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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대위임령의 관점에서 본 하나님의 선교 개념 평가/안승오.영남신학大

 

Ⅰ. 들어가는 말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의 선교 명령은 모든 복음서의 마지막 부 분과 사도행전의 앞부분에 나타난다.1

 

     1 이 구절들은 마태복음 28:16-20, 마가복음 16:15-16, 누가복음 24:47-49, 요한복 음 20:21-23, 사도행전 1:6-8 등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이 명령은 예수의 공생애의 마지막에 주어진 말씀들이며, 일반적으로 마지막에 하는 말은 특별한 무게를 지닌다는 점에서 교회는 대략 1950년대 까지 이 명령을 순종하는 것에 거의 이견이 없었다.2

그런데 여러 선 교 명령 중에서도 마태복음 28장 18-20절 말씀은 대위임령(Great Commission)이라 불리면서 가장 대표적인 선교 명령으로 이해되어 교회는 이 명령을 순종하기에 힘썼다.

이 대위임령의 선교적 중요성에 관하여 보쉬(David J. Bosch)는 “단지 40단어로 이것보다 더 위대하면서도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하르낙(Harnack) 말을 인용하면서3 “오늘날 학자들 은 복음서 전체가 이 마지막 구절들을 지시한다는 데 동의한다.1장 부터 계속해서 마태의 직조 하에 짜여진 모든 실들은 여기에서 결합 된다.”라고 표현함으로써 마태복음 전체가 이 명령을 향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와 비슷하게 드영(Kevin De Young)과 길버트(Gregory D. Gilbert)도 “마태복음의 모든 것이 지상명령에서 절정에 이른다 면, 사도행전의 모든 것은 지상명령에서 흘러나온다.”4고 강조한다.

 

     2 김동선, 『하나님의 선교: 그 신학과 실천』 (서울: 한국장로교 출판사, 2003), 44. 김동 선은 “1910년 에딘버러 대회에서는 ‘세계복음화’를 그 이상으로 천명했으며, 세계 상 황의 변화와 더불어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광범위하게 논의되기는 하였지만,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가 태동될 때까지만 해도 전도는 선교의 중심 과제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3 David J. Bosch, Transforming Mission, 김병길·장훈태 역, 『변화하고 있는 선교』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0), 101. 보쉬는 이 외에도 대위임령을 ‘마태복음 전체 의 요약’(G. Bornkamm), ‘이 요점까지 언급된 모든 것의 완성’(P. Nepper Chris tensen), ‘복음서의 끝에 최고의 절정’(Friedrich) 등으로 표현한 글들을 인용한다.

   4 Kevin DeYoung and Gregory D. Gilbert, What is the Mission of the Chruch?, 신 윤수 역, 『교회의 선교란 무엇인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9), 51.

 

본 연구는 이상과 같은 중요도를 지닌 대위임령 말씀에 비추어 오늘날 가장 중요한 선교 개념 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평가해 보고자 한다.

이 연구에서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 ‘하 나님의 선교’ 개념은 주로 호켄다이크(Johannes Hoekendijk)에 의해 발전되고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수용되어 널리 퍼진 개념이다.5

 

    5 하르텐슈타인에 의해 주창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후에 호켄다이크 등에 의해 선교 를 주로 세상에서의 샬롬을 이루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본 반면, 후에 뉴비긴(Lesslie Newbigin) 등에 의해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교회의 역할을 중시하는 복음주의 진 영의 관점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기본적으로 호켄다이 크와 WCC가 주도한 개념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참조. Lesslie Newbigin, The Open Secret: Sketches for a Missionary Theology (Grand Rapids: MI: Eerdmans, 1978), 1-11; 송영섭, “선교적교회론(Missional Ecclesiology) 이해를 위한 세 가지 관 점들: 크리스텐돔, 하나님의 선교, 포스트모더니즘”, 「복음과 선교」 53(2021): 117. 

 

모 든 신학적 개념은 성경으로부터 나와야 하고 또한 계속적으로 성경 에 의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선교’ 개념 역시 예 외는 아닐 것이며, 그런 점에서 이 연구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참 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반영하고 선교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일 에 기여하는 개념이 되기를 바라는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동 기에서 시작된 본 연구는 선교의 방향이 바르게 나아가는 일에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Ⅱ. 대위임령 분석

 

1. 명령자의 권세와 보장의 말씀

 

대위임령의 내용을 분석하기에 앞서 대위임령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분에 의해 주어졌는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마 28:16)라는 말씀 에서 나타나듯이 대위임령이 주어진 상황은 산이었다.

이 점에 대하 여 드영과 길버트는 “시내산에서 변화산과 산상수훈에 이르기까지  산은 가장 중요한 지시나 계시가 주어지는 곳이다. 이 장면도 다르 지 않다. 예수님은 정말 중요한 일을 위해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한 군데로 모으셨다.”6고 설명한다.

예수께서는 그의 승천 이후 재림 때 까지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위대한 사명을 주시기 위해 산으로 제자 들을 부르셨던 것이다.7

예수께서는 대위임령을 주시기 전과 후에 중요한 말씀을 하셨 는데, 명령 전에는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고 말씀하시고, 명령 후에는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는 말씀을 주 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구원과 심판의 권세를 성부로부터 받으 신 분으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8 그런 전능한 능력을 지 니신 예수께서 대위임령을 수행할 제자들과 함께 세상 끝날까지 계 신다는 말씀은 제자들에게 큰 담력을 주시는 말씀인 것이다.

제자들 이 세상에서 제자로 살면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자 할 때 그 과 정에는 말로 할 수 없는 반대, 핍박, 환난 등이 있을 것이지만, 예수 의 권세와 보장의 말씀으로 큰 힘을 얻고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라는 보장과 위로의 말씀인 것이다.9

 

   6 DeYoung and Gilbert, 『교회의 선교란 무엇인가』, 53.

   7 현대성서주석은 이 산을 산상수훈이 주어진 산으로 설명한다. Douglas R. A. Hare, Interpretation, 최재덕 역, 『마태복음』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 450.

  8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마태복음 제21-28장』 (서울: 제자원, 2006), 760.

