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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가린-미하일로프스키의 조선설화에 나타난 ‘수달 전설’의 결합 양상과 청에 대한 인식/하은하.서울여대

1. 서론

18세기 서양에 중국 열풍이 불면서 볼테르(Voltarie)를 위시한 계몽주 의 지식인들은 자신의 저술에서 조선을 신비화했다. 선교사들도 여러 보고서를 통해 조선을 서양 사회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과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큰 틀에서 동 양의 실체와는 무관하게 서구 사회보다 야만적이고 열등한 가치를 지닌 사회로 유형화한 것들도 많았다. 1)

1) 안상훈, 백두산 설화의 전승과 연행양상–가린 미하일로프스키의 조선 기행을 중 심으로 , 어문론집 61, 중앙어문학회, 2015.

그러던 것이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한 민족지적 서술방식이 독자들의 인 기를 끌면서 서구의 탐험가와 여행가들은 낯선 사회를 여행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관습, 문화를 직접 수집하여 출판하기 시작했다. 본고 에서 다루려는 조선설화(Корейские сказки)는 러시아 지리학회(Русс кое Географическое Общество)의 주도로 이루어진 조선탐사 활동 중 네 번째 탐사활동에 참여한 N. G 가린-미하일로프스키(1852~1906) 2)에 의해 채록된 것이다.

2) 강재철, 러시아 N.G. 가린의 개화기 한국설화자료의 수집과 채록방법 , 『동아시 아고대학』 18, 동아시아고대학회, 2008. 이 논문에 따르면 가린은 필명이고 본명 은 니콜라이 게오르게비치 미하일로프스키이다. 자신이 직접 체험한 농촌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바리안트>, <마을에서의 수년간>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일련의 자전적 성격의 4부작 <쪼마의 어린시절>, <중학생들>, <대학생들>, <기 술자들>을 발표했는데 막심 고리키가 이 작품을 대서사시라고 평한 바 있다. 민 중들의 삶에 대한 각별한 호의와 애정이 느껴지는 작품을 발표했으며 러시아 사 실주의 전통을 고수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작가이면서 철도건설 기사였는데 1898년 9월 13 일부터 10월 18일까지 약 한 달 간 한국의 북부 두만강과 압록강 지역을 답사하고 그 결과물을 조선, 만주, 요동반도 기행이라는 단행본과 조선 설화(Корейские сказки)라는 제목으로 나누어 출간하였다. 3)

3) 안상훈, 앞의 글, 2015, 253-254면.

조선설 화에는 두만강과 압록강 양안 그러니까 한반도 북부 지역에 거주했던 조 선인들의 설화 64편이 담겨 있다. N. G 가린-미하일로프스키의 조선, 만주, 요동반도 기행 출간과 조 선설화 수집에 대한 평가는 두 가지로 엇갈린다. 하나는 서구인 중심의 시각에서 조선 주민들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가린이 조선인을 미발달한 아동, 원시인과 같은 존재로 보고 그들에게 가 장 중요한 것은 전설이나 구비문학이라 판단하여 설화 수집에 착수한 것 으로 이해한다. 4)

4) 박노자, 착한 천성의 아이와 같은 저들–1880~1900년대 러시아 탐험가들의 한국 관련 기록에서의 오리엔탈리즘적 (허위)인식의 스펙트럼 , 대동문화연구 56, 대 동문화연구원, 2006.

또 다른 관점은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고향 사마 라에서 농촌공동체를 꿈꾸었던 가린의 행보와, 19세기 중 후반 러시아 지 식인 사회가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민속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분 위기가 만연해 있었던 점들을 근거로 삼는다. 이런 입장에서는 가린이 조 선 민중과 민속, 설화에 보인 관심은 가린 개인의 성향과 당시 러시아 지 식인들의 민중에 대한 애정과 맞닿아5)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5) 안상훈, 앞의 글, 2015. 259-260면.

어느 쪽 견해를 따른다 해도 가린이 채록한 조선설화의 자료적 가치 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첫째, 조선설화는 조선, 만주, 요동반 도 기행이란 책에서 분리되어 일찌감치 개별 단행본으로 발간됨으로써 에스토니아(1918), 프랑스(1925), 중국(1933), 독일(1948) 등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설화로 소개된 바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 설화에 대한 근대 적인 조사는 20세기 초에 이르러 시작되었는데 조선총독부가 주도한 것과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손진태 등 개인연구자들이 조선민속학회를 중심으로 진행한 두 흐름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다수의 전문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한반도 남쪽 전역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는 1980년에 이르러서였다. 이와 같은 설화 자료 수집의 현황을 고려하면 가린의 설화 자료는 19세기 의 우리 설화의 상황을 전해주는 소중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압록 강과 두만강 주변의 설화는 현재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 는 것들로 이른 시기 한반도 북부 지역의 설화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6)

6) 임석재의 한국구전설화에는 한반도 이북지역 즉 함경북도 함경남도 등의 자료들 이 수록되어 있지만 채록 시기가 대부분 1980년대 것이다. 그 이유는 직접 그 지 역을 방문하여 현지에서 채록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자가 주변 사람들 중 이북 지 역 출신의 인사들을 통해 청취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희귀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가린의 조선설화는 그간 학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의 대러 정책과 미소 냉전에 따른 국내의 정치 상황 때문인데 80년간 단절되었던 국교가 1990년에 다시 정상화되면서 1987년에 러시아판이 최초로 아동을 위해 일부 번역되 었다가7) 2006년에 비로소 러시아판 64편 전체가 번역되었다. 8)

7) N. G. 가린-미하일로프스키, 김녹양 역, 백두산 민담 1~2, 창비아동문고 72, 창비 출판사, 1987.

8) N. G. 가린-미하일로프스키, 안상훈 역, 조선설화, 한국학술정보, 2006.

이런 사정 때문에 가린의 조선설화에 실린 개별 작품들에 대한 연구 는 아직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료 수집 과정에 대한 정리와 설 화집으로서 조선설화의 성격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9)

9) 강재철, 앞의 글, 2008; 안상훈, 앞의 글, 2015.

이에 본고에 서는 선행 연구에 힘입어 작품론을 펼치되, 만주와 조선의 기원을 다루는 <수달에 관한 전설>을 먼저 주목하고자 한다. 이 설화는 조선설화 소재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인 혼합형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10)

10) 전성희, 러시아에서 최초의 번역 출판된 한국설화의 성격과 특징 , 한국민속 학 48, 한국민속학회, 2008. 이 논문에서는 선행 연구에서는 조선설화의 자료를 지금까지 조사된 이야기 유형과 동일한 서사구조를 지닌 것, 비슷하지만 인물의 기능 또는 기능 수행의 과정에서 차이를 보이는 변이형, 두 개 이상의 유형이 결 합된 형태를 보이는 혼합형, 아직 알려지지 않은 독립형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개 별 설화가 결합된 혼합형 설화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단일 유형의 설화들을 결합하여 한 편의 설화로 재구성한 모습 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이다.

<수달에 관한 전설>과 유사한 결합 양상은 한반도 이남 지역에서 채록된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런 결합은 오직 함경북도 등 북부 지역에서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개별 설화를 결합하고 변형시키는 데 개입하는 서사의 논리도 독특하고 의미 있어 보인다.

