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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성리학의 中和論辨에서 보이는 불교의 영향과변용: 朱熹의 中和新說 修養論 구축 과정을 중심으로/김종용. 불교의례문화연구소

 Ⅰ. 들어가는 말

 Ⅱ. 불교의 영향: 南宋 理學의 수양론

   1. 도남학파의 默坐澄心

   2. 호상학파의 已發察識

 Ⅲ. 변용: 中和新說 수양론의 특징

    1. 格物致知를 통한 求中

     2. 未發涵養을 통한 防閑

Ⅳ. 나오는 말

 

 

 요약문

 

본 연구는 성리학 성립과정에서 보이는 불교적 영향과 그러한 영향을 극복 또는 유교적으로 재해석한 변용에 대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먼저 도남학파는 인간의 내면에서 ‘리(理)’를 구하고자 하였으며 그 구하는 바는 미발(未發) 시에 가능하다 보았다.

이에 도남학파에서는미발구중(未發求中)‧미발체인(未發體認)을 목적으로 묵좌징심(默坐澄心)을 수양 방법론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도남학파의 내면에서 ‘리’를구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 앉아서 내면을 다스리는 등의 특징은 분명 선불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러한 도남학파의 이론과는 다르게 주희는 인간 내면에서 자신의 성리(性理)를 직접 구할수는 없다고 보았다.

주희는 미발(未發) 시에 중을 구하는 것[求中]은이미 그 자체로 이발(已發)이기 때문에 불가하다 보았으며, 이발찰식(已發察識)에서 성리(性理)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이전의 함양 공부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성리(性理)를 파악할 수 없다 보았다.

이에 주희는 인간 내면이 아닌 일[事]과 사물에서 리를 구하고자 하였다.

주희는 격물궁리와 같은 외적 공부와 더불어 미발함양(未發涵養)과같은 내적 공부 또한 강조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미발함양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내적 수행을 통한 깨달음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주희는 자신의 내면의 성리를 직접 구하는 것은 불가하다 보았다.

왜냐하면 성리(性理)는 미발의 상태이지만 그 구하는 바가 이미이발이기 때문이다.

이에 주희가 말한 내적 공부 방법론은 ‘함양(涵養)’ 공부이다.

여기서 말하는 함양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방한(防閑)하는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수양이다.

정리하자면 주희는, 리(理)는 밖에서 구하고[格物窮理], 내면의 리는다만 지키는 것[未發含陽]을 기조로 자신의 중화신설(中和新說) 수양론을 완성하였다.

이러한 그의 일련의 중화신설 성립과정은 이전의 리학학파들에서 보이는 불교적 수행론을 극복하고자 하는 주희의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주제어 : 선불교, 성리학, 수양론, 중화신설, 주자

 

Ⅰ. 들어가는 말

본 연구는 성리학 성립과정에서 보이는 불교적 영향과 그러한영향을 극복 또는 유교적으로 재해석한 변용에 대해 살펴보는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미 많은 연구와 학자들이 동의하는바, 성리학 사상은 많은 부분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성리학에서는선진(先秦) 유학에서는 집중하지 않았던 수양론이 크게 발전하는데, 이와 같은 부분에 불교적 영향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본 연구에서는 수양론에 집중하여 주제에 답하고자 한다. 위와 같은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 연구에선 주희의중화신설(中和新說) 정립 과정에서 이를 살펴볼 것이며, 특히 수양론과 더불어 심성론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리학(理學)의 사상에서 불교의 가장 큰 영향은 수양론과 관련한부분이고 그러한 수양론은 심성론의 이론적 배경으로 논리가펼쳐지기 때문이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될 것이다.

  첫째, 주희는도남학파와 호상학파를 거치면서 중화신설을 정립하였기 때문에, 먼저 도남학파의 묵좌징심(默坐澄心)과 호상학파 이발찰식(已發察識)에서 보이는 불교적 영향에 대해 각각 살펴보고,

 둘째 그들[도남학파‧호상학파]의 불교적 영향을 주희가 어떠한 논리로써 해석하고 극복하는지 살펴봄으로써 본 연구 주제에 답하고자 한다.

 

Ⅱ. 불교의 영향: 北宋 理學의 수양론

 

1. 도남학파의 默坐澄心

 

도남학파(道南學派)는 양시(楊時, 龜山: 1053-1135)-나종언(羅從彦, 豫章:1072-1135)-이통(李侗, 延平:1093-1163)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사상 및 수양론적 기조는 양시에 의해 그 틀을 잡고, 나종언에 의해 실천적 방법론이 구체화 되었으며 이통에 이르러 ‘묵좌징심(默坐澄心)’이라는 형태로 정립되었다.

이러한 그들의 사상적진보의 과정을 보면 많은 부분 선불교적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이에이하에서는 도남학파의 이론적 발전과정에서 보이는 선불교적영향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와 같은 작업은 본 연구의 목적인성리학 성립과정에서 보이는 불교적 영향을 살펴보기 위한 일환이다.

정이천(程伊川, 1033∼1107)의 제자인 양시는 정좌(靜坐)하여미발(未發)에서의 중을 구하고자 했는데[求中], 여기서 말하는 중(中) 은 성리학에서 말하는 성품[性] 또는 도심(道心)의 의미와 상통하는것이다.1)

중용(中庸)에서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아직 발현되지않은 상태[未發]를 중(中)이라 하고, 발(發)하여 모두 절도에 맞음을일러 화(和)라 한다.”2)라는 부분을 양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1) 김승영(2011), 74-75 참고

    2) 中庸,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發而皆中節 謂之和.” 성리학의 中和論辨에서 보이는 불교의 영향과 변용∙115

 

중용에서 이르는바,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아직 발현되지 않은상태[未發]를 중(中)이라 하고, 발(發)하여 모두 절도에 맞음을 일러화(和)라 한다.”고 하였다. 배우는 이는 마땅히 감정[喜怒哀樂]이 아직발함이 없을 때[未發]의 마음으로써 이를 체득(體得) 한다면, ‘중(中)’의의미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그것을 잡고 잃지 않음에 인욕(人欲)의사사로움이 없다면, 발(發)하여도 반드시 중절(中節)일 것이다.3)

 

도심의 은미함은 정일(精一)이 아니면 그 누가 그것을 잡을 수 있겠는가. 오직 도심은 은미하니 희노애락 미발의 때를 체험하면, 그 뜻은자연히 알 수 있으며, 언어적 논의가 미칠 바가 아니다. 요(堯)가순(舜)에게 자문해 주고, 순(舜)이 우(禹)에게 명하면서 세 성인이 서로전수했던 것은 오직 ‘중(中)’일 뿐이다.4)

 

위의 양시의 글에서 “감정[喜怒哀樂]이 아직 발함이 없을 때[未發]의 마음으로써 이를 체득(體得)한다면 ‘중(中)’의 의미가 저절로드러날 것이다.”, “희노애락이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때 도심의은미함을 체험한다면 의미는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라는 문구가주목된다.

