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1902년 스물둘의 나이에 일본 유학을 떠난 루쉰(魯迅)은1906년문예에종사하기로 결심하고 의학 공부를 포기한다. 문예에 종사하기로결심한그가가장 먼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잡지 ≪新生≫의 발간(1907년여름)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잡지 발간이 좌절되자 루쉰은 동유럽과 러시아등 약소민족의 문학에 심취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무렵 루쉰이 동시대 일본의 작가들 가운데 유독 소세키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1908년루쉰은 소세키가 기거했던 곳으로 이주했으며, 그의 작품을 독파하기도했다.
그리고사망하기까지 10년 정도 살았던 상하이에서는 소세키 전집을구입하기도했다.1)
1) 히야마 히사오 저, 정선택 역, ≪동양적 근대의 창출 - 루쉰과소세키≫(서울: 소명출판,2000, 22-23쪽) 참고.
1933년에 쓴 <我怎麽做起小說來>에서 루쉰은 일본 유학시기 가장 좋아했던작가로 러시아의 고골리, 폴란드의 시엔키에비치(Sienkiewitz)와함께 나쓰메소세키,모리 오가이(森鷗外)를 들고 있다.2) 周作人 역시<關於魯迅之二>에서루쉰이 도쿄에 있을 때,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우미인초(虞美人草)≫를 애독했다고 말한다. 소세키에 대한 루쉰의관심이흥미로운것은그의초기 문예론(혹은 문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 글들의발표시점과도연계되어있기 때문이다.
<中國地質略論>(1903년 10월≪浙江潮≫ 제8기)을제외하고, <人之歷史>(≪河南≫ 월간 창간호), <魔羅詩力說>(1908년≪하남≫ 제2, 3호), <科學史敎編>(1908년 6월 ≪하남≫ 제5호), <文化偏至論>(1908년 8월 ≪하남≫ 제7호), <破惡聲論>(1908년8월5일≪하남≫ 제7호) 등이 그것이다.
“다만 아쉽게도 루쉰 자신은 소세키 문학을 좋아한이유에관하여일절말하고 있지 않은 까닭에 그의 관심의 소재가 어디에있었는지는분명하지않다.그렇지만 당시의 루쉰이 서양의 모방에 지나지않았던일본의자연주의문학의 성행(盛行)에는 무관심하면서도 이와 대립하는위치에있었던소세키의문학에 끌렸다는 사실에는 어떤 적잖은 이유가 숨어있음에틀림이없다.”3)
히야마 히사오의 언급에서 우선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점은루쉰이동유럽약소국의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의 연장선에서 문학적비주류에대한관심이다.당시 일본의 문학적 경향은 서양 주류 문학의 모방이었으며, 이는다시문명사적 대세였던 서양적 근대화, 즉 서양의 방식으로자신의정체성을재정립하려고 했던 일본의 정신사적 전환의 모색이라고도할수있다. 이와같은문학적대세에 대한 반감과 비판을 루쉰은 소세키에게서발견하지않았을까라고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제국으로 거듭난 일본의지식인이었던소세키가자신의정체성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영국 유학이었다. 그가영국유학에서경험했던
2) 魯迅, ≪鲁迅全集≫ 4권(北京: 人民文学出版社, 1981년 제1版, 511쪽) 참고.
3) 히야마 히사오 저, 정선태 역, 위의 책, 23쪽.
이질감과 열등감은 반식민지의 지식인이었던 루쉰이일본유학기간에경험했던 그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질감과 열등감을극복하기위한그들의선택은문학이었다.
이 과정에서 소세키의 문학은 서구근대문명을거의무비판적으로수용하는 일본의 근대문명과 제국주의를 비판하는수단이되었으며,루쉰의문학은 전통문명에 대한 비판과 중국인의 정신개조를위한무기가되었다.물론 이와 같은 언급은 양자의 문학이 갖는 거시적의의라고할수있으며,이미 대다수 관련 연구가 이를 지적하고 있다.4)
4) 이와 같은 연구 결과물로는 앞서 언급한 히야마 히사오의 저작과정선태의≪심연을탐사하는 고래의 눈≫(서울: 소명출판, 2003), 전수진ㆍ이경규의<나쓰메소세키(夏目漱石)와 노신(魯迅)의 근대문화 수용에 대한 의식 비교>(한국일본근대학회, ≪日本近代學硏究≫ 제56집, 2017), 안영희의 <동아시아의 근대와 근대 지식인- 나쓰메소세키,루쉰,이광수>(일본어문학회, ≪일본어문학≫ 제71집, 2015) 등이있다.
본고 역시 이와 같은 기존의 성과에 동의하며, 여기에서는양자가문예(혹은 문학)를 통해 시도하고자 했던 바를 근대 주체탐색이라는관점에서근대적주체의 존재론적 양상과 윤리적 조건에 대해 살펴보고자한다.
이를위해 본고는 얼핏 상이하게 보이는 루쉰의 ‘나래주의(가져오기주의)’와소세키의‘자기본위’의 의미를 연계시켜 논구할 것이다. 다시 말해본고는소세키와 루쉰의 존재론적 사유가 지닌 특징에 주목하여 근대적 주체의조건과존재론적양상에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양자의 존재론적양상에대한탐구임과동시에,그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근대적 주체의 조건에 대한 논의이기도하다.
소세키에 대한 루쉰의 관심을 문헌을 통해 구체적으로확인하는것이불가능하기때문에 본고는 양자의 일부 글에서 사유(思惟)의유사점을찾는데집중할것이다.
2. 자유와 개성, 근대적 주체의 조건
자유와 개성을 양자가 추구한 근대적 주체의 조건으로상 정한이유는 두사람의 존재론적 불안과 고독의 양상을 탐구하기위함이다.
그이유는우선적으로 루쉰과 소세키의 개인사와 연관된다.
