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의 시작-귀납주의>
1. 귀납주의의 배경과 흐름
귀납주의는 중세의 몰락 이후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하게 된다. 이시기에는 기존의 '신 중심'의 철학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발흥하기 시작했고, 창조주로서의 신을 배제하고 자연을 설명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즉 관념적인 철학에서 벗어나 현실에 있는 자연을 실증적인 실험, 관찰을 통해 연구하고자 한 것이다. 실험과 관찰을 통해 동일한 결과를 도출하고, 오류의 편차를 최대한 줄여가면서 결국에는 그것을일반적인 것으로 정의하는 '과학적 진리'를 상정하고자 했는데, 그 결과가 현실의 물리적 구조를 분석하는 화학, 현실에 작용하는 힘을 연구하는 물리학 등의 자연과학이다.
이러한 근대과학은 고/중세의 과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설명력과 설득력있는 새로운 지식을 제공했으며, 과거의 과학이 풀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다.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등이 이시기 과학혁명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근대과학의 의미를 성공한 지식의 누적이라는 양적 기준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그것의 의미를 축소, 왜곡하는 것이다. 근대과확 발생의 근본적인 의미는 새로운 과학을 가능하게 한 토대인 사고방식의 새로움에 있다. 모든 과학은 자연과 진리에 대한 일정한 관념과 방법적 규범을 토대로 하며, 나아가 사회규범, 정치상황, 그리고 종교적 신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인들을 배경으로 한다. 과학의 토대와 배경을 이루는 조건들을 쿤은 패러다임이라고 했는데, 이 패러다임에 따라 동일산 사례도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이나 관점 등이 차이가 나게 된다. 근대과학을 가능하게 했던 패러다임은 기계적 자연관1, 철저한 경험적 방법, 수학적 서술이라 요악될 수 있다. 이러한 배경하에 갈릴레이, 케플러, 그리고 뉴턴에 의해 시작된 새과학의 성공은, 그것의 방식과 이론적 결과들을 다른 학문과 삶의 모든 영향도 영향을 미쳤으며, 합리적 사고의 전형으로 받아들여졌다. 서양지성사에서 전례없는 자기비판과 계몽의 의지적 역사로 평가되는 근대철학은 위와 같은 근대과학의 발생과 지적/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그 배경으로 한다. 데카르트, 로크, 흄을 거쳐 칸트로 이르기까지 근대철학사를 장식하는 다양한 사상들은 바로 근대의 변화된 환경에서 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정당성을 확인하는 메타과학으로 등장한 것이다.
19세기에는 열역학, 진화론, 집합론 등등을 비롯한 제2의 과학 혁명이 발생했고, 여기서 전개된 19세기의 인식론이 콩트 등으로 대표되는 실증주의이다. 콩트는 인류의 지식의 역사가 세 단계를 밟는데 첫째가 신학적 단계고, 그 다음 형이상학적 단계, 마지막(19세기 이후)이 실증적 단계라고 보았다. 콩트의 실증주의는 실증성에 기초해 현상2을 탐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과학은 현상의 원인이나 배우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3 현상 그 자체를 관찰하고,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데이터 혹은 양태 들을 조사해서, 그것을 수학과 논리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에 실증주의는 20세기 빈학파를 중심으로 논리실증주의로 승화된다.
2. 귀납법
구체적으로 귀납이란, 특수한 사실에 대한 관찰, 진술을 토대로 일반화하여 보편진술, 즉 과거와 현재의 경험적 사실로부터 미래의 사실까지 포함하는 일반적 진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귀납주의는 :
1. A1은 P라는 속성을 갖는다.
2. A2도 P라는 속성을 갖는다.
3. A3도 P라는 속성을 갖는다.
4. 따라서 모든 An은 P라는 속성을 갖는다.
와 같은 논증을 방법으로 한다. 즉, 관찰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통해 일반화하여 가설을 이끌어낸 후, 가설이 옳은지 증명하는 과정 또는 새로운 데이터에 의해 확증하려는 과정을 거친다. 확증이 될시, 법칙이나 이론으로 성립하게 된다. 귀납은 연역과 달리 사실적 지식을 확장해 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좋은 귀납추리에서 결론은 전제에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내용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확장추리이다.
3. 귀납법에 대한 비판
귀납은 개별적 사례를 통하여 일반명제를 도출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일종의 비약이며, 귀납은 전제가 결론의 필연성을 논리적으로 확립해주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진다.
3.1 흄의 비판
흄은 경험적 탐구를 통해서 사실에 관한 신념을 구성할 수는 있지만, 그것들이 정당한 지식이라고 볼 수 있는지의 여부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보통 인간은 사물이나 사건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굳게 믿고 있다. 가령 당구공으로 다른 당구공을 맞히면 그 맞은 당구공은 움직일 것이라는, 두 당구공 사이에는 물리적으로 연결된 인과적 성질이 있다는 믿음이 있다. 그러나 '이' 당구공이 '저' 당구공에 맞으면 '저' 당구공이 '반드시' 움직이리라는 믿음에는 연결고리가 없다. 이 관념에 대응하는 인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두 공이 실제로 부딪치기까지는 둘 사이의 필연적 결합을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의 당구공을 다른 당구공을 향해 치면서 이 당구공이 저 당구공을 반드시 움직이게 하리라고 예상은 하지만, 예상하는 그 순간에 두 공의 충돌을 직접 관찰하는 것, 다시 말해 두 공의 충돌의 '관념'에 대한 '인상'을 곧 바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보통 인간은 개별적 사례에 대한 경험에서 집단적 사례를 유추해내지만, 그것이 참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예컨대 하나의 당구공이 다른 당구공과 충돌할 때, 이 충돌이 다른 공의 운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믿음은 자신이 관찰하지 못한 사건들이 과거에 관찰했던 사건들과 유사하다는 신념에 기초하는 것이지만, 이는 가정에 불과하지 결코 입증해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흄은 자연과학의 근본이 되는 '필연적 인과'개념을 거부한다. 즉 하나의 당구공이 다른 당구공을 쳐서 밀어낼 때에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두 구체가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이며, 두 당구공이 충돌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 그것을 혹은 유사한 다른 사건을 여러 번 관찰함으로써 마치 어떤 법칙이 '있는 것 처럼'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과적 법칙을 진리로 선언하는 것은 거부되어야만 한다.4
3.2 러셀의 비판
러셀은 귀납의 문제를 흄보다는 간단명료하게, 철학적 우화로 설명한다. 똑똑한 칠면조 한마리가 귀납주의에 따라 관찰을 충분히 한 뒤 일반화시켜 지식을 얻겠다고 결십했다. 이 칠면조가 관찰한 결과 농부가 매일 자기에게 모이를 주었다. 아주 오랫동안 성실하게 관찰해서, 칠면조는 날씨가 어땠건, 무슨 요일이건, 무슨 행사가 있는 날이건 매일 농부가 자신에게 모이를 준다는 것을 경험하고, 마침내 '농부는 매일 나한테 모이를 준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에 농부는 칠면조에게 모이를 주지 않고 목을 비틀었다. 그날은 추수감사절이었기 때문이다. 이 우화가 바로 귀납적 추론의 근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지만, 이 미래는 얼마든지 에측을 빗겨나갈 수 있다.
- 자연을 시계처럼 다양한 부품에 의해 구성되고 일정한 원리에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자동기계로 보는 관점
- 칸트나 후설이 말하는, 인식주관의 구성을 통해 의미를 부여받는(혹은 노에시스와 노에마가 만나 의미가 형성되는) 현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연주의적 입장에서 실재하는 현상이다.
- 이 점에서 반형이상학적이다.
- 다만 수 많은 사건으로부터 인과적 법칙을 추론해 내는 현상 자체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따라서 과학 자체는 여전히 쓸모있는 학문이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러한 흄의 입장은 이후 자연주의라고 불리게 된다.
<논리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
논리실증주의는 대개 1차세계대전 이후 나타났던 빈학파의 논의와 그 구성원들의 철학적 입장을 의미한다. 이들의 주장은 특히 그 어느때보다도 20세기 초반에 활발히 다루어지기 시작했던 자연과학에 대한 철학적 논의와 언어분석철학의 논의에 뒤섞여 있다. 분석적 작업은 그들의 과학에 관한 철학적 논의의 가장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1. 논리실증주의의 배경
1.1 1차세계대전 이전
1896년 빈대학교에서는《귀납과학과 철학, 특히 귀납과학사와 이론》1이라는 새로운 성격이 강의가 개설되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분야의 담당교수로 당시 프라하대학 물리학과의 실험물리학 교수로 유명했던 마하를 임명했다. 이후에는 볼츠만(1902), 슈퇴르(1906)등의 학자들이 후임으로 임명되며 귀납과학과 철학의 학문적 전통이 유지되었지만, 마하 및 볼츠만과 다르게 슈퇴르는 심리학자였던 탓에 원래의 특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약화되었고, 그 전통은 슈퇴르의 강의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활성화되었다. 이 무렵에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젊은 과학자들의 비공식적이지만 정기적인 모임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는데, 이는 1907년부터 1912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나중에 '빈학파'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학자들로, 수학자 한, 물리학자 프랑크, 사회학자 노이라트등이 있었다. 이들은 당시 복잡했던 시대상황에 대해 많이 논의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과학철학의 문제들을 다루었다. 이들 세사람은 마하를 중심으로 싹텄던 논리실증주의의 출발에서부터 1차세계대전 이후 빈학파의 성립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과학철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런 점에서 논리실증주의의 제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차세계대전 이전의 마하를 중심으로 한 논의를 알아보는 것이 적절하다.
1.2 빈학파와 비트겐슈타인
1918년 1차대전이 끝나고, 1922년 빈대학은 귀납과학의 철학 담당 교수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슐릭을 초비했다. 여기에는 일찍이 마하의 실증적 과학철학 논의에 첨여했고, 마침 1921년부터 빈대학 수학과 교수로 있었던 한의 적극적인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슐릭의 등장은 다시 빈 학계에 과학철학의 논의를 활성화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빈학파에는 두 종류의 중요한 토론 모임이 있었다. 첫번째는 1924년 슐릭의 제자였던 바이스만과 파이글이 슐릭에게 제안하여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가진 토론 모임이다. 참석자들은 스스로 이 모임을 '슐릭 모임'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름만큼 슐릭은 자연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학자였을 뿐더러 유일한 철학과 교수였기 때문에, 목요일 토론에서 자연스럽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번째는 한과 노이라트를 중심으로 마하의 학문적 입장에 관심을 품었던 자연과학자와 철학자들이 결집한 전문적인 학자들의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당시 프라하대학에 재직하던 프랑크까지 자주 참석했을 정도로 활발했다. 목요일 모임에 참석했던 슐릭의 제자들이 학문적으로 성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 모임은 목요일 모임과 하나로 합쳐졌다.
그외에 1926년 슐릭이 라이헨바흐2의 초대로 카르납을 빈대학 조교수로 초빙한 사건도 중요하다. 카르납은 이후 1931년 프라하대학의 자연과학부 교수로 이적하기 전까지, 토론 모임에서 슐릭과 학문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빈학파, 즉 논리실증주의의 핵심이론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슐릭 중심의 '모임'이 '빈학파로' 불리게 된것은 1929년부터이다. 그 당시 노이라트를 중심으로 슐릭 모임의 핵심 구성원들은『과학적 세계관. 빈학파』라는 팸플릿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모임에 빈학파라는 명칭을 붙였다.3
논리실증주의 논의에서 마흐 못지 않게 늘 거론되는 중요한 학자가 비트겐슈타인이다. 모임의 구성원들은 이미 개별 접촉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을 높이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1924년부터는 논리철학논고에 관하여 의견을 발표했으며, 1926-27년에는 논리철학논고를 꼼꼼히 독해, 검토하기도 했다. 물론 논리실증주의자들이 논리철학논고에 나타난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논란이 많지만, 대체로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논리철학논고에 나타난 반형이상학적 태도와 철학을 '언어비판'으로 파악해서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이 이를 위한 기준의 제시라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공감했다. 이는 빈학파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이 '과학적 세계관' 말미에 아인슈타인, 러셀과 더불어 비트겐슈타인을 그들의 사상적 지주로 내세운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실증주의에 전적으로 동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트겐슈타인은 이후 그들과 차이를 확인하고 사상적 결별을 선언했다. 그러나 빈학파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를 통해 자신들의 새로운 학문적 신념을 공고히할 수 있었다.
2. 논리실증주의의 이론적 토대와 내용
러셀, 비트겐슈타인, 에이어, 카르납 등에 의해 주창된 논리 실증주의를 다음의 한 문장으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 "경험적 대상을 다루거나 논리적 동어반복을 언급하는 진술들만이 의미를 가진다." 이와 같은 주장은 논리 실증주의를 발전시킨 몇가지 전통과 함께 이해할 수 있다.
2.1 반형이상학
19세기 독일 관념론이 드러낸 철학의 성격은 과도하게 사변적이었고 독단적이었다. 이러한 사변적 철학은 가장 일반적인 원리에 대한 앎을 추구하고, 세계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철학적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런 사변적 철학은 반실재적일 뿐더러, 자신의 사상을 유추와 시적 언어를 사용해 표현함으로써 대단히 난해하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따라 당시 학계에는 반형이상학적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컨대 콩트의 실증주의가 대표적이다.4 실증주의는 사변적 철학 및 형이상학에 대한 부정이라 볼 수 있다. 한편 19세기의 반형이상학적 경향은 실증주의 말고도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무엇보다도 아인슈타인의 경험주의적 과학은 독단적 사변이 아닌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논리실증주의의 과학적 경향을 강화해주었다.
마하에서부터 시작된 빈학파의 논의를 논리'실증주의'라고 부르는 것또한 근대 자연과학의 방법과 성과의 적극적 수용과 반형이상학적 성격때문이다.5 논리실증주의는 과학에 관심을 가진 철학자들과 철학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의 협동적인 노력을 통해서 탄생했다. 이들은 물리과학이 행하는 주장 및 가설이 실험과 관찰이라는 객관적인 테스트를 통해 객관적인 지식의 집합체로 성장하는데 반해서, 형이상학이 개진하는 발언들은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즉 경험적 방법에 근거한 실증성과 논리성을 가진 믿을만한 논리적 지식인 과학이 인식론적으로 가장 우위에 있는 학문이며, 따라서 철학은 세계에 대한 설명은 과학자들에게 넘기고, 과학적인 개념(시간·공간·물질·에너지·양자등)의 의미를 명료화하고, 과학적 명제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 등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자들은 시인이나 문인들이나 쓸 감정적 언어가 아니라 명석판명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예컨대 이전의 사변적 철학에서 보편적인 도덕적 지침을 제시하려고 시도한데 비해,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도덕적 규칙이 지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반형이상학적 경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후술할 의미검증이론이다.
2.2 경험주의
반형이상학의 경향은 '언어의 논리적 분석을 통한 형이상학의 제거'로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논리실증주의는 논리적 분석과 자연과학을 기반으로, 참된 인식을(또는 자연세계의 진리를) '의미있는' 경험에서 찾는다. 예를 들어 경험론자였던 흄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사물들 간의 인과성을 확신할 수 없다. 즉 'A가 B의 원인이다'라고 하는 것은, 경험상 예측하고 잠재적 사실로 가정할 뿐이지, 실제로 감지될 수 없는 부분에 불과하다. 논리 실증주의는 이로부터 영향을 받아 의미있는 진술들의 범위에 경험적 대상들과 논리적 진술들을 허용하였다. 흄과 다르게 논리적 진술들을 허용한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 점을 거론할 수 있다:
1. 논리적 진술들을 허용하여 과학에 있어서의 연역적, 귀납적 추론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2. 논리적 진술들을 배제하면 우리 언어에 있어서의 '또는', '그리고', '만일'과 같은 요소들을 전혀 설명할 수가 없었다.
3. 세계에 관한 인식의 기본 요소는 사물들의 연쇄로 구성되지, 사물 하나로는 구성되지 않아보였다. 예를 들어 거미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면 우리는 거미가 어떤 색인지, 거미가 어디에 있는지, 거미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등 거미과 관련된 사물들에 관해서도 이야기해야만 한다.6
2.3 새로운 논리학
논리실증주의는 논리학과 경험주의의 결합이다. 그러나 경험주의와 논리학이 서로 연결되기에는 전통적으로 너무 다르다. 경험주의는 세계에 관한 경험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게 내세우지만, 논리학은 논리규칙에 관한 학문으로서, 경험주의의 출발점인 세계와 자연에 대한 경험과는 무관하다. 즉, 여기서 말하는 논리학이란, 전통적 의미의 논리학이 아니라, 19세기에 크게 발전해 새로운 과학혁명을 이끈, 즉 자연세계에 관한 경험과 이 구체적 경험을 기술할 수 있는 새로운 논리체계이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논리체계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등의 그것이다.7
이들의 논리학에 따르면, 가장 복잡한 논리적 진술들도 결국에는 정말 단순한 논리적 명제들의 합으로 치환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 언어의 기본 골격이 논리학에 있다는 점만 인정된다면, 가장 복잡한 일상 언어도 가장 단순한 명제들의 합을 변수로 가진 일종의 함수로 간주할 수 있을 듯 보였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의 임무는 그 함수에 들어갈 적절한 상수를 찾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식의 발상은 주로 러셀 등 논리학자들의 몫이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초창기 자신들이 품었던 생각, 즉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사변적 철학의 비학문적 성격을 벗어날 결정적 돌파구를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8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4 의미검증이론
논리학과 경험주의의 결합단계에 이르러 논리실증주의자들의 논의는 반형이상학을 강조하는 마하의 실증주의적 전통을 뛰어넘어 슐릭과 카르납의 논의로 정교하게 발전했다. 특히 과학과 과학 아닌 것을 구분하는 기준 설정의 문제의 해답으로 검증가능성을 제시한 카르납의 견해는 논리실증주의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주목할만하다. 카르납에 있어서 유의미한 명제란 (1.) 참 혹은 거짓의 진리치를 갖는 명제이며 (2.) 직접적 관찰·경험을 통해 관찰명제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거나 (3.) 다른 단순한 명제로 환원될 수 있는 것=기록문장(검증을 요구하지 않는, 주어진 것을 직접 기록하는 문장)으로 연역될 수 있는 것" 이다. 카르납의 표현을 직접 인용하자면: “‘a’를 어떤 낱말이라고 하고, S(a)를 그것이 나타내는 기초문장이라고 할 때, ‘a’가 의미있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다음과 같다. (i) ‘a'에 대한 경험적 기준(empirical criteria)이 알려져야 한다. (ii) S(a)가 어떤 기록문장으로부터 연역될 수 있는가가 규정되어야 한다. (iii) S(a)에 대한 진리조건(truth condition)이 확정되어야 한다. (iv) S(a)에 대한 검증의 방법이 알려져야 한다.” 대부분의 형이상학적 개념들은 위의 요건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예를 들어, ‘원리’라는 용어가 그러하다.
요컨대 카르납에 따르면 어떤 명제가 의미있다는 것은, 그 명제가 형식에 있어서 참 혹은 거짓을 분명히 할 수 있는 논리적(분석적) 명제이거나,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 진위를 구분할 수 있는(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경험적) 명제라는 것이다. 즉 "(1.) 분석적 혹은 자기모순적이거나-그형식에 의해 논리적으로 그 진위가 결정되는 분석적 문장인가? (2.) 경험적 테스트가 가능한 문장인지의 여부-경험적으로 참 거짓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가?"가 어떤 문장의 의미여부, 참 또는 거짓 여부의 기준이다.
