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016년, 웨인 그루뎀(Wayne A. Grudem 1948-)과 브루스 웨어 (Bruce A. Ware, 1953-)는 “영원한 기능적 종속”(Eternal Functional Subordination: EFS) 혹은 “권위와 복종의 영원한 역할”(Eternal Roles of Authority and Submission: ERAS) 관점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며 삼위일 체 논쟁을 촉발했다.1)
용어는 다르게 표현될 수 있으나 그 주요한 골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위격의 발출(procession) 관계를 따라 영원한 기능적 질서(taxis)를 가진다는 것이다.2)
이 주장이 민감한 것은 성자 하나님의 ‘순종’을 경륜으로(ad-extra) 한정한 것이 아니라 내재적(ad-intra)으로 확 장시킨 것에 기인한다.3)
삼위 하나님 간에 내재적인 질서가 있다는 견해는 성자의 피조성에 따른 존재론적 종속을 주장한 아리우스주의의 성자 종속론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며 현재까지 서구 신학계의 뜨 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그러나 발출 관계에 따라 성부의 관계적 우선성을 증언하는 것은 현대에 등장한 새로운 입장이 아니라 니케아-콘스탄티노 플 신조(Nicene-Constantinopolitan Creed)와 교부들, 그리고 여러 신학자가 지지한 정통적인 견해이다.4)
1) Camdon M. Bucey, “Eternal Relations in the Trinity: A Brief Summary of the Current Controversy,” https://reformedforum.org/eternal-relations-trinity-brief-summarycurrent-controversy/ (2024.8.7. 접속).
2) Wayne A.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2nd ed. (Grand Rapids: Zondervan, 2020), 259.
3) 경륜적 삼위일체(Economic Trinity)는 삼위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하시 는 방식을 말하며, 내재적 삼위일체(Immanent Trinity)는 삼위일체의 각 위격이 영원에서부터 그 자체로 가지는 내적인 관계성을 말한다.
4) 성부의 관계적 우선성을 증언하는 성부 단일원리성(The Monarchy of God the Father)을 주장 한 교부들은 다음과 같다. Origen은 성부가 근원이 되시므로 성자와 성령은 아버지의 신성으로부 터 기원했다고 말했다. Athanasius는 삼위 하나님의 관계를 근원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 다: 아버지는 “샘이시고 아들은 강이라고 불리우므로 우리는 성령을 마신다.” Hilary of Poitiers 는 아들의 기원으로서의 아버지를 강조하여 성부를 저자(Author)로 반복해서 언급한다. Gregory of Nazianzus는 성부를 신성의 근원으로 천명하며 성부와 성자는 신성으로 동등하지만, 성부가 더 크다고 말했다(요 15:28). Augustine은 성부를 근원이 없는 근원(Principle without Principle) 으로, 성자를 근원에서 나온 근원(Principle of Principle)으로 표현했다. 그 밖에 Tertullian, Prudentius, Ambrose, Paulinus of Nola, Cyril of Alexandria, Pseudo-Dionysius, Basil, Gregory of Nyssa, John of Damascus 등 주요 교부들의 언급은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Nicholas E. Lombardo, “The Monarchy of God the Father”,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24/3 (2022): 327-37; 또한, J. I. Packer, Carl F. H. Henry, Jonathan Edwards, Geehardus Vos, Charles Hodge 등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성자의 영원한 순종을 확언한 내용은 다음 자료를 참고하라: Wayne Grudem, “Another Thirteen Evangelical Theologians Who Affirm the Eternal Submission of the Son to the Father,” https://www.reformation21.org/ blogs/another-thirteen-evangelical-t.php (2024.8.7. 접속).
이에 따라, 본 논문에서는 교회사의 영향 력 있는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의 삼위 일체론을 분석하고, 성자의 위격적 특성을 ‘순종’(submission)으로 특징 짓는 것이 계시와 전통에 부합함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편, 어떤 신학자들은 내재적 삼위일체에 관한 연구를 하나님에 관하여 계시된 지식을 벗어난, 사변적이고 불필요한 연구라고 평가하기도 한 다.
일례로 캐서린 모리 라쿠나(Catherine Mowry LaCugna, 1952-1997)는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의 말을 인용하여, 토마스 아퀴나스가 구 원의 경륜 안에 드러난 위격들의 활동을 배격한 채 하나님의 내재적인 삶 에 초점을 맞춘 삼위일체 교의를 전개했다고 비판하였다.
즉, 토마스와 스콜라주의는 삼위일체 논제를 “철학적으로 추상적으로 관심하느라 구원 역사를 관심하지 않게 되었다.”라고 평가한 것이다.5) ”
그러나 하나님께서 경륜에서 보이신 창조와 구원의 섭리가 하나님의 내재적 활동과 무관할 수 있을까?
토마스는 하나님이 자신을 아는 방식으 로 피조물을 알며,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피조물을 사랑한다고 말했 다.6)
성부에게 죽기까지 순종하신 아들 하나님의 성육신은 삼위 하나님의 영원한 관계성을 반영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본질상 동등함에도 사랑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은 한시적인 변형이 아니라 불변하신 하나님의 현시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자신의 무한한 능력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과 사랑을 주시는 살아 계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만약 아버지와 아들 됨을 경륜으로만 제한한다면 우리는 “세상이 있기도 전에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나누었던 영화”의 현현을 비우시고 다시 취하 신 아들의 희생과 영광을 축소하고 말 것이다.7)
5) Catherine Mowry LaCugna, God for Us: The Trinity and Christian Life, 이세형 역, 『우리를 위한 하나님: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인의 삶』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8), 216-17.
(* 1952-1997. 5, 포담 대학 Fordham University 석사와 박사 취득. 1981년부터 가톨릭 명문대 노트르담 대학 University of Notre Dame 16년간 조직신학 교수 44세 암으로사망 )
6) Gilles Emery, The Trinitarian Theology of Saint Thomas Aquinas (NewYork: Oxford University Press), 42.
7) Richard Bauckham, “삼위일체와 요한복음”, in 『삼위일체』, eds., Brandon D. Crowe and Karl R. Trueman (경기: 이레서원, 2018), 116-17.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내 재적인 관계는 육체가 된 아들과 성령의 은사로 이룬 인류의 구원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기초가 된다.8)
8)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trans. by Fathers of the English Dominican Province (Notre Dame, Indiana: Christian Classics, 1981), I, q. 32, a. 1, ad 3. (이후 ST로 인 용함),
따라서 본 본문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삼위일체론을 따라 발출의 상호적 관계성에 의한 삼위 각 위격의 특성을 살 펴보고 성자의 위격적 고유성을 ‘순종’으로 정의함으로 삼위 하나님의 풍 성한 사랑과 섬김의 은혜를 바르게 인식하고자 한다.
Ⅱ. 발출(procession)
토마스는 “단일한 하나님이 세 위격 안에 어떻게 존재하시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발출을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의 관계성을 설명하 는 주요한 개념으로 다루었다.9)
그는 “하나님의 위격들은 기원의 관계들 에 근거하여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르침의 질서에 따라 먼저 기원, 즉 발출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라고 말한다.10)
9) LaCugna, 『우리를 위한 하나님: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인의 삶』, 228.
10) Thomas, ST, I, q. 27, a. 1. 11) Thomas, ST, I, q. 32, a. 3.
삼위일체의 논제는 실로 예 수께서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요 8:42)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 안에 ‘발출’의 개념이 존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삼위 하나님의 위 격을 인식하는 고유한 근거는 “타자가 그것으로부터 유래되는 자[the One from whom others originate]”와 “타자로부터 유래되는 그런 자[the One who originates from the other]”를 구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1)
즉 신적 위격들은 어떠한 존재로부터도 유래되지 않은 성부와 성부로부터 나신 (generation) 성자, 그리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spiration) 성령으로 구별된다.