다음으로 양자 모두 당시문단에서 소수자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후발 근대국가 일본의 지식인 소세키와 전근대 국가 중국의 지식인이었던 루쉰은 근대화의수준은달랐을지모르지만, 공히 문명사적 전환기를 겪었던 점을 들수있다. 루쉰은몰락한집안의 장자였으며, 집안의 몰락 과정에서 인정세태의쓴맛을경험하고모멸감을느꼈다. 열세 살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가 과거와관련된뇌물수수사건에연루되어 투옥되면서 루쉰은 잠시 친척집에 얹혀 살게되는데, 당시그는‘밥빌어먹는 놈’으로 불리기도 했다.5)
“소세키는 메이지유신으로 몰락한 도쿄의 나누지(名主) 집안의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냈다. 후처소생인데다아버지가50이 넘었고 어머니도 40이 넘어서 태어난 터라 ‘수치스런아이’, ‘쓸데없이아이’또는 ‘귀찮은 존재’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이러저러한사정으로그는요츠야에있는 고물상 집의 수양아들이 된다. 그리고 그는가난한고물상집에서고물취급을 받는다.”6)
5) 루쉰, <러시아 역본 ≪아큐Q정전≫ 서언 및 저자의 자술 약전>, 루쉰전집번역위원회옮김, ≪루쉰전집≫ 제9권(서울: 그린비, 2016, 129쪽) 참고.
6) 정선태, ≪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서울: 소명출판, 2003, 122쪽). 이어정선태는1905년 39세의 나이에 첫 작품을 창작한 소세키가 1916년 12월사망하기까지불과10여년 사이에 열 편이 넘는 장편과≪열흘 밤 꿈≫등의 단편을 창작한열정의근원으로“하나는 양자생활과 유학생활에서 체득한 지독한 열등감 혹은 모멸감이며다른하나는열등감의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는 강렬한 사명감이다”고 말한다.(정선태, 위의책, 124쪽)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루쉰과소세키의모멸감과불안감은새로운 사람과 지식을 찾아 떠난 곳에서도 유사하다. 소세키는 “불안을 안고 대학을 졸업하고, 똑같은 불안을 안고 마쓰야마에서 구마모토로 이사하고, 또 마찬가지로 그 불안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결국 외국까지 건너갔다.”7)
귀국 후에는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에도나가고, 대학교에도출강했다. 후에는 돈이 부족해서 사립학교에서도수업을맡았다.8) 루쉰의삶역시 지속적인 유동(流動), 즉 불안의 연속이었다.
18세때난징(南京)으로,22세 때 일본으로, 그리고 1909년 귀국하여 고향샤오싱(紹興)과항저우(杭州)에서 생계를 위해 교편을 잡거나 외국 소설을번역했다. 소세키가 영국유학 시기에 문학이란 무엇일까라는 개념을 자력으로만들어내는 것외에 자신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처럼9), 루쉰은일본유학시기에 의학(醫學)에서 문학으로 전향하여 위기에 빠진중국을구하기위해중국인의정신 개조를 도모했다. 젊은 시절 소세키와 루쉰이 가졌던 불안은 미래와운명의불확실성때문에야기된 것임에 틀림없으며, 이는 양자를 넘어서모든존재가마주하는것이다.누구든지 그와 같은 실존 자체의 불안을 해소하기위해나름의방향을설정하고 매진하기 나름이지만, 소세키와 루쉰이 특별한것은모든존재의시공을관통하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때의물음은존재의불안과치욕의 경험을 상쇄시켜주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자각으로나아가는물음이며,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양자는 문학에서 찾고있다. ‘문학’이라는개념을자력으로 구축하지 않는 이상 자신을 구제할 방법이없다는소세키의자각은문예를 통해 중국인의 정신을 개조하지 않는다면 미래가있을수없다는루쉰의자각과 흡사하다. 소세키는 ‘자기본위’라는 언어를손에쥔뒤부터강해졌으며,그 네 글자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었고, 그때부터불안은완전히사라졌다고말한다.10) ‘자기본위’라는 네 글자는 소세키의 정체성을형성하고규정하는언어로 자리매김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루쉰의경우에는‘입인(立人)’이그와같은 역할을 했다. 양자의 문학세계는 우선적으로‘입인’이라는 두글자를 위한
7)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나의 개인주의외≫(서울:책세상,2011년 초판3쇄, 51쪽)
8)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55쪽참고.
9)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51쪽참고.
10)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54쪽
고투일 것이라는 추론이다. 개인사적인 면에서 찾아지는 유사점은 정신적인면에서도찾아진다.약소국출신이라며 본국의 학생들에게 받는 멸시, 유학생들간의알력혹은계층적위화감, 생계 문제 등이 야기한 모멸감과 열등감은소세키와루쉰에게공통적이다. 영국 도착 후 유학할 곳을 찾던 소세키는지인의초청으로방문한캠브리지에서 동료 유학생들에게서 계층적 위화감을느낀다.11)
11) 나츠메 소세키, 황지헌 옮김, <≪문학론≫서>, ≪나츠메 소세키문학예술론≫(서울:소명출판, 2004, 30-31쪽) 참고.
양자가개인사적인 차원에서 느낀 위화감이나 열등감을 사회사적(혹은문명사적) 의미로확장해보면 후발 근대국가 일본과 전근대 국가 중국이시야에잡힌다. 그런면에서소세키와 루쉰이 느낀 이질감, 위화감, 열등감, 모멸감등과같은일견부정적인 어휘들은 근대적 주체로 서고자 했던 양자의존재론적양상을설명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소세키와 루쉰이 경험한 불안과고독이개인사적으로나사회사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그것의 해결책으로 문학(혹은문예)에대한독자적인개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양자의문학은어떤유파나문학적 권력, 문학에 대한 근대적 척도마저 거부하는문학적소수자였다. 소세키는자기본위를 통해 당시 일본 문단의 주류였던 자연주의등과같은서구문예사조를 부정했으며, 루쉰 역시 당시 중국의 사상적ㆍ문학적경향과는거리를두었다. 영국 유학 시기 소세키가 자신을 구제할 방법으로제시했던‘자기본위’의세계관과 흡사한 주체 세우기 방식이 일본 유학시기 루쉰의글 에서 찾아진다.
