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 론
2.전쟁의 본질 :경이로운 삼위일체
3.전쟁의 망각된 차원 :존재론적 전쟁관
4.클라우제비츠의 딜레마 :‘국민’과 ‘정부’의 긴장관계
5.결 론
1.서 론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DerKriegisteineblosse FortsetzungderPolitik mitanderen Mitteln).”1)
1)Carl von Clause witz,Vom Kriege(Bonn:Ferd.DuemmlersVerlag,1966),p.108.이 와 유사한 표현으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수행되는 국가정치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이 유 명한 명제는 전쟁의 본질과 성격을 규명하는 핵심 주장으로 널리 인용되어 왔다.이에 따르면 ‘정치(Politik)’가 전쟁의 개전으로부터 종결까지의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2)전쟁 자체의 독립성은 부인되고 전쟁은 단지 정치 의 하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3)
이러한 정치의 도구로서의 전쟁의 속 성에 대해서 정치가와 전략가 또는 학자 중 한번쯤 인용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기존의 연구들이 이러한 도구론적 전쟁관(instrumentalwar)을 클 라우제비츠를 대표하는 ‘유일한’명제인 것 처럼 기계적으로 인식해왔다는 점이다.4)
2)독일어의 “Politik”이라는 용어는 서로 다른 세 가지의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영어로는 정 치(politics),정책(policy),정체(polity)로 번역되는데,파렛(PeterParet)은 영어 번역본 OnWar(1976)에서 “Politik"을 대부분 “Policy”로 번역하였다.이러한 번역은 클라우제비 츠가 원저서인 Vom Kriege에서 의도했던 Politik의 의미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파렛은 영어의 어감상 국내 정치의 부정적인 정치행위 과정을 뜻하는 politics(정 치)를 피하고 강대국의 패권 정치적 행위를 나타내는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policy(정책) 를 선호했기 때문에 용어를 자의적으로 사용했다.politics와 policy는 모두 권력(power) 과 상관있지만,politics는 권력이 분산된 사회(가정,국가,국제사회)의 상호작용이라는 다자적인 상호작용(multilateralinteraction)을 의미하는 반면,policy는 자신의 권력 장 악과 유지를 위해 투사하는 일방적(unilateral)인 노력을 의미한다.따라서 “정치의 연속으 로서의 전쟁”이라는 전쟁의 도구성을 표현할 때에는 “정책(policy)"보다는 “정치(politics)"의 개념이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ChristopherBassford,“ThePrimacyofPolicyand the Trinity in Clausewitz's Mature Thought," Hew Strachan and Andreas Herberg-Rothe, Clausewitz in the Twenty-First Century (New York: Oxford UniversityPress,2007),pp.80~85.
3) 이종학,“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군사논평』제409호(2011.2); Peter Paret, Die Politischen Ansichten von Clausewitz, Freiheit ohne Krieg? BeitraegezurStrategie-DiskussionderGegenwartim SpiegelderTheorievonCarl von Clausewitz (Bonn: Clausewitz-Gesellschaft, 1980), pp.333~348; Beatrice Heuser,“Clausewitz'sIdeasofStrategyandVictory,"Hew Strachan andAndreas Herberg-Rothe, Clausewitz in the Twenty-first Century (New York: Oxford UniversityPress,2007),p.144.“정치적 관점을 군사적 관점에 종속시키는 것은 바보 같 은 짓이다.왜냐하면 정치가 전쟁을 만들기 때문이다.정치는 지성(Intelligenz)이지만,전 쟁은 수단에 불과하다.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파렛은 클라우제비츠가 “정치”를 전쟁 의 총체적인 현상을 분석하는 개념으로 제시한 최초의 전쟁이론가라고 평가하였다.
4)Andreas Herberg-Rothe, Clausewitz-Information2006: Clausewitz und Napoleon: Jena, Moskau, Waterloo (Hamburg: Fuehurngsakademie der Bundeswehr: InternationalesClausewitz-Zentrum,2006).
클라우제비츠 전쟁이론에 대한 이러한 단선적인 해석은 그가 남 긴 불후의 명작인 Vom Kriege(전쟁론)가 함축하고 있는 전쟁의 본질에 대한 양면적 속성을 간과한 데서 비롯되었는데,여기에는 하워드(Michael Howard)와 파렛(PeterParet)의 영어 번역본인 On War(1984)가 큰 영향 을 미쳤다.5) 이 영역본은 독일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졌는데 여기서 전쟁론에 대한 번역과 해석의 흐름이 전쟁 의 본질이 ‘정치의 연속’이라는 방향으로 과도하게 편향되었다.특히 파렛은 “전쟁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도구론적 전쟁관이 전쟁론의 전반적인 논리구조를 관통하는 핵심명제라고 설명하는데 집착함 으로써 이러한 명제의 이면에 가려진 또 다른 클라우제비츠의 진면모를 주 목하지 않았다.그럼으로써 20세기 중반 이후의 전쟁연구자들은 클라우제 비츠가 남긴 전쟁론의 최대 유산은 정치와 전쟁의 관계성을 명확히 규정한 데에 있다고 성급하게 단정 지었다.6) 그러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이러한 기존 연구자들의 해석 범위를 뛰어넘는 전쟁의 다양한 본질적 속성에 대한 심오하고 입체적인 고찰이 내 재되어 있다.7) 클라우제비츠가 제시하고자 했던 전쟁의 근원적인 본질에 대한 포괄성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8)클라우제비츠가 경험한 나폴레 옹의 전쟁수행의 각 단계에 대한 통찰,즉 “초기클라우제비츠(earlyclausewitz)”와 “후기클라우제비츠(laterclausewitz)”의 대비논점을 총체적으로 통찰해야 한다.9)
5)CarlvonClausewitz,EditedandTranstlatedbyMichaelHowardandPeterParet, OnWar(New Jersey:PrincetonUniversityPress,1984).
6)AndreasHerberg-Rothe,Clausewitz'sPuzzle:ThepoliticalTheory ofWar(New York:OxfordUniversityPress,2007),p.4.
7)허남성,“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3위1체론 소고,”『군사』제57호(2005.12),p.307.허남 성은 기존 연구자들의 해제와 해석이 전쟁론을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안내자가 될 것이 라고 하면서도 “분명한 것은 이러한 해제들이 전쟁론의 본문을 대신할 수 없다”라고 하였 다.스트레찬(H.Strachen)도 독일 역사학자 델브뤽(HansDelbrueck,1848~1929)과 프 랑스 정치학자 아롱(RaymondAron,1905~1983)과 같은 거장들의 일방적인 클라우제비 츠 해석을 넘어서서 클라우제비츠 전쟁이론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고 하였다.Hew Strachan,“ClausewitzandtheDialecticsofWar,”Hew Strachan andAndreasHerberg-Rothe,Clausewitzin theTwenty-FirstCentury(New York: OxfordUniversityPress,2007),p.18.
8)MichaelI.Howard,ClausewitzandModernStrategy(London:FrankCass,1986), p.43.
9)전쟁론은 미완성 작품으로서,3편과 4편은 예나전역의 나폴레옹 전략의 성공을,6편(방 어)은 러시아 전역을,8편(정치와 전쟁계획)은 워털루 전역에서 나폴레옹의 패배에 대해 분석하였다.오직 1편 1장과 1편 2장의 초반부,그리고 2편의 초반부만이 클라우제비츠 가 상반된 전쟁 경험으로부터 축적한 일반이론을 포함하고 있다.여기서 말하는 초기클 라우제비츠란 예나전역(1806),후기클라우제비츠란 워털루 전역(1815)의 경험과 이론적 분석에 바탕을 둔 사상을 말한다.AndreasHerberg-Rothe,Clausewitz'sPuzzle:The politicalTheoryofWar,p.3.
다시 말해 초기클라우제비츠가 나폴레옹의 전쟁수행의 성공적 사례에 초점을 두었다면 후기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 전쟁수행의 실패단계에 주목하였는데,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서 로 다른 전쟁 경험을 포괄하는 전쟁의 본질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그 리고 클라우제비츠는 이러한 상반된 전쟁의 속성과 모습을 ‘정치(또는 오 성,悟性)-우연-감성’이라는 힘의 세 축,10) 그리고 ‘정부-군대-국민’라는 행위의 세 축이 균형된 삼각구도로 형성된 ‘경이로운 삼위일체(wunderlicheDreifaltigkeit,remarkabletrinity)’라는 모형으로 압축하여 설명하였 다.11)이처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정독한다면 전쟁의 본질을 ‘단순한 정치의 연속’이라는 하나의 명제로 성급하게 예단할 수 없으며,12) ‘전쟁정치’의 관계성 이외에도 ‘전쟁-우연’,‘전쟁-감성’의 관계성도 중요한 비중 을 차지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13)
10)이종학,『클라우제비츠와 전쟁론』,주류성,2004,pp.179~194;이종학 편저,『전략이론 이란 무엇인가』,충남대출판부,2010,p.149.오성(Verstand,悟性)이란 경험할 수 있는 현상세계의 영역,이성(Vernunft,理性)은 경험이 미치지 않는 또는 감각적 경험과 관계 가 없는 실체의 세계,즉 이념,신,자유,불사의 영역에 해당된다.클라우제비츠는 경험 할 수 있는 현상세계를 점검하여 거기서 규칙을 발견하려는 것이며,이것은 전적으로 ‘오 성’의 취지를 의미한다.따라서 전쟁론의 삼위일체에 나오는 “Verstand”라는 개념은 ‘오 성(悟性)’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11)허남성,“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3위1체론 소고,”p.318.전쟁은 오성-우연-감정이라는 힘의 3위 1체와 정부-군대-국민이라는 행위의 3위 1체로 구성되어 있다.
12)BeatriceHeuser,ReadingClausewitz(London:Pimlico,2002);BeatriceHeuser, ClausewitzLesen(Munich,Oldenburg,2005).
