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개요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 1938~2002)은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30여 년 동안 재직하다가 2002년 1월 23일, 1994년부터 앓아오던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앨런 데쇼위츠(Alan Dershowitz)는 노직이 죽기 일주일 전까지 동료들과 토론하는 등 "마지막 순간까지 재기가 넘치고 영민했다" 고 회고한다.1 순수 철학적 논의에 평생을 몰두했던 노직은 생애에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처녀작이자 유일한 정치철학 저서인 『아나키,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Anarchy, State, and Utopia, 1974, 이하 『유토피아』 와 ASU )엔 그의 이러한 재기와 예리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2 노직의 『유토피아』는 정의(justice)나 자유(liberty)와 같이 자칫하면 모호하고 난해할 수 있는 정치철학적 주제들을 날카롭고 명석한 분석을 통해 명료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관적이고 호소력 있는 사례를 들어 설득력 있는 논의를 전개한다. 이러한 매력 덕분에 노직의 유토피아 는 1975년 전국저술가상(National Book Award)을 수상하였고, 이후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 100권에 선정되었다.3
세 개의 프로젝트를 토대로 저술된『유토피아』는 개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자유지상주의(liberatarianism)를 핵심 원리로 제시한다.4 권리론의 한 극단적 형태인 자유지상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상정하고서 이를 위반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직은 개인이 어떠한 권력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없는 존엄한 존재이며, 이러한 존엄성이 보장되는 정치체제는 개인의 동의에 근거한 최소 국가(minimal state)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여 소득 재분배를 반대하는 노직의 최소 국가 논의는 당대에 지배적이었던 재분배 정의론을 제시한 존 롤즈(John Rawls: 1921~2002)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었으며, 이후 정치철학의 논쟁을 이끄는 한 축이 된다.5
1.『유토피아』의 내용
개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최소국가(minimal state)를 옹호하는 노직의 기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가 부도덕하다고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들과 확장적(extensive) 기능을 가진 국가를 옹호하는 논객들의 도전 모두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최소국가가 바람직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유토피아 는 무정부 상태(anarchy)로부터 최소 국가가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는 논변(1부),이러한 최소 국가에서의 정당한 분배 정의는 재분배 정의론이 아닌 소유권적 정의론(entitlement theory of justice)이라는 논변(2부), 그리고 최소 국가가 개인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유토피아의 토대를 제공한다는 논변(3부) 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최소 국가에 대한 정당화
노직은 무정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개인들은 권리를 가지며, 어 떤 사람이나 집단도 이들에 대해서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이것을 하게 되면 권리침해가 된다)"고 주장하지만 무정부주의자들과 달리 국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국가 형태를 제시하고자 한다.(ASU, p. ix) 왜냐하면 무정부 상태인 자연 상태(state of nature)는 한 개인이 자신의 사적 판단으로 자연권을 행사하여 다른 개인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상호보호하는 협회를 구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협회는 구성원들의 상호 보호 요청에 항상 대기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들은 상업적인 보호 기구의 서비스를 구입하여 보호받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이러한 상업적인 상호 보호 협회들은 지역적으로 나뉘게 되고 각 지역에서 합병 등을 통해 지배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독점적 형태가 극소 국가 (ultra-minimal state)이다. 이러한 극소 국가에서는 이에 가담하고 비용을 부담하는 회원만이 보호받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보호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적 영역에 남아 있는 독립인은 극소 국가의 회원에게 잠재적으로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독립인이 자연 상태처럼 자신의 결단에 따라 극소 국가 회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독립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이들을 극소 국가에 소속시키기 위해, 노직은 독립인에게 자연권 행사를 포기하는 대가를 보상함으로 모든 개인들을 흡수하여 극소 국가로부터 최소 국가로 이행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행 과정을 통해 노직은 개인의 권리 침해 없이, 무정부 상태인 자연 상태에서 나타나는 "폭력과 절도 사기와 계약의 강제 등으로부터 보호라는 한정된 기능에 국한된 최소 국가"가 성립된다고 주장한다.(ASU, p. ix)
2) 소유권적 정의론
노직은 자연 상태로부터 권리 침해 없이 최소국가가 성립함을 보여 모든 국가가 부도덕하다는 무정부주의자의 도전에 응수한다. 그런 후에 노직은 소유권적 정의론(entitlement theory of justice)을 통해 확장적 기능을 가진 국가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도전에 대응한다. 노직에 의하면, "개인은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칸트의 기본 원칙 … [에 입각해서 볼 때] … 개인의 동의 없이 타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개인이 이용되거나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ASU, pp. 30~31) 이러한 칸트적 원칙은 강력한 권리 이론을 요청한다. 왜냐하면 권리가 우리의 존재 각각을 긍정해 주,며 따라서 타인을 위한 수단이 아닌 독특한 개인이라는 존재를 진지하게 고려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리 이론에 근거해서, 노직은 정당하게 소유물을 취득하였다면, 강제나 사기가 아닌 이상 소유물을 자신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는 자기 소유권 원칙(the principle of self-ownership)에 입각한 정의론, 즉 소유권적 정의론을 제시한다.
