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II. 이슬람법 법원의 이해
III. 이슬람법의 변화 요인: 정교분리(laïcité), 세속화와 세계화
IV. 경제영역에서의 이슬람법의 개혁 요인
V. 이슬람 문화에서 정교분리와 세속화의 신학적 의미
VI. 나오는 말
I. 들어가는 말
기독교과 이슬람의 관계는 대립과 투쟁, 혐오와 긴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의정부지방법원 판사 류영재는 칼럼을 통해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건립 과정에서 건립 반대 주민들이 돼지고기를 사용해 벌인 일련의 행위들이 명백히 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역사 속에서 모슬렘들의 박해로 돼지고기가 사용되고, 돼지고기를 이용한 반 이슬람 시위는 종교건물 건립의 반대를 넘어 ‘종교의 자유 침해임과 동시에 종교 및 인종을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1)
현대 사회에서 모두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속으로 들어간다.
현대인은 혐오와 긴장 관계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다.
지속적 혐오와 배제 속에서 이슬람은 테러리즘으로 그리고 모슬렘들은 테러리스트로 성급하게 일반화시킨다.
논리학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사회 여론으로 형성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2)
1) 류영재, “대구 모스크 건축 현장에서 돼지고기는 사랴져야,” 한겨레 인터넷판(2023. 04.02.),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78371.html, 2023년 4월 2일 접속.
2) 김성훈, “이슬람 선교의 걸림돌 IS(Islam State)에 대한 연구,” 「복음과 선교」 31(2015), 16-17. 실제적으로 이슬람 국가들은 테러를 실행하는 IS(Islam State)와 선 긋기를 하고 있으며, 테러와 이슬람을 동일시하는 것이 선교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이슬람과 테러리즘 사이의 동일화 현상은 어쩌면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통치와 행정의 실제적 주체로서 정치가 역할을수행하는 고유의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종교 윤리와 도덕이 그대로 현실질서를 세우는 법으로 구체화 된 것이 이슬람 국가들의 특성이다.
정교분리가 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테러가 종교적 행위임과 동시에 정치 행위로나타나는 것이다.
종교와 정치를 분리한 세속화 세계 속에서 혹은 합리성에 근거한 기술과학 시대에 이슬람은 메이저 종교로서 ‘신정정치’를 고수한다.
이러한 이슬람의 통치 형식과 이슬람 사회의 법의 독특성에 대하여 한국 사회와기독교는 이슬람 세계를 근대화되지 못했다고 혹은 봉건사회로 규정짓는측면이 있다.
‘이슬람 혐오(Islamophobia)’는 이러한 부정적 여론으로부터 이슬람에 덧입혀진 표현이다.
이슬람 문화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바없는 한국 사회에 이슬람은 ‘다름’이고 ‘알 수 없음’ 자체이다.
‘다름’의 거칠음과 ‘모름’의 두려움이 경계를 일으키며, 모두를 배제의 행위 안으로끌고 들어간다.
일찍이 정치와 공적 영역에서 모든 종교성을 배제함으로써 그리고 참여 기회를 박탈하는 것으로 공평성을 확보한 한국 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경계는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3)
종교성을 한 개인의 내면의 문제로최소화하면서 태동한 것이 근대의 시민 사회이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와정치를 분리하지 않은 이슬람 세계는 근대화되지 못했다.
세속화 현상의시각에서 볼 때, 꾸란이 종교적 법전일 뿐만 아니라 질서유지를 위한 시민법의 법전이 된다는 것은 봉건적이다. 탈권위적이며 다원화된 현대에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들은 근본적으로 알라(하느님)가 모든 가치보다 우위에 있다.4)
3) 오영주, “프랑스 공화국, 왜 비종교성 laïcité인가?,” 「불어불문학연구」 71(2007), 461. “라이시테(laïcité)‘의 어원인 laos는 그리스 성경에 처음 등장했다. laos는 제사장과 예언자의 역할을 맡았던 레위족 사람과 성직자가 아닌 모든 유대인들을 지칭했다. 이후 교회는 성직자가 아닌 사람이나 교회에 속하지 않은 제도와 기관을 가리키기 위해 laos에서 파생한 laicus, lai, laïque를 사용하였다”. 라이시테법의 발표로 모든 공적 기관에서 종교적 정치적 상징의 사용을 금지하게 되었다.
4) Jacques Elull, Islam et judéo-christianisme, 이상민 역, 이슬람과 기독교 (대전: 대장 간, 2013), 105. 일반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하나님’에 대한 호칭의 혼동이 넓게 퍼져있다. 그것은 알라와 하나님이 유일신 개념 안에서 동일한 초월적 존재로 인식되는 문제이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그 신성이 역사 속에 있고, 세 가지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 있다. 이른바 삼위일체의 신관이다. 반면 이슬람의 알라(하 느님)는 너무 절대적으로 초월해 있어서 인간과 이중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 역사 위에 성육신도 없고, 인격으로 접근할 수 없는 신이다. 알라(하느님)는 ‘포착할 수 없는 저 편의 것’ 혹은 ‘인간 이외의 것에서 나오는 신비’의 존재이다.
단지 그 존재가 유일한 유일신이라는 것에서 기독교의 하나님과 혼동을 빚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유일신 알라(하느님) 사이에 어떤 공통점도 없으며, 전적으로 다른 신 관념임을 밝힌다.
알라가 국가 구성과 헌법의 토대이다.
결과적으로 이슬람국가들의 근대화와 민주화는 서구사회가 지나왔던 방식과 다른 방식일수밖에 없다. 사실 이슬람 국가들은 세속화, 세계화라는 커다란 변화의요구를 피할 수 없었고, 나름의 방식으로 개혁을 추구하며 정교분리를이루려 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슬람 문화 안에서 정교분리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근본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이슬람법(Sharia)을 살펴볼 것이다.
이슬람법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이슬람과 샤리아에 대해 많은 선행 연구가 선교적 측면에서 혹은 교리적 측면에서 있었다.5)
5) 박동신 소윤정, “2000년 이후 KCI 게재 논문 중 기독교와 이슬람 관련 내용분석,” 「복음과 선교」 41(2018), 104. 박동신 소윤정의 연구에 의하면 2000년부터 2017년 사이 KCI 게재된 이슬람 관련 논문을 보면 전체 229건의 논문 중 41건의 논문이 기독교 와 이슬람 교리에 관련된 연구이었다. 41건의 논문 중 신론과 기독론(16건), 꾸란과 성경(9)이란 것은 교리 연구에 치중된 현상을 보인다. 연구 주제 역시 신론과 기독론, 꾸란과 성경, 구원론, 할랄과 하람, 천국, 교회론 순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 안에서 일어나는신정정치에서 정교분리로의 이행, 즉 종교와 무관한 계몽정신 혹은 비종교성(laïcité)에 대해 밝히는 연구는 많이 진행되지 않았다.
