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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문학교실에서의 「광장」 읽기/정호웅.홍익대




목차
1.머리말
2.「광장」과 4‧19
3.이데올로기 비판의 문제와 ‘광장’상징
4.「광장」의 ‘사랑’과 ‘자살’
5.맺음말

1. 머리말
최인훈의 「광장」은 현행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와 문학 교과서(18종
가운데 16종)에 수록되어 있다.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한 한국인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교사에 따라 다루지 않을 수도 있다)접하게 되어 있으니 국민소설이
라 불러 지나치다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그러나 「광장」은 대단히 어려
운 작품이다.지식인 주인공의 고도로 추상적인 관념적 사유 행로를 중심
축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평균 수준의 소설 독해력을 지닌 고등학생은 제
대로 읽어내기 어렵다.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을 중요 제대로 교과서에 수
록한 것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 곤란하다.교과서에는 난도 낮은
글,중간급 난도의 글과 함께 난도 높은 글도 함께 실어 학생들이 상중하
난도의 글을 두루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홍익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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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문학교육 교실에서 이 난해한 소설 「광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답이 있을 수 없는 물음이다.답이 없는 만큼 답을 찾고자 하
는 노력을 계속해야 교과서나 지도서 또는 참고서에 나와 있는 작품 해석
에 갇히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광장」이해의 ‘광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현행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와 16종 문학 교과서,
연구자와 비평가들의 「광장」논의 등을 살펴 「광장」에 대한 몇 가지 동의
할 수 없는 해석을 찾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경우에 따라 교사용
지도서,참고서도 다룬다.우리의 비판적 검토는 「광장」해석의 모범 답안
을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라 모범 답안의 표찰을 달고 있는 교과서
등에서의 해석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라는 점을 특히 강조해 두고자 한
다.본고에서의 분석 텍스트는 지금까지 나온 것 가운데 마지막 판본인
‘2009년 전집판’이다.


2. 「광장」과 4‧19
「광장」은 “저 빛나는 사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1)로 끝나는 작가 소감을 달고 솟아올랐다.사일구가 아니었다면
남북한 현실을 함께 근본 부정하는 「광장」의 발표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
이기에 작가의 감격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작가의 진술은 「광장」이 사
일구 이후 국가권력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통제가 느슨해진,상대적으로 열
린 시대 현실의 소산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일구 이후의 한국사회가 어떤 발언,행동도 허용되는 완전히 열린사
회로 바뀐 것은 물론 아니었다.교원노조에 대한 가혹한 탄압 등에서 보듯


1)최인훈,「작자소감 ‘風聞’」, 새벽 (1960.11),239쪽.
문학교실에서의 「광장」읽기 /정호웅 ■41


진보적인 영역에 대한 통제는 여전히 서슬 푸르고 강력했다.「광장」이 새
벽 지에 전재될 때 파문이 일 것을 염려한 편집장 신동문 시인이 아무도
몰래 편집하고 인쇄했다고 하는데2)그 같은 시대현실의 증언이다.
「광장」은 사일구로 인해 가능해진 열린 시대현실,위험을 무릅쓰고 작
품 창작과 발표에 나아간 작가와 잡지 편집자들의 용기 등이 함께 작용해
일군 결실이었던 것이다.그런데 기존의 논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광
장」을 사일구 정신의 소산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남과 북 모두를 비판적으로 다룬 최초의 소설로서,당시 사일구혁명과
맞물려 이데올로기나 체제 비판을 기저로 새로운 정신의 차원을 개척한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만하다.”3)는 진술이나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해방 직후 대학을 다닌 청년으로 설정되어 있으나,실제로는 사일구 직후
의 지식 청년들이 지닌 의식과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
다.”4)는 진술,“사일구세대는 「광장」이 사일구세대와 함께 이 땅에 태어났
다고 보고,사일구정신을 가장 정통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라고 평가합니
다.”5)라는 진술은 이와 같은 맥락 위에 놓여 있다.
「광장」을 사일구정신의 소산이라고 말하려면 먼저 사일구정신이 무엇
인지를 제시하여야 할 것인데,사일구정신을 전제해 놓고 「광장」과 사일
구정신의 관련을 문제 삼는 논의는 거의 찾기 어렵다.위에서 인용한 진술
의 경우,‘새로운 정신’이 무엇인지,“사일구 직후의 지식 청년들이 지닌
의식과 가치관”이 무엇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김치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정신”을 사일구정신의 예로 들고 있지만,그것은 지나치
게 넓은 개념으로 어떤 문학 작품에도 적용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니 실상
은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 빈 개념이다.


2)정규웅, 글동네에서 생긴 일 ,문학세계사,1999.
3)디딤돌 문학 (상) 교사용지도서 ,316쪽.
4) 해법문학 4,천재출판사,2006,239쪽.
5)최인훈ㆍ김치수 대담,「사일구정신의 정원을 함께 걷다」, 사일구와 모더니티 ,문
학과지성사,2010,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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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술들에 비해,“자신의 규범성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창조하는 시
대”6)를 연 역사적 사건인 사일구와 ”그전에는 발설하지 못했던 자기의식의
영역을 탐구하는 자율적인 개인 주체의 등장을 알”7)린 작품인 「광장」이 긴
밀하게 맞물려 있다고 본 이광호의 주장은 훨씬 논리적이다.
