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Ⅰ. 머리말
Ⅱ.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도상 분석
Ⅲ.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주역 8괘상 및 12벽괘상 분석
Ⅳ. 용문사 목각설법상과 수경신(守庚 申) 신앙
Ⅴ. 맺음말
<국문요약>
본 논문은 1684년에 조성된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의 도상과 본존 아미타여래상 광배에 표현된 주역의 8괘상과 목각설법상 외곽틀에 새겨진 12 벽괘상을 분석한 것이다.
용문사 목각설법상을 조성하는데 텍스트 역할을 한 것으로 예념미타도량참법을 주목했다.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8대보살의 명칭은 용문사 승려 명연이 1704년에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내용을 발췌해서 만든 염불보권문과 일치하고, 참법(懺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각설법상 본존불 광배의 주역 8괘상과 외곽틀의 12벽괘상은 당나라 이통 현의 신화엄경론 사상에 입각해 분석했다.
아미타여래상 광배의 8괘상은 팔대 보살을 상징하는 것으로, 외곽틀의 12벽괘상은 화엄의 수행 단계로 해석된다.
기존 연구에서는 12벽괘상의 배치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목각설법상 외곽틀의 12벽괘상 가운데 절반의 수에 해당하는 하단의 괘상들이 중심점에서 회전하면서 보는 시각이 아니라, 외부 고정점에서 보는 형태로 상하 가 반전되어 표현된 것으로 인한 해석의 오류로 보인다.
17세기 예천 용문사를 중심으로 승려와 유학자들이 교류했고, 당시에 유행하 고 있던 도교 풍습인 수경신(守庚申)이 행해졌던 장소인 용문사에 목각설법상과 삼존상이 봉안되었다.
이는 목각설법상 외곽틀의 12벽괘상이 당시 불교·유교· 도교가 습합된 신앙 형태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조선후기 불교미술사 및 불교사 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주제어: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8괘, 12벽괘, 수경신, 예념미타도량참법, 소영 신경
Ⅰ. 머리말
예천 용문사는 남북국시대 승려 두운(杜雲)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 으며, 고려 태조가 936년 칙명으로 중건했고, 1165년에 승려 조응(祖膺)이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설법상의 도상과 주역 8괘상 및 12벽괘상의 불교적 해석/ 유근자 307 크게 중창했다.
1171년에는 태자의 태(胎)를 보관한 뒤 창기사(昌期寺)로 사찰명을 변경했다.
조선 전기에도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세조 는 1457년에 잡역을 없애준다는 교지(敎旨)를 하사했고, 1478년에는 성종 의 계비인 폐비 윤씨(1445-1482)의 태실이 설치되었다.1)
예천 용문사는 조선 후기에도 왕실과 관련을 맺었는데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1555-1613)의 원당이 설치되었다.2)
1683년에는 용문사 목각아미타여 래설법상(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이하 목각설법상으로 약칭)과 목조아미 타삼존상을 봉안하기 위해 금당(金堂)을 지었고, 1684년에는 축수전(祝壽 殿)을 건립했다.
용문사에 축수전이 설치된 데에는 용문사가 고려 후기 중 창 이후 왕실의 태실로, 또는 왕실의 원당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3)
18세기에도 용문사는 왕실의 태실로 기능했다.
즉 1783년에 정조와 의빈 성씨 소생의 문효 세자(1782-1786) 태실이 용문사에 설치된 것이다.4)
현재 용문사 경내에는 문효 세자의 태실 비인 ‘아기씨태실비’가 현존하고 있다.5)
1) 용문사 경내에 있는 ‘폐비윤씨 태실비’는 그동안 ‘소헌왕후 태실비’로 알려져 왔다 [용문사성보박물관(2006), 36-37]. 그러나 이것은 조선시대에 성종의 비 폐비 윤 씨의 태실과 혼동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본고에서는 소헌왕후 태실비가 아니라 폐비윤씨 태실비로 수정했다[홍성익(2015), 289-291].
2) 용문사성보박물관(2006), 34.
3) 정병삼(2006), 306.
4) 용문사성보박물관(2006), 34. ; 김지영(2016), 106-143.
5) 문화재청·재단법인 불교문화재연구소(2008), 257.
왕실과 관련이 있었던 용문사에는 조선 전기에 조성된 불상으로는 목조지 장보살좌상(15세기), 목조아미타여래좌상(1515년), 응진전 석가삼존상 및 16나한상이 있고, 조선 후기에 제작된 불상으로는 목조지장삼존상과 시왕 상(1684년 추정)이 남아 있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 불단에는 주불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이 모셔져 있 고, 그 뒤에는 아미타여래의 설법 장면인 아미타불회(阿彌陀佛會)와 극락 에 왕생하는 구품(九品)이 부조된 목각설법상이 봉안되어 있다.
조성 당시 는 목각설법상을 ‘후불목탱 대미타회(後佛木幀大彌陁會)’로 기록했다. 설법 과 왕생이 결합된 17세기 예천 용문사 목각설법상은 원왕생(願往生)의 내용 이 함축된 것이다.6)
또한 용문사 목각설법상은 조선시대 유행한 관무량수 경의 16관 구품왕생과 염불 수행을 상징하는 신앙의 소산물로 추정된다.7) 17-18세기에 제작된 조선 후기 목각설법상은 현재 6점이 알려져 있다.8)
이 가운데 용문사 목각설법상과 목조아미타삼존상은 1684년에 함께 조성되 어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예로, 조선 후기 불상을 연구하는데 자료의 가치가 크다.
또한 용문사 목각설법상 본존 아미타불상 광배와 외곽틀에 표 현된 주역의 괘상(卦象)은, 당시 이 지역에서 불교·유교·도교의 습합 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용문사와 부석사[현 대승사 목각설밥상의 원 봉안처]가 위치한 예천과 영주 지역은 조선시대 성리학적 영향이 강한 곳이었고, 염불의 권유와 불 교로의 귀의를 강조하는 불교 가사가 실린 보권염불문9)이 유행했던 지역이다.
6) 조선후기 목각설법상의 구품왕생 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으로는 유마리의 논고가 주목된다[유마리(2007), 153-175].
7) 이용윤(2013), 61-90.
8) 17-18세기에 제작된 목각설법상은 일찍부터 학계에 소개되었고 최근에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문갑수(1966), 227-230. ; 문갑수(1968), 488-489. ; 문갑수(1969), 325-334. ; 홍윤식(1981), 312-335. ; 이종문(1996), 39-85. ; 심주완(2006), 139-163. ; 유마리(2007), 153-175. ; 이용윤(2011), 106-123. ; 이용윤(2013), 61-90. ; 이용윤 (2017), 77-110. ; 한길중(2020), 143-180. ; 정은우(2021), 61-94. ; 허형욱(2022), 133-170.
9) 보권염불문은 대미타참약초요람보권염불문을 약칭해서 부르는 것으로 염불 보권문이라고도 한다. 본고에서는 염불보권문를 사용하고자 한다.
염불보권문은 조선 후기 청허 휴정 법맥을 계승한 편양계 승려 를 중심으로 한 예천 용문사(1704년), 영천 수도사(1741년), 대구 동화사 (1764년), 합천 해인사(1776년)에서 간행되어 보급되었다.10)
예천 용문사 에서 명연(明衍)에 의해 1704년에 처음 간행된 염불보권문이 성리학적 기반이 강한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한 것은, 염불을 통한 극락 왕생 을 표현하고 있는 목각설법상이 제작된 배경과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용문사 목각설법상(1684년)은 문경 대승사 목각설법상(1675년) 보다 9년 뒤에 조성되었지만, 제작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 선 후기 불교 미술과 불교 신앙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불교미술사 면에서는 불교 조각과 불교 회화를 접목한 목각탱(木刻幀)이라는 점이고, 불교신앙면에서는 불교를 중심으로 유교와 도교가 융합한 당시 시대 상황 을 반영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된다. 용문사 목각설법상은 2022년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개최한 ‘승려장인전’에 출품되어 불교 신행과 주역의 괘상이 새롭게 조명된 바 있으며,11) 문경 대승사 목각설법상과 함께 조선후기 십 육관경변상도로 염불선 수행과 관련된 것이라는 선행 연구가 있다.12)
본고에서는 그동안 미술사 분야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용문사 목각설법상 과 관련된 또다른 신앙 행위를 살펴보고자 한다. 즉 불교의 참회, 도교의 수경신(守庚申) 신앙,13) 주역에 입각한 유자(儒者)의 참회 의식이 용문 사 목각설법상 조성의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점이다.