본 연구는 이슬람과 이슬람법의 분리에 대해 논할 것이다.
연구를 위해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의 문화적 접근법을차용하였다.
일찍이 한스 큉은 종교와 통치 원리로서의 이슬람에 대한객관적 설명을 자신의 연구 주제로 삼은 바 있다.6)
6) Hans Küng, (Der) Islam : Geschichte, Gegenwart, Zukunft, 손성현 역 이슬람: 역사· 현재·미래 (서울, 시와진실, 2012).
기존의 이슬람 연구가 서구 문명의 우월성이라는 선입견이 반영되었다면, 한스 큉은 이슬람을 대화의 상대자로 접근했다.
여기에 편향적이지 않은 그의 학문적 기여가있으며, 본 연구 주제와 관련하여 한스 큉의 연구가 이슬람 법체계 연구
에 도움이 되고 있다.
개신교 측에서 법학자이며 윤리학자인 작끄 엘륄(Jacques Ellul)은 기독교에 대한 이슬람의 영향을 법률과 신학 영역에서 분석한 바 있다.
엘륄에 의하면 이슬람은 첫째로 하나님이 육신을 입는 성육신을 믿지 않는다.
둘째로 이슬람은 종교·정치·법을 절대적으로 통합한다.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뜻이 같아지는 일이 일어난다.
이러면 현실 정치적 여건들에의해 하나님의 뜻이 왜곡될 수 있다.7)
7) Jacques Ellul, La Subversion du Christianisme, 박동열 이상민 역, 뒤틀려진 기독교 (대전: 대장간, 2012), 173.
자끄 엘륄은 이슬람에 일방적으로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측면이 있다.
본 연구는 한스 킹의 입장과 자끄 엘륄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사유하여이슬람법의 정교분리 가능성을 더 객관적으로 확인할 것이다.
종합적 연구 방법론을 통해 그동안 서구사회가 이슬람의 부정적 종교성만 확대하여 전체의 이미지를 왜곡한 것에 대한 기독교인의 인식 전환을 기대할수 있으리라 본다.
이슬람과 이슬람법 사이의 분리 가능성, 즉 비종교성(laïcité)을 연구하는 본 논문은 첫째 장에서 이슬람법의 법원으로서 꾸란, 하디스, 순나를검토하여 종교적 법률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것인지 살펴보았다.
둘째장에서, 이슬람과 이슬람법의 분리 요인으로서 세속화, 세계화 그리고 기술과 같은 현실적 요청을 점검하였다. 셋째 장에서는 경제적 요인에 의한이슬람법의 독립을 살펴볼 것이고, 세계화라는 커다란 세계사적 흐름에서 종교적 명령으로부터 법이 분리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게 될 것이다.
넷째 장은 정교분리를 통해 얻는 ‘내면적 자유’에 관해 기술하였다. 본논문을 통해 정치·법률·종교가 하나로 묶여 있는 ‘이슬람 통치이데올로기’로부터 ‘이슬람적 민주주의’를 향한 이슬람 내부의 변화를 읽어내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슬람에 대해 혐오 감정과 무비판적 적대감으로 대하는 기독교인에게도 인식의 변화를 불러올 것을 기대한다.
II. 이슬람법 법원의 이해
종교로서 이슬람은 땅 위의 어떤 사람도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알라(하느님)만이 모든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 그래서 이슬람 안에 종교·정치·법이 다 들어 있다.
이슬람 국가들은 세속 군주의 권력과 알라(하느님)의 다스림이 하나라는 신정정치를 표방한다.
알라(하느님)가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준 종교적 가르침이 곧 통치 이념이고, 종교적 계명이법이다.
신의 계시를 기록한 꾸란이 경전임과 동시에 이슬람법이 되었다.
‘알라(하느님)만이 전지전능하며 유일한 입법자이다.
신법은 신법이다.’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모슬렘에게 법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것이아니고 수정할 수도 없다.
알라(하느님)만이 완벽한 법을 만들 수 있으며또한 법이 알라(하느님)에 의해 제정되었기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법 설립의 주체를 ‘국민’으로 보는 근대국가에서 이슬람법을 이해하기에많은 어려움이 있다.
더욱이 믿음이 없는 이들은 ‘신의 계시로 만들어졌기에 불변이다’는 이슬람법은 부당하게 보일 것이다.
설령 이슬람법 개혁이있다 하더라도 법 제정의 주체가 ‘국민’이 아닌 ‘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개혁의 내용이 꾸란 내용의 본질적 거부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슬람법의 혁신에 대한 담론이나 논쟁도 어떤 한계 안에서 진행될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슬람식 계몽주의’의 한계라 할 수 있다.
여기에법 제정의 경직성과 꾸란에 기록되지 않은 새로운 현실에 대한 해석과적용의 어려움이 있다.
여기서 이슬람법의 기원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있다.
이슬람법의 법원(法源)은 꾸란, 하디스, 순나이다.
먼저 꾸란은 신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무함마드에게 22년간 내려준 계시의 말씀 혹은 신성한지침서이다.
모든 경전화 과정이 그러하듯이 무함마드와 그의 측근들이세상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권위 있는 경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무함마드 사후 20년(653년) 제3대 칼리파 우스만이 구전으로 내려오던 꾸란을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 작업을 하였다.8)
이슬람교도는 꾸란 안에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두 것이 있다고 믿는다.
이희수는 꾸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문맹의 한 인간에 의해 계시되어 632년에 완성된 꾸란이 1400년이 지난 21세기의 최첨단 시대에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문학 작품이자 법전으로, 생활의 규범으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도덕률로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9)
8) S. F. MAHMUD, The Story of Islam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9), 37.
9) 이희수, 이슬람: 9.11 테러 10년과 달라진 이슬람 세계 (파주: 청아출판사, 2013), 154.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본 이슬람의 정교분리(laïcité)의 의미 연구 | 이봉석 397
이슬람교도들의 삶의 근간으로써 꾸란은 크게 4가지 범주로 나눌 수있다.
첫째는 알라(하느님)의 속성, 알라(하느님)의 예언자들 역할, 천사의 존재, 심판의 날에 대한 경고 등 형이상학적 가르침이 들어 있다.
둘째는 단식, 성지순례, 예배 등의 의례에 관한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다.
셋째로, 혼인, 유산의 분배, 절도나 간통, 살인이나 분쟁 등 민형사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사회적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다.
넷째는 일반적인 예의범절이나 윤리적인 가르침으로 구성되었다.
형이상학적 첫 부분을 뺀 나머지세 부분이 이슬람 법학의 기초가 되었다.