13)RaymondAron,DenKriegDenken(Frankfurt:Propylaen,1980).
이러한 배경에서 본 논문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론을 ‘정치의 연속으로 서의 전쟁관’이라고 단순화한 기존의 단선적인 해석의 범위에서 벗어나서 그동안 망각되어 왔던 또 다른 차원의 전쟁관인 ‘존재론적 전쟁(existential war)’에 대해서 소개하고 그 함의를 분석하는데 목적을 두었다.기존에 알 려진 클라우제비츠 전쟁이론에 대한 이해,즉 도구론적 전쟁관이 정치와 전쟁의 관계성을 주요논점으로 삼았다면,존재론적 전쟁관은 그 이면에 있 는 국민과 전쟁의 관계성을 중점적으로 고찰하여 전쟁에서 ‘국민(people)’ 이라는 요소가 가지는 역할에 주목한다.14)
14)Harry G.Summer Jr.,On Strategy: The Vietnam War in Context(Carlisle Barracks,1983),p.25.
클라우제비츠의 존재론적 전쟁 에 대한 논의는 히틀러(AdolfHitler)의 국가사회주의(Nazi)가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국민무장을 이끌어 내기 위한 명분으로 악용되어 왔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다가,최근에야 비로소 독일 전쟁이론가들을 중심으로 재개되고 있다.본 논문은 “전쟁은 정치의 연 속(warasacontinuation ofpolicy)”이라는 자주 인용되었으나 그 인용 문의 이면에 가려진 또 다른 ‘절반의 진실’에 대해서 논의하고 주요 논점을 소개하며,전쟁에서 ‘감성’과 ‘국민(people)’이라는 변수가 가지는 영향력과 이에 대한 클라우제비츠의 딜레마적 인식을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한 논문의 전개로서 2장에서는 클라우제비츠가 정의한 전쟁의 본 질에 대해서 재음미하고,3장에서는 클라우제비츠 전쟁이론을 해석하는 과 정에서 망각되어온 ‘국민(people)’변수 중심의 존재론적 전쟁관을 분석하며, 4장에서는 클라우제비츠 전쟁관의 딜레마적 인식을 분석한다.결론에서는 클라우제비츠의 ‘국민’에 대한 딜레마적 인식이 미치는 전쟁론적 함의를 간 략히 제시한다.
2.전쟁의 본질 :경이로운 삼위일체
1)‘정치(Politik)’변수의 상대성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론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명제를 “전쟁은 정치의 도구”라고 규정한 대표적인 학자는 아롱(Raymond Aron)과 파렛(Peter Paret)이다.15)특히 파렛은 ‘지성(Intelligenz)’으로서의 정치가 전쟁을 만들 기 때문에 전쟁은 정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클라우제비츠야 말로 ‘정치’를 전쟁의 총체적인 현상을 분석하는 독립변수로 제시한 최초의 전쟁 사상가라고 평가하였다.16) 그러면서 “전쟁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 속에 불과하다”는 명제가 클라우제비츠 전쟁이론을 관통하는 핵심명제이며, 『전쟁론』의 가치는 ‘전쟁과 정치의 관계성(connection between war andpolitics)’에 있다고 주장하였다.17)‘전쟁-정치’간의 관계성을 부각하여 해제를 수록한 파렛의 영어 번역판인 OnWar(1984)는 독일어에 대한 이해 가 부족한 전 세계의 정치가와 전략가 그리고 정치학자들의 필독서로 활용 되었으며,이로 인해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은 정치적 도구성으로서의 해석범 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18)
15)Raymond Aron,Clausewitz:PhilosopherofWar,trnas.ChristineBookersand Norman Stone(London:Routledge,1983);PeterParet,“TheGenesisofWar,” CarlvonClausewitz,EditedandTranstlatedbyMichaelHowardandPeterParet, OnWar(New Jersey:PrincetonUniversityPress,1984).
16)Peter Paret, Die Politischen Ansichten von Clausewitz, Freiheit ohne Krieg? BeitraegezurStrategie-DiskussionderGegenwartim SpiegelderTheorievonCarl vonClausewitz(Bonn:Clausewitz-Gesellschaft,1980),pp.333~348.
17)Peter Paret,Clausewitz and the State (Oxford: Clarendon Press,1976),p.8; AndreasHerberg-Rothe,Clausewitz'sPuzzle:ThepoliticalTheoryofWar(New York:OxfordUniversityPress,2007),p.4. 18)Clausewitz,OnWar.
즉,“정치의 연속으로서의 전쟁관”은『전 쟁론』을 대표하며 전쟁의 본질을 규정하는 ‘유일한’명제로 인식되어 왔던 것이다. 전쟁의 정치적 도구성이야말로 클라우제비츠적 전쟁의 본질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명제라고 보는 이러한 단선적인 해석에 본격적으로 반박했던 학 자는 가트(AzarGat),호이저(Beatrice Heuser),그리고 로테(Andreas Herberg-Rothe)이다.가트는 『전쟁론』을 평가하면서 1827년 이전에 저술 된 전쟁론의 대부분은 전쟁과 정치의 관계성을 핵심논점으로 삼고 있지 않 았다고 분석하였다.19) 또한 호이저(BeatriceHeuser)도 파렛이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가지고 하는 정치의 연속이다”라는 문장을 해석하면서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다”라는 명제를 “다른 수단”과 분리해서 고립적으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였다고 주장했다.다시 말해 ‘정치의 연속’으로써의 전쟁의 도구 론적 속성과 “다른 수단”이 가지는 전쟁 자체의 속성간의 긴장이 생기게 되 는데,이러한 긴장관계가 바로 전쟁론의 1편 1장의 말미에 ‘경이로운 삼위 일체(remarkable trinity)’로 개념화되어 있다는 것이다.20) 클라우제비츠에 의하면 전쟁의 삼위일체는 맹목적 본능(blind narual force),우연(probability),순수한 ‘오성(悟性)’에 귀속된 정치(policy)의 영역 등 세 가지 경향으로 구성되는데,이러한 전쟁의 세 가지 측면은 국민 (people)-군대(army)-정부(government)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21) 클라우 제비츠는 이 세 가지 요소들 중 하나의 요소가 다른 요소를 무시하거나 다 른 요소와 자의적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면 전쟁의 본질은 이미 파괴된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모순에 빠지게 되므로 이 세 가지 경 향,즉 세 가지 인력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강조하였다.22)
19)AzarGat,A History ofMilitary Thought(New York:Oxford University Press, 2001).
20)BeatriceHeuser,Reading Clausewitz;Alan D.Beyerchen,“Clausewitzand the Non-LinearNature ofWar:Systemsoforganized Complexity,”Hew Strachan, Clausewitz in the Twenty-FirstCentur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21)이종학,『클라우제비츠와 전쟁론』,pp.179~194;Clausewitz,OnWar,p.89.
22)Clausewitz,OnWar,p.89.
이처럼 클라우제비츠의 삼위일체는 전쟁과 정치와의 관 계성이 전쟁의 본질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요소라기보다 세 가지 경향의 부 분적인 요소에 해당되는 상대적인 변수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다시 말해 정치는 전쟁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의 하나일 뿐이며 정치(정부)와 더불어 ‘우연(군대)’과 ‘감정(국민)’의 영역도 전쟁의 속성을 규정하는데 있 어 동등하게 중요한 구성요소임을 말해 준다.클라우제비츠가 제시한 전쟁 의 삼위일체는 ‘전쟁-정치’의 관계성이 ‘전쟁-우연(군대)’,그리고 ‘전쟁-감 성(국민)’의 관계성과 함께 전쟁의 본질을 구성하는 일부 국면,정확히 말 하면 ‘1/3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실제로 전쟁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클라우제비츠의 인식은 나폴레옹전쟁 수행의 변곡에 따라 일정한 변화를 거쳐 왔다.정치와 전쟁의 관계에 대한 상대적인 인식의 변화는 클라우제비츠가 나폴레옹전쟁 수행 중에서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진 전역,즉 나폴레옹의 ‘성공사례’와 ‘실패사례’에서 서로 다 른 교훈을 도출했기 때문이다.로테(A.Herberg-Rothe)에 의하면 클라우제 비츠는 1806년 예나(Jena)전역,1812년 모스크바(Moscow)전역,1815년 워 털루(Waterloo)전역의 사례연구 통해서 전쟁과 정치의 관계를 더욱 완전 히 이해하게 되었다.23) 구체적으로 클라우제비츠가 제시한 ‘경이로운 삼위 일체’는 예나전역(Jena,1806),모스크바 전역(Moscow,1812),워털루 전 역(Waterloo,1815)의 세 가지 특징적인 전쟁수행경험과 분석으로부터 도 출한 중요한 대비논점인 “폭력의 무제한성 對 제한성”,“존재론적 전쟁관 對 도구론적 전쟁관”,“군사력의 우위 對 정치 우위”,“공격의 우선 對 방어 의 우세”에 관한 문제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24)그리고 이 네 가 지에 대한 클라우제비츠의 인식은 예나,모스코바,워털루 전역의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론은 바로 이러 한 상반된 사례연구로부터 도출한 교훈을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이 중적 속성을 모두 내포하게 된 것이다.25)
23)AndreasHerberg-Rothe,DasRaetselClausewitz:PolitischeTheoriedesKriegesim Widerstreit(Munich,2001).
24)AndreasHerberg-Rothe,ClausewitzundNapoleon:Jena,Moskau,Waterloo,pp. 76~80.
