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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인도 티벳에서 중관학파의 차별성에 대한 연구- 자립논증파와 귀류논증파 중심으로 -/박 경 미(혜향). 조계종 교육 아사리

Ⅰ. 서론 .

자립파와 귀류파 연구 배경

Ⅲ. 청변의 유법의 공통적 의미로서 성립

Ⅳ. 월칭의 유법 불성립

Ⅴ. 결론

 

요 약 문

 

티벳에서 11세기에 파찹 니마닥(Pa tshab Nyi ma grags, 1055?- 1145?) 등에 의해 찬드라키르티(Candrakīrti)의 『명구론』(Prasannap adā)이 번역되면서 추론식을 사용한 바비베카(Bhāviveka)에 대한 비 판이 알려지게 되었고 귀류파(Prāsaṅgika, Thal ‘gyur ba)라는 용어 도 처음 사용되었다. 인도 문헌에는 귀류파라는 용어가 없음에도 불구 하고, 인도-티벳 중관 전통은 특히 찬드라키르티의 영향을 통해 자립 파와 귀류파 사이의 실질적인 차이를 나타낸다. 자립파와 귀류파를 특징짓는 것은 추론식의 수용과 부정의 관점으로 알려진다. 이 논문은 추론식을 구성하는 주장인 증명하고자 하는 법의 속성을 지닌 유법의 공통된 의미에 의한 성립의 차이점을 검토한다. 차이의 본질에는 바른 인식에 의한 성립으로서 후대 귀류파의 논리체 계에 중요한 軸이 된다. 바비베카는 주장 명제의 법을 지닌 유법의 일반성으로 성립하는 것 에 대해 특정한 속성으로서 인식하면 추론 체계와 추론된 것을 방해하 기 때문에 공통된 속성으로 논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법과 유법 의 단순한 일반성이 이해되는 것처럼 특정하지 않은 속성으로 파악하 는 것에 오류가 없다고 『반야등론』(Prajñāpradīpa)에서 말한다. 찬드라키르티는 『명구론』에서 유법이 공통된 의미로 성립하는 것에 대해 청변 자신이 세운 논리식 자체로서도 성립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데, 전도식과 비전도식의 모순으로 설명한다. 월칭의 관점은 티벳에서 의 귀류파라는 새로운 관점에 의해 특히 쫑카파가 인도 불교에서 자립 파로 분류된 스승들에 의해 다루어졌던 중관의 논의점들에 대해 자신 의 해석학적 프레임을 독자적으로 구축하는 근원이 되었다.

 

주제어 중관학파, 자립파, 귀류파, 청변, 월칭, 유법, 쫑카파

 

Ⅰ. 서론

 

대승 초기에 중관 사상은 나가르주나(Nāgārjuna, 이하 용수)와 그 의 제자인 아리야데바(Āryadeva)에 의해 꽃을 피웠다. 중관 철학이 용수에게서 기원하지만 중관학파의 성립은 청변 이전으로 소급되지 않는다.1)

중관 전통에서 중기인 바비베카(Bhāviveka, 500-570?, 이 하 청변)와 찬드라키르티(Candra- kīrti. 600-650?2), 이하 월칭)으 로 대표하는 자립논증파(Svātan -trika, rang rgyud pa, 이하 자립 파)와 귀류논증파(Prāsaṅgika, Thal ‘gyur ba, 이하 귀류파)의 분파 가 있었다.

여기에서 귀류파에 대한 관점은 티벳으로부터 재번역된 용어를 통해 후대에 재조명 되면서 역으로 월칭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역사적 측면에서 귀류파라는 용어가 중관의 인도 스승들에게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널리 퍼져 있는 관점이 다.3)

 

      1) 교설로서 madhyamaka(-darśana)/ 학파로서 명명과 추종자로서의 mādhyamika는 적어도 용수의 저작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음에 대해서 Seyfort Ruegg(1981), 1.

      2) 이들 시기는 Seyfor Ruegg(1981), 58, 71.

      3) Seyfort Ruegg(1981), 58; (2010), 160-161; Tauscher(2003), 207 티벳에서 용어 가 사용된 소개와 함께 티벳 후전기초기인 11-13세기에 각 학파의 스승들이 이들 구분에 대한 인지 여부에 대한 내용; Cabezón(2003), 292 에는 Svātantrika Prāsaṅgika용 어에 해당하는 티벳 용어인 Rang rgyud pa/ Thal ‘gyur ba가 티벳의 자료에서 나 타나지만 이에 해당하는 범어 용어인 Prāsaṅgika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인도 불교는 오랜 시간의 다양한 전통과 학파를 통하여 철학적으 로 복잡하게 발전되었다.

티벳의 논사들이 인도 불교의 교리체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특정한 기준과 관점으로 인도 불교의 맥락을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 정리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귀류파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중국 불교도 인도 불교를 수용하면서 자신들의 철학적 이해에 따른 교의 체계를 체제화 하였듯이 불가피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티벳 불교 또한 각 전통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귀류파에 대한 용어가 인도에서 발견되지 않고 티벳에서 보이지만 전적으로 티벳 논사에서 비롯되었는지 인도 스승의 가르침에 의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4)

월칭의 『명구론』(Prasannapadā)이 파찹 니마닥(Pa tshab Nyi ma grags, 1055?-1145?)5) 등에 의해 번역되면서 추론식을 사용한 청 변에 대한 비판이 티벳에서 알려지게 되었다. ‘중관학파에게 자립논증 (svatantrānumāna)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는 월칭의 해석적 방법론 이 주목받게 되었다.

이후 티벳에서는 청변과 산타락시타(Śāntarakṣita, 8세기) 계열을 자립파, 월칭 계열을 귀류파로 구분하게 되었고, 이것 은 자립파 계통의 전통적 중관사상과 새롭게 월칭의 중관사상에 대 한 대립적 관점으로 해석 되었다.

중관 사상의 전개에서 월칭의 저술과 시대적 상황과 관련하여 그의 위상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최선인지 명확하지 않다.

월칭의 중관 저 술에 대한 인도 주석들이 우리들에게 알려진 것이 없다.

이와는 대조적 으로 자립중관학파에 속하는 후대의 주석가에 속하는 인도의 스승들은 스리굽타(Śrīgupta, 7세기), 그의 제자인 즈냐나가르바(Jñānagarbha), 같은 계열의 산타락시타 등이 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중관사상 사에서 월칭은 거의 무시되거나 도외시 되면서 어떻게 청변과 그의 자립파 전통에만 특정한, 심지어 독보적인 의미로 중관 사상의 기준 이 되었는지 이에 관련된 부분들은 아직 연구가 필요하다.6)

 

    4) 인도에서 성립되었을 가능성과 또한 두 학파간의 구분이 정착되지 않았을 이유에 대한 자료와 관련해서는 요시미즈(2015), 185 n.3을 참조.