토마스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삼위일체의 흔적이 있다고 말하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354-430)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핵심적 원리로 이용하여 발출 의 성격을 유비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12)
그는 정신의 두 기능인 인식 (cognitio)과 의지(voluntas)의 상응하는 개념을 통해 아들의 나심과 성령의 나오심을 정의했다.13)
신성의 근원으로서 성부의 내부로 향하는 발출은 “지성적 본성”(intellectual nature)에 있어서 “지성의 작용”(intellectual operation)과 “의지의 작용”(volitional operation)이 존재한다.” 14)
이러한 발출은 물리적인 관점이 아니라 행위자 자신 안에 머무르는 안으로의 발 출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말하는 자”(a speaker)에게서 나오지만, 그 사람 안에 머무는 말의 경우와 같이 지각이 있는 발출이기 때문이다.15)
지성적인 존재는 생각하고 의지할 수 있는 본성을 가지기에 성부의 지성적 작용은 말씀의 발출을 낳으며, 의지의 작용은 사랑의 발출을 낳는다.
따라서 하나님 안에는 말씀의 발출과 사랑의 발출이 존재한다.16)
안으로의 발출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단일성으로 인해 성부에게서 동일한 본성 으로 성자와 성령이 나오신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세 위격의 구분은 개념 상의 관계가 아니라 ‘실재적’ 관계이다.17)
12) 이은선, “토마스 아퀴나스의 삼위일체론의 방법론”, 「한국교회사학회지」 23 (2008): 144-45.
13) 이은선, “토마스 아퀴나스의 삼위일체론의 방법론”, 144.
14) Thomas, ST, I, q. 27, a. 3.
15) 반면, 삼위일체 내의 발출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의 어떤 것에게로 향하는 의미로 이해한 이들은 단 죄를 받았다. 아리우스(Arius, 256-336)는 결과가 원인에서 발출한다(시간상으로)는 의미로 이해 했기에 성자를 제1의 피조물로 여겼고, 사벨리우스(Sabellius)는 원인이 결과를 움직인다(한 본질 에서)는 양태론적 의미로 발출을 이해했기에 이단으로 정죄 되었다. Thomas, ST, I, q. 27, a. 1.
16) Thomas, ST, I, q. 27, a. 3.
17) 존 프레임(John Frame, 1939-)은 토마스의 주장은 “세 위격들이 우리의 생각 속에서만 오직 관 념적으로 구분되기에” 사벨리안주의와 다를 바 없다고 비평했다. John Frame, The Doctrine of God, 김재성 역, 『신론』 (서울: 개혁주의 신학사, 2014), 1005-06; 그러나 토마스가 하나님의 절대 적인 단일성에 근거하여 ‘안으로의’ 발출을 강조한 것은 삼위의 관계성이 단순히 우리의 인식 속에 서의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본질의 관계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니케아 공의회에서 천 명한 내용과도 부합한다. 따라서 토마스의 삼위일체론이 관념적이라는 프레임의 비평은 적절치 않다. Thomas, ST, I, q. 28, a. 1.
또한, 하나님의 내재적인 관계는 사람들에게 있는 것처럼 “우유적 속성”(accidental attribute)이 없으므로 신적 본질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다.18)
18) Robert Letham, The Holy Trinity: In Scripture, History, Theology, and Worship, 김남국 역, 『개혁주의 삼위일체론』 (서울:개혁주의 신학사, 2022), 373.
1. 성부의 부성(paternity)
토마스는 아버지 됨(paternity)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보다 확장된 의미에서 전체 “신성의 근원”(principium)으로 이름 된다고 말한다.19)
창조세계를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계시된 신적 인격들의 이름보다 우선할 수 없다.20)
하나님이 피조물의 아버지인 것은 시간에서지만 성 자의 아버지 됨은 영원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21)
그러므로 성부는 위격들 서로 간의 관계에서 신성의 아버지 즉, 신성의 근원이시다.22)
토마스에 따 르면, 성부의 필연적인 자기 인식은 자기를 낳지 않고, 오직 성자를 낳는 다.23)
그러므로 성부는 자존(aseity)하며 성자를 낳는다는 점에서 아버지 라 불린다.
자신을 향한 성부의 사랑은 그 의지에서 성령을 발출하며 이 러한 발출은 본성적으로 영원 전에 이루어졌다.
성자와 성령은 성부의 본 성을 따라 필연적으로 발출되셨기에 성부의 선택적 의지에서 기인한 피조물이 아니시다.24)
19) Thomas, ST, I, q. 33, a. 1.
20) LaCugna, 『우리를 위한 하나님: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인의 삶』, 234.
21) Thomas, ST, I, q. 33, a. 3.
22) 브루스 웨어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은 단지 성육신에 적합해서 붙여진 호칭이 아니라 초기교회 에서부터 이해되어 온 위격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본래적이고 영원한 명칭이라 말한다. 그에 따 르면,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은 기원과 질서의 상호적 관계성을 내포한다. 만약 아버지와 아들 간 의 관계적 구분을 없애버린다면, 왜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이 성육신했는지 설명할 수 없다. Bruce Ware, “Equal in Essence, Distinct in Roles,” in The New Evangelical Subordinationsm?: Perspectives on the Equality of God the Father and God the Son, eds. Dennis W. Jowers and H. Wayne House (Illinois: InterVaisity Press, 2012), 15-17. 23) Thomas, ST, I, q. 41, a. 2.
24) Thomas, ST, I, q. 41, a.2.
이러한 삼위 하나님의 관계는 성부가 모든 것의 기원 이며, 자신은 다른 원리에 의해 기원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25) 성부 하나님은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모든 피조물을 인식”하시기에 성부의 명칭에서 근원의 관계성이 성립하며 피조물인 우리도 성부를 아 버지라 부를 수 있다.26)
25) 원리(principle)는 원인(cause)과 구별되어야 하는데, 원인이라 이름하면 다른 두 위격이 의존적이 란 뜻을 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Letham, 『개혁주의 삼위일체론』, 374-75.
26) Thomas, ST, I, q. 34, a. 3
2. 성자의 나심(generation)
토마스에 따르면, 우리의 지성적 활동에서 발생하는 말(생각)은 그것 을 발생시키는 근원과 동일한 본성을 갖지 않지만, 하나님의 경우, 인식하 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본질이 된다.27)
밖으로의 발출과는 달리 안으로 발 출하는 것은 더 온전한 발출일수록 그 인식된 대상과 가까워지기 때문이 다.
밖으로의 발출은 발출되는 것이 그 본래의 것과 다른 것이다.
예를 들 어, 나무에서 가지가 나오지만, 나무와 가지는 서로 다르다. 반면, 생각이 마음으로부터 유래하여 마음의 본질을 드러내듯이 안으로의 발출은 더 온전할수록 그 대상과 하나가 된다.
다시 말해, 지성으로 어떤 대상을 온 전히 인식하면 할수록 그 대상과 더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하나님의 인식 은 완전의 극치에 있기에 그분의 지성적인 자기 인식은 자신과 완전히 하 나이며 어떠한 차이도 있을 수 없는 존재를 낳는다.28)
따라서 성자는 성부 와 본질상 온전히 동일한 존재로 나시며 이러한 말씀의 발출을 성경은 ‘출 생’이라 이름한다.29)
27) Thomas, ST, I, q. 27, a. 2.
28) Thomas, ST, I, q. 27, a. 2, ad 2.
29) 토마스는 출생은 비존재에서 존재로의 변화이기에 하나님께 적용될 수 없다는 견해에 반박하여 출 생의 명칭이 두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한 양태는 태어나 존재하는 것에 사용될 수 있 으며, 또 다른 한 양태는 한 ‘종’(species)의 기원을 지칭하는 명칭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 어, 사람이 사람에게서 나오고 말이 말에서 나오는 것처럼 ‘같은 종’의 탄생을 말할 때 우리는 존 재(탄생)와 기원(종)의 두 가지 측면에서 출생의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즉, 출생은 생명 있는 어떤 것과 결부된 ‘기원’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발출은 첫 번째 의미에서 출생(탄생)하지 않으시기에 말씀이 자기와 결부된 근원인 성부로부터 발출하는 것을 ‘출생’이라 이름할 수 있다. Thomas, ST, I, q. 27, a. 2.
