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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루쉰의 광인일기 와 하진의 광인에 나타난 민족적 알레고리와 상호텍스트성/정은숙.중앙대

I. 서론

본 논문은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유명한 논문 다국적 자본주의 시대에 제3세계문학 (“Third-World Literature in the Era of Multinational Capitalism,” 1986)에서 주장했던 진술, 즉, “제3세계의 모든 텍스트들”은 “필연적 으로 민족적 알레고리의 형식으로 정치적 차원을 투사”(69)한다는 주장을 염두에 두면서 루쉰(Lu Xun)의 광인일기 (“Diary of a Madman,” 1918)와 하진(Ha Jin) 의 소설 광인(The Crazed, 2002)의 두 작품을 상호텍스트적으로 비교 분석하면 서 두 작품의 민족적 알레고리 구조를 논하는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Encyclopedia Britannica)에서 “알레고리”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면 “알레고리는 서사에서 표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의미를 전달하는 상징적인 허구적 서사”로서 “작가의 창조과정으로부터 분리된 해석과정을 포함”할 수 있고, 따라서 “인물들, 서사, 혹은 묘사된 세부 사항들은 독자에게 문학적인 이야기 밖의 어떤 것에 대한 정교한 메타포”로서 특히 “정치적, 역사적 상황”을 재현하는데 이용되어진다. 따라 서 수사적으로 볼 때 알레고리(allegory)는 ‘무언가 다른 것을 말하기’라는 의미를 지닌 서술기법으로, 시나 산문에서 인물, 행위, 때로는 배경 등이 일차적 의미(표 면적 의미)에 있어 일관된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그 내면에 도덕적, 정치적, 종교 적, 사회적 개념의 이차적 의미(이면적 의미)의 차원도 가리키도록 고안된 이중구 조의 이야기이다. 본 논문은 제 3세계 작가로서 루쉰과 하진을 염두에 두면서 한 개인의 서사가 어떤 방식으로 한 민족 혹은 국가의 서사로 치환되는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는 가를 살펴보겠다.

제임슨 자신도 “제3세계라는 표현이 광범위한 비서구 국가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들 간의 깊은 차이를 지우고 있다”(67)고 서술하면서 “제3세계”라는 용어 규 정의 어려움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제임슨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고통스런 경험”(67)을 한 국가들을 “제3세계”로 칭하는 것보다 더 “명료한 용어는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67). 제임슨에 의하면 미국 혹은 유럽을 중심으로 제1세계적 관점에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고통스런 경험”을 가진 “타자”라고 규정한 모든 문학을 제3세계 문학이라 규정할 수 있고, 제3세계 문학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런 고통스런 역사가 개인의 의식에 명백히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광인일기 를 포함 하여 루쉰의 소설의 기원은 아편전쟁(1840~42) 이후 중국의 근대화의 역사와 분리 될 수 없다. 바로 이런 사실은 중국이 근대화로, 혹은 서구 역사의 진보적인 서사 속으로 이끌려지게 된 것은 무력에 의해서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 하여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합류하기 위해 중 국의 문화와 전통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중국인들에게 공감하면서 중국의 문제(The Problem of China, 1922)라는 저서에서 “[중국인들은] 정복당해서 그들 의 적들의 많은 악덕을 받아들이는 것 이외의 어떤 대안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정도까지 우리[서구]의 몇몇 악덕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는 그들[중국인 들]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점차 외국의 여러 국가들에 의해 억압당할 것 이다”(255)라고 주장한다. 러셀의 이런 주장은 중국 전체가 식민화되지는 않았을지 라도 서구 식민주의의 영향은 중국문화와 사회에 크게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고 있다. 루쉰의 작품도 중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는 유럽의 문화제국주의 및 식민주의 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질 필요가 있다. 제임슨도 제3세계 문학작품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루쉰의 작품을 포함하고 있듯이 본 논문은 제임슨의 주장을 염두에 두면 서 루쉰의 소설을 논할 것이다. 본 논문에서 함께 논할 중국계 미국 작가 하진의 경우 중국에서 태어나기는 하였으나 미국으로 유학 와서 이민 작가로서 제1세계의 언어인 영어로 글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제3세계 문학으로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이 타당한 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하진 자신의 주장에 근거하자면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를 구분할 때 현재의 국적이나 언어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 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진은 작가로서 자신의 변화과정을 성찰한 대변인과 종 족 (“The Spokesman and the Tribe”)에서 “저는 제 자신을 탄압받는 중국인들을 대표하여 영어로 글을 쓰는 중국인 작가라 생각합니다”(3)라고 주장하면서 작가로 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하고 있다. 하진의 주장을 염두에 둔다면 하진의 정체 성을 제3세계 작가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겠다. 따라서 두 작가의 작품에서 “민족적 알레고리”의 성격을 살펴보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작가 자신의 글쓰기 자체(사적 영역)가 민족의 계몽 혹은 고통 받는 민족을 위한 글쓰기(공적영 역)라는 목적이 그 기저에 깔려 있고, 또한 작품 속에서 개인의 사적인 서사가 개 인을 넘어선 커다란 집단의 문제, 즉 민족 혹은 국가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의 북 리뷰에서 루스 프랭 클린 (Ruth Franklin)도 “진의 소설들은 사회소설들이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정부 의 통제를 받는 사회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정치적이다. . . . 그의 모든 작품은 억압적이고 부패한 정부가 중국인들에게 가한 고난을 조심스럽게 묘 사한다. 이런 고난은 광인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7)고 주장한다. 루쉰의 광인일기 와 하진의 광인은 작품 제목이 암시하듯이 두 작품의 주 인공들은 모두 광인이 된 지식인들이다. 광인 혹은 그들의 광기는 공통적으로 민 족적 알레고리를 드러내는 장치로서 작용한다. 광인의 개인적 삶은 단지 개인의 사적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중화민국의 수립시기, 중국의 문화 대혁명, 마오 쩌둥 이후의 시기, 중국의 텐안먼 사태 등의 정치적 서사를 투영한다. 루쉰과 진의 서사 속에서 여러 역사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광인으로 표상되는 지식인들은 필연 적으로 주체의 분열을 체험하게 되고, 이 분열에 대처하는 방법 중 하나가 풍자적 비유, 즉 알레고리라 할 수 있는데, 이는 바로 광인의 목소리를 통해 말하는 방식 으로 나타난다. 루쉰도 하진도 표면적으로는 한 개인의 정신질환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중국의 병적 상황을 알레고리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두 작 가들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 봉건 악습에 찌든 중국의 병적 사회 혹은 표현의 자유 가 차단된 통제와 감시의 전체주의적 중국사회에서 공적인 영역이 어떤 방식으로 민족적 알레고리와 상호텍스트성 사적으로 치환되어 표현되고 있는 가를 살펴보겠다. 우선 다음 장에서는 제임슨이 주장하는 민족적 알레고리와 제3세계 작가로서 루쉰과 하진에 대해 간략하게 논한 뒤, 작품분석을 통해 루쉰의 광인일기 와 하진의 광인에서 민족적 알레고리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서사가 정치적 차원으로 투사되는 가를 논하도록 하겠다. 더 나아가 루쉰의 광인일기 에서 드러내는 논점 이 하진의 광인에서 상호텍스트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함께 살 펴보며 결론을 대신하겠다.

II. 제3세계 작가로서 루쉰과 하진

제임슨은 다국적 자본주의시대에 제3세계 문학 에서 “제3세계 문학이란 것의 어떤 일반적인 이론을 제공하는 것”(68)이 그의 글의 목적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제임슨은 자신이 이 글을 쓴 목적 중 하나를 “제1세계 문화의 가치와 전형 들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그 동안 무시당해온 문학들의 가치와 흥미를 일깨우려 는 의도”(68)라고 밝히고 있다. 제임슨은 또한 어떤 제3세계 문화도 “독립적이거나 자율적이지” 않고 “다양하고 독특한 방식으로 제1세계 문화 제국주의와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제3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을 역 설한다(68). 더 나아가 제임슨은 제3세계 문화생산과 제1세계의 문화적 형식들 간 의 근본적인 차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제3세계의 모든 텍스트들은 필연적으로 알레고리적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그 것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알레고리적이다. 즉 제3세계의 모든 텍스트들은, 심지어 그 형식이 소설처럼 명백히 서구적 재현장치로부터 발전했을 때조차도, 아니 특히 그러했을 때, 내가 민족적 알레고리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 한 구분을 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말해보자. 자본주의 문화, 바로 서구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소설 문화의 결정요인중 하나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시적인 것과 정 치적인 것, 성과 무의식의 영역으로 간주해온 것과 계급, 경제, 세속적인 정치권력 과 같은 공적 영역으로 간주해 온 것 간의 급격한 분리, 즉 프로이트 대 마르크스 간의 급격한 분리이다.

