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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의 기독론에 대한 분석과 평가/ 유창형.칼빈대

<한글초록>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Theodore of Mopsuestia, 350-428)가 제2차 콘스탄티노플에서 정죄된 것은 신학적인 요소도 있지만 당시 단성론자들 을 달래서 제국의 통일성을 유지하려는 황제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므로 그의 신학은 재결합 신조(433)와 제6차 공의회(680)에 기초하여 다시 검 토될 필요가 있다.

테오도르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구별은 유지하면서 한 인격을 주장하였다.

이 한 인격은 두 본성의 연합의 결과였다.

그는 위 격적 연합이란 용어보다 인격적 연합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가 사용 한 세 비유 중에서는 영혼과 육체의 연합의 비유가 가장 정통적인 비유였 다.

그가 두 아들론을 주장했다는 비난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러나 그는 본성들이 각각 주체성을 갖고 있다고 함으로써 이원론적인 경 향이 있다고 비판받았다.

그럴지라도 그가 두 본성의 구별을 유지하고, 두 본성의 연합으로 말미암은 한 인격을 강조한 내용은 재결합 신조에 반영 되었으며 기독론의 발달에 공헌하였다.

[주제어: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 기독론, 두 본성, 프로소폰, 휘포스타시스, 거주에 의한 연합]

I. 들어가는 글

오랜 세월 동안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Theodore of Mopsuestia, 350-428)는1) 유명한 성경 주석학자로서 안디옥에서 존경받았다.

1) 본 논문과 유사한 주제는 국내에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김차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의 ‘삼장’(tria Capitula) 논쟁의 의미” (「인문과학연구논총」 제37권 3호, 111-149)가 하나 있지 만, 사상은 다루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적 접근을 주로 했다. 들어가는 글에서 다룬 학자들 외에 도 테오도르의 기독론을 비판한 글들은 다음을 참조하라. John Romanides, “Highlights in the Debate over Theodore of Mopsuestia’s Christology and Some Suggestions for a Fresh Approach,” The Greek Orthodox Theological Review 5/2(1959-1960): 140-85; Martin Jugie, “Le ‘Liber ad baptizandos’ de Theodore de Mopsueste,” Echos d’Orient, 34 (1935): 161-69. Jugie는 테오도르가 네스토리우스주의자라고 교회의 정죄를 받았다고 말한다; Wilhem de Vries, “Der ‘Nestorianismus’ Theodors von Mopsuestia in seiner Sakramentenlehre,” Orientalia Christiana Periodica 7 (1941): 91-148. 여기에서 빌헬름은 테오도르가 속성교류에 대한 지식의 결핍과 그리스도 안에 두 인격이 있음을 가르쳤고,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이 거할 뿐이 고 그리스도가 참된 하나님임을 거절했다고 비난했다(93f); 테오도르의 정통성을 옹호한 학자와 글 은 다음과 같다. J. A. Dorner,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the Doctrine of the Person of Christ, Div. II, vol. I, trans. D. W. Simon (Edinburgh, 1869), 25ff, 380ff; Theodori Episcopi Mopsuesterni in Epistolas B. Pauli, ed. H. B. Swete, I (Cambridge, 1880), lxxix-lxxxvii. 여기 에서 스웨테는 테오도르는 사악한 이단이 전혀 아니고, 단지 아폴리나리스와 논쟁하는 데서 과도한 열심에서 오류를 범했을 뿐이라고 하였다.; Monsignor Robert Devreesse, Essai sur Théodore de Mopsueste, Studi e testi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1948), 141. 드브리세는 테오도르 의 작품에서 생략이나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이유로 그가 책임이 있는 오류를 그에게 전가해 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며 그에게 책망할 것이 거의 없다고 하였다(285, 279).

그러 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482-565)가 주최한 콘스탄티노플 2 차 공회에서는 테오도르와 그의 신학이 정죄되었다.

이 정죄는 ‘삼장’(tria Capitula)2) 정죄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교황 비길리우스(Vigilius, 537- 555)는 ‘삼장’ 정죄를 반대하다가 황제의 압박에 못 이겨 겨우 승인하였 고, 서방교회와 아프리카 교회, 아퀼레이아에서는 이 공의회의 결정을 반 대하였다.3)

멕클라우드(Frederick G. McLeod, 1932-2022)도 “콘스탄티노플 2 차 공의회에서 테오도르가 정죄되었기 때문에 선입견을 갖고 대하지 말 고 그리스도의 연합에 관해 그가 작성한 것에 비추어 그가 정통인지 아닌 지” 4)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다.

멕클라우드의 이런 진술은 콘스탄티노플 2 차 공의회가 보편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암시하 고 있다.

또한 갈티어(Galtier, 1872-1961)도 테오도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사이에 도덕적 연합을 가르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테오도르 자 신의 작품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Cyrillus, 376-444)의 12가 지 정죄문에 근거해서 비판한 것이라고 공격했다.5)

그는 테오도르가 “두 본성에 독특한 것이 한 프로소폰(prosopon)과 한 휘포스타시스(hypostasis)에서 보존되고 일치한다” 6)는 칼케돈 회의(451년)와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의지들과 행동들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함께 동시에 발생한다” 7) 는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회의(680-681)에 비추어 판단되어야 한다고 주 장했다.8)

2) 키루스의 주교 테오도렛의 저작,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를 규탄하는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 저 작,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를 지지한 에데사의 이바스가 쓴 페르시아의 마리스에 대한 편지를 말 한다.

3)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NY, New York: Routledge, 2009), 7.

4) Frederick G. McLeod, “The Christology in Theodore of Mopsuestia’s Commentary on the Gospel of John,” Theological Studies 73 (2012): 116.

5) Paul Galtier, “Theodore de Mopsueste: Sa vraie pensee sur l’incarnation,” Recherches de science religieuse 45 (1957): 161-86, 338-60.

6) Heinrich Denzinger, Enchridion symbolorum: Definitionum et declarationum de rebus fidei et morum, ed. Peter Hünermann, 43nd ed.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2012), 351, no. 302.

7) Denzinger, Enchridion symbolorum, 194, no. 558.

8) Paul Galtier, “Théodore de Mopsueste: Sa vraie pensée sur l’Incarnation,” 164; John Romanides, “Highlights in the Debate over Theodore of Mopsuestia’s Christology and Some Suggestions for a Fresh Approach,” The Greek Orthodox Theological Review 5/2 (1959-1960): 146에서 재인용.

 

비록 테오도르가 다른 언어를 사용했지만, 본질적으로 키릴루스와 같은 교리를 고백하였다고 주장했다.

