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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현상학/blog.naver.com/czech_love

<후설의 생애>

1. 유년기와 소년기(1859 - 1876)

에드문트 후설은 1859년 4월 8일 현재 체코의 프로스초프에서 양품점을 경영하는 유대인인 아브라함 후설(Adolf Abraham Husserl)과 쥬리 세링거(Julie Selinger) 사이에서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후설이 태어난 모라비아는 오늘날 체코의 영토이지만,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오스트리아인으로 태어났었다. 후설은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마치고, 중등교육을 받기 위해 빈으로 보내졌다. 그는 3년 간 빈에서 실업 김나지움을 마치고, 체코로 돌아와 고향에서 가까운 올로모우츠의 공립 김나지움에서 고등교육을 마쳤다. 당시 학업성적이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큰 가능성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 학업시절(1876 - 1887)

후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천문학자는 되려는 꿈을 안고 1876년 라이프치히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첫 3학기 동안 수학, 물리학, 천문학 강좌를 수강했고, 분트(Wilhelm Wundt) 에게서 철학 강좌를 들었다. 당시 분트의 철학 강의는 후설에게 큰 영향력을 주지는 못했다. 후설은 1878년 베를린대학으로 편입했고, 그곳에서 6학기를 보내게 된다. 후설은 이곳에서 세명의 수학자, 즉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쿰머(Ernest Kummer), 바이어스트라스(Carl Weierstrass)의 강의를 듣게 되고, 이 강의를 통해 엄밀한 수학적 사고 방식을 배우게 되었다. 후설은 이들 교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수리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불어 후설은 이 대학에서 파울센(Friedlich Paulsen)의 윤리학 강의를 수강했다. 이 강의는 수리철학에 머물렀던 철학에 대한 후설의 관심을 철학전반으로 확장시켜 후설이 중요한 철학적 문제에 다양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파울센 역시 후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가 보다 혁명적인 사유를 전개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마찬가지로 후설또한 후에 파울센에게서 받은 철학적 영향이 '깊고도 오래 지속되었다'고 말하였다.) 파울센은 윤리학은 그 방법에 있어서 수학보다는 자연과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특히 생물학과 밀접히 관계를 맺고 있고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당시 베를린의 철학적인 풍조는 헤겔의 독일 관념론이 비판받고 있을 때 였고, 자연과학적 실증주의가 확산되고 있었다. 이렇게 후설은 베를린에서 6학기를 보내는 동안 철학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수학자 쾨니히스베르거의 지도하에 학업을 마치기 위해 1881년 빈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후 이 대학에서 1883년 수학을 주제로 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883년 후설은 베를린 대학의 바이어스트라스에게서 베를린으로 돌아오라는 요청을 받았다. 바이어스트라스는 후설을 자신의 조교로 선임하여, 함께 수학을 연구하고자 했다. 후설은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베를린 대학에서 잠시 수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후 바이어스트라스가 병이 들어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자, 후설은 1883년 10월, 1년간의 군복무를 지원하게 된다. 이 군 복무 기간중인 1884년 4월 24일 부친이 사망했다. 군 전역후 후설은 비엔나로 돌아가 철학 연구를 하기로 결심했는데, 그는 빈대학에서 2년 동안 브렌타노(Franz Brentano)의 강의에 참가했다. 이 시기에 브렌타노가 후설에게 미친 영향은 말그대로 절대적이었다. 후설은 브렌타노가 흄과 밀의 철학을 소개하는 방식과 심리학, 윤리학, 논리학에 대한 그의 강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후설은 브렌타노와의 만남을 통해 전 생애를 철학 연구에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그에 따르면 "내가 일생 수학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철학에 인생을 바칠 것인가를 망설이고 있을 때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은 브렌타노의 강의였다." 후설은 무엇보다도 브렌타노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과 방법, 그것을 해결하는 명쾌함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이로부터 후설은 철학을 자신의 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철학 역시 신중한 작업의 영역이며, 엄밀한 학의 정신속에서 다루어질 수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후설은 항상 그의 스승인 브렌타노를 진심으로 존경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존경에도 불구하고, 후설의 운명은 스승의 학문적 테두리 내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1886년 4월 8일 후설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복음파 루터 교회에 등록했다. 그리고 같은해 8월 6일 결혼 직전 기독교로 개종한 유태계 여성인 말비네 슈타인시나이더(Malvina Steinschneider)와 결혼했다.

 

1886년 10월 브렌타노는 당시 할레(Halle) 대학의 슈툼프(Carl Stumpf) 교수의 조교로 후설을 추천했다. 후설은 슈툼프 밑에서 심리학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졌고, 1년후인 1887년에 교수자격논문인 『수 개념에 관하여 : 심리학적 분석』을 완성했다. 후설은 수학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하여 수 개념을 분선하였다. 그는 논문에서 수 개념에 대한 수학적 논리적 해명보다는 심리학적 분석을 이용하였다. 이 논문은 그의 학문 활동 및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이 논문을 완성한 다음 슈툼프 밑에서 사강사 자격으로 대학 강단에 첫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다.

 

3. 할레 대학 시절(1887 - 1901)

후설은 1887년부터 1901년 사이에 할레 대학에서 인식론, 형이상학, 논리학, 윤리학, 수리철학 및 심리학 등을 강의했다. 할레 대학 초기에는 후설 스스로 "나는 논리학과 연역학문의 논리 모두 심리학에 그 철학적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지배적인 확신에서 출발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스승 브렌타노의 심리학주의에 심취해 있었던 시기이다. 사실 수학에 대한 심리학적 토대는 당시로서는 지배적인 주류경향이었다.

 

하지만 후설은 자신의 입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포기하게 된다. 후설은 이미 1895년경부터 자신의 심리학주의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었고, 비판적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나는 주어진 학문을 심리학적 분석에 근거하여 해명하려는 방법이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논리학의 본질에 관한, 특히 인식작용의 주관성과 인식 내용의 객관성에 관한 일반적 방식으로 점점 나아가게 되었다." 후설의 심리학주의에 대한 입장변화는 여러가지 요인에 근거했지만, 그 중에서 특히 프레게(Gottlob Frege), 나토르프(Paul Natorp), 볼차노(Bernard Bolzano)등의 논리적 객관주의가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후설은 1894년 나토르프와 서신을 주고받기 시작하여 그가 1924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토르프는 자신의 논문에서 "논리적 심리학주의는 객관적인 논리적 영역을 주관적인 심리학적 영역으로 부당하게 이행하는 것이다."라고 논박한 바가 있다.

 

그리고 1894년은 프레게가 수학의 기초에 대한 후설의 심리학적 분석에 대해 비평을 한 해이기도 하다. 프레게는 후설이 수 개념을 분석하는 태도를 비판했다. 즉 후설이 심리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프레게는 수학의 기초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심리학주의'라고 평가했으며, 이러한 비판 이후 후설은 초기에 자신이 지닌 '심리학주의'를 포기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후설은 1895년부터 강의를 통해 심리학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후설은 심리학주의에 대한 비판의 결과로서 『논리 연구 1 : 순수 논리학 서론』을 출판한다. 이책에서 후설은 순수 논리학의 입장에서 경험심리학뿐 아니라, 나아가 심리학주의 전반을 비판한다. 후설은 이 책에서 논리학과 심리학에 의거하여 정심하려는 밀(John Stuart Mill)과 립스(Theodor Lipps)의 심리주의적 입장을 비판하고, 나아가 브렌타노의 경험 심리학적 분석 방법 조차도 불충분 한것으로 거부한다.(후설의 현상학이 확립된 이후, 비판의 대상은 여기서 제시한 심리학주의를 넘어서 자연주의, 나아가 실증주의 전반으로 확대된다.) 이 책은 당시 많은 학자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그결과 후설은 철학자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이 책의 출판을 통해서 후설은 딜타이(Wilhelm Dilthey)와 러셀(Bertrand Russell)과 친분을 갖게 되었다. 특히 딜타이는 후설의 이 저서를 "밀, 콩트 이래의 근본적으로 새로운 철학의 분야를 대표하는 책"이라고 극찬을 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소위 '뮌헨학파'라고 불리게 되는 현상학의 일파 역시 이 책을 통해 후설의 지도를 받게 된다.

 

그러나 후설의 철학적 사유는 단순히 논리적 객관주의의 확립에 만족할 수 없었다. 후설은 심리학주의와 객관주의의 대립을 몸소 겪으며,그 두입장의 지양을 통한 새로운 문제영역을 추구하게 되었다. 후설은 그러한 탈출구를 '지향성' 개념에서 착안하였다. 지향성 개념이란 곧 '주객관의 상관관계', '존재와 의식의 상관관계'를 해명하는 문제이다. 인간이 지향적 대상의 객관성에 주목하면 수학자나 논리학자의 입장이 성립하지만, 그 대상과 관계하는 의식작용으로 연구의 시선을 돌리면 현상학의 입장이 생겨난다. 여기서 후설은 대상을 형성하는 의식작용을 기술하고자 하였다. 즉 현상학은 대상을 그 형성 작용과 관련지어 다루는 인식론적 입장이다. 이렇듯 그의 현상학은 처음부터 심리학과의 대립을 극복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었다.

 

1901년 『논리 연구 2』가 '현상학과 인식이론'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판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이 책은 6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는데, 네 편의 짧은 에세이는 순수 논리학에 직접적인 관심을 둔 문제를 다루고 있고, 두편의 긴 에세이는 '지향적 경험과 그 내용들'이라는 생소한 제목을 지닌 글이다 특히 이 마지막 두 에세이들은 순수 논리학보다는 심리학주의에 관한 글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후설이 자신이 『논리 연구 1』에서 비판했던 바로 그 심리학주의로 되돌아갔다고 오해를 하였다. 하지만 후설의 의도는 순수 논리학에서 연구된 대상들을 구성하는 의식작용 과정들을 기술하려는 것이었다. 후설은 이 새로운 연구를 '현상학'이라고 부르며, '기술적 심리학(브렌타노가 부여한 의미)'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1903년에 후설은 이미 새로운 현상학을 규정하는데 몇가지 과오를 범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기술 심리학 자체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인간 경험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후설은 『논리 연구 2』가 출판된 이후, 브렌타노의 기술 심리학이 가지는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기술 심리학은 중요한 심리학적 분야이지만, 인간 지식의 인식론적인 측면에서의 확고한 토대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험 심리학, 기술적 혹은 현상학적 심리학과 '철저한' 의식의 학으로 이해되는 '현상학적 철학' 이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해졌다.

 

1901년 괴팅겐 대학의 교수회는 후설에게 철학과 '원외 교수' 자리를 제안했다. 후설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괴팅겐 대학에 취임하게 되었고, 1916년 까지 재직했다.

 

4. 괴팅겐 대학 시절(1901 - 1916)

1901년 9월 괴팅겐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후설은 폭넓은 저술과 수많은 강의에 바쁜 나날을 보내며 매우 열심히 작업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논리 연구 1』를 출간한 이후 6년 동안 후설에게는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우선 1905년 괴팅겐 대학의 교수회는 후설의 '학적 명료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를 정교수로 임명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에 후설은 동료 교수로부터의 멸시를 당하는 심리적인 경험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1906년 프로이센 교욱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대학 교수회의 결정을 번복시키고 그를 정교수로 임명하였다. 즉 이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어려움이 아니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철학자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기의식이었다. 『논리 연구 1』를 출간하고 5년이 지난 후, 순수 논리학의 토대에 관한 철학적 탐구에서, 후설은 새로운 철학 자체의 이념에 도달할 수 있는 철학적 영역을 발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이념을 설명한 올바른 길을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1906년 말, 후설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영향 아래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했다. 즉 그는 칸트연구를 통해 자신의 철학적 과제를 '이성 비판'이라는 영역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그는 '이성의 비판'이라는 보편적 과제의 해결이 철학자로서의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후설은 칸트를 깊이 연구한 결과, '선험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선험적 환원'을 통해 '선험적 전환'을 이룬다. 그 결화 후설의 현상학은 기술적 심리학의 단계에서 선험적 현상학의 단계로 나아갔다. 후설은 이 시기에 현상학에 관한 강의를 시작하였고, 많은 중요한 논문을 썼지만 그 대부분을 미간행으로 남겼다.

 

이 시기의 철학적 작업에서 주목해야할 몇가지를 꼽자면, 우선 후설의 1904 - 1905년 강의인 「현상학과 인식론의 주요 문제들」을, 그 중에서도 객관적 시간과 이 속에서 시간적 개체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객체의 구성 및 이 구성의 기초인 현상학적 시간의 자기 구성을 다룬 부분을 주목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시간 의식의 흐름에서 생생한 역사성의 지평구조를 밝힘으로써 이른바 후기사상의 발생론적 분석의 지침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주목할 또 하나는 '제펠트 블레터'(Seefelder Blättern)이다. 제펠트 블레터는 후설이 1905년 흔히 뮌헨학파라고 불리는 현상학도들과 함께 알프스 산중의 휴항지 제펠트에서 개치한 연구회에서 쓴 초고이다. 이 미발행 원고는 환원(Reduktion)의 사상괃 ㅐ상 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후설은 이 원고를 바탕으로 「1907년 강의」를 진행했다.

 

후설의 선험적 현상학의 보다 진척된 모습은 1907년 4월 26일부터 5월 2일까지 괴팅겐 대학에서 행한 '5개의 강의'에서이다. 이 강의들은 후설이 "현상학과 이성비판의 주요부분"이라고 특징지은 보다 포괄적인 강의에 대한 입문서였다. 이 '5개의 강의'가 후에 유고를 정리하면서 『현상학의 이념』으로 출간되었다. 선험적 현상학의 본격적인 모습은 이미 이 저술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후설은 논리학(『논리 연구 1』)에서 인식론 즉 기술적 심리학(『논리 연구 2』)으로 관심을 전환한 이후, 선험적 현상학(『이념들 1』)에 이르는 새로운 방법, 하나의 길목에 해당하는 연구이다. 후설은 이 강의에서 자신의 현상학적 환원을 명확하게 진술했을 뿐 아니라, 의식 내에서의 대상 구성이라는 사상을 다룬다.1 후설은 자신의 이 새로운 입장을 경험적 현상학으로 이해된 기술 심리학과 구별되는 선험적 현상학이라고 부른다.

 

후설은 1911 - 1913년 사이 경험 심리학과 현상학적 심리학의 관계 문제에 다시 한 번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 당시 이른바 '이성적 심리학' 또는 '형상적 심리학' 그리고 후에 '현상학적 심리학'이라고 불린 완전히 새로운 학문의 도움으로, 경험 심리학과 철학적 현상학 사이의 틈을 연결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초의 궤적은 『로고스』지의 논문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러한 관점은 『이념들』(1913)에서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다.

