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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여성 수난 서사의 신화적 원형과 서사문학적 수용- 딸/아내/어머니 되기 과정을 중심으로- /김지혜.한국외국어대

차례

1. 서론: 신화적 원형을 뿌리로 한 한국 서사문학의 계보 그리기

2. 여성 수난 서사의 신화적 원형

2.1. 이중의 버려짐 상황과 자기 지키기: 딸에서 아내가 되는 과정

2.2. 출산과 양육의 고통과 생명 지키기: 어머니 되기 과정

3. 고전소설에 나타난 여성 수난 서사의 변주

3.1. 중층화된 갈등의 원인과 균열의 움직임

3.2. 열녀·효부의 이상과 자아실현 욕망의 대립

4. 현대서사에서 재조명되는 여성 수난 서사의 신화적 원형

4.1. 혼전 임신 갈등과 여성의 당당한 선택

4.2. 이름을 잃어버린 여성의 이름 찾기

5. 결론

<논문개요>

본 연구에서는 담촌 선생의 서사 연구방법론과 신화적 원형에 대한 논의를 수용해 여성 수난 서사의 서사문학적 수용 양상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여성이 딸에서 아내, 아내에서 어머니가 되는 과정에서 겪는 수난의 신화적 원형을 <주몽신화>의 유화와 <제석본풀이>의 당금애기의 서사에서 발견하고, 이들 서사가 고전소설과 현대서사에 서 어떻게 수용되는지 살펴보았다. 당금애기와 유화의 결연과정에서 알 수 있듯, 여성 은 결연과정에서 이중의 버림을 받지만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고전소 설에서는 여성의 삶에 대한 구조적, 문화적 억압이 강화되면서 여성이 결연과정에서 겪는 갈등 원인이 보다 중층화된다. 현대서사로 오면 여성들은 결연과정을 적극적으 로 이끌며, 문제 해결의 주체성을 보였다. 신화에서 여성은 남성 부재 상황에서 출산의 고통과 양육의 고단함을 견디며 어머 니 되기 과정을 겪고, 열 달 동안 생명을 품으며 타자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당금 애기와 유화는 자기를 지킴과 동시에 생명을 지키고, 양육 후에는 자녀를 떠나보내는 미덕을 보이며 자아를 확장하고 실현하는 방식의 어머니 되기 양상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딸/아내/어머니 되기를 거부하지 않고, 고정된 역할에 매이지도 않는다. 고전 소설에서 여성은 열녀·효부의 삶과 자아실현 욕망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정된 역할을 과도하게 강요할 경우 원형적 서사는 딸/아내/어머니 되기를 회의하면서 고립 된 개인의 자아실현만 강조되었다. 이후 현대서사로 오면서 아내와 어머니 역할에 대 한 강요가 약화되고 유연해지면서 존재의 확장으로 열린, 딸/아내/어머니 ‘되기’의 원 형적 서사가 뚜렷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현대 여성서사가 신화의 원형적 서사에 보다 친화적인 양상이었는데, 이는 가부장 사회를 둘러싼 변동과 관련된다. 신화의 원형적 서사는 모계 사회에서 가부장제 사회 로 이행하던 시기의 여성 수난 서사라면, 현대의 여성서사는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비 판과 성찰이 고조된 시기의 여성 수난 서사이다. 두 시기는 가부장제 사회의 자장과 이를 벗어나는 힘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핵심어: 담촌 서대석, 여성 수난 서사, 신화적 원형, 주체성, 딸/아내/어머니 되기

1. 서론: 신화적 원형을 뿌리로 한 한국 서사문학의 계보 그리기

K-콘텐츠가 세계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한국소설문학 역시 세계 문학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1)

1) 김희진, 「국내 베스트셀러 소설의 스페인어 번역에 관한 소고 - ‘문학 한류’와 스페인어 번역 출판」, 2021년 한국외대 통번역연구소(HUFS ITRI) 국내학술대회 자료집, 한국외 국어대학교 통번역연구소 학술대회, 2021, 55-61쪽.

K-콘텐츠의 인기 요인을 서사 층위에서 찾자면 민족적 특수성이 세계적인 보편성과 맞닿았기 때문이며, K-콘텐츠 의 지속적인 생산과 성공을 위해서는 공감을 얻는 서사를 찾는 게 요구된 다.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서사 창출을 위해서는 인류 보편 문제를 다루며 전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담촌 선생은 21세기 한류의 확산 현상에 주목해 한국 공연문화가 세계적으로 호응받는 원인을 전통예술의 음악적 형식, 전통예능인의 자질과 재능 에서 탐색하였다.2) 또한,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 요인을 작품의 서사 구 성 기법으로 설명하면서 한류의 서사 원형을 고전의 서사 구조에서 찾았다. 이는 ‘장금’의 서사에서 영웅 서사 구조와 ‘상처입은 치료자(wounded healer)’의 신화적 원형을 발견한 것이다.3) 담촌 선생은 소재나 모티프 차 원에서 나아가 서사 구조 차원의 유형 연구를 지속하였으며,4) 한류의 서사 원형을 찾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주제의 서사를 찾아 계 보화하는 일이 필요하다.5) 특히, 신화는 시공간을 초월해 인류 무의식에 잠재된 보편성을 자극하기에 신화로부터 추출된 서사 유형이 이후 서사문 학에서 어떻게 변주되는지 탐색하며 한국 서사문학의 계보를 그려야 한다. 본고에서는 서사구조에 주목해 계보를 그리는 연구방법론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주제에서도 담촌 선생이 주목한 여성 수난 서사를 중심에 두고자 한다.6)

2) 서대석, 「한류의 원류」, 겨레어문학 49, 겨레어문학회, 2012, 8-26쪽; 19쪽.

3) <대장금>에서 장금의 서사를 <바리데기>의 바리데기 서사와 연결한 글에서는 장금이 ‘상 처받은 치료자’로서 성장해가는 삶을 통해 우리의 집단무의식을 일깨우기 때문에 인기를 얻었다고 설명하였다. <<대장금>이 보여준 여성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3]>, 씨네21, 200 4.03.19.,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23573#relay_news_area, 202 1.10.10. 접속.

4) 담촌 선생의 대표 연구 중 하나인 군담소설의 구조와 배경은 군담소설에서 신화 영웅의 일대기 서사 구조를 유형화한 연구로 계보화 작업의 고전에 해당한다. 서대석, 군담소설 의 구조와 배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5.

5) 류보선, 「‘엄마(를 부탁해)’에 이르는 길: 한국현대소설 속의 어머니 표상과 잠재성: 한국 현대소설의 계보학 2」, 돈암어문학 30, 돈암어문학회, 2016, 7-41쪽.

6) 서대석, 「<제석본풀이> 연구」, 한국무가의 연구, 문학사상출판부, 1980, 170-192쪽; 서대 석, 「한국소설문학에 반영된 신화적 양상」, 관악어문연구 20,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95, 69-83쪽. 김헌선도 서사문학에서 여성 수난의 두 가지 유형을 <제석본풀이>와 <바리 데기>에서 찾고, 그 모형은 <주몽신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제석본풀이>에 나 타난 여성 수난의 극복 양상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운명적이라면, <바리데기>에 나타 난 여성 수난의 극복 양상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운명 개척적이라고 평가하였다. 그 리고 고전소설에 나타난 여성 수난과 극복 양상을 ‘중세적 질곡의 옹호와 해체’, ‘민족적 고난과 극복’, ‘여성의 자각과 요청’, ‘중세적 질곡에 대한 도전적 전형’으로 분류했다. 김헌 선, 「<당금애기>와 <바리공주>에 나타난 여성 수난의 문학사적 의의」, 경기어문학 5·6, 경기대학교인문대학국어국문학회, 1985. 이경하는 서사시의 문학 내적 요인과 여성에 대 한 시대 관념이라는 문학 외적 요인을 기준으로 해서 여성구비서사시의 형성과 변천 과정 에 대해서 논하였다. 서사시 내적 변동 요인은 ‘영웅의 일생’이란 구조의 유입과 수용이며, 외적 변동 요인은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이다. 원시부터 고대, 중세에 이르기까지 여성 에 대한 관념 변화가 서사시의 주인공을 전지전능한 여신에서 고난받는 여인으로 변하게 한 동인이다. 이경하, 「제주도 본풀이에 나타난 여성서사시의 양상과 의미」, 구비문학연 구 9, 한국구비문학회, 1999. 신연우는 서사 구조를 기준으로 해 <제석본풀이>와 삼국사 기 <산상왕> 기사에 실린 ‘주통촌 미녀’ 서사의 연관성과 신화적 의미를 규명하였다. 신 연우, 「<제석본풀이> 서사구조의 역사성과 문학성」, 고전문학연구 36, 한국고전문학회, 2009. 박성은은 당금애기가 전통사회를 산 영성들의 보편적 삶을 상징하며, 당금애기의 출 생과 성장-결연과 시련-출산과 양육-신으로 좌정하는 서사 구조는 여성들이 소중한 딸이 었지만 결혼과 함께 친정에서 분리되고, 잉태, 출산, 양육을 통해 어머니가 되는 과정을 일반적으로 보여준다고 하였다. 박성은, 「<당금애기>를 통해 본 여성 삶의 원형 연구 : 딸 에서 어머니, 어머니신이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건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3.