구미의 열강이 모두 물질과 다수로써 세계에 빛을드리우고있는것은그근저에 인간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물질이나 다수는 다만말단적인현상일뿐이며,근원은 깊어 통찰하기 어렵고 화려한 꽃은 드러나게마련이어서쉽게눈에띄는법이다. 이 때문에 천지 사이에서 살아가면서 열강과각축을벌이려면가장중요한 것은 사람을 확립하는 일이다. 사람이 확립된 이후에는어떤일이라도할수있다. 사람을 확립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반드시 개성을존중하고정신을발양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 데에는한세대도걸리지않을것이다.
중국은 예로부터 본래 물질을 숭상하고 천재를 멸시해 왔으므로 선왕의 은택은 나날이 없어지고 외부의 압력을 받게 되면서마침내무기력해져자기조차보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하찮은 재주를 가진교활한무리들이크게부르짖고 과장하면서 물질로써 말살하고 다수로써 구속하여개인의개성을남김없이박탈하고 있다.12)
루쉰이 유학을 간 1902년은 일본에서 니체열이 가장 왕성했던시기였다.
이토 도라마루(伊藤虎丸)는 이로부터 루쉰이 니체의 적극적이고 의지적인 인성과 초인 관념에서 강력한 주체를 발견했을 것으로추측한다.13) 상기인용에서 루쉰은 사람을 확립하는 일(立人), 즉 강력한주체는개성의존중과정신의발양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구미 열강(혹은근대문명)의상징과도같은물질과 다수는 개인의 개성을 박탈할 뿐이며,
“인간은자기개성을발휘함으로써 관념적인 세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자기개성이야말로조물주이다. …… 그 의미인즉, 한 개인의 사상과 행동은반드시자기를중추로삼고자기를 궁극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며, 다시말하면자아개성을확립하여절대적인 자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14)
또다른유학시기글인<破惡聲論>에서는 “자신이 자신으로 되돌아가게 되면사람들이각자자기정체(己)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 정체를 가지게되면사회의큰각성은조만간 달성될 것이다”15)고 쓰고 있다. ‘자기를 중추로 삼고 자기를 궁극으로 삼아야한다’는루쉰의언급은우선적으로 니체의 초인 관념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자기본위’의문학관을내세웠던 소세키의 그것과도 부합된다. “자기본위(自己本位)란압도적인서양문화앞에 움츠리고 있던 소세키가 ‘문예에 대한 자신의입각지를견고히하기위해’,‘견고히 한다기보다는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 필요로했던절박한입장이었다.”16)
12) 루쉰, 홍석표 역, <문화편지론>, ≪무덤≫(서울: 선학사, 2001, 85쪽), 밑줄은본고.
13) 邓传俊, <鲁迅和夏目漱石的個人主义>, ≪山东社会科学≫(2007년제8기, 총제144기,94쪽) 참고. 원래는 伊藤虎丸, 孙猛等译, ≪鲁迅、创造社與日本文学≫(北京: 北京大学出版社,2005)
14) 루쉰, 홍석표 역, <문화편지론>, 위의 책, 74쪽.
15) 루쉰, 홍석표 역, <파악성론>, 위의 책, 434쪽.
16) 히야마 히사오 저, 정선태 역, 위의 책, 203-204쪽.
소세키는 개인의 자유는 개성의 발전에지극히필요한것이고,개성의 발전이 행복을 가져온다고 말한다.17)
그러면서“권력이나금력이라는것은자신의 개성을 과도하게 타인에게 강요하거나 타인을그방면으로유인하거나할 때 매우 편리한 도구”18)라고 기술한다. 다시말해표현은다르지만상기한글에서 루쉰이 말하는 물질과 다수처럼 권력이나금력은타인의개성을망가뜨림으로써 타자의 주체성을 말살할 위험성이크다는것이다.
그래서소세키는 “타인에게 영향이 없는 한, 나는 왼쪽을 향하고여러분은 오른쪽을 향해도지장 없을 정도의 자유는 자신도 견지해야 하고 타인에게도부여해야하지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곧 내가 말한 개인주의”19)라고쓴다.
루쉰과소세키의 불안을 야기한 개인사적 사실 외에도 당시의주류관념에합류하지않으려는 주관적 의지 역시 양자의 불안과 고독을 야기하는원인이된다.
오늘날 귀하게 여기고 기대해야 할 사람은 대중들의 떠들썩함에 동조하지 않고 홀로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있는 선비이다. 그는그윽하게숨겨져있는것을통찰하고 문명을 비평하면서 망령되고 미혹된 무리와그시비를함께하지않는다. 오직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향해 매진한다. 온세상이그를칭찬하여도그것에 고무되지 않고, 온 세상이 그를 헐뜯어도 그것때문에나아감이막히지않는다. 자기를 따르는 자가 있으면 미래를 맡긴다. 설령자기를비웃고욕하며세상에서 고립시키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20)
<문화편지론>을 비롯한 루쉰의 초기 글들은주로물질의배척과개인의존중을 중시한다. 물질과 다수의 관념이 중국에영향을미치는것은어쩔수없는 대세였지만, 루쉰은 그것들은 서양문명의발전과정에서필연적으로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으로, 함부로 가져다 중국에적용하는것은잘못이라고말한다.21)
그렇기 때문에
“만약 현재를 위해 계획을세우는것이라면 지난 일을 고려하고 미래를 예측하여, 물질을 배척하여정신을발양시키고개인에맡기고 다수를 배격해야 마땅하다.”22)
‘고독한 전사(戰士)’를상기시키는루쉰의상기 글은 “현대라는 시대만큼 영웅주의가 결핍된시대가없고, 또현대의문학만큼 영웅주의를 발양하지 않는 문학은 거의없을것”23)이라는소세키의언급과 맞닿아 있다.
