것은 저널리스트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山口敬之, ?総理?, 幻冬舎, 2017,
244면.
40) Yamaguchi had often been invited as a political commentator on TV news programs, but he
stopped appearing in public after the Shukan Shincho weekly first reported the rape allegations
earlier this month. ?週刊 新潮?의 기사가 발표된 후 그는 코멘터리 활동을 그만두었다. Reiji
Yoshida, 「High-profile journalist with close Abe ties accused of rape」, ?Japantimes?, 2017.5.30.
41) 「特集「準強姦逮捕状」の「安部総理」ベッタリ記者にアッキが「いいね!」した"女の敵」, ?週刊 新潮?
5月25日号, 新潮社, 2017, 128면.
42) 「中村文則の書斎のつぶやき: 誰もが納得できる說明を」, ?每日新聞?, 2017.7.1, 地方版/愛知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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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는 반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야마구치는 2017년 12월 ?Hanada?에
「나를 소송한 이토 시오리 씨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야마구치는 자신을
규탄하는 야당의원, 가족에게 쏟아지는 비방중상, 사실과 다른 주장에 따른 명예
실추, 기자활동의 중단, 경제적 손해 등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야마구치는 반박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토 시오리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이 글은 현재 국가의 엄중한 심판 아래 이루어진 불기소 처분, 검찰심사회의 판정
이 타당하며 5가지의 이유로 이토가 주장하는 강간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다섯 가지는 ① 데이트 강간약, ② 블랙아웃(알코올성 건망), ③ 시오리의 특유의
성격, ④ 후에 만들어진 ‘영혼의 살인’, ⑤ 워싱턴 지국 일에 대한 강한 집착이다.
먼저 야마구치는 데이트 강간약의 여부에 대해서 강하게 부정했다. 데이트 강간약
이 아니라 이토가 술을 너무 마셔서 블랙아웃, 알코올성 건망으로 기억을 잃어버렸다
는 것이다. 이토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주량 한도를 넘은 것일 뿐 데이트 강간
약을 언급하는 것은 오류다.43) 그는 데이트 약물을 구하는 법을 모르며 구입 기록도
없고 강간약을 사용했다는 목격자나 증언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황을
바탕으로 야마구치는 이토가 단지 다양한 술을 많이 마셔서 알코올 건망이 왔고
합의된 성관계를 했는데 강간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토
시오리가 야마구치는 고소한 것은 ‘준강간죄’였다. 영어로 ‘준강간’은 <Quasirape>
라고 해서 <rape> 앞에 <quasi>가 붙는다. <quasi>란 어느 정도 그와 같은 혹은
유사한 등의 의미이다.44) 법적으로 준강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의식’이 없는 상
태45)여야 한다. 데이트 강간약 사용여부를 떠나 술을 먹어 정신이 없는 사이에 강간
을 했다면 ‘준강간죄’는 해당하게 된다. 사실 술, 데이트 강간약물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합의된 성관계’의 여부라는 핵심적 쟁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43) 앞의 책, 264면.
44) 伊藤詩織, ?Black Box?, 文藝春秋, 2017, 176면.
45) According to Shiori, in 2015 investigators obtained an arrest warrant for Yamaguchi on suspicion
of “quasi-rape” after examining footage from a security camera at the hotel and the testimony
of the taxi driver who brought the two to the hotel. Under Japanese law, quasi-rape refers
to having sex with a woman by taking advantage of her unconsciousness or other conditions.
Reiji Yoshida, 「High-profile journalist with close Abe ties accused of rape」, ?Japantimes?,
2017.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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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야마구치는 이토 시오리가 정신을 잃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그녀가
호텔에서 자신의 침대로 들어왔다고 했다. 야마구치는 자의식이 강한 이토의 특유의
성격을 거론하면서 그녀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스토리
를 창조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블랙아웃은 자신에게 일어날 수 없다.”던가 “컴퓨터
가 있기 때문에 도촬된 것이 틀림없다.”는 이토의 주장에 대해 전혀 근거 없는 사실을
스스로 만든 환상이자 믿음이라고 했다.46) 이토는 기자회견에서 “나는 강간당했습니
다.”, “내면에서 살해당했다.”, “강간은 영혼의 살인이다.”라고 말했지만 야마구치는
자신과 그녀의 관계를 티셔츠를 통해 반박했다. 사건 당일 그녀는 자신의 블라우스를
입지 않고 야마구치가 빌려준 티셔츠를 입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야마구치에 따르면
토사물이 묻은 블라우스를 대강 빨았고 아침에 갈아입을 시점에서는 거의 말라있었
다. 그래서 야마구치는 “과연 자신을 강간한 사람의 티셔츠를 입고 방안에서 유유히
나갈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강간이 아니기 때문에 이토는 호텔에서 나가 당일
부인과를 갔지만 성폭행 검사를 하지 않았고 데이트 약물을 운운하지만 혈액검사조
차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마구치는 합의된 성관계였다는 논거를 이토의 취직 욕망과 관련지어 확대했다.
야마구치는 이토가 워싱턴 지국에서 직장을 갖는 것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고 주장한
다. 그녀는 야마구치의 소개로 일본 텔레비전에서 인턴을 할 수 있게 되었고 2014년
9월에 다시 워싱턴 지국의 공석 여부를 묻기 위해 다시 연락을 취했다. 또한 그녀는
야마구치가 도쿄에 돌아오면 꼭 뵙고 싶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시기에
야마구치는 「한국군에 베트남 위안부가 있었다」를 ?週刊 文春?에 기고한 일로 회사
의 상벌 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아 도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47) 이로 인해 워싱
46) 이토의 기억과 증언의 오류를 지적한 야마구치는 그 연장선에서 컴퓨터를 거론했다. 호텔 방에
노트북이 있었기 때문에 도촬이 되었을 수 있다는 이토의 진술에 의해 가택 수색이 이루어졌다.
그 노트북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종이 아니었다.
