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철학/아티카철학>
그리스 식민지의 우주론적 사색이 종말을 고하기 직전의 시기에 그리스에서는 또하나의 철학적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 움직임은 페르시아전쟁(BC. 499 ~ BC. 450) 이후 정치적·경제적으로 절정기를 맞은 아테네가 중심이 되었다. 본래 아테네에는 독창적인 철학자들이 없었는데, 페리클레스의 문화정책으로 명성이 있는 철학자들이 대거 아테네에 몰려들어 새로운 철학이 꽃피우게 되었다. 아테네는 철학자들이 활약하기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페리클레스의 시대라고 불려지는 아테네의 전성기로서, 정치적·경제적인 절정과 귀족제도의 붕괴와 민주제도의 형성, 예술의 숭고성에 대한 인식과 보급 등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던 시기였다. 아테네는 이같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이름이 높았으므로 각지의 그리스인들이 흔히 아테네에 체류하면서 활동하는 일이 많았다. 이때 자연에 쏠렸던 관심이 인간으로 옮겨왔고 이전 세대와는 현저히 다른 철학이 전개되었다.
아티카 철학시대에는 소피스트라는 철학자 집단과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라는 세명의 위대한 철학자가 등장하여 활동했었다. 그 만큼 아티카 철학은 철학사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철학시기이며 실질적인 철학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는 시기이다. 소피스트의 활약으로 문법과 수사학이 발전하였고, 소크라테스식 산파술을 통해 본격적으로 대상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철학사상 모든 철학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연구와 주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의 역사는 반 플라톤 주의의 역사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플라톤의 철학과 최초의 반 플라톤 주의 철학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아티카 철학자들에게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든 철학은 끈임없이 아티카 철학으로 돌아가는 역사인 것이다. 이런 철학적인 측면 말고도, 아티카 철학을 대표하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또 그의 제자에 의해 수많은 학문이 태동했기에 다양한 학문에 있어서 아티카 철학시대는 크게 중요한 시대이다.
아티카 철학의 주요 철학자들
히피아스Hippias
프로디코스Prodicus
트라시마코스Thrasymachos
크리티아스Critias
이소크라테스Isokrates
키니코스 학파Cynics
- 안티스테네스Antistenes
- 디오게네스Diogenes
키레네 학파Cyrenaics
- 아리스티포스Aristippus
메가라 학파Megarian School
- 에우클레이데스Eucleides
↓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s
페리파토스 학파Peripatetic School
- 테오프라스토스Theophrastus
<소피스트Sophist>
소피스트란 아테네를 배경으로 활동했던 철학자 집단을 의미한다. 사상적인 연관성 때문에 묶어놓은 분류는 아니므로 철학적 연관은 별로 없으나 당시 분위기에 맞춰진 큰 흐름 자체는 존재했다. 소피스트는 원래 '지혜로운 자, 즉 현자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현재 소피스트란 용어는 보통 비난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즉, 수사학적 허식, 지적 천박성, 심지어는 도덕적 불성실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피스트가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니며, 그들의 활동 역시 철학의 발전에 있어서 지대하고 중요한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다. 소피스트의 출현 배경으로는 두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소피스트 이전의 철학자들이 우주론 철학에 대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러 학파는 각자의 주장만을 고집했고, 자연 철학자들은 알맞은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자연의 비밀을 간파하는데 따르는 난점을 제공했으며 자연의 진리를 발견하려고 하는 인간 이성의 능력에 대한 회의주의적 분위기를 초래했다.
두 번째는 아테네의 사회적 특성이다. 아테네의 우수한 문화와 제도는 철학의 중심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돌려 놓았다. 또 아테네에서 민주정이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시민은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또 자신의 언변 실력을 발전시켜 정치적 명성을 얻기 위해 변론술과 수사학을 공부하길 원했고, 당시 수업료가 군함을 구매할 수 있었다고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비쌌던 지라 그리스 주변 각국의 학자들이 아테네에 모이면서 소피스트가 등장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펠노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패배하여 궁핍해지자 소피스트들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소피스트들은 일부 귀족들이 독점하던 웅변술을 대중화하여 공공의 일들을 민회나 법정에서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말이나 연설을 통해 해결하는데 기여했으며 그런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문법과 수사학을 발전시켰고, 교육과 정치의 문제가 활발하게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했다는 것은 상당히 고평가 받을 일이나 문제는 그들이 돈을 받고 지식을 팔았다는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피스트에 대해 "돈을 받고 지식을 파는 궤변론자 무리"라고 격하게 평가한 바가 있다.
또한 그들의 극단적인 상대주의와 개인주의는 시민들을 도덕적 타락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번영의 시기에 이어 아테네는 가치의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소피스트들이 그러한 분위기를 앞장서 만들었건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했건간에 그들에게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자신이 사랑하는 아테네가 타락하는 과정을 보고 등장한 새로운 위대한 철학자가 소크라테스였다.
앞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얼마나 소피스트에 대해 격하게 평가했는지에 대해 서술했는데, 그외에도 소피스트들은 궤변론자라고 불리며 과거든 현재든 그 의의에 걸맞지 않게 폄훼당하는 대표적인 철학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피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정당하지 않다는 일부 의견도 있으며 이들에 대한 부분적인 재평가도 이루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소피스트들은 철학의 본질을 진리에 대한 관조가 아닌 실천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니체나 쇼펜하우어의 생철학과 맥락을 같이 하는것으로, 현대에선 훨씬 영향력있는 관점이다. 소피스트들은 감각과 지각은 착오일 수 없으며 가상세계는 실재세계와 본질적으로 구분될 수 없다고 보았는데, 이는 현대적 인식론의 중요한 논제중 하나이다.
소피스트들은 진리와 지식, 도덕이 상대적인 것으로 보았다. 즉 그들은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 진리에 대한 지식은 바뀔 수 있으며, 도덕률에도 어떠한 절대적 기준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그렇다고 지식이나 도덕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본 것은 아니며, 사회가 유지되기 위하여 사람들이 정한 규약으로서의 지식과 도덕을 긍정한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주제인 "진리와 도덕은 절대적이며 불변하는 것"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신에 대해 회의론적인 입장을 취했다. 대표적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는 신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 심지어 크리티아스는 신은 똑똑한 인간이 발명한 것으로, 인간을 규제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주장하였다.
소피스트들은 민주주의를 최선의 정치적 대안으로 주장하였다. 반면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가장 타락한 정치 형태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민주주의가 초래한 중우정치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위 언급한 몇 사례들만 봐도 알 수 있듯, 소피스트들은 궤변론자라기 보다는 근대적인 포괄적 회의론적 성향이 강한 인간중심적 철학자들이었으며, 심지어 현대의 해체주의적 성향까지 나타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그 당시로서는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의 관점에 비하여 매력이 떨어졌으며, 궤변으로 폄하되었다.
플라톤이 소피스트들에게 내린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프로타고라스나 프로디쿠스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를 했는데 특히 프로디쿠스는 다른 소피스트들 보다 더 높은 평가를 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도 소피스트가 자신보다 더 나은 교육자라면서,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제자 중 한 명을 소피스트에게 보내 교육을 받게 한 적도 있었다.