10) 최형우(2017), 151-188.
11) 허형욱(2022), 133-170.
12) 이용윤(2013), 61-90.
13) 조선 후기 불교와 도교의 습합 현상은 수경신 외에도 칠성 신앙을 통해 알 수 있다[정진희(2019), 87-117].
특히 불교의 참회 의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는 고려 말 순암 의선(順菴義旋, 1284?- 1355)에 의해 중각(重刻)된 예념미타도량참법(禮念彌陀道場懺法)을 주 목하고자 한다.
용문사 승려 명연이 1704년에 지은 염불보권문은 예념 미타도량참법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기 때문이다.
용문사 목각설법상 아미타불상 광배에는 주역의 8괘(八卦)가, 외곽틀 사방에는 12벽괘(辟卦)14)가 새겨져 있는데, 본존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 다.
12벽괘는 당대(唐代)의 이통현(李通玄, 635-730)의 신화엄경론 설을 참조해 해석하고자 한다.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새겨진 주역의 괘상은 이 불사를 기획한 소영 신경(昭影神鏡, ?-1706)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용문사 목각설법상을 조성하기 전에 스승 환적 의천(幻寂義天, 1603-1690)이 주도한 오대산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1661년)의 조성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환적 의천은 도교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가 쓴 옥추경의 중심 신격인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九天應元雷聲普化 天尊)’ 발원문과,15) 31년 동안 솔잎만 먹는 벽곡(辟穀) 수행을 한 점을 통 해 알 수 있다.16)
14) 12벽괘는 12소식괘(消息卦)라고도 하는데 본고에서는 12벽괘를 사용하고자 한다.
15) 월정사 성보박물관(2014), 52-53.
16) 유근자(2024), 258.
따라서 본고에서는 제작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예천 용문사 목각 설법상의 도상 특징과 주역의 괘상을 분석하고자 하며, 제작 당시 용문 사에서 행해졌던 수경신 신앙과의 관련성을 문헌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Ⅱ.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도상 분석
예천 용문사 대장전 목각설법상은 후불벽 앞 불단 위에 봉안되어 있고, 목조아미타삼존상은 목각설법상 앞 불단에 모셔져 있다(그림 1).
목각설법 상과 아미타·관세음·대세지보살로 구성된 목조아미타삼존상은 조성 당시 부터 한 세트로 제작되어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17세기에 제작된 다른 목각설법상과는 차별된다.
두 존상의 원 봉안처는 1684년 조성 당시에는 용문사 내 1683년에 건립된 금당이었지만, 현재는 윤장대가 있는 대장전으 로 옮겨져 주불로 안치되어 있다.
예천 용문사 목각설법상과 같은 유형의 작품은 17세기 후반에 경상북도 일대에서 주로 제작되었다.
즉 영주 부석사(현 문경 대승사), 예천 용문사, 상주 남장사에 총 4점이 전하고 있는데, 남장사에는 보광전과 관음선원에 각각 1점씩 봉안되어 있다.
이외에 전라북도 지역에서 17세기 후반과 18세 기 후반에 제작된 2점이 전하고 있다.
즉 전북 완주 안심사 약사암에서 조 성된 목각설법상(1684년)은 현재 서울 경국사 극락전에 모셔져 있고, 남원 실상사 약수암 목각설법상(1782년)은 현재 금산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처럼 나무를 소재로 아미타극락세계를 표현한 목각설법상은 조선 시대 미타정토신앙과 참법(懺法) 신앙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전기에 활동한 함허 기화(涵虛己和, 1376-1431)는 미타정토의 수행 자였는데, 아미타불의 존명을 전념(專念)함과 동시에 아미타 불신(佛身)을 전상(專想)했다.
즉 함허 기화는 관무량수경의 관상법을 닦아 염불결사 에서 아미타불의 신상 광명(身相光明)을 관상하고 아미타불을 칭념(稱念)했던 것이다.17)
17) 이재창(1997), 244-245. <그림 1> 예천 용문사 목각설법상과 목조아미타삼존상, 1684년. (재)불교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이러한 수행 방법은 청허 휴정(淸虛休靜, 1520-1604)에게 도 계승되었고, 염불과 참선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게 했다. 당시 선사들 의 이같은 수행관은 17세기에 조성된 목각설법상을 제작하는데 중요한 동기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문사 목각설법상을 조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소영 신경은 청허 휴정의 법손인 환적 의천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경상도 예천·영주·상주 지역에서 제작된 17세기 목각설법상은 상주 남 장사 보광전의 예만 제외하면, 모두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한 아미타불회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예천 용문사와 같은 해에 조성된 서울 경국사 목각설 법상(1684년)과 남원 실상사 약수암 목각설법상(1782년) 역시 아미타불회 를 구현한 것이다.
이같은 목각설법상을 표현한 조각승은 17세기에 경상 도·충청도·강원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단응·탁밀파 조각승 그룹이 조 성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서울 경국사 목각설법상(1684년 2월)과 예천 용문사 목각설법상(1684년 9월)은 단응이 수조각승으로 조성한 작품임이 복장 기록과 묵서를 통해 밝 혀졌고,18) 문경 대승사 목각설법상(1675년)은 양식 특징으로 보아 단응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설법상의 양식 역시 단응·탁밀파의 특징을 갖고 있다.19)
18) 심주완, 140-144. ; 정은우, 61-94.
19) 허형욱(2022), 171-202.
이처럼 17세기에 예천·영주· 상주의 사찰에서 조성된 목각설법상은 조각승 단응·탁밀파에 의해 조성되 었고, 극락을 관하는 아미타불회와 석가여래의 설법을 구현한 영산회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도상 해석은 대승사 목각설법상(1675년)을 통해 파 악할 수 있다.
영주 부석사가 원봉안처인 문경 대승사 목각설법상은 총 25 존이 표현되었고, 각 존상의 명칭이 방제(傍題)로 표시되어 있다.
이에 비 해 용문사 목각설법상(1684년)은 대승사 목각설법상보다 9년 늦게 제작되었고, 표현된 존상도 14존으로 축소되었다.
또한 용문사 목각설법상은 세로 265.0cm×가로 218.0cm로 정방형에 가까운 반면, 대승사 목각설법상은 세 로 347.0cm×가로 123.0cm로 세로로 긴 방형이다.
대승사 목각설법상은 10개의 판목으로 구성되었고, 중앙의 아미타불상을 중심으로 좌우 4단에 걸쳐 존상이 배열되었다.20)
20) 문경시·(재)불교문화재연구소(2011), 24.
상단에는 하늘이, 하단에 는 구품연지(九品蓮池)가 배치된 점은 용문사 목각설법상과 같다.
대승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각 존상은 <그림 2>와 같다.
<그림 2> : 생략 (첨부 논문파일참조)
대승사 목각설법상에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8대보살(관세음·대세지· 문수·보현·금강장·제장애·미륵·지장보살), 6대제자(가섭·아난·사리 불·목건련·부루나·수보리존자), 범천·제석천, 일광·월광천자, 난타· 발난타용왕, 사천왕, 과거칠불, 구품왕생 등이 표현되었다. 대승사 목각설 법상에 표현된 각 존상의 도상은 1332년에 중각되어 간행된 예념미타도량 참법을 비롯해 현행서방경과 통록촬요 등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1. 예념미타도량참법과 목각설법상의 도상
예념미타도량참법에서는 “정토왕생을 구하고자 하면 우선 마땅히 예참 을 통해서 우리가 무시로부터 지금까지 지은 죄상을 뽑아 소멸시켜야 한 다.”21)고 말하고 있다.
21) 禮念彌陀道場懺法 卷4(ABC, K1511 v47, p.300b11-b12), “欲求往生先應禮懺 救拔我等 無始至今罪障消滅”.