47) 야마구치는 베트남 전쟁당시 한국군 병사용 위안소가 사이공 시내에 있었다는 사실을 공문서로
발견했고 관계자와의 검증을 통해 TBS뉴스로 보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보도부 관계자는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보도하지 않았고 2015년 최종적으로 「방송하지 않는다」는 결정이 났다. 야마구치
는 자신의 뉴스를 내보내지 않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고 ?週刊 文春?에 기고하는 형태로 보도를
했던 것이다. ?週刊 文春?의 기고는 회사의 내규 위반이었다. 4월 중순부터 야마구치는 엄한
처분이 나올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소문대로 TBS 워싱턴 지국장에서 해임되어 일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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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 지국에서 이토의 취업 인터뷰는 무산되었다. 야마구치에 따르면 상황이 이렇게
되자 2015년 4월 17일부터 이토는 “성폭행을 당했다.”, “의식이 없는 자신을 호텔로
끌고 갔다” 등의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야마구치가 ‘해임을 당한 시기’
와 이토가 ‘자신을 강간범으로 몰아간 시기’가 일치한다. 결국 야마구치는 워싱턴
지국에서 일하고 싶던 꿈이 무너지자 이토가 “보복”을 했다고 간주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시오리 사건은 강간이 아니라 취업 청탁을 목적으로 한 ‘합의/묵인된 성관계’
가 되고 만다.
그런데 필자가 봤을 때, 이토가 ?블랙박스?에 실은 4월 17일과 4월 18일의 메일은
야마구치가 말하는 내용과 상반된다. 이때 야마구치는 TBS 워싱턴 지국장에 해임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고 자신이 누군가 채용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메일
에는 자신이 이토를 위해 자리를 찾고 있는 것처럼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마치 강간
혹은 성관계는 없었던 것처럼 거론도 하지 않고 취업과 비자 문제의 진행사항만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이토가 성관계를 언급하자 야마구치는 “너는 평범하게 밥을
먹고 갔어야 했다.”, “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한다. 나카무라 이타루
또한 이토의 행동을 지적하며 “여자도 취직을 신경 써달라는 속내가 있었기 때문에
술을 마시러 간 것이다. 흔한 남녀문제이다. 그녀는 2차도 따라갔다고 하지 않는
가.”48)라는 식으로 여자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고 역설한다. 이는 전형적인 여성혐
오이자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의 발현이다.
일본사회의 남성은 성폭행 가해자의 행동에 대해 성찰하기보다는 오히려 피해자인
‘여자’에게 반성을 강요하고 가르친다. 야마구치의 잡지 기사는 단순히 반박문이 아
니라 맨스플레인 형식의 기고문이다. 이 기사를 읽은 65세 쿠라노(倉野) 씨(神奈川県
거주)는 독자수기에 “「나를 소송한 이토 시오리에게」의 논점은 객관적이고 일관성이
있으며 감정적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도 야마구치의 수기를 읽지 않는 매스컴이나
언론은 그녀의 변명을 계속 지지할지도 모르지만 ?Hanada?의 독자는 이미 속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적었다.49) 이처럼 야마구치의 반박은 그의 논리에 공감하는 일부
일반 시민의 공감 및 지지와 결부되면서 ‘2차 가해’의 강도와 복잡성을 더했다.
48) 伊藤詩織, ?Black Box?, 文藝春秋, 2017, 243면.
49) ?Hanada? 1月号, 飛鳥新社, 2018, 3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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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야마구치는 ?Hanada? 1월에 독점수기 후속편으로 이토의 의견에
찬성하는 두 사람, 「보도특집」(TBS계열로 토요일 저녁 방송)의 캐스터를 하고 있는
저널리스트 가네히라 시게노리(金平茂紀)와 도쿄신문의 여기자 모치즈키 이소코(望
月衣塑子)50)를 비판했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지지자에게까지 비난이 향하면서 양자
간 대립이 진영간 대결구도로 확전되는 국면이다.
이 글에서 특이하게도 야마구치는 먼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기자란 ① 주장에 대립할 경우 그 쌍방을 공평하게 취재한다, ② 사건을 상식
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만에 하나’, ‘설마’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추구한다.
이 두 가지는 저널리즘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51) 이 논리를 적용하면 두 기자는 무조
건 이토의 말이 맞다고 여긴다는 점에서 기자로서 자격이 없다. 이들은 야마구치에게
취재를 의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치즈키는 2018년 3월 29일 정치교양강좌를
했다. 그 강연록을 보고 야마구치는 스스로 취재하고 근거 없는 것을 보도하지 않아야
하는 기자의 철칙을 어긴 모치즈키를 저널리스트로 인정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강연에서 모치즈키는 “강간을 당한 이토 시오리를 단독 인터뷰 했으며, 범죄피해를
당해서 소송한 이토 씨라는 표현을 썼다.” 이를 두고 야마구치는 불기소 결과를 다시
거론하며 모치즈키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야마구치가 갑자기 저널리스트의 원칙을 내세우고 두 언론인까지 비판한
것은 성폭행 가해자와 피해자뿐만 아니라 다수의 지지집단이 저널리스트이기 때문이
다. 진실을 추구한다는 저널리스트가 이토 시오리의 지지자가 되는 것은 큰 부담이었
다. 특히 비난이 확산되면 야마구치는 나중에라도 방송계에 복귀할 수 없게 된다.
야마구치는 강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위해 반론기사를 낸 것이 아니라 자신을
50) 도쿄신문 소속 여기자 모치즈키 이소코도 자신이 당한 성폭력 피해 사례를 폭로했다. 시사 전문지 ?아에라(AERA)? 2017년 11월 23일 기사에 따르면, 이와테 지역 경찰서를 담당하는 모치즈키
기자가 취재 차량에 야간 순찰 중인 경찰관과 동승했다. 가족이 있는 50대인 이 경찰관은 모치즈키
기자가 몇 가지 질문을 시작하자 갑자기 그녀를 끌어안았다고 한다. 모치즈키 기자는 다음 날
상사에게 사건을 보고했지만 상사는 “상대 가족에게도 피해가 될 뿐만 아니라, 정보원을 팔았다며
오히려 일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신문사 차원의 공식 항의를 포기했다. 모치즈키
기자는 며칠 뒤 가해 경찰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했고 사과를 받아냈다. 「“나도 피해자”…
일본 언론계에 부는 ‘미투 운동’」, ?신문과 방송?,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3.29.