사실 소피스트들의 사상을 정확히 평가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들의 저서는 남아있는 게 극히 적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당대의 다른 철학자들이 인용한 구절을 통해서만 유추할 수 있는데 어떠한 상황에서 그러한 말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소피스트
히피아스Hippias
프로디코스Prodicus
트라시마코스Thrasymachos
크리티아스Critias
이소크라테스Isokrates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
프로타고라스는 트라키아의 연안 도시 압데라 출신의 최초의 소피스트이다. 그리스 전역, 특히 아테네에서 활동하고 존경받았으며 부와 명예를 누렸다. 페리클레스와의 우호적인 교제를 맺어 아테네 법을 가다듬는 등 공공 영역에서 활약했다는 설도 있다. 일설에 따르면 절대적 진리에 대한 의심("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는 알 수가 없다.")이 신에 대한 불경죄로 여겨져 말년에 아테네에서 추방당했으며 추방 당한 이후 시칠리아로 가던 중 배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프로타고라스의 철학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명제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인간이 없다면 모든 사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며 사물에 대한 지식이란 인간의 감각을 거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자신이 환상적이라고 생각한 식민지 철학자들의 우주론적 사색에 반대하고 인간의 입장에서 여러 감각 기관을 통해 경험할 수있는 것들 만 실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단 인간이란 자기 감각을 불신할 경우에 모든 건전성을 상실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인간의 감각기관에 의해서 인식되는 사실은 각각 마다 다르므로 지식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는 상대주의적 진리론을 주장, 자신의 의견으로 상대방을 논박하여 이 상대성에 결말을 맺는 데에 '변론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주장은 흔히 궤변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이에 관련하여 '프로타고라스의 재판'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프로타고라스가 어느날 에우아틀로스라는 한 청년으로부터 논법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단, 이때 청년이 돈이 없으므로 자신을 세계 최고의 변론가로 만들어 준다면 그때 수업료를 준다고 하였고, 프로타고라스는 이를 승낙하여 그에게 논법을 가르켰다. 그렇게 공부가 끝난 뒤, 에우아틀로스는 아테네에서 유명한 변론가가 되었고 프로타고라스는 수업료를 요구했으나 에우아틀로스는 이를 거부했고 두 사람의 논쟁은 법정으로 이어졌다. 재판정에서 프로타고라스는 에우아틀로스에게 "어차피 너는 수업료를 물게 되어있다. 재판에서 이기면 나와의 계약에 의해서, 지면 재판장의 판결에 따라 수업료를 물어야 한다" 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에우아틀로스는 오히려 스승에게 "저는 수업료를 물 필요가 없습니다. 이기면 수업료를 안 내도 된다는 판결에 의해서, 지면 스승님과의 계약에 따라 물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하였고, 이로 인해, 프로타고라스는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는 그의 논법이 서로 다른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논리적 오류를 갖고 있음을 지적한 이야기이다.
철학사에 있어서 프로타고라스가 중요한 까닭은 그가 최초의 소피스트로서 인간에 주목하고 주관성이 농후한 인간 사유의 한계를 비판하고 감각의 기만성을 자각, 상대성으로 인한 윤리적 기준을 고심하고 결론적으로 논변과 설득을 중요시하였다는 점에서 철학의 관심을 '피시스'(자연세계)에서 '노모스'(인간세계)으로 옮겨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식론과 형이상학적인 측면에서 매우 큰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막대한 수업료를 대가로 강의한 그의 생활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있을지 언정, 그런 반감을 바탕으로 그의 사상까지도 맹목적으로 비판 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 이라고 할 수 있다.
<고르기아스Γοργίας, BC. 485 ~ BC. 380>
고르기아스는 시칠리아의 레온티노이 출신의 소피스트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외교 사절로서 기원전 427년 아테네에 파견되었고, 탁월한 연설 실력으로 아테네 의회와 대중들을 감명시켜 그들의 외교노선을 바꾸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다른 소피스트들처럼 그리스 전역을 순회하며 자신의 철학과 웅변술을 전수하였으며 100세 이상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프로타고라스보다도 급진적인 그의 철학은 상대주의를 넘어 회의주의로 나아갔다. 진리가 개인에 따라 상대적이라고 주장한 프로타고라스와는 달리, 진리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아무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인식 할 수 없다. 만약 인식한다 하여도 타인에게 말할 수 없다."라는 짤막한 문장에 고르기아스는 자신의 모든 철학을 담고 있는데, 진행하는 논증이 앞 논증을 뒷받침 하는게 아니라 부분 부정하며 나아가는 기묘한 논법의 이 짧은 문장이 가져온 파괴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이로써 고르기아스는 프로타고라스와 더불어 소피스트의 전형을 만들게 된다. 때문에 고르기아스는 프로타고라스와 쌍벽을 이루는 소피스트로 평가받는다.
그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은, 이 세계에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근원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며, 존재한다 하여도 인식되지 않음은, 설사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 하여도 인간이 가지는 인식능력의 한계로 말미암아 보편적인 지식이 포착되지 않음을 의미하며, 설사 인식할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전달 수단인 언어 자체가 사물과 어떠한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는 불완전한 존재라서 실재를 전달해주지 못한다. 로고스는 내적본질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감각의 구성물 즉 ‘언어’이다. 따라서 언어를 뛰어나게 구사하는 수사학은 현실에서 가장 중요해진다.
보편적인 진리를 거부하고 더 나아가 관습을 무시한 고르기아스는 마침내 철학을 포기하고 수사학으로 전향했고, 완벽한 설득의 기술을 완성하는데 전념했다. 다만 고르기아스의 논증은 어떤 의미에서 모순인데, 그의 논증을 사실이라고 가정할 경우 그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실재)을 주장했고, 존재해도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알 수 있어도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언어를 통해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로, 조각가 스프로니코스와 산파 파이나레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추남이지만 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전해지며, 젊은 시절에는 아버지를 따라 조각을 하면서 다른 청년들 처럼 철학, 기하학, 천문학 등을 배웠고 중장보병으로 입대하여 세 번이나 전쟁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크산티페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크산티페는 종종 천하의 악처로 묘사되는데 이는 근거가 없고 과장된 측면이 크며 오히려 플라톤의 『파이돈』에 의하면 의처나 현처에 가깝다.
소크라테스는 일하는 것이 반철학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고 길거리, 시장, 광장등을 서성이며 사람들을 붙잡고 철학적 대담을 나누었다고 한다. 직접 남긴 저작이 없기에, 그의 철학은 플라톤, 크세노폰에 의하여 전해져오는 기록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의 철학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양 철학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서 공인된다. 고대 철학사는 흔히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정도로 철학사에 있어서 소크라테스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제자인 플라톤과 손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양 철학의 원조로 꼽을 수 있으며 함께 고대 그리스 철학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윤리적 문제에 골몰했으나 선대의 그리스 철학자들과 같은 자연계에 대한 관심은 없었고 그 기계론적 세계관에 불만을 품었다. 언제나 그의 철학의 중심은 모든 것에 대한 의문과 회의였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아테네의 몰락기로, 소피스트들의 지나친 상대주의와 회의주의가 사회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정신적인 혼란도 야기하던 시기였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처럼 궤변으로 진리를 상대적, 주관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배격하고 객관적이고 보편 타당한 진리를 찾아서 이상주의적, 목적론적 철학을 수립하려고 하였다. 프로타고라스처럼 아주 똑똑한 인물이 상대주의에 빠지게 된 이유는 그가 감각 경험을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절대적 진리를 알기 위해선 감각경험을 넘어서 이성과 논리를 중시해야한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덕'은 곧 '지'이다. 인간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순전히 선을 모르기 때문에,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아는 것과 선한 것은 같다는 말이다. 결국 올바른 행동이란 올바른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고, 이는 '옳다'고하는 어떤 보편적 기준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것은 감각이 아닌 이성이다. 끊임없는 사색과 반성을 통해 인간은 올바르고 보편적인 것을 알 수 있으며 소크라테스에게는 모든 경우에 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기준이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델피 신전은 언젠가 '소크라테스를 만인중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스스로 무지를 자처하던 소크라테스는 이런 신의 신탁이 사실인지 확인 하기 위해 의아심을 품고 현명하다고 여겨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가 대화 해본 결과, 소크라테스는 델피 신탁이 옳다고 시인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확실한 사실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지하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으므로 자신이 그들보다 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소크라테스는 새로운 탐구가 무지의 자각에서 출발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자신이 무지함을 전제하고 대화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을 사용했으며, 어떤 잘못된 주장에 대해 그것을 직접 비판하는 대신 상대방의 논리를 이용해 다른의견을 제시해 상대방이 스스로 주장을 철회하도록 유도했다. 이런 질문을 중심으로하는 교수법을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혹은 산파술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젊은이들에게 권력자의 권위에 물음을 던지며 비판한 능력을 키워주었기 때문에 권력자들에게 위험한 인물로 간주되었고, 말년에는 문학계를 대표한 멜레토스와 논술계를 대표한 리콘, 정계를 대표한 아니토스에 의해 신에 대한 불경죄와 청년들의 정신을 타락시킨 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치르게 되었다. 500명의 배심원 앞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활동이 정당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함과 함께 자신에 대한 재판이 부당한 이유를 설명했고 자신에게는 처벌이 아닌 환대가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것이 오히려 배심원들의 분노를 사 사형에 쳐해졌다. 이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자세히 기록되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에 쳐해지기 전 친구 크리톤에게 탈옥을 권유받았는데, 그는 탈옥하기를 거부하고 모두의 삶과 국가는 어떻게 연결되있는지, 국가는 자신에게 어떠한지를 역설하며 자신에게는 아테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평생을 산 아테네 시민으로써, 자신과 같은 시민은 국가와의 암묵적인 사회계약을 맺었으므로 아테네의 법률과 법적 결정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기에 아테네 시민으로써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결코 탈옥하지 않겠다고 다짐 했다.
