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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기독교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 -알리스터 맥그래스를 중심으로- /임영동.백석문화대

 [한글초록]

본 연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든 현 시대에 긴박하게 다루어야 할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자연계시)의 조화에 관한 것이다. 이는 특별 계 시를 통한 일반 계시를 드러내는 종전의 방식과 달리 일반 계시를 통해 특 별 계시를 더 풍성하게 하고 확고하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본 연구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분자생물학자 이자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E. McGrath)의 󰡔과학 신학』2)을 중심으로 전개한다. 

 

       2) Alister E. McGrath, The Science of God (Grand Rapids: Willam B. Eerdmans Publishing Co., 2004). 이 책은 맥그래스의 작품 중, ‘자연,’ ‘실재,’ ‘이론’ 이라는 삼부작을 통합적으로 주요 부분만을 다룬 책이다. 번역본 표지에도 ‘과학 신학’으로 되어 있는 데, 맥그래스는 ‘Theology of Science’가 아니라 주로 ‘Scientific Theology’ 즉 ‘과학적 신학’으로 사용한다. 이는 폴킹혼 (John Polkinghorne, 1930~2021)의 용어인데 맥그래스에게 있어서 ‘철학은 신학의 시녀’(ancilla theologiae) 역할을 한다는 데에서 착안한 것이다.

 

본 논문은 맥그래스를 중심으로 크게 두 가지의 주제로 연구해 나가고자 한 다.

첫째, ‘기독교 계시의 역사와 정의’이다. 이는 ‘기독교 자연신학을 위 한 과학적 방법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매우 필요한 부분이다. 여기에는 특 별 계시와 일반 계시의 두 양태를 일원론적 인식론으로 설명하면서 하나 님의 특별한 방식으로서의 계시를 드러내려 한다. 맥그래스는 근현대의 여러 계시인식론 모델을 고찰하면서 기독교 계시의 역사가 어느 시점까 지 논의되어 왔는지를 밝힌바 있다.3) 맥그래스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가 오히려 일반 계시를 통해 더 확실하고 풍성하게 드러난다고 보면서 후험 적 계시인식을 중요시 했다. 이러한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의 관계성, 혹 은 ‘일원론적 인식’ 4)은 기독교 자연신학의 기초를 놓는 새로운 방법론적 토대가 될 것이다.

 

           3) McGrath, 『신학이란 무엇인가?』, 김기철 옮김 (서울: 도서출판 복 있는 사람, 2016). 365~375 참조.

           4) 필자가 언급한 ‘일원론적 계시 인식’ 이라는 말은 범신론처럼 존재의 일원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인식’에 있어서의 ‘일원론’을 언급함을 밝힌다. 

 

 둘째, ‘과학적 방법론’이다.

여기에서는 ‘자연,’ ‘실재,’ ‘이론’ 이라는 세 가지의 주제를 다룬다. 이 주제들은 하나님의 창조세계 를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이해할 것인가? 에 대한 방법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독교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은 특별한 방식으로 나타난 창조세계의 ‘관찰,’ 그에 따른 ‘과학적 이론체계(교리)’의 함의, 그리고 기 독교 신앙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설명(세계관)’ 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이 방법론은 기독교의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의 균형을 잡아주 는 맥그래스의 전략이기도 하다.

 

[주제어: 하나님의 계시, 이론, 자연, 실재, 관찰, 이론, 성찰(세계관)] 

 

I. 들어가는 말

본 연구는 창조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극대화하고 보다 풍성 하게 드러내도록 의도된 논문이다. 필자는 본 연구를 통해 한국 기독교 신 학과 교회에 일반 계시의 약한 부분을 보완하여 특별 계시를 보다 더 강 화하고자 ‘기독교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주제를 채택했 다. 이 연구는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을 중심으로 다루었지만, 2차 자료 가 거의 없고, 이해하기 힘든 논제이기 때문에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 을 잘 분석하고 소개하며 논하는 것도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이러한 취지 로, 필자는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을 긍정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맥그 래스가 개별적으로 다룬 계시신학과 󰡔과학 신학󰡕의 관계를 필자 나름대 로 연결하여 드러내고자 한다. 이는 ‘기독교 자연신학’이라는 명제로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의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될 것이다. 그동안 서양이나 국내 기독교 신학에서는 일반 계시를 위한 자연신 학을 약하게 다루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개신교 진영 안에서는 자 연신학이 철학이나 중세 신학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잘 다루지 않았 다. 역사를 보면, 기독교 전통 신학 안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이후 19세기를 지나기까지 자연신학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 다가, 20세기에 이르러 다시금 신정통주의 진영, 즉 에밀 브룬너(Emil Brunner)와 칼 바르트(Kar Barth)가 칼빈(John Calvin)의 창조 사상을 중심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5)

 

     5) Emil Brunner·Karl Barth, 『자연신학』, 김동건 옮김 (서울: 한국장로교 출판사, 2007) 참조. 

 

이러한 논쟁은 현시점까지 현대 신학자 들, 특히 기독교 자연 신학자들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서구신학과 달리 구속사에만 치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과학 기술을 간과한 채 하나님의 계시를 다룰 수는 없다. 필자는 현대 과 학 기술의 도약이 하나님의 창조물인 자연세계 속 현상들을 관찰하여 하 나님의 계시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을 구축하는 데에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문제는 그동안 이론과 관찰까지 많은 발 전을 이루었지만 그것을 성찰할 수 있는 세계관을 과학 방법론에 포함시 키지 않는다. 즉 세계관과 과학은 다른 공간의 영역으로 이해하기 때문이 다. 기독교 신학이 힘 있는 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방식을 모색하고, 그 도구로서 세상의 각 전문분야들과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6) 맥그래스의 이러한 전개는 이신론 → 유신론 → 삼위일체 신론을 통합적으로 보면서 더 나아 가 세계관적 성찰을 도모한다. 맥그래스는 기독교가 교리에만 머무른다 면 예수라는 인물을 인식할 때 환원론적인 틀에 갇혀 버릴 수 있다고 우려 한다. 맥그래스는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를 단순한 공식으로 환원시킨 다면, 이론의 목적은 무엇인가?” 7)를 묻는다.

 

    6) 임영동, “자연신학의 가능성과 현실성: 칼빈의 자연 이해를 중심으로”, 「한국복음주의 조직신학」 제 32호 (2019): 160-198을 참조.

    7) McGrath, 『과학 신학』, 박세혁 옮김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11), 232. 

 

오늘날 기독교가 교리적 환원주의 방식만을 고집할 경우 정체된 기독교, 폐쇄적인 기독교로 전락해 버릴 위험성이 크다.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의 핵심은 기독교 밖의 이성 중심적 관찰 이론 과 기독교 계시론적 이해에 있어서, 이 두 양태를 이원화시키기보다는 기독교 신학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세상의 전통들, 즉 과학, 철학 등과 공명하며 세상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설명을 해주는 실천적 입장 에 서 있다. 맥그래스는 휴 로스 매킨토시(Hugh Ross Mackintosh, 1870- 1936)의 말을 빌려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기독교 신학, 즉 하나님이 만약 자신을 드러내기로 작정하지 않으신다면, 인간이 아무리 신적 계시를 발 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착각이라고 밝히며, ‘자연적 인 지식’과 ‘계시된 지식’의 관계성에 대해 언급한다.8)

 

     8) McGrath, 『신학이란 무엇인가?』, 김기철 옮김 (서울: 도서출판 복 있는 사람, 2016). 362. 

 

신적 계시가 드러 나면 인간의 이성은 그것을 인식하고 더 풍성하게 드러내고 설명해야 하 는 임무를 받는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의식하고 기독교의 자연신학의 재점화를 위해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을 시도해 본다.

 

Ⅱ. 계시의 역사와 정의

맥그래스는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의 용어를 자연적 지식(natural knowledge)과 계시된 지식(revealed knowledge)이라 표현하기도 한다.9)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의 이성적 노력이 아닌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 기독교 전통적 해석이다. 즉 특별 계시이든 일반 계시이든 더 나아가 역사적 계시이든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신 다는 것에 그 기초를 놓는다. 고대철학으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인 간은 ‘신,’ ‘세계,’ ‘인간’이라는 ‘실재(reality)’에 대해 논증해 왔다. 철학 에서는 이 세계라는 실재를 인식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어떤 대상이 우 리로 하여금 그것을 감각하도록 촉발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해는 계몽 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게서 잘 정 리가 되었다.10) 그러나 세계라는 실재(reality) 배후의 대상이 불명확하다. 여기서 기독교와 근대 과학의 결별이 일어났다. 맥그래스는 기독교 신학 안에 자연세계, 그리고 인간 역사와 사회를 통해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가능케 하는 개념이 들어 있다고 설명한다11). 맥그래스는 아포칼륍토(ἀποκαλύπτω)라는 계시의 개념을 “이제까지 모호하고 불분명했던 것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 12) 이라고 밝히지만, 하나 님이 계시할 때 정말 불분명했던 것이 온전히 드러나는지에 대해서는 더 고찰해 봐야 한다고 언급한다.

 

      9) McGrath, Christian Theology: An Introduction (Wiley-Blackwell Publishing Ltd, 2003), 200.

    10) Immanuel Kant, 『순수이성비판』, 백종현 옮김 (경기: 아카넷, 2016), 37.

    11) McGrath, 『신학이란 무엇인가?』, 361.

    12) McGrath, 『신학이란 무엇인가?』, 364. 

