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역사적 복음주의 운동은 성경주의, 십자가 중심주의, 회심주의, 행동주의 라는 네 가지 특징을 지닌다. 이 가운데 회심주의와 행동주의는 복음전 도에 대한 헌신과 실천으로 나타난다.1
1 David W. Bebbington, Evangelicalism in Modern Britain: A History from the 1730s to the 1980s (London: Unwin Hyman, 1989). 2–17.
이러한 전도의 실천이 오늘날의 사회, 문화적 환경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본 논문은 한국 교회가 처한 기독교에 대한 비우호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원주의와 표현적 개인주의의 문화 패러다임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기독 교로 설득하는 전도의 사역이 어떻게 윤리적 타당성을 갖는지를 고찰한 다.
이는 세속사회에서 복음을 전하며 신앙의 세계로 초대하는 행동이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의 삶과 양립가능한지에 대한 논의와 성 경적, 신학적으로 윤리적 타당성을 갖춘 전도의 실천적 기준에 대한 고 찰도 포함할 것이다.
복음전도의 타당성을 추구하는 이러한 작업은 결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는 행위가 일반적인 상식과 관습에 부합될 수 있음을 이해시키고 교회의 핵심 사명인 증인의 삶에 대한 자신감과 사명을 진작시키고자 한다.
Ⅱ. 본론
1. 작업적 정의(working definition): 개종활동으로서의 전도
본 연구에서 논하는 전도의 개념은 “상대방을 개종시키고자 권유하는 활 동”(proselytism)이다. 영어의 proselytism 또는 proselytizing은 좁은 의미에 서의 전도, 혹은 전도 행위의 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본 연구에서 는 “개종활동”이라는 용어로 번역해서 사용할 것이다.
신학적 실천으로서 의 전도는 이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로잔선언에서는 전도를 현존(presence), 선포(proclamation), 설득(persuasion)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해서 정의한다.2 전도에 대한 신학적 체계화 작업을 한 윌리엄 에이브럼(William Abraham)은 “전도는 사람들을 처음으로 하나님 나라로 입문(initiation)시키기 위한 일련 의 의도적 활동들”3이라고 하면서 전도를 단순히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 는 단회적 활동이 아닌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응답하는 삶으로 초대하는 목회적 책임의 사역 과정으로 보게 한다.
본 논문은 전도의 신학적 의미나 사역적 전략을 논하기보다는 설득 활동으로서의 전도, 즉 다른 사람들을 자기 종교로 개종시키고자 시도하 려는 포교 활동에 대한 윤리적 성찰을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개종활동 은 신학적으로 정련된 전도의 의미나 실천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통념 적으로 인식되는 전도의 개념에 더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전도 (evangelism)의 활동적 측면을 가리키는 선포(proclamation), 증언(witness), 또는 회심(conversion)과 같은 용어들이 있다. 선포가 전도자의 권위 있는 복음적 대언을 의미한다면, 증언은 전도자의 경험적 진술에 좀 더 가깝 다.
그러나 선포와 증언은 청자의 응답을 기대하긴 하지만, 반드시 개종 이라는 결과를 의도하는 행위를 내포하진 않는다.
따라서 개종활동은 전 달적 측면에서 선포와 증언을 포함할 수 있지만 종교를 받아들이게 하려 는 강한 의도를 지닌다.
개종활동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개종이라고 번역되는 회심(conversion)의 신학적 의미와는 다른 차원으로 사용된다.
회심은 ‘개종시킴’(converting)의 활동을 넘어서 복음의 핵심인 회개와 믿 음을 포괄하여 영성과 정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에 전도 신학에서 중요한 차원을 지니는 개념이다.4
2 https://lausanne.org/content/covenant/lausanne-covenant#cov
3 William Abraham, The Logic of Evangelism (Grand Rapids: Eerdmans, 1989), 95.
4 박홍규, “회개와 믿음: 복음의 핵심으로서의 그 가치와 불변성”, 「성경과 신학」 42 (2007), 67. 66-97)
그러나 인간 마음의 근본적 변화를 가리키는 회심(回心)이라는 신앙의 귀의 과정에 대해서는 신학뿐 아니라 종교학,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등의 학제적 연구가 요구된다. 따라서 본 연구의 관심은 넓은 의미의 회심과는 구별되는 좁은 차원의 개종활동을 향한다. 최근 한국교회의 성장이 정체되고 가나안성도와 탈교회 현상이 일어 나면서 전도에 대한 위기의식도 높아졌다.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교회 의 대 사회적 신뢰도는 더욱 낮아졌다. 이는 전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 및 교회 내의 위축감을 조성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따라서 교회의 전도를 다시금 모색하는 이 상황은 전도의 윤리적 타당성에 대한 성찰을 요청한다.
2. 복음전도의 부정적 상황 진단
오늘날 과거에 비해서 전도가 어렵다는 진단이 많다. 이는 교회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도 뿐 아니라, 인식론적 틀에서 개인의 선택과 취향 을 지배적인 가치로 보는 문화의 부상도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종교, 인종, 문화가 교차하는 다원주의 환경도 영향을 준다. 따라서 개종 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조성하는 환경적 여건들을 먼저 진단할 필요 가 있다.
1) 한국교회의 사회적 이미지
2023년 1월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에서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서 조 사한 한국교회의 신뢰도 7차 조사 결과는 신뢰하지 않는다가 74%로 나 왔다.
이는 2020년에 했던 6차 조사에 비해 10.8% 하락한 결과다.
특히 2023년 조사에서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는 문항에 대한 응 답은 긍정이 20.6%, 부정이 75.2%로 나왔다.5
5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자료집, 2023, 13, 18
2022년 4월에 같은 기관에 서 ‘사귐과섬김 코디연구소’와 국민일보가 공동 의뢰를 받고 행한 조사에 서도 천주교와 불교에 비해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는 현저히 낮았다.
가 장 낮았으며, 특히 기독교를 대표하는 핵심 단어로 유일하게 꼽힌 것이 ‘배타적’이었으며 주변 단어가 물질적 위선적이었다. 천주교가 도덕적, 헌 신적, 희생적이 핵심 단어이며, 불교가 포용, 상생이 핵심 단어인 것과 대조된다.6
6 국민일보, “기독교 배타적...호감도 25% 그쳐”, 2022년 4월 27일자 인터넷판 기사.