   5) 파찹의 스승인 자야난다(Jayānanda)는 월칭의 입중론(Madhyama- kāvatāra)에 대한 자세한 주석의 저자이며, 귀류파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자야난다가 월칭과 붓다팔리타 의 중관 귀류파의 용어로서 사용한 것 같지는 않다는 것과 관련한 내용은 Ruegg(2000), 20 n.38; (2010), 161. 그러나 티벳과 중앙 아시아에 11세기에 활동한 자야난다에 의 해 귀류논증의 용어에 해당하는 豫示는 보이고 있다고 같은 책 p.160에서 또한 말하 고 있다.

    6) Seyfort Ruegg(2010), 163; Nagashima(2016), 16에서 인도 불교에서 확실히 월칭은 무시되었거나 주목받지 못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인도 불교 중관의 전통적인 관점은 후대 주석 전통가들에 의해 자 립파로 분류된 중관학자들에 의한 논의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귀 류파로서 중관 사상을 설명하는 기준이 된 불호(Buddha -pālita, 5 세기)와 월칭에 의해 고찰된 것은 배제되었다.

따라서 본고는 방법론 으로 두 학파를 특징짓는 관점을 티벳 불교에서 해석하는 귀류파의 논리를 통해 살피고자 월칭의 『명구론』에서 유법7)의 성립에 상반된 관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중관 사상은 귀류파라는 후대 티벳에서의 관점이 알려지기 전에 자립파 기준에서 인식 논리학, 유가행에 의견을 수용하면서8) 중관의 뜻을 나타냈지만 새로운 해석학적 접근인 귀류파는 월칭의 관점이 중요해졌다.

그러므로 자립파와 귀류파를 구분하는 잘 알려진 추론식 에 대한 형식적 관점에서 유법에 대한 월칭의 해석이 어떻게 후대의 쫑카파 자신이 귀류파로 자처하며 독자적인 논리인식 체계와 해탈지 를 확립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지를 검토 한다.

특히 쫑카파는 『람림』 (Lam rim chen mo, LR)과 『선설심수』(Legs bshad snying po, LSNP)에서9) 아주 자세하게 이 내용을 설명하여 월칭의 의도를 해석 하면서 자신의 논리 체계를 보이고 있다.

 

    7) 추론식(宗ㆍ因ㆍ喩)에서 ‘소리(A)는 무상하다(B).’라고 주장할 때 A를 유법(dharmin, chos can)이라 한다. 즉 ‘종’이라는 용어 그 자체는 주장 명제의 주어(A)가 술어(B)에 해당하는 속성(법, dharma)을 소유하는 의미에서 ‘유법(A)’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그 러므로 ‘宗’이라는 용어는 주어인 ‘소리’가 지칭하는 대상으로 주장 명제에 한정된 어떠 한 특성을 소유하고 있는 ‘유법’인 것이다. 따라서 추론식에서의 종은 바로 ‘무상하다’는 법에 의해 특정된 ‘소리’ 즉 ‘무상한 소리’라는 유법인 것이다. 그리고 추론식을 주장하는 논자는 바로 이 유법이 법에 해당하는 한정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8) 후기 중관학파에 속하는 산타락시타와 까마랄쉴라는 유가행 중관파라고 명명되는 것 에서 알 수 있듯 세속에 있어서 외계의 존재 인정 유무와 관련하여 유가행의 이론을 수용하고 있다.

   9) LR 419a3-428b6; LSNP 162b5-165b2.

 

본고는 후대 귀류파를 대표 하는 쫑카파의 자세한 내용까지는 검토하지 않지만 인도 중관 사상 사에서 배제된 월칭의 관점에서 중요하게 논의된 유법의 역할에 우 선 집중하였다.

 

Ⅱ. 자립파와 귀류파 연구 배경

 

티벳 불교의 후전기초기(後傳期 初期10-13세기)에10) 귀류파에 대 한 새로운 관점으로 중관 철학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21세기에 들 어 티벳의 후전기초기 시대의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1차 자료를 접하게 되면서 중관 사상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11)

 

    10) 티벳의 시대 구분과 관련해서 Sefort Ruegg(2000), 1-72.

    11) 2002년 라싸의 대풍사에서 22,320여부에 해당하는 사본이 발견되었다. 이는 티벳 후전기시대의 산실되었던 쌍푸학파와 관련된 문헌으로서 사상체계를 규명하는 의미 를 지닌다. 사본들의 출판과 연구에 대하여 요시미즈(2015), 185 n.1 참조.

 

티벳에 최 초로 중관사상을 전한 산타락시타와 까말라쉴라(Kamalaśīla)는 논리 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일체법 무자성’의 교설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11세기에 파찹은 귀류파라는 중관학파를 구분하는 관점으로 삼아, 그 이전인 청변, 산타락시타, 까말라쉴라 등을 자립파에, 월칭을 귀류 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위치시켰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인도 전통에 서 월칭은 거의 배제된 것에 비하면 흥미로운 대목이다. 

국내에 자립파와 귀류파에 대한 기존의 연구 동향에 대해 알려진 바가 적다고 생각되어 보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립파와 귀류파 의 차별성에 대하여 이미 서구에서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왜 냐하면 현재에 우리가 알고 있는 청변과 월칭을 자립파와 귀류파로 분류되는 것에서 역사적 정합성 문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12)

그 리고 월칭에 대한 재해석과 관련하여 티벳의 다양한 전통의 관점에 서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인도 불교의 중관 철학에 다양한 해석이 있 었기 때문이다.

자립파와 귀류파의 차별에 대해 서구학자들의 연구를 모아서 발표 된 책13)에서 크게 인도에서 그리고 티벳의 논사 중심으로 소개한다.

먼저 인도 전통에서 자립논증과 귀류논증의 구분과 관련하여 가장 대표적인 추론식에 대한 것에는 청변의 관점으로서 용수의 『중론』을 추론식으로 변환하여 논증 상대에 제시해야 함을 주장하면서 불호의 중론 해석 방식을 비판한 내용이 있다.14)

한편 티벳의 분류화 작업 에 의해 산타락시타와 까말라쉴라(Kamalaśīla)를 자립 중관파로 분 류하는 것과 관련하여 쫑카파의 알려진 두 제자 가운데 한명인 케둡 제 렉팰상(mKhas grub dge legs dpal bzang, 1385-1438)의 귀 류파 견해를 통해 비교한 연구가 소개 된다.

이 연구에서는 자립과 귀류로 분류하는 것에 대하여 논쟁에서 대론의 양자에게 요구되는 유법과 추론식의 다른 요소들이 공통된 것이어야 하는 문제를 인도 고유의 이해가 아닌 후대의 귀류파 관점으로 두 학파를 구분한 역사 적 측면에서 시대 역행적 측면이라고 논의되고 있다.15)

 

    12) 국내에서는 월칭의 추론식 비판을 인도논리학과 비교한 함형석(2019)의 연구가 있지 만, 서구에서 연구되고 있는 역사적 정합성 문제인 티벳 불교에 의해 재고찰된 귀류 파라는 맥락에서 월칭을 해석하는 접근은 시도되지 않았기에 본고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13) Dreyfus & McClintock(2003).