즉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연합 의 결과로 한 프로소폰만이 있다고 했으며, 두 프로소폰이 있다고 주장하 지 않았다. 단지 두 본성을 추상적으로 생각할 때만 두 본성에 따른 두 인 격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연합 후에는 한 프로소폰만 있다.9)

드브리세 (Devreesse, 1894-1974)도 그의 작품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의 에세 이󰡕(Essai sur Theodore de Mopsueste)에서 테오도르는 네스토리우스주 의와 상관이 없고, 그의 교리는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 한 인격, 한 주체라 고 진술했다.10)

핀토(Loyce Selwyn Pinto)는 테오도르가 이단으로 정죄된 것은 당시 용어 사용의 차이 때문이지 결코 그가 고의적인 이단이 아니며 정통신학자라고 주장하면서, 테오도르는 칼케돈 회의의 카논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저명한 학자로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교량적 역할을 했 다고 보았다.11)

그는 테오도르가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이 있고 한 인격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리스도의 행동들 안에는 하나의 궁극적 근원이 있 었다고 주장했다고 보았다.

최근에 박영호 기자는 가톨릭 신문에서 테오 도르가 그리스도의 인성을 잘 강조하였으며, 인성을 강조할 때 생기는 문 제점을 잘 극복한 “정통신학의 수호자”며, 네스토리우스주의자가 아니라 고 주장하였다.12)

9) Romanides, “Highlights in the Debate over Theodore of Mopsuestia’s Christology,” 148-49. 10) Robert Devreesse, Essai sur Theodore de Mopsueste (Rome: Biblioteca apostolica vaticana, 1948), 114ff.

11) Loyce Selwyn Pinto, “The Christology of Theodore of Mopsuestia: Heresy or Orthodoxy?” The Dunwoodie Review, 44 (2022): 217-231.

12) 박영호,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 세계교회사 인물 100選] (31) 교부편 (12) 몹수에스티아의 테오 도로”, 가톨릭 신문, 2413호 15면. 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 =147 787 (2023.08.22. 접속).

 

위의 학자들과 달리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의 기독론이 정통이 아 니라는 견해를 가진 학자는 다음과 같다.

J, L. 니브(Neve, 1865-1943)는 테오도르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지나치게 구별하여, 로고스가 예 수의 육체를 단순히 거처로 사용했다고 보았고, 이는 두 본성의 진정한 결 합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교회의 정죄를 받았다고 보았다.13)

베른하르트 로제(Loshe, 1928-1997) 역시 테오도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과 인간의 통일을 표현할 수 없었다”고 하였으며, “로고스가 인간 안에 내 주하였으며”, 양자의 긴밀한 연합은 “인간 예수가 로고스의 소원을 받아 들이는 방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보았다.

이 표현은 일종의 도덕 적인 의지의 연합을 의미한다.

위와 같이 로제는 테오도르가 매우 부주의 한 표현들 때문에 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정죄되었다고 주장하였 다.14)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1873-1957)는 테오도르가 그리스도 는 두 인격을 소유한 것도 아니고, 두 인격 간에 정신적 연합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밀접한 연합으로 두 인격이 “남편과 아내를 한 몸이라고 부 를 수 있듯이 하나의 인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 안 에서 로고스의 본질적인 내주를 부인하고, 단순한 정신적 내주만을 인정 했다”고 보았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내주와 신자들 안에의 하 나님의 내주 사이에 아무런 본질적 차이가 없고 정도의 차이만 있다”고 하였다.15)

프란시스 설리반(Francis A. Sullivan, 1922-2019)도 테오도르가 두 본 성을 한 프로소폰(인격) 안에서 연합시켰지만, 한 인격이 아버지로부터 낳아졌고, 마리아에게 태어난 주체이며, 그가 바로 말씀 하나님임을 이 해하지 못했으며 이런 면에서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는 ‘네스토리우 스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렸다고 하였다.16)

13) J. L. Neve,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vol. One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서남동 역, 『기독교 교리사』 I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72), 209.

14) Bernhard Lohse, Epochen der Dogmen Geschichte, 구영철 역, 『기독교 교리사』 (서울: 컨콜 디아사, 2001), 116-18.

15) Louis Berkhof, The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s, 신복윤 역, 『기독교 교리사』 (고양: 크리스 챤다이제스트, 2008), 108.

16) F. A. Sullivan, The Christology of Theodore of Mopsuestia (Rome: Pontificia Univ. Gregoriana, 1956), 288.

밀톤 V. 아나스토스(Milton V. Anastos, 1909-1997)도 제5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인용된 테오도르 의 교리적 연설(Catethetical Orations)에서 취해진 후반부의 다수는 가변 성을 그리스도에게 돌린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두 인격들, 즉 한 사람과 한 하나님으로 나눈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이단”이라고 하였다.17)

그러므로 테오도르는 “영구히 정죄를 피할 수 없었고, 전체적인 그의 신학 체계에 대한 파문도 피할 수 없었다”고 보았다.

케빈 맥나마라(Kevin McNamara, 1926-1987)도 테오도르가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견지했다는 면에서는 공 로가 있지만, 그리스도의 인간적 본성에 독립적인 실존을 부여함으로써 한 그리스도와 한 인간의 교리를 암묵적으로 부인했다고 보았다.

테오도 르는 단순히 도덕적 연합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영혼과 육체의 결합에 그 리스도의 연합을 비유한 것은 실체적(substantial)이 아니고, 단지 역동적 인 연합이라고 보았다.

그리스도의 연합이 두 실존하는 본성들의 연합이 아니라 우연적인 연합이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보았다.18)

그리스도의 인성 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신격으로부터 인성을 분리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고 비판하였다.19)

17) Milton V. Anastos, “The Immutability of Christ and Justinian Condemnation of Theodore of Mopsuestia,” Studies in Byzantine Intellectual History Pt. VII (1979): 158.

18) Kevin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Irish Theological Quarterly 19 (1954): 189.

19) Kevin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4): 191.

테오도르에 관한 이런 여러 다른 입장들은 테오도르의 신학에 대해 다 시 한번 정밀하게 다루어 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먼저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를 정죄한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의 카논 (Canon)을 살펴보고, 다음에 테오도르의 기독론을 분석하고 평가함으로 써 테오도르의 신학이 어떤 면에서 정당하고 어떤 면에서 문제가 있는지 를 판단한다.

제2차 콘스탄티노플 회의의 배경과 과정과 결과가 과연 정 당한지에 관해서는 간략하게만 다루고 다음 기회에 자세히 한 편의 논문 으로 다룰 것이다.

II.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 테오도르의 정죄

1. 공의회의 배경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삼장’을 정죄한 배경은 단성론자들을 달래고 제국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20)

유스티니아누 스 황제가 온건한 단성론자들에게 다소 호의적으로 회유하려고 했던 것 은 황후 테오도라(Theodora, 497-548) 의 영향이었을 것이라고 라토렛 (Latourette, 1884-1968)은 말한다.21)

이것을 인정하면서도 아나스토스는 유스티니아누스의 테오도르에 대한 파문은 아무런 정치적인 의도가 없는 순수한 신학적 문제라고 보고 있다.22)

20) Milan V. Anastos, “The Immutability of Christ and Justinian Condemnation,” 138.

21) Kenneth S. Latourette, 『기독교의 역사』, 432.

22) Milan V. Anastos, “The Immutability of Christ and Justinian Condemnation,” 138.

하지만 논자가 보기에 이 문제는 칼 케돈 공의회의 결정과 단성론자들간의 견해를 좁혀서 제국의 안정을 누 리려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공의회였다.