담촌 선생은 <주몽신화>를 분석하면서, 천제(天帝)-해모수-주몽으로 이어지는 남성 서사 계보에서 소외된 여성 유화의 서사로 연구 시각을 전환하고, <제석본풀이>7)의 당금애기 서사와 <주몽신화>8)의 유화 서사를 통해 여성 수난 서사의 전형을 구축한 뒤, 이들 서사가 <숙향전> 숙향의 서사, <탁류> 초봉의 서사로 이어지며, 계승되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한류 로의 확장을 위한 서사 계보를 그리는 데 있어서 여성 수난에 방점을 찍는 것은, 이를 통해 문명 세계의 폭력성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며, 수난에 대한 여성 인물의 대응 방식을 살펴 폭력에 저항하는 대안 서사를 마련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최근 문학 한류를 이끄는 대표 작가들의 문제의식을 살펴보면 폭력적 세계에 대한 끈질긴 탐색이 주를 이룬다.9)

7) <제석본풀이> 여성주인공은 ‘당금애기’, 남성주인공은 ‘시준님’으로 통일하겠다. 최정여·서 대석의 동해안무가(형설출판사, 1974)에 채록된 김유선 구연본 <당금애기>를 기본자료 로 삼되, 서사가 풍부하고 구성이 정밀하며, 묘사가 잘 되었다고 평가받는 <양평본>도 인 용하겠다. <양평본>은 서대석, 한국무가의 연구에 실린 것(323-375쪽)을 인용하겠다.

8) 이규보의 <동명왕편>을 기본자료로 삼되, 원문과 현대어역은 한국고전종합DB(db.itkc.or.kr) 를 출처로 하며 필요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기록도 인용하겠다.

9) 문학 한류를 이끄는 대표 작가로 한강, 황석영, 김영하, 정유정, 조남주, 편혜영, 김애란 등 이 거론된다. 채식주의자(2007)로 2016년 맨 부커 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폭력적인 세계에 대한 끈질긴 탐구와 폭력에 저항하는 인물의 이야기에 천착하며, 2011년 맨 아시 아 문학상을 수상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8), 조남주의 대표작 82년 김지영(20 16)도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의 삶을 그린다.

본고에서는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나아가는 길을 위해, 담촌 선생의 서사 연구방법론과 ‘여성 수난 서사의 신화적 원형’에 대한 논의를 수용해 여성 수난 서사의 서사 문학적 수용 양상에 대해서 논의하도록 하겠다. 특 정 작품이나 장르에 나타난 여성 수난 양상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시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시대별 여성 인식 변화와 한 시대를 주도하는 서사 장르에 따라 여성 수난의 양상과 극복 방식이 변주되는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아래에서는 가부장제 사회가 형성되던 시기의 신화에서 여성 수난의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한 연구10)를 중심으로 이후 가부장제가 발 전·강화된 시기에 여성 수난의 원형이 어떻게 변주되는지 또, 가부장제에 대한 성찰이 심화된 현대에 여성 수난 서사는 어떻게 그려지는지 살펴보겠 다.

10) 이경하, 앞의 논문, 174-178쪽.

여성 수난 서사의 보편성과 차이점을 분석하는 서사 계보 그리기를 통 해서 한류에 기여하는 고전 연구자의 자리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2. 여성 수난 서사의 신화적 원형

담촌 선생은 <제석본풀이> 당금애기의 서사와 <주몽신화> 유화의 서사 에 나타난 수난이 이들에게 국한된 특별한 수난이 아니라 전근대 전통사회 의 여성이 일생 동안 겪는 보편적인 수난이기에 여성 수난의 서사적 원형 이라 평가하고,11) ‘혼사 장애 유형으로서 여성 수난’이라고 하였다. 이때, ‘혼사 장애 유형으로서 여성 수난’은 표현과 달리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 는 생산신-지모신(地母神) 수난에서 형성되었음을 유의해야 한다.12)

이경 하는 ‘혼사 장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여성의 수난’은 여성의 혼인 과정에 서 어려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세경본풀이> 자청비 서사에서 복잡하게 나타나면, 지모신이자 생산신으로서 당금애기와 유화가 겪은 수난은 ‘잉태와 출산’ 과정에 초점에 맞춘 것이기에 두 가지를 나눠야 한다고 하였다.13)

11) 서대석, 앞의 글, 1980, 89쪽.

12) 위의 책, 173쪽.

13) 이경하, 앞의 논문, 169쪽

위 주장의 타당함에도 당금애기 서사와 유화 서사의 원형은 딸/아내/어머 니 되기라는 여성 수난 역사의 변곡점을 모두 포괄하는 총체성을 담고 있 기에 초점을 생산과 양육 과정에만 맞출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본고에서는 여성 인생의 변곡점이자 존재론적 변환을 요구하는 과정인 딸에서 아내, 어머니 되기 과정에서 겪는 수난을 모두 다루고자 한다. 또한, ‘수난(受難)’이라는 표현은 피동표현이기에 수동적인 여성이 떠오르지만 담촌 선생은 <주몽신화>에서 유화가 겪는 수난을 남성 영웅이 겪는 수난과 비교하며, 여성 수난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을 극복하는 인내와 극기(克己)로서 고난을 타개’14) 하는 것이라 하였다.

14) 서대석, 앞의 글, 1980, 171쪽.

극기란 존재론적 변환을 의미하기에 ‘여성 수난 서사’가 내포한 뜻을 ‘여성 수난과 극복/극기의 서사’라 규정하겠다.

2.1. 이중의 버려짐 상황과 자기 지키기: 딸에서 아내가 되는 과정

당금애기와 유화가 각각 결연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뤄지는 남성의 일방적인 관계 맺음과 이로 인해 여성이 겪는 수난을 확인 할 수 있다.15)

15) 결연과정에서 당금애기와 유화가 상대에게 마음을 열고 주체성을 보였다고 해석할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시준님과 해모수가 처음 이들에게 접근할 때 본래 의도를 숨기고 상대를 어려움에 빠트리는 접근 방식에서 관계의 일방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계획을 세우고, 상황 전체를 조망하면서 관계를 주도하는 것은 남성 인물이다.

남성이 결연 계획을 세우고, 상황 전체를 조망하면서 관계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관계의 일방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제석본풀이>에서 순 수한 당금애기는 자신과 하룻밤을 보내고자 하는 시준님의 의도를 눈치채 지 못해, 그의 계획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처럼 당금애기에게 .

접근하는 시준님의 행동에서 일방성을 찾을 수 있다. <주몽신화>에서 해모 수가 하백의 딸들을 유인한 후, 유화를 붙잡는 장면에서도 이런 일방성은 발견된다. 또한, 삼국유사에서는 유화가 금와왕의 별궁에 있을 때, 햇빛 이 계속 따라와 피했지만 결국 햇빛을 받아 잉태했다고 하는데, 햇빛이 태 양의 신 해모수를 상징한다면16) 유화는 원치 않은 관계를 맺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여성은 남성에게 버림받으면서 수난이 가중된다. <제석본풀이> 에서 시준님은 당금애기와 하룻밤 묵은 후 다음 날 떠났고, <주몽신화>에서 는 하백이 지략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모수는 유화를 버리고 홀로 떠났다. 주몽 역시 동부여에서 얻은 아내 예씨와 유리를 두고 고구려를 세 우기 위해 떠나면서 해모수가 유화를 떠난 것과 동일한 서사를 반복한다. 이후 가부장(家父長)은 가문을 욕되게 했다며 당금애기와 유화를 내쫓 아 죽이려 한다. <제석본풀이>에서 가부장은 양반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 며 당장 당금애기의 목을 쳐 죽이려 하거나 돌함에 가두거나 집 밖으로 내쫓는다. <주몽신화>에서 하백은 유화가 가문을 욕보였다며 유화의 입을 잡아당기어 입술이 석 자나 되게 하고, 우발수 가운데로 추방하였다. 하백 은 유화의 입술을 길게 만들어 말을 못 하도록 만드는데, 이는 여성의 목소 리를 소거하고 주체성을 박탈하는 폭력이다.17)

16) 해모수가 태양신으로서 갖는 면모는 다음 연구를 참고할 수 있다. 서대석, 한국신화의 연구, 집문당, 2001, 76-81쪽.

