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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영적 각성에 대한 교부신학적 재고: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이충만. 고려신학대

1 서론

한국교회사 연구에서 ‘영적 각성’(spiritual awakening)이라는 용어는 1903년 원산부흥운동,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그리고 1909년 백만인 구 령운동 등 20세기 초 한국 교회에 있었던 부흥운동과 관련되어 사용되었 다. 이 세 차례 부흥운동을 세계사적 부흥운동의 흐름 안에서 연구한 박용 규 교수는 이런 부흥운동을 “영적 각성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2

2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의 성격과 의의,” 「한국기독교신학논총」 46/1 (2006): 281. 박용규 교수의 영적 각성 운동으로서의 부흥에 대한 교회사적 연구에 대한 개관은 다음을 참고 하라. 김요섭, “진정한 영적 각성, 새로운 부흥을 향한 열망: 박용규 교수의 부흥운동 연구 고찰,” 「신학지남」 87/2 (2020): 75-116.

특히 박용규 교수는 “평양대부흥운동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회개로 특징되는 성령 에 의한 영적 각성 운동”이었음을 강조하였다. 3

그렇다면 ‘영적 각성’을 부흥운동과 관련하여 이야기할 때, 이 용어는 무 엇을 의미하는가?4

교회사가인 심창섭 교수는 독일 경건주의, 영국의 복 음주의 부흥운동, 그리고 미국의 대각성 운동 등 근대교회의 부흥운동을 영적 각성으로 이해하면서 이런 부흥운동의 네 가지 신학적 의의를 정리 하였다. 5

3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의 성격과 의의,” 294.

4 이상규 교수는 영적 각성을 “인간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포괄 적인 개념으로서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생명(life)과 각성(awakening), 곧 살 아나고 깨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면서 키드 하드만을 따라, 영적 각성과 부흥을 동의어로 간주한다. 이상규, “영적 각성과 사회변화: 영적 각성은 사회변화를 동반하는가?” 「개혁논총」 65 (2023): 12; Keith Hardman, Seasons of Refreshing: Evangelism and Revivals in America, 박응규 역, 『부흥의 계절』 (서울: CLC, 2006), 17.

5 심창섭,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기원과 신학적 의의,” 「신학지남」 73/2 (2006): 123-125.

6 심창섭,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기원과 신학적 의의,” 129; 평양대부흥운동과 관 련하여 김성욱도 네비우스 선교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성욱, “1907년에 대한 한국 교회사적 의미,” 「개혁논총」 22 (2012): 275, 281. 김성욱은 평양대부흥운동과 함께 1902년에 시작된 평양신학교의 제1회 졸업생 7명이 배출된 것과 교회를 바르게 지도할 노회(독노 회)의 설립, 그리고 교회의 중요한 기초인 신앙고백(12신조)의 채택을 1907년의 교회사적 의미로 강조한다. 김성욱, “1907년에 대한 한국교회사적 의미,” 279-283.

첫째, 근대교회의 부흥운동은 경건주의 부흥운동으로 신앙의 내 면화와 개인적 회심 체험과 생활의 경건을 주장하였다.

둘째, 부흥운동은 성령의 특별한 역사에 의한 신앙 회복 운동이었다.

셋째, 부흥운동은 소그 룹 운동에 기인하는 개인의 회심과 신앙에 대한 각성을 열망하는 운동이 었다.

넷째, 부흥운동은 부패한 사회적 현상에 반하여 개인의 도덕적 삶과 성경적 삶을 가져왔다.

이런 신학적 의의는 1907년 평양대부흥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심창섭 교수는 주장한다.

평양대부흥은 네비우스 선교 정책을 따라 “성경공부 중 심의 사경회와 기도회를 통한” 부흥운동이었고, 6 “학문적인 지적 깨달음 과는 무관한 성경공부와 기도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운동”이었다. 7

또 한 “대부흥운동은 단순한 죄의 고백과 은혜의 체험에 그친 것이 아니라 … 말씀을 통한 회개와 기도 운동으로 실생활의 회개를 가져온 영적이며 도 덕적인 개혁운동”이었다. 8

요약하자면, 근대교회의 부흥운동과 평양대부 흥을 일으킨 영적 각성은 정통주의와 합리적 주지주의에 반하여 성령의 능력에 의한 개인 내면의 회개 체험과 이에 기인한 도덕적 삶의 개혁 운동 을 의미한다.

박용규 교수도 영적 각성에 대해 심창섭 교수와 비슷하게 정의한다.

앞 서 인용하였듯이, 평양대부흥운동과 같은 한국 교회 부흥운동은 영적 각 성 운동으로서 “성령의 임재 속에서 기도와 말씀과 회개”가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9

특히 박용규 교수는 한국 대부흥운동에 대한 비정치화 해석에 반대하면서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진 사경회의 중요성 을 강조하였다. 10

박용규 교수에게 영적 각성은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성 령께서 일으키시는 회개이다.

이런 박용규 교수의 이해는 영적 각성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이해 를 덧붙여 확장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박용규 교수에 따르면 평양대부 흥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가 주도한 제1차 대 각성운동과 가장 유사하기 때문이다. 11

7 심창섭,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기원과 신학적 의의,” 130.

8 심창섭,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기원과 신학적 의의,” 131.

9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의 성격과 의의,” 281, 294.

10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의 성격과 의의,” 315.

11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과 산정현교회(1901-1910),” 「신학지남」 74/4 (2007): 98; 김요섭, “진정한 영적 각성, 새로운 부흥을 향한 열망,” 100에서 재인용.

에드워즈에게 영적 각성으로서의 참된 부흥은 진정한 회개와 영적이고 도덕적인 삶의 회복이었다. 12

양낙흥 교수에 따르면, “에드워즈는 기독교적 행실이야말로 어떤 신앙고백자가 참 은혜를 받은 사람임을 나타내는 ‘가장 고유한(the most proper) 증거’이 며 은혜의 모든 표징들 중 ‘으뜸’이며, ‘표지들 중 표지’이며 ‘증거들 중 증 거’로서 모든 다른 표지들을 인치고 관 씌우는 것이라 강조한다.”13

박응규 교수는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이러한 기독교적 덕의 행실이 에드워즈 신학 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종교적 정서’(religious affections)와 직결됨을 바르 게 지적한다.

‘종교적 정서’로서의 성품의 변화에 기인하는 기독교적 덕의 실행이 참된 영적 각성과 부흥의 열매이다. 14

최근 이상규 교수는 영적 각성과 사회변화의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진 정한 영적 변화는 개인, 교회, 그리고 사회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규명한 기 존의 연구를15 이어가면서 “영적 각성과 부흥 운동 과정에서 사회개혁 혹 은 사회변혁의 프로그램이 있었는가?”를 질문하였다.

12 문석호, “영성 : 진정한 부흥과 영적 각성 요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의 영 적 각성을 중심으로,” 「신학지남」 72/4 (2005): 157.

13 양낙흥,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적 윤리사상,” 「개혁신학과 교회」 15 (2003): 132.

14 박응규, “Dialogue on Conversion between Jonathan Edwards and Charles Finney,” 「개혁논총」 16 (2010): 292-294. 이상규 교수는 존 브랏(John Bratt)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장 칼뱅이 “도덕적 함양, 윤리적 생활을 통해 기독교적 삶을 강조”한 것에 주목하였다. 이 상규 교수에 따르면, “칼빈에게 있어서 지속적인 윤리적 행위에 의해 드러나는 경건한 삶 은 구원받은 자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결과였다.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의 값없 이 주신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참된 의와 경건은 칼빈이 추구하는 목표였다.” 이 상규, “개혁신학과 한국교회 개혁교회의 사회적 책임,” 「갱신과 부흥」 10 (2012): 185; John Bratt, The Rise and Development of Calvinism (Grand Rapids: Eerdamans, 1963), 29-33.

