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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가?”― 영화 <테넷>(Tenet)의 자기-일관성 원리에 대한 신학적 성찰 /이국헌.삼육大

 I. 시작하는 글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이 만든 영화 <테넷>(Tenet, 2020)에 서 닐(Robert Pattinson 배역)은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다”(What’s happened, happened)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 말은 근대 사회에서 강조되었 던 과학적 결정론, 즉 미래는 현재의 상태와 물리적 법칙에 의해서 오직 하나 의 필연적 방식으로만 전개된다는 인식론적 개념을 반영한 것이다.

뉴턴의 역학에서 물질세계는 절대적 자연법칙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미래는 정해 진 것이며 완전히 예측이 가능한 것이라는 결정론적 세계관이 지배적이다.

이런 결정론적 세계관은 자율적 이성을 가진 인간의 자유의지와 대립하여 운명론적 논쟁을 야기한다.

놀란 감독은 <테넷>에서 그 논쟁적 기제를 활용 하는데, 그가 영화에서 제기한 결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한 논쟁은 기독교 신학에서 어떻게 성찰할 수 있을까?

물리적 결정론은 때때로 신적 예정론에 대한 유비1로서 유의미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이 주제를 신학적으로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 역사 에서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둘러싼 쟁점은 중요한 신학적 주제 중 하나로서, 그 고전적 논쟁은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로부터 전개되 었다.

특별히 이 주제는 16세기 루이스 데 몰리나(Luis de Molina)에 의해 예지예정론이라는 신학적 형태로 재구조화되어 개혁주의와 아르미니우스 주의 사이의 예정론 논쟁의 계기가 되었고, 20세기에는 앨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에 의해서 현대적으로 재조명되었다.

기독교 신학의 역사에서 쟁 점화된 이러한 예정론과 자유의지 담론은 현대의 물리적 세계에서 결정론과 선택의 자유 담론과 논리적 유사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테넷>에서 제기한 과학철학적 물음을 자기-일관성의 원리(self-consistency principle)에 기초 해서 분석하고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현대적 성찰을 추구하는 것은 당대의 대중적 이슈에 대한 신학적 책임성을 확립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영화와 신학을 연결시킨 연구는 주로 영화의 주제나 메시지를 신학적으 로 성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임민균은 영화 <밀양>(2007)에서 제기 된 고통과 용서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성찰하였다.2

백숭기는 영화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1994)에서 종교적 구속 개념을 돈 큐핏 (Don Cupit)의 비실재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3

 

    1 프랑스 수학자인 페이르-시몽 라플라스(Pierre-Simon Laplace)는 과학적 결정론을 “라플라스의 악마”(Laplace’s Demon)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그가 제시한 초월적 존재로 인한 결정론이라는 개념은 신학적으로 신적 예정론의 유비로 이해할 수 있다. Marij Van Strien, “On the Origins and Foundations of Laplacian Determinism,” Studies in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 45 (2014), 24-31.

    2 임민균, “영화 <밀양>에서 제기된 고통과 용서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 성찰,” 「신학과 목회」 12 (2019), 45-70.

    3 백숭기, “<쇼생크 탈출>에서 신학하기가 가능한가-돈 큐핏의 비실재주의로 바라본 영화 <쇼생크 탈출>의 구속 개념,” 「신학과 학문」 23 (2021/1), 10-35.

 

최지원은 <미드소 마>(Midsommar, 2019)에 나타난 죽음, 폭력, 희생 제의의 메커니즘을 구약의  제의와 비교하여 가족 상실의 트라우마와 상징적 심리 치유 과정을 연결하는 연구를 발표했다.4

이 외에도 영화 콘텐츠를 토대로 기독교교육, 상담, 선교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디즈니 만화 영화 에 대한 기독교적 조망을 통한 기독교교육학적 대안을 제시한 정의영의 연 구,5 영화 <시>를 인문학적으로 성찰하여 포스트모던 시대에 기독교 평생교 육의 가능성을 제시한 원신애의 연구,6 영화 <아들>을 통해 본 상실의 고통과 애도의 어려움에 답하는 교회의 역할을 모색하는 황혜진, 김정희의 연구 등이 그런 경우다.7

이는 영화 속에 나타난 신학적 모티프를 포착하여, 그 모티프를 신학적, 선교적, 상담학적으로 전개한 연구들이다. 이에 비해 본 연구는 영화가 명시적으로 제안하는 과학철학적 질문을 신학적으로 답변하 는 것으로 기존의 연구와 차별화된 요소를 갖고 있다.

<테넷>은 대중에게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데,8 이 물음은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에 상존하는 신학적 담론을 통해 성찰해 볼 수 있다.

 

    4 최지원, “가족 상실 트라우마와 상징적 심리치유 과정의 희생제의: 영화 <미드소마> 희생제의와 구약시대 제의와의 비교,” 「신학과 실천」 88 (2024), 353-377.

     5 정희영, “디즈니 만화영화에 대한 기독교적 조망,” 「한국기독교신학논총」 20 (2009), 239-271.     

     6 원신애, “포스트모던 시대의 <대중인문 교양교육>과 기독교 평생교육의 가능성: 영화 <시>의 인문학적 성찰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신학논총」 33 (2013), 241-266.

     7 황혜진, 김정희, “영화 <아들>을 통해 본 상실의 고통과 애도의 어려움에 답하는 교회의 역할 모색,” 「기독교교육논총」 80 (2024), 71-90.

   8 David Kyle Johnson, “Is Tenet’s Fatalism an Excuse to Do Nothing?,” Psychology Today, Sep 2020, https://www.psychologytoday.com/us/blog/plato-pop/202009/is-tenet-s-fatalism-excuse-d0- nothing. 

 

 

<테넷>의 철학적 질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제시하고자 하는 연구 목적 에 부응하기 위해, 본 연구는 먼저 영화에 나타난 결정론과 선택의 자유에 관한 물음을 파악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놀란이 대중에게 의도적으로 던지 는 과학철학적 질문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제시한 후, 그 사상적 위치를 제안할 것이다.

아울러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 지에 대한 신학적 담론을 분석할 것이다.

그 분석을 토대로 <테넷>의 결정론, 즉 자기-일관성의 원리에 대한 신학적 답변 및 성찰을 제시할 것이다.