 

후설은 1910년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중에 시작하여 다음해 초까지 작성하여 『로고스』지 창간호에 「엄밀학」을 발표한다. 이 논문은 비교적 짧은 논문이지만, 현상학의 구상을 일반 대중에게 극명하게 전한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자연주의', '역사주의'를 문제 삼고 있다.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여러 요구가 생겨나자, 그는 자신의 선험적 현상학의 체계적 모습을 밝힐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1913년 공동편집인으로 참가하여 창간한 <연지>에 『이념들 1 : 순수 현상학에 대한 일반적 서론』을 발표한다. 이 글은 순수의식의 본질구조를 통해 선험적 현상학의 방법과 문제를 제시한다. 사실 본래적으로『이념들 1』은 3부로 계획된 것 가운데 1부에 불과하다. 이미 그 당시 완성된 원고와 그 후 계속된 수정안인 『이념들 1, 2』은 다양한 세계의 구성 및 학문의 토대 문제를 다룬 것이며, 본래 구상의 제2부이다. 그러나 제3부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은 다루지 못했다. 물론 본인도 선험적 현상학 즉 현상학적 철학의 이념을 밝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만 그 스스로 그 성과에 만족하짐 못하여 1929년 『논리학』까지 16년간 어떠한 저술도 발표하지 않았다.

 

5. 프라이부르크 대학 정교수 시절(1916 - 1928)

1916년 후설은 그 해 은퇴한 리케르트(Heinrich Rickert)의 후임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1927년 은퇴할 때까지 이 대학에서 정교수로서 근무했다. 프라이부르크에서의 12년은 그에게 몇몇 개인적으로 불행한 사건들이 있긴 했다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후설의 전 생애에서 가장 생산적이고 행복한 시기였다.

 

후설은 1917년 5월 3일 "순수 현상학, 그 탐구 영역과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취임강연을 하였다.2 그리고 같은 해 그는 "인간성에 대한 피히테의 이상적 구상"이라는 주제로 세 번의 강의를 했다. 후설은 1913 - 1923년 사이 특히 '구성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탐구의 결과 『이념들』에서 제시된 현상학적 심리학에 대한 설명은 현상학적 심리학과 선험 현상학의 차이가 철저한 방식으로 아직 정립되지 못했음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새로운 학문 즉 현상학적 심리학은 경험 심리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며, 그에 대한 철저한 탐구가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1922년 6월 런던 대학에서는 「현상학적 방법과 현상학적 철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는 이 강연 내용을 확장하여 1922 - 23년 강의 「철학 입문」3과 1923 - 24년 강의 「제1철학」4를 개진하였다.

 

하이데거는 1919 - 1923년 사이 후설의 조교로 있었다. 그는 1926년 『존재와 시간』의 초고를 후설에게 헌정했으며, 후설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현상학" 항목 해설을 공동집필하기 위해 하이데거를 초청했다. 그러나 공동기획을 통해 협력하려 했던 그들의 노력은 실패하고 말았다.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가 후설이 개진한 것과는 실질적으로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후설은 1928년 봄 하이데거에게 교수직을 넘기고 은퇴하였다. 그러나 그의 철학적 작업은 계속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은퇴는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향한 출발점이었다.

 

6. 은퇴 이후(1928 - 1938)

후설은 은퇴 후 1928년 4월 22 - 29일 사이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현상학과 심리학」, 「선험적 현상학」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 그리고 체스토프(Lev Shestov)를 만나 파리에서의 강연을 수학했다. 그리고 후설은 1928년 11월부터 1929년 1월까지 2개월간 『논리학』을 저술하여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후설은 술어적 판단 자체의 진리와 명증성은 판단의 기체들이 주어지는 근원적인 선술어적 경험의 대상적 명증성에 근거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형식논리는 선험논리에 의해 정초되어야만 참된 존재자에 관한 논리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 연구 1』이래 오랜 침묵을 지켜선 순수논리학의 이념을 더욱 명확하게 밝힌 것이다.

 

후설은 1929년 2월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며, 23일과 25일 양일간 소르본느 대학의 데카르트 기념관에서 선험적 현상학을 데카르트적 전통에 따라 체계적으로 묘사한 「섬헞거 현상학 입문」을 강연했다. 레비나스가 주로 변역한 '강연요약문'은 1931년 프랑스어판 『데카르트적 성찰』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현상학을 방법론적으로 받아들인 쉘러(Max Scheler)와 하이데거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파된 선험적 현상학이 추상적 관념론이나 독아론으로 오해된 자신의 철학을 해명하려는 시도이다. 후설은 그들이 이해하는 현상학은 소박한 자연적 태도에 입각한 하나의 심리학적-객관적 인간학주의로서 '세속적 현상학'일뿐 선험적 현상학에는 이르지 모한다고 평가한다. 후설은 1930년 3월 이후 자신의 「파리강연」을 독일어판으로 출판하는 일을 필생의 작업으로 삼고 수정해 간다. 이 수정원고는 이후 1973년에『상호주관성 3』으로 출간되었다.

 

한편 후설은 칸트학회의 초청으로 1931년 6월 프랑크푸르트 대학, 베를린 대학, 할레 대학에서 「현상학과 인류학」을 강연했다. 이것은 1989년에 출간된 『논문과 강연들 1922 - 37』에 수록되어 있다. 그는 이 강연에서 철학을 인간학적으로 정초하려는 딜타이 학파의 생철학이나 쉘러나 하이데거의 시도를 비판하고, 철저한 자기성찰과 자기책임에 입각한 선험적 현상학의 이념을 데카르트의 성찰과 관련지었다. 이 강연의 예기치 않은 성황에 힘입어 '감정이입', '타자경험', '상호주관성' 등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시 수정했지만, 이것 역시 만족할 수 없었다.

 

후설은 1932년 8월 자신의 조교로 있던 핑크(Eugen Fink)에게 위임하여 「선험적 방법론」을 구상하게 하고 검토해갔다.5 그러나 그 내용이 선험적 현상학의 이념에 충실함을 인정하면서도, '완전히 다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념들 1』이래 추구한 '데카르트적 길'이 일거에 선험적 자아에 이르지만, 상세한 예비설명이 없기 때문에 선험적 자아를 가상적인 공허한 것으로 만들었고, 따라서 자연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선험적 현상학을 이해시키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출판을 보류하였다.

 

1933년 이후, 후설과 그의 부인은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비록 두 사람은 강제 수용소에서 운명을 마치지는 않았지만, 모든 유태인에게 가해졌던 피박으로 상당한 고초를 겪었다. 후설은 1934년 4월 남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철학 교육으로 합류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고, 미국으로의 이주 가능성에 대해 숙고햇지만, 결국 제안을 거부했다. 그해 8월 후설은 프라하에서 개최된 철학자대회에 편지를 보내 현대 사회에서 철학이 수행해야 할 과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이때는 나치정권이 등장하여 철학이나 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 합리주의에 대한 반감이 팽배하고, 유럽 문명에 대한 회의로 위기감이 감돌고 있었던 때이다. 그는 자신이 야심차게 준비한 원고를 강연하지 못하고, 서면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설은 1935년 5월 비엔나에서 "유럽 인간성의 위기에 있어서의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다. 그리고 그해 11월에는 프라하에서 "유럽 학문의 위기와 심리학"을 강연했다. 하지만 1935년 말 독일정부는 그에게서 강의권을 박탈하고, 적극적인 학회활동을 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1936년 1월 24일 필로소피아 창간호에 싣기로 예정된 『위기 1부』 원고를 프라하에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해 9월에는 프라하의 원고를 보안하여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창간된 필로소피아 1권에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제 1,2부」의 내용을 발표한다. 제1부는 유럽 인간성의 근본적 삶의 위기로 표현되는 학문의 위기를 논하고, 제2부는 그리스철학가 수학, 갈릴레이 이래 근대과학의 발생과 데카르트로부터 칸트에 이르는 근대철학사를 목적론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는 『위기』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1937년 1월 이후 건강은 악화되었고, 생산적인 사고를 하기 어렵게 되었다. 당시 그는 『위기 제3부 '선험적 문제의 해명과 이에 관련된 심리학의 기능'』6을 수정중이었다. 제3부 A는 출판사로부터 교정본을 받았고, 증보판을 위한 '머리말'도 작성된 상태였다. 계속된 수정작업과 건강 악화로 결국 제3부는 관련 논문들 및 부록들과 함께 그의 사후 1954년 『위기』로 출간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본래 5부로 저술하려던 계획상 미완성이다. 그리고 그해 6월 독일 정부는 제9차 세계 철학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후설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그 후에도 그의 건강은 계혹 악화되어 결국 1938년 4월 27일 일기로 타계했다.

 

  1. 후설은 이 '5개의 강의' 이후, 이 원고를 여러 강의에서 인용하여 사용한다. 1909년에 행한 "현상학의 이념과 그 방법", 1910년과 1911년에 걸쳐서 이루어진 "확대된 환원에 관한 강의", 1912년의 "현상학적 환원에 관한 강의", 1909년의 그것과 유사한 강의인 1915년에 나온 "정선된 현산ㅇ학의 문제들"이 그것이다.
  2. 1917년부터 '심리학'은 현상학적 철학을 설명하는 데 끊임없는 비교의 극으로 사용된다. 후설은 실제로 현상학적 철학의 토대를 다루는 모든 저술에서 경험 심리학에 대한 관점을 설명하고, 이 두학문의 차이와 관계를 말하려고 했다.
  3. 유고로 남아있음
  4. 1956년 제 1권 및 1956년 제2권으로 출판됨, 이 '제1철학'은 독단적 형이상학을 극복하고, 이성비판이라는 철학 본래의 이념을 복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더불어 '제1철학'이라는 명칭은 1930년대에는 점진적으로 '선험철학'으로 대체된다. 그는 이 책에서 제1철학에 이르는 방법으로, 데카르트의 방벚벅 회의를 통한 자기의식의 확실성에 도달하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길과 심리학과 실증과학에 대한 비판을 통한 간접적인 것등을 모색하였다.
  5. 이 자료는 1988년 『제6성찰 1,2』로 출간되었다.
  6. 이것은 다시 A. 미리 주어진 생활세계로부터 되돌아가 물음으로써 현상학적 선험철학에 이르는 길과, B. 심리학으로부터 현상학적 선험철학에 이르는 길로 나뉜다.

     

<후설사상의 전개>

1. 고전적인 견해

1.1 파버(Marvin Farber)의 7단계 분류

1) 수학시대

① 학위 논문, 1882.

2) 심리학주의 시대

① 「수의 개념에 관하여」, 1887.

② 『산술』, 1891.

③ 「기본적 논리학의 심리학적 탐구」, 1894.

3) 형식논리학과 기술의 논리학으로서의 현상학 시대

① 「추리계산과 내용논리학」, 1891.

② 「1894년 이후의 논리학에 관한 독일 문헌의 관한 보고」, 1894.

③ 『논리연구 1,2, 1990 - 1901.

4) 전 선험적 현상학 시대

① 「1895년부터 1899년에 이르는 논리학에 관한 독일 문헌에 관한 보고」

② 『시간의식, 1928.

5) 선험적 현상학 시대

『논리연구』제2판, 1913.

『이념들 1』, 1913.

『후기』, 1931.

④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현상학> 항목. 1931.

6) 형식적 논리학과 선험적 논리학의 종합 시대

『논리학』, 1929.

『경험과 판단』, 1939.

7) 현상학과 역사 시대

『위기』, 1936.


1.2 핑크(Eugen Fink) : 후설이 재직한 대학을 중심으로 한 분류

1) 할레 대학 시절(1887 - 1901)

- 할레 대학 사강사 시절

① 『대수학의 철학

② 『논리연구 1

2) 괴팅겐 대학 시절(1901 - 1916) : 현상학의 체계를 형성하던 시기

- 괴팅겐 대학 원외 교수 및 정교수를 지내던 시기

『시간 의식

『엄밀학

『이념들

3) 프라이부르크 대학 시절(1916 - 1938)

- 프라이부르크 대학 시기 및 정년 후

『논리학

『후기

『성찰

『위기

 

1.3 디머(Alwin Diemer)

1) 인식론 시기 : 『논리연구』 - 『이념들 1,2

* 과도기 : 『경험과 판단

2) 형이상학 시기 : 『성찰』, 『논리학』, 『위기

 

2. 새로운 견해

2.1 슈피겔베르크(Herbert Spiegelberg)의 구분

1) 전현상학기 : 1887년에서 1900년 경 까지의 할레 대학 시절

- 『논리연구 1』 : 심리학 주의 비판

2) 현상학기 : 1901년에서 1905년경까지 괴팅겐 교수 시절

- 『논리연구 2』 : 인식론에 대한 탐구

3) 순수 현상학기 : 1906년부터 말엽까지의 시기

(1) 정적 현상학기(1906 - 1928년) : 의식의 횡적 분석

(2) 발생적(동적) 현상학기(1928년 이후) : 의식의 종적(시간적) 분석

 

2.2 한전숙(전북대/서울대 철학과 교수, 저서 『현상학』 中 48 - 58쪽)

1) 전현상학기 : 심리학주의

2) 현상학기 :

(1) 초기 : 심리학주의 비판, 기술적 심리학

『논리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시기

② 1896년 여름 학기의 논리학 강의에서 시작된다고 봄.

(2) 중기 : 선험적 관념론(으로서의 현상학) 혹은 선험적 현상학

① 기술적 심리학에서 선험적 관념으로 전회

② 약 1904년 경 시작하여 『이념들 1』에서 절정에 이름.

(3) 후기 : 생활세계 현상학

① 주요 후기 작품 :『논리학』(1929), 『성찰』(1931), 『위기』(1936)

② 현대기적 관점에서 1930년 전후에 시작된다는 견해(고전적인 견해).

③ 1920년대 이전까지 소급하여 중기의 첫 머리에서 시작된다는 견해(란트그레베Ludwig Landgrebe)

 

 

<후설사상의 발전과정>

후설의 사상을 그 내용에 따라 분류할 때, 전현상학기(심리학주의 비판), 현상학기(인식론의 문제), 순수 현상학기(학적 확실성의 기초를 다룸)로 나눌 수 있다.