17) <주몽신화>에서 유화에게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의 모습은 다음 논문을 참고할 수 있다. 조현설, 「웅녀·유화 신화의 행방과 사회적 차별의 체계」, 구비문학연구 9, 한국구비문학 회, 1999. 최원오는 당금애기와 유화의 아버지가 딸들을 가문의 수치로 여겨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것을 두고, 모든 딸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생명의 근원이자 모태로서의 자아를 실현하려는 모성 의지를 제어하고, 처녀성을 관리하는 주체가 딸들 스스로가 아니라 아버 지, 넓게는 남성 혹은 남성 중심의 사회로 설정됨으로써 모성 의지를 제어하고 있음을 보 여준다고 하였다. 최원오, 「모성(母性)의 문화에 대한 신화적 담론: 모성의 기원과 원형」,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14,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7, 209쪽.

버려짐의 상황에서 여성은 주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저 항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시준님의 계획에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당금애기도 “중에 버릇 다 그러냐 중에 행실 다 그러냐”18)면서 시준님의 행동을 꾸짖거나 삼태(三胎)할 것이라는 시준님의 말에 분해한다.19) <주 몽신화>에서 유화는 입이 새의 부리처럼 길어져 말을 못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차별과 폭력의 상징인 부리를 역이용해 자신의 존재성을 표현하고, 다른 삶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20)

18) <양평본>, 352-353쪽; 358쪽; 360쪽.

19) 당금애기 그날 밤에 들은 소리 분한 마음 도무지 풀리지 않는 연고로 밥을 먹지 못하구 서 그대루 상을 물려내구 종일토록 생각하여 보아두 그 소리 들은 것이 도모지 분하여서 그 분함이 풀리지 않는 연고로 그 날은 진종일 궁금하게 지냈거날. <양평본>, 361쪽.

20) 김민수는 수신(水神)의 딸 유화가 강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땅 위에 올라와 빛의 힘을 받아 잉태하고, 새로운 생명을 출산함으로써 농경신격을 획득했다고 보았다. 유화는 물에서 땅으로 올라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 주몽을 출산하고 양육한다는 점에서 당금애기보 다 주체적이고 적극적이라고 평가하였다. 김민수, 「<주몽신화> 속 유화의 신격 획득 원리 와 자기 세계 확장의 힘」, 구비문학연구 50, 한국구비문학회, 2018, 76-80쪽.

여성이 원가족의 세계로부터 자 신을 분리하여 독립하는 것은, 딸로 살던 여성에게 존재론적인 변환을 요구 하며 폭력적이지만 당금애기와 유화는 자신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2.2. 출산과 양육의 고통과 생명 지키기: 어머니 되기 과정

당금애기와 유화의 서사는 남편이 부재한 상황에서 출산과 양육하는 수 난으로 이어진다. 당금애기의 서사는 열 달 동안 아이를 품는 동안 나타나 는 여성 몸의 변화를 감내하는 수난에 집중하며, 유화의 서사에서는 편견과 차별로 가득 찬 세상과 마주해 자녀를 양육하고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초점화되었다. 초점화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두 여성은 생명을 말 살하려는 힘에 맞서 생명의 살림과 순환으로 서사를 이끈다. <제석본풀이>에서 당금애기는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뤄진 임신 상 황을 외면하지 않는다. 당금애기는 자책하거나 시준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 를 고스란히 뱃속 생명에게 전가하거나 생명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포기할 수 있지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용기’21)를 보여준다.

21) 이경하, 앞의 글, 2008, 110쪽.

또한, 임신한 여성의 신체 변화와 감각이 집중적으로 묘사22)되면서 임신이 여성 의 몸과 관계되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임이 강조된다. 이를 통해 여성 이 나인 동시에 내가 아닌 존재[半他者]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강조된다. 이후, 당금애기가 돌함에 갇힌 동안 내린 흙비 돌비는 출산 과정에서 생 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통의 비유23)이며, 이 시간을 통해 한 개인이 타고난 본능과 어머니로서의 역할 사이의 힘겨운 조율을 하며 어머니 되기 의 고통을 겪는다.24) 당금애기는 ‘돌함에 갇혔다. 그래서 죽었다’로 이어지 는 인과관계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되는 전복의 드라마로 이끌며, 죽 음의 서사를 생명의 서사로 전환한다.25) 이 장면은 농경신화적 상상력이 투영된 것으로, 빛 한줄기 들지 않는 딱딱한 대지에 묻혀 있던 씨앗이 싹을 틔워 대지를 뚫고 자라는 모습이다.26) <주몽신화>에서 유화가 낳은 생명을 뭇 짐승이 보호하는데, 이는 유화 안에 내재된 생명성과 관련된다.27) 유화는 생명을 품어낼 뿐 아니라 양육 하여 독립시키며 동시에 생명의 가치를 전수하는데, 유화가 주몽에게 오곡 종자를 전해 생명의 씨앗이 순환되도록 하는 장면에서 부각된다. 여기서는 유화의 주체성이 돋보이며,28)

22) 한달 두달 피를 모와서 석 달만에는 입맛 굳힌다. 밥에는 빌내가 나고 물에는 흙내가 나 고 장에는 날장내 나고 찾는 거는 신 것만 찾네 뒷 동산에야 까칠 복상(거칠은 복숭아)을 말말이 따 오너라. 시금 털털 개살구도 말말이 따오나라. 얼마만침만 따다가 먹고 석달에 입맛 굳혀 다섯달에 반짐 걸어 일곱달에는 칠성 걸어야 아홉달에 구원받아 열달이 다 차 가니 앞 남산은 높아가고 뒷남산은 낮아간다. <김유선본>, 93쪽.

23) 박성은, 앞의 논문, 29쪽.

24) 강새미, 「여성의 내적 갈등과 자기통합적 치유 과정으로 본 <삼승할망본풀이> 연구」,  구비문학연구 61, 한국구비문학회, 2021.

25) 신동흔은 <제석본풀이>에서 하늘이 당금애기의 출산을 도와 산바라지를 하고 백학이 도 와줬다는 것을 당금애기 안에 깃든 신령한 힘, 생명성의 상징으로 해석하였다. 신동흔,  살아있는 한국 신화, 한겨레출판, 2014, 92-93쪽.

26) 서대석, 한국신화의 연구, 집문당, 2001, 268쪽; 최원오, 당금애기·바리데기, 현암사, 2010, 134쪽.

27) 이 장면은 <당금애기>에서 학을 비롯한 생명체들이 당금애기의 출산을 돕고, 생명을 돌 보는 것과 연결된다. 서대석, 앞의 글, 1980, 97쪽.

28) 최원오, 「곡물 및 농경 관련 신화에 나타난 성적 우위의 양상과 그 의미 -<주몽신화>, <세경본풀이>, <목도령형 홍수신화>를 중심으로-」, 한중인문학연구 19, 한중인문학회, 2006, 6쪽.

유화의 도움으로 오곡 종자를 얻은 주몽은 활을 쏘아 생명을 죽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을 다시 살리는 능력까지 획득한다. 유화는 주몽에게 수렵사회나 유목사회에서 중시되는 능력에 더 해 농경사회에서 필요한 능력까지 전수하는 것이다. 유화가 자녀를 독립시키는 미덕을 보여준다면 당금애기도 자기실현은 물론 삼형제의 이름을 짓고 독립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열 달을 품고 산 고 속에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자녀의 이름을 짓을 권리는 박탈당하고,29) 이름 짓는 권한은 가부장에게 귀속된다. 하지만 당금애기는 이름 짓는 권리 를 찾고 주체성을 확보하며 삼형제를 개별 존재로 인정한다.30) 시준님은 당금애기의 이름 짓는 실력을 본 후 현모양처가 아닌 여자 중 최고 선비란 뜻의 ‘여중군자(女中君子)’(<양평본>, 373쪽)라 칭송하며 당금애기의 뛰어 남을 인정하는데, 여기서 당금애기의 능력과 주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당금애기와 유화는 자녀가 아버지를 찾거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러 떠 날 때 적극 지지한다. 자녀의 떠남은 어머니에게 의존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육체적·심리적으로 분리-독립하는 과정으로, 자녀는 물론 부모에게도 필 요한 과업이다. 두 여성은 자녀에게 아버지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머뭇 거리는 자녀를 격려한다. 당금애기와 유화가 보여주는 떠나보냄의 미덕31) 은 두 여성을 어머니에서 신으로 좌정케 하는 힘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29) 4장의 작품 속 여성도 아이의 이름 짓는 권리를 획득한다. (시)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자녀 이름을 짓는 화소는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내는 기능을 하며 현대서사까지 이어진다.

30) 최원오는 <당금애기 양평본>의 이름짓기 화소에는 생명의 원천과 비밀을 파악하는 능력 으로서의 모성의 이성적 요소가 담겨 있다고 하였다. 최원오, 앞의 논문(2007), 204-206쪽.