All third-world texts are necessarily, I want to argue, allegorical, and in a very specific way: they are to be read as what I will call national allegories, even when, or perhaps I should say, particularly when their forms develop out of predominantly western machineries of representation, such as the novel. Let me try to state this distinction in a grossly oversimplified way: one of the determinants of capitalist culture, that is, the culture of the western realist and modernist novel, is a radical split between the private and the public, between the poetic and the political, between what we have come to think of as the domain of sexuality and the unconscious and that of the public world of classes, of the economic, and of secular political power: in other words, Freud versus Marx. (69)

 

제임슨은 “제3세계 문학에 대한 어떤 일반적인 이론”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 혔음에도 불구하고 위의 글을 보면 제임슨은 제3세계 문학을 읽는 한 방법론을 제 시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제임슨은 제1세계 문학과 제3세계 문학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제1세계문학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간의 분리를 보이고 있다면, 제3세계 문학의 경우 “사적이고 리비도적인 역할이 투여되는 텍스트들조 차 필연적으로 민족적 알레고리의 형식으로 정치적 차원을 투사”(69)하고 있다는 점이다. 1

1 제임슨은 서양문학에도 민족적 알레고리가 존재하지만 그 차이에 대해 “제1세계의 문화텍스 트들”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존재”하는 반면, “제3세계의 민족적 알레고리들은 의식적이고 명시 적”이라고 주장한다(80).

제임슨 자신도 루쉰의 글을 민족적 “알레고리화(allegorization)”(69)의 최상의 예로 든 바 있듯이 작가 루쉰이 광인일기 를 쓰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루쉰에게 는 글쓰기 자체가 민족적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루쉰은 본래 폐결핵에 걸린 아 버지의 치료를 위해 비싸고 진귀한 엉터리 약재들을 사느라 가족의 남은 재산을 급속히 탕진하게 되었고, 후에 엉뚱한 민간요법을 쓰는 “중국의사들이 돌팔이 의 사에 지나지 않는다”(“Preface” 22)는 것을 깨닫는다. 루쉰은 “일본의 근대화도 서 양 의술에서 출발”(22) 했음을 깨닫고, 서양의술을 익혀 “아버지처럼 희생당했던 불운한 사람들의 고통”(23)을 없애겠다는 목적으로 1902년 일본으로 유학 갔고, 1904년 센다이 의전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루쉰은 강국의 길은 “정신 개조에 있고, 민족적 알레고리와 상호텍스트성 그 정신개조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문학과 예술의 제창에 있음”을 깨닫고 문학 으로 전향했다(24). 2

2 루쉰에 대한 평가는 중국의 역사적 변화와 더불어 시대별로 달라진 부분들이 있다. 이와 관 련하여서는 최진호, 냉전기 중국 이해와 루쉰 수용 연구 . 한국학연구 39, 2015, 277-311; 성옥례, 혁명문학논쟁과 루쉰의 혁명문학관 ≪中國語文論叢≫ 2017, 第80輯, 221-45 참고할 것.

루쉰이 옛 친구의 출판요구를 받아들여서 광인일기 를 쓰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다음의 알레고리는 루쉰이 제3세계 작가로서의 예술가의 사명 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절대 파괴될 수 없는 방, 창도 문도 없는 감방을 상상해보게. 그리고 그 안에는 깊이 잠든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상상해봐. 모두 질식으로 금방 죽고 말겠지. 즉, 자 네는 그들이 깊이 잠든 채 죽을 것이기 때문에 임박한 죽음의 고통도 느끼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네. 그런데 만약 ‘자네’가 나타나서 깊이 잠들지 않는 사람들을 소리 쳐서 깨운다고 상상해보게. 그럴 경우 이 소수의 불행한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 는 죽음의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겠지. 과연 자네는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었다고 생 각할 수 있는가?” ( 서문 27) “Suppose there were an iron room with no windows or doors, a room it would be virtually impossible to break out of. And suppose you had some people inside that room who were sound asleep. Before long they would all suffocate. In other words, they would slip peacefully from a deep slumber into oblivion, spared the anguish of being conscious of their impeding doom. Now let’s say that you came along and stirred up a big racket that awakened some of the lighter sleepers. In that case, they would go to a certain death fully conscious of what was going to happen to them. Would you say that you had done those people a favor?” (“Preface” 27)

위의 말은 글을 부탁하러 온 친구에게 루쉰이 자신이 처한 곤경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민주주의 등 새로운 사상이 전 세계를 휩쓴 후 신해혁명(1911)으로 청 나라가 망하면서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중화민국’이 설립되었지만 루쉰이 보기에 중국인들의 생활방식이나 태도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혁명이 발생했지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제국의 통치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봉건주의와 제 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제약을 받는 공화국 시대의 중국은 루쉰에게 어둠 속에 영원히 덮여 있는 “절대 파괴될 수 없는” 감옥이고, 피할 수 없는 심리적인 질식의 장 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쉰의 친구가 “몇 사람을 깨운다면, 감방을 부술 방법 을 찾을 희망이 절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네”라고 말할 때, 루쉰은 “감방을 파괴 할” 수단으로서 “미래”의 “희망”을 위해 광인일기 를 썼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27). 즉 중국의 공산당이 수립된(1921) 직후이자 중산계급 혁명의 파탄이 명백해 진 정치적으로 혼탁한 시기에, 어떤 해결책도 실천도, 변화도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시기에, 루쉰은 제3세계 지식인으로서 중국의 사회적 병폐를 고치 고, 몽매한 중국 인민들의 정신을 개조하는 영혼의 의사로서 문학으로 향함으로써 미래의 희망을 찾고 있다. 문학이 중국인들을 각성시킬 수 있다고 믿는 루쉰의 이 런 출발은 루쉰의 소설쓰기 자체가 이미 민족적 알레고리였음을 입증한다. 첫 장편소설 기다림(Waiting, 1999)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본명이 진 쉐 페이(Jin Xuefei)인 중국계 이민 작가 하 진의 경우도 루쉰과 비슷한 부분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진은 사라 페이(Sara Fay)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결코 내 글이 정치적이기를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의 인물들은 정치적 구조 속에 존재한다. 특히 중국에서 정치를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Art”)라고 주장한다. 본고에서 다루 고자 하는 진의 광인도 공산주의 중국의 역사적, 정치적 특수성과 그것이 초래 한 비극을 다루고 있다. 진은 서양인들에게 중국의 문화적 차이를 분명히 설명하 려는 오리엔탈리스트로서의 민족지학적 경향에는 저항하지만 자신의 글의 주요원 천으로서 중국역사와 문화를 폭넓게 이용하고 있고, 중국에서의 자신의 경험에 매 우 의존하고 있다.

찰스 존슨(Charles C. Johnson)이 주장하듯이

“하진은 브랜다이 스(Brandeis) 대학에서 미국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1985년 중국을 떠난 후 중국 본토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하진은 결코 실제로 중국을 떠난 적 이 없었다. 중국은 그의 소설의 가장 큰 몸체이다”(77).

진이 자신의 작품들에서 중국을 주장하는 데는 그 자신의 개인적 사항들과도 연관된다. 진은 1985년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과정 공부를 위해 미국으 로 왔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 중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1989년 6월에 발생한 텐안먼 사태는 진의 인생을 바꾸어버린다. 진은 인민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들었던 군대가 텐안먼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보았을 때, 중국 정부의 잔학상에 좌절한다.

인민해방군의 군인이기도 했던 진은

“나는 중국 으로 되돌아가서, 정직하게 글을 쓰고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 . . 이제 모든 것은 뒤바뀌었고, 그들은 민간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중국에 대한 나의 모든 이미지는 변했다”(Rightmyer)고 밝힌다. 진은 또 다른 인 터뷰에서도 텐안먼 대학살이 그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해 “텐안먼 광장에서의 대학살 이후 나는 국가를 위해 일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되돌아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학자가 될 수도 있지만 중국의 모든 학교는 국가 소유이다. 나는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대학살로 인해 내게 국가는 일종이 폭력적인 환영의 징후가 되었다. 국가는 괴물과 같았다”(“Art”)

라고 밝히고 있다. 진은 텐안먼 사태로 인해 정치적 망명을 결정하고 미국에 남는다. 따라서 민족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진이 자신의 작품에서 윤리적인 임무로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의 허점에 대해 적고, 검열당하고, 침묵당한 사람들의 삶을 가시적이게 하는 역할을 떠맡은 제3세계 작가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예견 가능하다고 할 수 있 다. 이와 관련하여 진은 침묵들 사이에서(Between Silences)라는 그의 시집의 서 문에서

“운 좋은 사람으로서 나는 삶의 밑바닥에서 고통을 받고, 인내하고 죽어갔 던 불운한 사람들, 역사를 창조했고 동시에 역사에 의해 바보 취급받거나 망가진 사람들을 대변하고자 한다”(2)