15 이상규 교수는 티머시 스미스(Timothy Smith), 윌리엄 맥노흘린(William McLoughlin), 그리고 조지 토마스(George Thomas)를 언급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서지 정보는 이상 규, “영적 각성과 사회변화: 영적 각성은 사회변화를 동반하는가?” 「개혁논총」 65 (2023): 10을 보라.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는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와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로 대표되는 18세기 영국의 복음주의적 각성운동, 조나단 에드워즈로 대표되는 미국의 제1차 각성운동, 찰스 피니(Charles G. Finny, 1792-1875)로 대표되는 미국 제2차 각성운동, 그리고 1903년과 1907년 한국의 부흥운동을 살폈다. 16

이런 역사적 탐구로부터 이상규 교 수도 성경 말씀의 선포, 기도, 그리고 죄의 고백으로 특징지어지는 영적 각 성 운동이17 “사회 개혁이나 사회변혁을 위한 구상이나 프로그램을 제시 하지 않았지만 한 개인의 영적인 변화와 각성은 개인의 삶과 세계관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교회와 사회에 영향을 주었음”을 강조한다. 18

16 이상규, “영적 각성과 사회변화: 영적 각성은 사회변화를 동반하는가?” 21-51.

17 이상규, “영적 각성과 사회변화: 영적 각성은 사회변화를 동반하는가?” 14-20. 18 이상규, “영적 각성과 사회변화: 영적 각성은 사회변화를 동반하는가?” 52.

이상 살펴본 교회사적 연구를 요약하자면, 영적 각성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께서 특별히 일으키시는 회개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덕스러운 삶의 회복이다.

영적 각성에 대한 이러한 교회사적 연구는 두 가지 측면에 서 보완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첫째, 영적 각성을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의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영적 각성에 대한 교회사적 연구는 영적 각성을 부흥운동과 긴밀하게 연결하여 자칫 교회사적 사건으로만 인식하 도록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될 때, 영적 각성은 특정 시기와 지역에서 성령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에 의해 일어난 개별 사건 혹은 운동이 된다. 그러나 회개와 그리스도를 닮은 기독교적 덕을 행하는 삶으로서의 영적 각성은 개별적 부흥운동이기에 앞서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의 내용이다.

둘째, 영 적 각성과 기독론적 믿음의 관계를 보다 분명하게 정립해야 한다.

영적 각 성에 대한 교회사적 연구는 회개와 삶의 변화를 일으키시는 성령 하나님 의 역사를 강조한다.

성령 하나님에 의한 특별하면서도 개별적인 체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기독교의 보편적인 믿음 보다 연구의 관심을 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영적 각성의 실마리일 수 있어도 그것의 내재적 원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기독론적 믿음과 내재적 관계 성을 상실한 성령의 사역은 신학적으로 불가능하다. 19

본 논문은 이 두 가지 문제의식을 다루고자 한다. 본고는 회개와 그리스 도를 닮은 덕스러운 삶으로 요약되는 영적 각성은 신학적 인간론의 본질 적 요소이기에 진정한 영적 각성은 개별적이고 특별한 교회사적 사건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보편적 믿음의 내용임을 보이고자 한다.

또한, 본고는 신 학적 인간론의 본질적 요소인 영적 각성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 가능함을 보임으로써 영적 각성과 기독론적 믿음의 내재적 관계를 규명하 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교부신학에서 도움을 얻고자 한다. 왜냐하면 교부들 의 신학 전통은 진정한 영적 각성이 인간론의 본질적 요소이며, 그 영적 각 성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 가능함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교부들 중 신학적 인간론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큰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Gregory of Nyssa, c.335–c.395)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354-430)가 연구의 대상이다.

두 교부의 인간론을 탐구하고 비교 분석하여 도출되는 공통점이 영적각성을 기독론적 믿음에 기초한 신학적 인간론의 본질적 요소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20

19 본고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리키기 위해 ‘기독론적 믿음’이라는 용어를 사용 한다. 이것은 믿음이 그리스도의 사역뿐만 아니라 그분의 인격의 신비와 직결됨을 강조하 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위격적 연합에 대한 믿음이 가시적인 피조물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비물질적인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근본적인 영적 각성을 가능하게 만든다.

20 영적 각성과 관련한 본고의 그레고리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연구는 다음의 연구에 기초하고 있다. 이충만,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생명에 대한 교부신학적 이해,” 『죽음의 시대를 넘어 생명 신학』, 정미현 편 (서울: 동연, 2023), 115-146; “‘오직 성서’에 대 한 교부신학적 변론: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상승의 해석학을 중심으로,” 「조직신학논총」 70 (2023): 165-202; Chungman Lee, “Beyond the Realistic-Ethical Distinction in Deification: Reconsidering Norman Russell’s Assessment of Gregory of Nyssa,”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24 (2022): 140-55; 이충만, “Deification and Covenant: Gregory of Nyssa’s Thought on Deification,”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17 (2020): 103-124.

2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2.1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인간 창조에 관하여』(De opificio hominis) 21에 서 모세가 기록한 창조 순서(avkolouqi,a)의 교훈에 따라 인간론을 개진한 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 이유는 인간이 세상의 놀라운 것들을 지켜보는 자(qeath,j)와 다스리는 자(ku,rioj)가 되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을 즐김(avpo,lausij)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의식 (su,nesij)을 가지며, 하나님의 형언할 수 없는 능력(du,namij)을 찾고 즐기 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22

이것은 인간이 몸(sw/ma)과 영혼(fukh,)으로 창조 되어야 할 이유를 가르쳐 준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다스리고 즐 기기 위해 감각적 몸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지성적 실재인 하나님을 즐거 워하기 위해 영혼이 필요하다.

인간은 물질과 지성적 실재인 하나님이라 는 “두 세계에 닿아 있다.”23

21 De opificio hominis (= Op hom; PG 44, 133D). 그레고리우스의 인간론을 집약적으 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그레고리우스의 시대까지 첫 신학적 인간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Jean Daniélou, “Introduction,” in La création de l’homme, trans. Jean Laplace, Sources Chrétiennes 6 (Paris: Cerf, 2016), 6. 본고에 사용되는 그레고리우스의 작품명과 그것의 축약은 Friedhelm Mann, ed., Lexicon Gregorianum: Wörterbuch zu den Schriften Gregors von Nyssa (Leiden: Brill, 1999-2014)를 따른다.

22 Op hom (PG 44, 133A).

23 In canticum canticorum (= Cant) 11 (PG 44, 1009A).

인간이 몸과 영혼으로 창조된 것을 설명한 그레고리우스는 창세기 1:26 을 주석하기 위해 창조 순서로부터 인간론의 또 다른 측면을 설명한다.

창 세기 1:26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은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 지성적 실재이다.

몸과 영혼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하나님의 형 상일 때, 이것은 엄밀하게 지성적 실재인 영혼에 해당한다. 인간이 제일 마 지막에 창조됨을 알려 주는 창조 순서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설명도 하고 있다.

창조 순서는 인간 영혼이 생장적 능력, 감각적 능력, 그리고 지성적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가르친다. 24

생장적 능력은 식물의 것으로 감각적 능력은 결여한다. 25

감각적 능력은 동물적인 것이다.

동물은 식물처럼 생 육할 뿐만 아니라 감각적 활동(aivsqhtikh, evne,rgeia)을 하며 지각(avnti,lhfij) 할 수 있다. 26

이 두 가지 능력에 더하여 인간 영혼은 지성적(logiko,j) 능력 을 갖춘다.

인간 영혼은 이성에 참여하고 지성으로 인도된다(lo ,gou mete,cousa, kai. nw|/ dioikoume,nh).27

이와 같은 영혼 이해는 바울에 대한 그 레고리우스의 해석으로 연결된다.