25)아마도 1827~1830의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적 전환점은 이 세 개의 원정의 분석과 직접적 으로 연계되었을 개연성이 있다.“예나,모스코바,워털루”는 단순한 도시명 이상의 전쟁 이론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상징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AndreasHerberg-Roth,Clausewitz und Napoleon:Jena,Moskau,Waterloo,p.64. e,
이러한 네 가지 대비논점을 중심으로 초기클라우제비츠(early clausewitz) 와 후기클라우제비츠(later clausewitz)의 인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우 선 예나전역(1806)의 나폴레옹 전쟁수행의 분석으로 부터 배태된 초기클라 우제비츠는 존재론적 전쟁관,폭력의 무제한적 발휘,공세와 결전,정치에 대한 군사력의 우위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특히 초기클라우제비츠의 전 쟁사상은 예나전역에서 나폴레옹군에 대항한 프로이센의 군사적 패배를 통 해 얻은 교훈으로써,전쟁수행의 정치적 주체가 더 이상 ‘국가(state)’가 되어서는 안되며 전쟁은 오로지 전 국민의 광범위한 동원을 전제로 ‘민족국가 (nation)’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인식에서 출발하였다.클라우제비츠는 나 폴레옹군의 거대한 군사적 성공이 프랑스 전체 국가전략자산의 광범위하고 철저한 정치적 동원에 의존하였다는 사실을 간파하였고,국민동원을 기반으 로 한 나폴레옹군의 이러한 전쟁수행 형태는 기존의 국가체제에서는 구현 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현상은 오로지 ‘민족국가’의 형성과 결부되어 있다고 보았다.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전쟁이란 정치의 직접적인 수단이라기 보 다 ‘민족국가’라는 새로운 정치체제의 형성,변환,변화의 매개물로 사용된 다고 간주하였다.26)
26)클라우제비츠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전쟁,거대한 위험,거대한 불상사는 순 수한 인간을 일상적인 존재를 초월하여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Herfried Muenkler, Ueber den Krieg: Stationen der Kriegsgeschichte im Spiegelihrer theoretischenReflexion(Verbrueck:Wissenschaft,2003),p.99.
다시 말해 이러한 형태의 전쟁은 이미 구축된 정당한 권력 독점체로서의 국가의 정치적 수단으로 수행되는 것이라기 보다,새로 운 권력이 창출되는 과정 그 자체로 이해되어 진다.따라서 전쟁은 정치의 도구라기 보다는 미성숙한 새로운 정치집단의 출현을 위한 과정,즉 민족 해방전쟁과 같은 혁명전쟁(revolutionarywar)으로 이해되며 이때에는 ‘국 가’보다 ‘국민’이 전쟁수행의 핵심적인 주체로 등장하게 된다. 한편 초기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전쟁의 초기전쟁 수행의 신화적인 성 공요인을 분석하면서 얻은 결론이기 때문에 1806년 이전까지의 나폴레옹의 군사적 승리는 결전의 추구,전쟁의 무제한화,그리고 전쟁수행의 절대성에 있다고 보았다.따라서,전쟁의 본질은 전투이며,주회전을 언제나 전쟁의 핵심적인 중점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하였다.이에 따라 클라우제비츠는 적 주력의 직접적인 섬멸이야말로 전쟁성공을 위한 지배적인 원칙이며 폭력의 극대화는 성공적인 전쟁수행을 위한 합리적인 수단이라고 인식하였다.또 한,가장 최선의 전략은 항상 강력함을 유지하는데 있었으며 ‘병력의 집중’ 보다 더 상위의 간단명료한 승리의 공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해했다.27)
27)Clausewitz,OnWar,pp.373~396.
클라우제비츠는 군사력의 우세함이 불충분하게 무장한 ‘이상(Ideal)’을 능가 한다는 점을 나폴레옹군대가 입증하게 되자,정치행위를 외교행위로 축소했 었던 1806년 이전의 프로이센의 중립정책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즉,1806년 프로이센에 대한 나폴레옹 군대의 승리는 ‘국민(people)’이 전 쟁수행의 핵심적인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그리고 정치에 대한 군 사 우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모스크바 전역(1812)이후 클라우제비츠는 초기의 관점에서 전환 기를 맞게 된다.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전쟁 실패를 노정하면서 나폴레옹 전쟁수행의 실패 원인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게 되는데,여기서 공세에 대한 방어의 우세,결전 회피의 군사적 가치,그리 고 군사적 수단의 내재된 한계성 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군사적 승리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인식하였다.클라우제비츠의 이러한 인 식의 변화는 1812년 이후 프랑스를 제외한 각 국가들의 전쟁수행능력이 나 폴레옹군대와 비슷해졌기 때문에 군사 이외의 정치적 조건들이 전쟁수행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상황에 기인하였다.이때부터 나폴레옹 군은 더 이상 전쟁 초기처럼 개별국가들과 상대하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 었고,영국,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 등의 연합국으로부터 공격을 받 게 되었기 때문에 정치적,외교적 요인이 전쟁을 깊숙이 지배하고 전쟁을 훨씬 더 강력하게 규정했다고 분석하였다.이 때문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 이 독자적인 현상이 아니며 오로지 정치적 교류의 변형으로써 정치적 계획 과 이익의 수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이른바 도구론적 전쟁관을 발전시 켰다.클라우제비츠는 나폴레옹 전략의 한계를 경험한 뒤 전쟁수행에 대한 ‘정치의 우위’라는 명제를 이끌어 내었는데,이러한 관점은 워털루 전역 (1815)에서의 나폴레옹의 결정적 패배를 경험한 이후 재차 확인되었다.28)
2)전쟁의 경이로운 삼위일체(Wunderliche Dreifaltigkeit)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초기클라우제비츠와 후기클라우제비츠의 상반 된 사례연구에서 도출한 네 가지 대비논점을 통합하여 발전시켰기 때문에 정-반-합의 변증법적인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클라우제비츠는 1806년의 “예나(Jena)”로 대표되는 나폴레옹의 초기 전쟁수행의 성공적 사례와 1815 년 “워털루(Waterloo)”로 대표되는 나폴레옹의 후기 전쟁수행의 실패적 사 례라는 상반된 논점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도록 ‘정치-우연-감성’또는 ‘국 민-군대-국가’라는 분석틀을 사용하여 전쟁의 속성을 일반화하였는데,그것 이 바로 “경이로운 삼위일체”라 할 수 있다.29) 따라서 전쟁론 전체의 논리 체계는 예나,모스코바,워털루 전역의 상반된 전쟁경험들을 어떻게 하면 하나의 단일한 개념하에 체계화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시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쟁의 삼위일체적 본질에서 정치와 전쟁의 관계성은 전쟁의 본질을 해명하는데 있어 국부적 설명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정치 가 전쟁의 개시와 종결을 결정하는 최고의 지배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전체(Totalitaet)”를 구성하는 “부분(Teil)”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30)
28)Clauwewitz,OnWar,p.467.
29)허남성,“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3위1체론 소고,”pp.317~318.
30)허남성,“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3위1체론 소고,”p.329.클라우제비츠가 진정으로 의도 했던 것은 3극 각가의 의미나 속성이 아니라 이 세 가지 경향 사이의 내재적 긴장과 갈 등 그리고 조화를 변증법적 시각으로 보여주려고 하였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속이다” 라고 강조하였지만 이것은 삼위일체의 세 가지 경향 중 하나에 불과하며 세 가지 경향은 근본적으로 동등한 중요성을 갖고 있다.31)이 때문에 클라 우제비츠는 전쟁이 만약 세 가지 경향 중 어느 한 가지라도 고려하지 않거 나 이들 간에 자의적 관계를 설정하고자 하는 이론(theory)은 “현실과 충돌 하게 되어서 완전히 무용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 것이다.32) 워털루 전역 이후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 그 자체가 독립적인 전체가 아 니라 보다 포괄적인 전체,즉 정치의 일부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인식한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전쟁론의 1편 1장 ‘경이로운 삼위일체’는 정치의 전 쟁에 대한 영향이 세 가지 경향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확히 알려주 고 있다.따라서 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의 핵심적인 명제는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문구에 있다기보다 삼위일체의 ‘세 가지 경향(정부-군대-국민)’ 의 균형을 유지하라는 다음의 명제가 전쟁론 전체의 논리구조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33) “(삼위일체의 세 가지 요소 중)하나의 요소가 다른 요소를 무시하거나 다른 요소와 자의적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면 전쟁이론은 이미 파괴된 것으로 간 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모순에 빠지게 된다.따라서 이 세 가지 경향,즉 세 가지 인력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34)
31)Raymond Aron,DenKriegDenken,pp.103~115.
32)Andreas Herbger-Rothe,Clausewitz'sPuzzle,p.69.
33)이종학,“클라우제비츠 전쟁론은 어떻게 읽어야 하나,”p.170.전쟁의 세 경향은 상황에 따라 그 비중이 변화하며 어떠한 경우라도 이 세 요소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예를 들 어 미국은 베트남 전쟁의 패배에 의해 비로소 국민의 지지와 사기의 중요성을 통감하게 되었다.
34)Clausewitz,OnWar,p.89.
정리하자면 ‘전쟁은 정치의 단순한 연속’이라는 ‘정치-전쟁’의 관계성에 대한 강조는 클라우제비츠가 진정으로 의도한 전쟁의 삼위일체적 본질에서 단 하나의 극(pole)을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특히 이 점은 후기클라우제비 츠,즉 나폴레옹의 1815년 워털루전투에서의 실패를 경험한 후에 특별히 강 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따라서 이러한 도구론적 전쟁관이 클라우제비츠 전쟁이론을 관통하는 “유일한”명제라는 단선적인 해석은 기존의 연구가 ‘후 기클라우제비츠’의 논점에 집중함으로써 초기클라우제비츠의 중요한 분석대 상이자 삼위일체의 한 극(pole)에 해당되는 ‘국민’의 역할과 비중을 간과했 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평가된다. 1806년 나폴레옹 전쟁의 초기국면의 사례분석에 기반 한 초기클라우제비 츠는 후기클라우제비츠의 도구론적 전쟁관과 상반된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초기클라우제비츠는 ‘국민’을 전쟁의 주체로 전면에 등장시켜야 하 며,전쟁이 정치의 수단이라기보다 전쟁을 통해 국민을 동원하고 ‘교육’시키 는 일종의 매개체(medium)로 이해했다.따라서 국민의 속성을 감정의 영 역이라고 규정하면서 국민이 주체가 되는 전쟁은 도구론적 전쟁과는 근본 적으로 다른 차별화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전쟁이론 가로서 클라우제비츠의 위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다음 장에서는 기존에 주목하지 않았던 1806년 예나전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기클라우제비츠의 존재론적 전쟁관의 형성과 특징에 대해서 분석한다.