참법은 제보살의 명칭을 칭명함으로써 업장이 소멸된다는 믿음에서 출발했고, 양 무제에 의해 편찬된 자비도량참법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현겁천불명경, 제경불명, 삼천불명경 등 다양한 불명(佛名) 경전은 다불(多佛) 사상에 의해 과거칠불·14불·35불·53불· 천불 신앙으로 전개되었고, 이것이 불명 칭명의 예참으로 의궤화되었다.22)
예념미타도량참법은 금의 극락거사 왕자성(王子成)이 정토의 인연력 을 모아 1213년에 저술했고, 모든 악업을 참회해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게 하는 예참 의식의 절차와 내용을 소개한 의식집이다.23)
예념미타도량참법은 순암 의선에 의해 고려에 소개된 후, 조선 초에는 세 조의 비 정희왕후와 성종의 모친 인수대비가 왕실 인물의 극락왕생을 위해 간행했으며, 16·17세기에도 해인사 및 송광사에서 판각되어 미타정토신앙 과 참법은 조선 후기에도 지속되었다.24)
예념미타도량참법은 염불보권문과 소미타참(小彌陀懺)으로 분화 되었다.25)
22) 이성운(2017), 12-16. ; 김세영(2015). ; 김세영(2017), 43-69.
23) 김도윤(2022), 336.
24) 계미향(2022), 244.
25) 김도윤(2022), 333-363.
염불보권문은 대미타참약초요람보권염불문(大彌陀懺略抄要 覽普勸念佛文)의 명칭에서 보듯이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내용을 선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용문사에서 1684년에 제작된 목각설법상과 아미타삼존 상은, 예념미타도량참법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 과거칠불과 예념미타도량참법
용문사 목각설법상 상단에는 아미타불상의 광배에서 뻗어나온 서기(瑞 氣)가 좌우로 표현되었다.
이같은 아미타불의 광명 표현은 “서방 무량수불 의 원력이 깊고 무거워 항상 광명 명호로 중생을 섭화(攝化)한다.”26)는 예 념미타도량참법의 내용과 일맥 상통한다.
26) 禮念彌陀道場懺法 卷2(ABC, K1511 v47, p.279b03-b04). “良以西方無量壽佛 願力深重 常以光明名號 攝化衆生”.
용문사 목각설법상 상단에는 제 1비바시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3불씩 과거칠불이 표현되었다(그림 3).
용문 사 목각설법상 상단의 칠불상이 과거 칠불인 것은 대승사 목각설법상 상단 중앙에 원형의 틀을 마련하고 ‘第一毘婆尸佛’이라고 표현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다(그림 4).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제1비바시불은 불상으로 표현된 반 면, 대승사 목각설법상의 제1비바시불은 문자로 표현되었다.
<그림 3>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과거칠불, 1684년, (재)불교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그림 4> 대승사 목각설법상의 과거칠불, 1675년, (재)불교문화유산연구소 제공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용문사와 대승사 목각설법상 상단에 석가모니불 이전에 출세한 과거칠불 이 표현된 것은 자비도량참법과 예념미타도량참법의 영향이며(그림 5), 안으로는 과거의 여섯 부처와 석가모니불, 미래불인 미륵보살에게 귀명하고 죄업을 참회하는 것을 상징한다.27)
27) 이성운(2017), 23.
용문사와 대승사 목각설법상에서 는 구체적인 과거칠불의 명칭은 보이지 않지만, 자비도량참법과 예념미 타도량참법 변상도로 제시된 과거칠불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림 5>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변상도, 1503년. 출처: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2) 8대보살의 명칭
8대보살이 처음 등장하는 우리나라 문헌은 「오대산 성적 및 신라 정신태 자와 효명태자의 전기」이다.
이에 의하면 오대산 가운데 “남대에 올라서는 8대보살을 주존으로 모시며 상주하는 1만 지장보살의 진신을 보았다”28)는 내용이 있다.
28) 五臺山事蹟記, 「五臺山聖跡幷新羅淨神太子孝明太子(傳記)」, “登南臺則見八 大菩薩爲首一萬地藏菩薩眞身常住.”
여기에서는 8대보살의 구체적 명칭은 없지만 이 당시 신라에 8대보살이 전해진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승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8대보살의 명칭은 명연이 지은 염불보권문 과 일치한다.29)
그런데 염불보권문은 1704년에 편찬되었기 때문에 그 이 전에 중각된 예념미타도량참법이나 소미타참(1579년)의 영향이 작용 한 것으로 짐작된다.
예념미타도량참법에는 ‘문수·보현·관세음·대세 지보살’ 또는 ‘문수·보현·관세음·미륵보살’ 등 4보살이 짝을 이루고 있을 뿐,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8대보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념미타도 량참법을 축약한 소미타참에는 8대보살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세음 보살, 대세지보살, 연화제장보살, 금강제장보살, 미륵보살, 지장보살’이 언 급되어 있다.
소미타참에 등장하는 8대보살은 현행서방경(1448년)과 통록촬요 (1527년)에도 수록되었다.30)
29) 허형욱, 140-141.
30) 通錄撮要 附錄二(ABC, H0147 v7, p.817c14-c20), “南無文殊菩薩 南無普賢菩 薩 南無觀世音菩薩 南無大勢至菩薩 南無蓮花提掌菩薩 南無金剛提掌菩薩 南無 彌勒菩薩 南無地藏菩薩 南無淸淨大海衆菩薩摩訶薩 願共法界諸衆生 同入彌陁 大願海.”
현행서방경, 통록촬요, 소미타참에 수 록된 8대보살은 대승사 목각설법상(1675년)에서는 문수보살·보현보살·관 세음보살·대세지보살·제장애보살·금강장보살·미륵보살·지장보살로 표현되었다.
즉 앞의 세 자료에 등장한 8대보살 가운데 ‘연화제장보살’과 ‘금강제장보살’은, 대승사와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제장애보살’과 ‘금강장보 살’의 다른 명칭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제반문과 일용작법 을 비롯한 의식집과 염불보권문에서는 대승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8대 보살이 정형화되었다.
그런데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8대보살과 동일한 명칭이 오대산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1661년) 발원문에서 확인된다. 오대산 상원사 목조 문수보살좌상은 환적 의천이 조성해 진여원에 봉안한 상이다.31)
환적 의 천은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을 조성하면서 여러 점의 조성 발원문을 작 성했는데, 그 가운데 ‘五百佛名經第一佛号’로 시작하는 발원문에 8대보살 의 명칭이 기록되었다(그림 6).32)
31) 손영문(2022), 357-362. ; 유근자(2024), 249-290.
32) 월정사 성보박물관(2014), 39-42. ; 유근자(2024), 268.
<그림 6> 오대산 상원사 목조문수보살좌상 발원문, 1661년, 월정사 성보박물관 제공.: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五百佛名經第一佛号’로 시작된 발원문에 수록된 내용 가운데 ‘南無東方 解脫王~南無淸淨大海众菩薩摩訶薩’까지의 내용은 예념미타도량참법 권 6에 실려 있는 내용과 같다.
예념미타도량참법과 차이점은 8대보살 가운 데 ‘金剛藏菩薩, 除障碍菩薩, 彌勒菩薩, 地藏菩薩’이 추가되어 있는 점이 다.
그러나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내용을 참조해 간행한 통록촬요(1529 년)에는 환적 의천이 쓴 발원문에 등장하는 8대보살은 제장애보살과 금강 장보살만 명칭이 다를 뿐이다.
이를 통해 환적 의천이 상원사 목조문수보살 상을 조성할 당시에는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문수·보현·관음·대세지·금강장·제장애·미륵·지장보살’의 8대보살이 한 세트로 정립된 사 실을 알 수 있다.33)
용문사 목각설법상 중앙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현·관음· 대세지보살이 배치되어 있다(그림 7).
이같은 배치는 “한 찰나에 곧장 극락 세계에 왕생할 수 있고, 곧 아미타불·문수보살·보현보살·관자재보살· 미륵보살 등을 볼 것이다.”34)는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내용과 연관된다.
33) 유근자(2024), 321.
34) 禮念彌陀道場懺法 卷7(ABC, K1511 v47, p.344a04-a09), “一剎那中卽得往生 極樂世界 到已卽見阿彌陁佛 文殊師利菩薩 普賢菩薩 觀自在菩薩 彌勒菩薩等 此諸菩薩色相端嚴 功德具足 所共圍遶 其人自見生蓮花中 蒙佛授記 得授記已.”
