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한국의 현대 시인들에게 많은 영
향을 끼친 독일의 서정 시인이다. 릴케 문학의 영향을 받은 시인으로 거론되
는 한국의 시인들은 윤동주를 위시하여 박용철, 김현승, 김춘수, 전봉건, 박희
진, 그리고 이성복, 김기택 등이다. 릴케는 한국 현대 시문학의 초기에 해당하
는 윤동주 시인을 비롯하여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김기택 시인에 이르기
까지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영향력은 100여년에 가까운 긴
시간에 걸쳐져 있다. 하이데거는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색가로 철학자
가 아닌 시인 릴케를 내세웠다. 릴케는 철학적 사유의 문제들뿐만 아니라 실
존의 문제, 형이상학의 문제, 나아가 우주의 신비로운 질서까지 거론하며 현
대의 서정시를 한 단계 올려놓은 20세기 최고 시인으로 평가 받고 있다.1)
한국에서 독일의 문학 작품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은 1930년대이다.
1930년대는 잡지의 발행 부수가 늘어나면서 번역 문학의 게재 지면도 함께
증가하는 시기에 해당된다. 이에 따라 한국의 번역 문학의 내용과 형식도 서
서히 제 모양을 갖추어갔다. 그러므로 1930년대는 한국 번역 문학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한국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었던 독
일의 시는 괴테와 하이네의 작품이었다.
릴케는 박용철에 의해 1936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되었다. 당시의 번
역 환경은, 원문을 직접 번역할 수 있는 외국어 전공자가 소수였기 때문에 일
본어로 번역된 작품들을 한글로 다시 번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박용철
은 독일 문학 전공자로서, 릴케 작품을 직접 원문 번역을 하여 소개하였다.
1) 이영남,「릴케와 박희진」,『뷔히너와 현대문학』, 한국뷔히너학회, 제34권 ,2010,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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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이 번역한 첫 번째 릴케의 작품은『여성』제 1권 제3호(1936.6.1)에 번
역 게재된「소녀의 기도」이며 이후『박용철 전집』(동광당 서점, 1939,5)에
일곱 편의「릴케시편」을 번역, 게재하였다.2)
한국 문단에서 릴케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박용철이 1937년,『삼천리
문학』에「시적 변용에 대해서」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이 글에서
박용철은 릴케의 주장을 그대로 체험의 시학과 변용의 문제에 원용하고 있다.
시적 변용에 대한 박용철 자신의 새로운 이론이나 주장은 미약하지만, 이「시
적 변용에 대해서」는 당시의 시가 지나친 기교주의로 치닫는 경향에 대해서,
시 자체의 순수성과 서정성을 옹호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적 변용에 대해서」는 우리 현대 시문학사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3)
1930년대에는 박용철이 릴케의 문학을 소개하였다면, 1940년대에는 윤태
웅이 릴케의 시를 번역하였다. 그는 1941년부터 1943년까지『문우』,『조광』,
『춘추』등의 잡지를 통하여 꾸준히 릴케의 시를 번역하여 발표하였다. 박용
철과 윤태웅이 번역 소개한 릴케의 작품은 모두『말테의 수기』(1910년) 이전
에 쓴 릴케의 초기 작품들에 한정되어 있었다. 당시 이들은 릴케 문학의 성숙
기에 해당하는『두이노의 비가』나『후기 시집』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
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전쟁 이후, 우리나라 시인들에게 릴케는 더욱 더 많이 회자되었다.
한국의 시인들이 그토록 릴케에게 영향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 릴케의 문학에 내재되어 있던 본질 중의 하나가 우리 시인들에게 호
소한 결과이다. 이는 시대적 혼란 속에서 불안을 느낀 인간 존재의 실존적 상
황과 관련된 것 “4) 이라고 할 수 있다. 무자비한 인명 살상의 잔혹성과 시대
적 혼란을 겪으며 불안을 느낀 인간 존재의 실존적 상황과 릴케의 ‘불안 의
식’이 동일한 맥락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릴케 문학의 영향을 받
은 문학가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중에서도 특히 김춘수는 릴케의
영향을 더욱 강렬하게 받았다.
김춘수는 1949년,『문예』지에「릴케와 천사」, 1952년『문예』지에「릴케
적 실존」,「릴케와 나의 시」라는 릴케에 대한 글들을 발표하여 자신이 릴케
2) 김병철,『한국 근대 번역문학사 연구』,을유문화사,1982,p.807.
3) 이재선외,『한독문학 비교연구』,삼영사, 1982,pp.360~364.
4) 김재혁,『릴케와 한국 시인들』,고려대학교 출판부,2006,p.7.
