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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박범신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 연구/이미화.부산대


목 차

. 들어가며

. 처녀성에 대한 갈망과 환상

. 지친 청년의 순결한 사랑

. 남성중심의 성정체성과
성인중심의 성 비판

. 나오며


【국문초록】
박범신의 은교는 69세의 시인 이적요가 겪게 되는 노화와 그에 따라 변
화하는 노인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적요는 노년과 청
년의 삶이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그래서 ‘늙음’을 모욕한 서지우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이런 행동을 후회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다. 오히려 유서를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당당하게 세상에 밝힌다. 이는
이적요가 노화에 순응하며 죽어가는 사회의 외부로 내몰린 노년이 아니라, 사
회의 치열함 속에서 여전히 ‘지친 청년’으로 살아가는 능동적 노년을 말하려
했던 것에서 연유하고 있다. 본고는 박범신의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
리티를 통해 이를 살펴본다.


주제어 : 박범신, 은교, 노년의 섹슈얼리티, 노화, 욕망, 처녀성, 환상, 남성중심의 성정체
성, 성인중심의 성, 저항.
* 부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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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박범신(朴範信 1946~ )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
(1973)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소설집 토끼와 잠수함, 흰 소
가 끄는 수레,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를 펴냈으며, 장편소설로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
체, 고산자 등을 펴냈다. 그러는 동안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
해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활
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박범신에 대한 연구는 거의 나마스테에 집
중되어 있는 실정이다.1) 은교에 대한 분석도 최근에서야 황영미2)에 의


1) 박범신 연구는 크게 다섯 가지 양상으로 진행되어 있다. 첫째, <나마스테>에 나타난
소수자 혹은 이주노동자를 연구한 것이다.(김혜영, 「상호텍스트성의 관점에서의 다문화
소설 읽기- <나마스테>와 <영원한 이방인>을 중심으로」, 새국어교육86, 한국국어교
육학회, 2010. 문재원, 「이주의 서사와 로컬리티- <나마스테>와 <잘가라, 서커스>에
재현된 이주 공간」, 한국문학논총54, 한국문학회, 2010. 박진, 「박범신 장편소설 <나
마스테>에 나타난 이주노동자의 재현 이미지와 국민국가의 문제」, 현대문학이론연구
40, 현대문학이론학회, 2010. 양진오, 「한국현대소설과 아시아의 발견」, 현대소설연구
43, 한국현대소설학회, 2010. 우한용, 「다문화주의와 한국 소설- 21세기 한국사회의 다
양성과 소설적 전망」, 현대소설연구40, 한국현대소설학회, 2009. 이승연, 「소수자 이
해를 위한 다문화시대의 소설교육 연구- <나마스테>, <마당을 나온 암탉>을 중심으
로」,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조구호, 「이주노동자의 현실과 상생을 위한 모색-
<나마스테>를 중심으로」, 국제어문52, 국제어문학회, 2011. 천연희, 「현대소설을 통
해 본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 전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최진희, 「다
문화 시대 문학 교육을 위한 이주노동자의 타자성 연구」, 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홍원경, 「<나마스테>에 나타난 외국인 노동자의 재현 양상」, 다문화콘텐츠연구
2, 중앙대학교 문화콘텐츠기술연구원, 2009) 둘째, <죽음보다 깊은 잠>에 나타난 도시
와 욕망을 연구한 것이다.(김현주, 「성장 신화 속에 춤추는 욕망과 환상- 박범신의 <죽
음보다 깊은 잠>연구」, 여성문학연구6, 한국여성문학학회, 2001. 유은정, 「1970년대
도시소설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5) 셋째, 박범신에 대한 작가론적 연구
이다.(김병덕, 「환멸의 세계와 탐미적 서사- 박범신론」, 한국문예창작8, 한국문예창작
학회, 2009. 박소란, 「소설가 박범신- “내 소설은 결국 ‘사람으로 가는 길’”」, 민족2173,
민족21, 2007) 넷째, <그해 가장 길었던 하루>에 나타난 농촌 여인상을 연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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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이루어졌다. 황영미는 박범신의 은교와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
를 서사론에 입각하여 접근함으로써 소설의 서술이 영화화되는 과정에서
의 변용의 의미와 영화의 미장센과 디테일을 통해 영화 <은교>가 어떤 성
취를 하였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밝히는 ‘비교연구’를 하였다. 그리하
여 소설 은교는 노년의 늙음에 대한 성찰과 욕망이 강조된 서술인 반면,
영화 <은교>는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의 차이에 대한 감각적 형상화
가 주된 변용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은교3)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4)에 집중하여 분석할
것이다. 왜냐하면 노년의 섹슈얼리티를 비난한 ‘노랑머리 사건’5)은 은교


(임영천, 「비전문 농민소설가들의 대표적 농민소설- 한승원, 박범신, 김하기, 성석제의
경우」, 비평문학17, 한국비평문학회, 2003) 다섯째, <촐라체>에 나타난 인터넷 소설
의 특성을 연구한 것이다.(김명석, 「문학공간으로서의 블로그와 인터넷 시대의 소설 읽
기- 박범신의 <촐라체>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을 중심으로」, 어문논집40, 중앙
어문학회, 2009)
2) 황영미, 「박범신 소설 은교의 영화화 연구」, 영상예술연구22, 영상예술학회, 2013.
이외에는 소설 은교에 대한 서평(김나정, 「야멸친 베스트셀러 독서법-신경숙, 박범신
장편소설 다시 읽기」, 작가세계 86, 세계사, 2010)이 있으며, 홍유진과 박범신이 토론
한 글이 있다.(홍유진․박범신, 「늙어도 젊은 것과 젊어도 늙은 것」, 인물과 사상 172,
인물과사상사, 2012) 즉, 소설 은교는 대중적으로 받은 사랑에 비해 작품분석에 대한
연구가 매우 미진한 실정인 것이다.
3) 박범신, 은교, 문학동네, 2010. 박범신의 은교를 원작으로 한 영화 <은교>가 2012
년 봄에 큰 화제를 모으며 상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소설 은교만을 텍
스트로 삼아 논하고자 한다.