그러나 성부가 피조물의 아버지라 말할 수 있는 데 반하여 성자를 우리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성자께서 성부와 동일한 본성을 가지 신 것에 비해, 피조물은 그 본성의 유사성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성 부가 피조물의 아버지라 불리며 피조물에 “자성”(子性), 즉 아들 됨의 명 칭이 주어질 수 있는 것은 피조물이 성자에 대한 어떤 유사성을 공유하는 것에 근거한다.30)
달리 표현하자면, 성자는 그 아들 됨을 피조물인 우리에 게 나눠줌으로써 우리를 양자 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기에 우리의 아들 이 아니라 많은 형제 중에서 우리의 ‘맏이’가 된다(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1)
30) Thomas, ST, I, q. 33, a. 3, ad 1. 31) Thomas, ST, I, q. 23, a. 4. 32) Thomas, ST, I, q. 27, a. 3. 33) Thomas, ST, I, q. 27, a. 3.
3. 성령의 나오심(spiration)
토마스는 성자의 발출 이외에 또 다른 발출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요 한복음 15장 26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하는데, 14장 16절에 따르면 성령은 성자와 다른 분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 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하며 성령의 발출, 즉 ‘나오심’(spiration)을 증언한다.32)
토마스에 따르면, 말씀(말)의 성격이 화자(a speaker) 안에 남아 유사 성을 띠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성격도 발출된 존재와 유사성을 가지 며 “이 발출에 의해 사랑을 받는 자는 사랑하는 자 안에 존재한다.” 33)
그러나 사랑의 발출이 ‘출생’(generation)으로 불리지 않는 것은 지성과 의지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즉 지성이 현실태로 되는 것은 인식된 사물이 그 유사성에 따라 지성 안에 있게 되는 데 기인한다.
반면, “의지가 현실태로 되는 것은 원해진 것의 어떤 유사성이 의지 안에 있는 데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의지가 원해지는 것에로의 어떤 경향을 갖고 있 는” 것에 근거한다.34)
다시 말해, 지성의 작용은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것 인데 의지의 작용은 어떤 것을 원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의지가 원하는 대 상으로 움직이는 성향을 가진다.
따라서 모든 출산자가 자기에게 유사한 것을 낳듯이 지성에 기인한 발출은 출생의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에 비하 여, 의지로 말미암은 발출은 대상을 가지지 않고 대상을 향해 움직여 가는 것의 성격에 따라 출생이 아닌 영으로서 발출한다.35)
또한, 토마스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의 상호적인 사랑의 끈으로서, 이 양자의 관계로부터 발출한다고 보았다.36)
성령이 성자로부터 유래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성자와 성령은 위격적으로 구별될 수 없기 때문이다.37)
관계들은 대립적인(opposing) 한에서만 구별될 수 있다.38)
만일 성자와 성령이 성부의 위격에만 관련이 있다면 성자와 성령은 대립적 관계가 아 니므로 위격적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로버트 레담(Robert Letham, 1947- )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받는다는 점에서 추론해 볼 때 그리 스도와 성령의 독립적 관계는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39)
34) Thomas, ST, I, q. 27, a. 4.
35) Thomas, ST, I, q. 27, a. 4.
36) Thomas, ST, I, q. 37, a. 1, ad 3;
37) Thomas, ST, I, q. 36, a. 2.
38) Emery, The Trinitarian Theology of Saint Thomas Aquinas, 45.
39) Letham, 『개혁주의 삼위일체론』, 354.
앞서 살펴본 바 와 같이 지성의 양태를 통해 성자가 ‘말씀’으로 발출하고 성령이 ‘사랑’으 로 발출한다면 사랑은 필연적으로 말에서 발출해야 한다.
지성은 의지에 선행하며, 의지는 지성에 기반하여 작용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성자에게서 발출된다는 증언은 성경에 문자적으로 명확히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성령이 오직 성부에게서만 발출하신다고 말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40)
조동선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호흡 해 내심(요 20:22)은 내재적으로 성령이 성자에게서 발출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며 성령께서 하나님의 “또 다른 아들로 혹은 성자의 형제로 불리지 않는” 이유라고 말한다.41)
토마스는 요한복음 16장 14절에서 성자가 성령 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는 데서 이를 추론한다.
“그는내 영광을 나타 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14)42)
40) 조동선, “성령을 통한 교회의 연합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 「조직신학연구」 46 (2024): 99.
41) 조동선, “성령을 통한 교회의 연합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 99.
42) Thomas, ST, I, q. 36, a. 2, ad 1.
Ⅲ. 내재적 상호성에 따른 관계
1. 근원으로서의 성부
성부의 근원성은 성부가 성자나 성령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속성을 지 니고 있음을 의미한다.43)
성부가 성자와 성령을 발출함으로써 모든 것이 시작되며, 모든 신적 작용은 성부로부터 발현되어 성자와 성령을 통해 실 행되고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부의 특성은 조화와 일치 속에서 삼 위일체의 존재와 의지의 시작점으로 특징된다.
예를 들어, 경륜에서 드러난 ‘파견’의 상호 관계성은 성부로부터의 근 원적 질서를 나타낸다.44)
43) Thomas, ST, I, q. 39, a. 1;
44) 브루스 웨어는 유대교 배경에서 ‘파견’은 보냄 받은 자가 보낸 자의 목적을 성취하는 권위와 복종 의 관계를 드러낸다고 말한다. 누가복음의 백부장 이야기는 보냄의 복종 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 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눅 7:8).” Ware, “Equal in Essence, Distinct in Roles,” 21-26.
구속의 경륜을 이루기 위해 성자와 성령은 성부 로부터 파견되지만, 성부는 파견되지 않는다.
토마스는
“파견은 그 개념 안에 다른 것으로부터의 발출을 내포하고 있으며…. 하나님은[성부] 다른 것에 유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파견된다는 것은 그에게 적합하지 않 다.”라고 말한다. 파견이 성자와 성령에게 적합한 것은 이 두 위격이 성부 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이다.45)
45) Thomas, ST, I, q. 43, a. 4.
성부는 영원히 존재하는 분으로서 다른 위 격에 의해 보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성자와 성령은 각각의 방식으로 사람 들에게 보내져서 그들 안에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하게 된다.
2. 말씀으로서의 성자
성부로부터 성자가 말씀으로 발출되었다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계 획을 수용하고 실행하는 관계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함의한다.
말씀이 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관계성을 반영하는데 아버지는 말씀을 통해 스스 로와 모든 피조물에 말씀하신다.46)
토마스는 성부가 아닌 성자가 파견되 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파견이 하나님의 위격에 적합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한편으로는 파견하는 자로부터의 기원적 발출을 내포하는 데 따 른 것”이라 말한다.47)
파견의 사명에서 아버지와의 관계로부터 비롯된 아 들의 행동 양식은 발출에 따른 아들의 존재 양식과 동일하다.48)
46) Thomas, ST, I, q. 34, a. 3.
47) Thomas, ST, I, q. 43, a. 1.
48) Michael Dauphinais, Knowing the Love of Christ: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St. Thomas Aquinas,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2002), 110.
예수께서 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 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 17:8)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이 하나 님 아버지로부터 말미암았다는 사실과 아버지께서 자신을 이 세상에 보 내셨다는 것을 믿었다.
즉,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와의 발출 관계로 말미암아 존재하며, 이 관계는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과 연결되어 있 기에 그 본질과 사명이 모두 동일한 근원, 즉 성부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이 세상에 파견되어 육신을 취함으로써 가 시적으로 존재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성육신 이전에도 앞서 이 세상에 있 었다(요 1:10).
그러므로 파견은 영원한 발출을 내포하는데 거기에 시간적 인 결과를 첨가한 것이라 말해야 한다.49)
49) Thomas, ST, I, q. 43, a. 2, ad 3.
3. 사랑으로서의 성령
성령이 사랑으로 발출되었다는 것은 성부와 성자의 사랑을 표현하고, 그 사랑의 관계에서 임무를 수행함을 의미한다.
성령은 성부로부터 시작 되고 성자께서 실행하신 신적 작용을 완성하고 적용하는 역할을 하기 때 문이다.
토마스는 “성부와 성자는 성령에 의해 서로 사랑하는가?”라는50) 물음에 답하여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 사랑의 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인 개념에서 삼위일체의 내적 발출 관계에 따라 성령을 통해 성부 와 성자가 사랑하신다고 말한다.51)
성부는 자신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 는 “제1선성”(summun bonum) 52)의 사랑으로서 사랑의 기원자가 되지만, 성령을 통해 모든 사랑의 신적 작용을 이루신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서 하나님의 깊은 곳까지 탐구하며, 창조되지 않은 사랑의 선물로 주어진다.