51) 山口敬之, 「記者を名乗る活動家金平茂紀」と望月衣塑子の正体」, 「伊藤詩織」問題独占スクープ
第2弾, ?Hanada?1月号, 飛鳥新社, 2018, 3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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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하는 이토 시오리, 그녀와 연대한 저널리스트를 비방하는 보복성 기사를 쓴 셈이
다. 이토 시오리가 국내외 기자를 상대로 기자회견을 한 것처럼 두 사람의 논쟁은
성관계를 둘러싼 저널리스트의 팩트 싸움의 양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야마구치는
선배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이 진정한 저널리스트라는 점을 강조해야 했다.
그렇다면 야마구치는 ‘스스로’ ‘사실’을 ‘공정’하게 보도하는 저널리스트였을까.
야마구치는 「한국군이 베트남에 위안부를 설치」했다는 기사를 ?週刊 文春?에 보도했
다. 방송국에서 허가가 나지 않아 잡지에 실린 이 기사는 ‘날조’ 의혹을 받았다.52)
그러나 일반 시민이 이러한 상세한 사항을 알 리 없다.
역설적으로 이럴수록 피해자인 이토 시오리도 언론의 역능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던 주류 언론, 불기소 이유를 묻지 않는 일본의
언론, 피해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보수적 언론은 오히려 이토 시오리에
게 2차 가해를 하기도 했다. 이토 시오리가 해외의 언론의 문을 두드린 것은 피해자에
게 공감하지 않는 일본 언론 때문이었다. 일본 언론은 이토 시오리를 ‘성폭행 피해를
폭로할 회견장에 셔츠 단추를 풀고 나타난 여성’으로 소비했다. 그래서 일반 독자도
사건을 치정문제로 인지하기도 했다. 이로써 성폭행 사건은 남녀간 스캔들로 치부되
어 버렸다.53)
이에 이토 시오리는 여성 혐오적 보수 언론의 집단적 보도행태를 지적하면서 “일본
언론의 문제점으로 미국, 영국 등 세계의 어느 언론도 일률적으로 같은 기사를 내고,
같은 뉴스를 방송하지 않는다. 일본 미디어는 다양성이나 각자의 독자적 판단이 절대
적으로 필요하다.”54)고 강조한다.
언론계 성희롱・성폭행에 대해 하야시 가오리(林 香里) 도쿄대 교수는 “언론은
본래 정치가, 대기업 등 불리한 정보를 감추려고 하는 거대 권력과 맞서게 되는데,
52) <공문서 내용과 야마구치 보도의 전개>
공문서의 기술 「山口기사」, ?週刊文春?
?週刊新潮?의 주장
(2017년 10월 26일호)
?週刊文春?「회답기사」
(2017년 11월 2일호)
기술 없음
미군사령부가
조사를 근거로 「한국군이 한국
병사를 위해
위안소」라고 단정
有馬哲夫(아리마
테츠오)
와세다대학(早稲田)교
수는 「날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충분한 뒷조사를 했고
세상에 발표할 의미가
있다고 판단.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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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시설의 소유자는 한국군대좌의
서명이 들어있고 「시설이
한국군전용의 복지센터이다」고
서류를 제출했다.
The proprietor of the Turkish Bath
produced a document signed by the
Korean Forces colonel which
indicated that the Turkish Bath was
a Republic of Korea Army Welfare
Center for the sole benefit of Korean
troops.
「한국군이
위안소가 있다」고
미군사령부가
지적한 근거의
하나
조사결과, 내용은 부정
근거에 대해서는 기술
없음
다시말해, (有馬哲夫 「복지센터」를 「위안소」로 바꿔 말한
것이라 지적
「위안소」나 「위안부」는 매춘에
관한 말이기 때문에
은어가 사용됨.
조사의 결과 시설은 한국군 전용이
아님Ⓐ (The facts as developed) The
Turkish Bath is not operated for the
sole benefit of Korean troops.)
기술없음 고의적 무시
공문서 내용에 관해
기술을 수정하고
있으면서도 처음
야마구치 기사의
ⒶⒷ의 기술이 없었던
것을 전혀 기술하고
있지 않음.
시설은 오히려 베트남 이외의
일반대중의 공공시설Ⓑ (Rather, it
appears to be a public establishment
which caters to the general public,
excluding Vietnames nationals.
기술없음
고의적 무시
(有馬哲夫에 의하면 「일반대중에
공공시설은 성병방지의
관점에서 위안소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베트남인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대중」은 아니다.
<우군병사의 이용>의
기술이 있기 때문에
무시하고 있지 않음.
「特集レイプ被害 「伊藤詩織さん」の会見からは“逃亡”!山口記者の週刊文春 「韓國軍にベトナム
人慰安婦」記事はやはり捏造だった」, ?週刊 文春?62(43)号, 文藝春秋, 2017, 41면. 우선 이 기사는
야마구치 본인에 의해 조사된 기사가 아니다. 또한, 공문서에 없는 내용을 ‘미군사령부 조사를
근거로 「한국군이 한국 병사를 위해 위안소」라고 단정’하고 있으며, 공문서에 적시되어 있는 내용은
기술조차 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 ‘베트남의 위안부 기사’는 아베 총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기사였다고 보도되기도 했다(「詩織さん 準強姦逮捕状の男にもう一つの“罪”」, 「安部を援護した
くて虚報発信!!!週刊文春 「韓國軍に慰安婦」記事は山口の捏造か」, ?週刊 新潮?7月13日号, 新潮
社, 2017, 37면). ?週刊 新潮?와 ?週刊 文春?이 번갈아가며 날조, 날조가 아닌 기사라고 보도했지만,
야마구치의 보도 방식은 자신이 저널리스트라고 정의한 보도의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저널리
스트인 이토 시오리가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마음대로 스토리를 꾸며낸다고 공격하지만 자신
또한 특정한 목적에서 베트남 위안소 관련 기사를 조작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
53) 「強姦被害: 「元記者から性暴力」顔を出し公表 励まし・中傷, 交錯 不起訴巡り論争」, ?每日新聞?,
2017.06.09, 東京朝刊 25면.
