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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두 갈래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의지 -소년이 온다와 겹쳐 읽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나보령.서울대

<목 차>

Ⅰ. 서론

Ⅱ. 재현 불가능성 너머를 향한 탐색

1. 대리인-혼에 의한 간접 증언과 앵무새의 말

2. 증언들의 콜라주를 통한 실재의 재구성

Ⅲ. ‘애도 가능성’을 복권하기 위한 정치적 실천

1. 공적 애도 금지에 맞서는 안티고네-정심

2. 연대하는 삶의 장소, 제주 세천리 집

Ⅳ. 결론

<국문초록>

이 글에서는 역사의 문학적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소년이 온다와 비교하면서, 이 소설이 전작의 형식과 주제의식으로부터 변화한 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형식 면에서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역사를 직접 겪은 당사자들 이 자신들의 체험에 대해 증언할 수 없는 상황이 제시되고 있으나, 이를 제3자인 대리인-혼의 간접 증언을 통해 전면화한 점, 그리고 증언들의 콜라주 작업에 주목 하였다.

그럼으로써 이 소설이 역사의 재현 불가능한 부분들을 은폐하거나, 권위 있는 주체의 목소리를 통해 상상적으로 보완하는 대신,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시화 한 점을 소년이 온다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현재화하는 또 하나의 시도로서 부각 하였다. 다음으로, 주제의식 면에서는 소년이 온다부터 지속하는 애도의 문제를 논했 다.

이 때 이 소설이 애도를 개인적인, 탈정치화 된 행위로 보지 않고, 공적 애도 금지에 맞서 ‘애도 가능성’을 복권하는 정치적 실천과 연대의 측면에서 형상화 한 점을 버틀러의 애도 개념을 참조해 논했다.

또한 전작에서 강조하였던 과거를 잊지 않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들과 작별하지 않으려는 의지에 더해, 궁극적으로는 삶다운 삶, 살만한 삶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 지금 여기의 소중한 사람들과 작별하 지 않으려는 의지와 실천을 이 소설로부터 새롭게 읽어냈다.

나아가 이 두 갈래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이 소설과 상호텍스트성을 공 유하는 소년이 온다, 「작별」과 대별되는 한강의 문제의식의 전환이자,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마찬가지로 예술을 창작하는 과정에 대해 쓴 메타텍스트인 이 소설을 통해 한강이 전달하고자 했던 문학의 중요한 과제로 의미부여 하였다.

주제어 제주 4‧3 사건, 소년이 온다, 증언, 증언문학, 애도, 후일담, 메타텍스트

Ⅰ. 서론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2021)는 제주 4‧3 사건에 관한 소설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2014) 이후 또 한 번의 한국현대사의 제노사 이드를 다룬 소설인 셈이다.

두 작품은 오랜 기간 담론화와 재현이 억압된 역사 이자, 현재 시점에서는 이미 적지 않은 담론과 재현이 축적된 역사를 소재로 삼 으면서, 새로운 문학적 재현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연속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형식 면에서도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를 쓴 작가 자신을 지시하는 1인칭 화자를 설정해 그 후일담을 표방하는 방식으로, 전작과의 상호 텍스트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이 소설에 관한 평론들은 자연스럽게 소년이 온다와의 비교 속에서 그 성과와 한계를 논했다.

그중에서도 쟁점이 된 측면은 역사의 문학적 재현 문제이다.

주지하듯, 전작 소년이 온다는 5월 광주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재현이라는 면에서 공통적으로 호평 받았다.

구체적으로는 5월 광주 자체에 대 한 사실적 재현을 꾀하기보다는 그 사건을 겪고 난 사람들의 현재까지 지속하는 고통과 증언 불가능성을 재현함으로써, 학살과 항쟁을 역사화 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으로 현재화 한다는 측면이 주로 논의되었다.1)

그런데 작별하지 않는다에 관해 현재까지 제출된 평론들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한 비판적인 평가가 지배적인 것처럼 보인다.

대표적으로 황정아(2021)는 소년이 온다가 역사의 고통을 미학적으로 쉽게 승화하지 않은 점을 트라우마 의 기억과 전승이라는 측면에서 고평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작별하지 않는다 의 경우 트라우마를 재현하고 전승하는 작가의 고통이 서술자의 고통이라는 형 태로 서사를 압도함으로써, 정작 역사의 고통이 뒤로 밀려나고 불분명하게 재현 된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그와 같은 구도 속에서는 자칫 재현의 고통이 재현의 진실성과 윤리를 담보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센티멘털리즘이 강화되기 쉽다는 점 을 우려하였다.2)

비슷하게 이소(2022) 역시 이 소설에서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는 오직 고통 을 매개로만 현재와 접속될 뿐이며, 그에 따라 소설의 서사가 불가피하게 고통과 작별하지 않으려는 사디즘적인 고행의 순례로 점철된다고 비판하였다.3) 반론도 존재한다.

1) 대표적으로 조연정, 「광주를 현재화하는 일-권여선의 레가토(2012)와 한강의 소년이 온다 (2014)를 중심으로」, 대중서사연구 33, 대중서사학회, 2014; 황정아,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 하는 문학-밤의 눈과 소년이 온다」, 안과 밖 38, 영미문학연구회, 2015; 김명인, 「기억과 애도의 문학, 혹은 정치학-한강의 소년이 온다」, 작가들 58, 인천작가회의, 2016.

2) 황정아, 「‘문학의 정치’를 다시 생각한다」, 창작과비평 194, 창작과비평사, 2021. 26면.

3) 이소, 「제주에서 보낸 한철-한강, 조해진, 김금희의 장편소설과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 쓺 14, 문학실험실, 2022, 108-109면.

대표적으로 김예령(2022)은 그와 같은 논의가 공동체의 고 통스러운 트라우마를 재현하는 역할을 맡은 작가에게 초래할 수 있는 일반적인 문제점과 위험을 잘 지적하였다고 보면서도, 이 소설이 그로 인해 재현 대상인 역사에 불철저했다고 보는 평가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 한다.

요점은 한강의 이 번 소설이 “다른 방식으로 애도 대상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다른 방식으로 대상 의 재현을 도모하는 작업”4)을 시도했다는 것인데, 해당 리뷰에서는 그 점을 구 체적으로 논증하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현재 시점에서 굳어져가는 작별하지 않는다에 관한 비판적인 평가와 거리를 두고, 새로운 논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한 후속 논의가 연구의 영역 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 소설에 관해 제출된 연구들 중 에서는 소년이 온다와 본격적인 비교를 시도한 논의는 없다.

예컨대, 오태호 (2021)는 애도의 측면에서 김숨 소설과 비교하였고,5) 전성욱(2022), 노희호 (2022)는 둘 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혼 화자에 주목하면서 비슷한 존재들이 등장 하는 다른 한강의 소설들의 맥락에서 이 소설을 부분적으로 논했다.6)

4) 김예령, 「아니, 아니라는 사랑의 수행」, 문학동네 110, 문학동네, 2022, 89-90면.

5) 오태호, 「역사적 비극을 서사화하는 ‘애도로서의 치유’ 지향 소설 연구-김숨의 떠도는 땅(2020) 과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중심으로」, 한국문예비평연구 74, 한국현대문예비평학 회, 2022.

6) 전성욱, 「리미널리티 존재자로서의 ‘귀신’과 커뮤니타스-‘사회적 드라마’로 읽는 한강 소설의 의미 」, 감성연구 25,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22; 노희호, 「한강 소설 속 유령의 형상과 기능-「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2015), 「작별」(2018),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중심으로」, 어문론 총 93, 한국문학언어학회, 2022.