‘온 세상이 그를 칭찬하여도그것에고무되지않고,온세상이 그를 헐뜯어도 그것 때문에 나아감이 막히지않는’ 선비와같은개인적영웅은 현대사회에서 존재할 수 없으며, 그런 영웅을형상화하는문예는이미시대적 조류에서 뒤처져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을 소세키는<문예의철학적기초>라는 글에서 밝히고 있는데, 요점은 다음과 같다.
현대문예는眞이라는한글자를 이상으로 하는 탐정문학 같으며, 이는 현대가과학과이성의시대임을증명하는 것이다. 곧이어 그는 현대사회는 과학과철학이라는이름으로眞의가치에 편중된 결과 善과 美, 숭고라는 문예의 또다른가치를잃고있는것은아닌지 묻는다. 그리고 당시 유행하던 서구의 자연주의를일본에도입하려는주장은 “眞이라는 하나의 이상에 지나치게 편중하기때문에발생한다소병적인 현상”이라고 비판한다.24)
이처럼 “다른 나라의 강대함에 놀라서 전율하듯스스로를위태롭게여긴나머지 실업을 부흥하고 군대를 진작해야 한다는주장을매일같이입으로떠들어대는”25) 중국의 주류 사상 가운데 개인과 정신의가치를주장한루쉰의철학이나, 眞의 가치에 편중된 문단의 주류보다 자기본위를통한자아정체성의확립을 우선했던 소세키의 문예관은 모두 소수자의목소리에불과했다.그러나 거기에는 현대사회가 직면한 문명의 위기와현대인의고독에대한비판적인식이 담겨 있다.
17)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67쪽참고.
18)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55쪽.
19)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67쪽.
20) 루쉰, 홍석표 역, <파악성론>, 위의 책, 438쪽, 밑줄은 본고.
21) 루쉰, 홍석표 역, <문화편지론>, 위의 책, 71-72쪽 참고.
22) 루쉰, 홍석표 역, <문화편지론>, 위의 책, 64쪽.
23) 나츠메 소세키 지음, 황지헌 옮김, <문예의 철학적 기초>, 위의책, 119쪽.
24) 나츠메 소세키 지음, 황지헌 옮김, <문예의 철학적 기초>, 위의책, 119-132쪽참고.
25) 루쉰, 홍석표 역, <과학사교편>, 위의 책, 53쪽.
서양의 조류로 그 흐름을 건너는 일본인은 서양인이아니므로새로운흐름이밀려올 때마다 자신이 그 속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어렵게지내고있는듯한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새로운 흐름은 여하간, 방금 겨우겨우탈각한진부한흐름의특질이나 진상(眞相) 등도 분별할 틈 없이 이제 포기해야만하게되었습니다.밥상에 앉아 접시의 음식을 다 맛보기는커녕 원래 어떤음식이나왔는지눈으로분명히 확인하기도 전에 벌써 밥상을 물리고 새로운상을진열한것과같습니다.이러한 개화의 영향을 받은 국민은 어딘가 공허감을느끼지않을수없습니다.또한 어딘가 불만과 불안의 상념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26)
26)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현대 일본의 개화>, 위의 책, 103쪽.
소세키는 현대 일본인의 정신적 불안, 공허감은개화의결과라고말한다.불안과 공허감을 낳는 원인은 일본사회 자체적으로만들어낸흐름이아닌서양의 조류에 더부살이를 하게 된 때문이다. 새로운조류의진면모가무엇인지분별할 틈도 없이 또 다시 새로운 조류가 밀려드는식의개화는일본인들을만성적인 신경쇠약에 시달리게 만든다. 흔히 말하는내발적근대화가아닌외발적 근대화가 야기한 일본인의 불안과 고독은필연적이다. ‘자기본위’라는소세키의 “개인주의는 타인을 목표로 향배를 결정하기전에먼저시비를규명하고 거취를 확정하는 주의니까 어떤 경우에는 홀로외톨이가되어쓸쓸한기분이 든다.”27)
27)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70쪽.
“개인주의라는 개념은 결단코 속인이생각하듯이국가에위험을끼치는 행위나 무엇이 아니라, 타인을 존경함과동시에자신의존재를존경한다는 것이다. 더욱 알기 쉽게 말하면 당파심이없고옳고그름이있는주의이다. 붕당을 결성하고 단체를 만들어서 권력이나금력을위해맹목적으로움직이지 않는 주의인 것이다. 따라서 그 이면에는 사람에게알려지지않은쓸쓸함도 잠복해 있다.”28)
28)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68쪽.
‘자기본위’에 근거한 소세키의개인주의에는항상고독의위험성이 잠복되어 있다.
거기에는 근대 일본인들이서양의조류에더부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은 개인주의가 야기하는고독을감당할수없기때문이라는 비판도 담겨 있을 것이다. 이렇게 “소세키는어디까지나근대적인삶의테두리 안에서 근대 일본인의 고뇌와 방황을 그려낸다.
소세키에 따르자면 그 러한 고뇌와 방황이야말로, 그것이 비극일지언정, 근대인의운명이며이운명을 포기할 때 빛에 눈 멀거나 암흑 속에 매몰될수밖에없다.”29)
한편 ‘자기본위’와 ‘입인’을 위한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개인의고뇌와방황을 야기한 문명에 대한 해부와 그러한 문명의 속박으로부터자유롭기위한조건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루쉰은인간이관념적인세계의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기개성을 발휘하는 것이며, 개성을발휘하는자신만이 자유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데서 구하는것은모순이라고말한다.문제는 개인의 자유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점이다. “자유는힘으로써얻게되는데, 그 힘은 바로 개인에게 있고, 또한 그것은개인의자산이면서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만일 외부 압력이 가해진다면그것이군주에서나왔든또는 대중에서 나왔든 관계없이 다 전제이다.”30)
전제혹은문명의속박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루쉰은 오직 개인만이 소유하고있는자유와개성의자유로운 발휘를 주장한다. 한편 “문명개화라는 주어진현실에만족하지못했던소세키는
…… ‘현대의 불안’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방법을자연의명령에따라서 본연의 자기로 되돌아가는데서 찾을 수 있다고시사했다.”31)
‘자기본위’든‘입인’이든 문명과 전통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길은오직자아정체성의확립에 있으며, 정체성 확립의 조건으로 양자는개성의발휘와개성을발휘할수 있는 권리인 자유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29) 정선태, 위의 책, 150쪽.