2) 전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2023년에 발간된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를 보면 비개신교인들 가운 데 개신교인으로부터 전도 받은 이들은 70.8%로서 타 종교보다 높지만, 그 비율은 2017년 조사(84.8%)에 비해 14%나 하락한 수치다.7
이들 가운 데 전도를 받았을 때 거부감이 들었다는 응답 비율이 72.5%로서 2017년 조사(71%)보다 더 높아졌다.8
즉, 비개신교인의 전도에 대한 거부감은 늘 어나고 개신교인의 전도활동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전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청년층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2013년 대학신입생 143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서 74%가 전도에 대해서 관심이 없거나 거부감이 든다고 했는데, 그 중 거부감이 든다고 응답한 이들의 이유는 1위가 ‘종교 권유활동이 싫어 서’(52%)이며, 2위는 ‘접근법이 싫어서’(35%)로 나왔다.9
2021년 장진명의 연구에서도 교회를 떠난 청년들이 교회에 실망하는 이유 1위는 지나친 전도활동이었으며, 교회에 출석하는 청년들은 교회성장주의를 가장 큰 실망 요인으로 꼽았다.
표현은 다르지만 교회 이탈청년과 출석청년 모두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전도의 강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10
7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23), 295.
8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 300.
9 기독신문, “캠퍼스 전도, 거부감 해소가 관건”, 2014년 1월 13일자 인터넷판 기사.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84077 2023년 4월 1일 접속
10 한국성결신문, “지나친 전도 싫어서 교회 안 나가” 2021년 6월 9일자 인터넷판 기사. https://www.keh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9735 2023년 4월 1일 접속
3) 전도에 대한 긍정적 전망의 약화
2022년 8월 한국교회 지도자센터의 의뢰로 지앤컴리서치에서 목회자 434 명에게 2023년 목회환경에 대한 전망을 물었는데, 목회자들이 현재 사역 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을 1, 2 순위로 선택하게 했는데 ‘새신자 유입 의 감소’가 가장 높았다(52%).
2023년 목회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는지, 부 정적으로 보는 지를 묻고 그 이유를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긍정적인 전 망의 1위는 성도들의 ‘교회 출석률이 나아질 것 같기 때문’(68%)인 반면, ‘전도가 잘 될 것 같다’는 응답은 10%에 그쳤다.
목회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꼽은 이유 가운데 1위는 ‘전도가 잘 안될 것 같아서/새신자 가 안 들어올 것 같아서’였다(51%).11
11 http://www.mhdata.or.kr/bbs/board.php?bo_table=gugnae&wr_id=72 2
즉, 목회자들은 교회의 상황을 긍정 적으로 보든, 부정적으로 보든, 전도가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
목회자들의 이러한 응답은 일반 교인들의 사역에 대한 기대와는 차 이가 있다.
2022년 4월 지앤컴리서치에서 만 19세 이상의 기독교인 남녀 1500명에게 코로나 이후 교회가 중점적으로 해야 할 사역을 순위별로 고 르게 하였는데, 심방과 전도를 1순위나 2순위로 기재한 응답률은 8개의 중점 강화 사역 가운데 가장 낮은 8%로 나왔다.12
4) 강요로서의 개종활동에 대한 부정적 태도
강력한 개종활동을 펼치는 종교들에서 가장 빈번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강요(coercion)이다.
이슬람은 강요에 의한 개종활동이 뚜렷하였고, 기독교 도 로마제국 아래 소수자의 위치에서 제국의 종교가 되고 주변 영역으로 확장되고, 새로운 왕조의 종교가 될 때마다 강요에 의한 개종활동이 수 반되었다.
근대 서구 기독교의 선교는 제국주의로 인한 식민통치의 확장 과 함께 진행되었다.
선교사들이 전하는 복음은 식민통치를 받는 나라들 에서는 그들의 국가적, 사회적, 종교적 정체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간주됐 다.13
12 http://www.mhdata.or.kr/bbs/board.php?bo_table=gugnae&wr_id=59&page=2 2023년 4월 2 일 접속
13 Heather J. Sharkey, “Arabic Antimissionary Treatises: Muslim Responses to Christian Evangelism in the Modern Middle East,”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July (2004): 98-99. 근대 중동의 무슬림들에게서 형성된 기독교의 복음전도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담은 연구들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급증하면서 아랍권에서 서구사회 뿐 아니라 반선교주의를 반 영한다.19세기 중국에서 개항과 아편전쟁 이후 선교가 제국주의 정책과 밀착된 과정에 대해 서는 Ambrose Mong, Guns and Gospel: Imperialism and Evangelism in China (Clarke & Co., 2016)을 보라. 저자는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수의 영국 선교사들이 복음이 아닌 제국주의의 종 역할을 했다는 논쟁적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부정적 경험들은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지닌 비평가들로 하여금 복음전도를 서구 제국주의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을 형성하게 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1956년에 제출한 보고서는 증인됨과 복음화의 사명을 추구하면서도 개종을 시도하는 활동(proselytism)과는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인다.
이 보고서는 예수의 대위임령에 기초해서 사람들에게 그 리스도의 주권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복음의 증언은 모든 그리스도인 과 교회의 사명이자 책임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외적인 회심만을 목표로 삼는 개종활동은 이러한 증언의 왜곡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여기서 증언과 개종활동의 차이는 공포와 강요 같은 부적절한 수단의 사용 뿐 아니라 목적과 동기에서도 드러날 수 있다고 한다.14 개종활동이라는 단어 자체는 복음주의 선교정신을 대변하는 로잔선 언에서도 전도의 부정적 측면으로 간주되었다.
2010년 케이프타운(Cape Town) 서약은 전도와 개종활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좋은 소식을 나누는 복음전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부당한 개종 활동(unworthy proselytizing)에 참여하지 않는다.