그러나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대세지보살 대신에 예념미타도량참법 에는 미륵보살이 등장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림 7>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아미타불·문수·보현·관음·대세지보살상, (재)불교문화유산연구소 제공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8대보살상 도상은 고려후기에 그려진 아미 타팔대설법도 또는 아미타팔대내영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예념미타 도량참법에는 8대보살이 약사신앙과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이 있어 주목된다.
예념미타도량참법에서는 정토를 보불정토(報佛淨土)와 화불정토(化 佛淨土)로 구분했고, 전자는 상생경소에 10가지의 어려움이 설해져 있다 고 했다.
화불정토가 성취하기 쉬운 것으로 10종류를 들고 있는데, 그 가운 데 네 번째와 여섯 번째가 약사경과 관련된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항상 8대 보살을 염하면 모두가 소원대로 극락에 왕생하게 되고, 무량수불과 8대보 살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35)
약사경의 8대보살은 관세음보살·약왕보살·미륵보살·무진의보살·득 대세보살·약상보살·문수사리보살·보단화보살 등으로, 용문사 목각설법상 에 표현된 8대보살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문수·관음·대세지·미륵보살 은 용문사 목각설법상과 일치한다. 약사경에는 약사여래의 명호를 들으면 임종 때 8대보살이 극락으로 길을 인도한다는 내용이 있다.36)
이를 통해 약 사신앙에서도 정토에 왕생할 때 8대보살이 함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37)
35) 禮念彌陀道場懺法 卷2(ABC, K1511 v47, p.283a09).
36) 藥師琉璃光如來本願功德經 卷1(ABC, K0177 v10, p.1349b03-b07), “願生西方 極樂世界無量壽佛所聽聞正法 而未定者 若聞世尊藥師琉璃光如來名號 臨命終 時 有八菩薩乘神通來 示其道路 卽於彼界種種雜色衆寶花中自然化生.”
37) 김재권 외 지음(2017), 72-74.
3. 8대보살의 도상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8대보살의 지물과 특징을 정리하면 <표 1> 과 같다.
<표 1> 용문사 목각설법상 8대보살상의 지물과 도상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8대보살상의 지물은 불공(不空, 746-805)이 한역한 팔대보살만다라경과 비교된다.
팔대보살만다라 경에는 관자재보살[관음]·자씨보살[미륵]·허공장보살·보현보살·금 강수보살·만수실리보살[문수]·제개장보살·지장보살이 등장한다.
용 문사 목각설법상의 8대보살상과 비교하면 대세지보살이 허공장보살로, 금강장보살이 금강수보살로, 제장애보살이 제개장보살로 표현되었다.
보현보살 대신에 허공장보살이 등장한 것만 다르다.
고려 후기 아미타 팔대보살도는 팔대보살만다라경 도상을 중심으로 관무량수경의 영향으로 허공장보살 대신에 대세지보살이 배치되었다.39)
팔대보살만 다라경의 8대보살 명칭과 도상은 <표 2>와 같다.
<표2>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8대보살상의 명칭과 지물은 팔대보살만다 라경 보다는 고려 아미타팔대보살도의 8대보살상과 유사하다.40)
38) 시원인(施願印)은 여원인(與願印)과 같은 수인이다.
39) 양희정(2008), 67-103.
40) 고려 아미타팔대보살도는 현재 미국 프리어새클러박물관 소장품을 대상으로 했다.
이것을 정리하면 <표 3>과 같다.
<표 3> 용문사 목각설법상과 아미타팔대보살도의 8대보살 지물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표 3>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조선 후기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8대보살 도 상은 고려 후기 아미타팔대보살도의 도상과 거의 일치한다. 이를 통해 고려 후기 불화 속 8대보살 도상은 조선 후기까지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Ⅲ.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주역 8괘상 및 12벽괘상 분석
용문사 목각설법상에는 두 종류의 주역 괘상이 새겨져 있다.
본존 아 미타불의 광배에는 후천팔괘방위도(後天八卦方位圖, 이하 8괘로 약칭)가, 사방 외곽틀에는 12벽괘방위도(十二辟卦方位圖, 이하 12벽괘로 약칭)가 표 현되었다.
즉 아미타불 광배 테두리에는 3개의 효(爻)로 구성된 8괘인 소성 괘(小成卦)가, 사방 외곽틀에는 6개의 효로 구성된 64괘 가운데 음양이 맞 는 12개의 괘로 구성된 12벽괘(辟卦)가 배치되었다.
선행 연구에서는 두 괘상 가운데 광배의 8괘는 공간적 개념 중에서도 방위를 뜻하고, 외곽틀 12 벽괘는 불교적으로 변형된 시간관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했다.
또한 조선 시대 불교미술에 수용된 주역의 괘상을 다각도로 조명한 바 있다.41)
본 논문에서는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8괘상 과 12벽괘상을 이통현의 신화엄경론과 연계해 해석하고자 한다.
또한 용 문사 목각설법상에 새겨진 12벽괘 가운데 향좌측 외곽틀 태괘(䷋)부터 둔 괘(䷠), 구괘(䷫), 쾌괘(䷪), 대장괘(䷡) 등 절반에 해당하는 하단의 괘상들 이 중심점에서 회전하면서 보는 시각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그림 8), 마치 외부 고정점에서 보이는 모양으로 표현되어 6효의 상하가 반전된 것으로 파악했다(그림 9).42)
41) 허형욱(2022), 146-159.
42) 용문사 목각설법상 외곽틀 12벽괘상에 대해 송은석은 자방의 복괘, 축방의 임괘, 인방의 태괘, 유방의 관괘, 술방의 박괘 등 다섯 괘는 상하가 뒤집한 것으로 해 석했다[송은석(2017), 380]. 한길중은 달의 변화를 뜻하는 12소식괘의 표현을 의 도한 것으로[한길중(2020),156], 허형욱은 기존의 12소식괘를 불교적 관점에서 변용해 나름의 시간 체계를 새롭게 구축한 것으로 분석했다[허형욱(2022), 150-155].
따라서 본고에서는 필자가 수정한 괘상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그림 8> 밀교개간집의 열금강지방지도와 준제구자천원지도, 1784년. 출처: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필자는 용문사 목각설법상은 불교의 정토관을 반영한 것으로 인식해 정토 왕생을 위해서는 먼저 참회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참회와 관련 해 도교에는 수경신 신앙이 있었고, 주역도 참회와 관련된 면이 있어 용문 사 목각설법상은 불교·도교·유교의 신앙 의례가 융합된 것으로 이해된다.
주역은 기본적으로 기호와 상징의 체계로 구성되었다.
괘상과 각각의 괘에 달려 있는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는 모두 하나의 기호이자 상징이다.
주역은 주석자의 특수한 관점에 따라 상징어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데, 이러한 의미 변천은 해석자가 속한 특수한 역사와 문화가 배경이 된다.43)
43) 황병기(2017), 151.
이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예천 용문사 목각설법상 외곽틀에 새겨진 12벽괘 상의 해석 역시 불교적 접근이 필요하다.
괘기설(卦氣說)은 64괘를 24절기에 배당해 일년 사계절의 변화와 연계시 켜 인사(人事)를 예측하는 것으로, 음양재변설(陰陽災變說)과 밀접한 관련 을 맺고 있다.
이같은 괘기설은 맹희(孟喜)로부터 시작되어 경방(京房, BC.77∼BC.37)에게 계승되었다.
경방은 벽괘를 군주의 품계에 상응하는 괘의 범주로 설정해, 신분에 따라 공괘(公卦)·후괘(侯卦)·경괘(卿卦)·대 부괘(大夫卦)의 품계로 분류했다.44)
44) 방인(2014), 14-17.
벽괘는 태음인 식괘(息卦)와 태양인 소괘(消卦)로 구성되었고, 나머지 신하괘는 소음(少陰)과 소양(少陽)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을 정리하면 <표 4>와 같다.
<표 4> 12벽괘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조선시대 배불론자들은 주역의 음양론을 이용해 불교의 삼세인과설· 윤회설·자비관 등을 비판했고, 이에 비해 불교계는 삼교귀일론을 중심으 로 호불 논리를 전개했다.