미발의 상태에서 중(中)이 체득되면 이러한 중의 의미가저절로 드러난다는 것은 이전의 선진(先秦) 유학에서는 볼 수없는 논리이다. 공자는 인간의 본래성에 대해 명확히 밝힌 바가없고,5) 맹자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인간의 성품을 감정적 측면을강조하는 방식으로 설명되었다.6)

 

    3) 宋元學案 卷25 「龜山學案」, “中庸曰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學者當于喜怒哀樂未發之際 以心體之 則中之義自見 執而勿失 無人欲之私焉 發必中節矣.”

    4) 宋元學案 卷25 「龜山學案」, “道心之微 非精一 其孰能執之 惟道心之微而驗之于喜怒哀樂未發之際 則其義自見 非言論所及也 堯咨舜 舜命禹 三聖相授 惟中而已”

    5) 論語에 성(性)에 대한 논의가 전무한 것은 아니나, 극히 일부에서 발견할 수 있고, 그러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춘추 말 당시 본래성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논어에 국한한다면 공자의 심성론을 추출할 수가 없다. 공자의 성에 대한 언급이 단 한 곳[性相近也 習相遠也]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공(子貢)은 ”선생님의 학문은 들을수가 있었으나 선생님께서 인간의 본성과 천도에 관하여 언급하시는 말씀은 들을 수가 없었다.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 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고 탄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논어를 통틀어도 성이라는 글자가 나오는 곳은 두 곳밖에 없다.” 최근덕(1992), 1 참조          6) 오히려 김도일은 맹자의 성품의 실천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부분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김도일(2003), 112-113 참조 

 

다시 말해 선진 유학에서는 미발을 체득 함으로써 성리(性理)를 실현하겠다는 개념이 없는 것은물론이고, 인간의 성품을 ‘얻는다’ 또는 ‘체득한다’는 아이디어자체를 찾아볼 수 없다.

이에 구중(求中)으로써 자신의 성품을 체득하고 이를 통해서 자신의 내적 가능태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선진 유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심성론적 논리는 당대(唐代) 이래로 중국에서 성행하였던 선불교적 심성론과 닮아있는데, 이는 중국 땅에 선불교를 대대적으로 진작시킨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의 자성(自性)은 본래 청정하니 만약 자신의 마음을 인식하여본성을 본다면 저절로 불도(佛道)를 이루게 된다.7)

 

어떠한 사견 또는 알음알이도 없는 본래의 성품을 체험하고, 이러한 체험 안에 절대적 진리 또는 지혜가 본디 내재되어 있고이러한 진리 또는 지혜는 알아차림과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다.8)

이는 분명 성리학 이전 유학에서는 찾아볼 수 있는 선적(禪的) 심성론의 특징인 것이다.

양시의 말대로 미발(未發)의 상태에서 구중(求中)을 해야 한다면, 그 방법론은 무엇인가. 이러한 방법론에 대해 구체적으로고민한 이는 나종언이다.9)

나종언은 광동성(廣東省) 혜주(惠州)에있는 나부산(羅浮山)으로 들어가 수년간 정좌(靜坐)로써10) 미발(未發)의 기상(氣象)을 체인(體認)하고자 할 만큼 정좌에 대한 확신이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오직 정(靜), 즉 미발 시에 머물면서 천리(天理)를 궁구하고자 하였고, 이와 같은 방법론은 그의 평생의과업이었다.11)

 

   7) 六祖壇經(T.48, 0351a03), “我本元自性淸淨 若識自心見性 皆自成佛道.”

   8) 혜능은 정혜는 둘이 아니라 말하면서 선정에 즉하여 지혜가 밝아짐을 말하였다. “스스로 깨달으면 계정혜를 세울 필요가 없다” 六祖壇經 (T.48, 0342b17), “得悟自性 亦不立戒定惠.“

    9) 羅光(1984), 538 참조

   10) 宋元學案 卷39 「豫章學案」, “特科授博羅主薄 官滿 入羅浮山靜坐 紹輿五年卒 年六十四.”

   11) 吳康(1955), 44, 193-194. 

 

고요한 곳에서 마음을 관조하니 티끌에 물들지 않고, 한가한 가운데에 옛 뜻을 살피니 더욱 깊다. 주돈이(周敦頤)의 성(誠)과 정이의경(敬)을 마땅히 대략 이해하고, 이 이후부터 오묘한 리(理)를 밖에서찾기를 멈추었다.12)

 

“오묘한 리(理)를 밖에서 찾기를 멈추었다.”는 그의 선언에서알 수 있듯이 나종언은 외부에서 진리를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인간 내면에서 진리를 찾고자 했으며 그러한 내면을 궁리하기위해서는 인간의 ‘온전한 내면’이라는 측면에서 ‘미발’에 집중한것이다.

이와 같은 양시-나종언의 사상은 이통의 묵좌징심(默坐澄心)‧정좌함양(靜坐涵養)의 수양론적 이론에 기초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 분[이통선생]께서 말씀하시길

“학문의 도는 잡다한말을 하는데 있지 않고, 다만 묵좌하여 마음을 맑게 하여서[黙坐澄心] 천리를 체인하여야 한다. 만약 한 털의 사욕이 발현된다면, 역시 몸을사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노력한다면 분명히 점차 [마음이] 맑아질 것이니, 강학(講學)에 힘이 될 것이다.”라 하셨다.13)

대개 학자들은 사욕에 의해 분열되므로 노력이 정밀하지 못하여그 효과를 보지 못하네. 만약 여기에서 진보하려면, 반드시 여러 갈래의 감각의 길을 끊어 정좌하고 묵식(黙識)하여 [사욕의] 찌꺼기를점차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단지[행동이 아닌] 말일뿐일 것이다.

거듭 깊이 생각해 보아아 한다.14)

 

    12) 羅豫章集 卷13 「觀書有感」, “靜處觀心塵不潔 閑中稽古意尤深 周誠程敬應粗會 奧理休從此外尋.”

    13) 朱熹集 卷97 「延平先生李公行狀」, “故其言曰學問之道不在多言 但默坐澄心體認天理. 若見雖一毫私欲之發 亦退聽矣. 久久用力於此 庶幾漸明 講學始有力耳.”

    14) 李延平集 卷2 「答問上」, “大抵學者多為私慾所分 故用力不精 不見其効. 若欲於此進步 須把斷諸路頭, 靜坐黙識 使之泥滓漸漸消去方可. 不然 亦只是説也. 更熟思之.” 

 

위의 원문에서 우리는 이통의 수양론적 기조를 발견할 수 있다.

먼저 그는 묵좌징심을 말함에 있어 “학문의 도(道)는 잡다한 말을하는데 있지 않고”라하고 “다만 묵좌하여 마음을 맑게 하여서[黙坐澄心] 천리를 체인하여야 하네”라 하였다.