30) 루쉰, 홍석표 역, <문화편지론>, 위의 책, 74쪽.
31) 히야마 히사오 저, 정선태 역, 위의 책, 113쪽.
3. 죄의식, 근대윤리적주체의조건
개성의 발휘와 그것을 위한 자유의 보장이 근대적주체의 일차적조건이라면 자유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개인을 방종으로 이끌지 않을 제어장치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본고는 그것을 근대적주체가반드시갖춰야할조건인 윤리의식으로 설정한다. 소세키는 “최근에 자아또는자각이라는개념이주창되어 ‘아무리 방자한 행동을 해도 상관없다’는의미로사용되는것같은데그 속에는 대단히 의아스러운 점이 많다”32)고 경계하면서‘도의적개인주의’를제시한다.
소세키가 말하는 ‘도의적 개인주의’에는자기개성의발전을위해서는 타인의 개성도 존중해야 하며, 소유하고 있는권력을사용하고자한다면거기에 수반되는 의무 사항 역시 인식해야 하고, 자기의금력을자랑하려면거기에 따르는 책임을 중히 여겨야 하는 세 가지전제가걸려있다.33) 곧이어소세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를 다른 표현으로 고쳐 말하면 적어도 윤리적으로어느정도의수양을쌓은사람이 아니고서는 개성을 발전시킬 가치도 없고 권력을사용할가치도없으며금력을 사용할 가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것을 다시한번바꿔말하면이세가지 사항을 자유롭게 향유하기 위해서는 이것의 배후에있어야할인격의지배를받을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뜻입니다. 만일 인격이 없는자가무턱대고개성을발전시키려 한다면 타인을 방해하게 되고, 권력을 사용하려하면남용으로흐르게되고, 금력을 사용하려 하면 사회 부패를 초래합니다.34)
상기 인용에서 소세키는 윤리적 수양이 부족한사람, 다시말해자기점검이부족한 사람의 권력과 금력은 타인에 대한 전제와사회적부패를초래하기쉬우며, 타인의 영혼까지 해치게 된다고 말한다.
이를조금확장하면윤리적주체의 존재로 인해 공동체의 존속가능성이 커진다고말할수있을것이다.왜냐하면 “윤리는 예술적 숙련성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예술이인류에게이로울것인지 아니면 해로운 것인지에 대한 고려도 요구하기”35) 때문이다.
소세키가근대 일본인이자 세계인으로 자부하는 방식 역시윤리적수양,
32)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62쪽.
33)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64쪽참고.
34)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65쪽.
35) 게오르그 루카치 저, 반성완ㆍ심희섭 역, ≪영혼과 형식≫(서울: 심설당, 1988, 110쪽)
즉 그자신이“세계 공통으로 ‘정직’이라는 덕의(德義)를 중요시한다는점”36)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덕의의 구현을 위해 일조하고있다는데에있다. 그것이바로소세키가 개인주의자이면서 일본주의자, 그리고세계주의자가되는방식이다.37)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소세키에게 자기 고유의혈맥을버리고서구근대문명의 실질에는 눈을 감은 채 껍데기에 불과한것만을추구하는것은스스로서구인의 노예가 되려는 태도이다. 다시 말해 소세키에게근대일본인들은전통의 노예였다가 다시 근대의 노예가 된 사람들로비춰지는것이다. 그와같은일이 초래된 궁극적 원인은 근대적 주체가 갖춰야할타인과공동체에대한윤리의식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루쉰의 경우에도 창작행위에 선행되어야 하는것은죄의식과도같은윤리관이었다. <答有恒先生>이라는 글에서 루쉰은 자신을중국의연회석상에오르는 醉蝦라는 요리를 만드는 조수에 비유하면서, 자신의창작이“튼실하지만불행한 청년들의 머리를 명석하게 하고 그 감각을예민하게함으로써그가만일재앙을 만났을 때 몇 배의 고통을 겪게 하고 동시에그를증오하는사람들에게보다 생생한 고통을 감상하면서 특별한 향락을얻게끔한”38) 것은아닌지묻는다. 이와 같은 죄의식은 지속적으로 루쉰을 괴롭히면서그의글쓰기를머뭇거리게 만든다. 첫 번째 雜文集인 ≪무덤≫의 끝머리에덧붙인글에서도이를확인할 수 있다.
36)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53쪽.
37) 소세키가 개인주의자이면서 일본주의자, 세계주의자가 되는 방식은지극히자기본위적인개인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문학론≫서>에서 이를 확인할수있다. “일본의신민이라는 영광과 권리를 가진 나는 5천만 가운데에서 살아가며, 적어도5천만분의1의영광과권리를 유지하고 싶다. 이 영광과 권리가 5천만 분의 1 이하로줄어들때, 나는내존재를부정하거나 혹은 본국을 떠나는 행동을 취하지 않고, 이것을5천만분의1로회복하려고노력할 것이다. 이것은 내 미약한 의지가 아니다. 내 의지 이상의의지이다. 내의지이상의 의지는 내 의지를 가지고서도 어찌할 수가 없다. 내 의지 이상의의지는나에게명령해서 일본 신민됨의 영광과 권리를 유지하고 지탱하기 위해서 어떠한불유쾌함도피하지말라고 한다.”(나츠메 소세키 지음, 황지헌 옮김, <≪문학론≫서>, 위의책, 42쪽)
38) 루쉰, <答有恒先生>, 전집3권, 454쪽.