 

맥그래스는 “하나님의 계시를 말할 때에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남김없이 드러났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13) 고 서술한다. 맥그래스는 하나님의 계시란 그 신비를 파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계시라는 일반적 개념인 ‘사실들을 폭로한다’는 의미가 이미 신학에서도 통용되고 있지만, 단순히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정도가 아 닌 그 이상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14)

물론 맥그래스는 루터가 말한 계시가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하여도 그 계시는 충분한 만족감을 드러 낸다는 견해에 동조한다. 맥그래스는 루터(Martin Luther,1483~1546)의 󰡔십자가 신학󰡕에서 다음을 인용한다.

루터에 따르면, 그것은 빌립이 하나님을 그리스도와 동떨어져서 발견할 수 있고 알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를 ‘영광의 신학자’로 만들고 있다.

그러자 예수는 빌립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예수 자신의 인격 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설명 하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 았다’(요한복음 14:9).15)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하나님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는 내용들이 종종 나타난다(요12:45,14:7,14:9,14:20,골 1:15),16)

 

      13) McGrath, 『신학이란 무엇인가?』, 364.

      14) McGrath, 『신학이란 무엇인가?』, 364.

      15) McGrath, 『루터의 십자가신학』, 정진오·최대열 공역 (서울: 컨콜디아사, 2001), 161. 16) 

 

맥그래스는 󰡔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계시의 모델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첫 째, 교리로서의 계시이다.

이는 보수주의, 복음주의, 가톨릭의 신스콜라 학파에서 신조로 가르쳐 왔으며, 수정 보완을 거쳐 기독교 신앙 안에서도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모델이다.

 

둘째, ‘하나님의 현존으로서의 계시’이다.

이 모델은 ‘나’와 너’의 관계론을 펼친 유대 철학자 마틴 부버 (Martin Buber, 1878-1965)의 ‘대화적 인격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즉 하나님의 계시는 정보라 할 수 있는 명제적, 혹은 교리적 계시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성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델이다.

 

셋째, 슐라이어마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68-1834)의 경험으로서의 계시의 모델이다.

경험이 되지 않으면 종교가 아니라고 까지 언 급한 계시모델이다.

슐라이어마허는 모든 직관은 직관당하는 존재가 직관을 가하는 존재에 끼치는 영향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상이다.

직관을 가하는 존재의 본질성에 따라 받아들여지고 종합되고 파악되며, 직관 하는 존재의 근원적이며 독립적인 행위로부터 출발된다고 논한다.17)

맥그래스가 슐라이어마허의 계시 모델을 모두 함의한 것은 아니지만,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이 관찰되고 증명된 세계를 의미론적이고 감정 신앙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는 맥그래스가 나아가고자 하는 과학적 방법론에 부합 하는 일이기도 하다.

 

넷째, 판넨베르그(Wolfhart Pannenberg, 1928-2014) 의 ‘역사로서의 계시’이다.18)

판넨베르크는 계시란 역사를 떠나서는 설명 될 수 없고 역사 속에서 진행되고 맨 끝자락에서 계시는 완성된다고 본 모 델이다.

 

계시 모델들 중 눈여겨 볼만한 것은 ‘정보적(교리적, 명제적) 계시’와 ‘인격적 계시’이다.

맥그래스는 여기서 계시의 의미를 두 가지로 정의한다.

‘정보적 지식의 계시’와 ‘관계론적 지식의 계시’이다.

‘정보적 지식의 계시’는 창조세계에 드러난 하나님의 질서와 지혜들이라 할 수 있고 ‘관계론적 지식의 계시’는 곧 역사적 계시, 즉 인격적인 자기 드러냄을 의미하는데, 이는 역사 속에 등장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 그 절정에 이르고 완성된다.19)

 

     17) 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종교론』, 최신한 옮김 (서울: 기독교서회, 2015), 60.

     18) McGrath, 『신학이란 무엇인가?』, 371~375.

     19) McGrath, 『신학이란 무엇인가?』, 365. 

 

그러나 맥그래스는 여기서 ‘정보적 계시’와 ‘관계론적 계시’를 존재론적으로 보지 않기를 원한다.

그렇게 보면 다시 이원론적 계시 인식으로 나아갈 수가 있고 그것으로 인하여 이신론 내지는 범신론이라 할 수 있는 19세기 유신론 또는 자연 신관으로 나아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 다. 정보적 지식이라 해서 역사 속에 나타난 관계적 지식과 그 양태를 달 리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함께 간다. 이것을 구분하여 보게 되면, 자연 내 지는 정보적 지식은 탐구의 대상으로만 치부될 수가 있기 때문에 기독교 의 계시를 깊게 볼 수 없다.

맥그래스는 이신론에서 유신론(19세기 범신론)으로, 유신론에서 삼위 일체 신론으로의 도약을 시도한다.

맥그래스가 이신론과 유신론적 인식론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삼위일체 신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 때문인데, 이는 계몽주의와 근대 후기과학주의가 이루어 놓은 과학철학의 자산 가운데 기독교 삼위일체 신론적 계시의 맥락을 이어주는 논증 들이 대거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맥그래스는 이를 ‘삼위일체 자연신학’에서 다룬 바 있다. 맥그래스는 “하나님이 스스로 육신을 취해 나사렛 예수로 나타나셨다는 깨달음은 우리를 유신론에서 삼위일체 신론으로 이끌어 준 다” 20)고 언급한다. 이와 같은 일원론적 계시인식론의 상상력은 루이스 벌 코프(Louis Berkhof, 1873-1957)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벌코프는 라틴어에서 온 이 계시(revelatio)라는 말을 ‘드러남,’ ‘나타 남,’ ‘열어 밝히다,’ ‘계시함’ 등으로 나타낸다고 소개한다. 그리고 구약성 경에서의 계시(הָּלָג(는 ‘벗고 있는,’ ‘덮개를 벗어버리는’ 것을 말하고, 신약 성경에서의 아포칼륍토(ἀποκαλύπτω)라는 ‘계시하다’는 “나타내다,” “덮 개를 제거하다,”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폭로하다”라는 뜻으로, 그리 고 파네로오(φανερόω)는 “명백하게 드러내다”라는 것으로 설명한다.21)

 

       20) McGrath,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박규태 옮김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14), 148.

       21) Louis Berkhof, 『조직신학』, 권수경·이상원 옮김 (경기: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6), 127. 

 

벌코프는 초자연 계시와 자연 계시라는 용어를 후대 사람들이 특별 계시 와 일반 계시로 바꾸어 사용하였다고 밝히며, 그 나름대로 각각의 독특성 과 다양성, 그리고 차이점을 언급한다. 그리고 이 두 양태의 본질적 속성은 포괄성에 있어서 한 목적으로 묘사해주고 있다.22) 달리 말해, 중세로부터 일반적으로 초자연적 계시와 자연계시 또는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를 구분하여 보고 있으나, 벌코프는 계시를 인식함에 있어 그렇게 보는 것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즉 초자연적(특별) 계시와 자연(일반) 계시에 대해 생각하면 이 두 양태가 과연 성경에서 구별될 수 있는지 묻는다. 벌코프는 그 구별이 용이하지 않다고 보았다. 환언하면 성경은 굳이 계시의 기원을 생각할 때 초자연적 계시만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23)

벌코프는 초자연적 계시와 자연 계시라는 두 양태가 단지 구별하기 위한 것일 뿐, “자연 계시가 자연현상의 중개를 통해 전달되는 반면 초자연적 계시는 하나님이 사건들의 자연적인 과정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으로서, 그 기원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양상에 있어서도 초자연적이라는 것” 24) 이 라고 주장한다. 위의 맥락을 정리하면, 자연(일반) 계시와 초자연(특별)적 계시라는 구 별은 중세시대에 점차적으로 유행하다가 스콜라 시대에 들어와 학자들에 게서 주된 위치를 차지하였다. 중세 신학의 두 개념에 대한 구별을 개혁가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긴 하였지만, 자연계시에 있어서 과학적 또는 이성 적으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도달하기란 어렵다고 보았다. 개혁가들은 인간의 타락 이후 눈이 멀어 자연계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아는데 불완전하기에, 성경을 통해서 재 공포하고 성령을 통해 교정하며 재해석해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25)

 

     22) Berkhof, 『조직신학』, 136~137.

     23) Berkhof, 『조직신학』, 136~150 참조.

     24) Berkhof, 『조직신학』, 137.

     25) Berkhof, 『조직신학』, 137~138.

벌코프는 이방 세계와 관련하여서, 사도행전 17:27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하고,” 로마서 1:19,20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보며” 로마서 2:14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하는 것” 등의 구절들은 일반 계시 덕분인 것이라고 밝힌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1권 전체 맥락에서도 잘 반영해 주듯이 일반 계시는 ‘세계’와 ‘인간’ 그리고 ‘역사’로 나타난다. 타락 이후 인간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보는 일에 있어서 실패하게 되었다. 이 결과 구원받지 못한 인간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을 취하셨다.26) 특별 계시라는 안경을 쓰고 자연을 볼 때 하나님의 계시는 인식된다.27) 즉 두 계시의 양태가 한 분이신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로 모아진다. 그러나 벌 코프는 이방 세계에서 볼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모방만을 보고 기독교에 서는 실제를 본다고 강조한다. 벌코프는 일반 계시의 불충분성에 있어서 는 세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 일반 계시는 구원을 알려주지 못하고, 둘째, 영적인 부분을 알려주지 못하며, 셋째, 종교를 위해 충분한 토대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고 가리킨다.28) 즉 벌코프는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는 서로 양 분되어 나타나지만,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으며 겹칠 수 없는 내용도 있다고 밝힌 셈이다. 맥그래스는 ‘과학 신학 방법론’을 통해 계시 인식론의 도약을 시도한다.