31) 유화의 주몽 양육에 대한 분석은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김민수, 앞의 논문, 79-85쪽; 박 재인, 「<주몽신화>의 ‘유화’에 대한 북한의 관점과 ‘양육(養育)’의 덕목에 대한 문학치료학 적 고찰」, 겨레어문학 49, 겨레어문학회, 2012.

두 여성은 양육 과정에서 자녀와 연결된 상징적 탯줄을 끊고 자녀를 독립 시키면서 스스로를 어머니의 역할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실현하는 삶으로 나아간다. 또한, 당금애기와 유화의 서사가 보여준 생명성과 돌봄은 혈연 중심의 자식에게 한정되지 않고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의 기원과 돌봄으로까지 확장된다. 딸, 아내, 어머니의 역할에 갇혀 사 는 게 아닌 신으로 좌정, 자신의 영역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소리 없이 분투하는 당금애기와 유화의 모습을 통해서 이들의 서사를 향유하는 사람들 역시 진짜 자기의 삶, 자아실현의 삶을 상상하였을 것이다. 3. 고전소설에 나타난 여성 수난 서사의 변주 조선 시대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삼종지도(三從之道)로 규정되어, 여성 자체가 아닌 딸, 아내, 어머니로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3장에서는 고 전소설을 중심으로 여성이 딸에서 아내로, 아내에서 어머니가 되는 과정에 서 여성 수난 서사의 원형이 어떻게 이어지고 변하는지 살펴보겠다.

3.1. 중층화된 갈등의 원인과 균열의 움직임

고전소설에서 여성이 부모의 허락 없이 남성을 만나는 모습은 등장하지 만 혼전 임신이나 홀로 출산해 양육하는 장면은 찾기 어렵다. 가부장제가 강화된 조선 시기, 혼전 임신이야말로 가문의 명예를 실추하는 수치로 여겨 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화홍련전>의 계모가 전처 자식을 죽이기 위해 혼전 임신과 낙태 사건을 꾸민 것도 여성의 정절 훼손이야말로 부연 설명 을 필요치 않기 때문이며, 장화의 아버지도 ‘가문의 수치’를 이유로 자식을 내쫓아 죽이려 한다. 비록 <장화홍련전>은 딸에서 아내, 어머니가 되는 과 정을 그린 소설은 아니지만 조선 시대에 향유된 작품 중 혼전 임신한 여성 을 찾기 어려운 이유를 짐작케 한다. <주몽신화>에서 입술이 늘어나 말할 수 없는 유화의 침묵이 조선 전반을 지배한 것이다.32) 142 구비문학연구 제63집 (2021. 12. 31.) 당금애기와 유화가 부모 몰래 결연한 이유로 겪는 수난이, 고전소설에서 는 딸의 주체적 삶을 부정하고 맹목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부권의 횡포와 자신의 존재성과 주체성을 입증하려는 자녀의 갈등으로 변주된다. <이생규 장전>, <하생기우전>, <운영전>, <최척전>, <심생전> 등 가부장의 폭력에 목숨 걸고 자신이 선택한 남성과 결연을 요구하는 여성이 다수 존재한다. 담촌 선생은 여성 수난 서사 원형을 계승한 고전소설로 <숙향전>, <춘향 전>에 주목했는데, 숙향과 춘향도 남성 인물과 혼인하기까지 시련을 겪는 다. 두 작품에서는 신분 차이, 열(烈) 등 다양한 가치의 갈등이 중층적으로 얽히며 여성 수난이 심화된다. <숙향전>에서 숙향은 본래 양반 가문의 자녀 지만 전란으로 부모를 잃고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양반집 자제 이선과 결연하며, 이 과정에 이선의 아버지 이상서는 숙향과 이선이 정혼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숙향을 죽이려고 한다. 그런데 이상서가, 숙향에게 적 극적으로 구애한 자기 아들이나 혼례를 주선한 누이를 문제 삼지 않고 숙 향에게만 죄를 묻는 데서 갈등의 근본 원인은 ‘불고이취(不告而娶)’뿐 아니 라 숙향과 이선의 현격한 신분 차이에 있음을 알 수 있다.33)

또한, 춘향은 스스로 여염집 여성의 신분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기생의 정체성으로 자신 을 대하는 인물과 신분을 둘러싼 갈등이 중첩되면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 를 넘긴다.34) 고전소설에서는 생물학적 아버지와의 갈등에 더해 신분, 열 이념 등 상징적 아버지의 출현으로 수난이 중층화됨을 발견할 수 있다. 고전소설 중에도 남성의 일방적인 관계 맺음이 부각된 작품도 있다.

 

32)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인질로 잡혀간 많은 여성이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 들은 정절이 훼손된 존재(혹은 훼손되었다고 믿어지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들의 존재 그 리고 목소리는 공식 기록, 허구 서사나 구비전승에서도 배제되었다. 이명현, 「영상서사에 재현된 환향녀 원귀의 양상과 의미」, 어문논집 69, 중앙어문학회, 2017.

33) 이상구, 「<숙향전>의 현실적 성격」, 고전문학연구 6, 한국고전문학회, 1991.

34) 이상일, 「춘향의 신분 정체성을 통해 본 이몽룡의 인물 형상」, 고전문학과교육 22, 한 국고전문학교육학회, 2011.

전 근대사회 여성의 애환을 그렸다고 평가35)받는 <숙영낭자전>에서 숙영낭자는 남성의 자기 중심성 때문에 고난이 심화 된다.36) 또한, 직접적·구조 적·문화적 폭력이 다층적으로 등장하는 한글장편소설에서는 남성이 여성 에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다. <현씨양웅쌍린기>에서 현수문이 윤혜빙을 혼인 전 겁탈하는 것으로 관계의 일방성이 구체화된다. 몰락 사족으로 남의 집 시녀로 일하던 윤혜빙은 현수문의 접근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못했고, 현수문의 겁탈에 죽을 힘을 다해 저지하나 힘에 부쳐 결국 실절한다.37) 여성의 가문과 남성의 가문 차이가 결연과정에서 남성의 폭력성을 정당화 하는 것이다.38)

35) 류호열, 「<숙영낭자전> 서사 연구: 설화·소설·판소리·서사민요의 장르적 변화를 중심으 로」, 건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36) 손영은, 「잘못된 사랑이 낳은 비극 -<숙영낭자전>의 백선군과 숙영낭자」, 신동흔·서사와 치료연구모임, 신 로맨스의 탄생, 위즈덤하우스, 2016.

37) 여자는 전혀 모르고 앉았더니 문득 신 끄는 소리 나거늘, 여자가 경혹(驚惑)하더니 지게 (지게문) 열리는 곳에 일위 남자가 완완히 들어오니 여자가 대경실색하여 급히 피고자 할 즈음에, 학사가 붙들고 소리를 엄히 하여 왈, “네 근본을 들으니 노변(路邊) 걸인으로 설 구(嫗)의 양휵한 바가 되어 이 댁 낭저(행랑)에 있다 하거늘 감히 어른을 모르는다? 그 죄 무엇에 가하리오? 모로미 빨리 나와 관(冠)을 벗기고 옷을 벗을지어다.” (…) 생이 광 수(廣袖)로 몸을 후리쳐 안고 (…) 언파(言罷)에 급히 핍박하니 윤씨 비록 죽기로써 물리 치나 어찌 장성 남자를 당하리오. 이윤석·이다원 교주, 현씨양웅쌍린기 1, 경인문화사, 2006, 112-114쪽.

38) 김서윤, 「<현씨양웅쌍린기>에 나타난 여성 인물의 신분 위상과 부부갈등」, 한국학 38-1,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주몽신화>에서도 하백이 해모수와 변신술 경쟁을 벌이지 만 지고, 이후 해모수가 홀로 하늘로 올라갔을 때도 하백은 모든 책임을 유화에게 묻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짓는 점에서 권력의 불균형이 여성을 향한 폭력에 침묵하게 함을 알 수 있다. 고전소설에서 여성 수난은 중층화되지만 이들은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공고한 권력에 균열을 야기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주체성을 박탈당한 유화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성을 표현했듯이 겁탈 사건 이후로 도 윤혜빙은 현수문에게 종속되는 삶에 강렬히 저항한다. 또한, 현수문이 윤혜빙을 첩으로 취하려 혼례를 진행하자 윤혜빙은 혼례만 치른 후 천하 흉물인 귀형녀를 자기 대신 신방에 들여보내는 등 계교를 내어 현수문을 속이고 망신준다. 윤혜빙은 계략을 써서 수년간 도주와 은신을 반복하며 현수문의 강압 행위에 저항하며,39) 현수문과 끝까지 불화한다.