라고 민족 대변인으로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밝히 고 있다. 따라서 진에게도 그가 글을 쓰는 목적은 고통 받고, 인내하고, 혹은 죽어 갔던 질곡의 삶을 살아야 했던 중국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미국에 망명 온 작가로서, 민족을 대변하는 작가로서, 문화 대혁명 시기 혹은 그 이후 동 안 공산주의 정부 하에서 국가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들, 그로 인해 발생한 가족 의 비극, 손상된 인간관계와 정치적 억압에 대해 묘사하는 진은 루쉰처럼 민족적 알레고리의 글쓰기를 실천하는 작가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진의 글에서는 후에 살펴보겠지만 루쉰의 영향력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진은 현대 중국 문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루쉰에 많은 빚을 지 고 있기도 하고 루쉰에 저항하기도 한다. 진은 최근 편집한 루쉰의 단편집 서문에서 “그의 소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빛을 발하고 있다”(“Introduction” xv)라고 찬 사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루쉰이 정치적인 에세이들을 쓰느라 자신의 “열정과 야망 을 허비”한 것에 대해 비판한다(xv). 진은 “그[루쉰]에게 문학은 봉건주의 문화와 자본주의적 억압으로부터 중국 인민들을 해방시키는데 기여했다. 결과적으로 모든 글은 단도 혹은 창처럼 투쟁 속에서 유용했음이 틀림없다”(xiv)고 주장한다. 진의 이런 주장은 루쉰의 문학이 끼친 긍정적인 영향을 강조하면서도 이런 부분들조차 도 정치와 연관되어진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진은 루쉰이 “문화와 예술을 정치 아 래에 두었고, 이것은 문학과 예술이 혁명도구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고 여기는 공산주의 이론과 정확히 일치했다”(xiv)고 지적하면서 루쉰이 문학을 정치에 복종시킨 것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의 완벽한 도구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진은 “작가의 진정한 조각상은 브론즈나 돌로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빚어진 다”(xv)는 비유를 들어 문학이 공산주의 국가를 위해 정치에 속박되어서도 안 되 고, 외부의 압박으로부터 예술이 독립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와 관련하여 진은 그의 에세이 대변인과 종족 에서 “진짜” 문학은 “그 자체의 자율성과 통합 에 근거해야만 한다.” 즉 “작가는 주로 예술의 길을 통해서 역사 속으로 진입해야 만 한다. . . . 작가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의 성공 혹은 실패는 작품 자체 속에서 결정되어져야만 한다. 그것[작품의 페이지]이 작가가 존재하기 위해 애써야만 하는 공간이다”(30)라는 주장을 하면서 작가가 대의명분과 같은 정치화된 예술에 몰두 할 것이 아니라 예술 자체, 작품 자체에 몰두할 것을 강조한다.

루쉰에 대한 진의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진의 광인은 여러 면에서 루쉰의 광인일기 를 떠올리 게 한다. 다음 장에서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하겠다.

III. 민족적 알레고리로서 광인일기 와 광인

1. 루쉰의 광인일기 에 나타난 민족적 알레고리

루쉰의 첫 번째 단편으로 알려진 광인일기 는 그 제목을 니콜라이 고골 (Nikolai Gogol)의 1835년 소설 광인일기 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했고, 3 중국의 첫 현대 단편소설로 여겨진다.

3 실제로 루쉰의 광인일기 와 고골의 광인일기 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 우선 주인공인 광 인이라는 점, 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그리고 1인칭 서술방식, 외적인 표현형식과 꿈 등 제 목에서부터 내용, 문체, 구성형식, 묘사 등에 있어 고골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루쉰 은 광인일기 의 창작에 대해 “1834년 무렵 러시아의 고골이 벌써 狂人日記 를 썼다. 1883년 경, 니체도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서 말을 한 적이 있다. . . . 하지만 후에 만들어진 狂人日 記 의 취지는 가족제도와 예교의 폐단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며, 고골의 울분보다 더 깊고 넓으 며, 니체의 초인(超人)보다 막연하지 않다”라고 자신의 작품이 고골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지적 하면서 동시에 작품주제와 창작의도에 있어 고골과는 다르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강명화 28쪽 에서 재인용).

광인일기 의 구조는 크게 서문과 본문으로 나뉘어 있다. 1쪽도 채 안 되는 서문은 화자인 ‘나’의 이야기로서 ‘나’는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광인과 광인의 형의 학창시절 친구이다. 서문에서 화자인 나는 이미 광 인이 정상인으로 돌아온 이후에 광인의 일기를 입수하게 된 배경과 광인의 병증을 밝히고 있고, 이로 인해 일기에 사용한 말이나 내용이 비논리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일기의 일부를 의학자들의 연구 자료로 제공할 것이라는 점을 밝혀 광 인이 비정상적 상태에서 일기를 서술하였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서문의 끝에 “민국 7년(1918) 4월 2일”이라 적음으로써 “화자 ‘나’의 역할을 ‘이야기 세 계의 전달자로만 한정”하고 있고(이주노 49), 서문을 본문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분 리시키고 있다. 이에 반해 본문은 광인 주인공인 ‘내’가 피해망상증을 앓고 있던 때에 광인 자신과 사회를 소재로 한 일기 형식의 글로서 광인인 ‘내’가 화자이다. 광인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 것이라 의심하는 피해망상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의 어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그들의 대화, 몸짓, 얼굴 표정으로 숨겨진 메시지를 읽는다. 이렇듯 루쉰은 광인일기 를 서문과 본문으로 나누어 소설의 현실성을 부각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다성적 목소 리를 창출하고 있다. 김언하는 루쉰의 광인일기 에 대해 “발표된 지 거의 9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도 그 의미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문제작”이라 지적하면서 “난해성의 핵심은 광기가 지닌 반어적 상징성에 있다”(217)고 설명한 다. 김언하가 지적하는 상징성은 본 논문의 주제인 알레고리와도 연관되어진다.

제임슨은 서양독자가 표면적으로 루쉰의 광인일기 를 읽을 때 “이 작품을 심리학적 용어로 ‘신경쇠약(nervous breakdown)’이라고 불리는 정신질환”(7) 환자의 이야기 로 읽게 된다고 설명한다. 짧은 총 13장으로 이루어진 일기의 첫 두 장은 피해망 상의 전형적인 증상을 드러낸다. 주인공 나는 어느 날 달밤에 “달빛”을 매개로 하 여 광인이 되어간다(“Diary” 29).

광인/나의 서술은 ‘매월 존재하는 달’에 대해 “달을 보지 못한 지도 벌써 30년이 되었구나”(29)라고 서술하거나 길거리를 지나 가는 일상적인 행인들의 모습에 대해 “나를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를 헤 치려고 하는 것도 같았다. […]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가 그랬다. 그 중 제일 험악하게 생긴 사내가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보고 히죽히죽 웃는다”(30)

라고 기록하는 것처럼 전형적인 피해망상증 환자의 태도를 보인다. 바로 이런 태도 는 피해망상증에 걸린 주인공이 현실 세계 속에서 정신적 망상에 사로잡혀 보통사 람들의 일상적인 행동을 과장되게 해석하고 불일치한 상황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광인은 주변 인물들에게서 예외 없이, “지난 4000년을 내려오면서”(41) 중국 의 오랜 역사동안 지속되어온 “사람을 잡아먹으려는”(31) 추악하고 소름끼치는 ‘식 인 욕망’을 발견한다. 잠재적 희생자로서 자신의 육체적 안전과 삶 자체를 위협하 는 이러한 망상의 절정기에 화자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가족관계에서조차도 식인 행위가 일어나며, 바로 자신의 형이 식인자이고, 수년 전 유년기의 질병으로 죽었 다고 알려진 자신의 여동생이 사실은 그 살인의 희생자라는 것을 발견한다(40-41). 표면적으로 읽는다면 이렇듯 광인의 행동은 정신질환의 병증에 걸맞게 나타나는 자각들이고 그 어떤 내성적 기제 없이도 이야기될 수 있는 객관적인 인식이다. 루 쉰의 소설을 이런 방식으로 읽는다면 이 소설은 끔찍한 정신적 망상, 즉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 무시무시한 비밀을 숨기고 있고, 그 비밀이 다름 아니라 사 람들이 식인풍습을 즐긴다는 확신에 시달리는 한 주체의 기록과 지각을 제공하고, 따라서 그들의 야만성과 잔인성을 드러낼 뿐이다. 제임슨은 “서구의 문화 연구에서 루쉰이 무시당해 온 것은 무지에 근거한 것 으로 그 어떤 변명으로도 바로 잡을 수 없는 수치스런 일”(69-70)이라고까지 주장 하면서 루쉰의 광인일기 를 단순히 편집증 환자의 이야기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루쉰의 텍스트가 갖는 재현적 힘은 그것을 민족적 알레고리를 파악할”(71) 때 루 쉰의 글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한다. 왜냐하면 “주인공 환자가 가 족과 이웃들의 태도와 자세에서 포착했던 식인주의는 동시에 루쉰 자신에 의해 중 국 사회 전체에서 기인하는 것임이 드러나고” 그런 점에서 “비유적”이라는 것이다 (71). 우선 알레고리적 관점에서 읽을 때 주인공의 광기 혹은 광인의 의미도 상징 적이다. 광인일기 의 광인은 보통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식인풍습을 광인이 된 후 발견한다는 점에서, 광인의 광기는 “중국사회의 어둠을 드러내게”하고 있고, 따라서 “예언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Ma 353). 이주노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 는데, “작가에게 광기란 더는 정신질환이나 이상심리 같은 질병이 아니라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담아내는 유용한 도구로, 기성 권위와 질서에 대한 위반과 일탈 의 기호다”(86). 루쉰은 광인의 광기의 힘을 이용하여 중국의 전통 의학을 공격한 다. 광인은 4장에서 단지 그의 맥만을 한참 짚어보고 잠시 더듬거리다가 광인에게 며칠만 조용히 쉬면 나을 것이라는 말하는 한의사의 무능을 빌어, 혹은 제 10장에 서 폐병을 치료하기 위해 처형당한 죄인의 피를 만두에 찍어 먹인다는 이야기에서 중국 전통의학 혹은 민간요법의 부조리함을 개탄하고 있다. 또한 루쉰은 중국의 봉건적인 구세대적 예교의 속박과 봉건의 독소를 ‘식인’에 비유하며 비판한다.