맥그래스는 층위된 실재들이 어떻게 연관되고 연결되는 지를 보기를 원한다.

같은 맥락을 가진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는 “존재의 신비를 전하는 전달자가 되지 못하거나 계시의 상관관계를 맺지 못하는 실재와 사물 그리고 사건은 없다”라고 강조한다. 즉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존재 자체로 그 존재의 근거와 의미에 참여한다”는 것이다.29)

 

      26) 임영동, “기독교 자연신학의 가능성과 현실성”, 164.

      27) John Calvin, 『영·한 기독교 강요』 (서울: 기독성문출판사, 1993), I.6.1 참조.

     28) Berkhof, 『조직신학』, 142~1143

     29) Paul Tillich, 『폴 틸리히 조직신학1』, 남성민 옮김 (서울: 새물결 플러스, 2021), 202. 

 

맥그래스 역시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는 성경에서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어 구분이 사실상 어렵다는 쪽으로 본다.

 

Ⅲ. 과학적 방법론

맥그래스는 그의 ‘과학 신학’ 방법론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가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3부작 까지 나와 있다. 즉 ‘자연(nature),’ ‘실재(reality),’ ‘이론(theory)’이다.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관찰 → 이론 → 세계관이라는 방식의 틀을 채택한다.

그러나 필자는 맥그래스의 세 번째 작품인 ‘이론’을 본 연구 첫 번째 위치에 놓으려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자연계시를 위한 과학적 방법론’을 본 절의 서론으로 놓았다.

 

1. 자연계시를 위한 과학적 방법론

기독교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의 문제는 자연계시(일반 계시)를 다룸에 있어서 어떻게 현대 주류 인식론인 과학적 방법론을 정당화할 것 인가이다. 맥그래스가 이해하는 현대 과학 분야는 관찰과 결과를 이론적 으로 정리하여 세상에 내놓는 전문분야이다. 맥그래스는 “철학은 ‘안칠라 테올로기아이(ancilla theologiae),’ 곧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 30)라는 말 을 소개한 바 있다. 맥그래스가 인용한 이 말 안에 현대과학을 함의한다. 이 말을 인용한 이유는 자연신학을 함에 있어서 철학적 체계가 신학을 발 전케 하고 그들의 사상과 문화적 환경 간의 대화를 펼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31) 하지만 자연신학은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 데 에 사용되어야 한다. 이럼으로써 기독교 신학과 과학, 그리고 철학은 자 연스럽게 연결되어 일반 계시의 풍성함을 드러낸다. 맥그래스에게 있어 서 “정말 어려운 점은 어떻게 신학의 독특성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학과의 대화를 펼칠 수 있는가를 밝혀내는 일”이다.32)

 

       30) McGrath, 『신학이란 무엇인가?』, 338.

       31) McGrath, The Science of God, 18.

       32) McGrath, The Science of God, 17. 

 

맥그래스는 이 해결 책에 있어서, 각 주제의 방법론은 그 분야의 고유한 독특성 자체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는, 즉 그리스어 ‘카타 퓌신(kata physin),’ ‘그 자체의 본성에 따라’라는 인식론적 방법에 있다고 언급한다.33) 각 분야의 전통성을 우 선 신뢰하는 일이다. 맥그래스의 여러 연구에서도 잘 나타나 있듯이, 현 대 과학의 정확도에 있어서 그 신뢰도는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맥그래 스는 그의 책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에서 현대 천문학과 생물학의 결과 물들을 다양하게 인용하며 논한다. 34)

 

       33) McGrath, The Science of God, 18.

       34) McGrath,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245~457. 이 부분에서 맥그래스는 천문학, 생물학, 유전학 등 을 다루면서 현시대의 과학적 관찰을 신뢰하면서 기독교 세계관으로 나아가고 있다.

 

필자는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에서 소개하는 과학적 결과물들을 비판하는 쪽으로 일관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풍성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는 측면으로 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해 본다.

이러한 제안이 가능한 이유는 현대의 인식론에서 ‘비판적 실재론적 방법론’은 과학을 도구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얼마든지 수정 가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근대 이전, 세계에 대한 실재론적 인식론에 있어서 기독교 신학과 철학은 한 길을 걸어왔다.

실재는 인 간의 감각과 별개로 존재한다는 인식이다. 실재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감 각을 촉발케 하고, 우리로 하여금 인식론적 틀을 형성케 한다. 근대 초기 만 해도 세계라는 실재를 인식함에 있어 그 기초를 연역적 틀을 지니고 있 는, 즉 하나님으로부터 온 피조물로 이해했다. 단지 그것을 해석하고 규정 하는 일에 있어서, 이제 성경이 아닌 인간의 이성에 두었을 뿐 그 존재 자 체를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인류의 과제로 남겨졌다. 그러나 문제는 근대 후기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인간 이성 중심은 결국 이신론과 유신론(19세 기 범신론)을 낳았다. 이는 기독교 밖의 전통들 사이에서도 커다란 논쟁 거리였다. 결국 이성주의는 낭만주의와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의 출연을 낳았는데, 이는 이성중심의 인식론이 실패했 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이성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만으로는 안 된다는 견해들은 20세기에 이르러 과학과 철학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졌다.

결과적으로 맥그래스가 본 일반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의 매개로써 그 기본적 본질을 벌코프에게서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에 둔다. 즉 두 계시의 양태는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방식으로서의 계시’이다.

즉 성경도 자연도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 것에 함의한다. 이러한 계시 이해를 맥그래스도 그대로 이어받는다.

다만 맥그래스가 시도하려는 ‘과학적 방법 론’은 성경과 자연이 하나의 계시 인식으로 모아진다 해도 파편화되어 있는 세계 인식론들 속에 하나님의 숨은 계시가 있음을 밝히고, 그 하나님의 계시를 어떻게 하면 풍성하게 드러나게 하는 가이다.

그리고 세상으로 하여금 기독교 세계관에 참여케 하는 일에 있어서 어떤 방식을 채택할 것인 가에 있다.

그렇다면 맥그래스는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을 어떻 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2. 이론(인식론)

자연과학과 기독교 신학은 둘 다 세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을 증명 해 내기 위해 이론(인식론)적 틀이라는 필요성을 가진다.35)

맥그래스는 “관찰할 수 있는 수많은 특수한 대상에 대해 하나의 틀을 제공하는 ‘큰 그 림’을 보고 싶어 하는 갈망 때문에, 인간은 이론을 공식화하고 시험할 수 밖에 없다” 36)고 강조한다.

기독교 신학에서의 ‘이론’은 교리를 의미한다. 교리는 기독교를 지금까지 이어오게 한 인식론적 틀이요 실체라 할 수 있 다. 하지만 맥그래스는 ‘기독교가 교리에만 머무른다면 기독교는 교조적인 기독교로만 남을 것’이라고 우려한다.37)

 

     35) McGrath, 『과학 신학』, 223.

    36) McGrath, 『과학 신학』, 223.

    37) McGrath, 『과학 신학』, 225.

 

맥그래스는 기독교의 교리와 같은 ‘이론’이 생겨나는 이유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합리적인 것을 추구 하며 도덕적, 지적으로 세계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38)

근현대, 즉 낭만주의와 모더니즘(modernism) 시대는 이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이러한 반성적 ‘이론’ 의 형태는 ‘실재’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큰 열매가 없다고 보았다.39)

맥그래스는 ‘이론’이 실재에 대해 더 정확히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고 본 것 이다. 맥그래스는 실재를 인식함에 있어서 왜 ‘이론’에서 멈춰 있으면 안 되는지를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개미,’ ‘거미,’ ‘꿀벌’의 곤 충의 실 예로 설명한다.

첫째, ‘개미’는 쌓아두고 저장한 것을 사용하는 곤 충이다.

이러한 방법은 외부세계의 것만 관찰하고 그 재료를 축척하는 사 람들이라고 비판한다.40)

둘째, ‘거미’는 자기 안에 있는 거미줄, 즉 자기만이 지니고 있는 재료로 거미줄을 잣는다.

이러한 방법론은 “선험적 추론을 통해, 외부 세계에 대한 연구 없이 오로지 자신의 사고 속에서만 철학적 체계를 구축하는 사람들이므로 비판한다.” 41)

셋째, ‘꿀벌’은 여러 정원 과 들판에서 여러 종류의 꽃에서 꿀을 모은다. 그리고 진액을 분비하여 그 회분을 종합하여 꿀을 만들어 저장한다. 맥그래스는 이처럼 “외부 세계에 관한 자료를 축척하는 동시에 이것을 정신적으로 소화해 자기 것으로 만 드는 꿀벌” 42)과 같아야 한다고 비유한다.

즉 “자연철학의 책무는 관찰된 자료를 분석하고 그 결과로써 이론을 종합해 내는 것” 43) 이라는 주장이다.

맥그래스는 “자연과학과 기독교 신학은 모두 인간의 경험과 문화에 뿌리 를 두고 있으며, 그러나 동시에 시간과 장소의 특수성을 초월해 다 보편적 인 의미를 주장하는 진리를 내놓기 원한다.” 44)고 언급한다.

 

     38) McGrath, 『과학 신학』, 225.

     39) McGrath, 『과학 신학』, 225.

     40) McGrath, 『과학 신학』, 226.

     41) McGrath, 『과학 신학』, 226.

     42) McGrath, 『과학 신학』, 226.

     43) McGrath, 『과학 신학』, 226.

     44) McGrath, 『과학 신학』, 226.

