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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독일관념론/blog.naver.com/czech_love

<임마누엘 칸트>

일반적으로 칸트는 근대철학자들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는다. 칸트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집에서 태어나서 가정교사로 일하며 대학을 졸업하고 생활비를 충당했다. 가정교사일은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되었는데, 대학 졸업 후에 바로 대학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수 임용에서 두번이나 떨어져서 46살에 되어서야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었는데, 이는 일반적인 사례보다 늦은 경우이다. 다만 칸트가 그 이전에 안정적인 교수직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40살즈음에 다른 대학에서 시문학 교수직을 제안 받았는데, 이는 칸트의 적성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기에 단칼에 거절하고 오직 자신의 유일한 꿈인 철학교수 임용만을 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 젊은 나이에 뛰어난 업적을 세운데 반해, 칸트는 57세가 되어서야 그의 역작인 순수이성비판을 출간할 수 있었다. 이렇듯 일반적인 경우보다 늦은 나이와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철학을 펼치는 칸트의 모습에서 천재가 아닌 보통의 사람이며,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못해 경제적 문제로 고민하는 철학도들은 철학자로서의 길과 삶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칸트의 대표적인 철학적 업적을 꼽아보자면 17-18세기 유럽의 여러 철학자들을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이라는 두개의 학파로 양립시키고, 그들이 대립하던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한 후 이를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풀어내어 근대 철학을 통합했다는 것이다. 경험과 사유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한 그는 인식론에서 역사상 가장 커다란 업적을 세웠고, 따라서 근대 철학은 이마누엘 칸트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된다. 이런 칸트의 사상은 독일철학을 유럽철학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세우게 만들었고, 이런 칸트의 사상을 통해, 즉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오성과 같은 관념을 기반으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나오게 된다. 따라서 사실상 칸트는 독일 관념론의 창시자로 인정받는다.

 

비단 특정한 사상에 준 구체적인 영향을 넘어서, 철학을 비롯한 서양지성사에 대한 칸트의 폭넓은 영향은 헤아릴 수 없는 정도이다. 물론 다른 사상가들처럼 칸트의 주장들에도 오류가 있으며, 오늘날 그해 견해가 전부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철학이라는 학문이 사라질 때까지 그는 계속 언급될 철학자로 남을 것이다.

 

1. 합리론·경험론 비판

칸트는 본래 합리론을 따르는 철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흄의 철학을 접하고 '독단의 긴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그가 경험론자가 된것은 아니다. 그는 합리론과 경험론이 가지는 약점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그 두가지 철학을 극복하기 위한 비판에 착수한다.

 

합리론자들에게 이성의 판단은 절대적이다. 이성은 수학과도 같아서 이성을 통해 증명된 것은 수학만큼이나 정확하다는 것이 합리론자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성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고자 하며, 제1원리를 먼저 설정하는 연역법을 통해 진리에 접근해가는데, 이러한 접근법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 많은 철학자들이 서로 다른 답을 내놓게 된다. 예컨대 합리론의 트로이카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의 인식론은 상당히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각자 내놓은 형이상학 체계는 아주 상이한 것이다. 스피노자의 신 개념과 라이프니츠의 단자 개념 사이의 유사성은 찾기 어렵다. 즉 이성의 절대성을 신봉하는 합리론자들은 결국 자신의 이성의 의한 결론만이 옳다고 착각하는 독단주의자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칸트는 경험에 의하지 않고 순수 논리적 사고만으로 사물을 인식하려고 하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칸트는 경험론자들의 방법론또한 결함이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사물이나 현상을 인식하는데 경험에 의존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이 세계의 지식들 모두가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건 아니다. 예컨대 수학적 원리같은 것은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논리적 탐구를 통해 진위를 알 수있는 선험적인 것이다. 그리고 객관적 진리를 비판하는 경험주의에만 의존하면 과학적 추리는 불가능할 것 이라는 점을 비판했다. 따라서 경험주의은 회의주의적 경향을 띌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이성의 본유관념으로 인식을 설명하려는 합리론과 경험으로만 설명하려는 경험론은 각자의 독단론과 회의론으로 이어진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던 셈인데, 칸트는 이 두 입장의 한계와 거리를 두면서 인식의 확실성을 지켜내려는 새로운 철학의 구성을 시도한다. 이와 같이 양자를 모두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재검토하자는 문제의식 가운데 탄생한 칸트의 철학을 흔히 '비판철학'이라고 부른다.

 

2. 인식론

2.1 코페르니쿠스적 혁명

경험론과 합리론 모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칸트는 이들의 한계를 넘어서 인식의 확실한 경로를 설정하기 위해 인간의 이성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며 경험론과 합리론의 대립을 조정을 위해 스스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1 이라고 말하는 인식의 전환을 시도한다. 우선 칸트는 인식의 근거로서 경험의 능력을 주장하는 경험론의 입장을 인정한다. 즉 버클리나 흄의 입장인 '사물 자체'를 인식하는건 불가능하다는 입장또한 견지하는 것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모든 철학자들이 주장한 진리에 대한 사물중심적 접근법을 비판하고 정신중심적 접근법을 내놓았다. 즉 인식의 주도권이 바깥의 대상들, 객관적 세계에 주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 능력이 대상에 맞추어지게 되므로, 독단론이나 회의론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칸트는 인식에 있어서의 주도권을 능동적이고 구성적인 정신에게 쥐어주고자 하였다.

 

즉 사물을 왜곡하여 보여주는 필터로 사물을 본다면, 관찰대상이 호리호리한 외형이든 아름다운 외형이든 찌그러지게 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정신과 감각기관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은 스스로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지, 아니면 왜곡하여 인식하는지 알 수 없다. 인식의 주체로서의 '나'가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은 정신과 감각기관의 필터에 걸러진 '현상'에 대한 것이고, '사물 자체'는 경험할 수 없으므로 알 수없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아는 모든 지식은 '현상'에 관한 것인데, 진리를 도대체 알 수없는 '사물 자체'에서 구하려고 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영원히 진리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사물 그 자체는 인식 할 수 없다만, 모든 이들이 동일한 현상을 경험한다면 그게 곧 참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즉 인간의 눈에 비친 '현상'이 '사물 자체'와 일치하느냐를 두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가 그걸 '현상'이라고 판단하게 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요컨대 칸트는 확실한 토대를 구축한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수용한 다음 경험론의 방법론을 도입함으로써 보편성과 필연성을 성립시키려 했다. 즉 경험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종합적 인식이면서도, 그 기원은 경험에 있지 않는 선험적 인식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2.1.1 선험적 관념론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인식은 경험하는 대상이 사물 그 자체인지에 대해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즉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는 감성적 직관이 파악할 수 있는 영역으로서 '현상'에 국한되며 '물 자체'는 결코 인식될 수 없다. 따라서 칸트는 현상과 '물 자체'는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칸트는 인식은 할 수 없더라도 물 자체라는 것이 있다는 것 정도는 유추해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현상'을 '물 자체'로 간주하여 이성의 능력을 무한히 확장시킬 경우, 즉 이념의 영역을 실재적 대상으로 간주하게 되면 결국 변증적 허구를 유발하게 된다고 말한다. 즉 칸트에 따르면 "경험의 절대적 완전성"을 추구하고자 했던 경험론자들과 합리론자들이 그릇된 것이다. 이런점에서 볼 때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은 인식될 수 있는 현상의 세계에서만 참과 거짓을 논의할 일이지 인식될 수 없는 물 자체를 인식될 수 있는 세계인양 왈가왈부하지 말 것을 주장하면서, 형이상학적 차원에서의 이율배반의 대립을 차단하고, 정립과 반정립을 모두 옳은 것으로 포용하고 있다.

 

 

2.1.2 이율배반

칸트에 따르면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려는 속성에 따라 인간의 학문, 혹은 변증론적 주제는 크게 세개로 귀결된다. 그것은 인간의 자아를 탐구하는 '이성적 심리학', 세계에 대해 탐구하는 '이성적 우주론', 신에 대해 탐구하는 '이성적 신학' 이다. 그러나 인간이성의 한계상 이러한 탐구가 계속 전개된다면, 당연히 경험할 수 없는 영역까지 나아간다. 즉 증명할 방도가 없는 영역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영역에서는 순수 논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그리하여 서로 상충되는 주장들이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주장들은 많은 경우 전부 다 옳다고 증명된다. 예를 들어 "시간과 공간은 끝이 있다"와 "끝이 없다"는 모두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주장이 둘 다 옳다고 증명되는 경우를 칸트는 '이율배반'이라고 한다. 이처럼 이율배반에 빠지는 것은 인간의 경험이 한정되있다는 사실과 이성의 추리가 결국 경험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점에서 불가피 한 것이고, 이런 점에서 이는 인간 이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이율배반적 문제를 두고 경험론자들과 합리론자들은 대립해왔다. 그러나 칸트는 이율배반의 정립과 반정립의 상호관계가 모순관계가 아니고 반대관계라고 파악한다. 즉 그에게 있어서 어느 쪽 하나가 맞고 어느 쪽 하나는 반드시 틀려야 한다는 것은 적어도 세계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형식논리적인 문제에 빠져있는 것이다. 예컨대 칸트는 합리론자들에 따르면 현상적 세계, 즉 자연법칙의 세계는 성립할 수 없으며, 반면에 경험론자들이 옳다면 이념적 세계, 즉 도덕법칙의 세계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칸트는 자신의 철학이 자연의 세계와 도덕의 세계를 다 살려야 하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떠 형태로든 이러한 두 주장을 이율배반적으로 대립시키지 않으면서 타당성을 확보해보자 하였다.

 

2.2 선험적 종합명제

진리를 외부에서 찾는게 아니기 때문에 칸트에게는 올바른 지식의 인식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는 이성의 판단을 인식의 작용으로 보고 올바른 판단을 통해 올바른 지식을 인식해 진리로 나아갈 수 있었다. 따라서 어떤 판단이 올바르며 타당하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알려줄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중요한 것인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위해 먼저 칸트는 판단을 '분석명제'와 '종합명제'로 구분하였다.(여기서 명제와 분석은 같은 말이다.) '분석명제'는 주어가 이미 술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판단은 사실을 확인할 뿐 지식을 생산하지 않는, 그 자체로 보편타당한 것이다. 예컨대 '삼각형은 세 개의 변을 갖는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런 명제가 분석명제에 속한다.

 

'종합명제'는 주어가 술어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많은 경우에 있어서 종합판단은 옳은 판단이 되기 어렵다. 가령 '잘생긴 사람은 머리가 좋다.' 나 '경상대학교는 멍청이들이나 다니는 학교다.' 라는 명제는 종합명제이긴 하나 특수한 경우에만 해당하기에 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만약 종합판단이 타당할 경우에는 새로운 지식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모든 물체는 무게를 가진다.' 라는 명제는 종합판단이면서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는 명제이다. 종합명제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경험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지만, 칸트는 '선험명제'와 '경험명제'를 구분하며 모든 종합명제를 알게 되는데 있어서 오로지 경험만 필요한건 아니며, 일부 종합명제는 선험적이라고 했다.