성령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삶은 완전한 선물이 되며, 신적 위격 간에 상호적인 사랑의 교환이 된다.
성령은 이 자기 증여의 개 인적 표현이다.53)
50) Thomas, ST, I, q. 37, a. 2.
51) Thomas, ST I, q. 37, a. 2, ad 1.
52) Thomas, ST, I, q. 37, a. 2, ad 3.
53) Dauphinais, Knowing the Love of Christ: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St. Thomas Aquinas, 106.
또한,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인용하며 성자뿐 아니라 성령이 “피조물을 성화하기 위해 (시간적으로) 발출한다.”라고 말한다.54)
하나 님의 위격이 어떤 자에게 파견된다는 것은 그가 파견되는 바로 그 하나님 의 위격에 동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성령은 사랑이기 때문에 그 영 혼은 사랑의 덕으로 인해 성령과 동화된다.
질레스 에메리(Gilles Emery, 1950-)는 토마스 신학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내재적 관계성은 성화의 은사 로서 성도들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성화를 개인적으로 구현하는 특징 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55)
성령의 파견은 성부와 성자로부터의 영원한 발출과 성도들을 성화하는 시간적 파견을 포함한다.
성령의 현존은 사랑 의 은사를 통해 영혼을 성령과 일치시키는 것으로 표시되기 때문이다(롬 5:5, 갈 5:22-23).56)
54) Thomas, ST, I, q. 43, a. 3.
55) Emery, The Trinitarian Theology of Saint Thomas Aquinas, 192.
56) Emery, The Trinitarian Theology of Saint Thomas Aquinas, 192.
따라서 사랑으로서의 성령은 삼위일체 내의 관계적 역 동성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의 성화를 위해서 일한다.
성령의 파견은 영원 한 발출의 반영이자 시간적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총의 현현이다.
이러한 파견을 통해 성도들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깊은 연합으로 이끌려가며, 신 적 사랑과 지식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된다.
Ⅳ. 위격의 두 특성
1. 위격의 공통성
‘위격의 공통성’은 하나님의 세 위격이 하나의 본질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 라”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요 10:38) 천명하셨다.57)
즉, 세 위격은 ‘동일본질’의 한 하나님이지만, 서 로 다른 역할과 관계로 구별된다.
위격 모두가 하나의 본질을 공유한다는 것은 세 위격이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뜻하며, 관계로 인해 구별된다 는 것은 상호 위격으로 말미암아 실재적으로 구별될 수 있음을 뜻한다.
영원 전에 성부로부터 성자와 성령의 신성이 유래했다는 성부 단일원리성(The Monarchy of God the Father)은 양태론이나 종속론의 오류로 부터 참 신앙을 구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세 위격이 공통적인 한 본질 을 온전히 공유한다는 것은 어느 한 위격이 다른 위격보다 더 많다거나 더 크다고 하는 이단적 견해를 반박한다.58)
아리우스 추종자들처럼 위격 간 에 증가나 감소가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성의 차이를 전제함으로 삼위 일체를 변질시킨다
그러나 토마스는 성자는 성부와 본질에서 동등한 크 기를 갖기에 삼위는 본질상 서로 동등하다고 말한다.59)
크리스토퍼 빌리 (Christopher Beeley, 1969-)는 삼위일체의 근원으로서의 성부의 정체성 을 부인하는 것은 “성부와 다른 근원을 상정함으로써, 또는 원인으로서의 성부로부터 성자 및 성령의 존재를 끌어내지 않는다고 생각함으로써” 하 나님의 존재 전체를 부인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말한다.60)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Gregory of Nazianzus, 329-390) 역시 기원의 관계성을 얘 기하며 “한 분이 원인이고 다른 분이 그것에 의존한다고 믿으면, 우리는 더 이상 위격들의 공통적인 본질의 구분을 무너뜨린다고 비난받지 않아 도 된다”라고 말하였다.61)
57) Thomas, ST, I, q. 39, a. 2, ad 2.
58) Thomas, ST, I, q. 42, a. 1.
59) Thomas, ST, I, q. 42, a. 1, ad 4.
60) Christopher A. Beeley, Gregory of Nazianzus on the Trinity and the Knowledge of God, 백 충현 역, 『삼위일체와 영성』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18), 349.
61) Edward Rochie Hardy, Christology of the Later Fathers, 염창선 외 역, 『후기 교부들의 기독 론』, 기독교 고전총서 3권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11), 361-62.
2. 위격의 고유성(hypostatic property)
한편, ‘위격의 고유성’에 관하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 24절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고 진술한 것을 들 수 있다.
고유성(appropriation)은 하나님의 속성들이 각 위격에 어떻게 고유하게 나타나는지를 설명하는 개념이며, 토마스는 이를 통해 삼위일 체의 신비를 설명하고자 했다.62)
삼위 하나님은 빛과 빛으로서 그들 사이 에 대립(opposition)이 없지만, 생성된 것과 비생성 된 것으로서 우리는 그들을 대립의 측면에서 고려해야 한다.63)
특성(idiomata)은 본질(ousia) 의 동일성 내에서의 다름을 나타내는 성격을 가지는데, 특성은 “서로 대 립함으로써”(opposing themselves) 구별되지만, 본질의 통일성을 분열 시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성은 공통적이지만, 기원적 관계를 따라 부성 (paternity)과 아들됨(filiation)이 고유한 특성이 나타난다.64)
예를 들어, “피조계에서 제1근원은 두 가지 모양으로 식별된다.” 65)
하나의 양태로는 그것으로부터 유래하는 것들과의 관계를 갖는다는 점이며, 또 다른 양태 로는 그것이 제1근원인 한 타자로부터 유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66)
삼위 의 위격에서도 그와 같은 관계가 발견되는데, 하나님은 선후(先後)가 없으시기에 “‘근원에서 오지 않는 근원’ 즉 성부와 ‘근원으로부터 오는 근 원’” 즉 성자가 식별되며 이러한 근원적 관계는 각자의 고유성에 속하게 된다.67)
62) Thomas, ST, I, q. 39, a. 7.
63) Emery, The Trinitarian Theology of Saint Thomas Aquinas, 45.
64) Emery, The Trinitarian Theology of Saint Thomas Aquinas, 45.
65) Thomas, ST, I, q. 33, a. 4.
66) Thomas, ST, I, q. 33, a. 4.
67) Thomas, ST, I, q. 33, a. 4; Christopher Beeley 역시 Gregory of Nazianzus의 삼위일체 신학 을 해석하며 “성부가 자신의 근원이 되시면서 동시에 성자 및 성령의 근원이 되시는 것은…. 성부 의 특별한 속성이다.”라고 말한다. Beeley, 『삼위일체와 영성』, 349.
달리 말하면, 삼위 하나님은 온전히 동일한 본성을 소유하시기에 한분 하나님으로 동등하시지만, 위격의 근원적 고유성을 따라 상호 간에 관 계(대립)적인 질서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68)
질서는 항상 근원과 관 련해서 말해지는데, 그것은 “본성 자체가 질서 지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위격들에 있어서의 질서가 본성적 기원에 따라 고찰되 기 때문이다.” 69)
토마스는 “그것은 한쪽이 다른 것보다 먼저라는 그런 질 서가 아니라 한쪽이 다른 것으로부터 존재한다는 질서이다”라고 진술한 다.70)
하나님의 발출은 영원 전에 기원하기에 선행성이 없으므로 “하나님 에 있어서는 선행성 없이 기원에 근거한 질서가 존재하여야 한다.” 71)
68) Thomas, ST, I, q. 42, a. 3.
69) Thomas, ST I, q. 42, a. 4, ad 3.
70) Thomas, ST, I, q. 42, a. 3.
71) Thomas, ST, I, q. 42, a. 3.