전도는 설득을 시키려는 합리적 논증을 포함하면서도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 복음의 정직하고 열린 진술을 함으로 ‘듣는 자들로 하여금 완전히 자유롭게 복음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신앙을 가 진 이들에게 민감하길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개종을 강요하 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개종활동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중 하나 와 같이 되고’, ‘우리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교단 에 가입시키게 하는 것이다.15
14 World Council of Churches Central Committee, “Christian Witness, Proselytism and Religious Liberty in the Setting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a Provisional Report,” The Ecumenical Review 9 (October 1956), 48.
15 The Third Lausanne Congress, Cape Town Commitment: A Confession of Faith and a Call to Action from www.lausanne.org
로잔과 WCC 모두가 다른 문화나 다른 종교의 사람들에게 힘의 우 위를 바탕으로 신앙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히 비판적 입장을 표명 했다.
과거 서구 기독교 선교가 식민통치 하에서 강요적 전도를 했던 것 은 사실이고, 그러한 기억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오늘날 주요 도시들이 다종교, 다문화된 상황에서 과거의 우월주의적 개종활동 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성찰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를 전하는 것 자체 가 인종차별적이며 소수파 공동체를 존중하기 위해서 복음전도는 배제되 어야 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 모순이 있다.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전도를 신학적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하는 한 성직자에게 그 와 같은 태도는 신학적 간음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16
과거 선교가 제국주의 식민통치에 선교사들의 개종활동이 사용된 사 례들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노예제도 폐지에 가장 앞장을 서기도 했고, 식민통치를 받는 지역민들의 계몽과 해방을 위해서 헌신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과거의 실패를 너무 일반화시키는 것은 과장된 오류이다.
특히 오늘날 복음전도가 가장 자발적으로 활발하게 진 행되며 교회가 성장하는 지역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강요적 복음전도 를 경험했던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17
그 지역들의 교회들은 이제 필립 젠킨스(Philip Jenkins)의 표현처럼 실질적으 로 ‘다음의 기독교세계’(Next Christendom)를 이루고 있다.18
16 Lesslie Newbigin, Unfinished Agenda: An Updated Autobiography, 홍병룡 역, 아직 끝 나지 않은 길 (서울: 복있는사람, 2011), 477.
17 Elmer J. Thiessen, The Ethics of Evangelism: A Philosophical Defense of Proselytizing and Persuasion (Downers Grove: IVP, 2011), 61. - Ebook version.
18 Philip Jenkins, The Next Christendom: The Coming of Global Christianit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5) 다원주의적 상황
식민지 시대 이후,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이념을 거부하는 포스트모던적 다원주의가 부상했다.
다원주의는 진리와 지식의 상대적 가치를 추구하 기 때문에, 특정한 신념을 타자에게 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러한 다원주의는 탈식민주의 뿐 아니라 다문화적 상황과도 맥을 같이 한다.
정경호는 한국교회 또한 세계화 현상으로서 다문화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으며, 이는 “선교의 배타적인 태도에서 통합의 과정으로 이동하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19
다원주의 와 상대주의의 시대에, 기독교 전도의 구원에 대한 독점적 선언과 지옥 의 형벌을 강조하는 메시지는 비기독교인을 상대로 하는 개종 시도에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20
엘머 티이센(Elmer Thiessen)은 오늘날 신앙을 권유하는 행동에 대한 반감은 계몽주의 시대에 형성된 설득에 대한 회의적 태도로부터 연유한 다고 주장한다. 설득적 수사학은 과거 가부장시대의 다른 이들과 경쟁하 면서 그들을 지배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는 설득에 대한 논리의 우위가 발생했고, 논리를 설득적 영향력으로부터 순수하게 분리시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지식과 논리의 절대적 합 리성을 추종한 계몽주의적 유산이다.21
그러나 논리와 설득을 분리시키는 시도는 인간의 실제 경험과는 상반된다고 티이센은 주장한다.
인간은 지 식을 획득하고 신념을 형성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 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상호 간에 항상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존재이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어머니는 자 녀에게 신발 끈을 묶으라고 설득한다.
아버지는 십 대 딸에게 대학을 진 학하도록 설득한다.”22
19 정경호, “변화하는 다문화 사회에서 한국교회 선교의 전략과 과제”, 「성경과 신학」 81 (2017), 210-214. https://doi.org/10.17156/BT.108.02.
20 조동선, “멸절론과 보편 구원론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어거스틴의 영원한 형벌론”, 「성경과 신학」 108(2023), 33. https://doi.org/10.17156/BT.108.02.
21 Thiessen, The Ethics, chapter 3.
22 Thiessen, The Ethics, 39. 1
계몽주의 정신은 인간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지식 과 신념 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판단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다양하 고 복잡한 경험과 통로를 통해서 삶에 필요한 지식과 진리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다원주의 시대라고 해서 타인을 상대로 하는 신념적 설득이 배척될 수 없다.
6) 표현적 개인주의의 부상
오늘날의 점증하는 개인주의 문화에서도 타인에게 신앙을 권유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개인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개인 의 취향과 선택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추구하는 오늘날의 흐름은 ‘표현 적 개인주의’(expressive individualism)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23
이 러한 시대에서 사람들은 타인을 의존하거나 침해하지 않는 개인의 자율 성과 표현양식을 가장 중시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이러한 표현적 개 인주의 문화는 점점 더 많은 영역에서 사람들의 관계와 공동체에 영향을 준다.
한국인의 트렌드를 빅데이터를 통해서 분석한 한 연구소는 디지털 화된 시대의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세대의 문법은, 먼저 친구하자고 제안하지 않는 것이다.
디지털 세대는 친구가 될 의향을 대외적으로 표시한 사람에게만 말을 건다.
가 만히 있는 사람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말을 거는 게 아니라, 관계 맺고 싶다는 의사를 프로필 등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을 기 다리는 것으로 공식이 바뀌었다.
이제는 질문하거나 제안하기보다 자신 을 드러내야 한다. 선택하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고자 노력해 야 한다는 것이다.24
23 표현적 개인주의(expressive individualism)란 로버트 벨라(Robert Bellah)와 그의 동료 들이 공동 저술한 Habits of the Heart: Individualism and Commitment in American Life (New York: HarperCollins, 1985)에서 처음 나온 용어로서 자기표현과 개인의 성취를 가족이나 교회 와 같은 전통적 공동체보다 더욱 우선시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24 염한결 외, 2020트렌드노트: 혼자만의 시공간 (서울:북스톤, 2019), 145.