 

'선험명제'는 인식하는데 있어서 경험을 통해 도움받을 수는 있지만(사례를 통한 확증), 그것과 별개로 그 자체로서 보편타당한 것이다. 예컨대 어린 아이가 산수를 배울 때, 두개의 자동차 장난감과 두개의 비행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적절한 지도가 있다면 '2+2=4' 라는 덧셈공식에 대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셈법이 장난감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한번 셈법에 대해 파악하게 되면 더이상 확증은 불필요하다. 따라서 모든 분석명제는 선험명제에 속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경험명제'는 감각적 지각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명제로서, 자기 스스로나 타인에 의한 관찰이나 경험에 근거한다.

 

'대부분'의 종합명제는 경험명제에 속한다. 단 선술한 바와 같이 일부 종합명제는 선험명제이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모든 물체는 무게를 가진다.'와 같이 학문적인 속성을 가지는 종합명제는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는 것으로서, 단지 사례를 통한 확증이란 경험의 도움을 받아 알아챌 뿐이지, 그 사실 자체는 경험과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선험명제에 속하는 것이다.인간의 인식과 지식체계를 넓혀 주는 보편타당한 지식의 습득은 '선험적이고 보편타당한 성격과 경험적이고 지식생산능력을 결합한 선험적 종합명제'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가령 '4+5=9'같은 수학적 판단은 선험적 종합명제이다. 왜냐하면 4와 5라는 주어를 분석함으로서 9라는 술어가 나오지 않으므로 분석명제이지만, 여기서 9라는 지식은 참된 것으로서 인간의 지식을 확장시켜주기 때문에 선험적이고 종합적이다. 이러한 선험적 종합명제의 타당성, 즉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의 주제이다.

 

2.3 선험적 변증론

개인적 주관의 작용만으로는 결코 보편타당한 객관적 인식으로 보증받을 수 없다. 즉 이성은 보편타당한 지식을 습득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이 습득한 인식이 보편타당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주관을 넘어선, 인식대상의 구성과 지식, 곧 학문적 인식의 성립의 기반인 '선험적 주체'가 필요하다. 그것은 이는 관념이나 감각의 다발에 불과한 경험적 주체와 달리, 모든 주체에 공통되며, 경험이나 감각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좌우하며, 보편타당한 특징을 가진다. 즉 칸트에게 있어서 모든 이들이 동일한 현상을 경험할 경우 그것은 곧 진리이다. 선험적 종합명제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먼저 칸트는 인간의 경험은 그것을 가능케 해주며 다른 조건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확실성을 가진 '선험적 조건'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

 

2.3.1 선험적 감성(직관)형식

선험적 종합명제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먼저 칸트는 인간의 경험은 그것을 가능케 해주며 다른 조건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확실성을 가진 '선험적 조건'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먼저 물체를 인식하는 감각기관을 '감성'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에 따르면 감각기관이 인식한 '현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경험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이 사람인 이상 각자 인식의 인식을 위해 일단 감각기관을 통해 사물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모든 인식은 감성을 거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사물을 받아들이는데는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가 있다. 먼저 사물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뜻하며, 이것은 사물을 '공간'안에서 감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간은 보거나 듣거나 하는 경험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필요조건이며,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있거나' 혹은 '없는' 것은 어느 '시점'에 있거나 없는 것이다. 즉 시간이 없다면 있다 없다를 자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둘은 감성을 통해 대상을 받아들이는데 필수적이며 모든 인간이 경험보다 앞서 가지고 있는 '선험적 감성형식'이다.

 

2.3.2 선험적 오성형식

감성을 통해 받아들인 물체에 대해 인간은 그것의 개수와 크기, 형태, 생존여부, 작동원리 등을 판단한다. 칸트는 이처럼 받아들인 물체들을 분별해내고 그 물체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기관을 '오성'이라고 한다. 분별하는 능력인 오성은 '크다·작다·, '단수·다수', '필연·우연' 등 범주를 통해 대상의 성질을 구별해내고 그것을 결합해서 "나무를 비비면 불이 난다"등의 판단을 만들어낸다. 즉 선험적인 범주가 없다면 사물의 특성이나 연관성을 찾아내는게 불가능하며, 이를 통해 법칙을 인식하고 사물들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인간이 판단하는 데 필수적인 최소한의 범주를 칸트는 4개의 범주와 12개의 형식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2 이것들은 공통되기 때문에 인간은 공통된 판단, 인식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칸트는 이런 이유로 범주를 '선험적 오성형식'이라고 한다.

 

2.3.4 이성의 역할

감성(직관)으로 인식된 현상은, 오성의 범주를 통해 특징이 분석된 후에 '이성'에 다다른다. 여기서 이성은 칸트만의 고유한 개념으로서 '하나의 원리로 통일하는 형이상학적 능력'을 의미한다. 즉 이성의 역할은 하나의 원리로 다양한 경험들을 통일하여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은 '근본적인 데까지 밀고 나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예컨대 인간은 대개 부모님이 나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기원과 조부모의 기원, 조상의 기원까지 물어가며 결국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을 낳은 궁극적 원인에 다가가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세계의 신비함이나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은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이성의 역할은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확대하고,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3. 윤리학

3.1 정언명령

칸트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채로, 단지 인간의 선한 의도만을 고려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칸트 윤리학에서 철학적 지식의 대상이 되는 가장 근본적인 영역은 의지, 그 중에서도 목적을 위해 선을 행하라고 인간에게 말하지 않고(가언명령), 그러한 조건 없이 단지 선을 행하라고만 명령하는(정언명령) 선의지이다. 이를테면 사람을 구하라는 행위라 하더라도 평판이라는 목적을 염두한 행위는 윤리적이지 않은 반면, 선의지로부터 기인하는 명령, 즉 '사람을 구하라'는 명령에 따르는 행위는 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즉 도덕적 원칙의 의무적 준수만이 곧 도덕적이다. 다시 말해 도덕적 의도 없이 행한 특정 행위의 결과가 법칙에 일치할 경우, 그것은 도덕적이지 못하다. 도덕적 행위는 반드시 법칙의 준수를 의무적으로 행한 경우여야 한다. 예컨대 부유한 젊은이가 거지에게 돈을 주었을 경우,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거지에게 좋은 일이므로 도덕적이라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칸트에 따르면 이는 도덕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 젊은이는 자신의 도덕적 의무가 무엇인가에 관해서 어떠한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적 도덕은, 체스나 바둑같은 보드게임의 규칙와 목적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말이나 바둑돌을 움직이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즉 도덕적 행위를 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의무를 행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 행위가 도덕적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은 결과가 아니라 원인, 즉 그 행위를 행하는데 있어서 내가 선의지를 따를 것을 다짐했음에 있다.

 

칸트는 어떤 것이 선하고 악한지 논의하기 위해 ‘보편성을 얻은 법칙’이 곧 법칙의 선악판단의 기준이라고 정의한다. 칸트에 따르면, 누구나 따라야만 하는 선의지의 명령은 다음의 두 가지를 포함한다. 첫째 명령은 누구든지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스스로 생각할 때 다른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법칙은, 인간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인격체로서,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에 합당한 존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3.2 자유의 요청

선의지의 법칙에 기반을 두어 칸트는 모든 인간이 존엄을 가지고 목적으로서 대접받는 이상적 공동체 겸 가상의 개념인 목적 왕국(모든 사람들이 타인을 목적으로서 대우함)을 구상하였다. 목적 왕국의 구성원들은 보편 법칙에 따르는데, 이 보편 법칙은 곧 자기 자신의 도덕법칙을 자율적으로 자기 입법한 결과로 구성된다. 상술한 두 가지 법칙에 따르는 한에서, 자기 입법에 의한 개인적 도덕법칙은 타인의 도덕법칙과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통일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즉 도덕법칙의 정립이 자율이므로, 자기 자신이 복종하는 것도 인간의 도덕적 자율에 포함된다.

 

그런데 도덕법칙이 참된 것이라면 선의지 이외에 자유의 개념이 필요하다. 자율을 벗어난 도덕은 강제적인 것이므로, 참된 올바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칸트에게 일반적인 사물은 자연의 인과법칙에 철저히 지배된다. 하지만 물리법칙에 대해 초월적인 존재인 의지를 지니고 있는 지성적 존재인 인간은 자연의 인과 법칙에 그대로 지배되지 않기 때문에 의지의 활동은 자유로운 것이 된다. 인간은 이러한 두 가지 법칙, 자연의 인과법칙과 자연에 대해 초월적인 이성의 자유법칙 사이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외부의 인과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고 스스로 도덕법칙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 즉 자유로운 의지를 가진다. 고로 선은 그 원인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속에 있으므로 자발적이다. 따라서 칸트에 따르면 외적 목적을 위해서나, 타인의 명령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타인을 목적으로 대우하지 않거나 자율적이지 못한 비자발적인 행위이므로3,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가 아니다. 특히 타인에 의한 강제적 행위에 대한 결과는 자기 자신이 책임 질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3.3 신과 영혼불멸의 요청

그러나 아무리 선·도덕이 옳고 따라야 한다고 해도, 그것이 인간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완전한 선의 실현이 개인적 행복과 일치한다는 것은 이상에 불과하다. 고로 누구에게나 선의 실천과 삶의 행복이 일치하지 않는데, 선에 대한 대가를 원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선을 실현하는 것은 굉장히 허무한 것 일 수도 있다. 이런 비극적 세계관에서 선한 영혼은 선한 의지가 무기력함을 체감할 때 도덕적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고, 심한 경우 도덕적 허무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일반적으로 철학자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희망적 해결책을 내놓았는데, 칸트는 도덕적 원리와 자연적 원리의 이질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어떠한 현실적 긍정적 결과를 약속하지 않았다. 그저 칸트는 무조건적으로 희망 없이 선을 행할 것을 요구하였을 뿐인데,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아무것에 대해서도 희망을 갖지 않게 함으로써, 어떤 것에 대해서라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게 하려는 칸트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도덕적 응보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다고 해서, 인간이 도덕적 응보에 대한 바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칸트는 도덕적 응보를 기대하지 말되 계속 그것이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하라고 요구한다. 비록 결코 현실에서 물리적 인과에 따른 판단과 도덕적 응보에 따른 판단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마치 일치할 것처럼, 혹은 일치되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일종의 신앙이나, 이 신앙은 오직 윤리의 명령에 대한 신앙이므로, 적절한 신앙은 오직 윤리성에서부터만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 요컨대 거룩함만으로 도덕을 행하는건 최고선일 수는 있지만 행복을 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선은 아니다. 따라서 윤리와 행복의 합일을 위해 신의 존재를 요청하는 것이다.

 

3.4 인간론

칸트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고찰에 있어서, 인간을 '교육을 받아야 하는 유일한 존재자'로 규정했다. 즉 칸트는 교육에 의하여 인간의 본성이 점점 더 선하게 계발될 수 있고, 인간성을 지닌 형식으로의 인간 본성을 가꿀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의 윤리적 본서을 중시한 칸트는 인간의 본성을 세가지 성질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생물로서의 동물성의 소질, 생물이면서 동시에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성의 소질, 이성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성의 소질이다.