릴케 문학의 영향과 김춘수의 시 447
에게 받은 감동과 영향에 대해 직접 언급하였다. 이후, 그는「구름과 장미」5)
를 거쳐 제 3시집『旗』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릴케의 영향력이 드러나는
시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김춘수는 릴케의 시적 영감의 절대적 표상인 ‘천
사’를 자신의 시에 수용하여 더욱 더 릴케 문학과 밀착된 자신의 시 세계를
펼쳐나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940년대까지 소개된 한국 문학에서 릴케에 대한
이해는 릴케의 초기 시 세계에 한정된 것이었다. 이에 비하여 김춘수는 릴케
의 전 작품을 통독하고 그 당시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깊이 릴케를 이해하고
있었다. 김춘수는 일본에서 릴케를 많이 번역한 副士川英役 등의 번역서를 통
하여 릴케 문학을 접한 것으로 추측된다.6)
본 글에서는 김춘수 문학에 대한 릴케 문학의 영향과 동질성을 중심으로
비교해보기로 한다. 비교 대상은 김춘수와 릴케 문학의 공통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실존주의적 경향과 존재론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2. 릴케의 시 세계와 실존주의
국내 문학 평론가들은 릴케를 실존주의 시인의 선구자로 간주하는데 대부
분 동의한다.7)
한국 내에서의 릴케 문학의 위상은 “위대한 서정 시인이며 불안 속에서
나온 실존주의 시인”8) 으로 명명되고 있다. 릴케는 독일 현대 시단의 대표로
서 릴케의 문학적 편력은 동 시대의 다른 독일 문학가들과는 확실히 차별화
되는, 독특한 자기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릴케를 실존주의적 특성
을 지닌 시인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릴케는 프라하에서 출생하였다. 프라하는 그 당시,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요소가 양립해 있는 독특한 곳이었다. 릴케는 동양적인 것과 슬라브적인 것에
5) 1947년에 낸 김춘수의 첫 시집, 주로 릴케의 시에서 얻은 ‘이데아로서의 장미’의 이미지
가 엿보인다.
6) 김춘수,「릴케와 나의 시」,『 릴케 』김주현 편, 문학과 지성사, 1981, pp.236~237. 참조.
7) 김춘수, 위의 책, p.13.
8) 김윤식,「한국에 있어서의 릴케」,『 현대문학 』,1963,1,pp.67~68.
448 외국학연구 제22집
관심이 있었다. 릴케는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였지만, 몸이 허약하고 질병을
앓아서 퇴교하게 되었다. 릴케는 말년에 이 시기를 회고하면서, ‘가혹한 수난
의 시기’, ‘공포의 입문기’라고 회상하였다. 릴케는 스무 살이 되자, 프라하를
완전히 떠나 프랑스를 거쳐 전 유럽을 여행하였다. 이러한 여행의 경험은 릴
케의 작품에서 유럽의 다양한 문화적 경향을 드러내는 발판이 되었으며 전
유럽에 걸친 넓은 세계를 기반으로 삼는 릴케 문학의 특성을 형성하였다.
릴케가 살았던 유럽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 하에 있었다. 전쟁의 경험
은 당대의 사고와 인간의 삶에 크고도 많은 변화를 야기하는데, 문학과 예술
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에서 일어나는 뜻하
지 않는 변화와 문제점, 갈등 등이 전쟁 못지않게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과 상
처를 안겨 주었다.
릴케가 살았던 시대는 실존주의가 태동하기 전이었다. 그러나 릴케가 지
닌 정신적, 환경적 기반은 본질적으로 실존주의 철학과 공통적인 기반을 지니
고 있다. 이런 시대적인 동질성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물음
을 릴케가 그의 문학에서 표현했다는 사실은 그가 인간 세계의 가장 근본적
이고도 본질적인 문제를 예견했던 엄연한 실존주의 시인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을, “릴케에 의해서 시적으로 표현
된 것을 사색적으로 전개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던 것이다.
릴케 문학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구분한다. 릴케 문학의 첫 시기는 그
의 초기 시집인『기도시집』(1905년)을 출간한 시기이다. 이 시집은 릴케가
러시아 여행에서 체득한 경험과 생각을 시로 엮어낸 것이다. 릴케는 러시아
여행을 통해 유럽의 질식할 것 같은 기독교 문명의 영향에서 탈출하였으며,
러시아의 원초적 대지는 그에게 경건성을 부여하였다.『기도시집』은 러시아
의 한 승려가 그의 기도실에서 올리는 기도 형식을 취하고 있다.