또 3,4년 전의 일이 기억난다. 어느 한 학생이 와서내책을사고는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어 내 손에 내려놓았는데, 그 돈에는아직체온이묻어있었다.이체온은 곧바로 내 마음에 각인되어,
지금도 글을 쓰려고할때면항상이러한청년들을 독살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머뭇거리며감히붓을대지못하게한다. 내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하게 되는 날은 아마도있지않을것이다.그러나 사실은 도리어 전혀 망설이지 않고 말을 해야 이러한청년들에게떳떳하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이렇게하겠다고결심하지는않았다.39)
39) 루쉰, <寫在≪墳≫後面>, 전집1권, 285쪽
루쉰의 글은 인용과 같은 머뭇거림과 망설임, 즉지속적인자기점검을통해이루어진다. 자신의 가슴 깊이 각인된 청년의 체온과그것이강요하는망설임,망설이지 않고 말을 해야 그런 청년들에게 떳떳하지않을까하는생각이교차하는 가운데 루쉰은 자신의 글은 자신과 타인을기만하는행위라고말한다.그러면서 자신처럼 시대의 폐단을 공격하는 글은반드시시대의폐단과함께소멸되어야 한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만약 자신도제거되지않으면그생명이 남아 있는 한 바로 병균이 아직 있음을 증명하는것이기때문이다.”40)
40) 루쉰, <≪熱風≫題記>, 전집1권, 292쪽.
이와같은 루쉰의 원죄의식은 센다이의전에서 의학을공부하던어느날형성되지않았을까 한다.
익히 알려진 ‘환등기사건’이 바로그것인데, 이를계기로루쉰은 근대적 의학을 통한 신체의 치료에서 문예를통한정신의개조로전향한다.
그 전향의 계기는 다양하겠지만 아무래도 가장결정적인원인은개인적ㆍ민족적 치욕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본고의 판단이다.
루쉰이그와같은치욕을씻는 출발점은 치욕을 사실로서 인정한 후 치욕의정화를위해불굴의의지로문예에 매진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문예에서 그가능성을 발견했다면 어떤 형식에 어떤 내용을 담을것인가하는점이중요할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것을 단순히 지식인의 지적 허영심이상의것으로구체화하려면 문예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필수불가결하다. 소세키는 대학을 졸업하고 수년 후 런던의 외로운등불아래에서문학에대한 자신의 신념을 확고히 한다. 다른 사람도 유치하다고평가하고그자신도유치하다고 생각한 그 신념은 “근본적으로 문학이란어떤것인가하는문제를 해석하려고 결심한” 것이다.41)
모든 것이 금력에의해지배되는고장에서그의 유학은 일류 상인의 자제들이 누리는 태평스러운유학과는달랐다.런던에서의 2년은 그에게는 가장 불쾌한 시간이었으며, 그는영국신사들사이에서늑대 무리에 낀 한 마리 삽살개처럼 애처롭게 생활했다.42)
더구나서양의문학 관념과 동양의 문학 관념이 여러 가지 이유로다름에도불구하고자신은거기에 대해 어떠한 규정도 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이를치욕이면서사실로받아들인다.43)
그리고 문학의 개념을 근본적으로자력으로만들어내는것외에는 자신을 구할 방법이 없음을 자각한다.44)
이와함께그의불안은사라지고, “그때까지 안개 속에 갇혀 있던 것이 어떤 각도, 어떤방향에서자신의길을 가야 할지 명확”45)해진다.
문학의 개념을 자력으로만들어내고자결심한소세키나 문예를 통해 중국인의 정신 개조를 도모했던루쉰양자에게그계기는 치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으며, 양자는치욕의정화를위한방책으로 문학을 선택했다.
이제부터 양자에게중요한것은문학이라는형식에 담아낼 내용이다. 그것의 내용을 본고는 루쉰의경우‘나래주의’를통한입인으로, 소세키의 경우에는 ‘자아본위’적인 ‘도의적개인주의’로본다.훠충(霍冲)이라는 필명으로 1934년 6월 7일≪中華日報ㆍ動向≫에최초발표된 <拿來主義>라는 글에서 루쉰은 “가져오는것이없으면사람은새로운사람이 될 수 없고, 가져오는 것이 없으면 문예는새로운문예가될수없다”46)고 말한다.
그 글의 요지는 중국의 개항 이후영국의아편, 독일의고철덩어리 총포, 프랑스의 화장품, 미국의 영화 등은모두‘보내온(送來)’ 것이지중국의 필요에 따라 ‘가져온(拿來)’ 것이 아닌 관계로각성한젊은이들마저도‘보내온(送來)’ 것에 대해 두려움을 표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전통중국의문화적 자부심에 취해 새로운 문물의 수용에 수동적인 근대 중국을 비판하면
41)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문학론≫서>, 위의 책, 28쪽.
42)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문학론≫서>, 위의 책, 32쪽참고.
43)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문학론≫서>, 위의 책, 27-28쪽참고.
44)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51쪽참고.
45)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55쪽.
46) 루쉰, <拿來主義>, 전집6권, 40쪽.
서, 근대문물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수용을 강조하는것이다.
이보다앞선1925년 2월 21일 ≪京報副刊≫에 실린 <靑年必讀書-應≪京報副刊≫的徵求>라는 글에서 루쉰은 “가능하면 중국책은 적게, 혹은전혀보지않기를바란다”47)고 하면서, 중국책을 적게 읽어 생기는 문제는글을쓸수없다는것뿐이며, 외국책은 퇴폐적이고 염세적이더라도 살아있는사람의퇴폐이자염세라고 말한다.
또 1933년 9월 8일 ≪申報≫ ≪自由談≫에실린<由聾而啞>라는글에서는 “외국사조에 대한 소개와 세계명작의번역은정신의양식을운송하는 항로이다”48)고 말한다.