54) 「國家権力の 「ブッラクボックス」(メディアと國家権力), ?月刊日本? 21(12), ケイアンドケイプ
レス, 2017, 5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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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해 권력을 충분히 감시하지 못하게 된다면,
업계뿐만 아니라 사회로서도 대단히 큰 손실이다”라며, “언론이 권력자가 휘두르는
성폭력을 방치한다면 성폭력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없다. 권력층이 성폭력을 무마하고
자 언론에 정보를 주는 일이 있다면, 그 사회는 위험한 사회이며, 그것을 용서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과도 같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이토의 발언이 진실이라면, 시오리 사건은 단순한 강간 사건, 성스캔들이
아니라 지배집단의 권력에 의해 피해여성의 목소리가 억압된 권력형 성범죄에 해당
한다.55) 결과적으로 야마구치의 반박 기고는 역설적으로 시오리 사건이 일본사회의
성 의식뿐만 아니라 일본 언론의 본래적 기능, 권력집단의 추악한 이면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는 것을 환기한다.56)
이에 비추어 야마구치는 형사절차에서 이겼다고 하더라도 아직 민사소송이 진행되
고 있으며 성범죄 관련자이자 유력한 가해자다. 방송출현은 못하지만 이런 인물이
직접 쓴 글이 일본 잡지에 버젓이 실려 판매가 되는 일본사회의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
이다. 기존 보수 언론에 야마구치의 2차 가해가 더해진 셈이다. 게다가 야마구치의
반박은 일반 시민의 공감 및 지지와 결부되면서 앞장에서 살펴본 사회적 2차 가해와
여성혐오, 사회적 성갈등의 강도와 복잡성을 더했다. 이 역시 이토 시오리가 투쟁하면
서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Ⅴ. 시오리 사건과 일본 지식사회의 흐름
이러한 사회와 가해자의 백래시에도 불구하고 이토 시오리의 폭로는 일본사회를
바꿨는가. 비록 이토 시오리는 법의 심판을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57) 시오리
55) 야마구치가 2016년 6월 9일 ?총리?를 간행한 사실은 기묘하다. 이때는 아직 그가 불기소 확정
(2016.7.22) 이전, 서류송검(2016년 8월 26일)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증일 뿐 실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인에게 일방적으로 도덕적인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다. 「中村文則の書斎のつ
ぶやき: 誰もが納得できる說明を」, ?每日新聞?, 2017.7.1., 地方版/愛知 23면 참조.
56) 「“나도 피해자”……일본 언론계에 부는 ‘미투 운동’」, ?신문과방송?,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3.29
참조.
57) 이토와 달리 한국에서는 미투 운동으로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이 있다. 충청도 전 지사 안희정의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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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모르는 국민도 여전히 많지만 일본 지식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을 일깨운
것은 틀림없다. 지식계는 성대립과 갈등을 중재하고 완화하기 위한 중요한 기반이다.
일본 지식계의 변화의 흐름은 이토 시오리와 미투를 다루는 잡지의 비중 변화의
추이를 확인하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우선 2017년 5월 18일 ?週刊 新潮?가 이토 시오리의 기사를 최초로 다룬 이래
잡지가 이토를 조금씩 다루기 시작했다. 2017년 10월 이토가 활동을 한 이후인 2018
년 1월 ?世界?는 ‘특집2’로 「성폭력과 일본사회」(166~174면)를 마련하고 이토 시오
리를 인터뷰한 내용을 가장 먼저 실었다. 2018년 4월에는 ?潮?가 「#MeToo운동이
의미하는 것」(178~181면)에 이토 시오리를 언급했다. 이처럼 2018년 초반에 주요
잡지에 일본 성문화와 미투를 다룬 기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2018년 7월 ?現代
思想?은 ‘성폭력=성희롱’을 주제로 책 한 권 전체를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반년
만에 급격한 비중의 변화가 확인된다. 그전까지 정치기사 다음에 미투 기사가 배치된
것에 비하면 이는 큰 변화였다. 특히 이 잡지에 가장 먼저 실린 기사는 이토의
「MeToo가 잊혀 사라진다고 해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해」였다. 이토 시오리
는 일본 미투 운동의 대표자가 된 것이다. 그만큼 일본 지식사회에서 미투의 관심이
비등해지는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다.
이와 같은 갑작스런 변화의 배경에는 2018년 3~4월에 발생한 일련의 성문제도
한 몫을 했다. 2018년 3월 3일 이토를 비롯해 여성단체, 대학교수 등이 함께 참여하여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일본인의 무관심을 일깨우고 동참을 촉구하는 ‘위투(#WeToo)’
운동이 일본에서 시작되었다.58) 4월 23일에는 저녁 일본 도쿄 중의원 회관에 모인
야당 의원, 기자, 변호사, 연구자 등 200여 명이 ‘성범죄 피해자와 함께 하겠다’는
의미의 ‘#With You(당신과 함께)’ 플래카드를 들었다.59) 2018년 4월 후쿠다 준이치
비서인 김지은이 그 인물이다. 사회 여론은 김지은 쪽으로 기울었지만 안희정은 1심 무죄판결을
받았다. 무죄판결을 납득하지 못한 김지은과 여성단체는 항소를 진행해 판결이 뒤집혔다. 현재
한국사회는 이 권력형 성범죄의 ‘위력’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또한 1심 사법부는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이후 행동에 대해 문제 삼았다. 김지은이 너무
태연하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남성이 바라본 ‘피해자다움’을 가져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처럼 1심은 ‘위력’의 제한적 범위와 ‘피해자성’에만 초점이 맞춰있는 법 해석의
한계를 환기했다. 이 계기를 통해 성폭력에 대한 인식 변화와 법 개정의 움직임이 촉구되면서
한국사회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일고 있다.