이는 평소 모든 것에 대한 의문과 회의적 태도를 취하던 소크라테스의 자세와는 상당히 대조되는 입장인데, 아무리 국가와 법의 규칙이라고 해도 그것이 과연 옳은것인가 라는 회의를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가지 유념해야할 점은, 소크라테스는 언제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점에 대해 논했다는 점이다. 그가 대화를 통해서 이러한 해답을 얻고자 한 것도 어찌보면 사람들 사이의 합의와 고민을 통해서 얻은 것이 진짜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을지 모른다. 그러한 의미에서 국가는 최소한 그러한 논의가 가능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지, 그것마저도 부정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생전에 책을 쓴 적도 없고, 자신만의 사상을 전개한 적도 없기 때문에 철학적 업적 자체는 적다는 주장이 더러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통해 비로소 대상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이것이 바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직접적으로 계승되어, 더 나아가서는 2600년 서양철학사를 꿰뚫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관념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철학적 업적 또한 결코 적지 않다.
<너 자신을 알라Gnothe Seauton>
너 자신을 알라γνῶθι σεαυτόν -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는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격연으로 흔히 소크라테스 철학의 메인 테제로 인용된다. 그리스의 델피 신전 박공에는 선대 현인들의 다양한 명언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 소크라테스가 신탁을 기다리며 델피 신전을 둘러보던 도중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문구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델피 신전에서 이 격연을 접하게 된 것을 신의 뜻이라고 믿었고, 동시에 철학적 반성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릇된 편견과 무지를 자각하라는 명령으로, 더 나아가 인간의 자아, 즉 정신을 깨끗하게 하고 그것을 무한히 계발하라는 뜻까지 내포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이 격연을 자신의 철학적 활동의 기초로 두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에게 "너 자신을 알라"를 접한 사것은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사건 중의 하나가 되었는데, 자연과학에 심취해있던 중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를 통해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을 내부 세계로 돌리게 되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BC. 427? ~ BC. 347?
플라톤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로,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공부했던 아카데메이아의 설립자이다. 후에 영국의 철학자 알프레트 화이트헤드가 "전통적 유럽 철학의 가장 안전하고 일반적인 정의는 그것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구성되어있다라는 것이다." 라고 칭할 정도로 충분히 플라톤은 철학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후대의 모든 철학자들은 플라톤의 영향력하에 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 정도다. 당장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반플라톤주의의 시초였으며, 기독교 중세 철학, 근대 합리론, 심지어 기성 서양 철학의 반동과도 같은 니체나 쇼펜하우어의 경우에도 플라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아버지는 아테네의 마지막 왕의 후손이고, 어머니는 아테네 민주정의 윤곽을 잡은 솔론의 후손이었다. 실제 그의 이름은 '아리스토클레스'인 것으로 여겨진다. 플라톤이라는 이름은 '넓은 어깨'라는 뜻인데, 이름으로 볼때 그는 체구가 무척이나 건장했으며, 조각상등을 보면 외모도 무척이나 수려했던것으로 보인다. 레슬링 대회에서 3회 이상 우승했다고 할 만큼 근력도 뛰어났다고 한다.
플라톤은 젊은 시절에 극작가를 꿈꾸었지만 소크라테스를 만난 뒤 소크라테스의 문하에 들어가 그의 가장 충실한 제자로서 소크라테스가 장려하던 토론의 열렬한 참여자가 되었다. 일생을 통하여 그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탐구 정신과 목표와 방법의 감화를 받았다.
플라톤은 정치 명문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일생에 있어서 단 한번도 아테네 민주정치에 참여한적이 없었다. 플라톤은 아버지가 일찍 죽은 후 어머니가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페리클레스의 친구인 피릴람페스와 재혼했기에, 플라톤은 아테네 정치의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볼 수 있는 집안 환경에서 자랐고, 그래서인지 그는 어려서부터 공직에 참여하려는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플라톤은 아테네의 전성기였던 페리클레스 사후에 태어났기에 아테네가 몰락하고 타락하는 것을 경험해야 했고, 외당숙인 크리티아스가 가담한 30인정권은 너무나 무능력했으며 잔인하기 까지 했기에 플라톤에게 이전의 민주파의 통치를 지지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기원전 403년 복원된 민주 정치에 적지않은 기대를 했으나 아테네의 민주정치가 위대한 스승 소크라테스를 살해하는 것을 목격했기에 젊은 시절부터 아테네의 정치를 증오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패배했을때 원인을 민주정치에 돌리기도 했다. 플라톤이 이상국가의 정치 체제로서 독재 정치를 지향한 것은 지극히 인과적인 결과였다.
소크라테스 사후 플라톤은 아테네를 떠나 지중해 세계를 두루 여행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이 사실을 제외하고 40세 까지의 플라톤의 행적에 대해서는 분명한 것이 없다. 이상국가에 대한 그의 강직한 노력은 시라쿠사의 참주를 바른 길로 인도함으로써 이상적인 통치를 베풀게 하려는 시도로 이어졌으나 그의 정적들의 음모에 휘말려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아테네로 돌아온 그는 40세의 나이에 최초의 연구 기관 겸 대학교이자 '아테네의 네 학교들' 중 으뜸으로 꼽히는 아카데메이아를 세웠다. 이 학교는 529년 로마 황제 유스티아누스에 의해 폐교될때 까지 이어졌으며, 당시 지중해 세계의 식자들이 몰려들어 거대한 학문 공동체를 이루었다. 플라톤은 이 학교의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문에 들어설 수 없다." 라는 글을 써 놓았다고 한다. 실제로 아카데메이아는 기하학등 수학 중심교과와 천문학, 화성학 등의 과학을 무척이나 중요시하였다. 플라톤은 80세에 사망했다.
추측컨데 플라톤의 많은 저서들은 온전한 모습으로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젊은 시절 극작가를 꿈꾸었던 것의 영향인지 그의 대다수의 저서는 대화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그 대부분이 대화의 주도인물을 소크라테스로 삼고 있다. 그 밖에도 그의 이름으로 전해져 오는 것은 13통의 서한이 있다.
<플라톤의 인식론>
1. 이념론
1.1 (감각적 판단과 이성적 판단의 구분)
플라톤은 세속적이거나 통속적인 견해인 속견(감각적 경험에 의한 판단)과 무언가에 대해서 가지는, 그것이 참이라고 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인식(이성적 사고에 의한 판단)을 명백하게 구별했다. 속견과 인식의 차이를 구별할 때 그것이 진정히 진실된 것인지에 대한 확실성만이 구별이 기준이 되지 않으며, 그렇다면 그 구별은 단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은 속견이 아무리 뛰어나다고는 해도 현상적인 테두리를 넘지 못하며, 인식은 아무리 떨어진다고 해도 절대적으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1.2 (감각 세계와 이성 세계의 구분)
플라톤은 속견과 인식을 구별하는 배경에 있어서 먼저 세계를 둘로 나누어 보았다. 인간이 감각을 통해 알 수 있는 현상의 세계와 정신의 사유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이념의 세계(이데아)가 그것이다. 속견은 일어나는 어떤 개별적 행위나 존재하는 어떤 개별적 사물등 감각적 존재를 판단의 대상으로 한다. 이러한 개별적인 감각적 존재들은 플라톤에게 있어서 지속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참된 존재가 아니다. 현상의 존재는 덧없고 우연적이며, 어떠한 고정된 모양으로도 특징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인식은 개별적인 감각적 존재들과는 달리 지성으로써만 알 수 있는 고정적·불변적이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손상되지 않는 영원한 것에 대한 판단이다. 인식의 대상은 이와 같은 이데아이기 때문에 인식은 참된 판단이며 신뢰할 수 있고, 또 완전하게 옳은 것이다.