2. <수달에 관한 전설> 속 설화 결합 양상

조선설화에는 혼합형 설화로 분류되는 것이 몇 종류 있다. 11)

11) 조선설화에는 지네 관련 설화에도 혼합형이 발견된다. 설화 30. <양지네 이야 기>와 설화 31. <또 다른 지네 이야기>, 설화 53. <지네아들>은 연속성을 지니고 있고, 특히 53. <지네아들>에는 다양한 독립 유형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수달에 관한 전설(만주와 조선을 통치하는 왕조의 기원)–이하 수달에 관한 전설)>이다. 먼저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함경도 회령 땅에 최씨가 살았는데 최씨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다.

(2) 어느 날 최씨 딸은 잠을 자다가 옆에서 잠을 자던 털이 덥수룩한 짐승을 건 드리게 되었다. 짐승은 재빠르게 도망쳤고 처녀는 등잔불을 켜보았지만 아 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3)처녀가 부모에게 사실을 말하자 최씨는 딸에 게 그 짐승이 다시 나타나면 자는 척 하다가 짐승의 다리에 실을 매달아 두 라고 했다.

(4)다음 날 최씨가 실을 따라서 가보니 한제동두 호수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5)최씨가 실을 잡아당기자 수달이 물 위로 끌려 나왔다가 실을 끊고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6)몇 달이 지나자 최씨의 딸은 아들은 낳았는데 피부가 노란 색이라 노라치(누루하치)라 불렸다.

(7)노라치는 자 람에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여 혼인을 한 뒤에는 아버지 수달이 있는 호수 가에 정착했다. 노라치는 물을 좋아했고 아버지를 닮아 수영을 잘 했 다.

(8)어느 날 경흥 지역 솔보 고을 이씨가 꿈을 꾸었는데 수달이 살고 있 던 호수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 신령은 수달이 죽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니 호수 밑바닥에 있는 수달 궁궐에 내려가 출입구 옆 오른쪽 방에 조 상의 유골을 걸면 중국의 황제가 될 것이고, 왼쪽 방에 걸면 조선의 왕이 될 것이라 했다.

(9)잠에서 깬 이씨는 선친의 유골을 파서 한제동두 호수로 향했다. 그러나 이씨는 수영을 할 줄 몰라 한제동두 호수 가에 살고 있는 노라치에게 부탁을 했다.

(10)이씨는 노라치에게 신령이 말을 반대로 알려 주면서 자신은 조선의 왕이 되는 것으로 감지덕지이니 자기 조상의 유골은 오른쪽 방에, 노라치의 조상은 왼쪽 방에 걸라고 했다.

(11)이씨는 노라치 를 속이려고 신령이 알려준 말을 반대로 전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노라치 는 이씨 가문이 더 잘되게 하려고 이씨가 부탁한 것과 반대로 이씨 조상의 유골을 왼쪽 방에 걸었다.

(12)그 사실을 안 이씨는 어쩔 수 없이 운명에 순 응을 하면서 노라치에게 두 가문이 앞으로 영원토록 잘 지낼 것을 당부했 다.

(13)시간이 흘러 노라치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셋째 아들 한은 털이 무 성하고 무시무시한 얼굴을 했으며 눈빛이 강해 상대를 쳐다보기만 해도 죽 었다.

(14)노라치의 셋째 아들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항상 눈을 감고 다녔 다.

(15)한편 이씨는 나이 들어 죽게 되었고 그의 아들은 꿈속에서 한제동 두 호수 근처에 우물 속에서 중국 왕의 검을 보았는데 신령이 말하길 이 검 을 소유하면 중국의 왕이 될 것이라고 했다.

(16)이씨의 아들은 잠에서 깬 뒤 호수로 가서 우물 안에 있는 검을 발견했다.

(17)이씨의 아들은 사람들 이 노라치의 셋째 아들 한이 중국의 미래 통치자라고 말하는 듣고는 검으 로 한을 살해할 궁리를 했다.

(18)이씨의 아들은 아버지 사이의 우정을 이 용하여 노라치를 찾아가 한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19)노라치가 자 기 아들을 만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만류했지만 이씨 아들은 끈질기게 졸랐다.

(20)노라치는 이씨와의 우정 때문에 더 이상 거절 하지 못하고 이 씨의 아들을 한의 방으로 들여보냈다.

(21)한은 이씨 아들을 쳐다보지도 않 고 눈을 떴는데 이씨의 아들이 놀라 검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22)이씨 아 들은 네가 중국의 왕이 되겠다며 한에게 검을 주었다. 그 순간 노라치가 아 들의 방에서 이씨 아들을 끌어냈다.

(23)노라치는 자기 아들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라며 빨리 피신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의 천리마를 이씨 아들에게 내어 주었다.

(24)한은 이씨의 아들이 소문을 내기 전에 입을 막 으려 했지만 이미 자신의 말을 타고 사라진 뒤였다.

(25)한은 조금도 지체 할 수가 없게 되었다며 만주 사람들을 모아서 북경으로 진군하여 만주 출 신의 최초의 중국 왕이 되었다. 12)

12) N. G. 가린-미하일로프스키, 안상훈 역, 조선설화』 (24-수달에 관한 전설-만주 와 조선을 통치하는 왕조의 기원), 한국학술정보, 2006, 103-106면.

<수달에 관한 전설(만주와 조선을 통치하는 왕조의 기원–이하 수달에 관한 전설)>은 괄호 속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만주와 조선을 통치하던 왕조의 기원과 관련이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서사단락 (1)~(6)까지지는 중국 청나라의 창건자인 누루하치의 탄생담이다.

누루하치의 아버지 는 수달이었는데 정체를 숨기고 함경 땅 최씨 처녀를 임신시켰다고 했다. 처녀가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아버지는 딸에게 남자의 다리에 실 을 매달아 두게 한다. 다음 날 처녀의 아버지가 실을 쫓아가니 호수 안으 로 들어가 있었다. 처녀의 아버지가 실을 잡아당기자 수달이 끌려 나오다 실을 끊고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처녀는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물 을 좋아하며 수영을 잘 했는데 피부 빛 때문에 사람들은 아이를 노라치(누 루하치, 이하 누루하치)라 부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서사단락 (7)은 누루 하치의 혼인에 관한 것이지만 간략히 언급되었다. 13)

13) 임석재, 한국구전설화 청태조 편에는 누루하치의 혼인에 관해 조금 더 상세히 언급한 이본이 1편 있다. 그 외, “강재철, 한 월 노달치 설화의 일 연구 , 『동아 시아고대학』 1, 동아시아고대학회, 2000.”에 소개된 최남기라는 조사자가 회령에 서 1908년에 채록하고, 금서룡(今西龍)이란 중국인 학자에 의해 보고된 노달치 관 련 자료에 따르면 누루하치의 혼인담 역시 또 다른 개별 설화를 활용하여 복합시켜 길게 구연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그와 같은 모 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음 서사단락 (8)~(12)는 조선 왕조의 기원과 관련이 있다. 이번에는 회령이 아닌 경흥에 살고 있던 이성계의 선조가14) 꿈을 꾸고 노라치가 살 고 있던 호수로 찾아 온 것이다.

14) N. G. 가린-미하일로프스키, 안상훈 역, 조선설화, 한국학술정보, 2006, 95~96면. 제 22화 <이 씨 왕조>에서는 “이씨 왕조는 오백 년 전에 조선의 왕위에 등극해서 현재까지도 통치하고 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일어났다. 함흥 지방 경흥 지역에 는 이씨와 박씨라는 두 가문이 살고 있었다. 이씨 가문은 솔보 고을에 살았고 박 씨 가문은 남보 고을에 살았다. 박씨도 이씨도 장수였다....”라고 하여 경흥 지역 솔보 고을 출신 이씨가 조선 오백년을 이끄는 이씨 왕조의 가문임을 밝힌 바 있 다.