따라서 이 글에서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소년이 온다와 겹쳐 읽는 작업을 통해 이 소설이 역사의 문학적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전작의 형식과 주제의식으 로부터 변화한 점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형식 면에서는 소설 속에서 재현하는 자의 고통이 부각된 결과 재현 대상이 불분명해졌다는 기존의 관점과 거리를 두고, 이를 의도적인 재현 전 략으로서 접근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소설이 제주 4‧3 사건을 직접 겪은 당사 자가 아닌, 그의 대리인-혼7)의 목소리를 전면화함으로써, 증언하는 주체를 간접화하고 중성화 한 의도 및 효과를 소설 속 앵무새의 말이라는 은유와 아감벤의 증언론을 참조해 분석할 것이다.

7) 역사의 트라우마를 다룬 소설들에서 혼의 모티프가 등장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이 때 혼은 대개는 사건을 직접 겪은 당사자이면서, 죽은 이의 혼으로 설정되어 있다(소년이 온다를 떠올려 보라). 그런데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특이하게도 사건을 직접 겪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사람의 혼이 등장한다. 전성욱(2022), 노희호(2022)는 이 점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고, 그에 따라 속에서 혼의 역할을 “폭력적으로 단절된 삶과 죽음의 세계를 이어주고 결속시키는 역할”을 한다거 나, 희생된 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한다는 식과 같이 여느 문학작품에서의 혼의 역할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분석하였다. 전성욱, 위의 글, 205면; 노희호, 위의 글, 232면. 이 글은 그와 달리 소설 속에서 대리인-혼 화자의 증언 주체로서의 위치와 그 언어적 속성을 중요하게 논할 것이다.

그와 함께 이 소설이 증언들의 콜라주 작업을 시도하면서, 재현 불가능성 너머를 탐색하고 실재를 재구성하고자 시도한 점을 소년이 온다로부터 이어져오는 역사의 현재화라는 문제의식과 관련지어 중요 하게 의미부여할 것이다. 다음으로 주제의식 면에서는 소년이 온다에서부터 지속하는 애도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하면서, 이 소설이 수행하는 애도의 방식이 전작의 그것과 어떤 차 이를 보이는지에 주목할 것이다.8)

이를 위해 제주 4‧3 사건에 대한 공적인 애도 가 금지된 상황 속에서도 비밀스럽게 애도를 수행해온 인물의 형상과 ‘애도 가능 성(grievability)’을 복권하기 위한 정치적 실천을 버틀러의 애도 개념과 안티고 네 해석을 참조해 분석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연대의 거점으로 제시되는 장소에 주목하면서, 그와 결부지 어 소설의 제목에 깃든 두 갈래의 메시지를 의미부여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언 제나 특유의 시적 문체와 온건함, 비의적 진실 같은 것으로 급진적이거나 결정적 인 선택을 희석 또는 지연해온 한강 소설의 정치적 임계”9)를 지적했던 한강 문 학에 관한 기존 논의로부터도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

8)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기존 논의들에서 애도의 문제는 공통적으로 거론되어 왔다.

그런데 역사 적 비극을 소재로 삼은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넓은 의미에서는 역사 속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효과를 지닌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태호(2021)처럼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를 단순히 애도와 치유 라고 말하는 논의로는 다른 작품들과 구분되는 이 소설이 수행하는 애도의 특징을 밝히기 어려워 보인다. 이 글은 그와 달리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소설 속 애도의 수행성을 부각할 것이다.

9) 양경언, 오혜진, 윤재민, 이재경, 「“이게 대체 누구 탓이란 말이오……”: 2015년 여름의 한국소설(리 뷰 좌담)」, 문학동네 84, 2015, 14면.

Ⅱ. 재현 불가능성 너머를 향한 탐색

1. 대리인-혼에 의한 간접 증언과 앵무새의 말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서 등장했던 소설가 화자를 이어받은 인물인 경하를 축으로 전개되는 외화와 경하의 친구인 인선, 그리고 그 의 어머니 정심을 축으로 전개되는 내화로 구성된 격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형식이 특별할 것은 없지만, 이 소설의 경우 내화가 서사 의 심연에 숨겨진 채 여러 겹으로 간접화되어 있는 까닭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된 원인은 내화의 핵심에 자리한 정심의 4‧3 체험이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독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고, 딸 인선의 매개를 거쳐서 경하에게 들려주는 방식 으로 간접화 된다는 데 있다.

게다가 유일한 매개자인 인선조차 그 이야기를 정 심으로부터 직접 들은 적이 거의 없다는 점 역시 서사의 우회에 일조하고 있다.

정심이 마흔 살에 낳은 외동딸인 인선은 십대 후반에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하는 데, 이 사건을 계기로 4‧3 때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정심이 충동적으 로 당시의 일들을 털어놓기 전까지 어머니가 4‧3 사건의 생존자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로 성장하였다.

비슷하게 인선은 아버지 학영의 과거에 관해서도 직 접 들은 적이 없다.

학영이 죽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의식이 흐려지기 직전에 정심이 들려준 단편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가 4‧3 때 몰살당한 가족들 가운데 유 일하게 살아남았던 사정과 이후로 견뎌야 했던 고문의 시간들에 관해 가까스로 전해 들었을 뿐이다.

트라우마, 악몽, 섬망증상, 고문후유증 등으로 끊임없이 고통 받아온 정심과 학영을 지켜보면서, 인선은 과거 그들이 겪었던 일들을 추체험한 인물이다.

또한 그들이 죽고 난 뒤에는 정심이 비밀스럽게 모아둔 자료들과 인선 나름의 조사 작업을 통해서 사건의 진실에 한층 다가간 인물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인선은 4‧3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지만, 사건 당사자들에 비해서 는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위상을 지닌 일종의 ‘대리인’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흡사 정심의 육성을 직접 듣는 듯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생생한 제주방 언을 통해 전달되는 4‧3 체험들(인용문 강조 부분)이란 어디까지나 인선이 들려 주는 간접화 된 말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계속해서 엄마는 말했어. 내가,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중략) 그후로 엄만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이야기는커녕 내색조차 하지 않 았는데,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10)

10)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87면. (강조 표시 인용자)

그렇다면 이처럼 대리인인 인선의 목소리가 전면에 나서고, 당사자인 정심의 목소리가 부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재 정심이 이 사건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치매를 앓다 죽음에 이르는 정심은 자신이 겪은 4‧3 체험에 관해 아무것도 직접 증언할 수 없는 상태로 제시된다.

정심의 생전에 인 선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경하, 그리고 독자가 들을 수 있었던 육성은, 의식이 흐려진 상태임에도 강력한 자기통제와 검열을 작동시키며 발화한, 표준어로 된 무의미한 말 한 마디(“잘 놀다 가세요”)가 유일하다.

증언 불능의 상황은 전작 소년이 온다에서도 다루어졌지만, 이 소설에 이르 러 한층 심화된다.

단적으로, 소년이 온다의 경우 1980년 5월 광주의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들을 각 장의 초점화자로 내세우면서, 현재 그들이 놓여 있는 상황 과 내면을 비교적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반면,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 4‧ 3 사건 당시의 시공간을 직접 다루지도 않고, 사건 당사자들의 내면에 초점화 하 는 일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제주와 광주 사이에 가로 놓인 시간의 격차를 통해 설명해 볼 수 있다.

두 학살 사건 사이에는 30년이 넘는, 즉 한 세대를 격하는 시차가 존재한다.