1.3 (감각 세계와 이성 세계의 관련성과 차이)
현상의 세계의 모든 감각적 사물들은 이데아의 속성을 조금씩 나누어 가지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도화지 위에다 여러가지 원을 그리지만 어떻게 그려도 원의 정의인 '한점으로부터 일정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원을 그리기는 불가능하지만 우리의 관념은 진정한 '원'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현실의 나무는 자연 현상에 의해 나뭇잎과 가지가 떨어져 나가거나 다른 존재에 의해 병을 앓기도 하지만 관념속의 나무는 완벽한 나무의 형상을 띄고 있다. 플라톤은 이를 통해 현상의 세계의 감각적 존재는 이데아를 모방한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에 반하여 이데아는 오직 하나 밖에 없다. 원의 이데아는 하나 밖에 없지만 다소라도 원의 형상을 띈 존재는 무수히 많으며, 정의의 이데아도 하나 밖에 없지만 다소라도 올바른 인간은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하지만 인간의 이데아에 하위에 속하는 김철수의 이데아등은 있다.) 이렇게 이데아의 속성이 감각적 존재들에 조금이나마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감각적 존재를 통해 정신을 자극하여 이데아를 직관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 수는 있지만, 감각적 존재 그 자체는 아무리 이데아의 요소를 많이 가지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데아가 지니고 있는 완전성을 완벽하게 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데아는 인간이 감각하는 존재 중 하나는 결코 아니며, 말하자면 인간은 이데아를 감각할 수 없지만 이성적 능력을 통해 이데아를 알 수 있는 것이다.
1.4 (판단에 있어서의 이성 세계의 실재성)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절대적 진리의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소크라테스가 고민하던 진리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런 플라톤이 감각할 수 있는 것만이 실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에 대하여 비판한 것은 물론이다. 플라톤은 모든 대상들 중에서 이데아야말로 '실재적'이라는 술어로 표현될 자격이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데아는 영원한 완전성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대상이며 감각적 존재들은 이데아의 실재성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데아의 실재성을 강조했다고 해서 다른 대상들도 실재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감각적 존재들은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데아의 현실화된 실례로서는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이데아의 실재성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데아를 인식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개선하거나 주변의 다른 것들을 처리하거나 하는 데 아무리 애를 써도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실로 이데아는 인간의 우수성이나 개별적인 사물의 의의를 규정하는 문제와 관계가 깊은 유일한 실재적 대상이다. 플라톤은 한번도 이데아를 어떤 절대적 내지 보편적 의미에서 실재적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고, 언제나 감각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여러가지 행위를 효과 있게 해줄 수 있음직한 방법의 탐구와 관련해서 실재적이라는 말을 하였다.
말하자면 인간은 비록 모두가 깨닫고 있지는 못할 지라도, 감각적 존재와 감각적 사건들로 되어 있어 불완전한 저급한 세계와 모든 대상이 완전하고 불변적인 고차원적 이데아의 세계 두 세계에 동시에 살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정신과 훌륭한 목적을 가진 소수의 사람은 민감하게 이데아를 인식하고 완전한 이데아에서 얻은 영상에 비추어서 저급한 세계의 일들을 효과 있게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데아의 인식은, 그리고 오직 이것 만이 이러한 사람들에게 감각적 세계에 있어서 좀더 나은 판단 기준을 제공해줄 것이며, 이리하여 이데아는 오직 감각적 존재들을 판단하거나 그것들에 현명한 어떤 작용을 하는데에 관련해서만 '실재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탐구에 있어서의 감각적 존재에 대한 이데아의 우수성이 곧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실재성의 의미였던 것이다.
1.5 (플라톤 이념론의 실현적 한계)
이데아에 대한 플라톤의 의견에서는 일종의 불충분성 내지 심지어는 혼란성까지 발견될 수가 있다. 인간이라는 이데아는 존재하는 많은 감각적 존재들의 본질을 말하는 것인데, 정의라는 이데아는 이에 대하여 존재할 수도 있지만 결코 전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 하나의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감각적 존재들과 실제로 관련이 있는 이데아와 마땅히 관련해야할 이데아의 분명한 구별을 하지 않았다. 인간은 이따금 어떤 이상적인 이데아의 요구가 실제로는 실현 되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실현될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칠때가 있는데, 그러한 경우에도 인간은 불완정성의 척도로서 이상적 이데아를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플라톤은 이 두 가지 유형의 이데아를 구별하지 않고 대신 깊은 윤리학적 관심에 몰두 했기 때문에 개별자의 세계를 그림자의 세계라고 말하며 이데아를 현실적 세계의 논리적 분석인 동시에 저 세계에 대한 도덕적 선언이라고 하였다. 즉 그는, 자신이나 타인이 활동하고 있는 감각적인 퇴폐적 세계에서는 이상적인 이데아의 충분한 의의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며, 그것은 이데아가 나타내는 미니 정교성이니 균형이니 하는 것들 대신에 이데아 자체를 사랑하고 이데아의 직관에 의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영상에 언제나 충실하라고 열심히 사람들에게 역설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2. 인식론
2.1 (판단 방식의 구분)
플라톤은 지적인 생활이 최하의 무지로 부터 최고의 인식에까지 발전해가는 과정을 이른바 '분할된 선'으로써 묘사하였다. 즉 선을 네 부분으로 구분하고, 이 네 부분으로 하여금 감각지·경험지·오성지·이성지 라는 지적 발전의 네 단계를 표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처음의 두 단계는 양쪽이 다 속견의 경지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는 좀더 사이비적이며 하나는 좀더 쓸모가 있는 속견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가 있다. 마지막 두 단계는 이에 비하여 양편이 다 인식의 경지에 있는 것이지만 역시 하나는 좀더 기본적인 인식이요 하나는 좀더 고도화된 인식이라는 점에서 양자의 차이가 있다.
2.2 (감각적 판단에 대한 설명)
감각지(억측)는 예컨대 적의 무력적인 능력을 그의 신체적 조건을 통해 평가하는 경우와 같이, 선유관념이나 피상적으로 한번 흘낏 보거나 주관적인 기분에 따라서 내리는 불시의 판단이나 짐작으로, 포착 대상은 '이미지'이다. 경험지(신념)는 어떤 실례가 여러 차례 쌓인 것을 토대로 내린 판단이다. 그리고 경험지는 그 실례들이 얼마나 잘 선택되었는가, 경험지의 바탕이 된 경험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가, 일반화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 실례들을 얼마나 적절하게 체계화하였는가 등등의 몇 가지 근본이 되는 원인에 따라 그 수준이 달라지며 포착대상은 '사물'이다. 예컨대 한의사가 어떤 풀을 약초라고 판단할 때, 그것은 하나의 신념이고 그러한 신념은 거짓일 수도 있고 참일수도 있다. 그러나 신념은 억측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개별자의 관찰을 토대로 하는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데아나 원리의 인식에 도달하지는 못하며, 복잡 다단하고 변전 무상한 현실 세계속에서 그 신념의 소유자의 활동을 지도해 줄 믿음직 한 토대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
2.2 (이성적 판단에 대한 설명)
오성지와 이성지는 인식이며 그 속에는 이데아의 인식도 포함된다. 사람들은 인간이 어떻게 이데아를 직접적으로 깨달으며 또는 직관할 수 있는가 경탄해 마지않을 것이다. 플라톤은 인간이 이데아를 직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누히 역설하였다. 그러나 그도 역시 이 사실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일종의 신화적 방식으로 이 사실을 설명하였다.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의 영혼은 숙명적으로 '육체'라는 감옥에 구속되게 되어 감각적 세계에 살기 전까지는 다른 곳에 있었다고 한다. 태어나기 이전의 인간의 영혼은 불사적인 신 및 순수한 이데아들과 더불어 천상에 살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혼들이 육체 속에 갇히고 감각적 세계에서 살게됨으로써 이데아들을 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지상의 경험이 영혼을 자극하여 그 영혼이 탄생 이전에 알고 있었던 어떤 이데아들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므로 인식은 상기이다.