이 연구 는 현대 사상에서 쉽지 않은 쟁점 중 하나인 결정론과 선택의 자유에 관한 담론을 신학적 차원에서 설명함으로써 사회적 담론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의의를 제고하게 할 것이다.

 

II. 영화 <테넷>에 나타난 결정론과 선택의 자유 논쟁

 

놀란 감독이 각본을 쓰고 감독을 맡은 <테넷>은 2020년 여름에 개봉된 영화로 COVID-19 팬데믹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내용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영화의 플롯은 주도자(Protagonist, John David Washington 배역)가 닐과 함께 과거를 파괴할 수 있는 알고리즘(Algorithm) 의 아홉 조각을 소유한 사토르(Kenneth Branagh 배역)의 계획을 막고 알고리 즘 조각들을 분리하여 숨김으로써, 미래 세력이 시간의 역행을 통해 과거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막는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런 공상과학적인 플롯 (plot)을 전개하기 위해서 놀란 감독은 물리학적 개념을 활용한다.

2014년에 개봉된 <인터스텔라>(Interstella)에서 중력과 5차원의 개념을 토 대로 미래 사회의 희망을 제시하고자 했던 놀란 감독은 <테넷>에서 보다 더 난해한 물리학적 개념들을 도입한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인버전(inversion) 을 통한 시간의 역행이라는 물리학적 개념을 활용하고 있다.

이 개념은 사람 과 사물의 엔트로피를 역전시켜 시간의 가역성을 초래하는 현상에 기초한 것이다.

물리적 상황에서 시간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흐르기 때문에 엔트로피의 역전은 불가능하지만, 영화에서는 특정 기술을 이용해  개별적인 물질의 엔트로피를 줄여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한 다.

엔트로피의 역전과 관련된 이론은 19세기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 웰(James Clerk Maxwell)의 가설적인 사고 실험인 “멕스웰의 악마”(Maxwell’s Demon) 개념을 적용한 것으로 해석되는데,9 상식적 실재론의 관점에서 이런 개념은 과학적인 가설을 응용한 영화적 허구로 여겨진다.

엔트로피의 역전을 설명하려는 맥스웰의 실험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1961년 랜다우어(Rolf Landauer)의 원리로 입증되었다.

랜다우어는 악마가 분자의 속도를 측정하고 문을 조작하려면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열이 발생함으로써 엔트로피가 증가하기 때문에 열역학 제2법칙은 여전히 유지된다고 설명하였다.10

현대 과학에서 양자역 학이 발달하면서, 타키온(tachyon)과 같은 가상의 초광속입자나 양전자와 같은 반물질의 경우 시간의 역행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11 거시적인 물체가 양자적인 효과를 이용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여전 히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9 이 개념은 지능적인 존재인 악마의 조작을 통해 외부에서 에너지를 가하지 않고도 온도 차이가 발생함으로써 엔트로피의 법칙을 위반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설이다. James Clerk Maxwell, Theory of Heat (London: Longmans, Green, and Co, 1871).

    10 Rolf Landauer, “Irreversibility and Heat Generation in the Computing Process,” IBM Journal of Research and Development 5 (1961), 183-191. 이 원리는 2012년 프랑스 연구팀(Eric Lutz 등)에 의해 실험적으로 검증되었다.

     11 파인만-스튜켈버그 해석에서 이런 이론들이 제시된다. Richard P. Feynman, “The Theory of Positrons,” Physical Review 76 (1949), 749-759.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란 감독이 이 영화에서 인버전 개념을 활용한 것은 과학적 비결정론에 의지한 상상력을 영화적 장르 속에서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테넷>의 시간 역행과 관련된 논란은 물리학적 한계를 넘어 철학과 종교 의 물음에까지 이른다.

기본적으로 시간의 역행이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배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에너지와 운동량의 법칙과 상충된다는 점에서 물리학적 한계가 있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시간이 역행하는 동안에 공기 분자가 정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반 공기로는 호흡할 수 없으므로 산소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러나 공기 이외에도 주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물리 학적으로 분명하지 않은 요소들이 너무 많다.

놀란 감독은 이런 요소들까지 모두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시간이 역행하는 상황에서 총알 이 총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물리학적 환경에서 이런 반작 용이 작용하려면 에너지와 운동량의 법칙이 새롭게 해석되어야만 하는 과제 가 있다.

시간을 역행하는 사람이 정상적인 방향의 사람과 접촉할 때 어떤 힘이 작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영화에서 이런 장면들은 주로 액션과 함께 나타나지만, 에너지와 운동량의 법칙을 적용하지는 못하 고 있다.

이처럼 영화 속에서 시간 역행이라는 물리학적 개념에는 이론적 한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놀란 감독은 그것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활용하 여 독특한 영화를 창작하였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철학적 물음, 즉 “시간의 역행을 통해 과거를 바꿀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표면적으로 볼 때 놀란 감독은 시간의 역행에도 불구하고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영화 속의 대사에서 닐은 주인공에 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여러 번 반복되는 이 대사에서 그런 세계관적 담론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주도자가 인버전 장치를 사용하여 과거로 돌아가서 사토르의 계획을 막으려 할 때 닐은 이 대사를 통해서 그가 아무리 개입해도 역사의 흐름과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최종 작전 직전에 닐은 정방향과 역방향으로 동시에 작전을 수행하면서, 주도자를 구해줄 것인가라는 물음에 다시 한번 이 대사를 통해 자신은 이미 정해진 운명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12

 

    12 영화의 플롯을 참조하라. Olivia Pym, “The ‘Tenet’ Ending Explained, Plus all Your Questions  Answered,” Esquire, Jan 2021. https://www.esquire.com/uk/culture/film/a33753331/tenet-ex plained-ending. 2025년 4월 2일 접속. 

 

이처럼 영화는 시간의 역행에도 불구하고 과거 는 바꿀 수 없고 이미 정해진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닐의 대사들을 통해 강조한다.