그 상통성의 근거를 주로 주역에서 찾고 있 다.45)
본 논문에서는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8괘상과 12벽괘상을 해 석하기 위해 이통현의 신화엄경론을 주목했다.
그 이유는 이통현이 중국 고유 사상인 음양 오행과 주역 및 도덕경 등을 통해 화엄경을 새롭 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통현은 중국 임제종 선사들과 고려의 보조 지눌(普照知訥, 1158-1210), 일본의 고벤 묘에(高辨明惠, 1173-1232) 등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46)
45) 유정엽(2009), 489-514.
46) 고승학(2013), 116.
이통현이 한국 불교계에 미친 영향은 보조 지눌을 통해 조선시대 화엄 중 심의 선불교에서 정토 신앙을 수용한 청허 휴정계 승려들에게도 나타난다.
이를 통해 청허 휴정계 문도가 용문사 목각설법상 조성을 주도했기 때문에, 목각설법상의 주역 괘상은 이통현의 신화엄경론과 연관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 용문사 목각설법상 아미타불상 광배의 8괘상
용문사 목각설법상 본존 아미타불상의 연잎형 광배 테두리에는 8괘상이 새겨져 있는데(그림 10), 주 문왕 후천팔괘방위도(그림 11)를 표현한 것이 다.
광배 중앙의 향좌측에는 건(乾, ☰), 태(兌, ☱), 곤(坤, ☷), 리(離, ☲) 괘가 있고, 향우측에는 감(坎, ☵), 간(艮, ☶), 진(震, ☳), 손(巽, ☴)괘가 표현되었다. 그런데 향좌측 태(☱)괘는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되어 향우측 의 손(☴)괘와 동일하게 새겨졌다.
이같은 방식은 외곽틀 12벽괘상 표현에 도 나타나고 있다.
복희씨가 만든 주역의 선천팔괘는 우주만물이 자리잡기 이전의 원리를
<그림 10> 용문사 목각설법상 아미타불상 광배에 표현된 8괘상, Ⓒ유근자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그림 11> 주문왕 후천팔괘방위도, Ⓒ유근자 :
표현한 괘의 배열로 음양의 조화를 다루고 있다. 이에 비해 주 문왕이 만든 후천팔괘는 우주만물이 자리 잡은 후에 작용하는 이치를 표현한 괘의 배열 로, 수(數)에 괘와 방위를 결부시켜 우주 생성 및 변화 원리를 설명했다.
용 문사 목각설법상의 아미타불상 광배 8괘상은 주 문왕의 후천팔괘도를 나타 낸 것이다.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표현된 8괘상은 이통현의 신화엄경론에 의거하 면 8대보살의 또다른 상징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통현은 신화엄경론에서 불교와 상수적(象數的) 역학을 연결시키고 있는데, 수행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47) 문수가 동북방의 청량산에 거처한다는 것은 간괘(艮卦)가 동북방을 주재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간(艮)은 소남(小男)이 되고 동몽(童蒙)이 되니, 문수가 늘 범부를 교화해서 계몽으로 견성하게 하고, 아울러 근본지(根本 智)의 첫머리가 되기 때문이다.48)
앞 인용문에서 보다시피 이통현은 문수보살의 주처가 동북방인 것을 간 괘에 배대(配對)하고, 보현보살은 동방 진괘에 대응시키고 있다.49)
이러한 이통현의 시도는 주역과 화엄경의 일치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화 엄사상을 당시 지식인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한 것이다.50)
47) 임상희(2008), 470-471.
48) 新華嚴經論 卷4(ABC, K1263 v36, p.260c12-c16), “又文殊居東北方淸涼山者 像艮卦主東北方故 艮爲小男 爲童蒙 爲文殊常化凡夫啓蒙見性及本智之初首故.”
49) 新華嚴經論 卷3(ABC, K1263 v36, p.253b15-b19), “普賢長子者 位在東方卯位 爲震卦 震爲長男.”
50) 유정엽(2009), 504.
또한 이통현은 관음보살과 정취보살에 대해서도 독특한 해석을 하고 있다. 관음은 자비의 으뜸이 되는데 서방에 위치해 금강산의 서아(西阿)에 머 물면서 자비경을 설한다.
서방은 유위(酉位)가 되고, 유(酉)는 태괘(兌卦) 가 된다.
태(兌)는 금(金)이 되고, 백호가 되고, 흉위(凶危)가 되고, 추곡(秋 穀)이 되기 때문에 자비관음으로 이를 주재하는 것이니, 착하지 못한 곳에 다 자비를 행하는 것이 관음이다.
문수·보현·관음의 세 가지 법은 시방의 모든 부처도 함께 행하고 있으며, 선재동자의 10회향 중에서 제7 자비위(慈 悲位) 속의 선지식이 된다.51)
앞의 인용문에서 관음의 특성은 자비로 설정되었고 이같은 특성은 서쪽 이라는 방위 개념과 연결되었다.52)
이통현은 8괘 가운데 진괘가 동쪽과 장 남을 나타낸다는 점과, 보현보살이 장자로 불리는 것을 연관시키고 있다.
또한 서쪽은 순수한 이타행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 살이 서쪽에 머문다는 설과 관련시키고 있다.
이처럼 이통현은 문수·보 현·관음이라는 화엄경의 주요 보살들이 각각 동북쪽·동쪽·서쪽에 거 처하는 것으로 보고, 이들 보살의 모든 덕을 완전히 구비한 부처는 임금의 자리인 북쪽에 배당시키고 있다.53)
51) 新華嚴經論 卷3(ABC, K1263 v36, p.253b20-b25), “觀音爲悲首 位在西方 住 金剛山之西阿說慈悲經 西爲酉位 酉爲兌卦 兌爲金 爲白虎 爲凶危 爲秋殺故 以 慈悲觀音主之 於不善處行慈是觀音也 文殊普賢觀音三法 是十方佛共行 爲善財 童子十迴向中 第七慈悲位中善知識.”
52) 임상희(2008), 471.
53) 고승학(2013), 130-131.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용문사 목각설 법상 아미타불 광배에 표현된 8괘상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현· 관음·대세지·금강장·제장애·미륵·지장보살 등을 상징하는 것으로, 8대보살 가운데 대표적으로 문수·보현·관음보살만 8괘와 배대시키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이통현이 신화엄경론에서 동북 문수보살, 동 보현보살, 서 관음보살을 배대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 오대산 신앙에서는 동 관음보살, 남 8대보살과 지장보살, 서 무량수불과 대세지보살, 북 석가불·미륵보살·나한, 중앙 문 수보살을 배치했다.54)
필자가 오대산 8대보살을 주목한 이유는 용문사 목 각설법상을 주도한 소영 신경이 오대산 상원사와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앞 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스승 환적 의천과 함께 1661년에 상원사 목조문수 보살좌상을 조성했던 것이다.
오대산 신앙에는 조선 후기에 8대보살로 짝을 이룬 보살 가운데 문수· 관음·대세지·미륵·지장보살이 포함되어 있다.
이외에도 「신효거사가 다 섯 성인을 친견한 사적[信孝居士親見五類聖事蹟]」에도 신효거사가 가지고 있던 깃털은 대성인의 화신이었는데, 다섯 대성인은 바로 “북대의 석가모니 불, 동대의 관세음보살, 중대의 문수보살, 서대의 대세지보살, 남대의 지장 보살이 바로 그 분들이다.
이 때문에 월정사에는 다섯 존상을 모시고 있고 가장 존귀하게 여긴다.”55)는 내용을 통해 관음·문수·대세지·지장보살이 월정사에 모셔져 왔음을 알 수 있다.56)
54) 五臺山事蹟 「五臺山聖跡幷新羅淨神太子孝明太子(傳記)」.
55) 五臺山事蹟 「信孝居士親見五類聖事蹟」, “五大聖者 北臺釋迦 東臺觀音 中臺 文殊 西臺大勢至 南臺地藏 是也 故於是寺 有五尊像 最爲奇妙.”