1980년 광주를 10대, 20대 초반에 겪은 이들의 현재—물론 몇몇은 극 심한 고통 속에서 삶을 일찍 마감한 것으로 제시된다—에 초점화 할 수 있었던 소년이 온다와 달리, 1948년 제주를 비슷한 나이에 겪은 사람들은 상당수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남아있는 이들 역시 온전하게 기억할 수 없고 말할 수 없 는 상태에 이르렀다.

구술 자료집에 실린 사진 속 증언자가 해를 거듭할수록 노 쇠해진 이미지로 제시되다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광주와 비교할 때 훨씬 오래 지속되어온 제주 4‧3 사건의 담론화에 대한 억압과 금기의 결과로 설명해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도 언급되듯 이, 4‧19혁명을 계기로 전국피학살자유족회가 설립되고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려 는 운동이 전개되었지만, 얼마 안 되어 박정희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전두환 의 신군부가 이어지면서 이들의 활동은 불가능해졌다.

직후인 1961년 5 월, 유족회장이 사형을 언도받고 정심의 4‧3 관련 신문 스크랩도 중단되었다는 대목으로부터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견뎌야 했던 30년이 넘는 긴 암흑의 시간을 짐작해볼 수 있다.

요컨대, 70여년이 흘러버린 역사에서 오는 불가피한 망각, 그리고 오랜 담론 화의 억압에 따른 증언 불능의 상황을 시사하는 장치로서 이 소설은 당사자의 증언이 아닌, 대리인에 의한 간접 증언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부재하는 목소리를 대신하고, 공백을 메우기에 몹시 불완전한 형태로 제시된다는 사실 또한 주목을 요한다. 일단 소설 속에서 증언을 수행하는 주체가, 정확히는 인선의 혼으로 설정된 비현실적인 존재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 가 있다.

제주 세천리 집을 방문한 경하에게 이 집에 깃든 정심의 이야기를 전하 는 존재는 그 시간 실제로는 서울의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으로 제시된다.

이야 기가 이루어지는 집 역시 죽었던 새가 돌아오고, 꿈인지 생시인지, 이승인지 저 승인지가 불분명한 시공간으로 묘사된다.

사건 당사자의 직접 증언이 아니라는 점에 더해, 혼에 의한 간접 증언이라는 환상적인 설정은 증언의 권위와 리얼리티 를 상당 부분 축소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관련해 짚고 넘어갈 것이 앵무새의 말이라는 장치다.

이 소설에는 인선의 말소리를 듣고, 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앵무새라는 흥미로운 설정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인선이 세천리 집에서 자식처럼 돌보며 함께 지내온 앵무새들은 인 선의 언어는 물론 음색이나, 허밍 같은 비언어까지 그럴싸하게 따라해 듣는 이로 하여금 마치 진짜 말을 할 줄 아는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

여기서 인선/앵무새의 관계를 정심/인선의 관계에 대입해본다면, 앵무새의 말은 4‧3 사건 당사자인 정 심의 직접 증언을 대신하는, 대리인-혼의 자리에서 수행하는 인선의 간접 증언 을 빗댄 은유로 해석해보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소설 속에서 앵무새의 말이 기의가 의심스러운, 즉 인선의 말소리의 두 갈래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의지 일부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텅 빈 기표’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속이 비 어있고 뼈에 무수한 구멍이 뚫려 질량감이라고는 거의 없는 앵무새 자신의 몸처 럼 말이다.

“아니, 아니” 같은 파편화 된 말 밖에 전할 줄 모르고, 속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하는지 확인할 길 없는 앵무새의 깨진 말을 통해서 경하, 그리고 독자는 애초 에 인선이 새들 앞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그러니까 아미한테는 뒤의 말만 제대 로 들렸을 거야” 206), 그 말을 했을 때 인선이 어떤 상황이었고, 감정이었는지 알기 어렵다.

그렇다면 인선의 단편적인, 깨진 이야기를 통해서 경하, 그리고 독 자 역시 과거에 정심이 정말로 어떤 일들을 겪었고 말을 했는지, 그의 심정은 어 떠했는지 알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논리는 역사의 재현이라는 맥락에서는 퍽 문제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물론 실재로서의 역사란 늘 온전하게 파악되기 어렵고, 완벽하게 재현될 수 없다 는 관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와 문학 텍스트는 그 불가피한 차이 와 결여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들을 재현하는 작업에 도전 해야 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조연정(2014), 황정아(2015)의 지적처럼 소년이 온다는 이 아포리아를 증언 불가능성 자체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돌파하고자 했다.

뒤를 잇는 작별하지 않는 다에서는 새로운 재현 전략으로서 대리인-혼에 의한 간접 증언을 채택한 것인 데, 그와 동시에 앵무새의 말이라는 은유로써 그 한계를 명백히 노출함으로써, 역사(실재)의 재현에 도전하려는 원초적 욕망과 전략을 스스로 배반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작별하지 않는다가 단순히 증언 불가능성이라 는 명제를 재확인하거나, 불완전한 재현의 한계를 시인하는 데 그치는 텍스트라 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별하지 않는다는 재현 (불)가능성을 재인 식하는 작업에서부터 출발하는 텍스트이며, 그 너머를 탐색하는 작업이야말로 이 소설의 문학적 성과라는 점에 대해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2. 증언들의 콜라주를 통한 실재의 재구성

김요섭(2022)은 국가폭력의 과거사를 다룬 한국문학에 관한 최근 연구들이 아 우슈비츠에 관한 증언 불가능성의 담론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작품이 지 닌 재현의 역량을 축소하는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11)

중요한 지적으로, 그처럼 작품에 내재한 고유한 재현의 역량 및 전략에 초점을 맞출 때,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인선을 통한 간접 증언 외에도, 정심과 학영의 증언의 공백을 둘러 싸고, 실로 다양한 ‘증언들’이 제시된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예를 들어 학살에 관해 마을 단위로 증언을 채록한 구술 자료집에서부터 진상 조사보고서, 취재기사, 신문기사, 지도, 사진, 영상자료, 미군 기록물, 수형인 명 부, 편지 등에 이르기까지. 이 방대한 자료들은 소년이 온다에서도 중요한 토 대가 되었지만,12) 완전히 소설 속으로 녹아들어 자료 자체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반면,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자료들의 흔적을 노출하는 방식을 택했으며, 그 결과 이 소설의 2부는 4‧3과 관련된 온갖 자료들의 아카이브나 다 름없게 되었다.

실재하는 기록물들을 문학작품 속에 아카이빙 하고, 그것을 날 것 그대로 혹은 약간의 가공을 거쳐서 활용하는 방식―노태훈(2022)은 이를 ‘아카이빙 픽션’13)으 로 명명하였다―은 동시대 증언문학에서 활발하게 시도되는 만큼 그 자체로 새 롭지는 않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강의 이번 소설이 여러 버전의 증언들을 발 췌한 뒤 신중하게 재배치하는 ‘증언들의 콜라주’14) 작업을 시도한 점은 주목을 요한다.

11) 김요섭, 「이행기 정의와 서사-민주화 이후 문예지 복간과 재현의 정치」, 상허학보 64, 상허학 회, 2022, 425-426면.

12)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자료 읽기 작업이 매우 중요했다고 언급하였다. 김연수‧한강,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한강과의 대화」, 창작과비평 165, 2014, 319-320면.

13) 노태훈, 「연결되는 ‘우리’와 회복하는 ‘나’-최근 한국소설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문학동 네 110, 문학동네, 2022, 234면.