2. 테오도르와 그의 신학에 대한 정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본성이 한 공통된 프로소폰 안에 연합되었다는 테오도르의 시도를 정죄했다.23)

23)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s Understanding of Two Hypostaseis and Two Prosopa Coinciding in One Common Prosopon,” Journal of Early Christian Studies 18/3 (2010), 410.

그리하여 묘비에 새겨 진 ‘위대한’(magnus)이란 말 대신 ‘불경건한’(impius)이란 말이 테오도르의 이름 앞에 붙게 되었다.24)

그는 사모사타의 바울, 아리우스, 아폴리나 리스와 같은 유명한 이단들과 같은 그룹으로 묘사되었다.

비록 그가 교회 의 평화 가운데 죽었지만, 그의 작품들에서 나온 수많은 발췌문들과, 저자 로서 테오도르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교 부들은 제5 카논(규범)에서 테오도르를 정죄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휘포스타시스를, 여러 휘포스 타시스의 의미를 인정하고, 두 휘포스타시스 혹은 두 프로소폰(인격)을 그 리스도의 신비로 소개하려고 시도하고, 그 후에 테오도르와 네스토리우스가 분별없이 썼듯이, 두 프로소폰을 소개한 후에 단지 위엄과 영예와 찬미에 관 하여 한 프로스폰(인격)을 말한다면, 그리고 만약 그가 거룩한 칼케돈 회의 가 이런 불경한 방식으로 한 휘포스타시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비방하는 주장을 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그의 육체와 위격적으로 연 합되었고 거룩한 칼케돈 회의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위격을 고백한 것과 같은 의미로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런 자는 파문될지어다!25)

24) Kevin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255.

25) Denzinger, Enchiridion symbolorum, 149, no. 426.

아나스토스는 테오도르에 관하여 가장 잘 요약된 정죄는 2차 콘스탄티 노플 공의회의 열두 번째 파문 항목이라고 한다.

만약 누군가가 다음과 같이 주장한 불결한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르를 변호 한다면, 그는 파문될지어다. 한 분은 로고스 하나님이고 다른 한 분은 그리 스도다. 그리스도는 영혼의 근심과 육신의 소욕에 의해 고통받았고 더 비천 한 수난으로부터 점차 해방되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그의 행함에 있어 서의 진보 때문에 향상되었고, 그의 생애에서 흠 없게 되었다; 그는 단지 사 람으로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받았으며 입양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왕적 이미지의 방식으로 그는 로고스 하나님의 인격 안에서 경배 받았고 부활 후에 그의 생각에서 불변하게 되었고 완전히 죄없이 되었다 ... 그는 로고스 하나님과 그리스도 연합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 즉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고 사도가 묘사한 바와 같다고 가르쳤다....26)

26) Denzinger, Enchiridion symbolorum, 151, no. 434.

위의 항목은 테오도르가 그리스도의 가변성을 주장했다는 것과 그리 스도의 연합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으로 비유한 것을 정죄한 것이다.

본 논문은 위 두 정죄 항목을 인지하면서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III. 테오도르의 기독론에 대한 분석

1. 용어의 사용

콘스탄티노플 2차 공의회에서 교부들은 휘포스타시스와 프로소폰을 동의어로 사용했다.

이것은 카논 5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육체와 위 격적으로(hypostatically) 연합되었고, 그러므로 그의 휘포스타시스 혹은 그의 프로소폰은 하나다” 27) 라고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다.

27) Denzinger, Enchiridion symbolorum, 109, no. 302.

멕클라우드는 두 용어가 같은 연합체를 표현하는 단어로서 이해될 때는 이런 진술이 참 되지만, 의미에 있어서 동일하지는 않다고 한다.

왜냐하면 칼케돈 회의의 교부들은 “두 본성에 독특한 것은 한 프로소폰과 한 휘포스타시스 안에서 보존되고 일치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즉, 휘포스타시스와 프로소폰을 동 시에 사용했다는 것은 두 단어가 같다면 불필요한 반복일 것이기 때문에, 두 단어는 분명 어떤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교부들 은 두 단어는 상호교환적이라기보다는 상호 보충적인 것으로 이해했다.

칼케돈 회의는 한 휘포스타시스를 말했는데, 그것은 휘포스타시스가 프로소폰과 동일시된다는 의미에서 휘포스타시스를 한 본성으로서가 아니 라 한 프로소폰으로 이해한 것이다.

테오도르는 두 본성이 각각의 휘포스 타시스를 갖고 있다고 진술했다.

인성은 영혼의 휘포스타시스를 갖고 있고, 신성은 말씀의 휘포스타시스를 갖고 있다.

휘포스타시스와 프로소폰 은 한 분 그리스도에게서 동시에 존재한다는 면에서 동등하다.28)

멕클라우드는 테오도르가 두 휘포시스타스를 말하지만, 위격적 (hypostatic) 연합을 말하지 않고 한 공통된 프로소폰을 말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테오도르가 휘포스타시스와 프로소폰을 구별하여 사용했다고 본 것으로부터 도출된 결론이다.

테오도르에게 퓌시스(physis)는 본성을 의 미하고, 우시아(usia)는 본체(혹은 실체)로서 존재의 가장 깊은 근원적인 성질을 의미하고, 프로소폰은 “한 인간의 말하고 행동하는 외적인 습관적 인 방식과 그런 행동의 직접적이고 가까운 원인으로 섬기는 그의 내적인 본성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 관계” 29)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프로소폰 은 자신을 외부로 드러내는 본성의 능력,30) 혹은 속성의 개별적인 주체를 표현하는 용어로 인격(위격)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람의 프로소폰은 그 리스도의 신체적, 영적인 속성의 인간적 주체를 의미한다.

말씀의 프로소 폰은 신적 지성과 의지의 개별적 주체를 말한다.

휘포스타시스는 환영적 인 외양에 반대되는 진정한 실존,31) 즉 특이하고 구체적인 성질이 살아있 는 실재(reality), 혹은 실제로 존재하는 본성을 의미하며 위격으로 번역된 다.32)

28) Frederick G. McLeod, “Two Hypostaseis and Two Prosopa,” 419-20.

29) Frederick G. McLeod, “Two Hypostaseis and Two Prosopa,” 402.

30)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London and NewYork: Routledge, 2009), 51.

31)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82. 32) Frederick G. McLeod, “Two Hypostaseis and Two Prosopa,” 399.

테오도르의 기독론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용어의 혼 돈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즉 테오도르가 구체적인 용어와 추상적인 용어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속성의 주체로서 말씀 하 나님을 언급할 때, 신성이란 추상적인 용어를 사용하였다.33)

성육신에 관 해 말할 때, 말씀 하나님 대신 신성을 사용하였다. 테오도르는 니케아 신 경에 관한 8번째 설교에서 취해진 존재를 사람으로, 취한 존재를 하나님 으로 묘사했다.34) 다시 말하면 취해진 것을 인성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테오도르는 동일한 설교에서 신성을 로고스와 같이 취급했고,35) 종의 형태를 한 사람의 인격으로 묘사했다.36)

이런 방식으로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취해진 아들을 구별했으므로 두 아들론, 혹은 두 인격론 이라는 비난의 빌미가 되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구별했을 뿐 극단적인 양 성론자였던 디오도르(Diodore, died in 390)와 네스토리우스(Nestorius, 386-451)같이 두 아들론으로까지 나가지는 않았다.37)

33)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1952): 269.