58) 「미투, 일본은 왜 묵살하나……성폭행 당한 女기자 절규」, ?중앙일보?, 20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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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福田 淳一) 재무성 사무차관이 TV아사히 여성 기자와 취재를 위한 식사 자리에서
한 성희롱 발언(“키스해도 되냐, 가슴 만져도 되냐”)이 ?週刊 新潮? 6월 12일호에
폭로되었다. 처음에는 “회식한 적이 없다, 모른다”로 일관하던 후쿠다는 결국 사퇴했
다. 후쿠다의 태도와 “성희롱은 죄가 아니다”며 후쿠다를 두둔한 아소 다로(麻生太
郞)의 망언이 미투를 재점화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드디어 지식계가 관심을 가지고
움직여 ?現代思想? 7월호에 특집호가 기획된 것이다. 한 달 후인 2018년 8월에는
도쿄대 의대에서 조직적으로 입시 합격자 성비 조작을 해온 사실이 폭로되는 충격적
인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소식은 인접국인 한국에도 알려졌으며 이토 시오리
는 동년 10월과 12월 한국을 찾기도 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2017년 10월 이토 시오리의 미투 이후 2018년 1월 ‘특집란’의
첫 등장, 2018년 4월 ?潮?가 이토 시오리와 미투 운동의 의미를 2장 분량으로 정리,
갑자기 2018년의 7월 ?現代思想? 한 권 전체의 ‘특집호’의 출현이다. 그렇다면 이제
현격한 변화의 두 지점인 ?世界? 2018년 1월호의 특집란과 ?現代思想? 7월 특집호를
살펴보자. 당시 시점에서 어떤 지점에 지식계가 공명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 두 잡지는 모두 특집으로 성폭력을 다루었고, 이토 시오리 인터뷰 기사를 가장
첫 페이지에 배치했다. ?世界?는 다른 특집과 함께 성폭력 특집을 실었지만, ?現代思
想?은 잡지 전체를 「특집*성폭력=성희롱 페미니즘과 MeToo」로 다루었다. 2017
년 5월 18일 ?週刊 新潮?가 처음 시오리 사건을 다루었을 때 이토의 이름 대신 ‘피해
자A’로 소개하던 때와는 상황이 매우 급변했다.
2018년 1월호 ?世界?의 기사를 살펴보면, 이토 시오리를 포함해 5명의 글이 게재
되었다. 첫 번째 인터뷰 기사에서 이토 시오리는 TBS라디오가 성폭력과 관련해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토는 성폭력이 다른 세계에서 일어
나는 특수한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주위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그러
면서 이토는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행동이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뀔 수 없다고 했다.
포토 저널리스트 하야시 노리코(林典子)도 「‘보통’의 여성들의 목소리-그 때부터
변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이란 제목으로 성폭력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일본사회시스
템과 성폭력 문제에 관한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야시는 시오리 사건이
59) 「“후쿠다, 여기자에 속은 것 아냐” 日 ‘미투’ 불붙인 아소 망언」, ?동아닷컴?, 2018.4.25.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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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소 되었다고 하더라도 미디어는 불기소의 이유를 보도하는 등 대응을 했어야
하지만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말을 하기 위해서는 성폭력에 대한
사회인식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성 인식은 사법제도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도쿄 강간구제센터
의 법률상담가인 츠노다 유키코(角田有紀子)는 이토 시오리의 ‘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움직였다면 내가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 츠노다는 수사를
포함한 사법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역설한다. 당사자가 사법시스템을 지적하고 있다면 사회는 그 점을 간과
하지 않아야 한다.
이 연장선에서 고난대학 법과대학원(甲南大學法科大學院) 교수이자 변호사인 소
노다 히사시(園田寿)는 ‘항거불능’의 상태, 즉 여성의 의식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
성교가 강행된 경우 증거 수집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재판에서는 ‘항거곤
란’의 정도를 판단할 때 피해자의 태도를 문제시한다. ‘왜 저항하지 않았는지’, ‘왜
도망가지 않았는지’,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는지’의 질문은 피해자의 태도만을 따지
는 사고방식이다. 성폭력은 성적 존엄의 훼손의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이들은 이토 시오리의 성폭력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일본사회의
성 인식, 사법, 미디어의 역할, ‘항거불능’의 성교, 피해 입증의 어려움에 대해 논한다.
이들의 담론은 시오리 사건이 한 개인의 문제에 한정되지 않고 일본사회 전체의
성 인식의 문제와 관련된 다는 것을 환기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2003년부터 성폭력 피해자 및 사회적 예방에 관한 상담을
하고 있는 오카다 미호(岡田美穂)는 시오리 사건의 논란이 놓치고 있는 점에 주목하
여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젠더 구분에 따른 젠더 감수성의 한계와 성담론
범주의 협소함을 포착하고 있다. 이 사람은 이토의 문제의 범주를 넘어서는 젠더문화
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토의 고발이 일본 지식사회의 성적 사유의 촉발과 공론화
에 미친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반년 만에 ?現代思想?에 본격적으로
표출된다.
이와 같이 지식사회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더해진 결과는 잡지 한 권 전체를 「특집
*성폭력=성희롱 페미니즘과 MeToo」로 다룬 ?現代思想?에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토의 미투 이후 9개월여 만의 큰 변화다. 특집호에 참여한 인원은 21명이고
19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이토 시오리의 인터뷰를 필두로 해서 토론,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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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사법제도, 사상에 관한 글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일본 지식인 및 운동가의
성 인식과 활동이 다방면에서 파악된다. 여기서도 이토 시오리의 인터뷰가 맨 처음
위치한 것은 편집진이 이토를 성폭력 고발을 대표하는 인물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
며 지식사회가 시오리 사건을 계기로 일본 성문화를 진단하고 변화의 실마리를 꾀하
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낸다.
예컨대 인터뷰에서 질문자는 이토 시오리에게 해외 성폭력 취재에 대해 많은 질문
을 했다. 이토 시오리는 스웨덴과 영국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스웨덴은 법률에서
피해자가 명확하게 거부하지 않으면 강간으로 여기지 않지만 명확한 예스가 아닌
경우에도 강간으로 적용한다. 영국은 성폭력 피해 대책을 위해 35억 엔을 쓰지만
일본은 이러한 예산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2018년부터 성범죄 및 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지원예산이 할당된다. 해외의 상황에 비해 일본은 성폭력에 대해 무관심, 무대책
으로 일관해왔고 2018년에야 겨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이토 시오리는
(지난 1월과 유사하게) 일본사회에서 항거불능의 상태를 ‘동의’라고 인식하는 일본
남성을 강하게 비판하고 ‘아니오’는 ‘거부’로 인식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
한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의 미투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그런데 성문제는 성폭행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더 폭넓게 논의가 확장된다.