릴케 문학의 두 번째 시기는『신시집』(1907~1908)과『말테의 수기』
(1910)이다. 이 시기의 시는 릴케가 조각가 로댕을 영향을 받아 작품을 창작
한 시기이다. 이 당시에 릴케는 로댕의 예술 세계에 매료되어 있었으며. 릴케
는 로댕과의 만남으로 인해서 점차 ‘보는 세계’를 자신의 작품으로 형상화하
기 시작했다. 릴케는 사물을 관조하고 객관적으로 응시하면서 사물의 존재와
물체를 탐색하였다. 이것이 바로 릴케의 ‘사물시’인데, “사물시는 하나의 대상
혹은 존재를 비개인적이면서도 대상 자체에 역점을 두는 묘사에 중점을 두는
릴케 문학의 영향과 김춘수의 시 449
시이다.”9)
릴케는 1901년에 파리에 도착하는데 그는 파리를 “죽음에 가깝고” “정들
수 없는 대도시”등으로 표현하며 파리에서 받은 시인의 정신적 충격을 증언
하고 있다. 릴케는 파리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근거의 상실과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를 몸소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불안’을 인식하게 되었다. 릴케의
‘불안’은 그의 실존주의적 특성을 가장 잘 대변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릴케는
파리에서의 충격과, 로댕에게 받은 영향이 합쳐져 “불안으로부터 사물은 만들
어진다.”는 생각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사물의 본질을 밝히려는 이러한 새
로운 관점은 실존주의 이론의 핵심인 “사물 자체로!”라는 외침을 실천하였다.
이 시기에 릴케는 서정적인 서술의 객관성과 사실성을 지향하는 노력을
받아들이고 주관적, 개인적인 요소를 등한시한다.
지붕 하나와 그 그림자와 함께 빙빙
얼마동안 온갖 색들의 말들이 모두
돌아간다. 몰락할 때까지
오래 망설이고 있는 나라에서 온 말들이다.,
대부분 뒤에 마차가 달려 있지만
저마다 얼굴엔 기백이 서려 있다.
이들과 함께 심술궂은 붉은 사자 하나 지나가고
그리고 때때로 하얀 코끼리 한 마리 다가온다.
..... 하략.........
- 회전목마 -10)
『신시집』에서 보여주는 시가 작용하는 두 가지 세계는 서로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인간과 사물이다. 즉 사물에게는 사물 자체를 말해 주는 인간
이 필요하며, 인간은 사물에 영혼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9) 윤호병, 『문학과 문학의 비교』,푸른 사상, 2008,p.520.
10) 릴케,「신시집」, 김재혁역, 책세상, 2001,p.78.
450 외국학연구 제22집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 길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가을날-11)
이 시에서 1연과 2연은 매우 차분하고 사실적이다. 가을의 충만함과 시인
의 내면성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 3연에서 갑자기 감정의 균형이
깨어지며 불안 심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
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2연까지의 정서적 안정은 3연을 위한 전주에 불과하
다. 이 중에서도 특히 3연의 ‘불안’이라는 낱말은 실존주의적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이다. 릴케가 처음 이 작품을 발표했을 때, 그의 작품에 내재되
어 있는 이러한 특성을 사람들은 ‘신낭만주의’라고 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실존주의가 유행하자 이 작품에 나타난 특성이 ‘실존주의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다.12) 이후『두이노의 비가』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릴케의 존재론적
물음의 시초를 품고 있는 것이다.13)
릴케 문학의 세 번째 시기는『두이노의 비가』(1922)와 『오르페우스에게
드리는 소네트』(1922)및 후기 시들이다. 이 시기의 시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의 변용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남다른 성찰을 함으로써 그것을 극복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비가시적인 대상을 시적 대상으로 전환 시켰다.14)
11) 릴케,「형상시집」, 김재혁역, 책세상, 2001,pp.35~36.
12) 배상식,「김춘수의 초기 시에 내재된 ‘실존주의’에 관한 연구」,『철학논총』,새한철학
회, 제61집,2010, p.399.
13) 김춘수, 앞의 책, 239
14) 윤호병. 위의 책, p.525.
릴케 문학의 영향과 김춘수의 시 451
『말테의 수기』에서『두이노의 비가』가 나올 때 까지 릴케는 단 한권의
시집(『마리아의 일생』)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시기는 침체의 시기가 아니
라 형식과 내용이 상응되는 통일을 위한, 내면적인 성숙이 고조되는 갈등의
시기였다.