이렇게 빈학단의 논의에서 진술의 의미여부를 의미의 검증기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다. 구체적으로, 이 의미검증이론은 논리실증주의의 입장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론이라 볼 수있다. 카르납은 자신의 분석을 토대로, 철학을 과학논리학, 즉 과학의 개념, 명제, 증명, 이론에 관한 논리적 분석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기준에 따른다면, 형이상학적 명제를 포함하여 모든 규범 철학, 가치철학, 윤리학, 미학 등의 명제는 무의미한 사이비 명제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철학은 종교, 도덕, 미학적 주장 등을 논의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부적합하다.9 카르납에 따르면: “이 명제들은 분석적 명제를 주장하려 하지 않으며 경험과학의 영역에 속하지도 않으므로, 어떤 적용의 기준도 구체화되지 않고, 의미를 갖고 있지 않는 낱말을 채용하게 되며, 또한 분석적(혹은 모순적) 명제나 경험적 명제가 산출되는 방식으로 의미있는 낱말과 결합하지 않는다.” 결국 어떤 명제가 고찰되고 논의될 필요가 있는 유의미한 명제인가 아닌가는 그 명제가 관찰 경험을 통해 검증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2.4.1 강한 검증가능성
이는 초기 논리실증주의자 슐릭, 카르납, 노이라트 등이 제안한 검증원리로서, 결정적 검증성(conclusive verfiability)이라고도 부른다. 이에 따르면 경험에 의해서 결정적으로 검증되는 명제, 즉, 현재의 지각으로 직접 검증할 수 있는 기록명제나 관찰명제로 환원할 수 있는 명제만이 인식적으로 의미있는 명제이다.
2.4.2 의미검증이론의 문제점
논리 실증주의는 여러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가장 중대하고 유명한 문제는 논리 실증주의가 그 스스로 정당화되기 힘들어보였다는 데에 있었다. "경험적 대상을 다루거나 논리적 동어반복을 언급하는 진술들만이 의미를 갖는다"라는 논리 실증주의의 주장은 그 자체로는 경험적 진술인가, 아니면 논리적 진술인가? 이 주장은 언어의 특정 사용에 관한 문장이므로 경험적 진술이라고 보기엔 힘들다. 또한 이 주장이 'A=A'와 같은 논리적 진술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명백하다. 따라서 이 주장은 그 둘 중 어떤 것으로도 간주하기 힘들어보인다. 이처럼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은 그들의 원리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리 실증주의에서 이루어진 여러 복잡하고도 쓸모있어보였던 언어분석들에도 불구하고, 그 분석의 지침이 되었던 논리 실증주의의 주장이 정당화되지 않았으므로 그 분석들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기가 곤란했다. 즉 귀납적 방법으로 과학의 이론이나 법칙은 성립되지만, 보편진술의 형태인 이론이나 법칙의 진리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검증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논리실증주의의 주장은 과학이 이론 체계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문장들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판정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특히 보편명제로 표현되는 과학적 법칙을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난점이 발생한다. 예컨대 “모든 사람은 죽는다”, “모든 물체는 열에 닿으면 팽창한다”와 같은 일반명제, 미래에 관한 명제, 과거에 관한 명제, 타인의 마음에 대한 명제, 감각의 유사성에 대한 명제마저도 과학에서 배제해버린다. 실질적으로 그들은 형이상학을 제거하려는 열망으로 인해, 형이상학과 함께 과학도 없애 버린다.
이외에도 논리 실증주의에는 여러 문제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거론할 수 있다:
1. 유아론의 문제 : 논리 실증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감각 경험이라고 할 때, 나의 감각 경험은 다른 사람의 감각 경험과 그 성격이 일치하는가?
2. 원자 명제의 문제 : 세계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명제들을 과연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가?
3. 논리 체계들의 문제 : 논리 실증주의에서 사용되는 여러 논리적 도구들 중에, 완전히 성격이 다른 논리 체계를 바탕으로 한 도구들이 존재한다면 어떤 기준을 통해 더 나은 논리 체계를 선택해야 하는가?
2.4.3 약한 검증가능성(확증가능성)
논리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의 유화된 변형인 논리적 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의 주장이다. 즉 후기 카르납, 라이헨바하, 에이어, 헴펠 등이 제시한 약한 의미의 검증가능성의 기준으로서, 이것은 확증가능성의 기준(criterion of confirmability)이라고도 부른다. 에이어에 따르면: “강한 의미의 검증가능성에서는 하나의 명제는 오직 그것의 참됨이 경험에 의해 결정적으로 입증되는 경우에만 검증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약한 의미에서는 그것은 경험에 의해서 개연적(probable) 확인이 가능한 것이면 검증가능한 것이 된다.” 즉 어떤 명제에 긍정적인 증거가 몇이라도 드러나면 그 명제는 의미있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확증가능성의 원리는 확실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의 확실성’만을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확증이란, 이론의 정당화를 위한 테스트 과정에서 가설에 대해 유리한 증거나 증거상의 지지가 발견된 경우를 말한다. 확증은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서 얻어진 경험적 자료(증거)를 토대로 한다. 이는 귀납적 방법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유용한 증거가 가설에 부여하는 지지의 강도인 확증도는 귀납적 확률로 표시된다. 확증가능성을 통해서 강한 검증가능성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과거 사실에 대한 명제, 타인의 마음에 대한 명제, 미래에 관한 명제도 과학적 적합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확증가능성에 따르면 과학적인 법칙을 포함한 일반명제들은 그것에서 유도할 수 있는 직접명제들에 의해 확증되기 때문에, 과거는 간접적인 검증을 허용하기 때문에 유의미하며, 타인의 마음은 그의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확인가능하며, 미래또한 기다림을 통해 확인가능하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형이상학적 명제들은 그것의 확증을 위한 증거나 그것에서 유도된 직접명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허나 확증가능성이란 너무 느슨한 기준이다. 관찰적 사실에 의한 확증을 통해, 이론은 개연적인 것이 될 뿐이지, 결코 확실한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증가능성의 기준에 근거하자면, 점성술이나 역술가의 주장은 물론 어떠한 횡설수설이라도 모두 과학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들도 그 정도가 낮을 수는 있겠지만 확증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2.5 통일과학의 이상
카르납은『세계의 논리적구성』에서 '구성이론'을 제시해 경험세계에 대한 논의들의 논리적 구성가능성을 모색했다. 이어서 출간한『언어의 논리적 통사론』과『철학과 논리적 통사론』에서는 세계의 논리적 구성을 위한 '논리적 통사론'을 제시한다. 이는 논리실증주의가 기대했던, 특히 노이라트가『과학적 세계관』에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던 빈학파의 이상에 대한 실현계획을 구체화한 것으로서, 지식을 경험을 통해 정당화함으로써 형이상학을 위시한 독단적인 주장들로부터 학문의 지위를 빼앗고, 모든 학문의 기초를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의 방법을 따라 하나의 단일한 학문적 체계로 묶는 '통일과학'을 위한 이론이다. 이 통일과학운동은 과학주의의 대표적 예시라 말할 수 있다.10
2.5.1 논리실증주의와 과학주의
카르납에 따르면, 과학에는 한계가 없어 무제한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또한 헴펠은 과학이 예측과 설명, 그리고 통제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우리 시대는 과학과 과학적 기술의 시대라고 종종 일컬어진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자연과학자들에 의해서 이룩된, 보다 최근 들어서는 심리학과 사회학의 영역에서 이룩된 지난 몇 세기 동안의 진보는 우리의 지식을 확장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였으며, 과학적 통찰의 실천적인 적용은 자연의 힘과 인간의 정신을 통제할 척도의 증가를 가져왔다.”
이런 점에서 헴팰은 과학이 인간에게 혜택을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지식과 그것의 응용은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무서운 재앙의 위협을 상당한 정도로 경감시켜 준다. 그것은 삶의 물질적 수준을 높여 주었다...또한 과학은 우주 공간으로의 탐험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과학의 성과는, 과학의 방법이 다음 세가지 이유에서 객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 과학은 관찰이라는 의심할 수 없는 토대를 가진다.
2. 관찰된 특수한 사례들로부터 보편적인 법칙들을 일반화할 수 있는 귀납이라는 정당한 방법을 가진다.
3. 과학의 설명과 예측은 타당한 논리적 구조를 가진다.
2.5.1.1 과학주의의 문제점
과학주의에 의하면 오직 과학만이 합리적인 것이다. 따라서 합리성도 이제 전적으로 과학적 합리성이 되고 만다. 과학이 아닌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지적인 활동에 포함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과학적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얻어진 것들은 지식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된다. 이처럼 과학주의는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 또한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해결되어야 할 것으로 여기게 된다. 급기야 과학주의는 과학을 맹신의 대상으로 삼고 과학 이외의 것들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2.5.2 논리실증주의 과학철학의 성격
철학의 역사에서 과학은 늘 중요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논리실증주의는 자연과학을 중요한 한가지 주제로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과학철학'이라는 철학의 한 분야를 가능케 했다. 1920년대부터 4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논리실증주의는 사실 단순한 철학적 사조라기보다 철학과 과학의 협동에 의해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본인의 작업들에 관해 보다 유용한 언어를 얻기 위해 논리 실증주의에 동참했고, 철학자들은 과학의 활동들에 자극을 받아 철학도 일종의 과학으로 만들기 위해 논리 실증주의에 동참했다. 실제로 논리 실증주의에서의 중요한 그룹이었던 '비엔나 학파'에는 철학자들과 더불어 다수의 과학자들이 참가하고 있었다. 그 그룹에서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다같이 모여서 철학을 논리학으로 환원하는 데 힘을 모았던 것이다.
논리 실증주의는 비록 실패하였지만 과학의 성과들을 외면하지 않고 철학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이렇게 논리실증주의가 과학의 형식적 측면에 관련된 논의를 전개했다는 점에서 논리실증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과학의 형식적 측면을 다루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과학철학은 급격하게 발전했다. 포퍼, 핸슨, 퍼트넘, 콰인, 쿤 등의 주장들은 근본적으로 논리실증주의 과학철학을 비판하면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 줄여서 '귀납과학의 철학'
- 라이헨바흐는 일찍이 빈학파와 관심이 유사했으나, 독일의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베를린학파를 결성했다. 그러나 베를린학파는 활동기간이 너무 짧았고 빈학파와 입장도 유사해서 주로 빈학파에 곁들여져서 거론된다.
- 당시 노이라트가 주도하고 한과 카르납이 검토해서 공동명의로 발표했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슐릭의 제자 파이글과 바이스만이 노이라트의 초고 작성에 깊이 관여했다는 증언도 있다.
- 콩트가 말하는 실증주의란, 철저히 관찰가능한 물리적 대상에 관한 것으로, 근대 자연과학의 방법이나 성과를 토대로 성립되었다. 이는 명백한 사변적 철학 및 형이상학에 대한 부정이라 볼 수 있다.
- 그러나 실증주의라는 용어외에 콩트와 빈학파간의 공통점은 없다. 오히려 두 입장을 구분짓게 만드는 결정정 차이점이 있는데, 이는 각 하문간의 관계에 관한 입장에서 잘 드러난다. 콩트의 실증주의에서 실증적 단계의 학문들 간의 위계는 실증과학(즉 사회학)을 확립하는데 기여했지만, 그렇다고 실증적 단계에 있는 학문들 간의 통합을 논의하지는 않는다. 이와 달리 빈학파는 '통일과학'의 이념을 그들의 핵심 주장으로 내세운다.
- 즉 거미가 어떤 색인지는 이야기할 수 있어도 아무 색깔도 아무 위치도 없는, 즉 아무 속성도 없는 거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세계에 관한 우리의 인식과 표현의 기본 요소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들의 연쇄이다. 따라서 사물들의 연쇄를 구성하는 '그리고', '또는'과 같은 논리적 진술들도 의미있는 진술에 허용되어야만 했다.
- 러셀은 새로운 논리학이 기존의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이끌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을 제시할 것으로 확신했다. 여기서 새로운 논리학의 출현은 단순히 하나의 논리체계가 생겨났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논리적 진술은 동어반복의 분석적 진술로 필연적으로 참이지만, 논리적 진술의 본질은 논리적 형식과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참으로 받아들여진 세계에 관한 경험적 진술들은 논리적 형식과 구조에서 학문적 성격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세계에 관해 언어로 기술된(진술된) 독단적인 사변철학은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언어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것이 논리철학논고의 서문에서 러셀이 이 책에 대해 "어떻게 해서 전통적 철학과 전통적 해결 들이 기호체계의 원리들에 대한 무지와 언어의 오용에서 발생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라고 썼던 이유이다.
- 그러나 논리 실증주의가 문학, 윤리, 사랑 등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과학주의라고 보기에는 문제점이 있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저런 극단적인 주장을 펼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논리 실증주의는 과학의 언어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사조였다. 이는 논리 실증주의로부터 배제된 특정 영역들이 과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주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할 뿐, 그것들이 인간의 삶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물론 과학이 아닌 것을 경시하는 태도가 몇몇 논리 실증주의자에게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논리 실증주의자들이 더 많았다.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이 그랬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논리철학논고의 유명한 언급은 흔히 과학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방진 발언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문제들보다 삶의 문제들, 삶의 형식들이 훨씬 중요하다고 간주했다. 위 언급은 인간 인식, 인간 표현의 한계에 대해 우리가 숙고해야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표현들이 과연 정당한지에 관해 숙고해야한다는 발언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 외에도 에이어 등의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과학이 아닌 것을 존중하였고, 그것들이 다만 과학과는 다른 형태로 주장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논리 실증주의가 극단적인 과학주의를 함축한다는 주장은 많은 점에서 사실이 아니다.
- 그렇다고 '논리적 통사론'이 단지 과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철학의 방법론으로 제시된 논리적 통사론은, 이는 언어로 이루어진 논의에 적용되는 것으로서, 당연히 통사론이 적용될 수 있는 언어적 표현에도 유효하다. 이른바 언어분석철학이 그것이다.
<칼 포퍼>
. 포퍼 사상의 기초 : 비판적 합리주의
경험주의의 전통에 서 있는 포퍼는, 지식의 증대를 촉진하기 위하여 주장들을 명료하고 엄격하게 검토할 것을 요구한다. 포퍼는 이러한 자신의 입장을 가르켜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라고 명명했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우리의 삶과 실천이 비판적 이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판적 이성은 독단적 이성과 대립된다. 독단적 이성이 이성의 절대적 확실성을 주장하는 데 반해, 비판적 이성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이성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비판적 합리주의는 객관적인 진리를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회의주의를 용인하지 않으며,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상대주의도 거부한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판적 합리주의는 독단주의와 회의주의라는 양극단을 모두 거부하고, 이성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오류를 제거함으로써 우리가 진리로 점차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주장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요컨대 비판적 합리주의는 이성-우리의 일반적인 지적 능력-과, 이성적 태도-나름대로의 합당한 근거가 있을때만 수용함-를 견지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과학이란 이성적 활동의 과정이며 그 결과로서의 합리적 지식체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포퍼는 다양한 인간활동 가운데 '과학적인' 활동을 가장 높게 평가했다. 왜냐하면 포퍼에게 있어서 과학은 가장 객관적이고,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그 덕분에 우리는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은 인식론적으로 가장 우위에 있는 학문이다. 흥미롭게도 과학에 대한 이런 관점은 그의 주된 비판대상들이었던 논리실증주의자들과 동일하다. 그렇지만 포퍼는 논리실증주의자들보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구축된 지식체계는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되며, 새로운 탐구의 길은 어느 때든 열려 있어야 한다. 또한 논리실증주의자나 비트겐슈타인과 다르게 포퍼는 철학의 고유한 문제가 존재함을 인정했다. 다만 철학의 문제는 항상 철학 외부로부터 생기며, 철학의 문제를 철학 속에서만 찾는 철학은 마치 근친 교배처럼 퇴행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적 사고방식이 그의 반증주의와 열린사회론이 기초가 되었다 볼 수 있다.
0.1 논리실증주의 vs 포퍼
같은 주제에 대한 논리실증주의와 포퍼의 입장차를 다음과 같이 도식화해볼 수 있다:
1. 과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 논리실증주의 : 과학의 구조 vs 포퍼 : 과학의 성장. 과학의 구조를 밝히는 것만으로 과학을 이해할수 없다. 과학이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나가는지를 밝혀야 한다.
2. 과학적 탐구에서 우리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 논리실증주의 : 사실과 관찰 vs 포퍼 : 문제
3. 과학적 탐구의 기본개념단위는 무엇인가? - 논리실증주의 : 기록진술 vs 포퍼 : 기본진술. 가설로부터 연역된 경험적으로 반증가능한 명제(잠재적 반증자)
4. 우리는 과학이론에 어떻게 도달하는가? - 논리실증주의 : 귀납 vs 포퍼 : 추측과 반박
5. 지식의 굳건한 토대가 있는가? - 논리실증주의 : 기본사실(기록진술) vs 포퍼 : 토대는 없음
6.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점은 무엇인가? - 논리실증주의 : 검증원리, 확증원리 vs 포퍼 : 반증원리
1. 포퍼의 과학철학
1.1 귀납주의 비판
포퍼는 보편진술의 형태인 과학적 이론이나 법칙의 진리는 귀납적으로 검증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예컨대 우리는 "모든 백조는 희다"는 것을 결코 검증할 수 없다. 흰 백조를 아무리 많이 관찰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원칙적으로 단지 확증된 관찰의 유한한 수를 늘려나가는 것일 뿐인데, 저 보편진술은 무한한 경우의, 즉 모든 백조를 가리킨다. 따라서 귀납원리의 참을 정당화하기 위해선 또 다른 귀납적 추론을 사용해야 하고, 그 귀납적 추론을 정당화하려면 또 다른 귀납적 추론을 사용해야 하고.. 이런 과정이 무한하게 계속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과정은 언제나 유한한 수의 사례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떤 보편 진술(가설)이 유한한 수의 입증을 얻었을 때, 그 가설이 참일 확률은 0%이다.
이처럼 '귀납적 방법'은 하나의 신화이며, 많은 논리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결코 정당한 방법, 혹은 과학의 특징이 될 수 없다. 포퍼에 따른다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추측과 반박'의 방법'이다. 즉 오류를 범하기 쉬운 인간이 무한한 미지의 세계에 접근해 가는 유일한 방법은 실수로부터 배우는 시행착오의 방법뿐이라는 것이다.
1.2 구획의 문제
포퍼 이전의 과학철학에서는 '과학이론이 언제 참이 되는가?' 라는, 올바른 과학이론이 갖춰야할 자질이 주된 문제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포퍼의 문제의식은 다름아닌 '구획기준의 문제', 즉 '과학이론이 가지는 과학적 특징 혹은 지위에 대한 기준이 있는가?'에 있었다. 포퍼의 글을 인용하자면, 과학이론의 자질문제(귀납의 문제)는 흄의 문제이며, 구획의 문제는 칸트의 문제이다:“우리로 하여금 경험적 과학과 형이상학 체계, 또한 수학과 논리학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기준을 발견하는 문제를 나는 ‘구획의 문제’라고 부른다. 이 문제는 흄에게 알려졌었고, 그는 이것을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다. 칸트에 있어서 이 문제는 인식론의 중심문제가 되었다. 만일 칸트를 좇아서, 우리가 귀납의 문제를 흄의 문제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구획의 문제를 ‘칸트의 문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그밖의 거의 모든 인식론의 문제들의 원천이 되는- 가운데 나는 구획의 문제가 더 근본적인 것으로 생각한다.”(Popper, 1959,p.34)
포퍼 이전까지의 상식은, 과학은 관찰 및 실험된 사실들을 일반화하는 귀납학문으로서, 이 귀납법이 과학을 과학 아닌 것과 구별시키는 구획 기준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구획기준의 문제는 크게 논의될 바가 없었다. 그러나 앞서 알아보았듯이, 귀납주의의 검증가능성의 기준은 문제가 많다. 포퍼는 흄의 전통을 따라 타당한 귀납 추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더 나아가 귀납 추리가 과학의 구획 기준의 문제와 아무런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크게 4가지 이유에서 구획의 기준이 될 수 없다:
1.유의미성의 기준이 갖는 반형이상학적 책략 : “’의미없는’, ‘무의미한’이란 말은 어떤 경멸하는 듯한 평가를 시사하고, 시사하기 위한 것이다. 실증주의자들이 실로 달성하고자 했던 것은 분명히 성공적인 구획구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형이상학의 결정적인 전복과 근절인 것이다.”