광 인은 소작인도, 지주인 형도, 의사도, 노인도, 젊은이도 모두 “식인”에 혈안이 되어 있고, “역사책을 펼치니 … 온통 ‘인의도덕(仁义道德)’이라는 몇 글자”가 쓰여 있 는데, 주의 깊게 “글자들 ‘사이’에서 찾아낸 글자는 온통 식인”이라는 두 글자뿐이 라고 기록하고 있다(“Diary” 32).

즉, 광인은 ‘인의도덕’으로 미화된 중국의 봉건제 도는 단지 지배세력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에 불과하고, 실상은 ‘식인’을 허용 하는 약육강식의 야만적 폭력성이 만연한 사회임을 깨닫는다. 또한 중국 사회의 봉건주의적 지배체제는 가족제도에서도 일상화되어있다. 광 인은 “부모님이 병이 나시면 아들 된 자는 자식 된 도리로서 살 한 점을 베어내어 그걸 익혀 부모에게 잡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훌륭한 사람이다”(“Diary” 41)라 고 했던 큰형님의 말을 상기한다. 큰형님의 말을 빌어 광인은 가부장적 봉건가족 제도가 가지고 있는 병폐를 비판하고 있고, 형님의 말에 “어머니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41)라는 어머니의 암묵적 동의를 상기하면서 봉건가족 제도의 불합 리성에 어머니도 순응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바로 이런 부분에서 광인은 봉 건주의의 모순이 식인의 형태로 자신의 주변까지 침투했고, 우선 형의 ‘식인’ 병폐 부터 없애려는 실천적 태도를 보인다. 광인은 형에게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은 아 무 일도 해낼 수 없어요. . . . 조금만 돌이켜서 고치려고만 하면 사람들은 모두 좋을 수 있어요”(39)라고 말하지만 광인은 형님에 의해서도 “미치광이”(39)의 헛소 리로 인식되어 아무런 성과 없이 허사로 돌아가고, 광인은 “어두운” “방”에 갇힌 다(40). ‘어두운 방’은 루쉰이 광인일기 를 쓰게 된 배경을 언급하면서 이야기했 던 ‘감옥’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광인이 방에 갇힌 상태는 광인의 계몽과 개혁은 좌절되었음을 암시한다.

이렇듯 알레고리적 관점에서 볼 때 루쉰의 주장은 “말기 혹은 후기 제국 시대의 무능하고 뒤처지고 붕괴되어 가는 거대한 중국에 사는 사 람들이 ‘말 그대로’ 식인자들이라는 것”이고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서로를 무 자비하게 집어삼켜야만 했고” 이런 현상은 “룸펜(부랑자들)과 농민으로부터 고위 관료사회의 특권 엘리트층에 이르기까지 극도로 계층화된 사회의 모든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다”(Jameson 71)는 것이다. 그러나 어두운 방에서 광인은 여동생의 죽음이라는 억압된 기억을 회복함으로 써 자기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식인행위를 저질렀을지 모르며, 자신의 혈관 속에도 4천년의 식인이력이 피처럼 흐르고 있고, 식인욕망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는 깨 달음에 이른다. 김언하는 이를 작가의 “정신적 재탄생”(229)라 부르고 있고, 허근 배와 원종은은 “완성된 광인의 의식”(119)이라 표현하고 있다. 바로 이런 각성은 자신도 남들과 다를 바 없다는 깨달음이고, 결코 자신이 우월하지 않다는 자각이 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그런 욕망을 자각하고 있느냐 하고 있지 못하느냐이다. 자각한 인간은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지만 자각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든 식인욕망에 사료 잡혀 서로 먹히는 악습을 계속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 므로 광인이 “당신들은 고칠 수 있소! 진심으로 고칠 수 있소”(“Diary” 40)라고 절규하는 것은 좌절 속에서도 부조리한 중국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갈망인 것이다. 광인일기 는 “아이를 구해다오…”(41)라는 말줄임표의 절망적인 외침으로 끝나고 있다.

제임슨에 의하면 이 문장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 번째 해석은 “제3 세계 문화 생산자로서 루쉰의 역할”(71)과 관계되는 것으로 자기기만에 빠진 주인 공 자신의 결말이다. 광인은 “식인주의가 거의 보편화되어 없애기가 거의 불가능 한 상황에서 미래를 강렬하게 요청하고”(77) 있다는 것이다. 제임슨의 첫 번째 해 석을 따르자면 루쉰은 광인일기 에서 변혁과 사회적 갱생에 대한 열망은 충만하 지만 그것을 현실화할 행위 주체들이 채 등장하지 않은 상태의 딜레마를 묘사하고 있다. 즉 루쉰은 이미 어른은 식인주의에 익숙해 있어서 구제는 불가능하므로 아 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낡은 세계가 조속히 파괴되어야 한다는 긴박함을 설파하 고 있고, 그 파괴에 기반하여 새로운 인간의 해방을 기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천년 동안 식인풍습의 역사를 지닌 곳에서 “사람을 잡아먹어 본 적이 없 는” 아이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구할 수 있는 ‘아이’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루쉰의 “아이들을 구해다오!”라는 마지막 외침은 자신의 딜레 마를 해결해줄 미래의 지식인에게 고하는 외침이며 미래의 혁명가들을 향한 외침 인 것이다. 두 번째 해석은 광인일기 의 서문에서 광인의 형이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화 자를 맞이하면서 “멀리서 만나러 와주어 고맙소. 하지만 동생은 얼마 전에 완쾌되 었고 관직을 받으러 다른 곳으로 떠났오”(29)라며 쾌활하게 인사할 때 드러난다. 광인이 형이 화자에게 알려주듯이 광인의 광기는 사전에 제거된 상태이다. 편집증 적 환상은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끔찍한 현실을 흘끗 들여다본 후, 기꺼이 다 시 환영과 망각의 영역으로 되돌아가고, 광인은 관료제적 권력과 특권의 공간 속 에 자신의 자리를 재차 확보한다”(Jameson 77). 제임슨의 해석을 따르자면 두 번 째 해석은 광인이 현실의 벽을 재차 확인한 후 현실과 타협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고, 현실을 계몽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런 점 에서 광인의 계몽 시도는 실패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발광을 거친 치유는 각성 의 심화”(김언하 229)로 볼 수도 있다. 광인은 광기 속에서 중국의 봉건제도, 계급 의 문제, 도덕적 무질서, 여러 악습 등 현실의 문제를 간파하고, 광기에서 풀려나 서 각성한 후 현실로 되돌아오는 것은 분명히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광기에 326 정 은 숙 휩싸였을 때 우월적 시각에서 자신과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들과의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다면 광기에서 벗어난 광인은 동등한 위치에서 민중의 각성을 도우면서, 각 성한 민중들과 함께 연대하여 인습의 부당함에 맞서 싸워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 을 함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 시각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이런 해석은 어떤 해석을 따르건 루쉰의 광인일기 를 정신질환자의 ‘사적이고 리비도 적인’ 표면텍스트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서사의 “동시적이고 대립적인 메시지들 의 복합적인 작용”(Jameson 77) 바로 그것의 알레고리 구조를 파악할 때 가능하 다.

2. 하진의 광인에 나타난 민족적 알레고리와 상호텍스트성4

4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이론적 배경은 윤소영(2022)을 참고할 것.