결 국, 지혜인 성자는 성부로부터 말미암고, 사랑인 성령은 지성적 본성의 원 천인 성부와 그에게서 나온 지혜(말)로부터 말미암으므로 삼위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내재적인 질서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3. 성자의 위격적 고유성: 순종
한 본질을 공유하는 기원의 관계에 따라 각 위격의 고유성이 나타난다 는 토마스의 논증은 성자의 위격적 특성을 “수용성”(reception)으로 정의 한다.72)
앞서 살펴보았듯이, 토마스는 신적 위격들의 발출은 하나님의 단 순하고 분리할 수 없는 본질 내에서 각 위격이 신적 본질을 소통하거나 소 통 받는 독특한 방식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토마스는 성자가 성부로부터 영원 출생한 것으로 말미암아 성부의 뜻을 ‘수용적으로 실행 하는’ 고유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 것이다.73)
72) Thomas, ST, I, q. 41, a. 3.
73) Scott Swain and Michael Allen, “The Obedience of the Eternal Son,”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15/2. (2013): 123-24.
성자의 수용성은 성부와 성자 간의 관계적 질서(taxis)의 표현으로써 실질적인 권위와 순종의 관계를 포괄한다. 토마스는 예수께서 “아버지 는 나보다 크심이라”라고 말씀하신 요한복음 14장 28절을 주석하며 힐러 리(Hilary of Poitiers)를 따라 “subjectio”(submission)와 “pietas”(piety)라 는 용어를 신성의 근원이신 성부를 향한 성자의 경외와 의무를 표현하는 데 사용하였다.74)
라틴어 subjectio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권위나 지시 에 따르는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이며, pietas는 부모나 신에 대한 존경과 의무를 포함하는 덕목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토마스는 이러한 단어를 통 해 성부를 향한 경외와 사랑에서 비롯된 깊은 존경심과 의무감을 반영하 여 성자는 ‘성부의 뜻을 따른다’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75)
따라 서 토마스가 예수의 신성에 ‘순종’을 함의하는 보다 직접적인 용어를 사용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고려해야 하지만 그가 실제로 의도한 것은 일반적 인 ‘순종’의 개념을 내포한다.76)
또한, 우리는 ‘순종’이란 개념이 ‘유비’의 언어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 가 있다.
토마스는 “원형인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어떤 신적 유사성이 인 간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 유사성이 동등성에 따른 유사성은 아닌데, 왜냐하면 이 원형은 이 원형을 닮은 그것을 무한히 뛰 어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77)
74) Thomas Aquinas, Commentary on the Gospel of John, trans. by James A. Weisheipl and Fabian Larcher (NewYork: Magi Books, 1980), Ioan. 14, lect. 8, n. 1971. (이후 Commentary on John으로 인용함).
75) Dauphinais, Knowing the Love of Christ: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St. Thomas Aquinas, 103-4.
76) Dauphinais, Knowing the Love of Christ: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St. Thomas Aquinas, 103-4.
77) Thomas, ST, I, q. 93, a. 2.
도널드 맥클라우드(Donald MacLeod, 1940-2023) 역시 성자의 영원한 출생은 그 본성의 상이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낳음이라는 맥락에서는 이해될 수 없다”라고 진술하는데, 성자는 “빛에서 나온 빛, 생명에서 나온 생명, 선에서 나온 선이듯이, 그는 확실하게 영원에서 나온 영원”이기에 인간의 출생과 달리 시작점이 부여될 수 없기 때문이다.78)
하지만 출생, 아들 됨, 순종과 같은 언어적 개념을 거부 한다면 인간의 언어로 계시가 된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 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경륜에만 해당할 수 없는 것은 성경의 계시가 성자 의 영원한 아들 됨을 증언하기 때문이다(요 1:18; 3:16; 17:5; 골 1:15-17; 히 1:2-3; 시 2:7; 잠 8:22-25; 요일 4:9).
맥클라우드는 “기독교 신학이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의 하나 됨”을 받아들이지 않고 “아들 됨을 계시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라 계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채택된 고안물”로 치부해 버린다면,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아들의 특권들을 험한 종의 신분과 기꺼이 바꾸었다는 맥락에서 표현될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갈 4:4)79)
그와 같이 하나님에게 인간의 ‘순종’ 개념을 그대로 대입할 수 없지만, 그 용어의 유비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계시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 문이다.80)
78) 인간의 출산은 고통과 수고의 행위인 데 반해 신의 나심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인간의 출산에 서는 아버지가 항상 아들보다 먼저 존재한다. 그러나 태양이 그 광채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고 광 채와 동시에 존재하듯이(히 1:3) 신의 나심은 영원에서 이루어짐으로 선행성이 존재하지 않는 다. Donald MacLeod, The Person of Christ, 김재영 역, 『그리스도의 위격』 (서울: IVP, 2001), 176-77.
79) MacLeod, 『그리스도의 위격』, 174.
80) 그루뎀은 성부와 성자의 관계 패턴을 묘사하기 위해 권위(authority)와 순종(submiss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다른 용어들보다 성경 증언의 완전성을 더 잘 표현하는 것으로 보았다.사람 들이 오늘날 현대적인 권위 개념에 저항하는 것은 권위의 참된 의미가 죄로 인해 오염된 결과일 뿐 이다.죄 없는 천사들 사이에서는 천사장에게 더 큰 권위가 주어진다는 점이 이상하지 않은 점으 로 보아(살전 4:16; 유다 9절) 권위의 개념 자체가 부정적이라곤 볼 수 없다.그러므로 아들이 신성 과 영광에 있어 아버지와 동등하면서도 항상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라면 오늘날 여러 인간관계 속에 존재하는 권위와 복종 관계를 바르게 이해하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 다.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304-5.
성경은 성자의 수용성을 ‘순종’(빌 2:5-8; 요 5:19; 6:38; 8:28-29; 히 5:8-9)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성자의 고유성을 순종으로 정의할 수 있 는 것은 성육신의 성격 자체에서도 분명하게 증거되는데, 성자는 성부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성부의 구원 계획을 성취 하기 위해 고난을 겪고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고유성은 “성자가 성부로부터 왔듯이, 성자는 성부로부터 일 한다(요 8:42).”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81)
이처럼 위격의 내재적 질서에 따르면, 성자의 순종은 단지 경륜적 사 명에 관한 한시적 상태가 아니라 본질적 특성의 발현임을 알 수 있다.
위 격의 고유성이 함의하는 관계적 질서는 경륜에서 드러난 성자의 순종이 내재적 관계에서 기인함을 나타내며,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 니, 나도 일한다.”라고 하신 예수의 진술에도 부합한다(요 5:17).
요한복 음 5장 19절 또한 아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 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라고 진술함으로 아버지의 일 을 행하는 아들의 순종을 증거한다.
마이클 도피네(Michael Dauphinais, 1973- )는 성부를 향한 성자의 태도를 가장 날카롭게 표현한 것은 요한 복음 5장 30절을 주석한 토마스의 다음과 같은 진술이라고 보았다:82)
“아 들은 다른 이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서 이루는데, 이는 그 뜻을 다른 이로 부터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서 이루는데, 이는 그 뜻을 다른 이로부터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Filius implet voluntatem suam ut alterius, idest ab alio habens; pater vero ut suam, idest non habens ab alio) 83)
81) Scott Swain and Michael Allen, “The Obedience of the Eternal Son,”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15/2. (2013): 123-24.
82) Dauphinais, Knowing the Love of Christ: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St. Thomas Aquinas, 105.
83) Thomas, Commentary on John, Ioan, 5, lect. 5, n. 798.
Ⅴ. 성자의 영원한 순종을 반대하는 견해들
1. 구속 언약적(Pactum Salutis) 견해
한편으로 어떤 학자들은 아들의 순종을 보내심으로부터 십자가까지 로 한정하기도 한다.84)
성경은 창세전에 아들의 보내심이 결정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지만(엡 1:3-14), 그 구속 언약은 결국 경륜에 속한 임의적인 작정의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영원에 대해 말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삼위 하나님은 일원적 근원 관계로 말미암아 영원 에서부터 “질서와 순서”를 가진다고 말한다.85)
즉, 영원 전에 성부로부터 성자가 보내어진 “이 질서 원리는 영원으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영원과 대 립하지 않는다.” 86)
대런 섬머(Darren O. Summer) 또한 바르트의 견해를 따라 하나님의 존재 양식과 행동 양식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 여 순종하는 아들 하나님 혹은 순종 받는 아버지 하나님이 영원 전에 자신 이 아닌 모습으로 존재할 리 없다고 결론짓는다.87)
토마스는 “파견은 영원한 것인가 혹은 다만 시간적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루며 “파견은 영원한 발출을 내포하는데 거기에 어떤 것을 첨가 하는 것이다”라고 진술했다.88)
84) John Owen, A Declaration of the Glorious Mystery of the Person of Christ, 박홍규 역, 『기 독론』 (서울: 처음과 나중, 2020), 375-76.