어떤 안내 없이 심연으로 내려간 이명준의 존재는 삶의 의미와 행위의 방
향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되는 아무 지표도 가지지 않은 채로 자기 확인의 길
을 가야 하는 현대적 개인의 운명을 보여준다.8)
이명준은 마침내 자기 자신에 대해 외재화 된다.그는 이데올로기와 관념의
유령에 대항하여,자신이 유령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그것을 다른 삶의 가능
성에 대한 투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여기서 현대적 주체는 자신에 대한 자
기 정당화와 자기비판의 악순환을 넘어서,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로 도약하는
심미적 주체 혹은 (탈)현대적 주체의 가능성에 접근한다.이명준의 탈주가 한
국문학사상 가장 기나긴 혁명의 과정에 속한다면,그것은 「광장」의 미적 현대
성이 미래의 시간을 살기 때문이다.사일구와 함께 「광장」이 극적으로 정치적
미적 현대성을 획득했다면,주체화에 대한 회의와 혼돈의 모험을 통해,「광장」
은 다시 다른 현대를 꿈꾸게 한다.9)
앞의 것은 이명준의 관념적 사유의 행로에 관한 해석이고,뒤의 것은 작
품의 마지막 그의 자살에 관한 해석이다.화려하고 난삽한 수사를 걷어내
면,이명준은 기성의 규범,자기 외부의 규범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자신
의 규범을 창조하고자 했으며 그가 어기차게 걸어간 그 ‘회의와 혼돈’의
행로는 그 같은 창조를 위한 고투의 과정이었고,그리고 그의 죽음은 그가
환멸하여 등졌던 현실 너머 곧 ‘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현대


6)이광호,「사일구의 ‘미래’와 또 다른 현대성」, 사일구와 모더니티 ,문학과지성사,
2010,46쪽.
7)같은 글,49쪽.
8)같은 글,50쪽.
9)같은 글,51-2쪽.
문학교실에서의 「광장」읽기 /정호웅 ■43


를꿈꾸었던 정신의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투신’이었다는 핵심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과연 그러한가?
작품을 자세히 읽으면,이명준은 이미 완성되어 변하지 않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이런 진술이 가능한 것은 이명준이라는 기호에 담겨 있는 것
은 ‘광장과 밀실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이며 그런 사
회에서 인간은 비로소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확고부동한 정언적
철학인데 그는 한 번도 그 철학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런 철학을
만족시키는 사회는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으니 이명준은 남에서도 북에서
도 언제나 ‘소외된/스스로를 소외시킨’외로운 주변인일 수밖에 없었다.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까지 자신의 주체성을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같은 철학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10)
서사의 시작에서 마지막까지 확고부동한 정언적 철학에 갇혀 있던 이명
준을 “자신의 규범성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창조해야 했던 현대적
개인”곧 ‘자율적 개인 주체’라 일컫는 것은 당연하게도 설득력이 부족한
지나친 비약이다.
이와 관련하여,사일구로 인해 비로소 한국문학에 ‘자율적 개인 주체’가
등장한다는 의견 또한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자신의 규범성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창조해야 했던 현대적
개인”곧 ‘자율적 개인 주체’는 한국사회의 근대화와 함께 전개된 한국근
대문학사의 중심에 놓였던 주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기조정,존재성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살필 때 이명준보다도 사일구를
다룬 박태순의 소설들(「무너지는 극장」,「환상에 대하여」,「벌거숭이산의 하룻밤」
의 삼부작을 비롯한)에 등장하는 청년들이 더 자율적 개인 주체에 가깝다.그
들은 사일구를 겪으며 지배질서의 밖에 서서 계속해 싸워나가는 삶이야말
로 진정한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끌려 존재전이에 가까운 자기 조정을 감
10)이에 대한 더 자세한 검토는 정호웅,「‘광장’론-자기처벌의 행로」, 시학과 언어
학 1,시학과 언어학회,2001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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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기 때문이다.11)
“우리는 하나의 전례(前例)를 만들어 놓은 거야.우리는 하나의 환상을 그려
놓은 거다.이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워지지 않겠지.비록 꾸겨지고 더럽혀
질 때가 있기는 하겠지만.왜냐하면 우리가 피를 흘려서 그려 놓은 것이니까
말야.(하략).”(중략)“말하자면 나는…… 데모를 계속할 거다.인생과 사회에
대해서 계속 데모를 할 거야.그러한 데모를내 삶의 근본 표정으로 삼을 작정
이다.바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도리어 충실하게 사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있는 중이거든.삶다운 삶을 어떻게 해서 얻어 낼 것인지 모르면서,
다시 속아 넘어가며 살 수는 없지 않겠어?”12)
「환상에 대하여」의 등장인물 유광득의 말이다.사일구는 ‘환상 그리기’
였다는 것,그들이 그린 그 환상을 좇아 사는 것이 올바르게 ‘충실하게 사
는 길’이라는 것,그러기 위해서는 ‘인생과 사회에 대해서 계속 데모를’해
야 한다는 깨달음과 결의의 표명이다.그는 그 같은 깨달음과 결의의 표명
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실제로 그 길을 걸었다.그 길은 다른 한편 「벌거
숭이산의 하룻밤」에 나오는 이만술의,“나는 무식한 사람,가난한 사람,허
약한 사람으로 출세 않고 밑바닥 인생으로 살아 보겠다,못난 인간이 되겠
다,이런 작정”13)을 따라 걷는 길과 같은 것이다.그는 사일구를 겪고 ‘출
세 지향’을 삶을 버리고 ‘밑바닥 인생’으로 사는 삶을 선택하고 나아갔으
니 그것은 존재 전이였다.
우리 소설 가운데 사일구를 다룬 작품은 대단히 적다.그 대부분은 사일
11)이수형은 박태순 소설의 핵심 특질로 ‘이동성’을 들고 있는데 시사적이다.(이수형,
「박태순 소설에 나타난 ‘이동성’의 의미」, 민족문학사연구 38,민족문학사연구
소,2008.)박태순 소설의 핵심 특질로서의 이 ‘이동성’에는 ‘부정’과 ‘존재 전이’의
의미소가 담겨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12)박태순,「환상에 대하여」, 한국소설문학대계 50 ,동아출판사,1995,147쪽.