39) 결연과정에서 남성의 일방적 관계 맺음에 상대를 속이며 저항하는 사례는 <구운몽>의 정경패에게서도 단초를 발견할 수 있는데, 상층 여성인 정경패가 속이는 것과 몰락 사족 윤혜빙이 상대를 속이며 저항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생물학적 아버지에 더해 상징적 아버지의 출현으로 인해 고전소설에서 여성은 다양한 갈등과 수난을 겪고, 남성과 여성의 신분 차이는 남성이 여성의 겁탈을 쉽게 한다. 하지만 고전소설의 여성은 중층화된 수난의 공고 함에 맞서 균열을 야기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폭력과 수난에 대응 하는 여성들의 주체적인 행보 역시 다양해진다. 비록 이들의 저항이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봉합된다 할지라도 이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통해서 당대 사회의 모순을 노출하는 데 의의가 있다.

3.2. 열녀·효부의 이상과 자아실현 욕망의 대립

조선 시대 여성이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과정에서 겪는 수난의 양상을 살필 때, 모성에 주목하게 된다. 모성원형은 대립 속성을 가지며, 이 대립 속성은 사회적 환경과 가치 변화에 따라 한쪽이 강조된다.40)

40) 최원오, 앞의 논문, 2007, 185쪽.

가부장제가 강화되는 사회에서 남편에 대한 여성의 도리, 자녀에 대한 돌봄 등 모성의 긍정적인 측면은 강조되고, 부정적인 측면은 혐오되면서 모성은 여성을 억 압하는 수단이 되었다. 아내로서의 도리,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거부한 ‘나 쁜 아내’, ‘나쁜 엄마’는 포용되지 못하고, 징벌당하는 서사가 출현한다. 예 를 들어 <사씨남정기>의 교씨, 가정소설에 등장하는 계모 등은 조선 시대 전형화된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서 일탈한 여성으로 징치 된다. 열녀·효 부는 숭배의 대상이 되고, 그렇지 않은 여성은 혐오 대상으로 이분화되며, 여성의 분할지배는 가부장 질서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한 수단이었다. 고전소설에서 어머니를 중심인물로 설정한 작품은 찾기 힘들며, 등장하더라도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소홀하게 다뤄지기 때문에 어머니 되 기를 전면에서 다룬 작품을 찾기 어렵다.41) 또한, 부덕(婦德)을 실천하는 아내상, 희생적인 어머니상이 강조되면서 여성은 가문 유지를 위한 존재로 대상화된다.42) 하지만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아내·어머니상에서 일탈해 자신이 욕망하는 삶을 살고자 한 여성이 출현하였으며, 이러한 욕망을 가진 여성이 징치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하기에 이 부분에 주목해 당금애기와 유화가 보여준 어머니 되기 서사의 연속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앞서 <현씨양웅쌍린기>의 현수문과 윤혜빙의 관계에 주목했는데, 아내 와 어머니 되기 과정에서의 수난은 <현씨양웅쌍린기>의 또 다른 부부인 현경문과 주여교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제석본풀이>와 <주몽신화>에 서 당금애기와 유화가 결연과정에서 겪는 수난이 윤혜빙의 삶으로 이어졌 다면 어머니 되기 과정에서 겪는 수난은 주여교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현경문과 주여교는 불화로 10년 이상 부부관계를 맺지 않는다. 현경문은 주여교의 미색이 속세인(俗世人) 같지 않음을 꺼려서 멀리하고, 주여교는 남편이 자기를 냉대하며 친정 부모와도 갈등하자 자신과 친정에 대한 인격 적이고 온당한 대우를 요구한다. 오해가 풀린 현경문은 주여교에게 동침을 요구하지만 주여교는 계속 거부하며43) 인격적으로 자신과 친정을 대하지 않는 현경문의 아내 자리를 포기하려 한다.

41) 정하영, 「고소설에 나타난 모성상」,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4, 한국고성여성문학회, 2002, 223쪽. 42) 이지하, 「여성주체적 소설과 모성이데올로기의 파기」,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9, 한국 고전여성문학회, 2004, 139쪽.

43) 설파(說罷)에 나아가 손을 이끌어 침석에 나아가니, 소저가 백 가지로 거절하나 생(生) 이 이미 입지(立志)를 휘어 금야(今夜)는 새울 뜻이 없는지라. 저의 착급(着急)히 서두는 거동 보고 간간이 함소(含笑)하며 자못 핍박하니, 소저가 죽기로써 거절하여 의상이 만편 (萬片)이나 미어지고 운환(雲鬟)이 어지러우되, 기운이 점점 강렬하여 옥모(玉貌)가 찬 서리 같으니, 생(生)이 점점 저를 못 이김이 아니로되 소저 민첩히 방비(防備)함이 미처 손을 놀리지 못하니, 심하(心下)에 대로(大怒)하여 정히 급히 핍박하더니,(…) 이윤석·이 다원 교주, 현씨양웅쌍린기 2, 경인문화사, 2006, 77쪽.

주여교는 남편과 현부(玄府)에 귀속되기보다는 자신의 부모와 가문에 애착을 보이는데, 이는 그녀가 자신을 독립체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결국 현경문은 강제로 주여교와 부부관계를 맺고,44) 이후에도 주여교를 다시 친압(親狎)하자 주여교는 크게 화를 내며 저항한다. 또한, 임심 사실 을 안 주여교는 ‘참괴(慙愧)함이 비길 데 없어 마음에 죄지은 이’45) 같다고 생각한다. 남편에 대한 애정 결여와 자신의 의사를 무시한 강제 동침에 대 한 분노가 새 생명의 잉태를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주여교는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만 아들에 대한 주여교의 모습은 이상적인 어머니상과는 거리가 멀다. 삼자일녀(三子一女)를 낳은 후에도 자애롭고 따뜻한 어머니 로서 자식들을 보살피는 모습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엄하고 냉정한 어 머니로서의 모습만 언급된다.46)

44) 소저가 생(生)이 자가(自家) 모녀(母女)를 의연(依然)히 투부(妬婦)로 지점(指點)하던 일과 그 은은히 비웃던 일이 맺히고 얽혔는지라. 그 핍박하여 의법(依法)한 부부로 앎을 보매 이에 분기(憤氣) 돌돌(咄咄)하고 저에게 속은 줄을 한(恨)하여 죽기로 물리치나, 생 (生)의 강장지력(强壯之力)이 구정(九鼎)을 쉬 여기니, 주소저가 태산(泰山)을 끼고 북해 (北海)를 넘뒤는 힘은 오히려 쉽다 하려니와 일침지상(一寢之上)에 현총재(冢宰) 어찌 물리치리오. 위의 책, 172쪽.

45) 위의 책, 236쪽. 46) 이지하, 앞의 논문, 2004, 144쪽.

어머니이기 이전에 자아실현을 원하는 주여교는 남장을 하고 전장을 누 비던 운유자(雲遊子)로서의 삶을 마음에 품고 있다. 현경문의 아내가 아니 라 구름처럼 다니며 산 경험이 있기에 주여교는 여교(女敎)에 따라 사는 열녀·효부, 어머니 자리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현모양처로서의 삶을 거부 한다. 주여교처럼 열녀·효부라는 사회적 이상과 자아실현을 바라는 주체의 욕망이 갈등하는 모습은 조선 후기 여성영웅소설에서도 발견된다. 박씨부 인, 홍계월 등의 여성은 가정에 매이기보다는 남성과 대등하거나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국가 문제를 해결하는 성취를 보여준다. 특히, <옥루몽>에 서 강남홍은 스스로 평생 지기(知己)로서 양창곡을 선택하지만 그에게 종 속되어 첩의 자리나 어머니의 자리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와 동반이 될 여성을 직접 천거하거나 전장을 누비며 자신의 꿈을 펼쳐나간다.47) 강남홍은 여성임이 드러난 뒤에도 그 직책을 유지하며, 혼인하여 자식을 낳은 뒤에도 전장에 출전하여, 국가의 안위를 돌보는 역할을 이어간다.48) 가부장제가 강화되는 시기 열녀·효부의 모습을 한 어머니상이 비대해지 면서 여성의 자아는 축소되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 출현한 고전소설 속 자 아실현을 욕망하는 주체적 여성의 모습은 이상화된 아내, 어머니상에 균열 을 야기하였다. 가부장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아실현의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아내와 어머니 되기에 회의적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모성신 화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출산과 양육을 비롯한 돌봄과 살림을 수행 하면서 구축해온 지식과 문화 등을 모두 외면하거나 모성을 단순히 가부장 제의 은밀한 조력자로 치부하는 경향이 두드려졌다.49)

47) 서대석, 「조선의 로망, 21세기의 로망」, 서대석 편, 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1, 휴머 니스트, 2008, 54-69쪽.

48) 신동흔, 「단절과 고립의 시대, 고전문학에서 찾는 연결과 소통의 길 - 고소설 작품서사와 여성의 자기서사를 중심으로」, 한국고전연구 53, 한국고전연구학회, 2021, 35쪽.