4) ‘성’으로 옮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섹슈얼리티는 19세기 초에 생물학 용어로
생겨나 20세기 초에 이르러 ‘성생활’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미셀 푸코,
이규현 옮김, 성의 역사1- 앎의 의지, 나남출판, 2004, 13면) 본고에서는 이런 섹슈얼
리티를 성적 특질 혹은 성교, 성적인 것에 대한 인지와 편견이 드러나는 것(조셉 브리
스토우, 이연정․공선희 옮김, 섹슈얼리티, 한나래, 2000, 19~20면)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하고자 한다.
5) 노랑머리 사건의 핵심은 다음 대목이라 생각한다. “봐요. 나 은교 남친이거덩. 어떤
꼰대가 못살게 군다더니, 할배였어?” 노랑머리가 두 손으로 반쯤 열린 차창을 꽉 부여
잡은 채 세모눈을 떴다. “눈만 감으면 송장인데, 무슨 짓요? 미쳤어요? 자기 얼굴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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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핵심사건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작품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노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맹목적 비난은 이 작품이
사회에 던지는 중요한 문제의식인 것이다. 이적요는 노화를 자연스런 현상
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게 늙고 병든 노인으로서 큰 사건 일으키지 않
고 조심스럽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노랑머리 사건으로 인해 서지우를 살해
하고 자신도 자살하게 되는 비극적 인물이 된다. 즉 이적요는 아무런 근거
도 없이 무턱대고 노년의 섹슈얼리티를 더럽고 끔찍한 범죄로 간주한 서지
우를 단죄한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이적요가 중요시한 노년의 섹슈얼리티
는 어떤 것이며, 은교에서 나타나는 양상은 어떠한지를 분석하는 데에 연
구목적이 있다.
아울러 이적요 시인이 겪는 ‘노년’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라
는 점에서도 연구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미 고령화사회(65세 인구비율 7%)
인 한국은 2018년에는 고령사회(14%)로,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29%)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시점에 박범신의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를 고찰한다는 것은 은교뿐만 아니라 박범신의 연구범주를
확장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동시에 기존에 연구되어 온 노년소설6) 연구에


보라구, 씨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거울도 안 봐?” 치가 떨린다는 듯이 노랑머리가 고
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내 눈에는요, 이 노친네야. 당신, 지금 썩은 관처럼 보여.”(박범
신, 앞의 책, 207면) 이것이 일면식도 없었던 노랑머리로부터 이적요가 들어야 했던 말
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은교의 하교를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 느닷없이 나타난 노랑머
리 스무살 청년의 거침없는 발언에 시인은 커다란 충격과 공포를 느낀다. 잔인한 킬러
에게 온몸이 난자당한 것 같은 고통이다. 왜냐하면 노랑머리가 ‘노인=죽음’이어야 함을
말했기 때문이다. 이적요에게 이것은 ‘오로지 늙었기’에 죽어야 마땅하다는 의식이기에
더욱 비참하고 절망스럽다. “늙은이의 욕망은 더럽고 끔찍한 범죄”(위의 책, 209면)였
던 것인가 강박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적요는 이후부터 달라진다.
6) 노년소설에 대한 연구는 주로 박완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박완서는 노년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노년의 삶을 형상화한 소설을 일관적으로 창작하였기 때문
이다. 그녀는 등단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노년의 삶과 노인이 안고 있
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니 노년문학의 연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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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하여 고령화사회인 한국이 앞으로 겪게 될 노년
을 좀 더 열린 안목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유도할 것이라 생각한다.


Ⅱ. 처녀성에 대한 갈망과 환상
박범신의 은교는 이적요가 한은교를 ‘사랑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
요하다. 은교 전체의 내용이 이적요가 은교를 사랑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은교의 전체 서사에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기폭제가 된 이적
요의 유서에서도 이는 나타나고 있다. 이적요는 “아, 나는 한은교를 사랑했
다.”7)는 유서를 완성하고 죽은 것이다. 그런데 이적요의 은교에 대한 사랑
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노년문학에 대한 연구가 매우 미미하기 때문에
부각되는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노년소설에 대한 기존의 연구 경향은 주로 작품에 나
타나는 노년의 삶을 바탕으로 하강서사와 상승서사로 분석하고 있다. 노년이 처한 환
경에 대응하는 양상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하강서사는 노년의 관계 단절과 소외 등
부정적인 인식이 텍스트의 주제와 서사구조를 이루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노인 문제
의 담론 제기와 사회적 고발이 주를 이루는 형태로써 노인들의 흔들리는 삶을 나타내
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하강서사는 노인문제의 고발과 노인문제의 재인식이
라는 점에서 연구 의의를 가진다. 반면 상승서사는 노인의 자아 성찰과 관계 복원을
이루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노년기에 이르러 완성되는 성숙한 삶, 존재의 완성을 이루
는 것에 초점을 둔다. 이런 하강서사와 상승서사는 공통적으로 노인 유기, 죽음, 재혼,
자존심, 흉터, 대물림, 꿈(황은진, 「노년서사의 문학교육적 의미 연구- 박완서 소설을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9, 23~26면), 자식의 죽음, 이산가족(박현실,
「한국 노년소설의 갈등 양상」, 전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8~39면) 등을 모티프
로 다루고 있다. 노년소설에 대한 연구는 대략 이와 같은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가 박범신의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를 연구
한다는 것은, 노년소설 연구가 박완서 소설에 한정되어 온 단점을 완화할 수 있게 하
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노년소설에서 단점으로 거론되고 있는 (노년에 대한
개념과 정의, 노년 특성에 대한 고찰로 집중되어) 본격적인 작품 분석이 미비하다는
지적을 극복하는 데에도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7) 박범신, 앞의 책,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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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처녀성’에 대한 욕망과 맹목적 환상에서 비롯되고 있는 특징이 있다. 여
기서는 이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적요 시인은 평생 외롭게 살았다. 고요하고 쓸쓸하다는 그의 필명 ‘적
요’처럼 결혼한 적도 없고, 어쩌다 젊은 시절 얻게 된 아들 얼과도 거의 연
락하지 않고 지냈다. 오로지 시인으로서만 외길을 걸었던 것이다. 이런 이
적요의 삶에 은교가 불쑥 끼어들게 된다. 그런 어느 날 이적요는 서지우와
은교가 성교를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
었다. 그애가 싫다면서 한사코 밀어내는데도 불구하고, 그애의 사타구니를 벌
리고, 뱀과 같이 혀를 낼름거리면서, 그 안에 머리를 밀어넣는 서지우까지도
보아야 했을 때, 내가 어떻게 “그애가 싫다면서 한사코 밀어내는데도 불구하
고”라고 쓰지 않고 그 장면을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그애가 ‘비명을 내지르며’
진저리를 쳤다. 그애는 ‘당연히’ 끔찍하게 고통받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비명
을 내지르며’ 그애가 ‘끔찍하게 고통받고’ 있다고 분명히 보고 느꼈다. 분노가
아니라 충격이 나를 후려쳤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사다리를 간신히 내려
온 뒤엔 빗물이 고인 바닥에 주저앉은 채 한참이나 일어날 수 없었다. 거친
폭우였다.