56) 오대산사적은 고려 후기 민지(閔漬, 1248-1326)가 1307년에 기록한 것으로, 신라 방언으로 쓰여진 옛 기록을 참조해 작성했다. 민지가 작성한 오대산사적 은 고려 후기의 불교 신앙이 반영된 것으로 조선시대 불교 신앙을 이해하는데도 참조가 된다.
오대산 신앙에서 주목되는 것은 오대(五臺)에 불·보살·나한 등을 봉안 하고 낮에는 경전을 독송하며 밤에는 예참을 했다는 것이다. 즉 동대에서는 북쪽 모서리에 관음방을 설치하고 관음보살상과 관음보살도를 봉안한 다음 밤에는 관음예참을, 남대에는 남쪽에 지장방을 설치하고 지장보살상과 8대 보살·지장보살도를 봉안한 다음 밤에는 점찰예참을, 서대 남쪽에 미타방 을 설치하고 무량수불과 대세지보살도를 봉안한 다음 밤에는 미타예참을, 북대 남쪽에 나한방을 설치하고 석가불상과 미륵보살·나한도를 봉안한 다 음 열반예참을, 중대 진여원에는 문수보살상과 문수보살 36화현도를 봉안 하고 화엄예참을 행했다는 것이다.57)
57) 五臺山事蹟, 「五臺山聖跡幷新羅淨神太子孝明太子(傳記)」. ; 유근자(2024), 268- 269.
오대산의 오대에 불상과 불화를 봉안 하고 밤에 예참을 행한 신앙 형태는 이후 한국 불교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친 것으로 보인다.
오대산 신앙에서 존상과 후불도를 봉안하고 밤에 예참을 행한 신앙은, 예 천 용문사에서 17세기에 아미타삼존상과 목각설법상을 봉안하고 미타예참 을 실시한 신앙으로 계승된 사실을 알려준다.
밤에 예참을 행한 불교적 신 앙 행위는 17세기 용문사에서 실시한 도교의 수경신 신앙과도 연결된다.
이에 대해서는 Ⅳ장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예천 용문사 목각설법상 하단에 있는 ‘明’과 ‘心’에 대한 해석은 이통현의 신화엄경론 내용이 참조가 된다.
즉 이통현은 법화경과 화엄경의 차 이점을 서술하는 항목 가운데 여덟째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여덟째, 용녀가 성불해서 거처한 국토가 다르다는 것은, 남방무구세계가 사바세계가 아님을 말한 것이다.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마음이 진실에 응할 수 있기 때문에 무구(無垢)라 한다.
또 본각을 올바로 따르기 때문에 남 방이라고 부르니, 남북으로 바름[正]을 삼기 때문이다. 또 남방은 명(明)이 되고 허(虛)가 된다. 남방은 이(离)가 되고, 이는 가운데가 허(虛)하다. 8괘 (掛) 중에서 이(离)는 마음을 본받으니, 마음은 허무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 속의 8괘에 의거해서 나타낸 것이니, 다른 국토에는 이 8괘라는 명칭이 없 지만 그 방법은 이 한 가지이다.58)
이통현의 설을 참조하면 예천 용문사 목각설법상 하단에 표현된 ‘明’은, 주역 8괘 가운데 ‘리괘(☲)’에 해당한다.
이통현은 남쪽 리괘에 내포된 밝 음·바름·태양·허공 등의 뜻을 나열하고, 그 가운데 허공의 의미를 주목 해 이를 불교의 공과 동일시했다.59)
선행 연구에서는 ‘明心’을 선불교적 상 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어로 해석하거나,60) 목각설법상 제작을 주도 한 소영 신경의 사상을 반영한 것으로 염불을 통한 관법 수행을 의미한다 고 보았다.61)
58) 新華嚴經論 卷1(ABC, K1263 v36, p.237b21-b26), “八龍女成佛所居國土別者 卽言南方無垢世界非此娑婆 解云 心得應眞故 稱無垢 正順本覺故 號南方 爲南 北爲正故 又南方爲明爲虛 南爲离 离中虛 八卦中离法心心 虛無故 卽還依世俗 八卦表之 餘方雖無八卦之名 其方法是一法也.”
59) 고승학(2013), 133.
60) 허형욱(2022), 141-145.
61) 이용윤(2013), 68-69, 80.; 이용윤(2017), 100.
이에 필자는 선행 연구의 해석과 함께 ‘明心’은 주역의 리 괘와 관련된다는 사실을 덧붙이고자 한다.
2. 용문사 목각설법상 외곽틀의 12벽괘상
용문사 목각설법상 외곽틀 사방에는 각 면에 3괘씩 12벽괘가 표현되었다 (그림 12).
그러나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6괘는 6효의 상하가 반전되었다.
‘三種尊容又聖僧之位’ 아래에 있는 괘부터 ‘大須彌之中微塵刹土’ 아래에 있 는 괘까지 곤괘(䷀)를 제외한62) 5괘의 6효가 반전되었다.
62) 곤괘는 6효가 모두 동일하기 때문에 반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엄밀한 의
<그림 12> 용문사 목각설법상 12벽괘상의 배치 상태, ⓒ유근자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그림 13> 용문사 목각설법상 12벽괘상 배치의 오류, ⓒ유근자 :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11월의 복괘(䷗) 에서 1양(陽)이 처음 생기고, 양이 자라서 건괘(䷀)에서 6양을 이루는 것은, 양이 자라나는 식괘이다.
5월 구괘(䷫)에서 처음으로 1음(陰)이 생겨 양을 밀어내고, 곤괘(䷁)에 이르러 6음이 되기 때문에 소괘이다.
이러한 관점에 서 보면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괘는 표현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그림 13>과 같다. 12벽괘를 참조해(표 4) 용문사 목각설법상 사방 틀에 새겨진 괘상을 보 면 <그림 13>에서 알 수 있듯이 비괘(䷋)는 태괘(䷊)로, 둔괘(䷠)는 대장괘 (䷡)로, 구괘(䷫)는 쾌괘(䷪)로, 쾌괘(䷪)는 구괘(䷫)로, 대장괘(䷡)는 둔괘 (䷠)로 배치하는 것이 12벽괘 순서에 따른 배열이다.
용문사 목각설법상에 현재와 같이 12벽괘상이 배치된 것은, 조성 당시 중심점을 회전 시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외부점 고정 시각으로 배열한 데서 발생한 오류이다.
이것을 정리하면 <표 5>와 같다.
<표 5> 용문사 목각설법상 12벽괘상의 배치와 수정한 12벽괘상의 순서: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용문사 목각설법상 외곽틀의 12벽괘상은 참법(懺法)과 관계된 것으로 여 겨진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불교가 유가 및 도교 문화와 상호 교섭해 참 법 신앙이 유행했다.63)
63) 이성운(2017), 1-12.
용문사 목각설법상 외곽틀의 12벽괘상은 주역의 미에서는 반전된 것이다.
참회, 불교의 참회, 도교의 참회가 서로 관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일정한 시 간을 정해놓고 예참을 행하는 사참(事懺)은 도교의 수경신(守庚申) 신앙과 도 연결된다.
도교에서는 두 달에 한번씩 도래하는 경신일에 잠을 자지 않 는 수경신 신앙이 있는데 이것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참법은 작법참(作法懺), 취상참(取相懺), 무생참(無生懺)으로 분 류된다.
작법참은 불전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몸과 입으로 지은 죄를 법에 의해 소멸시키는 것이다.
취상참은 선정에 들어 서상(瑞像)을 관하면 서 의업(意業)에 의한 번뇌의 죄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무생참은 선정에 들 어 죄악의 실상을 관하고, 수행에 장애가 되는 무명을 소멸시켜 중도를 깨 달아가는 것이다.64)
64) 이성운(2017), 20.
이같은 불교의 참법은 용문사 목각설법상을 중심으로 행해졌을 참법 신 앙과도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즉 불전에서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를 고백 하고[작법참], 아미타불의 설법 장면과 극락에 왕생하는 것을 관하면서 죄를 소멸시키며[취상참], 선정에 들어 중도를 깨닫는 수행[무생참]을 조선 후기 불교도들은 미타참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이통현은 신화엄경론에서 불교와 주역과의 관계를 풀이했다.