본 논문의 주제인 신법과 이슬람법의 분리와 관련하여 꾸란에 기록된법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도둑질과 동해(同害)복수 법을 예로 보자.10)
“도둑은 남자든 여자든, 죄의 대가로 양손을 절단하라. 이것이야말로 알라의징벌. 알라께서는 위력 있으신 총명한 분이시다.”(5: 38)
이같은 동해복수법은 현대 사회에서 너무 가혹하다 하여 인권의 문제가 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구급차를 준비해 두고 도둑의 손을 절단하는 형벌을실제로 집행하고 있다.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의 변증에 따르면 이슬람은법률종교가 아니라 윤리종교이다.
언뜻 보기에 동해복수법이 법률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듯하지만, 이러한 법률적 대목에서초차 법률적 태도가아니라 윤리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11)
한스 큉의 말은 꾸란의 명령과이슬람법이 다른 범주의 명령이니 분리해야 함을 뜻한다.
임영필의 말과 같이 꾸란이 이슬람 세계의 최고 상위법이며, 종교와윤리에 관한 규범일 뿐만 아니라 모슬렘의 삶 전반에 걸친 형법과 민법을아우르고 가늠하는 기본법이다.12)
임영필은 종교적 행함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이슬람법을 기술하고 있다.
임영필의 기술에서 만약 이슬람법이종교적 행함을 넘어 세속적 질서로까지 이어지면 꾸란이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됨을 읽을 수 있다.
이슬람 연구가 바삼 티비(Bassam Tibi)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의 차이를 구분할 것을 주장한다.13)
10) 김용선 역, 세계사상대전집: 꾸란 14 (서울: 대양서책, 1971), 136-137. “우리들은 그 속에서 ‘목숨에는 목숨, 눈에는 눈, 코에는 코, 귀에는 귀, 이에는 이, 받은 상처는 그 상처만큼 돌려주는 것이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에 게 그것은 속죄가 된다. 알라께서 내리신 성전에 의거하여 재판을 받지 않는 자들이야 말로 불의의 무리이다. (5: 45)”
11) Hans Küng, (Der) Islam : Geschichte, Gegenwart, Zukunft, 295. 12) 임영필, 샤리아, 알라가 정한 길 (서울: 모시는사람들, 2019), 28.
13) Bassam Tibi, ISLAMISM and ISLAM, 유지훈 역, 이슬람주의와 이슬람 (서울: 知와 사람, 2013), 38. 이슬람주의는 본래의 사상을 이데올로기로 전환할 때 ‘ism’을 붙여 만들어진 개념이다. 역사 속에서 주로 본래의 것과 늘 일치하는 사상이 주류적 사상으 로 자리 잡을 때 OOO주의’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는 레닌주의자들이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로 발전시킨 것으로 마르크스의 원래 주장과 다른 이데올로기였 다.
이슬람이 ‘종교 전체주의’가 되는 것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말이다.
“정치화는 이슬람교를 이슬람주의 정치적 종교로 변모시킨 수단으로, 위기에 시달리는 사회에 불거진 주요 화두다. 예컨대 이슬람교가 보편성을 주장하는 데 이슬람주의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라. 보편주의 정치화는 국제주의적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빼닮은 행동주의적 국제주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낳았다. 두 이데올로기는 세계의 혁명을 지향한다. 서방세계의 사상을 대부분 배격하는 이슬람주의자들이 혁명사상을 공산주의에서 차용한 건 당연한 일이다.”14)
14) 위의 책, 39.
바삼 티비는 이슬람주의의 주된 신조로서 이슬람법에 따른 정교일치를신앙이 아닌 정치체로 규정하였고, 그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이처럼 이슬람이 이슬람주의로 정치화 혹은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화 되는 과정에서종교가 이데올로기의 내용이 되었다.
다시 말해 무함마드 사후 계시는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계시의 중단은 모슬렘들의 삶에 혼동을 가져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려움에 부닥친 것이다.
더욱이 이슬람이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내부의 규율과 규정이 긴급하게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이슬람의 경전화 과정이 진행되었고, 모슬렘 법학자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사건과 복잡한 삶의 관계를 꾸란으로 해결하는데 적합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결국 꾸란의 해석을도울 신적 권위에 버금가는 다른 텍스트를 요청하게 된다.
여기서 이슬람법의 두 번째 법원(法源)으로서 하디스가 필요하게 된다.
하디스란 ‘소식’ 혹은 ‘이야기’를 의미한다.
이슬람법의 구성적 측면에서 꾸란 다음으로 중요한 책이다.
하디스는 무함마드의 언행을 담고 있다.
단적으로 하디스는 신의 명령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세속의 질서유지를 위해 법규화한 정치적 산물일 뿐이다.
바삼 티비에게 고전 칼리프시대 정치와 이슬람법이 분리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 의하면 모슬렘 통치자가 신성한 율법을 적용하고 완성하는 척했을 뿐 실상은 통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하디스는 계시와 무관하고, 정치당국의 필요에 의해 이슬람법에 들어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15)
이것은 비종교성(laïcité)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지적이다.
이슬람법 이해에 문화적 접근법을 시도하고 있는 박규환의 하디스 설명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꾸란의 명령과 금지들이 추상적 용어로 구성되어 있어 이를 해석함에 있어서 다의적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내용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보충적인 규범이 필요했다. 이처럼 꾸란의 해석을 명확히 하기 위한 시도로 무함마드의 전언을 모아 만든 것이 하디스이다. 즉, 모든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 하디스라고 하며 꾸란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16)
15) 위의 책, 247. 바삼 티비에 의하면 “이슬람 역사에서 샤리아가 차지하는 입지를 두고는 ‘통합된 제도로 시행된 적은 없으며 대부분 조항이 법적 픽션에 불과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샤리아를 이슬람주의자들이 강요하려는 것은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말이 다.
16) 박규환, 아랍 세계의 법문화 (파주: 한국학술정보, 2014), 60.
이슬람법의 세 번째 법원(法源)으로서 순나(sunnah)가 있다.
순나는 아랍어로 ‘관습’이라는 뜻이다.
관습이란 이슬람교 발생 이전의 아랍 부족의선조들이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제정하여 포괄적 규범으로 채택하고 공동체 전체가 실천했던 선례를 일컫는 말이다.
초기 이슬람교도들 안에서 관습법의 제정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일부는 메디나인들을 표본으로 따르고자 했고, 다른 일부는 마호메트의 교우들 행동을따랐다.
이러한 갈등은 지리적 차이에서 오는 관습의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AD 8세기에 이라크·시리아·헤자즈에서 활동한 지방 법학파들은그들 각 지역의 전통과 그들 자신이 발전시켜 온 선례에 근거한 이상적인체계를 순나와 동일시하려 했다.
결국 8세기 법학자 앗 샤피이(767~820) 에 의해 다양한 공동체의 관습이 정비되었다.17)
17) 리태니커백과사전, 검색어 ‘sunnah’ (2023.10.06.), https://www.britannica.com/ topic/Sunnah 2023년 10월 28일 접속.