 

1. 전현상학기 : 기술적 심리학

전현상학기에서 현상학기로 넘어가는 단계에서의 그의 입장은 '기술적 심리학기'로 표현된다. 현상학이라는 개념을 빌어 자기주장을 아직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설은 물리적 사실과 심리적 사실을 구분했던 심리학자인 브렌타노의 강의를 수강한 후 수리철학과 논리학의 기초를 심리적 사실에 두고자 했다. 사실 후설과 브렌타노처럼 수학적 공리나 논리학의 법칙, 즉 모든 학문의 기초를 심리적 사실을 통하여 정초하고자 하는 입장인 심리주의는 19세기의 지배적인 조류였다. 19세기는 과학적 합리주의가 완성되는 시기이며, 과학적 성과가 대단히 축적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심리적 사실을 검증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발흥했고, 추상적 관념인 학문도 과학에 의해 정초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많은 학자들이 과학의 기초인 수와 논리마저 심리학으로 정초지우려 했다. 예컨대 논리학을 심리학으로 기초지우려고 했던 밀의 <논리학 체계The system of Logic>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후설은 프레게와의 논쟁을 거치면서 논리학을 심리학으로 기초지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심리주의를 포기하게 된다. 그는 이런 심리학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자기의 입장을 기술적 심리학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후설은 어떻게 심리주의를 비판하는가? 후설의 심리주의 비판의 첫 번째 핵심은 의식 작용과 의식 내용의 구분에 근거한다. 후설은 심리주의자들이 의식작용과 의식내용을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학적인 공리와 논리적인 법칙을 심리학으로 기초 지우려 했다고 본다. 후설에 따르면 지각에는 '작용'과 '내용'이 있다. 이때 지각되는 '대상'은 '작용'도 아니고 심리적 사실도 아니다. 그러나 의식작용 속에 포함된 내용이라고는 간주할 수 있다. 수학적 공리와 논리적인 법칙은 의식의 내용이지 심리적 사실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렇게 후설은 의식 내용이 의식 작용에 의해 기초지어질 수 없다고 본다. 즉 논리적인 법칙을 심리학을 통해 정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후설은 어떻게 의식 내용이 심리적 표상, 즉 심리적 사실과는 구분된다고 말하는 것인가? 후설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하나의 예시를 든다. 어떤 곳에 교탁이 있다고 가정해볼 경우, 그때 인간이 교탁을 인식한다면 그 교탁에 대한 이미지(심적 표상)을 가지게 되고, '이건 무엇인가'라고 묻게 된다. 이 경우 인간이 물은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심적 표상에 관해서 물은 것인가? 즉 '그것은 교탁이다'라는 말은 심적 표상을 말한 것인가? 후설에 따르면 이 때 말해진 것은 심적 표상과는 다른 것이다. 여기서 '교탁'이라는 말은 비슷한 다양한 심적 표상에 적용되며, 그들 심적 표상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심적 표상을 규정하는 이 (인간에게 언어적으로 이해되는) 작용은 심적인 표상과는 다른 것으로서 의식 내용이다. 즉 심리적 표상에 대한 '규정성'은 흔히 심리적 표상 그 자체로 인식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명백히 다른 것이다. 후설은 이런 사실을 밝히고 난 후, 규정성으로의 수학적 공리나 논리적인 법칙은 심리적 사실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렇듯 심적 표상과 의식의 내용으로서의 규정성을 다르게 설정함으로써 후설은 상대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심적 표상은 개인마다 다른 주관적인 개별적인 것이다. 이런 표성으로 지식의 근거를 말한다면 상대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개인마다 주어져 있지만 동일한 것으로 등장하는 규정성을 지식의 근거로 말한다면 상대주의에 봉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 현상학기

이처럼 후설은 심적 표상과 구별되는 의식의 내용인 규정성을 지식의 근거로 삼았다. 이어서 후설이 그 규정의 근거가 무엇인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분석하는 시기가 현상학기이다. 여기서 후설은 자기의 철학적 입장은 '기술적 심리학' 대신에 '현상학'이라고 언명한다.

 

그는 현상학의 이념을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엄밀한'이란 말의 의미가 중요한데, 후설에서 '엄밀한'이란 말의 의미는 수학과 논리학의 정확한 학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모든 학문의 표본이 과학이고 과학이 수학적인 방법을 채택하는 '정확성'의 학문이라면, 현상학은 정확한 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학'을 추구하는 것이다.1 그렇다면 '엄밀한'의 의미를 알아보아야 한다. '엄밀한'이란 '명증성'의 주장이다. 명증성은 "제3자가 개입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절대성의 영역"이다. 명증성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인식론적 도식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주체 - 심적 표상 - 교탁

 

이 세가지 요소에서 '주체'가 가진 심적 표상이 환상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식적으로는 심적 표상의 가능 근거라고 보여지는 대상을 만져 보고, 발로 차보는 등의 일을 할 것이다. 즉 물리적인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심적 표상의 확실성을 '제3자'인 교탁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므로, 이런 비교를 통한 확실성의 추구를 '정확성의 영역'이라 하고, 이것은 과학이 대변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볼 경우 이렇게 제3자를 통해서 진리성을 확보하는 행위에서, 심적 표상과 그 밖의 무엇과의 비교가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문제점이 생긴다. 즉 엄밀히 따져서 심적 표상과 그 심적 표상을 유발했다고 여겨지는 외부의 사물이 동일하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주체'와 '심적 표상'과의 관계는 제3자의 개입이 필요없는 '명증적'인 것이다. 즉 이 관계는 엄밀히 따져볼 경우에도 타당하게 증명된다. 후설은 이러한 명증성의 영역을 발판으로 그의 철학인 현상학을 '제1철학'이라 한다. 제1철학이란 말을 통해 모든 학문의 기초 원리를 발견했다고 언명하는 것이다. 이 것은 정확한 학도 엄밀한 학에 기초하지 않으면 성립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학으로서의 철학적 이념을 말한 것이 이 현상학기이다.

 

3. 순수(선험적) 현상학기

후설의 사상은 현상학기를 거치면서 순수(선험적) 현상학기로 넘어간다. 후설에 따르면 현상학은 사실에 관한 학이 아니라 본질에 관한 학이다. 사실이란 사물2, 사건이라는 말과 같이 어떤 일이 참되게 있음, 구체적으로 경험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져 있음의 의미이다. 본질이란 심적 표상을 묶어주는 다른 무엇(규정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상학은 규정성에 대해 논하므로 객관으로서의 사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본질 탐구를 그 목적으로 한다. 이렇듯 본질 탐구의 시기가 선험적 현상학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겠지만, 후설이 말하는 '본질'은 전통적인 의미의 본질과는 매우 다르다. 전통적으로는 본질은 거의 언제나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대문이다. 따라서 '본질'에 대한 후설의 새로운 정의를 이해해야 한다. 더불어 후설의 본질개념을 이해한다면 그의 현상학이 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가도 파악할 수 있다. 현상학이 본질을 탐구 대상으로 한다면 본질은 무엇인가? 후설은 초월적 본질과 내재적 본질을 구분하여 제시한다. 그렇다면 초월적 내재적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이 두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플라톤의 철학적 체계를 도입해볼 수 있다.

 

플라톤은 세계를 이분하여 현상계와 이데아계로 나눈다. 현상계는 인간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대상의 세계이고, 이데아계는 정신을 통하여 인식되는 세계이다. 참된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데아를 인식해야 한다. 이데아는 현상계의 가능근거로서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의 정신과 별도로 존재하는 이데아를 인식함으로써 이데아로 나아갈 수 있다. 이처럼 이데아계는 모든 사물이 그것을 지향하는 본질이자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데, 후설의 초월적 본질 개념은 이러한 본질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후설은 이러한 초월적 대상으로서의 본질은 존재하는가 않는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판단을 중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후설은 초월적 본질에 대한 판단중지와 더불어 내재적 본질을 판단의 대상으로 제시한다. 내재적 본질은 주체의 의식 내에 들어와 있는 대상의 본질이라는 의미에서 내재적이다. 후설은 초월적인 본질에 대한 판단 중지를 선언함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을 비판하고 자신의 제1철학을 천명한다. 그는 이런 본질에 대한 인식을 직관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직관이라는 개념은 어떤 것을 매개로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알려진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본질에 대한 후설의 입장을 대상으로서의 본질, 주관으로서의 본질 두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후설은 전통적 인식론에 비판하지만, 구조적으로는 인식론적 도식(본질과 직관)을 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선험적 현상학기의 후설은 자신의 현상학을 선험적 관념론이라고 칭한다. 여기서 '선험적'이라는 뜻은, 초월적 본질과 내재적 본질을 구분하고, 내재적 본질에 관한 탐구에 있어서의 선험적이다. 무엇인가를 인식함에 있어서 인식의 원천을 되물어갈 때, 간접적인 매개를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의 선험적이다. 즉 모든 인식의 원천을 물어갈때의 선험적이다.3 그리고 선험성을 해명하는 영역의 의식이기에, 즉 대상이 의식 내에 있는 것이기에 관념론이라고 한다.

 

4. 생활세계

수많은 철학적 문제에 대한 독자적인 해설을 내놓은 후설은 후기에 들어서 타인의 명증성 문제에 주목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인간이 자기의식을 명증적으로 확인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타인의 의식 확인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일상적인 예로서, '아무리 말해도 넌 내 마음을 몰라',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 '넌 나의 말을 못알아들어' 등이 다 타인의 의식에 대한 확인을 염두해 둔 말이다. 즉 의식이 독특한 양식으로 존재하는 데 이것을 증명할 양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나의 의식에서는 확인되지만 타인의 의식에서는 불확실한 이 것을 극복하기 위한 만족할 만한 설명을 제기하고자 한다. 즉 후설은 유아론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노력의 결과로 후설은 '생활세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생활세계가 유아론의 극복조건이 된다고 생각했다. 생활세계란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학교를 가는 등 인간이 살고 있는 일상세계이다. 즉 생활세계는 '상호주관성'을 전제로 하므로 유아론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후설의 입장이다. 더불어 이 생활세계는 엄밀한 학인 현상학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왜냐하면 과학은 현상 인식의 논리로서 그것의 가능근거인 일상세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과학은 일상세계를 추상화할 뿐이다. 그러나 후설이 말하는 본질이라는 것은 이 생활세계에 발딛고 있다. 그는 주어지는 것 자체가 구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의 근거가 생활세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1. 여담이지만 후설은 데카르트의 코기토의 발견을 정확한 학인 과학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2. 일정한 물체에 인간의 노동이 감이된 것
  3. 따라서 이것은 칸트의 선험적이라는 의미와는 다르다.

 

<현상학의 특징과 지향점>

흔히 전통적인 철학에 대한 반대의 흐름 속에서 나타났다고 여겨지는 현대철학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조류를 꼽자면, 첫째는 영국에서 발흥해 미국으로 이어진 분석철학을 꼽을 수 있고, 두번째로는 유럽대륙의 지배적인 철학으로 자리잡은 현상학을 들 수 있다.1 현상학은 학문 일반, 그리고 학문적 분과들의 상호 관계의 토대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특수한 철학적 태도 겸 방법론으로서, 사물의 객관적 성격을 탐구하는 일에 매진하는 대신 현상에 대한 주관적인 탐구를 추구한다. 이러한 흐름은 특히 프랑스에서 인간의 주관성을 더욱 강조한 실존주의로 이어져 현대철학의 중요한 조류로 자리잡게 되었다.


1. 현상학의 배경과 문제의식

후설의 현상학은 그가 회고하듯 유럽 학문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그의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된다. 그는 이 위기를 '합리주의의 붕괴'라고 진단했고, 그 위기에 맞서 인간 이성을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이성과 학문전반이 위기에 쳐한 이유는 자연과학적 방법론만이 인간에게 만물을 객관적으로 설명해낼 수 있다는 거짓 확신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대의 많은 철학은 사회와 인간을 물리적 자연의 법칙에 따라 설명하려고 시도했었다. 물리적 자연의 인과성이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봄으로써 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뒤따른 것이다. 되짚어 생각해 보면 유럽의 문화와 정신적 삶은 '진리의 탐구', 즉 '철학'과 연결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철학은 몇 개의 과학으로 나뉘어져 수학적 원리가 지배하는 자연과학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정신에 대한 이성적 설명은 과학적 법칙의 일부로 취급되었다. 결국 인간의 정신은 물리적 법칙이 적용될 수 있는 객관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후설은 모든 것을 물리적 세계의 법칙을 통해 다루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반대하여 정신의 본질을 더욱 이성적인 방법으로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현상학을 내놓게 된다. 이것은 외부 세계와 인간의 의식을 어떠한 매개물도 없이 만나게 하는 것을 추구하므로 아주 방대하고도 복잡한 시도였다.

 

2. 현상학의 특징

2.1. 과학에 대한 비판

현상학은 '과학적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따라서 현상학의 학적 이념과 거기서 비롯되는 사상적 체계는 과학적 이념과는 완전히 다르게 설정되었다. 후설에 따르면 실증주의는 '객관적인 실재의 존재함'을 상정하고 그것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즉 과학에 있어서 탐구대상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나'가 인식하는 탐구대상이 실제 그것과 일치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학은 애초에 세계와 사물들의 존재가 명백하다고 전제하는 '자연적 태도'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설은 이러한 구도만으로는 해명하지 못할 영역과 지평이 존재한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명증성'의 영역을 마치 인식의 대상인 것 마냥 객관적인 것, 즉 '확실성'과 '정합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하여 이해하려는 과학의 시도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런점에서 후설은 '객관적인 실재'를 탐구하는 것은 '정확한 학'인 과학의 영역임에 확실하다만, 그 과학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하며 이를 '엄밀한 학'인 철학이 담당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2.2 전통적 인식론에 대한 비판

더불어 이는 전통적으로 과학의 토대가 되었던 인식론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즉 현상학은 인간의 의식을 세계와 단절된 고립된 것으로 규정하는 전통적인 관념론, 예컨대 데카르트주의적 자아나 칸트적 본체계와 같은 주-객 이원론의 극복이다. 반대로 의식을 외부세계에 종속시키는 주-객 이원론의 극복인 실재론과 유물론또한 반대한다. 이렇듯 현상학이 어려운 이유로, 첫째, 그것이 과학적 태도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객관적인 실재'에 대한 믿음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 그것이 앞서 있었던 학문적 체계 즉 전통적인 '관념론'과 '실재론'의 인식론에 대한 비판이자 극복이기 때문이다.

 

3. 현상학의 목적

현상학의 가장 큰 주안점은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재정초하려는 것이다. 현상학은 일상적으로 '주관'(개인의 삶)과 독립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객관'(세계)가 사실 그렇지 않으며, '객관'이라 불리는 세계가 사실 인간이 현상으로 경험함으로써 존재함을 주장하려고 한다. 후설에 따르면 현상학의 주목적은, 객관적 세계의 근본적 의미가 인간의식과 연관되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데 있다. 즉 후설은 실증과학이 서로 반대되는 양극으로 분리시키벼러민 주관-객관의 두극이 사실 서로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해서, 현상학으로서 철학의 진정한 자기회복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는 항상 의식에 대한 세계로서 인간에게 개현된다. 즉 세계의 의미는 항상 의식에서, 그리고 의식을 통해서만 구성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의식은 그 자신과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한 의식이다. 이렇듯 현상학은 의미를 의식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해서 대상에만 있는 것도 아니라 이 둘 사이의 지향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에 학문적 전제를 두고 있다.