어떤 경우, 사실적이고 생생한 묘사는 저주받은 자들이 하는 짓이다. 서지우
는 내가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방법까지 모두 동원해 철저히 그애를 갖고
놀았다. 그렇다고 나는 믿었다. 나의 집, 서재, 침대 위였다. 나는 사디스트도
아니고 마조히스트도 아니다. 그 순간 내가 본 모든 것을 더 이상 리얼하게
묘사한다는 것은 잔인한 사실주의자들이 벌이는 극단적인 가학이나 피학일
것이다. 내가 어찌 초목 옆에서 살아야 마땅한 은교의 희디흰 대지가 나의
서재, 나의 침대에서 서지우라는 ‘짐승’에 의해 속속들이 해체되고 망가지고
파먹히는 것을 여기다 다 낱낱이 묘사할 수 있겠는가.8)
8) 위의 책, 360~36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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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요에게 은교와 서지우의 상호적인 성교는 은교가 일방적으로 당하
는 성폭행으로 판단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적요가 은교를 “나의 처녀”9)
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서 연유한다. 특히 이적요가 말하는 ‘처녀’는 시집을
가지 않은 여성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성적 경험을 겪지 않은 여성의 특
별한 육체적 상태를 의미한다. 흔히 “처녀=처녀성은 같은 용어로 사용되고
있”10)는데, 이적요의 의식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이적요가 “초목 옆에서 살
아야 마땅한 은교”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이런 ‘처녀’는 절대적 가치와 절대적 아름다움의 상징적 존재로서 수용된
다.11) 이적요에게도 은교는 그러했다. 이적요는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
든 ‘나의 처녀’인 은교의 모든 면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상상에
서조차도 은교를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 이적요는 자신의 감정을 세상사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홀로 키워갈 뿐이다. 시인의 집에서 일하던 파출부
영산댁이 아들 내외의 초청을 받고 외국으로 떠나고, 대신 아르바이트로 은
교가 이적요의 집 청소를 하게 되었을 때의 사건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가) 그애의 청소 솜씨는 약빠르고 야무졌다.
가령 유리를 닦을 때,
그애는 들고만 있을 뿐, 유리창 세정제를 잘 쓰지 않는다. 한사코 유리창에
입김을 화아, 불고 마른 걸레질을 꼼꼼히 한다. 뽀드득하고 유리창에서 소리가
난다. 그애는 그럼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고 유리창을 살핀 다음, 다시 붙어
서서 입술까지 꼭 물고, 재바르게 닦는다. 어디에 있든, 나는 예민하게 들을
수 있다. 들짐승처럼. 화아, 뒤에, 뽀드득뽀드득, 이 따라붙고, 뒤로 물러나는
9) 위의 책, 362면.
10) 정혜영․류종렬, 「근대의 성립과 연애의 발견- 1920년대 문학에 나타난 처녀성 성립
과정을 중심으로」, 한국현대문학연구18, 한국현대문학회, 2005, 232면.
11) 위의 논문, 2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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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짝 소리, 이리 보고 저리 보느라 좁혀진 미간, 그리고 다시 유리창에 붙으면
또 화아, 뽀드득뽀드득…… 하는. 힘주어 닦고 있을 때면 가느댕댕했던 팔에
살짝, 귀여운 알통이 생기는 것도 같다. 얼룩 하나 없이 닦였다 싶으면 그제야
활짝, 소리 없이 그애는 웃는다. 햇빛보다 환한 표정이다.12)
나) 대문 열리는 소리만 듣고도 그애라는 걸 나는 얼른 알아차린다. 그애는
몸이 가볍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올라올 때, 소나무 사이로 이어진 목제 층계의
울림통이 내는 소리는 서지우가 느린 텅, 텅, 텅, 그애는 경쾌한 통통통이다.
아니, 나는 자주 그애의 발소리를 통통통이 아니라 쫑쫑쫑으로 듣는다. 그애는
마치 어린 새가 쫑, 쫑, 쫑, 걷듯이 날렵하게 걷는다. 그래서 통통통이, 내 이미
지 속에서는 곧 의태어, 쫑쫑쫑으로 바뀌어 들리는 것이다. 내가 앉은 데크에서
보면, 층계를 올라오는데 따라, 머리가 먼저 보이고, 어깨가 보이고, 소나무숲
그늘을 튕겨내며 곧 오동통한 가슴이 뒤쫓아 솟아오른다. 질끈 묶은 그애의
머릿단도 쫑쫑쫑, 경쾌하게 내게로 다가든다. 머리칼이 가을볕과 희롱하듯, 반
짝반짝한다.13)
가)와 나)처럼 이적요는 은교를 공감각적으로 감지한다. 시인이 은교에
게 얼마나 집중했으면 은교가 유리창을 청소하는 상황이 한편의 영상을 감
상하는 듯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은교의 모든 것이 예민하게 시인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적요에게 은교의 행동들은 보이
든지 보이지 않든지 상관없이 ‘보이’고 ‘들린’다는 점이다. 이는 이적요가 은
교라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이미 좋아하게 된 은교
라는 이미지를 시인의 ‘환상’ 속에서 더 아름답게 키워가는 모습이라 판단
할 수 있다. 즉 이적요에게 은교는 이적요의 환상이 가미된 아름다운 ‘나의
처녀’였던 것이다. 그런 은교라서 “햇빛보다 환”하고 “경쾌”한 하루하루의
12) 박범신, 앞의 책, 52~53면.