광인은 1989년 봄부터 1989년 6월 텐안먼(Tiananmen) 사태가 발생한 직후 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광인은 유명하지 않은 지방대학의 문학 교 수인 양(Yang) 교수와 그가 아끼는 대학원생 제자인 화자 완지안(Wan Jian)에 초 점이 맞추어져 있다. 지안은 양 교수의 딸 메이메이(Meimei)와 약혼한 상태이고, 양 교수의 아내는 1년 예정으로 티베트로 출장을 간 상태이다. 소설은 양 교수가 1989년 봄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표면적으론 소설의 대부분은 병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비교문학을 공부하는 지완의 목소리를 빌어 스승의 뇌출혈로 인해 개인적으로, 학문적으로 고통을 겪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하진은 화자 지안이 광기에 찬 양 교수의 횡설수설과 노래의 단편들을 대 부분은 추측 속에서 서로 짜맞추어가는 과정 속에서 양 교수의 개인 서사를 피로 물든 텐안먼과 연계시킴으로써 사적인 이야기를 공산주의 중국의 부패해가는 공적 인 국가 이야기의 알레고리로 바꾼다. 제프리 워서스트롬(Jeffrey N. Wasserstrom)과 벨린다 콩(Belinda Kong)과 같 은 학자들은 공산주의 사회의 부패에 초점을 맞추는 진의 광인은 신문화운동 (New Culture Movement, 1915-1923) 시기의 중국 작가들, 특히 루쉰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주장을 한다.

워서스트롬은 진과 루쉰 모두 “과대망상의 인물”을 주인 공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진의 광인이 “루쉰의 광인일기 의 이미지와 너무 흡사해서 광인이 [루쉰에 대한] 존경의 일부로서 의도되지 않았다고 믿기는 어 렵다”(167)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워서스트롬은 “하 진처럼 루쉰은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 위트, 노련한 언어로 찬사를 받았다”(165)고 지적하면서 두 작가 간의 유사성을 피력한다.

콩 또한 광인에서 드러나는 “약육강식의 사회는 봉건시대의 중국에 대한 이야기인 루쉰의 우화 광인일기 를 상기시킨다”(188)고 지적한다. 진 자신도 헨리 에이스 나이트(Henry Ace Knight)와의 인터뷰에서 “광인에서 양 교수에 대한 당신의 묘사는 내게 루쉰의 광인일기 를 떠올리게 했어요. ‘양 교수는 터무니없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 말 속에 많은 진실이 담겨있어서 어느 정 도까지는 그가 비이성적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루쉰의 이야기가 의식적으로 영향 을 끼쳤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진은 “영향을 끼쳤다면 의식적인 영향은 아 니었어요. 나는 루쉰의 이야기들에 매우 친숙해서 아마 그런 영향은 … 불가피하 죠”라고 답변한다(“Interview”). 하 진 자신의 답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의 광 인에 드리운 루쉰의 그림자는 절대적이다. 워서스트롬, 콩, 그리고 진 자신의 주장처럼 진의 광인은 “민족적 알레고리” 로서 해석할 수 있게 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양 교수의 뇌출혈은 우연히도 베 이징에서의 민주화 시위 발발과 일치한다. 콩은 “민족적 알레고리”의 차원에서 “양 교수는 중국지식인의 전형일 뿐 아니라 동시에 1989년 중국 자체의 표상”(94) 이라고 주장한다. 즉, 진은 광인의 시작 부분에서 양 교수의 뇌의 “혈전(blood clot)”의 “막힘”(13)과 소설의 후반부의 “봉쇄된”(301) 거리를 서로 병치시킴으로 써, 양 교수의 몸이 점차 쇠약해지고, 통제를 벗어나서 서서히 부패해가면서 죽어 가는 모습은 엘리트 지식인들의 균열 및 부패 뿐 아니라 국가 정치 조직의 부패의 강력한 이중적 알레고리를 제공한다. 하진은 양 교수의 몸이 “왼쪽 어깨뼈 아래쪽 에 팥알만 한 종기가 곪아가는” 것에서부터, “이곳저곳에 궤양이 나고 조금씩 피 가 나는 상한 잇몸”과 “심하게 백태가 낀 혀”(59), “손가락들이 붉어지고 부어오르 고, 균으로 감염된 각피층”(123), 머리를 감길 때 그의 입에서 나는 “썩은 냄 새”(60)에 이르기까지 부패해가는 세부 사항들을 지나치게 꼼꼼히 묘사한다.

양 교수의 몸의 이런 부패는 소설 전반에 걸쳐 진이 1980년대 후반 중국을 안팎에서 썩어가는 기이한 몸으로 비유하게 하는 알레고리로 작용한다. 양 교수의 쇠락해가는 몸 뿐 아니라 양 교수의 광기를 통해 나오는 헛소리, 횡설수설하는 목소리는 루쉰의 광인처럼 궁극적으로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이다. 다시 말해 양 교수는 몸과 목소리 모두를 통해 부패해 가는 중국을 드러내는 알레고리로서 작용한다. 양 교수는 뇌졸중이 발생한 이후 그가 하는 두서없는 말을 통해 중국을 냉소적으로 비판한다. 양 교수는 어느 지점 에서 중국을 “관”(203) 혹은 “피클 통”(206)에 비유하고 있고, 중국인들을 “도마 위의 고기조각”(220) 혹은 “절인 야채”(206)에 비유한다. 양 교수는 지안에게 “그 런 피클 통 속에 들어가면 돌조차 절여져서 그것의 본래 색깔을 잃고 악취가 풍기 기 시작하지”(206)라고 말하면서 부패해가는 중국 혹은 타락해가는 지식인들과 공 산당을 묘사한다. 양 교수는 더욱 영감을 받은 순간 전체주의적 통치 하에서 정신 이 질식해가는 지식인의 삶의 또 다른 불길한 우화를 내뱉는다. 양 교수의 다음의 말은 1980년대의 중국에 대한 더욱 분명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늘 모든 걸 어떻게 끝장낼지 생각하고 있었지. 사무직 일을 끝장내고, 엄하고 노쇠한 부모를 끝장내고, 바가지를 긁어대는 마누라와 버릇없는 아이들을 끝장내고, 애인 칠라를 끝장내고, . . . 매일매일 계속되는 삶의 끝없는 걱정과 비참함을 끝장 내고, 벌건 대낮의 악몽들을 끝장내고, 간단히 얘기해서, 자신을 끝장내서 이 세상 을 떠날 수 있도록 말이야. . . . 하지만 그 자는 문도 없고, 창도 없고, 가구도 없 는 방에 살고 있지. 그러한 감방에 갇혀 자신의 목숨을 끝장내야 하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직면한 거야. . . . 설상가상으로 그 방이 어디 있는지, 도시에 있는지, 시골에 있는지, 집에 있는지, 지하에 있는지 알 수 없어. 그런 상황에서 그는 살 수 밖에 없어. . . . 그러므로 그는 파괴할 수 없는 고치에 갇힌 벌레처럼, 계속 살아가 야 하는 운명인 거지.”5

5 이 논문에서 광인에 대한 번역은 필자의 번역이기는 하지만 왕은철 번역(시공사, 2007)을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All the time he has been thinking how to end everything, to be done with his clerical work, done with his senile, exacting parents, done with his nagging wife and spoiled children, done with his mistress Chilla. . . . [how to] be done with the endless worry and misery of everyday life, down with the nightmare in broad daylight―in short, to terminate himself so that he can quit this world. . . But he lives in a room without a door or a window and without any furniture inside. Confined in such a cell, he faces the insurmountable difficulty of how to end his life. . . . What’s worse, he cannot figure out where the room is, whether it’s in a city or in the countryside, and whether it’s in a house or underground. In such a condition he is preserved to live. . . . He’s thus doomed to live on, caged in an indestructible cocoon like a worm.” (Crazed 16-18)

이 비유적인 “감방”과 “파괴할 수 없는 고치”의 함축적인 알레고리는 의심할 바 없이 중국이다. 1980년대 정치적으로 느슨한 풍토 속에서 이 이야기의 남성은 부모와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무원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고, 심 지어 서양식 이름의 애인을 둘 수 있고, 가죽 벨트도 가질 수도 있다. 외적인 모든 상황으로 보자면 중국은 자본주의화 되고 있고 그 남성은 부르주아적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양 교수의 시각에서 이 현재의 상황은 문화혁명기보다 더 교활하게 힘을 빼앗기고 있다. 적어도 문화 대혁명 시기에는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권 한과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양 교수의 얘기처럼 “자신의 목 숨을 끝낼” 자기결정권도 완전히 박탈당하고 있다. 더 이상 도시 생활과 시골 생 활 사이의 어떤 감지할만한 차이는 없다. 전에 중요한 모든 지정학적 차이는 현대 시대의 균일성의 관점에서는 사라졌다. 모든 것은 안락해졌고, 모든 것은 단지 “살 도록 보호되어진다”(18). 양 교수의 몸과 비슷한 고치/감방은 여러 의미를 함축한 다. 개인적으로 “고치/감방은 양 교수의 병실”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거시적 수준 에서 중국을 비유하고, 동시에 광인의 배경이 되는 지방과 양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을 상기시킨다”(Kong 96). 그 병실에서 양 교수는 표면상 “국가의 보물” 로 간주되면서 국가의 보살핌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밝은 대낮에” 악화되도록 거의 방치된다(Crazed 7). 양 교수는 필사적으로 지안에게 “어떻게 내가 이 질식 시키는 방, 파괴할 수 없는 고치, 이 절대적인 관에서 나갈 수 있을까? 어떻게 내 영혼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 나는 벌레처럼 죽고 싶지는 않아”(203)라고 외치고 있지만 그의 모습은 어떤 권한도 갖지 못한 채, 발가벗겨진 지식인의 모습이다. 민 330 정 은 숙 족적 알레고리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양 교수의 이런 외침은 한편으론 루쉰이 중국 을 “절대 파괴될 수 없고, 창도 문도 없는 감방”으로 표현했던 유명한 비유를 상 호 텍스트적으로 상기시키면서 중국은 지식인에게 전혀 탈출구가 없는 질식의 공 간임을 부각시키고 있고, 루쉰의 시대부터 마오쩌둥 이후의 시기까지 전혀 달라진 것이 없고, 오히려 현재 더욱 악화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진은 광인의 다른 부분에서 루쉰의 감방 비유를 다시 씀으로써 루쉰의 정치화된 예술을 거부하고 있다. 양 교수가 입원한 샌닝 병원(Shanning Hospital) 의 병실을 같은 과의 동료교수가 방문하여 양 교수와 대화를 나누는 다음의 장면 은 루쉰의 친구가 “베이징의 샤오싱 호스텔(Shaoxing Hostel)에 머무는 루쉰을 방 문한 것”(Lu Xun “Preface” 26)과 서로 병치를 이룬다. 두 교수간의 대화는 화자 인 지안이 엿듣는 방식으로 묘사된다. 이 대화에서 양 교수의 동료교수는 양 교수 에게 그가 평소 맡았던 일이 양 교수가 부재한 동안 다른 교수들에게 적절하게 재 배분되었다는 것을 설명할 때, 양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인 임무를 국가의 통제를 받는 “사무원의 일”로 묵살하면서 중국에서 진정한 지식추구는 무의미하다는 주장 을 한다.