  9 현대성서주석은 이와 연관하여 “… 교회라는 작은 배는 비록 목숨을 위협하는 풍랑을 만나지만 자신의 힘에만 의지하도록 버려져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Hare, 『마태복음』, 453. 

 

2.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명령

 

대위임령을 주시면서 가장 먼저 예수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 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마 28:19)라고 말씀하신다. ‘제자’ (μαθητής, 마데테스)란 헬라 세계에서 학생, 수련생, 도제 등을 의미 하는 말이며, 신약성경에서는 예수에게 소속된 예수의 추종자를 의 미한다.

키텔 신약원어 사전이 말하는 제자에게 요구되는 삶을 다음 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 그의 인격에 대한 헌신. 신약에서 제자 됨의 독특한 한 가지 측면 은 예수의 인격에 대한 의탁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그의 인격에 대 한 이러한 의탁이 먼저 있을 때에만 힘을 갖는다.

 2) 예수께 대한 순종.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직 예수 자신을 위 해 모든 것을 버리라고 요구하신다(마 10:37ff).

 3) 고난의 의무.

예수와의 사귐에 들어간 제자들은 십자가의 길을 걷 게 된다. … 고난은 또한 좀 더 일반적으로 모든 제자들에게까지 적용된다(cf. 막 8:34ff, 눅 14:26-27).10

 

  10 Gerhard Kittel and Gerhard Friedrich, ed.,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번역위원회 역, 『신약성서 신학사전 킷텔 단권 신약원어 신학사전』 (서울: 요단출판사, 1986), 632-33. 

 

즉 제자란 복음을 통한 예수와의 인격적 만남과 예수에 대한 전 적인 신뢰를 가지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헌신하고, 십자가를 지는 고난까지도 감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킷텔 사전은 제자란 용어 에 대한 요약에서 “(a) 랍비들의 [탈미드] [학생, 제자, 수련 생 등의 의미를 지닌 단어로 신약의 마데테스의 구약 유사어]와 예수 의 μαθητής [마데테스]사이에는 형식적인 유사성은 있지만 내적인 연관성은 없다. (b) μαθητής [마데테스, 제자]의 기본적인 임무는 예 수의 가르침을 전달하거나 그의 삶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다.”11라고 말한다. 따라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는 말씀은 모든 민족 중에서 복음을 통해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 종하고 십자가까지 지는 희생과 고난의 삶을 통해 예수를 증거하고 다른 사람을 또한 제자로 만드는 삶을 사는 사람을 만드는 것을 의미 한다. 이 말씀을 순종하려고 하면, 모든 민족 가운데서 사람들을 만 날 때 그가 제자인가 아닌가를 구분해야 할 것이며,12 제자 여부를 구 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1) 복음을 통한 예수와의 인격적인 만남,

 2) 예 수의 가르침을 따른 헌신,

 3) 십자가를 지는 고난을 통해 타인을 제 자로 삼는 증인의 삶 등의 유무가 될 것이다.13

 

    11 Kittel and Friedrich, ed., 『신약성서 신학사전 킷텔 단권 신약원어 신학사전』, 634. 키텔 사전은 제자의 핵심 사명을 예수에 대한 증거라고 설명한다.

    12에큐메니칼 선교의 경우 선교의 대상은 주로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로 삼는 경향이 있 지만, 예수의 대위임령의 경우는 부자든 빈자든, 높은 자든 낮은 자든 그가 예수의 제 자가 아니면 모두 선교의 대상이 됨을 말씀하는 것이다. 선교 대상에 대한 에큐메니칼 선교 관점은 방콕의 다음 말에서 엿볼 수 있는데, 방콕은 “교회가 먼저 지배계층들, 지 배적 인종들, 지배적 민족들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면, 이 교회는 구원받은 교회가 될 수 없다.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구조적 부정의와 구조적 폭력에의 공범으로 부터 해방받지 못한다면 교회는 인류를 해방시키는 교회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CWME, Bangkok Assembly 1973 (WCC, Publications Service, 1973), 89.

    13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마태복음 제21-28장』, 761-62. 

 

3.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는 명령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명령을 주신 예수께서는 이제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하)라는 말씀을 통해 세례를 베풀 것을 말씀하신다.

요한의 세례와 는 달리 예수께서 명하신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의해서 새 로운 삶의 질서가 수립되는 예식이다.14

세례는 제자가 되는 첫 단계 로 제자가 되었다는 객관적이고 공적이며 가장 분명한 징표인 것이 다.15

고광석은 기독교 세례의 의미를 연구하고 그 의미를

  1) 죄를 씻 어 죄 사함을 받음을 확인하는 예식,

  2)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예식,

  3)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한 몸(교회)이 되는 예식,

  4) 구원의 표 등으로 정리하였다.16

이것은 좀 더 간단히 두 가지의 핵심사항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로 세례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 도로 받아들이는 공적인 예식이다.

이 신앙을 공개적으로 나타낸다 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를 새롭게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는 엄청난 조롱, 손해, 반대, 핍박, 그리고 심지어 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17

 

   14 Donald A. Hagner, Word Biblical Commentary Mattherw 14-28, 채천석 역, 『마 태복음(하)』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08), 1320. 사도행전에서는 세례 시에 예수의 ‘이름’만을 사용(행 2:38; 8:16; 19:5)하는 반면, 대위임령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 령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이름은 단수 오노마 [ὄνομα, 이름]로 표기되며 이것은 셋이 하나임을 말하며 동시에 예수께서 삼위 가운데 한 분이심을 명확하게 보 이신 것이다.

   15 물론 세례를 받기 전에 먼저 복음을 전달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는 마음의 결단이 있을 것이고, 그 마음의 결단을 공적으로 교회의 장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16 고광석,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나타난 ‘세례’의 선교적 함의”, 「복음과 선교」 50 (2020): 58-63.

   17 예나 지금이나 예수를 주로 고백한다는 하는 것은 큰 박해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을 높 이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도 기독인을 향한 박해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저널리스 트인 안토니오 소치의 주장을 정리하면서 전호진은 “…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약 7천 만 명이 순교하였는데, 순교자의 3분의 2인 4천5백만 명은 지난 100년 동안 순교하였 다.”고 말하고 있다. 전호진, 『기독교 박해시대: 한국 선교의 방향』 (서울: 선교횃불, 2018), 142.   