 

맥그래스에게 있어서 기독교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은 “특수성으로부터 이론이 나오며, 다시 이론으로부터 세계관이 나온다”라고 강조한다.

즉 관찰 → 이론(교리) → 세계관45) 으로 나아가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맥그래스는 기독교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론,’ 즉 ‘교리’ 로서만 끝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정체 성에 대해 환원주의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맥그래스는 예수 그리스도 가 모든 것을 포괄한다고 본다. 달리 말해, 창조주로서 질서를 가지고 오 신 예수가 더 복잡하지만 균형 잡힌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며 드러내고 있음을 강조한다.46) 이것은 맥그래스의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47)에서 논의된 “삼위일체 자연신학”에 잘 드러나 있다.

 

      45) McGrath, 『과학 신학』, 226.

      46) McGrath, 『과학 신학』, 228.

      47) McGrath,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박규태 옮김, 참조. 

 

맥그래스는 신학뿐만 아니 라 과학에서도 이 ‘이론’에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즉 과학의 기 본 구조는 ‘관찰과 인과성’을 드러내는 ‘증명,’ 그리고 그 결과를 ‘이론화’ 하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의 관찰을 위해 매우 필요한 구조이다. 하지만 과학은 거기까지이다. 과학은 ‘세계관’이라는 ‘항’을 과학적 방법론에 넣 지 않는다. 이는 후기 근대 과학시대가 만들어놓은 ‘실재론적 인식론’이기 도 하다. 과학과 세계관은 다른 공간, 다른 분야로서 서로 ‘부정’된다고 이 해하기 때문이다. 맥그래스가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고민은 맥그래스로 하여금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방법론을 채택케 했다. 즉 자연이라는 하나님의 ‘피조물’은 모두 ‘층화’ 또는 ‘층위’를 이루고 있 다. 맥그래스는 세상의 전통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방법론을 ‘도구적 실재’를 사용하여 ‘층화’된 세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여기에는 ‘과학,’ ‘철학,’ ‘생물학,’ ‘신학’이 들어 있지만, 모두 하나님의 계 시를 드러내는 것으로 모아진다. 필자는 세계가 그동안 고민하고 연구하며 인식하려 했던 ‘자연’과 ‘실 재’에 대한 이해에 맥그래스의 기독교 인식론적 방법론을 통해 답을 주고자 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학이 세상에 힘이 있으려면 현대 과학이 하고 있는 과학적 ‘관찰’을 무시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과학은 ‘세계관’이 빠져 있고, 기독교 신학은 객관적인 ‘과학적 관찰’을 간과한 채 곧바로 ‘세계관’으로 넘어가는 데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대는 서로의 방식을 함의하면서 소통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시대이다.

과학은 하나님을 전제한 근대 초기 과학으로 돌아가야 하며, 기독교 신학은 시대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틀을 전제로 다음의 ‘자연’과 실재 를 논하고자 한다.

 

3. 자연

필자는 자연에 대한 세 가지의 해석과 의미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첫 째는 고대 역사로부터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이라는 일반적 자연의 의미이고, 둘째는 기독교 신학에서 본 창조의 교리의 확장을, 그리고 셋 째, 이신론 → 유신론 → 삼위일체 신론의 확장이다. 과연 일반적인 ‘자연’ 이라는 개념을 기독교 자연신학, 혹은 하나님의 ‘피조물’로 재해석하고 설 명하는 일이 가능한지 논해 본다.

 

1) 일반적 자연의 의미

맥그래스는 지난 2천 년 동안 자연에 대한 인간 이해에 대해 상당한 발 전이 있어왔지만, 어떤 합의된 의견 없이, 저자마다 서로 다른 의미로 해 석해 왔음을 밝힌다.48) 맥그래스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연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장애를 안고 있는 한 가지를 지목한다. 그것은 바로 48) McGrath, The Science of God, 37. 70 조직신학연구 제39권 (2021년) ‘우연(tyche)’ 49)이다. 맥그래스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저자들이, 그리고 플 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에 대해 설명했지만 현시대에 맞지 않는 개념이라고 비판한다.50) 소크라테스 이전 고대 철학자들은 ‘자연’이라는 개념 안에 ‘우연’이라는 본질성을 넣었다. 이렇게 고대 철학자들은 자연이 맹목적이라 했지만, 플라톤은 이를 극복하고자 ‘자연,’ ‘기술,’ ‘우연’을 구 별했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의 기관을 구분하지 못하면 자연의 아름다움 과 천체의 규칙성은 ‘우연’에 기인되었다는 개탄스러운 견해를 낳을 수밖 에 없기 때문이다.51) 맥그래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에 와서 이 구별 을 더 명확히 하려 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실재론의 인식론’ 세 번째 범주, 즉 인간의 행위 내지는 자연적 과정에 의해 설명할 수 없는 세 계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우연’으로 설명했다” 52)고 밝힌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이러한 ‘우연’이라는 것들이 현대에 이르러 지지하 기 어려워졌다고 밝힌다. 환언하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연을 해석될 수 없는 ‘우연’이 아니라, 해석될 수 있는 ‘관념’의 것이라는 것이 더 명백 해졌다고 밝힌다. 즉 “자연은 미가공 자료 가 아니라 우리가 특별한 형식 으로 바라보기로 선택한 어떤 것” 53) 이라는 언급이다.

 

      49)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고 저술한 스콜라철학의 주석가로 알려진 희랍의 철학자 아베로에스 (Ibn Rushd; Ibn Roshd, Averroes, 1126~1198)가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연’은 첫 번째의 범주인 ‘있는 것’ 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해할 때 가능하다. ‘있는 것’ 은 크게 두 가지이다. “즉 참 된 것 (지성에서 있음)과 정신 밖에서 실제로 있는 것 (그러므로 논리적인 있음과 존재론적인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연’도 ‘있는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론에서, ‘우연적’인 것이란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어떤 사물에 대하여 본질을 나타 내지 않지만, 반면에 동시에 어떤 사물의 개별성이다 (개념상).” 또 하나는 “사물의 본질성을 사물의 개별성으로부터 알도록 한다.” 쉽게 말해 본질이 아니라 그 본질을 드러내어 주어 개념적으로 알게 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즉 9개의 틀 “양, 질, 관계, 곳, 때, 위치, 가짐, 가함 그리고 당함” 등이 사물의 본질을 개념적으로 드러낸다. 달리 말해, ‘우연’이란 본질은 아니지만 본질성을 사물 의 개별성으로부터 알도록 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데, 그 또한 존재하는 것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빨리 사라질 수 있고 그 자체는 해석될 수 없다. Ibn Rushd; Ibn Roshd, Averroes,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김재범 옮김 (경기: 한국학술정보(주), 2012), 61.

      50) McGrath, The Science of God, 37.

      51) McGrath, A Scientific Theology, vol. 1 (Edinburg: T&T Clark, 2001), 91.

      52) McGrath, The Science of God, 37.

      53) McGrath, The Science of God, 38. 

 

예를 들면, “인류에게 불편을 끼치는 길들여야 할 무지한 힘으로서의 자연, 운동시설을 제공 하는 야외 체육관 같은 자연, 스쿠버다이빙, 등산, 사냥을 하기 위한 야생 의 왕국으로서의 자연…….” 54)등이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이러한 다양하 게 드러난 가공된 자연들 사이에 여전히 모순이 존재한다고 비판한다. 즉 자연이라는 실재에 우연이라는 관념적 해석은 실제로 자연을 해석하기 는 어렵다는 것이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중세의 철학자들은 자연을 유기 체로 보았으며, ‘여성’의 이미지를 주로 사용했다고 밝힌다. 즉 어머니처 럼 인간을 지원하고 지지한다는 것이다.55) 자연과 인간의 관계로 보는 것 은 마치 토마스 아퀴나스의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유비의 개념이었으나 근대에 이르러 해묵은 서설로 환영받지 못 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자연 개념은 페일리(William Paley, 1743- 1805)의 기계론적 자연관이다. 당시 기계론적 세계관은 자연의 규칙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자연관이었다.56) 즉 이신론이 구체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당시 서구 기독교 창조신앙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그러나 맥그 래스는 페일리의 ‘설계 논증’(argument from design)이 다윈주의로 인하 여 산산이 부서지면서, 페일리가 쓴 󰡔자연신학󰡕은 매우 취약성이 드러났 음을 밝히고 있다.57) 그러나 20세기를 지나면서 근대화 물결 역시 회의가 일어났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 과학철학의 실패라는 반증이다. 맥그래스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사물을 바라보는 단 하나의 객관적이며 자명하게 옳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받아들이는 대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동일하게 유효한 수많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58)는 시대라고 언급한다.

 

    54) McGrath, The Science of God, 38.

    55) McGrath, The Science of God, 38.

    56) McGrath, The Science of God, 38.

    57) McGrath,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182.

    58) McGrath, 『과학 신학』, 58.

 

포스트모던 저자들에게 있어서 계몽주의 기획을 해체 하는 데에는 “어떤 텍스트를 읽거나 세계를 바라보는 ‘올바른’ 방식이 존 재한다는 관념의 포기를 뜻하는 것” 59)이기도 했다.

즉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사람들의 구성된 관념으로 대체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맥그래스는 포스트모던 저자들의 세 가지 요소들을 소개한다.

첫째로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의 “텍스트 밖은 없다”라는 이론이다.

즉 텍스트 밖에서 해석되고 규정되는 객관적 실체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즉 텍스트 저자의 정체성과 의도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일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롤 랑 바르트에게 있어서 텍스트의 해석을 결정할 권한은 저자가 아니라 ‘독 자’에게 있다.