학문의 ‘도(道)’는말에 있지 않다고 하는 이러한 그의 기조는 선불교의 ‘불입문자(不立文字)’에서 온 것으로 보이며, 묵좌를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천리(天理)를 체인(體認)한다는 것 또한 선불교적 영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천리를 ‘체인(體認)’ 한다고하는 표현이다.

체인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속으로 깊이 인정함”이다. 즉, 체인은 얻거나, 쌓거나, 완성하거나 하는 등의 없는 것을신조(新造)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것을 발견, 인식, 인정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이통의 수양론적 논리 또한 남종선의 심성론적 기조가 발견된다는 것을 알수있다.

하지만 이통은 “만약 한 털의 사욕이 발현된다면, 역시 몸을사려야 할 것이다.”, “묵식(黙識)하여 (사욕의) 찌꺼기를 점차 제거해야 할 것이다.”라 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묵식이란 모든 생각을 ‘내려놓음’이라기 보다는 사욕에 국한되는 것이다.

이에 생각이일어남 그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사욕’이라는 측면에 한정하고있다는 점에서는 선불교적 색채보다는 유교적 색채가 강함을알수 있다.

또 주목되는 점은 “찌꺼기를 점차 제거해야 할 것이다.” 라는 부분에서 ‘점차’라는 공부의 단계적 부분을 말하였다.

이와같은 맥락에서 이통은 “(공부를 오랫동안 익히면) 점차 혼연한기상을 볼 수있을 것이다”15), “굳고 막혀 있는 사의가 점차 변화될것이다”16)라 말하면서 남종선의 ‘돈오(頓悟)’사상과는 그 결을달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17)

 

    15) 李延平集 卷2 「答問上」, “可見渾然氣象矣.”

    16) 李延平集 卷2 「答問上」, “即此等固滯私意當漸化矣.”

    17) 정환희(2018), 170-175. 

 

정리하자면, 먼저 도남학파의 심성론적 부분은 분명 남종선의기조를 따르고 있음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 수양적 방법론에 있어서는 정좌(靜坐)라는 행위 그리고 그 행위에서 생각을 스스로다스려 내면을 살펴 본성을 찾아고자 한다[澄心]는 기조는 분명선불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징심(澄心)은 모든 인간적사고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욕’에 한정되어 있다는점에서는 선불교와의 차이점으로 보이고, 또 인간의 내면에 있는천리는 단박에 체득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 수양을 말하고 있다는점에서는 남종선과의 차이가 보인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점차적이라는 말은 쌓는 것이 아닌 본래 것[性理]을 점진적으로 체득해나간다는 의미이다.

 

2. 호상학파의 已發察識

 

호상학파(湖湘學派)는 사량좌(謝良佐, 1050-1130)-호안국(胡安國, 1074-1138), 호굉(胡宏, 1005∼1162)-장식(張栻, 1133-1180)으로이어지는 학파이며 도남학파의 미발(未發) 시에 중(中)을 구하고자하는 방법론과 달리 호상학파는 이발(已發) 시의 수양에 집중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호상학파의 사상 역시 도남학파와마찬가지로 선적(禪的) 영향이 발견되는데, 이에 대한 부분을 이하에서 살펴보자.

호상학파를 사실상 정립한 호굉은 “미발(未發)은 성(性)이라고말할 수 있을 뿐이고, 이발(已發)은 곧 심(心)이라고 말할 수있다.”18)라 하여 성체심용(性體心用)을 분명히 하고, 전통 유학의기조에 따라 인간의 성품에는 이미 천리(天理)가 내재 되어있고, 그러한 천리는 사욕을 절제함에 자연히 발현되는 것으로 보았다.

 

크다 성품[性]이여! 모든 이치[萬理]가 갖춰져 있고, 천지가 이로말미암아 세워진다. 오늘날의 모든 유생들[世儒]이 성품[性]을 말하는것은, 하나의 리[一理]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일 따름이니, 아직 천명(天命)의 온전함을 아는 이가 없다.19)

 

   18) 胡宏集 「與曾吉甫書第二書」, “竊謂未發只可言性 已發乃可言心.”

 

도(道)는 나의 몸에 충만하고 천지에 사이에 두루 하지만 허우대에얽매인 이는 그[道] 큼을 보지 못한다. 도는 마시고 먹고 남과 여의일과 같은 본능적 일에 관하여도 있지만, 절제를 잃음에 빠진 사람은도의 자세함을 알지 못한다.20)

 

위의 원문에서 호굉이 한탄하기를 ‘아직 천명의 온전함을 아는이가 없다’는 것은 자신의 성품을 온전히 이해한 이가 없다는뜻과 다름이 아니다. 호굉이 이를 한탄한 것은 천명을 알 때 진정한의미에서의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그의 사상적 기조가보이는 부분이다.21)

그렇다면 호굉이 말하는 성품이란 어떠한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무릇 인간의 눈이 오색을 보거나, 귀가 소리를 들음이나, 입이 맛을보는 것은 본디 인간의 성(性)이 비롯되는 것이지 밖에서 오는 것이아니다.22)

위의 원문에서 보이는 호굉 성론(性論)의 특징은 절대적 외물이있고 이를 인간이 감각함으로써 세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그반대라는 것인데, 이에 대한 그의 추가적 글을 더 살펴보자면“천명이 그침이 없기에 인간의 삶은 다함이 없다.

귀‧눈‧입‧코‧손‧발을 갖추어 몸을 이루고, 부자‧군신‧부부‧장유‧친구를 합하여 세상을 이루는데, 외부에서 빌려서 억지로 그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성이 그러할 따름이다.”23)라 하였다.

 

    19) 知言 「一氣」, “大哉性乎 萬理具焉 天地由此而立焉 世儒之言性者 類指一理而言爾 未有見天命之全者也.”

    20) 知言 「天命」, “道充乎身 塞乎天地 而拘於軀者不見其大 存乎飮食男女之事而溺於流者不知其精.”

    21) 여기서 우리는 호굉의 실천론이 선지후행(先知後行)에 기반하고 있음을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호굉은 “仁을 실천하고자 하면 반드시먼저 仁의 體를 體得해야 한다.”라 한 것이다. 宋元學案 卷22 「五峯學案」 「知言疑義」, “欲爲仁 必先識仁之體.”

     22) 知言 「陰陽」, “夫人目於五色 耳於五聲 口於五味 其性固然 非外來也.” 

    23) 知言 「修身」, “天命不已 故人生無窮. 具耳目 口鼻 手足而成身 合父子 君臣夫婦 長幼 朋友而成世 非有假於外而强成之也 是性然矣.” 