 

3.4.1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성을 인간성의 소질로 파악하는 칸트는 인간이 타고난 동물성을 인간성으로 바꾸기 위하여 훈육을 강조한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이성을 필요로 한다. 즉 인간은 어떠한 본능도 갖고 있지 않으며 자기 행동의 계획을 스스로 구상해야 한다. 그러나 최초의 상태에 인간은 미숙한 채로 세상에 태어나기 때문에 즉시 이를 행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그를 위해 그것을 해야 한다. 훈육은 인간을 인간성의 법칙에 예속시키며, 인간에게 법칙의 강제를 느끼게 한다. 따라서 이것은 일찍이 행해야 한다. 만약 유년기의 인간에게 제대로된 훈육을 가하지 않고 방임한다면, 그 인간은 평생토록 야만성을 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이는 일종의 '계몽'이다. 칸트에 따르면 계몽이란 인간 자신의 자유에 대한 열망과 지적독립성의 추구로서, 철학적 사색의 기원이다. 칸트는 이 계몽의 정신을 중시하며 인간을 스스로 철학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세 가지 준칙을 따르며 교육방법을 강구하는 것을 제시한다. 그것은 "1. 스스로 사유할것, 즉 억압받지 않는 사유방식의 원칙 2. 다른 사람과 대화함에 있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사유할 것, 즉 다른 사람의 개념에 자신을 맞추어 나가는 자유로운 사유방식 3. 언제나 자기 자신과 일치하여 사유할것, 즉 일관성이 있는 모순이 없는 사유방식의 원칙" 이다. 이러한 사유방식의 세 원칙이 합쳐질 때 인간은 비로소 미성숙함을 벗어낼 수 있다.

 

이럿든 칸트는 인간을 동물보다 높은 수준에 올려놓음으로써 인간을 동물이 가질 수 없는 목적을 가지는 존재로 이해하고 있다.

 

  1.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성을 주장한 사람이다. 지동설은 지구가 태양계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것인데, 그 이전까지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천동설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이 옳다는 가설을 세운 다음 행성들의 운동을 관찰하지만 설명이 안되는 부분을 발견하였고, 그래서 지동설을 가설로 삼고 관찰을 하니 지동설이 옳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칸트가 코페르니쿠스적 방법을 사용한다. 칸트는 또한 자신이 천문학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혁명과 비슷하게 철학에서 이와 같은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하여 이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불렀다.
  2. 분량:(단일성/수다성/전체성), 성질:(실재성/부정성/제한성), 관계:(실체성/인과성/공통성), 양상:(가능성/현실성/필연성)
  3. 특정 목적을 위해 하기 싫은데도 하는 행위또한 비자발적이다.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피히테는 주관적 관념론(주관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을 구성함으로써 칸트와 헤겔이라는 두 철학사의 거인을 잇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했다고 인정받을 정도로 독일 관념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철학자이다.1 피히테 철학의 제1과제는 자유와 필연성의 화해, 즉 어떻게 자유의지를 가진 도덕적 행위자가, 그와 동시에 인과적인 조건에 속박된 물질 세계의 일부로 간주될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한 피히테의 전략은 칸트철학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피히테는 인간의 자유가 그 실천적 측면에 있어서 확고한 확실성을 가진다는 칸트의 정신은 이어받았지만, 그의 '물 자체' 개념은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했다. 피히테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칸트의 정신을 일관적이고 굽힘없는 방식으로 극단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객관성과 필연성을 주관성에 완전히 종속시키고자 하였다.

 

1. 이론적 지식학

피히테에 따르면 일체의 개별 학문은 일정한 대상을 다루지만, 철학은 지식 그 자체를 고찰한다. 즉 철학은 학문들의 학문이고 다른 학문들에 앞서는 학문이다. 이런 점에서 피히테는 철학을 '지식학'이라고 부른다. 또한 이 지식학의 제1목표는 주체와 대상의 일치에 대한 탐구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일치해야 지식이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철학이 설명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경험, 즉 사물들에 대한 인간의 표상이다. 그렇다면 자아를 제1의 원리로 인정한 피히테에 따르면 지식학 혹은 철학의 목적은 자신의 본질적인 통일성 안에서 자기 스스로를 서술하는 것이다. 지식학은 자연과 사회의 모든 인간 실천과 과학에 대한 이론적 기초로서의 철학을 재정초하겠다는 피히테의 목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즉 피히테는 과학과 사람들의 실천활동 체계 속에서의 철학의 위치를 확립하려고 시도하였고, 철학을 현존하는 과학 및 장래 가능한 모든 과학의 가장 일반적 원리를 기초 짓는 학문으로서 정의하였다. 따라서 철학은 지식학으로서 모든 지식의 기본 명제를 확립해야 하는 것이다.

 

1.1 세가지 철학적 입장

피히테에 따르면 이런 철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적 입장에는 크게 세가지가 있다. 이 세 입장은 사람들이 명증이나 논증의 기초에서 뿐만 아니라, 도덕적 기초에서 도 그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즉 어느 입장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개인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첫째는 경험의 규칙성에 사로잡혀 있는 유물론/결정론적 입장이다. 피히테는 이를 메커니즘에 사로잡힌 입장이라고 말하는데, 모든 것은 앞서 일어난 것들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자기 자신조차도 전체 속의 하나의 개체가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즉 자신의 존재를 자신이 아닌 외부의 필연적 원인을 통해 설명하는 이 입장은 필연성의 지배를 받는다. 이런 입장에 설 경우에는 자유를 인정할 수가 없다. 자유또한 자기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 전체의 기계적 행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피히테는 이러한 입장에 대해 자신은 공포와 전율을 느낀다고 표현할 정도로 결정론적 입장을 경멸한다.

 

둘째는 감각론의 입장이다. 이것은 사람이 지각하는 것은 자신의 의식적 상태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외부의 모든 대상들은 지각되지 않고 오로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감각들과 관념들의 허무한 연속들만 지각한다. 결국 영속하는 사물이나 영원한 자아는 이 입장에서는 완전한 환상일 뿐이다. 피히테는 지각주의의 입장또한 모든 것을 헛된 것으로 만든다고 반대한다. 피히테에 따르면 유물론과 감각론적 입장은 일종의 독단론이다. 또한 철학적 입장의 선택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성격에 의해 좌우되므로, 이러한 독단론을 택하는 사람들은 천성이 수동적일 것이다.

 

세번째 입장은 관념론의 입장으로서, 이것이 독립적이고 활동 욕구가 넘치는 사람들의 성향이라며 피히테가 찬양해 마지않는 입장이다. 이 입장을 가진 사람은 유물론이나 감각론보다 더 근원적인 것을 발견한다. 피히테에 따르면 인간이 사물의 존재에서 철학을 시작하면, 의식이 도대체 어떻게 사물로부터 생성되었는지, 그리고 사물과 의식의 상관관계가 정말 확고한 것인지에 대해 결코 설명할 수가 없다.(물론 유물론자들의 견해는 다르다.) 그에 비해 철학을 '사유'로부터 시작하면, 비록 결코 주어질 수 없는 사물 자체는 아닐지라도 사물들에 대한 인간의 표상이 존재함은 도출해낼 수 있다.

 

1.2 칸트 비판

피히테는 '물 자체'를 칸트주의의 관념론적 체계의 부당하고도 비합리적인 부가물로 간주하였다. 체계를 만들어 나가는 논리는 서로 배타적인 것을 함께 할 수 없는 법인데, 칸트의 경우에는 물 자체와 현상이라는 서로 배타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합성과 모순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도 물 자체를 인정한다면 칸트가 해결하려고 했던 진리의 문제, 다시 말해 대상과 주체의 동일성이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피히테의 입장이다. 이렇게 피히테는 칸트 학설의 이원론적 성격을 지적하고, 이성의 선험적 통일에 관한 칸트의 학설을 출발점으로 인정하였다. 즉 칸트가 인식의 근거가 정신의 외부에 있다는 경험론을 극복하기 위해 인식 과정을 문제 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식의 한계를 설정하게 된 반면, 피히테는 지각이나 이성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인식보다 더 선행하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기울인다. 또한 피히테는 이론자아(순수이성)과 실천자아(실천이성)을 구분한 칸트의 이성론도 비판한다. 피히테에 따르면 실천이성이야 말로 최초의, 최상의 원칙을 철학에 제공할 수 있다. 선술한 칸트철학의 이원론적 문제점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1.3 지식학 제1원리 : 자아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정립한다.(동일률/정립의 근거)

관념론자인 피히테는 철학의 시초로서 사유하는 주체, 즉 자아를 설정한다. 다시말해 피히테에 따르면 인간의 자아만이 더이상 전제를 가지지 않는 유일한 실재로서의 제1원칙이다. 즉 이성은 단순히 사유하는 주관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모든 것을 창조하는 궁극적이고 전능한 활동이다. 이렇듯 피히테의 철학은 인간 행동의 객관적 기초나 외적 세계의 법칙들을 완전히 거부하는 관념론이다. 이처럼 자아는 모든 것에 앞서 모든 것을 발동시키는 근본적 주체이다. 이런 점에서 피히테는 자아를 말할때 그냥 자아가 아니라 '절대적 자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데카르트의 코기토보다 더 발전한 개념으로, 코기토가 전적으로 인식론적인 개념인 데 비해 절대적 자아는 인식론과 존재론의 합일에서 비롯된다. 즉 피히테에게 있어서 철학적 반성이 최종적으로 안내하는 것은 "나는 존재한다"도 "나는 사유한다:또 아니고, "나는 행위한다"이다. 자아의 본질은 그저 "행위함" 그 자체이다.

 

또한 이러한 관념론은 이성과 의지가 동일시되고 있는 주의론적 성격을 띄고 있다. 자아의 행위는 곧 의지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이성의 판단을 신뢰하는 것도, 감각을 자료로서 인정하는 것도 바로 자아의 의지이다. 피히테에 따르면 자아의 본질은 하나의 고착화된 사실로서 규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자아는 실천적이다. 피히테는 자아의 본질을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역동적인 작용'이자 경험적 의식의 모든 사실과 모든 행위들에 의해 전제되고, 그것들 안에 포함된 통일성"으로 규정하는데,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자아의 본질 개념을 사행, 즉 '사실/(=)행위'(Tathandlung)라고 명명한다. 사행은 판단, 추리하는 이론적인 힘, 즉 이성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정립하는 (의지와 매우 유사하지만 무의식적인) 변증법적이고 실천적인 탁월한 힘, 능력이다.

 

1.4 지식학 제2원리 : 자아는 비아를 정립한다.(모순율/반정립의 근거)

"자아는 스스로를 정립한다"라는 지식학의 제1원리에 따르면, 자아는 본래 어떤 사물이나 실체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을 정립하는 무엇이다. 즉 자아는 자기정립적이다. 그렇다면 사실 혹은 앎 또한 이러한 자아의 적극적인 행위, 즉 사행의 의지적 결과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물 자체'라는 개념은 관념론적 체계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피히테에 따르면 경험또한 자아에서 연원한다. 모든 객관적 세계는 자아의 소산이며, 주관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어떤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피히테의 입장이다.

 

흔히 감각작용은 어떤 외적인 힘이 인간에게 접촉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피히테에 따르면 이런 '외적인 것'은 근원적으로 자아에 의해 생산되는 자아가 아닌 것(비아)이다. 즉 피히테에게 있어서 주관과 객관의 대립은 자아 그 자체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러한 비아를 인간이 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으로 생산되는 것이라면 외부에서 오는 듯한 느낌이 생길리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감각작용, 즉 비아는 자아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지만, 무의식적인 과정을 거쳐서 생산된다. 더 정확히 말해서 자유롭고 근거가 없는, 다시말해 인과적으로 규정되지 않는 과정이다. 피히테에게 있어 경험은 '대상'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앎'에 대한 경험이며, '사실'이라는 것은 무의식적인 실천적 의지인 사행의 결과이다.