14) 증언들의 콜라주란 최근 한국계 미국인 시인인 에밀리 정민 윤이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창작한 연작시 「증언들」(2018)에서 도입한 ‘찾은 시(found poetry)’ 기법에서 참조한 개념이다. 윤에 따르면, 찾은 시란 시각예술에서의 콜라주처럼 기존의 텍스트들을 부분적으로 활 용해 새로운 형태나 내용의 시를 만드는, 영시에서는 잘 알려진 창작기법을 말한다. 윤은 위안부 여성들의 구술녹음을 기록하고, 영어로 번역한 기존의 출판물들로부터 그 일부를 추출해 재배열하 고, 자신의 언어도 소량 추가하여 시의 형태로 변형하였다고 밝혔다. 에밀리 정민 윤, 「‘찾은 시’를 통해 들여다 본 우리 종족의 잔인함」, 한유주 역,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열림원, 2020, 16-18면. (원저: Emily Jungmin Yoon, A Cruelty Special to Our Species, HarperCollins, 2018)

그 의도와 효과는 무엇일까.

권명아(2017)는 지젝과 버틀러의 논의를 참조하면서, 폭력의 경험을 전달하는 증언이 사건 당사자의 말을 직접 인용하고 채록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전달 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기록된 서사(reported narrative)의 한계’ 를 내포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사실적 구성 요소를 초과하는 것처럼 보이는 압도적인 폭력의 경험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서사(언어)의 한계는 한층 분 명해지는데, 권명아는 그

“언어의 한계를 직시하지 않는 한 언어를 다루는 자는 (중략)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과 고통을 매번 보고된 언어에 가두고, 보고될 수 없는 그 너머를 차압하면서 이들의 삶도 차압한다”15)고 했다.

15) 권명아, 「증강 현실적 신체를 기반으로 한 대안기념 정치 구상-애도 주체와 현실의 증 강, 그리고 ‘완서학’의 원천」, 여성문학연구 40, 한국여성문학회, 2017. 191-192면.

제주 4‧3 사건은 역사적 사실 자체의 가공할 폭력성은 물론이거니와, 앞 절에 서 논했듯, 공적으로 증언되는 과정에서 억압과 금기 또한 강력했던 만큼 기록된 서사(언어)의 한계 역시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고려할 때 한강이 4‧3에 관 한 여러 증언들의 콜라주를 통해 각각의 내용과 형식상의 차이를 가시화하면서, 텍스트에서 변형되고 탈락된 요소들을, 마치 추리소설에서 단서를 추적하듯, 섬 세하게 탐색해나간 시도는 바로 그와 같은 기록된 증언의 한계, 나아가 재현의 한계를 고민하고 돌파하려 했던 실험으로 논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설 속에는 동일한 주체의 증언임에도, 증언이 이루어진 상황과 시대, 기술 방식 등에 따라 세부적인 내용과 형식, 분위기가 달라지는 복수의 증 언들이 존재한다.

한강은 다음과 같이 그 증언들을 콜라주하고, 사이사이로 허구 적 상상력을 틈입시키며 소설의 형태로 변형하였다.

1) 구술 녹취 버전

내가 스물두 살, 우리 큰아들이 백일 되실 때라. 우리집 쪽으로 군인들이 총을 막 쏴댐시난 울 애기를 보듬고 솜이불을 뒤집어 썼주. 애가 아방은 그때 막 민보단 들어 가그네, 매일 경찰서에 일보레 댕기멍 밤까지 집에 안 들어와서. 허이고, 애기랑 나 랑 둘밖에 어신디…… 그추룩 총소리를 하영 들은 거는 그때 첨이고 마지막이라. 한 참 지낭 잠잠해져그네 벌벌 떨멍 문구멍을 내당보단, 그추룩 하영 이시던 사름들이 모살왓에 자빠져 이서서. 군인들이 둘씩 짝을 지어그네 한 사름씩 바당에다 데껴 넣어신디, 꼭 옷들이 물우에 둥둥 떠다니는 것추룩 보여서.16)

16) 한강, 위의 책, 224면.

2) 취재 기사 버전

방으로 총알이 들어올까봐 이불을 쓰고 총소리를 듣는데, 아이들이 있었던 게 자 꾸 생각나서 가슴이 떨렸습니다. 우리 아들만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들도 봤고, 산 달인지 배가 불러 허리를 짚고 서 있는 여자도 있었어요. 어둑어둑해지는데 총소리 가 멈춰서 문구멍으로 내다봤더니, 피투성이로 모래밭에 엎어져 있는 사람들을 군인 들이 바다에 던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옷가지들이 바다에 떠 있는 줄 알았는데 그 게 다 죽은 사람들이었어요.17)

17) 한강, 위의 책, 225-226면.

3) 소설적 변형

(중략) 꼭 내가 그 사람을 기다렸던 것추룩. 누게가 이걸 물어봐주기만 기다리멍 십오 년을 살았던 것추룩. 그래 사실대로 대답을 했져. 아이들이 이서나긴 했다곡. 심장이 벌어질 것추룩 뛰 멍 말이 더듬더듬 나와신디, 정작 그 사름은 도근하게 한참 가만히 있당 또 물어봐서. 혹시 갓난아기 울음소리도 들었느냐곡. 처음 보는 사름인디, 우리 서방이 알민 큰일이 날 건디, 내가 넋이 나간 것추룩 또 대답을 해서. 울음소리는 못 들었지마는 애기를 안고 서 이신 여자들을 봤다곡. 정말로 내가 봐서간. 모래에다 그어논 금 바로 안쪽이서 여자 셋이 젖먹이를 보듬곡 붙어 서 이서서. 네 살 일곱 살, 많으멍 열 살 먹은 거 같은 아이들 일고여덟이 그디 모여 이서서. 아이들이 그 여자들헌티 고개를 쳐들곡 가끔씩 입을 벌리는디, 뭐렌 고 르는 건지 울르는 건지 보름이 바당 쪽으로 불어난 안 들려서. 그 사람으 꼼짝 안 허곡 앉아만 이시난, 이제는 더 물을 말이 어신가보다 생각해 서. 경 헌디 그 사름이 다시 묻는 말이, 바당갓에 떠밀려온 아기가 있었느냐곡. 그날 아니라 담달이라도, 담달에라도.18)

18) 한강, 위의 책, 231면. (강조 표시 인용자)

1)은 원 구술에 충실한 녹취록으로, 증언자의 제주방언과 정연하지 않은 말을 그대로 기술한 버전이다. 그에 따라 학살 당시 증언자가 처해있던 상황과 감정이 효과적으로 나타나 있다.

2)는 제3자의 편집을 통해 방언이 표준어로 옮겨지고,문장의 흐름이 논리적으로 다듬어진 버전이다. 증언자의 감정선은 축소되지만, 대신 학살 당시의 외부 정황이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학살 현장에 있던 여자들과 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새로 추가된 점이 주목된다.

마지막 으로 3)은 그날 바닷가에서 여동생들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학영이 증언자 의 집을 찾아오는 소설적 상황이 가미된 버전이다.

증언자의 내밀한 심리가 초점 화 되면서도, 학살 현장에 있던 여자들과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보일 듯한 묘사 를 통해 그려진다.

나아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말해졌던 아이들의 목소리(인용문 강조 부분)에 대한 상상력까지 덧붙여져 있다. 유사하게 소설 속에는 상대적으로 객관적이라 여기기 쉬운 신문기사의 경우에 도 표기수단(국한문병기/한글전용), 배치(세로쓰기/가로쓰기), 발행지역(중앙신 문/지방신문) 등에 따라 발생하는 정보와 뉘앙스의 미묘한 차이가 나타나있다.