13)박태순,「벌거숭이산의 하룻밤」,같은 책,174쪽.이런 생각,삶의 태도는 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어느 史學徒의 젊은 시절」(1980)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박태
순 문학의 세계관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문학교실에서의 「광장」읽기 /정호웅 ■45
구의 힘(불의에 맞선 희생적 저항정신의 표출이었다는 것,한국사회를 근대적 민주사
회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역사 단계를 연 획시기적 운동이었다는 것 등을 핵심
으로 하는,사일구에 대한 이후의 평가와 그것에 의해 재구성된 기억 내용에서 생겨난)
에 압도당해 사일구의 한 측면을 단편적으로 재현하는 데 머물렀다.14)
「광장」이 사일구로 인해 비로소 쓰여질 수 있었고 발표될 수 있었던 작
품이라는 것은 재언이 필요치 않은 사실이지만,「광장」이 사일구 정신의
소산이라는 것은 동의하기 어려운 해석이다.
3. 이데올로기 비판의 문제와 ‘광장’ 상징
16종 문학 교과서에서는 하나 예외 없이 「광장」을 이데올로기 비판 소
설이라고 하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다?그렇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그
렇다면 이데올로기 선택의 문제를 다룬 소설인가?마찬가지로 그렇지 않
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작품은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작가는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는 역사적 상황에서 이데올로기가
가지고 있는 허와 실을 철학도인 명준의 입을 통해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
다.이러한 분단 이데올로기 문제는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커다란 불행이며,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적 문제라는 점에서 이 작품이 지니는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15)
여러 편의 「광장」론으로 「광장」논의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평론가인 한
14)김윤식의 지적대로 곧바로 오일육이 덮침으로써 서사적 구체성을 확보할 여유를
빼앗아버림으로써 ‘사일구 문학의 불모성’(김윤식,「사일구와 한국문학-무엇이
말해지지 않았는가」, 사상계 ,1970.4)이 초래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15)금성 문학 (상),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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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의하면 “「광장」원본( 새벽 지에 전재된 첫 발표 작품-인용자)은 당대 한
국사회의 체제,다른 말로 이데올로기를 비판”16)한 작품이다.이런 의견
은 「광장」을 대상으로 한 평론,문학 논문,교과서와 참고서 등에서 두루
만날 수 있으니,이미 「광장」이해와 관련된 정설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
으로 보인다.「광장」을 다루고 있는 여러 글들을 살피면 ‘이데올로기 문
제’또는 ‘남북 분단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는 모호
하기 짝이 없는 표현들도 만나게 되는데,모호한 만큼 분명히 알기는 어려
우나 그 안에 담긴 것의 하나가 ‘이데올로기 비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이 「광장」을 이데올로기 비판의 작품이라 이해하게 된 것은
작가의 다음 진술과 깊이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12년 전,이명준이란 잠수부를 상상의 공방에서 제작해서,삶의 바다
속에 내려보냈다.그는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심해의 숨은 바위에 걸려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17)
이명준의 행로를 지배한 것이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는 문장으로 읽힌다.그러나 작가의 진술은 참고 사항일 뿐이니 여기 갇
혀서는 물을 것도 없이 곤란하다.중요한 것은 「광장」에서 이데올로기 비
판에 해당하는 내용을 거의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굳이 든다면 단 하
나,작품 마지막에 나오는 그리스도교와 스탈리니즘의 유비(9항목 또는 10
항목,초기 본에는 기독교와 코뮤니즘의 유비였음)를 그 예라고 할 수 있다.18)그
러나 스탈리니즘이라 하여 이데올로기임을 뜻하는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그것은 이념이라기보다는 체제 또는 정치문화에 가까운 것이라 보는 게
16)한기,「‘광장’의 원형성,대화적 역사성,그리고 현재성」, 작가세계 4호,1990년
봄,85쪽.
17)최인훈,「이명준의 진혼을 위하여」, 광장 외 ,민음사,1973.
18)대부분의 문학 교과서는 이 유비 부분과,주인공이 남과 북을 거부하고 제3국을
택하는 결정을 내리는 판문점 부분을 발췌 수록하고 있는데,이는 이 작품이 이데
올로기 비판 소설이라는 해석에 이끌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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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당하다.그렇다면 「광장」을 두고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작품이라 하는
것은 실제와는 멀리 떨어진 해석이라 해야 할 것이다.19)
「광장」은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맑시즘,자유민주주의 등
이런저런 아름다운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내걸었지만 속으로는 썩고 굳어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지 않는 남북한 사회현실을 비판한 작품이다.
그 비판의 중심에 ‘광장’상징이 놓여 있는데 이 상징의 상징 의미 또한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학 교과서에서는 저마다의
관점에서 ‘광장’의 상징 의미를 풀이하고 있는데 대체로 아래 내용을 벗어
나지 않는다.
이 작품은 민족 분단의 비극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데,작가는 사회적
공간인 ‘광장’과 개인적 공간인 ‘밀실’을 대립시켜 그러한 분단이 내포하는 의
미를 찾고 있다.20)
‘개인적 공간’이라는 상징 의미를 갖는 ‘밀실’에 대비되어 ‘광장’이 ‘사회
적 공간’이라는 상징 의미를 갖는다는 해석인데 이 이분법적 풀이는 「광장」
에서 ‘광장’이 갖고 있는 여러 상징 의미 가운데 하나에만 해당하는 것이
니 「광장」전체에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1961년도에 나온 정향사판 머리말에서 작가는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중략)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중략)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
19)「광장」은 이데올로기 비판을 중심에 놓은 작품이 아니듯 이데올로기 선택의 문제
를 중심에 둔 작품이 아니다.“그가 밀항선을 타고 북쪽으로 간 것은 그곳에 아버
지가 살고 있기 때문이며,무엇보다도 남한 사회에 대한 깊은 환멸감,절대의 부정
의식에 떠밀렸기 때문이다.남한보다 더 나은 사회일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낭
만적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그가 중
립국을 택한 것은 남북한 사회에 대한 깊은 환멸감,절대의 부정의식에 떠밀린 것
이니 이념 선택의 문제와는 전혀 무관하다.요컨대 「광장」은 이념 선택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 아니다.”(정호웅,앞의 논문,87쪽).