즉 그는 문수보살이 중생의 최초 믿음을 일으키고 그들을 최초의 깨달음으로 이끈 다는 점에서 축(丑)과 인(寅)을 각각 화엄경의 십신(十信)과 십주(十住)에 대응시키고, 인접하는 묘(卯)·진(辰)·사(巳)를 나머지 수행 계위[十行, 十 廻向, 十地]에 배대했다.
이어서 정남향인 오(午)는 수행자가 중도를 깨닫 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나머지 방위인 유(酉)부터 해(亥)까지 는 그들이 세속에서 벌이는 이타행[同事利生]을 나타낸다고 파악했다.
마지막으로 임금이 궁에서 남면(南面)해 나라를 다스린다는 이미지에 착안해, 부처 또는 스승의 지위를 북쪽 또는 자(子) 자리에 두었던 것이다.65)
65) 고승학(2013), 129. ; 新華嚴經論 卷4(ABC, K1263 v36, p.260c19-c26), “是故 子爲佛位 丑爲十信 寅爲十住 卯爲十行 辰爲十向 巳爲十地 午爲等覺 未爲晦明 入俗同俗化迷 申酉戌亥爲所化故 如是安立法則 法合如是故 易卦坎爲君 离爲 臣 震爲上相 酉爲上將 東爲靑龍 西爲白虎 前爲朱雀 後爲玄武 靑龍爲吉慶 白 虎爲凶害 朱雀爲其明 玄武爲其黑.”
<그림 14>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12벽괘상과 이통현의 신화엄경론의 수행 계위 대입, Ⓒ 유근자 :생략(첨부논문파일참조)
이통현은 또한 12지지(地支)와 화엄사상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12지지는 바로 주역의 12벽괘상과 대응된다.
용문사 목각설법상 외곽틀에 새겨진 12벽괘상은 바로 이통현이 해석한 화엄사상과 주역의 12벽괘상과의 관계 를 잘 보여준다(그림 14).
이통현은 주역의 12벽괘상과 화엄경의 수행 계위인 십신(十信) → 십주(十住) → 십행(十行) → 십회향(十廻向) → 십지(十地) 등을 순차적으로 대비시켜 수행의 단계를 표시했다.
12벽괘 가운데 양이 6효인 건괘(䷀)가 바로 화엄의 십지를 의미한다.
화엄경의 십지설은 한국 화엄종을 비롯한 교종에 영향을 주어 고려와 조선시대 교종선(敎宗選)의 시험과목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보살은 이 10지위에 오르게 될 때 비로소 무루지(無漏智)를 내어 불성(佛性)을 보고, 성자(聖者)가 되어 불지(佛智)를 보존함과 아울러 널리 중생을 지키고 육성하기 때문에 이 수행 계위를 ‘지위(地位)의 십성 (十聖)’이라고도 한다.66)
용문사 목각설법상 조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되는 예념미타도량 참법에는 유자들의 극락 왕생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즉 “십계를 쌍으로 밝혀서 유생들에게 왕생정토 구하기를 권함[雙明十戒 勸儒求生]”에 잘 압축되어 있다.67)
6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十地」. https://encykorea.aks.ac.kr/.
67) 禮念彌陀道場懺法 卷3(ABC, K1511 v47, p.298a12-b16).
용문사 목각설법상 외곽틀 12벽괘상의 표현에는 이처 럼 유자들도 왕생 정토하기를 권한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내용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Ⅳ. 용문사 목각설법상과 수경신(守庚申) 신앙
예천 용문사 목각설법상은 조선 후기 불교·유교·도교의 신앙이 습합된 대표적인 예로, 조선 후기 불교 신앙을 고찰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용문 사 목각설법상은 불교의 아미타 신앙을 중심으로 도교의 장수법인 수경신 (守庚申), 주역의 12벽괘 괘기설(卦氣說) 등이 융합되어 표현된 것이다.
그 중심에는 조선 후기 불교의 참회 신앙이 자리잡고 있다.
용문사 목각설법상이 수경신과 관련된 단서는 「속용문사적기(續龍門事 蹟記)」에서 찾을 수 있다.
「속용문사적기」는 1688년에 박세대(朴世大, 1644-1697)가 수경신을 위해 용문사에 갔다가 주지의 요청으로 지은 것이 다.68)
즉 박세대가 참여한 수경신은 1688년 늦겨울이라고 했는데69) 이 날 은 음력 12월 21일이다.
수경신은 ‘경신수야(庚申守夜)’라고도 하며 조선시 대에는 두 달마다 돌아오는 모든 경신일이 아닌 동짓달[음력 11월]과 섣달 [음력 12]의 경신일에 철야를 행했다.
박세대가 음력 12월에 용문사에 가서 수경신을 한 것은 이러한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경신일이 아니더라도 경신수야의 영향을 받아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제야에 도 불을 밝히고 철야했다.70)
68) 용문사성보박물관(2006), 21.
69) 용문사성보박물관(2006), 23, “歲戊辰季冬 因守庚 登龍門 有住持 持寺中古蹟一 部 來示余.”
70) 김유진(2017), 57.
도교의 수경신 신앙은 불로장생하기 위한 도교 장생법 가운데 하나이다.
60일 가운데 57일째 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이 되면, 밤 중에 몸 속에 있던 삼시충(三尸蟲)이 잠자는 사이에 상천(上天)해 죄상을 상제에게 고 해, 그 죄로 인간의 수명이 단축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경신일에는 철야 하고 근신하면서 삼시충이 몸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 바로 수경신이다.71)
수경신 신앙은 한대의 참위(讖緯) 사상이 신선 사상 과 결합해 사명(司命)과 사과(司過)의 개념이 도교에 전입되면서 생겨난 관 념이다.
화와 복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 일어난다는 감응 의식과, 사과 신앙 이 보편화되면서 권선(勸善)을 목적으로 한 신앙 의례로 자리잡았다.
이 신 앙은 중국에서 당·송시대에 도사·승려·유자를 비롯해 민간에까지 유행 되었다.72)
중국에서 시작된 수경신 신앙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고려 후기로 추 정된다.
1266년 4월 경신일에 태자가 안경공을 맞아다가 연회를 베풀고 음 악을 연주하면서 새벽까지 밤을 새워 수경신을 했고, 이로 인해 당시 비난 의 여론이 높았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73)
이를 통해 고려 후기에 는 왕실 뿐 아니라 수경신 신앙이 민간에서도 행해졌고, 이때에는 수경신이 오락화되어 밤새 음주하고 즐기는 민속으로 정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 한 경향은 조선시대까지 지속되었는데,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시대 문인들 의 한시를 통해서도 수경신을 고찰할 수 있다.74) 동국세시기(1849년)에 도 섣달 그믐 제야에 불을 밝히고 밤을 새는 것은 수경신의 영향이라는 기 록이 있다.75)
71) 안계현(1981), 135-136. ; 정민(1997), 87-108. ; 김철웅(2018), 34-35. ; 김유진 (2017), 53-83.
72) 정민(1997), 87-94.
73) 高麗史 권26, 원종 6년 4월.
74) 정민(1997), 96-106.
75) 국립민속박물관(2021), 220-221.
조선시대 궁중의 수경신은 왕과 신하들이 함께 철야하거나 왕이 물품을 하사했는데, 조선 전기부터는 주로 음력 11월이나 12월에 수경신을 한 것 이 확인된다.76)
밤을 지켜 복을 얻기 위한 경신수야의 의미는, 음주하고 노 름을 하며 여흥을 즐기는 밤샘 연희의 형태로 표출되었다.77)
이러한 수경 신 신앙은 1770년에 폐지되었다.78)
조선시대 유생들이 경신일을 맞아 행했던 풍속은 17세기 호서 지역의 학 자이자 관료였던 조극선(趙克善, 1595-1658)이 작성한 인재일록 (1609-1623)과 야곡일록(1624-1635)을 통해 확인된다.79)
조극선의 일기 에 등장하는 경신일 기록에는 야회(夜會) 또는 경신회(庚申會)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경신회에서는 지인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즐겼고, 등불을 켜놓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승경도 놀이[政圖]와 쌍육(雙六)을 던지는 놀이를 하며 철야했다.80)
이 가운데 1616년 12월 24일 경신일 밤에 정수암(淨水庵)에서 야회를 가졌다81)는 내용이 주목된다.