셋째, 텍스트 밖의 객관적 해석자가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텍스트 안에도 어떤 규정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불확정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60)

이러한 전개는 근대화에 대한 반발적 현상 으로도 볼 수 있다. 맥그래스에게 있어서 이러한 탈 근대화는 오히려 기독교 자연신학을 함에 있어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맥그래스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적 사상을 모두 긍정하거나 받아들 이는 것은 아니다.

맥그래스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자연과학도 하나의 사회적 구성물로 인식한 데에 문제를 제기한다.

즉 실재를 해석하고 인식하는 방법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자기 참조성(self-referentiality)과 결합할 때 포스터모던 기획 전체의 개연성을 심각하게 약화시킨다고 비판 한다.61)

예를 들면, 현대 과학에서 “전자장에서의 알파 입자의 반응과 그것의 이론적 함의에 대한 경험이라든가, 연구를 다루고자 할 때 포스트모 더니즘의 의제는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62)

 

    59) McGrath, 『과학 신학』, 59.

    60) McGrath, 『과학 신학』, 59~60.

    61) McGrath, 『과학 신학』, 61. 62) McGrath, 『과학 신학』, 61. 

 

사실 과학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방법이 약화될 수 있는 결과물들이 많이 있다.

콜리어(Anderw가  언급한, 윌리엄 길버트(Willam Gillbert)의 실험에서 “나침판의 바늘이 남북을 가리키는 현상이 지구 전체에 존재하는 배치전 화력(disposing and conversory power)” 63)이라는 결과라든가, 현재 우주 빅뱅이나 전자기장의 현상, 그리고 유전체 지도·게놈지도 같은 결과를 아무도 의심하는 과학자는 없다.

이렇게 될 때, 결과는 텍스트에 대한 콘텍스트의 해석이 단 하나의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포스트모더 니즘은 ‘자연’이라는 단 하나의 일관된 개념을 떠오르게 하지만, 그 자체 를 어떤 절대적 해석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을 철학적, 신학적, 윤리적 인 토대 역할을 할 수는 없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연의 구성물 안에 “나무, 강, 별, 동물 등을 부인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 연의 ‘물화(物化)’를 거부한다는 것” 64)이다.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해석의 개연성이 다양하게 열려 있다는 것에 있어서 기독교의 창조신앙, 즉 만물의 근원적 존재의 해석도 존중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절대적일 수는 없기 때문에 자연이라는 그 자체의 충족적 실재가 없는 해체는 기독교 창조 신학에 반하는 시대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맥그래스는 자연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보는 기독교의 방식 만이 현시대에 가장 독특한 방식이라고 본다.65)

 

      63) Andrew Collier, 『비판적 실재론: 로이 바스카의 과학철학』, 이기홍·최대용 옮김 (서울: 후마니타 스, 2010), 59.

      64) McGrath, 『과학 신학』, 62.

      65) McGrath, 『과학 신학』, 63. 

 

해체주의는 모든 사물들의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우연’으로 볼 때 실재를 상실시킨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언어로 모아진다.

 

2) 기독교 창조 교리의 확장

맥그래스는 자연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본다. 그리고 이 피조물은 무로 부터의 창조된 것임을 강조하면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해석을 창조 교리로 환원하여 보게 한다. 맥그래스는 󰡔과학 신학󰡕과 관련하여 창조 교리에 풍부한 신학적 잠재력을 가진 신학자 세 사람을 소개한다. 즉 토마스 아퀴 나스, 존 칼빈, 칼 바르트이다. 맥그래스는 이들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창 조 교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고 밝힌다.66) 맥그래스의 이러한 전개는 마치 포스트모던 저자들의 방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맥그래스는 포스트모던의 세계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법론의 단점을 기독교의 렌즈 로 다시 보게 하여 채워간다. 사실 기독교 신학 안에서도 각 전통들의 교 리가 다르고 견해가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교리의 정 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전제하에 서로 다양한 관점에서 보고 그 의견 들이 어떻게 연결되며, 어떤 개별적 해석의 의미가 있는지 큰 그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층화적 관점이다.

간략히 세 신학자의 예를 들어보 면, 토마스 아퀴나스는 창조의 유비적 함의를 강조하고, 칼빈은 창조질서와 피조물을 통해 창조주를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을 왜곡시키는 죄의 파괴적 영향력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바르트는 “피조물이 그 창조주를 제시하는 내재적인 능력을 소유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에 근거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67)

 

       66) McGrath, 『과학 신학』, 74.

       67) McGrath, 『과학 신학』, 74.

 

여기서 맥그래스의 기독교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 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세 사람의 창조 의미의 접근이 달라 보이지만, 맥 그래스의 전략대로라면 통합적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아퀴나스의 창조의 유비는 이 세계가 어디로부터 누구로부터 왔는가를 논하였다면, 칼빈은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원을 향한 전개로 나아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것이 정통신학의 교의가 되었다. 그리고 바르트의 논제는 창조물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지, 창조물이 하나님과의 언약의 매개인지를 통 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인식론적으로 어떻게 전개되고 의미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러한 방법은 또한 어떤 하나의 ‘실재’로 환원하는 방법을 거부한다. 서로 배타적이고 독립적인 사상과 이론을 거부하고 그들 이 소외되고 파괴된 부분을 다시 회복하기도 한다.” 68) 즉 층화적인 양상들을 서로 인정하며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을 수정하고 그 사상 자체를 고유한 존재로 유지케 한다.69)

 

       68) 임영동,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과 삼위일체 자연신학: 계시인식론을 중심으로,” 158.

       69) 임영동,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과 삼위일체 자연신학: 계시인식론을 중심으로,” 158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은 이 세 개의 논제를 층위의 관계로 보고 그 의미와 해석을 확장하는 방법론이 라 할 수 있다.

 

3) 이신론 - 유신론 - 삼위일체신론의 확장

맥그래스는 기독교의 창조 교리는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가장 적합하 고 진실한 렌즈라 할 수 있지만, 이 교리로만 남게 될 경우 이신론으로 빠 질 위험성이 있다고 언급한다.70) 그러나 이신론은 무신론자들에게 필요 한 이론일 수 있다. 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이 세계에 관여하지 않는다 해 도 인간은 멀리 있는 신을 상상하여 찾아가려는 습성이 있다. 우주과학 자들의 연구 활동 자체가 자연의 인과적 관계를 증명하는 것이라 할지라 도 의미론적으로 볼 때엔 우주의 근원 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맥그 래스는 그의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에서 층화 되어 있는 이신론 → 유신 론 → 삼위일체 신론이라는 구조로 세계를 해석하는 주체로 전개해 나간 다.71)

 

     70) McGrath, 『과학 신학』, 74.

     71) McGrath,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박규태 옮김, 166.

 

17세기 말~18세기 초에 등장한 이신론은 우주를 기계론적 세계관이 라 불렀다. 맥그래스는 이 세계관이 종교적 함의로 나아갈 수 있음을 논 한다. 맥그래스는 기계론적 우주란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기계이며 고정 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뉴턴의 생각에서 기인되었음을 밝힌다. 그리 고 이러한 이론은 세계가 하나의 기계로 보는 관념이 설계라는 관념으로.연결되었다고 언급한다.72) 이러한 뉴턴의 접근법을 ‘하나님은 시계 공’이 라 비유한 사람이 있다. 윌리엄 페일리다. 페일리는 복잡한 세계를 시계 의 설계처럼 비교했다. 맥그래스는 뉴턴과 페일리 모두 설계와 목적을 암 시하기 때문에 창조자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언급한다.73) 그러나 이신론은 이 세상에 관여, 혹은 신성이 우주 만물에 깃들어 있다는 유신론을 거부한 다.74) 맥그래스는 “이신론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이성을 통해서 ‘자연 이라는 책’을 읽음으로써만 알 수 있는 ‘자연 종교’를 발전시키는 것” 75)이 라고 밝힌다. 즉 기독교 신학에서 말하는 유신론적 창조의 계시성을 부인 한 것이다. 맥그래스는 이러한 거부 대신에 이신론은 창조주로서의 하나 님은 인정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76) 이신론은 과학이 그 단초를 놓았다. 하지만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에서는 “창조 교리와 섭리, 구속, 기독론 사 이에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77)고 강조한다. 이신론에서 얻 어지는 것은 이성 중심으로 자연을 과학 하는 일이며, 이는 기독교 신앙이 하지 못하는 공적 마당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논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하겠다. 분명한 것은 이신론과 기독교 유신론은 함께 할 수 없는 논제를 가지 고 있다. 그러나 유신론을 삼위일체 자연신학으로 확대한다면 이신론과 유신론을 관계 지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현대에는 진화론을 창조 안에 넣으려는 유신 진화론 주의가 있다. 신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를 할 수도 있 는 대목이다.78)

그렇다고 맥그래스가 유신 진화론자로 보기는 어렵다.79)

 

     72) McGrath, 『과학 신학』, 75.

     73) McGrath, 『과학 신학』, 75.

    74) 유신론은 기독교 안에서 정통적인 이해도 있지만, 19세기 슐라이어마허를 기점으로 범신론적 사상 을 발전시킨 사상이다.

    75) McGrath, 『과학 신학』, 78.

    76) McGrath, 『과학 신학』, 78.

    77) McGrath, 『과학 신학』, 79.

    78) 박찬호, 『과학과 신학 그리고 영성』 (서울: 도서출판 대서, 2010), 83.

     79) 유신진화론은 기독교 정통신학에서 말하는 타락이 없다. 죄도 진화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타락을 믿는다.