이성계의 선조는 신의 계시로 수중 명당 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수영을 못해서 누루하치에게 대신 자기 아버지 의 유골을 걸어줄 것을 부탁하고 나머지 한 쪽에는 누루하치의 조상 묘를 쓸 것을 제안했다. 이때 이성계의 선조는 누루하치에게 거짓 정보를 준다. 누루하치가 자신이 부탁한 것과는 반대로 행동할 것이라 예상하고 천자가 날 자리를 거 꾸로 말해준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누루하치는 왕이 날 자 리에 이성계 선조를 모시고, 천자가 날 자리에는 자기 선조를 모신다. 땅 으로 돌아온 누루하치가 이성계 조상을 위해 자신이 한 일을 말하자 이성 계 선조는 어쩔 수 없다며 운명에 순응했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서사단락 (13)~(24)까지는 누루하치의 셋째 아들 한과 이성계 의 선조의 아들의 이야기이다. 이번에는 이성계 선조(이하 이씨) 아들의 꿈과 관련한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씨 아들 역시 꿈에서 수달이 살던 호수 근처 우물에 천자검이 들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검을 얻으 면 중국의 천자가 된다는 말도 듣는다. 잠에서 깬 이씨 아들이 우물에서 천자검을 얻게 되자 그는 그 검으로 누루하치의 셋째 아들을 죽이려 했다. 많은 사람들이 누루하치의 셋째 아들이 중국의 미래 통치자가 될 것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누루하치의 만류에도 이씨 아들은 누루하치를 졸라 셋째 아들 한의 방으로 들어갔고 셋째 한의 기세에 놀라서 천자검을 내어 주고 만다. 그 모습을 본 누루하치는 셋째의 천리마를 내어 주면서 이씨 아들의 도주를 돕는다. 그 뒤 셋째 아들 한은 서둘러 북경으로 들어가 만주국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정리하면 <수달에 관한 전설>은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달 아 버지에게서 태어난 누루하치로부터, 누루하치와 이성계 선조의 대결 그리 고 이씨의 후손과 누루하치의 셋째 아들의 대결에 이르기까지, 청의 입장 에서 보자면 청나라의 건국까지의 누루하치 집안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를 이성계 집안과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앞 뒤 맥락이 잘 연결되어 보이는 이 설화는 사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세 편 이상의 설화를 결합해서 만들어 낸 혼합형이다. 앞서 줄거 리를 정리하면서 구분했던 단락 별로 각각의 설화 유형이 개별적으로 존 재하고 있다. 첫 번째 누루하치 탄생담은 이물교혼 중 ‘야래자(夜來者) 설 화’ 유형에 해당된다. 두 번째 수중 명당 차지하기는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이라는 단일 유형이 존재하고 있다. 15)

15)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의 단일 유형이 약 6 편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누루하치 아들 한과 이씨의 아들의 대결에는 ‘눈빛이 강한 이인’이라는 화소와 정충신 관련 일화가 구비 및 문헌설화에서16) 확인된다.

16) 동패낙송에서 해당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권율의 부하로 있다가 그 사 위 이항복에게 보내져 출세해 큰 공을 세우고, 부원수가 되었으며 금남군(錦南君) 에 봉해졌다. 북쪽 변방을 수비할 때 노화적(魯花赤)과 친해져, 노화적이 술을 대 접하면서 그 아들을 차례로 인사시켰는데, 여섯째 아들을 보고는 일어나 존경을 표했다. 노화적이 그 까닭을 물으니 “진시황을 보는 것 같다.” 고 했다. 이때 노화 적은 “그게 아니고 당 태종이다.” 라고 했는데, 이 아이가 뒤에 청(淸) 태조가 되었 다.

다음 장에서는 개별 설화를 한 편의 이야기인 <수달에 관한 전설>로 재구성하면서 생겨난 변 화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3. <수달에 관한 전설>에 나타난 변형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설화와 <수달에 관한 전설> 속 해당 단락을 비교 해가며 한 편의 일관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 각 설화를 어떻게 변형했는지 살펴보겠다.

첫째는 야래자 유형과의 비교이다. 보통의 야래자 설화17)에서 인간 처 녀를 임신 시키는 동물은 지렁이, 용, 지네, 자라, 조개, 수달 등이다.

17) 정운채 외, 문학치료서사사전 3, 문학과치료, 2009, 3009-3016면, 이 책에 따르면 한국구비문학대계에는 야래자 설화가 대략 23편이 발견된다. 23편 중 밤에 몰래 찾아오는 이물이 수달인 경우는 2편이다. 이 이야기에서 수달은 등에 바늘이 꽂혀 죽고, 수달피와 반종(半種)이 된 후손들은 오랑캐라 불리며 비하되고 있다.

그 중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지렁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물 은 처녀 부모의 눈에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바늘 혹은 소금물 또는 사람들 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지렁이 대신 수달이 등장하고 수달은 정체가 드러난 이후에도 퇴치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변형이 필요하게 된 형식적 이유는 서사단락 (8) 때문이다.

(8)단락 에서는 몇 년 뒤 수달이 죽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설정이 필요하 다. 그러니 수달은 정체가 드러나는 날 처녀 부모에의해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변형이 수달의 거처를 최고의 수중 명당으로 연결 짓 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로써 <수달에 관한 전설>은 어떤 야래자 유 형보다 그 신성성이 강화되었다. 사실 야래자로 찾아오는 동물은 단순한 짐승은 아니다. 모두 신성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은 항상 어느 정도의 비범성을 띤다. 견훤이 대표적이다. 그

러나 견훤의 실패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의 후손에게는 약간의 약점이 있고 그것은 많 은 경우 야래자인 아버지의 문제와 연결 된다. 18)

18) <지렁이 장군과 소금물>이란 설화에서 견훤은 싸우다 지치면 물에 들어가 힘을 얻었는데 적들이 소금을 견훤이 들어간 물에 풀어 버리자 지렁이가 되어 떠올랐 다고 한다.

반면 <수달에 관한 전 설>에서는 야래자의 퇴치가 사라진 결과 그의 후손의 약점이나 실패도 줄 어들고 있다. 다음으로는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과의 비교이다.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은 한국구비문학대계에 대략 6편이 발견되 는데, 각편에서는 수중에 명당이 생겨난 이유는 찾아보기 힘들다. 보통은 점잖은 양반이나 지관, 중 등이 명당을 찾아다니다 우연히 그 명당을 발견 하게 된다. 발견자들이 명당 기운을 알아보는 식견을 가졌기에 주변의 기 운을 보고 짐작해 낸 것이다. 또 누루하치 대신 주원장이 유골을 바꿔 걸 고 명나라를 창업했다는 내용이 많다. 이런 것을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경흥 땅 이씨가 꿈에서 신령의 계시로 수중 명당의 존재를 알고 누루하치로 하여금 유골을 대신 걸게 하 는 것으로 변형했다.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 추가된 신의 계시는 두 가지 효과를 만들었다.

수달은 죽어서 용이 되어 승천할 만큼 고귀한 존재라는 점, 그리고 경흥 땅 솔보 고을 이씨 또한 천자나 왕이 될 만큼의 자질을 갖춘 인물이라는 것을 보증하고 있다.