나아가, 텍스트 이면의 요소들(수기의 필체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기록자의 성격 이나 감정 등)까지 고려하면서, 이 소설은 재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작업에 인 내심 있게 도전한다.

물론 한편에는 실재(역사)는 그러한 시도들로부터 끊임없이 비껴나고, 수많은 재현들 사이에서 결국 아무것도 규명하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실재 (역사)에 대한 재현의 은유인 인선과 앵무새의 움직이는 그림자를 따라 경하가 벽에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 느끼는 회의처럼 말이다(“교차되고 겹쳐진 선들 때 문에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을 거란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207).

그럼에도 인선 과 앵무새 아마가 부르는 “엇박자의 돌림노래”처럼 시공과 매체를 가로지르는 다성적인 목소리들(증언들)이 만들어내는 “미묘하게 어긋나는 화음”(113)을 듣 고자 하는 희구 또한 간절하며, 바로 그것이 소설을 밀고 나간다.

요컨대, 대리인-혼에 의한 간접 증언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직접 증언, 그리고 사실적이라 간주되는 사료들에도 그것이 재현인 이상 변형과 결여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재현 불가능성의 지점들을 은폐하거 나, 권위 있는 주체의 목소리를 통해 상상적으로 보완하는 대신, 오히려 증언 주 체를 이중으로 간접화하고, 복수의 증언들을 콜라주하는 방식을 통해 의도적으 로 가시화한다.

그럼으로써 실재로서의 4‧3에 대한 하나의 온전한 재현을 꾀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실재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부각한다.

이것은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를 과거에 종결된, 지나간 사건으로 보지 않 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사건으로 되살아나게 하고, 그와 연결되려 하는 작업이 라고 할 수 있다.

김명인(2016)이 지적하였듯, 소년이 온다에서도 역사의 현재 화는 한강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었고, 이 과정에서 사건 당시부터 현재까지 지 속하는 당사자들의 생생한 고통은 중요한 매개가 되었다.

반면, 작별하지 않는 다에서는, 여러 평론가들이 지적한 고통의 연결고리 외에도,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재구성해 나가려는 지금 여기의 실천들이 역사와 현재를 잇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설의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리인-혼에 의한 증언에 대한 재론을 덧붙이는 것으로 이 장의 논의를 매듭짓겠다.

앞서 이 글에서는 소설 속에서 증언을 수행하는 주체가 대리 인-혼으로 설정된 점을 들어, 그것이 증언의 권위와 리얼리티를 위태롭게 만드 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아감벤의 증언론을 참조할 때 이 점은 다시 논 의될 여지가 있다.

아감벤에 따르면, 증인이란 본질적으로 증언할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하는 대리 인의 속성을 지닌다.

또한 대리인으로 말하는 만큼 증언의 주체란 증언을 하고 있는 자(인간)이기도 하지만, 그가 대신해주는 자(비인간)가 되기도 한다.

나아가 증언이란 “증언할 수 없는 무엇 또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어야만”19) 하는 일, 즉 비인간의 비언어에 자리를 내주는 일이 된다.

19) 조르지오 아감벤, 정문영 역,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문서고와 증인, 새물결, 2012, 59면.

요컨대, 레비 식의 증언 불가능 성의 논리를 전유하면서, 증언을 주체화/탈주체화, 인간/비인간, 언어/비언어를 가로지르는 수행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아감벤의 증언론의 핵심이다.

아감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선의 증언은 인선 자신의 목소리(주체, 인간, 언 어)이기도 하지만, 대리인-혼의 자리에 있는 만큼 다른 존재의 목소리(탈주체, 비인간, 비언어)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소설 속에는 물리적인 발화 주체는 인선 인데, 정심과 학영의 목소리가 수시로 섞여 들어가는 대목들이 여러 번 나온다.

그에 따라 대리인-혼에 의한 증언이라는 설정은 복수의 중성적인 증언 주체들, 그리고 언어와 비언어를 매개하는 증언 과정을 형상화한 장치로 새롭게 분석될 수 있다.

신샛별(2016)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실을 드러내고 타자와 소통하는 극적인 순간에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지곤”하는 “신성한 활자”20)의 역할을 했던 한강 소설의 이탤릭체는 이 소설에 이르러 그와 같은 증언의 특별한 수행을 형상 화하는 활자로 거듭난다.

20) 신샛별, 「식물적 주체성과 공동체적 상상력-채식주의자에서 소년이 온다까지, 한강 소설의 궤적과 의의」, 창작과 비평 172, 창작과비평사, 2016.

이것은 역사를 사학이 아닌 문학을 통해 재현하는 맥락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기록된 역사의 문학적 재현에서는 역사적 사실의 규명 못지않게, 역사와 언어 바 깥으로 밀려난 존재들의 목소리를 가시화하고 대리하는 작업이 중요한 까닭이 다.

어떤 기록도, 증언도 온전한 역사의 진실을 담아낸다고 볼 수 없지만, 그 속 에서 진실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재현할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고 신비화하지 않 으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들의 삶과 고통을 도외시하지 않으 면서, 문학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는 메타적인 물음을 제주 4‧3 사건을 통해 전개해나간 것, 이 점이야말로 작별하지 않는다의 중요한 성과이다.

Ⅲ. ‘애도 가능성’을 복권하는 정치적 실천

1. 공적 애도 금지에 맞서는 안티고네-정심

앞서서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형식 면에 주목하면서, 이 소설이 제주 4‧3 사 건에 대한 재현 불가능의 난제를 돌파해나가는 방식을 전작 소년이 온다와의 비교 속에서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그 내용 면에 주목하면서, 이 소설이 전작 의 주제를 이어받으면서도 그로부터 변화한 측면에 대해 살펴보겠다.

이와 관련해 두 소설이 공유하는 애도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할 필요가 있다.

먼저, 소년이 온다이다.

서영채(2014)와 노대원(2014)은 소년이 온다로부터 애도의 문제에 주목하면서, 소설 속에서 형상화 되는 은숙을 비롯한 5월 광주로 부터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죄의식, 분노, 그리고 장례식이 되어버린 삶을 ‘안티 고네의 자리’에서 설명한 바 있다.

“죽은 자들이 누려야 할 합당한 애도와 기억의 의례”가 행해지지 못한 현실 속에서 “실정법이 지켜내지 못하는 보편적 정의 의 원리”로서의 애도에 충실하고자 했던 발로가 소설 속 정동들이며, 그 점에서 국왕 크레온이 반역자로 규정하고 칙령으로써 매장을 금한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한 줌의 흙으로 덮어준 안티고네와 소년이 온다의 인물들이 같은 자리 에 있다고 본 것이다.21)

안티고네로 표상되는 애도의 문제는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핵심적인 주제 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소년이 온다로부터 선행연구들이 주 목한 슬픔 속에 잠긴 안티고네의 형상 대신, 슬픔을 통해 적극적인 정치적 실천 으로 나아가는, 즉 국가권력과 실정법의 공적 애도 금지에 맞서는 행위자로서의 안티고네의 형상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정심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제주 4‧3 사건 때 수감되었다가 한국전쟁 기 국민보도연맹 사건과 연루되어 학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빠 강정훈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친 여성이다.

조연정(2021)의 지적처럼 역사적 비극의 현장 에서 말 없는 존재로 희생되곤 했던 전형적인 여성 형상과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 정심이다.22)

오빠를 향한 종결되지 않는 애도로부터 비롯된 정심의 실천은 버틀러가 해석 한 안티고네의 애도 개념을 참조할 때 그 의미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다.