2.3 (이성적 판단의 특질)
이런식의 미신적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에도 플라톤은 자기가 신화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고, 또 자기가 그렇게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청취자와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 신화는 플라톤이 진지하게 생각한 하나의 특별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이 특질이란 인식에는 개별적인 실례들이 아무리 많이 쌓이더라도 결코 설명할 수 없는 한 요소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 요소란 결코 개별자가 아니라 이데아 내지 원리이며, 이것이야 말로 일단 인식된 후에는 이와 관련된 선택을 지도하고 감각적 존재들을 취급하는데 대한 탁월한 방편이 된다. 인간의 정신이란 감각에 주어진 사실의 입증에 머물러 버리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감각적 사실을 넘어서 통찰하고, 감각적 사실의 해석과 평가에 필요한 이데아를 발견할 수 있는 힘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2.4 (오성지에 대한 설명)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오성지와 이성지에 대해서 논하자면, 이 둘은 속견의 경지의 감각지와 경험지처럼 체계화의 정도에 그 차이가 있다. 오성지는 단일한 이데아 등 어떤 이데아가 파악되었을 때 생기는 향상된 인식이다. 포착대상은 '자연의 법칙'으로, 과학적 지식이나 물리학 법칙, 수학적 법칙등 추상적 지식이다. 이런 추상적 지식들은 무엇에 대해 결코 말해주지 못하며 그저 만약 어떠하다면 '성립가능한 것'을 말해줄 따름이다. 예컨대 기하학에 있어서 삼각형을 "ABC가 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이라고 하고 삼각형을 그린다고 한다면, 감각계에는 완벽한 직선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직선을 그릴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직선으로 둘러싸인 삼각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만약 추상적 지식, 여기서는 수학에 가설적인 진리 이상의 무엇이 있다면, 초감각계의 초감각적 직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아야 한다. 오성지를 통해서는 이것이 가능하지가 않다.
2.5 (이성지에 대한 설명)
여기서 이성지가 필요하다. 이성지는 이데아계에 존재하는 완벽한 직선으로 구성된 삼각형을 알아볼 수 있으며, 그런 삼각형이 존재해야 비로소 기하학 명제들을 가설적인 명제가 아닌 정연 명제로서 긍정할 수 있다. 또 감각적 존재들과는 달리 이데아들은 논리적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서로 다른 이데아를 포섭하고 있거나 포섭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을 긴밀하게 결합하여 기하학과 같은 체계를 이룰 수가 있는데 예컨대 기하학적 대상들은 여러 개가 존재하는데 삼각형을 구성하려면 최소한 세개의 직선이 있어야 하며, 원의 교차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두 원이 기하학적 대상으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단일한 이데아나 또는 몇 가지 이데아들의 직관을 넘어서 논리적인 관계로 맺어진 이데아들의 통일적 체계를 형성해 갈 경우에는, '분할된 선'의 최상의 단계인 동시에 지적인 생활의 최고의 경지인 이성지의 수준에 접근해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와 같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이성의 이상적 목표에 도달한다면 온세계에 대한 참된 설명이라 할 수 있는 통일된 지식 체계를 얻게 된다고 플라톤은 믿었던 것으로 생각 된다.
2.6 (이성지의 현실적 한계와 지적 활동의 척도로서의 이성지의 역할)
이는 종종 플라톤을 비판하던 일부 사람들이 그를 일원론자라고 보는 자신들의 견해가 정당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했는데, 만일 하나의 통합된 인식의 체계가 그대로 세계 전체의 설명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이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물의 한 조직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플라톤이 명백히 밝힌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플라톤은 자신이 이성의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주장한적 도 없으며, 다른 사람이라고 이에 도달하였던가 도달할 것 같다는 암시를 보인 적도 없다. 그는 이성지의 경지를 이미 성취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인식의 이상으로서 제시하였던 것이고 이러한 경지는 지적인 노력이 최고도로 완성하고자 지향하고 있는 인식의 이상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오성에 의한 인식의 가치 척도가 되는 것이며, 인간의 모든 지적 노력에 의미 부여 를하는 것이다. 오성의 경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좀 더 높은 경지, 즉 아무리 높아도 개연적인 소견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 완전한 확실성으로 바뀌게 될 더 높은 경지가 이론상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오성에 의한 지식이 더욱더 조직적으로 되면 될 수록 그 사람은 이성지의 이상적 경지, 즉 총체적 진리나 궁극적 통찰의 합리적 파악이라는 이상의 경지에 더욱 접근해 가는 것이다.
2.7 (이성지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플라톤의 교육 방식)
플라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인 것들에 사로잡혀 이데아계로 정신을 높여 가는일이 드물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조국의 소수의 정선된 젊은이들에게 지적인 생활의 본질을 통찰케 해줄 만한 고도의 교육 과정을 모색하였다. 이 교육과정은 산술학, 기하학, 천문학(별들을 수많은 개별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움직이는 물체들의 원리 혹은 법칙을 형성하는 학문이었다.), 화성학(음악에서 특수한 적용을 보게 될 수학적 비와 비례에 관한 연구였다.)등 여러가지의 수리적인 학문들로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 학문들은 직접적으로 이데아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2.8 ('선의 이데아'의 개념)
플라톤은 지적 생활이 오성지의 경지로부터 이성지의 경지에로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올라갈 수 있는가를 제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점에 관한 그의 시사는 일종의 예언에 그치는데 그것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아무도 실제로 이성지의 경지에 올라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다른 모든 이데아를 포괄적 체계로 체계화하는 일은 최고의 원리, 즉 원리들의 원리를 사용함으로써 가장 잘 이룩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최고가 되는 원리가 '선의 이데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논점을 전개시켜 가는 중 엉뚱하게 신비적인 말을 사용하여, 이에 관한 그의 논구는 대화편 가운데에서 가장 모호한 구절중 하나로 꼽힌다.
"선의 이데아는 모든 다른 대상들에 대해서 그것들이 인식될 수 있도록 하는 혜택을 부여하며, 또 그것에 참다운 본질적인 존재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이데아들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라, 권위나 권능에 있어서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해 있는 것이다."