 

즉 세상은 나의 성(性)으로 말미암아 펼쳐지는 것이니 외물이 나에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우리의 내면[性]이 외물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호굉은“성이란 천지가 세워지는 근거이다”24)라 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성론은 인식론적 주객이 전도된 형태인데 이와 같은 개념은 이전유교에서는 찾아볼 수는 없는 것이고, 오히려 만물은 마음에서비롯된다는 불교 교리에 가깝다.25)

사람들의 자성(自性)은 본래 청정하며 만법(萬法)은 자성에 따라생겨난다. 여러 가지 나쁜 일을 생각하면 악행이 생겨나고, 착한 일을생각하면 선행이 생겨난다.26)

물론 위의 혜능의 말에서는 자성(自性)에 의해 만물이 형성된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만법(萬法)이 자성(自性)에 따라생겨난다”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모든 인식하는 모든상(相)은 오직 마음에서 비롯됨을 주지하고 있다. 이에 조남호 또한“호굉의 주장은 불교의 성체심용론(性體心用論)에 근거하였다”27) 고 한 것이다.

 

    24) 胡子知言疑義, “或問性 曰 性也者 天地之所以立也.”

    25) 이는 남송 시대때까지 유행하고 있었던 단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성(自性)이 만법(萬法)을 포함하고 있으니 이것이 크다. 만법이다 자성이다.” 壇經(T.48, 0339c28), “性含萬法是大 萬法盡是自性”

    26) 六祖壇經(T.48, 0354b12), “世人性本淸淨萬法從自性生 思量一切惡事卽生惡行思量一切善事卽生善行.”

    27) 조남호(2021), 223. 28) 조남호(2021), 227-228.

 

위와 같은 심성론적 이론을 기반으로 호상학파에서는 이발(已發)의 상태가 아니라면 세상은 물론 자신의 내면 또한 인식할수없다고 보았다.28)

왜냐하면 이발(已發)로써 우리는 일(事)과 외물을 구성하고 이러한 구성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성품을 엿볼수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발(未發)로써 가만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힌다고 해서 우리가 자신의 성리(性理)를 체인(體認) 하거나 성찰할 수는 없다 본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호상학파에서는수양에 있어서도 이발(已發)에 집중한다.

이에 대한 부분을 이하에서 살펴보자.

 

미발은 오직 성이라 말할 수 있고, 이발에서야 비로소 심을 말할수있다. 그래서 정이천은 ‘중(中)이란 성의 본래 모습을 형용하는 것’이라고 말했지, 심의 본래 모습을 형용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심의 본래모습이란 성인이 ‘생각함도 없고 행위 함도 없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나 감응하여 마침내 천하의 일에 통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미발일때성인과 보통 사람의 성은 한가지이지만, 이발하여 생각함도 없고 행위함도 없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나 감응하여 마침내 천하의 일에 통하는 것은 성인만이 홀로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은 성을 다하기 때문에 사물에 감응하더라도 고요하고, ‘요원하거나 가깝거나 혹은 그윽하거나 깊은 것을 막론하고 장래의 사물 상태를 모두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은 성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물에 감응하면움직이게 되고 그런 연후에 ‘친우가 너의 생각을 따르게 되며’ 그 올바름을 얻지 못한다. 만일 두 선생[정이천‧양시]께서 미발을 고요히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면, 성인이 사물에 감응하는 것 또한 움직이는것이니 (그렇다면) 보통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29) 위의 원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성인[聖]의 마음과 범인[凡] 의 마음으로 구분될 수 있다. 성인의 마음은 외물에 감응되지않아 내적 고요함을 유지하여 그에 따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30)

 

    29) 胡宏集 「與僧吉甫書三首」, “未發只可言性 已發乃可言心. 故伊川曰 中者所以狀性之體段 而不言狀心之體段也. 心之體段 則聖人 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是也. 未發之時 聖人與衆生同一性 已發則無思無爲 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之故 聖人之所獨. 夫聖人盡性 故感物而靜 無有遠近幽深遂知來物 衆生不能盡性, 故感物而動, 然後 朋從爾思 而不得其正矣. 若二先生以未發爲寂然不動 是聖人感物亦動 與衆人何異”

     30) 이 문구에서 유의할 점은, 여기서 말하는 외물에 감응한다는 것은 실체적 외물이라기보다는 그 외물에 투영된 자신의 내적 사욕이라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호굉은 모든 인식의 내적 동기에 의해서라 말하기 때문이다.

 

오직 성품을 다할 뿐이다.

이에 호굉은 “사람이 마땅히 걸어야하는 길[人之道]은 천리를 받드는 것이다”31)라 한 것이다.

범인은 외물에 감응하여 움직이게 되어 성품을 잃게 된다.32)

하지만 여기서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성인의 마음과 범인의 마음 모두 이발에해당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성인의 마음은 사물에 감응하지않는다하니 미발로 생각할 수 있지만, ‘감응하지 않는 것’과 ‘미발(未發)’은 서로 같은 의미가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33)

이에 호굉이“이발하여 생각함도 없고 행위 함도 없이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나 감응하여 마침내 천하의 일에 통하는 것은 성인만이 홀로그럴 수 있는 것이다.”라 한 것이다.

여기서 호상학파의 사상적 기조가 엿보인다.

호상학파는 인간사의 모든 일은 이미 그 자체로이발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34)

 

천하를 통틀어 하나의 천기활물(天機活物)이 유행발용(流行發用)하는 것일 뿐이니 다른 것이 용납될만한 조금의 틈도 없다. 이발(已發)한것을 근거로 미발(未發)한 것을 정의하자면 이발한 것은 사람의 심(心) 이고, 모든 미발한 것은 모두 그 성이며 어떤 것도 그 안에 포함되지않는 것이 없다. 어떻게 하나의 시간 하나의 공간에 한정된 어떤 것이따로 있어서 그것을 미발이라고 부르는 것이겠는가?35)

 

      31) 知言 「漢文」, “人之道 奉天理者也.”

      32) “보리는 본래 청정하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망념이다.” 六祖壇經 (T.48, 0354b12), “菩提本淸淨 起心卽是妄.”

      33) 미발은 희노애락의 이전을 말하고 감응이 없다는 것은 감각 함은 있으나이에 응(應)함이 없는 상태이다.

      34) 안재호(2017), 89.

      35) 朱熹集 「答張敬夫」, “蓋通天下只是一箇天機活物 流行發用,無問容息. 據其已發者而指其未發者 則已發者人心 而凡未發者皆其性也 亦無一物而不備矣. 夫豈別有一物 限於一時 拘於一處而名之哉.”

 

이와 같은 사상에 기초하여 호상학파는 미발의 수양이 불가하다 보았고, 이에 이발찰식(已發察識)을 주장하는데, 이에 주희는

이발찰식 수양의 논리와 당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상의용(用) 사이에 유행(流行)의 체(體)가 전혀 잠시의 끊어짐이 없다는것을 알면 공부의 출발점이 어딘지 알게된다.”36)

라 한 것이다.

 

    36) 朱熹集 「答何叔京」, “日用之間 觀此流行之體 初無間斷處 有下工夫處.” 