 

 

1.5 지식학 제3원리 : 자아는 자기자신에 대해서 비아를 반정립(부정)한다.(근거율/종합의 근거)

피히테에 따르면 자아는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이루어 자기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별하고, 자기 자신에 작용을 가하여 변증법적인 발전을 추구한다. 즉 자아는 비아를 낳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비아를 다시 통합함으로써 자신을 더욱 발전시킨다. 그렇다면 자아가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다시 말해 윤리적 의식을 바탕으로 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2 이렇듯 피히테에게 있어서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분야는 도덕이다. 다시 말해 도덕적 의지가 의지의 정점이다. 왜냐하면 그 가장 깊은 본질에서 자아는 순수하고 무한한 활동인 사실/행위이기 때문인데, 이러한 본질에 자아가 충실하려면 제약이나 저항에 부딪혀서 활동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자아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아는 스스로 도덕적 의무를 수행할 재료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피히테는 인간이 세계에 대해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또한 바른 행위를 위한 수단을 얻기 위한 자아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즉 질서 잡힌 하나의 세계 자체가 인간의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행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세계란 유한한 자아가 비아와 저항과 부정을 제거하고, 자기 자신을 정립시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본질인 절대적 자아로 나아가는 것으로 설명된다. 요컨대 인간이 무엇인가 활동을 한다는 것은 자아의 상대방으로서 비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란 인간 개인의 도덕적 삶을 진전시키고, 도덕적 목적을 값진 것이 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전쟁터'이다. 이처럼 피히테에게 모든 것은 행동하고자 하는 자아의 의지로 표현된다. 이 자아는 활행하는 것 그 자체를 본질로 삼고, 활행을 위해 비아로서 세계의 부정과 갈등을 표현하며, 이를 넘어서 자신의 존재를 본질적으로, 궁극적으로 정립하려는 탁월한 자아이다.

 

이렇게 자아의 정립행위를 근본적으로 긍정하면서 실천적 자아의 우월성을 강조한 피히테는, 이를 통하여 칸트의 철학에 있어서의 이론이성과 실천이성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2. 실천적 지식학

피히테는 현실이 인간의 도덕적 행위의 재료라고 결론지었다. 세계는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실재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세계는 도덕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인의 터전이다. 혹은 무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피히테의 극단적인 도덕주의는 근본적으로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칸트의 정언명령이 보편적 도덕을 위한 의무론적인 요구라면, 피히테의 정언명령은 개인적 성장을 위한 의무론적 요구이다. 즉 피히테는 인간이 좀더 큰 정신적 자유와 자아의 전체적인 발전, 그리고 개인적 역량의 증대를 위해 생활할 것을 명한다.

 

2.1 윤리학

칸트의 정언명령에는 두가지 규칙이 있는데, 첫째는 자신의 행위가 보편적일 수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고, 둘째는 타인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피히테는 정언명령을 주관주의의 극단으로 몰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번째 규칙은 철저히 보전하고 있다. 피히테에 따르면 만약 한 사람이 도덕적 행위를 하기로 결심함으로써 자신의 자아와 자신의 자아의 산물인 비아, 즉 세계를 대립시켜 스스로 지어낸 세계를 이기고 넘어서려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긴밀히 연결되어야 한다. 이 다른 사람들은 보통의 물건들과는 달리 정신적 존재들이므로, 그들 자체가 실재적이라고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히테의 철학은 굉장히 유아론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피히테에 따르면 한 개인은 오직 자기의 동료 인간들 가운데에서만 자아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그는 분리된 자아는 너무 제한되어 있어서 한 사람으로 하여금 충분한 힘을 가지고 비아에 반응할 수 있게끔 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즉 자유로운 인간은 모든 정신적 인격의 단체적 합동 속에서 자기의 유한성을 최대한 제거해야만 완전한 도덕적 자세를 갖출 수 있다. 특히 이것은 국가의 조직된 생활에서 발견된다. 물론 국가또한 인류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일단 피히테는 국가의 조직 생활에서 이 합동을 먼저 찾는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런 국가중심적 사고방식 때문에, 피히테는 자신의 절대적 자아 개념을 '독일인'의 자아로, 비아를 다른 민족들로 착각하게 되는 오류를 저질렀다. 피히테가 독일 민족주의의 시초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1. 그의 이어 셸링은 객관적 관념론(객관속에서 모든 것이 가능)을 내세웠고, 헤겔은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을 교통정리하여 절대적 관념론을 내세워 근대철학의 하나의 완결된 형태의 것을 창출해내었다.
  2. 이런 점에서 칸트는 실천이성과 이론이성을 구별한 칸트를 비판하고, 이론이성 역시 실천이성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프리드리히 쉐링>

. 자연철학

셸링은 최초에는 피히테의 후계자로서 철학적 사색을 시작했지만, 나중에 가서 그는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은 매우 불합리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셸링의 철학은 피히테의 '자아(Ich)'의 개념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한다. 칸트의 물 자체를 완전히 배제한 피히테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이라 부르는 것은 독립적인 자기존재자가 아니라 단지 자아의 산물, 즉 자아가 스스로 저항을 낳아 자기 자신을 실현시키기 위해 산출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셸링은 피히테의 자아와 비아, 주관과 객관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히테와 반대로 셸링은 자연이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정신이 자연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즉 셸링에 따르면 피히테도 지식학에서 제시했듯,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주체와 객체의 일치를 설명하는 데 있다. 그러나 셸링은 이 과제의 해결은 피히테의 경우처럼 '어떻게 자아, 즉 정신에서 하나의 세계 내지 자연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제기되는 방식으로 모색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를 대신하여 셸링은 '어떻게 자연으로부터, 자연 안에서 자아 내지 정신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제시한 것이다. 다시 말해 피히테가 주관(자아)에서 객관(비아)로 나아갔다면, 셸링은 객관에서 주관으로 나아갔다. 셸링은 여전히 자아의 존재를 절대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긴 했지만, 그것이 철학의 출발점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주관으로부터 독립한, 즉 자아와 무관한 존재의 개념또한 철학의 출발점으로는 적절하지 못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셸링은 객관인 자연에 생명을 불어넣고 정신의 원리를 세움으로써 자연을 정신적인 능력이 있는 유기체로 간주하고자 했다. 즉 정신의 원리를 바탕으로 자연을 연역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밑바탕에 근원적 정신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에 정신적인 것이 존재함을, 따라서 인간의 정신이 거대한 정신적 유기체인 자연계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것이 셸링의 자연철학의 핵심이다.

 

2. 동일철학

셸링은 흔히 대립으로 여겨지는 주체와 객체, 정신과 자연간의 관계를 통일, 즉 인간의 내재적인 정신과 외재적인 자연간의 동일성을 확보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자연에 대한 셸링의 해석의 기원은 스피노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스피노자는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을 구분했는데, 셸링은 여기서 더 나아가 절대적 생산성을 가진 주체로서의 자연(관념적이고 자기 현현적인 자연, 다만 이는 의식적이라기 보다는 무의식적이다.)과, 생산물인 대상으로서의 자연(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좁은 의미의 무생명적인 자연)을 구분했다. 주체로서의 자연은 물질화되기 이전의 정신적 활동이다. 즉 자연과 물질이란 정신이 스스로 외화되어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다시말해 셸링에 따르면 자연은 '장애'라고 하는 일종의 무의식적이고 반작용적인 힘을 일으켜 스스로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대립 운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대상을 생산한다. 따라서 자연은 그 자체로 무한한 활동성을 지닌 무제약자이며 자유이고, 이런 점에서 정신과 물체는 하나이다. 이때 자연은 죽은 것, 기계적인 것, 원자들의 집합과 같은 것으로 파악될 수 없고 그 가장 깊은 본질에서 살아 있는 근원적 힘인 통일적 전체자로 파악된다. 즉 공기, 돌같은 무생물들도 살아 숨쉬는 자연의 일부로 간주된다. 이렇듯 셸링에게 있어서 자연은 자아의 활동전개를 위한 수단이 아니고, 그 자신에게 적극적인 목적과 가치가 있다. 즉 피히테에 따르면 자연은 인간이 도덕적 실천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단순한 도구적 자연이지만, 셸링에 따르면 자연은 도구가 아니다.

 

셸링은 정신과 자연의 관계를 '자연은 가시적인 정신이며, 정신은 비가시적인 자연이다'라고 표현한다. 셸링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자연을 자신과는 다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지적 직관을 갖게 되면 이 두가지를 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과 정신의 근저에는 절대적 동일자(유기체로서의 자연)가 있으며, 자연이든 인간의 정신이든 간에 모두 절대적 동일자의 다른 표현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셸링은 이러한 생각을 근원적 동일성 또는 절대적 무차별성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세계는 절대자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고, 절대자는 어떤 실체가 아니며, 어떤 다른 사물과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무차별자로서의 절대자 자신만 세계에 있다. 즉 주관과 객관, 또는 정신과 자연이 실제로는 동일한 것이고, 세계는 무차별성을 존재특성으로 하는 절대자의 세계에 다름아니다. 여기서 절대자는 동일자이다. 이런 점에서 자연과 정신의 동일성을 이루는 근본원리를 탐구한 셸링의 철학을 동일철학이라고 부른다.

 

물론 셸링이 동일철학을 세운 근본적인 이유는 정신과 소통할 수 없는 자연이란 없으며, 자연은 죽은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처럼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셸링이 자연과 정신을 구별할 수 없고 주관과 객관이 하나로 뒤엉켜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한 것은 아니다. 셸링철학의 궁극적인 물음은 "어떻게 무차별성, 즉 동일성에서 차별(구별)이 생겨날 수 있는가?", 다시말해 "자연이 절대적 동일성을 가진다면 인간의 정신과 외부의 자연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 이다. 셸링은 차별성에는 질적인 차별성과 양적인 차별성이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양적인 차별성은 절대자와 구분되는 유한자, 정신과 자연에게서 발견되는 차별이다. 이 양자는 서로 상대방의 요소를 가지는데, 정신은 양적으로 정신의 요소가 자연의 요소보다 많으면 정신이 되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셸링의 철학은 그것이 물리적 세계를 관념론적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객관적인 관념하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린다

 

 

 

<헤겔>

헤겔은 어떠한 현실도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세계 전체를 곧 진리라고 보았다. 헤겔은 합리적 사변을 통하여 세계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자 했다. 헤겔로 인하여 독일 관념론은 완성되고 헤겔은 철학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1. 헤겔의 문제의식과 칸트 비판