13) 위의 책, 55~5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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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이적요에게 전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이적요의 행복은 시인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게 된 ‘처녀에 대한 갈
망’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적요와 은교는 나이 차이가 많다. “은교는 이제
겨우 열일곱 살 어린 처녀이고 나는 예순아홉 살의 늙은 시인이다. 아니,
새해가 왔으니 이제 일흔이다. 우리 사이엔 오십이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있다.”14) 이처럼 시인의 처녀에 대한 갈망은 17세 소녀인 은교를 ‘소녀’가
아닌 ‘어린 처녀’로 인식하게 만든다.
가) 그러므로,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라고 나는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가능
한 대로 나는 ‘사실적’으로 고백하고 싶다. 보고 만질 수 있는 말들의 조합을
사실적 문장이라고 한다는 것은 너도 알테지. 네가 순결하고 착하고 깊고 빛난
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지만, 그렇게 모호한 어휘들로 내 사랑을 설명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15)
나) ‘처녀’라는 어휘가 얼마나 신비한지 너는 모를 테지. 시간의 장애는 이럴
때 나타난다. 어떤 낱말에서 각자 떠올리는 이미지의 간격은 때로 저승과 이승
만큼 멀거든. 가령 네게 연필은 연필이지만 마음 놓고 공부할 환경을 살지 못했
던 내게 연필은 눈물이다. “할아부지, 제 연필 좀 깎아주세요”라고 네가 말하면
나에겐 그 말이 이렇게 들린다. “할아부지, 제 눈물 좀 닦아주세요.” 단언컨대,
너와 나 사이에서 이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 마찬가지로 너에게 처녀는 그냥
처녀일 뿐이겠지만, 나에게 그것은 처음이고 빛이고 정결이고 제단이다. 예로
부터 신과 소통하는 신관도 ‘처녀’이고 신께 바쳐지는 제물도 처녀였어.16)
이런 ‘처녀=처녀성’에 대한 갈망과 환상에 의해 이적요는 은교를 처음 본
순간(허락도 없이 이적요의 집 마당에서 그의 의자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14) 위의 책, 11~12면.
15) 위의 책, 93면.
16) 위의 책, 9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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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어 있는 은교) 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적요가 살인을 저지르고 자
살하게 만드는 비극적 원인이 된 것이다.17)
이적요의 처녀성에 대한 갈망과 환상은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의 처녀
성’18)이라 할 수 있다. 이적요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은
교를 처녀로 숭배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은교의 처녀성은 처음부터 이적요
의 ‘환상’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이는 은교의 몸에 그려
진 헤나에서부터 짐작 가능하다. 이적요가 처음 본 은교의 가슴에는 헤나로
그려진 ‘창’이 있었다. “셔츠의 브이라인 아래에서부터 직립해 올라온 푸른
창날에 햇빛이 닿고 있었다.” “창날은 날카롭고 당당했다. 셔츠 속에 은신
한 채 이쪽을 노리고 있는 전사”19) 같았다. 이 헤나는 남자친구가 은교에게
그려준 것이었다. 게다가 은교는 서지우와 원조교제 비슷한 관계에서 발전
에 발전을 거듭하여 성관계를 처음으로 할 때에도 이미 처녀가 아니었다.
따라서 이적요는 자신이 욕망한 처녀성에 대한 갈망과 환상에 의해 실체가
아닌 은교를 사랑한 것이라 판단된다. 은교가 아닌 이적요 자신을 위해 만
들어진 은교를 사랑한 것이다.
Ⅲ. 지친 청년의 순결한 사랑
이적요의 사랑이 처녀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되었지만, 그럼에도 이적요
17) 이적요에게 ‘나의 처녀’인 은교는 그만큼 중요했다. 왜냐하면 시인이 생각하기에 은교
는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살지 않을 것 같았고, 자기반역이 있을 것 같았기 때
문이다. 즉 반란의 가능성을 지닌 은교였던 것이다. 그런 삶은 능동적이며, 순수하며,
문학으로 따지면 상급심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적요가 살고자 꿈꾸었던 삶이 바로 ‘나
의 처녀’ 은교의 삶이었다.
18) 연희원, 「키에르케고어의 여성관 비판」, 인문과학연구12,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
소, 2004, 481면.
19) 박범신, 앞의 책, 23면.
박범신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 연구 559
의 사랑은 은교에서 순수하고 순결하고 원숙한 사랑으로 아름답게 나타
나고 있다. 이는 이적요가 노년과 청년의 성적 욕망이 다르지 않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적요는 노년을 ‘지친 청년’20)으로 여겼던 것이
다. 여기서는 이적요의 이런 사랑이 지친 청년의 순결한 사랑으로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깟, 손거울. 내가 사줄게.” “엄마가 생일선물로 사준 거예요!” 그애의 눈
가에 눈물이 핑 도는 듯하다. “사준다니까. 똑같은 걸로 사주면 되잖아!”
“똑같은 거 사도, 똑같지 않아요!”
그애가 표독스럽게 말했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얘가!” 내 목소리에도 짜
증이 서렸다. 똑같은 거 사도 똑같지 않다? 말장난으로 나를 공박하자는 수작
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선 것은 그때였다. 당신은 한심
하다는 듯이 나를 한 번 쏘아보고 나서, 곧 벼랑으로 몸을 돌렸다. “뭐하시는
거예요, 선생님!” 내가 소리쳤고, “할아부지, 괜찮아요. 내려가실 건 없어요!”