49) 한길연, 「장편고전소설에 나타나는 어머니의 존재방식과 모성」,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14,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07, 225-226쪽. 한길연은 이상적인 모성상이 가부장적 체제 유 지에 공헌해왔음을 인정하지만 모성의 부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가려진 모성 의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내 함께 다룰 때 모성에 대한 온전한 분석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대표적으로 <화정선행록>의 충효혜가 ‘자신에 대한 주체적 자각 속에서 자식에 대해 초연 할 수 있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였다.

이 과정에서 모성신화 이면에 존재하는 어머니 ‘되기’의 참의미, 당금애기와 유화가 보여준 생 명의 돌봄, 모성의 사회화 등과 연결된 자기실현의 의미가 희석되었다. 당 금애기와 유화의 원형적 서사에서 여성의 몸은 생명성의 상징으로, 나아가 신성한 존재로 추앙되었으나 조선시대의 유교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몸 은 통제되어 오직 가계 계승자인 아들을 낳아야 하는 몸으로 전락하였다. 또한 당금애기가 삼형제의 이름을 지어줄 때 보여준 주체성과 유화가 주몽 이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격려하는 호연(浩然)한 양육 방식은, 가 문의 후계자를 낳아 조상의 유업을 빛나게 해줄 인물로 키우는 데 헌신적인 모성으로 축소되었다. 신화의 원형 서사에서 보듯 딸/아내/어머니 ‘되 기’의 수난과정에서 겪는 풍부한 주체적 여성상은 사라지고, 여성은 유교적 가부장 질서의 도식 아래 정형화된 딸/아내/어머니의 억압적 ‘틀’에 가둬졌 다. 요컨대 당금애기와 유화의 서사에서 드러나듯 자녀를 독립적으로 양육 하면서도 한 개인으로서 자아실현하는 삶이란 조선 시대 여성의 삶에서 봉쇄되어버렸거나 존재하더라도 쉽지 않음을 살펴볼 수 있다. <현씨양웅쌍린기>를 비롯한 여성영웅소설에서는 순종적인 아내상과 희 생적인 모성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아실현을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딸/아내 /어머니 되기의 고정되고 정형화된 틀을 깨버린다는 점은 파격적이다. 그 런 점에서 억압적 가부장 사회에서나마 신화의 원형적 서사를 어느 정도 이어받은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신화적 서사에 담긴 주체적 여성 상의 풍부하고 입체적 모습(출산과 타자성의 습득과 생명의 돌봄, 창조적 인물로 자녀 키우기 등)은 사라지고, 개인의 자아실현만 부각된다는 점에 서 온전한 의미에서 원형적 서사의 계보는 약화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4. 현대서사에서 재조명되는 여성 수난 서사의 신화적 원형

본고에서는 여성 삶의 변곡점이자 존재론적 변환을 요구하는 두 층위의 여성 수난 서사가 모두 나타나며 당금애기와 유화가 어머니 되기 과정에서 보여준 생명성, 돌봄의 생명력, 모성의 사회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작품 으로 소재원의 소설 <이별이 떠났다>(2018)(이하, <이떠>)50)와 김수현의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2008)(이하, <엄뿔>)51)를 선정해서 분석하겠다.

50) 소재원의 소설 <이별이 떠났다>는 네이버웹소설로 연재되며 평점 9.9점으로 인기를 얻어 책으로 출판되었고, 이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https://novel.naver.com/webnovel/list?n ovelId=614745 본고에서는 소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인용하겠다. 소재원, 이별이 떠났 다, 새잎, 2018. 소설은 제1부 두 여자 이야기, 제2부 두 남자 이야기, 제3부 이별이 떠났 다로 구성되었다. 드라마는 소설과 서사의 기본 줄기는 같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다른데 달라지는 지점에서 인용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드라마의 장면도 언급하겠다.

51) <엄마가 뿔났다>는 KBS2에서 2008.02.02.~2008.09.28. 동안 66부작으로 방송되었다. 시 청률 40%를 돌파하며 국민 드라마로 불린 <엄뿔>은 한평생 전형적인 현모양처로 산 한자 가 1년간 휴가를 달라며 가출 선언을 하면서 이름을 잃어버린 존재의 자아 찾기 여정을 보여준다. 극의 전반부에서는 3세대인 1남 2녀의 혼인을 둘러싼 어머니 한자와 자녀 사이 갈등이 차례로 펼쳐지고, 자녀의 혼인 이후는 사돈집, 이혼남 사위의 딸 이야기 등으로 확 장되면서 어머니 스스로 자신이 이름을 잃어버리고 살았음을 자각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3세대에 해당하는 세 자녀의 혼인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든 극의 후반부에서는 자녀와의 관계를 재정립한 한자의 자아 찾기가 주요 갈등 요소로 등장한다.

<이떠>는 이중으로 버림받는 혼전 임신 서사와 함께 어머니 역할에 갇힌 삶을 내려놓음으로써 진정한 어머니 되기 과정을 보여주며, <엄뿔>은 각 세대별 여성의 모습을 통해 혼인 전후 여성의 전생애사적 수난을 한 자리 에서 살펴볼 수 있다.

4.1. 혼전 임신 갈등과 여성의 당당한 선택

<이떠>는 임신한 20대 초반 정효가 아이를 지우자는 연인의 제안을 거절 한 뒤, 연인의 엄마 영희 집으로 찾아가 두 여성이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 제1부에서는 4주~21주까지 정효의 임신 주수를 기 준으로 정효 몸의 변화는 물론 정효와 영희의 관계 변화도 보여준다. <이떠>에서도 혼전 결연한 여성이 이중으로 버림받는다. 정효가 연인 민 수에게 임신 사실을 말하자 민수는 여러 이유를 들어 낙태를 제안하는데, 낙태죄 폐지의 찬반입장과는 별개로 민수는 임신, 낙태, 출산을 겪는 여성 의 몸과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다. 민수가 당금 애기나 유화와 결연한 남성들처럼 떠나지 않지만 책임을 회피하고, 계획하 지 않았던 난감한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점에서 유사하다. 여기서 결연 과정에서 남성의 도주는 상황 회피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정효 아버지 수철은 끔찍한 집착과 폭력을 보이는 인물로, 정효는 아버지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면 인정사정 보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영희를 찾는다. 혼전 임신사실을 밝히고는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는 정효의 상황은 당금애기와 유화 가 버림받는 서사를 재현한다.

그런데 당금애기와 유화와는 다르게 정효는 내쫓기기 전에 아이를 안전 하게 낳을 수 있는 곳을 찾아 스스로 집을 나온다. 당금애기와 유화가 이중 으로 버림받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고 지키기 위해 인내했 다면 정효는 자신이 먼저 버림으로써 상황을 주도한다. 정효는 민수와 헤어 져 결혼하지 않더라도 아이를 낳아 키울 결정을 하고, 출산 및 산후조리는 물론 이후 경제활동을 할 동안 영희에게 아이를 맡아달라고 할 계획까지 세운다. 정효는 자기 자신과 생명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주체적 선택을 하고 계획을 세워 행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수철이 정효의 임신 사실 을 알고 분노할 때도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안아달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엄뿔>에서도 여성이 혼전 임신을 하고, 남성이 상황을 회피하는 무책임 한 태도를 보인다. 한자의 아들 영일의 연인 미연이 만삭의 몸으로 찾아오는 데, 영일은 미연의 임신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출산일이 코앞에 올 때까지 문제를 해결 못 하는 우유부단함을 보여준다. 이에 미연은 만삭으로 영일의 집에 찾아오는데, 혼전 임신한 미연이 겪은 고난을 영일의 고모 이석의 발화를 통해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석: 아휴, 시상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을꼬. 배는 남산만 해지는디, 처 녀가 애를 뱄으니. 부모 형제 누구 하나 붙잡고 얘기할, 하소연 할 사람이 있나. 기냥 오늘이나 내일이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 빌어먹을 놈만 쳐 다보면서. 얼마나 애가 타고 복장이 터졌을꼬. 미연: 그 사연을 어떻게 이루다 말로 풀어놓을 수가 있겠어요. (...) 이석: 그래 알아 그래 알아, (...) 그래, 그래 나도 안다, 나도 그랬네. 나도 그랬어. <엄뿔>, 1화

영일의 부모를 만나길 기다리는 동안 미연은 혼자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 며 숨죽여 우는데, 이 대목에서 미연이 배가 부르는 동안, 영일의 집에 오는 결정을 하기까지, 또 오는 동안, 기다리는 그 순간에도 얼마나 속앓이를 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미연이 겪는 수난은 미연만의 것이 아님을 영일의 고모 이석의 공감적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바람난 남편과 이혼 후 홀로 자식을 키우며 사는 이석 역시 결연과정에서 상대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마음고생을 했고, 그러하기에 미연의 눈물에 함께 울 수 있다. <이떠>에서 임신한 상태로 영희를 찾아간 정효의 용기도 대단하지만 만삭의 몸으로 본인은 물론 생명체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영일의 집을 찾은 미연의 결 정 역시 용기없이 이뤄질 수 없는 선택이다. 수난 상황에서 미연은 ‘아기 가져 배부른 건 흉이 아니라’(1화)며 자신이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정효와 미연은 당금애기와 유화처럼 부모의 허락 없이 남성과 결연을 하 고 혼전 임신을 하는데, 남성들은 여성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 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하거나 문제 상황을 회피한다. 이 상황은 당금애기와 유화가 결연과정에서 남성의 일방적인 접근과 버림 으로 인해 수난을 겪는 것과 유사하다. 문제 상황에 홀로 버려졌음에도 불구 하고 당금애기와 유화의 서사를 이어받은 정효와 미연은 이를 현대에 맞게 강화시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하고자 하는 당돌함을 보여준다.