헤겔 철학을 쉽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먼저 헤겔이 스스로 문제삼은 것이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떠한 방향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는지를 알아야 한다. 헤겔에 따르면 철학의 대상은 진리이다. 여기서 진리란 사물의 본질을 의미한다. 따라서 철학의 주된 관심은 인간이 어떻게 진리를 알 수 있는가를 따지는 인식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헤겔에 따르면 인간이 일상속에서 갖게 되는 대상에 대한 일차적인 관념(헤겔은 이를 '지'라고 규정한다.)이야 말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철학의 일차적 목표이다. 이는 물론 헤겔 이전에 데카르트부터 문제시 되어 온 주제이다. 합리론자들은 인간은 선험적으로 얻은 합리적 이성으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경험론자들은 경험을 통해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흐름은 칸트에 의해서 종합되었는데, 칸트는 자신의 비판철학이 사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실의 정당성을 고찰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칸트는 주관적 인식의 틀과 감각경험이 결합되어서 지식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칸트에 따르면 주어진 개념들과 그 주어진 개념들의 원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물 자체'는 전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엄밀한 의미의 철학의 탐구대상은 심적 심상이 되어야 하지, 물 자체는 선험적인 것으로서 그 자체는 결코 사유나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칸트에게 사물 자체는 현상의 세계와는 다른 '실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사물 자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결국 이성을 통해서는 현상 세계만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실재의 세계는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칸트의 평가절하는 헤겔의 반발을 불러왔고, 비록 헤겔이 칸트가 밝혀놓은 인식에서의 이성의 역할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성의 역할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칸트의 입장과 갈라지기 시작한다. 헤겔에 따르면 데카르트로 시작해 칸트로 매듭지어지는 근대 인식론의 맥락 속에서는 항상 당연한 것으로서 전제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진리를 인식하고자 하는 인식 주관과 마음 바깥의 사물인 대상은 서로 떨어져서 마주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렇게 인식 주관과 대상이 서로 떨어져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주관이 대상을 정말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헤겔은, 쉽게 말해서, 이 양자(의식과 사물)를 일치시킴으로써 기존의 철학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헤겔에 따르면 인간은 현실 속에서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사물에 대한 표상을 얻지만, 이러한 표상은 우연적인 것이지 그 사물의 필연적 내용을 밝혀주는 것은 아니다. 진리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경험에 대한 반성을 통해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감각적 표상들 속에서 주어진 대상들은 반성 속에서 사유 형식으로 전환되고, 이를 통해 본질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헤겔은 표상으로 주어진 대상을 반성함으로써 그 본질을 드러내는 것을 그 대상에 대한 '개념적 이해'로, 그렇게 파악된 대상의 본질을 '개념'이라고 규정한다. 이때의 개념이란 선천적인 것으로서 순수 사유 규정들이다. 즉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 안에 있는 것을 재확인 하는 것이 된다. 이런 이유로 헤겔은 '지성 속에 없는 것은 감각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했다. 이렇듯 헤겔 철학의 주된 문제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어떤 것, 즉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유가 반성을 통해 인간이 이미 경험을 통해 인식한 대상을 반성함으로써 대상의 본질적인 개념을 설명해내는 것이었다.

 

헤겔은 이성을 개인 속에만 머무르는 추상적인 능력으로만 보지 않았으며, 경험을 단순한 인식의 재료로 보지도 않았다. 헤겔에게 '물 자체'를 의미하는 실재는 현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상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실재가 전체라고 한다면 현상은 부분에 해당한다. 이처럼 헤겔에 따르면 인간이 많은 것을 경험할수록 지식과 합리성이 증가한다. 결국 경험의 내용이 곧 이성의 내용인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즉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이다. 이처럼 헤겔에게 있어서 이성과 경험은 분리될 수 없다.

 

예컨대 헤겔은 사물이란 그것의 경험을 통해 발견하는 관념들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자'라는 사물을 따져 볼경우, 이 의자라는 사물이 무엇인지, 그것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등을 물을 수 있다. 헤겔은 만약 자신처럼 인식 불가능한 물 자체가 없다는 전제를 중시할 경우, 의자는 인간이 그것에 관해 가질 수 있는 관념의 총체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즉 의자는 인간이 그것을 경험할 때 그것에서 발견하는 모든 보편적 관념들로부터 구성되어야 한다. 이 보편적 관념들이란 예컨대 의자는 견고하며, 갈색이며, 둥글고 작다 등이 있다. 이러한 관념들이 서로 관계를 가지게 될때 그것들흔 하나의 의자가 되는 것이다. 이 보편적 관념들이나 범주들은 결코 단독 또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보편적 관념들은 의자 내에서만 그들의 존재를 가진다. 따라서 의자에서 인식 불가능한 측면은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경험하는 특질들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으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의자는 인간이 그것에 관해 인식한 무엇이며, 인간이 그것에 관해 인식한 무엇이란 그것이 보편적 관념이나 관념들의 조합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범주들과 관념들이 객관적 상태를 갖는다는 말은 그것들이 인식 주체와 독립된 그들의 존재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즉 인식이란 경험을 통해 형성된 여러 보편적 관념들을 종합한 것이다. 결국 인식하는 모든 것은 관념으로 구성된다. 이런 점에서 '실재'란 '사유와 이성'이며, 사유 대상은 사유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헤겔은 사유의 대상이 사유 그 자체 내에 존재한다고 봄으로써 인식과 존재 사이의 동일성을 주장했다. 이렇듯 확실히 헤겔은 주체와 객체, 즉 인간과 세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또한 그의 관념론의 본질은 인간 의식의 대상, 즉 인간이 경험하고 사유하는 사물 그 자체 또한 궁극적 이성에 의한 것이라는 데 있다.

 

2. 변증법

헤겔은 모든 것을, 즉 의식과 사물, 개인과 국가, 선과 악 등을 통합하여 하나의 원리로 설명해 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들은 분명히 서로 다른 것들이다. 이들이 서로 통합되고,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하나가 된다고 주장하려면 서로 다른 것이 어떻게 결합하고 통합되는지를 설명하여야 한다. 이런점에서 헤겔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세계의 변화와 생성의 규칙을 변증법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즉 헤겔에게 있어서 변증법은 절대적인 사유의 법칙으로 변화하는 세계의 발전 법칙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세 단계의 과정으로 묘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헤겔 철학에 있어서 세계의 모든 것은 세 단계 과정의 걸쳐 발전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정립(테제)', '반정립(안티테제)', '종합(진테제)'이다.

 

1. 정립 : 첫 번째 단계로 어떠한 상황이 가지는 진실을 부분적으로 설명하여 그것이 하나의 정설로 굳어지는 것이다. 어떤 개념이 주어지지만, 그것은 추상적인 것으로, 매개하는 다른 개념 작용의 도움없이 사유의 과정으로서부터 직접적으로 생겨나므로 무매개적이다.

 

2. 반정립 : 정설이 자기 모순에 직면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어 이견이 등장하는 단계이다. 즉 추상적인 개념이 규정된 것이 되기 위해 그에 맞서는 개념 작용들의 매개를 거친다.

 

3. 종합 : 정립에 대한 부분적인 이해와 그것에 대한 비판인 반정립이 종합되어 그 둘을 모두 포함하지만 새로운 특성을 지니는, 자기모순을 극복한 제3의 관념이 나타나는 단계이다. 즉 추상화하는 개념 작용과 규정하는 개념 작용 사이의 갈등은 양자를 구체화하는 더 참이 되는 개념으로 향하는데, 헤겔은 이렇게 '정'의 요소와 '반'의 요소가 합으로서 하나가 되어 그 새로운 관념을 창출해내는 변증법의 과정을 '지양'(아우프헤벤)이라고 부른다.

 

최초의 정립은 그 내부에 논리적인 대립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정립과는 전혀 다른 대립적인 모순인 반정립이 출현하게 된다. 이렇듯 최초의 정립과 반정립은 분명히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헤겔은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대립하고 있는 이러한 관계를 모순 관계라고 한다. 그러나 이 정립과 반정립의 대립적인 모순 관계야 말로 세계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왜냐하면 이 두 대립은 사라지지 않고 자신을 유지하며 종합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반정립과 정립의 대립은 지양되어 '종합'으로 나아간다. 종합을 통하여 인간은 실재의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정립과 반정립에서 드러나는 부분적인 진리들이 그 안에 그대로 보존되어 전체에 좀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것은 이전의 상태보다 질적으로 더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운동은 정립으로 지양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되어 종합은 다시 정으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그것에 대립하는 또다른 반정립이 정립되고, 다시 종합에로의 변증법적 지양이 일어나는 과정이 계속된다. 이러한 변증법의 세 과정은 계속 반복되어 질적인 도약을 거쳐 발전을 이뤄 나가게 된다.

 

헤겔은 도토리를 예시로 든다. 하나의 도토리는 그 안에 도토리나무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도토리가 그대로만 있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다. 하지만 도토리는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자라난다. 그러면 도토리는 도토리나무가 된다. 하지만 도토리는 사라지는 것만은 아니다. 도토리나무가 열매를 맺으면서 다시 여러 개의 도토리가 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도토리 - 도토리 나무 - 여러개의 도토리'는 그대로 '정립 - 반정립 - 종합'의 과정과 일치한다. 또한 하나의 식물(정)이 병충해의 고통(반)을 이기고 더 훌륭한 품종으로 진화하는 것(합)이 그것의 한 예이다. 이 규칙은 인간정신의 활동에도 적용된다. 인간은 어떤 것, 예컨대 라디오를 생각하면 그것이 아닌 것, 예컨대 손전등을 생각하고 이 둘을 발전시켜 새로운 것, 예컨대 라디오와 손전등의 결합체 따위를 생각해 낼 수 있다. 혹은 현대 소설만 읽던 사람이 셰익스피어를 읽고 감동을 받아 문학의 새로운 지평 혹은 연극 등에 눈을 뜬다면 이는 변증법적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사람은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본 후 또다른 연극을 통하여 연극에 대한 더 발전된 인식을 가지거나, 오페라나 영화같은 다른 예술 분야로 인식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변증법은 질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훌륭하게 적용되는 법칙이다.

 

헤겔의 변증법에서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정신적 과정의 결과, 즉 이성이 행하는 정신적 운동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은 모두 이 법칙을 따라 움직인다. 변증법은 단순히 인식과 지식의 과정뿐만 아니라 역사 전체에도 적용된다. 헤겔은 자신의 변증법을 통해 역사를 설명함으로써 '절대정신'의 실현 과정을 묘사한다.

 

2.1 절대정신

독일관념론을 정립한 헤겔 철학의 주요한 특징이자 파격력은 정신이 궁극적으로 지식의 근원이자 내용 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모든 현실적이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정신이 지식을 만들어 내는가 라는 문제이다. 인간은 외적 사물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헤겔은 인간이 그 세계를 창조한게 아니므로 그것은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함을 인정한다. 따라서 만약 지식이 정신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인간의 정신은 아니므로 유한한 개인의 산물과 다른 어떤 지성의 산물이라고 여겨야 한다. 이런 점에서 헤겔은 모든 인식 대상, 따라서 모든 대상들, 실제로 우주가 하나의 절대적 주체인 절대 정신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오성을 비롯한 정신의 범주들이 칸트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인식만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데 비해, 헤겔에게 있어서는 개인의 정신과 독립된 하나의 존재 양식을 가진다. 즉 칸트에게 범주가, 개인의 정신작용으로서 인식에 대한 비판적 설명을 제공해주었다면, 헤겔에게 있어서는 범주는 사유하는 주체와 독립된 존재로서의 객관적 실체들로 간주했다. 헤겔에 따르면 이 범주들은 절대 정신 안에서 그들의 존재를 갖는다. 그러나 헤겔이 플라톤처럼 어떤 독립적 존재를 범주 또는 이데아에 귀속시키고자 한것은 아니었다. 헤겔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그 범주들이 단지 존재를 가진다는 것 뿐이다. 즉 헤겔은 실제 세계가 사람들의 정신이 지닌 주관적 개념 작용의 결과 이상의 것이며, 실재는 이성 또는 사유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즉 헤겔이 절대정신이란 일종의 최고의 합리성이다. 전통적으로 철학에서는 인간은 실재에 대한 궁극적인 인식을 가능하다고 믿어왔거나, 이러한 주제에 대해 심도깊게 탐구하면서 수많은 부조리를 낳았지만, 헤겔에 따르면 현상 속에 있는 실재는 끝없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실재에 대한 인식또한 끝없는 과정에 해당한다. 발전하는 학문은 위대한 것이지만 그것은 항상 발전하는 도상에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실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절대정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실재의 올바른 인식이란 신과도 같은 '절대정신'의 영역이다. 이런 점에서 인식이란 환상이나 착각에서 절대정신으로 나아가는 끝없는 과정이다. 예컨대 헤겔 철학에 의하면 세상 모든 것은 변증법적인 과정에서 이성적인 것으로 존재하는데, 세상에는 악과 부조리도 있다. 예컨대 인간은 종종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단편적인 경험을 통해 파악된 관념은 더 복잡하고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틀린 것으로 판명될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악과 부조리또한 합리적이냐고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해 헤겔은 별 걱정을 하지 않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헤겔에 따르면 그것은 전체적인 발전의 과정에서 임시적인 필요에 의해서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 나타나는 것 뿐이다. 전체가 되었을 때, 그래서 이 모든 이성이 완전히 표출되었을 때 이러한 부조리는 해소된다.