은교도 황급히 손을 저었다.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60도가 넘는
경사면이니 절벽이나 다름없었다. 선생님은 바위틈에 손가락을 박아넣고 시곗
바늘처럼 암벽을 트래버스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키고 선생님을 보았다. 너무도 위험한 짓이었다. 미끄러지면
적어도 오십여 미터가 넘는 암벽 아래로 쑤셔박힐 터였다. 더구나 당신은 평소
에 암벽등반을 경험해본 적도 없었다.21)
이적요는 자신이 은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입 밖에 내어 말하
지 않는다. 대신 위의 손거울 사건처럼 이적요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20) “오호, 나는 청년이다. 팔을 뻗으면 근육들이 산맥처럼 일어서고 소리치면 모래바람
이 쏴아 솟아 오른다. 지쳤을 뿐이다. 지쳤어도 천금 같은 젊음이 내게 있으니 이대로
쓰러지진 않는다.” 위의 책, 333면.
21) 위의 책, 321~3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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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다. 손거울 사건은 서지우가 은교의 손거울을 실수로 떨어뜨리면서 시작
되었다. 그래서 손거울을 새로 사주겠다면서 은교를 달랬던 서지우인 것이
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적요가 마치 <헌화가>의 노인처럼
손거울을 되찾아준다. 이적요는 서지우가 떨어뜨린 거울을 찾으러 벼랑으
로 갔고, 은교에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손거울을 위험천
만한 바위틈에서 찾아 올라온 것이다.22) 이런 이적요의 모습이 얼마나 비
범했는지,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은 일제히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 사
건은 서지우와 이적요의 행동이 비교되면서 이적요의 행동이 더욱 의미 있
는 것으로 부각되고 있는 특징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헌화가>의 노
인은 건장한 청년들도 감당하지 못한 어려운 일을 능히 해낸 인물로 설정
하고 있다고 한다.23) 즉 이적요의 사랑은 서지우(청년)의 사랑보다 한 차원
높은 사랑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해석해 볼 수 있다. 더 놀라운 점은
이적요가 이렇게 간접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노화로 인해 육
체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택한 방법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가) 나는 조용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정말이지 그애가 내 허리께쯤에 이마
를 댄 채 몸을 물음표처럼 오그리고 잠들어 있었다. 아마도 천둥소리에 잠을
깼다가 무서워서 베개를 안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던가보았다. 간밤의 폭우는
꿈이었다는 듯, 햇빛의 첫정이 창가에 막 닿은 중이었다. 방 안은 발그레했다.
나는 그애가 행여 깰세라 숨을 죽이고 그애를 내려다보았다. 숙인 머리가 내
허리께에 있었고, 등과 엉덩이는 활대처럼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 하나는 내
무릎을 잡고 있었다. 큰 셔츠라서 한쪽 어깨와 가슴골이 반 이상 드러난 채였
22) 은교는 상습적으로 친어머니로부터 매를 맞고 살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폭행은 어머
니가 은교를 미워하기 때문에 한 행동은 아니었다. 지나친 가난과 고된 삶으로 인해
거칠어진 어머니였고,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은교였다. 손거울은 그런 어
머니가 은교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었다. 즉 손거울은 은교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의 증
표였던 것이다.
23) 하경숙, 「<헌화가>의 현대적 변용 양상과 가치」, 온지논총32, 온지학회, 2012, 173면.
박범신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 연구 561
다. 피부는 순은처럼 희고 명털이 오롯한 팔과 손등엔 푸르스름 작은 강들이
흘렀다. 따뜻한 곳을 찾아,24)
나) 이상도 하지, 내내 가만히 있던 나의 페니스가 그애 곁을 떠나오자 어느
사이 슬몃 일어서 있었다. 그것은 쾌청하고 단단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유
로웠고 편안했다. 그 상태가 차라리 우스웠다. 유쾌했다. 뭔가를 마침내 이루어
낸 듯한 기분도 들었다. 클클클, 하고 절로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25)
이적요는 가)와 나)처럼 은교를 안을 기회와 충분한 힘이 있었다. 위의
사건은 시인의 집으로 비오는 한밤중에 은교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엄마
에게 매를 맞은 은교는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은교는 시인의 집으로 피신
했던 것이다. 비를 맞아 온몸이 흠뻑 젖은 은교는 시인에게 자고 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시인의 집에서 샤워를 하고, 시인의 반바지와 흰 면티를
입고 욕실에서 나온다. 시인에게 그런 은교의 모습은 관능적이었다. 그때마
침, 은교는 혼자 자기 무섭다며 시인의 방에서 함께 자겠다 말한다. 시인의
가슴은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시인은 은교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랬
던 은교가 가)와 같이 다음날 아침 시인의 허리를 꼭 껴안고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은교는 시인을 할아버지로서 따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시인에게 키스를 허락했던 전적이 있는 은교이기 때
문이다.26) 은교는 시인이 자신을 여자로서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24) 박범신, 앞의 책, 308면.
25) 위의 책, 312면.
26) 시인의 가슴에 은교가 헤나를 그리던 날, 은교와 시인은 서로의 몸이 밀착하게 된다.
은교는 시인의 무릎에 앉는 상태가 되고, 그로 인해 시인의 페니스는 발기하게 된다.
그때 은교는 할아버지의 키스를 허락한다. 하지만 시인은 은교의 이마에 입맞춘다. 은
교도 시인의 이마에 키스한다. 은교의 키스는 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소녀의 키스가 아
니다. 은교는 서지우와 성관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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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감정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잠든 은교의 이런 자태는 더 할 수 없이 관능적일 것
이다. 만약 시인이 ‘음심’에 지배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손쉽게 일어날 수 있
는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잠든 은교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나올
뿐이다. 그리고 잠든 은교를 지켜준 행동은 나)처럼 시인을 만족스럽게 했
다. 시인의 페니스가 단단하게 발기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은교를 지켜
주었기에 누리는 기쁨인 것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원초적 욕
망’을 넘어선 한 차원 높은 ‘사랑’을 자신이 실천했다는 자부심이 시인의 기
분을 좋게 만든 것이다. 이런 기쁨은 이적요가 은교를 향한 음심과 늘 사투
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서 시인에겐 더욱 의미 깊다.