『두이노의 비가』는 거의 10년에 걸쳐 완성되는데,『두이노의 비가』의
시작 전후에 릴케는 아프리카와 스페인을 여행하였다. 그 곳에서의 인상이
『두이노의 비가』와『오르페우스에게 드리는 소네트』에 용해되었다. 특히
속물화된 기독교 신앙에 대한 릴케의 불만과 혐오는 이 여행에서 정신적인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이노의 비가』는 인간과 천사의 대립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여기서의
천사는 이전의 천사, 즉『기도시집』이나『사물시집』,그리고『신시집』에 나
타나는 천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두이노의 비가』에 등장하는 천사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천사와는 다르며,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 천사가 인간
과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계기로 인간이 천사와 관련을
맺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에게 파멸을 가져오는 순간이 되고 만다. 왜
냐하면 천사는 인간보다 온전한 이데아의 구상화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뉘라서, 내 울부짖은들, 들어주랴, 천사들의
질서로부터? 그리고 어느 한 천사가
느닷없이 나를 가슴에 끌어안는다 해도, 나는 사라지고 말걸,
- 제 1 비가 -15)
『두이노의 비가』의 시작인 제1 비가에서 천사를 앞세우는 까닭은, 인간
이 안고 있는 이러한 좌절 상황과 위기의식을 천사와 대비해서 강조하자는데
있다. 그리고 이는 곧 존재론적인 불안 의식과 연결되고 있다.16) 인간이 천사
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애초부터 막혀 있다. 바꿔 말하면 인간 쪽에서 파
15) 릴케 ,『두이노의 비가』 ,안문영역, 문학과 지성사,1994,p.11.
16) 실존주의의 기원은 케에르케고르에서 파스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파스칼은 인간을
신과 허무의 중간자라고 말하였다. 신과 허무의 중간자로서의 인간은 신에게 도달할
수 없는 단절 의식 속에서 허무에 떠 받쳐진 존로서, 불안과 고독과 절망에 의해서 규
정되고 있다. 임석진외,『 철학 사전』, 중원문화, 1990,pp.228~229.참조.
452 외국학연구 제22집
악하는 천사는 있지만 천사 쪽에서 생각하는 인간이란 없는 것이다. 이처럼
닫힌 상황은 인간의 단절 의식이 더욱 더 심화되는 계기를 낳는다.
내가 구애한다고 여기지 말라,
천사여, 그리고 내가 설령 그대에게 구애한들! 그대는 오지 않는다.
- 제7 비가 -17)
더군다나 인간은 이미 천사의 부재를 알고 있으며 천사는 인간의 한계로
는 파악되지 않는 두려운 존재임이 분명하다.
시인은 인간의 분열과 비극이, 삶과 죽음의 의식이 확연히 구분되면서 하
나로 통일된 의식 세계로 통합하지 못한 데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그 후 천사와 만나기 위하여 차안도 피안도 아닌 위대한 통일의 세계인 ‘내면
공간’의 세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내면 공간’의 세계는 전체와 통
일의 세계이며 심오한 존재의 세계에 이르는 통로인 것이다.
이런 변화의 과정을 거쳐서 제9 비가에 오면 천사에게 사물의 참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이는 점차 ‘세계내의 공간’18)으로 변용해 가는 노정을 보
여주고 있다.
변용한다는 것은 격변이라는 결단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가시적
인 현상 세계를 박차고 나가 비가시적인 본질 세계로 뛰어드는 행위는 경험
해보지 못한 다른 차원의 세계를 얻는 행위이므로 인간의 입장에서는 큰 문
제인 것이다. 인간의 존재 구조는 초월자인 천사와 대립할 때 비로소 초월의
계기가 마련된다. 이 초월의 계기는 천사가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며 인간 스
스로가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실존이 아니라 실존이라는 좁
은 한계를 벗어나려는 태도, 즉 실존 철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탈존19)의 자세
가 필요하게 된다. 인간이 탈존의 자세를 지닌다는 것은 바로 천사가 지닌 무
한한 의식을 얻으려는 갈망이며 무한 탐구의 처절한 노력이기도 한 것이다.
17) 릴케, 위의 책, p.51.
18) 릴케가 생각한 ‘세계내의 공간’이란 초월자의 세계를 이른다. 이 공간에 들어감으로써
모든 존재는 구원되고 영생한다. 그것은 순수하고도 지극히 온전한 통일의 세계이다.
19) 야스퍼스의 ‘초월자’의 개념이다.
릴케 문학의 영향과 김춘수의 시 453
..........보여라, 하나의 사물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가를,
죄 없이 우리의 것으로,
탄식하는 고통조차 어떻게 순수하게 형상을 갖추려고 결심하는가를,
- 제9 비가 -20)
『두이노의 비가』의 주제는 인간의 한계와 결핍을 넘어서는 비탄이다.
그러므로 릴케에게 있어서 시인의 사명이란, 결국 사물과 천사의 중간에서 갈
등하고 위기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치열하게 사물의 진실을 파악하고 또한 그
것을 찬양하면서 천상의 존재에게 고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차안에 존
재하는 사물을 ‘내면 공간’ 에 참여시킴으로써 하나의 통일된 세계를 확립하
는 데 있었던 것이다.