노직은 공리주의적 정의론이나 롤즈의 정의론과 같은 기존의 분배 중심의 정의론은 소유 과정에 대한 역사적 검토 없이, 정의로운 분배를 각자의 노동, 필요 가치 등의 특정한 정형(pattern)을 추구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분배 원리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기존의 분배 정의에서는, 예를 들어 부지런하게 노력하고 절약하여 부유하게 된 사람이 단지 현재 많은 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게으르고 사치스럽게 낭비해 가난하게 된 사람을 위해 필요와 같은 특정 정형을 위해 자신의 소유 일부를 국가에 강제로 내어 놓아야 하는 권리 침해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노직은 이러한 기존의 분배 정의는 "개인들의 삶에 대한 계속적인 [권리] 침해 없이는 지속적으로 실현" 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ASU, p. 163)
기존의 정의론이 분배 문제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소유의 문제를 중심으로 정의론을 논의하는 노직은 정의로운 상황으로부터 정의로운 단계를 거쳐 발생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 자체로 정의롭다는 역사적 관점의 정의론을 제창한다. 이러한 노직의 소유권적 정의론은 세 가지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정의로운 최초 취득의 원칙(a principle of just initial acquisition)이다. 노직은 정당한 소유가 성립하려면 소유를 발생시킨 최초의 획득이 역사적으로 정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이전의 원칙(a principle of transfer)이다. 이 원칙은 정당하게 획득한 소유는 개인의 자유로운 동의로 이전될 때 역시 정당하다는 것이다. 노직은 당대의 유명 농구선수인 챔벌린(Wilton Norman "Wilt" Chamberlain)이 자신의 경기에 입장하는 관객들로부터 25센트의 추가 비용을 받기로 관객들과 자유롭게 계약하였다고 가정하고, 만약 100만 명이 챔벌린의 경기를 관람하여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250,000달러의 수익을 올리게 되더라도 이 소유는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정의롭게 획득된 소유물에 대한 개인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거한 이전은 정의롭고 정당하기 때문이다 셋째, 부정의 교정 원칙(a principle of rectification of injustice)이다. 노직은 만약 소유물이 부정의하게 획득되거나 부정의하게 이전된다면 자기 소유권 원칙을 행사할 수 없고, 이러한 부정의가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직에게 있어서 아무도 그 사람의 동의 없이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을 수 없으며, 타인의 생명과 신체에 해를 가할 수 없고, 또한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의 재산을 가져갈 수도 없다. 따라서 자유와 재산에 대한 권리가 침해받았다면 이를 교정해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노직은 주장한다.
노직에 따르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은 사람들의 자발적 동의에 의해 이루어진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노직은 개인의 동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세금은 일종의 강제 노동이며 강탈로 노예화에 해당하기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직은 "최소 국가 그 이상의 모든 확장적 국가(extensive state)는 특정한 일을 하도록 강요되지 않을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것이며, 정당화 될 수도 없다" 고 주장한다.(ASU, p. ix) 확장적 기능을 가진 국가가 필연적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노직의 소유권적 정의론은 최소 국가를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 이러한 최소 국가는 유토피아 그 자체는 아니지만, 유토피아적 토대(framework)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3) 유토피아
노직의 최소 국가 논의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강제로 세금을 부여하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정책을 반대한다. 하지만 노직은 개인의 자발적인 자선행위에 반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개인 소유권을 행사하는 훌륭한 방식이라고 권장한다.(ASU, pp. 265~268) 노직이 비판하는 것은 개인의 권리를 강제하는 행위이지 좋은 삶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노직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가치관에 입각한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삶이 각자가 최선의 세계로 간주하며 자신의 합리적인 결정에 의하여 계속 살고 싶어 하는 삶 즉 유토피아의 삶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유토피아 논의가 단 하나의 규정된 좋은 삶을 제공하여 그 규정에 동의하지 않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있었다면, 노직의 유토피아는 단 하나의 형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바람을 담아낼 수 있는 복수의 형태이다. 