85) Karl Barth, Church Dogmatics, 황정욱 역 『교회 교의학 Ⅱ/1』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656-67; 토마스 역시 하나님은 단일적으로 자기 존재 그 자체이시므로 하나님은 “자기 본질인 것 처럼 자기 영원성(영원성 자체)”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영원에서 이루어진 구속 언약의 작정은 그것이 창조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인하여 하나님의 본질과 분리될 수 없다. Thomas, ST, I, q. 10, a. 2.
86) Barth, 『교회 교의학Ⅱ/1』, 656-67.
87) Darren O. Sumner, Obedience and Subordination in Karl Barth’s Trinitarian Theology Advancing Trinitarian Theology: Essays in Constructive Dogmatics, eds. Oliver D. Crisp and Fred Sanders (Grand Rapidz: Zondervan, 2014), 10.
88) Thomas, ST, I, q. 43, a. 2. ad 3.
경륜에서 나타난 성자의 파견은 영원한 발출이 시간 속에서 “이중적”(dupliciter)으로 드러난 것인데 이는 두 가지 발출이 존재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발출이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다.89)
따라서 성자의 파견 즉, 성육신은 삼위일체의 본질적 인 관계에서 기원하여 경륜적으로 나타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루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자께서 창세 전뿐만 아니라 승귀하신 이후와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에서도 성부께 복종하신다는 성경의 증언 이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관계적 질서를 나타낸다고 말한다.90)
영원 전 에 성부께서 그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성경의 증언(딤후 1:9)은 아버지와 아들의 구별된 역할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계획으로 말 미암아 예정된 경륜의 은혜(엡 3:9-11)가 아들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벧전 1:19-20; 계 13:8).91)
승귀하신 이후에도 아들은 성령을 자 기 뜻대로 보내지 않고 아버지께 받아서 부어주시며(행 2:32-33), 그 자신 의 계시 또한 성부께 받아서 자신의 종들에게 알게 하신다(계 1:1).92)
모든 원수가 멸망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이 임하는 때에도 아들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신 아버지에게 복종하며(고전 15:24-28) 영원한 중보자로 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신다(히 7:24-25; 딤전 2:5; 요일 2:1).93)
89) Thomas, ST I, q. 43, a. 2. ad 3.
90) Wayne Grudem, “Biblical Evidence for the Eternal Submission,” in The New Evangelical Subordinationsm?: Perspectives on the Equality of God the Father and God the Son, eds. Dennis W. Jowers and H. Wayne House (Illinois: InterVaisity Press, 2012), 252.
91) Grudem, “Biblical Evidence for the Eternal Submission,” 232-34.
92) Grudem, “Biblical Evidence for the Eternal Submission,” 247.
93) 케빈 자일스(Kevin GIles, 1940-)는 고린도전서 15:24-28을 해석하며 부활 때 성부가 성자를 모든 것의 통치자로 삼고, 아들이 이 통치를 다시 아버지에게 돌려주는 것은 결국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권위의 구조가 교환되고 두 전능한 신적 인격이 다른 시기에 역할을 바꾸는 것이라 주장한다. Kevin GIles, Jesus and the Father: Modern evangelicals Reinvent the Doctrine of Trinity (Grand Rapids: Zondervan, 2006), 115; 그러나 성경의 계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역행할 수 있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구원의 성취 차원에서 가장 일반적인 순서는 “성령에 의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로부터”이다. 그것은 역행할 수 없는 순서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시지만, 아들은 절대 아버지를 보내지 않는다.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나오시지만, 아버지는 절대 성령이나 아들로부터 발현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Letham, 『개혁주의 삼위일체론』, 612-13; 칼 바르트 또한 베른하르트 바르트만(Bernhard Bartmann, 1860-1938)을 인용하여 “세 인격들 이 서로서로 구별되게 하는 것은 본질성 안에서 찾아져서는 안 되며, 한 인격이 다른 인격들과 더불어 전적으로 동일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그 인격에서 우선적으로 찾아져서는 안 되며, 오히려 본 질성의 상이한 소유양식 안에서 찾아져야 한다.”라고 말한다.그러므로 “신적인 존재 양식들 중의 하나가 마찬가지로 다른 존재 양식일 수 없다.”그러므로 아버지가 아들이 된다거나 혹은 아들이 성령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고려될 수 없다. Karl Barth, Church Dogmatics, 황정욱 역 『교회 교의학 Ⅰ/1』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466-67.
2. 성자의 인성에 한정된 순종
경륜에서 드러난 영원한 아들의 순종은 성육신한 성자의 인성에 속한 다는 학자들의 견해도 존재한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성자 의 순종을 암시하는 구절은 단지 성자의 겸손한 중재자적 상태, 즉 성육신 의 경륜에 한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94)
실로 요한복음의 많 은 본문은 성자의 중재자적 직분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스캇 스웨인(Scott Swain)은 성자가 성부의 주도권을 따르며 성 부의 일을 수행하는 방식을 진술한 성경의 언어가 똑같이 성령에게도 적 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95)
성자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듯이(요 5:19), 성령도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오직 그가 들은 것만 말씀하신다(요 16:13-15).
이러한 증언에 비추어 보면 성자의 순종을 그 인성에 따른 성육신에 한정할 수 없는데, 성령은 성자와 다르게 종의 형상 을 취하셔서 두 본성을 가지지 않으셨음에도 성부와 성자의 뜻을 행하시 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도널드 카슨(Donald A. Carson, 1946-) 역시
“아 들이 자신의 지상 사역을 통해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렸던 것과 마찬가지 로(요 7:18; 17;4), 보혜사도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예수께 영광을 돌리고, 이것이 그의 사역의 중심적인 목적이다.”라고 말한다.96)
94)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trans. William Pringle (Grand Rapids: Baker, 1998), 198-207.
95) Swain and Allen, “The Obedience of the Eternal Son,” 125.
96) Donald A. Cars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박문재 역, 『요한복음』 (서울: 솔로몬, 2017), 1004.
그런데 예수께서 말하고 행하신 모든 것이 아버지로부터 말미암기에 그가 자신의 것이 아 닌 오직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라고 말씀하신 ‘내 것’ 은 “아버지 자신의 계시”와 다르지 않다.97)
한편, 토마스가 아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순종의 특성을 허용하지 않 았다는 견해도 있다.
스티븐 두비(Steven Duby)는 토마스가 예수께서 “아 버지가 나보다 크시니라”(요 14:28)라고 주석하며 이 구절은 성자의 인성 에 한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그 예로 든다.98)
실로 토마스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6-373)를 인용하며 아들이 “신성에 따라 아버지와 동등 하고, 인성에 따라 아버지보다 작다”라고 진술하였다.99)
그러나 토마스는 같은 구절을 주석하며 힐러리를 인용해 “증여하는 자의 권위로써 성부는 성자보다 더 크다.
그러나 동일 존재가 증여되는 성자는 성부보다 더 작지 않다.” 100)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토마스는 동일한 구절에서 두 가지 상반되어 보이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을까? 도피네는 토마스 주석의 특징은 “가능한 의미를 찾기 위해 매우 넓고 깊게 그물을 던지는 것”이라 설명한다.101)
토마스가 그가 주석하는 내용에서 동방과 서방 교부들의 다 른 해석을 함께 인용하는 것은 그 두 견해가 다 한 본문에서 이해될 수 있 다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토마스는 예수의 순종을 표현하 는 모든 요한복음의 주요 개념과 구절을 예수의 신성에도 적용하여 해석 하기에 토마스가 아들의 순종을 인성에만 돌리고 있다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102)
97) Carson, 『요한복음』, 1004.
98) Steven J. Duby, “Trinity and Economy in Thomas Aquinas,” The Southern Baptist Journal of Theology, vol. 21/2, (2017): 35.
99) Thomas, ST, III, q. 20, a. 1, ad 1.
100) Thomas, ST, I, q. 42, a. 4. ad 1.
101) Dauphinais, Knowing the Love of Christ: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St. Thomas Aquinas, 100.