 

이런 점에서 세례는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 엄 청난 희생과 고난을 각오한 결단의 표징인 것이다. 둘째로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그리 스도의 몸인 교회와의 연합을 의미하는 입문 예식이라 할 수 있다.18

실제로 세례는 교회의 일원에 의해서 복음을 전달받고, 교회의 장에 서 예수를 주로 믿는 신앙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세례 후에 교 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겠다는 결단과 함께 받는 것이다.

즉 세례는 한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고 그 자녀들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교회에 들어가는 입문 예 식이다.19

따라서 교회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세례를 생각할 수 없다. 또한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 해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장에 들어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20

 

    18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마태복음 제21-28장』, 763.

    19 Michael Green, Evangelism in the Early Church, 박영호 역, 『초대교회 복음전도』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8), 284.

    20 이런 점에 대하여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보와 가이오와 스데바나 가족들을 언급하면서 자신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회심한 아가야 지역의 ‘첫 열매’라고 소개한다(고전 1:14, 16), 즉 세례를 통해 교회의 구성원(그리스도의 지체)이 되고, 그 로 인하여 성도로서의 합당한 신앙생활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다. F. F. Bruce, Paul: Apostle of the Heart Set Free (Grand Rapids: Eerdmans, 1977), 251-52.

 

그런 점에서 아기에게 부모와 가정이 없는 상황을 상상할 수 없듯이, 세례를 받을 또는 받은 이에게 교회 공동체는 필수적인 장이 되는 것이다. 

 

4. 예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는 명령

 

대위임령의 마지막 명령은 ‘가르치라’(διδάσκοντες - 디다스콘 테스, 명령의 의미를 띠고 있는 세 번째 분사)이며, 이 분사의 목적어 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즉 예수 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는 의미의 명령이다.

즉 대위임령은 가르침을 통해서 제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명령한 대로 살아가도록 하라는 것이다.21

예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는 명령은 세례를 통해 교 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 사람이 평생 이루어가야 할 과업이라 할 수 있다.

세례가 제자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면, ‘가르치라’는 명령 은 제자의 삶을 평생 살아가는 것과 연결된다.

구원의 여정과 비교해 본다면 세례는 ‘중생’ 그리고 가르침은 ‘성화’와 연결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좁은 의미로 본다면 세례를 받고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은 선교의 주된 과제라 할 수 있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목회 의 과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22

 

    21 Donald A. Hagner, 『마태복음(하)』, 1320-21.

    22 맥가브란은 이 둘을 ‘제자화’와 ‘완전화’로 해석하면서 제자화에 우선성을 두어야 한 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맥가브란이 새신자 양육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J. Mark Terry & J. D. Payne, Developing a Strategy for Missions, 엄주연 역, 『선교 전략 총론』 (서울: CLC, 2015), 219. 전현식은 대위임령의 세 가지 명령을 복음의 증언(가서 제자를 삼으라), 성례전의 집행(세례를 주라) 및 목회적 돌봄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으로 해석하고, 각각을 그리스도의 예언자(복음 증언), 제사장(세례), 왕(가르쳐 지키게 함)의 직무와 연결시킨다. 전현식, “에큐메니즘 에 대한 비판적 해석학적 성찰”, 「한국조직신학논총」 36(2013): 32.

 

그런데 예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께 서 분부한 모든 것은 많기에 간단히 요약하는 것이 쉽지 않은 면이 있지만 예수께서 주신 큰 분부를 가지고 생각해본다면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대위임령과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대계명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23

즉 ‘가르치라’는 명령 속에서 가르침의 내용에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분부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윤리적 명령이 함께 포함된 것이라 할 수 있다.24

 

    23 John Stott and Christopher J.H. Wright, Christian Mission in the Modern World (Updated and Expanded), 김명희 역, 『선교란 무엇인가』 (서울: IVP, 2018), 33.

    24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인가』, 33-34. 이 두 사명은 선교적 사명과 윤리적 사 명, 사도적 사명과 봉사적 사명, 구속사적 명령과 문화명령 등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Ⅲ. 대위임령에서 찾을 수 있는 강조점들

 

1. 제자화의 중심성

 

대위임령에는 4개의 명령형이 나타나는데 원문에 보면 한 개의 명령형 주동사 즉 ‘제자를 삼아’(μαθητεύσατε - 마데튜사테)라는 동 사와 ‘가서’(πορευθέντες - 포류덴테스), ‘세례를 주고’(βαπτίζοντες - 밥티존테스), ‘가르치라’(διδάσκοντες - 디다스콘테스)는 세 개 의 종속 분사로 기록되어 있다.25

이 관계에 대하여 드영과 길버트는 “주동사와 마찬가지로 명령형의 의미를 갖는 나머지 분사들은 제자 를 양성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밝힌다.”26라고 설 명하고,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은 “… 원어 성경의 표현은 ‘제자를 삼는 일’이 ‘가는 것’과 ‘세례를 주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예수의 지상명령의 궁극적 핵심임을 보여 준다.”27 라고 말한 후, “즉 본문은 ‘제자를 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중심 주제 이며 나머지는 이에 수반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28라고 분 석한다.29

 

    25 Donald A. Hagner, Word Biblical Commentary Mattherw 14-28, 채천석 역, 『마태 복음(하)』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2008), 1318-20.

   26 DeYoung and Gilbert, 『교회의 선교란 무엇인가』, 53. 

   27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마태복음 제21-28장』, 762.

   28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마태복음 제21-28장』, 762; Frank E. Gaebelein, ed.,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기독지혜사 역, 『엑스포지터스 성경 연구주 석 마태 마가 누가복음』 (서울: 기독지혜사, 1985), 882.

   29 라이트 역시 통전적 선교를 강조하면서도 “… 선교적 도전은 우리 앞에 다양하고 복 잡한 과제가 놓여 있음을 직시한다. 그 구절에 담긴 단어들의 완전한 의미에서 볼 때 세계 복음화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그 명령을 주셨을 때와 마찬가지 로 지금도 교회의 긴박한 우선순위로 남아 있다.”라고 강조한다. Christopher J. H. Wright, The Mission of God, 정옥배·한화룡 역, 『하나님 백성의 선교』 (서울: IVP, 2012), 429.