이 영화가 결정론적 세계관을 강조하는 이유는 “할아버지의 역설”(grand father paradox)이라는 과학철학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13 이 역설은 과거를 바꾸려 할 경우 그 행동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논리적 딜레마 가 발생한다는 것으로서, 시간 여행의 논리적 모순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역설에 기초해서 노비코프(Igor D. Novikov)는 자기-일관성의 원리(self-con sistency principle), 즉 시간 여행이 가능하더라도 과거를 변경하는 행동은 일어날 수 없다는 원리를 제안한다.14

영화에서 닐의 대사는 바로 이 노비코프 의 원리에 기초한 것이며, 시간 역행 기술을 통해서 과거에 개입해도 역사의 흐름과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결정론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그러나 <테넷>에서 놀란 감독은 과학적 결정론으로만 꽉 채워진 막힌 질문으로 영화를 끝내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주도자는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르고 했던 행동이 미래의 자신이 결정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자신이 미래와 과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런 자신의 행동이 결정된 사건에 영향을 끼쳤음을 인식한다. 결국 그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과학적 결정론 내에서의 자유의지에 대한 해석에 이르게 된다.

이런 상황은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닐의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즉, 주인공과 닐은 과거가 이미 운명론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주어진 상황에 서 최선의 선택을 함으로써 과거의 사태가 완성된다는 믿음을 드러낸다.

바로 이런 설정을 토대로 이 영화는 결정론과 선택의 자유라는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이처럼 <테넷>이란 영화를 통해서 놀란 감독은 시간의 역행이라는 과학 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모든 사건이 인과율에 따라 결정된다는 과학적 결정론 의 틀 안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를 물으면 서, 궁극적으로 결정론적 운명과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이 양립 가능할 수 있다는 세계관을 제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테넷 조직의 창조자임을 깨달은 주도자는 그 조직의 비밀 유지를 위해 캣을 죽이려는 프리야를 죽이고 캣과 아들을 살린다.

이런 주도자의 행동은 이미 일어난 일을 수용하면서도 그 사건에 어떻게 개입할지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결정한 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즉, 결정된 운명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선택의 자유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복잡한 시간 구조와 물리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 화 <테넷>은 결정론적 세계 속에서도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적인 존재 로서 행동할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한다.

이 영화를 만든 놀란 감독은 과학적 결정론을 따르면서도, 인간의 선택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보여주려 한다.

그 는 인간과 세계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그 운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자유로워야 한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제시한다.

이런 놀란 감독의 입장은 과학적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조화롭게 아우르는 존재론적 해석이 가능하다 는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해석에 는 몇 가지 쟁점이 상존한다.

  첫째, 결정론적 세계에서 선택의 자유는 실질적인 자유의지라기보다는 형식적 자유의지로 이해된다.15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유롭게 행동하 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모든 선택적 행위는 이미 일어난 것일 뿐이다.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선택은 이미 선택된 것이라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이런 역설로 인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실질적인 자유의지의 행위로 이해하기 어렵 다는 모순이 있다.

  둘째, 주도자나 닐은 미래를 이미 알고 있으며, 그 미래를 따르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왜 그런 행동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동기는 설명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단순한 선택 가능성의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동기와 판단력과 연결되는 것이며, 따라서 자유로운 선택이란 이런 감정과 동기의 비결정성과 직결되는 주체적 행위다.

<테넷>은 영화의 구조와 시간 개념에 집중하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 과 도덕적 갈등과 같은 실적적 자유의지의 문제를 명확하게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셋째, <테넷>에서 주요 서사의 틀로 채택하고 있는 자기-일관성의 원리는 과거를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전제와 연결되는데, 이는 자유의지는 미래에 영향을 주기 위해 현재를 변화시키려는 능동적 행동과 조화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자유의지 개념은 노비코프의 자기-일관성의 원리가 강조하는 변경 불가능성과 충돌하게 된다.16

 

   15 실질적 자유의지의 개념은 Harry G. Frankfurt, “Freedom of the Will and the Concept of a Person,” Journal of Philosophy 68 (1971), 5-20.

   16 John Friedman et al., “Cayuchy Problem in Spacetimes with Closed Timelike Curves,” Physical Review D 42 (1990/6), https://link.aps.org/doi/10.1103/PhysRevD.42.1915. 

 

따라서 결정론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이런 이론적 한계를 고려할 때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양립시키려는 <테 넷>의 해석은 그 양립 가능성을 정당화시킬 만큼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는 결정론과 자유의지와 관련된 철학적 긴장을 극복하 기보다는 그것을 병렬적으로 제시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결정론적 세계 안에서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가능성이라 는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에 학문적 관심을 끈다.

특별히 예정론과 자유의 지에 대한 오랜 담론에 익숙한 신학의 분야에서는 특별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질문과 연관된 신학적 담론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III. 예정과 자유의지에 대한 역사신학적 담론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신학적 담론은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논쟁되어 온 주제 중 하나다.

고대와 중세를 거쳐 종교개혁 을 지나 현대 신학에 이르기까지 이 주제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담론이 되었 다.

특별히 기독교 역사 속에서 이 두 개념은 상호 모순적이면서도 동시에 신학적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의 흐름 속에서 발전했다.

일반적으로는 서로 대립되는 신학적 논쟁으로 전개되었지만, 근대에 이르러서는 예정과 자유의 지가 기독교 교리 내에서 어떻게 정당화되며 현대 신학적 사유에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이 논쟁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와 펠라기 우스(Pelagius) 논쟁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17

펠라기우스는 영국 출신 의 수도사로 4세기 말경에 로마로 이주해 금욕주의와 도덕적 엄격함을 강조 하며 활동했다.

그는 로마 교회 내에 만연한 도덕적 나태함과 운명론적 예정 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인간의 도덕적 능력과 자유의지를 강조했다.18

 

    17 주요 저작들은 Augustine, “On Nature and Grace,” The Fathers of the Church, vol. 86, ed. Thomas P. Halton (Washington, D.C.: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92); Augustine, On the Spirit and the Letter, tr. by Boniface Ramsey (Hyde Park: New City Press, 1999); Augustine, Confessions, tr. by Henry Chadwick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18 Robert F. Evans, Pelagius Inquiries and Reappraisals (Eugene: Wipf and Stock Publishers, 2010), 91-92.

 

이런 가르침은 하나님의 은총을 부정하고 인간의 의지와 능력을 신뢰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역사보다는 인간의 선택의 자유를 강조함으로써 당시 에 신학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19

특별히 이 주제가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북아프리카에서 논란이 되자, 히포의 감독이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운명이 자연법에 기초한 도덕적 자유의지가 아닌 신적 의지와 은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펠라기우스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인간은 원죄로 인해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훼손되었기 때문에 신적 은혜로 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20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는 예정을 통해 예비된 것이며, 따라서 은혜는 예정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운명은 필연적으로 신적 예정에 기초한 것으로 보았다.21

 

    19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418년에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반박되었고, 교황 소시무스(Zosimus)에 의해 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Mar Marcos, “Anti-Pelagian Legislation in Context,” Studia Ephemeridis Augustinianum 135 (2013), 317-344.