 

이 절대정신은 언뜻 보면 신과 같긴 하지만, 그것은 세계에 대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변치 않는 원리'나 '진리'에 더 가깝다. 헤겔에게 절대정신은 하나의 '과정'으로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지니는 동시에 하나의 복잡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 헤겔은 사실상 현상이 곧 실재이며, 무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한 이유로 인간이 유리된 사물들로 경험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주의 깊게 반성해 보면 인간은 그것들이 관련된 다른 사물들로 인도되어, 마침내 변증법적 사유과정이 절대자에 대한 인식으로 끝맺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절대자는 사물들의 통일체가 아니다. 여기서 헤겔은 유물론을 거부했다. 마찬가지로 헤겔은 스피노자의 범신론, 즉 모든 것은 일자이며 그것이 여러 양태와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결론도 거부했다. 헤겔은 그저 절대자를 하나의 역동적 과정, 즉 부분들을 갖고 있으나 하나의 복잡한 체계로 통합된 유기체로 묘사했다.

 

헤겔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성이 절대정신의 내적 본질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헤겔에 따르면 절대정신, 자연, 인간정신을 관련 짓는 것은 사유 그 자체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사고방식은 자연의 구조에 고정되어 있지만, 절대정신은 자연의 구조를 통하여 그 스스로를 표현하기 때문에 사물들은 그것들이 하는 대로 움직인다. 따라서 인간은 절대자가 그 스스로를 자연 속에 표현하는 방식으로 자연에 대해서 사고한다. 절대자와 자연이 역동적 과정인 것처럼 인간의 사유도 역시 하나의 변증법적 과정이다.

 

2.2 결론

변증법을 도입함으로써 헤겔은 다음의 몇 가지를 한꺼번에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첫째는 모든 것이 발전한다는 생각, 둘째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적이며 그러면서도 생성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증법 도입의 결과로서 헤겔은 전체적인 것이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3. 역사철학

헤겔은 변증법을 역사에 적용했는데, 헤겔은 이성이 인류를 진보로 이끌며 이성이 진보를 일궈내는 메커니즘이 바로 변증법이라고 보았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예를 들어 그리스의 자유로움과 로마의 외적 율법주의(엄격한 법치)가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현대 서유럽의 법체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헤겔에 의하면 세계사는 자유의식의 진보과정이다. 고대의 동양세계에서는 절대군주 한 사람만 자유로웠고, 그리스세계에서는 몇몇 귀족들만 자유로웠으며, 게르만 세계에서는 모두가 자유롭다고 하면서, 헤겔은 자유의식의 정도를 역사발전의 척도로 삼고 있다. 세계사는 다양한 민족정산들의 흥망성쇠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오직 한 민족정신만이 세계사적 민족으로 등장한다. 어떤 민족이 세계사적 민족으로 등장하는 가는 그 민족이 세계정신의 이념, 즉 이성의 원칙을 어마나 의식하느냐에 달려있다. 세계정신의 이성을 아는 민족이 세계사를 주도하는 민족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러한 앎의 주체는 민족이 아니라 민족에 속해 있는 개인, 즉 세계사적인 개인이다. 헤겔은 칭기스탄,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 나폴레옹 같은 인물들을 세계사적인 인물로 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세계이성의 흐름에 맞추어 세계사를 이끌고 나감에 따라 세계사에서 진보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적인 민족이나 세계사적인 개인들도 세계정신이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 실제로는 이들도 자기들이 어디를 향해 진행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들도 그들의 현재에 묶여 현재에 충실하게 행위하고 있을 뿐, 자신들이 세계정신의 목적에 참여하여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세계정신은 그의 목적을 개인이나 민족을 매개로 하여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통하지 않고는 세계사의 진행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자신은 세계정신이 의도하는 뜻을 알지 못한다. 세계정신은 행위하지 않지만 자기의 진행방햐을 알고 있는데, 개인과 민족은 행위하지만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겨운 노동을 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양상을 헤겔은 '이성의 간지'라고 부른다.

 

세계사는 숱한 우여곡절 속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세계사의 도도한 흐름은 결국 이성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 헤겔의 생각이다. 물의 흐름에는 경우에 따라 소용돌이와 역류현상이 나타지만 결국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세계사도 결국은 덜 이성적인 데에서 더 이성적인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성은 세계사를 주도하는 힘이다. 이성은 반드시 현실로 나타나며, 현실은 결국 이성에 근거하려 진행된다고 확신하는 헤겔의 역사 낙관론은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기초한 것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Kirtik Der Reinen Vernunft>

1.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보이는 대로의 세상을 살아간다 - 칸트 인식론의 제1명제

칸트가 살던 18세기 유럽은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그러나 철학은 한 세기 전의 합리론과 경험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합리론자는 이성이 발견하는 논리 법칙에 따라 사유해나가기만 하면 세상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령 A를 하나의 명제로 할 때 "A는 A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며, A의 내용이 무엇이건 간에 그 말은 항상 옳지 않다. 그러므로 모순율에 따라 "'A는 A가 아니다'일 수는 없다"는 항상 옳은 명제, 즉 논리적 진리로 확정된다. 모순율을 이해하고 따르는 것은 모든 인간의 선천적인 능력이므로 논리의 법칙을 다르는 한 모든 인간은 동일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합리론은 진리의 조건인 보편타당성을 확보해주는 강점을 지닌다.

그런데 합리론은 논리적으로 모순만 없으면 모든 것을 진리로 여기는 독단론에 빠지기 쉽다. 가령 '날개 달린 말'과 같은 것은 그 자체로는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지만, 실재하지 않는다. '가장 완전한 것이라면 존재도 갖추어야 한다. 고로 가장 완전한 존재인 신은 존재한다'와 같은 명제는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그 실재 여부를 증명할 수 없다. 이런 문제점에 주목한 칸트는 논리적 무모순성은 진리의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말한다.

진리의 충분조건은 실재와 부합해야 한다. 즉, 경험을 통해 객관성이 확인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경험론에서 강조하는 진리의 조건이다. 칸트는 경험론자인 흄을 통해 전통 형이상학의 문제점을 파악하며 라이프니츠와 볼프가 빠졌던 독단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흄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은 배제하는 경험론적 방법을 끝까지 밀고나간 끝에 전통 형이상학은 물론 심지어 자연의 인과율까지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자연에서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각각의 사태들뿐이지 이 사태들을 원인과 결과로 묶어주며 필연적인 관계로 만드는 인과율 자체는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험론을 이렇게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회의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 경험론자들에게 진리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개연적일 뿐이다.

이성의 능력과 한계에 대한 철저한 비판작업이 선행되지 않아 합리론은 실재에 부합하는 지식을 보장하지 못하는 반면 경험론은 확실한 지식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철학이 이처럼 난관에 부딪힌 사이 자연과학은 세계를 설명하는 객관적 지식으로서 놀라운 성과를 이룩한다. 철학이 당면한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장점을 취합하면서 양자의 한계를 넘어서야 했다. 칸트의 '선험론적 관념론(der transzedentale idealismus)'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순수이성비판>(1781)에서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먼저 생각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인식이 대상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대상에 대해서 선천적으로 개념을 통해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할 수 있는 어떤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 모든 노력은 [인식이 대상을 따라야한다는] 이러한 전제하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 그러나 대상이 우리 직관능력의 성질에 따른다면 우리는 이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 <순수이성비판>의 B XV=B XIII 이하. "

우리의 인식이 대상을 향해 있다고 보지 말고 대상이 우리의 인식을 향해 있다고 보자는 것이다. 칸트는 이것을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관점전환에 버금간다는 의미에서 "사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이렇게 관점을 바꿔야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며, 이런 관점전환을 통해 어떻게 실재에 부합하면서도 필연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는 세상에 있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는다. 둥글고 붉은 사과 한 개를 보고서는 '둥글고 붉은 사과 한 개가 그 모습 그대로 우리 눈에 들어온다'고 믿는 것은 자연스러운 태도인 것이다. 그런데 사과라는 대상을 육안으로 보건 현미경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 보건 우리는 그것을 우리에게 나타난 대로 본다. 우리에게 나타난 모습이 사과라는 사물 자체의 모습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어떤 설명방식이나 관찰도구를 쓰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정신이나 의식에 나타나는 모습만을 접하는 것이기 대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한, 우리는 사물 자체를 알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모른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사물 자체(Ding an sich)"가 우리의 감관이나 이성을 거치지 않고 우리에게 알려져야 하는데, 이런 일은 결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물은 늘 우리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드러난다. 다시 말해, 어떤 대상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한에서만 그 대상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만나는 것이 대상 그자체인지도 확인할 수 없고 아닌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우리의 감관과 이성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원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감관과 이성이라는 색안경에 의해 채색된 것이라는 점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감관과 이성을 거치지 않은 사물 자체를 우리가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대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성의 능력을 이렇게 한계지우면서도 우리에게 나타난 그것이 단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대상 자체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는지에 대해서는 검토해볼 수 있다.

또한 대상에 대한 지식이 대상 자체를 보여준다고 확증할 길은 없더라도 그런 지식이 사람에 따라 참이 되거나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보편타당성을 지니는 것인지 아닌지도 검토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검토작업은 그 자체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는 대상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대상을 파악하는 우리의 인식능력을 검토하는 일이다. 이제 진리를 알려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대상을 향하던 시선이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에게로 전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사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필요성이 충분히 밝혀졌다.

칸트에 따르면 대상을 파악하는 우리의 인식능력은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능력인 감성(Sinnlinchkeit), 감성이 받아들인 지각을 사유하는 능력인 지성/오성(Verstand), 초감성적인것에 대해 사유하는 능력인 이성(Vernunft)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상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감성과 지성의 두 단계의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초감성적인 것에 대해 사유하는 능력인 이성은 참된 인식을 낳지 못한다. 칸트는 감성과 지성, 이 두 인식능력에 의해 실재에 부합하면서도 보편타당성을 지닌 지식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인식능력에 대한 칸트의 설명을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감성은 오감에 주어지는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기능을 한다. 우리는 아무런 실제 체험 없이도 뭔가를 상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 생각할 겨를도 없는 찰나의 순간에 눈만 돌리면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뭔가가 오감에 자각되기도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어떤 실질적 대상이 우리의 의지나 상상과 무관하게 감성에 수동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것을 '질료(materie)'라고 칭한다.