다음으로 명당을 찾으러 다니는 존재를 지관이나 중이 아닌 조선을 창 업한 이씨 집안으로 특정화시킨 변형에 대해 살펴야 한다.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에는 왕이 될 자와 천자가 될 자의 인물의 경쟁이 주요 갈등이다. 보통 이 설화에서 지관은 천자가 날 자리가 어디인지 알기 는 하지만 그 자리를 혼자 쓸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명당은 깊은 물속에 잠겨 있어 접근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관은 이 명당에 접근 할 인재를 찾아서 반드시 도움을 얻어야 한다.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 지 유골>의 각편 속 지관들은 도움을 주는 인재에게 모략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서사의 결과는 <수달에 관한 전설>과 같다. 왜냐하면 도움을 주는 아이가 실수로 잘못 걸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부탁을 이행하지 못하거 나, 아이의 부모가 유골을 바꾸어 걸 것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 리를 빼앗긴 지관도 왕 날 자리에 만족한다. 하지만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수중 명당 속 천자 자리를 차지하려 고 거짓말이 개입하는 변형이 생겼다. 그 결과 누루하치를 믿지 못해서 거 짓 정보를 말해 준 이씨 조상과, 이씨의 조상을 위해서는 천자가 날 자리 도 탐내지 않는 순수한 누루하치를 대비시켜 누루하치의 도덕성을 강조하 는 효과가 만들어졌다. 정리하면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수중 명당을 찾아오는 이를 이씨 의 선조로, 명당에 유골을 걸어주는 사람은 누루하치로 명시하고, 둘의 대 결을 타인을 믿지 못하는 자와 타인을 위하는 자로 대비함으로써 개별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에서 명당을 둘러 싼 지관과 자리 임자 사이의 대결이었던 것을 이씨 가문과 누루하치 가문의 도덕성 및 인품대 결로 그 초점을 옮겨 놓았다.

최종적으로 <수달에 관한 전설> 속 이성계의 선조는 이런 차이를 인정 하고 누루하치에게 “두 가문이 앞으로 영원토록 잘 지낼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자신의 모략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 또한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이 추가된 것으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이다.

이제 마지막 서사단락을 화소 ‘눈빛 강한 이인’과 누루하치 관련 설화들과 비교하여 그 차이점을 검토해 보겠다. 눈빛 강한 이인이란 화소는 안광 (眼光)이 강해서 눈을 뜨면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짐승을 다치게 만들 어서 평소에 눈을 감고 다니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설화 속 이 인들의 특징 중 하나로, 유형화된 이야기로 존재하기보다는 등장인물의 이 인성을 드러내는 표지로 활용된다. 그런데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누 루하치의 셋째 아들의 특징으로 구현되고 있다. 다음으로 다룰 내용은 누루하치 아들과 이씨 아들의 경쟁에 관한 것이 다. 이 부분은 몇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살필 필요가 있다. 일단 누루하치 아들 중 하나가 천자가 될 자질을 가졌다는 것을 알아 본 조선 사람이 있 었다는 점에 주목하면 문헌설화 계서야담에서 유사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먼저 해당 내용을 인용해 보겠다.

(1) 금남 정충신은 광주 사람이다.

(2)그의 부친이 향임으로 향청에 있었 는데 나이 육십이 가깝도록 자식이 없었다.

(3)정충신의 부친이 어느 날 밤 꿈에 무등산이 갈라지며 청룡이 뛰어 나와 몸을 휘감는 것을 보고 깨었는 데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여겼다.

(4)다시 꿈을 꾸니 또 북쪽 산이 갈라지고 백호가 뛰어나와 가슴에 안겼다.

(5)놀라 깬 뒤로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 밤중에 섬돌을 내려가 배회했다.

(6)그는 부엌 구석에서 자고 있는 식비(食 婢)를 보았는데 홀연 마음이 동하여 동침했다.

(7)식비가 임신을 하여 충신 을 낳았는데 골격이 비범하였다.

(8)자라서 본 고을의 통인이 되었는데 도 원수 권율이 때마침 목사로 왔다가 충신을 보고 평범한 무리가 아님을 알 아보고 사위 오성의 집에 보내 시중드는 사람으로 기르게 하였다.

(9)정충신은 후에 임진왜란을 당해서 많은 공을 세우고, 지위가 부원수에 이르러 금성군에 봉해졌다.

(10)북쪽 변방에 있을 때 누루하치와 서로 친했다.

(11) 누루하치가 초청하여 함께 술을 마셨는데 여러 아들을 나오게 하여 인사를 시켰다.

(12)정충신이 비스듬히 앉아서 절을 받다가, 여섯 째 아들에 이르 러서는 찬찬히 보더니 일어나 공경을 표했다.

(13)누루하치가 그 까닭을 묻 자 “뜻하지 않게도 진시황이 다시 나왔습니다.”라고 했다.

(14)누루하치는 웃으며 “그대는 이 사람이 당태종인 것은 알지 못하오.” 라고 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청태조였다. 후에 명나라를 대신하여 중국에 들어가 황제가 되 었다. 19)

19) 이희준, 계서야담, 국학자료원, 2003, 436-438면.

위 내용은 정충신과 관련된 이야기로 정충신의 탄생과 정충신의 출세, 누루하치와 관련한 일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누루하치와의 일화인 (10)~(14)까지가 비교 대상이다. 신분이 낮은 정충신은 권율에 의해 발탁 되어 임진왜란에 공을 세우고 출세를 해서 북쪽 변방에 있을 때는 누루하 치와 친했다고 했다. 그는 누루하치의 여러 아들들의 인사를 비스듬한 자 세로 앉아서 받다가 여섯째 아들에 이르러서는 일어나 공경을 표하고 진 시황이 다시 나왔다고 칭찬했다는 것이다. 위 일화를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정충신을 이씨 아들로 대체하고 그가 누루하치의 아들 한을 대하는 태도도 변형했다. 인용한 계서야담 속 정충신은 누루하치 아들의 기상에 공경을 표했지만, <수달에 관한 전 설>에서 이씨 아들은 시기하고 죽이려 했다는 점도 달라진 부분이다. 그 외에는 계서야담에서는 천자검에 관한 내용은 찾아 볼 수 없다. 누루하치 아들에 대한 견제, 천자검의 출현과 관련된 설화는 임석재의 한국구전설화(함경북도편)에서 두 편 확인할 수 있다.

두 편의 설화는 강조점이 달라 편의상 가)와 나)로 구분하고 차례로 그 내용을 살펴보겠 다.

먼저 가) 설화를 소개해 보겠다.

가).

(1)누루하치는 나이 이십에 결혼을 해서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영특했지만 특히 셋째가 그중 최고였다.

(2)셋째는 밤낮 눈을 감고 있었는 데 눈을 뜨고 사람을 대하면 사람들이 무서워 기절을 했기 때문이었다.

(3) 셋째 아들은 비록 눈은 감고 있긴 했지만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훤히 알았 다.

(4)그 무렵 회령 한 우물에 큰 뱀이 나타나 사람들이 무서워 접근을 못 했다. 그 때 정충신이라는 사람이 함경도 병사가 되어 왔다가 우물에 큰 뱀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서 보니 뱀이 아니라 큰 칼이 하나 있었다.

(5)일반인의 눈에는 뱀으로 보였지만 큰 인물의 눈에는 검으로 보였던 것 이다. 정충신이 검을 꺼내 보니 천자검이라 적혀 있었다.