이상과 같이 이슬람법 법원(法源)을 보면 무함마드의 언행, 이슬람교이전의 지역적 관습. 계시로 제정된 명령이 섞여 있다.
이것들 모두가 신적 권위를 지닌 법이라 말하지만 실상 현실적 필요에 의해 세워진 강제들이다.
그것은 율법과 믿음이 하나로 묶인 ‘일원성’으로서 예수와 바울,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가 투쟁하고 싸웠던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개신교 신학과 배치된다.
그리스도교 태동부터 격하게 충돌되었던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가’ 아니면 ‘선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는가’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신법과 시민법을 구분하는 중대한 사상적 물음이다.
신학적으로 율법과 믿음 사이의 구분은 내면의 자유의 문제이다.
이것을 하나로묶으면 그 계시의 자율성에 제한을 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꾸란, 하디스 그리고 순나는 다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지않다.
따라서 이슬람법 안에서 신법과 시민법 그리고 관습법과 도덕으로명백히 구분될 수 있다.
꾸란은 “알라(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라는문구가 사용된 만큼 절대 권위를 가졌지만 하디스는 “예언자가 말하기를” 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상대적 권위임을 보여준다.
순나는 이슬람 이전부터 행하여진 관습을 정리한 것이기에 지역에 따라 무시되고 중요시하는 것이 다르다.
따라서 손댈 수 없는 법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꾸란 뿐이다.
문제는 이슬람법이 변화하는 인간의 삶 전체를 수용하고 있는가에 있다.
여기서 이슬람법 개혁과 관련된 보혁 갈등이 발생한다.
본 연구도이러한 갈등의 논쟁으로부터 이슬람법의 변화와 이슬람법의 미래를 살펴볼 것이다.
특히 세속화, 세계화, 정교분리(laïcité)라는 시대적 요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슬람법 법원(法源) 가운데 꾸란의 배제까지도 요구하는 커다란 도전이기 때문이다.
III. 이슬람법의 변화 요인 : 정교분리(laïcité), 세속화와 세계화
서구 사회 안에서 종교와 정치의 분리 현상은 개인의 자유의 신장과연관이 깊다.
16세기 인문주의가 유럽에 광범위하게 퍼졌던 것도 종교와정치를 분리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사회적 현상으로 읽을 수있다.
특히 개신교의 가톨릭으로부터의 분리는 이러한 정교분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 국가에서도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정교분리 현상이 후기 산업사회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르한 가리운(소르본대학 사회학 교수, Burhan Ghalioun)에 의하면 ‘서양 기독교 안에서처럼
근동지역 모슬렘에도 ’종교와 상관없는 시대정신(laïcité)‘이 근대화와 함께 확대되고 있다’.
이슬람에 일고 있는 사회적 변혁의 형태는 각 이슬람국가마다 다르지만 모든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 혁신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변화의 요구 영역도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어근대화를 향한 모슬렘들의 열망은 가히 그들의 사회 전체라 할 정도이다.
특히 부르한 가리운의 관찰에 포착된 두 현상은 ‘종교와 무관한 삶’(laïci- sation)과 세속화(sécularisation)이다. 두 현상 가운데 세속화는 근대화와 동일한 개념으로 취급되고 있다.18)
18) 정재영. “근대화와 한국 개신교: 세속화론을 중심으로”, 한국종교사회학회 편저, 한국 의 종교사회학 (서울; 늘봄, 2013), 58-84. “세속화란 다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 곧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 그리고 이 추세에 따른 분화와 전문화는 불가피 하게 사회 및 개인의 의식 차원 모두에서 종교적 영향력의 쇠퇴를 가져왔다.” 59-60.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세속화도 그만큼 더 진행된다.
이슬람 안에 새로운장르의 행동과 태도를 나타나게 하는 동인이 세속화이고, 개인적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직관이 주류가 되는 것도 세속화 때문이다.
정통 이슬람의 도덕 가치와 법률적 가치가 더 이상 그 고유의 가치를 유지하지 못함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정교분리(laïcité) 원칙은 신정정치 안에서‘이슬람적 민주주의’를 구상하게 하였다.
정교분리(laïcité)원칙이 공적 공간에서 전통적 이슬람 가치들의 쇠락을 지지하는 이론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세속권력이 종교권력을 이기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르한 가리운에 따르면, 세속화와 정교분리의 가치들이 상승하는 원인을 두 가지이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19세기 서구 열강의 이슬람국가에 대한 식민지 경영으로 인해 이슬람 국가 안에 세속화와 근대화의욕구가 상승했다.
유럽인의 식민지 통치 기간 아랍인은 자신들의 근대문화를 고양시키기도 전에 그리고 그들이 보존해온 가치들을 근대의 시간에 맞추기도 전에 유럽의 식민지 시스템에 맞도록 그들의 종교를 혁신시켜야 하는 압력을 받았다.
아랍 사회의 엘리트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없이 근대화를 급진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이유로 세속화와 정교분리(laïcité)의 가치들의 확산은 혁신적 이슬람 법학자들(ulémas) 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이슬람 법학자들이 서구식 근대 국가에 호의적입장에 서 있다.19)
19) ‘울레마 ulémas’ 이슬람 종교학자로서 이들은 개인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모든 문제까 지 자문한다.
‘비종교적 삶’(laïcisation)과 관련해서 이슬람 안에 종교와 무관한 삶을 중세에 교역자가 교구를 책임지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말에서 교황과 황제의 분리로 교권으로부터 정치적 주권자에게 책임을 넘겨주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19세기 중엽부터 정치, 법률 영역에서 문화, 철학 영역으로 확대되어 광범위하 게 쓰이기 시작하였다.
종교 세속화론은 근대성 개념의 확산과 그 맥을 같이한다.
추구하는 사상이 유포되는 것에 반대하는 종교적 정서가 분명히 존재한다.
비종교성(laïcité)은 이슬람 사회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부르한 가리운이 근대화를 추구하는 진보적 법률 엘리트와 봉건적가치를 유지하려는 보수적 대중 사이에 종교적 분열이 있음을 지적한다.
부르한 가리운의 말과 같이 ‘종교와 무관한 삶’(laïcisation)을 추구하는 것이 이슬람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것이 더 이슬람 교리와 사상에 부합한다.
“ 진지하게 말한다면, 정교분리(laïcité)의 문제는 종교적 문제도 아니고 문화적 문제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공동체와 사회를 세우는 사회질서에 관한 헌법적 규칙을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정치적 문제이다. 정교분리(laïcité)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결코 이슬람 종교의 새로운 관용적 해석이나 합리적 해석에서 찾을 수 없다. 반서구, 반근대화의 이름으로 정교분리(laïcité)에 대한 반대는 아랍의 근대화 계획에 대한 변질이고 사회 정치 시스템의 퇴보이다.”20)
20) Burhan Ghalioun, “Politique et religion en Islam: Entre laïcité et sécularime,” Le Courrier Du Geri, 3(1-2)(2000), 10.