“중국에서 누가 지식인이란 말이오? 우습지. 대학교육을 받은 누구라도 지식인이란 것이. 사실 인문학 분야의 모든 사람들은 사무원들이고, 과학 분야의 모든 사람들은 기술자들이오. 누가 진짜 독립적인 지식인이며, 독창적인 생각을 하고 있으며, 진실 을 얘기하는지 내게 말해보시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아무도 없소. 우리는 모두, 국가의 관리를 받는 벙어리 일꾼이자 퇴행적인 종이오.” “그럼 당신은 학자가 아니란 말이오?” “얘기했잖소. 나는 그저 사무원에 불과하고, 혁명이라는 기계의 나사 하나에 지나지 않소. . . . 우리는 똑같은 부류이고, 같은 운명에 처해있고, 모두는 야만성과 비겁 함에 빠지고 있어. 이제 이 나사는 다 닳았으니 다른 나사로 교체해야만 해. 그러니 날 없는 것으로 쳐.” “Who is an intellectual in China? Ridiculous, anyone with a college education is called an intellectual. The truth is that all people in the humanities are clerks and all people in the sciences are technicians. Tell me, who is a really independent intellectual, has original ideas and speaks the truth? None that I know of. We’re all dumb laborers kept by the state―a retrograde species.” “So you’re not a scholar?” “I told you, I’m just a clerk, a screw in the machine of the revolution. . . . We are of the same ilk and have the same fate, all having relapsed into savagery and cowardice. Now this screw is worn out and has to be replaced, so write me off as a loss.” (The Crazed 153)

이에 동료 교수가 지안과 같은 젊은 세대의 학자들이 “개선할” 것이고 “우리 [노인들]의 실수와 상실에서 배울 것”이라고 주장할 때 양 교수는 냉소적으로 “지 안은 기껏해야 고위 사무원이 될 뿐이야”(154)라고 반박한다. 그런 뒤 양 교수는 지안에 대해 “결국 이 곳에서 필경사가 되지 않도록 가능한 빨리 이 감옥(iron house)을 떠나는 편이 낫소. 우리나라에서 어떤 학자도 사무원이 아닌 삶을 살 수 는 없소. 우리 모두는 영혼 없는 기계요”(154)라고 결론 내린다. 이 부분은 광인 에서 진이 가장 직접적으로 루쉰을 상기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양 교수가 이야 기하고 있는 당의 통제를 받는 사무원에 대한 함축은 진이 루쉰에 대해 피력했던 견해를 떠올리게 한다. 진은 루쉰이 “문화와 예술을 정치아래”(“Introduction” xiv) 에 둠으로써 문학과 예술이 공산주의의 도구가 되었다고 주장한 바와 같이, 루쉰 은 결국 공산주의자들의 완벽한 도구가 됨으로써 큰 야망에도 불구하고 결국 “필 경사에 불과”했고, “혁명이라는 기계의 나사 하나”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양 교수는 바로 루쉰의 후예라 할 수 있다. 진은 양 교수의 말을 빌어 루쉰의 공 화정시대 이후 지식인의 노동의 덫은 변했을 수도 있고, 혁명은 학계를 바꿀 수도 있지만 “국가의 관리를 받는 벙어리 일꾼”으로서 국가의 도구가 된 지식인의 본질 적인 역할은 마오쩌둥 이후 시대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루쉰이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광인일기 를 썼듯이, 두 교수의 대화는 지안에게 깊은 통찰의 순간을 제공한다. 처음으로 지안은 스승인 양 교수가 박사학위를 따 려는 그의 노력을 완전히 승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은 지 안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학자가 되겠다는 이전의 생각이 사라지고 이미 노쇠했으면서도 끝없이 뭔가를 끄적이는 무기력한 사무원의 모습이 그 자리를 차 지했다”(158-59)고 생각하게 하는 것처럼 소설의 나머지 부분에서 지안의 삶의 과정을 극적으로 바꾸는 자기의심의 과정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지안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양 교수의 마지막 유언은 그의 삶 동안 축적된 비 통함을 증언한다.

