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젖고 나면 더 젖을 게 없어
그때부터 열이 난다는 걸
젖어본 사람은 안다
덜 젖으려고 발버둥칠수록
이미 젖은 것들이 채 젖지 못한 것들을
껴안고 뒹굴어 결국 다 젖고 만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비오는 날은 비를 맞고
바람 부는 날은 바람을 맞듯이
받아들이며 껴안으며 사는 삶이
얼마나 넉넉하고 건강한지를
비탈길을 걸어본 사람은
다 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철로 위에 선 여자야
강가에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사내야
더 젖어봐라 다 젖고 나면 펄펄 열이 나겠지
그 열로 다시 사랑을 데울지 누가 아느냐
절망하고 절망하고 하염없이 절망해도
절망할 수 있다는 절망도 희망 아니냐
비탈에도 햇살은 내리고
진흙탕물 속에서도 연뿌리는
꽃대를 밀어 올린다
'시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어머니가 며느리년에게 콩심는 법을 가르치다 / 하종호 (0) | 2020.03.04 |
---|---|
김규동 -3월의 꿈 (0) | 2020.03.04 |
이성부 -봄 (0) | 2020.02.28 |
도종환 -돈오의 꽃 (0) | 2020.02.24 |
나는 행복을 느낍니다 / 원의 시-나현수 (0) | 2020.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