 

4. 현상학을 통해 배워야할 점

현대의 시대정신은 과학이다. 그런데 현상학은 과학적인 사고 속에서 인간성의 상실 및 소외을 우려하는 만큼, 지금 인간의 전반적인 사고 방식을 비판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현상학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에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사고활동은 곧 시대정신이고, 한 시대정신을 비판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식 구조를 비판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 시대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야만 진정한 자기를 확인하고 비판적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예컨대 인간은 공기로 숨을 쉬고 있다. 그런데 이 공기가 오염되었다고 해도 인간은 숨을 쉬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은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지 않게 된다. 이런 점에서 현상학은 비판적 관점의 유지를 위해 적당한 거리를 잡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적정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태도 변경이 요구된다. 이러한 사유의 태도 변경이 현상학의 구체적 접근 양식이다. 스스로 그런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선대의 철학이었던 대륙의 합리론, 영국의 경험론, 독일의 관념론 모두 체계의 철학이었으나, 현상학은 체계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현상학은 체계를 비판하기 위한 최소한의 체계만을 내포하고 있다. 현상학에 있어서 철학은 지식도 체계도 아니다. 결국 현상학을 통해 특정체계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만 현상학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에 알아야 한다. '손가락을 들어 달을 가리키니 사람은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을 본다'라는 비유마냥 손가락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후설의 개념을 걸림돌 삼아 개울을 건너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저멩서 후설 현상학의 장점 가운데 하나로서 그것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개방된 탐구방법이라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예컨대 후설의 현상학을 매개로 한 사르트르, 하이데거의 작업은 후설이 말하고자한 이 시대를 지배하는 과학적 사고의 비판과 문명 비판을 잘보여준다. 특히 1930년대 이후 현상학은 프랑스로 주무대를 옮겨 갔는데, 선술한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실존주의적' 현상학, 가다머와 리쾨르의 '해석학적' 현상학, 데리다의 '해체주의적' 현상학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현상학은 후설과 하이데거의 혁명적 시야를 보다 쉬운 일상적 언어로 옮겨 놓았다. 이렇듯 독일에서 프랑스에로 현상학이 전파됨에 따라 어렵기로 악명 높은 후설과 하이데거의 용어가 쉽게 풀렸을 뿐만 아니라 그 적용범위가 심리학을 넘어 문학, 정치학, 종교학, 사회학에 가지 적용되며 확산되었다.

 

  1. 실제로 초기의 분석철학과 현상학의 문제의식과 탐구주제는 매우 유사하다.

     

<후설의 문제의식-자연주의에 의한 유럽의 위기>

1. 유럽의 위기(후설의 문제의식)

후설은 현대 유럽의 문화와 학문에 위기가 도래 했다고 파악했다. 그렇다면 그 위기는 무엇인가? 주관-객관을 설정하는 근대 인식론의 이원론적 사고방식에서 유래한 자연과학은 19세기에 들어서 급속도로 발달하며 막대한 성과를 산출했고, 그 방법론은 하나의 학문적 이념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학문 대상을 경험적으로 관찰하거나 측정하며, 그 결과를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추구하는 '정밀성'의 이념이다. 당연히 이러한 방법론은 우선 자연을 주제로 삼는 자연과학에만 국한되었으나, 자연과학이 막대한 성과를 이룩하면서부터 자연과학이 아닌 학문들, 즉 과학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고유한 학문 영역을 추구하고 있었던 철학마저도 자연과학적 사고방식에 영향을 받으면서 세계를 여러 영역으로 나누고, 그것을 정확하고 정밀하게 다루고자 하는 목표를 지향하게 되었다.

 

이런 과학적 방법론을 추구하는 것을 다른말로는 실증주의 혹은 자연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자연주의는 대상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그것을 객관화하고 정밀한 과학적 관찰과 실험 그리고 법칙의 수학화로서 자연을 설명하는 자연과학의 방식을 다른 분야에도 적용해야한다는 이념이다. 따라서 많은 현대의 과학적 실증주의의 입장은 세계를 고립된 객체로, 그리고 의식을 육체를 벗어난 주관으로 환원시킨다. 그래서 인간의 주체성은 생활세계에서 행하는 그 창조적 활동성과 작용에서 소외되어 그 자신의 의미창출 작용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대신에 단순히 하나의 사물로 전락하고 만다. 즉 인간이 대상들 중의 한 익명적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본질적 동일성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이렇듯 후설은 현대 유럽인의 삶이 이 실증주의에 의해서 황폐화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현대유럽이 위기에 쳐했다고 진단하며, 모든 것을 자연화하려는 근대과학의 자연주의적 경향을 비판한다.1 이러한 유럽의 위기의 대표적인 현실 사례가 이데아에 대한 실천적 믿음과 이상에 대한 과소평과와, 민족들의 조화로운 생활을 모색하는 이성적 바램을 과소평과하는 폭력적인 비이성적 파시스트 운동이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유럽학문이 과학의 정밀성을 모방함으로써 그것을 뒤따르려 한다고 비판하며 어떤 학문이 학문성을 가지는 것이 꼭 정밀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후설은 현대 과학이 정확히 '인간' 생활세계에 체험에 두었던 자신의 뿌리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면서, 근대적 세계관인 기계적 세계관을 비판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학문은 인간이 삶을 목적으로 하면서 발전하였다. 즉 생활세계를 토대로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학문의 세계가 나타나고, 이 학문의 세계가 다시 생활세계로 돌아가 생활세계의 발전을 도모했다. 그런데 후설이 보기에 근대 과학은 생활세계를 망각하고 추상화된 학문의 세계를 구성한다. 후설은 갈릴레이를 "발견하는 천재임과 동시에 은폐하는 천재"라고 불렀는데 이런 이유에서이다. 근대 과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를 수학화되고 추상화된 정밀한 세계로 바꾸어 놓았다. 후설은 이 생활세계를 개방성으로 이해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세계가 열릴 수 있는 장으로 생각하였는데, 어떤 하나의 세계를 설명하는 방법에 불과한 과학이 참된 존재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유럽문화의 위기를 이러한 생활세계의 망각에서 유래한다고 보았고 이를 극복할 것을 주장한다.

 

즉 후설이 자연과학의 적법한 역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후설에 따르면 실증과학적 지식이 지식일 수 있는 것은, 다시 말해 실증과학이 실증적 사실로서 정초하려는 객관성의 이념은 그 자체 철학적 탐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자연적 태도는 철학적 태도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후자에 선행할 수 없는데, 극단적 과학주의는 이러한 위계질서를 붕괴시켰으며, 따라서 유럽 학문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즉 후설은 철학이, 좀 더 좁게 보자면 자신의 철학인 현상학이 과학적 학문의 이상에 엄밀한 기반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진정 믿었다.

 

2 유럽위기의 근원 : 자연주의

후설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형성된 유럽의 철학적 상황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통해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을 수립하고자 했다. 19세기 중반은 헤겔에 의해 절정에 달한 사변적인 독일 관념론은 붕괴된 반면에 경험에 기초한 개별 과학들은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철학은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에 처하게 되고 이러한 정체성의 위기 속에서 개별 과학의 비약적 발전에 편승해 여러 가지 철학 사조들이 등장하였는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후설이 그 기원을 철저히 분석해 들어가면서 비판하고 있는 '자연주의'(Naturalismus)이다.

 

자연주의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로 비약적으로 발전한 자연 과학, 특히 수학과 물리학의 성과에 크게 자극받고 고무되어 제3자적 관찰, 실험, 수리화 및 법칙화 등의 물리학적 방법이 모든 학문의 참된 방법이며, 역사학 등의 관념적인 학문조차도 수학 및 물리학적 방법을 사용 할 때만 참된 의미의 학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적 입장이다. 즉 자연주의도 철학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물리적으로 주어진 것만을 실재로 인정하기 때문에 관념적인 철학의 영역을 사실상 배제한다. 이런 점에서 자연주의의 핵심적 사고방식은 실증주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식과 같은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것을 물리적 실체처럼 사실로서 자연화하기 때문이다. 이들에 의해서 의식현상은 살아 있는 지향적 체험으로서의 그 본질적 지위를 잃고, 물리학·화학에서 다루는 그런 경험과학의 객관적 사실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자연적 태도'는 "일상 생활에 있어서나 학문에 있어서 인식 가능성이 갖는 어려움에 관해 무관심한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즉 인식 비판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 세계의 존재를 자명하게 주어진 것 정도로 생각한다.

 

2.1 자연주의 비판

2.1.1 자연주의의 편협함

후설은 자연주의가 본질적 대상 혹은 이념적 대상이나 의식 등과 같이 물리적 대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 방식과 인식 방식을 지니는 대상들을 물리적 대상처럼 취급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오류를 저질렀다고 비판한다. 이런 점에서 자연주의가 범한 근본적인 오류는 자연·정신·예술·종교·본질·의식 등 그 존재와 인식 구조에서 서로 구별되는 다양한 영역이 있음을 무시하고 '실증과학'(자연주의)이라는 특정 영역에만 타당한 존재와 인식 원리를 일반화하여 모든 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려고 시도하는 데 있다.

 

자연주의의 입장을 따를 경우 모범적인 예로 등장한 영역을 제외한 여타의 영역을 그 영역의 본질에 합당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된다. 즉 후설에 따르면 자연주의는 참다운 인식이 구현을 추구하는 철학의 근본적인 이념과 상반되는 일종의 '사이비 철학'이다. 이처럼 '사이비 철학'인 자연주의야말로 후설이 말한 철학에서 촉발되는 '유럽학문 일반과 유럽인이 처한 실존적 위기'의 진원지이다.

 

2.1.2 자연주의에 있어서 인식을 반성할 때 일어나는 모순

- 자연주의에 따르면, 인식은 "인식하는 주관의 그것"이다. 따라서 '주관'적인 인식과 '객관'적인 인식대상은 구별된다. 그렇다면 객관적 과학의 인식, 즉 자연 과학과 정신 과학의 인식은 초월적이다. 만약 객관적 과학의 인식이 초월적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인식과 인식대상이 합치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며, 어떻게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그의 대상과 틀림없이 맞아떨어질 수 있는가? 즉 보통 자연적 입장은 가장 타당하고 확실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자연적 입장에 설 경우, 인식하는 자는 그의 주관적 체험을 결코 참으로서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자연적 입장이 인식과 인식의 의미, 인식 대상과 인식 주체의 상호 관계에 관한 문제를 따질 경우, 유아론, 회의주의으로 귀결된다.

 

2.2 자연주의의 사례 : 심리학의 자연과학화

모든 경험과학은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 이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심리학 역시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모델로 삼아, 그 방법을 동일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이러한 믿음에 따르면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을 자연 속의 한 사물처럼 하나의 '사실'로 보고, 그것을 대상적으로 관찰하고 설명해야 한다. 즉 심리학을 '경험 심리학'(과학적 심리학)으로서, '심리적인 것(심리 실재와 심리 사실)을 다루는 실험과학'으로서 정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자연주의에 입각해 인간의 마음이 시·공간적인 실재 사물과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심리학에도 자연과학적 방법론이 적용됨으로써 심리학이 과학화되었다.

 

이러한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인간 마음의 존재를 신체와 구체적으로 결합된 것으로 환원하고, 나아가 세계와 신체, 신체와 신체의 연관 관계에서 나타나는 결과물로서 이해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마음에 자연과학의 인과성 모델을 적용하여 심리적 존재를 그 자체로 고유한 대상 영역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신체라는 물리적 사물과 결합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심리적인 것을 물리적 자연의 연관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을 객관적 자극과 주관적 반응의 관계에 의해 파생되는 것으로 보고, 양적으로 '실험'이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처럼 과학적 심리학의 과제는 심리적인 것을 물리적 자연의 연관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점에서 심리학자들은 신경학, 물리학, 생리학적으로 인간마음에 접근하였다. 이러한 초기 심리학의 대표적인 결과물이 인간의 심리현상을 물리적·신체적 반응을 토대로 해명하는 행동주의이다.

 

2.2.1 후설의 비판

요컨대 과학적 심리학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순수한 의식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단지 모든 심리학적 사실을 물리적인 것과 관련된 사실로만 간주하고, 그러한 심리적 사실의 규칙성을 실험을 통해 확정하고 입증하려는 학문에 해당한다. 따라서 과학적 심리학은 심리적 사실의 규칙성을 실험을 통해 확정하려는 심리학에 불과하기 때문에, 심리학 본래의 문제 설명 범위와 그것을 확보하는 방법을 제한한다. 즉 후설에 따르면 과학적 심리학은 물리적 존재와 심리적 존재의 영역적 차이를 간과함으로서 심리적 사실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심적인 삶의 본질을 분석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과학적 심리학이 심리적 사실의 법칙을 조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과학적 심리학의 주제는 실재 세계에 시공간적으로 실재하는 사물들에서 '발견되는 심적인 것'에 국한되기 때문에, 이 심리학을 통해 심적인 것 '그 자체'를 탐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후설이 심리학의 과학화 일반을 비판한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후설은 과학적 심리학이 '자연주의적', '객관주의적' 성향을 띄는 경우에 대해서는 완강히 반대했다. 즉 과학적 심리학은 정확한 학문으로서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심리-물리적 실험을 계획하고, 가능한 한 정교한 실험 도구를 만들고, 실험 도중에 생길 수 있는 오류나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실험의 방법이 학문의 객관성을 규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실험의 방법이 심적인 사실들의 상호 연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의 방법은 심적인 삶 그 자체에 대한 분석의 필요성을 간과할 뿐 아니며, 심적인 삶 자체의 고유한 의미또한 이러한 방식으로는 성취될 수 없다. 심적인 것 그 자체에 대한 고유한 지평과 개념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적 심리학은 심리적인 것 자체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리적 경험의 의미에 무엇이 속해 있는지를 분석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주의'를 진리로 선언하고 과학이 아닌 것을 배척하는 고집을 부려서는 안된다. '심적인 것 그 자체'를 탐구하는 비과학적 학문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1. 마찬가지로 그는 심리학주의 역시 자연주의의 한 변종중 하나로서 파악한다.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