   14) Ames(2003), 41-66.

   15) McClintock(2003), 125-172.

 

티벳 전통에서 자립파와 귀류파의 분류에 있어서 쫑카파의 관점이 하나의 기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월칭이 티벳에서 귀류파를 대표 하는 위대한 스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월칭에 대한 해석을 수용하는 측면과

  ⓑ월칭을 비판하는 관점과

  ⓒ월칭을 수용하지만 월 칭을 인정하는 방법론을 비판하는 측면에서 논사들의 견해를 통해 중관 사상이 발전하였다.

ⓐ쫑카파가 월칭의 중관 사상을 재해석하면서 논리학적 방식을 결 합하지만 자립파와는 세속에서 존재론적 차이를 통해 귀류파 우위의 체계를 확립하였다.16)

이후에 쫑카파를 비판하는 사캬파 논사들과 겔룩파의 제자들 사이에 월칭에 대한 해석으로17) 발전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한 고바야시의 연구에18) 따르면 사캬파(Sa skya pa)의 논 사 가운데 ⓑ롱뙨 샤키야 갤챈(Rong ston Shākya rgyal mtshan, 1367-1449)은 “쫑카파를 비판함과 동시에 월칭의 사상에 대한 비판 이 발견되지만, ⓒ롱뙨의 제자인 고람파(Go rams pa bSod nams seng ge, 1429-1489)와 샤캬촉댄(Shākya mchog ldan, 1428- 1507)은 그들의 스승에게서 영향을 받았지만 월칭을 비판하는 관점 을 그대로 물려받지는 않았다.

 

     16) Yoshimizu(2003), 257-288.

     17) Cabezón(2003), 289-316.

     18) 고바야시(Kobayashi 2005: 28-31)에 의하면 샤캬촉댄에 대해서 월칭을 전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월칭을 해석하는 쫑카파에 대한 방법론을 비판한다고 하는데 아래에(ⅲ,둘째) Tauscher는 자립파로서 짜파의 견해를 대표하는 인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이 티벳의 스승들에 대하여 어떤 관점에서 이해하는가에 따라 복잡하며 기준 이 단일하지 않다.

 

고바야시에 따르면 월칭의 귀류논증의 관점을 쫑카파와는 달리 재해석하여 자신들의 학파에 수용하였는데 이들 자립논증과 귀류논증을 융합하는 중관 철학을 구축하였다.

ⓐ에 해당하는 월칭의 학설을 수용하는 쫑카파에 대해서 가장 엄 격한 비판자였던 탁짱로짜와 쉐랍린첸(sTag tshang lo tsā ba Shes rab rin chen, 1405-?)는 귀류파를 자립파의 위에 위치했다.

 

이와 같이 복잡하게 전개되는 티벳에서 후전기초기 이후에 월칭이 부각됨으로 인해 티벳 각 전통에서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가 되었음 을 알 수 있다.

자립파와 귀류파의 구분에 있어서는 월칭에 대한 지지와 비판의 관점도 있고 지지하는 방법론에 동의하지 못하는 학파가 있고, 또한 현대 학자들의 보는 관점에 따라 동일하지 않은 상황이다.

세이포트 루엑은19) 자립파와 귀류파의 구별을 상호 배타적인 교리적 입장으로 고정적으로 변하지 않는 선택을 요구하는 이분법적 관점에 대해 비판 한다.

즉 중관 사상이 철학적, 수행적인 목적을 지향하는 점에서 단일 한 기준으로 이해하기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에 의해 복잡하게 해석되 어 전해졌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에 따른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세이포트 루엑은 자립파와 귀류파의 구분에 작용하는 기준에 대해 6가지 관점을 제시한다.20)

 

       19) Seyfort Ruegg(2010), 180.

       20) Seyfort Ruegg(2010), 165-173 

 

그는 6가지 관점을 통해 인도 티벳 중관 사상사에 어떤 맥락과 연결되는지를 설명하는 특징이 있다.

그가 제 시한 6가지 관점을 소개하면

   1) 세속의 언설 차원에서 자설에 기초 한 논증(svatantra)의 추론(anumāna)을 사용한 추론식에 대해 청변 과 월칭의 관점

   2) 승의의 관점에서(paramārthatas)라는 한정어와 관련하여 월칭은 청변의 이 한정어가 불필요하다는 내용

   3) 자립파 와 귀류파 모두가 세속 차원에서 외부대상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지 만, 외부대상의 외적 차원에서 존재 여부와 관련하여 유가행의 해석을 따르는 청변과 따르지 않는 월칭의 관점

  4) 세속제의 언어 관습적 측 면에서 존재론적, 인식논리적 대상의 존재 근거인 자상(svalakṣaṇa, rang gi mtshan nyid)의 성립 여부

   5) 후기 중관학파에 중요한 개 념 술어로서 ‘승의제에 부합하는(paramārthānukūla, don dam pa dang mthun pa)’ 이를 소유 복합어로 해석하는 『사택염』(Tarkajvālā)을 통해 궁극의 대상과 무분별지를 지닌 자의 대상을 해석하는 두 학파 의21) 관점이다.

 

    21) 청변의 관점에 대해서는 Nagashima(2016), 23-28; 귀류파의 해석과 관련하여 Seyfort Ruegg(2002), 251 n.182 참조.

 

즉 추론적이고 개념적인 언어 표현으로 어떻게 명상 수행자의 지식이 세속과 궁극적 진실을 조화롭게 말할 수 있는가 라 는 관점 6) 자립파에 의해 세속제의 대상이 전도(mithyā, log pa)와 비전도(tathya, yang dag pa)로 나뉜다.

이 주제는 기본적으로 인식 논리관점과 해탈지(rigs shes) 의미와 연결된다. 본고는 자립파와 귀류파를 구분하는 여러 관점 가운데 추론식에서 청변과 월칭의 유법에 대한 해석을 통해 이들의 차별성을 확인하고 자 한다.

유법의 해석에서 월칭의 존재론이 인식의 문제와 연결되며 이 관점이 티벳에 의한 후대의 귀류파에게 주는 의미를 살펴보자

 

Ⅲ. 청변의 유법의 공통적 의미로서 성립

 

자립파와 귀류파의 후대의 관점을 통해 월칭과 청변의 입장과 이 를 통해 월칭에 대한 귀류파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월칭의 사상 을 비판했던 12세기 최고의 상푸 승원의 대논리학자인 자립파로서 짜파 최끼생게(Phya pa Chos kyi seng ge, 1109-1169.

이하 짜 파)는 자신의 입장을 나타내기 위해 귀류파의 추론식에 대한 세 가지 관점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 [귀류와 실재론자 양자에게] 유법은 공통으로 인정되는 추론식의 근거로서 타당하지 않다

 ⓑ 주장인 宗이 성립되지 않기에 근거로서 타당하지 않다.