바울이 몸(sw/ma), 영혼(fukh,), 그리고 영(pneu/ma)에 주신 은혜를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보존할 수 있도록 기도 하라고 부탁하였는데(엡 4:23; 5:18; 살전 5:23), 이때 몸과 영혼과 영은 각 각 영혼의 생장적 부분(qreptiko,n me,roj), 감각적 부분(to. de. aivsqhtiko.n), 그리고 지성적 부분(to. noero.n)과 관련된 것이라고 그레고리우스는 이해 하였다. 28

24 『육일 창조에 관하여』의 핵심 주제는 창조 기사의 순서에 대한 해설이다. Charlotte Köckert, Christliche Kosmologie und kaiserzeitliche Philosophie : Die Auslegung des Schöpfungsberichtes bei Origenes, Basilius und Gregor von Nyssa vor dem Hintergrund kaiserzeitlicher Timaeus-Interpretationen, Studies and Texts in Antiquity and Christianity 56 (Tübingen: Mohr Siebeck, 2009), 400-526.

25 Op hom (PG 44, 144D).

26 Op hom (PG 44, 145A). 27 Op hom (PG 44, 145A). 그레고리우스가 영혼의 3가지 기능을 가르친 아리스토텔레 스를 공부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De anima et resurrectione (Krabinger, 42)에서 그레고 리우스는 영혼이 사멸한다고 이해하게 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 이해를 비판한다. Aristotle, De anima 2.2-3; 3.1, 5; De generatione animalium 2.3; Anna Silvas, trans., Macrina the Younger, Philosopher of God, Medieval Women 22 (Turnhout: Brepols, 2008), 189n33. 28 Op hom (PG 44, 145C-D).

창조 순서가 가르쳐 주는 인간에 대한 이해로부터 그레고리우스는 하나 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창 1:26)을 논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이것은 형상인 인간이 원형인 하나님을 닮아감으로 써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선하심에 참여하도록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마 치 거울이 사물을 반영하는 것과 유사하게 인간은 하나님을 반영하는 존 재로 창조되었다. 29

형상은 원형이 아니라 원형을 닮음(o`moio,thj)으로서 존 재한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최고선인 하나님을 닮아 모든 선으로 충 만할 때 원형의 형상으로서 그 닮음이 드러난다. 30

만약 형상이 원형을 모 방(mi,mhsij)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형상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다. 31

이 닮음과 참여의 인간론에서 하나님 형상은 무엇보다 인간의 영혼, 특 히 영혼의 세 가지 능력 중 지성적 능력이다. 32

왜냐하면 하나님은 몸이 없 는 지성적 실재이기 때문이다.

특히,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닮 은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 무엇에 의존하거나 지배받지 않고 자유롭게 선 택할 수 있는 의지(proai,resij)의 덕을 갖춘 지성적 영혼이다. 33

29 Op hom (PG 44, 161C).

30 Op hom (PG 44, 184A-B).

31 Op hom (PG 44, 180B; 161C).

32 그레고리우스에게 지성이 영혼의 완전한 모습이고, 지성 외의 것은 영혼이라는 이름 이 붙는다고 하더라도 영혼이 아니라 생명력의 활동이다. Op hom (PG 44, 176D-177A).

33 Op hom (PG 44, 136B-C).

자유 의지 로 하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께 참여할 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 조됨을 실현한다.

몸은 지성적 영혼을 통해 형상의 형상으로 존재한다.

비록 무엇보다 지 성적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앞서 언급하였듯이, 모세의 창조 기사 를 해설하면서 그레고리우스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몸과 영혼으로 창조하 셨고, 비물체적인 인간 영혼(지성)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물질적인 창조 세계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물질적 기관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34

몸의 다 양한 감각들 전체에 퍼져 있는 비물질적이고 단순한 영혼은 몸을 지성적 활동에 적합하도록, 그리고 몸의 본성에 맞도록 움직임(evne,rgeia)을 부여 한다. 35

이때, 비물질적인 영혼과 물질적인 몸의 관계는 하나님과 하나님 의 형상으로서의 영혼의 관계와 유사하다. 36

하나님의 형상인 영혼이 거울 이고, 이 거울의 거울로서 몸이 존재한다.

최고의 아름다움과 참된 선이 하 나님이시기에 지성적 영혼은 하나님을 닮음으로써 최고선의 형상으로서 선하고, 몸은 지성적 영혼에 의해 다스려질 때, 형상의 형상으로서 아름답 다. 37

34 Op hom (PG 44, 149C).

35 Op hom (PG 44, 161B, 173D).

36 Op hom (PG 44, 161C-D).

37 Op hom (PG 44, 164A-B).

이상 요약한 그레고리우스의 인간론은 회개와 덕의 실천으로 요약되는 영적 각성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레고리우 스에게서 지성적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은 기독론적 믿음 과 신적인 덕의 실천으로 가능하다는 그레고리우스의 주장을 살펴보자.

2.2 하나님 형상의 회복: 회개로서의 영적 각성과 믿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지성적 존재인 하나님을 닮아가며 참여해야 하는 인간은 물질적임과 동시에 본질적으로 영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닮아가 도록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부재를 선택하였다.

악은 그 자체로 실체가 아니라 선을 부재시킬 때 생겨난다.

지성적 영혼이 참된 선인 하나님을 향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보다 열등한 것을 향할 때 선의 결핍으로서의 악이 생겨난다.

악의 원인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proai,resij)에 있다. 38

이 렇게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여기에 믿음의 중요성이 있다. 믿음의 중요성은 원형인 하나님과 그분의 모상인 인간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에 기인한다.

그레고리우스는 지성적 실재와 물질적 실재를 구분하는 플라톤주의적 이원론을 지성적 실재를 창조주와 그분의 피조물로 구분하 는 성경적 이원론으로 수정하였다.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그레고리우스의 존재론은 창조되지 않고 창조하신 지성적 실재인 하나님과 그분의 지성적 이고 물질적인 피조물을 구분한다. 39

이때,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차이는 ‘dia,sthma’(디아스테마)의 유무이다. 40

‘간극’ 혹은 ‘사이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이 용어는 공간과 시간의 피할 수 없는 확장을 의미한다. 41

그레 고리우스는 이 용어를 사용하여 창조되지 않은 지성적 실재인 하나님과 지성적이든 물질적이든 모든 피조물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확정한다.

하나님께는 어떠한 간극도 해당하지 않지만, 모든 피조물은 간극에 종속 돼 있다.

어떠한 간극도 해당하지 않는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42 속성의 더 함과 덜함이라는 간극이 없기에 단순하시며, 43 시간의 시작이나 끝이라는 간극이 하나님께 해당하지 않기에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44

38 Op hom (PG 44, 185A).

39 Cant 6 (GNO 6, 173,7–9; 174,1-6).

40 이 용어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 목록은 다음을 참고하라. Scot Douglass, “Diastema,” in Lucas Francisco Mateo-Seco and Giulio Maspero ed., The Brill Dictionary of Gregory of Nyssa (Leiden: Brill, 2010), 227-228.

41 Contra Eunomium (= Eun) 1.345, 355 (GNO 1, 129,5-11, 132,2-11).

42 Eun 1.345 (GNO 1, 129,11–13).

43 Eun 1.168–169, 233–234 (GNO 1, 77,7–22, 95,5–20, 특히 95,12–15); 3.7.60 (GNO 2, 236,3–13).

44 Eun 1.670–672 (GNO 1, 218–219).

반면, 창조되었 고 간극 안에 존재하는 인간은 유한하며, 더함과 덜함이라는 간극에 의해 변화하고, 45 시간의 간극 안에 존재한다. 46

하나님은 어떠한 간극도 해당하 지 않는 무한하신 분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 개념적 사고, 그리고 언어 는 모두 간극에 의해 제한된다.