20)천재문학 문학 (상) 교사용 지도서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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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21)
라고 하여 개인의 공간인 ‘밀실’에 대비되는 사회적 공간이라는 상징 의미
를 ‘광장’에 부여하고,개인과 사회의 조화,밀실과 광장의 어울림을 개인
과 사회의 이상적인 관계 형식으로 제시하였다.
이 맥락에서의 ‘광장’이 상징하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조화로운 어울림
이 이상적인 관계형식이다.”라는 정언적 진술 곧 명제를 구성하는,추상적
인 개념으로서의 ‘사회적 공간’이다.그 옆자리에 당대 남북한의 현실이라
는 구체적인 실재와 관련된 ‘광장’상징이 놓여 있다.「광장」의 주인공에
게 남한 사회는 ‘백귀야행하는 도시 알 수 없는 난장판’22)이며 그곳에는
‘너무나 더럽고 처참한 광장’23)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24)이에 반해 북한
사회는 혁명을 꿈꾸는 ‘붉은 심장의 설레임’25)은 사라지고 ‘당’의 선창을
따라 ‘앵무새처럼 구호를 외칠 뿐’인 ‘타락’한 ‘인민’26)들의 광장,‘꼭두각
시뿐 사람은 없’27)는 잿빛 죽음의 공간으로 인식된다.남북한 모두 환멸감
만을 안기는 철저한 부정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이명준의 여로는
그 같은 남북한의 현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며,남북한의 현실에 대한 부정
의식을 계속해서 키워가는 과정이니 한마디로 환멸의 여로이다.이 맥락에
서의 ‘광장’상징은,철저하게 훼손되어 있어 “개인과 사회의 조화로운 어
울림이 불가능한 남북한의 현실”을 상징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광장’상징이 ‘사회적 공간’이라는 상
21)최인훈,「追記-補完하면서」, 광장 (정향사,1961),3~4쪽.
22)최인훈, 광장/구운몽 (문학과지성사,2009),133쪽.
23)같은 책,132쪽.
24)“오,좋은 아버지.인민의 나쁜 심부름꾼.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밀실만 푸
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같은 책,67쪽)란 이명준의 냉소적 진단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25)같은 곳.
26)같은 책,135쪽.
27)같은 책,142쪽.
문학교실에서의 「광장」읽기 /정호웅 ■49
징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때,그것이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사회적 공
간’과 훼손된 남북한 현실을 가리키는 구체적 실재로서의 ‘사회적 공간’으
로 구분되어야 함을 확인하였다.(여기서는 앞의 것을 ‘사회적 공간’(a),뒤의 것을
‘사회적 공간’(b)라고 일컫기로 한다.)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사회적
공간’이라는 말로는 포괄할 수 없는 상징 의미를 지니고 있는 ‘광장’상징
이 「광장」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총 69회 사용된 ‘광장’은 수식어를 통하여 성격과 규모를 결정할 수 있
는데 ‘광장’수식어는 43가지로 다양하다.이 수식어들을 총괄하면 ‘광장’은
‘삶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너무나 많은 것을 가리켜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게 되는 추상적인 어휘이다.”28)라는 지적이 말해주듯 ‘광장’상징에 담긴
상징 의미는 대단히 많다.그 다양한 상징 의미를 단순화하면 ‘사회적 공간’
으로서의 ‘상징’과 ‘개인적 공간’으로서의 ‘광장’으로 나눌 수 있다.29)‘사
회적 공간’으로서의 ‘광장’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폈거니와 문제는 ‘개인적
공간’으로서의 ‘광장’이다.「광장」에 나오는 ‘개인적 공간’으로서의 ‘광장’
상징은 너무 많아 일일이 그 상징 의미를 살피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이
작업은 뒤로 미루고,여기서는 그 가운데 소설의 구성과 관련하여 가장 중
요한 것으로 판단되는 것 하나를 살펴,‘개인적 공간’으로서의 ‘광장’에 대
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도록 하겠다.
이 여자를 죽도록 사랑하는 수컷이면 그만이다.이 햇빛,저 여름 풀,뜨거
운 땅.네 개의 다리와 네 개의 팔이 굳세게 꼬인,원시의 작은 광장에,여름
한낮의 햇빛이 숨 가쁘게 헐떡이고 있었다.바람은 없다.
28)박영준,「최인훈의 광장 에서 ‘광장’의 의미 층위에 대한 연구」, 어문논집 46,
안암어문학회,2002,284쪽.
29)박영준의 ‘시민의 광장’/‘개인의 광장’(같은 논문,297쪽)이라는 개념짝은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광장/개인적 공간으로서의 광장’이라는 본고에서의 개념짝에 대응한
다.한편 김인환은 ‘광장’을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광장’과 ‘극단적으로 좁혀져 있
는 광장’(김인환,「파국의 의미」, 비평의 원리 ,나남출판사,1994,211쪽)으로 나
누었는데 이 또한 본고에서의 개념 짝에 대응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50■문학교육학 제32호
(중략)
누워서 보면,일부러 가리기나 한 듯,동굴 아가리를 덮고 있는 여름풀이,
푸른 하늘을 바탕 삼아 바다풀처럼 너울너울 떠 있다.접은 지름 3미터의 반
달꼴 광장.이명준과 은혜가 서로 가슴과 다리를 더듬고 얽으면서,살아 있음
을 다짐하는 마지막 광장.30)(밑줄 인용자)
낙동강 전선에서 다시 만난 두 남녀주인공 명준과 은혜가 죽음의 공포
에 덜미 잡힌 상태에서 ‘네 개의 다리와 네 개의 팔’을 ‘굳세게 꼬’고 서로
의 몸에 탐닉하고 있다.그 사랑의 공간을 서술자는 ‘원시의 작은 광장’,
‘마지막 광장’이라 부르는데,이 ‘광장’은 ‘사회적 공간’을 의미하는 ‘광장’
과는 전혀 다른 상징 의미를 지니고 있는 상징이다.