  

즉 대위임령의 문법적 구조로 볼 때 모든 민족을 제자 삼 는 것은 가장 주된 명령이고 다른 명령은 그 주된 명령을 이루기 위 한 과정 또는 방법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위임령의 핵심을 제자 삼는 것으로 보고 대위임령을 가 장 중요한 명령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견해들도 있는데, 예 를 들자면 스토트는 “내가 때로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은, 대위임령 은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가 르침이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대위임령을 지나치게 중요하 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30라고 말하면서 제자화를 명한 대위 임령에 우선성을 두는 것을 불편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별히 예수 께서 분부한 모든 것 속에 대위임령과 대계명이 함께 포함되어 있 으므로 대위임령만 강조하는 것을 옳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의 경향 을 보인다.31 

 

   30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인가』, 33.

   31 스토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육체와 영혼으로 창조되었고, 홀로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총체적 존재이므로 이런 관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인가』, 33-34. 

 

물론 대위임령과 대계명은 둘 다 주님께서 주신 명령이므로 모 두 순종해야 하는 것이 제자의 의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대위임령 의 본문에서 예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한 것 은 예수의 명령을 실천하는 삶이 있을 때 제자 삼는 일이 잘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에 명하신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모든 명 령은 제자화를 실천함에 있어서 필요한 과정이며 부수적인 명령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수의 산상수훈에도 잘 나타나는데 예수께서는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32고 말씀하셨는데, 착한 행실 즉 대계명의 실천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 다기보다는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리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성도의 삶에서 사랑의 실천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33 그것이 하늘 아 버지를 알게 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도록 돕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대위임령의 본문에서는 제자화의 명령 이 주된 명령이고 다른 명령들은 그것을 돕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부 차적인 명령 또는 방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32 본문의 ‘착한 행실’에서 ‘착한’의 원어 ‘kalos’(칼로스)는 ‘아름답다’(마 7:19), ‘마땅하 다’(마 15:26), ‘잘하다’(딤전 3:13) 등으로도 번역되는 단어로 도덕적인 선과 사람들 에게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말한다. 여기에서 이 착한 행실의 목적은 자신의 덕이나 명 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즉 착한 행실이란 윤리적 과제는 최 종 목적이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도록 함에 있는 것이다. 제자원, 『옥스퍼드 원 어성경대전 마태복음 1-11a장』 (서울: 제자원, 2006), 357-358.

    33 사랑의 실천은 예수의 대계명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귀한 일이다. 그런데 전도 를 통해 구령하는 것은 영원의 관점에서 가장 소중한 사랑을 실천한 것이며, 실제로 복 음을 전하여 예수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므로, 성도가 이웃 을 사랑할 때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전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조. 전호진, 『기독교 박해시대: 한국 선교의 방향』, 145. 

 

2. 제자화를 위한 장으로서의 교회의 중요성

 

예수의 대위임령은 제자들에게 주어진 명령이며 제자공동체는 곧 교회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대위임령은 기본적으로 제자공동 체 즉 교회를 상정하지 않고는 그 명령의 실행이 어렵다.

즉 “…너희 는 가서”(마 28:19)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기도하며 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이며, “… 세례를 베풀고”(마 28:19)라 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세례교육을 시행하고 공적 예배의 자리에 서 세례를 베푸는 것 역시 교회의 역할이며, “… 분부한 모든 것을 가 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는 명령을 수행하는 것 역시 교회라는 장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즉 대위임령에서 말씀한 명령은 교회와의 연결이 없이는 그 시행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현 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선교의 교회론적 본질은 교회공동체의 전인적(holistic) 활동 안에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적 위임은 제자들에서 교회공동체로 확 장된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유기적으로 연합된 제자 들의 공동체를 말한다. 다시 말해, 선교는 개인의 부분적 활동이 아니 라, 교회 공동체의 전인적 활동이기 때문에, 복음의 증언, 성례전의 집 행 및 목회적 돌봄이라는 선교적 과제는 교회 일치 없이는 효과적으 로 수행될 수 없다.34

 

    34 전현식, “에큐메니즘에 대한 비판적 해석학적 성찰”, 32. 

 

즉 예수의 대위임령은 교회를 통하여 실행으로 옮겨지며, 아울 러 대위임령의 실천은 새로운 교회를 탄생하게 한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은 단순히 하나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 라는 제자 공동체에 합류되어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제자의 삶을 살아간다.35

제자훈련은 삶을 나누는 관계적 구조 안에서 복음 이 전해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36

즉 예수의 선교 명령은 세례를 통하여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그 고백에 의해 살아가는 제자공동 체를 형성할 것을 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37

그런 점에서 맥레쉬 (Alexander McLeish)는 “복음 전도가 전도 능력과 순종을 통해 성 장해가는 세례 받은 공동체를 발생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허 공을 치는 것이다.”38라고 강조하였고, 와그너(Peter Wagner)는 “하 늘 아래에서 가장 효과적인 복음화 방법은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라고까지 교회를 강조하기도 하였다.39

 

   35 이 점에 대하여 더글라스 헤어(Douglas R. A. Hare)는 “이방인들은 하나의 철학 사조 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의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독특한 방식으로 전향하 는 것”이라고 말한다. Hare, 『마태복음』, 452.

   36 Robert E. Coleman, The Master Plan of Evangelism (Grand Rapids, MI: Revell, 1993), 46-49.

   37 Gaebelein, ed., 『엑스포지터스 성경 연구주석 마태 마가 누가복음』, 882. 38 Alexander McLeish, Christ’s Hope of the Kingdom (London: World Dominion Press, 1952), 104. 39 C. Peter Wagner, Church Planting for a Greatest Harvest (Ventura: Regal Books, 1990), 11.

 

Ⅳ. 대위임령의 관점에서 본 에큐메니칼 하나님의 선교 개념 평가

 

1. 교회의 선교 자세 갱신과 사회적 책임 자각 도전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선교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주인 되신 하나님이 아닌 교회가 주인 행세를 하며 선교를 수행하면서 문 제가 발생 되었다고 보았다.