자연의 사이클을 따르면 된다고 여겨온 섹스의 욕망이 나를 긴장시킨 적은,
그러므로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은교를 향한 욕망은 확실히 강도와 빛깔에서
전에 경험한 것과 판이했다. 평생 처음 겪는 강도, 빛깔이었다. 포악스럽고
장렬했다.
가령, 그애가 목제 층계를 올라오다가 접질려 발목이 시큰거린다고 말하던
날도 그랬다.
그애는 아무렇지도 않게 양말을 벗고 탁자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몸매와
달리 발은 걀쭉했다. 발등은 하얗고 두 번째 발가락이 길었다. 빨간 매니큐어가
새끼발가락에만 칠해져 있었다. 그에는 시큰거리는 발목을 주물러볼 요량으로
허리를 한껏 구부리고 발목 쪽을 손을 뻗었다. 의자는 ㄴ자 형태였다. 나는
그애와 사선으로 앉아 있었다. “애걔, 이게 잘 안 닿네!” 그애가 혼잣말을 하며
나를 보았다. 허리가 뻣뻣한 건지, 손가락이 발목 뒤까지 원활하게 닿지 않았
다. 내 손이 그애의 시선을 따라나가 슬그머니 발목을 잡았다. 발목은 한 줌도
되지 않았다. 뒤꿈치 인대가 이내 손가락 사이로 쏙 들어왔다. 그애가 키킥,
웃었다. 불현듯 “저는요, 발목이 젤 간지럼을 많이 타요.
박범신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 연구 563
옴씬,
들어간 데요”라던, 그애의 말이 생각났다. 다행히 인대 자체는 멀쩡한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꾹꾹 눌러주었다. 그애가 간지럼을 참지 못해 몸을 꼬았
다. 짧은 반바지에 딱 맞는 셔츠 차림이었다. 그애의 허벅지는 얼룩 하나 없이
뽀얗고, 허리선은 날렵했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고 느낀 것은 그 순
간이었다. 내 손이 불가항력적으로 움직였다. 덥석, 그애의 종아리를 잡아 확
끌어당긴 것이었다. 아니다. 몸을 배배 꼬던 그애가 끝내 간지럼을 참지 못하고
일어서려다가 내 쪽으로 엎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종아리를 놓쳤다고 인식했을
때는 이미 그애가 반으로 접혀 내 무릎 위에 얹혀 있었다. 고양이를 안은 것처
럼 가벼웠다. 턱 밑으로 들어온 그애의 머리칼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내
입술이 벌써 그애의 머리칼 속으로 박혔다가 이마에 닿아 있었고, 오렌지를
따려고, 손이 가슴께로 포복을 시도했다. 나의 입에선 쒜쒜, 풀무 소리가 났으
며, 그애는 쌔근쌔근, 화답했다. 내 감각의 예민한 촉수들은 전인미답의 쪽빛
바다로 나아가는 데 아무런 장애도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27)
위와 같이 이적요는 어느 여자를 상대할 때보다도 은교를 만날 때 음심
이 강렬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심에 지배되지 않
는다. 이는 이적요가 노인의 사랑이 순수하고 순결하고 원숙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노년기를 바라보는 기준은 유연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이는 노
년을 바라보는 가치, 고정관념, 태도, 규범으로 나타나는 문화 때문이다. 노
년이나 노인을 일컬을 때 고정관념에 기초해서 가혹하면서 개인을 무시하
는 쪽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28) 그래서 흔히 노인은 성불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지우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은교가 이른 아
침에 시인의 방에서 시인의 옷을 입은 채 나오는 것을 보면서도 (그 모습에
27) 박범신, 앞의 책, 125~127면.
28) 김수영 외, 노년사회학, 학지사, 2009, 4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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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놀라고 경악하면서도)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고 무턱대고 짐작했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노인에 대한 성의식은 이적요
에 의해 깨지고 있다. 이적요는 노인의 성적 욕망은 페니스가 서지 않아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대게의 젊은 남성들처럼 여자를 “오로지 소유하고
싶었던 욕망”을 이겨내는 한 차원 높은 ‘사랑’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적요
가 은교를 사랑한다는 것은 시인의 성적 욕망을 확인한 것이지, 범죄도 아
니며 기형도 아닌 지친 청년의 순결한 사랑임을 확인할 수 있다.
Ⅳ. 남성중심의 성정체성과 성인중심의 성 비판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이적요는 자신의 사랑을 순결하게 지켜간다. 하지
만 이적요의 이런 순결한 사랑은 커다란 단점 또한 가진다. 그것은 남성중
심의 성정체성에 의한 사랑이라는 점이다. 이적요 뿐만이 아니다. 은교는
어느 한 부분에서도 한은교의 시선에서 이적요나 서지우와의 사랑이 서술
된 부분이 없다. 남성에 의해 한은교가 표현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은교는
시인의 눈엔 “어린 처녀”로, 유서를 집행하는 변호사의 눈엔 “어리고 맹랑
한 처녀”로,29) 서지우의 눈엔 “요망해 뵈는”30) 소녀이다. 하지만 이런 은교
가 하는 행동은 ‘어린’ ‘소녀’의 행동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자유롭다.
등장할 때부터 처녀가 아니었고, 원조교제를 하며, 서지우와 자고, 시인에
게 키스를 허락하는 ‘섹스의 일상화’가 일어나고 있는 은교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은교는 남성이 원할 때 성교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여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은교처럼 여고생이면서 성에 있어서만은
성숙한 여성은 남성의 환상 속 여성일 뿐이다. 물론 박범신이 그리고자 한
29) 박범신, 앞의 책, 17면.
30) 위의 책, 26면.
박범신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 연구 565
은교도 “불멸, 영원성의 표상”이었으며,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 진선미를
갖춘 완전한 것, 이룰 수 없는 꿈 같은”31) 존재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은교
는 실제로 존재하는 여고생이라기보다는 ‘남성의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어
린 여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은교에겐 몸만 있고 내면은 없”
으며 “은교는 오리무중”32)으로 나타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장편소설 은
교는 여성이 작품에 등장은 하지만 육체와 영혼이 있는 실존 인물이 아니
라, 가부장제 남성들이 욕망하는 환상속의 여성(남성들의 선택에 순종하는
부속품 여성)을 작품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은교는 커다란 장점도 가진다. 그것은 이적요
의 사랑이 ‘성인중심의 성’33)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가)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
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
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34)
나) 젊은 그들과 나는, 죽음으로 가는 마차를 함께 탄 동료승객이라 할 수
있다. 서로 위로하면서 손 맞잡고 함께 가야 할 동료가 아닌가.35)
31) 홍유진․박범신, 앞의 토론문, 20면.