젠더연구자 스다 카즈에(牟田和恵)와 페미니즘이론, 정치사상을 연구하는 오카노
카요(岡野八代)는 함께 토론하며 미투의 의미를 고민한다. 이들은 일본사회에서 미투
활동이 저조한 이유를 ‘2차 가해’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에서 찾았다. 또한 두 사람은
성폭력 피해자를 ‘종군위안부’와 관련지었다. 2018년 3월 한국 방문을 한 이들은
위안부 수요집회에도 참가했다. 두 사람은 미투는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목소리
를 내는 것이며 ‘위안부’가 바로 미투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사회학자 기쿠치
미나코(菊地美名子)는 힘들지만 말할 의향이 있는 피해자들을 이야기한다. 피해자는
말할 준비가 되었지만 오히려 준비가 안 된 쪽은 주위의 사람들이다. 사회에서는
성적 콘텐츠가 광범위하게 소비되면서도60) 성피해는 말하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이
60) 이토 시오리는 남성이 처음 성 컨텐츠를 접할 때 그 폭력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것을 지적함과 동시에 이러한 남성의 “고독”이 폭력성을 낳는 요인이라고 한다(「時代を読む 社会
「被害者」のまま生きるのではなく」, ?AERA? 31(8)号, 朝日新聞社, 2018, 34면). 남성과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는 교육을 여성이 받는다고 해도 남성중심의 일본사회는 근본적으로 변하기 어렵다.
남성에게 성평등 교육을 받게 한다고 해도 일본사회의 변화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아직 남성중심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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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일상에서 성매매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現代思想?에서 기타하라 미노리(北原みのり)는 일본사회는 시대에 역행
하듯 성매매를 긍정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지적한다. 일본사회가 매춘에 관용적인
이유는 여성의 젊음을 상품화하는 것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분위기의
구성원이 무/의식적으로 성차별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기타하라의 분석이다.
매춘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일반사회단체법인 여고생 서포트 센터 Colabo’의
대표, 니토우 유메노(仁藤夢乃)는 아동의 매춘을 조명한다. 일본사회는 아동매춘을
어른이 소녀에게 도움을 주는 ‘원조교제’로 설명한다. 아동매춘이 야기하는 성폭력
과 아이들의 트라우마에 대해 사회는 무감각하다. 이와 같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성문제는 그 해결방법이 간단하지 않으며 특정국가에서만 나타나는 사회현상도 아
니다.
그래서 편집자는 성매매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한국 학자의 논문을 실었다.
한국에도 알려진 학자 이나영의 「성판매자 비범죄화를 위한 시론-성매매특별법을
둘러싼 쟁점과 여성주의 대안 모색」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실렸다. 일본은 인접한
국가의 성매매 인식과 대응 양상의 파악을 통해 자국의 문제점 해결에 도움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성매매는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약자에게 돈을 주고 하는
일방적인 행위이다. 이나영은 성매매는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성원이 인간의 몸을 이용하는 데 동조한 구조적 폭력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이
연장선에서 이나영은 성매매 여성 처벌은 강요/자발에 따라 달라지는 데 경제적 문제
로 성매매를 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은 자발적인 성매매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녀는 성매매를 처벌할 때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중심의 문화, 성매매에
대한 낙인・고정관념이 검사, 집행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경을
월경한 미투처럼 성문제 해결에도 비슷한 문화권의 인접국가의 제도가 참조되고 상
호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처럼 성문제는 일국을 넘어선 문제인데 첨단미디어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포르노 피해와 성폭력을 생각하는 모임(PAPS)’의 이사장인 다구치 미치코(田口
道子)는 디지털 성폭력 문제에 의견을 개진한다. 디지털 영상물은 판매정지가 되어도
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법을 집행하고 있고, 일본사회를 유지해 나가는 중추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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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인터넷 상에 퍼져 삭제해도 업로드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당사자의 피해가
막대하다. 다구치는 국제적인 지원 네트워크 결성이 필요하다고 촉구하고 있는데
그 성공적인 예를 한국 ‘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서 찾았다. 이 기관은 미국과 오스
트리아와도 연결되어 다국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다구치는 일본 또한
다른 국가와의 연계를 통해 디지털 영상물의 확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한
다. 이처럼 이토 시오리가 일으킨 미투는 그동안 사회에 이목을 끌지 못했던 다양한
성문제 운동가의 목소리를 사회화하고 일본사회의 현재를 진단하며 개선책을 모색하
는 발판이 되고 있다.
요컨대 이토 시오리의 성폭행 피해 투쟁과 폭로는 미국 미투와 결부되어 일본사회
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일본 미투는 지식사회의 관심을 촉발했으며 사회의 음지에서
활동하던 각종 시민단체와 운동가의 목소리를 드러나게 했다. 특히 이 특집호에는
성폭력과 관련해 출간되고 재간행된 책광고가 다수 실려 있다. 성폭력피해의 법적
지원, 의료적 지원을 주로 다룬 책도 있다.61) 필진에 젠더연구자나 여성운동가가
참여했듯 일본의 미투는 페미니즘 지식과 결부되면서 성담론과 여성운동을 확대하고
가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접국 한국의 영향도 확인된다. 여기까지
오는데 시오리 사건 발생 이후 3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토가 잡지 ?週刊 新潮?를 통해 피해사실을 처음으로 대중에 알렸지만 그때는
‘피해자A’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토는 익명의 이름 뒤로 숨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일본사회에서 ‘피해자A’로 살지 않기 위해서 이토 시오리는 용기를 냈다. 기자회견에
서 이토의 이름과 얼굴이 공개되면서 일본사회는 이토 시오리를 대면했다. 그러나
시오리 사건을 스캔들로 치부하는 미디어가 많았고 그녀가 불기소처분을 받자 더
이상 사건 자체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도 했다. 이처럼 언론은 사건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지만 이토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지식
사회가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후 2년 반이 지나서야 일본사회가 성폭
행 피해자의 목소리에 응답한 셈이다. 두 유력 잡지의 특집기획은 일본 지식사회의
61) 「特定非営利活動法人性暴力救援センター・大阪SACHICO 編集」, ?性暴力被害者の法的支援-性
的自己決定権・性的人格権の確立に向けて?(性暴力被害者の総合的・包括的支援シリーズ1), 信
山社, 2017.12.25; 「特定非営利活動法人性暴力救援センター・大阪SACHICO 編集」, ?性暴力被害
者の医療的支援-リプロダクティブ・ヘルス&ライツの回復に向けて?(性暴力被害者の総合的・
包括的シリーズ2), 信山社, 2018.4.27.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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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중요한 방증이다.