이러한 현상을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은 혈연, 학연, 지연과 같은 전 통적인 인맥관계가 약화되고, 대신 사람들의 취향과 관심사 중심의 인맥 이 증가하면서 자발적 선택이라고는 가치가 존중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에서 대형교회가 많은 이유는 과거의 끈끈한 연대의 식과 관련이 깊었지만, 이제 교회를 비롯한 모든 종교들의 신도수가 줄 어들고 비종교인이 늘어나는 원인도 끈끈한 연대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 기 때문으로 본다.25
25 김용섭, 라이프트렌드2020: 느슨한 연대 (서울: 부키, 2019), 92-93.
주목할 만한 사실은 위와 같은 개인 취향과 표현의 문화에 대한 새 로운 전망은 코로나 이전부터 제기되다가, 대면접촉이 제한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새로운 삶의 규범으로 정착되었다는 점이다.
이 러한 문화적 변동이 현재 가속화되는 한국사회의 비종교화와도 상당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는 개종활동으로서 복음전도의 윤리와 예의라는 문제를 환기시켜 준다. 앞서 소개한 몇몇 조사들에서 나타난 것처럼, 기 독교 전도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나 신뢰도 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동 자체가 타인의 사적 영역에 대한 침범으로 간주되는 문화적 변동과 더욱 연관됐을 수 있다.
3. 개종활동의 타당성에 대한 네 가지 관점
이러한 탈식민주의, 다원주의, 표현적 개인주의의 문화적 상황에서 기독 교 복음전도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종활동이 가능한 논 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1) 자유주의적 가치관
내에서 개종활동의 타당성 티이센은 현대의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문화에서 개종활동이 사람들에게 정서적 죄책감을 조장하고 가족과의 단절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불온 하게 취급되는 현상을 인지한다.
따라서 개종활동이 도덕적 정당성을 얻 으려면 인간의 존엄함과 가치에 대한 신념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가치가 정치적 자유주의의 핵심에 있 는 신념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자유주의적 원리에 근거해서 개종활동의 정당성을 조명한다.
그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에 대한 옹호 개념을 인용하면서, 밀의 사상은 의무주의와 공리주의적 차원(deontological and utilitarian dimensions)에서 개종활동을 옹호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개 종활동이 없다면 인간은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설령 개종을 시도하는 종교 옹호자가 잘못된 메시 지를 전한다 하더라도 사회 전체가 그 과정에서 얻을 이득이 더 많을 것 이다. 사람들은 더욱 진지하게 그 주제를 생각하며 토론을 나누게 될 것 이다.
만약 그러한 치열한 토론의 기회가 없다면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 하지 못하고 이미 결정된 생각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26
티이센은 몇몇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 장하는 교회의 입장이 공공질서와 안전을 위배하기 때문에 개종활동은 제한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오히려 포교나 개종활동 을 불허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주의 정신에 반대하며, 실제로 그러 한 일은 타종교나 종교일반에 적대적인 이슬람과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종활동은 자유주의적 관용의 범위 내로 분 류될 수 있으며, 진정한 자유주의는 종교의 언어가 시민의 자유로운 삶 을 해롭게 하지 않는 한 공공의 장에서 사용되는 것을 허용하고 환영해 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27
26 Thiessen, The Ethics, 79.
27 Thiessen, The Ethics, 81.
물론 개종활동이 공공에 필요한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 유주의적 덕목에 위배될 것이다.
따라서 개종활동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 치를 존중하는 가운데 공적인 덕목과 질서를 따른다면 현대의 자유주의 적 가치와 부조화를 일으킬 이유가 없다.
기독교가 말하는 인생과 세계 에 대한 배타적 진리 주장 그 자체가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우선시하는 문화와 충돌하는 것도 아니다. 상호 존중과 대화는 기독교의 개종활동에 도 안전하게 적용될 수 있으며, 이러한 문화 안에서 궁극적인 선택은 개 인의 몫이며, 중요한 점은 윤리적으로 타당한 개종활동이냐, 아니면 비윤 리적인 개종활동이냐가 될 것이다.
2) 개종활동의 공적 성격
개종활동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근대 계몽주의 전통에서 만들어 놓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분리 때문이기도 하다.
1974년에 남인도에서의 선교사역을 은퇴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레슬리 뉴비긴 (Lesslie Newbigin)은 자신을 파송했던 기독교 국가였던 영국이 오히려 선 교지의 나라들보다 더욱 세속화된 현실을 목도한다.
그는 그 이유를 과 학이 지배하는 공적 영역과 종교가 관여하는 사적 영역을 구분시킨 결과, 종교를 알리고 권유하는 개종활동이 공적인 영역과는 어울리지 않게 되 었다고 진단한다.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믿을 수 없게 만들자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소심해 진 것이다.28
28 Newbigin, Unfinished Agenda, 477.
계몽주의 이후 근대 서구사회에서도 기독교는 지배적인 문화체제였 다.
그러나 저변에서는 사실과 가치의 분리, 공적 세계와 사적 세계의 이 분화가 지속적으로 확산되었다.
사람들은 성스러운 공간에서 종교적 체 험을 하지만, 현실의 삶과 관련된 문제들은 과학적 학문에 의해 규명되 었다.
사실과 가치의 분리는 근대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일어났으며, 결 국 인간의 삶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나누고 종교는 사적인 가치 의 영역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기독교는 사실의 세계에 관여하지 못하고, 공적인 책임성을 잃게 된 것이다.
그러나 뉴비긴은 성경은 처음부터 인생을 우주적, 보편적 역사의 맥 락에서 조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성경은 역사이며 사실이다. 성경의 세 계관과 역사는 신뢰의 행위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개인적 믿음이다. 개 인적이라고 해서 주관적인 느낌이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참인지를 믿 는 것이며, 이는 인류 역사 전체의 의미에 관한 진리를 믿는 것이다. (기독교는) 보편적 의향을 품고 견지하는 신앙이다. 따라서 나는 그것을 인종과 신조와 문화에 상관없이 모든 시대와 장소에 몸담은 모든 인간과 함께 공유하려고 노력하고, 내가 당면한 모든 상황에 비추어 그것의 진위를 시험해 보려고 애쓴다.