분명히 이슬람법의 변화에 두 축은 정교분리와 세속화로 보인다.
부르한 가리운의 설명은 종교적 규범과 통치적 수단이 하나로 되어 있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고, 이슬람법이 현실적으로 변화의 시점에 놓였다는 것을 드러낸다.
유럽종교학연구기관 책임자 장-필립 브라(Jean-Philippe Bras)는 2008년 「샤리아법의 과거와 미래」라는 논문에서 ‘변화될 수 없는이슬람법의 속성’과 ‘새로운 현실적 요구에 맞게 법의 개혁이 있어야 한다’ 는 두 입장의 충돌을 말한다.
장-필립 브라에 따르면 전통적 보수주의(아랍 민족주의자) 입장은 신법은 신법이기에 물질주의와 개인주의 안에서 무너지면 안 된다.
오히려 이슬람 보수주의는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맞서 이슬람의 기원과 정당성 그리고 순수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을취한다.
반면 현실 권력을 잡고 있는 지배 엘리트들의 개혁적 입장에서이들은 부동의 법, 고대적 법, 근대성을 수용할 수도 없고 인권과 부합하지도 않는 법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보수와 정치적 개혁의 상반된 입장이 공적 영역에서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21)
21) Jean-Philippe Bras, “La shari’a: passé et devenir d’un corpus juridique,” Institut européen en sciences des religions, (2017.01.03.), https://irel.ephe.psl.eu/re- ssources-pedagogiques/fiches-pedagogiques/sharia-passe-devenir-dun-corpusjuridique 2023년 10월 29일 접속.
특히 뜨거운 이슈는 인권과 관련된 가족법, 사형제도, 절도, 간음에 집중되었다.
꾸란에 근거한 이러한 법들은 반 인권적이어서 수정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꾸란에 있다는 이유로 이를 수정할 수 없다.
장-필립 브라의보고가 브르한 갈리운과 같은 맥락 속에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를 제기한다.
과연 이슬람법의 법원(法源)으로서 꾸란, 하디스, 순나가 법 제정을보장하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가?
장-필립 브라의 대답은 이슬람의 법원(法源)들 각각은 서로의 통일성을보장하지 않는다.
첫 번째 이유로 꾸란은 몇몇 이슬람교도의 입법적 요구로 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꾸란은 물질에 대한 법률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명백히 신의 계시에 따른 윤리적 질서를 제정하였다.
이점은 한스 큉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므로 종교적 목적으로 명령이 제정된 것이지 통치의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라 할 수 없다.
이를 증명하는것이 꾸란의 6,236절 가운데 10%절 만이 법률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나마도 종교적 의무, 형벌, 영성과 가족의 지위에 대해서 아주 협소하고 최소한으로 개입한다.
따라서 꾸란의 법률적 명령을 공법이나 헌법에 동일화시키기에는 많은 부분에서 부적합하다.
물론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는 꾸란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
그러나 하디스의 내용은 꾸란 텍스트에서 취한 문자적 내용과 반대되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어 규범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못한다.
즉 꾸란이 허락한 것을 하디스나 순나는 금지한다.
꾸란, 하디스, 순나 사이의 법률적 일관성의 둘째 문제는 법률적 기술(technique), 논리적 일관성, 명령의 질을 모두 포함하는 실제적 규범을꾸란에서 유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판사는 텍스트로부터 규범을 뽑아내고, 해석을 통해 법률적 의미를 부과한다.
문제는 같은 텍스트라 해도 다른 판사에 의해 그리고 지리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전혀 다르게 해석될수 있다.
정확성, 일관성 그리고 과학성이 담보되어야 할 법에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장-필립 브라가 제기하듯이 꾸란이 종교적 규범이나 윤리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엄격해야 할 법체계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법과 종교를 분리하는 커다란 거대 담론이다.
그는 이러한 담론이 이슬람법의 역사에서이미 존재했음을 상기시키며 이슬람법의 변화를 4개의 법학파를 소개하며 근거로 제시한다.
먼저 마리크파(Malik ibn Anas, 710-795)법학파는 아라비아반도, 이집트, 스페인까지 그 영향력을 미쳤으며 이슬람 세계의 주류 법률학파가되었다.
다음으로 하나피파(Hanafite, 699-767)는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과 남인도 대륙과 중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오토만 제국의 공식 법학파이었다.
세 번째로 한발리파(Hanbalite, 780-855) 바그다드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 에미리트에서 지배적인 독트린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샤피이파(Shafiite, 767-820) 카이로에서부터 이집트 남쪽으로 그 영향력을 넓혀갔다.22)
22) 박규환, 아랍 세계의 법문화, 41-43.
이러한 법학파들이 고유의 법체계를 발전시켰다는 것은 이슬람법이 불변의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보여준다.
오늘날 국가 건설에서 다양한 정치 그룹의 목소리를 반영하라는 민주적 요청과 국가 간 교역의 확대는 더 세밀하고 엄밀한 법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에 아랍 세계가 변하지 않는다면, 아랍 세계는 현실에적합한 법을 제정하지 못하여 규범적 무법(anarchie normative)의 위기에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장-필립 브라는 말한다.
요약한다면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경험, 근대화의 욕망과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려는 세속화는 이슬람법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슬람전문가 이희수에 따르면 이란의 경우 19세기 말부터 서구 열강의 간섭과침략이 가속화되었고, 이란의 근대화 과정은 유럽 열강에 대항하는 항쟁의 형태로 나타났다.
1906년 영국과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과 캅카스 지방을 점령하고 남과 북에 각각 자국의 세력권을 형성하였을 때 이에 자극받은 국왕 알딘 샤는 1906년 헌법 제정과 의회 설립을 통해 입헌 혁명을 이룩하고 근대화를 추진했다.
또한 18세기 중엽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자주를 표방하는 민족운동이 태동하였다.
이를 ‘와하비(Wahhabi)운동’이라하는데 원래 이슬람교의 변질과 개혁주의에 반대하여 꾸란의 순수한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종교적 열정운동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프랑스의 침입을 받은 튀니지, 소말리아, 모로코도 연달아 서구 열강의 지배를받았고 이에 맞서 중동 여러 나라들은 서양 문물의 도입 등을 통해 근대화에 주력하였다.23)
23) 이희수, 이슬람: 9.11 테러 10년과 달라진 이슬람 세계, 118-124.
이희수 역시 이슬람법 변화의 중심에 근대화에 대한열정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튀르키예는 꾸란으로부터 통치 이념을 분리하는데 성공한 경우이다.