2. 유의미성의 기준은 귀납적 과학관에 기초 : 유의미성의 기준은 귀납논리라는 기준과 일치한다. “그들은(현대 실증주의자들은) 경험에 대한 기본적(혹은 원자적) 진술로 , 즉 ‘지각의 판단’ 혹은 ‘원자적 명제’ 혹은 ‘기록문장’으로 환원될 수 있는 언명들만을 과학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자 한다. 구획의 함축된 기준은 귀납논리에 대한 요구와 동일하다는 것이 분명하다”(Popper, 1959, p.35)
3. 귀납논리는 이미 흄에 의해서 논리적 정당성이 무너짐
4. 유의미성의 기준은 형이상학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마져 무의미한 것으로 제거해 버리게 됨 : 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을 근절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그것과 함께 자연과학마져도 근절해 버린다. 왜냐하면 과학적 법칙도 역시 논리적으로 경험에 대한 기초적 진술로 환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Popper, 1959, p.36)
즉 포퍼에 따르면, 제대로된 구획기준은 형이상학을 전복하려는 등의 이념적 책략에서가 아니라, 경험과학에만 그 학적목표를 한정하고 그것의 적절한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어 한다. 다시말해 의미있는 것과 무의미한 것의 기준은 과학법칙에 근거하되,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은 구별하여 다른 학문영역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흄에 의해 무너진 귀납논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인식론을 전개할 수 있어야한다.
1.3 반증가능성의 원리
포퍼는 귀납주의적 전통에 서 있는 검증 가능성과 확증 가능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과학과 비과학을 구별할 수 있는 새로운 구획 기준으로 '반증가능성의 원리(principle of falsifiability)'를 제시했다:“그 기준에 의하면, 진술 혹은 진술체계는 오직 그것이 경험과 충돌할 수 있는 것일 때에만 경험적 세계에 관한 정보를 전해준다. … 그것들이 조직적으로 시험될 수 있을 때, 말하자면 그것들이 (어떤 방법론적 결정에 따라서) 그것들에 대한 반박을 초래할 테스트를 받을 수 있을 때에 한해서이다.”(pp. 313-314) 이처럼 반증가능성은 어떤 귀납적 추론을 전제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의 영역을 존중함으로서 형이상학의 무의미성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검증가능성이 가지는 문제를 타파하고 구획기준으로서의 적합성을 가진다. 반증주의란 간단히 말해서 "경험과학의 체계는 경험에 의해서 반박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론으로 규정될 수 있다.1 즉, 한 이론이 과학적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완벽한 검증이나 귀납이 요구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에 모순되는 관찰을 추측할 수 있고, 그것이 경험에 의해서 반증될 수 있도록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1. 진술 : 검은 백조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백조는 하얀색이기 때문이다.
2. 반증 : 검은 백조가 1790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국의 박물학자 존 레이섬에 의해 학게에 보고되었다.
3. 결론 : 모든 백조가 하얀색인건 아니다.
이렇듯 포퍼에 따르면, 단 한가지의 반대사례만 있어도 반증될 수 있어야만 과학이론이다. 이는 일종의 후건부정식 논리구조이다. 하나의 관찰 사례가 결정적으로 검증하거나 확증할 수는 없지만, 후건 부정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반증할 수는 있다. 즉 이론의 반증은, 그 이론이 금지하는 기초 진술(잠재적 반증자)의 집합이 최소 하나 이상 존재하는 경우(= 잠재적 반증자의 집합이 공집합이 아닐때) 가능하다. 이 잠재적 반증자는 관찰을 기록하는 용어들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관찰진술이다. 즉 만약 잠재적 반증자가 참이라면, 그 이론은 관찰을 통해 거짓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술한 형식에서 (2.)가 (1.)의 잠재적 반증자라고 볼 수 있다.
1.4 가설-연역주의
기존의 귀납주의적 과학관에서는, 과학이 어떠한 이론적 선입견도 물들지 않은 순수한 관찰과 실험으로부터 출발하며, 귀납적 일반화에 의해서 가설이 세워지고, 그 가설이 다시 귀납적 절차에 의해서 검증됨으로써 법칙이나 이론으로 확립된다는 방법론을 지지했다. 즉 귀납주의는 가설 h가 참일 경우 특정한 관찰사례 O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관찰사례 O가 발생함을 관찰함으로써 가설 h를 검증하거나 확증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의 추론은 조건문에서 후건을 긍정함으로써 전건을 긍정하려는 시도이며, 전형적인 후건 긍정의 오류의 사례이다.2 이처럼 귀납적으로 가설을 입증하려는 것은 논리적 오류이다. 그러나 포퍼는 관찰사례가 발생하지 않음을 관찰함으로써 어떤가설이 참이 아님은 주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추론은 후건 부정의 형식으로서, 타당한 논리식이다. 이에 기반해 포퍼는 반증가능성 원리의 방법론적 토대로서 가설-연역주의, 혹은 가설-연역적 방법을 제시했다. 이 방법에 따르면 과학적 탐구는 관찰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착상한 가설에서 출발한다. 가설이 제시되고 나면, 연역적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도출, 예측하고 엄격한 테스트의 절차가 실행된다. 테스트에서 가설의 결함이 발견되면 다시 문제 상황으로 돌아가게 되고, 테스트를 통과하게 되면 그 가설은 방증 된 것으로 인정되어, 지금으로서는 폐기될 이유가 없으므로 잠정적인 이론의 지위를 얻게 된다. 이처럼 이론이 거치는 테스트의 과정과 엄격성의 정도, 그리고 이론이 그것을 얼마나 잘 견디어 냈는지의 여부가 여러 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에서 무엇이 가장 우수한 이론인지를 알려주기 때문에, 과학자는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는 사례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전복시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과학이 합리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 이를 도식화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문제제기 : 우리는 관찰명제가 아니라 문제상황에서부터 이론을 구성해나간다. ex : “왜 사과는 땅에 떨어지는가?”,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을 그리며 운동한다면, 태양과 행성 사이에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가?”, “인간의 유전형질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 부모에서 자식에게로 전달되는가?”
2. 새로운 가설의 제기 : 가설을 제기하는 과정은 어떤 논리적 추론의 과정이 아니다. 과학의 실제적 방법은 추측으로서, 그것은 대담한 아이디어, 정당화되지 않은 예상, 그리고 사색적인 발상 등 비합리적인 요소, 또는 베르그송적 의미에서의 창조적 직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 테스트 가능한 명제 연역(예측) : 가설이 시험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으로부터 테스트가능한 명제(기본명제 또는 기본진술)가 연역되어야 한다. 즉 이론체계는 그것으로부터 보다 낮은 보편성을 갖기 때문에 반증가능성을 진술들을 연역해 냄으로써 테스트된다.
4. 테스트 : 이론에 대한 참다운 테스트는 그것을 반증하려는 혹은 반박하려는 기도이다. 우리의 탐구방법은 우리들이 얼마나 옳았는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것을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반대로 우리들은 그것들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단칭진술인 기본진술이 반증됨으로써 그것이 연역적으로 도출되었던 보편진술로서의 가설 또는 과학이론이 반반될 수 있다.
5. 이론선택의 과정 : 이론이 반증되지 않은 경우에는 증거보강된 것으로 인정하며, 잠정적인 이론의 지위를 얻는다.
예시를 들어보자: 문제제기(눈이 없는 박쥐는 어떻게 부딪히지 않고 날 수 있을까?) → 새로운 가설의 제기(박쥐의 몸 안에 있는 특수한 장기가 그렇게 해주는 건 아닐까?) → 테스트 가능한 명제연역(만약 박쥐에 몸에 특수한 장기가 있다면 우리집 뒷산의 박쥐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 테스트(실제로 뒷산에 있는 박쥐 해부, 다른 동네에 있는 박쥐도 해부 등등..) → 이론 선택의 과정(이렇게 테스트 해본 결과 박쥐 몸 안에는 초음파를 만드는 장기가 있었다. 앞서 제시한 가설은 일단 증거가 보강되었으므로 당분간은 정설로 치자. 하지만 이 정설을 반박하려는 노력을 멈추지는 말자.)
1.4.1 긍정식에서 부정식으로
가설-연역주의는 관찰사례들로부터 법칙을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귀납적이지 않고, 관찰을 요구하는 결과를 예측하는 과정은 연역적이다. 그러나 가설을 이론의 지위로 상승시키기 위한 검증/확증이나 가설을 폐기하게끔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가설로부터 연역적으로 예측된 결과에 대한 경험적 관찰이기 때문에 경험주의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 점에서 포퍼는 놀랍게도 과학의 가설이나 진술을 긍정식이 아니라 부정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즉 포퍼에 따른다면, 과학적 탐구에서 말하는 진술은, 무언가를 허용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금지하는 것이다. 예컨대 '모든 생명체는 진화한다'라는 진술은 '포유류는 진화한다' '어류도 진화한다' 등등을 주장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진화하지 않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모든 진달래는 붉다'는 진술은 '진달래1이 붉다' '진달래2도 불다'와 동시에 '진달래이면서 붉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관찰 및 검증을 통해 어떤 가설이 참임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거짓임을 입증함으로써 반증, 폐기할 수는 있다.
1.4.2 반증가능성과 지식의 수준은 비례한다.
가설-연역주의에 따른다면, 역설적으로, 반증 가능성이 높을 수록(= 원칙적으로 쉽게 논박이 가능할 수록) 좋은 이론이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수준(보편성과 정확성)도 그만큼 높다. 반증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반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 이론이 높은 수준으로 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반증가능성이 큰 이론들이 전개될 수록 우리는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게 된다. 예컨대 진화론이나 상대성이론은 반증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진화론은 기본적으로 지구생명체들에 대한 탐구로 구성된 이론이기 때문에, 외계에서 지구의 것들과 완전히 다른 구조의 생명체들이 발견된다면 반증된다. 상대성이론은 빛보다 빠른 물질이 발견된다면 반증된다. 그러나 이 두 이론은 오랜 기간동안 반증되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합리적인 통찰들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미래에 이 두 이론이 반증될 경우에도, 이 두 이론의 합리성을 뛰어넘는, 보다 우수한 합리성을 가진 이론이 등장했다는 것이므로, 우리의 지식은 확장된다.
그리고 다음 4개의 명제를 통해 더 쉬운 예시를 들어보자:
1. 내일은 비가 오거나 오지 않을 것이다.
2. 내일은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던가, 아니면 눈이 올 것이다.
3. 내일은 비가 올 것이다.
4. 내일은 5시간 동안 비가 올 것이다.
여기서 1.은 반증불가능하다. 2.는 약간 반증가능하다. 3.과 4.는 상당히 높은 반증가능성을 가진다. 이처럼 진술의 경험적 내용은 그것의 반증가능성에 비례하기 때문에, 과학은 경험적 내용이 많은 진술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1.4.3 과학의 진보를 위한 진리의 확보에서 대담한 추측으로
반증주의에 따르면, 과학은 결코 진리를 확보할 수 없다. 가설은 반증될 수만 있을 뿐, 결정적으로 검증되거나 확증될 수는 없다. 과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보편법칙의 발견이나 참된 과학이론의 구성이 아니라, 가설을 반증하려고 계속 시도하는 것이다. 즉 참된 과학이론은 없지만, 좋은 과학이론은 있다. 이는 진리의 확보가 아니라 대담한 추측을 포함하는 이론이다. 대담한 추측이란, 주류 이론의 관점에서 부당한 비주류적 주장을 담고 있는 추측이다. 이는 잠재적 반증자들을 많이 포함한다는 점에서 반증가능성이 높다. 또한 좋은 이론은 제한조건이 많고(= 금지가 많고) 예외가 적어야 한다. 이 경우에는 수많은 제한조건중 단 하나만 반증하더라도 이론이 폐기 되기 때문에, 참일 가능성이 낮아 반증가능성은 높지만, 그 제한조건들은 철저히 보편적이고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증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좋은 이론이란 기존의 주류학설에 새로운 통찰을 던져줄 수 있음과 동시에, 반증가능성이 높으나 논리적 짜임새가 대단해 실질적인 반증이 어려운 이론이다. 반면 제한조건이 적고 예외가 많은 이론은 반증사례가 나타나더라도 이론이 폐기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포퍼가 말하는 과학의 진보란, 반증된 이론에서 아직 반증되지 않은 이론으로의 발전, 혹은 거짓된 이론의 제거를 통한 더 나은 상태로의 점진적 접근이다.
좋은 과학이론의 실례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들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그가 살았던 시대를 지배하던 뉴턴역학에 명백히 반대되는 비주류적 의견이었다. 이는 대단히 창의적인 사고실험과 가설의 제시로 구성된 이론이었으며, 또한 반증가능성을 기초로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제시하면서 만약 질량이 매우 큰 물체에 의해서도 빛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반증이 제기된다면 자신의 주장을 폐기하리라 공언했는데, 이는 1919년 개기일식 때 실제로 태양이 빛을 왜곡한다는 사실이 관측됨으로서, 주류 학설이던 뉴턴역학을 반증하고 새로운 주류의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반증될 수가 있다. 현대에도 빛보다 빠른 물질을 찾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1.5 과학과 철학, 과학이론(상대성 이론) vs 사이비 과학(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반증가능성의 기준에 따르면, 어떤 이론이 과학적이라 함은 어떤 경우라면 그 이론이 틀렸음이 밝혀질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예컨대 "명왕성에 지적인 생명체가 있다"라는 과학적 가설은 과학적이다. 왜냐하면, 이 가설은 명왕성을 탐사함으로써 거짓임을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비가 오거나 오지 않는다” 이 명제는 반증이 불가능하므로 사이비이다.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에 대한칸트의 명언은 사이비는 아니지만 반증이 불가능하므로 비과학적이다.
포퍼의 기준을 적용하면 형이상학, 인식론, 존재론 등은 분명코 과학과 구별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의미하지는 않다. 애매모호하게 기술된 몇몇 철학자들의 이론을 반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반증가능성이 거의 없는 철학이론들은 과학이론으로서는 나쁜 이론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은 오히려 많은 경우에 과학에 유익한데, 그것은 형이상학 등이 가설을 착상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포퍼에 의하면 형이상학은 철학 이외의 개별학문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따라서 과학과 형이상학은 서로 열려있는 관계이며 서로의 성과를 주고 받으며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구획의 기준은 당시 과학을 표방하던 마르크스의 경제학, 프로이트 및 아들러의 정신분석학 등의 사이비 과학임을 드러내 준다. 이 이론들의 공통점은 대단히 많은 입증사례가 존재하지만, 경험적인 사례들을 반증불가능한 이론으로 해석하려고 한다는 점이다.3 이들의 이론에 반하는 경제현상이나 인간행동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가령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서로 상반된 행동도 모두 동일한 동기가 적용된다. 프로이트의 경우에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충족되지 않은 성적인 욕구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고 보며, 아들러는 인간의 모든 행동을 열등감의 발현으로 보았다. 즉 타인을 돕는 행동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여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인간의 행동에 대한 설명과 예측은 절대로 틀릴 수 없다.4 정신분석학은 모든 현상을 자신들의 이론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반증이 불가능하다. 기존의 정신분석학적 이론과 상충되는 사례가 발견된다고 해도, 그것은 반증의 근거가 아니라 이론을 보강하기 위한 새로운 입증사례로 취급될 뿐이다. 따라서 철학적, 형이상학적 의미에서는 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과학적으로는 사이비이다.
마르크스의 과거에 대한 설명은, 많은 학문적 논란을 일으켜왔지만, 그 자체로는 나름대로의 논리성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는 과거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를 예측했으며, 그의 예측들은 분명히 경험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예측들 중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어난 적이 없다. 그리고 최초의 공산국가는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전근대적 국가였다. 자체 모순에 의해 붕괴된 자본주의 국가는 지금까지는 없으며, 앞으로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공산혁명이 일어나면 국가가 사라져야 하지만, 공산국가는 강력한 정치권력을 형성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이론은 그 근본부터 설득력을 상실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골자중 하나는, 재화 혹은 상품가치의 크기는 상품생산에 들어간 노동의 양으로 측정된다는 노동가치설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는 따라서 자본가들이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착취구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가치설은 이미 19세기 말엽, 카를 멩거의 오스트리아 학파에서 일어난 한계혁명에 의해 반증되었다. 오스트리아 학파에 따르면 재화 혹은 상품가치는 인간의 주관적 만족도의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예컨대 우리는 슈퍼에서 오백원주고 살 수 있는 라면을, 여행지에서는 몇천원의 비싼값을 치루고 사먹기도 하며, 다이아몬드는 관상용 이외에 실질적인 쓸모가 거의없으나 왠만한 생활필수품들보다 수백배 이상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공정과정을 거치는 상품들의 가격이 천지차이가 나기도 한다. 이처럼 재화 혹은 상품가치는 인간의 노동과 무방하다. 따라서 노동가치론을 붕괴시킨 한계효용설이라는 반증사례의 등장으로, 마르크스주의는 폐기되어 마땅한 이론이지만, 반증사례가 나타날 때마다 이론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됨으로써 폐기되지 않고 있다.
1.6 포퍼 과학철학에 대한 비판 : 뒤엠-콰인 명제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 과학관은 2가지 측면에서 큰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논리적 측면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포퍼의 과학관은 실제 과학의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포퍼는 반증 가능한 것만이 과학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과학에서는 반증 불가능하지만 자주 쓰이는 진술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확률을 진술하는 명제는 반증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확률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무한 시험 횟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블랙홀이 존재한다'와 같은 어떤 대상의 존재를 주장하는 진술도 반증이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반증주의 과학관의 가장 중요한 논리적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반증의 논리는 간단해 보인다. 이를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어떤 현상 O가 가설 H에 의해 연역적으로 도출되었다고 치자. 그런데 관찰을 통해 현상 O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경우 가설 H는 반증 사례에 의해 기각된다. 예컨대 '모든 백조는 하얀색이다'(H)에서 '한국의 백조도 하얀색이다'(O)라는 사실이 도출된다. 그런데 어느 날 진주에서 금색의 백조가 발견된다면, 가설 H는 기각된다. 하지만 이는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 우리가 본 것이 백조가 맞는지, 또 그것이 금색임은 확실한지 등을 따져야 한다. 즉 가설 H에서 사례 O가 나올려면 수많은 전제가 필요하다.5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반증되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 아니라 가설 전체라는 것이다. H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h1(우리의 판단능력)이 틀렸을 수도 h1(우리의 감각경험)가 틀렸을 수도 있다. 우리는 반증이 되었어도 정확히 어떤 가설이 틀렸는지 되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이것을 미국의 분석철학자 콰인은 '경험적 전체론'이라고 부르며 "경험의 법정에 서는 것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이론 전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처럼 반증의 시도대상은 이론 전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특정한 가설 하나만을 반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이론의 일부를 수정함으로써 언제든지 이론 전체를 살릴 방법 역시 논리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뉴턴의 행성 법칙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뉴턴의 행성 법칙을 통해 예측된 천왕성의 궤도는 당시 천문대를 통해 관측된 것과 오차 범위 이상의 큰 차이를 보였다. 이는 뉴턴의 이론이 반증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대다수의 학자들은 뉴턴을 계속 옹호하였고, 천왕성의 궤도 바깥에 새로운 행성이 하나 더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1864년 베를린 천문대에서 그 행성(해왕성)은 실제로 발견된다. 만약 뉴턴주의자들이 변칙 사례가 나오자마자 자신의 이론을 폐기했다면, 적어도 우리는 해왕성의 존재를 더 늦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6
1.7 요약
◆ 귀납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무한퇴행에 빠진다.
◆ 반증에 기초한 시험 절차는 귀납을 사용하지 않는다.
◆ 이론과 양립불가능한 관찰을 기술할 수 없다면, 그 이론은 진정 으로 경험적인 이론, 즉 과학적인 이론으로 간주될 수 없다.
◆ 입증은 위험한 예측의 결과일 때에만 가치가 있다.
◆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분 짓는 기준은 ‘반증가능성’이다.
◆ 이론구제용 협약주의적 책략은 과학적 지위를 파괴한다.