이 구절은 시대와 독자에 따라 여라 가지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기독교의 신학자들은 그 속에서 유신론적 신앙 활동을 보는 경향이 있었으며, 또 다른 사람들은 아전인수격으로 자기 자신의 확신을 어떤 예견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이처럼 아무도 이에 대해 확증을 가지고 해석할 수는 없으나, 플라톤 철학의 중심적 문제는 언제나 윤리적인 것임을 각색하고 선의 이데아에 관한 플라톤의 애매모호한 문구를 윤리학적 견지에서 이해하고자 한다면 보다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뜻한 바는 아마 어떠한 것도 그것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능이나 이상적 실현인 좋은 상태善에 비추어서 보기 전에는 정당하게 인식되지 않으며, 또 다른 것에 비해서 그것만이 지니는 가장 의의 깊은 위치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일 것이다. 사물들이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있는 것은 그들이 고유한 목적에 이바지하며 그것들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만약 사물의 궁극적 본성을 체계적으로 밝혀 주어야 한다면, 인식은 기능이나 가치가 선의 이데아를 중심적으로 형성되지 않으면 안된다. 한마디로 인식은 그 형성의 원리가 목적론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속에 깃들어 있는 가치에 의해서 사물을 분석함은 그 사물들을 그것들의 완전한 본성과 그것들의 상호 관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인식적 문맥 속에 집어 넣는 유일하며 필수적인 방법이다. 다른 형식의 설명도 가능하지만 그보다 적은 성과밖에 낼 수가 없다. 예컨대 기계론적 설명은 사물을 다수의 부분들에 의해서 다루지만, 이들 많은 부분을 의미 있는 통일체로 통합하고 있는 것을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있는 대로의 사물들은 단순히 순간적 사실이나 구조로서 있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순간적인 사실을 초월해 있는, 비록 이상적이기는 할지라도 그것들의 진정한 목적이 되는 가치가 실현될 여지가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오직 목적론적 설명만이 가치라는 것을 고려할 수가 있다. 우리는 그 이외에 어떠한 방법에 의해서도 혼란을 제거하고 질서를 확립할 수 없으며, 변화를 조절하고 안전을 증진할 수 없고, 의혹을 일소하고 확실성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태양의 비유The Metapher of the sun>
태양의 비유는 플라톤이 저서 '국가' 6권에서 판단의 원천인 '선의 이데아'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비유이다. 그의 작은 형 글라우콘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대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감각적 존재들에는 하나의 이데아가 있다. 감각적인 것들은 시지각을 통해 알 수 있으나 불완전한 가시적인 존재이며, 반면에 이데아는 완전하나 시지각을 통해 판단할 수 없고 오직 이성만을 통해 판단이 가능한 가지적인 존재이다. 가시적인 것들을 보기 위해서는 시각에 의존해야 하는데,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는 가시광선을 부여하는 '빛'이 필요하다. 이 빛의 원인은 태양으로, 플라톤은 바로 이 태양을 '선의 이데아'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한다
즉 선의 이데아가 가지적 영역에서 지식의 대상들에게 진리를 부여하고 지각을 통해 지식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태양이 가시적인 영역에서 빛을 통해 인간이 시각을 통해 사물을 판단할 수 있께 해준다. 만약 태양이 없다면 어떠한 사물도 시각을 통해 인지할 수 없는 것 처럼 '선의 이데아'가 없다면 어떠한 것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분의 비유 The Analogy of the Divided line>
선분의 비유는 플라톤이 저서 '국가'6권에서 판단 대상과 능력을 구별하기 위해 제시한 비유이다. 그의 작은 형 글라우콘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대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판단 대상들이 '가시적인' 것들과 '가지적인' 것들로 구분되는 것처럼, 이에 따라 판단의 수준은 가시적인 감각적 대상들에 대한 시지각에 의한 '속견'과 가지적인 이성적 대상들에 대한 지성에 의한 '인식'으로 나누어진다. 이것은 같은 비율로 나누어진 설명으로 설명되나 인식대상들의 상대적인 명확성과 불명확성에 따라 서로 다른 비율로 나눌 수도 있다.
가시적인 판단인 속견은 감각지와 경험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감각지는 그림자나 거울상같은 영상과 단편적인 사물에 대한 주관적인 기분에 따라 '이미지'를 판단하며 '억측'이 생긴다. 이를 통해 플라톤은 시와 예술이 허상이라고 믿었고 철인 국가에서 시인과 예술가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험지는 경험의 축척을 통해 '사물'의 판단하며 '신념'이 생긴다.
가지적인 판단도 오성지와 이성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오성지는 도형이나 수와 같은 '자연의 법칙'을 판단하며 가정이나 전제에서 출발하는 '가설적 원리', 즉 '추론적 사고'가 생긴다. 이성지는 '이데아 그 자체와 이데아들의 상호적인 연관성'을 판단하며 어떠한 가정이나 전제가 없는 상태에서 단지 '이데아 그 자체', 특히 '선의 이데아'의 직관만을 통해 탐구 하며 '진정한 앎'이 생긴다.
선분의 비유는 플라토닉 형이상학 체계의 초석이다. 국가에 수록되어 있는 선분의 비유는 플라톤의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등을 하나의 그림에서 총합하여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선분의 비유의 두번째 단계 경험지는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모델이 되었다.


A-B:감각지 B-C:경험지 C-D:오성지 D-E:이성지
<동굴의 비유The Allegory of the Cave>
동굴의 비유는 플라톤이 저서 '국가' 7권에서 태양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에서 나타나는 판단의 대상과 과정에 대해 통합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비유이다. 그의 작은 형 글라우콘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대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 동굴 안에서 입구 쪽으로 등을 돌리고 한쪽 방향만 볼 수 있도록 신체를 고정시켜 놓은 죄수가 있는데, 이때 죄수는 태어날 때 부터 계속 이 상태로 고정되어 있었으며, 한 동안은 아무것도 없는 벽만 보았으나 어느 순간 생긴 등 뒤에 불빛에 의하여 앞면 벽에 사물의 그림자를 보게 되었고 그 그림자를 실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죄수는 석방되었고, 고개를 돌려 그림자의 원형인 사물을 보게 되고, 동굴 밖으로 나갔으나 동굴 밖 빛이 너무나 강해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이 평생 살아온 동굴의 '현실'로 다시 들어온다. 하지만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동굴 밖으로 나갔고 밖에 나가 세상에 있는 여러가지 사물들을 보면서 그는 그동안 자신이 보아왔던 것이 실은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동굴로 돌아가 이 사실을 동료 죄수들에게 말했으나, 동료 죄수들은 여전히 그림자가 참된 실재라고 생각하였다. "
동굴 안의 죄수가 그림자를 자각하는 단계는 '억측'의 단계이며, 석방된 죄수가 고개를 돌려 그림자의 원형인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은 이제까지 보였던 것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것을 보는 단계로 '신념'의 단계이다. 석방된 죄수가 동굴을 벗어나 동굴 밖의 빛 속에서 현상을 보는 단계는 '추론적 사고'의 단계이며, 이어서 빛의 근원인 태양, 즉 '선의 이데아'를 보는 단계는 '진정한 앎'의 단계이다.
가지계를 태양이 있는 동굴 밖 세계라고 한다면, 가시계는 지하의 동굴 세계라고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은 그 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육체라는 쇠사슬과 같이 구속성이 농후한 물리적 한계에 의해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한 감각정 경험을 실재라고 생각하는 죄수와 같다. 그러므로 철학적 교육관점에서 지하의 동굴 세계로 비유되는 가지계의 가지적 환영에 익숙해진 인간을 태양의 동굴 밖 세계로 비유되는 완전한 이데아의 가지계로 이끌어야 한다.
<플라톤의 윤리학>
플라톤은 다양한 분야의 문제들을 철학적 관심을 통해 탐구 하였다. 그중에서도 언제나 그의 철학의 주제였으며 다른 철학적 분야를 논함에 있어서도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윤리학이었다. 그의 초기 대화편으로부터 후기 대화편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직간접적으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삶에 대해 크게 집중하였다.
1. (훌륭한 삶이란?)