신학자 한스 큉은 자신이 튀르키예에서 경험한 정교분리(laïcité)와 세속화의 진행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스 큉에 따르면, 레제프 타이프 에르도안은 이스탄불의 시장이었고, 그는 ‘정의개발당’을 이끌고 2002 년 커다란 정치적 승리를 이끌었다. 흥미로운 것은 에르도안이 이슬람화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이슬람법의 도입을 요구하는 급진주의 이슬람당에 반대하였다.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이라는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정당을 탄생했다.
아래의 인용은 사디크 알 아즘이 취한 정교분리에 긍정적 입장을 한스 큉이 인용한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이른바 진보적인 체계가 붕괴한 뒤로 이제는 사실상 계몽의 가치가 되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여러 아랍 사회도 인권, 민주주의, 시민적 자유, 시민 정부, 권력분립, 선거, 행정 통제와 같은 내용을 핵심 가치로 간주하고 있으며 지금 아랍 국가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로 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튀르키예의 사례가 상당히 중요하다. 튀르키예에서는 이슬람 정치가 어떤 심각한 파국을 일으키지 않고 민주주의 체계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불과 한 달 전 이집트에서는 모슬렘형제단이 근본 강령을 발표했는데, 그것이 마치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디드로의 사상처럼 읽히는 것 아닌가! 그들은 칼리파제도를 부활시키자는 요구를 포기했으며, 꾸란이 헌법을 대치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렸다. 튀르키예의 사례는 아랍 세계 전체에 이 모든 가치에 대한 대대적인 토론을 촉발시켰다.”24)
24) Hans Küng, (Der) Islam : Geschichte, Gegenwart, Zukunft, 964.
한스 큉은 이슬람의 공적 공간에서 세속화와 정교분리(laïcité)가 상당히 진전되었다고 보고 있다.
세속화와 정교분리의 진전으로부터 그는 이슬람의 미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이슬람 갱신 세력의 여러 입장을 하나의 공통분모로 간추린다면 근대성을 통한 정체성, 정체성을 통한 근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근대주의를 맹종하거나 과거의 전통을 무조건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유럽 근대의 도전을 수용하는 것이다.”25)
지금까지 이슬람 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이 이슬람법은 신정정치를 통해 이슬람 이상사회를 현실화하려는 정치화의 산물이다.26)
25) 위의 책, 958.
26) 공일주, 이슬람과 IS,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5), 111-112. 이집트와 튀니지 가운데 먼저 튀니지가 세속주의 정치인이 권력을 잡으면서 포스트 이슬람주의로 나아가고 있다. 포스트 이슬람주의는 국가의 법과 꾸란을 구분한다. 정치화된 이슬람주의, 즉 신정정치에서 민주주의 정치체로 옮겨가고 있다.
꾸란을 정치 이념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종교로서 이슬람에 건강한 합리주의를 뿌리내리게 할 것이고, 개인 내면에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다.
IV. 경제영역에서의 이슬람법의 개혁 요인
“믿는 사람들아, 알라를 공경하라. 그대들이 참으로 믿는 사람들이라면 아직 남아 있는 이자를 포기하라.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알라와 그 사도로부터 선전을 받을 각오를 하라. 그러나 회개한다면 원금만은 그대들 것이다. 즉 자기도 부당한 짖을 행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짖을 당하지 않는다.(2: 278-279)”27)
27) 김용선 역, 세계사상전집: 꾸란, 95. 28) 김용선, 꾸란의 지혜와 신비 (서울: 명문당, 2002), 113-114.
꾸란에서 투자는 허용되지만 이자 수취는 금지되어 있다.
이마에 땀을흘리지 않고 얻은 이익은 결국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28)
꾸란에 근거하여 이자를 얻는 모든 금융 형태는 이슬람 세계에서 금지이다.
이를 리바(Riba)라고 한다.
꾸란에서 ‘이자를 받아먹는 자들은사탄의 일격을 받고 넘어진 자들이다.
알라께서는 장사를 허용하시고 이자를 취하는 것을 금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리바’는 호전적인 자본의 침투를 막으며,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부를 이용하여 사회의 경제자원을 독점하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이슬람법은 ‘잉여 재산이 계속해서 사업에 투자하여 순환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수한다.
만약 부의 축적을 고집한다면 2.5%를 희사해야 한다.
이것을 ‘자카트(자선, Zakt)’라 한다.
모슬렘들이 자선해야 하는 것 역시 꾸란에 명시되어 있다.
“근친이나 가난한 자나 나그네에게는 그들에게는 그들에게 합당한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이 알라의 모습을 구하는 자에겐 최선의 길이니라. 그러한 자야말로 번영하리라. 그대들이여, 고리대금을 하면 재산을 늘릴 수가 있어도 알라의 곁에서는 그것으로 아무것도 느는 것이 없다. 아, 알라의 모습을 구하여, 그대들이여 제발 희사(喜捨)를 행하라. 그러한 자야말로 두 배의 포상을 받으리라.”(꾸란 30장 38-39)29)
이 율법이 사실상 이슬람의 복지정책의 핵심이다.
모슬렘 공동체에 분배의 정의와 연대성을 선포한 율법이다.
이러한 이슬람법의 특성은 정의와 연대에 관한 율법이 경제 원리와 연동하여 작동하는 시스템에 있다.
즉 이슬람 신법이 경제 연구의 분석 도구이다.
예를 들어 소비이론은 소비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행위를 연구하는 대신 음식이나 금기에 관한 율법을 재론하는 것이며, 생산이론은 생산 단위로서 기업의 행위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의 소유권에 집중되어 있다.30)
29) 위의 책, 323-324.
30) 홍성민, 이슬람 경제와 금융 (서울: 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 출판부, 2009), 150.
이슬람 경제법의 특수성, 즉 ‘이자 금지와 부의 축적 금지’를 고려하여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는 이슬람 금융의 특수성에 대한 자료를 이슬람 국가와 거래하는 한국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대한무역진흥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첫 번째로 이슬람에서는 단지 금전을 대여해주고 이자를받는 것은 다른 노력(서비스)의 제공 없이 시간의 경과만으로 금전이 증식된 것이기에 부당 이득이므로 종교적으로 금한다.31)
두 번째로 불확실함(gharar) 및 투기행위(maisir) 금지의 원칙이라는 것이 이슬람법에 있다.
이것은 ‘이슬람 금융은 계약 이전에 거래 당사자 간의 모든 사항이확실하고 명백하게 규정돼야 함을 요구한다.
따라서 미래의 수익이 예상되지 않거나 우발적인 상황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지는 파생상품 거래(예: 선물 (Future) 상품, 헤지(Hedge) 상품) 등이 금지 대상이 된다.’32)
셋째로, 도덕성과 종교적인 교리에 어긋나는(Haraam) 거래 금지의 원칙(ibahah)이 있다.