 

위의 글들을 정리하자면 호상학파의 인식론적 부분은 불교의심성론적 영향이 보이는데 이러한 심성론적 기조는 호상학파에서말하는 이발찰식(已發察識) 공부론의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

 

Ⅲ. 변용: 중화신설 수양론의 특징

 

이전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도남학파와 호상학파는 많은 부분불교의 영향을 받았는데, 주희는 그들 학파를 수용 및 비판하면서자신의 사상을 정립하였다.

이에 주희가 도남학파와 호상학파를극복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불교적 영향의 극복과 재해석의 논리를 살펴봄으로써 본 연구의 주제 중 “변용”에 해당하는 부분을수행하고자 한다.

 

1. 格物致知를 통한 求中

 

도남학파에서 주장하는 바 천리(天理)가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성품을 체인(體認)하기 위해서는 미발 시에 중(中)을 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에 이통은 묵좌징심(默坐澄心)을 말하면서 “마음의고요함 가운데에서 큰 근본을 체득(體得)하여 마음이 아직 드러나지 않을 때[未發]의 기상(氣象)이 분명해지면 일을 처리하고 남을상대함에 자연히 절도(節度)가 있게 된다.”37)고 하였다.

이러한 도남학파의 미발의 상태란, 적연부동(寂然不動)하고 충막무짐(沖漠無朕)한 본체를 말하는데, 이러한 마음은 감정이 동하지 않은 상태로 본연의 성리(性理)가 성성한 ‘중(中)’의 상태이다. 위와 같은 이통의 ‘미발(未發)에 기상(氣象)을 체인하라’는 주장에 주희는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보았다. 미발의 기상을 체인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이미 발동한 상태[已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상을 체인하려는 그 시도 자체가 이미 이발이기 때문에 이심구심(以心求心)의 논리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에 주희가말하기를 “오늘날 학문하는 자 중 어떤 이는 날마다 반나절 동안마음을 고요히 하는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미발을 한때로이발을 한때로 보는 잘못이 있다.”38) , “희노애락에는 자연히 발할때가 있고 미발할 때도 있습니다. 각기 처한 바에 따라 공부가있는 것이지, 어찌하여 강제로 미발로 돌아가려 합니까.”39)라 말하며 도남학파 수양론의 이론적 모순을 꼬집었다. 또한 상세히 말하여 비판하기를 성현의 말씀에 이른바 ‘마음이 발동하기 이전의 중용 상태[未發之中]’, ‘고요하여 전혀 움직임이 없는 마음상태[寂然不動]’가 있다고한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마음이 유행하는 때를이발의 상태라 하고 잠시동안 정좌 등을 하여 마음이 쉬면서 일과접촉하지 않은 때를 가리켜 미발한 때라 하겠는가. 이런 식으로 구한다면 점점 의식이 사라지며 아무런 생각도 없는 가운데 어둡고 꼭 막힌상태가 되어서 이것이 텅 비었으나 밝아서 모든 사물을 인식하는미발의 본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순간 다시 깨어나면 또다시 이발의상태가 되어 고요한 본체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구하면 구할수록더미발을 볼 수 없다.40)

 

   37) 朱熹集 卷40 “李先生敎人 大抵令於靜中體認大本 未發時氣象分明 處事應物 自然中節 此乃龜山門人相傳旨訣”

   38) 語類 卷62 「中庸一」, “今學者或謂每日將半日來靜做工夫 即是有此病也.”

   39) 語類, 卷36 「論語十八」, “喜怒哀樂 自有發時 有未發時 各隨處做工夫 如何强復之於未發.”

   40) 朱子大全 卷30 “聖賢之言則有 所謂未發之中寂然不動者夫豈以日用流行者 爲巳 而指夫暫而休息不與事接之際爲未時耶嘗試以此 求之則泯然無覺之中邪暗鬰塞似非虚明應物之體而 㡬微之際一有覺焉則又便爲巳而非寂然之謂蓋愈 求而愈不可見” 

 

미발(未發) 시에 중(中)을 구하고자 하는 수양 방식은 이전유가에서는 볼 수 없는 수양 방법론이다.

이전 장에서 논의한 바와같이 인간 내면에 근본적 진리가 있고 이를 직접적으로 인간내면에서 찾고자 하는 방식, 그리고 이를 고요히 앉아 스스로를관조하는 방법론은 분명 선불교적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를 비판한주희의 변용은 무엇인가. 주희 또한 인간 내면에 천리(天理)가 내재되어 있음은 부정하지않는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주희는 인간 내면에서직접적으로 천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하다 보았다.

이에 주희가선택한 방법은 ‘격물궁리(格物窮理)’이다.

격물궁리의 방법론이 가능한 것은 ‘리일분수(理一分殊)’의 개념에서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만물이 서로 다른 정형을 나타내고 있을지라도 모두 같은 하나의리[理一]를 공유한다는 것이 리일분수의 핵심 개념이다.

이에 꼭 나의 성품 안에만 리(理)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일[事]과 외물[物]에나아가서도 성리(性理)와 다름 아닌 리(理)를 구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41)

 

격(格)이란 진(盡)이라는 뜻으로서 격물(格物)은 모름지기 사물의이치를 궁진(窮盡)하는 것이다.42)

 

나의 앎을 이루기 원한다면 사물(事物)에 나아가 그 리(理)를 궁구해야 한다.43)

 

      41) 박성호(2016), 11-12 참조.

      42) 語類 卷15 「大學二」, “格物者 格 盡也. 須是窮盡事物之理.”

      43) 大學章句, “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 

 

위의 두 원문에서 보듯이 격물은 물에 나아가 이치를 궁구하는것이며, 이는 곧 자연의 이치인 리를 알기 위함인 것이다.

다시말해 격물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 사물이나 일의 이치에 국한한궁리가 아니라 그 속에서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보편적인 리(理)를궁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격물궁리 공부에 의한 활연관통(豁然貫通)은 단박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는것이고, 활연관통 이후에는 능히 리를 앎으로 더 이상의 격물궁리는불필요한 것이다.

 

어떠한 이가 묻기를

 

“격물이란 반드시 모든 사물을 하나하나에나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도리어 하나의 사물에 나아가기만 해도모든 리(理)가 다 통하는 것입니까.”

 

답하기를

 

“하나의 사물에 나아가 모든 리(理)가 통하는 것은 안자[顔子; 顔回]라도 그러한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오직 오늘 하나의사물에 나아가고, 내일 또 하나의 사물에 나아가 많이 쌓아나간 이후에야 툭 트여서 하나로 통하는 곳이 있을 따름이다.”

 

또 말하길.