◆ 그러나 협약주의적 책략을 완전히 금지하는 포퍼의 권고는 역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2. 포퍼의 정치철학
포퍼는 젊은 시절 골수 공산주의자이자 정신분석학의 지지자였지만, 앞서 알아보았듯이 그 이론들의 불합리성과 사이비적 성격을 간파해낸 후에는, 하이에크, 미제스 등과 함게 몽펠르랭 소사이어티를 조직하는 등 자유주의자로 전향하여 자유주의 철학에도 어느정도 공헌을 하였다. 포퍼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과학철학을 기반으로 정치철학적 논변을 전개한다. 즉 그는 방법론적 일원주의자로서, 정치철학에도 과학철학과 같은 반증가능성의 원리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토대에서 탄생한 것이 그의 '열린사회론'이다.
2.1 열린사회론과 점진적 사회공학
포퍼의 열린사회론은 그의 과학철학의 인문학적 구현이라 평할 수 있다. 그것은 그 어떤 지배적인 견해에 대한 도전도 허용하는 사회이며 주술적 말장난이 아닌, 비판적인 합리주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논쟁의 사회이다. 포퍼는 합리적 비판과 토론을 통해서, 우리는 폭력이 아닌 이성적 방법으로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진적 사회공학'을 주장한다. 이 열린 사회의 모범은 '과학자사회'이다. 과학자사회는 과학자들이 반증과 검증과정을 통해 참을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옳은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이런 과학자사회에는 확실한 지식은 있을 수 없다. 설사 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잠정적일 뿐이다. 따라서 이 오류를 밝혀내고 이 오류를 제거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이처럼 포퍼는 과학적 방법에서 자유의 사회적 가치를 정당화한다. 사상의 자유, 토론의 자유, 비판의 자유의 시행과 착오없이는 새로운 혁신과 발전은 불가능하다. 지속적인 반증을 통한 지식의 성장과 진리로의 점진적 접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2.2 열린사회론에 대한 비판 : 포퍼는 과연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올바로 이해했는가?
엄밀한 의미에서 포퍼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몇몇 근본적인 개념들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으며, 그가 이상적으로 바라본 사회상은 좌파 사상인 사회민주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포퍼는 시장경쟁과 경제적 자유의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한다. 자유경제는 포퍼에게 있어 열린 사회가 아니다. 재화의 불평등은 경제적 권력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이 불평등은 경제적으로 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자유를 유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비판의 자유를 위해 약자들을 보호해야한다. 경제적 자유를 억제하여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실현할 경우 비로소 시장경제는 열린 사회에 합당해진다.7 포퍼의 열린 사회 사상은 강력한 '사회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자유시장에 대한 포퍼의 이해에는 문제는 많다. 시장의 기본원리는 경쟁이다. 경쟁에서 실패하면 퇴출된다. 이런 퇴출의 위험성 때문에 기업가들은 새로운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고 이를 시험한다. 이런 위험성은 시장을 무질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간섭 없이도 자율적으로 질서를 잡는 기능을 행사한다. 이런 위험성은 행동실수의 원인과 지식의 오류를 찾아내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려고 노력한다. 그 결과가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경제발전이다. 시장경제를 원리적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포퍼가 말하는 반증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긍정적이다. 시장경제의 결과적 평등을 위해 국가간섭이 필요하다는 포퍼의 주장은 열린사회론에 적합하지 않다.
경쟁에 대한 포퍼의 반감은, 그가 시장경제의 경쟁원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포퍼가 국가체제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시 된다. 국가의 본성을 살펴보자면, 기본적으로 우리는 국가 그 자체에 대해서는 반증을 요구할 수 없다. 또한 국가는 특정집단의 입장을 보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과학자사회에서 필요한 덕목인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국가에 대한 정당성 논쟁을 차치하더라도, 국가에게 열린사회를 관리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부당해보인다. 국가에 의한 전방위적 독점은 결코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어떤 경제적 불의보다 사악하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포퍼의 열린사회론은 시장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국가권력의 근본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포퍼의 시각도 문제가 된다. 포퍼에 따르면 열린사회가 반증과 토론을 통해 발전해나가는 정치적 원리는 민주주의이다. 경제에 대한 간섭도 민주적 입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포퍼에 따르면 의회가 제대로된 업무처리를 못해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집권당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고, 다음 선거때 새로운 의원들이 선출되는 것이 정치적 반증을 통한 오류의 제거 과정이다. 이처럼 포퍼는 민주주의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에 따르면 민주정치는 정치적 권력의 남욕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사회주의나 파시즘과 동등한 것으로 평가한다. 민주주의는 국가활동이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최종 판단 권한을 민주주의에 부여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어떠한 제약도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문제에 대한 자의적 판단이 가능하다. 따라서 포퍼의 주장과는 반대로 민주주의는 열린사회에 적합하지 않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그것이 반증이 불가능한 사이비 주장일지라도, 국민의 참여와 표결절차만을 거치면 무조건 실현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이고 전체주의의 소극적 발현이다.
2.3 유토피아적 사회공학 비판
포퍼는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도모하는 혁명에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이라는 독창적인 이름을 붙였다. 이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의 방법론은 플라톤적 접근법이다. 플라톤적 접근법은 일종의 목적론적 사고방식이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려면 먼저 목적을 설정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활동의 경우에도, 어떤 정치행위를 하기 전에 먼저 궁극적인 정치적 목적이나 이상국가의 모습을 정해야 한다. 이러한 플라톤적 접근법에 근거한 정치철학은,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등이 전개한 바가 있다. 이들의 정치철학의 공통점은 비타협적이고 급진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 전체를 재구성하려는 폭력적 혁명을 꿈꾼다.
그러나 포퍼는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이 이상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중앙집권을 요구하며, 독재로 흐르기 쉽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듯이, 특별한 목적을 두지않고 반증과 토론을 통해 점진적으로 더 나은 상태로 도약하고자 하는 점진적 사회공학에 근거해서 사회문제를 바라보아야한다. 이는 상대적으로 악용가능성이 낮고, 잘못될 경우 조정하기도 쉬우며, 보다 안정적이고 합의가 수월하다. 그러나 포퍼의 열린사회론도 결국 국가에 의한 통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적 사회공학과는 크게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반증'과 '토론'이 가능한 사회라는 '목적'을 설정하고, 현재 우리가 처한 경제상황을 닫힌 사회로 간주하며 조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2.4 역사주의의 빈곤
역사주의는 역사가 유기체적으로 전개되고 발달하며, 국지적 조건과 특이성이 역사적 사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와 정 반대에 있는 입장은 역사적 환원주의이다. 이는 엄격한 경험과학적 태도를 역사 관찰, 기록, 해석에 적용하는 것으로서, 이 경우, 역사는 개별적 사건으로만 존재할 뿐이며 사건 간의 연관, 요인 간의 상호작용, 역사의 발전 단계, 합목적적인 역사발달과 같은 추상적 개념이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
포퍼가 환원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것은 명확하지 않지만, 그는 자연과학적 인식론에 기반하여 신학적 역사관, 헤겔적 역사관, 마르크스적 역사관 등을 비판하고자 했다. 포퍼는 구체적으로 역사주의를, 역사 자체가 그 자체의 내재적 법칙에 의해 발전하고, 따라서 과거의 경향성이 미래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태도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마르크스는 그가 발견한 역사 발전의 법칙을 통해, 자본주의가 스스로 붕괴할 것이며 사회주의가 올 것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의 경제적 조직, 특히 물질적 교환의 조직인 하부구조가 모든 사회 제도, 즉 상부구조와 그것의 역사적 발전을 결정짓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부구조는 다시 그 사회의 생산력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마르크스에 따르면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자본주의 또한 봉건제와 동일한 방식으로 멸망하리라고 예측한 것이다.
포퍼가 지적한 마르크스의 가장 치명적인 실책 중 하나는 노동자 계급이 승리하면 반드시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할 거라는 예언이었다. 예컨대 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새 통치 계급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는데도, 마르크스는 이를 은폐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구성한다는 자신의 이론을 맹신한 끝에, 사회주의적 사회공학이나 정치체제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날 시 자연스럽게 구축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마르크스를 이어받은 러시아의 혁명가들은 그들이 당면했던 사회공학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며, 결국 사회주의는 붕괴하고, 실패하게 되었다. 물론, 다른 경우에는 이러한 일은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포퍼는 일어날 수 있는 사태에 대해 그걸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는 당면한 책임으로부터 먼 훗날으로의 도피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고 모든 가능성에 대한 비판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포퍼는 역사주의가 인간을 어쩔 수 없는 역사의 법칙에 끌려다니는 존재로 격하시키는, 일종의 신앙적 관점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포퍼는 인간이 수동적으로 끌려가야할 역사적 법칙이 없다고 반박한다. 인간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그릇된 결과를 교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여기서 포퍼가 말하는 반증가능성이란 논리적 반증가능성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가설이나 관찰한 데이터를 반증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기술의 발달에 달린 문제이므로, 반증가능성은 명제의 논리적 구조에 대해 논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지금 당장 인류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반증이 불가능한 진술들이라고 해도, 원칙적으로 반증이 가능하다면 과학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 P이면 Q이다 : 비가오면 땅이 젖었을 것이다.
Q이다 : 땅이 젖었다.
그러므로 P이다 : 그러므로 비가 왔을 것이다.
P이면 Q이다 : 모든 에메랄드가 초록색이라면 다음에 관찰될 에메랄드도 초록색일 것이다.
Q 이다 : 관찰된 에메랄드가 초록색이었다.
그러므로 P이다 : 그러므로 모든 에메랄드는 초록색이다 - 포퍼는 반증을 거부하고 재해석 등을 통해 그 이론을 구제하는 것을 협약주의라고 불렀다.
- 예컨대 사람을 빠트리려는 사람과, 그 사람을 구하려는 사람이 있을때, 아들러는 전자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하며, 후자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스스로에게 타인을 구할 수 있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기에 전자를 구하려 한다고 설명한다.
- '우리는 백조와 다른 새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의 색각은 정확해서 색깔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등.
- 후에 포퍼는 이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를 가설이 반증에 면역성을 얻게 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 포퍼는 경제적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으로 매우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노동시간(노동일수) 제한, 모든 노동자들의 강제적인 실업보험, 노동 무능력에 대비하기 위한 강제적인 산업재해보험, 모든 시민들의 강제적인 연금보험 등과 지주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한 법을 제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전통적 과학철학(논리실증주의/포퍼) vs 새로운 과학철학(쿤/파이어아벤트)>
오늘날 과학철학은 과학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과학철학의 모든 논제가 과학사적 사례연구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은 이제 상식에 가깝다. 과학철학자들은 누구나 과학사 연구에서 주어지는 경험적 자료를 토대로 과학의 실제 모습과 부합하는 과학상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이와 같이 과학사가 과학의 법칙과 이론을 평가하기 위한 평가기준의 원친인 동시에 증거라고 보는 입장을 '역사주의'라고 한다. 이 역사주의 과학철학은 1960년대 쿤을 비롯한 일단의 과학철학자들에 의해 확립되었다. 역사적인 정향을 지닌 이 철학자들은 전통적인 과학철학자들의 이론이 지닌 여러가지 가정을 반박하는 과학사적 사례를 제시했다. 이들의 '새로운 과학철학'은 과학을 인간의 활동으로 규정하고, 과학활동의 역동적 측면을 드러내고자 했다.
1. 전통적 과학상
전통적으로 우리가 과학과 과학자 집단에 대해서 가졌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즉 과학적 탐구가 어떤 가치있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으며, 과학은 이 목표에 다가가도록 이끌어주는 합리적인 수단으로서의 방법론을 가지고 있고, 그 방법론은 그 자체가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으며, 경쟁하는 이론들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평가하기 위한 테크닉을 제공한다는 것이 과학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였다. 과학적 방법론은 과학자들이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발견의 논리를 포함하며, 발견된 이론들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시할 수 있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은 이 방법을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이해관계에 치우침이 없이 적용시켜서 과학을 성장시킨다.
과학의 합리적 이미지에 대한 압도적인 인정은 근대 이후의 물리학의 위대한 성공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과학의 우월한 성취, 과학적 지식의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방법과 과학자 집단에 어떤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기의 과학철학자들은 이러한 이미지를 받아들여 실제의 과학이 그 이미지에 일치한다는 가정아래서 과학의 이론과 방법을 분석하고 재구성했다. 논리실증주의와 포퍼의 과학철학은 이러한 노력의 성과라 볼 수 있다. 그들의 과학철학은 과학적 지식의 객관성, 과학적 지식의 성장을 설명하기 위한 과학방법론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여겨진다.
1.1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소박한 귀납주의적 믿음
과학의 합리성을 믿는 전통적 과학철학의 배경에는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소박한 귀납주의'라는 믿음이 짖게 깔려있다. 이는 베이컨, 로크, 버클리, 밀, 마하로 이어지는 실증주의 전통으로서, 인식이나 이론으로부터 독립적인 중립적 지각이 가능하다고 믿음이다. 따라서 관찰은 현상의 직접적 기술, 과학의 기초로 여겨지며(논리실증주의), 이론은 객관적 관찰에 토대한 경험적 일반화로서, 관찰사실에 의해 검증 혹은 반증되는 것으로 정의된다.(포퍼)
귀납주의에 기초한 과학철학에 따르면, 과학은 세가지 원리에 의해 합당하다:
1. 과학은 관찰이라는 의심할 수 없는 토대를 갖는다.
2. 과학은 관찰된 특수한 사례로부터 보편적인 법칙을 일반화하는 귀납이라는 정당한 방법을 갖는다.
3. 과학의 설명과 예측은 연역법에 의해서 보증되는 논리적 구조를 갖는다.
또한 과학의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1.) 관찰과 실험, (2.) 귀납적 일반화, (3.) 가설에 대한 검증의 시도, (4.) 증명혹은 반증, (5.) 지식의 성립."
1.2 논리실증주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과학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주로 논리적 분석을 채택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과학철학이란 곧 '과학의 논리학'이다. 논리학을 도구로 한 그들의 분석은 주로 과학적 명제와 논증의 ‘내용’보다는 그것의 형식에 집중한다. 즉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특정한 과학 이론보다는 모든 가능한 과학적 설명의 논리적 패턴(증거를 진술하는 언명과 이론적 결론 사이의 논리적 관계)에 주된 관심을 가졌으며, 과학을 정당화하는논리적 토대를 제공하는데 목적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들의 탐구는 현실의 과학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이상화된 과학의 모습을 규정하고자 했다.
1.3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
포퍼의 과학철학에 따르면, 과학의 방법론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1.) 문제발생, (2.) 가설의 창안, (3.) 새로운 가설로부터의 테스트가능한 명제의 연역, (4.) 테스트: 관찰과 실험에 의한 반박의 시도, (5.) 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에서의 선택, (6.) 가설의 방증" 이는 시행착오의 방법, 오류제거의 방법, 그리고 추측과 반박의 방법이라고 볼 수있다. 포퍼의 과학철학에서 과학의 합리성은 방법론적 규칙을 따르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보증된다. 따라서 포퍼에게 있어서 주어진 이론체계의 테스트가능성이나 반박가능성을 약화시키거나 제거할 목적으로 임시변통적 가설은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엄격한 고전적 연역논리, 즉 후건 부정식에 근거해야만 과학적 방법론의 합리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요컨에 포퍼에게 있어서 과학의 합리성은 방법의 합리성이며, 방법의 합리성은 논리성이다.
1.4 수용된 견해(received view)
수용된 견해란 논리실증주의자 수피(Frederick Suppe)가 제시한 전통적 과학의 이미지이다:
1. 관찰과 이론은 엄밀히 구분된다.
2. 과학은 누적적으로 진보한다.
3. 과학은 엄밀한 연역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4. 과학에는 통일된 방법이 있다.
5. 과학은 통합적인 체계이다.
6. 정당화의 맥락과 발견의 맥락은 분리할 수 있다.
2. 전통적 과학관에 대한 도전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서 쿤(T.Kuhn), 파이어아벤트(P.Feyerabend), 한슨(N.R.Hanson), 그리고 툴민(S. Toulmin) 등의 과학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전통적 과학관에 대한 도전이 일어났다. 이들은 새로운 과학관, 새로운 과학상을 모색하면서 과학에 대한 논리적, 방법론적 분석 거부했으며, 과학에 대한 동태적 분석 시도했다. 이들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은 과학방법론에 입각한 과학의 합리적 이미지는 과학의 실제적인 모습과 일치하지 않으며, 정당화할 수 없는 가정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과학사를 살펴보면 과학이 갖는 비논리적인 측면이 명백히 드러나며, 논리성 자체는 과학적 지식의 본성, 지식 발전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과학의 합리적 이미지에 대한 재고를 요청한다.
새로운 과학철학자들이 비판하는 전통적 과학관의 전제들은 다음과 같다. "(1.)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 구분, (2.) 관찰과 이론, 관찰명제와 이론명제 구분"
2.1 관찰의 이론적재성 개념
과학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과학은 관찰로부터 시작한다. 관찰이야말로 지식이 유도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이며, 순수한 관찰은 어떤 이론에도 물들지 않은 관찰명제에 의해서 기술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철학자들은 중립적 관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관찰은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대, 신념, 개념, 이론, 패러다임 등에 의해서 제약된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철학자들은 중립적 관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새로운 과학철학자들에 따르면, 관찰자가 어떤 대상이나 장면을 보게 될 때 갖게 되는 주관적인 경험은 망막에 맺힌 상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관찰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 지식, 기대, 문화적 배경 등 일반적으로 내적 상태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관찰 혹은 지각경험에 특히 영향을 미치는 것은 관찰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근거한다. 우리는 동일한 대상을 보고 이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애초에 달리 본다는 것이다. 온도계, MRI, CT 등 실험기구에 의존한 관측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그 기구가 특정 이론에 맞추어져서 설계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선입견에 근거해 관측을 하는 것이다. 이를 "관찰의 이론적재성"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과학이 필연적으로 포함하는 주관적 측면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실제로도 많은 경우 과학자들은 이론에 맞지 않는 관측 사실을 거부한다. 이론적으로 경험을 걸러내는 과정이 없으면 관측과 환각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2 전통적 과학관의 응수
전통적인 과학철학자들은 새로운 과학관을 과학의 합리성을 부정하려는 상대주의, 회의주의, 주관주의, 비합리주의, 관념론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들에게 있어서 쿤은 과학전쟁을 촉발한 장본인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논쟁은 아직도 그 결말을 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전통적 과학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과학관의 전제들과, 과학의 합리성의 개념을 다시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토마스 쿤Thomas Kuhn>
쿤은 '새로운 과학철학'의 중심에 있었던 과학철학자이다. 쿤은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과학에 지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지만 과학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다른모든 인간활동을 위한 모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또 과학이 과거의 이론을 기반으로 누적적으로 성장한다는 관점에서도 벗어났다. 쿤은 과학은 진리를 향한 필연적 진보로 보는 전통적 견해를 거부한 것이다. 대신에 그는 과학은 인간이 이룩한 여러 업적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과학의 각 이론과 관찰점 들은 당시의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과학은 전혀 다른 개념체계가 교체되는 방식으로 변화한다.
1962년 간행한 그의 대표저서『과학혁명의 구조』는 당대 과학철학자들에게 새로운 과학철학 혹은 역사주의 과학철학의 전범이 되었다.『과학혁명의 구조』으로 대표되는 쿤의 혁명적인 업적은 이후 과학연구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아 '과학지식사회학', '과학기술학' 등 '과학에 대한 학문'의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을 탐생시켰다. 아마도 쿤의 이 저서는 20세기 후반의 학술서적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책일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은 인문학 및 사회과학 서적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된 책이다..『과학혁명의 구조』는 학문상의 위계를 평정하고, 부적절한 방법론적 규범을 전복하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결과적으로 서구의 고등교육 시스템에서 다원주의적 분위기를 고무하는 데도 영향을 주었다. 이로 미루어 볼대 오늘날 우리가 쿤의 철학을 어떻게 다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과 관련없이, 생전의 쿤은 영미 과학철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영향력은 과학사와 과학철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그외의 학문영역에도 넓게 미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쿤의 철학에 대한 심각한 오해중 하나는 그가 상대주의자이며, 비합리주의자이며 관념론자라는 것이다. 나아가 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제기한 과학전쟁의 주모자라고 매도당하기 까지한다. 그러나 쿤은 비합리주의자도, 상대주의자도, 나아가 관념론자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온건한 합리주의자이다.