32) 김나정, 앞의 서평, 355면.
33) 보편적으로 우리는 이성애중심적인 성, 성인중심의 성, 성기중심의 성을 정상적인 성
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박범신의 은교는 이 중에서도 성인중심의 성에 비판의
정신을 들이댄 작품이라 생각한다. ‘성인중심의 성’은 청소년의 성은 보호되어야 마땅
하다 생각했고, 노인의 성은 쇠퇴하였기에 배제되어 왔던 성의식이다. 서동진, 누가
성정치학을 두려워하랴, 문예마당, 1996에서 참조.
34) 박범신, 앞의 책, 250-25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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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 나)처럼 이적요는 늙는 것도 젊은 것도 다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하
고 있었으며, 그래서 젊은 그들과 자신은 “동료”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젊
은이의 욕망이 당연한 것이듯이 “노인의 욕망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져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적요는 노화로 인해 자신의 육체가 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거울 앞에서 “산화酸化를 거듭”36)하는 육체를
확인하기도 한다. 성긴 머리칼, 주름진 이마, 합족한 볼, 수많은 주름 같은
‘기능정도에 따른 노화’37)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자
신은 ‘당뇨성 심부전증’으로 죽어가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절망하기도
했다. 아무리 뭇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길잡이’라 여겨 존경하고 사랑한다 해도, 자신은 살아서도 “죽은 ‘시인의 사
회’에 속해 있고, 젊은 그녀는 세상의 더 높은 앞날을 바라보고 있”38)는 것
처럼 생각했다. 은교와의 사랑에 절망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절망
감은 노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노화는 생리
적, 심리적, 환경적 변화가 복합적이며 상호작용하여 일어나게 되면서 차츰
노년을 중심사회로부터 소외시키고 도태되도록 하며 단절에 이르게”39) 하
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은 우울증, 수동성, 경직성, 의존성, 조심성, 내향
성이 증가하게 된다.40) 그런데 박범신의 은교는 바로 이 점을 넘어서고
있기에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적요도 생리적, 심리적 노화로 인해 절망
했지만 그는 이런 절망감에 좌절하거나 굴복한 채로 주저앉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저항한다. 즉 성인중심의 성을 기준으로 삼아 노인의 성을 배제하는
의식은 사회적 편견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35) 위의 책, 280면.
36) 위의 책, 102~103면.
37) 김수영 외, 앞의 책, 41면.
38) 박범신, 앞의 책, 15면.
39) 한정란, 교육 노년학, 학지사, 2001, 79~84면.
40) 서병숙, 노인연구, 교문사, 1991, 12~15면.
박범신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 연구 567
“남자주인공 말인데요, 교통사고를 당하곤 성불구가 되잖아요?” 사회자가
묻고 “그렇지요.” 서지우가 대답했다. 교통사고로 성기능을 잃은 모티프는 영
화 <비터 문>에서 가져왔으나 그 교통사고를 여자주인공이 꾸며 만들었다는
미스테리적인 이야기 구조는 내 상상력이 만든 것이었다. 사회자는 그 대목을
화제로 삼으면서 좀더 대중적인 흥미를 유발할 만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데 성불구가 되고도, 선생님 소설에서처럼, 욕망은 그대로 남아 있을까
요?” “그러믄요.” 서지우가 냉큼 대답했다. “일흔이 다 됐는데도, 그러니까 그
것이 불능인데도, 욕망은 젊을 때 그대로인 사람, 봤습니다. 방송에서 말하기
좀 거북합니다만, 손녀딸보다도 훨씬 어린 소녀를 볼 때도 눈빛에 이글이글,
욕망의 불길이 솟구치는, 그런 노인을요. 본능이죠. 본능이란 원래 추한 거예
요. 소설 취재중 만난 어떤 여고생은 실제로 노인이 집적거리는 걸 여러 번
경험했다면서 본시창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만……” “본시창이라면?”
“모르십니까. 젊은 친구들 쓰는 인터넷용어로,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하는 말을
줄여서 ‘현시창’이라고 쓰거든요.” ‘현시창’이라는 저속한 은어는 얼마 전 나도
은교에게서 설명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럼 본능은 시궁창이라는 뜻으로 본시
창?” 사회자가 반문했다. “사회자님도 눈치 빠르시네요.” 그 대목에서 서지우
가 허헛, 하고 과장되게 웃다 말고 카메라를 쓱 바라보았다. 서지우의 시선이
똑바로 내게 날아왔다. 리모컨을 든 내 손이 갑자기 떨렸다. 예감의 바늘이
가파르게 움직였다. 저놈이 지금 나를 쳐다본 거야, 라는 예감이었다. 그렇다
면? 일흔이 다 됐다는 노인은 당연히 나를 지칭하는 것이 됐다.41)
서지우는 매스컴에서 ‘노인의 본능=이적요의 성욕’을 조롱한다. 서지우는
노인이 성욕을 느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궁창”과 같이 더럽다 말한다.
그런데 사회자 또한 서지우의 말에 동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지우도 사회
자도 노인의 성은 성인중심의 성에서 배제되는 것이 자연스런 것이라고 생
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노인의 성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
념이 자리하고 있다. “노인기 성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은 노인들 스
41) 박범신, 앞의 책, 7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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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로가 그들의 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일반인을 포함한 노인복
지 분야의 종사자까지도 노인들의 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악순환
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42) 하지만 이적요는 이런 의식은 사회적 고정
관념이며 비판되고 경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지우의 행동을
“전체 인류가 직면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짊어져오고 짊어진, 짊어져갈
존재의 장엄한 법칙을 가장 부정직한 방법으로 철저히 부정했으며 철저히
모욕했다.”43)고 판단하게 된다.