34) Alphonse Mingana, Commentary of Theodore of Mopsuestia on the Nicene Creed, Woodbrooke Studies 5 (NJ. Piscataway: Gorgias Press, 2009), 5, 89. 이후로는 Mingana, 5로 표기함. 35) Sullivan, The Christology of Theodore of Mopsuestia, 209-13.

36) Sullivan, The Christology of Theodore of Mopsuestia, 218.

37) Kelly, 『고대기독교교리사』, 327. “그는 디오도루스의 두 아들론을 순진한 것으로 거부하고, 본성 들의 구별은 두 아들이 하나라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2. 세 비유

1)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

테오도르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 혼하여 한 몸이 되는 것으로 비유한 것은38) 연합의 유기적이고 기능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 안의 두 주체로서 신성과 인성 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두 본성의 두 의지가 도덕적으로 하나의 의지로 연 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38) Theodore, De Incan., PG 66, 981.

이런 의미에서의 연합은 비록 테오도르가 연합에 있어서 한 인격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39) 여전히 한 남자의 의지가 있고 한 여자의 의지가 있으며, 한 남자는 한 여자가 아니고 한 남자로 있으며, 한 여자도 한 남자가 아니라 한 여자로 있으므로 이 비유를 계속 유지한다 면 그리스도도, 인간 그리스도와 성자 그리스도로 남아있게 된다.

소위 두 아들론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는 또한 “우리는 본성들을 구분할 때, 사람의 인격은 온전하고 신의 인격도 온전하다고 말한다” 40)고 하였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심판자로 오신다고 할 때, 그의 재림을 사람의 재림과 말씀 하나님의 재림으로 이해한다” 41)고 하였다.

39) Theodore, De Incan. book 7, 8; Richard A. Norris, Jr. ed., 『기독론 논쟁』, 156-57.

40) Richard A. Norris Jr. ed., 『기독론 논쟁』, 158-59.

41) Richard A. Norris, Jr. ed., 『기독론 논쟁』, 154-55.

선 의를 통해 말씀 하나님이 그와 단일성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은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연합이 단지 의지적인 연합이 아니라 위격적인 연합이라는 칼케돈의 정의에 충분히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즉 두 본성이 한 인격이 되었다고 하지만 두 본성이 남자 와 여자라는 인격적 실체를 각각 갖고 있고, 실제 인격도 각각 갖고 있으 므로 두 아들론이라는 비난을 받을 여지가 있는 것이다.

테오도르에게는 두 본성이 두 실체들이며, 결국 두 인격이 의지적으로 한 인격처럼 조화를 이룬다는 의미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하나의 인격으로 보는 한 두 실체론을 벗어날 수 없다.

단지 겉으로 볼 때, 그리스도는 취해 진 사람과 취한 말씀이 이 별개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으로 보 인다.

남자와 여자의 연합의 비유는 외양으로도 두 개체와 두 인격들로 보 이는 비유에 불과하며, 이것을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연 합에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리스도의 연합은 외양으로 볼 때 분 명 하나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비유는 성경에 있는 비유지만 그리 스도의 두 본성의 연합을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2) 영혼과 육체의 비유와 연합, 속성교류

맥나마라에 따르면, 테오도르의 위격적 연합은 신플라톤주의의 지적인 존재들의 연합에 기초하고 있다.

이 이론은 둘 중 하나가 지적인 존재, 즉 비물질적 존재라면, 두 존재가 혼동이나 변화없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42)

이 이론은 무형의 영혼이 신체에 자신을 연합시키되 본질에 있어서 비부패적인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영혼과 육체의 연합에 적용되었다.

영혼과 육체의 연합은 절대적이고 전적인 침투인데, 그 덕분에 영혼은 변형시키고, 완전하게 하는 활동으로 몸의 전 부분 에 임재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신체에 전달한다.

영혼은 몸에 국소적 임재 에 의해서가 아니라 관계와 활동에 의해서 육체에 임재한다.

이런 신플라톤주의 이론은 네메시우스(Nemesius Emesimus)에 의해 신성의 비물질성이 인성과 연합되는데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신성은 취해진 본성의 수난에 전혀 참여하지 않지만, 영혼은 육체의 수난에 동참한다.43)

위격적 연합은 본질의 연합이나, 본질 안에서의(in essence) 연합은 아니다.

이 연합은 인간적 본질에 관계하여 신적 본질의 특별한 활 동과 성향으로 구성된다.

이런 사상은 테오도르의 사상과 유사하다.

테오 도르는 위격적 연합을 영혼과 육체의 연합으로 비유했다.44)

하나님은 이 연합에서 취해진 자와 특별한 방식으로 협력하며, 이 협력은 부활 후에 최 고 수준에 달하여 인성은 말씀과 별도로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다.

두 본성 은 상호 침투성이 존재한다.45)

42)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79.

43) De Natura Hominis, PG 40, 601.;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80.

44) Theodore, Contra Apollin., PG 66, 997;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80.

45)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81.

맥나마라에 따르면, 테도오르는 말씀이 변화 없이 육신을 취하심으로 사람이 되셨다고 하였다.

“본성들과의 구별은 친밀한 연합을 폐기하지 않고, 두 본성 사이의 구별을 파괴하지 않는다. 본성들은 구별되어 각각의 실존에서 남아있지만, 연합은 밀접하게 남아있다.” 46)

두 본성은 변화없이, 혼동없이, 제한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위격적으로 연합되어 있다. 그리스 도의 인격은 자신을 단지 하나님으로서가 아니라 신-인으로서 나타냈다.

테오도르는 경험과 활동의 신적이고 인간적인 중심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이중적 본성의 실존을 강조했다.

이런 테오도르는 ‘변화 없이, 혼동 없이, 제한 없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칼케돈의 결정과 유사한 입장을 견 지했다.47)

즉, 두 본성의 존재를 구별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연합은 온전히 유지했다.

테오도르는 속성교류에 대해 말했는데, 인성에 의해 행해지거나 경험 된 것이 하나님에 의한 것으로 말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인성이 신성의 활동의 행위자요 신적 영예의 수혜자로 간주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런 면에서 본성들의 두 주체에 공통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을 구성한다.

의지들의 연합과 속성들의 상호교환은 취해진 인간 안에서 의 신적인 활동성의 특별한 양태이며, 활동들의 상호내재성으로 표현된 다.48)

속성의 상호교환이 인정되고 두 본성이 속성의 한 주체로 간주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 안에, 함께 행하시기 때문이다.49)

46) Mingana 5, 89;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 (1952): 265.

47) Mingana 5, 89.

48)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85. 49)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86. 50) 켈리는 키릴루스가 영혼과 몸의 연합에 관한 유비를 좋아했다고 한다. 『고대기독교교리사』, 344.

그러므로 영혼과 육체의 비유는 키릴루스도 사용한 비유로50) 그리스도 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설명하기에 유용한 비유다.