내가 이 정도로 깊이 헌신한 경우에만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다.29
위의 인용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보편적 의향’(universal intent)이 다.
뉴비긴은 이 단어를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의 Personal Knowledge에서 빌려오는데 인간에게 진정으로 본질적이고 중요한 지식은 신앙적 전제를 받아들임에서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사실상 실재를 설명하는 것이며, 모두에게도 통용된다고 사실상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신앙을 전제로 구성된 지식은 다른 이들과의 교류에서 보편적 의향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 개종활동을 순전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에 국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티이센은
“개종활동은 그 성격상 공적인 장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표준적 경계를 가로지르기 때문에 우리 는 그러한 활동을 불편해하고 예의에 어긋난다고 느낀다.”고 말한다.30
29 Lesslie Newbigin, T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 홍병룡 역,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복음 (서울: IP, 2007), 181.
30 Thiessen, The Ethics, 81.
이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적인 행동과 태도는 다 양한 모습으로 공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사적-공적 영역의 구분 으로 개종활동을 반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개종활동이 시민적 예의와 덕목에 부합되느냐가 더욱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사실 우리는 대면이나 비대면 모두의 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수많은 광고들에 노출되어 있다.
길거리에서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이들을 봐도 부자연스럽거나 불쾌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대중적인 홍보 와 설득은 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벌이는 공적인 활동이다.
물론 우리는 개종활동을 더욱 긍정적이며 비호감을 양산하지 않는 방식으로 구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개종활동 그 자체가 공적 사회 규범에 어긋난다고 볼 근거는 없다.
통상적 예의에 어긋난다고 해서 반드시 윤리적으로 문제인 것은 아니다.
자신을 알리고 다른 이들을 설득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이자 활동이다.
3) 인간의 번영을 위한 개종활동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배타주의를 종교 적 배타주의의 불가피한 결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오히려 세계종교를 믿는 이들은 대부분 종교적 배타주의자들이며 종교적 배타주의가 정치적 다원주의와 양립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한다.31
물론 종교적 배타 주의가 정치적 배타주의를 낳을 수 있으며, 정치적 배타주의는 정치적 전체주의로 갈 가능성도 농후하다.
하지만 그는 종교적 배타주의자가 정 치적 다원주의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
볼프는 17세기의 청교도 지도자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가 종교적 배타주의를 견지했지만 미국 사회를 위한 정치적 다원주의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예를 든다.
미 국의 기독교 우파는 윌리엄스의 유산을 이어 받았으며, 이는 그들이 견 지하는 기독교 진리의 절대성에 대한 배타적 신앙을 기반으로 이웃을 사 랑하라는 성경의 보편적 명령을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볼프는 보편적 진리에 대한 믿음과 개 종활동을 지지하는 종교적 배타주의도 다른 종교나 문화의 사람들과 공 동의 선을 위한 상호 책임적이며 화해를 이루는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 라고 기대한다.32
31 Miroslav Volf, Flourishing: Why We Need Religion in a Globalized World, 양혜원 역, 인간의 번영 (서울: IVP, 2017), 191.
32 Volf, Flourishing, 200-201.
그렇다면 기독교인과 같은 종교적 배타주의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활 동도 인간의 번영을 위한 공동선에 기여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유주의 적 가치관에서 보았듯이 소극적인 차원에서 개인의 양심과 자유로 존중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이에 대해 볼프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종 교가 무시 받지 않는 상황에 만족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그 이상을 원 한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가 탁월하다는 인정, 혹은 ‘평가 존중’(appraisal respect)이라는 것을 받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보다 강한 의미에서 종교 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것이 대변하는 바를 존중한다는 뜻이며,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것이 주창하는 삶의 방식과 그것이 가지는 궁극적 실재 에 대한 신념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다는 뜻이다.33
위의 인용문에서 볼프는 인정 존중(recognition respect)과 평가 존중을 구분한다.
인정 존중이 사람을 종교나 인종, 국가, 직업에 관계없이 인간 으로서 존중하는 것이라면, 평가 존중은 그가 수행한 역량에 비추어서 그에 적합한 존중을 보내는 것이다.
이를 종교에 대입한다면, 다원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각 종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사회에 위해를 끼치 지 않는 한 평화적인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종교에 대 한 인정 존중이다.
하지만 종교는 이와 같이 스스로를 유지하는 데 만족 하지 않고 교리와 생활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경험하도록 권유할 수 있다.
그때 사람들은 종교의 가르침을 들어보고 종교적 의식과 문화를 접하면 서 그 종교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종교를 계속 시도하고 머 무를지, 아니면 그 종교를 떠날 지의 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다.
따 라서 다른 이의 종교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종교를 증언하는 것은 가능 하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존중해야 하지만 종교 자체가 존중받기 위해 서는 먼저 최소한 몇 가지 면에서라도 탁월함을 통해 존중을 얻어내야” 하기 때문이다.34
33 Volf, Flourishing, 159.
34 Volf, Flourishing, 157.
볼프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상호 존중은 이와 같은 평가 존중의 영역 에도 열려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종교의 개종활동에 대해서 도 열린 태도로 수용할 수 있게 하고, 각 종교의 교리적 일관성과 삶의 매력을 더욱 추구하게 함으로 궁극적으로 인간의 번영과 공동의 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신앙을 타인에게 표현하고 전하는 행위 는 개인의 자율성과 타인의 존엄성 모두와 조화될 수 있다.
인간은 자기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지식과 진리를 알고 싶어 하고, 선한 영향력 을 주는 종교적 공동체의 삶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취향과 관심, 심지어 정치적 관점을 나누며, 동조자를 얻고 싶어 한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미나 가치를 지닌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도 우리와 같기를 원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
따라 서 기독교를 전하는데 있어서 오만하거나 위협적인 태도로 하지 않고 열 린 대화와 친절한 소개를 통한 개종활동은 진리를 알고 경험하기 원하는 인간의 필요를 존중하고 돌봄을 실천하는 것일 수 있다.