1. 쿤의 새로운 방법론
쿤이 활동하기 시작하던 당시 이미 많은 철학자들은 논리실증주의가 채택한 논리적 분석이라는 방법에서 수많은 난점과 한계를 발견하고 있었다. 또한 이를 토대로 과학철학의 문제점들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법이 요구된다고 여겼다. 쿤 역시 논리경험주의자들이 과학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수용된 견해'를 제시한 배경을 그들의 방법에서 찾았다. '수용된 견해'에 대한 쿤의 비판은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는데, 바로 새로운 방법의 도입을 통해서였다. 쿤이 제시한 새로운 과학철학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기존의 과학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혁명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새로운 접근 방법에 대한 요구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1.1 역사적-동태적 분석
쿤의 첫번째 방법은 과학사를 올바르게 연구하는 것이다. 이는 과학이 이룬 업적을 재대로 확인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경험적으로 적합한 과학철학을 확립하려는 것이다. 이 두가지 작업의 수행과 결과가 곧 그의 역사주의 과학철학이다. 쿤에 따르면, 실제 과학이 수행되어 온 과정에 대한 과학사적 탐구는, 과학의 본성과 그것이 특이하게 성공한 이유에 대해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품고 있는 생각들이 얼마나 송두리째 잘못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들이 과학에 대해서 품고 있는 생각은 실제 과학사의 탐구를 통해 드러나는 과학의 모습과는 너무나 걸맞지 않다는 것이다.
1.2 사회학적 분석과 사회심리학적 분석
쿤의 두번째 방법은 과학적 집단에 대해 사회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쿤이 보기에 과학적 지식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어느 한 집단의 공통적 속성이다. 과학활동의 주체는 개인으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과학자 집단 혹은 과학공동체다. 그러므로 과학자 집단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 과학자 집단의 고유한 특성과 메커니즘을 이해할 때에만 과학활동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셋째로, 쿤에 따르면, 어떤 개인이 가지는 과학적 영감이나 확실성에 대한 신념의 원천을 심리학적으로 연구해야할 필요가 있다.
1.3 수용된 견해의 위반
역사적·사회학적·사회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논리학과 인식론에 관련된 과학철학의 문제를 탐구하려는 쿤의 시도는, 쿤 이전가지 널리 인정되어온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을 구분하는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쿤은 과학사가 지식에 관한 이론들이 정당하게 적용되기를 요구하는 현상의 원천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론한다.
2. 쿤의 새로운 과학상: 패러다임과 과학혁명의 구조
쿤은 앞서 언급한 방법론을 토대로『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몇가지 새로운 개념들을 등장시키면서 그의 새로운 과학상을 제시했다. 널리 알려진 정상과학, 패러다임, 과학혁명 등이 그 예이다. 이런 새로운 개념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으면서 쿤의 과학관을 형성하고 있다.
2.1 패러다임
먼저 패러다임의 예시를 들어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자연학』, 프톨레마이오스의『알마게스트』, 뉴턴의『프린키피아』, 라부아지에의『화학』등이 패러다임이다. 즉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전통적 과학자들 및 과학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법칙, 이론, 믿음, 실험장치 및 방법, 도구 등을 포함하는 과학적 작업의 집합체이다. 쉽게 말해 일반적인 과학자들의 사고와 행위를 지배하는 과학적 탐구의 모델이라 볼 수 있다.
즉 패러다임은 주어진 과학자 집단이 지닐 수 있는 문제를 잠정적으로 결정해주고, 그것에 의해 추구된 설명의 양식과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해결의 양식을 결정해준다. 과학도들은 사회화의 교육과정을 통해 패러다임을 배움으로써, 패러다임에 의해 완성된 과학 활동의 규칙을 습득하고 과학자 집단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이리하여 과학자들은 공통된 개념적, 이론적, 도구적, 방법론적 틀에 기반을 두면서 과학연구에 있어서 동일한 원칙과 기준을 갖게 된다. 또한 공유된 패러다임의 출현은 그 분야에 종사하는 집단의 구조에 영향을 미쳐 과거에는 단순히 자연연구에만 관심을 갖던 집단을 전문직업집단, 혹은 하나의 학파로 전환하도록 한다. 즉, 패러다임은 과학자 집단을 형성하게 하는 것이다. 요컨대 패러다임은 학습적 교육적 의미로서는 전제와 표준범례이며, 논리적 방법적 의미에서 정상과학의 규칙, 기법, 장치, 형이상학적 가정이고, 사회적 집단적 의미에서 가치와 신념 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2.2 정상과학
쿤에게 과학연구 활동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하나의 과학 전통에 입각해 일상적 연구를 진행하는 통상적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과학 전통을 새로이 마련해야 하는 위기에 봉착한 경우에 진행되는 비통상적 연구이다. 통상적 연구는 과학의 발전에서 대부분의 시기를 점하는 것인데 비해, 비통상적 연구는 매우 드물고 예외적인 것이다.
쿤은 통상연구를 '정상과학'이러고 부르는데, 정상과학이란 특정의 '과학공동체'가 일정기간 동안 과거의 과학적 업적을 전해받아, 그것을 기초로 진행하는 연구를 말한다. 즉 이는 일상적인 연구활동으로서 패러다임의 틀 내에서의 작업이다. 정상과학의 과학활동의 출발점은 반성없이 받아들여진 근본적 가정, 즉 패러다임이다. 이 정상과학은 새로운 이론이나 현상의 발견이나 발명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정상과학의 연구는 패러다임에 의해 이미 부여된 현상이나 이론을 뒤처리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쿤에 따르면, 정상과학에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예상되어 있는 것을 얻는, 고정된 틀 안에서 자연을 짜맞추고자 하는 일종의 퍼즐풀이이다. 정상과학은 사실의 측정, 사실과 이론의 조화 및 이론의 정비라는 3가지 내용을 가지는데, 여기서 그 어느 것도 이론의 새로운 창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3 과학혁명
과학혁명이란 낡은 패러다임으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이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정상과학의 기본 전제를 전복하는 일이고, 세계관의 변화이다. 즉 변칙사례를 설명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새로운 관점, 방법, 목표를 가지고 낡은 패러다임의 중요한 전제가 붕괴되면서, 과학 자체가 재념화되는 사건이다.
2.3.1 위기와 변칙사례
쿤에 따르면 정상과학의 퍼즐들이 예상 가능한 해답을 얻는데 계속 실패한다면, 정상과학의 불안정한 상태를 유발한다. 이를 그는 위기에서의 과학이라고 부른다. 정상과학은 언제나 잠재적 실패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패러다임이 예상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를 쿤은 변칙사례라고 명명한다. 예컨대 프톨레마이오스의 패러다임으로부터 유도되지 않는 행성의 역행 운동이 대표적이다. 편칙사례가 쌓여 가면 정상과학에 위기 혹은 본질적 긴장이 발생하며,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의 근본적 가정을 검토하게 된다.
현존 규칙의 실패는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되는 서문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새로운 이론의 출현은 반드시 대규모 패러다임 파괴와 정상과학의 과제 및 기술에서의 주요 변혁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거친뒤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 상태는 어떻게 과학혁명으로 변화하는가? 쿤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변칙트럼프카드의 심리실험을 예로 든다.1 즉 보통의 카드에 변칙카드를 조금씩 섞어나가면, 처음에는 그것에 주의가 가지 않으나 차츰 그것이 관찰되는 것 처럼, 과학에서도 혁신적인 것은 예측에 반하는 어려움 속에서 저항을 받는 경험을 한 뒤에야 나타난다. 즉 변칙사례를 인지하고 나서는 그것에 대해 자신의 개념 범주를 적응시키는 기간이 필요하다. 변칙사례는 과학자들의 상식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관적으로는 그것을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후에야 과학자들은 기존 패러다임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갖게 되며, 따라서 연구의 성격도 변화한다. 경쟁적인 주장이 난립하고, 어느 것이라도 시도할 수 있는 준비가 되고, 명확히 불만을 표현하고, 철학에 호소하고, 근본 문제에 관해 논쟁하는 등 통상적 연구에서 비통상적 연구로 전환하게 된다.
2.3.2 통약불가능성
패러다임이 다르면 전체 개념체계의 구성이 다르고, 문제를 파악하는 방식이 달라지며, 심지어는 같은 개념이 지칭하는 대상 조차 달라진다. 따라서 서로 다른 패러다임에 속하는 지식체계에 대해 우리는 동일한 측정기준을 갖고 상호 비교할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패러다임의 전환은 혁명적으로, 마치 개종을 하는것 처럼 기존의 체제를 붕괴시키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즉 상이한 두 패러다임은 '통약불가능'하다. 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의 선택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의 일치를 통해서 결정할 수 있다는 전통적 견해와 달리, 그러한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쿤에 따르면 한 패러다임의 개념들은 다른 이론의 개념들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의미에 있어서의 변이가 있다. 또한 한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 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논리적인 논변을 통해서 증명할 수 없다. 예컨대 양자역학과 고전역학, 뉴턴 역학과 상대성 이론, 그리고 유물론과 심신이원론 사이의 소통이 가능할 것인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관찰과 경험, 그리고 진술은 그것이 발생하는 이론적 맥락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패러다임의 산물이다. 이런 이유로 경쟁관계에 있는 패러다임들 사이의 논리적인 비교는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패러다임은 확증이나 반증이 불가능하기도 하다.
쿤은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게슈탈트 전환'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즉, 하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한 관점, 문제제기, 방법, 목표 등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마치 똑같은 대상이 과학혁명 이전에는 오리로 보였는데 지금은 토끼로 보이는 우리 시각의 게슈탈트 전환과 유사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쿤의 이런 입장은 과학의 성장에 대한 누적주의적 견해에 대해한 비판이기도 하다. 과학이론의 변화가 패러다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패러다임 사이의 소통이 불가능하다면, 과학의 진보는 그 어떤 의미에서도 결코 누적적인 진보로 파악될 수 없을 것이다.

오리-토끼 게슈탈트
2.3.3 이론선택의 기준
패러다임을 평가하는데 어떠한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쿤은 패러다임들 사이의 경쟁과 선택은 다분히 사회학적이라고 말한다. 결정의 주체는 과학공동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정과정은 합리적 추론에 의해 진행된다. 가장 대표적인 기준점은 퍼즐풀이 해결 능력의 차이이다. 예컨대 뉴턴의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보다 진보했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뉴턴의 것보다 진보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뉴턴으로, 그리고 뉴턴에서 아인슈타인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된 것이다. 그외에 새부적인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이론은 그 영역 내에서 정확한 것이어야 한다.
2. 이론은 그것 자체 내에서 일관적이어야 한다.
3. 넓은 적용 범위를 가져야 한다.
4. 간결한 것이어야 한다.
5. 새로운 발견에 산출력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2.4 패러다임 변화의 예시: 프톨레마이오스에서 코페르니쿠스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천문학 패러다임이 변동된 사례를 통하여 쿤의 과학관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2.7.1 프톨레마이오스
프톨레마이오스는 2세기경의 알렉산드리아 사람이며, 알마게스트('최고의 책')라는 천문학 서적을 저술했다. 그의 천문학 체계는 지구중심체계이다. 그에 따르면 행성들은 매일 등속 운동으로 부동의 중심인 지구를 회전한다. 달과 태양은 지구 둘레에서 고유의 원운동을 가진다. 천상계에서와 지상계에서의 운동은 구별되는데, 전자는 원운동을 하며, 후자는 직선운동을 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관
2.7.2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난점(변칙사례의 발견)

천동설의 변칙사례
그러나 주전원과 이심원으로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는 프톨레마이오스에 따르면 행성의 역행운동을 간결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위 사진은 실제로 행성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기록한 것인데, 시각적으로는 정상적으로 원운동을 가지던 행성이 갑자기 뒤로 방향을 틀어서 비정상적인 움직임으로 전환한다.


변칙사례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고중세의 천문학자들은 위와 같은 행성이동가설을 내놓았다. 그러나 애초에 지구가 정지해있고,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가정으로는 자연현상을 자연스럽게 해석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었다.
2.7.3 새로운 패러다임(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체계)의 등장


코페르니쿠스가 제시한 태양중심체계에 따르면, 정지되어 있는 것은 태양이고 지구와 그외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그렇다면 위의 괴상망측한 행성의 운동은, 지구의 위치가 시시각각 바뀜에 따라 행성을 관찰할 수 있는 위치가 달라져 마치 행성이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앞으로 전진하는 괴현상을 보이는 것이라는, 보다 합리적인 해석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보다 자연을 설명하는데 적합했기에,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는 폐기되고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3. 쿤 과학관 요약
이상과 같은 쿤 과학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있을 것이다:
1. 모든 과학적 집단의 사고와 행위는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는다. 패러다임이란 어느 일정기간 동안 전무적인 연구자 집단에게 모범적인 모델문제와 풀이를 제공하는 보편적으로 인정된 과학적 성취를 말한다.
2. 따라서 과학자들의 일상적인 연구작업인 정상과학은 연구 전통을 결정하는 패러다임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3. 패러다임은 주어진 과학자 집단이 가질 수 있는 문제를 잠정적으로 결정해주고, 그것에 의해 추구될 설명 양식과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해결 양식을 결정해준다.
4. 퍼즐풀이와 체스게임같이 정상과학은 이미 짜이고 고정된 상자안에 자연을 맞춰넣으려는 작업이다. 따라서 정상과학은 그 성격상 새로운 이론이나 현상의 발견과 발명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5. 그러나 패러다임으로부터 유도되지 않는 현상, 즉 변칙사례가 생기고 그것이 쌓여가면 위기가 발생한다. 이러한 위기감이 과학자 집단으로 하여금 그것의 근본적 가정을 검토하게 하고 대안을 찾도록 한다.
6. 변칙사례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발견되었을 때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난다. 위기에 처한 패러다임으로부터 정상과학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는 새 패러다임으로서의 이러한 전이는 낡은 패러다임을 정비하거나 확장함으로써 성취되는 누적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관점, 방법, 목표를 갖고 낡은 패러다임의 가장 중요한 전제에 도전하는 것이고, 그러한 변이가 바로 '과학혁명'이다.
7. 패러다임이 다르면 그 세계관이 다르고, 전체 개념체계의 구성이 다르며, 문제를 파악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심지어는 동일한 개념이 지칭하는 대상조차 다라진다. 즉, 상이한 패러다임은 서로 통약불가능하다.
8. 과학이론의 진보과정을 도식화 해보자. 기존 패러다임(P1) → 정상과학(N1) → 변칙사례의 등장 → 변칙사례에 대한 인식 확장 → 위기 조성 → 과학혁명 → 새로운 패러다임(P2) → 새로운 정상과학(N2). 이 과정은 결코 누적적이지 않다.
- 브루너(Bruner)와 포스트먼(Postman)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트럼프 한 벌을 잠시 조정해서 보여 주고 가려내게 했다. 대부분의 카드는 정상적인 것이었으나, 몇 장은 이상스럽게 만들어서, 예컨대 스페이드의 6장을 빨강으로, 하트의 4를 검정색으로 만들었다. 한 차례 실험은 한 사람에게 카드 한 장씩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점차로 횟수를 늘려 보여주었다. 매번 패를 보여 줄 때마다 실험 대상자에게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고, 연달아 두 번을 옳게 맞추는 경우 한 차례가 종료되는 식이었다.
아주 잠깐 보는 것으로도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거의 모든 카드를 알아보았고, 좀더 늘린 결과 피실험자들은 카드를 모두 알아보았다. 이것의 과정에 있어서는 정상적인 카드에 대해서는 보통 옳게 맞추었으나, 이상한 카드는 거의 예외 없이, 외관적인 망설임이나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정상적인 카드로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하트 검정색 4는 스페이드 4 또는 4라고 대답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것은 기존의 경험이 마련해 준 개념적 범주 중 하나에 즉각적으로 들어맞았던 것이다. 피실험자들은 자기들이 대답했던 것과는 다른 카드를 보았다고는 아무도 말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상스런 카드를 점점 자주 보여줌에 따라, 피실험자는 망설이기 시작했고 이상의 감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빨강 스페이드 6을 여러 번 보여주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스페이드 6인데,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 걸, 검정색에 붉은 테두리가 둘렸나.” 더 자주 보여 주는 것은 보다 오랜 망설임과 혼돈을 초래하다가 드디어 어느 시점에서, 때로는 아주 갑자기, 대부분의 피실험자가 망설이지 않고 제대로 맞추게 되었다. 더욱이 이상스런 카드를 두세 개 써서 이런 실험을 한 후에는, 그들은 다른 이상한 카드에 대해 더 이상 별로 어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 사람은 그들 범주에 제대로 적응해 내지를 못했다. 정상 카드를 옳게 알아맞출 수 있는 데 필요했던 평균치보다 40배나 더 카드를 접하면서도, 이상한 카드의 10% 이상이 제대로 맞춰지지 못하는 것이었다.
<쿤에대한 오해와 해명>
. 쿤에 대한 오해
4.1 쿤을 비합리주의자로 볼 수 없는 이유
쿤의『과학혁명의 구조』는 발표되자마자 철학, 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영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많은 과학자들은 그가 과학사에서 이끌어낸 구체적 자료에 공감했고, 이 책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과학을 잘 기술한 것이라 여겼다. 반면 쿤의 새로운 과학관은 논리실증주의 등 전통적 과학관 진영의 많은 과학철학자들의 오해와 비판을 샀다. 그들은 쿤을 비합리주의자, 상대주의자, 회의론자로 몰아세우며 공격했다.
물론 쿤이 전통적 의미의 과학적 합리성의 개념을 비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쿤이 과학의 합리성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합리성의 개념 그 자체에 대한 변화를 가져 오려고 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전통적 입장에서의 합리성이란 논리주의적 합리성을 의미한다. 논리주의란 논리가 합리적 평가기준의 원천이며 이 구즌은 행위의 주체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논리실증주의자, 포퍼, 베이즈주의자 등이 이러한 견해를 대표한다. 이 세가지 논리주의 진영에 따르면, 과학적 합리성의 계기는 바로 과학적 추리와 논증이다. 그들은 과학에서의 합리성은 이론선택의 과정에서 가장 잘 구현되며, 그 선택은 보편적인 형식적 규칙에 따른다는 점에서 과학은 합리적 활동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쿤은 과학의 합리성의 계기를 과학자 개개인 그리고 과학자집단의 판단과 행위에서 발견하고자 했다. 이론선택의 과정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위해서는 이론선택에 작용하는 내적인 요인 뿐만 아니라, 외적이 요소도 밝혀져야 하는데, 이러한 외적인 요소의 분석은 심리학과 사회학의 연구대상이기 때문에 과학자집단에 대한 연구도 필요한 것이다.1 쿤이 생각하는 합리성의 모델은 실천적 합리성이다. 그에 의하면 과학자 개개인과 과학자 집단의 사고와 행위는 패러다임의 지배를 받는다. 이론선택의 기준이 되는 인식적 가치도 이 패러다임의 일부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합리적 판단의 기준 자체가 역사적이며 국소적이다. 다만 어떤 문제상황에서 인식적 가치를 선택하고 적용하는 것은 과학자 개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다. 과학자들은 인식적 목적과 실천적 목적에 따라 판단한다. 가령 가설선택은 퍼즐풀이 능력이라는 기준에 의해 이루어진다. 퍼즐풀이 도구로서의 뉴턴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것보다, 아인슈타인 이론은 뉴턴의 것보다 진보하였다. 이렇듯 자연이 제시하는 수수께끼를 성립시키고 해결하는 능력에 의해서 경쟁적인 이론을 비교할 수 있다.