3.전쟁의 망각된 차원 :존재론적 전쟁관
1)전쟁수행에서 ‘국민(people)’의 역할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명제로 인식되어 온 정치적 도구로서의 전쟁관과 더불어 전쟁 속성의 양 축을 형성하는 또 다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관은 존재론적 전쟁(existentialwar)이다.35)
35)HansRothfels,Carlvon Clausewitz,Politik undKrieg:Eineideengeschichtliche Studie(Berlin,1920),viii.뮹클러(HerfriedMuenkler)는 클라우제비츠가 1806년 이후 인식했던 전쟁의 속성을 존재론적 전쟁(existentialwar)이라고 정의하였다.나치독재시 대 슈미트(CarlSchmidt)이후로 논의되지 않았던 존재론적 전쟁의 개념은 클라우제비 츠의 전쟁이론이 냉전 이후 분쟁양상을 설명하는데 실패했다고 주장하던 키건(John Keegan),크레벨드(Martin van Creveld),칼도어(MaryKaldor)의 견해를 반박할 수있다. 키건에 의하면 파렛과 아롱(RaymondAron)에 의해 정립된 클라우제비츠의 도구론적 전쟁관의 관점에서 “후기클라우제비츠”사상이 “초기클라우제비츠”사상을 압도 한다고 보았다.뮹클러는 이러한 후기클라우제츠에만 매몰된 기존 학자들의 연구에 반 박하면서 존재론적 전쟁이야 말로 클라우제비츠의 핵심적인 전쟁이론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이러한 존재론적 전쟁관은『전쟁론』에는 체계적으로 기술되지 않았지만,1812 년에 작성된 “회상록(Bekenntnisschrift)”,그리고 “알리는 글(Nachricht)”와 “방어사상 (Gedankenzur Abwehr)”에서 가장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HerfriedMuenkler,Ueber den Krieg: Stationen der Kriegsgeschichte im Spiegel ihrer theoretischen Reflexion,pp.98~100.
존재론적 관점은 정치적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합목적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론적 전쟁관과 달리 전쟁을 통해 “의지(Wollen)”의 주체를 형성하거나 구속과 강압적 상황을 부여하여 국민 을 정신적으로 “정화(reinigen)”하는 과정이라고 간주한다.36)클라우제비츠 는 전쟁론을 기술하면서 이러한 “정치적 도구”로써의 도구론적 전쟁과 “사 회심리적 카타르시스”로써의 존재론적 전쟁에 대해 체계적으로 구분하여 설 명하지는 않았지만,1812년에 작성한 Bekenntnisdenkschrift(회상록),그 리고 vom Kriege(전쟁론)의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제시하였다. 존재론적 전쟁관에 대한 인식은 클라우제비츠가 자신의 조국인 프로이센 이 나폴레옹군대에게 맥없이 무너지고 난 1806년의 예나전역 이후 프로이 센 국민들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대목에서 뚜렷이 드러난다.여기 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정치의 수단이 아니라,국민들 개개인의 학습의 도구로서 그리고 광범위한 전쟁참여로 유도하기 위한 매개물로 간주하였 다.37)
36)Herfried Muenkler,Ueberden Krieg:Stationen derKriegsgeschichteim Spiegel ihrertheoretischenReflexion,p.100.
37)PanajotisKondylis,TheoriedesKriegs:Clausewitz-Marx-Engels-Lenin(Klett-Cotta, 1988),p.28.
클라우제비츠는 1806년 나폴레옹군이 프로이센을 침략한 이후 나폴 레옹군대의 전쟁수행 방식이 프로이센이라는 왕조체제에 기반 한 국가가 절대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가진 혁명적 방식의 전 쟁 형태임을 간파했다.그것은 나폴레옹의 전쟁수행이 단순한 군사적 역량 에 기반한 ‘국가(state)’의 전쟁이 아니라 전 국민이 동원된 ‘민족국가 (nation)’의 전쟁이었다는 점이다.이것은 기존의 전쟁수행이 대중과 분리 된 군사력이 적의 전투력을 분쇄하는데 목표를 두었던 반면,나폴레옹의 군대는 프랑스 혁명 이후 폭발적으로 분출된 대중적 열정과 이념(ideology) 등 “이상의 힘(force of ideals)”으로 무장된 ‘국민’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 다.38) 국민전쟁이라 불리는 나폴레옹의 군대에 대항해서 프로이센군대가 저항하거나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애초부터 희박했다.이 때문에 클라우 제비츠는 예나전역(1806)에서 정치가 결코 전쟁의 강도를 완화시키지 않았 다는 점,그리고 전쟁에서는 ‘대중’과 ‘국민’들의 ‘자기희생(self-immolation)’ 이 반드시 요구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였다.39)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인간은 전쟁을 통해 비로소 일상을 지배하는 이기 심을 극복하게 되고 이러한 인간들로 구성된 정치적 집단이 자신의 정체성 에 대해 스스로 인지하게 된다.40)이 때문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커다란 위험,대재앙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상적인 존재감(gewoehnliches Dasein)’을 극복하게 해준다.다시 말해,전쟁은 인간이 상실하게 될 시민 적인 특권에 관계없이 일상적인 존재감을 극복하게 해준다”라고 하였다.41)
38)KertzscherGuenter,SergeiTulpanow,Deutschlandnach dem Kriege1945~1949 (BerlinOst,1985),p.15.
39)Werner Hahlweg,Carlvon Clausewitz: Schriften,Aufsaetze, Studien, Briefe. Dokumenteaus dem Clausewitz-,Scharnhorst-und Gneisenau-Nachlasssowie auseffentlichenundprivatenSammlungen,2.Vols.I.(Goettingen:Vandenhoeck undRuprecht,1966~1990),pp.678~751.클라우제비츠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어 떤 사람이 자신의 존재의 고귀함과 자유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 다.그는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 바쳐서라도 이것을 지켜야 한다.이것보다 더 상위 의 의무는 없으며 복종해야 할 더 상위의 법칙도 없다....피 흘리고 명예로운 투쟁 이후 에 자유가 파괴된다 해도 이것은 국민의 재탄생을 담보한다.이것은 삶의 씨앗이며,이 것은 언젠가는 안전하게 뿌리를 내린 새로운 나무를 가져다줄 것이다.”
40)GerhardRitter,StaatskunstundKriegshandwerk:dasProblem desMilitarismus inDeutschland,Band.1(Muenchen/Oldenburg,1954~1968),p.60.이것은 자코뱅 당의 브리쏘(Brissot)가 남긴 유명한 연설이 바로 이점을 연상케 한다.“수 백년간의 노 예생활 후에 자유를 쟁취한 민족은 전쟁을 필요로 한다.이들은 자유를 공고히 하기 위 해 전쟁이 필요하다.그들은 독재주의의 멍에로부터 자유를 세척하기 위해 필요하다.그 들은 그들의 품에서 자유를 부패하게 할 수도 있는 인간들을 쫓아내기 위해 필요하다.”
41)CarlvonClausewitz,HerausgegebenvonHansRothefels,PolitischeSchriftenund Briefe(Muenchen:DreiMaskenVerlag,1922),p.75.
클라우제비츠는 1806~1807년 당시 프로이센 국민들이 영광스러운 죽음보 다는 비겁한 평화를 갈망하던 굴욕적인 분위기에 대해 극도의 거부반응을 나타내었다.따라서 클라우제비츠는 1806년 프로이센의 패배 이후의 정치사 회적 분위기를 프로이센 국민들의 “정신적 항복”,“독일민족의 정신력 부 재”,그리고 “독일민족의 기질상실”이라고 한탄했으며,전쟁이야말로 이러 한 프로이센 국민들의 나약한 정신자세를 치료할 수 있는 ‘정신치료의 수단 (Mitteldermoralischen Therapie)’이라고 간주했다.1807년 9월 11일의 편지에서 클라우제비츠는 ‘국민’들의 저항 의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강조 하였다. “나는 평화의 상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약한 수단에 대해서 말 한다.내가 만약 내 정신에 내재된 비밀스러운 생각을 말해본다면,나는 가장 폭력적인 것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몽둥이질을 하여서라도 나는 나태한 짐승을 자극할 것이며,그를 그러한 겁쟁이로 그리고 공포스럽게 만든 족쇄 를 깨부수라고 일깨워 줄 것이다.“42) 다시 말해 초기클라우제비츠의 전쟁관은 나폴레옹군대에 대항하기 위한 프로이센의 민족해방적 발로와 애국적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광범위한 국민 들을 무장시키기 위한 ‘혁명전쟁’적 인식에서 비롯되었다.이러한 관점은 후 기클라우제비츠의 도구론적 전쟁관과 상충되는 것으로 전쟁을 단순한 정치 적 도구로 인식하기 이전에 전쟁수행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의 용기, 충성심,명예심등과 같은 윤리적인 요소에 대해 주목하면서 민족해방 혁명 을 위한 정신적인 호소를 강조한 것이다. “나는 분명히 평온함(Ruhe)의 가치를 안다.… 나도 여타 다른 사람들처럼 행 복해지기를 바란다.그러나 나는 비열함과 불명예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까지 평안함을 구하고 싶지는 않다.철학은 우리에게 우리의 조국을 우리자신 의 피로써 충실히 보위하라는 의무에 대해 가르치고 있으며,조국을 위해 우리 의 평안함,다시 말해 우리의 존재(Daseyn)를 희생하라고 가르치고 있다”43)
42)Clausewitz,PolitischeSchriftenundBriefe,p.20.