 ⓒ 논증인의 [삼상 rtags kyi tshul gsum22)가운데]  

宗法(phyogs chos)과 그리고 [두 종류의] 논증관계가 바른 인식에 의해 확정되는 것이 없는 이유로 타당하지 않다.23)

짜파에 의한 제시는 11세기에서 12세기 초에 티벳에서 귀류파가 자립파와의 차별성에 대해 주장하는 논점을 파악할 수 있다.

자립과 귀류를 구분한 추론식 사용에 유법의 공통된 해석과 관련된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 귀류파는 자립파와 타학파를 실재론자라고 하는데 언설로서 지시되는 사물의 존재를 인정하여 유법에 대해 일반적인 의미로 성립되는 것을 비판한다.

 ⓑ 논증 상대가 말하고자 하는 추론 식의 유법조차 확정되지 않기에 宗이 성립하지 않는 오류에 대한 관 점이다.

 ⓒ 앞의 내용에 해당하는 근거에는 바른 인식에 의한 것을 확정할 수 없다고 하는 귀류파의 비판이다.

“귀류파와 자립파 사이의 중요한 차별성은 일체법의 자성이 공하다고 주장하는 자립파에게 성 립된 자체의 [속성에 의해] 작용하는 논리적 주장(rtags, liṅga)과 바 른 인식의 수용과 부정에 있다”고24) 말하는 우빠로샐장춥예세(dBus pa blo gsal byang chub ye shes, 14세기)에 의해서도 유법과 바 른 인식의 문제는 차별성에 중요한 기준으로 파악되고 있다.

 

    22) tshul gsum: 추론식의 세 가지 측면으로서 phyogs chos (宗法, pakṣadharma): ‘연기를 가진 것은 산’이라는 주제, rjes khyab (同品遍, anvayavyāpti): ‘아궁이’라는 연기의 긍정적 실례, ldog khyab(異品遍, vyatirekavyāpti): ‘호수’에서는 연기가 배 제된 부정적 실례. 

    23) Shar gsum stong thun 65: dang po (=rang rgyud kyi sbyor ba khas mi len pa mi ‘thad pa) la gsum ste/ chos can la mthun snang myed pa rgyu mtshan du mi rung pa dang/ dam bca’ myed pa rgyu mtshan du mi rung pa dang/ rtags phyogs chos dang khyab pa tshad mas nges pa myed pa rgyu mtshan du mi rung ba’o//.

    24) grub pa’i mtha’ 101b5-6: de la ‘di gnyis kyi khyad par dngos ni chos thams cad rang gi ngo bos stong par smra ba gang zhig rang rgyud la grub pa’i dngos po stobs zhugs kyi rtags dang tshad ma khas len pa dang mi len pa nyid du gnas pa’i phyir gtan tshigs kyi dbye bar bzhed do//.

 

자립파와 귀류파를 구분하는 것은 청변의 추론식에 대해 월칭이 비판하는 측면인 대론에 임하는 양자 간의 공통된 유법과 논증인의 방식에 있다.

청변은 자신의 주장을 확립하기 위해 사용하는 유법에 있어 각 단어의 언어 관습적인 의미를 초월하여 특정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추론은 공상(sāmānyalakṣaṇa)으로 행해져야 하는 당시의 논리학파에 따라 추론식을 작성한 청변에게 공상인 일반적 의미가 아니라 특정한 속성이라면 추론과 추론에 의한 증명은 가능하지 않 다.

먼저 청변의 논리식을 검토하기 위해 『중론』 1.1 게송과 이 게송 을 추론식으로 변환한 내용을 살펴보자.

사물과 현상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타자로부터, 자신과 타자의 양자 로부터,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은 어떤 것도 어디에도 결코 존재하 지 않는다.25)

청변은 『중론』 1,1 게송을 아래와 같은 논리식으로 변환하여 설한다. [宗]: 진제의 관점에서 內入處는 자기 자신에게서 생겨나지 않는다.

[因]: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喩]: 정신(caitanya)과 같이26) 추론식의 적용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추론식에 사용된 추론 ‘svatantraanumāna’에 의해 증명하고자 하는 것에 이르기 위해 대론자간의 공 통되게 인정되는 유법의 성립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월칭이 비판한 다.

 

    25) na svato nāpi parato na dvābhyāṃ nāpy ahetutaḥ/ utpannā jātu vidyante bhāvāḥ kva cana ke cana∥ MMK1,1.

    26) PP 49a2-3: ‘dir sbyor ba’i tshig tu ‘gyur ba ni don dam par nang gi skye mched rnams bdag las skye ba med par nges te/ yod pa’i phyir dper na shes pa yod pa nyid bzhin no//.

 

예를 들어 ‘소리가 무상하다’는 논증을 할 때 대론의 양자가 의미 하는 소리의 속성이 같지 않다면 논증이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그 러므로 청변은 대론의 양자가 논증하기 위해서 추론식의 일반적인 의미를 유법으로 취하여야 오류가 없다고 주장한다. 

청변이 추론식에서 일반적인 의미로서 증명하는 것에 오류가 없다 고 말하는 내용을 『반야등론』(Prajñāpradīpa)을27) 통해 살필 수 있 는데, 이 내용은 『중론』18장의 자신과 법에 대한 고찰의 내용 가운 데 첫 게송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중론』18.128)에 대한 청변의 추론 식 변환은 아래와 같다.

 

  [宗]: 진제의 관점에서 자기(ātman)는 색등의 온과 다른 것이 없다.

  [因]: 온의 상(mtshan nyid)이 아니기 때문에

  [喩]: 석녀의 아들 처럼29)

 

『중론』에서 자기(ātmā)라고 하는 것이 생멸하는 오온도 아니고 그 렇다고 오온과 별개여서 오온의 특징을 떠나지도 않는다는 내용으로 서 전자인 생멸하는 오온의 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속제적인 것이 고, 후자인 오온의 자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진제의 측면이라고 파 악하는 청변은 진제의 관점에서 석녀의 아들이라는 언어에 의한 가 립으로 존재하는 자기는 온의 상에 의한 것과 같다는 해석으로 추론 식을 세웠다.

여기에서 자기에 대한 일반적 의미에서 성립이 가능하 다는 것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언설의 관점에서 일반적으로(spyir) 승인되는 자기(āman)는 [언어 에 의해] 통용되지 않는(ma grags pa, prasiddha) 특수성(khyad par, viśeṣa)을 배제하기 때문에 오류가 없다.”30)

 

     27) 범본은 전해지지 않고 티벳본만 전해지고 있다.

    28) MK 18.1: ātmā skandhā yadi bhaved udayavyayabhāg bhavet/ skandhebhyo ’nyo yadi bhaved bhaved askandhalakṣaṇaḥ// 만일 자기(ātman)가 蘊들과 같다고 한다면 그것은 생겨나거나 소멸하는 것에 관여하 게 될 것이다. 만일 五蘊과 별개의 것이라고 한다면 오온의 특징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29) PP 179b5: ‘dir rjes su dpag pa ni don dam par bdag gzugs la sogs pa’i phung po las gzhan pa med de/ phung po’i mtshan nyid ma yin pa’i phyir dper na mo gsham gyi bu bzhin no//.