플라톤이 사람다운 훌륭한 삶을 다루는 데 있어서 어떤 것의 좋은 상태는 그 사물의 가장 성숙한 모습, 즉 가장 완전히 발전된 모습이라는 사상을 기반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인간에 있어서도 역시 좋은 상태란 인간이 가진 잠재적 모습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인간의 고유한 좋은 상태'에 대해 '아레테Arete', '덕Virtue'이라고 흔히 번역되는 특별한 명칭을 붙였다. 플라톤이 말한 문맥상의 덕은 단순한 악의 결여가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탁월성의 성취, 즉 인간의 온갖 능력이 이상적으로 발휘되어 완성에 도달함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덕의 중요성)
플라톤에 의하면 인간의 타고난 천성은 유덕한 것이 아니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성은 마치 가공되지 않은 재료가 완성된 제품과 관계가 있듯이 덕의 성취와 관계가 있다. 한편 인간성 가운데의 어떠한 타고난 요소도 그것을 악이라고 비난하거나, 또는 발전된 삶 속에서의 그것의 정당한 위치로부터 그것을 배제하거나 해선 안된다. 그리고 어떠한 타고난 요소라도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든가, 멋대로 방임하든가, 또는 다른 요소들을 지배하고 억압하도록 내버려두든가 해서도 안된다. 플라톤의 생각에 의하면 인간다운 좋은 생활이란 온갖 능력을 총체적으로 발전시켜 감으로써 실현될 수가 있다. 이를 피타고리안적으로 표한한다면 인간의 '선' 내지 '덕'은 일종의 조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이란 '집안을 정돈하는 것처럼 자기자신을 잘 정돈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2.1 (덕의 필요성)
적절한 자기 지도와 현명한 계획이 없이는, 사람은 결국 여러 가지의 충동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자기 혼란에 빠져 버리든가, 그렇지 않으면 어떤 편파적인 한 가지의 충동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절한 자기 지도와 현명한 계획이 있으면 질서가 지배하는 조화로운 짜임 속에서 잘 조절된 갖가지 관심의 대상을 얼마든지 성취해 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훌륭한 인간이란 결국 완전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 사람이라는 것이다.
3. (덕의 윤리관을 통한 절대주의적 윤리관 비판)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은 사람다운 고유한 생활을 자기 밖에 있는 어떤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외적인 권위란 법률과 그 법적 결정이나 사회의 관습과 같은 세속적인 권위일 수도 있고, 신의 섭리와 같은 종교적인 권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것이 세속적인 형태든 종교적인 형태든 간에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이 사회의 관습과 법률을 존중한 것은 사실이다. 즉 그는 관습이나 법률에 대하여 그것들이 모두 과거 사람들의 많은 경험적 교훈을 구현하려는 것이라는 이유에서 경솔히 반대하려 하지는 않았으나 이것들이 그 자체로서 필연적으로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려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법률이나 관습은 그것들이 예속하고 있는 표준에 의해서 판정되어야 하는 것이요, 그것들 자체가 표준으로 승격될 수는 없는 것이다. 플라톤은 자신의 위대한 스승 소크라테스를 법적 결정을 때로는 대담하게 무시하고 때로는 경건하게 인정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마찬가지로 플라톤은 종교적 권위라는 것도 인위적 명령이나 사회적 강제 이상의 어떤 궁극적인 것으로는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조국의 기성적 종교 의식에 참례하는 것은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러한 의식에 있어서 참례를 일종의 훌륭한 취미의 문제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이른바 신의 명령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이 윤리적으로 건전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어느 때인가 그는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서, 신이 어떤 행동을 원하기 때문에 그 행동이 바른가, 그렇지 않으면 어떤 행동이 바르기 때문에 신이 그것을 원하는가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이는 답하지 않아도 명백하게 의미하는 바가 있다. 신의 뜻이라 할지라도 객관적인 도덕적 타당성을 가진 기준에 의해서 판정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이 실존한다고 가정할 시 아무리 신의 힘이 강력하다고 해도, 명령에 의해서 바른 것을 그릇되게, 또는 그릇된 것을 바르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신이 진정으로 인간의 고유한 도덕적 성실성과 일치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신의 뜻은 유덕한 것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당하게 인간의 순종을 받지 못할 것이다.
종교도 정치나 사회 생활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올바르게 인도될 경우에는 인간의 실천 생활에 막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러한 실천에 대하여 수단의 구실을 해 온 그 정도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을 사람이 외적 권위로 삼고 복종하여야 할 최후의 목적인 양 떠받느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4. (덕의 윤리관을 통한 상대주의적 윤리관 비판)
그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은 전체주의적 견해에 반발하고 개인주의적 입장을 밝혔다.(이를 덕의 윤리관을 통해 비판함으로써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인간이 자기가 희망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도덕적 권한을 가졌으며, 자기가 깊이 품고 있는 욕망이면 무엇이든지 만족시킬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견해의 극단적 형태는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 라는 격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러나 강자가 육체적인 강자든, 혹은 정치적인 강자든 간에, 자신의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수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으며, 또한 무력적 행사하에 있는 사람들 여하에 따라서 옳지 못한 생활 양식을 타인에게 강제하는 폭군이 될 수 있다.) 좀더 온건하고 교활한 형태로 나타난 것은 인간에게 좋은 것은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이라는 소피스트적 가르침에서 볼 수 있다.
욕망이 인간이 천성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모든 잠재적 능력을 언제나 자각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욕망은 난폭한 힘과 더불어 비판 받을 필요가 있다. 사람은 그가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은 것, 또는 그것과는 다른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윤리적 비판의 주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의 능력의 전체적 실현과 조화될 것을 자각적으로 분명히 욕망하게 하는 방법과 수단을 찾는 일이다. 오직 이 능력과 그것들의 가장 조화 있고 완전한 실현과의 논리적 분석에 의해서 여러 가지 욕망이 철저히 음미되었을 때에만 그 욕망들이 선한 생활을 위한 조건에 합치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정치학>
1. (플라톤 정치학과 플라톤 윤리학의 관계)
인간의 본성을 고찰함에 있어 플라톤은 하나의 유추법을 사용하였다.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는 인간과 다름 없는 유기적 존재이며, 그것이 개인보다는 더 규모가 크다는 까닭 때문에 관찰하고 분석해 보기가 좀 더 용이한 것이다. 국가 안의 사회적 계급, 이 계급들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여러가지 관계,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의 사회적 지위에 맞는 직분을 수행하도록 교육하는 방법, 그리고 사회적인 여러 가지 계급에 특유한 덕과 전체로서의 국가의 특유한 덕 등 이러한 모든 유추의 주요점은 인간다운 훌륭한 생활을 이해하는 데 깊은 관계가 있다.
플라톤의 윤리학과 정치학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어느 쪽도 따로 분리해서 충분히 논할 수는 없는 것으로 플라톤은 윤리에 대해 논하던 중 자신의 윤리학 이론에 내포되어 있는 정치학적인 측면에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는 개인은 조직적인 사회 생활에 대한 참여를 통해서만 자신의 인간적 발전을 실현할 수 있다는 그리스적 사상을 도입한 것으로 보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연구를 사회와 관련해 수행하게 되었다. 플라톤이 정치학적 유추를 착안했을 당시의 논점과 자신의 면밀한 정치학적 성찰의 궁극적 관심사가 결국엔 개개의 인간이었다는 점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2. (생산자 계급)
그의 유추의 출발점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국가라는 것은 분업의 원리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조직된다는 점에서 개인들의 단순한 공동체와는 다르다는 주장이었다. 예컨대 일부는 타인이 소비할 소비재를 생산하고, 일부는 타인이 주거할 건축업에 종사하고, 일부는 타인의 병을 고칠 의료계에 종사하고, 일부는 타인을 위해 운송업과 상업에 종사하는데, 이는 국가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부강해지면 다양한 수요에 대응 하기 위한 여러 종류의 직업이 새로 생기는것이 요구되어 직업의 개수는 한계없이 증가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는 인간의 생명 및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수요 및 개인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수요를 해결하는데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두 생산자 계급이라고 규정하였다.
3. (전사 계급)
그러나 국가는 단순히 생산자 계급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는 적대적일 수 있는 외부의 무력적 위협으로 부터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며 법률 결정을 집행하는 계급이 필요하다. 즉 어떤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국내외의 적들로부터 국가를 수호하는 전사 계급이 될 수 밖에 없다.
4. (지배자 계급)
또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입법·사법 업무 등 공동체 생활을 통솔하며 전사들을 위한 국방 정책을 설계하고 생산자들을 위한 복지와 법률 제정등들 수행해야할 계급도 있어야한다. 이들은 지배자 계급이라고 한다.
5. (세 계급의 질서가 잡혀있는 이상국가의 덕이란?)