43)Werner Hahlweg,Carlvon Clausewitz: Schriften,Aufsaetze, Studien, Briefe. Dokumenteaus dem Clausewitz-,Scharnhorst-und Gneisenau-Nachlasssowie auseffentlichenundprivatenSammlungen,2.Vols.Bd.I,p.683.
그러면서 클라우제비츠는 민족해방을 위해 국민들의 정신적인 분투심을 자극하여 국민무장(peopleinarms)을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나는 우연이라는 손에 의해 구원되리라는 경솔한 희망에서 벗어나라고 말하 고 있으며 아래에서 열거하는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말하고 있다: 무딘 의미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허황된 기대,자발적으로 무장 을 해제함으로써 폭군의 분노를 가라앉히려는 철부지 같은 희망과 기대,비 열함과 아부를 통해 독재자의 신뢰를 얻는 것,탄압당하고 있는 정신력의 잘 못된 체념,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힘에 대한 비이성적인 불신,공공의 선을 위한 모든 의무를 망각하는 것,국가와 국민의 모든 명예와 모든 개인적인 존 엄성을 수치심 없이 희생시키는 것에서 벗어나라고 선언하는 것.나는 국민 에게 있어 국민의 삶의 자유와 존엄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또한 이러한 것들을 마지막 피 한 방울로써 수호해야 한다고 믿는다.또한,이보다 더 신성한 의무는 없으며 이보다 더 고귀한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그리고 비 겁한 굴종의 부끄러운 오점은 절대로 지울 수가 없으며,국민의 피속에 흐르 는 이러한 독극물은 후세로 전달되어 후세 세대들의 힘을 마비시키고 약화시 키게 되리라 생각한다.왕과 정부의 명예가 국민의 명예와 동일하며,… 설사 이러한 피를 흘리면서 명예스러운 전투 후에 자유가 종말 된다 하더라도,이 것은 한 민족의 재탄생을 보장하며 새로운 나무가 더 굳건한 뿌리를 내리게 하는 생명의 씨앗이 된다”44)
44)Werner Hahlweg,Carlvon Clausewitz: Schriften,Aufsaetze, Studien, Briefe. Dokumenteaus dem Clausewitz-,Scharnhorst-und Gneisenau-Nachlasssowie auseffentlichenundprivatenSammlungen,2.Vols.Bd.I,p.688.
이처럼 1806년 이후 나폴레옹군대에 점령당한 프로이센의 패망적 현실에 직면한 클라우제비츠는 앞으로의 전쟁은 더 이상 국민의 동원이 없이 이루 어지는 단순한 ‘정부(government)’만의 무력투쟁이 되어서는 안되며 ‘국민’
이 전쟁의 전면에 등장하여 ‘국민전쟁(people'swar)’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는 점을 인식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초기클라우제비츠에서는 전쟁이 국가정책의 도구로서의 국가간 전쟁이라기보다는 ‘국민’에 대한 정신적 교육을 위해 수행되는 국민전쟁으로 이해되었다.
프로이센이 강력한 나폴레옹군대에게 그러했듯이 클라우제비츠에게 있어 전쟁이란 한 민족이 전쟁을 통해 그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그 자신 스스로에게 도달하는 ‘민족해방전 쟁’으로 비춰진 것이었다. 이러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관은 마키아벨리(NiccoloMachiavelli)가 인식 한 ‘국민 결집을 위한 동원 기제’로써의 전쟁관과 맥을 같이 한다.마키아벨 리는 전쟁을 원천적으로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국가의 내부 결 속력을 강화하고 공동체를 위해 국민들의 참여를 강화시키는 ‘기회’라고 이 해하였다.이러한 전쟁관은 전쟁을 국민의 광범위한 참여에 기반하여 정치 적 질서를 쇄신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원동력이 된다고 인식한다.45) 즉,클 라우제비츠의 설명대로 전쟁은 단지 “적에게 우리의 의지를 강요하기위해 사용하는 폭력의 행위”가 아니라,46) 그 스스로가 자신의 의지를 증명하기 위해,자신의 능력에 확신을 가지기 위해 또는 최소한 정치적인 의지를 가 지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로 이해해야 한다.여기서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 라기 보다 최고형태의 정치행위 그 자체이다.이러한 존재론적 전쟁관은 제3세계 국가들의 식민지 해방운동에서 발전되었던 폭력의 정당화 과정에 서 그 사상적 계승성을 발견할 수 있다.47)
45)Herfried Muenkler,Ueberden Krieg:Stationen derKriegsgeschichteim Spiegel ihrertheoretischenReflexion.,p.12.
46)Clausewitz,Vom Kriege,p.191.
47)KurtFlasch,DieGeistigeMobilmachung.Diedeutschen Intellektuellen und der ErsteWeltkrieg(Berlin:AlexanderFestVerlag,2000),p.177.
2)존재론적 전쟁의 특징과 전략적 의미
존재론적 전쟁은 투쟁을 통해 국민들을 투쟁으로 참여시키고 투쟁을 통해 국민들을 교육하여 분투심을 자극하기 위한 노력에 주안점을 두게 된다. 존재론적 전쟁은 도구론적 전쟁과는 달리 정당한 정치조직이 없는 상태에 서 진행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도구론적 전쟁관에서는 정치 가 전쟁수행에 정치적 목표를 부여하지만,존재론적 전쟁관에서는 전쟁이 정치의 수단일 수도 있겠으나 이미 정해진 목표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라 기보다는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창출해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민족 해방전쟁’과 같은 존재론적 전쟁관은 전쟁을 통해 비로소 정치집단을 형성 하며,이러한 정치집단의 존재를 통해 전쟁이 정당화된다. 도구론적 전쟁과 존재론적 전쟁관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전쟁 을 수행하는 주체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다.전쟁을 정치하에 개념화하 는 도구론적 전쟁관은 전쟁수행 주체가 전쟁을 통해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 한 국가의 정치적 목표를 폭력적 수단의 사용으로 관철하고자 하는 국가는 전쟁행위가 종결된 후에도 개전시와 동일한 형태의 정체(政體)로 존속한다. 다시 말해,전쟁을 통해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지도 않으며 전쟁 중에 국가 가 변환하지도 않는다.기껏해야 국가는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유지한 채로 그 영토를 확대할 뿐이다.48)
48)이 때문에 클라우제비츠의 도구론적 전쟁관이 1864,1866,1870년에 수행된 유럽 국가간 전쟁의 적당한 표현이었다고 하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국가간 전쟁으로 시작되었고 모든 당사국 정부들로부터 우선 도구론적 전쟁으로 이해되었던 1차 세계대전은 그 전쟁 수행 과정에서 변화를 겪었는데,그 변화의 속성은 전쟁이 점차 ‘국민’의 감정의 영역이 점차 전쟁수행의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해가는 존재론적 전쟁관에 근접한 것이었다.유럽의 전쟁에 참가한 국가 중 어떠한 국가도(미국을 제외하고)전쟁이 개시되었을 때와 동 일한 형태로 전쟁을 끝낼 수 없었다.
그러나 존재론적 전쟁관은 전쟁주체의 변환과정과 형성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이러한 과정은 전쟁과 폭력을 통해 자극되고 가속화된다.존재론적 전쟁에서는 전쟁수행의 일정국면까지 는 “전쟁과 폭력”그 자체가 한시적으로는 스스로 전쟁수행의 “주체”가 된 다는 점을 의미한다. 클라우제비츠의 존재론적 전쟁관의 발견은 삼위일체적 전쟁의 본질에 기 초한 전략(strategy)과 승리(victory)의 개념을 한 차원 높게 발전시켰다.기 존에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론을 도구론적으로만 이해해온 관점에서는 전쟁에서의 승리의 개념도 단선적으로 이해되었다.즉,기존의 많은 연구들은 결정적 전투에서 적을 타도하고 적을 방어능력을 해제함으로써 섬멸적인 패배를 강요하는 것이 전쟁의 승리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해석하면서,49) 전 쟁이 적과 나의 “의지의 경쟁”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에,50)전쟁에서의 승리 는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기여할 때 비로소 성취된 것으로 간 주하였다.51)이러한 점에서 “무장한 군사력,국가,그리고 적의 의지”로 구 성되는 적의 국가를 무장해제해야 한다는 클라우제비츠의 주장이 자주 인 용되었다. “적 전투력은 격멸되어야 한다.즉,적 전투력이 더 이상 싸움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어야 한다.여기서 적 전투력의 격멸이라는 표현은 이러 한 의미를 지고 있음을 명백히 하고자 한다.적 국토는 정복되어야 한다.왜 냐하면,국토를 기반으로 새로운 전투력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 두 가지가 성취되었다고 할지라도 적의 의지가 강제되지 않는 한,즉 적국정부 와 동맹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거나 적 국민이 항복하도록 강제되지 않는 한,전쟁 다시 말해서 긴장과 적대감정을 지닌 적 전투력의 행동은 종료되었 다고 볼 수 없다.”52) 즉,결정적 전장의 승리를 통해 양측방이 전쟁을 재개하려는 의지와 결 의가 없는 평화협정 체결의 상태를 전쟁이 종결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53)
49)BrianBond,ThePursuitofVictory:From NapoleontoSaddam Hussein(Oxford: OxfordUniversityPress,1996).20세기 초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까지 결정적 전투, 섬멸전투는 서구 전쟁수행 전략의 주요한 사조를 형성하였다.
50)CarlvonClausewitz,OnWar,p.75.
51)BeatriceHeuser,“Clausewitz'sIdeasofStrategyandVictory,”Hew Strachanand Andreas Herberg-Rothe, Clausewitz in the Twenty-first Century (New York: OxfordUniversityPress,2007),p.144.