    30) PP 180b5: de’i phyir tha snyad du bdag spyir khas blangs pa’i khyad par ma grags pa sel ba’i phyir sgron med do/ /

 

청변의 주장을 통합하면 언어 관습적인 측면에서 특정하지 않은 자기에 대한 인정은 오류가 아니며, 진제의 측면에서 자기는 온의 상 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청변이 제시하고 있는 추론식인 진제 의 측면에서 자기(ātma)는 유법에 해당하고 蘊과 다른 것이 없는 속 성을 지닌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아가 온의 상이 아니 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변은 진제의 측면을 온의 상이 마치 석녀의 아들이라고 하는 비실재인 가립의 존재라고 말하지만 대론의 상대가 중관파가 전제하는 속제와 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오류인 추론식 이다. 귀

류파가 다른 학파들과 공유할 수 없는 사물이 가진 ‘속성’을 문 제시 하는 것은 ‘실재’를 인정하는 것과 연결된다. 언어 관습에 의해 지칭되는 가명이라고 본 세간의 사물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기 때문이다.

청변의 논증식에서 진제의 측면이라는 한정어를 제시 하고서 언설의 측면에서는 일반적인 의미로 성립한다는 것에 오류가 없다는 논리의 합리성에 월칭은 문제를 제기한다.

청변이 언어 관습의 속제에서 눈 등이 존재하기에 잘못이 없으며 진제의 관점에서 눈 등의 내입처가 생기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대 론 양자 간에 중관파가 가명으로 생각하는 것을 동일하게 여기지 않 기에 청변이 세운 추론식의 문제를 월칭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위와 같이]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은 눈 등을 실재하는(dravya) 것으로서만 인정하지 가명(prajñapti)으로서 존재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론자에게는 여전히 [유법을 논증에 참여하는 양자가 공통되게 인정할] 근거가 성립하지 않는다 는 宗의 오류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합리적이지 않다.31)

 

    31) PPMV 28.1-3: ucyamāne ‘pi parair dravyasatām eva cakṣurādīnām abhyu- pagamāt prajñaptisatām anabhyupagamāt parato ’siddhādhāraḥ pakṣadoṣaḥ syād iti na yuktam etat// 드용에 의거한 수정. PPMV 28.1: vastusatāṃ; Tib: rdzas su yod pa nyid du.

 

월칭은 유법의 일반성을 비판하기 위해 『명구론』에서 청변이 세운 추론식의 일반적 의미에서 성립해야 대론자와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 는 청변의 대답을 가정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편 [청변은] 다음과 같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소리 는 무상하다”라는 [주장의] 법(무상한 성질)과 유법(소리)에서 일반적 인 성질(sāmānyam)을 인식하는 것이지 [그것들의] 특성(viśeṣa)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법과 유법의] 특성으로서 취한다 면, 추론과 추론 대상(anumeya)의 관점에서 언설 작용(vyavahāra) 은 불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면, 만약 사대로 구성된 소리를 유법으 로 취하면 타자(승론파)에게 성립하지 않고, 허공의 속성을 지니는 것으로서 소리를 취한다면 불교도 자신들의 입장에서 성립하지 않는 다. … 그러므로 유법과 법의 일반적인 의미로만 취해진 것처럼, 이 와 같은 경우 또한 특성을 배제한32) 유법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33)

 

      32) 추론식의 유법인 宗으로서 ‘특정이 배제된(utsṛṣṭaviśeṣaṇa)’ 이 개념과 관련하여 학 파간의 다른 철학적 관점이 존재하는데, 법칭(Dharmakīrti)에게 상응하는 용어인 ‘kevaladharmin’에 대한 소개는 Seyfort Ruegg(2002), 52 n.56을 참조.

     33) PPMV 28.4-29.7: atha syāt, yathānityaḥ śabda iti dharmadharmiṇoḥ sāmānyam eva gṛhyate na viśeṣaḥ/ viśeṣagrahaṇe hi saty anumānānumeyavyavahārābhāvaḥ syāt/ tathā hi yadi cārturmahābhautikaḥ śabdo gṛhyate sa parasyāsiddhaḥ/ athākāśaguṇo gṛhyate sa bauddhasya svato ’siddhaḥ/ … tasmād yathātra dharmadharmisāmānyamātram eva gṛhyate / evam ihāpi dharmimātram utsṛṣṭaviśeṣaṇam grahīṣyata iti cet/ 밑줄 부분은 드용의 노트 에 의거하여 수정. Cf. PPMV 28.4: dharmadharmisāmānyam.

 

청변에 의한 유법의 일반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것은 월칭이 청변의 주장에 의존하여 내용을 상정한 것이지 청변 자신의 말은 아 니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월칭이 강조하고자 하는 중관귀류 파의 논리를 살펴보자.

 

 

Ⅳ. 월칭의 유법 불성립

 

청변이 유법의 일반적인 의미로 성립하는 것에 대해 오류가 없다 고 하지만 월칭은 『명구론』에서 비판하는데

  첫째, 청변 자신의 논리 를 통해서도 이것은 성립하지 않고

 둘째, 성립하지 않는 이유를 전도 와 비전도에 대한 해석으로 말하며

 셋째, 월칭이 세속의 인식 대상을 부정하는 근거를 『회쟁론』에 근거하여 말한다.

여기서 월칭의 관점이 중요해진 것은 후대의 티벳 불교 귀류파의 측면에서 재고찰 된 맥락 임을 기억해야 한다.

첫째 청변의 모순 청변 스스로 주장이 지닌 모순을 인정하게 되는 논리에 대해 월칭 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렇지 않다.[즉, 특성이 한정되지 않은 일반적인 법 또는 유법은 청변 자신에게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청변의 추론 식에 추론의 근거 문제]에서 생기의 부정(utpāda pratiṣedha)이 소 립법(sādhyadharma)으로 의도된 바로 그 때에34) 전도(viparyāsa) 에 의해서만 자기의 존재성을 얻고 있는 그것(소립법)의 소의인 유 법의 파괴는 그(청변) 자신에 의해 승인된다.

즉 전도와 비전도는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35)

 

   34) 이 부분 ‘tadaiva(de’i tshe kho nar)’에 해당하는 티벳본에서 북경판(10b3)에서는 ‘de’가 빠져 범본에 일치하지만. 데르게판(9b3)은 ‘de’i tshe de kho nar’로 되어 있 는데 쫑카파의 람림(LR 420a5)에서는 데르게판의 내용과 같다. 이 부분에 대한 의견 과 관련하여 Sefort Ruegg(2002: 53 n.57)이 있다. 마츠모토(2008: 352, 각주11) 와 Yoshimizu(2003: 263)는 쫑카파가 의도적으로 월칭의 관점을 재해석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월칭의 근본적 맥락은 유지하면서 설명을 하였다고 보는 Yotsuya (1999: 166-170)의 관점에 본인은 동의한다.