1. 철학의 '정밀성' 추구 비판

근대 이후 자연과학의 급속한 발달에 비해 철학은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에 직면했으며, 그것은 전통적인 철학의 주제였던 형이상학(자연의 철학)과 신의 철학에 대한 회의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철학 자체의 고유한 의미는 퇴색되었고 기껏해야 과학이 방법론으로서 채택한 수학의 정밀성을 철학적 방법론의 모델로서 삼는 것이었다.이러한 경우의 대표적인 철학자가 바로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이다. 데카르트는 절대확실한 지식의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방법적 회의를 수행했는데, 이는 다른 명제들을 연역해 낼 수 있는 수학의 공리에 해당하는 정밀성의 방법론이다. 즉 데카르트를 비롯한 근대철학자들의 노력은 전반적으로 자연과학적인 학문 이념과 그 방법론을 철학에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양적으로 측정하여 수학화하는 현대과학의 정밀성을 관념적인 학문과 철학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주의의 오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정밀과학 이외의 학문에서 정밀한 개념을 확보하려고 시도할 경우 오히려 사태 자체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 부적합한 개념만을 획득하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2. 철학의 재정초

이런 점에서 후설은 "철학은 모든 것의 원리, 뿌리에 관한 학이다"라는 전통적인 철학의 이념을 근원적으로 새롭게 부활시킴을 통해 현대 학문일반이 처한 위기, 더 나아가 현대인이 처한 실존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우선 후설은 모든 학문이 고유한 탐구 영역을 갖는다고 주장했으며, 학문의 두 대표적인 영역으로서 사실을 연구하는 사실학과 본질(형상)을 연구하는 본질학(형상학)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경험학은 사실에 대한 학문이다. 이러한 경험학은 "일상 생활에 있어서나 학문에 있어서 인식 가능성이 갖는 어려움에 관하여 무관심한 사고"인 자연적 사고에 근거한 학문이다. 근대 자연과학은 물리적 자연, 실재, 사실을 정확하게 다루고, 근대 심리학또한 마음을 관찰 가능한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심리-물리적 자연, 실재, 사실을 다룬다. 따라서 경험과학은 사실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벗어날 수도 없다. 본질학은 철학적 사고에 근거한 학문, 즉 철학이다. 철학적 사고란 "인식 가능성의 문제들에 대하여 엄밀한 명증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고"이다. 따라서 본질학은 사실학과는 대비되며, 사실의 본질을 다루고자 한다. 즉 본질학은 사실학의 탐구 대상의 보편적 본질과 그 본질 구조를 해명하는 학문이다. 사실학이 자신이 다루는 실재나 사실의 근본적인 근거와 토대를 물어간다면, 결국 그 연구대상의 본질을 물을 수 밖에 없으므로, 본질학은 사실학의 토대이다. 즉 본질학은 경험과학이 소급되는 철학의 한 분과로서, 대상 영역의 본질을 밝히고 그 대상 영역의 범위와 내용을 규정한다.1 이렇듯 인식론적 반성은 자연적 입장과 철학을 분리시키고, 현상학을 성립시키는 최초의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후설은 사실학과 본질학의 학문적 성격의 대비가 물리적 자연의 범위과 심적 존재의 범위 모두에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물리적 자연의 경우, 경험 사실로서 자연을 다루는 경험적 자연과학이 성립하듯이, 그 사실의 본질을 다루는 순수 자연과학, 즉 논리학, 수학(수리철학), 시간론, 공간론 등이 가능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심적 존재의 영역에서는, 경험 심리학에 대비되는 순수 심리학이 가능하다. 이 순수 심리학이 바로 정밀성의 이념과는 구별되는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인 현상학이다. 엄밀성이란 학문적 인식을 정초하려는 자기 책임의 성격을 띈 개념으로서, 절대적 토대위에 근거한 보편학의 수립을 위해 모든 학문의 궁극적 정초인 선험적 개념이다. 어떤 개념이 엄밀하다 함은 그 개념이 명석성과 판명성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명석성이란 과학적 탐구 방법론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반면에 철학적 탐구 방법론이 적용될 수 있는 속성이다. 즉 이점과 관련하여 엄밀성이라는 개념이 수학 등과 같은 정밀과학의 중점적 개념인 정밀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님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엄밀성이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해명함과 동시에 그에 이르는 방법적 절차를 이론을 통해 제시해야할 필요가 있다.

 

3. 엄밀성

과학은 더 이상 소급해 올라갈 수 없는 확실성, 즉 절대적 통찰의 기초 위에 획립되어 있는 엄밀성을 결여하고 있다. 후설에 따르면 철학은 모든 학문의 보편적 토대로서, 과학이 결여하고 있는 학문의 절대적 정초를 수행하는 것을 이념으로 삼아야 한다. 즉 철학은 경험적인 것과는 구분되는 '순수'한 본질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해 경험과학이 다루어온 경험 실재·경험 사실을 이해하기 앞서, "탐구대상, 그 자체는 무엇이며,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이다.흔히 경험학문적 차원에서의 진리는 판단과 판단대상 사이의 일치로서 확증되는 지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개 그러한 확증은 여전히 다른 정당화 기제에 근거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경험 사실을 다루는 경험과학에 선행하는 연구 과제가 탐구대상 그 자체의 정체 해명이 요구되는 것이다. 따라서 후설에 따른다면 철학의 영역인 '엄밀성(명증성, 절대적 소여성)'이란 학문적 활동을 근거지우는 가장 근원적인 인식영역의 보편적 속성으로, 정당화·확증의 토대가 자기에게 있는 인식대상의 속성, 즉 엄밀히 따져볼때 그것의 정체나 본질을 그것 자체에서 파악가능한 인식속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탐구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란, 그 인식이 대상 그 자체에게 있는 판단 유형을 통해 증명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모든 학문이 근본적으로 명증성의 영역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철학은 이런 명증성의 이념을 수행하는 학문이기에 모든 학문일반을 정초하는 보편학 혹은 제1학문으로서 성립한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현대의 의식에 철학적 탐구의 뿌리로 되돌아갈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현상학을 철학의 근본적인 새출발로서 제안한다. 즉 완전히 새로 시작하여, 인간의 삶과 체험에서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볼 수 있도록 이론적으로 다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1. 후설은 개별 대상의 보편적 본질을 영역이라고 부르며, 이 영역의 보편적 의미를 밝히는 존재론을 영역 존재론이라고 부른다. 즉 본질학은 다른 말로 영역 존재론이다.

     

 

 

<선험적 관념론으로서의 현상학>

1. 현상학적 방법론

후설은 현상학을 정형화된 형식을 가지는 체계로서가 아니라, 제1철학의 이념을 만인이 접근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보편적인 이념을 설정하기 위한 철학적 운동, 혹은 엄밀학으로서의 철학을 수립하기 위한 철학적 방법론으로서 제시했다.

 

1.1 현상학적 판단중지(에포케, 현상학적 환원)

후설은 모든 학문의 토대로서의 보편학인 철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주제라 볼 수 있는 '정체 해명', 즉 엄밀성의 인식을 위한, 혹은 본질직관을 위한 보편적 방법론으로서 '현상학적 환원'(현상학적 판단중지)을 제시했다. 이러한 작업은 경험과학이 다루어 온 객관적인 시·공간내에 존재하는 심리-물리적 실재를 괄호치는 것으로, 일상인이 취하는 보통의 태도인 자연적 태도에 변화를 유도한다. 후설에 따르면 일상적인 생활과 보통의 과학은 세계에 관계한다. 소박한 일상인들은 세계의 존재를 무엇보다도 자명한 것으로 믿고, 인간은 세계에 대한 지속적인 경험을 가진다. 그러나 일상적인 이러한 믿음과 달리, 감각적 경험에 의해 보증되는 세계의 명증성은 절대적인 최초의 명증성 수준이 아니다. 결국 세계 경험의 명증성은 학문의 정초를 위한 전제로 삼기에 합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엄밀한 개념을 획득하는 작업은 흔히 생각하듯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애초에 일상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대다수의 인간들은 보통 자연적 태도를 취하며 자신의 시선이나 가치관의 기준을 대개 (그 명증성의 수준이 확실하지 못하고 은폐되어 있는) 외부 대상과 그들의 보편적 지평인 세계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자연적으로 인간은 애초에 엄밀한 사고와는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두번째 이유는 극단적 과학주의라 칭할만한 자연주의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자연주의가 대두하면서 엄밀히 본질에 대해 따지지 않고 실재적인 실제를 전제하는 자연적인 선입관이 강화되었고, 비경험적인 영역에 대한 인간의 배타성이 급격하게 강화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엄밀한 본질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이 가능하기 위해서 우선 선행되어야 할 작업으로 자연주의적 선입관, 더 나아가 자연적 태도 속에 들어 있는 근원적인 은폐 성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철학적 방법을 확보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후설에 따르면 이미 근대 데카르트에게서 엄밀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론의 기초가 나타나고 있다.1 후설의 현상학적 판단중지도 데카르트와 유사한 방법론을 택하고 있다. 후설에 따르면 인간의 감각경험을 통해 인식하는 세계의 명증성은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일종의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에 불과하다. 따라서 후설은 세계의 명증성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것 자체를 그만두는 '판단중지'를 통해 우선 데카르트와 유사한 원초적인 입장으로 돌아가 이 세계를 엄밀히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판단중지는 '나'를 자아로서 순수하게 파악하는, 자기명증성에 지평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이다. 다만 후설은 데카르트와는 명백히 다른 점이 있다. 세계가 판단중지 된다고 해서 그 세계를 부정한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통한 '제거'와는 달리, '판단중지'는 그저 대상에 대한 인간의 판단, 선택, 결단등이 '유보'될 뿐이다. 그 세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나'가 세계에 대해 판단중지를 수행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세계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가지며, 그 경험된 세계는 판단중지 이전의 그 세계와 똑같이 경험된 세계이다.

 

후설에 따르면 이렇게 자연적 태도의 일반 정립에 따른 '세계'에 대해 판단을 중지할 경우에도, 여전히 부정힐 수 없는 '심적인 것'은 남는다. 이는 사유하는 마음 작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즉 세계가 무엇인지, 정말 참된 존재인지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으며, 그것의 정체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세계가 '나'에게 있어서 '마음 작용'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세계는 나에게 있어서 '현상(Phenomena)'으로서는 여전히 유효한 존재이다. 미리 주어진 객관적 세계에 대한 '괄호침'을 통해 인간은 순수한 '체험'들과 그 모든 순수한 '사념된 것'들, 즉 심리적인 '현상'들, 즉 절대적 소여성2을 가진 명석하고 판명한 지각으로서의 순수 현상(코기토, 아 프리오리)이 존재함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3 이렇게 후설은 판단중지를 통해 '나는 사유한다'는 의식의 영역으로, 선험적 명증성의 영역으로 되돌아올 것을 요청한다.

 

요컨대 후설에 따르면 현상학이라는 학문의 이념은 명증성이다. 그리고 그는 명증성의 영역을 파악하기 위해서 '판단중지'를 통해 가장 근원적인 자기명증성의 지평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판단중지는 세계의 자연적·경험적 명증성의 불충분성에 대한 자각, 현상학적 탐구가 구체화될 수 있는 연구의 영역인 존재와 세계에 지향적으로 관계하는 자아의 선험적 명증성의 영역을 드러내는 방법론이다. 이 지점에서 후설은 판단중지를 통해 드러난 현상학의 연구 영역인 '현상'4과 그런 의식현상의 본질, 그리고 그 본질을 해명할 실마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1.2 자유변환

괄호치기와 환원과정을 거치면서 외부의 대상은 결국 의식 내에서 구성된 현상임이 들어났다. 따라서 대상의 '의미'가 감각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적 사실성에만 근거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만 나타나는 의식의 내용이므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후설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르게 의식 내용의 사실성이 경험적인 사실성보다 보편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후설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변환'이라 칭해지는 의식적인 분석을 통해 대상의 형상, 즉 공통적인 불변의 구조로서 사물의 본질인 에이도스(Eidos)를 드러낼 수 있다. 다시 말해 의식은 동일한 감각적 대상들을 다른 방식으로 구성할 수 있다.

 

예컨대 책상을 자유변환 해볼 경우, 다음과 같은 변환이 가능하다.

 

[책상]

1. 재질 : 나무 → 그러나 플라스틱, 강철, 금 따위도 가능하다.

2. 색깔 : 갈색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등

3. 높이 : 1m 1m 70cm 등

4. 목적 : 책 놓는 것 밥그릇 놓는 것

 

이렇게 상상력에 기초한 의식의 자유로운 변환을 통해서, 하나 하나의 개별적 사태들을 분석함에 따라 의식 대상에는 변하지 않는 '본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본질이 인식과 판단의 기초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적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1.3 본질직관

본질직관은 현상학적 방법론이 지향하는 결과로서의 인간의 태도이다. 이는 인간이 더이상 대상을 단순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의 의식에 의해서 대상이 지향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짐을 통해 사태에 대한 근원적인 직관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상학적으로 직관된 탁자도 여전히 탁자이지만, 현상학적으로 훈련된 인간은 그것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그만두고, 대신 그것의 암시적인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이렇듯 엄밀학으로서의 현상학 수립과 의식의 본질에 대한 엄밀한 개념의 획득은, "사태의 본성과 무관한 자의적인 개념 구성"(=자유변환) 또는 사태와 무관한 공허한 사변으로부터 해방되어 원초적 의식 자체로 귀환하고, 자유변환을 통해 본질이 인간의 의식내에 지향적인 개념존재로 존재함을 깨달은 후 이를 직관할 때만 가능하다.

 

2. 지향성

후설은 현상학적 판단중지를 통해 순수 심적인 것, 즉 현상을 확보한다. 그렇다면 이제 현상학적 심리학은 이 탐구 영역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 즉 현상학적 판단중지를 통해 명석한 순수현상들의 존재들을 파악했다면, 이때 순수 심적인 것의 본질을 물어가는 본질학인 현상학은 "이 현상들이 본질로서 근거하는 속성이 무엇인가, 즉 현상은 도대체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본질적으로 순수하고 내재적인 명석한 존재로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후설은 의식현상의 본질을 '의식의 지향성'에서 찾고 있다. 즉 현상의 본질은 마음의 대상(의식내용)이 아니라, 그 대상과 관련된 마음의 작용, 의식 그 자체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모든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 현상은 곧 대상을 향한 의식, 지향적 활동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후설에 따르면 의식은 항상 이런 저런 개별적 내용을 지닌 경험으로서, 의식의 활동으로서 주어진다. 즉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한 의식이며, 사유는 항상 무엇에 대한 사유로 이해된다. 즉 인간의 의식은 오직 ’지각한다‘, ’판단한다‘, ’추리한다‘, ’상상한다‘, ’의욕한다‘, ’느낀다‘는 등 구체적인 활동으로만 존재한다. 심지어 판단중지를 통해 '나는 사유한다'라는 지평에 도달했을지라도, 이또한 '나는 내가 사유하고 있다고 사유함' 이므로 사유의 지향성을 이르는 말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의식은 무엇을 지각하고, 무엇을 판단하며, 무엇을 추리하고, 무엇을 상상하며, 무엇을 의욕하고, 무엇을 느끼지 않고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의식의 활동을 총체적으로 규정짓는 말이 지향성이다. 이렇듯 의식은 항상 '지향적 의식'으로 존재한다.