3.김춘수 시에 나타난 릴케의 영향
즐비한 고서점들의 어느 하나의 문을 들어서자 서가에 꽂힌 얄팍한 책 한
권을 나는 빼어들었다. - 중략-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는 시인의 일역 시집
이었다. 내가 펼쳐 본 첫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 중략-
이 시는 나에게 하나의 계시처럼 왔다. 이 세상에 시가 참으로 있구나! 하
는 그런 느낌이었다. 릴케를 통하여 나는 시를 알게 되었고, 마침내 시를 써보
고 싶은 충동까지 일게 되었다.21)
위의 인용문은 김춘수가 릴케를 처음 만나는 순간을 서술한 것이며 인용문
대로 라면 릴케 의 시는 김춘수가 시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김춘수의 초기 시는 존재에 대한 ‘무한 탐구’로, 후기에는 순수시, 절대시
의 탐구로 나타난다. 그의 무한 탐구는 릴케류의 기도에서 시작하여 절대에
대한 동경과 추구로 이어지는 것이었다.22) 김춘수 자신이 인정했듯이 ‘존재의
20) 릴케, 앞의 책, p.59.
21) 김춘수,「김춘수 전집 2 시론」, 문장사, 1982,p. 358.
22) 김현,『한국문학사 』,민음사,1993. (김춘수편 참조)
454 외국학연구 제22집
시’나 ‘내면세계로의 시’로 알려진 그의 시는 다분히 릴케의 영향 아래에서 출
발하였다.
김춘수의 시에 나타난 릴케의 영향을 예시를 들어 살펴보자.
1950년대에 들어서서 릴케의 영향이 실제로 김춘수의 시에 나타나게 되었
다. 1952년『시와 시론』에 실린 ‘꽃’이라는 시가 바로 그런 영향을 표현한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꽃- 23)
여기서의 꽃은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관념의 대상이다. 이 시에서는 꽃
이라는 표현 기호가 자연물인 현상적 대상이 아니라 나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한 존재론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시인
의 언어를 통해서 현상 속에 가려져 있는 사물의 존재를 밝혀내려고 한다는
23)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미래사,1998,p,55.
릴케 문학의 영향과 김춘수의 시 455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해석과 연관해서 살펴볼 때, 김춘수의 관념은 보들
레에르에서 부터 내려오는 상징주의의 관념세계와 동질성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들레에르의 상징주의 시학에서 시인이란, ‘숨겨진 사물의 말을 깨닫는
존재‘임을 전제로 하여, 사물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 세계의 본질을 해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해독을 통해서 시인이 사물의 숨긴 뜻을 밝혀낼
때 비로소 차안의 세계와 피안의 세계의 상응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24)
릴케의 시 세계는 차안과 피안의 괴리 속에 놓인 비극적인 인간 존재를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물의 진실한 모습을 통해 차안과 피안을 통합시
키려 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상기해 볼 때 김춘수와 릴케를 연결하고 있는
실존적인 의식의 기저에는, 사물의 언어를 해독함으로써 초자연적인 비의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상징주의적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 사물에 이름을 부여하고 명명하는 김춘수 시의 발상법은 사물의 존
재를 깊이 응시하면서 인간적 형상화를 추구하던 릴케의 정신과 긴밀하게 연
결되어 있다. 즉 사물의 존재에 대한 탐구자적 자세가 바로 김춘수의 시적 발
상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시인의 사명이란 결국 사물의 이
름을 불러 주는 것’이라고 말한 함축적인 릴케의 시 사상을 김춘수가 강열하
게 흡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각컨대 그때 나는 또 일본어 번역으로 읽은 실존주의 사상과 문학에 많
은 자극을 받고 있었는데 -중략- 이런 따위 실존주의 사상가들은 어딘가
직접 간접으로 릴케를 연상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릴케는 이런 모양으로
50년대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 않았다. -중략- 릴케의 관념(실존주의적) 세
계를 따르려면 나도 릴케와 함께 가정도 버려야만 할 것 같은 불안에 휩싸이
게 되었다. 나는 그처럼 외곬으로 릴케에 빠져들고 있었는 듯하다. 25)
위의 글을 보면 김춘수가 릴케에게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편집적으로 경
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춘수는 릴케가 사용하는 시어들도 그대로
24) 김붕구,「보들레에르와 상징주의」,『 문예사조 』,문학과 지성,1981,pp.212~217.
25) 김춘수,「나의 문학수업-느릿느릿 그저 게으르게」, 『문학과 비평』,1999,겨울호,
p.110~111.