실제로 교회는 선한 의도에서 선교를 하 면서도 쉽사리 자기 교파의 확장과 강화와 유지를 위하여 공간적 및 양적 교세 확장적인 선교를 수행한 측면이 없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 록 교회는 기구화 되고 자체의 성장과 숫적인 확장에만 골몰한 면이 없지 않다.

참된 하나님 나라 구현을 위한 선교보다는 개 교회 혹은 개 교파의 이익과 명예를 앞세우는 선교를 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호켄다이크는 이런 선교를 교회 중심의 선교관으로 보았 고, 이런 경우는 선교를 곧 ‘교회화’로 생각하면서 교회형성과 교파 증식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며, 전도를 행할 때에도

“… 교회의 영 향력을 다시금 획득하려는 사실을 성서적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 다.”40라고 주장하였다.

 

    40 J.C. Hoekendijk, The Church Inside Out, 이계준 역, 『흩어지는 교회』 (서울: 대한기 독교서회, 1994), 10.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등장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교회의 잘 못된 자세를 갱신하는 일에 일정 부분 기여한 면이 있다.

즉 선교의 참된 주인과 인도자는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일깨워주고 교회가 절 대화 될 수 없다는 점을 일깨워줌으로써 교회가 늘 하나님의 뜻을 생 각하면서 그 분의 뜻에 합당하게 선교에 임하도록 도전하였다.41

이 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교회가 지나치게 내향화 되고 기 구화 되는 것을 막는 일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위 임령의 마지막 명령에서 예수께서는 “…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였는데, 보쉬는 ‘분부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으로 보았다.42

보쉬의 해석대로 선교하는 교회는 늘 하 나님의 뜻을 물어보면서 그 뜻에 맞는 선교를 수행해야 하는데 하나 님의 선교 개념은 그 뜻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교회의 선교 자세 갱신 에 일정 부분 기여한 면이 있다.

아울러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교회로 하여금 사회적 책임을 자 각하고 실천하도록 도전하는 일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교회 는 종종 자체의 확장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지면서 세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자세를 지녀온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하 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일차적인 관심이 바로 세계에 있음을 강하 게 일깨워주었다.

이와 함께 세계에 대한 눈을 열어줌으로써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 폭넓은 분야에서의 선교의 영역과 과제에 관심 을 갖도록 도전하였다.43

 

      41 이와 연관하여 정승현은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처음 탄생시킨 배경이 된 “빌링겐 대회 의 최대 공헌은 선교의 주체를 교회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전환시킨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정승현, “하나님의 선교의 기원과 발전”, 「복음과 선교」 24(2013): 170.

     42 Bosch, 『변화하고 있는 선교』, 116. 물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대위임령과 대계명 등에 비해 너무 광범위한 해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중요한 기준점은 될 수 있을 것이다.

    43 김은수, 『현대선교의 흐름과 주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1), 125. 

 

이러한 도전은 복음주의 진영에도 일정 부 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는데, 라이트는 이러한 변화를 스토트의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위임령에 순종하는 기독교 선교는, 그것을 정의하고 실천하는 일 모 두에서, 복음을 말로 선포하는 데(전도) 국한될 수 없다는 것이며, 선 교는 사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적 책임, 섬김, 사회적 행동으 로 된 다양한 선행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 고 성경적이라는 확신이다.

그는[스토트] 그 둘이 기독교 선교의 과업 에서 분리될 수 없는 동반자라고 주장했다.44

예수께서 분부한 모든 것 속에 선교의 대위임령과 사랑의 대계 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도와 사랑의 실천은 분리될 수 없는 동반자라는 점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45 이것은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제시한 도전의 결과라 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4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인가』, 49-50.

     45 스토트는 이와 같이 선교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을 전도와 등등하게 주장하면서도 전 도의 우선성 또한 강조하였는데, 이에 대해 라이트는 “그러나 그와 동시에, [스토트는] 전도가 어떤 ‘우위’ 혹은 ‘우선성’을 갖는다고 동일하게 강력하게 주장했다.”라고 설명 한다.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인가』, 50. 

 

2. 선교의 핵심 일꾼인 교회의 약화 가능성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나름대로 기여한 부 분도 있지만 동시에 고민해보아야 할 한계점도 있다. 가장 먼저 생각 할 점은 선교의 핵심 일꾼인 교회의 약화 가능성의 문제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대위임령은 교회를 생각하지 않고는 실천이 어렵다. 예 수의 명령을 받은 교회가 복음이 없는 곳으로 가며, 세례를 주며, 예 수의 분부한 것을 가르치면서 제자공동체 즉 교회가 생겨나고 성장 해간다.

그리고 이러한 선교를 통해 또 다른 교회가 생겨나고 성장하 게 되고 거기서부터 다시 복음이 없는 곳으로 가는 선교가 시작되는 선교적 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46

그런데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발전시킨 호켄다이크는 이런 선교 관을 교회 중심적인 선교라고 보면서 이런 선교는 선교를 ‘교회화’로 생각하고 전도를 행할 때에도 “… 교회의 영향력을 다시금 획득하려 는 사실을 성서적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다.”47라고 주장하면서, 교 회를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강했다.

대위임령에서는 사람 들을 교회로 이끌어 세례를 주고 예수의 명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중 요한 과업이지만,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이 교회 가 아닌 세상 속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세례 등을 다소 경 시하는 경향을 보인다.48

세상을 중시하면서 교회가 아닌 세상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출발점이요 현장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전통적인 명제인 “하나님 교회-세계”의 순서는 “하나님-세계-교회”로 뒤바뀌게 된다.49

 

    46 선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교회로부터 출발해서 교회로 귀결되며 다시 세상으로 나가 교회로 오게 하는 순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방인은 메시야의 공동체 라는 장으로 와서 일원이 되고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마치 새로운 생명이 어 머니를 통해서 태어나고 어머니를 통해서 양육되듯이 제자는 교회를 통해서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Hare, 『마태복음』, 452.