실질적 대상이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감성에 저절로 주어진다는 것은 우리의 인식이 의지나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실재하는 무엇과 어떤 관계를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로써 경험론이 강조했던 인식과 실재와의 관련성이 설명되었다. 그런데 이때 주어진 '질료'는 존재하던 그 자체로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 감성의 재료라 할수 있는 '질료' 그 자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질료는 항상 우리에게 나타나서야 비로소 알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감성에 주어지는 이 재료를 아직 무엇인지 모르는 것, 혼돈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잡다(manigfaltigkeit)'라고 칭한다.

그런데 감성에 수용된 질료는 항상 시간과 공간이라는 감성의 형식에 의해 '언제 어디의 무엇'으로 정리가 되어 우리에게 나타난다. 칸트는 감성을 통해 이루어진 이러한 인식을 '지각' 혹은 '직관'이라 칭하고, 시간과 공간은 '감성의 형식'이나 '직관의 형식'이라 칭한다. 그런데 감성의 형식인 시간과 공간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사물 자체를 상상할 수 없듯이 움직임이나 어떤 형태로 비유하지 않고는 시간이나 공간 자체를 떠올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과 공간은 마치 상자가 품은 빈 공간에서 생각해볼 수 있듯 어떤 대상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은 경험적으로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우리가 어떤 것을 지각할 때 작용하는 일종의 관념이다. 이런 이유에서 칸트는 시간과 공간을 감성의 형식이라 칭한 것이다. 그리고 감성에 주어진 질료가 항상 시간 공간에 의해 정리된 채 나타난다는 것은 대상을 인식할 때는 항상 우리 자신의 인식능력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만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틀에 담아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실재적 대상을 지각할 때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능력이 자동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지성은 감성이 받아들인 질료를 범주(Kategorie)라고 하는 12가지 지성의 개념으로 정리하며 비로소 지각된 재료를 무언가로 인식하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칸트는 12가지 범주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수학적인 것과 관계하는 양의 범주에는 단일성, 수다성, 전체성이 있고, 질의 범주에는 실재성, 부정성, 제한성이 있다. 물리학적인 것과 관련되는 관계의 범주에는 속석과 자존성(실체와 우유성), 인과성과 의존성(원인과 결과), 상호성(작용자와 수동자간의 상호작용)이 있고, 존재하는 방식과 관련된 양상의 범주에는 가능성-불가능성, 현존성-비존재성, 필연성-우연성이 있다. 칸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이 선천적으로(a priori) 갖추고 있는 순수 지성의 개념인 이 12범주들은 대상을 인식할 때 마다 작용한다.

가령 '불을 지핀다'는 사태와 '물이 끓다'는 연속된 사태를 수많은 세월 반복해서 본 결과, '불을 지핀다'를 원인으로 보고 '물이 끓다'를 결과로 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불을 지핀다'는 사태와 '물이 끓다'는 사태들 자체에는 '원인과 결과'라는 사유의 틀인 지성의 개념이 없다. 가령 발생하는 사태만을 지각해 기억하는 컴퓨터가 있다고 하자. 이 컴퓨터에 수만년 동안 '불을 지핀다'는 사태와 '물이 끓다'를 연속적으로 지각해서 기억시켜보자. 이 컴퓨터가 내 놓을 수 있는 결과는 '불을 지핀다'는 사태와 '물이 끓다'는 개별적 사태에 대한 반복된 기록뿐이다. 이 둘을 원인-결과로 볼 수 있으려면 컴퓨터에 연속된 두 사태를 원인과 결과로 묶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이미 내장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이 프로그램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불을 지핀다'는 사태와 '물이 끓다'는 사태가 일어나야만 한다. 인과율이라는 개념은 이러한 경험과 함께 동시에 작동하여 "불을 지피면 물은 끓는다"는 자연과학적 인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지식은 실재에 부합하면서도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필연적 진리가 될 수 있다. 이 인식이 실재에 부합하는 근거는 그것이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감성을 통해 수동적으로 지각된 사태를 재료로 하기 때문이다. 즉, 감성의 형식인 시간에 의해 '불을 지핀다'는 앞서 일어난 일로, '물이 끓는다'는 그에 뒤따르는 일로 받아들인다. 단지 상상된 것이라면 앞 뒤 사태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겠지만 실재 일어난 사태를 인식한 것이기에 앞선 것과 뒤따르는 것은 저절로 순서가 정해진다. 또한 이렇게 정해진 순서를 지성은 인과율에 의해 원인과 결과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건전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똑같이 일어난다.

즉 이는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일인 것이다. 칸트는 인과율이외의 다르 범주들도 직관에 적용됨으로써 실재에 부합하면서도 누구에게나 받아들일 수 있는 필연적 인식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말은 인과율과 같은 범주가 적용된다고 해서 항상 참된 지식을 만든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쥐떼의 출몰이 흑사병의 원인이 아니듯, 어떤 것이 참된 원인과 그 결과인지는 두 사태의 성격 자체를 파악해야만 확정할 수 있다.

그리고 범주가 실재에 부합하면서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필연적 인식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경우는 그것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의해 규정될 수 있는 현상체(phenomena)에 적용될 때이다. 즉 범주가 감성적으로 경험이 불가능한 초월적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대상에 적용될 때 필연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은 현상체에 적용될 때에만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범주들을 영혼, 세계, 신, 자유와 같은 초감성적 존재들에 적용하여 그것들이 마치 실체를 지닌 것처럼 사유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형이상학적 충동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영혼, 세계, 신, 자유에 대한 어떠한 명제도 우리의 이성으로는 확실히 증명할 수 없고 따라서 현상체가 갖는 객관적 확실성을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 세계, 신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 세계, 영혼, 신, 자유에 대한 긍정명제도 부정명제도 가능한 상황인 이율배반(antinomie)이 발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칸트는 영혼불멸, 자유, 신과 같은 초월적 대상에 대한 논의는 객관적 확실성이 관건인 이론이성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섦의 필요성이 관건이 되는 실천이성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 적합하다고 본다.

2. <순수이성비판>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1781년 <순수이성비판>이 출간되자 그 난해함과 새로움으로 인해 유럽 철학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실천이성비판>(1788)과 <판단력비판>(1790)이 출판될 쯤에는 철학이 전문화된 학문으로서 자리 잡은 모든 나라에서 칸트가 연구되고 가르쳐졌다. 그런데 사실은 칸트 이전에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에 의해 전근대의 비합리적 세계관이 흔들렸고,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에 의해 인간의 이성을 탐구하여 세계를 파악하려는 전통이 이미 수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직업 철학자로서 칸트는 기존의 작업들을 상식으로는 쉽게 도달하 수 없는 깊이와 체계성 속에 정리하여 전근대적 시대를 매듭짓고 인류가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데 필요한 길잡이를 모두 제공하였다.

즉 <순수이성비판>은 뉴턴이후 자연과학이 성취한 객관적 지식을 수용하면서도 자연과학의 눈으로는 파악되지 않은 지식의 근본적 토대를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근대 이후 오늘날까지 진리에 대해 근본적으로 살펴보려는 사람들은 칸트를 진지하게 탐구할 수밖에 없다.

3. <순수이성비판>의 구성

0. Vorrede (서론 1)

0. Einleitung (서론 2)

1. Transzendentale Elementarlehre (선험적 요소론)

 1.1 Transzendentale Asthetik(선험적 감성론)

 1.2 Transzendentale Logik (선험적 논리론)

  1.2.1 Transzendentale Analytik (선험적 분석론)

  - Kategorien (범주론), Schemata (도식론), Grundesatze (원리론)

  1.2.2 Transzendentale Dialektik (선험적 변증)

  - Paralogismen (오류추론), Antinomien (이율배반론), Regulative Ideen (규제적 이념 - 영혼세계, 자유, 신 등)

2. Transzendentale Methodenlehre (선험적 방법론) - Disziplinen (순수이성의 훈련), Kanon (순수이성의 규준), Architektonik (순수이성의 건축술), Geschichte (순수이성의 역사)

출처 :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2020-1학기 '역사철학연구' 수업 내용 (담당교수 이진오)

 

 

 

 

<프리드리히 쉴러>

프리드리히 실러는 당대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 체계를 토대로 삼아 자신의 미학 이론을 전개한다. 그리하여 칸트 철학의 체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지 않고서는 실러의 미학 이론을 따라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내적 변화

프리드리히 실러는 프랑스 공화국 정부로부터 명예시민으로 인정받은 (1792년 8월 26일) 몇 안되는 독일 지식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만큼 그의 초기 작품들은 정치적 자유를 지향하는, 거의 혁명적인 사상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실러는 내적 인간의 변화 없이 국가체제를 뒤집어엎는 것만으로는 정치적 자유가 실현된 사회를 만들어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체제가 아닌 인간의 내면을 먼저 변화시킬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폭력이 다른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내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길은 대체 무엇이낙? 실러가 내놓은 우회적인 답변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통해 자유에 도달한다." 즉 인간은 먼저 미적 체험을 거듭함으로써 미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개선된 인간이 거기서부터 윤리적(도덕적) 인간으로 나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또한 그런 사람들은 정치적 자유를 구현한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도 있으리라고 실러는 보았다. 즉, 예술(미적 가상)의 체험을 통해 혁명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의 실현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먼저 "대체 미적 인간이란 무엇인가?" 를 탐구해야할 것이다. '미' 또는 '아름다움' 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을 보편적 이론으로 성립시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느낌에 기반을 둔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실러는 칸트의 철학적 사색과 용어에 기대어 미적인 상태는 무엇이며, 그 상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한다.

미적 가상

실러는 가상이라는 말을 현실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언뜻 보면 현실처럼 보이고 또 현실과 매우 비슷하기도 하지만, 실은 현실이 아닌 가짜 모습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쓸모를 떠나 순수한 재미를 위해 또는 (현실적 쓸모에 덧붙인) 장식용으로 만든 미적인 가상의 산물이 곧 예술작품이다. 미적 가상이란 예술 작품에 표현된 내용과 형식을 총괄하는 개념으로서 예술작품의 아름다움과 빛, 겉모습, 감각적 속임수 모두를 뜻한다. 에컨대 갈 자체의 용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익품으로서의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값비싼 일본도 등이 그러하다.

아름다움이란 취향 판단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곧 좋고 싫음의 영역이다. 칸트에 따르면 취향의 판단은 이해관계를 떠난 것이며, 특정한 목적 없이 나오는 판단이다. 이와 같은 취향 판단은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인 것이지만, 그런데도 사회적인 특성을 지닌다. 즉 취향 판단일수록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또 다른 사람도 그것을 좋다고 인정해주어야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칸트는 '미적인 취향 판단'이란 매우 주관적인 동시에 보편적 타당성을 가지는 판단이라고 보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비싼 예술품을 만들거나 소장할 이유가 무엇인가?