 

박찬호는 “맥그래스가 진화론이라는 과학은 무신론을 필연적으로 함축한다는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의 호전적인 도전에 대하여 과학은 유신론을 필연적으로 함축한다고 주장하는 창조 과학회나 지적 설계 운 동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80) 이신론과 유신론은 전제와 방법이 다른 층위이지만 삼위일체 신론에 연결될 수 있 는 층화론적 구조로 보는 것이다. 맥그래스는 다음의 구조를 통해 이신론 → 유신론 → 삼위일체 신론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소개한다. 이신론은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반면 유신론은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계속해서 당신의 섭리를 통해 이 세계를 이끌어 가신다 고 주장한다. 삼위일체 신론은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계속해서 당신 의 섭리를 통해 이 세계를 이끌어 가시며, 성령의 조명을 통해 자연과 성경 이라는 두 책을 해석하는 자들을 인도해 주신다고 주장한다.81) 결과적으로 맥그래스가 보려는 유신론을 삼위일체 신론으로 확장하는 일은 곧 ‘자연을 다루는 신학’으로 결론짓는다. “맥그래스는 ‘자연신학’과 ‘자연을 다루는 신학’이 연관되지만 구별된다고 한다. 즉 ‘자연신학’이라 는 것은 인간과 자연이 접촉하면서 ‘보는 것’(seeing)으로 과정과 결과만 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자연을 다루는 신학’은 삼위일체적 관점으로써 자 연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82) 즉 자연신학은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자연을 다루는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 을 창조물 관여하여 두 책, 곧 자연이라는 책과 성경이라는 책을 읽게 한 다. 이신론은 과학적 관찰로 체계를 이룬 것에는 과소평가 할 수 없다. 

 

       80) 박찬호, 『과학과 신학 그리고 영성』, 83.

       81) McGrath,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박규태 옮김, 166.

       82) 임영동,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과 삼위일체 자연신학: 계시인식론을 중심으로,” 242 재 인용. 

 

만물이 ‘우연’으로 존재하고 발생한다는 인식을 오늘날 과학자들에게 심게 했다. 맥그래스는 ‘자연’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보는 방식을 층화적 관점으 로 보게 하여 이신론을 낳은 근대적 초기 과학방법과 기독교 삼위일체신 론 관점으로 이 세계가 확실히 하나님의 창조로 이루어 졌음을 확인시켜 나간다고 볼 수 있다.

 

4. 실재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은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지식에 관련되어 있 다” 83)

 

       83) McGrath, A Scientific Theology, vol. 2 (Edinburg: T&T Clark, 2001), 3. 84) 필자는 실재론에서의 고대를 근대 이전의 시대를 총칭하였음을 밝힌다.

 

맥그래스는 이러한 지식이 어떠한 방법으로 얻어지고 확증될 수 있 는지를 실재론에서 다룬다. 이 절에서는 ‘실재의 역사적 개념’과 현대에서 전개되고 있는 ‘비판적 실재론,’ 그리고 맥그래스가 접목한 로이 바스카 (Roy Bhaskar, 1944-2014)의 ‘비판적 실재론’에 대해 다룬다.

 

1) 실재에 대한 역사적 개념들

맥그래스가 󰡔과학 신학󰡕을 함에 있어서 실재론을 다루는 이유는 기독 교 자연신학, 즉 하나님이 자연을 다스리는 창조를 이해하기 위한 확장이 자 도약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실재론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 지 다양하게 인식되어 왔으나, 기본적으로 ‘실재’는 인간이 감각할 수 있 는 영역 밖의 ‘있는 것’ 혹은 인간의 감관 외부에 존재한다는 개념을 가지 고 있다. 고대에는 ‘관념’으로 실재를 해석하려 했다.84) 기독교 안에서는 ‘신’과 ‘세계’ 그리고 ‘인간’에 대해 하나님과 피조물이라는 관계론적 지식 을 전제하에 보지만, 기독교 밖에서는 특히, 근현대에는 인식케 하는 그 주체에 대한 전제가 없다. 때문에 여러 전통들마다 실재에 대한 견해가 다르고 오늘날까지도 실재를 인식함에 종합적이고 보편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맥그래스는 매우 많은 실재론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필자는 기독교적 실재론을 접근하기 위한 중요 핵심적 실재론, 즉 ‘철학으로서의 실재론과,’ ‘과학적 실재론,’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적 반 실재론’을 고찰 해 본다.85) 고대 철학 특히, 플라톤이 본 이데아로서의 존재(실재)론, 아리스토텔 레스의 형이상학으로 본 존재(실재)론으로 나뉘지만, 공통점은 존재론에 대한 근원을 관념적으로 찾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의미를 인간사회에 적 용시키고 있다.86) 존재(실재)에 대해 사고하고 인식하는 노력은 주후 16 세기까지 그 맥을 이어간다. 현대 과학자들은 고대의 자연철학을 현대과 학과 분리한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를 자연과학자로 보기를 꺼려 한다. 관념으로 해석된 실재를 가지고 세계관적 의미로 나아가기 때문이 다. 근현대로 들어오면서 물리학의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과학철학으로서 의 실재론이 등장한다. 맥그래스는 ‘과학적 실재론’이란 과거에 다루었던 관념과 사유의 성찰로 가 아니라, 실재 자체를 과학적 관찰로 밝혀내는 일 이며, 실재와의 실제적 만남에 기초하는 경험적 관념이라고 언급한다.87) 즉 고대와 같은 관념적이고 철학으로서의 성찰만이 아니라 세계라는 대 상 자체에 대한 후험적 연구로서의 성찰이다.88)

 

    85) McGrath, The Science of God, 126~139.

    86) Johannes Hirschberger, 『서양철학사(上)』, 강성위 옮김 (서울: 이문출판사, 1999), 127〜149. “필자는 Hirschberger가 논한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에 대한 인식 논쟁을 참조하였다.”

    87) McGrath, The Science of God, 127.

    88) McGrath, The Science of God, 127.

 

맥그래스는 ‘물리학 연구과학철학의 실재’의 관계를 그리스 과학철학자 스타티스 실로스(Stathis Psillos)의 세 가지 생각으로 소개한다.

1. 세계가 이성의 영향을 받지 않고 명확히 한정된 구조를 지닌다는 형이상 학적 신념, 즉 자연 과학의 연구 방법과 전제에 의해 알려지고 의도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구조를 지닌, 객관적 실재가 존재한다는 생각.

2. 과학 이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론적 신념.

다시 말해, 관찰 가능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과학 이론은 해당 영역에 대한 진 리에 의해 통제 되는 기술로 간주해야 하며, 따라서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

3. 원숙하고 성공적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과학 이론은 입증될 수 있으 며 참이거나 적어도 참에 근접해 있다는 인식론적 신념.89)

여기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며 관념론자들의 반론도 제기된다. 그 러나 맥그래스는 ‘과학적 실재론’의 경쟁 상대를 통해 그 대안을 제시해 본다. 즉 관념론, 실증주의, 그리고 도구주의의 관계이다. ‘관념론’은 위에 서 보았듯이 직접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실재’가 우리 지성과 독립적이 지는 않다는 이론을 말한다. 즉 지성과 무관한 실재에는 접근할 수 없다 는 철학이다. 맥그래스는 실제 세계의 구조를 연구하고 실험하는 일이 관 념론과 합리적인 설명이라고 주장하는 자연과학과 긴장관계에 있다고 언 급한다.90) 맥그래스는 이를 층위 된 관계로 보고 다양한 관점에서 하나님 의 계시의 실재를 드러낸다. 즉 ‘실증주의’는 “과학 이론이 본질적으로 실 험 자료나 관찰 결과에 대한 요약일 뿐이다.” 91) ‘도구주의’는 “과학 이론을 관찰된 자료에서 예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사용되는 규칙이나 원리, 계 산 방법” 92)을 말한다.

 

         89) McGrath, 『과학 신학』, 169.

         90) McGrath, 『과학 신학』, 170.

         91) McGrath, 『과학 신학』, 170.

         92) McGrath, 『과학 신학』, 

 

그런 다음 관념론을 놓으면 어떨까 이다. 맥그래스의 전략은 관념론적으로 실재를 생각하였다면, 실증주의와 도구주의로 이 론과 자료와 규칙을 증명하고 다시 관념과 함께 세계관으로 가는 방법론이다.

근현대를 지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반 실재론’에서는 자연과학을 인 간의 활동처럼 본질적으로 해체될 수 있는 구성물이라고 간주한다. 즉 인 간의 사회는 실재라기보다는 스스로 형성하고 구성되고 변하는 집단으로 본다. 때문에 자연도 세계도 이와 같다고 본 것이다. 그런 고로 현대는 실 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 실재론의 시대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포스 트모더니즘에서의 실재는 사물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현상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창조물(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93) 결과적으로 맥그래스는 첫째, 실재에 대한 발견과 함께 실재가 존재하 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는 근대 이전의 시대와, 과학적 접근으로 실재를 완벽하게 인식하고 답을 내기 위한 근대의 노력과, 현대의 포스트모더니 즘의 반 실재론은 서로 부정하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개했다. 하지만 맥그래스의 의도는 어떤 것은 서로 부정되고 어떤 것은 서로 연결 될 수 있는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현대 과학 신학과 다른 접근 방식이다. 대부분의 현대 과학 신학은 창조론에 과학적 도구를 넣어 자신들이 원하는 편향된 주관적 방식으로 전개한다. 국내외 ‘창조과학’ 같 은 곳에서는 성경해석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너무 문자 주의나 연대 기적으로만 보려한다. 한 때 ‘창조과학’에 몸담고 있다 나온 조덕영은 창 조과학의 연대기적, 문자적 해석 방법을 비판하면서 현대 창조과학 운동 은 19세기 보수적인 개신교나 20세기 초 근본주의자들의 전통적 믿음은 아니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94)

 

        93) McGrath, 『과학 신학』, 176.