52)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저,류제승 역,『전쟁론』,책세상,2008,p.60.
53)BeatriceHeuser,“Clausewitz’sIdeasofStrategyandVictory,”p.146.
그러나 존재론적 전쟁관에서는 승리의 핵심요소가 단순히 상대 전투집단 의 전투 의지를 분쇄하는데 있다기 보다 국민의 ‘마음(minds)’에 영향을 미치는 감성적,심리적 차원에 있다고 본다.54) 다시 말해,전투가 단순히 군사력의 균형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전 국민과 전쟁지휘부에 막 대한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이러한 전쟁의 심리적 차원에 대한 강 조는 프랑스혁명과 함께 일어난 전 국민의 동원에 영감을 받은 ‘국민’과 전 쟁의 결부와 깊은 연관이 있다.프랑스 혁명 이후 격변한 전쟁 환경에서 클 라우제비츠 사상의 핵심은 ‘적 대중’(enemypublic)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필 요성을 인식했다는 것이다.프랑스 혁명전쟁,클라우제비츠의 국민전쟁 또는 국민봉기 사상은 국민대중의 전쟁에 대한 참여를 의미한다.55)따라서 클라우 제비츠는 적의 “중심(Schwerpunkt,centerofgravity)”를 공격하되,56)“적 의 군대”,“수도”등 유형적 요소뿐만 아니라 “대중여론(publicopinion)”과 같은 무형적 요소에도 동일한 비중을 둘 것을 강조하였다.57)
54)Clausewitz,OnWar,p.76.
55)Clausewitz,OnWar,p.220.클라우제비츠는 “이러한 전쟁은 국가의 가슴과 기질(heart andtemper)이 정치의 총체적 집산,전쟁잠재력과 전투력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할수 있는지 입증한다.정부가 이러한 자원을 의식하게 된 지금,전쟁이 자위적 차원에서 행 해지든지 강렬한 포부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해지든지 우리는 장차 이러한 자원들이 사용 되지 않도록 기대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
56)Clausewitz,OnWar,p.596,p.619.여기서 말하는 중심이란 “가장 많은 무장병력이 집 중된 지점”,“가장 많은 지렛대(leverage)를 취할 수 있는 지점”으로 정의되며,승리를 위해서는 적의 중심을 가장먼저 식별해야 하며,그리고 나서 이 결정적인 지점에 모든 병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군사적 차원에서 설명하였다.
57)Heuser,“Clausewitz'sIdeasofStrategyandVictory,”p.150.프로이센과 독일의 초 기 클라우제비츠 추종자들은 유형적 중점(PhysicalCenterofGravity)에서 무형적 중점 (metaphysicalCenterofGravity)으로의 지적인 전환관정을 이행하지 않았다.이들은 결정적 전투와 적의 섬멸에 경도되었다.이들은 1870~1871년의 보불전쟁과 1차 세계대 전에서도 섬멸 전쟁만이 전쟁의 성공을 보장하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인식하였다.
단적으로 빨치산(게릴라)전쟁의 수행과 같은 존재론적 전쟁에서는 전쟁의 승리가 군사적 성공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뿐 더러,단순히 그 무장집단의 전투 의지가 분쇄되는 되는 것만으로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다.예를 들어 빨치산투쟁을 포괄하는 내전의 상황에서는 전쟁이 단 한 번의 결정적 전투 만으로 승패가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를 적에게 강요하는 것” 은 단순히 군사적 승리를 통한 상대 전투 집단의 ‘의지’를 굴복시키는 데에서 초월하는 포괄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적의 저항의지에 대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적이 정말 패배했으며,그 패배가 되돌릴 수 없 는 것임을 확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다시 말해 전쟁에서 주민 또는 국민 들의 ‘마음과 가슴(heartsandminds)’을 획득해야만 지속적인 성공을 보 장한다는 의미이다.이러한 점으로 볼 때,적의 중심은 적의 군대,수도 등 과 같은 유형적 요소뿐만 아니라 “국민의 여론”과 같은 무형적 요소를 포괄 해야 한다고 지적한 클라우제비츠의 견해는 탁월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클라우제비츠의 이론에서 지속적인 평화에 이르는 승리의 조건은 결전이 요구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적의 결정적인 군사적 격 퇴가 확실히 적의 저항의지를 분쇄하는 중요한 필요조건이었으나,그 자체 로는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즉,지속적인 승리라 는 것은 적의 마음(mind)을 변화시키고 적의 가슴(heart)을 정복한 이후 주 민들의 적대의식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야 비로소 보장된다.이것 은 국가간 전쟁 또는 혁명전쟁의 경우 둘 다 유효하다.특히 정치집단의 정 체성을 스스로 확인하고 생성시키는 과정으로써 전쟁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존재론적 전쟁에서 주민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국가간 전쟁에서와는 달 리 그 정치집단의 생존에 있어 사활이 걸린 핵심과업으로 볼 수 있다.
4.클라우제비츠의 딜레마 : ‘국민’과 ‘정부’의 긴장관계
클라우제비츠의 존재론적 전쟁관은 전쟁의 승리를 위한 국민의 광범위한 동원의 필요성에서 비롯되었으나 당시 프로이센의 정치체제의 보수성 때문 에 외부위협에 대한 ‘국민’의 결집이 ‘내부 정치체제’의 존립에 미치는 부정 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클라우제비츠의 존재론적 전쟁관은 한편으로는 나폴레옹군에 점령당한 조국 프로이센의 해방을 위한 애국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나폴레옹 혁명군의 강함이 “국민”의 거대한 동원과 열 정에 기반했다는 점에 착안하여,클라우제비츠는 1806년 예나전역에서 패배 한 조국 프로이센의 국민무장을 위해 민족주의적 애국심을 자극하려고 하 였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의 전쟁이론 전반을 관통하는 정치사상은 기 존 정치체제를 수호하려는 ‘보수주의’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다시 말해 클라 우제비츠는 프로이센의 국민무장과 국민전쟁이 프랑스와는 달리 전쟁의 승 리에 국한된 “제한된 동원”에 머물러야지,국민의 전쟁참여가 정치 참여로 이어져 기존 정치체제의 전반적인 변혁과 혁명적인 상황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전쟁수행능력을 위한 ‘국민’의 동원의 불가피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나,그것이 기존 정치질서에 위협을 주어서는 안 되는 딜레마에 처 한 것이다.따라서 클라우제비츠는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의 전쟁수행 방식의 변화에 공감하면서도,‘이념(ideology)’이 전쟁수행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58)이념은 곧 정권안보를 위협하는 해악적 인 요소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초기클라우제비츠의 존재론적 전쟁관에 나타난 국민전쟁은 예나 의 패전(1806)요인의 분석과 성찰로부터 비롯되었다.클라우제비츠는 프로 이센의 예나전역시 전쟁수행은 ‘내각’의 정책수준에 머물렀고,국민이 단지 단순한 정치의 도구로써 참여하게 되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전쟁이 국민의 관심과 이익에서 멀어져 있다고 보았다.이러한 식의 전쟁형태는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분절된 채 수행되었던 단순한 ‘정부(government)의 정책’에 머물렀던 것이다.이에 반해 나폴레옹 전략의 초기 성공은 혁명의 소용돌 이 속에서 분출된 국민의 열정과 정치적 이상이라는 정치적인 상황에 기반 했던 것으로 분석했다.59)
58)Beatrice Heuser, The Strategy Makers: Thoughts on War and Society from MachiavellitoClausewitz(SantaBarbara:PraegerSecurityInternational,2010), p.13.
59)Clausewitz,Vom Kriege,p.998.
즉,프랑스 혁명을 통해 비로소 “국민“이 전쟁의 개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거대한 “국민“의 힘이 혁명수행과정에 이용되었던 것이다.60)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수행 능력의 문제가 군사적 영 역의 조직,전략,전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정치사회적인 개혁을 포괄하 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이러한 클라우제비츠의 인식은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 다고 볼 수 있다.마키아벨리는 국제관계를 끊임없는 국가간의 경쟁체제로 인식하고 이러한 갈등관계 이외에 다른 어떠한 질서가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다.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국가들은 영속적인 상승과 하강이라는 체제 로 특징지어지며 국제관계에서의 권력 배분은 제로섬(zero-sum)게임의 형 태로 나타나게 되는데,어느 한 국가가 힘을 획득하게 되면 다른 누군가는 힘을 잃게 되며 그 합은 동일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따라서 마 키아벨리는 국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힘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힘이라는 것은 전쟁수행 능력에 대한 “국가 정치질서의 정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따라서,마키아벨리는 전 쟁을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국가의 내부결속력을 쇄신하고 국 민들의 정치참여를 강화시키는 기회로 이해함으로써,국민의 광범위한 참여 에 기반하여 전쟁수행 능력을 확보하고자 한 것이다.61)
60)Scharnhorst,“Entwicklung derUrsachen des Gluecks derFranzosen,in dem Revolutions-Krieges, und insbesondere in dem Feldzug von 1794,” ders. MilitaerischeSchriften,p.195.이에 대해서 1797년 샤른호르스트(Scharnhorst)는 프 랑스군 승리의 원인을 프랑스혁명으로 변화된 사회적 변동에 기인한다고 설명하였다. “혁명전쟁에서 연합국가가 겪은 재앙의 원인은 각 국가의 내부 문제 및 프랑스 혁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클라우제비츠는 이러한 국민전쟁 또는 국민전쟁 사상의 영향을 받 았으며 샤른호르스트의 분석 관점을 계승하였다.