과학에서 이론선택의 절차는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방법론적 기준은 물론 과학자들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여러 철학자들이 그것은 과학에 인간의 주관적 판단을 개입시킴으로써 과학의 합리성을 부정하려는 시도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역시 그들이 이미 지니고 있는 자신들의 기준에 의한 비판이다. 쿤이 요구하는 것은 과학의 합리성에 대한 개념 자체의 변화이다. 그것은 파이어아벤트가 취하는 비합리주의적 입장과도 다르다. 왜냐하면 쿤은 과학에서의 판단이란, 개개의 과학자들이 과학자 집단에 속하여, 공유된 패러다임에 의해 잘 훈련된 능력을 지니고, 여러 선택 가능한 대안들에 대해 공유된 기준을 합리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자들의 판단의 합리성을 논리주의의, 마치 기계적 연산방식같은 합리성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실천적 지혜의 합리성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쿤에게 과학의 합리성은 과학자 집단의 합의의 합리성, 과학자 개개인의 판단의 합리성이고, 그것은 결국 인간의 합리성이라 볼 수 있다.
4.2 쿤에 대한 올바른 이해
쿤의 합리성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아 쿤에 대하여 몇가지 중대한 오류가 생기고 말았다:
1.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오해. 쿤은 패러다임의 변화의 근본적인 요인이 합리적 숙고의 과정이 아니라, 게스탈트 변이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쿤은 숙고적, 해석적 절차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해석과 숙고만으로는 패러다임의 위기를 종결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오히려 쿤은 비통상적 과학에서의 숙고적, 해석적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2. 경쟁하는 패러다임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대한 오해. 쿤은 경쟁하는 패러다임들 사이의 완전한 의사소통의 두절, 번역불가능성을 주장하였다: 쿤은 극단적인 불가통약성을 주장한 적이 없다. 다만 패러다임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부분적일 수밖에 없음을 말한 것이다.
3. 이론선택의 기준에 대한 오해. 쿤은 이론 선택의 기준이 존재할 수 없음을 주장하였다: 쿤은 정확성, 간결성, 산출성 등과 같은 가치에 호소하는 합리적 설득과정을 통해서 이론선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4. 암묵적 인식2에 대한 오해. 쿤은 과학에서의 암묵지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였다: 쿤은 예제를 풀어 봄으로써 획득되는 능력이 덜 체계적이거나 덜 분석적인 탐구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오해의 일차적인 책임은 쿤에게 있다. 그가 과학자들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을 종교적 개종에 비교한다는가, 다른 패러다임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한 것 등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표현을 쓴 것이 오해의 소지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맥락을 잘살펴본다면 그는 결코 비합리주의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 과학자들은 여러가지 규모의 집단의 맥락에서 일한다. 과학자가 속하는 집단은 같은 실험실의 연구팀에서부터 유사한 프로젝트에 대해 연구하는 과학공동체, 나아가 과학공동체 전체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과학논문은 복수의 필자가 표기되는 일이 흔하며, 더 많은 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하나의 경향이다. 따라서 과학의 합리성은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에 대해서도 제기될 수 있다.
- 명시적 규칙을 배움으로써가 아니라 범례를 풀어봄으로써 얻어지는 능력
<파울 파이어아벤트 Paul Feyerabent>
파이어아벤트는 20세기 후반 과학철학의 Big 4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1 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상반된다. 많은 철학자들이 그를 20세기 최고의 과학철학자 중 한명을 꼽지만, 일부 철학자들은 그를 그저 광대로 여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이어아벤트가 과학철학에 있어서 커다란 영향력을 남긴, 대단히 독창적인 철학자이기 때문에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리는 평가를 받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자들이 항상 사용하는 일반적인 과학적 방법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하였다. 그는 정해진 방법론이야말로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사고를 방해함으로써 과학적 진보를 막는다고 생각했다.
1.「설명, 환원, 그리고 경험주의」
파이어아벤트의 철학적 관점은 1975년『방법에의 도전』의 간행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과 이후로 양분된다. 편의상『방법에의 도전』이전을 전기, 그 이후를 후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파이어아벤트가 1962년 발표한「설명, 환원, 그리고 경험주의」는 전기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이 논문은 파이어아벤트가 '통약불가능성', '이론증식', '의미변화' 등의 개념을 소개한 논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철학의 '수용된 견해'가 포함하는 중요한 전제들을 논박했다. 파이어아벤트가 1960년대와 70년대 과학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대가로 일약 떠오를 수 있었던 까닭이 이 논문에 있다.
1.1 이론적재성(이론의존성)-관측은 이론의 영향을 받는다.
이 논문의 진가는 파이어아벤트가 '이론적재성'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과학이 객관적 지식이라는 전통적 이미지는 관찰이 객관적이라는 믿음에 의존해왔다. 그것은 다시 관찰자료의 이론중립적 성격과 가설과 그 관찰적 귀결 사이의 논리적 관계가 맺는 필연적 성격에 의존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렇게 널리 인정되는 과학관을 정식화하고 옹호하려는 입장을 과학철학에서는 '소박한 귀납주의'라고 부른다. 소박한 귀납주의자들은 관찰에 대해 기본적으로 두가지를 가정한다. 첫째는 과학이 관찰과 더불어 시작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관찰이 과학적 지식의 굳건한 토대를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과학적 지식의 객관성을 보증해주는 것은 관찰이다. 그러므로 관찰자가 과학자로서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이고 온전한 감각기관을 갖고 아무것에도 사로잡히지 않은 채, 그가 보거나 들은 것을 기록해야 한다. 이렇게 기록된 것을 관찰진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떠 사람의 감각적 경험을 통해서도 참임을 확증할 수 있는 진술을 말한다.
그러나 파이어아벤트는 관찰과 관찰명제의 의론의존적 성격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개인의 지각 경험은 관찰되는 대상의 물리적 특성에 의해서만 객관적으로 걸졍되는 것이 아니고, 관찰자가 이미 품고 있는 기대와 관점, 그리고 이론적 배경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이론과 사실은 하나의 덩어리로 혼합되어 있다. 이론의의론적재성 개념은 파이어아벤트는 물론이고 쿤, 핸슨 등에 의해서도 제시된 바가 있다. 이론적재성 테제는 두 가지 논변으로 뒷받침된다.
첫째, 우리는 어떤 대상을 그저 '보는것'(seeing)이 아니라, '무엇으로 본다'(seeing as). 우리가 어떤 대상을 볼때, 관찰자로서 얻게 되는 경험은 광선의 형태로 관찰자의 눈 속에 들어온 정보나 관찰자의 망막에 맺힌 상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정상적인 두 관찰자가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대상을 볼때, 그들 각각의 망막에 맺친 상은 사실상 같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동일한 시각 경험을 필연적으로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관찰자가 보는 것, 즉 그가 어떤 대상이나 장면을 볼때 얻게되는 주관적 경험은 망막에 맺힌 상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관찰자의 경험, 지식, 기대, 문화적 배경 그리고 대개는 관찰 당시의 내적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과학에서 관찰 혹은 지각경험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관찰자가 이미 인지하고 있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일한 대상을 보고 이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애초에 달리본다. 예컨대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검정 바탕에 흰색 얼룩만으로 보이는 MRI 사진에서 표준적인 의학 이론으로 잘 훈련된 사람이라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종양의 형태를 발견해낼 수 있다.
둘째, 관찰된 사실을 기록하는 관찰언명은 이론에 의존한다. 관찰언명은 어떤 이론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이 의존하는 이론적 혹은 개념적 틀이 정확해질수록 더욱 정확해진다. '전자 빔은 자석의 N극에서 휘어진다'라는 말이나, 어떤 환자의 증상에 대한 정신과 의사의 말에는 이미 상당한 이론이 전제된 것이다.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힘'의 개념은 그것이 뉴턴 역학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의해 그 의미를 얻는다.
파이어아벤트는 이론들의 이러한 국면이 실증주의적 전통에서는 관과되었다고 지적한다. 즉 기존의 실증주의자들은 이론을 경험적 일반화로 다루었고, 특히 이론을 그것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 사실에 대한 기술로 여겼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1.2 통약불가능성-이론들사이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관찰의 이론적재성을 토대로 파이어아벤트는 통약불가능성을 제시한다. 관찰의 이론적재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약 진실로 모든 관측이 이론에 영향을 받는다면, 중립적 사실이나 관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관찰은 그것이 발생하는 이론적 맥락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험과 관찰에 근거하여 경쟁이론들을 평가하는 일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두 이론의 근본원리가 본질적 측면에서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한 이론의 개념을 다른 이론의 개념으로 나타내는 것 조차 가능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두 이론은 어떠한 관찰명제도 공유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쟁하는 이론들은 세계에 대해 서로 양립 가능하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두 이론 간의 논리적 비교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과학 개념의 의미는 그것이 들어 있는 이론적 맥락에 의존한다. 이론에 들어 있는 과학적 개념의 의미는 그 이론이 변화되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즉:
1. 과학 개념의 의미는 그것이 들어 있는 이론적 맥락에 의존한다.
2. 이론에 들어 있는 과학적 개념의 의미는 그 이론이 변형되면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3. 따라서 만약 이론 T가 변하면, 그 이론에 등장하는 과학 개념 S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이처럼 과학이론은 필연적으로 주관적 측면을 담고 있으며, 과학이론들 사이의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그 이론이 담고있는 개념의 의미가 다른 이론들의 그것과 대단히 상이한데, 이런 배타적인 관계에서는 한 이론의 개념을 적용하는 일이 다른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타당하지 않는 원리들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통약불가능성' 개념은 보편이론이 어떻게 경험적으로 테스트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었다. 보편 이론이 관찰 언어의 의미에 영향을 미친다면, 이론으로부터 독립적인 사실에 대한 객관적 기술을 담은 관찰문장이 성립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보편이론의 타당성을 어떻게 검사할 수 있는가? 통상적으로 이에 대한 반응은 두가지다. 첫째는 규약주의로서, 보편이론을 선천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여기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도구주의인데, 여기서는 보편이론이 단지 현상을 예측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입장은 모두 보편이론의 경험적인 성격을 부정한다. 따라서 파이어아벤트는 이 두 입장 중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론은 경험적 내용을 지녀야 하고, 따라서 경험적으로 검사되어야 하며, 경험적 검사로 그 타당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명되면 폐기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이어아벤트는 규악주의와 도구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1.2.1 이론증식: 보편 이론은 어떻게 경험적으로 테스트되는가?
그에 따르면 이론은 논리실증주의자들이나 포퍼가 믿듯이, 경험적 데이터와 부딪힘으로써 테스트되는 것이 아니다. 이론은 사실에 의해서 테스트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다른 이론과의 맞부딪힘을 통해서 테스트된다. 한 이론의 난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 이론의 관점으로 본 사실들과의 부딪힘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며, 다른 대안적인 이론의 관점에서 주어지는 사실들이 허용될 때만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파이어아벤트는 대안적 이론의 증식을 요구한다. 만약 대안적 이론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독단적인 정체 상태가 있을 뿐이다.
만일 두 이론이 모두 포함하는 개념들 사이에 '의미변화'가 생성될 수 있다면, 기존의 이론들은 그보다 더 넓은 적용범위를 갖는 새로운 이론에 의해 설명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과학의 진보이다. 파이어아벤트의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과학에서의 이론의 진보는 없다. 누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수용된 견해'의 주장도 무너지게 된다.
2.『방법에의 도전』
1975년 출간한『방법에의 도전』은 책이라기보다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 저작은 파이어아벤트가 그동안 쌓아올렸던 과학철학자로서의 이미지를 하루아침에 무너트렸다. 그를 광대로 폄하하고, 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가 등장한 것도 이 책 때문이다. 이 책은 원래 그의 친구이자 동료였던 라카토슈와 공동 저작으로 기획되었다. 그 기획은 라카토슈가 방법론을 옹호하고 반면 파이어아벤트는 방법론을 비판하면서 이를 서로 견주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1974년 라카토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파이어아벤트가 준비했던 부분만 간행되었다. 이 책에서 파이어아벤트의 목적은 두가지다. 그중 하나는 그동한 해왔던 과학철학적 작업을 집약하고, 과학사의 중요한 사레연구를 토대로 주요 논변을 뒷받침하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러한 주요 주장들로부터 도출되는 문화철학 및 정치철학적 함의를 제안하려는 것이다.
2.1 인식론적 아나키즘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적 지식의 인식론적 특징이 과학적 실천에서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점에 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다시 말해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에는 어떤 건전한 목표가 있고, 이것을 실현시켜줄 합리적인 방법2이 있다는 전통적 과학철학의 주장을 논박하려는 것이다. 그가 책의 부제로 '아나키즘'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은 단 하나의 방법의 무조건적 독점, 즉 방법론적 단일주의에 반대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파이어아벤트의 논변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과학적 성공이나 진보를 예증하는 과학사에서의 결정적인 에피소드들에서, 첫째, 대부분의 규칙은 위반되었으며, 둘째,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규칙을 위반해야만 했다. 따라서 방법론에 집착하는 것은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합리주의자는 반갑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한다. 과학은 진보적이거나 합리적이다. 둘 다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모든 규칙이 포기되어야 한다는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일부 절차들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과학자들의 일에 도움이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방법론은 그 나름의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진보를 방해한다. 과학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원리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라도 좋다'"라고 말한다. 이 원리에 의한 과학적 지식의 진보는 진리를 향해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양립할 수 없는 경쟁가설들이 끊임없이 증식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론마다 직접 시험하지 못하는 전제와 같은 맹점이 있기 마련이므로, 서로 다른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다른 이론과 비교 대조를 하는 방법 외에는 이론의 정확성을 높일 수 없다.
2.2 과학의 비합리적 성격
방법론적 단일주의에 대한 반대 논변은 과학의 합리성에 대해서도 중요한 함의를 띤다. 전통적 합리성의 개념에 따르면, 합리적이라는 것은 어떤 표준을 지니는 것이고, 달리 말해 방법론에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실과 충돌하는 가설을 배격하라' '임시변통적인 조치를 삼가라'라는 식의 규칙이다. 전통적 과학관에서 과학은 합리적이어서 성공할 수 있었고, 그것은 또한 올바른 방법이 있었기에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전통적 과학관에서 과학이란 이성적인 작업이며, 그 점에서 과학과 비과학은 구분되고, 과학은 다른분야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파이어아벤트가 보기에 과학에 있어 이성은 보편적일 수 없으며 비이성은 배제될 수 없다. 과학은 언제나 이상적인 과학적 방법만을 통해서 발달하는 논리적 지식이 아니라, 역사적 성격을 지닌 지식이기 때문에 몇가지 규칙에만 근거해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과학의 기초를 이루는 관념들은 오직 편견, 자만심, 열정 같은 것이었고, 그것들이 이성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은 신성불가침한 것도 아니고, 신화보다 우월하지도 않다. 또한 파이어아벤트는 의견의 만장일치는 교회나 어떤 신화의 신봉자들에게나 적합할 수 있고, 의견의 다양성이야말로 객관적 지식을 위해 필수적이며 인간주의적 견지와 양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신의 논변을 근거로 파이어아벤트는 양자이론의 '숨은 변수' 해석의 타당성을 옹호했고, 점성수이나 부두교, 신앙요법처럼 완전히 비합리적인 접근이라 해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과학에서 어떠한 보편적 원리와 고정된 절차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과학의 우월성을 주장할 근거도 대단히 미약하다.
2.3 갈릴레이 사례연구
이런『방법에의 도전』의 주요 논변들은 관찰의 이론적재성 논변, 통약불가능성 논변, 이론증식 논변 등을 토대로하고 있으며, 이 논변들의 대부분은 그의 앞선 논문들에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진 주제들이다. 여기에 더불어 그는『방법에의 도전』에서 갈릴레이와 관련된 역사적 사례를 토대로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갈릴레이에 대한 사례연구는 갈릴레이 사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동시에 관찰의 이론적재성을 뒷받침하는 작업이다.
갈릴레이는 1610년 발표한『별의 사자』에서, 망원경을 통한 관찰에서 주어진 경험적 증거를 토대로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구조를 논박할 수 있으며,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구조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이 일상적 경험과 육안에 의한 감각적 관찰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및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과 서로 잘 부합하는 것 처럼 여겨졌다. 반면 코페르니쿠스의 지구운동설 및 태양중심의 체계는 육안에 의한 관찰에서 주어진 경험적 증거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부되고 있었다. 그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논증이 '탑의 논증'이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탑 위에서 떨구어진 돌이 탑 바로 아래 지면에 안착한다는 사실은 지구가 정지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만일 돌이 지면으로 향하는 동안 지구가 움직인다면, 돌은 탑보다 뒤쪽에 떨어져야 하는데, 돌은 수직선으로가 아니라 대각선으로 낙하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지구는 움직이지 않았음이 분명하며, 따라서 지동설은 물체가 지구에 수직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에 의해서 반증된다.
마찬가지로 갈릴레이가 자신이『별의 사자』에서 주장한 망원경에 의한 발견을, 코페르니쿠스의 실패와 달리 당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도 갈릴레이가 본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여기서 파이어아벤트는 갈릴레이가 세 가지 난점에 봉착하였다고 말한다:
1. 갈릴레이는 천상계의 물체들을 망원경으로 관찰한 거이 사실과 일치함을 설득할 만한 광학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2. 감각은 통상적인 조건 아래서 주의깊게 사용될 때 세계에 대해 신뢰할 만한 정보를 필연적으로 제공해준다는 당시의 철학적 믿음을 논파하기도 어려웠다.
3. 당시의 망원경은 여러가지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천체현상에 대한 만족스러운 보고를 제공하기 어려웠다.
결국 갈릴레이는 망원경에 의한 관측자료가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지지한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한 시각이론도, 광학이론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큼 충분히 정확한 망원경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논리실증주의의 권고대로 어떤 과학 이론이 더 잘, 많이 설명하는지를 판단한다면, 갈릴레이의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론과의 경쟁에서 패했어야 한다. 또한 포퍼의 권고를 따르더라도, 갈릴레이의 이론은 반증사례가 넘쳐났으므로 여전히 포기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관찰적 불일치와 이를 둘러싼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갈릴레이가 발견한 새로운 현상의 실재성이 받아들여지고, 코페르니쿠스 이론이 지지되어가는 수많은 수수께끼 같은 발전이 진행되었다. 이는 과학이론의 발전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이론은 기존 이론에 비해 원천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기에 그 이론이 어느 정도 발전할 때까지는 간단하게 반증해버리기보다는 그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이어아벤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론의 발전을 이론선택의 합리성이라는 구속복으로 제한하면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 그렇다면 갈렐리이의 이론이 점차 발전하면서, 과학자들 사이에 의견의 일치가 회복되고, 관찰의 일치가 차차 확립된 놀라운 변화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2.3.1 자연적 해석
파이어아벤트에 의하면, 사람들은 현상에 주목하고, 그것을 가장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것이 바로 '자연적 해석'이다. 자연적 해석이란 우리의 '감각작용에 개입하는 정신작용'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우리가 문화와 언어 등으로부터 습득한 '대상을 보는 방식 혹은 틀'이다. 자연적 해석은 우리의 관찰과정에 개입하여 그 과정의 일부를 이루고, 관찰내용을 표현하는 관찰언어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은 자연적 해석의 본성과 그 존재를 명백히 알기 어렵다. 그렇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모순되는 것은 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현상에 대한 자연적 해석이다.