일본의 뿌리 깊은 남성 중심의 사회가 조장한 성차별적 인식은 사회구성원에게
학습되어 왔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성매매를 용인하고 성폭력에 대해 무감각했다.
성폭력을 처벌하는 관계자들 또한 남성 중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조관
념을 운운하며 피해여성의 잘못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잡지에
실린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일본사회에서 만연한 남성 중심 사고와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변화를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다른 나라의 예를
들어 변화의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결국 “자신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사회가 변하
지 않는다”는 이토 시오리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공명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일본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Ⅵ. 나가며
이토 시오리는 해마다 사진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세계 보도 사진전」에 갔다. 그녀
는 그곳에서 <장기 취재 부문> 1위로 전시된 메리 F. 칼버트(Mary F.Calvert)의
사진을 본다. 그 사진은 미군에서 빈발하는 성폭력에 대한 추적 보도였다. 그중에서도
이목을 끄는 것은 <IF onLY IT WAS THIS EASY>란 제목의 사진이었다. 사진의
주인공은 해병대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한 캐리 구드윈이었다. 피해를 호소했지만
징계 제대 처분을 받은 캐리는 집으로 복귀한지 5일 만에 자살했다. 딸이 세상을
떠난 후 일기를 읽은 아버지는 딸에게 일어난 일을 알게 된다. 이토 시오리도 몇
번이나 자살을 선택하려고 했었지만 캐리의 사진을 보고나서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된다. “침묵하면 이 범죄를 용인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62)
캐리에게 성폭행을 저지른 해병대 병사는 2년 전에 또 다른 여성을 강간했지만 처벌
받지 않았다. 그의 잘못을 애초에 심판했더라면 추가 피해여성은 없었을 것이다.
이토 시오리도 자신이 겪은 일을 알려 유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를 원했다. 이토는
?블랙박스?의 원고 마감을 앞두고 있을 때 캐리의 아버지 게이리 구드윈과 통화하기
62) 伊藤詩織, ?Black Box?, 文藝春秋, 2017, 20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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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했다. 이처럼 피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가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용기를 내
세상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방식이 국경을 넘어서고 있다.
시오리 사건 이전에 일본에는 미투라는 성고발 형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 일본
언론은 그녀의 사건에 주목하지 않았지만 2017년 미국에서 미투 형식이 발명되면서
이토는 자신의 투쟁에 이름을 붙이고 사회운동으로 확대를 꾀할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이토가 사건 초기에 일본의 여성단체와 연계를 했다면 미투 형식이 아닌 다른
형태로 사건이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토의 사건 초기에는 여성단체뿐만 아니
라 회사조직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이토는 당시 프리랜서이자 사실상 언론지망생
중 한 사람이었다. 정식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언론노조의 보호는 당연히 받을 수
없다.63) 이토는 정규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오리 사건은 “기존 권력을 가진 언론인
에게 잘 보이려다가 성폭행 당한 사건”이라고 치부되기 쉬웠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회적 공감과 지지를 기반으로 한 미투 운동이 젠더감수성을 개선하고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전기를 마련했다.
2차 회견64) 이후, 본격화된 이토 시오리의 활동은 일본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까? 2017년 12월 29일에는 ?週刊 朝日?가 “그 강함이 괴로웠던 여성에게 용기를
준 상”을 이토에게 주었다.65) 같은 날, ?뉴욕타임스? 1면에 「She Broke Japan’s
Silence on Rape」 기사가 실렸다. 2018년 2월 8일에는 「Why the #MeToo
movement is running into trouble in Japan」의 제목으로 이토 시오리를 다룬 기사가
?워싱턴 포스트?에 게재되었다.66) 동년 3월 3일에는 이토와 여성단체, 대학교수 등이
63) 방송, 신문, 잡지 등의 일을 하고 있는 여성 기자가 성희롱을 없애고 안심하고 일하기 위해 그룹을
만들었다. 이 그룹은 86명이 참가하고 있다. 「セクハラをなくしたい」女性の記者がグループを作
る」, ?NHK뉴스?, 2018.5.1.(http://www3.nhk.or.jp/news/easy/k10011439391000/k10011439391000.
html)
64) 일본의 사법, 사회시스템은 성범죄 피해자를 위해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 伊藤詩織さんに海外
ジャーナリストが聞いたこと 「日本でレイプがあまり報じられないのはなぜ?」, ?HUFFPOST?,
2017.10.24.(https://www.huffingtonpost.jp/).
65) 大人な発言5選(敬称略)離婚に限らず常にそうありたいと敎えられたで賞 小倉優子, 圧力につぶ
されずに発言した勇気がアッパレで賞 前川喜平 積み重ねてきたキャリアの貫禄が感じられる
で賞 加藤一二三, その強さが苦しんできた女性に勇気を與えたで賞 伊藤詩織, 踏ん張り力と各
方面への配慮にうならされたで賞浅野忠. 「輝く!!大人げない発言大賞2017」, ?週刊 朝日?, 2017.
12.29., 150면.