3) 성전과 성전 안에 있는 자의 비유

테오도르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성전에 비유하였고, 말씀 하나님은 성 전 안에 거하는 자로 비유하였다.

'그가 형성되던 바로 그 순간에, 그는 이미 하나님의 성전으로 취해졌다. 우 리는 하나님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지만, 태어 난 분은 동시에 태어난 자 안에 존재하는 동일한 하나님임과 말씀 하나님이 성전이고 성전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51)

51) Swete 2:312;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51.

성전과 성전 안에 있는 비유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서로의 속 성의 구별을 유지한 채, 두 본성의 연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께 서 자신을 가리켜 이 성전을 헐라고 하셨으니 성전을 그리스도의 인성으 로 비유한 것은 성경적이다.

성전 안에 거하는 자를 말씀 하나님으로 본 다면 언제든지 성전에서 하나님이 떠날 수 있듯이 연합이 느슨해지고 약 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이 비유는 구약의 성전과 그 안에 계 신 하나님의 비유와 달리 영원히 성전을 떠나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이 비 유의 강점은 말씀 하나님의 본질이 아무 변화나 혼동없이 인성 안에 거하 신다는 것이다.

단점은 말씀과 인성의 연합이 다소 느슨해 보인다는 것이 다.

그러나 이 비유는 분명 성경이 그렇게 서술하고 있으므로 성경적이라 고 할 수 있다. 이 비유는 정죄의 대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다.

3. 연합의 발달(점진적 연합)

테오도르에 대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12번째 파문 항목 중

“그리스 도는 영혼의 근심과 육신의 소욕에 의해 고통받았고 더 비천한 수난으로 부터 점차 해방되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그의 행함에 있어서의 진보 때문에 향상되었고, 그의 생애에서 흠 없게 되었다”

는 표현은 다소 문제 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테오도르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성을 견지하였고, 그 완 전성이 타락 전 아담의 인성이기에 실제로 유혹을 받을 수 있었고 수난으로부터 고통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성경 은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서 심히 고민하 여 죽게 되었다(막14:34)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 해 천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밤새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처럼 되기까지 기도하셨다(눅22:44).

그리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비로 소 들으심을 얻었다(히5:7).

이런 진술들은 그리스도의 행함의 단계들을 지지한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단순히 예수가 인간적인 노력으로 불완전에서 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으로서 고난을 겪고, 로고스 하 나님으로부터 성령의 은혜에 의해서 능력을 단계적으로 받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세례시에 메시아로서 능력을 받으셨고, 로고스 하나님과 더 긴밀해졌으며, 부활 후에 마침내 그의 신성의 능력이 충분하게 인성에게 전달되었다고 본 것이다.

즉 인성이 로고스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것은 완전한 인성이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므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주로 성령을 의지해서 성장하셨고 사역하셨 다.52)

맥나마라는 그리스도의 인간적 지식이 실제로 증가한다고 한 것은 오 류라고 주장했다.53)

52) 유창형, 『기독교 성령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4), 164.

53)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 264.

하지만, 논자가 볼 때 그리스도는 타락 전의 인성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인성은 지식의 한계에 갇혀 있으므로 위격적 연합을 통한 신성의 지식 전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그리스도의 인성의 실재 를 인정한다면, 그리스도의 인간적 지식은 인간적 성장에 따라 점진적으 로 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맥나마라의 주장은 성경적으 로 볼 때, 타당성이 없다.

테오도르는 인간 예수와 로고스 하나님과의 연합이 마리아에게 잉태되었을 때 시작했으며, 세례 때 율법의 의무 조항들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양자 됨이나 중생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였고, 연합의 절정은 구속 사건을 완성한 부활 때라고 하였다.54)

54) Theodore, Hom. 6 on Nicene Creed; Mingana 5, 70.

이것은 하나님과 연합이 실재적으로 증가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표현은 성육신 때 위격적으로 이미 완전한 연 합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정통신학자들로 하여금 그의 신학이 비정통적이 라고 오해하게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단지 신성으로부터 지식과 능력이 위격을 통해서 인성에게 전달되는 분량이 인성의 성숙함에 따라 서 점차 커진다는 의미에서는 테오도르의 표현이 용납될 수도 있을 것이 다.

테오도르가 연합의 성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신자들이 그 연합 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와 연합의 결과에 점차 참여하게 될 것을 강조하 기 위함이다.

4. 두 아들들을 주장했는가?

알폰스 민가나(Alphonse Mingana, 1878-1937)는 테오도르의 사상 그 어디에서도 그리스도의 두 인격(휘포스타시스)론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하 였다.55)

또한 도날드 맥킴(Donald McKim, 1950- )도 테오도르가 두 본성 을 예리하게 구별하면서도, “마치 예수 안에 두 가지의 개별적이고 객관 적인 실체가 있는 것처럼 두 아들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56)고 하였다.

테오도르는 “두 본성의 완전한 결합으로 말미암아 어떤 것에 관해서 말할 때, 그것이 인성이나 신성 어느 것에도 속한다고 함으로써 두 본성 간의 일체성을 강조하였다.57)

55) Mingana, 5, 17.

56) Donald K. McKim, 장종현 역, 『교회의 역사를 바꾼 9가지 신학 논쟁』 (서울: 기독교연합신문사, 2005), 92.

57) Theodore, Hom. cat. 5:7; J. N. D, Kelly, A History of Early Christian Doctrine, 박희석 역, 『고 대기독교교리사』 (고양: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4), 328.

또한 “성자는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이루어진 본성들의 완전한 결합으로 말미암아 유일무이하다”고 하였다.58) ‘두 본성들의 차이점’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인격의 일체성’도 인정한다.59)

그러므로 단일한 인격은 두 본성들의 결합으로 나온 결과다.

성경은 “단 일한 인격으로서의 그리스도에게 여러 가지 칭호들, 즉 주, 예수, 하나님 의 아들 등을 적용한다.” 60)

돔누스(Domnus) 에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선 한 기쁨에 따른 연합의 종류는 본성들을 섞이지 않고 분리되지 않게 하고, 두 본성들에 한 프로소폰이 존재하는 것을 명료하게 한다” 61)고 하였다.

위 진술들만 보면 테오도르가 두 아들들을 주장한 디오도르와 달리 한 아들을 주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르는 키릴루스 에 의해서 두 아들론을 주장했다고 정죄당했다.62)

그 이유는 두 본성들이 각각 주체성을 갖고 있다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두 본성과 두 의지를 갖고 있으므로 두 주체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칼케돈 공 의회는 두 주체성이 아니라 말씀의 한 주체성을 말하고 있다.

설리반도 테 오도르가 말하는 한 아들은 실제로는 두 인격들, 하나님의 본성적 아들과 양자된 아들을 갖고 있다고 하였다.63)

58) Hom. cat. 3:10; Kelly, 『고대기독교교리사』, 328.

59) Theodore, Frag. in ep. ad Rom; PL 67:601; Kelly, 『고대기독교교리사』, 328; 멕클라우드는 “공관복음서 기자들이 그리스도를 인간적이고 신적인 방식으로 한 존재로서 행동하는 것으로 묘 사한다”고 한다(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London and NewYork: Routledge, 2009]), 51.