티이센은 개종 활동에 대한 비판적 주장에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사람이 그저 그 밖의 다른 모든 사람으로 남겨져야 할까?
이 질문 에 대한 한 가지 답은 우리는 나머지 모든 사람을 홀로 있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본성상 사회적 피조물이다.
이 질문에 대한 더욱 중요한 대답은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을 홀로 있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보살피고, 사랑 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 거리를 두고 관여하지 않기를 선택하면 서 설득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다. 하지만 진정 으로 사랑하는 자는 자기의 자아보다 다른 사람의 복지를 더욱 돌보게 된다. 따라서 그는 다른 이들을 설득하고자 할 것이다.
다만 그 방식은 사랑스럽고 정의로워야 한다.35
35 Thiessen, The Ethics, 87-88.
4) 정체성 형성을 위한 개종활동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동조를 얻으려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 연결, 소속감을 형성하는데도 필수적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의 상호 교제를 통해서 자신의 관점과 신념을 갖추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 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점검하고, 옳고 그름을 분 별하는 가운데 자기에 대해서 더욱 알아갈 수 있다.
그러한 차원에서 윤 리적 타당성을 갖춘 개종활동은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형성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토마스 롱 (Thomas Long)은 우리는 이미 믿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말하면서 믿는 것 을 구체적으로 깊고 명료하게 내면화시키며 우리 자신 안에 신앙에 근거 한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한다.
더 나아가 그는 “당신이 말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기까지 한다.36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에 대한 진정성은 그것을 표현하고 다른 이들과 나누면서 도전을 받 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신앙을 나눌 기회가 줄어든 다면,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의 기회를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신앙이 깊이 내면화되지 못한다.
개종활동은 신앙의 진정성 및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이와 관련해서 뉴비긴도 “우리의 신념이 얼마나 진지한가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가를 보면 알 수 있다.”37고 주장한다.
개종활동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이 종교 간의 상호 존중적 대화로 이어질 때 실질적인 전도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 다.
리처드 마우(Richard Mouw)는 전도의 문제는 기독교 내부에서도 진 영을 첨예하게 나누는 사안이 되었다고 한다.
타종교인을 대할 때 그들 을 우리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는 전도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상호 이해와 존중을 증진하는 대화에 방점을 찍을 것이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우는 개종활동이나 상호이해의 대화를, 어 느 것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버려야 하는 (either∼or∼) 문제가 아 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간 대화는 종교들 간 에 존재하는 진정한 불일치를 축소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각 종교의 실 재와 선에 대한 각자의 고유하고 배타적인 진리 주장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선택할 수 있도록 존중해줘야 한다.38
36 Thomas G. Long, Talking Ourselves into Being Christian (San Francisco: Jossey-Bass, 2004), 7.
37 Newbigin, The Gospel, 240.
38 Richard Mouw, Uncommon Decency (Downers Grove: IVP, 2010), 87.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종교를 통해 추구하는 진정한 진리에 더욱 정직하게 접근할 수 있다.
마우는 실제로 종교 간 대화를 통해서 자신이 찾던 진리를 기 독교에서 비로소 발견했다고 고백하는 한 타종교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와 같은 존중적인 종교 간 대화는 어거스틴의 경구를 빌리자면 각 종 교의 상황들은 진정으로 안식을 찾을 수 없는 인간의 상태를 더 잘 이해 하게 해주는 중요한 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39
39 Mouw, Uncommon, 95.
윤리적으로 타당한 개 종활동이 종교 간 상호 존중적 대화로 이어지면, 이는 인간의 내적 정체 성에 대한 깊은 탐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인생과 세계를 변화 시키고 이끌어가는 기독교 신앙의 공적, 역사적 진리 됨에 대한 자신감 은 복음의 결과를 일으키리라 기대할 수 있다.
4. 개종활동으로서 복음전도의 윤리를 위한 기준들
티이센은 자신의 책에서 집중적으로 주장했던 윤리적 개종활동을 위한 근거를 두 장에 걸쳐서 모두 열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처음 여섯 가지는 윤리적 개종활동의 근간이 되는 원칙들이며, 두 번째로 제시하는 아홉 가지는 실행의 원칙이라 할 수 있다.40
40 Thiessen, The Ethics, chapters 7 and 8. 티이센은 결론까지 포함하여 세 장에 걸쳐서 윤리적 개종활동의 기준들을 다루며, 7장에서는 6가지 기준을, 8장에서는 9가지 기준을, 그리 고 결론에서는 그 15가지를 요약한다. 6가지와 9가지로 구분한 근거가 명확하지는 않은데, 필 자는 이를 토대적 원칙(6가지)과 실행적 원칙(9가지)으로 나누어서 논하고자 한다.
1) 토대적 원칙의 기준들
먼저 윤리적 개종활동은 존엄성(dignity), 돌봄(care), 신체적 강요(physical coercion), 심리적 강요(psychological coercion), 사회적 강요(sociological coercion), 유인(inducement) 등의 요소들이다.
우선 존엄성과 돌봄은 개종 활동을 기독교 윤리에 정박시키는 가장 중요한 긍정적 기반이다.
신체적 강요, 심리적 강요, 사회적 강요는 각각의 이름이 함의하는 대로 비윤리 적 개종활동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이러한 강요들은 특히 취약계층에게 가해지기 쉽다.
유인이란 개종활동이 물질적인 보상이나 이해관계를 토 대로 한 거래와 같이 전락되는 것이다.
이 여섯 가지 토대적 기준들은 그 다음에 제시되는 아홉 가지의 실행적 기준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2) 실행적 원칙의 기준들
실행적 원칙의 기준으로는 다음의 아홉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첫째는 합리성(rationality)의 기준으로, 이는 개종활동에서 얼마나 제대로 된 정보 와 지식을 제공하느냐이다.
수사학에서 논리적 일관성이 일차적으로 중 요한 것처럼, 기독교 전도에서는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가 기준이 되어 야 한다.
둘째는 진실성(integrity)인데, 이는 개종활동을 하는 사람의 진정 성을 의미한다. 리처드 피스(Richard Peace)는 소위 우정전도나 관계전도 는 “동기에 대한 큰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분명히 참된 우정을 거둘 수 없는 결함 있는 동기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한다.41 따라서 전도를 위해 서가 아니라 관계 그 자체에 대한 진실성이 요구된다.