102) Dauphinais, Knowing the Love of Christ: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St. Thomas Aquinas, 102.
3. 성자의 분리된 고유성
또 다른 반대는 성자의 순종을 그 본질적 위격의 특성으로 간주하 면 성부와 성자의 두 의지를 상정하게 되거나 성자의 전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103)
매튜 바렛(Matthew Barrett)은 “EFS[Eternal Functional Subordination]주의자들이 마치 위격들이 각자 별개의 행위 자들인 것처럼 말하거나 ‘역할들’과 ‘기능들’ 같은 단어를 사용해 위격들 을 정의할 때, EFS 언어는 성경적 정통의 기본 전제를 저버린다.”라고 비 평했다.104)
삼위일체는 “한 신적 행위자의 한 행위”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 다.105)
그러나 성자의 영원한 순종을 주장하는 이들이 정말 하나님의 세 위격 자를 단지 함께 일하고 서로 동의하는 별개의 행위자들로 묘사하고 있을 까?
토마스는 각 위격에 전유된 특성은 그 위격에만 속하지 않는다고 진 술함으로 성자의 고유성은 두 의지 혹은 열등한 전능성을 함의하는 별개 의 신적 행위자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보았다.106)
신적 위격들의 구별은 오 직 기원의 관계에 따른 것이며 기원의 방식은 본성에 적합한 방식, 즉 “하 나에서 다른 하나가 귀결”되는 본성을 따라 구별되는 동시에 각 위격에 동일하게 존재한다.107)
103) Thomas Joseph White, “Intra-Trinitarian Obedience and Nicene-Chalcedonian Christology,” Nova et Vetera, 6 (2008): 388-91; Kevin Giles, “The Trinity without Tiers,” in The New Evangelical Subordinationsm?: Perspectives on the Equality of God the Father and God the Son, eds. Dennis W. Jowers and H. Wayne House (Illinois: InterVaisity Press, 2012), 283-84.
104) Matthew Barrett, The Unmanipulated Father, Son, and Spirit, 전의우 역, 『정통 삼위일체 교리』 (서울: 생명의말씀사, 2023), 301.
105) Barrett, 『정통 삼위일체 교리』, 301.
106) Thomas, ST, I, q. 39, a. 7. 107) Thomas, ST, I, q. 93, a. 5.
그러므로 성자가 성부로부터 발출한 지혜라고 해 서 성자만 지혜를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성자가 지혜라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지혜인 성부로부터 유래하는 지혜이기 때문이다.108)
마찬가지로 성 령은 성부와 구별된 사랑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성부만이 자신과 모든 피 조물을 사랑하는 “제1선성”(summun bonum)의 사랑으로서 사랑이 기원 이 되시기 때문이다.109)
그러나 성령은 사랑의 기원인 성부로부터 나오심 으로 삼위 하나님의 사랑의 모든 신적 작용의 완성을 이루신다.110)
그러므로 성자와 성령은 성부로부터 유래한 하나의 본성과 의지를 소유하며 성 부의 뜻을 이루시는 방식으로 일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111)
바르트는 토 마스의 인격개념에 있어서 분여불가능성(incommunicabilitas, 위격의 고 유성)의 요소를 설명하며 “고유하게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실로 인격 그 자체가 아니라 세 인격들 안에서의 하나님이니, 바로 삼중적으로 고유 하게 개별적으로 실재하는 자(proprie subsistens)로서의 하나님이다.”라 고 말한다.112)
즉, 세 위격의 고유성은 삼위 내적으로 서로에 대한 관계를 통해서 주어지는 개별적인 고유성이기에 “하나님의 어떤 속성도, 어떤 행 위도 동일한 양식으로 아버지, 아들, 영의 속성, 아버지, 아들 영의 행위가 아닌 것이 없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은 “서로서로에 대하여 비동 일한 근원 관계들에서의 신성의 더함이나 덜함 없이” 있기 때문이다.
이 러한 관계성은 “하나님은 창조자이고 화해자일 수 있음의 전제이며, 창조 자는 화해자라는 것에 그가 구원자일 수 있다는 것이 근거해 있다.” 113)
108) Thomas, ST, I, q. 39, a. 7.
109) Thomas, ST, I, q. 37, a. 2.
110) Thomas, ST, I, q. 37, a. 2.
111) Thomas, Commentary on John, Ioan, 5, lect. 5, n. 1723.
112) Karl Barth, 『교회 교의학 Ⅰ/1』, 470-71.
113) Karl Barth, 『교회 교의학 Ⅰ/1』, 468-71.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성자는 영원 전에 성부로부터 보냄을 받으셨지 만, ‘성부와 함께’ 자신을 보내신 것이라고 언급하며 하나의 의지가 권위 와 순종 관계를 함의할 수 있다고 여겼다.
“성부가 말씀으로 성자를 보내 셨다고 하므로, 그 보내는 일은 성부와 그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성부의 말씀은 곧 성자 자신이므로, 성부와 성자에 의해서 성자가 파견 되셨다.” 114)
조엘 비키(Joel Beeky, 1952-)는 구속 언약(pactum salutis)을 설명하며 하나님은 한 의지만을 지니시지만, 삼위 각각의 위격은 ‘질서’에 따라 하나님의 한 의지에 참여한다고 말한다.
의지는 하나이지만, 그 계 획을 이루어 내는 것에 관하여 “각각의 위격에게는 서로 구별되는 고유한 역할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삼위께서 서로를 알고 서로를 사랑하는 서로 구별되는 위격임을 부정하 게 될 위험성”을 떠안고 말 것이다.115)
그러므로 위격의 공통성과 고유성 에 따르면, 삼위의 세 위격자는 동일한 본성에 의해 동일한 의지와 능력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소유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어떤 이들은 각 위격의 고유성을 그 위격에만 돌릴 수 없다는 주 장에 따라 성자의 고유성을 ‘순종’으로 정의하면 성부도 성자에 대한 순 종의 고유성을 가져야 한다고 반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마스는 위격 의 근원 관계에 따르면, “성자는 성부로부터 그와 동등한 연유를 받지만, 그 역(逆)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성자가 성부와 동등하다고는 하지만 그 역(逆)은 말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Quia igitur Filius accipit a Patre unde est aequalis ei, et non e converso, propter hoc dicimus quod Filius coaequatur Patri, et non e converso.)116)
114) Augustine, De Trinitate, 김종흡 역, 『삼위일체론』 (서울: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2014), 79.
115) Joel Beeky and Paul Smalley, Reformed Systematic Theology, Volume 4, 박문재 역, 『개혁 파 조직신학 4』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2), 138.
116) Thomas, ST, I, q. 42, a. 1. ad 3.
즉 성부가 아닌 성자가 수용성이 란 특성을 가지는 것은 그 동등 됨을 성부로부터 받는 발출 관계에서 기인 하기에 성자의 수용적 특성을 성부에게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러므 로 파견으로 특징되는 ‘순종’의 고유성은 성자의 위격에 적합하며 성부에 게는 돌려질 수 없다.
Ⅵ. 결론
웨인 그루뎀과 브루스 웨어가 주장한 “영원한 기능적 종속”(EFS) 혹은 “권위와 복종의 영원한 역할(ERAS) 관점은 성자 하나님의 순종을 내재적 (ad intra) 관점으로 확장하여 해석하는 주요한 신학적 이슈를 제기하였 다.
이러한 입장은 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며, 공의회와 교부 들, 그리고 교회사의 영향력 있는 신학자 중 한 사람인 토마스 아퀴나스도 주장한 내용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논쟁의 틀 안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삼위일체론을 따라 성자의 위격적 특성을 ‘순종’으로 정의할 수 있음을 논 하고자 하였다.
삼위 하나님의 관계성은 니케아 신조(The Nicene Creed)에서 천 명한 성부 단일근원론(The monarchy of God the father)을 따라 발출 (procession)의 관계성으로 정의될 수 있다.
성자와 성령이 성부로부터 그 본질(ousia)을 온전히 받았다는 것은 세 위격 모두가 본질의 동등성을 가 진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며 종속론과 삼신론의 오류를 반박한다.