(6)정충신은 그 검 의 주인은 천자가 될 만한 사람이라 여기고 천자가 될 만한 사람을 찾아보 았다.

(7)그러자 한 유명한 사람이 누루하치의 아들 삼 형제 중 셋째가 특 히 영특하다고 알려주었다.

(8)정충신이 누루하치를 찾아가 삼형제를 차례 로 만났는데 과연 셋째가 가장 영특하고 잘 생겨 천자의 기상이 있었다.

(9)그런데 셋째가 손님 앞에서도 계속 눈을 감고 있자 조선국 병사를 대하 는데 예의가 없다며 나무랐다.

(10)그러자 셋째가 눈을 번쩍 뜨면서 네 놈 이 천자검을 바치러 왔으면 당장 바치고 갈 것이지 건방지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했다.

(11)셋째가 눈을 뜨자 번갯불 보다 더 강한 빛이 튀어 나와 정충신이 천자검을 얼른 바치고 달아났다. 20)

20) 임석재, 한국구전설화 4, 평민사, 1989, 34-37면.

눈빛이 강한 누루하치의 아들을 만나게 되는 조선인이 정충신이라는 점 을 제외하면 설화 가)는 <수달에 관한 전설>과 대체로 유사하다.

계서야 담에는 없던 천자검 출현이라는 사건이 추가되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이 만나게 되었다는 설정도 닮아있다. 차이가 있다면 설화 가)에서 정 충신은 천자검에 대한 애착이 적다.

서사단락 (6)에 나타난 것처럼 정충신 은 천자검에 어울리는 주인을 찾아 나선다. 자신이 그 칼의 주인이라는 의 식을 보이지는 않는다.

이 점이 <수달에 관한 전설> 속 이씨 아들의 태도 와 크게 차이가 난다. 이런 태도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천자검에 대 한 이씨 아들의 집념은 <수달에 관한 전설>의 고유한 특징일까?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한 편의 설화를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핀 설화 가) 에서 보다는 천자검에 대한 주인의식을 보이는 설화가 있기 때문이다.

나).

(1)노달치(누르하치)는 결혼을 해서 아들을 셋 낳았다.

(2)누르하치의 아 들들은 장성함에 큰 뜻을 품고 한성현(汗城峴) 볼하진(甫乙下鎭)의 첨사(僉 事)로 가서 성을 쌓고 힘을 쌓았다.

(3)한편, 볼하진(甫乙下鎭)의 첨사(僉 事)로 온 정충신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하루는 이 사람이 밖을 내다보니 마 을 우물가에 사람들이 모여 야단법석이었다.

(4)정충신이 이유를 묻자 사람 들이 우물 속에 구렁이가 들어갔다고 했다.

(5)정충신이 보니 과연 우물 속 에서 구렁이가 비쳐 물을 퍼내고 꺼내 보니 구렁이가 아니라 큰 보검이 나 왔다.

(6)그 보검 자루에는 천자검이라 적혀 있었다. 정충신은 하늘이 천하 통일을 하라고 나온 것이라 생각하며 건너편 한성현 노달치의 아들 삼형제 를 죽여 우리 변방을 편안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7)정충신이 누루하치 의 아들을 죽이려 찾아갔는데 마침 낮잠을 자고 있었다.

(8)정충신이 보검 을 뽑아들자 보검이 거울에 비쳐 셋째 아들 애친각나가 일어나면서 웬 손 님이냐고 했다.

(9)정충신이 보니 위압이 되어 감히 죽일 수가 없었다. 그래 서 자신이 천자검을 얻었는데 바치러 왔다고 말했다.

(10)셋째 아들은 검을 받고 사례로 자신의 부하에게 말과 안장을 주라고 했다.

(11)부하가 말을 고르는데 살찐 말을 주려니 좋은 말인 것 같아 여윈 말과 금안장을 주었다.

(12)사실 여윈 말이 천리마라 정충신은 말을 몰아 서울로 돌아왔다.

(13)애친각나는 자신이 천자검을 얻어 도모하려는 것을 정충신이 알았으니 빨리 도모해야겠다며 천자검으로

중원을 치고 삼년 후에 청태조가 되었다. 21)

21) 임석재, 한국구전설화 4, 평민사, 1989, 37-39면.

위에서 인용한 설화 나)는 앞뒤에 다른 이야기가 붙어있지만 여기에서 는 청태조 관련 내용만 정리하엿다. 나)설화에서도 누루하치의 아들 애친 각나와 만난 사람은 정충신이다.

계서야담과 다른 점은 천자검 출현 사 건이 추가되었다는 점이고, 가)설화와 차이점은 정충신의 비범함에 대한 강조는 줄고22) 천자검에 대한 애착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22) 설화 가)에서는 평범한 백성들의 눈에는 뱀이지만 큰인물인 정충신의 눈에는 검으 로 보인 반면 설화 나)의 정충신은 마을 사람들과 똑같이 처음에는 뱀인 줄로만 알았다가 물을 다 퍼내서 꺼내보고야 그것이 천자검인 것을 알게 된다.

나)설화 속 정 충권은 서사단락(6)에서 보검의 자루에 적힌 천자검이란 글귀를 보고서 하늘이 천하통일을 하라고 내려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가 생각한 천하통일 의 구체적인 모습은 우리 변방을 시끄럽게 하는 누루하치 아들의 세력을 제압하여 조선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칼이 나에게 주어진 것은 곧 나로 하여금 천하를 평정하고 새로운 왕조를 열게 하려는 것이라 생각했던 <수달에 관한 전설> 속 이 씨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검의 주인은 따로 있고 나의 역할은 주인을 찾아서 전달하는 것에 있다고 보는 설화 가)의 인식보다는 적극적이다. 그 랬기에 설화 나)의 정충신은 누루하치의 아들을 죽일 것을 시도하다가 결 국에는 위세에 눌러 검을 바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설화 나)에는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와 유사하게 정충신 이 누루하치의 천리마를 타고 위기를 모면한다. 그런데 이 천리마를 누가 주었고, 왜 주었는가 하는 점은 <수달에 관한 전설>과 다르다.

설화 나) 에서는 애초에 애친각나가 천자검을 얻게 된 것에 대한 사례로 말을 주려 한다. 또 그의 부하의 실수로 천리마가 정충신에게 전해진다.

반면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누루하치의 의도된 배려로 천리마가 이씨 아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수중 명당을 빼앗긴 이씨 선조가 누루하치 에게 영원토록 두 가문이 잘 지낼 것을 당부했던 일이 실현된 것으로 앞에 서 마련한 복선과 연관된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이제 ‘눈빛 강한 이인’ 화소 및 누루하치 아들과 관련한 일화들과 비교 해 볼 때 <수달에 관한 전설>에 생긴 변화를 정리해 보겠다.

가장 큰 변 화는 누루하치의 아들과 대면한 인물이 정충신에서 이씨 아들로 바뀌었다 는 점이다.

세 설화에서는 누루하치의 아들 중 하나가 천자의 기상을 가지 고 있다는 점에서는 <수달에 관한 전설>과 일치했지만 누루하치 아들의 짝이 되는 인물은 모두 정충신이었다.