이 점에서 파이어아벤트는 프톨레마이오스주의로부터 코페르니쿠스주의로의 변화를, 한 모둠의 자연적 해석이 다른 모둠의 자연적 해석으로 대체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갈릴레이는 사람들에게 코페르니쿠스주의라는 새로운 자연적 해석을 제공함으로써, 이를 토대로 새로운 경험을 형성하게 만들고, 다시 그것을 통해서 코페르니쿠스주의를 신봉하도록 유도했다. 따라서 갈릴레이가 옹호한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대한 승인은 이론의 변화뿐만 아니라, 무엇이 경험적 사실로 간주될 것인가에 대한 변화도 포함하고 있었다.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그러한 변화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를 겪고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코페르니쿠스 원리와 프톨레마이오스 원리를 함께 검토할 수 있게 되었고, 갈릴레오의 발견을 승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달리말하면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기초한 새로운 관찰언어를 도입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각은 탐구의 도구라는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파이어아벤트의 관점에서 볼 때, 한 모둠의 자연적 해석을 다른 모둠으로 대체하는 것은 한 모둠의 심적 작용을 다른 모둠의 심적 작용으로 대체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갈릴레이 이전의 통상적인 관찰자들은 그들의 문화적 배경, 일상적 경험, 언어 등으로 인해, 하나의 특수한 모둠의 관찰경험과 그에 대응하는 관찰언어를 갖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갈릴레이의『두 우주체계에 관한 대화』의 내용을 받아들인 관찰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프로그램화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모둠의 관찰경험과 관찰언어에 이를 수 있었다.
2.3.2 갈릴레오 사례에서 보여지는 관찰의 이론적재성과 통약불가능성
프톨레마이오스주의로부터 코페르니쿠스주의로의 변화는 자연적 해석의 변화이다. 그리고 자연적 해석은 이론적재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개념의 의미와 해석, 그 개념을 포함하는 관찰언어는 이론적 맥락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현상을 해석하는 근저에는 그 당시의 지배적 이론체계가 숨어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경쟁 관계에 있는 프톨레마이오스주의와 코페르니쿠스주의가 어떤 관찰언명도 공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경쟁 관계에 있는 이들에 대한 논리적인 비교는 불가능하다. 즉두 이론은 통약불가능하다. 따라서 두 이론 사이의 절충이 아니라 한 입장의 일방적 승리만이 가능했던 것이다.
3. 파이어아벤트에 대한 비판과 대응
파이어아벤트는 이론증식이 경험적인 부분을 증가 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 믿으며 이론증식을 통해 과학이론뿐만 아니라 창조과학을 비롯해서 부두교나 동양침술, 혹은 다른 원시적 이론 신화 등을 허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이어아벤트의 말처럼 어쩌면 부두교나 원시이론, 대체의학 등을 통해 서양과학이 밝히지 못한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이론증식이 거짓을 치대한 피하라는 인식론적 지침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론증식론이 거짓된 것들을 피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잘못된 미신, 거짓된, 혹은 체계적이지도 않은 허접해보이는 이론들이 파이어아벤트의 증식론에 의해 진지하게 다뤄지고 고민되어질 수 있다.
물론 파이어아벤트는 그러한 인식론적 지침 자체가 일종의 편견이며, 하나의 이론이 독단에 빠지면 경직되기 때문에 아마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비정합적인 이론들이라도 창안되고 개발되어야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파이어아벤트가 말하는 것은 잘 입증된 기존이론이 발견하지 못한 사실들을 대안이론을 통해 발견해낼 수 있기 때문에 대안이론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그 대안이론이 멍청한 이론이어도 상관없는지에 대해서는 논한 바가 없다. 결국 파이어아벤트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나 참고할 수 있는 점은 파이어아벤트 자신도 고집의 원리, 즉 선택한 이론이 부딪히는 실제적인 어려움들이 상당할지라도 그 이론을 고수하라는 충고가 정당함을 인정한다. 그 이유는 이론들은 발전할 수 있고, 개선될 수 있으며, 그 이론의 원래 형태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바로 그 난점들을 결국 해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이어아벤트에 의하면, 고집 원리의 채택은 증식 원리, 즉 기존 이론에 대한 대안 이론들을 도입하고 정교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리의 채택을 요구한다. 고집 원리의 채택이 증식 원리의 채택을 요구한다는 주장은 전자의 원리가 무제한적인 것으로 간주될 때 비로소 그 명분을 얻을 것이다. 이론을 무제한적으로 고집하는 일이 허용된다면, 사실들과 잘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이론을 제거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고, 따라서 대안 이론들의 모색과 제안을 유도하는 별도의 원리가 필요한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론이 충분히 정교화된 이후, 충분히 생산성있는 이론에 보다 집중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할 수 있을 것이다.
4. 전통적 과학관, 그리고 쿤과 파이어아벤트
쿤과 파이어아벤트는 함께 '새로운 과학철학자'로 묶인다. 실제로 양자는 모두 전통적 과학관에 대해 비판적이며, 통약불가능성 테제 등 유사해보이는 점도 상당하다. 그러나 이 둘은 명확한 입장차이를 보인다. 쿤은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반면, 파이어아벤트는 비합리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전통적 과학관, 그리고 쿤과 파이어아벤트의 의견차이를 영역별로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4.1 과학의 성장에 대한 견해
1. 전통적 과학관: 과학은 진리의 추구라는 목표를 지향하고, 과학적 지식의 변화는 그 목표를 향한 진보한다.
2. 쿤: 진보는 더많은 퍼즐풀이 능력을 가진 이론으로의 진보이다.
3. 파이어아벤트: 과학적 지식의 성장이란 끊임없이 증가하는 대안들의 증가이다.
4.2 방법과 방법론적 규칙의 역할에 대한 견해
1. 전통적 과학관: 지식의 성장은 일관된 방법과 방법론적 규칙에 의해 가능하다.
2. 쿤: 한 시기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방법론적 규칙이 있음을 인정한다.
3. 파이어아벤트: 방법론적 규칙들은 지식의 성장을 오히려 방해한다. 과학에 유일한 원리가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4.3 이론의 반박에 대한 견해
1. 전통적 과학관: 이론에 대한 반박은 이론과 경험적 증거의 질적·양적인 불일치를 대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또한 새로운 경험적 증거는 새로운 이론을 야기한다.
2. 쿤: 경험적 증거들로서의 변칙사례의 누적은 패러다임의 위기를 초래하며, 대안적 이론을 생각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3. 파이어아벤트: 이론의 반박은 대안적 이론의 도움을 얻어서야 비로서 가능하다.
4.4 의견의 일치에 대한 견해
1. 전통적 과학관: 정당화의 논리로서의 과학방법론에 의한 의견의 일치가 성립한다.
2. 쿤: 어떤 한 시기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성립하며,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과학자들 사이의 의견의 일치가 가능하다.
3. 파이어아벤트: 의견의 만장일치는 교회나 신화의 신봉자들에게나 적합하다. 오히려 의견의 다양성이 객관적 지식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4.5 이론선택에 대한 견해
1. 전통적 과학관: 확증도, 증거보강의 정도, 박진성과 같은 이론선택의 기준이 있고, 이것에 따른 논리적 연산방식에 의해서 이론 선택이 이루어진다.
2. 쿤: 과학자 집단이 이론 선택의 기준들을 공유하는데, 그 선택은 기계적인 적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학자 개개인의 주관에 의한다.
3. 파이어아벤트: 이론들 사이에는 불가통약성이 존재한다. 과학 상의 변화는 외적요인, 심미적 판단, 기호에 의한 판단, 형이상학적 편견, 종교적 소망 등 한마디로 우리들의 주관적인 희망을 말한다.
4.6 과학의 우월성에 대한 견해
1. 전통적 과학관: 이성적인 작업으로서의 과학은 비과학과 구분되고 다른 분야보다 우월하다.
2. 쿤: 과학은 합리성의 본보기이며, 다른 분야와 구별된다.
3. 파이어아벤트: 과학에서 이성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고 비이성이 배제될 수 없다. 과학은 신성불가침한 것도 아니고, 신화와 같은 것보다 우월하지도 않다.
4.7 합리적 대화의 가능성에 대한 견해
1. 전통적 과학관: 논리의 기본적 규칙을 준수하는 일이 과학에서의 합리적 대화의 필수적 조건이다.
2. 쿤: 과학자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결국 논증이 그들의 합리적 판단을 설득시킨다.
3. 파이어아벤트: 논리의 법칙을 위반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 대화의 능력을 증식시킨다.
4.8 합리성의 개념에 대한 견해
1. 전통적 과학관: 과학적 방법의 합리성은 논리성이다. 과학에서의 판단이 인간외적 기준에 의해서 이루어질 때 합리적이다.
2. 쿤: 과학자 집단의 합의의 합리성과 과학자들의 개인적 판단의 합리성이 있는데, 이는 지극히 인간적인 실천적 지혜의 합리성이다.
3. 파이어아벤트: 과학의 합리성은 인정될 수 없다. 과학은 비합리적 활동이다.
- 나머지 세 사람은 포퍼, 라카토슈, 그리고 쿤이다.
-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규칙을 우리는 '방법'이러고 부른다. 과학을 실천하는 규칙은 과학방법론이다.
5.『자유사회에서의 과학』,『이성이여 안녕!』: 다원주의와 상대주의
파이어아벤트가『방법에의 도전』에서 전개한 방법론적 다원주의의 귀결 중 하나임에도 이 책에서는 개진하지 않은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다. 한마디로 그것은 여러 종류의 과학이 있으며, 서구의 과학은 있을 수 있는 여러 과학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그는『자유사회에서의 과학』과『이성이여 안녕!』에서 이 주제에 집중했다. 이것은 그의 방법론적 다원주의가 지니는 정치적 함의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자유사회에서의 과학』에서 그는 보편적 과학이성 혹은 방법론을 반대하는 그의 논증을 반복하면서, 이를 여러 사례들로 확장해간다. 그가 말하는 자유로운 사회는 각 개인이 독립적이고 성숙한 사고를 하는 사회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는 그런 사회에서 과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 것인가를 논의한다.
그에 의하면, 산업사회에서 과학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게 된 주된 원인은 다른 지식의 형식과 비교해서 과학이 지니는 인식적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은 과학은 그 방법 때문에 우월하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그런데 사실상 엄격하게 적용되는 방법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과학적 지식이 다른 형태의 지식에 비해 우월하다는 주장은 철저히 검토되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형태의 지식은 과학에 의해 간단히 배제된다. 결국 과학적 지식은 아무런 정당화 없이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과학적 지식은 유리함과 불리함, 이득과 손해를 함께 품고 있는 지식의 한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민주국가에서는, 국가가 과학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모든 종교적 전통이 같은 권리를 누려야 하듯이, 모든 인식적 전통은 생존을 위한 동일한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는 그 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유리하도록 선호해서는 안된다. 서구 과학의 특별한 전통은 아무런 정당성 없이 다른 전통들을 압도해왔다. 그러므로 국가와 교회가 분리되었듯이, 이제 과학과 국가의 분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자유사회에서의 과학』의 주된 관심사는 근대과학이 마술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 같은 대안들에 비해 더 좋은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물론 파이어아벤트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무정부주의적 증식원리가 지니는 정치적 귀결을 논의한다. 여기서도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과학과 국가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과학은 여러 전통 혹은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일 뿐이다. 둘째, 자유사회는 여러 전통들 혹은 이데올로기들 사이에 평등함이 있는 사회다. 셋째, 교육, 의학 등에서 과학을 우월한 것으로 다루는 것은 다른 전통의 권리를 침해한다.
『이성이여 안녕!』은 방법론적 다원주의를 확장하여 문화적 상대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논변을 담고 있다.1 파이어아벤트에 의하면, 과학적 지식은 어떤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소적 이용물이고, 그것이 허용되기 위해서는 많은 협의가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과학은 수많은 제도 중 하나 일뿐, 건전한 정보의 유일무이한 저장고는 아니다. 또한 과학적 문화와 비과학적 문화를 비교할 때, 과학적 문화가 늘 우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과학 및 과학에 기초한 기술공학(IQ 테스트, 과학에 기초했던 의료나 농업, 기능 본위의 건축양식등등)이 다른 모든 시도를 능가한다는 주장은 가치, 사실, 방법, 어느 것에 의해서도 지지받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입수 가능한 정보를 공유하고 동일한 방법으로 논쟁한다고 해도, 여전히 긴장은 남아 있다. 그것은 가치 사이의 긴장이다. 이러한 긴장을 해소하는 데는 힘, 이론, 그리고 대립하는 그룹들 사이의 개방된 교류라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택해야 할 것은 세번째 방법이다. 이유는 이러하다. 과학에서의 이론적 승리는 도구, 개념, 논증, 기본적인 가정 등의 무기를 사용하여 달성되었는데, 그러한 무기는 지식의 진전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경쟁이 되풀이됨으로써 다른 결과가 생겨날 수도 있다. 승자가 패자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관념, 방법, 편견의 역사는 과학적 실천의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과학의 가치나 이용에 대한 결정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인 '실존적'이라고 불러 마땅한 결단, 즉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것인가에 관한 결단인 것이다.
여기서 그는 밀이『자유론』에서 제시한 다원주의의 원리를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그것은 어떤 관념이 테스트에 의해 불충분한 점이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그 관념을 유지하라는 견지의 원리와, 비록 기묘하게 보이더라도 새로운 개념을 생각해보라는 증식의 원리다. 파이어아벤트는 유럽의 여러 민족이 정체적 인류가 아닌 선진적 인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문화의 다양성이 주목할 만했기 때문이라는 밀의 견해에 동의한다. 파이어아벤트는 상대주의가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현상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나아가 인류의 진보를 가져올 다원주의적 지침이라고 보았다.
- 말년에 파이어아벤트는『자유사회에서의 과학』과『이성이여 안녕!』에서의 상대주의적 입장의 차이를 설명했다. 그는 두 책 모두에서 과학이 다양한 지식 중의 한 형태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즉, 앞의 책에서는 과학은 하나의 실재에 접근하는 여러 방식 중의 하나라는 생각과 지식(진리)은 상대적 개념이라는 생각을 합성했다면, 뒤의 책에서 첫번째 생각만을 이용하고, 두번째 생각은 제거했다는 것이다.
6.『킬링 타임』,『풍요로운의 정복』: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
파이어아벤트는 그의 자서전『킬링 타임』에서『방법에의 도전』을 두고 전개된 매도성 비판과 오해에 대한 그의 당당하고도 진솔한 답변을 기술했다. '과학의 최악의 적'이라는 과학자들의 세평에 대해 그는 과학이 대중적 통제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견지한다. 그가 보기에 과학은 이해관계로부터 그다지 자유롭거나 개방적인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합리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자신이 비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권위적이고 경직된 이성이라고 반박한다. 또한 그는 과학과 상식의 영역이 철학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철학자들의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단순한 이론과 규칙으로 복잡한 과학의 세계를 포착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는 것이다. 그는 철학적인 우매화의 횡포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려던『방법에의 도전』의 목표는 일반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간결한 스타일을 채택하지 못함으로써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한다.
한편『킬링 타임』에 나타난『방법에의 도전』에 대한 회고에서는 파이어아벤트의 문화철학적 관점이 묻어낟나. 그는 과학이 전체 인류문화에서 차지해야 할 적절한 비중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과학 자체를 위해서나 인류문화 전체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은 앎의 한가지 방식에 불과하고, 과학문화는 세계를 보는 하나의 태도이자 양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앎에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고, 그것들은 서구적 문명화에 의해 훼손되기 전에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과학적 태도와 방법은 자연현상과 그에 준하는 환경에 대해서만 유효하다. 그러므로 문화 전체가 과학화되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에게는 과학 의외에도 신화, 제의 ,종교, 예술, 문학, 철학이 골고루 필요하다. 우리는 세계를 예술적·미적 태도로 바라볼 수 있다.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도덕적 관심에서 논의할 수도 있다 .이것들은 세계를 대하는 각기 다른 태도와 지향이요, 상이한 사고와 방법이며 개념체계다. 그러므로 인류문화는 각각의 문화양식이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교향악과 같을 때 진정으로 의미있고 아름다워진다. 그는 과학과 형이상학, 과학과 예쑬, 과학과 신화, 이성과 비이성이 함께 작용할 때, 또 과학자들이 신화, 종교, 형이상학으로부터 영감을 얻을때, 오히려 과학이 과학다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오늘날 현대문화에서 과학은 지나치게 이데올로기화되어 있다. 따라서 자유롭고 다원화된 사회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인류사회를 다른 독단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보호해야 하듯이 과학의 지나친 양형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그가 과학에 대한 진화친 신화화, 과학 엘리트주의, 비민주적이거나 폐쇄적인 과학활동,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에 대한 지나친 신뢰, 과학에 대한 맹신과 중독, 과학에 대한 철학적 규범화, 지나치게 이성만 강조하여 자유로운 상상력을 잃게 하는 철학 등을 비판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바로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의 다원화된 문화를 뒷받침하는 문화철학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이것은 그가 '지적 아나키즘'이라고 이름 붙인 파이어아벤트 철학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생애 마지막 시기에 문화적 상대주의, 그리고 통약불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다. 그가 회갑논문집(Munevar ed. 1991)의 말미에 실릴 인터뷰「결론을 대신하는 비철학적 대화」(1989)에서 상대주의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이『이성이여 안녕!』을 쓸 무렵부터 변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비판자들은 1975년 혹은 1978년, 기껏해야 1987년에 그가 말한 것에 대해 논평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상대주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우선 상대주의란 말 자체가 다른 철학적 용어들과 마찬가지로 모호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는 열렬한 상대주의자입니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나는 분명히 상대주의자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내세웠던 상대주의적 관점에 철하걱 난점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는 생산적인 문화적 협력을 가로막는 지침으로서 앞으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문화적 상대주의는 다음의 전제를 포함한다. 첫째, 문화는 특수한 절차와 가치를 지닌 상대적으로 폐쇄된 단위이고, 그리하여 다른 문화가 그것에 개입하기 어렵다. 따라서 문화는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다른 문화에 의해 존중되어야 한다. 둘째, 각 문화들 사이의 통약불가능성은 문화들 사이의 장벽이 너무나 커서 서로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그러난 그는 위의 전제들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문화들 사이에는 활발한 교류가 있어왔고, 이를 통해 한 문화의 다양한 요소들이 다른 문화로부터 전달되고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문화 간에는 서로 넘지 못할 간극이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그는 문화가 상대주의와 객관주의 모두가 전제하는 것 이상으로 융통성을 지닌 것이라고 여긴다. 반면 상대주의와 객관주의는 문화에는 단일한 객관적 실제가 있다는 문화적 본질주의로 환원된다.
『킬링 타임』에서 우리는 상대주의에 대한 그의 마지막 입장을 엿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문화는 상호 작용하고, 변화하며, 그것의 안정되고 객관적인 구성요소를 넘어선다". 그는 인간이 문화적으로 상대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며, 그렇게 수집한 재료들을 어떻게 솜씨있게 변형시키는지를 고찰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모든 개별적인 문화는 잠재적으로 모든 문화다. 그리고 특정한 문화적 특성은 하나의 단일한 인간 본성의 변화 가능한 표현이다."
이러한 입장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귀결에 닿는다. 문화적 특유성은 신성불가침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 확립된 규범 내에서만 배타적으로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문화적 실천은 외부로부터,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또한 모든 문화에 고유한 변화의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애쓰기 전에 자기 자신이 변화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한다.
파이어아벤트의 이러한 결론은 마치 그가 흄의 자연주의로 돌아간 것 같은 인상을 남긴다. 그가 인간의 본성을 모든 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을 설명하는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극복하려는 파이어아벤트의 시도를 정당하게평가하는 일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파이어아벤트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인가>
프레스턴(J. Preston) 등은 파이어아벤트의 후기 과학철학의 입장들이 포스트모던한 성격을 띤다고 평가한다. 이런 점에서『풍요로움의 정복』등을 중심으로 파이어아벤트의 후기 과학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던한 주제를 검토해보자면, 파이어아벤트가 어떤 점에서는 '포모'1임에 틀림없지만, 포모이기에 그치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분명히 하는 것이, 포모에 대해 일반적인 적의를 품고 소위 '과학전쟁'을 도발하면서 파이어아벤트를 '과학의 최악의 적'으로 낙인찍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를 제대로 이해시키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반적 성격
이야기를 짧게 하기 위해, 먼저 과학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일반적 성격을 다음의 몇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포스트모더니즘은 형이상학적 본질주의와 토대주의를 거부한다. 토대주의란 지식은 선척적 제1원리나 감각적 경험이라는 확고한 기초를 지녀야 한다는 신념을 말한다. 과학에서의 모든 이론적 개념이나 명제가 경험적 사실을 기술하는 기록명제로 환원될 수 있을 때 의미를 지닌다는 환원주의는 토대주의의 한 양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러한 선천적 제1원리나 객관적 감각경험의 존재를 부정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형이상학적 본질주의와 토대주의를 거부함으로써, 다원주의와 복수주의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은 말의 의미란 비고정적이며, 근본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본다. 대신에 의미의 비고정성과 해체를 주장한다. 언어의 의미는 언어를 넘어서는 독립된 실재가 아니라, 인간의 담론세게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용법 혹은 쓰임새를 의미의 열쇠라고 본다. 과격한 입장을 취하는 해체주의는 사물을 명료화하고, 분류하고, 계통을 세우고, 체계 속에 포함시키고, 위계화하는 활동을 포기할 것을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말의 의미를 하나로 고정시킬 수 없는, 즉 다의적인 것으로 봄으로써 해석의 융통성과 다양성을 제시한다.