 

“하나의 몸에서부터 만물의 이치에 이르기까지 많이 알게 되면 저절로환하게 깨닫는 곳이다.44)

이른바 천하의 물을 다 궁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만약 열 가지일을 궁구하여 여덟아홉 가지를 얻게 되면 그 나머지 한두 가지는비록 궁구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장차 가까이 와서 모두 저절로 알게될것이라는 말이다. 또 사방을 궁구하여 이미 얻었다면 중앙은 비록궁구하지 못했을지라도 이는 필경 중간에 있는 것이니 장차 관통하여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45)

 

      44) 近思錄, “或問 格物須物物格之 還只格一物 而萬理皆知. 曰 得怎會貫通 若只格一物 便通衆理 雖顔子亦不敢如此道. 須是今日格一件 明日又格一件 積習旣多 然後脫然 自有貫通處.”

     45) 語類 卷18 「大學五或問下」, “所謂 不必盡窮天下之物者 如十事已窮得八九則其一二雖未窮得 將來湊會 都自見得. 又如四旁已窮得 中央雖未窮得 畢竟是在中間了 將來貫通 自能見得.”

 

이와 같은 주희의 점차에 의한 활연관통 논리는 남종선(南宗禪) 의 ‘돈오(頓悟)’보다는 북종선(北宗禪)의 ‘점수(漸修)’에 가깝다는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희의 점차적 수양론이 북종선의 영향인지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다만주자가 살았던 당시 남종선이 주를 이루었다는 사실46)을 고려한다면 남종선의 돈오 사상과 차별점이 있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한부분이다.

주희의 격물궁리 방법론의 최종적 목적은 자신의 성리(性理)를이해하는 것이다.

 

궁리(窮理)는 오로지 외부에 있는 리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효제(孝悌)가 되고 어떻게 하면 충신이 되는지 이러한 것들을유추하여 미루어 통하여 지당에 처하기를 구하는 것이 곧 ‘궁리’의일이다.47)

 

사람은 모름지기 이 사물(事物)을 몸소 성찰(省察)하여 성실하게나에게 있게 하면 된다.48)

 

      46) 윤영해(2000), 108-109 참조; 주희는 자신의 글에서 선불교를 비판하는부분에서 간화선을 말하고 있으니 당시 선불종의 주류가 남종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선을 배우는 자들은 다만 ‘무엇이 부처인가’, ‘삼베 세근’ 등 하나의 화두(話頭)만을 가지고 볼 뿐 도무지 천착해서 얻을 의리가 없다.” 語類 卷126 「釋氏」, “學禪者只是把一箇話頭去看 如何是佛 麻三斤之類 又都無義理得穿鑿.”

      47) 語類 卷30 「論語十二」, “窮理 非是專要明在外之理. 如何而為孝弟. 如何而為忠信. 推此類通之. 求處至當. 即窮理之事也.”

      48) 語類 卷9 「學三」, “人須是體察得此物誠實在我 方可.” 

 

인간의 성품을 이해하고 체득하기 위해 인간 내면이 아니라일과 외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구한다는 주희의 수양론적 아이디어는 분명 선불교의 수행론과는 차별되는 지점이다.

주희는 사건과외물이라는 실질적 그 무엇에서 천리(天理)를 궁구하고자 하는것이다.

이에 그가 말하는 리를 활연관통(豁然貫通)함에 있어서도점차적 입장을 취하는데, 이 또한 실질적 경험에 의거한다는 점에서그는 분명 형이하에서 이치를 궁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주희는 불교의 선수행은 실질적이지 못한 공부라 비판한다.

 

선(禪)은 한낱 멍청하게 지키는 법일 뿐이다. 예컨대 ‘삼베 세근’이나 ‘마른 똥 막대기’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들의 도리는 당초부터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을 마비시키는 것일 뿐이다. 다만한길만을 생각하여 오로지 한 가지만 하기를 오래 하면 홀연히 보이는곳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한마음을 잡아 산란치 않게 하여 오래 하면 나중에 광명이 저절로 빛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깨닫기만 하면 게송을지을 수 있다. (…) 내가 예부터 참선에 대해 즐겨 물었지만 그들의 주장은 다만 이와 같을 뿐이다.49)

 

위의 원문에서도 보이듯이 분명 주희는 선수행(禪修行)에 대한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분명해 보인다.50)

 

    49) 語類 卷126 「釋氏」, “禪只是一箇呆守法 如 麻三斤 乾屎橛 他道理初不在這上 只是教他麻了心 只思量這一路,專一積久 忽有見處 便是悟. 大要只是把定一心 不令散亂 久後光明自發. 所以不識字底人 才悟後便作得偈頌. (…) 某舊來愛問參禪底 其說只是如此.”

     50) 본 연구의 목적이 성리학의 불교 영향과 변용이니만큼 주희의 선(禪)에대한 이해 정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다. 

 

그리고 주희가 가지고 있었던 선(禪)에 대한가장 큰 비판은 격물궁리와 달리 선(禪)은 일과 사물에 나아가 이를궁리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인 세상 이치와는 동떨어진 것으로실천과는 별개의 공부라는 것이다.

승가가 말하는바 선(禪)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이 행하는 바와 전혀상응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몇몇 좋은 승려들이 선을 잘 말하고 또잘실천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본래 그들의 자질과 사람됨이 좋은것일 뿐 선의 힘은 아니다.

이른바 선이라고 하는 것은 승려들이 그들의 일반적인 견해를 제출한 것이다.

예컨대 수재들이 과거 준비를하는 것과 같아서 실천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배운 바가 있는 사람은허다한 날카로운 말로 막힌 곳을 단번에 벗어나 바로 수습해 버린다.

그러나 그들의 사람됨에 있어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선은 본래 단지 선일 뿐이어서 실천과는 상응하지 않을 따름이다.51)

이처럼 주희는, 선(禪)은 다만 “수재들이 과거 준비를 하는것과 같다”라고 말하며 다분히 이론적인 공부라면서, “그들[선수행자]의 사람됨에 있어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선(禪)은본래 단지 선일 뿐이어서 실천과는 상응하지 않을 따름이다.”라말하며 실천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공부로 결론 내린다.

이러한그의 판단에 따라 그는 인간의 내면에서 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만사와 만물에 두루한 리로 나아가 궁리함으로써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2. 未發涵養을 통한 防閑

 

호상학파의 가장 큰 특징은 이발 시의 찰식을 통해 자신을살펴 자신의 성리(性理)를 체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발찰식에입각하여 수양하였던 주희는 다음과 같이 이발찰식을 비판하였다.

 

단지 근원으로부터 쏟아지는 대단한 기상을 보았을 뿐입니다. 요즘에 들어 다만 큰 변화로 내몰려서 마치 거대한 물결에 휩싸인 채 잠시라도 정박할 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입니다. (…) 최근에 들어서야 큰 변화 속에서 제 스스로가 편안한 집[安宅]을 가져야 한다는것과 더불어 이러한 집이 제가 마음과 몸을 편히 하고 하늘의 명을세우고[安身立命], 지각을 주재하는 곳이며, 따라서 커다란 근본[大本]을세우고 달도(達道)를 행하는 것이 요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52)

 

   51) 語類 卷126 「釋氏」, “僧家所謂禪者 於其所行全不相應. 向來見幾箇好僧說得禪 又行得好 自是其資質為人好耳 非禪之力也. 所謂禪 是僧家自舉一般見解如秀才家舉業相似 與行己全不相干. 學得底人 有許多機鋒 將出來弄一上了 便收拾了 到其為人 與俗人無異. 只緣禪自是禪 與行不相應耳.”