    47 J.C. Hoekendijk, 『흩어지는 교회』, 10.

   48 이와 연관하여 WCC는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은 세상이다. … 세상과 동떨어진 특별 하고 성스러운 행위는 있을 수 없다. …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의 견지에서 볼 때 교회는 세상의 한 조각, … 세상에 부가된 하나의 첨가물(postscript)이다.”라고 말한 다.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는 세상이 주고 교회는 부수적인 존재로 인식됨을 볼 수 있 다. WCC, ed., The Church for Others & The Church for the World, 박근원 역, 『세 계를 위한 교회』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120-22.        49 WCC, ed., 『세계를 위한 교회』, 120-21.

 

이와 같은 이해 위에서 결국 선교의 핵심 일꾼이 교회이고 교회의 확장이 곧 선교의 성적표임을 말하던 선교 관점은 종말을 고하게 된다.

이러 한 관점은 교회 중심 선교의 약점을 수정하는 기여점도 일정부분 있 지만, 결국 세상이 더 중요하고 교회는 단지 부수적인 기구라는 시각 으로 인해 교회가 약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50

또한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서는 하나님께서 교회 외에도 세상의 다양한 기구들을 통해서 당신의 선교를 이루어가신다는 점을 강조한 다.

아울러 세상이 교회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우선적인 관심의 대 상임을 강조하면서 세상이 선교의 의제를 정해준다고 말한다.51

물론 하나님께서 세속사를 이루어가실 때는 세상의 다양한 기구들을 통해 서도 역사하시지만, 구원사를 이루어가시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역사를 이루어가신다.

그렇기에 대위임 령에서도 제자들에게 특별히 그 임무를 맡기는 것이다.

구원사의 추 진을 위해 특별한 선택을 받고 명령을 받은 교회를 무시하면 교회는 자연히 약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쉬는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들을 단지 기능적으 로, 결론적으로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호켄다이크의 경향은 우 리를 어디에도 인도하지 못한다.”52라고 지적한다.

 

    50 이러한 문제점에 대하여 글라서와 맥가브란은 “… 세계교회협의회는 거듭해서 말하기 를 교회는 단지 하나님에 의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초래시키는 데 사용 되어지는 기구에 불과하다고 하였다.”고 진단하였다. 모든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더 헌신하고 지 키는 일이 일어나는 반면, 중요하지 않고 부수적인 것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소홀하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Arthur F. Glasser & Donald A. McGavran, Contem porary Theologies of Mission, 고환규 역, 『현대선교신학』 (서울: 성광문화사, 1987), 109.

    51 WCC, ed., 『세계를 위한 교회』, 123. 52 Bosch, 『변화하고 있는 선교』, 697-98. 

 

서정운도 호켄다 이크의 선교신학에 대하여 일정 부분 공헌점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교회관에 대해서는 “어쩌면 오늘의 서구교회가 활력을 잃고 신자의 수가 현저히 준 것은 그가 그토록 부르짖은 반교회중심신학(反敎會 中心神學)이 가져온 하나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53고 분석한다.

대 위임령에서 가장 핵심적인 일꾼인 교회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은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서 고민해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된다.54

 

    53 서정운, “후켄다이크의 선교관”, 「교회와 신학」 20(1988): 222.

    54 이런 점과 연관하여 송영섭은 호켄다이크에 의해 강조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의 영향으 로 인해 “결과적으로 탈교회화, 세속화 신학, 교회의 사회참여 사상에 촉발제가 되고 회심을 강조하는 선교는 후퇴하여 성경 밖에서 혹은 교회 밖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추 구하는 진보주의적 입장으로 선회하게 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송영섭, “선교적 교 회론(Missional Ecclesiology) 이해를 위한 세 가지 관점들: 크리스텐돔, 하나님의 선 교, 포스트모더니즘”, 116. 

 

3. 선교 개념의 무한 확장으로 인한 복음화의 약화 가능성

 

하나님의 선교 개념의 핵심 사항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뜻이라 는 단어일 것이다.

전통적인 선교가 선교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 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주인인 양 맘대로 선교했다는 것이다.

선교 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교회는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점 은 참으로 지당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하나님의 뜻이 정확히 무엇 인지를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하 나님의 뜻을 가장 정확히 전달해주신 분은 바로 성자 예수라고 확신 했다.

이에 대해 김균진은 “… 기독교가 신앙하고 또 신학이 그에 대 하여 진술하는 이 하나님은 어떤 막연한 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자기를 계시하시며 활동하시는 하나 님이다.”55라고 천명했다.

 

  55 김균진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 라고 하는 인격이 서 있다. 그 분 안에서 하나님은 인 간에게 자기를 계시하신다. 그분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한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은 인간 앞에 서 있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 김균진, 『기독교조직신학Ⅱ』, 137.   

 

보쉬도 크람의 견해를 기초로 “선교의 신학적인 기초는 우리의 신앙의 출발점, 즉 다른 모든 반성에 논리적 으로 선행하고 근본적인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참고할 때에만 가능하다.”56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뜻 은 그의 보내신 성자 예수에게서 가장 정확히 나타나는 것임을 늘 인 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인간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정확히 알려주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 고 마지막 날에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 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 6:39-40)고 말씀하셨다.

 

즉 아들을 믿고 영생 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을 말씀하셨다.57

 

    56 Bosch, 『변화하고 있는 선교』, 51.

    57 이에 대해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은 “… ‘아들을 보고 믿는 자’란 문구는 구원의 주체 가 되시는 성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기로 작정하셨는지 명확하게 알 게 한다. 그것은 바로 아들을 보고 믿는 자들이다.”라고 설명하는데, 아버지의 뜻은 바 로 아들을 보고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임이 이 구절에서 명확히 나타나는 것 이다. 제자원, 『옥스퍼드 원어성경대전 요한복음 1-6장』 (서울: 제자원, 2006), 586. 