이적요는 결심한다. 세상 사람들의 보편적 수준보다 늙은 육체가 사실은
얼마나 예민하고 건강하게 제 촉수들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
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노화는 죄도 아니고 기형도 아니며, “늙은 육체는 외
피에 불과”44)한 것임을 보여주려 한다. 즉 이적요가 서지우를 살해한 이유
는 ‘노년의 섹슈얼리티’를 모욕했기 때문인 것이다. 늙는 것은 ‘그냥 자연일
뿐’이라고 목청껏 소리치고 싶은 갈망이 이적요를 살인자로 만들었고, 스스
로의 죽음까지 앞당기게 만든 것이다. 결정적으로 이런 이적요의 부르짖음
을 기존 사회가 외면해왔기에 살인자 이적요는 파렴치한이 아닌 비극적이
고 안쓰러운 인물로 독자에게 남겨지게 된다.
Ⅴ. 나오며
한마디로 말해 박범신의 은교는 노년의 섹슈얼리티를 긍정적으로 바
라보고 있는 작품이다. 늙고 병든 이적요 시인이 어린 은교를 욕망하고, 그
42) 백유미, 「노인기 섹슈얼리티 증진을 위한 집단상담 프로그램 개발」, 한남대학교 박사
학위논문, 2009, 1면.
43) 박범신, 앞의 책, 252면.
44) 위의 책, 202면.
박범신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 연구 569
런 시인의 욕망을 경멸하는 서지우와 서지우의 의식에 힘을 실어주는 (노
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부정적 사회의식에 저항하는 시인의 치열한 싸움
이 그려져 있다. 이적요는 노년의 섹슈얼리티가 범죄나 기형으로 치부되어
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노화는 젊음과 같이 자연스런 법칙일
뿐이라 생각했고, 노년과 청년은 죽음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동료로 여겼기
때문이다. 즉 노년의 성적 욕망은 청년의 성적 욕망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
운 것이며,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가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적요의 이런 주장은 살인과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표출되고 있
지만 그만큼 이적요는 ‘노년=죽음, 성불능’이란 사회적 편견은 반드시 수정
되어야 함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이런 박범신의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는 세 가지 양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처녀성에 대한 갈망과 환상이다. 이적요에게 은교는
‘나의 처녀’이다. 이적요는 은교가 처녀성을 지닌 여성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17세 소녀를 ‘나의 처녀’로 규정짓는다. 이런 이적요의 의식은 자신이 가
진 ‘처녀=처녀성’이라는 무의식적 갈망과 환상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래서
이적요의 눈에는 은교와 서지우의 상호적인 성교가 은교가 성폭행당하는
것으로 비춰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절대적 가치와 절대적 아름다움을 지
닌 처녀(은교)를 겁탈한 서지우는 죽어 마땅한 인물이 된다.
둘째, 지친 청년의 순결한 사랑이다. 이적요는 은교에서 순수하고 순결
하고 원숙한 사랑을 한다. <헌화가>의 노인처럼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이런 이적요의 행동은 청년의 사랑보다 한 차원 높은 사랑으로 나타나고
있다. 청년과 다름없이 건강한 성생활을 할 수 있지만, 이적요는 직접적인
성교를 시도하지 않고 ‘절제’하는 자신이 만족스럽다. 즉 이적요는 노인의
성적 욕망은 페니스가 서지 않아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남성중심의 성정체성과 성인중심의 성 비판이다. 이적요의 은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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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한 사랑은 단점 또한 가진다. 그것은 남성중심의 성정체성에 의한 이적요
의 사랑이었다는 점이다. 이적요는 자신의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은교를 사
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은교는 남성들의 선택에 순종하는 부속품 같은 여
성인물처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은교에서 이적요의 사랑은 ‘성
인중심의 성’을 비판하고 있다는 장점 또한 가진다. 젊은이의 성에 대한 욕
망이 당연한 것이듯이 노인의 성에 대한 욕망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박범신의 은교는 노인의 성을 배제하는
사회적 편견에 강력히 저항하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박범신의 은교는 사회의 외부로 내몰린 노년이 아니라, 사
회의 치열함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능동적 노년을 보여주고 있다. 이적요
는 노인에 대한 열린 시각을 가지도록 독자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본고에서는 노년의 섹슈얼리티에만 주목하여서 연구를 하였다. 그래서 부
족한 점이 많다. 왜냐하면 은교는 노년의 문제에만 주목하여 연구하기보
다는 더 넓은 안목이 요구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박범신이 은교에서 보
여주는 서사 방식의 치열함과 교묘함에 대한 분석도 필요할 것이며, 짧은
문장들이 이어지고 엮어지며 만들어내는 강렬한 문장력에 대한 평가도 필
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은교는 앞으로도 많은 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시각
에서 활발히 논의되어야 할 작품이다.
박범신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 연구 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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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은교에 나타난 노년의 섹슈얼리티 연구 573
이 논문은 2013년 9월 10일 투고 완료되어
2013년 9월 16일부터 10월 2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를 하고
2013년 10월 21일까지 심사위원 및 편집위원 회의에서 게재 결정된 논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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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Old Age sexuality through
Eungyo by Park Beom-Shin
Lee, Mi-hwa
*
45)
Park Beom-Shin the "Eungyo" admitted the 69-year-old yoga experience
miracles are aging and accordingly change the psychology of the elderly is a
work delicately depicted. John wonders of the elderly and young adults believe
andago different life. So 'old age' with insulting seojiwoo one is killed then
killed himself. But he's not such a regret or reflection. Rather, through his
historic mistake committed by the world says proudly. This transfer is in
compliance with yoga aging dismissed as a wild child dying elderly outside of
society, but of society, still in that fierce "tired young man as" active live and
condensed milk from which is to say old age. This paper Park Beom-Shin the
"eungyo" appeared to look at it through sexuality in old age.
Key Words : Park Beom-shin, Eungyo, sexuality in old age, aging, desire, virginity,
fantasy, male-centered sexuality, adult-oriented characteristics, resistance.
* Pusan National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