76) 世宗實錄 권58, 14년 11월 5일. ; 世祖實錄 권37, 세조 11년 11월 16일. ; 成宗實錄 권148, 성종 13년 11월 26일. ; 成宗實錄 권197, 성종 17년 11월 16일. ; 中宗實錄 권76, 중종 28년 11월 22일 등.
77) 김유진(2017), 58.
78) 英祖實錄 권115, 영조 46년 10월 8일.
79) 안정은(2014), 51-75.; 김학수(2017), 6-55.; 주영하(2017), 90-129.; 성봉현 외 (2018).; 이은주(2019), 91-116.; 김학수(2023), 7-51.
80) 忍齋日録 苐4. 장서각 기록유산 DB. https://jsg.aks.ac.kr/.
81) 忍齋日録 第2. 광해군 9년(1616) 12월 24일 기록. 장서각 기록유산 DB. https://jsg.aks.ac.kr/.
정수암의 야회 기록은 17세기에 사찰 에서 행해진 수경신 신앙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사찰에서 수경신이 행해진 것은 고려 때부터이다.
고려사에는 문종 때 부터 원종에 이르기까지 경신일에 왕이 사찰에 27회나 행차한 기록이 있다.
왕의 거처에 머물지 않고 경신일에 사찰에 행차한 것은 수경신 신앙이 불교 와 습합되어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삼시(三尸)가 죄과를 고자질하는 것을 부처의 힘을 빌려 봉쇄하고자 한 심리의 반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82)
82) 정민, 앞논문, p.97.
용문사 목각설법상은 도교의 풍습이었던 수경신이 용문사에서 행해졌다 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속용문사 적기」를 쓴 박세대는 음력 12월에 수경신을 위해 용문사에 갔던 것이다.
당 시 용문사의 중심 법당은 금당이었고, 금당에는 목각설법상이 봉안되어 있 었기 때문에 목각설법상이 수경신과 관련된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수경신이 연말에 행해지고 있던 사실과도 부합된다. 이를 통해 용문사 목각 설법상은 조선 후기 수경신 신앙의 단면을 살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Ⅴ. 맺음말
예천 용문사 대장전 목각설법상과 삼존상은 1684년에 조성되었고, 후불 탱 역할을 하는 목각설법상과 본존으로 모셔진 삼존상이 모두 남아있어 조 선 후기 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조선 후기 선승이면서 용 문사 목각설법상과 아미타삼존상 조성의 기획자였던 소영 신경은, 청허 휴 정 법맥을 계승한 편양계 환적 의천의 제자로 염불선을 중요시 여겼던 스 승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본 논문에서는 용문사 목각설법상의 용도로 불교의 참법 신앙을 주목했 다.
고려 말에 중각된 예념미타도량참법은 참법을 중요시하고 있어 용문 사 목각설법상의 텍스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론했다.
그 이유는 용문사 승려 명연이 1704년에 만든 염불보권문이 예념미타도량참법의 내용을 발췌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당대 이통현의 신화엄경론은 용문사 목각설법상 본존불 광배의 주역 8괘상과, 외곽틀 12벽괘상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본존 아 미타불상 광배에 새겨진 8괘상 가운데 북동의 간괘(☶)는 문수보살을, 동쪽 의 진괘(☳)는 보현보살을, 서쪽의 태괘(☱)는 관음보살로 대비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방 외곽틀의 주역 12벽괘상 가운데 향좌측 비괘(䷋)부터 반시계방향 으로 대장괘(䷡)까지는 6효의 상하가 뒤집힌 것으로 오류임을 밝혔고, 수정 해서 분석한 결과 이통현의 신화엄경론 설에 따라 화엄의 수행 단계를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즉 복괘(䷗, 11월)는 불지(佛地)를, 임괘(䷒, 12월)는 십신(十信)을, 태괘(䷊)는 십주(十住)를, 대장괘(䷡)는 십행(十行) 을, 쾌괘(䷪)는 십회향(十廻向)을, 건괘(䷀)는 십지(十地)를, 구괘(䷫)는 중 도(中道)를, 둔괘(䷠)부터 비괘(䷋), 관괘(䷓), 박괘(䷖), 곤괘(䷁)는 이타행 (利他行)을 배대한 것이다.
조선 후기 용문사 목각설법상 제작을 주도했던 승려들은 화엄과 염불을 동시에 수행했기 때문에 목각설법상 조성에 그들의 신앙관을 반영한 것으 로 보인다.
즉 8괘상은 아미타팔대보살이라는 정토신앙을 의미하고, 사방 외곽틀의 12벽괘상은 십지·십주 등 화엄 신앙을 상징한다.
이를 통해 용 문사 목각설법상에는 당시 유행한 정토 신앙과 화엄 신앙이 표현된 것으로 해석된다.
용문사 목각설법상과 삼존상은 17세기 예천 용문사를 중심으로 승려와 유학자들이 교류했고,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도교 풍속인 수경신(守庚申)의 장소에 봉안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용문사 목각설법상 외곽틀에 새겨진 주역의 12괘상은 시간 또는 공간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당시 이러한 불교·유교·도교 신앙이 습합된 신앙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는 점에서도 중요한 자료이다.
본 논문에서 다루지 못한 조성에 관한 복장 기록을 분석하면, 용문사 목 각설법상의 조성 목적이 좀더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 부분은 향후 별 도의 논고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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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on the images of the Wooden Amitabha Buddha Altarpiece of Yongmunsa Temple in Yecheon, and the meaning of 8 - Trigrams and 12 - Hexagrams
Yoo, Geun-Ja
This paper analyzes the images of the ooden Amitabha Buddha Altarpiece at Yongmunsa Temple in Yecheon created in 1684, the 8 trigrams of the Book of Changes expressed on the mandorla of the main Buddha statue, and the 12 hexagrams engraved on the outer frame of the Altarpiece. Attention was paid to ‘Yenyeom Mitadoryang Chambeop(禮念彌陀道場 懺法)’ as it played a text role in creating the Wooden Amitabha Buddha Altarpiece of Yongmunsa Temple. The names of the Eight Bodhisattvas expressed in the Altarpiece are consistent with the ‘Yeombul Bogwonmun (念佛普勸文)’ created by Myeongyeon, a monk at Yongmunsa Temple, in 1704 by extracting the contents of ‘Yenyeom Mitadoryang Chambeop 354 선문화연구 제36집 (禮念彌陀道場懺法)’, and the ‘Yeombul Bogwonmun(念佛普勸文)’ is deeply related to the method of repentance. The eight trigrams on the mandorla of the Buddha and the twelve hexagrams on the outer frame of the Wooden Amitabha Buddha Altarpiece were analyzed based on the ideas of Lee Tong-hyeon of the Tang Dynasty on the New Avatamsaka Sutra(新華嚴經論). The eight trigrams on the mandorla of the Amitabha Buddha are interpreted as symbolizing the Eight Bodhisattvas, and the twelve hexagrams on the outer frame are interpreted as the stages of practicing Hwaeom. In previous studies, there were various views on the arrangement of the twelve hexagrams. However, this is an error in interpretation due to the fact that the lower half of the twelve hexagrams on the outer frame of the Wooden Amitabha Buddha Altarpiece are displayed upside down as viewed from an external fixed point, rather than as viewed from a rotating perspective at the center point. In the 17th century, monks and Confucian scholars interacted around Yongmunsa Temple in Yecheon. The Wooden Amitabha Buddha Altarpiece was enshrined at this temple, a place where Sugyeongsin(守 庚申; a Taoist custom popular at the time), was performed. This has a very important meaning in the history of Buddhist art and Buddhism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at the twelve hexagrams on the outer frame of the Altarpiece are interpreted as a form of faith that combined Buddhism, Confucianism and Taoism at the time.
Key words: Yongmunsa Temple, Wooden Amitabha Buddha Altarpiece, 8-Trigrams, 12-Hexagrams, Sugyeongsin, Yenyeom Mitadoryang Chambeop, Soyeong Shinkyeong
선문화연구 36집(Journal Studies of Seon Culture, 2024. 6)
논문투고일: 2024. 06. 08. 심사완료일: 2024. 06. 23. 게재확정일: 2024. 0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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