이리하여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생산자·전사·지배자의 세 계급으로 형성이 된다. 그러나 국가는 몇 단계의 우열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 지배자 계급의 통치에 다른 두계급이 복종함으로써 세 계급이 조화있고 질서있는 전체를 형성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국가가 완전 무결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질서가 잡혀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국가의 질서가 잡혀 있다면, 그것이 동시에 완전 무결한 국가를 이룰 충분한 조건이 되는 것이며, 바로 이러한 국가에서 플라톤의 철학이 모색하던 덕, 즉 절제·용기·지혜·정의의 덕을 발견할 수 있다. 플라톤이 언제나 같은 덕목들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특히 후대에서 전통적으로 플라톤의 주요한 덕이라고 지칭한 위의 네 가지 덕을 항상 강조하였다. 플라톤은 이와 같은 여러 덕을 질서 잡힌 이상 국가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설명하려 했다.
5.1 (지혜의 덕)
지혜는 지배자 계급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각종 생산자들의 각자 업무에 대한 기술적인 지식등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대한 지식의 이상의 것이다. 지혜는 국가적 공동 생활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풍족하게 누리며 살 수 있게 만드는데 필요한 이상적 가치에 대한 지식이며, 국가가 추구해야할 완전한 탁월성에 대한 지식이다.
5.2 (용기의 덕)
용기는 전사 계급에 대한 고유한 덕이지만 단순히 육체적인 용맹과 같은 것은 아니다. 물론 용기에는 이러한 용맹도 포함되어 있지만 주된 것은 고통, 즐거움, 욕망, 공포등 사사로운 감정을 경계하고 그에 취하지 않는 이성적 견고성을 뜻하는 것으로 현명한 지배자가 국가의 번영에 필요하다고 명시 해주는 목적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5.3 (절제의 덕)
절제는 생산자 계급에 우선해야 하지만 누구나 지니고 있어야 할 덕으로 일부 계급에 속하는 사람에게만 요구되는 용기와 지혜와 같은 것이 아니다. 절제는 일종의 균형의 원리, 즉 질서에 의한 어떤 쾌락과 욕망의 억제이다. 절제와 관련해서 '자기 자신을 이긴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 자신 안에는 보다 나은 성향과 보다 못한 성향이 있어, 만약 전자의 성향이 후자의 성향을 이기는 경우에 '자기 자신을 이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시한 공동체에서의 관계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이 절제야말로 자기 자신 속에 있어서의, 그리고 한 시민으로서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에 있어서의 한 인간의 도덕적 조화인 것이다.
5.4 (정의의 덕)
정의는 어떤 특정 계급에 해당되는 덕이 아니며, 플라톤은 이 정의의 덕을 다른 덕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정의의 덕을 다른 덕들이 종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겼다. 정의는 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해야하는 일을 스스로 잘해내면서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때,국가 자체에게 생기는 덕이다. 따라서 정의의 덕은 다른 세 가지의 덕들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종합하여 보완하는 덕이라는 것이다. 정의의 덕이 없다면 생산자 계급이 지배자 계급의 일을 하려고 하거나, 전혀 다른 직종의 종사자들이 서로의 직분을 바꾸어 하게 된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게 되기 때문에 각각 덕들의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덕들은 그들 본래의 모습의 불완전한 모방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만다. 결론적으로 이 정의의 덕 덕분에 다른 덕들도 주체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며, 또 다른 덕들은 모여서 정의의 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 네 가지 덕을 관념상으로는 구별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항상 "덕은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용기와 절제는 지혜가 없이 있을 수 없고, 절제 없는 용기는 도발적 도전에 불과하다는 예를 들 수 있다. 국가는 원칙적으로 하나의 통일체이다. 따라서 다양한 국가들을 평가할때 이 덕의 결합의 수준이 어느정도 인가 하는 정도를 통해 판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 완정성을 그는 디케Dike라는 말로 지칭하였는데 이 그리스어가 유감스럽게도 '정의'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다.
6. (덕과 철인군주론)
결론적으로, 이 정의가 이루어지는 국가가 플라톤의 이상국가이다. 이상국가의 실현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훌륭한 통치자를 통한 방법이다. 훌륭한 통치자는 참다운 인식을 가진 자라야 될 수 있고, 참다운 인식은 개인과 국가의 목적인 선뿐만 아니라, 모든 선의 원인, 즉 선의 이데아를 아는 데서 비로소 이루어 진다. 그러므로 통치자와 철학자가 한명의 사람 속에서 실현되고, 이 지배자 계급에 다른 두 계급이 복종하면 조화있고 질서 있는 전체가 형성되기에 국가 전체의 덕인 정의가 실현된다. 즉 세 계급은 진리와 선의 실현, 다시 말해서 정의가 넘치는 이상국가의 건설을 위해 일할때야 말로 비로소 이상국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철인군주론을 플라톤은 주장하였다.
7. (개인에 적용한 이상국가론)
플라톤은 국가의 유추를 점차 개인에게도 적용하였다. 사회적인 세 계급은 세개의 '인간 본성의 구성요소'에 해당하게 되는데, 이를 이성적인 부분과 비이성적인 부분으로 나뉘었다. 생산자 계급에 해당되는 것은 욕망에 해당한다. 이것은 이따금 무질서하고 걷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만일 그것이 엄격하게 훈련되고 지도되지 않는다면 사람이 광적인 방종과 무질서한 활동을 행하는 상태로 전락시킬 수가 있다. 전사 계급에 해당되는 것은 기개로 행동을 일으키는 활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두 요소는 비이성적인 요소이다. 이성적인 요소는 이성 그자체로 지배자 계급에 해당하는 것이다.
7.1 (완전한 인간)
완전한 인간이란 이 세가지 면이 뚜렷하게 각기 특성을 나타내면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간의 됨됨이를 결정하는 것은 이들 세 요소가 어떻게 발달되며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데 있다. 플라톤은 인간을 두 마리의 말이 모는 마차로 비유하였다. 두 마리의 말은 욕망과 기개이며 마부는 이성이라는 것이다. 지배자 계급이 국가를 통솔하고 조직화하기에 적합한 유일한 유일한 계급인것과 같이, 인간의 이성은 그 생활을 적절하게 통솔하는데 적합한 유일한 요소이라는 것이다. 지배자가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듯이, 이성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며 단순히 최고의 계급이나 최고의 부분뿐만 아니라 도덕적 비판을 받을 대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플라톤의 주장에 따르면, 훌륭한 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덕은 훌륭한 사람에게도 또한 필요한 것이다.
- 지혜는 이성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여러가지의 선택지중 가장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 판별하고,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다른 모든 요소들을 통일적으로 실현시켜 나가도록 지도할 때 생긴다.
- 용기는 기개가 어떤 자극적인 욕정이 제안해오는 유혹을 일축해 버리고, 자연 혹은 사회에 의한 고생 및 고통등의 감정을 거부하면서 오로지 이성의 지시에 충실하게 복종할 때에만 생긴다.
- 절제는 인간의 많은 욕망이 각각 다른 관심을 방해하지 않고 통일적 전체 생활을 풍부하게 만드는데 꼭 필요할 정도로만 사용될 때 생긴다.
- 정의는 내면적으로 복잡한 인간이 조화롭게 되어서, 모든 잠재적 능력을 통일된 활동 속에 모두 발휘함으로써 내적 부조화가 해소될 때 생긴다.
국가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에 있어서도 기초적인 세 가지 덕은 결국 질서 잡힌 전체의 훌륭한 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적 가치는 비단 각 부분의 발전에서 뿐만 아니라 그 각 부분들이 어떻게 결합되는가에도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만일 그것이 있다면 정의는 오직 통일된 전체 인간속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비판적 체계이론의 두 방향으로서 사회 내재적 비판과 이론 내재적 비판/정성훈.서울대 (0) | 2020.06.30 |
|---|---|
| 한국 주자학 연구의 두 시선*-철학자 주희 혹은 유학자 주희- /강경현.연세대 (0) | 2020.06.30 |
| 대륙합리론/blog.naver.com/czech_love (0) | 2020.06.18 |
| 영국의 경험론/blog.naver.com/czech_love (0) | 2020.06.18 |
| 독일관념론/blog.naver.com/czech_love (0) | 2020.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