간극에 제한되고 종속되는 인간에게 모든 간극을 초월해 계신 하나님은 불가해하다. 47

그렇다고 그레고리우스가 신학적인 불가지론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하 나님은 본성(fu,sij)에서가 아니라 ‘에네르게이아’(evne,rgeia)로서 자기 자 신을 나타내신다. 48

그레고리우스는 에네르게이아를 신적인 “본성의 운 동”(fu,sewj ki,nhsij) 혹은 “하나님[의 본성]을 둘러 있는”(peri. to.n qeo.n) 것으로 정의한다. 49

하나님의 신적인 본성에 대해서는 “신성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할 수 있다면, 에네르게이아는 “신성이 어떻게 존재하는 가?”(pwj ei=nai)라는 질문과 관련된다.

하나님은 신적인 본성에서는 보이 지 않으시지만, 에네르게이아로서 자신을 보이셨다. 50

45 Op hom (PG 44, 184D).

46 De anima et resurrectione (Krabinger, 90); Oratio catechetica (= Or cat) 8.65.

47 Eun 2.69-70 (GNO 1, 246,14-21).

48 ‘에네르게이아’(evne,rgeia)에 대한 적절한 현대어 번역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Contra Eunomium을 영역한 스튜어트 G. 홀(Stuart G. Hall)은 음역하는 것을 권장하면서, 다양한 영어 단어(energy, activity, operation, 혹은 function) 중 ‘activity’가 그나마 적절하다고 주 장한다. Stuart G. Hall, “Gregory, Bishop of Nyssa: A Refutation of the First Book of the Two Published by Eunomius after the Decease of Holy Basil,” in Miguel Brugarolas ed., Gregory of Nyssa: Contra Eunomium I (Leiden: Brill, 2018), 71; cf. Raymond Winling, ed. and trans., Grégoire de Nysse, Contre Eunome, I.147-691 (Paris: Cerf, 2010), 46.

49 “본성의 운동”(fu,sewj ki,nhsij)에 대해 다음을 보라. Eun 1.211, 2.150, 2.228-230 (GNO 1, 211,15, 269,6-14, 292,10-293,9). “하나님[의 본성]을 둘러 있는”(peri. to.n qeo.n)이 라는 표현에 대해서 다음을 보라. Abl (GNO 3/1, 42,19-43,2); Eun 3.6.3, 3.5.60 (GNO 2, 186,9-15, 182,4-13). 삼위일체론 논쟁과 신적인 덕에 참여하는 신격화의 논의에서의 에네 르게이아의 의미에 대해 다음을 참고하라. 이충만, “성부와 성자의 영이신 성령과 신격화,” 「개혁논총」 52 (2020): 301 (각주 27), 303-305.

50 De beatitudinibus (= Beat) 6 (GNO 7/2, 141,25-27).

믿음은 지성적 영혼이 신성의 운동인 에네르게이아를 무한하신 하나님 의 본성에 마땅하게 인식하도록 이끈다.

이와 관련하여 아브라함에 대한 그레고리우스의 해석이 흥미롭다.

그레고리우스에게 아브라함의 여정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topikh, tij meta,stasij)이 아니다. 51

오히려 아브라 함이 고향을 떠난 것은 저급하고 세속적인 인식의 방식을 떠난 것이다.

아 브라함은 영혼이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감각에 친밀해 있지 않도록 만듦 으로써 “비가시적인 것들”에 대한 인식이 손상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52

그 레고리우스는 이 인식론적 이동의 계기를 믿음이라고 기술한다.

믿음은 ‘그노시스’(와 다르다. 후자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육체적 감 각에 의한 경험적 탐구와 지식이다. 53

그러나 믿음은 비가시적이고 비물질 적인 것과 관련되며, 소망하지만 아직 소유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증한다. 54

51 Eun 2.86 (GNO 1, 251,29).

52 Eun 2.86 (GNO 1, 252,1–7).

53 Eun 2.93 (GNO 1, 254,3–4).

54 Eun 2.93, 94–96 (GNO 1, 254,4–13, 17–30).

아브라함의 이동은 물질적 감각에 국한된 인식에서 믿음에 의 해 비물질적인 것으로 전향하는 지성의 옮김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고후 5:7) 아니하였다.

비가시적이며 비물질 적인 지성적 실재인 하나님은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감각적 인 식으로 파악할 수 없다(딤전 6:16).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오직 믿음의 안내를 받아 원형인 하나님을 그분의 에네르게이아를 통해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지성적 실재로 알 수 있다.

그레고리우스에게 이 믿음은 성육신하신 로고스께서 가르치시고 사도 와 교회를 통해 전수된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fides catholica)에 대한 신뢰 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은 지성적 영혼이 하나님의 삼위일체이심과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무한하신 하나님의 신성에 적합하게 이해 하도록 돕는다. 55

55 Refutatio Confessionis Eunomii (= Ref Eun) 4, 17 (GNO 2, 313,5–314,12, 319,9–15).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의 형상인 지성적 영혼이 원형인 하 나님을 인식하도록 인도한다.

영이신 하나님께 참여하는 영적인 인간의 참된 존재 방식은 믿음이다.

지금까지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론적 차이와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회복 을 위한 믿음의 역할에 대한 그레고리우스의 이해를 살펴보았다.

여기에 서 회개로서의 영적 각성과 믿음의 관계가 인간론적 측면에서 정립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성적 실재인 하나님을 영혼의 지성적 능력을 통해 닮아가고 참여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이 창조의 본래적 모습은 믿 음으로 회복된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기독교 신앙에 대한 신뢰와 믿 음을 통해 지성적 영혼은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향한 애착에서 분리 되어 다시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이며 최고로 아름답고 선하신 하나님께 로 돌아선다.

이것은 인간론적 측면에서의 근본적 회개이다. 회개로서의 영적 각성은 지성적 영혼이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애착에서 비 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지성적 실재인 하나님께로 믿음에 의해 돌이키는 것이다.

2.3 기독론적 믿음과 신적인 덕에 참여함

하나님의 형상인 지성적 영혼이 순수 지성적 실재인 하나님을 알수있 도록 인도하는 믿음은 또한 인간이 원형인 하나님을 닮아가며 참여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도록 이끈다.

그레고리우스에게 이것은 인간이 신적인 덕에 참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이신 덕을 모방하 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방은 단지 지성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덕의 수행은 몸의 움직임을 당연히 수반하기 때문 이다. 56

신적인 덕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께 참여한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신적 인 본성(fu,sij)과 에네르게이아(evne,rgeia)에 대한 그레고리우스의 이해에 기초한다.

신적인 덕 또한 에네르게이아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성경 안에 계시된 덕이 “선한 에네르게이아들”이며, 57 이 신적인 덕을 모방하는 것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신성과 완전함을 참으로 모방”하는 것이라고 주장 한다. 58

이때, 그레고리우스가 신성과 인성의 혼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 니다. 59

하나님의 덕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 본성의 측면이 아니라 신성 의 본성적 운동인 에네르게이아의 측면이기 때문이다. 60

오히려 신적인 덕 의 모방을 통한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아가면서도 어 떠한 간극(dia,sthma) 없이 존재하시는 원형과 시간의 간극 안에 존재하는 모형의 차이가 분명해지는 영속적인 과정(evpe,ktasij)이다. 61

56 신적인 덕에 참여함으로써 가능한 하나님 형상의 회복에 대한 그레고리우스의 사상 은 ‘신격화’ 혹은 ‘신화’(qeopoi,hsij 혹은 qe,wsij)로 이해될 수 있다. 개혁주의 전통이 ‘신격 화’ 사상을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는 본고의 연구 범위를 넘어선다. 다만, 동방교회 의 신학 전통이 주장하는 ‘신격화’와 개혁주의전통 간의 진지하고 긍정적인 대화는 토마스 토렌스(Thomas F. Torrance, 1913-2007), 칼 모설(Carl Mosser), 줄리 칸리스(Julie Canlis), 개논 멀피(Gannon Murphy), J. 토드 빌링스(J. Todd Billings), 그리고 헬레인 E. 조르흐드라 허르(Heleen E. Zorgdrager) 등의 학자들의 논의를 참고하라. 이 신학자들의 중요 작품에 대한 친절한 정보는 Heleen E. Zorgdrager, “On the Fullness of Salvation: Tracking Theosis in Reformed Theology,” Journal of Reformed Theology 8/4 (2014):365, 369를 참고하라. 또 한, 아래 각주 58과 67을 참고하라.