66) Kaori Shoji, 「Why the #MeToo movement is running into trouble in Japan」, ?Washingtonpost?,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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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여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일본인의 무관심을 일깨우고 동참을 촉구하는 ‘위투
(#WeToo)’ 운동이 시작되었다.67) 또한 동월 16일 이토 시오리는 미국 뉴욕의 유엔본
부에서 3차 기자회견을 갖고 성피해자 보호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68) 4월 3일에는
‘여자고교생과의 대화’에서 그녀가 롤모델의 한 명으로 참석했다.69) 이처럼 이토
시오리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일본사회에서 미투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안에 미투를 확산시키려는 여러 단체가 만들어지면서 미투 운동
이 탄력을 받고 있다. 지지세력의 확산은 피해자의 용기를 북돋고 있다. 실제로 이토
가 일본의 성차별구조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나갈 때도
성폭력 사건은 이어졌는데, 과거와 달리 폭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일본 미투
운동이 가시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례로 유명 블로거이자 작가인
하추(본명: 이토 하루카・伊藤春香)가 2017년 12월 트위터에 일본 최대 광고사 덴쓰
(電通)에 근무할 때 선배 사원(岸勇希氏)으로부터 심야에 자택으로 호출돼 성희롱
당한 피해를 고발했다. 기시(岸)는 과오를 일부 인정해 사과하고 대표로 재직하던
회사를 12월 18일에 퇴사했다.70)
또한 앞서 언급한 재무성 사무차관 후쿠다의 성희롱 문제로 직장여성의 성희롱
피해도 주목받았다. 하지만 취직활동 중인 대학생의 성희롱 피해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SNS의 확산으로 사원과 학생간 일대일 만남이 이루지고 성희롱이 빈번하지
만 피해자는 미움 받으면 취직이 불가능 할까봐 거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
다.71) 이처럼 다양한 세대와 직종의 여성간 성문제 격차가 표출되면서 오히려 성불평
등 문제가 사회적 현안으로 부각되었고 관련 서적이 다수 출간되고 있다. 한국에서
2018.02.08.
67) 「미투, 일본은 왜 묵살하나……성폭행 당한 女기자 절규」, ?중앙일보?, 2018.3.8.
68) 「#MeToo」 日本は欧米ほど進まず」, ?東京新聞?, 2018.03.17, 夕刊8면.
69) 이토의 고발을 계기고 어플리케이션과 연동하는 방범 악세서리를 개발한 고교생이 직접 프레젠테
이션을 했다. 「「互いにリスペクトを」 伊藤詩織さんが女子高校生たちに語りかけたこと」, ?Buzzfeed?,
2018.4.4.
70) 「日本でも#MeToo セクハラ告発, ブロガー訴え機に続々 被害者たたき, 社会の意識反映」, ?每
日新聞?, 2017.12.28, 大阪朝刊 2면.
71) 「セクハラ被害: 就活の學生も インターン, SNS…個別接触が 「温床」」, ?每日新聞?, 2018.5.3, 東
京朝刊 26면.
大東文化硏究 제10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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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이후 페미니즘 서적이 붐을 이는 현상이 일본에서도 이토 시오리와 함께
이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은 경제수준에 비해 성평등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고 잘 변화하지 않는
보수적 사회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 사회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오리 사건
의 진실은 삼자가 판단하기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의 미투 운동을 촉발했으며
다수의 지지자를 확보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보수적 일본사회도 서서히 자국의 성문
화에 대한 성찰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요컨대 이토 시오리의 민사소송72)은 아직
진행 중이고 이토가 캐리의 사진을 보고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바람도 온전히 실현되
고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녀와 또 다른 피해자의 용기로 인해 일본사회의 변화는
이제 시작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72) 이토의 민사소송은 아직 진행중이다. 이토가 야마구치에게 1,100만엔의 손해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소송에서 이토의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Open the BlackBox”가 2019년 4월 10일 출범했
다.(https://www.opentheblackbox.jp/) 도내에서 열린 출범 행사에는 약 150명이 참가했다. 이토
씨의 변호인단은 참석자들에게 2017년 12월에 제1회 구두 변론 후 비공개의 변론 준비 절차가
계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설명했다. 한편 야먀구치는 2019년 2월 이토에게 1억 3천만엔의 위자료와
사과 광고를 요구하며 맞고소했다. 「レイプ告発, 伊藤詩織さん支援の会発足 賠償求め提訴中」, ?朝日新聞?, 2019.4.11.
투고일: 2018.12.31 심사일: 2019.02.27 게재확정일: 2019.05.30
일본의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와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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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月刊 Hanada?, ?月刊 Will?, ?月刊 日本?, ?現代思想?, ?The New York Times?, ?東京新聞?,
?동아닷컴?, ?AERA?, ?朝日新聞?, ?潮?, ?Washingtonpost?, ?Newsweek 日本版?, ?每日新
聞?, ?연합뉴스?, ?Japantimes?, ?Journalism?, ?중앙일보?, ?조선닷컴?, ?女性のひろば?, ?週
刊 文春?, ?週刊 新潮?, ?한국일보?
<미투(Me Too) 나는 말한다>, SBS 스페셜, 2018.02.04 방영
<[아젠다 통신] 한국을 뒤흔든 #Me Too 열풍>, tvN 외계통신, 2018.4.29 방영
小林美佳, ?性犯罪被害にあうということ?, 朝日文庫, 2011
伊藤詩織, ?Black Box?, 文藝春秋, 2017
이토 시오리, 김수현 역, ?블랙박스?, 미메시스, 2018
梁英聖(마츠이 야요리), 김선미 역, ?혐오표현은 왜 재일조선인을 겨냥하는가?, 산처럼, 2018
권김현영, 「성폭력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의 문제」, 권김현영 엮음, ?피해와 가해의 페미
니즘?, 교양인, 2018
大東文化硏究 제10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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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ual Assault Victims in Japan, Shiori Ito and
#MeToo Movement
Yang Ah-lam · Lee Haeng-seon
On April 3, 2015, Shiori Ito was raped in Japan. Shiori Ito who published Black Box
on October 20, 2017 is considered to be a pioneer of the Japanese #MeToo Movement.
The 'Shiori incident' is an important reference model for the identification of the #MeToo
movements and sexual consciousness of Japanese society. Sexuality problem causes
social emotional confrontation. When a victim of sexual violence exposes damage, people
faces the reaction of society and assailant's resist. This is a phase of 'Secondary Sexual
Violence' which reveals the conscious structure and sex culture of the society.
Nonetheless, there are people with high gender sensitivity and knowledge society. They
mediate and persuade sexual confrontation to alleviate social conflicts and raise
awareness of human rights. And these knowledge society is also awakened by #MeToo
propounder. In short, this article is based on the fact that after the Shiori incident, I want
to study on the 'Secondary Sexual Violence' applies to the victim and the movement
of the knowledge society gradually transformed by #MeToo despite the backlash in
Japan. In this context, this article is a reflection of the phase in which Shiori Ito's remarks
and direct actions contribute to the pervasive movement of Japanese society and the
change of sexual consciousness'.
Key Words : #MeToo Movement, Sexual Violence, Feminism, Secondary Sexual
Violence, Noriyuki Yamag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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