 

이 말씀은 특별히 오병이어의 기적 후 백성들이 예수를 향하여 왕이 되어달라 는 요구를 하고 떡을 구할 때 주신 말씀인데, 백성들의 요구는 정치 사회 구조적 구원과 물질 구원을 포함하는 것이며, 이러한 요구는 하 나님의 선교 개념이 추구하는 바와 유사점이 있으며,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서 사회구원과 물질 구원이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의 핵심적인 뜻 또는 영혼 구원과 동일하게 중요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는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하나님의 구속사와 세속사를 하나로 생각 하고 모든 역사를 다 하나님의 역사와 뜻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 다.58

 

     58 이런 점에 대하여 덴마크의 선교학자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잘못되면 인간의 모든 세 속적 활동을 무조건 거룩한 것으로 인정하는 모순을 범한다고 지적하였다. Johannes Aagaard, “Mission After Uppsala 1969,” in Gerald Anderson, ed. Mission Trends No. 1 (Grand Rapids, Eerdmans, 1974), 17. 

 

이런 이유로 세속사에서 불신자들이 하는 일까지 모두 하나님 이 하시는 선교로 포함하다 보니 선교의 범위가 너무 넓어진 경향이 있다.

이점에 대하여 스토트는

 

“우리가 보았듯이, ‘선교’가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시는 모든 일을 아우르지는 않는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 분의 아들과 그분의 영과 그분의 교회를 세상 속으로 보내시는 목적 과 전혀 별개로, 섭리로 일반 은혜로 심판으로 그분의 세상 속에서 계속 일하시기 때문이다.”59라고 말한다.

 

    59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인가』, 35. 좀 더 부연하여 스토트는 “하나님은 실제 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든 않든, 섭리와 일반 은혜로 모든 사람과 모든 사회 안에 서 활동하신다. 하지만 이것은 그분의 ‘선교’가 아니다. ‘선교’는, 구속받은 그분의 백 성,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세상에 보내어 하게 하시는 일과 관련이 있다.”라고 설명 한다.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인가』, 22.

 

즉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 들을 통해서 수행하시는 구원역사와 일반 은혜로 세상에서 이루어가 시는 세속역사는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며, 선교는 기 본적으로 구원역사와 관계로 활동이라고 보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미 살펴보았듯이 실제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대위임령은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포괄적인 명령이기보다는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사역을 핵심적인 목적으로 하는 사명이다.

물론 그 명령 안에는 이웃사랑과 같은 대계명 또는 대사회적인 윤리적 책무 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도 역시 제자 삼는 핵심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 또는 방법으로서의 명령으로 보는 것이 적절함을 보았다.

즉 지 나치게 넓은 목표를 포함하는 선교 이해는 예수의 대위임령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와 연관하여 하나님의 선 교 개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몇 가지로 생각해보자.

  첫째,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서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교 회만이 할 수 있는 복음 전도의 사역을 약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글라서와 맥가브란은 “이 선교는[하나님의 선교 개념과 연관된 새로운 선교 개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영생을 얻는 유일한 방도이며 이 세상에서 좀 더 윤리적 사회를 누릴 수 있는 최선의 방 도라는 데 대해서는 대단히 적게 언급하거나 전혀 언급하지를 않는 다.”60고 지적한다.

에큐메니칼 학자로 분류되는 이형기 역시 이 문 제를 언급한 바 있는데, 그는 빌링겐의 Missio Dei를 평가하면서, “삼위일체론적 파송의 신학의 맥락에서 교회의 사회참여가 매우 강 조되어 18-19세기적 복음전도가 대단히 약화되는 경향이었다.”61라 고 지적한다.

   둘째, 사회 참여와 사회변혁이 복음화와 동등하거나 더 효과적 인 세상 문제 해결책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선 교를 인권, 정의, 평화, 생명 살림 등의 운동으로 변환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 복으로 일어난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인류에게 가장 핵심적으로 필요한 것은 구원의 은혜이며, 이것은 물질적인 복 지나 사회혁명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다.62

이런 점에서 스토트는

“… 사회 변화에만 몰두한다면 복음 전도에 관심을 기울일 여지가 거의 혹은 아예 없어질 수 있다.”63라고 언급한 후

“… 그리스도 없이 멸망 해 가고 있는 수백만 사람들에게 마음을 써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 도는 복음을 선포하고 제자를 삼도록 그분의 교회를 보내셨다. 사회 적 목표와 활동은 정당한 일이지만 거기에 몰두하느라 주님의 명령 에 순종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64라고 주장하는데, 하나님의 선교 개 념에서는 이런 점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65

 

    60 Glasser & McGavran, 『현대선교신학』, 113.

   61 이형기, “에큐메니칼 운동사에 나타난 선교신학”, 「선교와 신학」 4(1999): 63.

   62 혁명의 문제점에 대하여 스토트는 “모든 혁명 운동을 신적 갱신의 표지라 일컫는 것은 순진한 처사다. 혁명 이후 새로운 상황은, 이전 상황보다 더 불의와 압제를 품고 있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한다.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인가』, 21. 

   63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인가』, 22.

   64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인가』, 22.

   65 마이클 고힌은 뉴비긴으로부터 개인적인 편지를 받았고 그 내용 중 일부를 라이트와 나누었는데, 그 내용 중에 뉴비긴은 “… 명확하고 계획적인 의도로서 사람들과 복음을 나누고 그들이 복음에 반응하도록 초대하는 목적을 지닌 활동들을 보호하고 싶어 했습 니다. 내 생각에 그 구별은 분명 대부분의 사람이 인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 것은 선교를 둘러싼 많은 혼란을 정리해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뉴비긴 도 복음을 전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선교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이 혼란을 줄이고 선 교의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인가』, 55-56. 

 

Ⅴ. 나가는 말

 

호켄다이크 등에 의해 발전되고 세계교회협의회에 의해 수용되 어 널리 퍼진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전통적인 선교의 한계점을 개선 하고 보완하고자 탄생하였다.

이 개념은 교회의 선교 자세를 갱신하 게 하고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도록 도전한 점 등에서 기여점 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가장 정확히 알려주신 예수 께서 명하신 대위임령은 선교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선 교의 핵심적인 목적은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것이고, 이를 위 해 가고, 세례를 주고, 주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제자 삼음은 선교의 핵심 목적이고 다른 과제들 은 이 핵심적 목표를 위한 과정 또는 부수적 목표로 생각할 수 있음 을 살펴보았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교회에 비해 세계의 위 상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하나님께서 교회 외에도 다양한 기구들을 통해 선교를 수행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대위임령에서 선교의 핵 심 일꾼인 교회를 상대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66

아울 러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보편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를 선교 에 포함함으로써 선교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함으로 세상을 잘 살 게 만드는 것이 모두 다 선교의 영역 속으로 포함되어 대위임령에 서 명한 핵심 명령인 제자 삼음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 음을 살펴보았다.