4.2. 이름을 잃어버린 여성의 이름 찾기

<이떠>에서 영희는 남편과 별거했지만 경제적 이유로 이혼은 거부한 채, 허울뿐인 아내와 엄마로 살고 있다. 영희는 엄마로 살기 위해 많은 걸 포기 했지만, 돌아오는 건 상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세상과 단절하였다. 영희 가 아내, 그리고 엄마를 선택하면서 포기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 이름과 꿈이다. 그렇기에 소설 1부 내내 영희는 이름 없이 3인칭 ‘그녀’로 호명된다. 영희가 자신의 이름을 묻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 대신 누구누구의 엄마라 고 대답하고, 이름을 물은 사람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장면에서 엄마가 이름을 잃어버렸음을 알 수 있다.

정효에게서 과거 자신을 발견한 영희는 정효만큼은 자신의 길을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라며 정효에게 아기를 낳은 후 떠나라고 한다. 이는 영희가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고 정효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소망과 꿈을 투사하는 것이다. 이에 정효는 영희에게 아내의 꿈도 엄마의 꿈도 가족의 꿈도 아니라 ‘나만의 꿈’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름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52) 정효와 영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을 때 대응 양 상과 어머니 되기에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정효는 자신을 지키며 어머니 되기의 궤도에 오르며,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더라도 나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영희는 자신의 꿈은 포기하고, 남편과 아들에게 몰두하 였다. 이런 영희는 정효와 동거하면서 이름을 찾을 용기를 갖는다. 영희는 “서.영.희”라는 이름을 되찾는데, 영희가 이혼을 안 한 이유에는, 남편과 남편 내연녀에 대한 복수심, 경제적 원인도 있겠지만 허울뿐인 아 내, 엄마의 자리라 할지라도 이를 완전히 내던진 후 진짜 나를 마주할 자신 이 없는 것도 있다. 하지만 정효의 도움으로 자신을 신뢰하게 된 영희는 남편에게 “우리 이.혼.하.자.”(247쪽)라며 어머니의 자리를 내려놓고, 역설 적이게 정효라는 비(非)혈연 존재의 어머니 되기 과정에 오른다.53)

52) “좋은 엄마와 좋은 아내가 되기 전에 나만의 꿈이 있어야 해요. 가족에게 저당 잡힌 인 생으로 가족이 분열되면 무너지는 꿈은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 움직여요. 그런 꿈은 꿈이 아니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이름을 찾아야 해요. 내가 정효이기에 꿀 수 있는 꿈이 있어요. 엄마라면 꾸지 못할 꿈들이 분명히 존재하죠. 또한 정효가 없었다면 아기도 없어요. 아기 가 있어서 정효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엄마. 엄마의 이름을 찾아요. (…) 내가 실패 했을 때보다 자식이 실패하고 남편이 실패했을 때의 무너짐이 더 커져 버렸어요. 엄마는 알고 있기에 그래요. 무능하다는 것을. 무능한 인생의 여자라는 것을. 이제 숨지 마세요. 엄마라는 수식을 버리세요. 엄마는 이제 이름을 찾아야 해요.” <이떠>, 182-184쪽.

53) 소설에서는 이름 찾기 과정에서 영희가 겪는 수난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지 않지만 드라 마에서는 영희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꿈을 갖는 과정, 그리고 취업을 한 영희의 활약이 그려지면서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한 모습이 서사의 큰 줄기를 차지한다. 한 예로, 영희가 낡은 노트북을 꺼내 이력서를 적어 내려갔지만, 결혼 이전의 화려한 이력에 비해 엄마가 된 이후에는 어떤 이력도 없다는 것에 낙담한다. 하지만 정효는 “엄마를 통해, 희망을 갖 고 싶어요. 정효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엄마라는 이름이 남는 삶이 아니라는 거 엄마를 통 해 보고 싶어요.”라며 든든한 지지를 보냈다.

영희는 정효를 친딸처럼 보살피는 과정에서 자신을 회복하며 새로운 인 생을 살고자 하는데, 여기서 본인을 지키며 생명을 품는 정효의 모습이 타 인도 변하게 함을 알 수 있다. 정효 역시 난산을 겪으면서 자신을 낳고 떠난 친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된다. 작가에 따르면, ‘이별이 떠났다’는 제목 은 여성 스스로 자신에게 온 고난을 극복하고 이를 떨쳐낸다는 뜻이다.54) 잉태와 출산을 통해 어머니 되기로 이어지는 정효의 시간과 아내, 어머니의 자리에서 벗어나 나를 되찾는 영희의 시간을 통해 여성의 자아실현을 동반 한 어머니 되기의 여정을 체험할 수 있다. <이떠>는 딸/아내/어머니의 고정된 틀에 안주하는 것도, 딸/아내/어머 니임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라, 딸/아내/어머니 ‘되기’의 수난과정에서 여성 주체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이 점은 당금애기와 유화의 원형적 서사와 닮았 다. 이름 찾기란 여성 삶의 주체성 회복 혹은 자아실현의 꿈이다. 원형 서사 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자아실현의 꿈 찾기가 현대서사에서는 한 개인이 아닌 동일 수난을 공유한 여성의 공감과 연대로 확장되었다. 정효와 영희의 상호 격려와 자신을 떠난 엄마에 대한 정효의 이해가 그것을 보여준다. 혼전 임신과 미혼모 서사가 흔해지면서 이들의 최종 선택이 ‘‘부-자-모’ 로 구성된 혈연 중심의 가족 이데올로기를 재확인시키는 작품’55)도 있다.

54) 이진욱, <생명을 낳든 포기하든 엄마가 택할 인생이다>, 《노컷뉴스》, 2018.06.20. http:/ /www.nocutnews.co.kr/news/4987824

55) 이경하, 앞의 글, 2008, 114쪽.

 

하지만 <이떠>에서는 혈연 중심의 가족 이데올로기를 더욱 공고화하는 게 아닌 동일 수난과 고통을 공유하는 여성 간의 연대를 보여주며, 새로운 가 족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는 어머니가 갖고 있는 생명성, 돌봄의 덕목이 혈연을 넘어서 타인에 대한 이해, 돌봄, 배려로 나아가며 사회적 차원의 어머니 되기를 보여준 것이다. <엄뿔>에서 한자는 25살에 결혼해 자녀 셋을 낳아 키우며 자신에게 맡겨 진 아내, 어머니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어머니상을 재현하는 듯하지만 62세생일 선물로 1년 휴가를 요구할 만큼 자아 찾기에 몰두한다. 한자의 남편 일석은 근면성실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권위적인 가부장 모습을 탈피 한 인물로 <제석본풀이>, <주몽신화>, <이떠>에서 살펴본 일방적이거나 회 피적인 남성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직업 특성으로 외지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고, 주변인의 요청을 외면하지 못해 큰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한 적 이 수두룩하다. 때문에 한자는 자녀 양육은 물론 시부모 봉양, 시동생 뒷바 라지까지 모두 맡아 애면글면했으며 자신의 이름 대신 엄마, 당신, 장녀 이름인 ‘영수야’라고 불리며 ‘김한자’라는 이름 석자를 잃어버렸다. 한자의 여고 동창이자 시누이인 이석을 통해서는 남편이 부재한 상황에 서 삯바느질로 돈을 벌어 양육을 책임진 여성의 삶을 볼 수 있다. 비록 한자 는 남편은 있지만 임신과 양육 과정에서 짊어져야 하는 책임은 오롯이 한 자의 것이었다. 여성에게 있어서 출산과 양육 과정에서 남편의 부재는 실제 일 수 있지만 심리적·정신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성은 임신 중 몸의 변화를 홀로 감내해야 하며, 실제 옆에 남편이 있다 하더라 출산의 위험과 고통 역시 남편과 나눌 수 없으며, 양육의 고단함도 여성의 몫이다. 한자는 잃어버린 이름을 자신의 대리인이자 자존심인 장녀 영수를 통해 서 되찾고자 하지만 영수는 9살짜리 딸이 있는 이혼남과 결혼하며 끝내 그 기대를 무너뜨린다. 삼남매를 차례로 결혼시키면서 자식이 바람대로 되 지 않을뿐더러 자신과 별개의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한자는 자식을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 이름을 찾고자 한다. 한자는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역할을 벗어던지고 오롯이 한 존재로서 자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한자는 애초에 계획한 1년 휴가를 채우지 못 한 채 집으로 돌아오지만 다음 생에는 자신의 이름 석자로 불리며 살고 싶다면서 성 역할에 대한 저항을 잃지 않으며 대장정의 서사를 마무리 짓는다. 한자의 이름 찾기는 미완결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자는 딸/아내/어머니 되기 과정에 서 자신의 이름을 잃은 적이 없다. 한자가 등장하는 장면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은 부엌이다.