이 ‘광장’의 상징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컷이면 그만’,‘원시’,
‘살아 있음을 다짐’등의 구절에 주목해야 한다.그들은 문명 이전의 원시
상태로 돌아가 모든 것을 벗어던진 암컷과 수컷으로 어울림으로써,그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율하고 그들을 그들이게 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나 몸의
감각,그 감각의 순간순간에 몰두하고 있다.그 몰두가 그들을 행복하게
하고,그들을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며,그들로 하여금 ‘살아 있
음을 다짐’하게 한다.“‘살아 있음을 다짐’하게 한다.”는 문장은 정상적인
국어 문법에서 벗어난 비문이다.31)이 비문은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와
“살아야 한다고 다짐한다.”라는 두 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 문장으로 읽힌
다.그렇다면,지금 두 남녀주인공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의 한복판에
서 수컷과 암컷으로 만나 몸의 감각에 몰두하는 그 순간의 황홀경 속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살아야 한다고 다짐함으로써 죽음의 공포에 짓눌린
상황을 간신히 견디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 ‘원시의 광장’,‘마지막 광장’에서 그들은 몸의 욕망에 전적으로 충실
30)최인훈, 광장/구운몽 ,앞의 책,188-9쪽.
31)이것은 새벽 발표본, 정향사 본, 신구문화사 본, 민음사 본에는 모두 ‘살아
있다는 증거를 다짐’이라고 되어 있다.
문학교실에서의 「광장」읽기 /정호웅 ■51
한 두 마리 건강한 짐승이고 전적으로 생존의 욕망을 좇아 견디고 몸부림
치는 가여운 생명체이다.그들의 그 ‘광장’은 그들의 그 같은 ‘전적인’몰
두로 팽팽하게 긴장돼 있으며,조금의 빈틈도 없이 꽉 차 있다.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위기의 상황 속에 놓여 있지만 그들은 이 같은 ‘전적인 몰
두’와 그것에서 생겨난 팽팽한 긴장감과 충일감으로 그 위기의 상황으로
부터 벗어난 자기들만의 독립 공간 속에 존재한다.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독립 공간은 그 공간 이외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곳에 자리하
고 있는 특수 공간이다.그 특수 공간과 주인공 이명준은 완벽하게 일치되
어 있다.
이 특수 공간으로서의 ‘광장’이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광장’과 대립적
인 공간임은 물을 것도 없이 분명하다.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사회적 공
간’(b)와는 대립적이지만 ‘사회적 공간’(a)와는 전적으로 대립적이지는 않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의 핵심은,「광장」의 주
인공이 그가 추구하는 ‘개인과 사회의 조화로운 관계’속에서 ‘갈빗대가
버그러지도록 뿌듯한 보람’32)을 느낄 수 있듯이(상상 또는 기대하듯이),저 특
수 공간 속 주인공이 그 공간과의 완벽한 일치 속에서 시간의 흐름조차 완
전히 잊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광장’과 ‘개인적 공간’으로서
의 ‘광장’이 한편으로는 대립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동질적인 공간임을 살
폈는데,다음 장에서 ‘사랑’과 관련지어 좀 더 자세히 살피기로 하겠다.33)
32)최인훈, 광장/구운몽 ,앞의 책,64쪽.
33)우리의 이런 논의는 「광장」을 여러 개의 서사로 구성된 ‘중층구조’의 작품이라 파
악하고,그 서사들 사이의 유기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논의들과는 다른 자리에
서 있다.이와 관련하여 “여러 계기가 과도히 욕심스럽게 어울려져 있기 때문에”
“중층적 구조가 때로 위태로워 보인다.”(유종호,「소설과 정치적 함축」, 세계의 문
학 ,1979.가을,79쪽)라는 유종호의 지적,「광장」을 구성하고 있는 ‘해방공간에서
전개되는 정치적 서사’와 ‘이명준 개인의 서사’사이에 ‘일종의 비약이 존재’(이수
형,「‘광장’에 나타난 해방공간의 나라 만들기와 가족로망스」,앞의 논문,271쪽)한
다는 이수형의 지적 참고.
52■문학교육학 제32호
4. 「광장」의 ‘사랑’과 ‘자살’
앞에서 ‘이데올로기’와 ‘사랑’을 함께 언급한 작가의 진술을 들었거니와,
이데올로기란 말이 「광장」에 대한 이해를 방해했듯 사랑이란 말도 작품
이해를 가로막았던 것으로 보인다.
젊은 사람이 할 만한 가장 좋은 것 중의 하나라고 그가 누누이 말한 사랑은
「광장」뿐만아니라 「구운몽」의 또 한 주제이기도 하다.사랑이 없다면 풍문과
이데올로기만이 남는 다.단지 사랑만이 인간을 그 자체로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다.34)
한기는 이를 두고 “「광장」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탈색시켜 버리고,그
것의 주제를 ‘사랑’으로 대치하는”것으로 “본말의 전도조차 합리화하는
해석”35)이라고 일축하였다.그렇다면 한기는 이명준의 ‘사랑’을 어떻게 이
해하는가?“이념 부재의 세계 즉 신이 사라진 세계에서 생(生)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서 ‘비극적 세계관’을 지닌 자의 ‘현실 견디기’36)의
의미를 갖는다는 게 한기의 해석이다.