60) Hom. cat. 3:10; 6:3; Kelly, 『고대기독교교리사』, 329.

61) Theodore, On the Incarnation, book. 15;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144. 62) Kelly, 『고대기독교교리사』, 330.

63) Sullivan, The Christology of Theodore of Mopsuestia, 268-69.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에서 주 는 아들의 신적인 인격을 가리키고, 예수 그리스도는 취해진 인간을 가리 킨다. 아들의 독특한 프로소폰은 본성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두 본 성의 연합으로 인해 태어난 독특한 아들을 가리킨다. 히1:2; 시2:7; 갈4:4; 마3:17; 요20:17; 골1:13에 나오는 자는 말씀이 그 안에 거주하는 그리스도다.64)

설리반은 테오도르가 두 아들을 말한 것은 아니나 “한 인격이 말 씀의 신적인 인격이 아니라 두 본성의 연합에 기인하는 공통된 인격”이라 고 보았다.65)

이것은 칼케돈 공의회에서 한 위격이 말씀의 인격이라는 것 과 다른 것이다.

맥나마라는 처음에는 여러 번 테오도르가 그리스도를 두 아들들로 나누지 않았다고 하였다.66)

그러나 후에 테오도르가 그리스도에 게 항상 두 주체가 있다고 하였으며, 두 인격들이 있다고 함으로 네스토리 우스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것은 테오도르가 본성과 인격을 혼동하여 사용함으로 생긴 결과라고 보았다.67)

설리반과 맥나마라 가 진술했듯이, 테오도르가 말하는 두 본성의 두 주체성은 두 의지론을 강 하게 표현한 것이지만, 두 아들론을 주장했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 이다.

또한 신성과 인성이 나란히 존재하면서 한 공동의 프로소폰을 갖고 있 다고 하는데, 이 공동의 인격은 말씀의 인격이라기보다 말씀이 인간 속에 내주함으로 인해 생긴 외적 발현의 일체성인 것처럼 보인다는 켈리(J. N. D. Kelly, 1909-1997)의 지적도68) 고려할 가치가 있다.

이 외적 발현의 일 체성은 두 본성이 한 공통의 프로소폰을 갖고 있다는 멕클라우드의 표현 과 같은 것이다.

또한 노리스(Richard A. Norris, Jr.)도 테오도르의 기독론 에 두 본성의 이원론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콘티(Marco Conti, 1961- ) 도 인정하는 바이다.69)

64) Sullivan, The Christology of Theodore of Mopsuestia, 275-76.

65) Sullivan, The Christology of Theodore of Mopsuestia, 281-82

66)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 (1952): 266; Mingana, “From the fact that we say two natures are not constrained to say two Lords nor two sons; this would be extreme folly,” 5, 90.

67)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86.

68) Kelly, 『고대기독교교리사』, 331.

69) Theodore of Mopsuesti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John, trans. Marco Conti, ed. Joel C. Elowsky (IL, Dowe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2010), xxvii. “However, it does not seem to me that these works completely explain and solve the problem of the evident dualism of Theodore’s Christology. I still believe that Norris’s definition is mostly correct and faithful in describing the main character of Theodore’s views on the nature of Christ and his person.”

그럼에도 노리스조차 테오도르가 두 아들론을 주장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70)

문제는 연합으로 이루어진 한 프로소폰이 말씀의 인격이 아니라 두 본 성의 공통의 프로소폰이라는 것인데, 테오도르가 인성은 자신보다 큰 신 성의 칭호와 영예를 공유하고, 실제로는 말씀이 취해진 사람을 통해서 모 든 것을 이룬다고 했기 때문에, 말씀의 한 인격이 강조되므로 그가 두 아 들론을 주장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테오도르는 “말씀 이 그를 통해 모든 것을 이루신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인격의 단일성을 이 해한다”고 진술했다.71)

그리고 “두 본성의 구별은 완전한 연합을 무효화시 키지 않는다” 72)고 했다.

70) 문병호 교수도 테오도르가 “그리스도를 창조주인 하나님이자 피조물인 사람이신 두 존재로 본 것 은 아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고 한다. 문병호, 『기독론』 (서 울: 생명의 말씀사, 2016), 174.

71) Richard A. Norris, Jr. ed., 『기독론 논쟁』, 154.

72)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58. “For the distinction of natures does not void the exact union.”

5. 연합의 주체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인정한 교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 합의 주체를 삼위일체 중 제2위인 성자 로고스로 본다.

그들은 생각에서만 두 본성을 구별했고, 실제로는 “한 성육신한 로고스의 본성”을 주장했 다.73)

다시 말하면, 삼위일체의 제2위가 예수의 인간적 경험이나 행동들 의 주체이거나 행위자다.74)

73) Bethune-Baker, J. F. An Introduction to the Early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to the Time of the Council of Chalcedon, 273-74.

74) John Meyendorff, Byzantine Theology, Historical Trends & Doctrinal Themes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1979), 155.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이 두 본성을 구별한 것 은 옳지만, 두 본성의 실제적인(real) 혹은 휘포스타시스적(위격적)인 연합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보았다.

그들에 따르면, 성자의 위격 이 인간의 본성을 취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았다.

테오도르에 의하면, 취해진 인간의 공로에 대한 예지에 근거하여 하나 님께서는 그 인간과 자신을 연합시켰다.75)

이 연합은 한 순간도 결코 해 소되지 않는 연합이다.76)

테오도르는 연합의 주체를 한 편으로는 로고스 로 보았다.

우리는 “말씀이 그들 통해 모든 것을 이룬다는 사실에 기초하 여 인격의 단일성을 이해한다.” 77)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주도권에 의해 이 인간적 삶이 의지와 행동에서 완전히 로고스와 하나가 되는 프로소폰 적 연합(인격적 연합)” 78)이라고 본다.

말씀이 취해진 인간을 자신과 연합 시켰기 때문에 말씀이 연합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말씀이 한 인간 을 예지에 의해서 거주할 대상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도 연합 의 주체는 말씀이다. 그러나 맥나마라는 테오도르가 두 본성 두 주체를 인정했다고 주장하 였다.79)

75) Romanides, “Highlights in the Debate over Theodore of Mopsuestia’s Christology and Some Suggestions for a Fresh Approach,” 168.

76) Bethune-Baker, J. F. An Introduction to the Early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to the Time of the Council of Chalcedon, 275.

77) Richard A. Norris, Jr. ed., 『기독론 논쟁』, 154-55.

78) Richard A. Norris, Jr. ed., 『기독론 논쟁』, 40.

79) Theodore of Mopsuestia, “On the Incarnation, 7.3; Richard A. Norris, Jr. ed., The Christology Controversy (Philadelphia: Fortress, 1980), 117-18; 문병호도 테오도르가 몇몇 진술에서 그리스도의 한 인격의 주체를 인성으로 한 인격이신 취해진 인간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 다(문병호 『기독론』, 179).