작별하 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에서 애도를 논한 선행연구들은 주로 프로이트와 데 리다의 애도 개념을 인용한 만큼 이 글이 기초한 버틀러의 애도 개념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버틀러는 기본적으로 애도가 공적이고 정치적인 차원과 접속해있는 영역이라 고 본다.

그에 따르면, 누가 애도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은, 누가 인간으로 인정 받는가, 누구의 삶이 삶으로 간주되는가의 문제와 연관된다.23)

21) 서영채, 「문학의 윤리와 미학의 정치-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성석제의 투명인간에 대하여」, 문학동네 80, 문학동네, 2014, 11-12면; 노대원, 「폭력과 증언-한강과 이기호의 신작 장편에 관해」, 문학들 38, 심미안, 2014, 307면.

22) 조연정, 「그녀들의 따뜻한 제주」, 문학과사회 136, 문학과지성사, 2021, 315면.

23) 주디스 버틀러, 윤조원 역, 위태로운 삶-애도의 힘과 폭력, 필로소픽, 2018, 47면.

애도되지 않는 존 재들이란 인간으로 인정되고 식별되지 않는 자들이자, 그에 따라 상실 또한 실재 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들이다.

버틀러는 이들이 단순히 담론으로부터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담론에 앞서 이미 상실된 상태거나, 아예 존재했 던 적이 없던 것처럼 취급되는 ‘탈실재화’의 폭력을 당한 이들이라고 본다.24)

이 때 안티고네는 그처럼 애도 가능한 삶과 불가능한 삶을 구획하는 국가권력 에 맞서, 국민국가의 의해 ‘애도 가능성(grievability)’이 박탈된, 국민의 경계 바 깥으로 내몰린 존재를 향해 애도를 수행하는 인물로 재조명해볼 수 있다.

버틀러 에 따르면, 안티고네는 공적 애도 금지에 도전하며 금기시 된 애도를 수행함으로 써,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애도 가능한 존재로 복권하는 정치적 모험을 감행한 인 물이다.25)

24) 주디스 버틀러, 위의 책, 67면.

25) 주디스 버틀러, 위의 책, 82면.

이와 같은 버틀러의 애도 개념을 참조할 때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우선 눈길 을 끄는 것은 애도 가능성이 박탈된, 즉 국가권력에 의해 탈실재화 되고 공적으 로 애도가 금지된 존재들의 모습이다.

학살당한 뒤에도 장례를 치르거나, 그 죽 음을 공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정심과 학영의 가족들이 여기에 해당 한다.

댓잎과 흙으로 가매장된 학영의 부친, 애초에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도록 바닷가에서 학살당한 학영의 가족들, 보리밭에 함부로 포개진 채 눈 덮인 정심의 가족들의 시신들, 그밖에 제주공항 활주로 아래, 경상도 등지의 지하 갱도에는 매장되지 않은 유해들이 넘쳐난다.

이 소설의 첫 장면이 경하의 꿈을 빌려 그처럼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밀려오 는 바닷물에 쓸려나가고 흩어지는 유골들의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시작된다는 점 은 상징적이다.

경하가 제주도에 있는 인선의 집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죽은 앵 무새의 시신을 거두어 정성스럽게 매장해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이들을 향 한 일종의 사후적인 제의 내지 추도의 의례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이 장면 이후 인선의 집으로 죽은 앵무새와 인선의 혼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으로 제시된다.

탈실재화의 폭력을 겪은 것은 반공주의의 낙인을 부여받은 채로 살아남은 학 영 또한 마찬가지이다.

오랜 형무소 생활로 인한 창백한 얼굴, 희미한 목소리, 고문후유증으로 떨리는 팔을 지니게 된 학영의 외양은 흡사 유령처럼 묘사되며, 형기를 마치고 고향 제주도로 돌아온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마치 보이지 않고, 어울려서도 안 되는 귀신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으로 그려진다.

마지막으로, 소중한 누군가에 대한 공적인 애도 행위를 부인 당한 채로 살아가 야 하는 이들 역시 삶과 죽음 사이로 내몰린 존재들이다.

시신을 매장 수 없는 폴리네이케스뿐만 아니라, 안티고네 역시 산 채로 무덤으로 보내지는 ‘산 죽음’ 으로 추방되는 형벌을 받은 데서 드러나듯이 말이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정심 을 위시해 정심과 유사한 처지에 놓인 수많은 전국피학살자유족회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버틀러는 애도가 얼마나 정치화된 영역인지를 지적했을 뿐만 아니라, 안티고네와 같이 어떻게 다시 우리를 정치적 실천으로 이끄는지에 대해서도 말 하였다.

그에 따르면, 상실이 수반하는 애도, 슬픔, 우울 같은 감정들은 우리를 사적인 존재로 고립시키고 탈정치화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우리가 얼마 나 근본적으로 서로 연결되고 의존하고 있었는지, 그 유대관계를 전면화함으로 써 공동체와 정치에 대해 자각하도록 이끈다.26)

그 점에서 슬픔은 정치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는 버틀러를 번역한 윤조원(2021)이 언급하였듯, “법이 구축한 기존 질서를 내파하는 힘이 폭력적 복수가 아니라, 애도라는 지극 히 비폭력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실천에서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27)

소설 속에서 가족을 잃은 정심의 슬픔과 애도 역시 일방적인 희생자, 피해자 의식에 그치지 않고, 그처럼 타인들의 취약성을 향해 확대되어 나가고, 궁극적으 로는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우선, 정심은 안티고네가 그랬듯, 그리고 인선 과 경하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뒤를 돌아보지 말 것을 요구 받은 전설 속의 여인 이 그랬듯, 금기를 깨고 비밀스러운 애도를 수행한다.28)

26) 주디스 버틀러, 위의 책, 59-61면.

27) 윤조원, 「“살 만한 삶”을 향해-젠더 트러블에서 비폭력의 힘까지」, 순천향 인문과학논총 40-4, 순천향대학교 인문학연구소, 2021, 23면.

28) 오세란, 「금기를 어기고 뒤를 돌아본 여인처럼-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실천문학 142, 실천문학사, 2021, 279-280면.

그 과정에서 사라진 정훈에 관한 기록들을 찾아 헤매고 수집하는 정심의 아카 이빙 작업은 새삼 주목을 요한다.

이것은 단순한 신문이나 자료 스크랩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데, 왜냐하면 앞서도 언급했듯, 정훈과 같은 이들은 애초부터 공적 인 담론장에 기록이 불가능한 탈실재화 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훈과 관련된 온갖 활자화 된 단서들을 그러모으고, 조금이라도 유관한 내용의 기사가 실린 신문과 책자들을 구독하고 후원하는 정심의 행위는 탈 실재화된 존재인 정훈을 담론장 속으로 밀어 넣음으로써 실재하게끔 만들고, 궁 극적으로는 공적으로 애도 가능한 존재로 복권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또한 오빠에 대한 애도에서 비롯한,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몇 십 년간 의 노력들이 켜켜이 축적되어 있는 아카이브로 제시되는 정심의 집은 정훈과 같 은 이들을 애도 불가능한 존재로 규정짓고, 탈실재화 하는 국가권력에 맞서는 정 치적 장소로서 중요하게 의미 부여해볼 수 있다.

요컨대, 정심은 고통과 슬픔, 애도 속에서 고립되고 탈정치화 되는 게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정치화되는 존 재로 거듭난다.