       94) 조덕영, 『과학과 신학의 새로운 논쟁』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06), 123.

 

이러한 해석 방법은 세상과 소통도 안 될뿐 더러 그 범주도 매우 좁기 때문에 기독교 안에서의 논쟁도 많이 일으키는 단점을 안고 있다.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에서보는 실재론은 이 부분들 을 극복하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2) 비판적 실재론

현대의 모든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그렇지만, 맥그래스의 실재론 역 시 ‘비판적 실재론’과 연관되어 있다.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것은, 고대의 ‘순수 실재론’과 달리, 합리적인 인간 지성에 의해 파악되며, 인간 지성은 수학공식, 심성 모델 등이 도구들을 활용해서 이 실재를 최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이론이라 할 수 있다.95) 맥그래스는 순수 실재론과 포스트모더 니즘의 반 실재론을 거부하고 비판적 실재론을 택정한다. 맥그래스는 톰 라이트(N. T. Wright)가 밝히는 비판적 실재론의 정의를 소개한다. 그것은 인식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알려지는 대상이 실재함을 인정하는 ‘앎’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재론이 다). 그러나 또한 이 실재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식하는 사람과 알려 지는 대상 사이의 적합한 대화라는 나선형의 길을 통하는 것뿐임을 전적으 로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적’이다). 이 길은 ‘실재’에 대한 우리 연구 의 산물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귀결된다.96)

맥그래스는 “최근 몇 년간 비판적 실재론 논의에 활발히 참여하는 이 언 바버(Ian Barbour), 아서 피코크(Arthur Peacocke),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1930~2021)과 같은 저술가들을 통해 이 용어가 ‘과학과 종 교’ 분야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라고 언급한다.97)

 

       95) McGrath, 『과학 신학』, 185. “심성적 모델은, 한 사람이 현실 세계라는 실재 자체로 무엇인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사고를 말한다”

      96) N. T Wright, 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London: SPCK, 1992), 35. 『신약성 경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 (경기: 크리스찬다이제스트). McGrath,『과학 신학』, 187에서 재인용.

     97) 임영동,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과 삼위일체 자연신학: 계시인식론을 중심으로,”

 

 실재론 은 대상이 실재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라이트에게 있어서 비판적 실재론은 인간의 지성과 대상 사이에 대화라는 도구를 통해서 그 둘의 관계가 맺고 있는 실재를 드러내는 것이 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라이트에게서 구체적인 비판적 실재론의 방법론을 찾을 수 없다.

맥그래스는 과학 신학의 토대를 둔 폴킹혼이 밝힌 비판적 실재론을 소개한다.

   첫째, “과학 사상에서 이론과 실천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얽혀” 있으며, 그 결과 과학적 사실은 이미 해석을 거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인식. “이 론과 실험의 상호 관계에는 불가피한 순환성이 존재한다.”

  둘째, “보편적 인식론은 존재하지 않지만, 실체는 그 특유의 성질과 일치하 는 방식을 통해 알 수 있다”라는 인식.98)

 

        98) McGrath, 『과학 신학』, 188.

그러나 맥그래스는 라이트나 폴킹혼에게서 비판적 실재론을 세우지는 않는다.

맥그래스가 세워 가려고 하는 비판적 실재론은 로이 바스카이다.

물론 맥그래스는 폴 킹혼의 과학 신학에 기반을 두고 함께 공명하며 인용도 한다. 하지만 맥그래스는 로이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을 통해 과학적 방법론으로 도약한다.

 

3) 로이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은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인식 적 오류’(epistemic fallacy)이고 또 하나는 층화된 실재론이다. 인식적 오 류’라는 말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어서 어떤 대상의 존재론이 결정된다면 그것은 매우 매력적인 신념이라고 한다.99) 하지만 바스카는 존재론에 있 어서 우리가 사물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면 그것은 사실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존재론이 곧 인식론”이 된다.100) 하지만 바스카 가 󰡔실재론적 과학 이론󰡕(A Realist Theory of Science, 1975)에서 다음과 같이 인식적 오류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을 맥그래스는 밝힌다. 경험적 실재론은 형이상학적 교의에 의해서 이해되었다. 그것을 나는 인식 의 오류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그 존재에 관한 진술은 항상 존재의 지식에 관한 진술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101) 환언하면, 바스카에게 있어서 실재론이 세계를 경험하여 규정하는 일 이 인간의 직관과 사유와 관념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인식 의 오류라 하는 것이다.102) 왜냐하면 인간이 그 존재에 대해 이해한 지식 자체가 실재에 대한 규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존재 자체 보다 인간의 지성이나 관념이 실재가 되고 만다.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 은 사물 자체가 인식의 방식과 범위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을 채택한다. 즉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은 귀추적이며, 후험적인 경험을 통한 실재론 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비판적 실재론은 두 번째인 층화된 실재론 에서 더 드러난다. 둘째로, 바스카에게 있어서 주요 핵심은 ‘층화된 실재’ 이다. 층화된 실재 이론은 분화되고 층화된 동식물들을 각 층위에 적합하 고 그에 맞게 변형된 인식론을 말한다.103) 예를 들면, B층위는 A층위에 의 해서 발생한 인과적 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B층위와 A층위가 공간적으로 서로 다른 층위의 실재라 할 때에는 동일한 방법, 즉 관계적으로 다룰 수 없다.104)

 

       99) McGrath, The Science of God, 144.

      100) McGrath, The Science of God, 144.

      101) McGrath, The Science of God, 145; Roy Bhaskar, A Realist Theory of Science, 2nd edn, (London: Verso, 1997), 16, 재인용.

      102) Roy Bhaskar,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 이기홍 옮김 (서울: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2007), 281.

      103) McGrath, The Science of God, 146.

      104) McGrath, The Science of God, 146. 

 

맥그래스는 환원론적 접근법에 대해 경계한다. 즉 “모든 것을 가장 기초적인 층위의 관점에서만 진술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환 원론적 접근법은 비판적 실재론이 탐구하고 해명하고자 하는 실제적인 삶의 상황들을 올바르게 다룰 수 없다” 105)라고 비판한다. 맥그래스는 환원 주의를 신앙의 세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주의한다. 다음의 예다. 텍스트, 최고의 텍스트인 성경 예배의 형식 신조 등을 통해 제시된 사상 공동체(문화언어) 제도적 구조 이미지 말 종교적 경험106) 위의 예를 보면, 각 실재의 층위마다 고유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맥 그래스는 여기서 “이 층위들로 구성된 더 큰 실재에 접근하려 할 때 각 층 위에 대해 마땅한 만큼의 중요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 107)을 논한다.

그 러나 맥그래스는 위의 예 가운데 네 번째(공동체), 린드벡(George Arthur Lindbeck, 1923~2018)의 문화 언어적 접근법은 다른 층위에 중요성을 부여하면서도 유일한 층위라는 주장을 지지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덟 번째, 슐라이어마허의 종교적 경험의 층위는 반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다른 층위를 소홀히 여길 수 있음을 언급한다.108)

 

       105) McGrath, 『과학 신학』, 195.

       106) McGrath, 『과학 신학』, 196.

       107) McGrath, 『과학 신학』, 196.

       108) McGrath, 『과학 신학』, 196. 

 

맥그래스는 󰡔과학 신학󰡕의 두 가지 특징은 바스카의 분석에 의해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요약한다.

첫째, 󰡔과학 신학󰡕은 존재하는 실재에 대한 반응으로 정당하게 간주될 수 있 으며, 그 실재의 존재는 인간의 관찰의 현실성이나 가능성으로부터 독립적 이다.

둘째, 각 학문 분과는 그 구체적인 대상의 존재론적 성격에 적합하고 그 성 격에 의해 규정된 방법론을 채택해야 한다. 따라서 그 방법론은 선험적이기 보다는 후험적으로 규정한다.109) 바스카의 철학적 입장에서의 비판적 실재론이란 ‘초월적 실재론,’ ‘과 학적 실재론,’ 그리고 ‘비판적 실재론’ 사이의 상호 관계를 밝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110) 이에 맥그래스는 󰡔과학 신학󰡕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비판적 실재론에서 주장하는 실재에 대한 층화된 이해를 받아들일 때 우리 는, 자연과학은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모든 층위에서 우발적인 존재의 층화 된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며, 신학적 과학은 그 층화된 구조를 통해 계시된 창조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성육신의 교리-공 간과 시간, 역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체 안에서 이 창조된 영역으로 들어오셨다는 주장-는 역사적 실재와 신학적 실재 모두를 긍정한다.111)

 

       109) McGrath, 『과학 신학』, 197.

       110) Roy Bhaskar,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 341.

       111) McGrath, 『과학 신학』, 197. 

 

결과적으로 맥그래스는 실재와의 만남을 과학 신학으로 접목시킨다고 볼 수 있다.