57 De professione Christiana (= Prof; GNO 8/1, 138).

58 Prof (GNO 8/1, 138).

59 Cant (GNO 6, 98). 그레고리우스는 인간의 본성이 신성과 혼합될 그 어떤 가능성도 분명하게 거부한다. Prof (GNO 8/1, 138).

60 Lee, “Beyond the Realistic-Ethical Distinction in Deification,” 148-149.

61 브루스 L. 맥코맥(Bruce L. McCormack)은 개혁주의 전통으로부터 ‘신격화’에 대해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첫째, 신격화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를 희석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적 본질 혹은 본성에 참여함을 말하는 신격화는 창조주와 피조 물 사이의 구분이 약한 고대 그리스 철학의 존재론에 근거하고 있는데, 개혁주의 전통은 이 구분을 분명히 유지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구원론적 측면이다. 하나님의 본성적 요소에 참여함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하게 되면 우리 밖에서(extra nos) 이루어진 칭의의 법 정적 측면이 약화한다는 것이 맥코맥의 비판이다. Bruce L. McCormack, “What’s at Stake in Current Debates over Justification?”, in Mark Husbands and Daniel J. Treier ed., Justification: What's at Stake in the Current Debates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2004), 82, 111. 그러나 본고에서 다루는 그레고리우스의 신학과 관련하여 맥코맥의 첫 번째 비판 은 정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레고리우스는 신적 본성과 에네르게이아를 구분하고, 신격화를 본성의 변화가 아니라 에네르게이아에 참여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 기 때문이며, 더욱이 간극이 없는 하나님께 피조물인 인간이 참여하는 것은 무한히 영속적 인 과정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맥코맥의 두 번째 비판에 대해서는 아래 각주 67을 참고하라.

신적인 덕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을 닮고 참여하는 형상으로서의 회복 은 기독론적이다.

먼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인 간은 하나님께로 연합된다. 62

라오디케아의 아폴리나리스를 비판하면서 그레고리우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성 육신 없이 인성이 하나님께 참여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3

또한 ‘그리 스도 안에서’ 인간이 하나님과 연합되기 때문에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 는 자신 안에서 불멸하시는 성부께 인성을 이끄셨다.

이 중개자 안에서 성 부는 자격을 잃은 자들을 양자 삼으시고, 적들을 하나님께 참여하게 만드 신다. 64

더욱이 그리스도는 모범이기도 하다.

“하늘 하나님의 신성과 완전 하심의 참된 모방”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신적인 덕을 모방하는 것이 다. 65

62 Or cat 25 (GNO 3/4, 64).

63 Antirrheticus adversus Apolinarium (= Antirrh; GNO 3/1, 169-170).

64 De perfectione (= Perf; GNO 8/1, 206).

65 Prof (GNO 8/1, 135, 138).

기독론적 가능성으로서의 덕의 모방과 하나님 형상의 회복은 기독론적 믿음으로 가능하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신적인 덕의 모방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고 중개자이고 모범이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끝없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evpe,ktasij)의 확고하고 변함없는 견고한 “반석”(pe,tra; 고전 10:4)이다. 66

또한, 그리스도는 “터”(o` qeme,lioj 고전 3:10)와 “모퉁잇돌”(gwni,aj kefalh,, avkrogwniai/on, 엡 2:20; 눅 20:17), 그 리고 “소망”(evlpi,j; 골 1:27)이요 “망대”(purgopoiia pu,rgoj; 눅 14:28)로서 이 영속적인 과정의 시작이요 완성이다. 67

특히, 그리스도가 “모퉁잇돌”이 심은 그리스도께서 육신과 영혼이라는 두 벽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간의 삶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도록 이끄심을 의미한 다. 68

그리스도는 이 영속적인 과정의 추동력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69

그러 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실현되는 신적인 덕의 모방과 하나님을 닮아가 는 형상의 회복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70

66 Perf (GNO 8/1, 192,15); Vit Moys 2.244 (GNO 7/1, 118,20).

67 Perf (GNO 8/1, 192,23-193,8).

68 Perf (GNO 8/1, 192,23-26, 193,8-194,3).

69 Manlio Simonetti, ed. and trans., Gregorio di Nissa: La vita di Mosè (Roma: Fondazione Lorenzo Valla, 2011), 327; Vit Moys 2.244 (GNO 7/1, 118,13-24); Beat 4 (GNO 7/2, 122,25-123,3); cf. 빌 3:12-13.

70 그레고리우스에게 신적인 덕에 참여하는 것은 기독론적 사건이다. 당연히 그레고리 우스에게 개혁주의적 ‘법정적 칭의’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는 신적 인 덕을 모방하며 참여하는 것이 인간 본성의 내재적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한 가능 성임을 강조한다. ‘법정적 칭의’를 통해 개혁주의 전통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구원의 가 능성과 시작이 ‘우리 밖에’(extra nos) 있다는 것일 때,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그 레고리우스 역시 ‘우리 밖에’ 있는 기독론적 가능성을 충분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 하다. 이충만, “베드로후서 1:4와 신격화,” 「갱신과 부흥」 30 (2022): 74-75.

상술한 신적인 덕의 모방과 하나님 형상의 회복에 대한 그레고리우스의 견해는 기독교적 덕의 실천으로서의 영적 각성을 신학적 인간론의 보편적 원리로 삼는다. 또한 이 보편적 원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실현됨 을 그레고리우스는 분명히 밝혔다.

덕의 실천을 통해 인간의 지성적 영혼 과 몸이 각각 하나님의 형상과 그 형상의 형상으로 회복된다. 71

71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교부들의 신학이 인간론에서 지성적 영혼만을 강조하 고 ‘영육 통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결여했다는 비판이 교부신학 전통에 대해 가 능하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에게, 그리고 이어 탐구할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신적인 덕 을 모방하여 하나님께 참여하는 것은 단지 지성적 영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덕을 실천 하는 인간의 몸도 하나님의 형상인 지성적 영혼의 형상으로서 신적인 덕을 모방하는 것에 참여한다.

3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3.1 하나님 형상의 두 측면

그레고리우스와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인간론도 창세기 1:26 에 대한 주석에 기초한다.

창세기 1:26을 따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지성’이 그러하다. 72

이때 ‘지성’은 몸 의 감각을 통해 인식하며 몸의 생명 원리가 되는 영혼(anima)과 구분되는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원리를 가리킨다. 73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라틴 어로 ‘mens’ 혹은 ‘animus’로 칭하였다. 74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간 지성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 지를 의미한다.

첫째, 인간 지성은 삼위일체적 구조를 지닌다. 75

72 De trinitate (= trin.) 15.11 (CCSL 50A, 475).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의 이름과 그것 의 축약은 Augustinus Lexikon, eds. Cornelius Mayer et al. (Basel: Schwabe, 1986-)을 따른 다.

73 trin. 4.3.

74 trin. 15.1, 15.11; De immortalitate animae 6–7, 17; De animae quantitate 22; De diuersis quaestionibus 7; De ciuitate Dei (= ciu.) 11.2; cf. Gerard J.P. O’Daly, “Anima, Animus,” in Augustinus Lexikon, 1:315–340; Paul Agaësse, trans., La Trinité (Livres VIII–XV), OEuvres compl. 16 (Paris: Desclée de Brouwer, 1955), 581–583; Beatrice Cillerai, Agostino: La Trinità, Il pensiero occidentale (Milano: Bompiani, 2012), 1014–1015.