61)Herfried Muenkler,Ueberden Krieg:Stationen derKriegsgeschichteim Spiegel ihrertheoretischenReflexion,p.12.현재의 시각에서 이러한 견해는 매우 생소하게 비 춰질 수 있다.그러나 공화정 발전과정에서 이러한 관점은 일반적인 정치 이념이었으며, 유럽과는 달리 미국 엘리트의 일부는 아직도 이러한 원칙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이 러한 점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철학(Philosophie)에서 포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키아벨리는 전쟁에서 조국의 평안과 번영에 지향하고자 하는 무조건적인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조국의 번영과 고통에 관한 일이라면,그것이 정당한지 부당한지,온건한지 비참한지,칭찬할 만 일인지 창피한 짓인지 고민해서는 안 된다.우리는 모든 다른 고려사항을 옆으로 제쳐놓고,삶과 자유를 구원하는 척도와 규범만을 취해야 한다.”62)
클라우제비츠도 전쟁을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국민을 무장시 키고 교육시키는 과정 또는 매개체로 인식하였으며,이러한 국민의 정신적 요소가 전쟁에서의 절대 절명의 원칙으로 규정된다고 주장하였다.따라서, 초기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에 있어 국민이 그 국가의 존재 와 생존과 그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려고 하면 할수록,‘국민’의 역할이 ‘강화’ 되면 될수록,반대로 소수의 정치엘리트에 의한 결심이 제한되면 될수록 전쟁강도가 강화되므로 나폴레옹군이 초기 단계에서 전쟁을 승리하였다고 분석하였다.63) 그러나 문제는 외부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국민동원이 보수적인 정치체제 에 기반한 국가의 ‘정권안보(regimesecurity)’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이 때문에 클라우제비츠는 국민의 참여를 통한 전쟁수행 능력의 확보에는 동의하면서도 “설득”과 “이데올로기”를 통한 국민의 ‘가슴 과 마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제안하지 않았다.그는 “거친 전투력 (crudeforce)”에 의한 거대하고 결정적인 승리,그리고 적대 국가의 수도 를 정복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처방이라고 말했다.64)
62)Machiavelli, Niccolo, Discorsi. Gedanken ueber Politik und Staatsfuehrung, uebersetzt von Rudolf Zorn, Mit einem Geleitwort von Herfried Muenkler (Stuttgart:Kroener,2007),p.395
63)강진석,『전략의 철학』,평단문화사,1996,p.51.이러한 형태의 전쟁 특성을 클라우제 비츠는 절대전쟁(absolutewar)라고 정의하였는데 절대전은 관념상의 형태,즉 분석목적 상 제시한 전쟁의 형태이다.Clausewitz,VerstreuteKleineSchriften,p.228.
64)Clausewitz,OnWar,p.1070.이에 대해 호이저(B.Heuser)는 클라우제비츠가 프랑스 혁명이라는 이데올로기 전쟁 직후에 국민을 동원하는데 순수한 민족주의 이외에 정치적 이상(politicalideals)에 호소할 필요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 라고 평가했다. Grosser Generalstab(ed.), Moltkes Militaerische Werke, IV: Kriegslehren,Part3(Berlin,1911),p.6.몰트케(H.vonMoltke)도 마찬가지로 “전투 에서의 승리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그것만으로도 적의 의지를 분쇄하고,우리에게 항복하도록 강요한다.전투에서의 승리는 일반적으로 한점의 영토 또는 하나의 거점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결정적인 적의 전투력의 격멸이다.따라서 이것이 작전의 주요 목표가 된다”라고 하면서 클라우제비츠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프로이센은 반동적인 현상유지 국가였으므로,평등을 주장하는 프랑스공화주의자의 생각에 반항 한 군주체제를 지키고자 했다.따라서 클라우제비츠는 병역 의무가 가능한 국민들만을 ‘제한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형태의 국민 전쟁을 지향했다.그가 이렇게 한데에는 경제적 부와 권력의 재분배라는 정 치적 이상에 대한 공약을 하지 않고서도 애국주의와 왕조체제에 기반한 동 원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으로 보인다.실제 당시 다수 정치가들 은 독일국민 전체를 무장하는 것이 오히려 정부의 통제에서 이탈하는 전쟁 으로 변질시킬지 모른다고 우려했다.65)
65)Manfred Rauchensteiner, “Betrachtungen ueber die Wechselbeziehung von politischem Zweck undmilitaerischem Ziel,”Eberhard Wagemann und Joachim Niemeyer(eds.), Freiheit ohne Krieg? Beitraege zur Strategie-Diskussion der Gegenwartim SpiegelderTheorienvonCarlvonClausewitz(Bonn,1980),p.63. 66)Jon TetsuroSumida,DecodingClausewitz(Kansas:UniversityPressofKansas, 2008),p.55.
거센 “국민”의 힘이라는 것이 외부 의 위협에 대한 억제세력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역으로는 기존의 정치적 질서와 체제,즉 정권안보(regimesecurity)에는 심대한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국민”의 이율배반적 성격에 대해서 우려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후기클라우제비츠는 “국민”이 정치사상의 후면에 퇴장하 고,점차 “국가”가 전면에 등장하게되는 경향을 보인다.클라우제비츠는 프랑스의 군사적 점령으로부터 프로이센을 해방시키기 위해 국민동원을 통해 군사력을 증가시키면서도 국가권력(powerofthestate)의 확대에 노력을 집중했다.66) 이것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관이 존재론적 전쟁관에서 도구론적 전쟁관으로 발전하는데 있어 두 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국민의 역할을 국가가 대체한다는 것은 전쟁이라는 도구를 국가지도자 의 일부 세력에게 위임한다는 점에서,그리고 전쟁을 정치의 도구로 개념화 하는 단계를 단축시킨다는 측면에서 전쟁개념의 도구론적 성격을 더욱 강화 시키는 것이다.
둘째,전쟁을 정치하에 개념화하는 것을 한 단계 단축시킴으로써 전쟁이 정치사회적 변수에 종속되는 것을 방지하여 “정치”가 결국은 책임 있는 소수 엘리트에 의해 비교적 자유롭게 행해지면서,군사 기술적 관 점에서 합리적으로 전쟁의 목표를 결정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클라우제비츠는 프랑스혁명을 통해 정치와 전쟁으로부터 배제 되었던 “국민”이 드디어 정치와 전쟁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전쟁의 목표,목 적,그리고 수단의 “합리성”을 기초로 계산되고 작동되던 기존 전쟁체제를 혼동스럽게 만들다는 점에 대해서 우려했다.67)
프로이센의 정치적 모순을 변혁하여 프랑스군들의 일시적인 우세에 대해 균형을 회복하고 군사적 균 형을 구비하는 것이 프로이센의 개혁의 중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클라우제 비츠는 ‘정치적 이상’을 통해 국민의 열정을 자극하기 보다는 조국해방의 신념과 국가를 위한 무조건적인 ‘헌신’을 통해 강조한 것이다.클라우제비츠 는 전쟁수행 능력을 정비하기 위한 노력의 근본적인 척도가 프랑스 혁명에 서 표출된 “정치적 이상”을 기초로 한 형태의 “국민무장”에 있지 않고 전쟁 을 다시 “계산의 합리성(Kalkuelrationalitaet)”이라는 정상적인 궤도로 복귀 시키는데 있다고 인식하였다.“전쟁의 목적은 대중이 무관심하게 행동하면 할수록,그리고 양 국가와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긴장이 적으면 적을수록 정치적 목적이 척도로써 더 많이 지배적이며 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 이다.또한 그럼으로써 정치적 목적이 스스로 결정하는 사례도 있다.”68)
한 마디로 국민이 정치적 사안에 연루된 정도가 낮으면 낮을수록,전쟁수 행은 더욱더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이러한 과정을 삼위일체론의 관 점에서 보면 맹목적인 본성으로 간주되는 증오와 적대관계,즉 전쟁의 원초 적 폭력성과 결부된 “국민”의 열정이 전쟁의 강도를 변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69) 클라우제비츠는 프랑스혁명에서 전파된 민주적 이념과 사상들이 독일정치에 유입되었다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라고 인식하였던 것이다.70)
67)Clausewitz,Vom Kriege,p.970.“전쟁은 갑자기 국민의 문제가 되어버렸다.다시 말해 시민으로 간주되었던 3천 만의 국민의 것이 되었다....전쟁에 이러한 국민이 참여함과 동 시에 내각과 육군대신에 전체 국민이 그들의 자연스러운 비중과 함께 저울위에 올라왔다.”
68)Clausewitz,Vom Kriege,p.201.
69)Jan Willem Honig,ProblemsofTextand Translation,in:Hew Strachan and Andreas Herberg-Rothe, Clausewitz in the Twenty-first Century (New York: OxfordUniversityPress,2007),p.72.
70)LudwigBeck,Studien (Stuttgart,1955),p.227;Jan Willem Honig,Problems of Text and Translation,p.73.
이러한 클라우제비츠의 딜레마는 1800년대 후기 독일 군국주의자들에게 계 승되었는데,이들도 국민을 정치과정에서 적극 참여시키기 보다는 단순히 군사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원하는데 국한시킴으로써 군이 정치적 통제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조건을 구축하는데 주안을 두었다. 정리하자면 외부위협에 대한 전쟁수행 능력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논의되 는 국민무장과 “국민”의 동원이라는 변수는 정치적 상황과 조건에 따라 국 내정치적 정권안보를 위협하는 내부 위협으로 작동될 수 있다.특히,권력 투쟁으로 위협받거나 새로운 정치체제에 대한 국민의 이상과 열망에 의해 정권안보적인 위협에 시달리는 정치체제는 전쟁수행 능력을 확보하는 과정 에서 클라우제비츠가 인식한 딜레마적 상황을 동일하게 노정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키아벨리는 분쟁에 기반한 국제질서하에서 반드시 피해 야 하는 것은 바로 내부의 파벌투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71)
71)Machiavelli,Niccolo,DerFuerst,uebersetztvonRudolfZron(Stuttgart:Kroener, 1978),p.88.“파벌투쟁에서 좋은 무엇인가가 생겨나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파벌 투쟁으로 분열된 도시들은 적이 근접하면 붕괴될 것이다.왜냐하면 약한 파벌은 점점 더 많이 외부 국가로 넘어가게 될 것이며 다른 파벌은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 이다.”