456 외국학연구 제22집
차용하여 많이 사용하고 있다. 김춘수는 1957년『 꽃을 위한 서시』로 꽃이라
는 말을 제목으로 사용한 일군의 시를 발표하는데, 이것은 1952년에 발표한
‘꽃’과는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52년에는 꽃이 사물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었다면 (이를 릴케와 관련지어 보면『신시집』의 세계와 상응된다.) 1957
년의 꽃은 인간과 진실된 세계와의 분열이라는 소외의 세계를 보여 준다. 그
리고 이것은 릴케의 시에 나타난 세계관과 닮아 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 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린 나의 신부여,
- 꽃을 위한 서시 - 26)
김춘수 자신도 말하듯이 이 시는 인간 존재 양식의 비극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두이노의 비가』에서 릴케가 생각한 주제와 상통하는
것이다.
시 ‘꽃을 위한 서시’의 1연에서 나와 타자인 너는‘ 위험한 짐승’과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으로 서로 괴리되어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이다. 2연에서도 역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지며’ 나는 ‘한 밤 내 우는’ 관련 없는 존재들이다.
나의 울음은‘ 돌개바람이 되어’ ‘탑'을 흔들다가 ’돌‘에 스며 ‘금’이 되었다. 그
26) 김춘수,『꽃을 위한 서시』,미래사, 1998,p.61.
릴케 문학의 영향과 김춘수의 시 457
러나 너는 ‘얼굴을 가린 신부’이다. 이 시는 주체와 객체의 만날 수 없는 거
리,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의 비극적 거리를 형상화하였다. 나는 돌개
바람이 되고 돌이 되고 변치 않는 금으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너는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인 신부가 되었지만 나에게 얼굴을 가리고 있다. 이 시는 나와 타
자로 이루어진 존재 간의 소외와 그 선험적 깊이를 캐내지 못하는 절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나의 시도는 도로에 그치고 마는, 도달할 수 없는 비극이다.
그러나 이 시는 그런 절망감을 담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들을 깨려고
하는 인간의 존재탐구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열정을 감추어 두고 있다.
이런 인간의 숙명적 조건을 김춘수의 시 ‘旗’에서 하늘과 땅의 양극이라는
이미지로 표현 하고 있다.
황홀히 즐거운 창공에의 비상
끝없이 낭비의 대지에의 못박힘
그러한 위치에서 면할 수 없는 너는 하나의
자세를 가졌다.
오 자세 - 기도
-旗- 27)
여기에서 절망을 가진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는 기도이다. 그
기도는 자신의 육체적 조간을 벗어나려는 초월에의 의지이다. 그것은 또 그의
시 ‘분수’에서는 “찢어지는 아픔으로” 제시된다. 아무리 발돋움을 하더라도 분
수는 두 쪽으로 갈라져 떨어지고 만다. 그 비상과 좌절의 도식은 무한 탐구의
어쩔 수 없는 귀결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릴케에 있어서, 천상의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비극적인 세계관과 이어지고 있다.
이제, 대천사, 그 위험한 자가 별들의 뒤에서
한 걸음이라도 이쪽으로 내려딛는다면: 높이
고동치는 우리 자신의 심장은 우리를 죽이고 말 것이니
-제2 비가- 28)
27) 김춘수, 위의 책,p.32.
458 외국학연구 제22집
여기서 한 가지 더 첨가하자면 , 김춘수의 시의 패턴을 살펴보면 꽃, 짐승,
어둠, 나목,...따위의 사물들과 이와 대극으로서의 ‘나’로 꾸며져서 결구된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는 사물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나타난다. 그런데 릴케의
후기 시에도 순수한 사물 세계의 완전한 형상으로서 ‘꽃’이 자주 등장한다. 그
의「 헬렌에게 쓴 편지」의 마지막 행에 “우리들에게 꽃의 존재는 크다”라고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그의 시 세계에서 ‘꽃’은 ‘천사’와 마찬가지로 인간적
현존재를 위한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속에서의 ‘꽃’의 세계가 릴케의『두이노의 비
가』에서의 ‘천사’의 세계와 상응한다고 볼 때,『 꽃의 소묘』에서 우리는 릴
케의 사물 세계를 넘어서고 있는 김춘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릴케가『두
이노의 비가』에서 밝힌, 공간과 시간 가운데 닫혀져 버린 인간의 모습뿐만
아니라, 이에 반해 있는 불멸하는 꽃의 개방 세계를 의식한 김춘수의 자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사랑도 없이
스스로를 불태우고도
죽지 않는 알몸으로 미소하는
꽃이여.
눈부신 황금의 천의 눈이여
나는 싸늘하게 굳어져
돌이 되는데.