75 trin. 15.11.

지성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 지성, 지성의 자기 이해, 그리 고 자기 사랑이라는 삼중성(trinitas)이 나타난다.

이런 인간 지성의 삼위일 체론적 구조가 원형인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imago)일 수 있다

둘째, 인 간 지성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역동적 측면이 있다.

지성 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수용할(capax) 수 있고 하나님께 참여(participatio)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76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지성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확장된다. 77

이 두 측면 중 아우구스티누스는 두 번째 측면이야말로 지성이 하나님 의 모상으로서 위대함을 드러낸다고 강조하였다. 78

하나님의 모상으로 창 조된 지성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 이다. 79

더욱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성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자신을 비뚤 어지지 않고 제대로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모상이 되는 것을 그치지 않 고 쇄신되며 불행에서 행복으로 옮긴다고 말한다. 80

76 trin. 14.6, 11 (CCSL 50A, 429, 436). Goulven Madec이 잘 지적하였듯이, 아우구스 티누스의 역동적 정의는 오리게네스의 『원리론』(De principiis = Prin.) 1.3.8.과 유사하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가 capere deum 혹은 capax dei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루피누스의 번역으로부터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Origen, De principiis, 1.3.8; 3.6.9; Goulven Madec, “Capax Dei,” in Augustinus Lexikon, 1:728; Berthold Altaner, “Augustinus und Origenes,” in Kleine patristische Schriften, ed. Günter Glockmann (Berlin: Akademie Verlag, 1967), 224–252; G.J.M. Bartelink, “Die Beeinflussung Augustins durch die Griechischen Patres,” in Augustiniana Traiectina, eds. Jan den Boeft and Johannes van Oort (Paris: IEA, 1987), 15–17.

77 Confessiones (= conf.) 1.6 (CCSL 27, 3).

78 trin. 14.11 (CCSL 50A, 436).

79 trin. 14.15 (CCSL 50A, 442).

80 trin. 14.18 (CCSL 50A, 446).

만약 지성이 원형인 하나님께 참여하지 않는다면, 지성은 참된 자기 자신보다 더 못해지고 참 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에 구조적 측면 또한 온전 하지 못하다. 81

외적 인간(exterior homo)과 내적 인간(interior homo)에 대한 아우구스 티누스의 설명에서도 하나님 형상의 역동적 측면이 구조적 측면보다 우선 함을 보여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몸에 해당하는 외적 인간과 지성에 해 당하는 내적 인간을 구분하고 각각에 나타나는 구조적인 삼중성(trinitas) 을 설명한다.

지성의 인식과 관련하여 상호 긴밀하게 연결된 외적 인간과 내적 인간은 두 가지 삼중성을 가진다.

첫째는 외적 인간인 몸과 관련된 것 으로서 물체의 상(species)과 감각 안에서의 상과 이 둘을 묶는 의지이다.

두 번째 삼중성은 내적 인간인 지성 안에 발생하는 것으로서 기억 안에 있 는 상(species)과 지성의 시야 안에 있는 상, 그리고 이 둘을 묶는 의지이다.

이 두 삼중성을 아우구스티누스는 ‘봄’(uisio)이라 칭한다. 곧, 감각의 봄과 지성의 봄이다.

외적 인간의 삼중성은 육체적 감각인 시각이 외적 사물의 상을 봄과 관련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내적 인간의 삼중성은 지성의 눈이 기억의 상을 봄으로써 발생한다. 82

두 가지 삼중성과 두 단계의 봄을 통해 지성은 형성(formatio)된다.

아우 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인간 지성은 지성의 눈이 기억 안에 수용된 상을 주 시할 때 지성이 그 상을 따라 형성된다.

비록 지성은 비물체적이지만, 지성 의 눈이 외적 인간을 통해 기억 안에 들어온 외부적 물체의 상을 주시할 때, 지성은 그 물질적 상을 따라 형성된다.

이것은 지성의 비물체성의 훼손 이며, 지성이 자기 자신답지 않게 훼손됨(deformatio)을 의미한다. 83

81 Sermones (= s.) 96.2, 330.3; Enarrationes in Psalmos (= en. Ps.) 118.8.2.

82 trin. 11.16 (CCSL 50, 353).

83 trin. 11.6 (CCSL 50, 339).

인간 지성이 하나님의 형상답기 위해서 지성의 시야는 하나님께 동화되어야 한 다.

하나님께 동화되는 지성의 시야 없이는 지성의 자기 이해와 자기 사랑은 온전할 수 없다.

하나님의 형상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정태적이지 않 고 역동적이다.

3.2 하나님 형상의 회복: 기독론적 믿음과 회개로서의 영적 각성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외적 인간으로 인해 하나님보다 열등한 것에 동화되어 물화 되지 않고, 내적 인간으로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하나 님께 동화되도록 창조되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동화되어야 하는 인간 지성이 육신적 감각을 통한 물체적 형상에 지성의 봄(uisio)을 집중함으로 써 물화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훼손(deformatio)이다.

이 훼손은 치유되어야 하고, 인간 지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회복되어야 한다.

영혼이 영혼보다 못한 것들을 향한 욕망으로부터 정화되어 하나님의 형 상으로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다.

지성이 바라보아야 할 보 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인간으로 오신 것이다.

성자 하나님은 성부 하 나님의 말씀으로서 동일한 본성을 가지신 성부 하나님의 그 형상(Imago dei)이다.

피조된 형상이 아니라 참 형상이신 성자께서 인간이 되시어 육 체적 감각을 통해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물질을 통해서 지각하고 인식해 야 하는 인간의 시야를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로 전향시키신다. 84

84 trin. 7.5 (CCSL 50, 253-253).

여기에 지성의 정화를 위한 그리스도의 두 본성의 위격적 연합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강조가 전제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내적 인간인 지성 은 외적 인간인 감각을 통해서 외부적 물체에 대한 상을 얻고 그 상을 바라 봄으로써 인식한다.

그런데, 지성은 감각을 통해 들어온 시간적이고 물질 적인 대상을 인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지성은 하나 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향해 정향 되어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하나님의 형상인 지성은 시간적이고 물질적인 대 상에 대한 인식에서 영원한 것에 대한 앎으로 나아가도록 창조되었다. 85

곧, 시간적이고 물질적인 사물에 대한 인식인 지식(scientia)에서 영원한 것에 대한 앎인 지혜(sapientia)로 진보하는 것이 지성의 올바른 움직임이 다.

혹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앎인 지식(scientia)으로 부터 신적인 것에 대한 앎인 지혜(sapientia)로 나아가는 것이 지성의 작용 이라고도 말하였다. 86

지성이 지식(scientia)을 통해 지혜(sapientia)로 진 보하지 않고 시간적이고 물질적인 사물에 대한 애착에 머물러 있는 것이 지성의 변형이며 하나님의 형상의 훼손(deformatio)이다.

지성이 하나님 의 형상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지식(scientia)으로부터 지혜(sapientia)로 진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요한복음 1:1-14는 인성과 신성의 위격적 연합을 이룬 성 육신을 가르친다.

요한복음의 첫 장의 첫 다섯 구절은 하나님이신 영원하 신 말씀(Logos)에 대한 묘사로서 지혜(sapientia)를 말한다.

이어서 14절까 지 이어지는 구절들은 그 영원하신 말씀이 시간 안에 들어오신 인간에 대 한 묘사로서 지식(scientia)을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러한 구성을 통 해 요한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scientia)을 통해 하나님이신 영원하신 말씀에 대한 지혜(sapientia)로 나아가야 함을 가르쳤다고 주장 한다. 87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봄으로써 지성은 시간적이고 물질적인 실재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혜로 진보 할 수 있다. 88

성육신이 지성의 병에 적합한 치료제이다. 89

85 trin. 12.4, 25 (CCSL 50, 358, 379).