    20 Augustine, “On Nature and Grace,” 25-26.

    21 Augustine, “On the Predestination of the Saints,”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vol. 5, ed. Philip Schaff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94), 241.

 

초기 교회에서의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담론은 펠라기우 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논쟁으로 인해 그 두 개념이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인간의 온전한 자유의지를 강조한 펠라기우스의 주장에 따르 면, 인간은 운명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기 때문에 세상의 역사는 인간의 자율 적 이성에 의해 형성된다.

따라서 인간은 매 순간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의지를 강조하면 운명론이나 결정론에 빠지지 않게 된다.

반면에 원죄론과 은총론에 기초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해에 따르면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하나님의 예정에 따른 은혜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은 타락한 이성의 영향 때문에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신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된다.

아울러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도 인간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신의 섭리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과학철학적 결정론과 자유의지 논쟁과 유사한 구조를 보여준다.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적 은혜와 예정에 관 한 이해는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신학적 예정론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정립된 초기 교회의 예정과 자유의지 담론은 중 세 스콜라주의 체계 속에서 보다 조화롭게 설명되었다.

이 시기의 신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신의 예지에 의한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그의 신학의 기초로 삼았다.

먼저 아퀴나스 는 신적 예정을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원으로의 질서를 세우시는 신적 섭리의 일부로 이해하였고, 인간을 특정한 목적, 즉 구원으로 인도하는 방식으로 설명하였다.22

이러한 신적 섭리로서의 예정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자유의지가 신앙과 도덕의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능력으로 정의하고, 이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능력은 신의 섭리 및 예지와 조화를 이루며 신의 계획 안에서 작동한다고 강조한다.23

이러한 아퀴나스의 설명에 따르면 신적 예정은 하나님의 “영원한 예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며, 그 안에서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24

 

    22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 q.

    23. a. 1. tr. by the Fathers of the English Dominicam Province (New York: Benaiger Bros, 1947), 284-286.

    23 Ibid., I. q. 83. a. 1.

    24 Ibid., I, q. 14, a. 13.

 

아우구스티누스가 신의 은혜와 예정을 강조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일 정 부분 제약하는 입장을 제시했다면, 아퀴나스는 신의 예지와 인간의 자유 로운 선택 사이의 긴장을 합리적인 틀 안에서 설명함으로써 예정론과 자유의 지에 대한 신학적 조화를 추구하였다. 아퀴나스에 의해 정립된 스콜라 신학 에서 하나님은 시간에 의해 제한되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 세계에서의 미래적 사건도 신적 시야에서는 현재로 인식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의  예지에 따른 예정과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은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적 예정의 섭리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의 이성 에 따라서 개인의 운명과 역사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았다고 보았 다.

이런 중세 신학의 입장은 예정과 자유의지에 관한 신학적 논쟁을 비교적 근대적 차원으로 연결시켜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정과 자유의지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신학적 담론은 종교개혁 시대에 재해석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자유의지론에 도전 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재조명함으로써 인간의 타락한 본성과 하나님 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였다.

특별히 루터(Martin Luther)는 “자유의지는 전적 으로 죄 안에 사로잡혀 있다”25라는 표현을 통해 “노예의지”라는 개념으로 인간의 전적 타락과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를 강조하였다.

인간의 의지는 죄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선택의 능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구원은 전적으 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 칼뱅 (John Calvin)은 하나님의 예정이 “영원한 작정이며, 각 사람에 대해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셨는지를 스스로 결정하신 것”이라고 설명하였고, “어 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다른 이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되었다”고 강조하였다.26

 

     25 Martin Luther, The Bondage of the Will, tr. by J. I. Packer and P. R, Johnston (Elk Grove Village: Revell, 1957), 102.

     26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tr. by Henry Beveridge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Inc., 2008), 610.

 

이중 예정론으로 알려진 이 개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은혜 의 주도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의 능력을 제한하는 주요 한 신학적 논점을 제공해 주었다.

종교개혁자들의 예정론적 사유는 현대의 과학적 결정론과 자유의지 논 의와 흥미롭게 연결된다.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하는 절대 주권 아래서 신적 예정은 자연의 법칙과 생물학적 요인에 기초한 과학적 결정론과 같이 인간의 역사와 운명이 결정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인간의 자유의지는 부정될 수밖에 없으며, 역사 속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 의지에 수동적으 로 의존하게 된다.

결국 인간은 신이나 자연과 같은 거대담론적 체계에 종속 되어 역사적 주체성과 자율성이 제한된다는 측면에서 신학적 예정론과 과학 적 결정론은 공통적 사유의 주제가 된다.

신학적 예정론은 신의 절대 주권과 은혜라는 개념을 통해 구원의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며, 과학적 결정론은 설명과 예측을 통해 인간의 행동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이 두 개념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공존하기 어렵다는 근대 과학적 담론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신학적 시사점을 보여준다.

종교개혁 시대에 확립된 예정론은 절대주권에 의한 불가항력적 은총을 강조함으로써 운명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도덕적 선택의 문제를 약화시키는 경향을 드러냈다.

이 문제는 17세기에 아르미니우스 논쟁을 야기했는데, 사 실상 이 논쟁은 하나님의 예지에 근거한 예정과 선택의 자유에 대한 중세 후기의 논의를 어느 정도 반복한 것이었다.

16세기 말에 스페인 출신의 예수 회 신학자인 몰리나는 아퀴나스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신적 예지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하나님의 예지를 중간 지 식(scientia media), 즉 자유로운 피조물이 특정한 조건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미리 아는 지식으로 설명하여 신적 은총과 인간의 자유를 화해시키고자 했 다.27

몰린주의(Molinism)는 신적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모두 인정하는 것으로 가톨릭 내에서는 반(半)펠라기우스주의로 평가되었지만, 아르미니 우스(Jacobus Arminius)에 의해서 수용되어 하나님의 예지에 근거한 인간의 자유로운 책임과 도덕적 선택의 가능성에 대한 신학적 근거가 되었다.28

 

    27 Luis de Molina, On Divine Foreknowledge: Part IV of the Concordia, tr. by Alfred J. Freddoso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1988), 47.