논자가 볼 때, 연합이 시작될 때의 주체는 제2위격인 성자시지만, 연합 후에 활동의 주체는 말씀과 취해진 존재가 연합된 한 프로소폰이다.

두 본성이 각각의 의지로 한 프로소폰 안에서 활동한다.

인간의 프로소폰은 성자의 프로소폰에 자발적으로 순종하신다.

테오도르는 한 위격적 연 합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한 위격적 연합이라고 할 경우 말씀의 위격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며, 인성의 활동을 부인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80)

그래서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은 연합의 주체를 말씀으로 보고 말씀의 한 자아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했지만, 테오도 르는 한 자아 안에 말씀과 인성이 각자 주체적으로 하나로 연합하여 활동 한다고 보았다.81)

테오도르에게 말씀과 인성이 어떻게 하나로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의지를 조화시키는 것과 같이 어려 운 일이었지만, 성육신 후의 그리스도의 행동의 주체는 분명 그 안에 계신 아버지와 동일본질인 하나님의 독생하신 말씀이었다.

인성은 순종할 뿐 이다.82)

80)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53.

81) Theodore of Mopsuestia, Commentary on the Gospel on John 8:16, ed. M. Conti, 77-78.

82)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58.

6. 테오토코스(Theotokos)의 문제

예수 안에서 한 사람의 어머니가 마리아였는가 라고 물었을 때, 알렉 산드리아의 키릴루스은 강하게 부정하였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오직 하 나님의 아들만이 있었고 마리아는 그 밖에 누구의 어머니도 될 수 없었다 고 보았다.83)

이런 진술은 단성론에 가까운 진술이다.

반면에 테오도르는 마리아가 사람의 어머니인가 하나님의 어머니인가 물었을 때, ‘둘 다’라고 대답했다.

마리아는 본성에 의해서는 사람의 어머니이고, 관계에 있어서 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보았다.

그녀의 태 중에 있는 것이 사람이고, 그 녀에서 나온 것이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본성으로는 사람의 어머니 라고 해야 한다.

테오도르는 “하나님이 동정녀에게서 나셨다고 말하는 것 은 미친 것이라고 하였으며, 아버지와 동일본질인 분은 태에서 나지 않았 다” 84)고 하였다.

83) John Meyendorff, Byzantine Theology, Historical Trends & Doctrinal Themes, 155.

84) Swete, 2: 312-14.

그러나 예수 안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불릴 수 있다고 했다.85)

이런 면에서 테오도르는 “말씀과 신성을 동의어로 보기 때문에 신성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수 없듯이 말 씀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수 없다” 86)보았기 때문에 그가 마리아가 하나 님의 어머니임을 부인한 것이 틀림없다고 한 설리반의 주장은 관계적으 로, 혹은 거주의 연합에 의해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한 테오도르의 말을 중 요하게 다루지 않았으므로 다소 편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테오도르는 십 자가에 달리신 분이 하나님이신가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은 같은 정 도는 아니지만 둘 다라고 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이 고통을 당하고 죽었 기에 인간이 십자가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기도 하다.” 87)

85) Theodore, De Incarn. 12, book 11; Richard A. Norris, Jr. ed., 『기독론 논쟁』, 158-59.

86) Sullivan, The Christology of Theodore of Mopsuestia, 214.

87) Theodore, De Incarn. 12, book 11; Richard A. Norris, Jr. ed., 『기독론 논쟁』, 158-59.

키릴루스는 마리아에게서 나신 분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이라고 하였 고, 안디옥의 존(John), 429-441)도 이를 인정하였다.

반면에 테오도르가 마리아가 테오토코스라고 인정한 것의 의미가 본성적으로 하나님이 아닌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키릴루스가 말하는 테오 토코스의 의미와는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7. 연합의 성격: 선한 기쁨에 따른 내주

테오도르는 연합을 설명하는 용어를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결합이나 연결을 의미하는 쉬나페이아(synapheia)를 종종 사용하였고, 연합에 사용 하는 헤노시스(henosis)라는 용어도 사용하였는데, 그것을 연합(union)보 다는 통일체를 의미하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내주나 거주라는 의미로 에노이케시스(enoikesis)라는 용어도 사용했다.

테오도르는 그리스도의 연합을 ‘하나님의 의지의 관계’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거주함은 ‘선한 기쁨에 따른’ 내주라고 묘사될 수 있다.

하나님의 내주의 방식은 본질적인 것도 아니고 작용적인 것도 아니 다.

두 경우에는 하나님은 무소부재하기 때문에 우주 전체에 본질적으로, 작용적으로 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통상적으로 인간과의 성향의 관 계나 의지의 관계에 따라 가깝게 거하시거나 멀리하신다.88)

그는 악인과 멀리하시고 의인과 가까이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런 종류가 아니 라 특별한 만족에 의해 그 안에 거하신다.

한 아들 안에서와 같이 그리스 도 안에 거하신다.

이 연합은 영혼과 육체의 연합과 같은 필수적인 연합이 아니라 자유로운 의지의 연합이다.

맥나마라에 따르면, 테오도르가 사용한 만족에 의한 임재는 위격적 연 합의 본질적인 설명을 위해 취해진 표현이다.89)

테오도르가 ‘아들 안에서 와 같이’라는 구절에 의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취해진 자 안에서, 그와 함께 말씀의 영예와 존엄과 행동에 대한 강조다. 이는 아들 안에서의 임재 와 의로운 자 안에서의 임재의 엄청난 차이를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즉 ‘탁월한 은혜에 의해서’ 두 본성이 연합되어 한 프로소폰을 이루었다.90)

테오도르에게 있어서 위격적 연합은 선한 기쁨에 의한 임재의 가장 높은 형태를 이루는 임재라고 할 수 있다.91)

다른 인간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부분적으로만 참여하지만, 예수는 본성들의 완전한 결합으로 인해 완전 히 참여한다.92)

88)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76.

89)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77-78; 반면 에 노리스는 테오도르가 위격적 연합(hypostatic union)이란 말을 결코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 다. Richard A. Norris Jr., Manhood and Christ, 236: “Not only does Theodore not use the language of ‘hypostatic union’....” 이런 차이는 맥나마라는 테오도르가 퓌시스, 휘포스타시스, 프로소폰을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고 보기 때문에 발생한 듯하다: “To this prosopon, this physis or hypostasis – for despite notional differences all three words in this context refer to the same reality, the same subject of attribution – belong the human attributes of Christ,...”(183).

90)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NJ. New York: Routledge, 2009), 140.

91)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79.

92) Romanides, “Highlights in the Debate over Theodore of Mopsuestia’s Christology,” 169.

이 거주의 연합은 결코 해소되지 않으며, 필수적인 연합이다.93)

연합이 영원하다는 점에서는 칼케돈의 정의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결국 이는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94)

거주(inhabitation)는 연합의 느슨한 묘사 이상을 의미할 수 없다.

테오도르가 거주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이 용어가 성육신에서의 신성의 불변성을 보존하기에 합당한 단어이기 때문이다.95)

하지만, 이런 용어의 채택은 결국 의인 안에서의 하나님의 임재와 그리스도 안에 서의 하나님의 임재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를 부정하는 결과에 이르고, 그 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본질적인 연합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가져오 게 되었다.