86 trin. 14.3 (CCSL 50A, 423).

87 trin. 13.2 (CCSL 50A, 381-382); Goulven Madec, La patrie et la voie: Le Christ dans la vie et la pensée de Saint Augustin (Paris: Desclée, 1989), 217–222.

88 De fide et symbolo (= f. et symb.) 8 (CSEL 41, 11–12).

이 치료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가능하다. 요한복음 1:5를 해석하 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둠”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서 그분에 대한 지혜로 나아갈 수 없음을 지적한다.

“어둠”은 “빛”이신 그리스도부터 멀어 진 자들의 마음을 가리키며, 이것은 빛을 깨달을 수 없기에 그리스도에 대 한 지식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지혜로 나아갈 수 없다. 90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인 연합에 대한 믿음만이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통해 그분의 신성에 대한 지혜와 관조(contemplatio)로 이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믿음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신비를 읽어내는 “문법”이다. 91

89 trin. 4.24 (CCSL 50, 191); uera rel. 45.

90 trin. 13.2 (CCSL 50A, 382).

91 Robert Dodaro, Christ and the Just Society in the Thought of Augustin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141; cf. David J. Hassel, “Conversion-Theory and Scientia in the De Trinitate,” Recherches augustiniennes et patristiques 2 (1962): 383–401; Rudolf Lorenz, “Gnade und Erkenntnis bei Augustinus,” Zeitschrift für Kirchengeschichte 75 (1964): 21–78; cf. Basil Studer, Augustinus De Trinitate: Eine Einführung (Paderborn: Schöningh, 2005), 173–174.

 

지금까지 본고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 지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 재하는 역동적 존재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 기독론적 믿음에 의한 지식을 통한 지혜로의 전향을 강조하였음을 살펴보았다.

여기에 아우구스티누스 의 인간론이 말하는 근본적인 회개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께 참여하며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는 인간 지성은 더 이상 물화 되 어 훼손되지 않고 비물질적인 하나님께로 전향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부 재 시키는 악을 행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피조물에 동화된 인간 지성은 오직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믿음을 통해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지식에서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하나님에 대한 지혜로 돌이킬 수 있다.

이 근본 적인 회개는 인간론의 보편적 원리로서 물질에서부터 영으로 향하는 영적각성이다.

3.3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덕과 기독론적 믿음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믿음의 안내를 받아 지성은 물화 되지 않고 지 성적 실재인 하나님께로 전향한다.

이 지성은 하나님을 수용하고(capax) 그분께 참여(participatio)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회복된다.

여기 에도 두 가지 이유로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첫째, 그리 스도께서 인간이 하나님을 닮고 그분께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성례이 며 신적인 덕의 모범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만이 그리 스도의 모범을 모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첫 번째 이유를 살펴보자.

그리스도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기 위한 ‘성례’(sacramentum)이고 ‘모범’(exemplum)이다.

그리스 도는 내적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기 위한 성례이다.

내적 인간 의 죽음은 불경(impietas)과 죄(peccatum)이며 죄인(peccatores)이 되어 하 나님의 적(inimici dei)이 된 것이다. 92

내적 인간의 부활은 불경과 죄를 죽 이고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다. 93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그리스도께 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은 내적 인간의 죽음과 부활을 위한 성 례로서 내적 인간의 죽음을 죽이고 내적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킨다. 94

92 trin. 4.15, 13.14 (CCSL 50,180; 50A, 400-401).

93 trin. 4.6 (CCSL 50,167).

94 trin. 13.15-18 (CCSL 50A,402-404, 406).

인간 지성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 화해될 수 있다. 지성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은 내적 인간을 위한 성례인 그리 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성례인 그리스도는 외적 인간을 위한 모범(exemplum)이기도 하다.

외적 인간인 몸의 죽음은 영혼으로부터의 분리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것은 외적 인간의 죽음에 대한 모범이고 동시에 외적 인간 의 부활에 대한 모범이다. 95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죽으셨지만 영광스럽고 썩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셨듯이, 부패하여 죽을 몸이 그리스도와 마찬가 지로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리스도가 외적 인간 만을 위한 모범은 아니다.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을 향해 살아가는 인간의 지성을 위해 그리스도는 덕의 모범이다.

특별히 겸손과 순종이라는 덕이 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지성이 하나님께 참여하며 닮아가는 것 에 대한 최대의 장애물인 교만(superbia)을 위한 최고의 치료제로서의 겸 손의 모범(exemplum humilitatis)이다. 96

또한 그분은 하나님에 대하여 교 만하고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을 사랑하는 지성을 위한 순종의 모범(exemplum oboedientiae)이다. 97 이 덕은 신적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덕의 모범을 인간 본성이 모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펠라기우스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위격적으로 연합되어 있음을 강조하였다.

신인성의 위격적 연합을 진지하게 염두에 두지 않은 펠라기우스주의자들 과 달리98 아우구스티누스는 위격적 연합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의 모범 은 인성뿐만 아니라 신성에 속한 것임을 주장하였다.

 

95 trin. 4.6 (CCSL 50,168).

96 trin. 13.22 (CCSL 50A,412-413).

97 trin. 13.22 (CCSL 50A,413).

98 펠라기우스의 기독론에 대하여 J. Rivière, “Hétérodoxie des Pélagiens en fait de rédemption?,” Revue d’ histoire ecclésiastique 41 (1946): 5–43와 Joanne M. Dewart, “The Christology of the Pelagian Controversy,” Studia Patristica 17 (1982): 1221–1244을 참고하 라.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가 두 그리스도를 주장한다고 비판하였다. De peccatorum meritis et remissione 1.60; s. 294.9.

신성에서 기원하는 덕이 신인성의 위격적 연합을 이룬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계시되었 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덕을 모방하는 것은 하나님께 참여하 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닮아가야 할 하나님의 그 형상(Imago dei, Imago sine exemplum)이다. 99 기독론적 믿음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지성이 그리스도의 덕을 모방 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만 가 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펠라기우스주의자들에 대항하여 아 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덕의 모범과 관련하여 그리스도 안 에서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연합을 강조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덕 은 그분의 인성뿐만 아니라 신성에서 기원한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모범을 모방하는 것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적 능력을 넘어선다.

그리스도의 신적 인 덕을 닮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으로만 가능하다. 그리스도는 머리와 몸으로 온전하게(totus Christus caput et corpus) 존재하신다. 100

이 온전한 그리스도의 지체된 자들만이 머리인 그리스도의 덕을 모방할 수 있다. 101

99 trin. 7.5 (CCSL 50, 252-253).

100 ciu. 10.6, 10.20, en. Ps. 30.2.3.5, 61.4, 90.2.1; s. 341.11; s. Dolbeau 22.2, 22.19. 특 히 s. 341.11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머리와 몸으로 온전하게 계시는 그리스도의 세 번째 존 재 방식이라고 말한다.

101 Io. eu. tr. 108.5 (CCSL 36,617-618).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성례이고 모범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세 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덕을 모방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다.

지금까지 본고는 그리스도의 덕을 모방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 복되어야 하는 인간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숙고를 살펴보았다.

물질로 부터 분리되어 영이신 하나님께로 전향해야 하는 인간은 하나님을 수용하 고 그분께 참여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회복되기 위해 신적인 덕을 모방해야 한다.

이것은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모범일 뿐만 아니라 성례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하여 그분의 지체가 된 자가 하나 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덕에 참여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로써 기독론 적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신적인 덕을 모방하는 것이 신학적 인간론의 보편적 원리가 된다.

4 결론: 영적 각성의 인간론적 확장

영적 각성을 부흥운동과 관련하여 연구한 교회사적 접근은 영적 각성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께서 특별히 일으키시는 회개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덕스러운 삶의 회복으로 정의한다.