   28 Jacobus Arminius, Arminius and His Declaration of Sentiments: An Annotted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Theological Commentary, ed. W. Stephen Gunter (Waco: Baylor University  Press, 2012), 66-67. 

 

아 르미니우스는 신적 예정이 예지에 기초한 조건적인 것임을 강조하면서, 인간 은 전적으로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으로 인해 자유의지가 회복되었기 때문에 믿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아르 미니우스주의(Arminianism)의 예지예정과 선행 은총에 기초한 선택의 자유 에 대한 이해는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신학에서 실천적으로 수용되었다.

웨슬리는 타락한 인간이 전적으로 무능력하지만 하나님의 선행 은총을 통해 자유의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이해하여 신적 전지성과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 는 신앙을 가르쳤다.29

아르미니우스와 웨슬리의 신학은 중세의 신학과 마찬 가지로 예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한 조화를 강조함으로써 과학적 결정론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고자 하는 철학적 담론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근대주의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 신학에서 예정과 자유의지에 대한 신학 적 쟁점은 여전히 중요한 담론의 주제가 되었다.

특별히 현대 사회에서 제기 된 신정론과 인간의 책임 문제로 인해 예정과 자유의지 간의 신학적 갈등은 실존적 문제로 전환되었다. 이 시기에 칼 바르트(Karl Barth)는 하나님의 예정 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계시로 나타났다고 강조함으로써 개혁주의의 예정 교리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계시의 차원으로 복음화시켰다.

이에 따라 서 예정은 신의 배타적 선택이 아닌 은혜의 보편적 선언으로 이해되었으며, 인간은 그러한 신적 은혜의 계시에 대해 의지적으로 자유롭게 응답할 수 있으므로 예정과 자유의지는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30

 

    29 John Wesley, “Sermon 85,”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6 (Grand Rapids: Baker Books, 2007), 509.

    30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I/1, §31, tr. by T. H. L. Parker (Edinburgh: T&T Clark, 1957), 562-563.

 

즉, 바르트는 하나님의 초월적 계시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반응이라는 차원에 서 자유의지를 설명한다.

자유의지에 대한 바르트의 신학은 초월적인 신적 은혜의 계시에 대한 관계적 자유라는 차원을 강조함으로써 지극히 신학적인 범주로 다루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해는 신의 초월적 예정과 인간의 실존적 자유에 대한 이해를 상호 의존적이며 관계적인 것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결정론과 자유의지 논쟁에 관한 신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이런 역사적 이해에 기초해서 <테넷>의 질문에 대한 신학적 성찰 을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자.

 

IV. <테넷>의 물음에 대한 신학적 성찰

 

영화 <테넷>이 제기한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앞서 전개한 기독교 역사신학에서의 예정과 자유의지 담론들 중에서 이 두 역설적 개념의 조화를 추구한 담론을 통해 신학적 성찰을 제시할 수 있다.

이 신학적 성찰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과학적 결정론과 신학적 예정론 사이의 유비적 관계를 논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테넷>에서 제기하는 과학철학적 전제는 우주와 역사의 모든 사건은 원인과 결과의 필연적 연결 고리 속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입장이다.31

 

    31 스티븐 호킹은 적합한 결정론에 따라서 자유의지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Stephen Hawking and Leonard Mlodinow, The Grand Design (New York: Bantam Books, 2010), 32.

 

이런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결정의 주체는 자연의 법칙과 물질적 요인이 된 다.

물질적 존재로서 인간은 이 물질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자유의 지와 결정론은 대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이미 일어 난 일은 일어난 것이며, 그 세계 속에서 인간의 행동은 이미 결정된 어떤 것에 복무하고 있는 것뿐이기 때문에, 자유의지는 제한적이거나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이런 개념을 유비적 관점에서 비교할 때, 신학적 예정론은 그 결정의 주체 가 전능한 신이 된다.

비록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전적 타락으로 인해 그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 능력을 상실했다.

따라 서 인간의 운명은 신의 은총에 기초한 절대 주권적 예정에 달려 있다.

특별히 신의 은총은 불가항력적인 것이며,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아무런 능력이 없어서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할 뿐이다.32

개혁주 의 신학에서 강조하는 이런 신적 예정론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은총과 인간의 전적 무능력 및 의존감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고 전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놓여 있기 때문에, 우주와 세계의 운명과 관련해서 인간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계의 주체로서 인간은 신으로부터 자유의지를 부여받고 스스로 의 능력으로 운명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타락으로 인해 그 능력을 상실함으 로써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결과적으 로 예정론은 신적 예정 앞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게 된다.

이런 예정 론적 이해는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없다는 현대 과학적 사유와 일치한다.

물리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과학적 결정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과거의 역사를 바꿀 수 없다.

아울러 인간이 세계-내-존재인 현존재(dasein), 즉 본질이나 가능태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결정된 존 재”(determined being)라면,33 철학적으로도 그 가능태를 실현할 과정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부정된다.

 

    32 칼뱅주의의 강령에 이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다. David N. Steele, Curtis C. Thomas, and S. Lance Quinn, The Five Points of Calvinism: Defined, Defended, and Documented (Pillipsburg: R&R Publishing, 2004).

   33 “결정된 존재”란 헤겔이 “현존재”(dasein)를 설명하는 용어다. G. W. F. Hegel, Encyclopedia of the Philosophical Sciences in Basic Outline, tr. by Klause Brinkmann and Daniel O. Dahlstrom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194.

 

이런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결정론과 마찬가지로, 신학적 예정론은 신적 예정이 인간의 자율 적 이성에 따른 선택의 자유라는 개념과 대립될 수밖에 없다.

결국 개혁주의 신학의 예정론에 의하면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 은 과학적 결정론과 같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테넷>에서 놀란 감독이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철학적 담론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결정론적 세계관 속에서도 인간의 선택의 자유에 대한 양립 가능성에 대한 성찰은 포기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놀란 감독은 특정 기술을 이용해 개별적인 물질의 엔트로피를 줄이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 게 할 수 있다는 물리적 가설을 활용해 시간 역행의 기법을 제시한다.