남한에서의 윤애와의 사랑,북한에서의 그리고 전장에서의 은혜와의 사
랑은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깊은 환멸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명준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한기의 말대로 ‘생(生)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며,‘현실 견디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이 점에서 이명준의 사
랑은 현실의 부정성과 환멸감으로 가득 찬 그의 내면을 드러내는 대비적
구성소라고 할 수 있다.이렇게 본다면 한기의 해석이 보다 설득력 있는
것임은 물론이다.그러나 이명준의 사랑을 단순히 ‘현실 견디기’로 이해하
34)김현,「표지 해설」, 광장/구운몽 ( 최인훈전집 1,문학과지성사,1976).
35)한기,앞의 글,91쪽.
36)같은 글,90쪽.
문학교실에서의 「광장」읽기 /정호웅 ■53
고 그치는 것은 불충분하다.이명준의 안쪽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 그의
‘사랑’을 살펴야만 한다.
이명준의 ‘사랑’이란 대단히 복잡하여 그 안쪽을 들여다보기 쉽지 않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문학 교과서와 지도서에서 「광장」의 ‘사랑’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을 수 없다.작품 마지막에 등장하는 두 마리 갈매기
가 ‘사랑의 상징’37)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정도이다.「광장」의 ‘사랑’,그
안으로 들어서는 문은 없을까?
아찔한 느낌에 불시에 온몸이 휩싸이면서 그 자리에 우뚝 서버린다.(중략)
그러자 온누리가 덜그럭 소리를 내면서 움직임을 멈춘다.
조용하다.
있는 것마다 있을 데 놓여져서,더 움직이는 것은 쓸데없는 일 같다.세상
이 돌고 돌다가,가장 바람직한 아귀에서 단단히 톱니가 물린,그 참 같다.여
자 생각이 문득 난다.아직 애인을 가지지 못한 것을 떠올린다.그러나 이참에
는 여자와의 사랑이란 몹시도 귀찮아지고,바라건대 어떤 여자가 자기에게 움
직일 수 없는 사랑의 믿음을 준 다음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작기는 아무 짐
도 없는 배부른 장단만을 가지고 싶다.이런 생각들이 깜빡할 사이에 한꺼번
에,빛살처럼 번쩍였다.38)
철학과 신입생 이명준은 친구들과 교외로 소풍을 나갔다.한여름 하늘
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바람도 없다.그늘을 찾아 비탈에 올라섰을 때,문득
이명준은 세상이 딱 멈추어선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있는 것마다 있을
데 놓여져서,더 움직이는 것은 쓸데없는 일 같다.세상이 돌고 돌다가,가
장 바람직한 아귀에서 단단히 톱니가 물린,그 참”인 것인데 초기본에서는
‘엑스터시의 순간’또는 ‘추상된 원도취의 순간’39)이라 표현했다.자아와
우주의 호흡이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일치하는 데서 생기는 완전한 충족
37)태성 문학 (하),277쪽.
38)최인훈, 광장/구운몽 ( 최인훈전집 1),문학과지성사,2009,42쪽.
39)최인훈, 광장 ,정향사,1961,121쪽.
54■문학교육학 제32호
감의 순간이다.
이 같은 완벽한 일치,완전한 충족감은 “흐르는 물결에서 몸을 때어 흐
르는 강을 받치는 움직임 없는 강바닥에 서”40)고자 하는 이명준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그 욕망은 그것
을 얻기만 하면 “다시 생각이란 이름의 화냥년을 잠자리에 들이지 않으리
라 마음 먹”게 하는 ‘마지막 것’을 향하는 것인데,초기본의 문장을 빌리면
“세계의 처음과 마지막,발을 디디고 선 바루 아래 땅에서 우주의 끝까지
가 한 장의 마음의 스크린에 투영”41)되는 경지에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이
다.그것은 ‘신’을 풀고자 하는 욕망42)이고 ‘누리와 삶에 대한 맺음말’43)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며,그리하여 얻은 결론에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욕망이다.44)
어느 여름날 소풍 길 비탈 위에서 이명준이 느낀 우주와의 완벽한 일치
감과 그것에서 생겨난 완전한 충족감에 휩싸인 주인공이 여자를 떠올린다
는 사실은,그 일치감과 충족감이 대학 신입생 이명준의 무의식 세계에서
는,여자와의 사랑에서 생겨날 수 있다고 그가 생각한 ‘사랑의 믿음’“아무
짐도 없는 배부른 장단”45)과 통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46)이명준에게 있어
40)최인훈, 광장/구운몽 ,앞의 책,2009,46쪽.
41)정향사본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순간이라는 중심을 공유한 몇 개의 동심원인
양 이중 삼중으로 같은 평면에 겹으로 떠오른 것이었다.만일 이러한 순간이 이상
적으로 극단이 되면,세계의 처음과 마지막,발을 디디고 선 바루 아래 땅에서 우
주의 끝까지가 한 장의 마음의 스크린에 투영된다는 것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그
는 상상했다.”(28쪽)라 되어 있다.
42)최인훈, 광장/구운몽 ,앞의 책,2009,46쪽.
43)같은 책,39쪽.
44)최인훈은 최근의 한 대담에서 자신의 자아 속에는 “순수형을 추출한다는 기초과학
자의 입장에 비견하는 그런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우주와 인간 삶의 근본 원리를
궁구하여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말하는 것으로 읽힌다.최인훈ㆍ김치수,「사일
구정신의 정원을 함께 걷다」, 사일구와 모더니티 ,문학과지성사,31쪽.