    35) PPMV 29.7-30.3: na caitad evaṃ/ yasmād yadaivotpādapratiṣedho ’tra sādhyadharmo ’bhipretaḥ, tadaiva dharmiṇas tadādhārasya viparyāsamātrāsāditātmabhāvasya pracyutiḥ svayam evānenāṇgīkṛtā/ bhinnau hi viparyāsāviparyāsau //.

 

유법의 일반적인 의미를 취하여 추론식으로 주장하는 것에 오류가 없다고 하는 청변의 주장에서 월칭이 먼저 청변 스스로에 의해 모순 이 승인된다고 보는 관점은 무엇인가?

청변이 세운 추론식 자체의 오류를 월칭이 지적하는데, 유법의 파괴는 불성립이라는 의미로 청변 의 주장에 따르게 되면 전도에 의해서만 자기의 존재성을 얻는다는 사실이 유법의 파괴라고 말한다

. 즉 전도된 것은 사물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 청변이 진제의 관점에서 내입처 등이 자신으로부터 발생 하지 않는 주제를 증명하고자 하는 소립법으로 전제한다면 자신으로 부터 발생하지 않는 속성을 지닌 내입처인 안 등에 의한 비전도식의 대상이므로 전도된 대상은 승의의 대상이 아닌 세속의 대상이 된다.

청변이 진제의 관점이라고 한정어를 두었기 때문에 세속에서의 유 법인 법의 속성을 지닌 사물은 고유의 본성이 아닌 만들어진 것이라 는 뜻을 내포한다.

청변이 진제의 관점에서 안 등의 내입처가 자신으 로부터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비전도식인 진제의 차원 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것이면, 전도식에 의한 속제의 차원에서는 발 생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비전도식의 대상과 전도식의 대상이 공존 하지 않기에 궁극의 관점에서 전도식에 의한 유법이 성립하지 않는 청변 자신의 논리가 된다고 월칭은 주장한다.

쫑카파는 『람림』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면서36) 청변 자신의 논리에 의해 세속에서의 유법 불성립을 승인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진제 의 관점에서 내입처는 자신으로부터 발생하지 않는 주장에서 안 등 의 유법이 성립하는 소립법으로 설정할 때, [이와 같이] 설정한다면 진여의 측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그것은 설정과 모순되기 때문이라 고 설명한다.37)

   

    36) LR 421b3-422a3 내용에서 쫑카파는 월칭의 이 부분에 대해 중요한 부분이라고 소 개하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37) LR 421b3: khas blangs lugs ni don dam par skye ba bkag pa de chos can de dag la bsgrub bya’i chos su brten pa de’i tshe ste/ de’i phyir te de kho nar grub na de brten pa ‘gal ba’i phyir ro/ / .

 

여기에서 자립파는 세속에서의 유법 성립은 인정해 야 하는 것이지만 귀류파에서 이것은 전도식에 의한 유법 불성립이 라고 본 차이가 있다.

  둘째, 전도와 비전도에 대한 해석 시간 순서상 역으로 짜파의 중관파에 대한 이해를 통해 11세기 귀 류파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월칭이 주장하 는 대론 양자 간의 일반적 의미에서 유법을 부정하는 방식에 대해 자립파인 짜파의 관점은 티벳 후전기초기에 뛰어난 논사로서 귀류파 를 비판하는 관점에서 이렇게 말한다.

실재론자에 의해 [유지되는] 사람의 모습도 세간적인 인식의 대상이 지만, 결코 어떤 [인식 대상도] 부정하는 중관학파에 의해 사람이 보여지는 것이 없기에 여기에서 귀류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합리적 이지 않다. 자신[의 주장]에 의해 사람이 보이지도 않는데 귀류논증 이 적용된다면 자신에게 논증하고자 하는 근거가 드러나지 않음에 도 논증을 주장하는 것이다.38)

 

    38) Shar gsum stong thun 66.2-4: dngos por smra ba’i gang zag snang pa nyid ‘jig kyang rten pa’i blo’i yul yin gyi ci’ang khas mi len pa’i dbu ma pas gang zag mthong pa myed pas de la thal ba’i ngag ‘god pa mi ’thad do/ / rang gis gang zag ma mthong yang thal ba ‘god na rang la gzhi mi snang yang rtags ’dod do//.

 

월칭의 관점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처럼 귀류파의 주장이 눈앞의 사물을 전적으로 부정했는지 의문이다.

여기에서 무엇을 부정하고자 하였는지 살펴보기 전에 자립파의 입장에서 존재론적 관점에서 비판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유법의 공통성에 대한 설명에서 짜파의 입 장을 대표하는 샤캬촉댄(Shākya mchog ldan) 역시 중관의 학설에 따른다 할지라도 세속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심각하게 잘못된 개념이라는 존재론적 의미와 연결하여 비판한다.39)

그러나 샤캬촉댄은 『룽릭갸초』(Lung rigs rgya mtsho)에서 “요약하면 궁극 적인 측면에서 부정되어야 하는 대상에 대한 부정과 소립에 대한 논 증인 양자는 사실 확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월칭은 중관학파가 지식 적, 언어적 활동(vyavaharati)을 할 때 논증되어야 하는 주제의 논거 는 인정하지 않지만, 부정되어야 할 대상을 부정하는 것인 단지 언어 관습적 표현이 사용될 뿐”이라는 내용은40) 전적으로 월칭의 관점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대상이 언어 관습이라고 하는 것과 궁 극적 부정의 대상과 논증인이 확정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한 것은 분 명 융합적 관점으로 이해된다.

월칭이 승의적 차원은 물론이고 세속에서도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전도와 비전도에 의한 인식 대상으로 설명한다. 월칭의 전도 와 비전도에 차이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명구론』에서 이어지는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다.

전도와 비전도는 다르다.

따라서 [허공의] 머리카락 등이 비문증에 걸린 사람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것처럼 착각 때문 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될 때, 어떻게 존재하 는 대상의 티끌조차 인식하겠는가?

그리고 [허공의] 머리카락 등이 비문증에서 벗어난 사람에 의해서 [비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는] 것 처럼 비존재인 것을 증익하지 않을 때, 어떻게 비존재하는 대상의 티끌조차 인식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세속제가 되겠는가?41)

 

     39) Tauscher(2003), 221-2.

    40) Lung rigs rgya mtsho, 14. 524,7-525,1: mdor na don dam par ni dgag bya ‘gog pa dang/ bsgrub bya sgrub pa gnyis ka khas mi len mod/ dbu ma pa’i shes brjod kyi tha snyad ‘dogs pa’i tshe bsgrub bya sgrub pa khas mi len gyi dgag bya ‘gog pa’i tha snyad tsam zhig ni byed par zla bas bzhed pa yin te/ .