루쉰이 외국의 문학과문예이론등을번역하는것은 다음과 같은 목적 때문이다. 내가 외국에서 불을 훔친 것은 그 목적이 자기의고기를삶기위해서다.만약그것으로 맛이 좋아지면 씹는 사람은 그만큼 이로운것이며, 나로서도육체의낭비로 끝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출발점은 전적으로개인주의적인생각에서부터였으며, 거기에 쁘띠부르주아적인 겉치레의 기분과살며시메스를꺼내어거꾸로해부자의 심장을 찔러주는 복수의 기분이 섞여 있었다.49)
루쉰의 나래주의가 흥미로운 것은 인용과 같은자기희생과함께‘개인주의적인 생각’이 병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고가 고찰하고자하는소세키의‘자기본위’와 연계시켜 약간의 추론을 가미하면, 루쉰의나래주의역시순수한자기본위적인 판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47) 루쉰, <靑年必讀書-應≪京報副刊≫的徵求>, 전집3권, 12쪽.
48) 루쉰, <由聾而啞>, 전집5권, 278쪽.
49) 루쉰, <‘硬譯’與‘文學的階級性’>, 전집4권, 209쪽. 밑줄은 본고.
특히, 동유럽약소국의작품을 중국에 소개하고자 했던 루쉰의 초창기문예활동과연관시켜보면,나래주의의 양상은 우선적으로 혼란한 시대에 처한지식인의사회적윤리의식의발로라고 할 수 있다.
루쉰의 나래주의가 지향하는지점이자기해부와같은철저한 희생을 통한 사회 비판으로서의 ‘개인주의적인생각’이었다면,소세키의 자기본위 역시 우선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은‘도의적개인주의’였다.자기본위는 우선적으로 자신을 구하는 방법으로서의문학관의정립이었으며,“요컨대 뜻도 모르면서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해도 좋고, 혹은기계적인지식이라표현해도 좋을 터인데 도저히 우리 소유, 혈육이라고말할수없는서먹서먹한것을 마치 제 것이라는 듯한 얼굴로 지껄이고 다니는”50) 타인본위에대한비판이기도 했다.
서양문명의 수용태도라고 할 수있는타인본위적양상에대한비판으로서의 자기본위는 서구 문명 수용 과정에서나타난근대중국의소극적인 태도와 대비되는 듯하다. 문제는 양자의수용방식모두한계가있다는점이다. 전자는 자국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전적인부정(否定)으로나아가기쉬우며, 후자는 아큐(阿Q)식의 정신승리법에 빠질우려가크다. 아래인용은루쉰이 비판하고 있는 중국식 나래주의의 면모이다.
새롭게 일어난 사상은 “이단”이니 반드시 섬멸해야할것이지만, 그것이분투한 끝에 스스로 자리를 잡게 된다면 그때 가서는 그것이원래“성인의가르침과근원이 같은 것이다”라는 사실을 찾아낸다. 외래의사물은모두“夷를이용하여夏를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제거해야하는것이지만, 이런夷가 중화에 들어와서 주인이 된다면 고증을 통해 교정하고는본래“夷”도여전히황제의 자손이라고 해버리는 것이다.51)
루쉰은 이와 같은 중국식 나래주의는 지배자의논리에부합할뿐이며,역설적으로 중국 문명의 허울을 스스로 밝혀주는 것이라고말한다. 이와유사하게소세키에게 일본의 개화, 즉 외래 문물의 수용은“착실하게느릿느릿걸어가는것이 아니라 ‘얏!’ 하고 기합을 넣은 뒤 깡충깡충뛰어가는모습”으로,“개화의모든 계단을 차례차례 밟고 지나갈 여유가 없으니되도록큰바늘로듬성듬성꿰매고 지나가는 꼴”로 비친다.52) 그 원인을 소세키는“지금까지내발적으로전개되어온 것이 갑자기 자기본위의 능력을 잃고외부의힘에눌리고눌려서좋은 싫든 간에 그대로 하지 않으면 일어설 수 없는듯한모양이된”53)때문이라고 말한다.
50)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52쪽.
51) 루쉰, <古書與白話>, 전집3권, 213쪽.
52)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현대 일본의 개화>, 위의 책, 98쪽.
53)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현대 일본의 개화>, 위의 책, 97쪽.
그가 파악한 개화의 형태는 “무의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소극적인 활력 절약과 도락의 자극에 대한반응으로서의적극적인활력소모가서로 나란히 진행, 서로 얽히고설키며 변화해가서”54) 성립된다.
간단히근대물질문명의 발전은 활력 절약의 결과물로 귀찮음을피하고싶다는교활함에서발달한 편법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개화는 물질적차원에서생활수준이높아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뿐 생존의 고통이 약화되었음을의미하지는않는다. 오히려 생존경쟁에서 야기되는 불안은 가중되었을지도모른다.55)
더구나“지금의 일본을 국가주의가 아니면 자립할 수 없는것처럼선전하고그렇게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개인주의 요소를 유린하지않으면국가가망할것처럼 주창하는 자도 적지 않은”56) 상황에서 국가주의로부터자유로울수있는일본인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후발 근대국가 일본의 입장에서 ‘脫亞入歐’는지상최대의과제였으며,전근대 국가 중국의 지상 과제는 근대화를 통한 부국강병의실현이었다. 이과정에서 일본이나 중국이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것은물질과다수, 혹은국가주의로상징되는 집단의 윤리였다. 루쉰과 소세키가 의문을품은점이이부분이다.과연 국가적 도덕이라는 형태가 개인적 도덕과비교하여등급이높을까?57)
도덕의 본질은 통치의 편의를 위해 권력층과 거기에기생하는지식인이만들어낸 관념체계는 아닐까?58) 이와 같은 의문점들의해결없이강요되는국가적 도덕은 개인을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궁극적으로양자의문학은현대인이처한 그와 같은 불안과 고독을 형상화함으로써근대문명과국가적도덕의이면을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물질과 다수, 국가적 도덕과 같은 다수가공인하는 것에 맞서 연약한 개인의 가치를 주장해야하기때문에 양자의 문학은그어떤 것보다 윤리적이어야 한다.