45)정향사본에는 ‘움직일 수 없는 애정의 확신’,‘아무 의무감도 없는 포화된 순수 감
정’(27쪽)이라고 표현되어 있다.나는 이것에 대해 “대상과의 조화로운 어울림이
아니라,대상의 전유에서 생기는 합일의 엑스터시”이며 그 아래에는 이명준의 ‘자
기중심주의’가 놓여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정호웅,앞의 논문,96쪽).
문학교실에서의 「광장」읽기 /정호웅 ■55
사랑은 이처럼 대단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 사랑은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고 열어 받아들이는 여자의 몸,그리고
그 몸과 완벽하게 일치하고자 하는 이명준의 몸의 만남이다.우주와 인간
삶의 근본 이치를 찾고자 하는 욕망,‘개인과 사회의 조화로운 어울림의
철학’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정신적,이성적인 것인 데 비해 이 사랑
의 욕망은 이처럼 육체적,감각적인 것이니 상반된다.상반되지만 그 두
욕망은 대상과의 완벽한 일치,대상에의 전적인 몰두를 지향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동질적인 것이기도 하다.47)
대상과의 완벽한 일치,대상에의 전적인 몰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
명준은 낭만적 주체인데,그 같은 일치와 몰두가 가능한 세계란 존재할 수
없으니 이명준은 길 위를 떠도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그의 이 같은 존재
성은 당대의 남북 현실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근본적으로는 앞에서 보
았던 그의 철학에 말미암는 것이다.그와 세계와의 관계는 화해의 가능성
이 전혀 없는 근본 불화의 관계이다.그가 꿈꾸는 ‘광장과 밀실이 조화롭
게 어울리는 사회’는 실현 불가능한 꿈이니 그 꿈에 갇혀 있음의 존재성에
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는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길 위를
떠돌 수밖에 없다.이명준은 편력자의 운명에 묶인 존재이다.
이명준이 한순간 느낀 우주와 인간 삶의 근본 이치에 대한 깨우침,개인
과 사회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에 대한 상상,그리고 여자와의 몸의 만남
인 ‘사랑’속에서만 행복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환각과도 같은 순간의 느
46)본고에서의 이런 관점은 「광장」속 ‘섹슈얼리티와 에로티시즘’에 주목하여 ‘사랑과
욕망의 주제의 의해 추동되는 서사’(홍순애,「최인훈 소설의 섹슈얼리티와 에로티
시즘 연구」, 한민족문화연구 17,한민족문화연구소,2005,179쪽)과는 다르다.
47)작품 끝머리에는 이명준이 바다 위를 나는 갈매기 두 마리를 뒤쫓는 장면이 나온
다.‘바다,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푸른 광장’을 비로소 ‘처음 알아
본’(같은 책,216쪽)그는 자신이 “무엇에 홀려 있음을 깨닫”(같은 곳)는데,여기서
의 ‘광장’곧 바다는 모녀간의 사랑,부부 간의 사랑,부녀간의 사랑 등으로 충만한
공간이다.이 ‘광장’속 존재들(갈매기가 표상하는 은혜와 그녀의 딸,그리고 이명
준)은 모두가 그 광장과 완벽하게 일치되어 있으니 그 공간은 무갈등의 공간이며
지극한 행복의 공간이다.
56■문학교육학 제32호
낌으로만 지각되는 것이고 짧은 시간 동안만 경험되는 것이며,상상 속에
서만 경험 가능한 것이므로 그는 근본적으로 불행한 주체이다.작품 마지
막에 이르러 이명준은 자살하는데,그 자살은 이 같은 그의 존재성에 말미
암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그렇다면 “이명준이 이명준을 죽였다.”라는 진
술이 가능하다.
이명준의 ‘자살’에 대한 이런 해석은 문학 교과서(지도서)에서의 일반
적인 해석과는 크게 다르다. 문학 교과서(지도서)에서는 대체로 그의 ‘자
살’에 대해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작가의 분단 상황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은 현실 부정으로 이어지고 있
으며,이는 곧 이명준의 비극적 현실 인식을 낳게 되었다.비극적 현실 인식
속에서 이명준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이명
준의 자살이 지니는 의미는 따라서 이념 선택의 한계를 극적으로 제시함으로
써 완강하게 고정되고 있는 분단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 볼 수 있다.48)
‘비극적 현실 인식’이 낳은 현실 부정행위로서의’이라는 것,그것은 ‘분
단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드러냄이라는 해석이다. 문학 교과서(지
도서)에서는 이에 더하여 이명준의 자살이 ‘현실 도피적 자세’49)를 드러낸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어느 경우든 주인공과 사회현실과의 관계를 문제
삼는 해석이라 할 것인데 이것만으로는 이명준의 ‘자살’에 담긴 의미를 깊
이 드러낼 수 없다.50)이명준과 은혜와의 성애 장면 등을 지나쳐 「광장」의
48)천재교육 문학 교사용 지도서 (상),271쪽.
49)디딤돌 문학 교사용 지도서 (상),319쪽.
50)이명준의 자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와 있다.그 가운데 그의 자살이 ‘사
랑을 확인하는 행위’(김현,「사랑의 재확인」, 광장/구운몽 ,문학과지성사,1976,
321쪽)로 본 김현의 해석,‘자기중심주의’에 갇혀 살아온 자신에 대한 ‘자기처벌’
(정호웅,앞의 논문,104쪽)의 의미를 지닌다고 본 정호웅의 해석,‘자기정당화와
자기비판의 악순환을 넘어서,다른 시간과 다른 장소로 도약하는 심미적 주체 혹
은 (탈)현대적 주체’의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투신’(이광호,앞의 논문,52쪽)이
라고 본 이광호의 해석,‘자율적인 법을 정초’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그 자신이 부
정하고자 했던 아버지들의 위선을 더욱 급진적으로 흉내내는 데 불과하다는 것을
문학교실에서의 「광장」읽기 /정호웅 ■57
‘사랑’에 대해 논의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교실에서 다루기 곤란한 점이 없
는 것은 아니다.그렇다고 눈 감고 지나칠 수는 없으니 방법을 찾아 더 나
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만 한다.