    52) 朱熹集 卷32 「答張欽夫」, “蓋只見得箇直截根源傾湫倒海底氣象. 日間但覺 爲大化所驅 如在洪濤巨浪之中 不容少頃停泊 蓋其所見一向如是. (…) 而今而後乃知浩浩大化之中 一家自有一箇安宅 正是自家安身立命 主宰知覺處 所以立大本 行達道之樞要  

 

라고 하면서 “편안한 집[安宅]”의 필요성을 말하였다.

여기서말하는 ‘안택(安宅)’이라고 하는 것은 곧 성리(性理)를 말하는데, 이는 이발하여 찰식할 시에 사정시비(邪正是非) 판단의 기준이 된다.

즉 안택은 찰식 과정에서의 판단 기준인 것이다.

주희가 “요즘에들어 다만 큰 변화로 내몰려서 마치 거대한 물결에 휩싸인 채잠시라도 정박할 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입니다.”라고 말한것은 이발하여 찰식하고자 하지만 찰식을 위해서라면 그 찰식의기준인 리(理)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부재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주희는 찰식 이전에 함양 공부의 필요성을 피력하게 되니 이것이 주희의 선함양 후찰식(先涵養 後察識)의 논리이다.53)

이에 주희는 “처음부터 존양하지 않고 일에 나아가 찰식하고자 하면, 아득하기만 하고 착수처(着手處)가 없게 되어 아주작은 차이가 천리(千里)의 어그러짐을 불러와 말로 다 할 수 없는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54)라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주희의수양적 기조는 이전 호상학파의 선찰식 후함양(先察識 後涵養)과는그 선후 관계를 완전히 뒤바꾼 것으로 주희의 중화신설(中和新說) 에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주희의 선함양(先涵養) 즉, 미발함양(未發涵養)과 이전 주희가 비판하였던 도남학파의 미발체인(未發體認)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희 미발함양의 방법론은 ‘계신공구(戒愼恐懼)’이다.

계신공구는 도남학파에서 말하는 미발 시에 성리(性理)을 구하고자 함이아니라 미발의 성리를 다만 존양함55)을 말하는 것인데, 이에 주희가 말한 미발 시의 공부라는 것은 “측은‧수오 등의 단예(端倪)가 아직 발현하지 않았을 때 공경스럽고 조심스런 자세로 [잠재태로서의 본성을]함양해가는 일”56)이라 하였다.

 

       53) 語類 卷18 「大學五或問下」, 涵養於未發見之先,窮格於已發見之後

       54) 朱熹集 卷32 「答張欽夫」, “初不曾存養 便慾隨事察識 竊恐浩浩茫茫 無下手處 而豪釐之差 千里之繆將有不可勝言者.”

      55) 여기서 말하는 존양은 ‘기른다[養]’는 의미보다는 ‘지킨다[守]’는 의미에더욱 가깝다.

 

즉 미발의 상태에서리를 체인하고자 한 도남학파와 달리 주희는 미발의 상태에서다만 사욕의 지나침이 없도록 ‘방한(防閑)’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하는 공부이다.

계신공구(戒愼恐懼)는 ‘미발(未發)’이기는 하지만, 그저 ‘미발’로 여기기만 해서는 안된다. ‘미발’[愚案: 未發本性]을 기르는 방법[所以]이기때문이다. (…) 혹자가 묻기를, “공구(恐懼)라 함은 이미 생각한 것이아닙니까.” 답하기를, “생각과는 또한 다르다. 생각은 생각하여 찾는일이지만, 계신공구는 곧 미발을 지켜 방한(防閑)하는 바이다.”57)

이러한 계신공구 공부의 핵심은 인간의 본래성을 지킴[守]이다.

이에 생각으로써 이를 찾거나 궁구하는 것이 아닌 다만 함양해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희가 말하기를 “무릇 만사(萬事)가 아직 싹트지 않았으나, 스스로 이렇게 계신공구(戒愼恐懼)하여 늘 이 마음을 일깨워서 늘 여기에 둔다는 것이다.”58),

 

“‘계신공구’를 너무 무겁게 말해서도 안되고, 너무 그렇게 깜짝 놀라 벌벌떨듯 해서도 안된다. 다만 항상 일깨워서[提撕] 이것[性體]을 항상보존하여 잃지 않도록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59)라 한 것이다.

 

    56) 語類 卷18 「大學五或問下」, “且得恭敬涵養 有箇端倪發見 直是窮格去 亦不是鑿空尋事物去格也.”

    57) 語類 卷62 「中庸一」, “或問 恐懼是已思否. 曰 思又別. 思是思索了 戒慎恐懼 正是防閑其未發.”

    58) 語類 卷62 「中庸一」, “凡萬事皆未萌芽 自家便先恁地戒慎恐懼 常要提起此心 常在這裏.”

    59) 語類 卷18 「朱子十四」, “也不須得將戒慎恐懼說得太重 也不是恁地驚恐. 只是常常提撕 認得這物事 常常存得不失” 

 

즉 스스로 경계하는 알아차림을 주희는 이발이 아닌 미발로 정의하는 것이다.

위의 미발함양에 대한 논리는 주희가 정자(程子)를인용한 부분에서 잘 드러난다.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미발(未發)에서 또 어떻게 구한단말인가? 단지 평소에 함양하는 것뿐이다. 함양이 오래되면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발했을 때 중절(中節)할 것이다.” (…) 미발 때의중(中)은 본체가 저절로 그러한 것이니 일부러 찾아서는 안 된다. 이때에는 오직 경(敬)의 태도로 지수(持守)하여 이 기상(氣象)을 항상 지켜잃지 않게 한다면, 이것으로부터 발출되는 감정은 반드시 중절하게될것이다.60)

 

    60) 朱熹集 卷67, “又云 未發更怎生求 只平日涵養便是. 涵養久則喜怒哀樂發而中節. (…) 未發之中 本體自然 不須窮索. 但當此之時 敬以持之 使此氣象常存而不失 則自此而發者其必中節矣.” 

 

이전 장에서 살핀 바와 같이 호상학파의 이발찰식은 선불교수행과는 차별되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발이 아닌이발에 집중한 수양이라는 점에서 그러했다.

하지만 주희에 들어미발의 수양 공부를 다시금 강조하면서 수양에서의 선적(禪的) 색채가 다시 드러나는 측면이 보인다.