현재의 물리 법칙에서 특정 물질의 국소적인 엔트로피의 감소는 가능하다고 제안되 지만, 우주의 전체 시스템에서의 시간 역행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시간 역행을 통해 역사를 바꾼다는 영화적 상상은 양자역학이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제기하는 과학적 비결 정성을 응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양자역학의 발전과 더불 어 가상의 초광속 입자인 타키온(tachyon)이나 CPT 대칭성(Charge-Parity- Time symmetry)과 같은 개념은 시간 역행의 가능성과 연관될 수 있다는 가설 이 존재한다.34

이 외에도 전자의 반입자로서 양전자가 시간 역행과 관련될 수 있다는 파인만-스튜켈버그의 해석도 존재하는데, 그 해석에 따르면 양자 전기역학(QED)에서 입자와 반입자의 대칭성에서 시간 역행의 개념을 제안 할 수 있다.35

 

    34 Jerzy Paczos et al., “Covariant Quantum Field Theory of Tachyons,” Physical Review D, Jul 2024, https://doi.org/10.1103/PhysRevD.110.015006. 2025년 4월 20일 접속.

    35 Richard P. Feynman, “The Theory of Positrons,” Physical Review 76 (1949/6), 749-759. 

 

이런 물리학 가설들은 시간 역행이라는 개념으로 과학적 결정론 의 세계에서 추론할 수 있는 불확정성과 그로 인한 인간의 선택의 자유라는 과학적 상상을 유발하며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안 한다.

놀란 감독이 활용하고 있는 현대 과학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결정론 과 자유의지의 양립에 대한 담론의 가능성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학 역시 예정론 논쟁 속에서 나타난 통찰에 기초해서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담론을 제시할 수 있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 주제 에 대한 신학적 담론은 변증법적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즉, 신의 은총과 예정 을 강조하던 신학적 테제(thesis, 정명제)는 예지예정과 인간의 선택의 자유 를 강조하는 안티테제(anth-thesis, 반명제)로 전개되었고, 그 논의는 두 개념 을 조화롭게 재해석하려는 신테제(synthesis, 합명제)로 나아가고 있다.

이 역사변증법적 전개 과정에서 제시된 담론에서 예정과 자유의지의 양립 가능 성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포착할 수 있다.

이 담론에서 테제를 이루는 예정론 논의는 인간의 선택이 하나님의 영원 하신 예정의 포고에 의존하는 것으로 이해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유를 기반 한 것이다.

이런 사유에 기초한 담론은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양립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칭의 교리에 기초해서 외래적 의와 노예 의지 개념을 강조한 루터의 가르침,36 신의 절대주권에 기초해서 불가항력적 은총과 전적 타락 개념을 강조한 칼뱅의 가르침 등은 신의 은총과 예정을 앞세워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개혁 신학의 예정론으로 발전했다.

 

    36 Martin Luther, Luther’s Works, vol. 31, ed. and tr. by Harold J. Grimm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57), 24-26. 

 

이런 예정론에 의 한 신학적 테제는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물음에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가 없고 과학적 결정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선택의 자유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신학적 예정론에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언제나 부정당한 것은 아 니었다.

예정론적 사유의 기초를 제공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은총과 예 정을 강조했지만, 마니교의 결정론적 가르침을 배격하기 위해서 자유의지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원죄로 인해 노예가 된 인간의 자유 의지가 신의 은총으로 해방되어 다시 기능할 수 있게 된다고 이해했다.37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복된 자유의지라는 개념은 예정과 자유의지 사이의 대립을 해소시키는 신학적 성찰을 제공해 주었다.

중세의 신학자들은 이 회복된 자유의지의 개념을 칭의의 순서(processus iustificationis)에 적용하 여 “믿음에 의해 죄에 대항하는 은총이 주입되고, 은총에 의해 영혼이 죄로부 터 씻김을 받고, 영혼의 씻김을 통하여 의지의 자유가 생기며, 의지의 자유를 통하여 의에 대한 사랑이 발생하며, 의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율법이 행해진 다”고 정리했다.38

이 내용은 신의 은총이 인간을 의롭게 함으로써 자유의지 의 운동으로 이끈다는 아퀴나스의 결론에 이른다.39

이런 중세의 신학과 그 이후의 예지예정론 논쟁에서 나타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강조는 신의 절대주권적 예정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안티테제 를 이루며, 그 안티테제는 결정론적 세계에서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이론적 담론의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신의 은총으로 회복된 자유의지와 그 기능에 대한 강조는 신적 예정의 근거이자 원인으로까지 제시되는 문제가 있다.40

은총을 통해 회복된 자유의지에 기초한 신적 주권에 대한 반응이라는 안티테제는 신의 예정이나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정확한 성격이 무엇인지 에 대한 논란을 야기했다.

따라서 신적 예정과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있다는 신학적 통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예정과 자유의지의 성격에 내포된 이론 적 모순을 해결하는 변증법적 종합이 요구된다.

 

   37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을 참조하라. Augustinus, De libero arbitrio, I.5.12. ed. W. M. Green (Turnhout: Brepols, 1970), 205-321.

   38 Florus of Lyon, “Expositio in epistolas Pauli,” Patrologia Latina, vol. 119, ed. J.-P. Migne (Paris: Garnier, 1852), 642. 39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aIIae, q.133, a.5, tr. by Thomas Gilb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5), 278. 40 비아 모데르나(via moderna)를 이끈 가브리엘 비엘(Gabriel Biel)의 사상에서 강조되는데, 이에 대한 비판은 J. E. Biechler, “Gabriel Biel on ‘liberum artitrium’,” The Thomist 34 (1970), 114-127. 이국헌 |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가?” 163 

 

그래서 신학적 예정론은이러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예정론에 관한 체계적인 논의에서 신학자들은 처음부터 신적 예정의 개 념을 운명론이나 결정론과는 다른 것, 즉 자유의지와 조화된 개념으로 이해 하고자 노력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운명론을 거부하고 자유의지의 실재성 을 주장하기 위해서 신적 예정을 신적 지혜의 차원으로 설명하고자 했다.41

이 개념으로부터 신적 예정을 신적 지성으로 이해하는 개념과 신적 의지로 이해하는 개념 사이의 쟁점이 형성되었다.