미적 가상을 현실에서 분리

실러 미학의 핵심은 미적 가상을 현실에서 분리하는 것이다. 그는 미적 가상을 현실에서 해방시키고, 이로써 예술에 자율성을 부여한다. 동시에 현실의 참 또는 진리가 가상과 뒤섞이는 일을 엄격하게 방지하고자 한다. 미적 가상과 연관해서는 다음에 나오는 실러의 말을 분명히 기억해두어야 한다. "가상은 오직 정직한 한에서만 (현실에 대한 모든 요구를 명백하게 포기해야만), 그리고 독자적인 한에서만 (현실로부터의 도움이 전혀 없어도 괜찮아야만) 미적인 것 이다."

실러의 희곡 작품 상당수가 역사의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실러 작품의 주인공인 돈 카를로스, 발렌슈타인, 잔 다르크, 빌헬름 텔 등이 모두 역사인물들이다. 예나 대학교에서 역사학 강의를 한 적이 있는 실러는 작품을 쓰기 전 배경이 되는 역사를 철저히 연구한 사람인데, 놀랍게도 그의 역사 희곡에서 대부분의 인물들은 역사적 사실에서 상당히 자유롭다. 그가 역사의 내용을 몰라서 인물을 변조한 것이 아니라 문학작품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은 현실과 무관한 미적 가상이라는 믿음에서 이렇듯 인물에게서 역사적 현실성 일부를 없애고, 작품 내부의 논리를 인물에 새로 부여했던 것이다. 그는 예술을 철저히 현실에서 분리하려는 노력을 했던 작가이다.

삶은 진지하고, 예술은 명랑하다.

실러의 다음 명제, "삶은 진지하고, 예술은 명랑하다 (Ernst ist das leben, heiter ist die kunst)" 역시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실러의 희곡 <발렌슈타인> '프롤로그'에 나오는 말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나 내용은 '명랑'한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런데도 실러는 이런 말을 했다.

현실의 삶에서 우리는 주로 생존을 위한 활동을 한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것이니 현실적인 목적과 의도들에 따른, 즉 매우 진지한 활동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의 내용은 그것이 아무리 진지하고, 아무리 비극적인 것이라도 결국은 현실이 아닌 어디까지나 가상이기에 명랑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진지하다는 것은 목적이나 이해관계에 따른 활동을, 명랑하다는 것은 그것과 무관한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무리 절절한 내용이 담겨 있어도 예술은 어디까지나 미적인 가상이고, 현실이 아닌 가상인 한 그것은 명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미적인 가상이다. 즉 일상적 목적이 없는 명랑한 것이다. 하지만 실러는 그런 예술을 통해 현대 문명이 초래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도 현실과 분명하게 거리를 둔 채 자율성을 지닌 예술을 통해서 말이다. 그의 믿음이 과연 실현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질문이 될 것이다.

아름다움의 작용에 대한 선험적(초월적) 관찰

아름다움이 정말 인간을 (정치적) 자유로 이끌어주는가? 이를 역사와 현실에서 관찰하면 부정적인 답변 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실러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관찰을 멈추지 않는다. 다만, 경험적 관찰방식이 아름다움의 작용을 살펴보는 점에 있어 적절치 못하기 때문에, 경험적 차원을 넘어 초월적이고 선험적인 방법을 통해 아름다움이 인성의 필수조건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 역시 칸트의 사유와 용어를 빌리는 것이다. 그러나, 칸트의 방법론이 실러 미학의 결정적인 기반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칸트 미학과 비교하거나 또는 칸트 미학에 대한 주석으로 읽기는 곤란하다. 실러의 미학은아름다움의 본질을 밝히려는 시도가 아니라 현대 문명의 위기를 예술을 통해 극복하려는 전망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감각충동 대 형식충동

실러의 사유는 칸트 방식에 따른 이원론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자연 대 이성, 감성 대 지성 등의 대립들이 나타나고, 감성과 지성의 대립에서 추진력이 되는 두 가지 충동, 즉 감각충동과 형식충동이 나타난다. 실러는 인간을 설명할 때 무엇보다 '충동'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감각충동은 간단히 말해 감성의 힘을 의미한다. 반면 형식충동은 이성의 힘이다. 전자는 원초적인 물리적 현존, 즉 삶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후자는 사고작용을 통한 형식화, 혹은 법칙의 구성 등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하여 시간적으로 볼 때 감각충동이 보다 앞서는 것이다. 그리고 감각충동은 삶을 계속 이끌어나가야 하므로 변화를 지향하는 반면, 형식충동을 무작위한 현상에 법칙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지속성과 통일성을 중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실러에게 있어 인간은 변화를 지향하면서도 통일을 지향하는, 어떻게 보면 모순을 가진 존재자인 것이다. 이렇듯 이 두 충동은 서로 상반되지만, 그 대상이 서로 다르므로 본성상 충돌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감각충동의 감각이 형식충동을 도우면서 인성이 형성된다. 그런데 이 두 충동이 자신의 영역을 혼동하며 다른 영역을 침범한다면, 양자 간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세계의 인간 대다수가 그러한 충돌을 겪는다.

감각충동이 더 강한 인간은 감각적 인간이다. 이는 자기보존의 욕구에만 충실하며,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반면 형식충동이 더 강한 인간은 도덕적 인간이 된다. 이는 감정을 억누르고 원칙만을 좆으며 자신의 본성을 거세한다. 그리하여 실러는 감각충동과 형식충동 사이의 충돌을 방지하고, 양 충동 중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지배하는 상황을 막고 양자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놀이 충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놀이충동

놀이충동은 감각충동과 형식충동의 상호작용을 이끌고 서로를 조화롭게 만드는 제3의 개념이다. 이것의 대상은 물론 아름다움이다. 실러는 인간이 놀이하는 한에서만 온전한 인간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놀이충동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한에서만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놀이란 그 어떤 실천적 목적도 추구하지 않고, 또 지적인 개념에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다. 놀이는 도덕적 목적이나 지식을 쌓기 위한 것과는 무관하며 마냥 즐겁고 명랑한 활동이다. 이런 놀이가 실러에게는 두 충동 사이에서 해방의 작용을 한다. 감각충동과 형식충동 각각의 강요를 없애고 인간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 바로 놀이충동이다. 즉 자기 보존의 욕구나 현실의 필요성에서 벗어나고, 도한 도덕적인 원칙의 강요에서도 벗어나게 해주는 충동이며, 아름다움은 서로 대비되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상태를 조화로 이끄는 것이다.

놀이충동은 짓누르는 현실의 진지함에서 삶을 자유롭게 풀어준다. 그러면서 실러에서 놀이충동은 단순한 미학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 형성의 영역으로 올라선다. 인간은 놀이충동이 만들어낸 무위와 가벼움의 상태에서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동원해 놀이를 하고, 또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감추어진 능력을 찾아내고 발전시킨다. 구체적이 목적 없이 놀이를 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내면에 감추어진 자신의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그래서 놀이충동의 대상은 살아 있는 형성력, 즉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놀이충동으로 미적 가상, 즉 예술을 누리는데, 미적 가상은 명랑한 것이다. 인성을 위한 자유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아름다움이다. 이런 전제에서 실러는 "인간은 아름다움으로는 오로지 놀이만을 해야 하며, 오직 아름다움으로만 놀이를 해야한다." 그리고 "인간은 그 말의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인 한에서만 놀이하며 ,또 놀이하는 한에서만 온전한 인간이다" 라고 밝힌 것이다.

놀이하는 인간은 온갖 강제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롭게 아름다움을 즐긴다. 놀이하는 인간은 곧 미적 인간이다. 미적 인간은 감각적 인간과 도덕적 인간의 장점만을 흡수하여, 풍부한 감성을 지녔으면서도 올바른 윤리적 선택도 할 줄 안다. 그는 감각성의 노예 상태에서도 벗어나고, 도덕성의 강요에사도 벗어난 채로 그러면서도 감성과 논리적 지성을 지닌 채로 아름다움으로 놀고 있으므로 그 순간 인간은 본래의 총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미적 상태와 자유

감각충동과 형식충동의 충돌하면서 놀이충동이 발생하는 동시에 미적 상태가 나타난다. 놀이충동과 미적 상태는 사실상 같은 내용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즉 감각적 상태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도덕성의 강제에서도 벗어나 있는 상태가 미적 상태이다. 미적 상태 다음에 인간은 도덕적 상태에 돌입한다. 실러의 궁극적 목적은 정치적 자유의 실현이었고, 도덕적 상태에 들어선 인간은 정치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실러는 미적 상태가 도덕적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 단계라며 등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말한 미적 교육의 목표는 바로 미적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다. 미적 인간이 아닌 도덕적 인간은 본성을 억누르기만 하고 오직 기계처럼 도덕성만을 따른다. 실러가 보기에 이는 불안전한 인간이다. 미적 상태를 거쳐야만 감각과 이성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실러의 견해이다.

이렇듯 놀이충동 또는 미적 상태의 다른 말은 자유이다. 그것은 온갖 강제성으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현실적 이해타산에서도 벗어난 자유인 것이다. 예술 또는 미적 가상을 즐기는 것은 지식의 증진이나 도덕적 인간이 되는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얼핏 보기에 목적이 없어 보이나, 사실 자유를 추구하고 인성에 가능한 완벽한 표현을 줌으로써 우회적으로 더 큰 목적, 개인의 자기 발전과 사회적 조화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은 절대적 자유를 향한 수단이다.

비어 있는 무한성과 가득 채워진 무한성

감각적 상태에서 인간은 자기 보존의 욕구만을 가진다. 이러한 인간에게는 아무 것도 규정된 것이 없고, 실러는 인간의 이런상태를 '비어 있는 무한성'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는 공허가 아니다. 이 상태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즉 규정된 것이 없는 혼돈의 상태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본능적인 자기보존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적 상태에 이르는 순간, 한계없는 규정가능성에서 단 하나의 규정만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비어 있는 무한성은 제한된다. 미적 상태에서 인간은 더 이상 혼돈의 존재가 아니며, 두 기본 충동이 화해함에 따라 충분한 내실을 갖추게 된다. 누구나 각자의 취향대로 자발적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미적 상태에 이른다. 여기서 불가능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질서 잡힌 무한한 가능성이 새로이 부여된다. 실러는 이를 '가득 채워진 무한성'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아름다움의 결핍으로 인한 규정없음이 비어 있는 무한성이라면, 아름다움을 통해 규정된 상태는 가득 채워진 무한성이다.

미적인 사회

실러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자유는 그의 본질적 목표는 아니다. 그는 정치적 자유, 즉 사회를 개선하고 국가체제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미학 이론을 전개하였다.

실러가 꿈꾸는 이상사회는 놀이와 가상으로 지탱되는 미적 국가이다. 대립하는 본성들 사이의 싸움을 아름다움이 해결했듯이, 자유롭게 미적 상태에 이른 인간들이 모범적으로 결합한 미적 국가에서는, 심하게 뒤엉킨 사회적 문제들이 일소되거나, 적어도 해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미적 국가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놀이의 대상으로만 서로를 대한다. 아름다움을 통한 자유가 미적 국가의 기본법칙이다. 이렇듯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사회적 품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미적 상태에서 정치적 자유로 직접 넘어가는 길을 그가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 점에 대해 비관적인 예측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실러는 처음부터 품성을 고귀하게 해야만 정치 변화와 개혁이 가능하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정치 영역에서의 모든 개선은 품성을 고귀하게 만드는 일에서 출발해야 하고, 품성을 고귀하게 만들어줄 도구는 바로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예술을 통한 교육 과정이 먼저 이루어져 사람들의 품성을 변화시킨다면 추후에 공적인 정치 영역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