본고는 교회사적 연구의 정의를 수용하면서도,

첫째, 영적 각성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교회사적 부흥운동 을 넘어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의 내용으로 이해하고,

둘째, 영적 각성과 기 독론적 믿음의 관계를 보다 분명하게 정립하는 함으로써 영적 각성을 신 학적 인간론의 보편적 내용으로 확장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니사의 그 레고리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인간론은 다음과 같은 기여를 제공한다.

첫째, 그레고리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부터 하 나님께로 전향하는 근본적인 회개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것임을 보여주었다.

두 교부는 창세기 1:26을 따라 인간을 하나 님의 형상으로 이해한다.

이때, 인간은 정태적이지 않고 역동적이다.

외적 인간인 몸과 내적 인간인 지성의 구조적 삼중성(trinitas)을 그레고리우스 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하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역동적 측면이 구조적 측면을 지배한다.

이 역동성은 몸을 지닌 지성적 영혼이 몸을 통한 물질적 이고 가시적인 실재들에 대한 감각적 인식에 머물지 않고,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최고의 지성적 실재인 하나님께 전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 나님을 향해 있어야 하는 지성적 영혼이 하나님이 아닌 것에 애착하는 것이 악이요 죄이다.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전향 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하게 하는 근본적 회개이다.

둘째, 두 교부는 신적인 덕을 모방하는 덕스러운 삶이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존재의 본질임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의 본성과 에네르게이아를 구분 함과 동시에 내재적 관계를 강조한 그레고리우스는 하나님께서 보이신 덕 을 본성의 운동인 에네르게이아로 이해하였다.

이로써 인간이 되신 하나 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덕을 모방하는 것은 본성적 측면에서가 아니 라 에네르게이아 측면에서 하나님 그분을 모방하고 참여하는 것이다.

비 록 아우구스티누스는 본성과 에네르게이아의 내재적 관계에 대해 그레고 리우스처럼 명민하게 구분하지 않았지만, 그도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덕을 모방함으로써 하나님을 닮아가고 그분께 참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펠라기우스와 달리 아우구스티누스에게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덕은 신적 인 것으로 그것을 모방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 능력을 넘어선다.

셋째, 두 교부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근본적 회 개와 신적인 덕의 모방이 기독론적 믿음으로 가능함을 강조하였다.

근본 적 회개와 관련하여 그레고리우스는 어떤 간극에도 무관하시어 무한하신 하나님의 본성은 간극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인식 능력을 초월함을 강조 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교훈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인간의 지성적 영혼은 하나님의 에네르게이아를 통해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하나님 을알수 있다.

그레고리우스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였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육신 자체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형상인 지성(mens)은 시간적이고 물질적이며 가시적인 것들에 대한 지식(scientia)에 머물지 않고 지식을 통해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이 며 영원한 실재에 대한 지혜(sapientia)로 고양되어야 한다.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연합에 대한 믿음은 지성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감각적 지식 을 통해 신성에 대한 지혜로 전향하게 만든다.

지성적 영혼이 신적인 덕을 모방하는 것도 기독론적 믿음에 의해 가능 하다.

그레고리우스는 인간이 하나님께 참여할 수 있는 근거가 성육신임 을 강조하였다.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안에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되고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신적인 덕의 모방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고 중개자이고 모범이다.

아우구스티누스도 마찬가지이다.

인 간이 되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덕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은 하 나님께 참여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다.

그리스도의 신적인 덕을 모방하는 것은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모범일 뿐만 아니라 성례인 그리 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하여 그분의 지체가 된 자에게만 가능 하다.

그레고리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인간론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부터 하나님으로 전향하는 근본적인 회개와 신적인 덕을 모방하는 덕스러운 삶이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본질적인 원리임을 가르쳐 준다.

또한, 두 교부는 회개와 덕의 모방이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가능 하다는 것도 강조한다.

그러므로 두 교부의 인간론의 공통점을 숙고할 때, 회개와 덕스러운 삶이라는 영적 각성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인 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하기 위한 본질적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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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한국교회사 연구에서 ‘영적 각성’(spiritual awakening)은 20세기 초에 한국 교회 에서 일어났던 세 차례 부흥운동과 관련되어 연구되었다. 이로써 교회사적 연구는 영적 각성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 성령께서 특별히 일으키시는 회개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덕스러운 삶의 회복으로 이해한다. 영적 각성에 대한 이런 연구는 두 가 지 측면에서 보완될 필요가 있다. 첫째, 영적 각성을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의 내용 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와 그리스도를 닮은 기독교적 덕을 행 하는 삶으로서의 영적 각성은 개별적 부흥운동이기에 앞서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 의 내용이다. 둘째, 영적 각성과 기독론적 믿음의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정립해야 한다. 영적 각성에 대한 교회사적 연구는 회개와 삶의 변화를 일으키시는 성령 하 나님의 특별하면서도 구체적인 역사를 강조한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 역에 대한 기독교의 보편적인 믿음은 영적 각성의 실마리일 수 있어도 그것의 내재 적 원리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기독론적 믿음과 내재적 관계성을 상실한 성령의 사역은 신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언급한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본고는 회개와 그리스도를 닮은 덕스러운 삶으로 요약되는 영적 각성은 신학적 인간론의 본질적 요소이기에 진정한 영적 각성은 기 독교의 보편적 믿음의 내용임을 보이고자 한다. 또한, 본고는 영적 각성이 그리스 도에 대한 믿음에 의해 가능함을 보임으로써 영적 각성과 기독론적 믿음의 내재적 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교부신학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교부들 중 신학적 인간론의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큰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yssa, c.335–c.395)와 히 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354-430)는 피조물로부터 하나님께로 전 향하는 근본적인 회개와 신적인 덕을 모방하는 덕스러운 삶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서의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것임을 보여주고, 이러한 회개와 덕의 모방이 오직 기 독론적 믿음으로 가능함을 강조하였다.

주제어: 영적 각성, 하나님의 형상, 기독론적 믿음,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히포의 아우구스 티누스

<Abstract>

A Patristic Theological Reconsidering of Spiritual Awakening: Focusing on Gregory of Nyssa and Augustine of Hippo Chung Man Lee Assistant Professor of Dogmatics, Korea Theological Seminary In the study of Korean church history, ‘spiritual awakening’ has been studied in relation to the three revival movements that occurred in the early 20th century. Historical researches understand spiritual awakening as repentance brought about by the Holy Spirit and as the restoration of a virtuous life in the likeness of Christ. This idea needs to be supplemented in two aspects. First, spiritual awakening as repentance and a virtuous life must be understood as an essential content of Christian faith. Second, the relationship between spiritual awakening and Christological faith needs to be more clearly defined. When historical researches emphasize the special work of the Spirit, faith in Christ’s person and work, while it can be a clue to spiritual awakening, is not its intrinsic principle. However, the work of the Holy Spirit, which has lost its intrinsic relation to Christological faith, is theologically doubtful. This paper argues that spiritual awakening, summarized as repentance and a virtuous life imitating Christ, is an essential element of theological anthropology. It also identifies the intrinsic relationship between spiritual awakening and Christological faith by showing that the former is made possible through the latter. To do this, I will draw on Gregory of Nyssa(c.335–c.395) and Augustine of Hippo(354-430) who contributed significantly to the development of theological anthropology. They showed that fundamental repentance as conversion from the creature to God and a virtuous life that imitates the divine virtues are intrinsic to human being as the image of God, and emphasized that such repentance and imitation are possible only through Christological faith. Key Words: Spiritual awakening, Image of God, Christological Faith, Gregory of Nyssa, Augustine of Hippo A

논문투고일: 2023.10.31. 논문수정일: 2023.12.12. 게재확정일: 2023.12.23.

개혁논총 66권

영적 각성에 대한 교부신학적 재고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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