예정을 신적 의지에 근거시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그 예정과 관련이 없고, 예정을 신적 지성에 근거시키면 그 예정은 인간의 선택에 대한 신적 예지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42

존재론 적 형이상학에 기초하면 예지와 예정은 형식적으로는 다르지만 실질적으로 는 동일한 신적 작용의 양태로 이해될 수 있다.43 이렇게 양태론적으로 신적 지성과 신적 의지가 신적 단일성 속에서 구분 없이 작동한다면, 인간 선택의 자유는 여전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반면 신인협력설(synergism)을 강조하는 진영에서는 예지와 예정을 존 재론적이 아닌 인과적인 관계로 보고 예정이 예지에 기반하는 것으로 설명한 다.

즉,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미리 아시고 그에 따라 예정하시기 때문에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44

 

    41 Augustinus, De libero arbitrio, col. 911.

    42 중세 예정의 교리에 대한 분석 자료는 알리스터 맥그래스, 『하나님의 칭의론』, 한성진 옮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8), 229-231.

    43 아퀴나스가 바로 그런 경우다. Aquinas, Summa Theologiae la, q.23, a.1-2.

    44 Jacobus Arminius, The Works of James Arminius, D.D., Formerly Professor of Divinity in the University of Leyden, vol. 1, tr. by James Nichols (Auburn: Derby and Miller, 1853), 248-249.

 

이런 입장은 예정론을 운명론이나 결정론으로 극단화하지 않으면 서 인간의 자유의지도 훼손하지 않으려는 신학적 정합성을 보여준다.

그러 나 이러한 예지와 예정에 관한 논의에서 신적 예지는 특정 상황에서 자유의지 를 가진 인간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이미 아신다는 것이고, 신적 예정은 그런 신적 지식을 이용해 세상의 조건들을 배열하고 예정하신다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어떤 조건 아래서 인간이 자유롭게 어떤 선택을 할지를 확정적으로 아신다면 그 선택을 자유로운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이런 반론을 해결하기 위해 기독교 신학에서는 몇 가지 이론이 제시되고 있으며, 그런 이론들을 통해서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 변증법적 종합으로서 의 신학적 성찰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먼저 고려해 볼 수 있는 이론은 신적 예지의 대상을 가설적인 지식의 개념 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몰리나에 의해서 제안된 이 이론에서 하나님이 미리 아시는 것은 필연적 지식(scientia naturalis)이나 자유로운 지식(scientia libera) 이 아닌 중간 지식(descientia media), 즉 자율적인 이차 원인의 행위와 관련된 가설적이고 우발적인 지식이기 때문에 개체의 자유로운 의지가 훼손되지 않는다.45

그 이론을 대변하는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에 따르면 하나 님은 “어떤 자유로운 피조물이 특정한 상황에서 자유롭게 무엇을 선택할지” 에 대한 조건적 진리들을 아시기 때문에 선택을 강요하거나 원인을 제공하지 않고도 그 선택의 결과를 예지하신다.46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고려하여 조건적 진리들을 모두 포함한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로 조건 지어진 그 세계 내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자유의지가 모두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 만 이런 설명은 신의 결정에 의해 조건 지어진 상황 속에서의 선택이 완전히 자유로운 것인지에 대한 반론을 피할 수 없다.47

 

   45 몰리나의 이론에서 강조된 개념이다. Luis de Molina, Concordia liberi arbitrii cum gratiae donis, divina praescientia, providentia, praedestinatione et reprobatione, disp. 50 (Antwerp: H. Aertssens, 1595), 329-330.

   46 William Lane Craig, “Middle Knowledge, Truth-Makers, and the ‘Grounding Objection’,” Faith and Philosophy 17 (2000/2), 204-222.

   47 John D. Laing, “Molinism, Question-Begging, and Foreknowledge of Indeterminates,” Perichoresis 16 (2018/2), 55-76.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변론은 “가능한 세계 이론”(possi ble worlds) 개념으로 설명된다.

앨빈 플란팅가(Alvin Plantinga)에 의해서 제시된 이 개념에 의하면, 신적 예지는 가능한 모든 세계에 대한 신적 지식으 로 설명된다. 여기서 가능한 세계란 신의 섭리로 조건 지어진 세계를 벗어날 가능성까지 포함한 세계를 말하며, 바로 그 가능성의 세계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플란팅가에게 자유의지란 도덕적으로 중대 한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48

인간은 선하면서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고, 그 자유의지 안에는 악을 선택할 가능성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도 불구하고 악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49

이처럼 플란팅가는 신이 창조한 세계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세계이며, 그 세계에서 신의 예정과 섭리는 인간의 선택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이해함으로써, 신의 결정과 인간의 자유 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 신학적 성찰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런 가능 세계 이론 은 과학적 비결정론과 맞닿아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신의 절대주권을 유보시 켜야만 하는 문제가 있다. 이 주제와 유사한 또 하나의 이론은, 이른바 열린 유신론(Open Theism)이 라는 개념으로 전개되었다.

라이스(Richard Rice)에 의해서 제시된 이 이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랑의 속성에 의해 인간의 의지에 응답하는 관계적인 존재 이기 때문에 미래를 전적으로 결정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역사를 유동적으로 이끌어가신다.50

 

     48 Alvin Plantinga, The Nature of Necessit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74), 166.

     49 Alvin Plantinga, God, Freedom, and Evil (Grand Rapids: Eerdmans, 1974), 29-30.

     50 열린 유신론자들은 다음의 자료를 통해서 신학적 입장을 정리한다. Clark H. Pinnock et al., The Openness of God: A Biblical Challenge to the Traditional Understanding of God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94). 

 

열린 유신론자들은 하나님은 전지 하시지만, 그 지식이 가능한 미래들의 집합을 아시는 것일 뿐 결정된 미래를 아시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는 결정론적 역사관을 배격하고 “자유의지론적 자유”, 즉 인간의 자유가 실제적 선택의 자유임을 강조하기 위한 명제 적인 주장이다.51

즉,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도 결정되지 않은 여러 가능한 상황에서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선택에 따라 반응하시는 가변적이고 비결정적인 존재로 이해된다.

이런 신 학은 신정론과 악의 문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접근을 제공하며, 신적 예정의 틀을 넘어서 인간의 자유의지 를 옹호하는 신학으로 주목될 수 있다.

다만 이 신학은 하나님의 예지와 섭리 에 내포된 신적 전지성과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성경적 가르침을 실제적이 아닌 비유적 계시로 해석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아울러 카푸토(John D. Caputo)의 약한 신학(weak theology)52과 같은 포스트모던적 특성을 드러 내기도 한다.

