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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희신랑래회(喜申郞來會).李敏求/cafe.daum.net/jangdalsoo

넘어가지 않던 밥도 마주 앉아 먹으니 한 술 더 먹게 되고, 밍밍하던 시골 막걸리도 마실수록 맛나다.

少食輒防喉 對案飯加匕 村醪薄無過 屢觴覺轉美
소식첩방후 대안반가비 촌료박무과 누상각전미

 

 

철성에서 서울까지 / 鐵城去京師
길이 천백 리나 떨어졌지 / 道阻千百里
일찍이 유배 가는 사람 보면서 / 嘗觀謫戍行
서쪽 바라만 봐도 이가 시렸는데 / 西望已酸齒
내가 쫓겨 올 적에는 / 自余放逐來
먼 길이 가까운 길 같았네 / 涉遠如涉邇
때로는 돌아가는 꿈 꾸지만 / 時雖夜夢歸
가지 못하고 중로에 그쳤지 / 未及中路止
자네가 지금 나를 생각해 찾아오니 / 君今念我至
말은 병들고 마부도 일어나지 못하네 / 馬病僕不起
만남을 어찌 바라지 않았으랴만 / 相見豈非願
거리 멀어 힘들게 하였으니 부끄럽다 / 地遐愧跋履
관산을 이미 넘기 어려운데 / 關山旣難越
몇 곳에서 바람과 물 맞섰을까 / 幾處逆風水
게다가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때라 / 況兼秋冬交
찬 서리가 옷을 파고들었겠지 / 天霜逼衣被
몸 돌보지 않고 만남을 중히 여겼으니 / 輕身重會面
옛사람 중에도 누가 이런 의리 있었나 / 此義古誰似
오랜 병으로 침상에 쓰러져 있었는데 / 久痾廢在床
문으로 달려 나가니 걸음 가볍고 / 走門便步屣
조금만 먹어도 목이 막히더니 / 少食輒防喉
밥상 마주하자 밥 더 먹게 되네 / 對案飯加匕
촌 막걸리 맛도 없지만 / 村醪薄無過
마실수록 더욱 좋구나 / 屢觴覺轉美
날 추워 얼음과 눈 안고 있지만 / 氣寒抱氷雪
땀이 나서 살결 적시고 / 渫汗淪肌理
나직한 집 구덩이보다 작아도 / 矮屋小於穽
밝고 넓어 죄인에겐 충분하네 / 昭曠豁羈累
가시 울타리가 초가집을 높이 둘렀어도 / 棘籬聳茅楹
밝은 햇살이 처마에 비추네 / 煕陽耀簷晷
궁벽한 시골이 번화가로 변하고 / 窮荒變康莊
서울이 지척처럼 느껴지네 / 輦轂由尺咫
전원을 마치 직접 오르내리며 / 田園若登降
역력히 두루 살펴보는 것 같네
/ 歷歷周覽視
다정한 벗들과 술 나누던 이들 / 交懿若獻酬
하나하나 직접 만난 것 같네
/ 一一親汝爾
아이들과 헤어진 지 여러 해인데 / 兒女別多年
어여쁘게 잔치의 즐거움 주는 것 같네 / 婉孌供宴喜
근심스런 눈에 늙은이 눈물 가시고 / 愁眼霽衰涕
서글픈 속내 맑은 물에 씻어낸 듯하구나 / 悲腸濯淸泚
이제야 알겠다 만 번 죽을 몸 / 始悟萬死軀
살아남아 기다림 있었음을 / 餘生故有俟
즐거움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으니 / 爲懽齊久速
열흘 동안 평소의 바람대로 흐뭇했는데 / 浹旬諧素企
하루아침에 헤어지니 / 解携終一朝
입을 막고 오래 버려두리라 / 塞兌甘長委


- 이민구(李敏求, 1589〜1670), 『동주집(東州集)』4권 「희신랑래회(喜申郞來會)」

신랑(申郞)은 이민구의 사위이며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의 아들인 신변(申昪, 1610~1664)을 가리킨다


해설
이민구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시(子時), 호는 동주(東洲) 또는 관해도인(觀海道人)이다. 『지봉유설(芝峯類說)』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이수광(李睟光)의 아들이다. 진사시와 증광문과(增廣文科)에서 모두 장원한 실력자다. 이괄의 난이 평정된 뒤 36세의 나이로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는 영예를 누렸지만,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가 함락되자 문책받아 평안북도 영변에 유배되었다. 영변에서 7년, 아산에서 3년의 유배 생활을 보낸 뒤 관직에 복귀하지 못한 채 불우한 삶을 마치고 말았다.



인용한 글은 그가 유배객으로 영변에 머물 때 지은 시의 일부다. 제목은 ‘신 서방이 오니 좋구나’ 라는 의미다. 장인과 사위? 퍽 반가울 법한 사이도 아니고, 내심 반갑더라도 만면희색(滿面喜色)으로 좋아라 할 사이도 아닌 듯하다. 그러나 친지와 가족을 떠나 객지에서 쓸쓸히 생활하는 유배객 신세라면? 깊은 골짜기에 숨어 사는 사람은 누군가의 발소리만 들어도 기쁜 법이라는 장자(莊子)의 말처럼 더없이 반가웠을 것이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앓아누웠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마중까지 나갔다. [久痾廢在床 走門便步屣] 혼자 먹을 때는 조금만 먹어도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던 밥이 사위와 마주 앉아 먹으니 평소보다 많이 술술 잘 넘어가고, 밍밍하던 막걸리도 주거니 받거니 함께 마시노라니 맛나기만 하다. 이렇게 그는 반가운 마음을 생동감 있게 읊어 냈다. 사위가 속으로 흉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했던가? 나름 자부심과 포부를 지녔던 사람이 유배객 신세가 되었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함께하는 즐거움을 저렇게 절실히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동안 ‘대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혼술’, ‘혼밥’이 등장하더니 의도한 일은 아니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까지 왔다. 겨울에나 간혹 착용하던 마스크를 한여름에도 착용하고, 악수는 주먹 인사로 바뀌었다. 식사를 함께해도 한 그릇에 담긴 반찬을 서로 집어 먹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명절 귀향 자제를 당부하며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웃지 못할 말도 등장했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잃고 나서야 소중한지 몰랐던 일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잃기 전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이제 위드 코로나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 회복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함께’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은근히 기대한다. 이런 불행이 다시 반복되지 않고 함께라서 좋은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글쓴이정만호
충남대학교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