<수달에 관한 전설>의 이씨 아들은 세 편의 설화 속의 어떤 정충신보다도 천자검에 집착했고 그만큼 누루하 치의 아들과의 대결 의지도 강했다. 아울러 누루하치의 의리도 비례하여 강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4.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에 대한 재조명

이 장에서는 세 종류의 설화를 융합하면서 생겨난 변형의 의미에 대해 논의해 보겠다. 먼저 그 결과를 정리해 보겠다.

첫째, <야래자> 유형의 설 화와 비교해 본 결과 <수달에 관한 전설>의 가장 큰 차이는 수달이 정체 를 알 수 없는 몹쓸 짐승에서 신령스러운 용으로 지위가 상승했다는 점이 었다.

둘째,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과 비교할 때 <수달에 관 한 전설>의 차이는 수중 명당의 존재가 신의 계시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 다는 점과, 명당의 존재를 알게 된 이가 경흥 지역 이씨로 특정된다는 점, 그리고 명당의 주인이 바뀌는 계기가 계략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명나라 주천자 대신 청태조로 바뀐 점이었다.

셋째, 눈빛 강한 이인 화소 및 정충 신 일화들과 비교를 통한 차이는 <수달에 관한 전설>의 특징은 눈빛 강 한 이인을 누루하치의 셋째 아들 청태조와 연결했다는 점, 정충신 대신 이 씨의 후손을 내세운 점, 누루하치의 구원을 강조했다는 점 등이다.

요컨대 <수달에 관한 전설>은 세 편의 독립된 설화를 누루하치와 이성 계 가문의 대결 양상이 부각되도록 재배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런 변형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수달에 관 한 전설>에서는 이야기 서두에 야래자 설화를 배치 후 야래자수달의 신성 성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변형하였다. 이 설화에서 수달이 살았던 한동제 두 호수는 왕과 중국의 황제를 탄생시킨 기반이 되는 명당으로 나중에는 이 호수 근처 우물에서 천자검이 발견되고 누루하치의 셋째 아들이 청태 조가 됨으로써 그 자리의 효력을 최종적으로 입증해 보였다.

결국 수달이 위상이 높아지는 것과 함께 수달의 후손인 누루하치와 누루하치의 자손들 의 비범성도 확장된 것으로 서사화한 셈이다.

누루하치 혈통의 신성성이 확장되는 것과 아울러 누루하치 혈통의 한 자락에 함경도 회령 땅 최씨의 어린 딸이 개입하고 있는 것도 의미 있게 볼 대목이다.

이것은 청나라 황족과 조선인 사이에 혈통적 관련성을 암시하려는 것으로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 누루하치의 신성성이 강조하는 이면에 또 다른 의도가 개입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청나라와 조선은 종족과 민족이 엄연히 서로 다르지만 <수달에 관한 전설> 에서와 비슷하게 두 종족 사이의 친연성을 강조하는 이야기적 상상력이 오랜 전통을 가지고 많은 곳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로 1911년 박은식이 지은 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에는 몽 유자 무치생이 압록강 일대를 떠돌며 우리 선조들의 고토에서 옛날의 영 광과 오늘날의 망국의 현실을 비교하며 통한하다가 개천절을 맞이하여 꿈 에 금나라의 태조를 만나서는 망국의 원인과 대안에 관해 문답하는 내용 이 있다.

이 장면에서 무치생은

“조선족과 만주족은 다 같은 단군대황조의 자손으로 오랜 옛날에 남북을 차지하여 서로 경쟁을 했고 또 서로 통하기 도 했다. 그러나 필경 통일되지 못하고 분리되면서 두만강 압록강이 자연 경계를 이루어 양쪽 인민이 감히 넘나들지 못하고 섞여 살지도 못한 지 천 여 년이 흘렀다.”23)고 말하며 비통함을 드러낸다.

23) 박은식, 조준희 역, 몽배금태조 , 대통령이 들려주는 우리 역사, 박문사, 2011, 229면.

또 망국의 한을 해결하 기 위하여 청년자제를 교육시켜 신국민을 양성하는 방법으로 영웅들의 과 감성과 자신력, 모험심을 배우려 한다고 하면서 금태조를 청년자제의 롤 모델로 삼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때 무치생은 동양 세계의 영웅 중 굳이 금태조를 거론한 까닭이 금태조는 고려족의 영웅이고 금나라 즉 만주족의 역사는 우리 민족사의 일부이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다시 <수달에 관한 전설>로 돌아가 보자. 이 작품은 1898년 기행 중 채록한 이야기들을 1904년에 간행한 것으로 박은식의 몽배금태조보다 앞선다.

그러니 이 설화가 박은식의 대동(大東)사관의 영향을 입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여진족이 세운 나라인 금나라, 청나라를 우리 민족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 부분으로 이해하는 사유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몽배금태조 속 무치생의 경우와 같이 금나라 역사를 민족사의 일부로 생각하는 인식은 오랜 역사적 유래를 지닌다. 금사(본기 ‘세기’편)에서 ‘금 시조가 고려에서 건너온 함보의 후손’이라 하거나, 청나라 6대 건륭제 때 집필된 흠정만주원류고(권7 부족 7편)에서 ‘국호 금(金)이 신라왕성 인 김(金)씨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거나, 고려사(세가 권13 예종 10 년 3월조), 성호사설(권23 경사편 요 금 원편), 동사강목(7하 갑인년 문종 28년 조), 해동역사(인물고 2 고려편) 등 여러 문헌에서 금태조의 혈통이 발해나 신라 내지 고려의 후예라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궤를 같이 한다.

다음으로는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 설화를 변형하여 누루 하치의 도덕성과 인품을 강조한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논의해 보자.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 각편에서는 누루하치 대신 명나라를 건국 한 주천자가 수중 명당을 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역사적 시기를 고려한다면 중국 천자 자리를 놓고 이성계의 조상이 누군 가와 다투었다면 명나라 천자의 조상이 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그래서인 지 이성계의 인품과 중국의 황제의 인품을 비교하는 설화에서 이성계의 상대는 많은 경우 명나라 주원장이다. <천 냥짜리 술 마신 이성계와 만 냥짜리 술 마신 주원장>과 같은 설화에서는 태조는 천 냥짜리 술을 마실 그릇밖에 되지 못하지만 주원장은 만 냥 술도 외상으로 마실 수 있는 대범 함을 지니고 중국 황제로 등극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로 볼 때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 이성계의 선조와 누루하치가 물 속 명당자리 차지를 두고 경쟁한 것으로 묘사한 것은 누루하치를 명나라 의 천자와 같은 지위로 격상시키려는 의도를 지녔다고 해석해 볼 여지가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누루하치를 이성계의 선조와는 다르게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인물로 형상화했다. 이씨 선조는 타인을 의심하고 타인을 시기하는 반면 누루하치는 신의가 있는 인물로 그리고 있는데 이것 또한 이런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누루하치의 가문이 점차로 신성하고 인품이 대단하며, 도덕적인 영웅으 로 형상화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성계 가문은 오히려 그 위치가 하락하고 있다. 마지막 서사단락에서는 눈빛 강한 이인 화소와 조선의 정충신 이 눈빛이 강한 누루하치의 아들을 만났다는 설화를 활용하고 있다. 혹시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 이씨의 후손을 정충신의 일화와 겹쳐둔 것은 이 씨의 아들을 정충신 정도의 능력과 배포를 지닌 인물로 평가하려는 의도 가 개입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물론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역사 속에서 정충신은 후금과의 화의를 이끌어 낸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1633년 조정에서 후금과 단교하려는 데 반대하고 청나라와 화의(和議)를 주장하다가 당진(唐津)에 유배된 이력이 있는 만큼 후금과 친밀감이 높은 인물이었다.