 

   51 Ibid., 136-137.

   52 John D. Caputo, The Weakness of God: A Theology of the Event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06).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들은 여전히 여러 쟁점을 남겨두고 있지만, <테넷>에서 던진 물음, 즉 결정론과 자유의지 의 양립 가능성에 대한 신학적 답변 가능성을 제공한다.

먼저 신학적 창조론 에서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창조함으로써 신적 절대주권과 인간 의 자유의지가 공존하는 상황이 신적 의지임을 계시하셨다.

창조주로서 하 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피조물로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며, 이 둘 사이 가 관계적으로 존재한다는 개념에서 인간의 선택의 자유는 실제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신학적 예정론의 경우, 타락으로 인한 자유의지의 상실과 신적 예정의 절대성을 강조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의 의지가 신적 지혜에 반응하게 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선택과 상호작용 속에서 역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신적 의지와 인간의 의지 를 상호관계적으로 이해하면 신의 절대주권과 전지성이 도전받게 되지만, 영원이라는 신적 차원에서 가능한 세계의 우발적 지식을 모두 아시는 신의 예지와 그에 따른 예정이 시공간의 차원에서 그 우발적 지식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정과 자유의 지가 공존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신학적 성찰에 기초할 때, 상식적 실재론에서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시공간 으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인간의 선택은 여전히 자유로운 행위로 인식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따라서 과학적 결정론의 세계에서 인간은 자유의 지에 따른 선택을 통해 운명론에 종속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신적 예정의 섭리 속에서도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신적 의지에 반응할 수 있다.

예정론과 관련된 신학적 성찰은 이 두 개념의 조화와 공존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

 

V. 맺는 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테넷>의 과학철학적 물 음은 물리학이 지배하고 있는 상식적 실재론의 영역에서 매우 도전적인 질문 이다. 현대 물리학이 강조하는 자기-일관성의 원리로만 본다면, 이 질문의 답은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란 감독은 이 물음에 대한 긍정적 성찰을 제시함으로써 현대인들에게 엄정하게 질문을 던졌다.

특별히 이 질 문은 예정론과 자유의지 개념과 유비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신학적으로도 유의미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영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테넷>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신학적 성찰을 통해서 제시했다. 

기독교 신학에서 신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의 논의는 예정론이 라는 범주에서 다뤄져 왔다.

이 논의는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시작해서 현 대신학적 담론에 이르기까지 역사 변증법적인 과정으로 발전해 왔다.

고전 적 예정론에 기초해서 종교개혁자들은 신의 절대주권 아래서 예정과 자유의 지는 공존할 수 없다고 여겼다.

이에 대한 반명제로서 발전된 예지와 예정에 관한 여러 신학은 신의 전지성을 가설적이고 우발적인 지식으로 한정함으로 써 인간의 선택의 자유를 옹호하였고, 그런 이론을 통해서 예정과 자유의지 의 공존 가능성을 제안하였다.

현대에 이르러서 신학자들은 신적 전지성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탈근대적 개념을 통해서 신적 섭리와 예정 속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적 자유를 강조하는 신학적 합명제를 추구하였는데, 이런 이론들은 신학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정과 자유의지의 공존 가능성을 설명 하는 신학적 성찰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현대 신학에서 제시된 몇 가지 이론, 즉 중간 지식에 대한 예지의 개념, 가능한 세계 이론, 열린 유신론과 같은 이론들에 나타난 이론들을 종합 하여 예정과 자유의지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테넷>의 궁극적 질문, 즉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공존하는가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제시해 보았다.

이 연구는 영화와 신학이라는 융합적 연구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신학적 이론을 개략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과학적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논의를 깊이 다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런 부분들을 심화한 추가적인 연구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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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은 상식적 실재론에서 서로 대립되는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 과학철학적 물음은 신학적 예정론의 논쟁과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신학적 성찰이 요구된다. 기독교 역사 에서 예정론은 신적 예정을 강조하는 이론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이론 사이에서 변증법적 과정으로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합명제는 신의 예지에 의한 예정과 인간의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현대 신학 에서 몇몇 이론―중간 지식, 가능한 세계, 열린 유신론―은 신적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여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공존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신학적 성찰을 제시함으로써 <테 넷>의 물음에 대한 신학적 답변을 추구하였다. 신적 예정의 섭리 속에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신적 의지에 반응할 수 있다는 신학적 성찰을 고려해 볼 때, 과학적 결정론의 세계에서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통해 운명론 에 종속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테넷>의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다. 

 

주제어  테넷, 결정론, 자유의지, 예정론, 예지예정, 중간 지식, 가능 세계, 열린 유신론

 

Abstract

“Can Determinism and Free Will Coexist?”: A Theological Reflection on the Principle of Self-Consistency in the Film Tenet

Kuk Heon Lee( Ph.D. Professor, Department of Theology Sahmyook University)

Christopher Nolan’s film Tenet poses the question of whether de terminism and free will can coexist, challenging the conventional un derstanding of reality. This philosophical inquiry is akin to the theo logical debates on predestination, which necessitates theological reflection. Throughout Christian history, the doctrine of predestina tion has unfolded as a dialectical process between theories emphasiz ing divine foreordination and those focusing on human free will. Through this process, a synthesis emerged that emphasized both di vine foreknowledge and human freedom of choice. In contemporary theology, several theories―such as middle knowledge, possible worlds, and open theism― highlight that divine predestination and human free will are complementary, suggesting the possibility of rec onciling determinism with free will. This study seeks to provide a theological answer to Tenet’s inquiry by offering such reflections. Considering the theological perspective that, within divine provi dence, humans possess free will and can respond to divine will, one can resonate with Tenet’s message: in a world shaped by scientific de terminism, humans are capable of living freely, unbound by fatalism, through choices made by free will.

 

 Keywords  Tenet, Determinism, Free Will, Predestination, Foreknowledge, Middle Knowledge, Possible Worlds, Open Theism

 

 

 

 

접수일: 2025년 5월 8일, 심사완료일: 2025년 5월 28일, 게재확정일: 2025년 5월 30일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37집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있는가 ― 영화 테넷(Tenet)의 자기-일관성 원리에 대한 신학적 성찰.pdf
0.88MB

 

 

 https://doi.org/10.18708/kjcs.2025.7.137.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