    41) PPMV 30.2-5: bhinnau hi viparyāsāviparyāsau/ tad yadā viparyāsenāsat sattvena gṛhyate taimirikeṇeva keśādi, tadā kutaḥ sadbhūtapadārtha-leśasyāpy upalabdhiḥ/ yadā cāviparyāsād abhūtaṃ nādhyāropitaṃ vitaimirikeṇeva keśādi, tadā kuto ’sadbhūtapadārthaleśasyāpy upalabdhir yena tadānīṃ saṃvṛtiḥ syāt/

 

여기에서 이제의 설명을 자세히 하는 것은 주제의 범위를 넘는 것 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월칭이 세속에 대해서42) 언어 관습으로 말 한 내용으로 사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42) “혹은 속제는 관습이다. 세간의 언어습관이라는 의미다.” atha vā saṃvṛtiḥ saṃketo lokavyavahāra ity arthaḥ/ / PPMV 492: 11-12.

 

속제는 인위적 이거나 의존하여 존재하기에 사물 자체의 측면에서 존재하지 않는 방식이다.

눈병이라고 표현한 사물을 참된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덧 씌워진 착각으로 인식한다면, 그와 같이 착각으로 인식한 사물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언어에 의해 가립되는 표상이 실재일 수 없다 는 설명이라고 생각된다.

중관에서 언어에 의한 희론을 소멸하는 것 이 무자성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즉 바른 인식에 대한 인정 방법이 문제의 핵심이다.

월칭의 이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청변이 해석한 일반적 의미로서 성립하는 유법을 부정하였기 때문에 세속의 사물을 부정하여 논리적 근거도 없다는 비판을 받게 되지만, 월칭은 바른 인식에 의한 현량의 대상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셋째. 전도에 의해서만 존재성을 얻는 유법에 대한 차이 월칭은 세속의 사물을 부정하는 이유를 용수의 『회쟁론』(Vigrahavyāvartanī)에 근거하여 현량의 해석으로 답하고 있다.

『회쟁론』 29 게송에서의 어떠한 주장도 없다고 말한 이유를 설명하는 30게송의 현량의 대상을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용수의 사상을 계승하여 월 칭 자신의 논리적 근거로 삼고 있는 『명구론』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스승(용수)께서 이렇게 설하셨다.

“만일 내가 현량 등(바른 인식)에 의해 어떤 것을 인식한다면, 긍정 하거나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기 때문에 나에게 비난할 것이 없다.” 이와 같이 전도와 비전도는 다르다.

그래서 주의 깊은 이들이 (viduṣām) 비전도의 상태에 있을 때 전도된 인식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논증에서] 유법인 눈이 세속의 성질이 된다는 말인 가?

그러므로 宗의 근거(즉 유법)가 확립되지 않았다는 잘못이나 증 인이 [유법에] 자리하지 않는다는 잘못이 사라지지 않으므로 이것은 결코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43)

 

월칭은 자립파가 말하는 것처럼 세속의 사물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와 비전도라는 인식의 문제에 방점을 두고 있다. 중 관 철학에서 세속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용수가 말하 는 현량에 의해서도 지각하지 않는 것이라는 맥락에서 세속의 사물 을 인정하지 않는 점에 월칭은 주목하였다.

그러나 『중론』(15.8)을44) 통해서도 나타나는 사물의 본성인 사물 자체의 측면에서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43) PPMV 6-11: ata evoktam ācāryapādaiḥ/ yadi kiṃcid upalabheyaṃ pravartayeyaṃ nivartayeyaṃ vā/ pratyakṣādibhir arthais tadabhāvān me ’nupālambhaḥ// iti yataś caiva bhinnau viparyāsāviparyāsau ato viduṣām aviparyāsāvasthāyāṃ viparītasyāsambhavāt kutaḥ sāṃvṛtaṃ cakṣur yasya dharmitvaṃ syād iti na vyāvartate ’siddhādhāraḥ pakṣadoṣa āśrayāsiddho vā hetudoṣa ity aparihāra evāyam//.

     44) MK15.8: yady astitvaṃ prakṛtyā syān na bhaved asya nāstitā/ prakṛter anyathābhāvo na hi jātūpapadyate// 만일 무엇인가가 본성으로 존재[有]한다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일[無]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과 현상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본성이 다른 상태로 존 재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월칭이 세속에서 존재를 부정 하는 것이 자립파의 입장에서 말하듯 보이는 사물을 부정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중관에서 고유한 성질인 본성으로 존재하는 것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립된 사물의 존재를 실재한다고 인식하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청변이 추론식의 성립을 위해 양자에게 공통적인 인식 즉 언설의 일반적 의미에 의하여 대론에 참여해야하는 것인 반면에 월칭은 추 론식에 사용되는 유법의 일반적 의미에 의한 성립을 비판하면서 후 대의 자립파에게 세속의 사물을 부정한다고 해석되었다.

이와 관련하 여 귀류파인 쫑카파에게45) ‘존재하지 않는 것이란 자상의 측면에서 성립하지 않는 것46) 이라고 보았다.

쫑카파는 월칭이 세속의 사물을 부정한 것이 아니지만 존재론적 관점에서 비판받는 부분에 대해 자 상의 관점이라는 독자적인 체계를 세우면서 월칭의 의도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그러므로 논증상대에게 어떠한 방식의 바른 인식에 의해 유법이 성 립된 그 바른 인식은 대론자(귀류파)에게 인정될 수 없으니, 어떤 법에도 자상의 측면에서 성립한 사물의 자성은 언설에 의한 일상에 서 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성립시키는 바른 인식이 존 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스승(월칭)께서 생각하고서 자립파를 부정 한 것이다.47)

 

    45) Yoshimizu(2003: 267)는 이 문제에 대해 월칭에 의한 유법의 공통적 성립에 중요 한 기준은 유법의 궁극적인 존재 또는 단지 세속적인 존재 여부에 의한 존재론적 질 문으로 해석한다. 여기에서 쫑카파는 유법의 공통적 성립에 중요한 기준은 유법의 존 재를 인식에 현현하는 것으로서 즉 자상으로서 성립 여부의 존재론적 질문이라고 해 석한다. 이것은 유법의 해석에 요시미즈가 존재론적 측면을 강조하지만 이 문제는 쫑 카파가 승의와 세속적인 실재 사이에 차이를 전제하는 월칭의 기준에 자신의 기준인 ‘자상의 측면에서 성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월칭의 기본적인 중관 해석을 벗어 났다고 이해되지 않으며 결론적으로 바른 인식을 하지 못하는 무명에 기인한(LR 421b3)다는 논리인식과 해탈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46) LR 422b1-2: yod pa ma yin pa ni rang gi mtshan nyid kyis ma grub pa’o//.