따라서 <수달에 관한 전설> 에서 정충신 일화를 이씨 후손의 일화로 활용한 것은 이와 같은 이력을 지 닌 정충신의 삶과 이씨 후손 행동을 겹쳐 읽게 함으로써 이씨가 정충신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여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반영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추론을 가능케 하는 것은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이미 이씨의 후손과 누루하치 가문이 조선 여인을 매개로 혈통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서두에서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가문 간의 사적인 인연이 깊고 오래 이어졌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 비교했던 설화들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사건, 즉 누루하치가 이씨 아들의 목숨을 구하는 이야기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달에 관한 전설>은 누루하치와 누루하치 가문의 비범함과 도량이 천자가 될 정도였음을 말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것 이 어느 정도에까지 이를 수 있느냐 하면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과 비견될 정도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누루하치와 그의 가문의 인물됨을 명나라 천 자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어 하는 것은 여진족 만주족에 대한 재평가 와 연결된다.

실제 역사에서 조선은 청나라를 배척하는 주전론(主戰論)이 득세함으로써 청과 단교하고 후일 병자호란을 경험했을 뿐 아니라 삼전도의 굴욕 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설화에서는 청나라를 배척하는 것과는 다른 입장을 담고 있다.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누루하치가 세운 만주족을 야 만족, 오랑캐로 폄하하지 않고 오히려 명나라와 동등한 지위로 올려놓았 다. 남한에서 채록된 설화는 물론이고 함경북도에서 채록된 설화 가운데에 서도 누루하치와 오랑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설화들이 있다.

대표적인 유형은24) 누루하치의 정체는 수달이라 발톱이 날카로워 여자와 잠자리를 할 때에는 여자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24) 임석재, 한국구전설화 4, 평민사, 1989, 40-42면.

 

그래서 여자의 아버지가 딸이 상처를 입을까 누루하치의 네 발에 주머니를 씌우고 입에도 악취를 막는 주머니를 씌어 오낭(五囊)개라 불리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설화에는 오랑캐를 주머니 다섯 개를 찬 동물 종족으로 낮춰 보는 시각이 담겨 있다. 누루하치, 청나라 후손들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입 에서는 악취가 나는 야만적인 동물이 사람으로 변한 존재들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25)

25) 김수연, 육체의 경계 지우기 : 임상국부자삼취기의 패러디와 자기서사 , 한국고 전연구 36, 한국고전연구학회, 2016. 이 논문에는 개와 혼인하는 것이나 그 사이 에서 얻은 자식을 바라보는 입장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청나라를 비하하는 의식은 한반도 북부 지역의 구비 설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는 오랑캐에 대한 언급도, 만주족에 대한 혐오도 찾아볼 수 없다. 변형이나 추가가 아닌 생 략을 통해 누루하치와 그의 가문, 청나라를 높이는 전략이라 하겠다.

또 대단한 수준의 청나라를 여인을 매개로 조선과 혈통적으로 가까운 존재로 연결한 것은 청과 우리를 한 형제와 같이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해 나가는 존재로 보려 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수달에 관한 전설>에 나타 난 청에 대한 우위를 명나라 대신 청을 섬겨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청나라가 야만적인 나라가 아니며 명나라와 같은 자격을 누릴 수 있 는 민족인 것처럼 우리 또한 나름의 문화를 지닌 자율적인 주체로 서로를 대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수달에 관한 전설>에서 조선의 기원이 되는 이성계의 선조나 그 의 후손은 누루하치의 아들보다 모든 역량이 모자랐다. 천자검을 가지고도 천자가 되지 못했고, 누루하치의 아들과 눈길을 마주치는 순간 위세에 눌 려 천자검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이씨의 아들은 천자검을 얻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고, 중국 황제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었으며, 포부를 이루고자 경쟁자와 겨루어 볼 정도의 역량은 갖추고 있었다.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가문은 아닌 것이다. 이 정도라면 다음 후손 누군가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역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수달에 관한 전설> 속에 나타난 청에 대한 인식이 누구의 것인가 하는 것이다.

조선설화를 정리한 N. G. 가린-미하일로프 스키의 것인지 먼저 의심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선설화 서문에 적힌 다음의 내용을 신뢰한다면 N. G. 가린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흰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아랫부분이 넓고 윗부분이 좁은 뾰족한 삿갓을 쓴 이삼십 명의 조선 사람들이 우리를 에워싸며 웅크리고 앉았다. 말솜씨 가 훌륭한 이야기꾼은 옛날이야기를 능숙하게 들려주었고, 그곳에 모인 사 람들은 기다란 곰방대를 입에 문 채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 었다. 우리의 통역을 맡은 ‘김 씨’라는 조선인은 전문 통역관으로 러시아어와 조선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나는 조선설화들이 지닌 다채로움을 보존하 려고 노력했고 전혀 가필을 하지 않으면서 통역관이 하는 말을 신속하게 받아 적었다. 나는 이것에 대해 보증한다. 내 말이 사실임을 미래의 연구자 들이 확신하리라는 것에 대해 나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26)

26) N. G. 가린-미하일로프스키, 안상훈 역, 조선설화, 한국학술정보, 2006, 5면.

위 글은 가린이 조선설화 서문에 설화 채록과 관련하여 자신의 입장 을 밝힌 것이다. 그는 훌륭한 이야기꾼들을 발굴하거나 추천 받았다고 했 다.

또 그 이야기꾼은 가린뿐 아니라 여러 조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구연했다 하였다. 다른 기록을 참조하면 구경꾼들은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했을 뿐 아니라 간혹 빗나간 이야기를 바로잡아주거나 해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27)고 한다.

27) N. G. 가린-미하일로프스키, 김학수 역, 조선. 1898-N.G. 가린의 조선풍물여행기 (상, 하)』, 화경문고 13, 단대출판부, 1981, 110면; 강재철, 앞의 글, 2008에서 재인 용.

가린은 러시아어와 조선어를 유 창하게 구사하는 조선인 전문 통역관을 통해 전해들은 설화 내용에 전혀 가필하지 않고 신속하게 받아 적었음을 강조했다. 자신은 조선설화들이 지 닌 다채로움을 보존하려고 노력했으며 이와 같은 자신의 노력은 미래 연 구자들이 확인해 줄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위 인용문에서 전해주는 구연 현장의 모습은 오늘날 설화 연행 현장과 흡사하다.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구경꾼 사이의 논쟁을 통해 그 흐름이 조 정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린이 강조한 것처럼 64편의 설화들은 완 전히 낯선 작품은 아니다.

상당수는 우리에게 정리된 설화 자료집에서 찾 아 볼 수 있는 내용들과 유사하다.