따라서 노직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각자의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권리가 존중되고 침해되지 않는 최소 국가가 이러한 다양한 유토피아를 위한 토대가 된다고 주장한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이상향을 추구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가입할 그런 자유가 보장되며, 누구도 자신의 유토피아적 이상향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그러한 삶이 최소 국가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노직은 최소 국가가 옹호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노직은 "최소 국가는 우리를 불가침의 개인들로 간주한다. 우리는 이 국가 안에서 도구나 수단이나 자원으로 타인에 의해 이용될 수 없다. 최소 국가는 존엄성을 가진 개인적 권리의 소유자인 인격으로 우리를 간주한다. 우리의 권리들을 존중함으로써 우리를 존중하는 최소 국가는, 개인적으로 또는 우리가 선택하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우리의 삶을 선택하고 우리의 목표와 스스로가 바라는 이상적 인간상을 실현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실현과정에서 우리와 동일한 존엄성을 지닌 다른 개인들의 자발적인 협동의 도움을 받는다. 어떤 국가나 개인들의 집단이 감히 그 이상 또는 그 이하를 수행할 수 있는가?"라는 웅변적인 호소로 『유토피아』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ASU, pp. 333~334)
2.『유토피아』의 의미
노직의 유토피아 는 자유지상주의의 필독서로 간주되며 정치철학의 중요한 명저로 널리 인정되지만, 노직의 논의를 추종하고 옹호하기 보다는 이를 비판하는 학자들과 대중들이 대부분이다.6 『유토피아』가 확장된 국가의 한 형태인 복지 국가를 부정하고 타인의 궁핍과 고통에 너무도 냉담한 채로, 현실의 소유권을 옹호하려는 지배자들의 논의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현실의 소유권을 옹호하려는 논의가 아니라, 이를 검토할 규범적 토대로서의 이상론(ideal theory)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노직의 최소 국가는 현실의 부정의를 제거한 상태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지향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직은 "우리의 [부정의한 획득과 이전으로 인한] 죄에 대한 벌로서 사회주의를 도입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 할 수 있겠지만, (인류 역사에서 저질러진) 과거의 불의들은 너무 심각하여 우리는 이를 교정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볼 때는 보다 확장적인 국가를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고 말하고 있다.(ASU, p. 231) 이러한 언급은 당대 롤즈의『정의론』보다도 더 확장된 국가를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전히 소유 과정의 부정의가 팽배한, 오히려 더 심화된 현대 사회에서 부정의한 현실을 옹호하는 논리로 노직을 이해하는 것은 노직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소산이거나 현실의 부정의를 노직을 통해 옹호하려는 교묘한 술책으로 보인다, 모호하고 흐릿한 구조적 부정의 속에서 개인이 무기력해지기 쉬운 오늘날 현실의 부정의를 분별하고, 제거하려는 현대인들에게 노직의『유토피아』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유토피아를 향한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 http://news.harvard.edu/gazette/2002/01.17/99-nozick.html
- Robert Nozick, Anarchy, State, and Utopia, Basic Books, 1974. 본서의 내용을 언
급할 때는 본문 중에 원서의 약어인 와 페이지 번호를 함께 표시한다 ASU . - http://www.nationalbook.org/nba1975.html#.Vi14SNLhCJA
- Ralf M. Bader and John Meadowcroft, "Introduction," The Cambridge Companion to Nozick's Anarchy, State, and Utopi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p. 1.
제1부인 "자연 상태론 또는 의도적 노력 없이 어떻게 국가가 성립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 은 자유지상주의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앤 랜드 (Ayn Rand)의 이론에 대해 비판적 고찰인 그의 "On the Randian Argument"(1971) 논문과 노직이 스탠포드 학생들에게 자연상태로부터 어떻게 국가가 성립될 수 있는지에 대해 발표했던 논의에 기반을 둔다. 제2부인 "최소 국가를 넘어서서?" 는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던 존 롤즈 ?(John Rawls) (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 1971)에 대한 비판 형식으로 1971년 하버드대학에서 마이클 왈쩌(Michael Walzer)와 공동 강의했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강좌를 토대로 저술되었다. 3부인 "유토피아" 는 미국 철학회(the American Philosophical Association)에서의 패널 토의에서 발표했던 유토피아 논의와 관련되어 있다. - 롤즈의 『정의론』 에 대한 소개는 "가장 합당한 자유주의를 위하여: 롤즈 정의론의 배경, 내용, 특징과 논점들 (주동률, 『철학과 현실』 2008년 여름호)을 참고하기 바란다.
- Jonathan Wolff, Robert Nozick: Property, Justice and the Minimal State, Polity Press. 1996. (장동익 번역, 『자유주의 정치철학』, 철학과 현실사,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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