    47) LR 421a4-5: de ltar na phyi rgol la tshad ma ji ‘dra ba zhig gis chos can grub pa’i tshad ma de ni snga rgol la mi rung ste chos gang la’ng rang gi mtshan nyid kyis grub pa’i ngo bo tha snyad du’ng med pas de sgrub byed kyi tshad ma med pa’i phyir ro snyam du slob dpon ‘dis dgongs nas rang rgyud ’gog pa yin no/ /

 

자립파와 귀류파를 구분하는 추론식에 유법에 대한 관점이 세속에 대한 바른 인식을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근본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였으며, 나아가 세속에 일상적 사물을 바라보는 불교도에게 가립된 존재가 아닌 사물 자체의 그대로를 보는 실재를 알게 하고자 월칭이 강조한 것을 쫑카파는 계승하고 있다.

 

Ⅴ. 결론

 

중관 철학의 전개에서 티벳의 후전기초기(11세기)는 전환점이 되 었는데, 파찹이 귀류파(Thal ‘gyur ba)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서 새 로운 관점에서 인도 불교를 분류하였기 때문이다.

자립파와 귀류파라 는 구분에 의해 인도 불교의 주류를 이루었던 청변과 그와 같은 계 열의 인도의 스승들(즈냐냐가르바, 산타락시타)은 자립파로 자리하고 월칭은 귀류파를 대표한다.

그러나 티벳에서 귀류파에 월칭이 대표적 스승으로 자리하기 이전 인도에서 시대적 상황은 명확하지 않다.

다 시 말해서 인도 불교에서 중관의 세속제에 전도(mithyā)와 비전도 (tathya)식에 의한 구분, 개념과 언설을 초월한 승의제의 특징 등 중 관 철학이 후대에 자립파로 분류된 스승들의 관점에서 전해졌지만 불호와 월칭의 견해는 반영되지 않았다.

자립파와 귀류파를 구분하는 것에서 추론식의 사용 여부라는 하나 의 기준만으로 이해하기에는 중관 사상의 발전이 역사적, 철학적으로 복잡하게 전개 되었다.

유법의 성립 문제는 청변과 월칭의 명확한 대 립적 측면으로 이제론, 존재론, 논리인식의 바른 인식에 대한 관점으 로 연결된다.

월칭의 유법에 대한 관점이 티벳의 자립파 논사들에게 서 존재론적으로 비판받는데, 후대의 귀류파인 쫑카파는 비판에 대해 바른 인식의 관점을 통해 자신들의 논리 체계를 확립하게 된다.

즉 후대의 귀류파 관점에 의해 월칭은 재고찰된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립파와 귀류파의 분파는 청변이 추론식을 사용한 것에 대한 월 칭의 비판으로부터 기원한다고 알려지지만 이것은 단순한 형식적 차 이를 넘어 학파의 철학적 차이를 의미한다.

청변은 주장 명제의 속성 을 지닌 유법의 일반성으로 성립하는 것은 당시의 추론의 대상이 공 상으로서 특정한 속성으로서 인식하면 추론 체계와 추론된 것을 방 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법과 유법의 단순한 일반성이 이 해되는 것처럼 특성이 제거된 특정하지 않은 속성만 파악하는 것은 오류가 없다고 『반야등론』에서 말한다.

추론식에서 유법의 일반적 의미로서 성립하는 청변의 주장에 대비 하여 월칭은 유법의 일반적 의미로 세속에서 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고 말함으로서 두 학파의 논리가 다르다.

그는 또한 자신의 주장을 용수의 『회쟁론』에 현량의 대상이 없다고 하는 부분에 근거하여 정 당성을 확보한다.

직접지각의 대상을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을 것이 라는(『회쟁론』30송) 말은 우리가 직접지각의 대상에 대해 바른인식 으로 성립하였는가를 전제한다.

중관파에게 유법은 타학파의 바른 인 식의 방법을 인정하거나 확인할 수 없는 사물의 속성이다.

월칭이 유 법의 일반적 의미에 의한 불성립을 말하는 이유는 세속에서의 지각 대상이 전도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도식의 대상이 궁극의 대상과 함께 공존하지 않는 배중률에 따른 월칭의 논리적 방 법론이다.

즉 세속에 대상을 부정한 것은 비전도식의 대상이 아니라 는 뜻을 의미하지만 후대 티벳에서 월칭은 세속의 존재를 부정한 귀 류논증의 근거마저도 부정하였다고 비판받는다.

그러나 이 비판에는 인식이 곧 존재라는 이해와 바른 인식이 곧 존재라는 이해의 차이를 간과한 것이다.

 

참고문헌

1. 약호 및 원전류

D sDe dge edition P Beijing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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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f the Distiction between Madhyamaka in Indo-Tibetan Buddhism - Focusing on the Svātantrika and Prāsaṅgika Schools -

Park, Kyeongmi (Ven. Hye Hyang) Acarya Education The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This paper explores the philosophical differences between the Svātantrika and Prāsaṅgika schools of Madhyamaka, specifically examining their contrasting approaches to employing logical reasoning (rtags) to establish the generality (sāmānya) of the qualifier-property (dharma) to be proven and the qualificand (dharmin) in the autonomous inference (svatantra anumāna). Candrakīrti’s critique of autonomous inference, which establishes general characteristics, contrasts with Bhāviveka’s support of it, as the discussion shows their differences in relation to valid means of cognition (tshad ma, pramāṇa), highlighting not just a stylistic difference. The distinction between Svātantrika and Prāsaṅgika within the Madhyamaka school of philosophy, which originated during the “later propagation of the doctrine” ( phyi dar) in Tibet, is a significant development attributed to the followers of Jayānanda’s disciple Pa tshab nyi ma grags (b. 1055) or his contemporaries. This distinction does not appear in Indian primary sources and represents a retroactive framework applied to Indo-Tibetan Madhyamaka tradition, with Candrakīrti central to the later tradition. Bhāviveka, in his Prajñāpradīpa, argues that inference should focus on the unqualified generalit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a subject and its property to maintain logical consistency. Candrakīrti, in the PPMV, differentiates between ultimate and conventional existents: the former is the object of unmistaken cognition, and the latter of mistaken cognition. He critiques Bhāviveka by stating that the logical reasoning subject (dharmin) of an unqualified general character (sāmānya) is not established, as it exists only through mistaken cognition. For Candrakīrti, valid means of cognition (tshad ma) perceive ultimate existents through nonconceptual direct perception (pratyakṣa), while conventional existents are perceived erroneously, emphasizing epistemological over ontological status. In the context mentioned, Tsong kha pa, who identified himself as a follower of Candrakīrti and a Prāsaṅgika, incorporated Dharmakīrti’s logico-epistemological insights into his Madhyamaka philosophy, extensively drawing in Candrakīrti’s interpretations of Nāgārjuna’s work.

 

Keywords Svātantrika, Prāsaṅgika, Bhāviveka, Candrakīrti, Tsong kha pa, Madhyamaka, subject/locus (dharmin, chos can)

 

『한국불교학』 제112집(2024.11)

논문투고일: 2024. 10. 12. 심사완료일: 2024. 11. 4. 게재확정일: 2024. 11. 6.

01_한불학112집_(교학)박경미(009-03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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