이 이슬람법에 의해 정당한 거래 방식이라 하더라도 카지노, 포르노, 주류, 돼지고기 등등의 금지된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금융거래는 금지된다.33)
오늘날 신자유주의 금융시스템의 전 지구적 적용에서 볼 때, 이슬람의 율법적 금융을 고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히미다 엔나이페(H’mida Ennaïfer) 교수는 (튀니지의 고등신학교. Institut Supérieur de Théologie)
“이슬람 안에서 리바의 역사와 실제”라는 논문 안에서 70년대의 오일 쇼크 이후로 리바의 금지법이 혼돈에 빠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법률가는 ‘이자가 계약에 의한 것이므로 인정되어야 한다.’고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전통적 리바에 대한 도전이다.34)
31) 강대창, 「이슬람 금융의 구조와 정책적 시사점: 수쿡을 중심으로」 (서울: 대외경제정책 연구원, 2012), 20-21. 인터넷 판 https://www.kiep.go.kr/gallery.es?mid=a1010103 0000&bid=0001&list_no=1684&act=view 2023년 10월 29일 접속.
32) 위의 책, 25-26.
33) 위의 책, 28.
34) H’mida Ennaïfer, “Le Riba(l’usure) en Islam Historique et actualité,” Le Courrier Du Geri, 3(1-2)(2000), 13
“가장 최근의 파트와(이슬람 신학자의 권위 있는 법적 유권 해석, fatwa) 안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법률가 에나쾌르(Ennaceur)는 본질적인 말을 하였다. 우리(에나쾌르)가 법률적 유산 안에서 공허하게 찾았던 대답, 그것은 근대적 은행시스템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없이 경제회복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약 발전되고 번영을 이루는 국가들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기를 원한다면 이슬람 세계는 이러한 은행시스템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궁지에 몰렸다.”35)
히미나 엔나이페보다 더 강하게 세계화를 강조한 사람은 이집트 법학자 아슈마우(Achmaoui)이다.
아슈마우의 말이다.
“인류가 가장 인간적인 목적과 본성에 부합하는 사회 경제적 새 질서를 설립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에게 은행 대여 시스템에 반대하는 허망하게 보이는 것들이 모든 이슬람 국가들에 나타나고 있다.”36)
35) 위의 글, 21.
36) 위의 글, 22.
위기 상황에서 이자를 안 받고 돈을 빌려줄 세계은행이 없음을 직시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아슈마우의 논리를 수용하게 되면 꾸란의 ‘이자 금지법(Riba)’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알라(하느님)가 만든 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나라들은 많은 부채로 인해 국제금융의 요구를 수용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은 나라는 국가 내외적 정치, 사회적 위기를 맞았다.
알제리의 경우 국가부채가 2천3백 달러이고 그 이자만도 매년 5백5십억 달러이다.
석유 판매 수익금으로 심각한 상태의 국가부채를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제리인들은 무엇으로 샤리아를 적용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며 꾸란의 권위를 상대화하였다. 세속화와 정교분리가 이 질문 안에 내포되어 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알제리의 상황에서 그치지 않고 전 세계 이슬람 국가로 확산하고 있다.
또 다른 신법과 시민법의 분리에 대해 경제적 요인으로 기술혁신의 요구가 있다.
기술혁신은 상당히 강력한 세속화와 정교분리(laïcité)의 요구이다.
홍성민에 따르면, 기술혁신을 위해 이슬람법은 ‘최우선의 필요’라는 예외 조항을 이용하여 금지의 예외로 허용하고 있다.37)
37) 홍성민, 이슬람 경제와 금융, 167.
현실적 필요 때문에 꾸란의 규범들이 상대화된 경우이다. 결과적으로 꾸란이 정한 법이실효성과 효용성 앞에서 사라지고 있다.
V. 이슬람 문화에서 정교분리와 세속화의 신학적 의미
지금까지 종교로서 이슬람과 법질서로서 이슬람법이 ‘종교 전체주의’로수렴된 현상을 파악했다.
이어서 정치화된 이슬람에 반대하는 이슬람 법학자들의 이슬람법과 꾸란의 분리 주장에 주목하였다.
현실주의에 근거한 국제관계 속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세속주의(laïcité) 개혁을 이슬람을 향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과거의 ‘신정정치’라는 이상사회를 역사의 지평 위에 실제화 시켰다.
이른바 이슬람국가(Islamic State)는 과거 역사로의 복귀이다.
급진 순니파 무장단체 IS는 자신들을 이슬람 원리에 입각한 국가라고자신들을 규정한다.
더욱이 모든 이슬람 국가들이 이슬람 정신에서 벗어났으며 그 가르침에서 벗어났으니 초기 칼리프가 다스리던 이슬람 체제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8)
38) 김동문, 우리는 왜 이슬람을 혐오할까 (구리: 선율, 2017), 40.
결과적으로 현대인이 수용하기 어려운 권위적 도덕법을 강조하고 규제를 강화하면서 억압적 폭력 사회를 만들고 있다.
영성이 주도하는 종교적 르네상스가 아닌 ‘정치의 종교화’를 이루었다.
작끄 엘륄은 이슬람의 특성으로서 정교일치에 근거한 ‘전체성’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이슬람은 진보적이지 않은 성격을 띤신적인 법률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전체적 종교’이다.39)
이슬람과 기독교가 신학적으로 대립하는 부분이다.
첫째로 이슬람은 신법과 정치권력의법에 기초하고 있다.
반면 기독교는 필요악으로서 법률을 이해하며 은총과 사랑이 법의 근원이 됨을 고수한다.
기독교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나라와 세속의 나라는 분리되었으면서도 서로 대립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두 나라 사이의 ‘긴장’과 대립의 상태속에 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은 기다림 속에서 사는 존재이다.
예수의재림에 대한 ‘기다림’은 최후의 심판과 함께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다.
아직 하나님 나라가 이 땅 위에 실현된 것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사건이다.40)
기독교 윤리학자 양명수의 설명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내면에 위치하여 하나님이 사람의 내면을 다스림으로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통치이다.
하나님은 세속의 나라를 통치자들의 칼과 권위로 외부적 평화를 이루신다.
두 나라 모두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통치 그 방식에 있어 영적인 통치는 개인의 내면에서 말씀으로 통치하시고, 세상의 통치는 하나님이 군주를 통해 통치하신다.41)
39) Jacques Elull, Islam et judéo-christianisme, 48.
40) 이상민. 자끄 엘륄,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 (서울: 고북이, 2020), 260.
41) 양명수, 아무도 내게 명령할 수 없다,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18), 31.
신정정치를 표방하는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의 권력과 국가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신학의 차이이다.
양명수가 밝히는 법과 신학의관계를 보면, 첫째로 악의 체험으로 풀어볼 때, 법이 지키려는 선과 신학이 지키려는 선이 차원이 다르다.