셋째로, 겸손 (humility)의 기준은 개종활동에서 우월의식을 경계하게 한다. 복음을 전 하는 자는 은혜로 주어진 구원에 감사함으로 다른 이들과 나누려는 겸손 한 마음으로 이끌려야지, 자신의 진리의 주인인양 행세해서는 안된다.42
넷째로, 관용(tolerance)의 기준은 인내와 온유함을 요구한다. 볼프는 “진 정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기다림이라면, 강요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고 한다.43
41 Richard Peace, Conversion i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9), 291-294.
42 Thiessen, The Ethics, 111.
43 Volf, Flourishing, 38.
하나님이 세상의 구원과 변화를 완성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관 용은 윤리적 개종활동의 명백한 기준이다.
다섯째 원칙인 동기(motivation) 의 기준은 개종활동을 인간에 대한 사랑과 돌봄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 는지를 살펴보게 한다.
전도의 동기가 자기중심적이거나 다른 사람을 통 제하려는 의도인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동기의 기준은 일차 적으로 자기를 분석하는 도구가 된다.
동기는 내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적 성찰을 요구한다.44
스콧 존스(Scott Jones)는 복음전도의 적절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대 계명에 뿌리를 내리 느냐에 있다고 주장한다.45
여섯 번째인 정체성(identity)의 기준은 다원주 의적 시대 상황에서 특별히 요청되는 자세다.
오늘날은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소속과 성향을 소중히 보전하려하기 때문이다.
티이센은 종교 간 대화에서 요구되는 다음의 대화 문구를 예로 든다.
“당신의 로마 천 주교적 배경과 나의 침례교적 배경을 고려할 때, 우리가 공통 기반을 갖 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서로의 이해와 헌신에 대해서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면 어떻겠습니까?”46
44 Thiessen, The Ethics, 113.
45 Scott Jones, The Evangelistic Love of God and Neighbor: A Theology of Witness & Discipleship (Nashville: Abingdon, 2003), 16.
46 Jones, The Evangelistic Love, 114.
이는 개인의 종교적, 문화적, 국가적, 경험적 정 체성을 처음부터 인식하고 존중하는 방식이다.
일곱 번째는 문화적 민감 성(cultural sensitivity)이 기준인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서구 제국주의의 팽창 정책과 함께 했던 선교방식을 반성하며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오늘날에도 전도자가 자기에게 익숙한 습관으로 다른 문화나 상황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자신을 살 피게 한다. 여덟 번째인 결과(results)의 기준은 개종활동을 통해서 어떠한 결과가 나왔는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수적이나 외적 성공이 곧 기준이 되는 결과는 아니다.
기독교 복음전도에서는 개종활동을 통해서 개인의 전인적으로 온전한 회심이 시작되었는가, 제자의 삶으로 헌신했는가, 하 나님 나라의 복음에 부합되는 변화가 있는지 등은 일반적 기준이 될 것 이다.
끝으로, 황금률(golden rule)의 기준은 다종교, 다문화 사회에서 개 종활동의 타당성이 인정받기 위해서 특히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교회탐 구센터에서 조사한 혐오 표현에 대한 개신교인의 인식을 보면 이슬람교 인이 혐오 표현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응답자 270명 중 에서 그 이유가 우리나라에 이슬람교를 포교하려고 해서라는 응답은 범죄 위험(43.8), 폭력의 옹호(34.0%)에 비해서 많이 낮게 나왔다(14.4%).
그러나 신앙이 더욱 견고한 그리스도 중심층의 교인들은 오히려 그들보다 신앙연륜에서 덜 성숙한 기독교 입문층이나, 그리스도 인지층에 비해 이 슬람의 포교에 대한 경계심을 갖는 경우(24.4%)가 더 높았다.47
47 김선욱 외, 혐오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서울: IVP, 2019), 237-8.
황금률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타종교도 반사회적이거나 반윤리적이지 않은 한, 동 등한 조건에서 개종활동을 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 는 훨씬 더 다종교적인 상황에서, 심지어 황금률조차 보장되지 못한 가 운데 전도와 교회의 성장을 이루었다. 황금률의 적용이 결코 기독교 진 리의 유일성과 복음의 진보를 방해할 것이라고 우려할 필요는 없다.
3) 교회의 실천이라는 기준
브라이언 스톤(Bryan Stone)은 전도를 개인의 개종활동이나 집회성 이벤 트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증인됨을 경험하는 교회의 실천으로 본 다.
그는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오직 구원받은 백성이 교회의 총체 적인 실천인 선포, 환대, 초대, 양육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신실 하게 증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따라서 전도의 모든 활동들은 이러한 목표에 상응하는 실천이어야 한다.
만일 전도가 단순히 개종자를 더 많 이 만들거나 교회의 수적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다른 목표 아래 진행된다 면 이는 궤도에서 이탈하고 전도를 왜곡시킨다고 한다.48
48 Bryan Stone, Evangelism After Christendom (Grand Rapids: Brazos, 2007), 49. 스톤은 그 의 다른 책에서 티이센의 전도 윤리를 비판적으로 소개한다. 그는 전도의 윤리라는 취지에 동 감하면서도, 티이센의 전도에 대한 이해가 개종활동(proselytism)에 의해 규정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전도의 목표가 하나님의 통치를 신실하게 증언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개종자들 을 만드는 것에 둘 때, 전도의 본질에서 이탈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Bryan Stone, Evangelism After Pluralism: The Ethics of Christian Witness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8), 15-16.
모든 실천은 내 재된 목표에 충실해야 한다. 전도의 목표가 하나님의 통치에 응답하여 그리스도의 덕을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면, 앞서 언급 한 윤리적 개종활동을 위한 기준들은 개개인 뿐 아니라 교회의 집단적 덕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실천에 내재된 덕목은 공동체를 통하지 않고 서는 온전히 소통될 수 없 기 때문이다.