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은 거대담론을 거부한다. 특히 과학적 사고를 통해 인간, 사회, 역사를 통섭하는 거대담론을 형성할 가능성을 부정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과학 자체도 하나의 동질적 담론이 아니다. 세상에는 그 나름의 게임을 하고, 각기 할 일에 대한 나름의 국소적 규칙을 생성하는 다수의 학문활동들이 존재한다. 과학이라는 것도 다양한 연구 분야와 활동에 붙여진 공허한 상표일 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거대담론을 거부하는 한편, 다수의 국지적 담론의 공존을 인정하고 권장한다.
넷째,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의 방법론적 통일을 거부하고 나아가 학문의 통일을 거부한다. 학문의 통일을 지향하는 일은 보편적 과학의 논리와 방법이 확립될 수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하면 과학으로서 마땅히 적용해야할 규범적 상황이나 기준이 있을 수 없으며, 다른 학문들이 모방하고 따라야 할 보편적 과학의 논리와 방법이 성립할 수도 없다. 과학의 방법을 확장하여 다른 학문에 적용해야 할 정당성도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 문화활동에서 과학활동의 우월성을 부정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과 형이상학, 과학과 예술, 과학과 신화, 이성과 비이성의 융합가능성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담론이 철학적 담론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학문적 위계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반권위주의에서 포스트모더니스트는 새로운 개념적 위계의 체계, 모종의 새로운 인식론적 권위를 도입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철학은 인식론적 지침, 혹은 과학적 지식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일반규칙을 부여하는 인식론적 '경찰'로서 활동하는 기능을 상실했다. 그것은 철학의 역할변화를 기대한다. 이것은 탈중심화, 탈권위주의를 함의하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나름의 중요한 난점을 품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과학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부정하고 규범적 기준의 성립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상대주의, 회의주의, 비합리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2. 파이어아벤트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성격과 차이
이 모든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들에 대해 파이어아벤트는 어떤 입장을 취할까? 그의 후기 과학철학은 위의 모든 관점들을 내포하는 것이 분명하다.
우선, 환원주의에 대한 거부는 파이어아벤트의 전·후기에 걸친 일관된 입장이었다. 1962년에 이미 그는 환원에 대한 형식적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논파했다. 후기에도 그는 "주변적 지식 주장은 보다 근본적인 지식 주장으로 환원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기본적인 입자물리학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생각은 과학적 실천에 관한 사실이 아니고, 형이상학적 요청이다."라고 평가한다.
둘째, 언어에 의미에 대한 '의미의 맥락이론'은 그가 초기 작업에서 주장했던 이론이다. 그로부터 통양불가능성 테제를 이끌어냈다. 후기로 가면서 파이어아벤트는 의미의 불안정성, 나아가 애매성의 상존을 더욱 강조했다. 개념을 '분명치 않고, 불안정하며, 애매한 것'으로 여기고, 의미를 '근본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는 그의 입장은 포모들의 입장과 결코 다르지 않다.
셋째, 광범위한 일반화 대신에 특정한 사례연구를 강조하는 그의 과학철학 방법 자체는 거대담론에 대한 거부를 함의한다. 거대이론을 세운다거나, 체계를 확립하려는 시도는 그의 작업과 거리가 멀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방법론적·존재론적 다원론의 기반이 된다.
넷째, 학문의 비통일성은 그의 후기 철학의 중요한 주제였지만,『방법에의 도전』의 귀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방법론적 단일론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주제로 한다.『풍요로움의 정복』에서도 그는 "과학은 하나의 단일한 인식론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인식론을 포함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파이어아벤트에게 다원성은 과학 자체의 고유한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포모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과학을 '정당화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과학적 담론이 자율적이라고 믿는다. 물론 초기에 그는 철학적 작업을 통해 과학적 발전을 도모하려고 했지만 후기에 가서는 이러한 생각을 포기한다. 오히려 그는 과학이 일반 사람들에 의해 평가되고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어도 이러한 점들에서 파이어아벤트는 포모의 입장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역시 그는 포모들과 마찬가지로 반과학적 입장을 취하는가?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이 상대주의와 비합리주의로 귀결하는 것을 인정하는가? 바로 이 점에서 포모와 파이어아벤트 사이의 상이점이 발견된다. 그의 후기철학에서 파이어아벤트는 상대주의를 거부한다. 그에게는 그가 이미 반박했던 객관주의와 더불어 상대주의 역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 '포모'는 '포스트모더니스트'를 약간 빈정거리듯이 줄여서 일컫는 말이다. 어떤 대상을 '포모'라고 표현할 때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갖는 반과학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라카토슈 임레 Lakatos Imre>
라카토슈는 포퍼와 쿤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그는 포퍼의 영향을 받아 포퍼가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고 말을 할 정도였지만, 동시에 그의 반증주의의 난점 때문인지, 쿤의『과학혁명의 구조』를 대안적인 입장으로서 이해하였다. 그에 따르면 반증주의에 문제점은, 이론과 관찰이 모순되는 경우에 관찰언명이 폐기되고, 그 관찰언명과 모순된 이론이 유지된 사례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이점에서 그는 포퍼의 반증주의를 수정, 그것의 난점을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했는데, 그 과정에서 쿤과 포퍼의 공통점에 주목한 것이다. 라카토슈에 따르면 그 둘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1.) 귀납주의적 과학관에 반대, (2.) 관찰보다 이론에 우선권 부여, (3.) 관찰과 실험의 결과를 탐구하거나 해석하는 일, 그것을 승인하거나 거부하는 일은 이론 또는 패러다임을 배경으로 발생"
그러나 라카토슈는 쿤의 상대주의적 측면은 거부하며, 어떤 틀(연구프로그램)을 통해서 특정 사건을 정밀히 묘사한다는 과학의 보편적 장점을 인정하고자 했다. 즉 라카토슈는 쿤 이후 과학철학에서 주류된 입장으로 자리잡은 비합리주의를 비판하고 새로운 과학의 합리성을 제시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라카토슈는 과학에서의 이론선택의 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제한된 의미를 지니는 과학의 '합리성'을 논의했다. 그에게 '합리성'의 문제란 경쟁하고 있는 이론들 사이의 비교와 선택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반적 원리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와 동일하다. 합리주의에 따르면 경쟁하는 두 이론이 나타났을 때, 과학자들은 어떤 일반적 원리나 기준에 의해 한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우월하다는 판단을 하여 그 이론을 선택하게 된다. 반면 상대주의에 따르면 다른 이론과 비교하여 한 이론의 우월성을 평가할 수 있는 보편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과학이론을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는 기준은 개인과 사회에 따라 다르며, 개인이나 집단이 무엇을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하는가에 따라 과학을 탐구하는 목적도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라카토슈는 한 이론의 과학적 가치는 인간의 심리적 판단이 아니라 그 이론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객관적 지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라카토슈는 과학사 연구과 과학철학을 접목시켜, 쿤이 제시한 이론의 역사적 발전양상과 과학의 합리성을 동시에 인정할 수 있는 비교연구를 시도했다. "과학사가 결여된 과학철학은 내용이 없고 과학철학이 없는 과학사는 맹목이다"라는 라카토슈의 주장은 합리성(과학철학)과 과학사를 긴밀하게 연결시킨 방법론의 탐구가 자신의 목적임을 잘 나타내준다.이러한 문제의식을 해결하고자 한것이 그의 역작『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이다. 라카토슈에 따르면 '연구 프로그램'이라는 개념은 쿤이 제시한 패러다임의 사회적·심리적인 개념을 객관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1. 견고한 핵과 보호대: 연구프로그램의 개념적 구조
라카토슈는 포퍼가 직면한 난점이란, 하나의 이론이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명백한 반증이 어디에서 유래하는가를 밝힐 수 없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실제 과학사에서도 우리는 이론과 경험이 모순된 경우 관찰명제를 폐기하고 그 관찰명제과 모둔쇤 이론을 유지하는 사례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고 밝힌다. 다시 말해 과학사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이론이 반증 또는 반박된다고 해서 곧 폐기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시해야만 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반증주의 과학관에 대한 결정적인 도전이 된다. 반증주의가 제시한 과학론을 과학자들이 한치도 어긋남 없이 지켰다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전형적인 과학이론으로 받아들여져온 이론들은 그것이 제시되자마자 폐기되어버렸을 것이다. 뉴턴의 중력이론도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달의 궤도에 대한 관찰에 의해 반증이 되었지만 그 이론은 포기되지 않았다. 그외에도 수많은 반증사례가 발견되었지만 뉴턴의 이론이 폐기되지 않은 것은 과학의 발전을 위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뉴턴뿐만아니라 보어의 원자론, 동역학이론, 코페르니쿠스의 천문이론도 동일하다.
라카토슈는 쿤이 '정상과학 안에서의 과학자의 활동'이라고 말한 것이 실제 과학사와 일치한다고 말한 것이 타당함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점에서 라카토슈는 반증주의의 난점과 쿤의 상대주의적 성격을 보완하기 위해, '반증'은 단일이론과 실험 양자의 대결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는 이론들과 실험의 3자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즉 과학의 모든 부분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은 근본적이고, 어떤 부분은 그다지 근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론을 반증하는 수많은 변칙사례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것은 이론의 근본적이지 못한 영역에 대한 반박이므로, 그 이론을 완전히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폐기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핵과 보호대'이론의 논지이다. 이러한 입장은 반증주의에 대한 쿤의 비판을 수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곧 반증의 과정에 역사성을 부여하는 것이 된다.
라카토슈에 따르면 근본적인 부분(견고한 핵)이란, 특정 가설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기본원리이다. 이것은 그 연구프로그램이 전개되어 나가는 기초적인 지침이다. 그런데 라카토슈는 가설에서 명백한 실패가 발생하더라도, 견고한 핵은 반증이 불가능하며 잘못의 책임이 전가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모든 연구 프로그램은 견고한 핵으로 특징지어지기 때문에, 견고한 핵이 반증되거나 수정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에서 견고한 핵은, 지구와 행성은 고정된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지구는 지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번 자전한다는 가정이다. 뉴턴물리학에서 견고한 핵은 뉴턴의 세가지 운동법칙과 보편중력의 법칙이며, 맑스 유물론에서 견고한 핵은 사회변화는 계급투쟁에 의해 일어난다는 가정과 계급의 본질과 투쟁의 자세한 사항들은 궁극적으로 경제적 토대에 의해 결정된다는 가정이다.
그에 따르면 반증이 가능하며 이론의 실패에 책임을 가지고 있는 영역은 근본적이지 못한 부분(보호대)이다. 이는 기본원리를 보강하는 보조적 가정들을 말한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에서 초기의 원형궤도에 많은 주전원을 보완하는 것, 지구로부터 별까지의 거리에 대한 기존의 어림값을 변경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즉 관찰을 통한 반증사례에 발견은 연구프로그램의 견고한 핵 영역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보호대에 대한 반박이다. 따라서 반증사례가 발견될 경우, 프로그램의 예측과 관찰과 실험의 결과 사이의 일치를 개선하기 위한 수정이 가능하다. 요컨대 단일 프로그램 안에서의 연구는 다양한 가설을 덧붙이거나 명확하게 함으로써 보호대를 확장하거나 변형하는 과정이다.
2. 연구지침: 연구프로그램의 방법론적 구조
라카토슈는 포퍼의 반증주의와 쿤의 역사주의적 과학관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자신의 '연구프로그램 방법론'을 계승하였다. 연구프로그램이란 핵심이론 A에 이르는 여러 이론들의 계열을 의미하는데, 쉬운 이해를 위해 비유하자면 쿤의 패러다임 개념과 미묘하게 유사하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개념적 구조와 더불어 방법론적 규칙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방법론적 규칙은 연구자들이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를 지시해주는 소극적 지침과,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를 지시해주는 적극적 지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프로그램의 소극적 지침은 그 포로그램의 기본전제, 견고한 핵은 반증되거나 수정될 수 없다는 규정을 포함한다. 즉 소극적 지침은 견고한 핵에 수정을 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충고한다. 견고한 핵과 일치하지 않는 경험적 사실이 발견된다고 할지라도 이를 근거로 하여 견고한 핵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 대신 연구자들은 그 프로그램의 견고한 핵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반증으로부터 프로그램을 보호하고,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실험적이고 수학적인 적절한 기법등을 이용하여, 기존의 보조가설을 가다듬거나 새로운 보조가설을 만들어내어 견고한 핵을 반증에서 보호해야 한다. 이처럼 견고한 핵은 항상 보조가설의 보호대에 의해 보호받는다. 예컨대 19세기에 천체물리학자들은 천왕성의 궤도가 뉴턴역학의 예측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뉴턴역학을 반증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경험적 근거도 없이 새로운 행성인 해왕성을 천왕성 바깥에 설정하여 이 해왕성이 천왕성을 끌어당긴다고 설명하여 뉴턴역학을 '구제'하고자 했다. 포퍼에 따르자면 이는 비합리적인 이론 수정처럼 보이지만1 실제로는 새로운 행성의 발견과 뉴턴역학의 승리라는 과학적 진보의 주요한 사례가 되었다.
연구프로그램의 견고한 핵은 결코 손상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 연구프로그램이 영구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새로운 프로그램이 등장하게 될 것이고 기존의 연구 프로그램은 소멸하게 될 것이다. 물론 경쟁관계에 있는 두 연구프로그램은 그 핵이 가지고 있는 가정과 정의적 특성이 전혀 다른 것이어야 하며 보통 한 연구프로그램에 대해 새로운 불일치 현상이 발견될 때마다 보호대가 적절하게 대응하게 되면 그 이론은 발전하게 되며, 그렇지 못하면 퇴행하게 된다. 이 경우 전자를 전진적 연구프로그램이라고 하며, 후자를 퇴행적 연구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전진적 프로그램은 참신한 현상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예측을 더 많이 하였다는 의미에서 퇴행적 프로그램보다 개선된 것이다.
3. 라카토슈 방법론의 의의
라카토슈는 '세련된 반증주의'의 관점에서 '반증'과 '구획기준'을 해석하면서 이러한 재해석과 일치하는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을 제시했으며, 이 방법론은 그동안 행해진 과학사 연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과학의 합리성을 지지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라카토슈의 연구프로그램 방법론의 가치는, 반증이 아니라 참신한 예측과 그것의 입증에 의존한다. 여기서 참신한 예측이란, 특정 시간에 잘 알려져 있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식에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그러한 지식과 충돌하는 한 예측을 의미한다. 만일 한 연구프로그램이 현상을 성공적으로 참신하게 예측하는 경우에 한해 다른 패러다임보다 우월하다. 연구프로그램은 미래의 연구를 인도할 정도로 정합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진적인 연구 프로그램은 정합성을 유지하고 참신한 예측을 가져오며, 퇴행적인 연구프로그램은 정합성 상실하고 예측에 실패한다. 이 경우 과학혁명은 전진적인 프로그램이 퇴행적인 프로그램을 대치할때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이다. 예컨대 뉴턴역학이라는 프로그램은 천왕성 궤도의 초기 계산에서 예측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 진행을 위해서 여러가지 참신한 예측(가상의 행성 해왕성)을 가정했으며, 그것을 입증함으로써 과학혁명을 일으켰다.
라카토슈는 역사를 통해서 방법론을 시험하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과학에서 즉각적인 합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구프로그램에는 발전할 시간이 주어지고, 퇴행의 기간을 거친 뒤에 다시 진보할 수도 있으며, 초기에 성공하였다가 뒤에 퇴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가 다시 진보적인 프로그램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신념으로 퇴행적인 프로그램에서 연구를 계속하는 일은 비합리적이거나 필연적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역사가들은 연구 프로그램을 찾아내고, 그것들의 견고한 핵과 보호대의 특성을 기술하며, 그것들이 전진적이었는지 퇴행적이었는지를 기록함으로써 과학의 합리성을 평가한다. 라카토슈는 이런 의미에서 "과학사 없는 과학철학은 내용이 없고, 과학철학 없는 과학사는 맹목이다."이라고 말한 것이다.
4. 라카토슈 방법론의 문제점
라카토슈의 방법론은 역사를 회고함으로써만 판단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서 현재의 과학적 판단을 인도하는 방법론적 지침은 무엇인가? 그리고 정말로 견고한 핵이 과학사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다시말해, 방법론적 결정에 의해서 견고한 핵이 반증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 실재하는 규칙인가? 과학자들이 때때로 이론이나 프로그램의 근본적인 부분을 조절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라카토슈 방법론의 반례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5. 다른 과학철학자들과의 관계
5.1 쿤과의 관계
쿤은 과학사에는 패러다임 단위의 경쟁, 비교가 일어나며, 패러다임 사이의 비교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반면 라카토슈는 과학에서의 경쟁과 비교는 연구프로그램 단위로 이루어지며 이들 사이에 비교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쿤은 사회적 요인을 중시하며 과학의 발달이 과학자 사회에서 학자들 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발달한다고 보며, 경쟁에서 밀려난 패러다임은 폐기된다고 보지만, 라카토슈는 퇴행적 연구 프로그램이 되었어도 재기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5.2 포퍼와의 관계
라카토슈는 자신이 세련된 반증주의자이며, 칼 포퍼를 소박한 반증주의자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포퍼의 반증주의는 단기적이다. 반증하는 사례가 나타나면 즉각적으로 기존의 이론을 폐기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반면 라카토슈는 수많은 변칙 사례가 나타나도 그 이론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이 나타나기 전에는 폐기되지 않음을 주장했다.
5.3 파이어아벤트와의 관계
파이어아벤트는 다른 누구보다도 라카토슈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 과학철학자였다.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어느 날 라카토슈가 자신은 과학적 방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쓰고, 파이어아벤트는 왜 쓸모없는지를 써서 함께 묶어 책을 내자고 제안했다. 결국 두 사람은『과학방법론을 위하여, 그리고 반대하며』라는 책을 함께 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라카토슈가 1974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파이어아벤트는 결국 자신의 부분만 홀로 출판하게 되는데, 이 책이 파이어아벤트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반 과학방법론』이다.
구체적으로, 파이어아벤트와 라카토슈는 과학이론에 위배되는 경험적 증거가 나타날 때 반증시켜버릴 것이 아니라, 이론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러나 라카토슈는 합리적 이론평가를 강조한 점에서 파이어아벤트와 명확히 구별된다. 라카토슈는 이론 평가를 그 이론 자체가 아니라 그 이론의 역사적인 발전 양상을 그 이론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이론의 역사적 변화 양상과 비교하여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파이어아벤트처럼 과학방법론에 비판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다만 포퍼도 반증위기에 처한 이론을 수정할 지의 여부는 방법론적 판단을 요구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국의 경험론/blog.naver.com/czech_love (0) | 2020.06.18 |
|---|---|
| 독일관념론/blog.naver.com/czech_love (0) | 2020.06.18 |
| 매체철학/blog.naver.com/czech_love (0) | 2020.06.18 |
| 구조주의/blog.naver.com/czech_love (0) | 2020.06.17 |
| 현상학/blog.naver.com/czech_love (0) | 2020.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