 

요컨대 후설은 인간의 마음을 개별적인 정신활동의 다발을 하나의 전체로서, 즉 인간 마음을 정신적 활동으로 구성된 구성체로 간주한다.5 그에 따르면 모든 정신활동은 지향적이며, 지향적인 모든 정신활동은 그 자체 내에 대상인 어떤 것을 포함한다. 모든 정신활동이 대상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정신활동은 정신활동 속의 대상과 자아의 관계를 전제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현상또한 항상 지향성에 의해 규정된다. 즉 현상은 항상 '지향적 현상'이다.6

 

2.1 지향성에 대한 분석

의식의 지향성의 본질, 즉 의식구조의 선험성과 의식현상의 유형을 이해하는 것이 현상학적 심리학이 수행해야할 지향적 분석이다. 따라서 지향적 분석은 일상적으로 '분석'이라고 칭해지는 과학적 분석과는 구분된다. 일상적인 분석들은 하나의 분석대상을 전체로서 간주하고, 그 분석대상의 구성요소로서 무엇들이 있는지 면밀히 따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상적인 분석은 A라는 대상을 분석목표로 상정하고, 그 A를 구성하는 B, C, D등의 속성을 정밀하게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지향적 분석은 인간의 심리활동에 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의식의 현상과 본질적 구조를 '해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점에서 의식을 그 지향적 상관관계에서 문제 삼는 현상학은 의식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법과도 구별된다. 전통적 관점에 있어서 의식이라는 것은 부수적인 문제였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중시되었던 인간구조에 대한 철학적 문제의식은 의식의 확실성을 해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지각의 촉발자인 외적 세계의 대상이 일차적으로 지각에 거친 후 관념으로서 형성되는 것은 확실한데, 그 형성되는 지식이 진리인지는 불투명하기 때문에 인식대상의 참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주요 문제였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 관점은 의식내용의 성립에 대한 외적발생론적 설명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후설에 따르면 이러한 전통적 관점은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의식의 고유한 삶을 고착화시키는 형식에 불과하다. 즉 후설은 인간의 의식을 형식적 차원에서 현실과 동떨어지게 분석하는 전통적 관점에 반대하고, 의식활동 그 자체를 탐구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의식에 대한 현실적인 분석을 하고자 하였다. 이런 점에서 결국 의식 탐구의 출발점은 선험적 명증성을 가진 인간경험의 순수한 토대인 코기토, 후설식으로는 지향적 의식인 것이다. 사유하는 자기 존재의 확인이야 말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명증적인 토대이다. 또한 코기토가 지향성을 가지고 '무엇'에 대한 의식으로서 현존함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따라서 코기토만이 현상학을 수행하는 토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의식의 지향성에 관한 현상학의 연구는 기본적으로는 '의식내용의 본질'과 '의식활동의 본질'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연구는 각각 어떠한 방식으로 다루어 질 것인가?7 먼저 의식대상(내용)을 연구하는 방법을 살펴볼 경우, 우선 현상학에서는 "의식은 언제나 대상을 지향함으로써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대상을 언제나 자체 내에 지닌다"는 '지향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할 필요가 있다. 즉 판단중지를 수행한 현상학자에게 있어 의식은 항상 대상에 대한 의식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의식내용에 대한 현상학의 연구주제는 '대상이 의식에 어떻게 주어지는가'가 라는 인식론적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주어져 있는가', 즉 인간의 의식이 지향하는 세계에 대한 해명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은 언제나 '무엇'에 대한 의식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세계가 의식의 '현상'으로서 미리 주어져 있을 경우에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의식내용에 대한 분석은 궁극적으로는 의식과 세계의 선험적 상관관계를 해명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상학자는 이 지향적 대상의 해명에만 몰두하지는 않는다. 현상학에서는 의식을 항상 대상에 대한 의식으로 간주한다. 즉 모든 대상적인 것을 오직 의식과의 상관관계에서만 탐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내용에 대한 분석은 의식 그 자체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즉 의식내용에 대한 분석과 의식 그 자체에 대한 분석은 사실상 동일한 것으로 간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역설적으로 말하면 의식 그 자체에 대한 연구또한 의식대상과 의식활동의 상관관계에 대한 해명이어야 한다. 즉 현상학자는 의식이 활동하고 있는 삶 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의식내용들의 배후에 놓여 있는 자아의 구조를 관찰하고 기술함으로써 자아를 드러내 밝히려 한다. 바로 이 구조를 해명하는 것이 현상학의 과정이다. 이러한 현상학적 분석은 인간의 의식은 명증성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가능하다. 의식의 내용이 변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전체적인 구조유형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상학을 대상 일반에 대한 '선험적 구성의 이론'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지향적 분석은 그때그때 주어지는 의식내용, 혹은 의식의 대상에서 출발하여, 이 대상으로부터 의식의 선험적 구조를 탐구해나가는 것이다.

 

요컨대 판단중지를 한다고 해도 여전히 구체적인 주체의 의식활동은 별다른 변함이 없다. 즉 책상에 관한 주체의 지각은 판단중지 이후에도 여전히 책상에 대한 지각으로 남아 있다. 단지 그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하지 않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인간의 사유를 언제나 항상 '그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즉 '지향성'은 의식의 보편적 특성으로서, 의식이 항상 무엇에 관한 의식이고, 의식작용은 그 의식된 대상을 항상 자신 속에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이 의식 현상의 지향성을 심리적 의식 연구로부터 선험적 현상학적 연구로 구분할 토대로서 이해한다. 지향성의 개념 속에서 의식작용과 의식대상의 상관관계의 문제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의식 체험에 대한 지향적 분석은 '의식 대상에 대한 분석'과 '의식 작용에 대한 분석'에서 이루어지며, 궁극적으로 그 상관관계의 해명을 목표로 한다. 이런 점에서 현상학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그런 상관관계의 해명 속에서 드러나게 될 그러한 상관성의 주체인 '선험적 의식'의 본질해명이다.

 

2.2 노에시스와 노에마

후설은 인간의 인식능력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성을 거부하고, 의식에 의거한 철학자였다. 그에 따르면 의식은 전적으로 경험에 기초에 둔다. 즉 전체 의식은 부분적 경험의 합으로서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의식을 구성하는 경험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후설은 '노에시스'(Noesis)와 '노에마'(Noema) 개념을 제시했다. 즉 현상학적 방법은 노에시스와 노에마 사이의 본질적 구조(양자간의 상관관계)를 기술하는 것으로서 정점에 도달한다.

 

'노에시스'란 사고작용을 뜻한다. 즉 인간의 감각에 주어지는 여러 감각 여건들인 '질료'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지향적 대상을 성립케 하는 것이다.(후설은 이를 노에마가 질료를 소재로 하여 노에마를 '구성'(konstitution)한다고 말한다.) '노에마'란 사고대상을 뜻한다. 즉 그것은 '무엇에 대한 의식'이 향하고 있는 '무엇', 혹은 사고 작용에 의해 구성된 의미 단일체로서의 사고 내용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지향성의 대상적 상관자에 해당한다.

 

예컨대 정사각형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인간은 시각적으로 정사각형 그 자체를 처음부터 경험할 수는 없으며, 오로지 분할된 한 단면씩만을 경험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정사각형에 대해 오로지 각각의 단편적인 표상만을 얻을 수 있는데, 이러한 인식작용을 노에시스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노에시스를 이러한 표상들을 '구성'함으로써 그 인식대상이 '정사각형'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처음의 사각형의 한 표상만 두고선, 그것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지만, 정사각형에 대한 수많은 노에시스들을 경험하고 그것들을 하나로 구성함으로써 그 표상들이 정사각형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수많은 노에시스가 합쳐져 인간에게 인식되는 하나의 완성된 개념체, 혹은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노에마이다. 다시 말해 노에시스가 인식하는 수많은 표상들이 질료로서 하나의 노에마를 구상하는 셈이다.

 

또한 이미 경험된 노에마를 바탕으로, 한 노에시스를 통해 새로 경험되는 한 노에마를 통째로 유추할 수도 있다. 예컨대 바닥에 나뒹구는 찌그러진 코카콜라 캔을 가정해 볼경우, 인간은 그 구체적 캔에 해당하는 장면(하나의 노에시스)을 비록 처음 보았을지라도, 이전부터 봐온 원형의 물체, 더 나아가 코카콜라캔 등의 노에마를 통해 '그것은 찌그러져 바닥에 나뒹구고 있는 코카콜라 캔이다.' 라는 노에시스를 얻어낼 수 있다. 이렇게 노에시스와 노에마의 상관관계로 인간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데, 이것들이 모여있는 총체가 바로 의식이다. 즉 각각의 대상 영역에는 각기 다른 노에시스가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서로 다른 본질 구조를 가진 노에시스-노에마 상관 관계들이 존재하고, 이것들의 총합이 바로 의식이다. 그렇다면 노에시스-노에마의 상관관계는 보편적인 상관관계로서, 모든 대상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다. 엄밀학으로서의 철학의 이념을 추구하는 현상학은 경험 과학이 아니라, 현상의 본질 구조를 탐구하는 '본질학'이라는 점에서, 노에시스-노에마 상관 관계의 개별적인 경험 구조가 아니라 그 불변적 초시간적인 본질구조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3. '선험적 관념론'으로서의 현상학

현상학적 환원에 의해서 모든 초월적인 존재는 순수의식에서 구성된 현상으로 밝혀진다. 즉 선험적 현상학에서는 존재란 오로지 의식 구성의 산물작용인 현상으로서의 존재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성작용으로서의 주관 절대성을 가지게 되므로 객관에 앞선다. 무의미한 감각적 자료에서 유의미한 세계, 즉 '절대적 순수의식'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 의미 통일체가 도출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현상학은 '선험적 관념론'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념론은 관념적 존재를 객관적 인식 일반의 가능 조건으로 인정한다. 즉 실재적인 대상 외에 개념, 명제, 진리 등 관념적 대상의 자체적 존재를 강조하고 이 관념적 존재 속에서 학문 일반의 가능조건을 인정하려는 인식론의 형식이다.

 

후설의 선험적 관념론이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과 가지는 차이점은, 후설의 그것이 의식의 절대성을 정초하는데 있어서 보다 충실하다는 것이다. 칸트는 "최소한 한계 개념으로서의 물자체의 세계의 가능성"을 전제했으며, 의식과 의식 밖의 사물이 결합해서 지식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후설은 순수의식 밖의 물자체와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그에게 있어서 선험적 주관성(의식)의 밖이란 무의미하다. 모든 존재는 의미 및 존재를 구성하는 선험적 주관성의 영역에 속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초월적 존재또한 순수의식 내에서 구성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엄밀히 따지자면 내재-초재의 구별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환원에 의해서 의식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나오는가? 즉 어떻게 해야 외부세계의 타당성이 증명되는가"라는 질문도 성립할 수 없다.

 

3.1 '절대적 관념론'으로서의 현상학

그러므로 후설의 선험적 관념론은 '절대적 관념론'이다. 왜냐하면 후설에게 있어서 의식, 즉 선험적 주관성은 상술한 칸트와의 비교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이 '그 자신으로 완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존재 일반의 원범주 내지 원영역이요, 모든 다른 존재 영역이 거기에 뿌리박고 있으며, 따라서 본질적으로 거기에 의존하여 있는 절대적 존재이다. 다시말해 모든 존재가 절대적 주관과의 관계를 통해 존재하며, 절대적 의식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의식은 내재적 내재로서, 판단중지에 의해서 도달하는 현상학적 잔여로서의 명증의 영역이므로 오로지 내실적으로 내재적인 순수의식의 체험류 뿐이다. 그러나 의식대상은 초월적 존재이다. 그렇다고 의식대상이 의식을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 의식대상은 비내실적이면서 현상학적 의식에 내재한다. 후설은 이러한 구조를 노에시스(의식)와 노에마(대상)의 상관관계로서 설명한다. 판단중지에 의해서 배제된 초월적 존재는 모두 노에마이고, 순수의식의 체험은 노에시스이다. 이렇게 초월적인 외부 존재자로서의 세계는 인식주관의 상관자로서 의미가 부여되고, 현상학적 의식 속 존재로서 다시 판단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후설의 현상학적 방법론에 따르면 모든 초월자들도 결국에는 인간의 '의식 현상'으로서 다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선험적 관념론, 즉 후설의 현상학은 여러 철학 중의 한 분야라고 볼 수 없다. 이미 누누히 강조해왔지만 후설의 현상학은 다른 모든 종류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궁극적 기반으로서의 '제1철학' 혹은 '절대적 관념론'이다. 물론 선험적 관념론으로서의 현상학이 실재적 세계의 현실적 존재를 부정하거나 가상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 즉 현실적 존재를 부정한 근대의 유아론과는 명백히 구별된다. 왜냐하면 선험적 관념론의 과제가 세계를 해명하는 것, 즉 세계가 모든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타당하고 또 참으로 정당하게 타당한 그 의미를 해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2 모순점과 한계, 그리고 생활세계의 현상학으로의 도약

후설에 따르면 의식과 초월적인 실재 사이에는 "원리 상의 구별", 또는 "원칙 상의 이질성"이 있다. 즉 실재는 결코 의식에 환원될 수 없으며 어디까지나 의식 초월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선험적 관념론에서 있어서 실재가 실재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의식에 의존적이라고 하면서, 실재가 의식과 전혀 이질적인 것으로 결코 의식에 환원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렇다면 후설이 말하는 주관성의 절대성은 실재의 필요조건으로서 인정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전적으로 실재의 존재가 근거하는 것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다. 의식에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실성'이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서 주어지기 대문이다. 노에시스는 질료가 주어져야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이 질료는 현상학이 말하는 주관의 밖에서부터 주어지는 것이지, 주관이 스스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의식은 사실성에 의해 제한되므로, '절대적 절대성'이라 볼 수 없다.

 

이처럼 후설도 어떤 의미에서는 칸트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즉 후설이 말하는 선험적 주관성의 절대성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형태로 밝히는 것(=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국한된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후기에 들어서 '생활세계'를 강조하고, 자신의 전기 현상학을 비판하게 된다.