권문상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얻으려면 교회 안에서 예수의 섬김과 사랑이 내면화된 삶 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49
따라서 윤리적 개종활동의 기준들은 하 나님의 통치와 그리스도의 복음 아래서 재성찰되고, 교회의 공동체적 이 야기와 습관으로 재 전유되어야 할 것이다.
개종활동의 일차적 목표가 사람들을 기독교 신앙과 교회로 이끈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나라와 공동체의 이야기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개종활동을 위한 윤리적 기준과 성찰은 단순히 전도의 효과를 위해서가 아니라 회중의 삶이 곧 전도의 기반이자 내용의 역할을 할 것이다.
뉴비긴은 남인도에서 선교사역을 할 때 실제로 길거리 전도와 같은 직접적인 개종활동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길거리 전도가 말과 행동이 같이 간다는 전제 아래서 가능했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복음을 듣는 이들은 낯선 순회전도자의 외침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 존 재하는 기독교 공동체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의 섬기는 사역을 경험하 는 상태에서 말로 선포된 복음을 접한다는 것이다50
49 권문상, “공동체적 교회와 공공 신학”, 「성경과 신학」 101 (2022), 73. https://doi.org/10. 17156/BT.101.03.
50 Newbigin, Unfinished Agenda, 137.
그래서 뉴비긴은 성 령의 새로운 실재가 교회를 통해서 흘러넘치고 사람들에게 드러나며, 교 회가 주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살며 하나님 나라의 권능이 임하면 사람 들이 질문을 던지고 대답으로서의 전도가 일어난다고 했다.51
51 Newbigin, The Gospel, 228. 뉴비긴의 대답으로서의 전도라는 개념은 제안적일 뿐 규 범적으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신약성경이 특정한 전도 방식, 주도적인 개종노력이든 대답으 로서의 전도이든 어느 하나를 더 지지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예를 들자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일부러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할 곳을 찾았고 그곳에서 만난 루디아는 회심하게 된다 (행16:13-14). 또한 회당과 장터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한 사실을 사도행전이 반복적으로 기록 하는 것을 볼 때 전도는 질문에 대답 그 이상으로 주도적인 증언이기도 하다.
이러한 뉴 비긴의 공동체를 통한 전도의 차원을 감안할 때, 윤리적 개종을 위한 기 준에 교회적 실천이라는 중요한 기준은 추가적으로 고려할 가치가 충분 하다.
Ⅲ. 나가며
지금까지 개종활동으로서 전도의 윤리적 타당성이 성립될 수 있는 근거 와 윤리적 기준을 살펴보았다.
전도에 대한 비우호적인 분위기가 높아지 고, 다원주의와 개인주의의 문화는 개종을 위한 활동을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개종활동이 인 간의 자유와 공공성, 그리고 사회적 번영에 부합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 다는 점을 피력하였다.
활동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오늘날의 사 회에서 복음전도의 윤리적 타당성을 변호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 대한다.
동시에 우리는 전도 행위 자체의 윤리적 기준을 세심하게 확립 해야 한다.
복음전도의 윤리적 타당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개종활동에 종종 수반된 우월의식이나 강요적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성경은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이 좋은 행실을 동반해야 함을 말한다.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는 예수의 말씀이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벧전3:1)이라는 베드로의 권면은 전도의 윤리적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은혜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강권적인 사랑에 대한 응답은 복음전도의 윤리라는 구조물을 겸손하고 섬세하게 조성할 것이다.
거기로부터 복음에 대한 자 신감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복음전도의 윤리에 대한 성 찰은 현재 한국교회가 직면하는 전도에 대한 부정적, 소극적 태도를 재 고하고 복음에 더욱 신실한 증인의 사명과 역할을 각성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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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본 논문은 현대사회에서 전도의 윤리적 타당성을 성찰하고자 한다.
사람들 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인도하는 사역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개종활동(proselytizing)를 수반한다.
개종활동은 복음전도의 사역에서 다른 사람들을 신앙의 세계로 초대하는 필수적인 실천이다.
최근 기독교에 대한 신뢰도 저하, 전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다원주의와 표현적 개인주의의 환 경은 이러한 개종활동으로서의 전도를 위축시킬 수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권유하는 행위는 현대 시민사회의 주요한 가치인 자 유와 공공성, 그리고 사회적 번영을 추구하는 것과 대립할 필요가 없다.
개 종활동으로서의 전도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평 가하고 제안하는 공적 가치를 지닌 실천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독교의 복음전도 자체에도 윤리적 기준이 요청된다.
복음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선포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윤리적 원칙을 견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음전도의 타당성에 대한 윤리적 성찰은 오늘날 한국 사회 속에서 교회의 전도에 대한 이해와 태도를 제고하여 증인의 사명을 일깨우 는데 기여할 것이다.
주제어: 복음전도, 윤리, 개종활동, 전도사역, 회심, 전도의 윤리
Abstract
Ethical Reflection of the Validity of Evangelism Kim, Sunil*52 This paper seeks to reflect on the ethical validity of evangelism in contemporary society. Because it involves leading people to faith in Jesus Christ, it inevitably encompasses proselytizing activities. Proselytizing is an essential practice in the ministry of evangelism, inviting others into the realm of faith. Recent declines in trust towards Christianity, negative perceptions of evangelism, and the prevailing environment of pluralism and expressive individualism may inhibit such proselytizing efforts. However, the act of persuading others to embrace one’s religious beliefs does not necessarily conflict with the fundamental values of modern civil society, such as freedom, publicity, and the pursuit of social prosperity. Evangelism, as proselytizing, can be a practice of public value, offering an objective assessment and proposal of what constitutes a better life. Furthermore, ethical standards are required within the practice of Christian evangelism itself. While evangelism involves proclaiming the grace of Jesus Christ, it must simultaneously adhere to corresponding ethical principles. Ethical reflection on the validity of evangelism can enhance the understanding and attitudes toward church evangelism in contemporary Korean society, thereby contributing to the awakening of the mission to bear witness. * Professor of Practical Theology at Westminster Graduate University
Key-Words: evangelism, ethics, proselytizing, ministry of evangelism, conversion, ethic of evangelism
논문 접수일: 2024. 08. 17. 수정 접수일: 2024. 09. 30. 게재 확정일: 2024. 10. 19
성경과 신학1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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