<수달에 관한 전설>만 하더라도 여러 단일 유형이 결합되기는 했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단일 설화 유형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함경북도 설화 자료집에서는 <수달에 관한 전설>과 결합 방식이 유사한 설화의 흔적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28)

28) 1980년대 한반도 남쪽을 중심으로 설화 채록을 펼친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는 <수달에 관한 기원>과 유사하게 결합된 설화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수달에 관한 전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일 설화들을 연 결하고,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지닌 이야기로 만들면서 생략, 수정, 확장 등의 변경을 가했다. 기존의 익숙한 이야기를 재배치함으로써 최종적으로 는 매우 독특한 의미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이 가린의 작가 의식의 반 영이었건, 이야기 구연자의 소망이 반영된 것이건 또는 구경꾼 특히 함경 도를 위시한 한국의 북부 지역 설화 향유자들의 인식이건 관계없이 당대 의 지배 인식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조금 더 추론을 펼쳐 본다면 그러한 인식은 19세기 세계 여러 열강들이 조선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표할 때, 청은 우리의 또 다른 혈통이며, 천하 를 통일한 경험을 지닌 민족이기에 우리 조선도 그런 경험을 공유해야 한 다는, 즉 금나라와 청나라의 역사를 우리의 민족사적 관점에서 포섭하고 만주와 조선을 단군대황조의 후예이며 한겨레로 보는 대동(大東)사관과 닮아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5. 결론

이 논문의 목표는 19세기 말 가린-미하일로프스키에 의해 채록된 조선설화 속 수달 전설의 특징과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조선설화에 수록된 64편의 설화들은 1898년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에서 채록된 것으로 이른 시기 한반도 북부 설화의 모습을 살피기에 좋은 자료이다.

그러나 국 내외 정치 상황으로 인해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서였다.

이후 선행 연구에서는 조선설화의 대체적인 성격과 연행 양상 에 관한 정리가 이루어졌을 뿐 개별 작품에 대한 논의는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에 본고에서 조선과 만주의 기원에 대해 다루고 있는 <수달에 관한 전설>을 중심으로 그 이야기의 형식적 특징인 설화 결합 양상에 대해 살 피고 이야기 속에 형상화 된 누루하치 가문과 이씨 가문의 대결이 갖는 의 미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수달에 관한 전설>의 형식적인 특징은 <야래자> 유형 설화, <물 속 미륵 귀에 건 아버지 유골>, 눈빛 강한 이인, 정충신 일화처럼 화소나 개 별 설화 유형을 활용하여 한 편의 복합설화로 재구성한 것임을 밝혔다.

각 각의 서사 논리를 지닌 설화 유형들을 재배치하면서 <수달에 관한 전설> 에는 여러 변형들이 만들어졌는데, 그 변용의 기본 논리는 만주와 조선 왕 조의 기원인 누루하치 가문과 이성계 가문 간의 대결을 극대화시키는 것 이었다. 누루하치와 이성계의 대결은 결과적으로 누루하치 가문의 신성성을 확대시키고 구성원들의 인품을 높였다.

반면 조선의 기원이 되는 이성계 가문은 누루하치 가문보다 비범성이 떨어지고 인물의 능력도 뒤떨어졌다. 그 런데 이것은 청나라에 대한 선망에서 비롯한 것이기보다는 청나라와 조선 이 혈통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동류의식에서 비롯한 것임을 밝혔다.

19세기 말 한반도 북부에서 채록된 설화에 담긴 인식은 청나라에 대한 재조명인 바, 청은 조선의 또 다른 혈통이기 때문에 청나라가 천하를 통일 했던 경험을 조선 또한 공유해야 한다는 것임을 확인했다. 그것은 후일 금 나라의 역사를 민족사의 관점에서 포섭하고 만주와 조선을 단군대황조의 후예이며 한 겨레로 보는 대동(大東)사관과 닮아 있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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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이 논문은 19세기 말 가린-미하일로프스키에 의해 채록된 조선설화 속 수달 전설의 특징과 그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조선설화에 수 록된 64편의 설화들은 1898년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에서 채록된 것으로 이 른 시기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전승되던 설화의 일면을 보여주지만 1980년 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이후 선행 연구를 통해 조선 설화의 대체적인 성격과 연행 과정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개 별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아직 미흡하다.

이에 본고에서 조선과 만주의 기원을 다루는 설화 <수달에 관한 전설> 을 중심으로 그 이야기의 형식적 특징을 살폈고, 나아가 이야기 속에 형상 화된 누루하치 가문과 이성계 가문의 대결 양상에 개입하고 있는 서술시각의 의미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수달에 관한 전설>의 형식적인 특징은 ‘야래자 유형’과 <물 속 미륵 귀 에 건 아버지 유골>, 눈 빛 강한 이인, 정충신 일화처럼 개별적으로 존재하 는 설화 유형이나 화소를 재구성하여 새로운 혼합형 설화로 만들어냈음을 밝혔다. 각각의 서사 논리를 지닌 기존의 설화들을 재배치하면서 <수달에 관한 전설>에는 여러 변형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다양한 종류의 변형을 가로지 르는 일관된 논리는 누루하치 가문과 이성계 가문 간의 비교와 대결을 뚜렷 하게 만들기 위해 개별 설화를 활용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청나라의 기원이 되는 누루하치 가문의 신성성은 확대되고 구성 원들의 인품도 높여졌다.

반면 조선의 기원이 되는 이성계 가문은 누루하치 가문에 비교해서 비범성이 떨어지고 능력도 떨어졌다.

그런데 이것은 청나 라에 대한 선망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청나라와 조선의 혈통은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었다.

19세기 말 한반도 북부에서 채록된 설화에 담긴 인식은 청나라에 대한 재조명인 바, 청은 조선의 또 다른 혈통이기 때문에 청나라가 천하를 통일 했던 경험을 조선 또한 공유해야 한다는 것임을 확인했다.

그것은 후일 금 나라의 역사를 민족사의 관점에서 포섭하고 만주와 조선을 단군대황조의 후예이며 한 겨레로 보는 대동(大東)사관과 닮아 있는 것이기도 했다.

주제어: 조선설화, 가린-미하일로프스키, 야래자, 수달, 누루하치, 이성계, 청나라, 청태 조, 만주

Abstract

The Aspects of Type-Combination of 'Otter Legend' in the Joseon tale and recognition of the Qing Dynasty and the Joseon Dynasty

Ha, Eun-ha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meaning of of "Nikolai Garin – Mikhailovsky’s the Joseon tale. talks about the origins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Qing Dynasty. In this paper, we revealed the features of the form of "Otter Legend". And analyzed the confrontation between Nurhachi’s family and Yi Seong-gye’s family shown in the story. The result is as follows. is complex tale. The start of is ‘the typr of Yaraeja’. Next is the story of Myoung-Dang. Myoung-Dang is deep in the water. also has anecdotes of Jeong, Chung-shin. rearranged at least three stories or more. transformed each type of stories, communing the different patterns of stories with different logic. The basic logic of the transformation was to maximize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 NuruhachI and Yi Seong-gye clans, the origins of Manchuria and the Chosun Dynasty. As a result, the sacredness of Nurhachi's Family, the origin of the Qing Dynasty, was expanded. On the other hand, Yi Seong-gye s Family was less extraordinary than Nurhachi's Family. Also, the ability of the person is also inferior. This is not the yearning for the Qing Dynasty. This is because the Qing Dynasty and the Joseon have the same pedigree. shows that the Qing Dynasty's experiences should be shared since the Qing Dynasty was born of another clan of Joseon. This is a new perception of Qing Dynasty. This is similar to the interpretation that dragged the Qing Dynasty's history into the Joseon's ethnographic historical point of view.

 

Key words : the Joseon tale, Nikolai Garin - Mikhailovsky, the story of Yaraeja, Otter, Nurhachi, Yi Seong-gye, the Qing Dynasty, the Qing Taizu, Manchuria

논문투고일자: 2018.1.20. / 심사완료일자: 2018.2.14. / 게재확정일자: 2018.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