소년이 온다 이후 한강(2017)은 한 칼럼에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단순한 연민을 넘어서는 실천적 의지와 실행이 매순간 우리에게 요구된다”29)고 지적하 였다.

29) 한강, 「누가 ‘승리’의 시나리오를 말하는가?」, 문학동네 93, 문학동네, 2017.

작별하지 않는다에 이르러 그는 정심을 통해 그처럼 슬픔과 고통, 분노 의 차원으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평화를 옹호하고 회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물들을 부조해냈다.

2. 연대하는 삶의 장소, 제주 세천리 집

한편, 정심은 정훈에 대한 개인적인 애도를 넘어, 자신처럼 가족을 잃고 고통 받는 또 한 명의 취약한 존재인 학영과 만나 다시 가족을 이루고, 국민보도연맹 원 학살 사건의 유가족을 비롯한 전국피학살자유족들과도 연대 활동을 벌여 나 간다.

작품 초반에는 폭력의 가해자에게 홀로 응수하기에는 덧없고 무력한 작은 성냥불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 불빛은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 인선의 손에서 경 하의 손으로 건네지는, 애도하고 연대할 수 있게 해주는 아름다운 촛불의 이미지 로 다시 피어난다.

바로 그 점에서 주목을 요하는 장소가 정심의 가족들이 살아갔던 제주 세천리 의 집이다.

제주 중산간 지대에 외따로 자리 잡은 이 집은 본래 정심의 외할머니 가 살다가 1948년 소개령이 내려졌을 때 피난한 뒤 돌벽만 남았던 것을 정심이 손보아 다시 살게 된 곳이다.

내 하나만 건너면 학영의 가족들을 비롯한 마을 주 민들이 몰살당하고 불탄 폐촌이 있는 이 집은 죽음과 트라우마의 기원적 장소에 해당한다.

정심은 이곳에서 죽기 직전까지 악몽과 섬망증에 시달렸으며, 경하가 방문했을 때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존재들이 찾아오는 기괴하고 섬뜩한 공 간으로 표상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집이 삶, 사랑, 회복, 그리고 연대의 장소로 표상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집은 가족을 잃고 내몰린 고통스러운 삶 가운 데서도 삶에 대한 의지와 사랑을 잊지 않으려 했던 정심이 다시 삶의 터전을 일 구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갔던 장소이다.

이곳에서 정심은 학영이 고문후유증으 로 일찍 생을 마감한 뒤로도, 딸인 인선을 돌보고 사랑하며, 죽기 직전까지 생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그려진다.

나아가 이곳은 정심이 또 다른 학살 피해자인 전국의 국민보도연맹 유가족들 과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신문을 구독하고 회비를 보내는 방식으로 벌여나갔던 평화운동의 거점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정심의 노력들은 지속하는 전쟁과 학살, 억압과 금기의 시간 속에서도, 평화로운 삶과 공동체를 회복하고 수호하기 위한 실천으로서 조명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이곳에서 어머니 정심의 대를 이어 인선이 정훈, 정심, 학영에 대 해 기억하고, 4‧3의 진실을 찾아나가는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인선은 이 집에서 정심을 돌보고, 앵무새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죽을 끓이고, 삶의 도구들을 만들면서, 경하와의 공동 프로젝트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수행해나간 다.

전작 소년이 온다에서 강조하였던 과거를 잊지 않고 상실한 이들과 작별하 지 않으려는 애도의 의지에 더해, 그로 인해 ‘장례식이 되어버린 삶’(“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30))으로부터 빠져나와, 삶 다운 삶, 살만한 삶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지금 여기의 소중한 사람들과 작별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이 소설로부터 새롭게 읽어낼 수 있다.

30)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102면.

바로 그와 같 은 두 갈래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의지야말로 이 소설의 제목에 깃든 중요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과 대조적인 제목을 달고 먼저 발표된 단편 「작별」(문학과사회, 2017.11)에서 한강은 유한하고 취약한 인간 존재들을 둘러싼 지속 불가능한 삶 의 요소들을 녹아내리고 사라지는 눈의 이미지를 통해 서사화하면서, 소중한 사 람들을 향해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인물의 내면을 전경화 했다.

반면,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삶의 유한성과 취약성 가운데서도 끈질기게 사랑과 연대를 추구하며 작별하지 않으려 하는 존재의 의지를 재조명했다.

또한 촘촘하고 정교한 입자들의 결속을 통해 눈송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부터 박혜 진(2022)이 소설 속 눈송이를 결속의 상징으로 해석하였듯,31) 눈의 이미지 역시 지속 불가능성 대신 순환과 연결의 상상력을 통해 재탄생시켰다.

한강 문학의 문 제의식의 전환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이 소설은 제주 4‧3 사건 역시 고립된 섬에서 발생한 특수하고 개별적인 사건으로 다루지 않고, 한국전쟁기 대구, 경산, 진주 등지의 내륙에서 벌어졌던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및 전후 한반도에서 장기간 지속되었던 군 부 독재의 정치적 탄압, 더 나아가 대만, 오키나와, 베트남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권헌익의 표현을 빌리자면, ‘또 하나의 냉전’32)이라는 확장된 맥락 에서 연결 지어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31) 박혜진, 「인간이 결속하는 방식은 눈송이-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언더스토리, 민음사, 2022, 31면.

32) 권헌익, 또 하나의 냉전, 민음사, 2013.

이쯤에서 경하가 인선의 제주 집으로 향하는 처음의 외화로 되돌아가 보자.

소설 초반에 경하는 전작을 쓰면서 접한 폭력적인 학살의 역사와 희생자들의 고 통으로 인해 심신이 깊이 병들게 되었고, 그에 따라 주변 사람들과 작별을 준비 하며 죽음을 결심한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외딴 집에 스스로를 고립시킨 경하는 그곳에서 오직 유서, 즉 세상에 대한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완성하겠다는 모순된 의지로만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인선의 호출은 그러한 경하를 고립된 상태로부터 빠져나오게 만들고, 제주도 에 있는 자신의 가족들의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곳에서 경하는 광주만큼이나 끔 찍한 제주라는 또 다른 고통과 슬픔의 역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정심과 인선의 가족들을 통해 사랑하고 연대하며 사는 삶, 삶다운 삶, 살만한 삶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함과 숭고함에 대해서 다시금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핵심적인 문제이다.

고통스러운 역사의 트라우마를 전승하고, 억압되 고 왜곡된 역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고통, 분노, 슬픔의 감정을 현재 화하고, 그에 깊이 공감하는 작업은 문학의 중요한 과제이다.

동시에 그 속에서 이어져나간 그들의 삶을 향한 의지와 회복력, 고통 받는 이들 간의 돌봄, 연대, 치유, 그리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벌여왔던 노력에 대해 조명하는 작업 역시 문학이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고통과 트라우마에 대한 공감과 그 전승 의지가 자칫 지금 여기의 삶과 인간 존재를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비관하고, 환멸하고, 함부로 취급하지 않도 록, 즉 문학을 통해서 삶과 인간을 다시 존중하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가치를 재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소설에 이르러 한강은 예술 가로서 그 두 갈래의 과제를 다시 한 번 상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평생을 그 질문의 언저리를 서성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이렇게 폭력적인 세계와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사랑과 생명의 뜨거 움. 그런 것이 계속해서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 그게 저한테는 굉장히 어려운 숙제처 럼 계속 저를 밀고 가는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33)

김영찬(2017)은 고통이 도처에 널려있는 현실 속에서, 구원과 평화를 말하는 오래된 설화를 바탕으로 한 희곡을 쓰는 작업의 곤경을 다룬 한강의 단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창작과비평, 2015.여름)34)을 두고,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 어떻게 써야 하는가, 라는 메타적인 물음”35)을 제기하는 작품이라고 분석하였다.