둘째로, 정의(Justice)와 정당화(justification) 의 관계로 풀어볼 때, 법은 처음부터 몫에 대한 정의로서 공정성에 근거하여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면 된다.
반면 신학은 은혜에 따른 정당화의문제를 다룬다.
셋째로, 인간관계로 풀어볼 때, 법학은 ‘나와 그’를 규정하는 제삼자와의 관계라면 신학은 ‘나와 너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양명수가제시하는 법과 신학의 관계를 종합하면 ‘사랑 안에 있는 정의 (justice in love)’라 할 수 있다.
신학이 은혜에 따른 정의를 구하고 법률은 행위에따른 정의에 서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학이 정당화의 주체를 하나님에게둔다면 법률은 사람이 사람을 정당화시켜 준다.42)
결과적으로 신학의 정의는 절대 혹은 보편을 추구하고, 세속의 법의정의는 상대이며 특수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양명수의 설명에 귀 기울일필요가 있다.
“법을 정당화하는 것은 국민이며, 법이 정당화되면 그 법을 통해 정의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결국 정의란 국민의 소리를 반영한 것, 곧 ‘공히 옳다고 본 것’이 된다. 정의를 ‘공정성’으로 푸는 태도는 여기서 생긴다. 그리고 그것이 근대국가의 법치주의가 이룩한 정의 관념이다.”43)
42) 양명수, 기독교 사회정의론 (천안시: 한국신학연구소, 1997), 212.
43) 위의 책, 223.
이처럼 다른 속성의 두 법의 정의(Justice) 개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신법이 세상의 통치법이 되는 순간부터 세계의 모든 모순이 하나님의 잘못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상적 이념이 이데올로기화되면서 옳음 자체에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이슬람법이 신학적 정의와 법 정의 모두를발전시키려면 신학적 정의와 법 정의가 분리되어야 하고, 신학적 정의는이슬람법 정의 배후에 바탕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슬람교가 세속의 권세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이슬람법은 근대적 정신에 부합하는 방향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VI. 나오는 말
20세기 들어 이슬람 문화는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세속주의 영향 아래놓이고, 종교와 삶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이슬람 연구가들은 ‘세속화의결과 많은 모슬렘들이 이슬람 종교에서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라고 평가한다.
21세기에는 세계화의 물결이 이슬람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 문화의 확산을 꾀하는 아랍 모슬렘에게 세계화는 이슬람 문화, 정치와 경제의 위협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44)
44) 공일주, 이슬람과 IS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5), 40.
세속화와 세계화에 기인하는 이슬람과 이슬람법의 분리가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본 연구는 이슬람법이 꾸란의 종교법들과 하나가 될 수 없는 다른 속성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혔고, 다른 속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이념으로 일체화 될때 ‘종교 전체주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기독교 신학적 측면에서 기독교인은 하나님과 은혜의 관계 안에 들어갈 때 자유를 누린다.
반면 모슬렘들은 율법과 규례를 지키고자 애쓴다.
이러한 두 종교의 차이는 기독교 사상사에서 논의 되었던 사랑과 정의 혹은 믿음과 행위의 문제이다.
16세기 서구 사회가 경험한 종교와 정치의 분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에서 마키아벨리, 홉스, 루소, 록크, 몽테스키외 등 많은 계몽사상가가 종교법의 권위를 세속법의 권위로부터 분리하려 했다.
시민으로서 자유를 얻기 위함이다.
그 결과 기독교는 개인의 내면에 영향을 주는 심리적 차원과 문화적 차원으로 축소되면서 사회를 향한 법률적 권리는 잃어버렸다.
그러나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되었다.
양명수는 ‘교회가 권력 기관이 아니어야 한다’는 루터의 주장을 타당하게 여긴다.
‘종교가 내면의 자유를 이루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주장도타당하게 여긴다.
교회가 세상의 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을 요구함으로루터는 종교의 권위주의를 제거했고 정치권력의 권위에도 저항 할 수 있었다.45)
45) 양명수, 아무도 내게 명령할 수 없다, 324.
꾸란으로부터 이슬람법이 분리되는 것은 교황권이 축소되고 세속 군주의 힘이 세어지는 서구 역사와 같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역사적 이행과정을 밟을 것으로 예측된다.
점차 공적 공간에서 꾸란의 법률적 역할은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예상은 단순한 역사적 고찰에서 연유한 추론이 아니다. 세계가 하나의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기술사회로 변모하면서근대화, 세속화, 기술의 보편화 그리고 정교분리에 대한 민중들의 요구는더 강렬해지고 있다는 데서 추론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전적 이슬람법을 유지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기독교인은 이슬람교로부터 이슬람법의 분리를 혐오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인류문화에 평화와 공존 그리고연대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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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 문 초 록 ∙
본 연구는 종교법과 시민법이 이슬람법 안에 모두 혼용되어 있는 문제를 밝힌다.
그리고 종교법과 시민법의 분리가 오히려 종교에 자유를 보장한다고 제시하는 바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슬람은 테러리즘으로 그리고 모슬렘들을 테러리스트라는 인식하고 있다.
종교가 정치와 법과 하나가 되면서 ‘종교 전체주의’ 이념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종교 전체주의’에 반대하여 이슬람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 상승으로 이슬람국가들 내부에서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려는 개혁의 움직임이 있다.
본 연구는 세속화, 세계화, 정교분리(laïcité)의 측면에서 이슬람법을 통해 정교분리를 설명한다.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이슬람교로부터 이슬람법의 분리는 인류문화에 평화와 공존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주제어: 종교 전체주의, 정교분리, 이슬람주의, 샤리아, 신정정치
ABSTRACT
The Study of Secularization (laïcité) in Islam from a Christian Ethical Perspective Lecturer,
Lee, Bong Seok (Methodist Theological University)
This study addresses the issue of the intermingling of religious law and civil law within Islamic jurisprudence. It also posits that separating religious law and civil law guarantees greater religious freedom. Currently, in South Korean soci- ety, there is a perception of Islam primarily associated with terrorism, and Muslims are often stigmatized as terrorists. This perception is a result of the con- vergence of religion, politics, and law, leading to the ideology of 'religious totalitarianism.' In contrast to 'religious totalitarianism,' there is a growing de- mand for Islamic democracy, which has prompted reform movements within Islamic nations to separate religion and politics. This research explains the con- cept of secularization and the principle of separating religion from politics (laïcité) within Islamic law. From a Christian ethical perspective, the separation of Islamic law from Islam should be viewed as contributing to peace and coexistence in human culture.
Key words: Secularization, Religious Totalitarianism, Islamism, Sharia, Theocracy
논문투고일: 2023년 11월 11일심사개시일: 2023년 11월 16일게재확정일: 2023년 12월 02일
기독교사회윤리 제57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