성자와 성령이 자기 뜻을 이루지 않고 오직 성부의 뜻을 이루신다는 증언 은 그 관계적 질서(taxis)가 분명한 위격적 타자성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양태론의 오류도 거부한다.
토마스는 발출로 말미암는 기원의 관계성을 따라 삼위 하나님께서 성 부로부터 유래한 한 의지에 각기 다른 역할과 방식으로 참여한다고 보았 다.
발출 관계에 따르면, 성부는 자존적(aseitic) 특성을 따라 자기 뜻을 다 른 이로부터 받지 않기에 자기 뜻을 이루시며, 아들은 수용적(receptive) 특성을 따라 그 의지를 성부로부터 받기에 아버지의 뜻을 자기 뜻으로 이 루신다.
그러므로 경륜에서 드러난 성자의 순종은 구속 언약에 따른 한시 적 변형이 아니라 내재적 관계의 이중적(dupliciter) 반영으로 보아야 한 다.
이처럼 발출에 따른 기원과 질서의 관계성은 경륜에서 드러난 성자의 행동 양식이 그의 존재 양식에 기초했음을 보여주며,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요 5:30) 하신다고 말씀하신 예수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그러므로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성자의 위격적 특성은 ‘영원한 순종’으로 정의될 수 있다.
본 논문은 지면의 한계로 인해 이와 같은 삼위 하나님의 관계성이 현 재 및 미래의 신앙 공동체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까지 다루지는 못하였다.117)
그러나 ‘성자의 영원한 순종’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관계적 갈등과 대립이 큰 논쟁거리가 되 는 현대 사회에 주요한 신학적 함의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118)
117) 삼위일체의 교리가 단지 신학적 개념에 그치지 않고, 실제적인 인간관계와 공동체 형성에 있어 중요한 실천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는 논증에 관하여는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라: Colin E. Gunton, The One, the Three and the Man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129-179.
118) 예를 들어, 웨인 그루뎀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는 관계적 질서에 따 라 사랑으로 연합한 권위와 순종의 서로 다른 기능적 역할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Wayne A. Grudem, Evangelical Feminism: A New Path to Liberalism?, 조계광 역, 『복음주의 페미니 즘』 (경기: CH북스, 2020), 272; 토마스 역시 첫 사람 아담에게서 모든 인류를 만들어 내셨다(행 17:26; 창 2:23-24)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남성과 여성은 가정생활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지 지만 “남자는 여자의 머리가 된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남녀의 창조질서는 “성사적(聖事的)”인 이유에서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통해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사 실”을 드러낸다(엡 5:32).” 그러므로 “여성은 본성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종속 혹은 순종(subiectio)에는 두 가지 양상이 있는데, 종속의 첫 유형은 “노예적 종속”으 로서 이 경우에 “관장자(管掌者)는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종속된 자를 사용한다.” 그러나 또 다른 종속은 “가정적(家政的) 종속”으로서 이 경우 “관장자는 종속된 자들을 그들 자신의 유익과 선을 위해 사용한다.” 토마스에 따르면, 첫째 유형의 종속은 범죄 이후에 도입된 죄의 결과이며, 둘째 유형의 종속의 경우 남성은 여성이 자신에게서 산출되었다는 사실을 앎으로 여자를 사랑하 며 불가분하게 하나 됨을 이루며 사는 원리가 된다. Thomas, ST, I, q. 92, a. 2.
삼위 일체 하나님이 기능적 혹은 관계적인 질서를 가지면서도 동등한 사랑으 로 연합하였듯이, 인간 사회에 내재하는 다양한 관계도 그와 같이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내재적 삼위일체 연구는 오늘날 다양한 관 계 속에서 권위와 순종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기 에 신학적으로 탐구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후속 연구에서는 삼위 하나님의 관계성이 신앙 공동체 내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구현될 수 있을지를 모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갈등과 대립이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Abstract>
Study on the Eternal Submission of the Son: Focusing on Thomas Aquinas’s Doctrine of the Trinity
Young Joon An (Korea Baptist Theological University & Seminary)
This paper aims to demonstrate that characterizing the hypostatic property of the Son as submission aligns with biblical revelation and tradition through an analysis of Thomas Aquinas’ Trinitarian theology. The perspective of “Eternal Functional Submission” proposed by Wayne A. Grudem and Bruce A. Ware in 2016 extended the Son’s submission to the relationships within the Immanent Trinity, sparking a Trinitarian debate. Based on this debate, this paper will examine the properties of each hypostasis in Thomas Aquinas’ Trinitarian theology and argue that the hypostatic property of the Son can be defined as submission. Thomas explained the appropriation of each hypostasis of the Trinity through the intrinsic relationality characterized by the relation of procession. He defined the hypostatic property of the Son as ‘receptivity’ derived from eternal generation. According to the relation of procession, the Father, following the aseitic property, fulfills His will without receiving it from anyone else, while the Son, following the receptive property, fulfills the Father’s will as His own since He receives His will from the Father. Therefore, the Son’s obedience revealed in the economy should be seen as a dual (dupliciter) reflection of the immanent relationship, not as a temporary modification according to the covenant of redemption. That is, the incarnation of the Son signifies that He received not only His essence but also His mission of dispatch from the Father, as reflected in Jesus’ statement, “They knew with certainty that I came from you, and they believed that you sent me” (John 17:8). The internal relationality of the Triune God cannot be directly applied to human relationships. Nevertheless, defining the Son’s hypostatic property as submission can provide an important analogy for various human relationships involving authority and submission, which are tainted by sin. Through the study of the ‘Eternal Submission of the Son,’ this paper hopes to contribute to a proper understanding of the immanent relationality of the Triune God and to re-examine and reflect on the theological meaning of authority and submission in various relationships within human society.
[Key words: Thomas Aquinas, Immanent Trinity, Economic Trinity, hypostatic property, EFS, ERAS, Social Trinitarianism]
[한글초록]
본 논문의 목적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삼위일체론을 분석하여 성자의 고유한 위격적 특성을 순종(submission)으로 특징짓는 것이 성경의 계시와 전통에 부합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2016년, 웨인 그 루뎀(Wayne A. Grudem)과 브루스 웨어(Bruce A. Ware)가 촉발한 ‘영원한 기능적 종속’(Eternal Functional Subordination) 관점은 성자의 순종을 내재적 삼위일체(the Immanent Trinity) 관계로 확장하여 현대 삼위일체 논쟁에 불을 지쳤다.
본 논문은 이러한 논쟁을 바탕으로, 토마스 아퀴나스 의 삼위일체론을 통해 삼위 각 위격의 특성을 살펴본 뒤 성자의 고유한 특 성을 ‘순종’으로 정의할 수 있음을 논할 것이다.
토마스는 발출(procession) 관계로 특징되는 내재적 관계성을 통하여 삼위일체의 각 위격이 가지는 고유성을 설명하였다.
그는 성자의 고유한 특성을 영원한 출생(eternal generation)에서 비롯된 ‘수용성’(reception) 으로 정의한다.
발출 관계에 따르면, 성부는 자존적(aseitic) 특성을 따라 자기 뜻을 다른 이로부터 받지 않기에 자기 뜻을 이루시며, 아들은 수용적 (receptive) 특성을 따라 그 의지를 성부로부터 받기에 아버지의 뜻을 자 기 뜻으로 이루신다.
그러므로 경륜에서 드러난 성자의 순종은 구속 언약 에 따른 한시적 변형이 아니라 내재적 관계의 이중적(dupliciter) 반영으로 보아야 한다.
즉, 아들의 성육신은 그가 아버지로부터 본질뿐 아니라 파견 의 사명도 받았음을 의미하며,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요 17:8)라 고 말씀하신 것에 부합한다.
이처럼 성자의 위격적 특성을 순종으로 이해하는 것은 죄로 오염된 권 위와 순종의 인간관계에 주요한 유비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성자의 영원한 순종’ 연구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재적 관계성을 바 르게 이해하고, 인간 사회의 다양한 관계에서 권위와 순종의 신학적 의미 를 재조명하고 반영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제어: 토마스 아퀴나스, 내재적 삼위일체, 경륜적 삼위일체, 위격의 고유성, 영원한 기능적 종속, 사회적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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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투고일: 2024.06.30. 수정 투고일: 2024.08.07. 게재 확정일: 2024.08.14.
조직신학연구 제47권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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