33) 한강‧김하나, ‘한강 작가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기념 온라인 북토크’, 문학동네 유튜브, 2021.9.27.

34) 한강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작별」, 그리고 또 한 편의 중편소설을 엮어서 ‘눈 3부작’을 완성하려는 계획으로 작별하지 않는다의 집필을 시작했지만, 계획과 달리 분량도 늘어나고 앞의 두 편과 결도 달라져 결과적으로 독립된 작품이 되었으며, 3부작을 이루는 마지막 소설은 추후 새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강‧정용준, 「빛이 머물다 간 자리」(인터뷰), Axt 40, 은행나무, 2022, 62-63면.

35) 김영찬, 「고통과 문학, 고통의 문학-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을 중심으 로」, 우리말글 72, 우리말글학회, 2017, 294면. 7

실상 작별하지 않는다야말로 K시에서의 학살을 다룬 경하의 전작 소설에서 시작해서 고통스러운 역사를 통과해온 존재들에 관한 인선의 영상예술 연작(‘삼 면화’)을 경유하고, 이 소설의 표제와 동일한 경하와 인선의 공동 프로젝트이자, 궁극적으로는 이 소설 자체를 창작하는 과정에 관해 쓴 메타텍스트이기도 하다 는 점을 이와 관련해 상기해 봐도 좋을 것이다.

Ⅳ. 결론

이 글에서는 역사의 문학적 재현이라는 측면에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소년이 온다와 비교하면서, 이 소설이 전작의 형식과 주제의식으로부터 변화 한 점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형식 면에서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역사를 직접 겪은 당사자 들이 자신들의 체험에 대해 증언할 수 없는 상황이 나타나며, 그에 따라 이 소설 에서 사건 당사자의 직접 증언 대신, 제3자인 대리인의 간접 증언을 전면화하는 방식을 논했다.

이 때 후자가 매우 불완전한 형태로 제시된다는 사실에 주목하였 다.

즉, 대리인-혼에 의한 증언이라는 환상적 설정은 증언의 권위와 리얼리티를 축소시키며, 그 점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텅 빈 기표’로서의 앵무새의 말이라는 은유를 통해서도 시사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그와 같은 재현 불가능성의 지점들을 은폐하거나, 권위 있는 주체의 목소리를 통해 상상적으로 보완하는 대신,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시 화한 측면을 새롭게 논의하고자 했다.

이와 관련해 이 소설에 시도한 증언들의 콜라주 작업을 중요하게 분석하였다.

다양한 증언들의 내용과 형식상의 차이를 가시화하면서, 각 텍스트에서 변형되고 탈락된 요소들을 탐색해나간 과정을 재 현의 한계를 고민하고 돌파하려 했던 시도이자,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를 과 거에 종결된 사건으로 보지 않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사건으로 되살아나게 하 고, 그와 연결되려 하는 작업이라고 본 것이다.

또한 아감벤의 증언론을 참조해 대리인-혼에 의한 증언이라는 설정 역시 복수 의 중성적인 증언 주체들, 그리고 언어와 비언어를 매개하는 증언의 특별한 수행 과정을 형상화한 장치로 재론하였다.

결과적으로는 이 소설이 역사를 재현하는 문학의 고유한 방식을 고민한 측면을 중요한 성과로 의미부여 하였다.

다음으로, 주제의식 면에서는 소년이 온다에서부터 지속하는 애도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논했다.

이와 관련해 이 소설이 애도 를 개인적인, 탈정치화된 행위로 보지 않고, 공적 애도 금지에 맞서 ‘애도 가능 성’을 복권하는 정치적 실천으로 제시하는 점을 버틀러의 애도 개념을 참조해 논 했다.

이 과정에서 버틀러가 해석한 안티고네의 형상을 소설 속 정심의 형상과 겹쳐 읽었다.

또한 정심과 인선이 살아가는 제주 세천리의 집을 그와 같은 정치적 실천을 뒷받침하는 연대하는 삶의 장소로서 논의하면서, 전작에서 강조하였던 과거를 잊지 않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들과 작별하지 않으려는 애도의 의지에 더해, 궁극적으로는 삶다운 삶, 살만한 삶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 지금 여기의 소중한 사람들과 작별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이 소설로부터 새롭게 읽어냈다.

바로 그와 같은 두 갈래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이 소설과 상호텍스트 성을 공유하는 소년이 온다, 「작별」과 대별되는 한강의 문제의식의 전환이자,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과 마찬가지로 예술을 창작하는 과정에 대해 쓴 메타텍 스트이기도 한 이 소설을 통해 한강이 전달하고자 했던 문학의 중요한 과제로서 의미부여 하였다.

참고문헌

1. 기본자료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1. 한강, 「누가 ‘승리’의 시나리오를 말하는가?」, 문학동네 93, 문학동네, 2017. 한강, 「작별」, 문학과사회 120, 2017. 한강,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창작과비평 168, 창비, 2015.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한강․정용준, 「빛이 머물다 간 자리」(인터뷰), Axt 40, 은행나무, 2022. 한강‧김하나, ‘한강 작가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기념 온라인 북토크’, 문학동네 유튜브, 2021.9.27. 한강‧김연수,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강과의 대화」, 창작과비평 165, 2014.

2.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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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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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wo Vows ‘Not to Part’ - Reading Han Kang’s We Do Not Part in comparison with Human Acts - Na, Bo-ryeong

This paper compared Han Kang’s We Do Not Part (Jakbyeolhaji Anneunda) with Human Acts (Sonyeoni Onda) as a literary representation of history and examined how the form and themes of the author’s former work, Human Acts, are altered in We Do Not Part. First, regarding its form, this paper focused on how We Do Not Part brings the indirect testimonies from a spirit and third-person narrator as a proxy to the fore rather than relying on direct testimonies of the victims of the Jeju April 3 Incident. This paper also examined how the novel attempts to collage the testimonies. Through the analysis, this paper shed light on the novel’s attempt to bring history to the present by actively visualizing parts of history that cannot be recreated instead of concealing or complementing it by using the voice of an imaginary yet authoritative subject. Such features of this novel can also be linked to literature’s unique mission to represent history. Next, in terms of themes, this paper discussed how mourning is an ongoing theme in both Human Acts and We Do Not Part. Using Judith Butler’s concept of mourning, this paper posited that mourning in this novel is not an individual and depoliticized act. Instead, mourning becomes a political act that restores the “grievability” in the face of the state’s ban on public mourning. Adding to the themes which were emphasized in Han Kang’s previous works, such as the will to grieve by remembering the past and the determination not to say goodbye to those who have disappeared into history, We Do Not Part imparts the significance of a life worth living, as well as the effort to restore such a worthy life and the determination not to part with the loved ones that live with us here and now. Lastly, this paper pointed out how this novel can be understood as a meta-text of the writing process of a literary work about making two different vows of not parting ways, conveying Han Kang’s notion of literature’s mission and purpose.

Key words The Jeju April 3 Incident, Human Acts (Sonyeoni Onda), Testimony, Testimony Literature, Mourning, Retrospective Narrative, Meta-text *

2022년 10월 16일 접수 2022년 11월 15일 심사 2022년 11월 17일게재확정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97집

 

두 갈래의 &lsquo;작별하지 않는다&rsquo;는 의지 -『소년이 온다』와 겹쳐 읽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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