이런 점과 연관하여 로날드 사이더는 다음과 같 이 말한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 목표를 향해 가시는 역사 가운데 우리의 복음전 파의 노력을 사용하신다(롬 10:14-21).67

… 사회 운동은 아무리 선 하거나 광범위하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생으 로 가는 길에 들어가게 할 수 없다. 오로지 우리가 복음을 나누어주 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초청하는 복음 전도만이 그것 을 가능하게 한다.68

복음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은 교회의 책임이지만, 세상을 구원 하는 것은 복음이며, 이 복음은 교회에만 주어졌고 그런 점에서 교회 만이 전할 수 있는 것인 반면, 사회적 책임은 사회의 다양한 기구들 도 행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복음화를 통한 제자화의 책임은 교 회에만 주어진 핵심적인 사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69

 

    66 이런 한계점과 연관하여 보쉬는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들을 단지 기능적으로, 결론적 으로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호켄다이크의 경향은 우리를 어디에도 인도하지 못한 다.”라고 말하면서 평생을 통해 가차없이 교회를 비판하고 교회론을 위한 여지가 전혀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던 호켄다이크 마저도 후에는 교회를 향하여 등을 돌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발견했다고 언급한다. Bosch, 『변화하고 있는 선교』, 697-698, 572.

    67 Ronald J. Sider, Good News and Good Works, 이상원·박현국 역, 『복음전도와 사회 운동』 (서울: CLC, 2013), 210-11.

    68 Sider, 『복음전도와 사회운동』, 267.

    69 복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스토트는 “… 그 나 라는[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신을 믿지 않는 사회와 구별되며, 실제로 그 나라에 들 어가는 것은 영적인 거듭남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Stott and Wright, 『선교란 무엇 인가』, 21-22. 

 

이런 점에서 오 늘날 널리 수용되고 있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재평가되고 예수의 마지막 명령인 대위임령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선교의 개념 및 방향 재조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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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나타난 대위임령(Great Commis sion)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전 해주신 성자 예수께서 주신 선교 명령이며, 교회는 2천 년 동안 이 명령을 순종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아왔다. 보쉬는 이 명령에 대하여 “오늘날 학자들은 복음서 전체가 이 마지막 구절들을 지시한다는 데 동의한다. 1장부터 계속해서 마태의 직조 하에 짜여진 모든 실 들은 여기에서 결합된다.”라고 표현함으로써 마태복음 전체가 이 명령을 향하고 있음을 말한다. 이 명령을 분석해보면 제자화의 명령이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명령이며, 이 제자화를 위한 장으로서 교회는 중심적인 역할을 감 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분석 결과를 기초로 본 연구는 오늘날 가장 널리 수용된 선교 개념 중의 하나인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분 대위임령의 관점에서 본 하나님의 선교 개념 평가 안승오(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석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하나님의 선교 개념 중에서도 특 별히 호켄다이크 등에 의해 발전되고 WCC에 의해 널리 수용되고 퍼진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주요 평가 대상으로 삼았다. 평가의 결과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교회의 선교 자세 갱신과 사 회적 책임 자각 도전의 기여점을 지닌 반면, 고민해야 할 한계점도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선교의 핵심 일꾼인 교회의 약화 가 능성과 선교 개념의 무한 확장으로 인한 복음화의 약화 가능성 등 이 그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보편 역사 속에서의 하 나님의 역사를 선교에 포함함으로써 선교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 함으로 세상을 잘 살게 만드는 것이 모두 다 선교의 영역 속으로 포 함되어 대위임령에서 명한 핵심 명령인 제자 삼음을 상대적으로 약 화하는 경향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서는 이런 점들이 고민되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주제어: 대위임령, 성자 예수, 하나님의 선교, 복음 전도, 사회적 책임, 우선 성, 제자화

 

Abstract

An Evaluation of the Concept of Missio Dei from the Perspective of the Great Commission

An, Seung Oh (Youngnam Theological University and Seminary, Professor of Missiology)

The Great Commission found in Matthew 28:18-20 is a missionary mandate given by Jesus the Son, who was sent by God and most accurately conveyed God’s will. The Church has devoted itself wholeheartedly to obeying this command for the past two thousand years. Bosch described this command by stating, “Today, scholars agree that the entire Gospel points to these final verses. All the threads woven under Matthew’s authorship from chapter one come together here,” thus em phasizing that the entire Gospel of Matthew culminates in this command. Upon analysis, the core and central command of the Great Commission is the making of disciples, and the Church plays a central role as the primary vessel for carrying out this disci ple-making mission. Based on this analysis, the present study aims to examine the concept of “Missio Dei”(God’s mission) which is one of the most widely accepted understandings of mission today. Among the various interpretations of Missio Dei, the focus of this evaluation is on the version developed particularly by Hoekendijk, and broadly adopted and dissemi nated by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The evaluation finds that while the Missio Dei concept con tributes positively by renewing the Church’s missionary posture and raising awareness of social responsibility, it also presents certain limitations that warrant careful consideration. These include the potential weakening of the Church, which is the primary agent of mission, and the risk of diminishing evange listic focus due to the concept’s unlimited expansion. In partic ular, by incorporating God’s work in universal history into the definition of mission, the Missio Dei concept tends to broad en the scope of mission excessively-so much so that anything contributing to human well-being may fall under the umbrella of mission. As a result, the core command of the Great Com mission-to make disciples-is relatively weakened. These issues call for deeper reflection within the Missio Dei framework. 

Key-words: Great Commission, Holy Son Jesus, Missio Dei, Evange lism, Social Responsibility, Primacy, Making Disciples *

 

 

논문접수일: 2025/05/16 논문심사일: 2025/06/08 게재확정일: 2025/06/10

『복음과 선교』 제7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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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dx.doi.org/10.20326/KEMS.70.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