“과학 신학은 존재하는 실재에 대한 일관된 반응의 형식을 띠 며, 후험적 학문 분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상의 독특한 성경에 주의를 기울이고, 실재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112)고 볼 수 있다. 맥그래스의 과 학적 방법론에 관해 비평한 벤자민 마이어(Benjamin Myers 1923∼ )는 맥그래스의 과학적 방법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벤자민 마이어는 맥그래 스의 󰡔과학 신학󰡕은 “과학적 발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신학적 내용 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신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방법론적 유사점에 관련 되었다”라고 언급한다.113)

마이어는 ‘자연’에서 맥그래스는 하나님이 자기 계시를 드러내는 방식을 삼위일체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음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고 언급한다. 즉 모든 피조물은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를 통해, 하지만 창조의 질서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특히 ‘실재’에서는 계몽시대의 토대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전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하면서 새로운 비판적 실재론을 세웠다고 언급한다.114)

또한 마이어는 맥그래스가 계몽시대와 객관주의와 포스트모던 사회구조를 효과적인 통찰력으로 모두 사용하고 있다고 밝힌다. 결과적으로 마이어는 맥그래스의 모든 연구는 “신학의 역사 및 과학의 원리와 의 광범위한 맞물림을 통해 전개되는 한편 가장 결정적인 진술은 성경의 증거에 뿌리를 둔다” 115)고 평가했다.

 

       112) McGrath, 『과학 신학』, 199.

       113) McGrath, 『과학 신학 탐구』, 황의무 옮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0), 45.

       114) McGrath, 『과학 신학 탐구』, 황의무 옮김, 51.

       115) McGrath, 『과학 신학 탐구』, 황의무 옮김, 64.

 

그러나 필자는 마이어의 평가에 있어서 비판적 실재론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놓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남긴다.

왜냐하면 맥그래스의 과학적 방법론에 있어서 비판적 실재론, 특히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은 단순 한 통합적 방법이라는 의미보다는 층화, 즉 서로 연결되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들을 증명하여 보는 통합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맥그래스의 비판적 실재론은 특히나 위에서 밝힌바 관찰 → 이론 → 세계관이라는 방식을 취하면서 기독교 신학에서 다루는 하나님의 계시에 있어서 보다 심층적이며, 아직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의 자연계시의 지식을 보다 풍성히 드러내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특이한 것은 맥그래스의 비판적 실재론은 성공 실패라는 수식을 받지 않는 과학적 방법론이다.

계속에서 쌓아가고 부수고 세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변증법과 유사하지만 맥그래스는 끝이 없는 막연한 변증법 이 아니라 성경에서 제시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전제한 계시 인식론적 방 법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특별 계시와 일반 계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으로서의 계시로 모아진다. 따라서 일반 계시는 특별 계시인 성경 계시를 점점 더 풍성히 세상에 드러나게 하고 기독교 신앙을 좀 더 확고하게 하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Ⅳ. 나가는 말

지금까지 필자는 ‘기독교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을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 계시의 역사와 개념에 대한 이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특별 계시’와 ‘자연계시’라는 두 양태로만 끝나는 것 이 아니라 서로 보충하고 보다 더 풍성히 드러내는 계시 인식론이 들어있다.

둘째, ‘과학적 방법론’을 ‘이론,’ ‘자연,’ ‘실재’라는 맥그래스의 3부작 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지면 할애상 충분한 비평을 하지 못하였지만,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의 중심적 요소들을 알 수 있는 주제였다.

필자가 시도해보려 했던 점은 위의 두 주제, 즉 맥그래스의 ‘계시 신학’과 󰡔과학 신학󰡕을 연결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보다 극대화하여 설명하기를 원했다.

필자는 본 주제에서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의 방법론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고자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이 제시한 이 세계, 즉 자연을 통해 더 확장되고 드러나는 새로운 방식의 ‘과학적 방법론’이었기 때 문이다.

특이한 점은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 방법론은 완성을 향해 나가는 구조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 열린 방법론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필자는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 안에 ‘비판적 실재론’을 함의한 것을 위에서 밝힌 바 있다.

그동안 국내의 기독교 신학과 교회는 특별계시 측면에만 무게를 둔 감이 없지 않다.

필자는 본 주제가 4차 산업 과학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기독교에 좀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하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하도록 해주며,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재해석하여 설명해 주는 발판을 이뤘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 입장을 취할 수 있었다.

본 주제의 연구 방법론의 특징이 있다면, 기독교 신앙의 변증과 동시에 공공의 신학을 모두 취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필자가 연구하면서 흥미롭게 느낀 점은 맥그래스의 과학적 방법론은 하나님의 자연계시를 입체적으로 보게 하는 구조였다.

즉 ‘층화된 피조세계’와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이론의 조화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더 뚜렷하게 보인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 명령하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큰 기대효과를 볼 수 있다고 본다.

한 가지 제언을 한다면, 한국교회와 기독교 신학이 세계에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보다 더 풍성히 드러내는 데에 좀 더 시간을 투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순히 학문적 논쟁을 넘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를 설명해 주는 연구로 이해한다면, 맥그래스의 ‘계시 인식론’과 ‘과학적 방법론’의 관계는 기독교의 미래에 큰 희망을 가져다 줄 연구라 생각한다. 

 

 

Scientific Methodology for Christian Natural Theology -Focused on Alister McGrath

Young Dong Lim (Church of Shalom/ Baekseok Culture University, Lecturer)

This study is a harmony between special revelation and general revelation (natural revelation), which must be dealt with urgently in the present era entering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era. In this thesis, a new method of “scientific theology” is included to fully reveal and explain God’s revelation in creation reflecting God’s revelation. This study focuses on 󰡔Scientific Theology󰡕 of Alister E. McGrath, a molecular biologist and theologian who is still active. This thesis intends to study two major themes, focusing on McGrath. First, ‘The History and Justice of Christian Revelation’. This is a very necessary part in developing “Scientific Methodology for Christian Natural Theology”. It contains ‘The Definition of Revelation as insisted by McGrath’ and ‘Scientific Methodology for Natural Revelation’. Here, the two modes of special revelation and general revelation are presented as a monistic epistemology, and the revelation as a special way of God is revealed. While examining several modern and contemporary epistemological models of revelation, McGrath has made clear to what point Christian revelation has been discussed in history. McGrath emphasized the 기독교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 -알리스터 맥그래스를 중심으로- ┃ 임영동 91 retrospective recognition of revelation, seeing that God’s special revelation is revealed more clearly and abundantly through general revelation. The relationship between special revelation and general revelation, or ‘monistic awareness’, will become a new methodological foundation that lays the foundation for Christian natural theology. Second, it is a ‘scientific methodology’ based on a new epistemological foundation for Christian revelation. There are three topics covered here. ‘Theory,’ ‘Nature,’ and ‘Reality’. How will this recognize and understand God’s creation? It is a question of methodology. The scientific methodology for Christian natural theology consists of ‘observation’ of creation in a special way, the implications of the ‘scientific theoretical system (doctrine)’, and ‘explanation (worldview)’ of God’s revelation in Christian faith. way out. This methodology is also McGrath’s strategy for balancing Christian special and general revelation. [Key words: Revelation, theory, nature, reality, observation, theory, reflection (worldview)] 92 조직신학연구 제39권 (2021년) <참고문헌> McGrath, Alister E. The Science of God. London: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Grand Rapids, Michigan, 2004. --------------. A Scientific Theology. vol. 1. Edinburg: T&T Clark, 2001. --------------. A Scientific Theology. vol. 2. Edinburg: T&T Clark, 2002. --------------. Christian Theology: An Introduction. Blackwell Publishing Ltd, 2003. --------------. 󰡔과학 신학󰡕. 박세혁 옮김.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11. --------------. 󰡔과학 신학 탐구󰡕. 황의무 옮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0. --------------. 󰡔루터의 십자가신학󰡕. 정진오·최대열 공역. 서울: 컨콜디아사, 2001. --------------. 󰡔신학이란 무엇인가?󰡕. 김기철 옮김. 서울: 도서출판 복있는 사람, 2016. --------------.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박규태 옮김.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14. Brunner, Emil·Barth, Karl. 󰡔자연신학󰡕, 김동건 옮김. 서울: 한국장로교 출 판사, 2007. Bhaskar, Roy.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 이기홍 옮김. 서울: 도서 출판 후마니타스, 2007. Calvin, Joh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영한 기독교 강요I󰡕. 서울: 기독성문출판사, 1990. Collier, Andrew. 󰡔비판적 실재론: 로이 바스카의 과학철학󰡕. 이기홍·최대용 옮김. 서울: 후마니타스, 2010. Hirschberger, Johannes. 󰡔서양철학사(上)󰡕. 강성위 옮김. 서울: 이문출판사, 1999. Immanue, Kant l. 󰡔순수이성비판󰡕. 백종현 옮김. 경기: 아카넷, 2016. Schleiermacher, Friedrich, Daniel Ernst. 󰡔종교론󰡕. 최신한 옮김. 서울: 기독 교서회, 2015. 기독교 자연신학을 위한 과학적 방법론 -알리스터 맥그래스를 중심으로- ┃ 임영동 93 Tillich, Paul. 󰡔폴 틸리히 조직신학1󰡕, 남성민 옮김, 서울: 새물결 플러스, 2021. 박찬호, 󰡔과학과 신학 그리고 영성󰡕. 서울: 도서출판 대서, 2010. 조덕영, 󰡔과학과 신학의 새로운 논쟁󰡕. 서울: 예영커뮤니케이션, 2006. 임영동, “기독교 자연신학의 가능성과 현실성”, 󰡔한국복음주의 조직신학회󰡕, 제 32권, (2019): 164. 임영동,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과학 신학과 삼위일체 자연신학: 계시인식론 을 중심으로”, 신학박사학위논문, 백석대학교 대학원, 2016.

 

조직신학연구 제39권 (2021년)

논문 투고일: 2021.11.09.    게재 확정일: 2021.12.01.

 

조직신학연구39호-02-임영동-수정.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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