 

  1. 데카르트는 절대적 인식의 빈곤이라는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엄밀히 따져서 결코 확실하지 못한 것들을 모두 부정하는 방법적 회의를 전개했다. 이 방법적 회의의 결과로 데카르트는 지극히 자명한 존재이므로 명증성을 수반하고 있으며, 모든 학문 활동을 정초할 토대인 '코기토'를 발견해냈다.
  2. 소여 방식, 즉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에 있어서 자기 자신에 절대적으로 근거함
  3. 즉 그에 따르면 판단중지를 통해 드러난 자아는 자신의 고유한 의식, 삶을 지니는데, 이러한 자아에게 있어서 객관적 세계의 전체의 존재타당성과 의미는 나의 사유작용을 통해서만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4. 그런데 마찬가지로 모든 과학적 탐구또한 현상에 대한 학문이다. 예컨대 물리학의 연구 대상은 물리현상이며, 사회학의 그것은 사회현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도 '현상'에 대한 학문, 즉 현상의 법칙성에 대한 발견과 앞으로의 현상에 대한 예측과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의 학문적 성격은 이론을 통해 현상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주어진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따라서 과학은 자신이 탐구하는 '현상'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으며, 그런 현상이 인간에 대해서 가질수 있는 의미도 묻지 않는다. 반면 현상학은 의식현상을 그 본질적 차원에서 문제 삼음으로서 모든 학문 활동을 그 기초에 있어서 새롭게 확립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현상학의 유일한 탐구 주제는 '현상' 그 자체이다.
  5. 이는 스승 브렌타노의 영향이다.
  6. 이 지향성 개념에서 현상학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된다. 만약 의식의 본질이 '지향성'으로 이해되고, 의식의 본질을 기술하는 학문이 현상학이라면, 현상학은 다시 한번 선험철학으로서, 제1철학으로서의 지위를 재확인한다. 즉 현상학은 그 의식의 본질인 지향성을 선험적으로 접근하여 해명하는 선험학문이다.
  7. 이는 후설이 추구하는 현상학적 의식 탐구와 그가 반대하는 경험과학적 의식 탐구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지에 대해 따지는 것과도 동일한 질문이다.

 

<생활체계적 현상학(후기사상)-자연과학적 태도에 대한 비판과 생활세계>

1. 자연과학적 태도

후설에 따르면 현대인의 상식은 자연과학적 사고에 물들어 있다. 자연과학자들은 객관적 학문세계를 추구한다. 이 학문세계의 정신으로 탐구되어진 자연은 그 자체로 질서를 가지고 존재하는 객관적으로 참된 자연이다. 즉 이 자연에서 인간의 이성은 수학적 이성으로 활동하며, 자연세계는 결코 인간의 주관 속에 나타남으로서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는 자연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자연과학적 태도는 진리를 인간의 체험이 아니라 과학의 이론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 태도이다. 즉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실제로 느끼는 지구는 정지해 있고,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지구는 공전, 자전하고 있고 또 둥근 것이라는 자연과학적 지식을 객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요컨대 자연과학적 태도에 있어서 진리란 인간의 체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의 이론에 있다고 여겨진다.

 

자연과학적 태도는 정신과 물체를 평행화시켜 놓고, 물체를 다루는 방식으로 정신까지도 다루려고 했던 데카르트적 이원론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즉 정신과 물체를 서로 평행하게 대립시켜 놓고서 이들 사이의 관계를 지향적 관계가 아닌 인과적 관계로 설명함으로써, 심적 존재의 자연화를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근대에 이르러 눈부시게 발달한 순수 수학과 순수 기하학과 결합하여 정밀과학의 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근대 기하학에 따르면, 이념적 혹은 이성적,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규정성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 따라서 개념·명제·추론 등 증명의 단계들을 따라 그 자체로 이미 진리 속에 있는 것 만을 파악하는 탐구만으로도 학문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수학의 독창성은 인간의 경험속에서는 불분명했던 사물간의 제 관계가 수리과학에서는 정확하고 분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학은 특정한 사례들을 완전히 배재해 버린 완전 추상적 세계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근대 초 등장한 무한한 수학의 지평은 대수학, 연속체 수학, 해석 기하학의 단서가 되었으며, 순수수학은 세계를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근대인들은 수학의 연구를 인간이성의 합리적 사용이며, 어떤 우연적인 특수한 사물, 사건들로 부터 해방된 피난처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이해 했다.

 

데카르트적 이원론과 수학의 발전에 근거해 근대 과학자들은 인간이 경험하는 사물과 자연의 관계와 질서를 규정하는 원리가 존재하며, 그러한 질서들을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원리로 환원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자연과학적 태도를 대표하는 근대의 인물이 바로 갈릴레이이다. 갈릴레이는 순수수학을 사용하여 자연 전체를 이념화 하고, 자연을 '순수한' 물체, '순수한' 직선, '순수한' 평면, 그 운동 과 변화 등의 "수학적 다양체"로 대체시켰다. 즉 갈릴레이는 인간이 언제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인 생활세계를 수학적인 이념성의 세계로 대체시켰다. 갈릴레이 이후, 학문이전의 타당성의 지평으로서의 자연을 이념화된 자연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은 가속화되었고, 그 노력은 19세기까지 이르러 모든 것을 수학적 공식과 그 관계로 나타내는 수학적 자연과학의 완성으로 끝났다.

 

이렇게 인간의 이성은 그때그때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개별적인 사물과 자연적 사건에 주목하기 보다는 그것들을 지배하는 원리와 법칙에 주목하고, 원리와 법칙의 세계를 진정한 세계로 세우게 되었다. 이렇게 객관성을 추구해 온 과학은 정확하고자 하는 학문이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객관성은 근대 이후의 학문과 상식을 지배하는 이념이며, 객관적 세계만이 학문적으로 참된 세계로 이해된다. 즉 객관성이라는 실증과학의 이념은 '학문'이라는 말의 의미와 인간상식을 지배하는 규정성이 되었다.

 

1.1 자연과학적 태도의 특징

과학자들이 정신적으로 어떤 작업 수행을 하든, 그런 작업 수행의 지향적 대상으로서의 세계는 항상 전제되어 있다. 즉 세계와 세계 경험을 귀납적으로 일반화하고, 일반화를 통해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여 법칙으로 확정하고, 법칙을 통해 미래의 현상을 예측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세계와 세계에 대한 자신의 감각적 직관과 경험을 전제해야 한다. 이렇듯 후설에 따르면 세계가 언제나 미리 존재한다는 사실은 모든 학문적 사고에 앞선 자명한 사실에 속한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적 물음은 자명하게 주어져 있는 세계, 언제나 직관적으로 주어진 세계에 관계한다. 이 세계는 과학적인 의미의 사물 세계가 아니므로, 객관적 과학도 다른 학문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이미 존재하는 이러한 세계의 토대 위에서 물음을 제기한다.

 

하지만 과학자는 현실적으로 주어진 세계에 추상적 이념의 옷을 입히려 한다. 즉 과학은 처음에는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았지만, 수학적 인간 이성의 합리적 사용이라는 명목하에, 보다 정확하고 정밀하게 세계를 기술하는 과학에 의한 '객관적으로 현실적이며 참된' 자연이 그 자체로 유일하게 참된 세계로 간주되게 된 것이다. 세계의 수학화로 말미암아 인간이 살아가는 경험적인 세계는 은폐된다. 후설은 이러한 이유에서 갈릴레이를 "방법적으로 수학적 자연을 '발견하는 천재'였던 동시에 생활세계와 그 주체를 '은폐하는 천재'였다." 라고 평가한 것이다. 사실 후설에 따르면 과학을 제외하고도 어떠한 객관적 학문이나 철학도 인간이 실제로 살아가는 세계를 주제로 삼지 않았으며 이러한 영역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근대의 인식론은 물리적 자연과 대상,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 방법을 문제삼은 철학적 반성일 뿐이었다

 

즉 과학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물이나 사태에 주목하기 보다는 그 사물의 보편적 구조나 관계에 주목한다. 예컨대 '물'의 경우, 보통의 인간은 그것을 마실 것, 몸을 씻는데 쓰이는 것, 국 요리를 만드는 재료 등으로 생각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러한 우연적인 물의 특성들은 모두 사상해 버리고 물의 화학적 구조에 주목하며, 그 구조의 보편성 속에서 참된 세계를 경험한다고 일반화 한다. 그래서 그들은 물의 본질을 H2O로, 화학적 기호로 표현되는 세계를 학문적으로 참된 세계로 이해한다. 과학에서 객관적인 것 자체는 직접적으로 경험될 수 없고 오직 순수 사유 에 의해서만 파악되는 논리적 구성물일 뿐이다. 이런 학문적 세계속에서 개개인이 경험하는 물의 지평은 은폐되어 버린다.

 

1.2 자연과학적 태도에 대한 후설의 비판

후설은 인간에게 직접 주어지는 자연은 객관적으로 정밀한 자연이 아니라 주관적, 상대적인 지각적 자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인간의 직관과 실제 경험에 있어서 물이란 마시거나, 목욕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하는 등등의 타당성의 존재양식으로서 개개인과 관계맺고 있는 구체적인 무언가이다. 비단 물 말고도 다른 모든 물체들도 기하학적인 이념적 물체가 아니라 인간의 의도와 계획, 실천이 미치는 경험내용으로서의 그 물체이다. 이 물체들은 그 자체적으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에 대하여 타당성의 지평으로서 존재하며, 그런 타당성을 수행하는 인간의 상관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듯 정밀한 자연과학적 방법에 의해 이념화된 자연은 실제적 경험 속에서 우리에게 친숙하게 주어지는 직관된 자연은 아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이, 근대를 거쳐 보편성과 객관성을 추구하는 과학이 태동한 이후, 이제 과학이 보여주는 학문세계만을 참된 진리의 세계로 간주하고, 학문세계에 참여하는 인간 능력을 진정한 인간 능력으로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구체적인 경험과 직관은 추상적 학문세계에 의해 은폐되었다. 결국 인간의 구체적 경험이란 거짓된 가상으로 취급되어 일종의 비상식으로 전락하였다. 이 점에서 후설은 바로 그 경험과 직관을 통해 살아가는 현실적인 인간존재 역시 거짓으로 치부되거나 망각되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성의 합리적 사용이라는 신념이 심적 존재가 가지는 고유한 특성을 도외시한 채 심리학 역시 정밀과학으로 정초하는데 까지 나아갔기 때문이다. 사실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인간조차도 사실인간으로 추상해버리는 위험에 빠져버린 것이다. 근대 심리학이 철학을 대신하여 정신을 마치 하나의 사물처럼 다룸으로써 확대된 근대학문의 위기는, 진정으로 인간의 영혼에 대해 묻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즉 근대학문의 위기란, 바로 학문의 이념을 인간의 구체적 삶과의 관계 속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은 채, 스스로 사실학으로 전락되고 나아가서는 인간마저 사실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데 있다.

 

후설에 따르면 과학적 심리학이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객관성을 외양으로 걸치고 있다는 사실 이외는 어떤 이유도 없다. 물체적인 것이 고유한 법칙을 가짐으로써 물리적 현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적 혹은 정신적인 것 역시 일종의 자연법칙과 유사한 법칙을 가진다는 이유로 심리적 현상으로 성급하게 추상하고 말은 것이다. 궁극적 의미에서 정신적인 것은 결코 전통 심리학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신적 영역은 결코 특정한 자연과학적 가설에 의해 측정될 수 없는 고유한 유형을 가진다. 그러므로 정신적인 것에 대해서는 물체적 자연과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가야 한다.1

 

이렇듯 후설에게 있어서 물리학에 유사한 '정밀한' 심리학이란 개념은 모순이다. 정신적인 것에 관한 학문은 심리학으로부터 자문을 구할 수도 없고 본받을 수도 없다. 즉 영혼에 관한 학문은 외부로부터 빌려온 검증되지 않는 공허한 개념들과 법칙들로써 추상하지 말고, 영혼 자체로부터 주어지는 것에 관한 직관을 근거로 고유한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요구된다. 따라서 심적인 것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모든 자연과학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잇는 그대로 폭로하는 과제가 남는다. 이것은 바로 정신적인 것이 가지는 고유한 법칙성인 지향성을 해명하는 작업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2. 생활세계

후설이 말하려는 학문의 이념은 객관성의 학문이 아니다. 학문적 탐구의 대상을 의식과의 상관관계속에서 다루는 후설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대상적 객관성을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객관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즉 물체의 물리적, 화학적 구조를 파악하고, 그 객관적 구조에 따라서 예측하는 과정은 그 빈도수가 높아 질수록 대상 인식의 객관성은 검증되고 확증되어 간다. 그러나 그 객관성의 검증과 확증의 과정은 끝없이 순환할 뿐 그 객관성의 토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설에게 있어 그 객관성을 해명한다는 것은 그것을 선험적으로, 즉 그 객관성의 의미를 물을 수 있는 토대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후설은 학문·논리의 세계에 앞서는 "선논리적 세계에로의 귀환"을 요구한다. 즉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생활세계적 세계관으로 이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후설에 따르면 과학이 거짓된 가상의 세계라고 환원해 버린 기존의 세계야 말로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미리 주어져 있는 끊임없는 타당성의 지변으로서 인간의 본래적인 삶의 터전이며, 항상 즉시 준비되어 있는 선험적 자명성의 원천이다. 후설은 이러한 기존의 인간의 삶의 장으로서의 세계를 '생활세계'라고 명명한다. 후설에 따르면 인간은 생활세계에서 더이상 수학적 논리적 이성으로 활동하지 않는다. 생활세계는 인간이 자연적 삶을 살아가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즉 생활세계란 일차적으로 인간의 주관적 현상으로 체험되는 일상적 상식적 세계이다. 즉 이것은 자연과학적 사고의 색안경으로 본 세계가 아니라 인간에게 직접 주어지고 느껴지는 자연, 인간이 그 속에서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태도 를 취하며 살아가는 지평으로서의 세계를 가리킨다. 요컨대 생활세계란 과학주의에 물들지 않은 원초적 지각에 나타나는 세계, 다시 말해 세계를 단순한 사실들로 추상화하는 자연과학적 이론, 논리에 앞서서 인간의 감각에 최초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주관적 의미의 세계이다. 또한 사실 학문적 논리적 명제는 생활세계적 체험이 추상되고 논리화된 것이다. 따라서 후설은 명증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자연과학의 '술어적인 명증'의 근원을 생활세계의 '선술어적인 명증'에서 찾을 수 있으므로 생활세계야 말로 세계를 보는 가장 근원적인 관점이라고 주장한다. 학문적 사고에 의해 가능한 객관적 자연의 설정이 생활세계의 경험을 바꾸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에 의해 태양과 지구의 좌전과 공전 법칙이 발견되어도, 우리의 생활세계적 경험내에서 태양과 달은 여전히 떴다 지는 것이다.