테오도르가 본질적 혹은 본성적인 연합을 부정한 이유는 그것이 의지 적인 연합이 아니라 신적 본질의 내적인 필연성에 의한 연합임을 의미하 기 때문이다.96)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본성에 의해서 피조물과 연합하거 나 피조물 안에 임재하지 않고, 의지에 의해서 취해진 사람에게 특별하게 임재하신다.97)

본성적이거나 본질적인 연합은 필연적인 연합이 되므로, 칭찬받을 가치도 없고, 사람이 따라야 할 실제적 도덕적 모범도 될 수 없 기에 거절한 것이다.98)

본질에 따른 연합은 삼위일체의 공통 본질의 경우 에만 참이고, 공통 본질이 아닌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보았다.99)

93)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Catechetical Homilies,” 8.13, 167.

94)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I,” (1953): 178.

95)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On the Incarnation,” 136; PG, 66, 981. 96) Romanides, “Highlights in the Debate over Theodore of Mopsuestia’s Christology,” 165.

97) Swete, 2:293-96.

98) Romanides, “Highlights in the Debate over Theodore of Mopsuestia’s Christology,” 169.

99) Swete, 2:338-39.

즉 그리스도의 두 본성 간의 연합은 말씀의 의지적 연합이지 본성에 따른 필 연적인 연합은 아니라는 것이다.

논자가 볼 때, 삼위일체의 제2위이신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의지적이다.

만물의 창조가 하나님의 선한 뜻에 기초하듯이 성육신도 하나님의 선한 뜻에 기초한다고 보는 것이 성경적이다.

그렇다 면 성육신에서 두 본성의 연합은 의지적 연합이 된다.

단지 의지적 연합으 로만 성육신을 본다면 인성과 신성의 연합이 좀 느슨해질 것같이 보인다.

정리하자면, 테오도르에게 두 본성의 연합의 성격은 선한 기쁨의 내주의 연합, 아들 안에서의 연합, 영원한 연합이며, 본질적이거나 본성적인 연합이 아니고 인간 구원을 위한 필수적인 연합이다.

IV. 결론적 평가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그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테오도르라 는 인간 자체를 정죄한 것은 지나친 것이다.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테오 도르가 그리스도를 단지 인간이라고 주장한 것을 근거로 그를 정죄했는 데, 테오도르는 그의 저작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다” 100)라고 말했고, “그리스도가 단순히 인간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은 그 들 편에서 하는 공공연한 거짓말”이라고 했기101) 때문에 매우 불합리한 판 결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테오도르가 그리스도의 연합을 아주 자주 주장 했다는 것을 근거로 판단한다면, 그가 “그리스도의 본성의 이중성을 강조 한 반면에,102) 그리스도의 연합을 보존하려는 열망에 대한 증거가 매우 적 다”는 맥나마라의 견해103)도 그다지 타당성이 없다.

100) Swete, 2:306; Frederick G. McLeod, “Two Hypostaseis and Two Prosopa,” 420.

101) Theodore, De incarn. PG 66:970-2.; “They say: ‘Those asserting Christ to be a pure man ought to be called hominicolae(those overly obssed with Christ’s humanity),’ This is an open lie on the part of those who would want to say this.” Frederick G. McLeod, Theodore of Mopsuestia, 54, 128-29.

102)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 265.

103) McNamara, “Theodore of Mopsuestia and the Nestorian Heresy I,” 259.

테오도르가 두 아들론 을 주장했다는 것도 대체로 지지되지 않는다.

단지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의 결정이 신학적으로 칼케돈의 결정과 다를 바 없고, 테오도르가 “칼케돈 기독론의 시험을 통과할 것이라는 주장도 비현실적” 104)이라는 로마니데스(John S. Romanides, 1927-2001)와 그가 본성과 인격의 구별에 실패했다는 맥나마라, 그리고 설리반의 주장 을 고려한다면, 테오도르의 기독론에 용어 사용의 혼란과 이원론적인 약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보인다.

반면에 테오로드를 이단자로 분 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한 켈리의 주장을 진지하게 고려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테오도르의 기독론은 콘스탄티노플 2차 공의회 125년 이전으로 아직 퓌시스와 프로소폰 등의 용어의 차이가 제대로 정립 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105)

문병호 역시 제2차 콘스탄티노플의 논조가 단 성론에 기울었다고 보았다.106)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볼 때, 콘티는 테오도르의 기독론을 비정통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다.107)

테오도르는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했다고 보았다.

즉 프로소폰(인격) 이 있는 인성을 그리스도가 갖고 있다고 보았는데, 이것이 칼케돈과의 차 이점이다.

테오도르의 주된 목적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도덕적 발달을 주 장하고, 아폴리나리스의 오류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논자가 볼 때, 테오도르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과 신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진지 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테오도르와 그의 신학은 비록 2차 콘스탄티노플에 서 정죄되었지만, 칼케돈에서는 정죄당하지 않았으며, 그의 신학의 요점 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지 않고 연합하여 한 공통의 프 로소폰(인격)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재결합 신조(Formula of Reunion, 433)에 잘 반영됨으로써,108) 기독론의 발달에 크게 공헌했다.

104) Romanides, “Highlights in the Debate over Theodore of Mopsuestia’s Christology,” 185. 105) Kelly, 『고대기독교교리사』, 331.

106) 문병호, 『기독론』 (서울: 생명의말씀사, 2016), 201.

107) Theodore of Mopsuestia, Commentary on the Gospel of John, trans. Marco Conti, xxvii. 108) 두 본성의 연합과 두 본성의 이원성에 비춰 인성에 속한 진술을 신성에 돌리고, 하나님에게 적합 한 말씀을 신성에 적용한다는 것, “동정녀로부터 취한 성전”이란 내용 등. Kelly, 『고대기독교교 리사』, 3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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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nalysis and Assessment of the Christology of Theodore of Mopsuestia

Chang Hyung Yoo (Calvin University, Assistant Professor)

The condemnation for him in the Council of Constantinople II reflects the emperor’s intention to maintain the unity of the empire by appeasing Monophysites at the time, so Theodore’s Christology needs to be investigated again based on Formula of Reunion(433) and the 6th Ecumenical Council(680). Theodore of Mopsuestia insisted on a prosoponic union while preserving the distinction between Christ’s two natures. This one person was the result of a union of two natures. Theodore mainly used the term prosoponic union not the term hypostatic union. Among the three metaphors he used, the metaphor of the union of the soul and the body was the most orthodox one. The accusation that he insisted on two sons was hardly accepted. But he was criticized for having dualistic tendencies just because each of Christ’s nature had his own subjectivity. Nevertheless, his maintenance of the distinction between the two natures and his emphasis on one personality were reflected in Formula of Reunion and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Christology.

[Key words: Theodore of Mopsuestia, Christology, Two Natures, Prosopon, Hypostasis, Union by indwelling]

조직신학연구 제45권 (2023년)

논문 투고일: 2023.09.27. 수정 투고일: 2023.11.03. 게재 확정일: 2023.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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