양 교수는 “기억하고, 내 복수를 해다오, 그리고 . . . 그들 중 아무도 용서하지 마. 그들 모두를 죽여 버려!”(260)이다. 양 교수는 외국 시를 번 역했던 것 때문에 문화혁명기 동안 “악마-괴물”(73)로 낙인찍히고, 공개적으로 비 난당하고, 아내 및 어린 딸과 헤어져 몇 년 동안 시골에서 재교육을 받도록 추방 되어진다. 또한 양 교수는 젊은 대학원생과 연인관계를 유지한 것 때문에 협박에 시달리기도 하고(217), 펭 잉(Peng Ying) 서기의 조카가 양 교수와는 전공이 전혀 다른데도, 그 조카가 캐나다로 유학 가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서를 쓰라 는 당 서기 펭의 협박에 시달려야 했고(216), 동료 교수들의 견제와 암투 때문에 캐나다 학회에 다녀온 뒤 당에서 지원받은 학회비를 모두 갚으라는 협박에 시달리 기도 한다(219). 그런 점에서 양 교수와 같은 지식인들을 괴롭히는 공산당 간부나 다른 동료 교수들 역시 알레고리적인 의미에서 중국이다. 루쉰의 광인일기 의 식 인자들처럼 서로를 감시하며 서로를 잡아먹는 공산주의 하의 중국인 것이다. 양 교수는 과거의 고통에 심하게 시달리다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증 오를 해결하지 못한 채, 가정 및 직업 생활 모두에서 지성인으로 느끼는 무력감과 자기혐오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하 진은 양 교수의 실패는 도덕적이거나 개인적 인 것이 아니라 사회역사적이고 구조적인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정치적 관심과 물질적 이익에 굴하지 않고 진심으로 문학 연구에 몰두했지만 결국 양 교수가 실 패하는 것은 그의 세대가 중국의 황폐한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에서 유래 하고, 순수지식을 쫓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이에 맞춰 살 수 없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그런 점에서 양 교수는 비유적으로 공산주의 사회에서 국가권력과 폭력에 희생된 개인이자 지식인으로 읽혀진다. 따라서 양 교수를 통해 드러나듯이 광인에서 공산주의의 역사는 이상을 뒤로 한 채 육체와 정신 모두 를 효과적으로 잠식해왔고, 치명적으로 저절로 붕괴해가는 한 남성, 한 국가의 외 피만을 남긴다. 양 교수의 뇌출혈은 그의 평생의 고통이 뒤늦게 나타난 징후이듯이 1989년 텐안먼 사태는 루쉰의 시대이후 거의 70여 년 동안 계속되어온 국민들의 심리적 스 트레스가 축적되어 폭발한 결과이고, 그런 점에서 중국의 정치적 병증에 대한 알 레고리를 드러낸다. 지안은 스승의 죽음을 보면서 환멸을 느낀 후 베이징으로 향 한다. 양 교수의 뇌출혈과 텐안먼 사태가 상호텍스트적으로 연계되고 있음에도 불 구하고 지안이 베이징으로 가서 시위에 합류하겠다는 결정은 혁명가로서 숨은 “어 떤 대의명분이나 민주주의 혹은 자유에 대한 꿈”(295)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약혼 녀의 파혼 통보와 양 교수의 죽음이 계기가 된 “주로 개인적인”(295) 이유이다. 지안은 “절망, 분노, 광기, 어리석음”에 내몰린 채 “메이메이에게 겁쟁이”가 아니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베이징으로 간다(295). 진은 광인에서 양 교수의 이야 기가 그랬듯이, 지안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전략적으로 텐안 먼에 대한 노골적인 정치이야기를 피해간다. 그러나 제임슨이 제3세계문학은 “개 인의 이야기 및 경험을 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집단성의 경험 그 자체의 전체적 이고 힘겨운 이야기와 연관될 수밖에”(86) 없다고 주장하듯이, 진을 지안으로 하여 금 텐안먼 사태를 목격하게 함으로써 지안의 이야기는 공적인 정치서사로 바뀐다. 지안과 그의 동료 학생들은 6월 3일 저녁에 베이징 시에 도착한 후 텐안먼 광 장 밖의 거리들이 “모두 봉쇄되어진”(301) 것을 발견하는데, 이는 광인의 제 1 장에서 양 교수의 뇌 혈전의 “폐색(blockage)”(14)을 연상시킨다. 지안은 곧 밀려 드는 인파로 인해 자신의 동료들과 헤어지고 예상치도 못하게 국가 폭력의 현장을 목격하는 증인이 된다. 광장으로 이끄는 거리들 중 한 곳에서 한 대학생은 광장진 입을 막는 군인들에게 어떻게 그들이 “정부에 의해 속임”(302)을 당하고 있는지를 열심히 설득하려 한다. 지안이 군인들과 이 학생이 대면하는 것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이동하는데 성공했을 때, 한 대령이 권총을 꺼내 한 마디의 경고도 없 이 학생의 머리를 쏜다. 그 학생의 뇌가 “아스팔트위에 으깨진 두부처럼 흩어 진”(303) 것을 묘사하는 부분은 끔찍하게도 양 교수의 죽음을 초래했던 두 번째 치명적인 “뇌진탕과 뇌출혈”(257)을 반향시킨다. 지안이 6월4일 이른 새벽 병원에 서 본 풍경은 군인들의 폭력과 시민들의 충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병원은 충격 으로 “정신착란이 된 젊은 여자,” “아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울부짖는 노부부”와 334 정 은 숙 “다친 사람들로 만원이다”(309). 넘쳐나는 시체로 시체보관소에서 수용이 불가능하 자, 병원 주차장이 임시 시체보관소로 변해있고, 그곳에서 지안은 “남녀를 불문하 고 약 스무 구의 시체가 도살당한 돼지들처럼 포개져”(309)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쇳조각, 피 웅덩이, 불에 탄 트럭들과 병력수송차들이 어지럽게 널린 거리는 전쟁 터”(310)를 방불케 하고, “시민들이 아무 무기도 없이 그렇게 많은 군용차들을 못 쓰게 만들었다”(310-11)는 사실에 지안은 놀란다. 결국 “병든 심장 베이징”(295) 혹은 “타락한 정부”(299)로 묘사된 부패해가는 억압적인 중국은 양 교수의 뇌출혈 처럼, 총에 맞은 학생의 “으깨진”(303) 뇌처럼, 결국 “안전밸브가 막혀버렸는데도 끊임없이 열이 가해지는 압력밥솥”(12)처럼 터지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이처럼 민족적 알레고리의 관점에서 볼 때 양 교수의 뇌출혈과 죽음은 텐안먼 사 태의 군중들의 폭발과 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희생과 병치를 이루고 있고, 양 교수 의 광기는 지안의 “광기”(295)를 넘어 “방해하는 놈은 모두 사살하라”고 외치는 “미친” “군인들”(305), “미친 용”(302) 바로 중국의 광기로 치환된다. 그런 점에서 양 교수와 지안의 광기는 곧 개인의 광기를 넘어 역사적으로 문화대혁명시기에서 텐안먼 사태로 이어지는 광기의 시대를 의미하는 민족적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개인적인” 이유로 베이징에 다녀온 지안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체포” 명 령인데, 명목상의 이유는 “반혁명주의자(counterrevolutionary)”라는 죄목이지만, 실 질적인 이유는 “이번 기회에” 지안을 “영원히 제거해버리려는” 당 서기 펭잉의 책 략으로, 그녀는 지안을 “감옥” 혹은 “정신병원”에 보내려는 계획을 세운다(316). 전혀 시위에 가담한 적이 없는 지안이 감옥 혹은 정신병원 행이 예정되었다는 것 은 결국 중국 전체가 질식시키는 감옥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의 알레고리로서 지안 의 위기는 곧 중국인들 혹은 중국의 국가 위기를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제임 슨은 알레고리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의미화”의 “일차원적 관점”에서 벗 어나 “등가관계가 텍스트의 매순간 영원한 현재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변형을” 겪는 “다층적 다의미성”에 있다고 주장하는 바와 같이(73), 양 교수와 지안을 괴롭 히는 펭 서기와 같은 공산당 간부나 아니면 “사무원”이 되어버린 다른 교수들 역 시 알레고리적인 의미에서 부패로 병든 중국이다.

진이 광인에서 묘사하는 중국도 루쉰의 광인일기 의 식인자들처럼 서로를 감시하며 서로를 잡아먹느라 “인간 적인 품위”와 “일말의 존엄성”(319)마저 완전히 잃어가는 야만적인, “광란의” “중 국”(305)인 것이다. 광인의 결말은 어떤 정권이 광란으로 만들어질 때 그 핵심 의 질병 치료는 불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광인의 끝부분에 하 진은 막 미 쳐가는 화자로 하여금 루쉰과 매우 유사한 말로 현대 중국사회를 비난하게 한다.

돌아가는 기차를 탄 후 줄곧 끔찍한 상상이 나를 괴롭혔다. 내 눈에는 중국이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식들을 잡아먹는 노쇠한 미치광이 노파로 보였다. 만족할 줄 모르는 노파는 전에도 많은 어린 자식들을 잡아먹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살과 피를 먹고 있으며, 앞으로 더 잡아먹을 게 분명했다. 이 끔찍한 생각을 억누르지 못 하고 나는 하루 종일 혼잣말을 했다. “중국은 자기 새끼를 잡아먹는 늙은 암캐야!” 머리가 지끈지끈 쑤시고 가슴이 너무 고통스러워 몸서리 처졌다. 이틀 밤 전의 소 동이 아직도 귀에 들렸다. 나는 내가 정신줄을 놓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Ever since I boarded the train back, a terrible vision had tormented me. I saw China in the form of an old hag so decrepit and brainsick that she would devour her children to sustain herself. Insatiable, she had eaten many tender lives before, was gobbling new flesh and blood now, and would surely swallow more. Unable to suppress the horrible vision, all day I said to myself, “China is an old bitch that eats her own puppies!” How my head throbbed, and how my heart writhed and shuddered! With the commotion of two nights ago still in my ears, I feared I was going to lose my mind. (315)

위의 구절은 루쉰의 광인일기 의 식인풍습을 직접적으로 상기시킨다. 루쉰이 공산주의 이전 봉건시대의 악습과 유교의 폐해를 식인풍습의 알레고리를 빌어 중 국에서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면, 진 은 광인의 끝부분에 텐안먼 사태를 목격한 후 막 미쳐가는 화자 지안의 목소리 를 빌어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현대 중국사회를 비난하게 한다. 루쉰의 식인문화 는 진에게로 쉽게 옮아가서 중국 정부의 6월4일 텐안먼 광장에서의 강력한 탄압과 겹쳐진다. 민족적 알레고리에 있어 루쉰의 광인이 자신의 큰형님을 비롯하여 남성 적 식인을 표현했다면, 진의 광인에서 지안은 “노쇠한 노파” 혹은 “늙은 암캐” 의 여성적 이미지로 바꾸고 있다. 루쉰의 식인풍습을 상기시키는 위의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양 교수의 죽음 후 지안은 다시 한 번 깊은 통찰에 이르고 있 고, 이는 지안에게 영원히 조국을 떠날 결심을 하게 한다. 바로 이 부분은 작가 진 의 삶의 이력과 병치되어진다. 지안의 이런 행위는 작가 진이 중국인이 아닌 망명 예술가로서 자신의 우상인 루쉰이라는 민족주의 작가에게서 떠날 깃발을 올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진은 개인의 자유와 지식인의 진정한 지식 추구는 중국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양 교수가 지안에게 “서양 에서 학자들은 훨씬 더 지식인의 생활을 하기” 때문에 “넌 미국대학에서 박사학위 를 받은 후 [미국에서] 실제 지식인의 삶을 살 수 있어”(104-05)라고 조언했던 것 처럼, 지안은 스승이 걸었던 “예정된 운명에 도전”하여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의 지를 굳히고 행동에 옮기고 있다(321). 이런 깨달음의 순간 지안은 이제 중국을 영원히 떠나 우선 “홍콩”으로, 그런 뒤 아마 “캐나다나 미국 아니면 호주, 아니면 중국어가 널리 사용되는 남동 아시아의 어떤 곳”(332)으로 갈 결심을 한다.