5. 맺음말
지금까지의 논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광장」은 사일구로 인해 열린 상황이 낳은 작품이다.그러나 「광장」
을 사일구정신의 소산이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2)「광장」은 널리 이해되는 것과는 달리 이데올로기 비판 또는 선택을
문제를 중심에 둔 작품이 아니다.이데올로기 비판 또는 선택의 문제
는 「광장」에서는 부차적인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3)「광장」에 등장하는 많은 상징 가운데 중심인 ‘광장’상징을 ‘사회적
공간’이라는 상징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광장’의 상징 의미는 크게 ‘사회적 공간’과 ‘개인적 공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회적 공간’은 다시,“개인과 사회의 조화로운 어울림이
이상적인 관계형식이다.”라는 정언적 진술 곧 명제를 구성하는,추상
적인 개념으로서의 ‘사회적 공간’(a)와 당대 남북한의 현실이라는 구
체적인 실재를 가리키는 ‘사회적 공간’(b)로 구분할 수 있다.‘개인적
공간’을 가리키는 ‘광장’상징은 ‘사회적 공간’(b)와는 대립적이지만
‘사회적 공간’(a)와는 동질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4)「광장」의 주인공 이명준과 그의 애인 은혜와의 사랑,이명준·은혜·딸
깨닫”고 ‘자기 단죄’(이수형,「‘광장’에 나타난 해방공간의 나라 만들기와 가족로망
스」, 현대소설연구 38집,한국현대소설학회,2008,287~288쪽)를 행한 것이라고
본 이수형 등의 해석을 참고할 만하다.
58■문학교육학 제32호
세 사람으로 구성된 상상 속 가족의 사랑이 실현되는 공간을 가리키
는 ‘광장’은 그 공간 속 인간 존재들과 완벽한 일치를 이루는 무갈등
의 공간이며 지극한 행복의 공간이다.그러나 이런 공간은 “개인과
사회의 조화로운 어울림이 이상적인 관계형식이다.”라는 정언적 진술
을 만족시키는 공간으로서의 ‘광장’이 그러하듯,실재할 수 없는 비
현실적 상상의 공간이거나,실재한다 하더라도 곧 사라져버리는 일시
적인 공간이다.이런 공간이 실재한다고 믿고 그것을 찾아 길을 떠난
이명준은 근본적으로 불행한 존재이다.이명준의 자살은 그의 이 같
은 존재성에 말미암은 것이다.
5)고등학교 문학교육 과정에서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았기에 「광장」에 대한 이해의 내용,교육 방식 등에 대해 계
속해서 검토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계속적인 검토를 통해 혹 있
을 수 있는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고,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됨으로써 작품 이해와 교육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광장」에 대한 기존의 이해 내용 몇 가지를 검토함으로써
문학교실에서의 「광장」읽기에 부족하나마 일조하고자 하였다.
핵심어 「광장」, 4.19, 이데올로기 비판 또는 선택의 문제, ‘광장’ 상징, 개인과 사회의 조화
문학교실에서의 「광장」읽기 /정호웅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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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연구 17집,한민족문화연구소,2005.
60■문학교육학 제32호
Abstract
Reading 「Guangjang」 in Literature-class
Jung, Ho-Ung
1)「Guangjang」isapiecethatthesituationoccurredby4.19broughtabout.
Howeverthere’slittleevidencetosay「Guangjang」istheproductofthespiritof
4.19.
2)「Guangjang」isnottheworkfocusingonideologycritiqueorproblem of
choosingideologyasitiswidelyacknowledged.Ideologycritiqueorproblem of
choosingideologyareonlytheminorsubjectin「Guangjang」.
3)‘Guangjang’asasymbolisthemainsymbolamongmanysymbolsthatappear
in「Guangjang」butitisinadequatetocomprehenditmeansjust‘socialspace’.We
cancategorizesymbolicmeaningof‘Guangjang’into‘socialspace’and‘personal
space’,and‘Guangjang’symbolizing‘socialspace’canbecategorizedinto‘social
space’(a)whichisabstractconceptthatconstructsacategoricalproposition-“Harmony
betweenindividualandsocietyistheidealrelationform.”and‘socialspace’(b)which
referstothespecificexistenceofrealityofsouthandnorthKoreaofthosedays.
‘Guangjang’thatrefersto‘personalspace’hasaspectsthatareoppositiveto‘social
space’(b)andhomogeneousto‘socialspace’(a).
4)‘Guangjang’isthespacewheretheloveofLee,Myung-jun,maincharacterof
「Guangjang」,andhisloverEun-hey,andtheloveofimaginaryfamilyofLee,
Myung-jun,Eun-hey,andtheirdaughterarefulfilled.Becausethisplacemakes
perfectharmonywithhumanbeinginthatspace,there’snoconflictinitanditis
utmostblissfulspace.However thisspace isunrealistic imaginary space as
문학교실에서의 「광장」읽기 /정호웅 ■61
‘Guangjang’whichsatisfiescategoricalstatement-“Harmonybetweenindividualand
societyistheidealrelationform.”Eventhatspaceexistsitismomentaryspacethat
vanishessoon.ThereforeLee,Myung-junwhobelievedthisspacereallyexistsandset
offhiswaytofindit,isfundamentallyunfortunatebeing.Hissuicideisdueto
natureofhisexistencethatmentionedjustabove.
Key Words ‘Guangjang’, 4.19, the problem of ideology critique or of choosing ideology,
‘Guangjang’ symbol, Harmony between individual and 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