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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시어머니가 며느리년에게 콩심는 법을 가르치다 / 하종호


외지 떠돌다가 돌아온 좀 모자란 아들놈이

꿰차고 온 좀 모자라는 며느리년을 앞세우고

시어미는 콩 담은 봉지 들고 호미 들고

저물녘에 밭으로 가고

 


입이 한 발 튀어나온 며느리년 보고

밥 먹으려면 일해야 한다고 핀잔주지는 않고

쪼그려 앉아 두렁을 타악타악 쪼고

두 눈 멀뚱멀뚱 딴전 피는 며느리년 보고

어둡기 전에 일 마쳐야 한다고 눈치주지도 않고

콩 세 알씩 집어 톡톡톡 넣어 묻고

 


시어미가 밭둑 한 바퀴 다 돌아오니

며느리년도 밭둑 한 바퀴 뒤따라 돌아와서는,

저 너른 밭을 놔두고 뭣 땜에 둑에 심는다요?

이 긴 하루를 뭣 땜에 저녁답에 심는다요?

며느리년이 어스름에 묻혀 군지렁거리고

가장자리부터 기름져야 한복판이 잘 되지,

새들도 볼 건 다 보는데 보는 데서야 못 심지

시어미도 어스름에 묻혀 군지랑거리고

 


다 어두운 때에 집에 돌아와 아들놈 코고는 소리 듣고

히죽 웃으며 며느리년에게 콩 남은 봉지와 호미 쥐어주고

시어미가 먼저 들어가 방문 쾅 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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