한자는 주로 낮에 부엌에서 가사노동을 하지만 밤이 되면 책을 읽거나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다. 3대가 모여 사는 집의 부엌은 그야말로 여성이 아내, 며느리, 어머니로서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한자는 자신이 학창시절 읽던 책 부터 다양한 책을 읽는다. 물론 한자의 독백에서 알 수 있듯 한 장 읽다가 졸기 일쑤이지만 부엌에 누워 책 읽는 한자의 모습은 한 존재로서 이름과 꿈을 간직하며 잊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설령 다른 사람들은 한자의 이 름을 잊어버렸을지언정 한자 스스로는 한 존재로서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여성에게 임신은 자신의 몸 안에 타자를 품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처음부 터 그 타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타자를 받아들이며 여성은 주체적 여성성을 획득하며 타인과 연대하는 삶을 배워나간다. 이는 어머니 영희와 한자가 각각 아들의 연인인 정효와 사위의 전실 자식인 소라와 관 계를 맺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영희와 한자가 보여주는 관계 맺음은 모성의 사회화로 나갈 수 있는 단초를 보여준다. 영희는 아들 민수를, 한자는 딸 영수를 매개로 해서 각각 정효와 소라와 관계를 맺기에 완전히 낯선 존재에 대한 사랑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배타적인 자식 사랑을 넘어 한 존재로서 상처받은 존재를 배려하고 돌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는 어머니의 과도한 자기희생이나 배타적 자식 사랑으로 그려지던 모성 과 다른, 모성의 사회화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영희와 한자의 이름 찾기로 상징되는 주체적 삶은 기존의 딸/아내/어머 니의 고정된 역할 기대를 깨고, 딸/아내/어머니이면서도 한 인간으로서 자 신을 당당히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기실현의 삶은 개인주의 적 맥락이 아니라 공감과 연대라는 관계 맺음의 열린 지평으로 나아간다. 이런 점에서 신화에 나타난 당금애기와 유화의 원형적 서사는 오늘날 우리 의 변화된 삶 속에서도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5. 결론

여성이 딸/아내/어머니 되기 과정에서 겪는 수난과 극복 서사라는 관점 을 갖고 신화에서 현대서사까지 살펴보면서 많은 여성을 만났다. 당금애기 와 유화가 결연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듯 여성은 일방적으로 접근했던 남성 은 물론 부모 허락 없이 남성과 결연했다는 이유로 부모에게마저 버림받는 수난을 겪는다. 이중의 버림을 받는 상황에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 었지만 당금애기와 유화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고전소설 에서는 여성의 삶에 대한 구조적, 문화적 억압이 강화되면서 여성이 결연과 정에서 겪는 갈등의 원인이 보다 중층화된다. 수난의 무게가 가중되면서 여성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내며 균열을 내기 위해 저항했 다. 현대서사로 오면서 여성들은 결연과정을 적극적으로 이끄는 모습을 보 여주었는데, 특히 혼전 임신 상황에서 여성은 버림을 받기 전에 자신이 먼 저 박차고 나와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성을 보였다. 여성은 출산과 양육을 하는 과정에서 어머니 되기 과정을 거친다. 신화 에서 여성은 남성 부재 상황에서 출산과 양육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실제라기보다는 여성이 감당하는 출산의 고통과 양육의 고단함이 홀로 짐 진 것처럼 무거움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난 상황에서 여성은 자신과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다. 열 달 동안 생명을 품는 것은 타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자녀를 양육한 후에는 떠나보내는 미덕과 여성이 자기실현하는 방식의 어머니 되기 양상을 보인다. 딸/아내/어머니 되기를 거부하지 않고, 고정된 역할에 매이지도 않는 모습이 드러난다. 고 전소설에서 여성은 열녀·효부의 이상과 자아실현 욕망이 대립하였다. 고정 된 역할을 과도하게 강요할 경우 원형적 서사는 딸, 아내, 어머니 되기를 회의하면서 자아실현만 강조하였다. 이후 아내와 어머니 역할에 대한 강요 가 유연해지는 시기에 존재의 확장으로 열린, 딸/아내/어머니 ‘되기’의 원형적 서사가 뚜렷해졌다.

여성 수난 서사의 신화적 원형을 찾고, 이후 서사 문학에서 변주되는 양 상이 갖는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부 고전소설을 통해 보았 을 때 신화의 원형적 서사가 변형되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유교= 여성억압적 가부장 사회’라는 도식을 넘어, 고전소설 전체에 대한 보다 세 밀한 연구를 통해 여성 억압적인 가부장제 사회 속제한된 범위에서나마 고난을 극복하는 주체적인 여성 삶의 다양한 양상들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둘째, 현대의 여성서사가 신화의 원형적 서사에 보다 친화적인 양상이었는 데, 이는 가부장 사회를 둘러싼 변동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신화의 원형적 서사는 모계 사회에서 가부장제 사회로 이행하던 시기의 여성 수난 서사라 면, 현대의 여성서사는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심화되는 시기 의 여성 수난 서사라 할 수 있다. 가부장제 사회라는 늪으로 들어가는 시기 와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가부장제 사회의 자장과 이를 벗어나는 힘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 서로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 기에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여성 모습이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오던 원형적 서사와 많은 점들이 비슷하고 보다 친화적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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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Mythical Archetype and Epic Acceptance of Women's Suffering Narratives Focusing on the Process of Becoming a Daughter/Wife/Mother

Kim, Ji-Hye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In this study, Damchon's narrative research methodology and the discussion of the mythical archetype were accepted to discuss the narrative literary acceptance pattern of the women's suffering narrative. The mythical archetype of suffering experienced by women in the process of becoming daughters, wives, and mothers in the narratives of Danggeumaegi in "Jumong Mythology" and Yuhwa in "Jeseokbonpuri" was found. This study examines how their narratives are accepted in classical novels and modern narratives. As seen in the Danggeumaegi and Yuhwa, the woman was doubly abandoned during the relationship but tried not to lose herself. In classical novels, the structural and cultural repression of women's lives is strengthened, and the cause of conflict become more layered. In the modern narrative, women actively led the relationship and showed subjectivity in solving problems. Women who go through the process of becoming mothers in mythology suffer from the pain of childbirth and the difficulty of parenting in the absence of men, but they never relinquish their lives. To have a life for 10 months is to practice accepting the others. Danggeumaegi and Yuhwa show the virtue of protecting themselves and their children’s lives and they send their children away after raising them.

Here, you can find to becoming a mother in a way that expands and realizes the self, that does not refuse to be a daughter/wife/mother, nor is bound by a fixed role. In the classical novel, women showed a conflict between the ideals of the virtuous woman and devoted daughter-in-law and the desire for self-realization. In the case of the excessive coercion of a fixed role, as in the Joseon Dynasty, the mythical archetype was skeptical of becoming a daughter/wife/mother, emphasizing only the self-realization of an independent individual. In the modern narrative, the original narrative of "becoming" a daughter/wife/mother is clarified at a time when the coercion on the role of wives and mothers become more flexible. Modern women's narratives are more friendly to the original narrative of myths, which is related to changes in a patriarchal society. The original narrative of the myth is a narrative of women suffering during the transition from a maternal society to a patriarchal society, and the current narrative of women suffering is heightened criticism and reflection on the patriarchal society. During the two periods, the magnetic field of the patriarchal society and the forces that deviate from it coexist and resemble one another.

Key words: Damchon Seo Dae Seok, Women's Suffering Narratives, Mythiical Archetype, Subjectivity, Becoming a daughter/wife/mot her

2021년 11월 21일 투고 12월 10일 심사 완료 12월 12일 게재 확정

구비문학연구 제63집 (2021. 12. 31.)

 

32. 여성 수난 서사의 신화적 원형과 서사문학적 수용 딸아내어머니 되기 과정을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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