루쉰이 광인일기 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를 구해다오!”라는 외침으로 희망과 절망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면, 진은 광인의 마지막 부분에서 양 교수로 대변되는 과거 지식인의 길, 바로 루쉰이 걸었던 길에만 몰두했던 지안에게 그런 길에서 벗어난 다른 계몽의 길, 다른 지식인의 길을 추구하게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을 떠 나는 길이다. 이제 지안에게 망명의 자유, 중국이 아닌 해외에서 민족의 대변인이 자 지식인으로 돌아갈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IV. 결론: 제 3세계문학을 넘어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 논문은 루쉰의 광인일기 와 진의 광인에 나타나는 민족적 알레고리를 분석해보았다. 루쉰과 진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인 광 인의 이야기는 정신질환을 앓는 개인의 사적 이야기인 것 같지만 중화민국의 수립 시기에서부터 중국의 문화대혁명시기, 마오쩌둥 이후 중국의 텐안먼 사태로 이어 지는 시기의 중국의 병적 상황을 알레고리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제임슨이 말한 민족적 알레고리 구조를 가진 작품으로 읽기에 적절하다. 물론 “제3 세계의 모든 텍스트들은” 반드시 “민족적 알레고리”(69)로 읽을 수 있다는 제임슨 의 주장은 후에 여러 비평가들의 비판을 초래했으며 “제1세계 비평가들이 제3세계 문학을 연구할 때 피해야 할 전형적인 한 예”(Szeman 803)로 받아들여지기도 한 다.

대표적으로 아이자즈 아마드(Aijaz Ahmad)는 자신의 저서 이론적으로(In Theory)에서 제임슨을 비판하고 있다. 아마드는 제3세계를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를 경험”한 것에 근거하여 규정하고, 반면에 제1세계와 제2세계를 자본주의 및 사 회주의 생산 방식에 근거하여 구분하는 것의 약점과 모순을 드러낸다. 아마드는 “기술적인(descriptive) 의미”로 “제3세계”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는 제임슨의 설명 에 대해 그런 기술(description)은 결코 이데올로기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중립적이 지 않은데도 식민지 주체를 구분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식민주의 담론 속에서 사용되어진다고 반박한다(101). 그런 점에서 아마드는 제임슨의 민족 적 알레고리 이론이 용어 사용에서부터 제국주의적 시각에 바탕을 둔 식민주의 담 론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제기하고 있고, 그러므로 제임슨의 이론에 대한 성찰 또한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더 나아가 아마드는 “이데올로기 의 영역(민족주의) 및 문화적 생산(민족적 알레고리)”을 결정하는 “독특하고 유일 한 결정 요인을 소유한 제3세계라는 단일한 집단”이 존재한다는 가정 자체를 부인 한다(119). 아마드의 이런 주장은 비서구권의 모든 작품들을 제임슨의 이론으로 분 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한, 일차원적인 미학 속에 가둠으로써 비서구권 문학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퍼트릴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잘 간파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아마드가 지적하는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임슨의 제3세계 문학론은 정전(canon) 논의가 한참이던 1980년대에 제1세계의 독자들과 작가들에게 그들의 문학적 나르시시즘을 비판하면서 제3세계 문학과 문화에 대한 가치 및 관심을 불 러일으키고, 제3세계 문학을 읽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즉, “제1세계, 무엇보다도 미국의 문화제국주의”(Jameson 88)에 대한 대안 적 수단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긍정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제 임슨의 제3세계문학론에 대한 비판은 제임슨이 “불명예스럽게도”(Szeman 806) 제3세계의 텍스트 앞에 ‘모든’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제3세계 문학의 일반적인 이론 을 만들어내려는 그의 욕망에 기인한 부분도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일반화에서 벗어난다면 제임슨의 이론은 제3세계 문학을 독해하는 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특 히 살펴본 바와 같이 루쉰과 진의 작품을 제임슨의 이론에 근거하여 분석하는 것 은 중국의 정치적 상황을 읽어내는데 매우 유용한 이론 틀이라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루쉰과 진의 작품에서 개인의 운명은 항상 국가의 운명과 시대의 변화와 뒤 섞이고 있고, 개인의 존재는 국가 혹은 집단의 기억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런 이유 때문에 루쉰과 진의 두 소설에 대한 알레고리적 독해는 개인에 대한 텍스 트를 읽는 것이 그 시대, 그 나라의 변화에 접근하는 한 방식을 드러내기에 적절 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진의 광인은 내용면이나 서사방식에 있어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민족적 알 레고리를 드러내는데 있어 선배 작가 루쉰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여러 면에서 광인의 양 교수와 지안은 모두 작가 진을 재현하고 있다. 만일 진이 중국에 남 아있다면 국가의 통제를 받는 “사무원”으로서 양 교수와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고, 루쉰의 후예로서 “혁명이라는 기계의 나사 하나”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또 다른 삶은 바로 지안의 삶으로서 현재 작가 진의 삶처럼 중국을 떠나는 삶이다. 그런 점에서 광인은 작가 진의 사적인 삶의 견지에서 보자면 두 주인공을 빌어 자신 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진 자신이 텐안먼 사태로 인해 중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듯이, 지안은 텐안먼 사태로 인해 중국을 떠나는 선택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안이 중국을 떠나는 것은 작가 진이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에 대한 설명이자 변명으로 읽힌다. 결국 지안은 루쉰의 감방에서 큰 소리로 고함쳐 서 깨우는 “깊이 잠들지 않는 사람들(lighter sleepers)” 중 한 사람과 비슷하지만 자신의 동포들을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운명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감옥을 파괴하 기보다는 진에 의해 다른 길, 바로 감옥/중국 밖으로, 민족정치의 중심무대에서 도 망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살펴본 바와 같이 광인에서 양교수와 지안을 통해 보이는 지식인들의 고통 받는 이야기, 즉 1912년 중화민국의 탄생 이후 마오쩌둥 시대를 거쳐 텐안먼 사태까지로 이어지면서 지식인들이 계속해서 여전히 고통 받는 이야기는 서구의 많은 독자들에게 호소력이 있어왔고, 중국 공산주의 시대의 불안과 부패의 연속성 을 읽게 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서구의 독자들에게는 민족적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또한 진이 텐안먼을 주제로 선택한 것은 전체주의적 국가권력에 명백히 대립하는 사람으로서, 국가권력에 희생된 사람으로서 진을 드러내게 할 뿐 아니라 서양에서 텐안먼에 대한 글을 쓰는 행위는 공산주의 정권의 검열을 도전적으로 비 난하는 것이 되고, 서구의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표현의 자유를 함축적으로 정당화 하는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루쉰의 광인일기가 중국에서 중국 인민의 각성과 중국 근대화에 매진하려는 계몽적 목적이 강했다면 진의 광인은 중국 밖에서 중국의 병증과 위기를 드러내는 민족적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주제어: 루쉰, 하진, 광인일기 , 광인, 민족적 알레고리, 상호텍스트성

Works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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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National Allegory and Intertextuality in Lu Xun’s “Diary of a Madman” and Ha Jin’s The Crazed Eunsook Jeong (ChungAng U) :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ompare and contrast the national allegory and intertextuality in “Diary of a Madman” by Lu Xun and The Crazed by Ha Jin. The paper is based on Fredric Jameson’s theory that, unlike first world literature, third world literature frequently takes the form of a national allegory. Jameson uses the Chinese novelist Lu Xun as an illustration of national allegory to support his theory. The first person narrator of “Diary of a Madman” by Lu Xun uses cannibalism as a metaphor to disclose the oppressive and corrupt nature of Chinese feudal society and Confucian culture. Ha Jin’s The Crazed is comparable to Lu Xun’s work in that both authors use deranged protagonists to disclose profound insights about the plight of intellectuals as ethnic-national spokespersons. The insanity of main characters in the works of Lu Xun and Ha Jin enables them to disclose the truth about their respective societies. In addition, Ha Jin’s The Crazed is set in the post-Mao era and depicts the communist state’s exploitation, corruption, and cruelty. This work evokes Lu Xun’s celebrated national allegory, “A Diary of a Madman.” Similar to Lu Xun, Ha Jin uses a primary character, Professor Yang, who suffers a stroke and subsequently becomes delusional and insane, as a national allegory to illustrate China’s failure of historical retrospection. Ha Jin uses his narrator, Jian, who goes insane at the end of the novel, as well as Professor Yang, to criticize modern China as being comparable to Lu Xun’s time. In order to disclose a national allegory, Ha Jin uses the same imagery as “iron house” or “cannibalism,” which were used by Lu Xun to depict China to describe China.

Key Words: Lu Xun, Ha Jin, “Diary of a Madman,” The Crazed, national allegory, intertextuality

Notes on Contributor: Eunsook Jeong is associate professor at Chung-Ang University. She teaches English. She has published articles on Asian American writers. She is currently working on Asian American Novels.

Received: Feb 27, 2023 / Reviewed: Mar 07, 2023 / Accepted: Mar 10, 2023

루쉰의 「광인일기」와 하진의 『광인』에 나타난 민족적 알레고리와 상호텍스트성.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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