54)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현대 일본의 개화>, 위의 책, 88쪽.
55)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현대 일본의 개화>, 위의 책, 93쪽참고.
56)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70쪽.
57)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나의 개인주의>, 위의 책, 74쪽참고.
58) 루쉰, <在現代中國的孔夫子>, 전집6권, 316쪽 참고.
“윤리 면에서 저급한 가치를 지닌 문예는 결 코 우리 내심이 원하는 도덕과 괴리되어 번영할수없기”59) 때문이다.
59)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문예와 도덕>, 위의 책, 165쪽
4. 나오며
소세키의 ‘자기본위’와 루쉰의 ‘나래주의’의 공통목표는‘입인’이다.입인의선결 조건은 개성의 발휘를 위한 자유이며, 타인의자유를침해할가능성이있기 때문에 자기점검의 윤리를 필요로 한다.
본고는‘자기본위’와‘나래주의’,‘입인’과 같은 어휘에서 양자의 문학적 형식의 완정성을본다.
전통에대해미련을 가졌던 후발 근대국가의 지식인 소세키든,
전통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던 전근대 국가의 지식인 루쉰이든 양자의 문학적 형식을 완성시킨 키워드는‘자기본위’와 ‘나래주의’를 통한 ‘입인’에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거기에는자신과 대상세계에 대한 인식과 문학적 전달이라는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음악과 악보의 관계에서처럼 소리를악보속에억지로넣어서소리 자체가 아무리 자유롭게 발현되어도 그 틀을거역하지않고행운유수와같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우리도일종의틀을사회에부여해 그 틀을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따르게 하는데무리가없는지”60)를성찰하는 소세키의 언급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틀이라는형식에담긴내용이자연스럽게 발현되도록 하기 위해 양자는 치밀한 준비과정을거쳐창작에임했을것이다.61)
이와 같은 점 때문에 양자에 대한 대다수 비교연구는‘자기본위’와‘입인’으로부터 새로운 근대의 모델을 발굴하고자 한다.
60) 나쓰메 소세키, 김정훈 옮김, <내용과 형식>, 위의 책, 134쪽.
61) 소세키의 경우 39세가 되던 1905년에야 창작을 시작했으며, 루쉰의창작생애는<광인일기>를 발표 기준으로 삼으면 37세에 시작되었다.
양자의 문학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앞서 기술한 형식과 내용의일치, 혹은 완정성에 있을 것이다.
역으로 소세키가 일본의 외발적(外發的) 개화에 반감을가지거나,루쉰이 중국 근대화론자들과 배치되는 주장을 펼치는것은 그들의 주장이 형식과 내용에서 불일치하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중요한점은 자기중심주의와도 같은 양자의 문학적 형식과 내용이 강한 문명비판적 색채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개성을 열정적으로발휘하는것이궁극적으로는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해소해줄 것이라는 희망을가졌으며, 실제로 그들의 문학은 개성의 발휘를 통해 근대 일본인과 중국인이 직면한 존재론적 고독과 불안을 치유하는 효과를 발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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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Research for Lu Xun(魯迅) & Natsume Soseki(夏目漱石)’s Explorationofthe Modern Subjects
Ko, Jumbok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pattern of establishingamodernsubject through Natsume Soseki, a intellectual of late modern country, andLuXun, a intellectual of premodern country. To this end, this paper discussestheaspects of Soseki’s ‘Self-Hood(自己本位)’ and Lu Xun’s ‘Nalaizhuyi(拿來主義)’.The Soseki’s ‘Self-Hood’ is not a selfish individualismbut a‘moralindividualism’, and The Lu Xun’s ‘Nalaizhuyi’ emphasizes subjectiveactivenessin the acceptance of foreign cultures. Through the ‘Self-Hood’, Sosekireconsiders the value of traditions forgotten i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andemphasizes the reflective introduction of foreign cultures. The ‘Self-Hood’ andThe ‘Nalaizhuyi’ emphasize the subject’s activeness and emphasizethevalueoffreedom in which the subject’s activeness is expressed. For bothSoseki andLuXun, freedom for the exercise of personality is the basic conditionof modernsubjects. Another reason why both emphasize the exercise of personalityandfreedom is the witness of the individual’s anxiety and solitude facedintheprocess of modernization. China and Japan only differed inthepaceofmodernization, and both were forced to throw away familiar ones andacceptunfamiliar ones. This is due to the fact that the modernizationof thetwocountries did not proceed voluntarily, but was counter-forced by external forces.On the other hand, since freedom for the exercise of personalitymayinfringe the freedom of others, both require an ethic of self-check. This emphasisonthemorality of literary art is also a key mechanism for the completionofbothliterary forms and contents. Both literary forms and contents, similartoself-centeredness, have a strong social color. They hoped that exercisingtheirpersonality enthusiastically would ultimately break down the barriersbetweenpeople, and in fact their literature had the effect of healing individualisticloneliness and anxiety faced by modern Japanese and Chinese throughtheexercise of personality.
Key words: Lu Xun(魯迅), Natsume Soseki(夏目漱石), Self-Hood, Nalaizhuyi(拿來主義), Personality, Freedom
원고접수일 2020. 04. 10 게재확정출간2020. 06.30
中國學論叢第68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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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망각의 서사로서의 만주 배경 17세기 전쟁 소재 역사소설 읽기- 최척전(崔陟傳) ․ 강로전(姜虜傳) ․ 김영철전(金英哲傳) 을 중심으로-/이민희.강원대 (0) | 2024.11.28 |
한문소설에 나타난 남원의 문화적 특징과 콘텐츠화 방안- <만복사저포기>, <홍도전>, <최척전>을 중심으로 - /이기대.고려대 (0) | 2024.11.28 |
17~18세기 고소설에 나타난 화폐경제의 사회상/김민희.강원대 (0) | 2024.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