- 꽃의 소묘 - 29)
또한 그가 사용하는 시어로 영향 관계를 살펴보면 ‘꽃’과 ‘꽃을 위한 서시
‘에서의 기본어를 구성하는 ‘짐승’, ‘위험’, ‘꽃으로서의 식물’, ‘어둠’의 용어 등
은 릴케의 시에서도 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김춘수의 꽃에 대한 시는 인간의
생에 있어서의 큰 존재론적인 위기 내지 위험을 표현하고 있음은 물론, 작품
이 내포하고 있는 언어의 한계 내에서 이미 존재론적인 시인인 것이다. 서정
28) 릴케,『두이노의 비가』 ,안문영역, 문학과 지성사,1994,p.18.
29) 김춘수, 앞의 책, p,58.
릴케 문학의 영향과 김춘수의 시 459
적인 자아와 그것을 상대한 상대성으로서 ‘너’, ‘꽃과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등
에서 그의 시가 존재를 문제 삼는 시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또 ‘이름도
없이’, ‘무명의’ 등의 시어도 모두 사물에 대한 존재론적인 인식행위와 관련되
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둠’을 두고 전개한 두 시인의 작품을 비교하면서 그 공통성
내지 동질성의 양상을 살펴보겠다.
너 어둠이여 나는 너에게서 태어났노라.
나는 불꽃 보다 너를 사랑하노라.
그 무슨 원을 그리며
불꽃은 밝게 빛나면서
세계를 경계 지어도,
그 바깥에선 아무것도 그것을 알지는 못하노니
허나 어둠은 온갖 것을 품고 있도다.
사물과 불꽃. 짐승과 나를,
이 어이 앗아감이뇨,
인간과 힘을-
무슨 위대한 힘이 내 주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라,
나는야 밤을 믿노라.
-그대 어둠이여- 릴케)
촛불을 켜면 면경의 유리알, 의룡의 나전, 어린 것들의 눈망울과 입언저리,
이것들이 하나씩 살아난다. 차츰 촉심이 되고 불이 제자리를 정하게 되면 불
빛은 방안에 가득히 원을 그리며 윤곽을 선명히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윤곽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있다. 들여다보면 한 바다의 수심과 같다. 고요하다
너무나 고요할 따름이다.
-어둠- (김춘수)
460 외국학연구 제22집
이 두 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밝음과 어둠 혹은 빛과 그림자로
상징되는 대립적인 두 영역을 제시하면서, 그 경계를 통하여 현상과 본질의
양 국면을 대비하고 있다. 이 빛과 어둠의 경계는 또한 시인이 도달한 어떤
정신적인 경지에서 파악되는 것인데, 사물의 상징을 해독하여 신비한 비밀을
파악하는 순간으로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때 어둠은 현상적인 세계와
대립되면서, 동시에 사물의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주는 위대하고도 초월적인
세계로 나타나기 때문에 빛에 의해 윤곽이 정해지는 육안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이 ‘어둠’은 초자연적인 신성의 상징이며
그것과 일치를 이루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곧 릴케가 말하는 ‘세계
내 공간’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 무슨 원을 그리며/ 불꽃은 밝게 빛나면서/ 세계를 경계 지워도/ 그 바
깥에선 아무것도 그것을 알지는 못하노니/ 허나 어둠은 온갖 것을 품고 있도
다. 사물과 불꽃, 짐승과 나를,” 이라고 한 릴케의 표현과, “불빛을 방 안에
그득히 원을 그리며 윤곽을 선명히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윤곽 안에 들어오
지 않는 것이 있다. 들여다보면 한 바다의 수심과 같다. “라고 한 김춘수의
표현에서 보이는 동질적인 관념은 바로 그러한 어둠의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시인의 깊은 시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겠다.
4. 맺음말
이로써 릴케와 김춘수 시의 영향관계를 실존 의식과 존재론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릴케의 시는 김춘수에게, 시를 창작하고자 하는 직접적인 동기를 부여했
을 정도로, 김춘수는 자신이 릴케의 지대한 영향력 아래 있다는 사실을 여러
책에서 확인시켜주고 있다. 김춘수 시에서의 릴케의 영향은 김춘수의 초기 시
에서 많이 나타난다. 김춘수 시에서 많이 발견되는 꽃, 어둠, 천사, 장미 등의
시어는 릴케가 이미 자주 사용했던 시어들이다. 그리고 김춘수 시의 발상법과
대립적인 구도의 시 구성, 사물시 유형 등 다방면에서 릴케의 시에 경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춘수의 첫 시집의 제목이『구름과 장미』라는 것만 보
릴케 문학의 영향과 김춘수의 시 461
아도 그 영향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릴케의 영향은 김춘수 시의 내용이나 형식적인 요소는 물론이거니와 시의
저변에 잠재되어 있는 의식과 관념에서도 릴케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었다.