 

후설에 따르면 이 생활세계적 자연은 전통 심리학인 자연과학적 심리학에서는 심리학의 주제인 내적 경험과는 대립된 외적 경험으로서 설정되어 심리적 경험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후설은 만약 심리학이 정신의 고유한 본질에 관한 학이어야 한다면, 단순한 사실들을 다루는 실증과학으로서 머물러서는 안 되며, 삶과 그 삶의 의미를 복권시키는 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간의 직접적인 경험과 삶의 토대인 생활세계는 심리학의 주요한 탐구대상의 일부인 것이다. 즉 영혼을 사실로서 정교하게 다루는 심리학의 위기는 바로 영혼과 세계의 근원적 상관성을 볼바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영혼과 세계가 이미 '생활세계'라는 하나의 텍스트로 엉클어져 있다는 상황이 온전하게 읽혀지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근대 실증주의에 의해 망각된 생활세계를 복권하는 것이 현상학의 근본의도이다. 그것을 위한 현상학의 길은 앞서 알아보았듯이 환원이다. 후설의 현상학적 환원은 자연과학주의적 편견에 의해 은폐된 생활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시 복권하기 위한 인위적 절차이다. 즉 현상학의 이념은 바로 근대실증주의에 의해 망각된 생활세계를 단적으로 직관함으로써, 의식과 대상이 근원적으로 서로 얽혀져 있음을 드러내는 데 있다. 의식은 항상 대상과의 지향적 관계 속에서 서 있음을 드러내려는 환원의 이념은 궁극적으로 생활세계를 본래의 망각이전의 모습으로 다시 되가져오는 것이다.

 

2.1 자연적 태도

후설은 일상생활속에서 인간이 최초로 취하게 되는 태도를 "자연적 태도"라고 말한다. 후설에 따르면 실천적인 일상생활에서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관심, 욕구, 필요에 따라 일정한 대상들에 단지 관계할 뿐이다. 즉 대상을 통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 만을 충족하면 족하기에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그런 대상들에 관계되어 있는가를 논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은 곧바로 순간순간 마다 주어지는 대상들을 목적으로 파악하며 살 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생활세계속에서 단지 대상의 실재성을 믿는 소박한 태도를 취할 뿐이며, 그 대상의 타당성의 근거를 묻지도 않고, 타당한 대상에 대한 선험적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한가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미리 주어져 있다'는 말을 사용할 필요도 없으며, 그 세계가 항상 우리의 현실로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를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존재자의 의미와 그 근거를 되물어가는 엄청난 선험적 문제 의 차원을 볼 안목이 없다. 그들에게 선험적 차원은 익명성 속에 있을 뿐이다. 이렇듯 이 자연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인간들에게 있어서 물체들은 공간적으로 배열되어 단순히 '거기에' 있을 뿐이다.

 

요컨대 자연스러운 삶 속에서의 인간의 마음에는 무반성적으로 거기에 있는 믿음 확실성,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타당하다는 확실성이 생겨난다. 여기서 확실성은 단적인 믿음으로서, 세계 내의 모든 대상들에 대하여 믿음의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없이 그냥 확실히 존재한다고 여기는 확신이다. 즉 자연적 태도란 생활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일상생활 속에서 취하게 되는 세계와 세계내 물체들에 대한 보편적인 존재 확신이다. 이렇듯 생활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항상 세계에 대한 확실성 속에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활세계적 태도는 사실상 자연적 태도와 동일 하다. 다만 구체적으로는 후설은 생활세계적 태도를 자연과학적 태도에 도전하는 개념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는 이를 선학문적 또는 학문 외적인 삶 의 태도를 규정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이 생활세계적 태도의 상관자는 생활세계이며 자연과학적 태도의 상관자는 객관적 학문세계이다.

 

2.2 자연주의적 태도와 인격주의적 태도

후설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관찰방식, 혹은 이해방식으로서의 태도를 두 가지로 나눴는데, 그것은 앞서 살펴본 자연적 태도와 학문적 태도이다. 그런데 자연적 태도는 다시 자연주의적 태도와 인격주의적 태도로 나눠진다.

 

2.2.1 자연주의적 태도 (*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시간과 공간을 그 형식으로 가지는 물체의 우주이다.)

자연과학적 태도에 의한 자연은 직접적인 경험에 주어지지 않는 순수 사유의 과정을 거쳐 파악되는 객관적 추상화된 자연이다. 하지만 생활세계적 태도에 따르면 자연은 직접적인 경험내에 주어지는 자연이다. 즉 항상 감각을 통해 주관적·상대적으로 경험되는, 의미와 목적을 수반하는 구체적인 자연이다. 즉 자연물들은 그 자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심과 계획의 지향적 타당성 수행의 상관자이다. 예컨대 물은 농업용수로, 공기는 숨쉬기 위해, 나무는 땔감으로 그 각각 인간에 대하여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타당한 존재 양식을 지닌다. 이렇듯 생활세계적 태도에 따르면 인간은 구체적인 경험에 있어서 단순히 자연물의 표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객체의 타당한 존재 양식을 수용하고, 그 존재 의미를 이해하고 그 타당성을 실행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치는 자연 적인 사물의 의미는 이론적 과학적 경험에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구체적인 실천과 관심, 계획 속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자연주의적 태도는 생활세계의 모든 것에 토대를 부여하는 가장 하부의 층을 형성한다. 일상인들은 자연과 자연내적인 것이 항상 객관적으로 독립하여 실재한다는 믿음 확실성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2.2.1.1 생활세계의 공공성

물, 공기, 나무, 기타 등의 생활세계적 사물은 '나 자신' 즉 언제나 개별적인 자아에 대해서만 타당한 것이 아니며. 서로 함께 살고 있는 '우리'에 대하여 타당한 것들이다. 즉 생활세계적 사물은 '나'에 대한 타당성의 양식 뿐만 아니라, '너'라는 타인, 혹은 '우리'라는 인류 전체에 대한 객관적 타당성의 양식도 가진다. 즉 생활세계는 단지 주관적인 경험으로만 느껴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 혹은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도 동일한 객관적 타당성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활세계는 주관성과 객관성을 모두 수반한다. '나'는 '우리' 모두에 대해 타당하게 미리 주어진 세계속의 사물들에 관계하는 것이다. 이렇듯 생활세계는 피히테적 관념론과 유사한 유아론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 전체에게 유효한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실천의 장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2.2.1.2 지각

후설에 따르면 인간은 신체를 가지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자아로서 세계에 속한다. 즉 인간의 신체는 자아와 하나로서의 신체이다. 따라서 인간 자아의 각각의 지각은 그것에 상응하는 각각의 신체적 감각기관가 매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신체는 항상 의식에 합당한 것으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신체의 운동성 또한 의식의 운동성과 일치함으로써 기능한다. 즉 신체가 들어 올리는 것, 날라 운반하는 것, 밀어내는 것 등의 기능하는 것은 의식의 양식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이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활세계는 유아론이 아니라 모든 실천을 위해 미리 인간에 대해 존재하는 토대로서의 세계로 필연적으로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2.2.1.3 의식의 지평성

후설에 따르면 모든 인식 대상들은 항상 다른 것들과 함축적으로 의미를 주고받는 가운데서 성립한다. 이러한 명제하에 후설이 개발한 현상학적인 개념이 바로 지향성과 쌍벽을 이루는 것이 지평이다. 의식의 지향성을 통해 후설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필연적으로 인간 관련적인 의미 체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임을 드러냈다면, 의식의 지평성을 통해 '우리'를 포함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전체적인 의미 소통의 연결망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후설은 인식 대상에 관해 지평을 내적지평과 외적지평으로 나눈다. 내적지평은 하나의 인식 대상이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계속 달리 나타날 수 있는 인식 대상 자체 내의 변화가능성 전체의 체계를 일컫는다. 지금 나에게 당장 주어지는 인식 대상의 모습은 항상 그러한 내적지평의 테두리 내에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하나의 사물은 그것의 빛깔, 강도, 모양, 크기 등의 성질로 규정되는데, 그 사물은 그것의 성질과 관련된 것으로서의 그 사물로만 인식이 가능하며, 의식이 어떤 성질에 주안점을 두느냐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심리는 변화할 수 있다. 이 내적지평은 의식작용에 관련해서 보면 시간적 지평을 형성한다. 후설은 이를 "인간은 개별적 사물을 지각할 때 직접 지각에 주어진 것 이상을 경험한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다시 말해 각각의 성질들은 인간에게 각각 느껴지지만, 인간은 그 규정성에 관해서는 이것을 하나의 동일한 독립된 대상으로 파악한다고도 할 수 있다.

 

외적지평은 특정한 인식 대상이 주제로 부각될 때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대상들의 체계이다. 한 사물은 다른 사물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드러나며, 그들 사물들은 서로 공존한다. 이렇게 연관속에서 공존하는 사물들은 한 사물이 지각되기 위한 조건이다. 후설에 따르면 가장 보편적인 외적지평은 바로 생활세계이다. 그것은 모든 의식작용들이 일어나는 보편적인 지평으로서 힘을 갖기 때문이다. 최종적인 지평으로서의 생활세계는 특히 과학적인 이론 의식에 대해 그 기반으로서 규정적인 힘을 발휘한다. 외적지평은 공간적 지평을 형성한다.

 

내적지평과 외적지평은 따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항상 결합해서 주어지기 때문에, 시간적 지평과 공간적 지평 역시 결합해서 작동한다. 개별적 사물은 내·외적 지평속에서 존재자로서 드러나며, 세계지평은 존재하는 사물들에 대한 지평으로서만 의식되기에 객체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의식될 수 없기 때문이다.

 

2.2.2 인격주의적 태도

책상과 가구, 집, 들, 정원, 공구, 그림 등과 같은 대부분의 사물들은 지시적 연관관계 속에서 환경세계를 구성하는 존재자들이다. 그런데 후설에 따르면 환경세계를 구성하는 사물들에는 단순히 자연물들만 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 작품, 예술 작품, 법과 종교 기타 인간의 모든 문화적 창작물이 포함된다. 후설에 따르면 이런 문화적 창작물들은 끊임없이 변화될 수 있는 역사적 면모를 지니며, 결정적으로 창조자의 목표와 제작의미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반 사물과는 차이를 보인다. 즉 문화 객체에는 목적의미가 부여되어 있기에 한갖 물리적 사물로서 경험되는 것은 아니며, 정신적 의미, 가치 평가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일반 사물보다 아주 직접적으로 경험된다. 문화적으로 객체화되어 있는 것은 인격적인 생활에서 근원적으로 실현되며, 공동체내의 인격들에 대하여 '해석'이라는 양식으로 다채롭게 경험되는 것이다.

 

즉 문화적 대상은 인간정신의 의미, 이념의 구체화·객체화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 대상은 그 자체로 인간적인 의미와 이념을 함축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의미와 이념을 계획·기획한 공동체2적 이성의 영향을 받은 일종의 '침전물'이다. 예컨대 교실, 운동장, 교재, 참고서 등의 문화적 대상은 이미 '교육'이라는 사회적 의미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화된 것이다. 그러나 후설은 만약 인간이 문화적 객체의 의미와 그 의미의 독립성에 대한 존재 믿음에만 주목할 수록, 그 의미의 지향적 상관자인 인간 정신은 은폐된다고 우려한다. 즉 의미의 객관적 독립성에 대한 존재 믿음은 세계 개방의 폐쇄이며, 동시에 세계 개방의 주체인 인간 정신의 은폐이다. 따라서 현상학은 자연적 태도의 존재 믿음 속에 은폐되어 있는 인간 정신을 탈은폐하고, 이 주체속에서 세계의 개방성과 그 새로운 의미가 재조명되어야 하는 것을 목적중 하나로 삼는다.

 

다시 말해 문화적 대상들의 목적과 의미는 인간이 인간을 위해 배려한 것이며, 그것들은 고립된 인격의 인간성에만 의존하여 탄생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인격과 상식 등에도 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환경 내에서 개별적인 인격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인격체로서 이루어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개별적인 자아에도 공동체의 시대적 목적들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후설에게 있어서 인간은 공동의 환경세계에서 다른 사람들과 지향적 연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인격체인 것이다. 따라서 문화적 객체의 상호주관성을 배제하고 그것 자체의 개별적인 의미에 대해서만 탐구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다.

 

2.2.2.1 환경세계의 상호주관성

후설에 따르면 환경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다른 인격체들과의 상호 이해와 상호 승인에서 얻은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렇듯 후설은 환경세계와 생활세계를 구분하여 설명하지는 않지만 생활세계의 의미는 그 한 지층으로서 환경세계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산다는 것은 이미 그리고 항상 환경세계내에서, 환경세계에서 구현되는 공동체적 질서내에서 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적인 생명을 가지고 출현하지만, 그 삶은 이미 형성된 환경세계에서 출발하며, 일정시점에 이르러 그 문화적 대상과 의미들을 이해하며 그런 세계에서 살아간다. 인간에 대해 타당한 생활세계는 '이미' '항상' 앞서 간 세대들의 행위와 실천의 긴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생활세계는 '이루어진' 세계이다. 생활세계는 그런 이루어짐의 과정, 역사성을 지닌다. 이 세계는 객관적인 학문의 모든 구조에 선행하는 선학문적, 선술어적 지평이다. 즉 생활세계는 이론적으로 탐구되기에 앞서 이미 삶의 현장으로 존재한다. 인간의 삶은 생활세계속에서 이루어지기에, 자신의 삶을 문제삼는 학문에 의해 규정되기 이전부터 이미 생활세계와 더불어 인간의 삶이 있어왔다. 그러므로 생활세계의 역사성은 인간 삶의 역사성을 의미한다. 이 역사성에 주목하면 생활세계와 그 주체인 인간성은 구분되거나 분리될 수 없으며, 상호관계속에서 형성되고 이루어지며, 그 과정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1. 물론 물체경험과 정신적인 것에 관한 경험이 학문적으로 완전히 단절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후설은 인간 정신에 대한 과학적으로 일반적인 진술이 존재할 수 있음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으며, 그가 문제삼는 것은 근대 심리학이 정신적인 것에 대해서조차도 물리학적 방법을 성급하게 잘못 적용한 물리학주의적 편견이다. 즉 물체경험과 정신적 경험이 근본적으로 분리된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현상학적으로 보면, 모든 물체경험 역시 그것이 일차적으로는 주관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는 심적 체험에 불가분적으로 속해 있다.
  2. 공동체는 다수의 인격체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라 공동의 의식과 공동의 습득성을 갖는 일종의 주체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