특히 “국민”의 동원이 곧 기존 권력체제에 심대한 위협을 가하는 경우,그것이 파벌투쟁 과 연계되어 확대된 차원의 권력투쟁으로 연계될 경우 “국민”을 전쟁의 주 역으로 등장시키지 못할 뿐 더러 오히려 전략 결심과정에서 배제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할 수 있다.
5.결 론
연구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론을 재평가하고 현재까지 간과되어 왔 던 존재론적 전쟁(existentialwar)에 대해서 소개하였다.현재까지 학문적 세계에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론이 ‘전쟁은 정치의 단순한 연속’이라는 명제로 널리 인식되어온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본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 듯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이론은 도구론적 전쟁의 관점이외에 전쟁이 국민 의 광범위한 동원을 유도하고 국민의 정신적 각성과 교육을 유도하는 ‘정신 적 해방과 새로운 정치체제의 형성’을 위한 과정으로 이해되는 존재론적 전쟁관을 동시에 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두 가지 전쟁관은 클라우제비츠의 불후의 명작 Vom Kriege의 1편 1장에의 마지막 부분인 ‘경이로운 삼위일체’에 집대성되어 있다.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삼위일체적 본질을 설명하면서 ‘정치(정부)와 전쟁’의 관계성의 다른 극단에 ‘감성(국 민)과 전쟁’의 관계성이 동등한 가치로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클라우제비츠의 두 가지 전쟁관은 1806년 이후 나폴레옹군대의 전쟁수행 의 성공과 실패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사례연구(case study)에서 도출한 동 전의 양면과도 같은 전쟁의 속성을 보여준다.이 때문에 클라우제비츠는 전 쟁의 본질을 ‘오성(悟性,Verstand)’이 지배하는 정치의 도구로 귀속시키면 서도,감정이 지배하는 국민의 영역을 이와 동일한 가치로 인정하였다.기 존의 연구들은 전쟁의 본질의 양면을 구성하는 요소 중 클라우제비츠의 도 구론적 전쟁에 주로 주목함으로써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단선적인 차원으로 해석하게 되었던 것이며,이것이 바로 전쟁 론이 함축하고 있는 전쟁이론으로서의 설명력과 진면모를 간과하게 된 주 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기존연구에서 많이 주목받지 못한 클라우제비츠의 존재론적 전쟁관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간 혁명전쟁(revolutionary war)의 관점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적용되는 전략의 형태가 바로 게릴라 또는 빨치산전쟁이다.빨치산 전쟁에서는 투쟁을 통해 비로소 이러한 투쟁에 참여하고자 하는 계층들을 생성해내고 결집시키며,이를 통 해 자신들의 의지대로 투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다.존재론적 전쟁관은 전 쟁수행의 주체를 전쟁을 통해 비로소 형성하거나 또는 적어도 전쟁수행주 체를 전쟁수행 과정에서 변환시키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이러한 존재론적 전쟁은 힘이 약한 정치집단이 보다 강한 국가를 상대로 한 상황에서 치루 어야 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국가간의 전쟁과는 달리 정부보다는 ‘국민’이 전쟁수행의 핵심적인 주체로 등장한다.따라서 이러한 존재론적 전 쟁에서는 이상과 이념의 힘에 의해 작동되는 국민의 광범위한 정치적 동원 과 무장이 요구된다.
그러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관은 국민의 동원이 ‘정치적인 이상의 힘’을 추동력으로 했던 나폴레옹의 국민전쟁과는 다른 형식으로 발전되어야 한다는 딜레마적 상황에 직면하였다.
약 프로이센의 보수적 정치체제로부터 탈피한다는 정치적 이상을 선전하여 국민 동원을 할 경우 프로이센의 봉건 적 군주체제는 내부적으로 더 이상 국민적 저항을 버티기 어려웠다.이 경 우 외부위협에 대한 전쟁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국민’은 오히려 ‘정부’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적대세력으로 돌변할 우려가 있었다.다시 말해,‘국가’가 시대정신과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반동적인 권력체 제를 지향하는 경우 ‘자유주의적 호소와 열정’과 같은 이상의 힘이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여 무장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외부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국민의 동원과 정부 간의 긴장관계’라는 딜레 마는 오늘날 비민주적 독재체제에 기반한 국가들의 대내외적 전략의 모순 성을 규명하는데 큰 함의를 가진다.단적으로 북한은 전통적으로 ‘인민’의 정치적 동원을 위해 대남 적대의식을 고취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수단으로 민족주의와 반미의식을 고취하여 왔다.그러나 이들은 단 한번도 북한 ‘인 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정치폭력의 탄압과 폭정으로부터 ‘정치적 자유’,그 리고 ‘반노예 상태로부터의 해방’과 같은 자유주의적 이상을 주민 동원의 명분으로 내건 적이 없다.북한이 만약 개인의 자유와 ‘폭정으로부터 해방’ 이라는 명분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그것은 곧 북한내부의 정권안보에 치명 적인 해악이 될 것이 때문이다.즉,외부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동원해야 하는 ‘인민’역량의 결집이 오히려 대내적으로 반동체제의 정권안 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노정하게 될 것이 자 명하다.바로 이러한 딜레마,국민동원의 필요성과 정권의 불안정성의 긴장 관계,이것은 현재 북한이 당면한 가장 큰 안보전략상의 딜레마이자 약점 이라고 볼 수 있다.이것은 1806년 프로이센이라는 왕조체제하에 나폴레옹 군의 ‘국민전쟁’의 방식을 추구하고자 하면서도,정치적 진보주의에 기반을 둔 ‘나폴레옹식 혁명전쟁’보다는 민족주의적 애국심에 호소하여 국민을 단 순히 군사적 수단으로서 국민무장을 추구하고자 했던 초기클라우제비츠의 딜레마와도 유사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클라우제비츠 전쟁이론의 재인식을 통해 전쟁 분석에서 오성 (悟性)과 정치의 영역에 해당되는 ‘정부-전쟁’의 관계성 못지 않게 감정의 영역에 해당되는 ‘국민과 전쟁’의 관계성도 중요하다는 점을 도출할 수 있 었다.특히 ‘감정과 국민’의 영역은 한국의 현 정치 상항에서 ‘정부’의 국가 안보전략이 추동력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핵심적인 변수 이자,점점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 론은 그 설명력이 유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클라우제비츠가 오늘날과 같 은 민주정치의 도래를 예견하였다고 볼 수는 없으나 그가 정립했던 존재론 적 전쟁관은 적어도 전쟁수행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국민’이라는 요 소가 ‘정부’의 합리적인 결심 못지않게 결정적인 요소라는 점을 명확히 통 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주제어 :경이로운 삼위일체,도구론적 전쟁관,존재론적 전쟁관,정부,군대
Rethinking of the Clausewitz's Vom Kriege:The Existential War and Role of People in the War
Kim,Tae-hyun
The purpose of this paperis to rethink a famous phrase waras a continuation ofpolicy by analyzing a nature ofwarin thevom Kriege, which hasbeen believedasasymboloftheClausewitz'swartheory.This paperwillintroduceaforgotten dimension ofwar,which can becalledas a existential warfare (existenzielle Kriegsauffassung) and provide its implication comparing with a instrumental war (Instrumentelle Kriegsauffassung). Myargumentscanbesummarizedasfollows.TheessenceofClausewitz's theory ofwarhas been understood in one way ofinterpretation influenced stronglybyPeterParetandMichaelHoward'sversionofonwar1984.From thispointofview,themostwell-knownbeliefofClausewitz'stheoryhasbeen ainstrumentalunderstanding,thatis‘warasacontinuationofpolicybyother means'.However,Clausewtiz's vom Kriege contains a dualnature ofwar under a conceptualframework of remarkable trinity ofwar consisting of government-army-people or blind natural force-probability-policy. For Clausewitzaconnectionofpeopleandwarisasimportantasaconnectionof governmentand war.The previous research did concentrate its perspective merely on an one side of this dualnature of war,and this leads to reductionism ofClausewitz'spowerfulexplanatorylogicaboutnatureofwar. Theexistentialunderstandingofwardoesinfluenceashiftofwarparadigm in thecontextofrevolutionary war,which hasbeen visualizedasaform of partisanwarfareorguerrillawarfareintherealworld.Intherevolutionarywar people inspired by thepoliticalidealsand patriotic nationalism in a pole of blinderNaturtrieb,notgovernmentinapoleofVerstand,playsacriticalrole toconductwar.EventhoughClausewitzdidnotforseeacoming ofarecent politicaldemocratic system,his insighton a importantrole ofpeople in a conductofwarshouldberedeemed.
Key Words :Trinity ofWar,Instrumental Warfare,Existential Warfare, Continuation of Policy,People'sWar,Government,People
(원고투고일 :2011.12.28,심사수정일 :2012.2.10,게재확정일 :2012.2.21)
'전쟁군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진전쟁 초기 경상좌도 일본군의 동향과 영천성 전투/김경태.한국학중앙연구원 (0) | 2024.11.14 |
---|---|
동맹 결속의 공고함과 느슨함 사이-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정보 동맹의 역사가 갖는 함의 -송민선 外/연세대 (0) | 2024.11.14 |
한국 육군 사단급 제대의 군사혁신 방향:다영역작전과 MDTF 적용을 중심으로/장재규.영남대 (0) | 2024.11.14 |
동학농민혁명기 재조선일본인(在朝日本人)의 전쟁협력 실태와 그 성격/박맹수.원광대 (0) | 2024.10.07 |
동맹 결속의 공고함과 느슨함 사이-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정보 동맹의 역사가 갖는 함의 -송민선 外/연세대 (0) | 2024.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