김춘수는 릴케의 실존 의식과 사물시의 영향을 받아서 의식적으로 사물을 감
각적이거나 외적인 면을 보지 않는다. 그는 사물의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그
상징성을 파악함으로써 숨겨진 뜻을 드러내는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가 이런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던 있었던 데는, 사물에 있어서의 존재의 탐구자나 존
재의 순교자로 평가되는 릴케의 영향력이 가장 중요한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릴케의 영향은 상징주의적인 시 이론을 바탕으로 존재의 근거를 찾
는 김춘수의 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50년대의 한국의 시대적 분위기와 비극적 상황은 자연스럽게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천착하게 되었으며 한국 문학계는 실존주의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었다. 릴케가 지닌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은 김춘수 외에
도 한국의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김춘수의 초기 시는 존재에 대한 ‘무한 탐구’로, 그의 무한 탐구는 릴케 시
류의 관심에서 시작하여 절대에 대한 동경과 추구로 이어졌다. 김춘수 자신이
인정했듯이 ‘존재의 시’나 ‘내면세계로의 시’로 알려진 그의 시는 릴케의 시와
흡사한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다.
김춘수는 1962년경부터 릴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릴케와 같은 기
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특히 그의 관념과잉의 후기 시는 납득이
잘 안가기도 했지만, 나는 너무나 신비스러워서 접근하기조차 두려워졌다. 나
는 일단 그로부터 헤어질 결심을 하고 지금까지 그를 늘 먼발치에 둔 채로
있다”30)고 고백하였다. 이후 김춘수는 ‘처용단장’을 거쳐 무의미의 시학으로
변모해갔다. 김춘수 자신이 ‘무의미의 시’에 대해서는 릴케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비추고 있다.31)
중요한 것은 김춘수가 릴케에게 시의 세례를 받아서 시를 쓰게 되고, 릴
케적인 세계의 추구와 실존 의식, 존재론적인 사유의 세계를 거치면서, 김춘
30) 김춘수, 「두 번째 만남과 첫 번째 헤어짐」,『의미와 무의미』,문학과 지성사,1976,
p.25~26.
31) 김춘수, 앞의 책,P.245.
462 외국학연구 제22집
수 자신만의 새로운 시세계를 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김춘수 시에 대한
릴케의 영향은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영향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릴케 문학의 영향과 김춘수의 시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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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외,『한독문학 비교연구』,삼영사, 1982.
464 외국학연구 제22집
Abstract
Influences of Rilke's literature and Kim, Choon
Soo's poems
Suk-A, Kang
Goals of this dissertation are comparison and analysis of homogeneity
between Kim, Choon Soo's literature and Rilke's. Object of comparison
and analysis is existentialistic and ontological viewpoint of Kim, Choon
Soo and Rilke in common. Existentialistic and ontological viewpoint of
Rilke's literature gains the sympathy from many Korean poets who
undergo cruel horrors and dehumanization of the Korean War and gives
enormous influence to Korean poems.
Rilke's influence on Kim, Choon Soo's poems appears considerably in
early poems of Kim, Choon Soo. Poetic dictions like flower, darkness,
angel, rose in Kim, Choon Soo's poems were already used in Rilke's
poems many times. In addition, oppositive composition and Dinggedicht
type of Kim, Choon Soo's poems have similar composition of Rilke's
poems. In this way, influences of Rilke's literature exist in contents,
formal composition and latent consciousness of poem's base in Kim,
Choon Soo's poems.
Theme of early Kim, Choon Soo's poems is 'research of infinity'
about being, so his 'research of infinity' starts from Rilke's pomes and
continues to longing and pursue about absoluteness. As Kim, Choon Soo
accepts, his poems which are known as 'poem of existence' or 'poem of
the inner world' have similar image of Rilke's poems.
Since 1962, Kim, Choon Soo's poems have had different aspect in
comparison to Rilke's poems. Afterward, Kim, Choon Soo's poems are
changed to poems of purposelessness like 'Cheoyong Danjang'. Kim,
릴케 문학의 영향과 김춘수의 시 465
Choon Soo said that, his poems of purposelessness have no relationship
with Rilke's poems.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at Kim, Choon Soo had composed poem
thanks to Rilke's baptism and has undergo existential and ontological
viewpoint of Rilke's poetry world and finally made his own poetry world.
Thus Rilke's influences have creative and evolutive effect on Kim, Choon
Soo's poems.
Key-words: Rilke(릴케), Kim, Choon Soo(김춘수), Existentialistic tendency
(실존주의적 경향), ontological viewpoint(존재론적 관점), Comparison(비교),
Influences(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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