하지만 주희는 인간의 내면에서 불성을 찾는 선불교와는 다르게 방한(防閑), 지수(持守)라는표현으로 대변되는 내면의 지킴을 미발의 공부법으로 내세워 선불교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Ⅳ. 나오는 말

 

본 연구는 성리학 성립과정에서 보이는 불교적 영향과 그러한영향을 극복 또는 유교적으로 재해석한 변용에 대해 살펴보는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화신설(中和新說)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도남학파와 호상학파에서보이는 불교적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그러한 부분들을 주희가 어떠한 논리로써 비판하고 변용하였는지 살펴보았다.

먼저 도남학파는 인간의 내면에서 ‘리(理)’를 구하고자 하였으며 그 구하는 바는 미발(未發) 시에 가능하다 보았다.

이에 도남학파에서는 미발구중(未發求中)‧미발체인(未發體認)을 목적으로 묵좌징심(默坐澄心)을 말하였다. 이러한 도남학파의 내면에서 리를구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론이 앉아 자신의 내면에집중하는 등의 특징은 분명 선불교의 영향으로 보인다.

주희는인간 내면에서 자신의 성리(性理)를 직접 구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도남학파의 비판에서는 미발(未發) 시에 중을 구하는 것[求中]은이미 그 자체로 이발(已發)이기 때문에 불가하다 보았으며, 이발찰식(已發察識)에서 성리(性理)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이전의 함양공부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성리(性理)를 파악할 수 없다 보았다.

이에 주희는 인간 내면이 아닌 일[事]과 사물에서 리를 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그의 논리의 이론적 근거는 리일분수(理一分殊) 이다.

이에 일과 외물에도 성리와 다름 아닌 리가 내재되어 되어있음의 논리가 설명된다.

이에 사와 외물에 나아가 이를 파악하고자 했으니 이러한 그의 방법론이 ‘격물궁리(格物窮理)’이다.

이러한격물궁리는 다만 사와 외물의 리를 파악하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성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다. 따라서주희는 불교와 같이 자신의 내면에서 궁극적 진리를 찾고자 한것이 아니라 외물에 나아가 진리를 구하고자 한 것이다.

주희는 격물궁리와 같은 외적 공부와 더불어 미발함양(未發涵養)과 같은 내적 공부 또한 강조하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미발함양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내적 수행을 통한 깨달음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주희는 자신의 내면의 성리를 직접구하는 것은 불가하다 보았다.

왜냐하면 성리는 미발의 상태이지만 그 구하는 바가 이미 이발이기 때문이다.

이에 주희가 말한내적 공부 방법론은 ‘함양(涵養)’ 공부이다.

여기서 말하는 함양은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수양이다.

이에주희는

“미발(未發)의 중(中)이란 본체가 본디 그러한 것으로 반드시 궁색(窮索)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응당 이러할 때는경(敬)으로써 지키고[敬以持之] 이 기상(氣象)을 항상 존양하고 잃지않는다면, 즉 이러한 발함이 반드시 절도[中節]에 맞을 것이다.”61)

라 한 것이다.

 

      61) 朱熹集 卷67 「已發未發說」, “未發之中 本體自然不須窮索. 但當此之時 敬以持之 使此氣象常存而不失 則自此而發者 其必中節矣.” 

 

따라서 주희의 미발 공부 방법론은 구중(求中)이아닌 방한(防限), 지수(持守)를 강조하면서 불교 수행과는 그 방법론에 차이를 둔 것이다.

정리하자면 주희는, 리(理)는 밖에서 구하고[格物窮理], 내면의 리는 다만 지키는 것[未發涵養]을 기조로 자신의 중화신설(中和新說) 수양론을 완성하였다.

이러한 그의 일련의 중화신설 성립과정은 이전의 리학 학파들에서 보이는 불교적 수행론을 극복하고자하는 주희의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본 연구는 ‘성리학의 중화논변(中和論辨)에서 보이는 불교의영향과 변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만큼 다소 성리학적 시각을대변하는 성격이 없지 않다.

이에 중화신설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불교적 영향 또는 색채에 대한 부분, 다시 말해 주희가 중화신설을 통해서도 극복하지 못한 여러 불교적 부분에 대해서는 집중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과제로 남겨두며 본 연구를 마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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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Influence and Transformation of Buddhism seen in Neo-Confucianism’s Zhong he xin shuo[中和新說]: Focusing on the Process of Constructing the Theory of Cultivation in Zhu xi[朱熹]’s Zhong he xin shuo[中和新說]

Kim, Jong Yong (The Institute of Buddhist Ritual & Culture)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Buddhist influence seen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Neo-Confucianism and the transformation of such influence by overcoming or reinterpreting it in a Confucian way. First, the Dao nan[道南] school believed that humans wanted to seek Li[理] from within, and that seeking was possible during Wei fa[未發]. Accordingly, the Dao nan[道南] school spoke of Mo z o cheng xin[默坐澄心] for the purpose of Wei fa qiu zhong[未發求中]‧ Wei fa ti ren[未發體認]. The characteristics of the Dao nan[道南] school, such as its desire to seek Li[理] and its specific methodology of sitting and practicing, clearly appear to be influenced by Zen Buddhism. Zhu xi[朱熹] believed that one cannot directly seek one's Xing li[性理] within a human being. In the criticism of Dao nan[道南] school, it was considered impossible to seek Zhong[中] during Wei fa [未發] because it was already Yi fa[已發] in itself. And, trying to discover Xing li[性理] in Yi fa cha shi[已發察識], it was believed that Xing li[性理] could not be grasped because the previous cultivation study was lacking. Accordingly, Zhu xi[朱熹] tried to seek Li[理] fromwork and things, not from within humans. 성리학의 中和論辨에서 보이는 불교의 영향과 변용∙139 Zhu Xi also emphasized internal studies, such as Wei fa han yang [未發涵養], in addition to submaterial studies such as Ge wu qiong li [格物窮理]. Wei fa han yang [未發涵養] mentioned here was different from the enlightenment through internal practice mentioned in Zen Buddhism. As mentioned earlier, Zhu xi [朱熹] believed that it was impossible to directly seek one's inner Li [理]. This is because Li[理] is in the state of Wei fa[未發], but the object sought is already Wei fa[已發]. Accordingly, the internal study methodology mentioned by Zhu Xi [朱熹] is cultivation study. The cultivation referred to here is one whose purpose is not to seek, but to protect. To summarize, Zhu xi [朱熹] completed his Zhong he xin shuo [中和新說] theory of cultivation based on the principle of seeking Li [理] below the form and only protecting the inner Li [理]. The process of completing Zhong he xin shuo [中和新說] as above appears to be the result of Zhu xi [朱熹]'s concerns to overcome the Buddhist practice theory seen in the previous Li xue [理學] schools.

 

Keywords : Soen Buddhism, Neo-Confucianism, cultivation theory, Zhong he xin shuo[中和新說], Zhu xi[朱熹]

 

KCI_FI003112419 (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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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2024. 06. 22 | 심사기간 2024. 07. 23 - 08. 09 | 게재확정 2024. 08. 09

佛敎硏究 제61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