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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사도행전의 갈릴리인 이해-그 묘사의 성격과 의도를 중심으로- /이진선.연세大

 Ⅰ. 들어가는 말

 

본 연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갈릴리인들의 역할과 정체성을 고찰한 다.

예수 운동의 처음 발생지는 갈릴리이며 예수 운동을 따르던 초기 인 물들은 대부분 갈릴리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갈릴리인들은 초기 그리 스도교 공동체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과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사실 이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갈릴리인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에 최근 갈릴리인의 인종 및 문화적 특성과 관련된 연구들 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갈릴리인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는 신약성서 해석에서 다양한 관점의 연구를 시도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 다. 자료의 한계로 인하여 그 연구의 진척이 더딤에도 여전히 갈릴리인 정체성에 답하려는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들은 이 연구의 중요성과 필요 성을 방증한다.

특별히 사도행전의 갈릴리인 연구는 더욱 중요하다.

사도행전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형성과 그 역동의 중심에 갈릴리인이 있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이 연구를 통해 1세기 갈릴리인(Γαλιλαῖος)에 대한 그리스도 교 공동체의 관점을 이해하고 나아가 사도행전의 갈릴리인에 대한 통찰 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갈릴리인은 사도행전에서 1세기 그리 스도교 공동체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중요한 자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적 자료와 성서의 기록으로 확인되는 갈릴리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가 이방으로 확장되는 지 리적인 구도를 보여주는 사도행전에서 갈릴리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그들 선교활동에 걸림돌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에 사도행전 저자는 갈릴 리인에 대한 저항적인 선입견을 감소시키고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적인 갈릴리인에 대한 긍정적 서술의 유지는 1세기 그리스도교 전파를 위한 그의 전략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연구는 먼저 유대 문헌의 갈릴리와 갈릴리인에 대한 자료들을 통해 접근하고자 한다.

윤대 문헌에서는 구약성서와 요세푸스 작품의 갈릴리 와 갈릴리인에 대하여 고찰한다.

요세푸스의 작품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 동체가 형성되었던 시기와 비슷한 연대의 기록으로 1세기 유대의 역사와 시대적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헌자료이다.

요세푸스의 저서인 『자서전』과 『유대전쟁사』 그리고 『유대고대사』에서 갈릴리와 갈릴리인에 대한 다수의 언급은1) 운무중에 있는 갈릴리인 연구에 일종의 조명의 역 할을 할 것이다.

 

     1)  요세푸스의 『자서전』에는 ‘갈릴리인(Γαλιλαῖος)’에 대하여 모두 45회, 『유대전쟁사』 20회, 그리고  『유대고대사』는 16회 기록되어 있으며 『아피온의 반박문』에는 1회의 기록이 있다. 

 

그 중 요세푸스 『자서전』과 『유대전쟁사』를 통해 갈릴리 인에 대한 문헌적 고찰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후 신약성서의 복음서들에 기록된 갈릴리와 갈릴리인의 기록을 비교하며 갈릴리인에 대한 각 복음 서의 입장을 확인할 것이다.

성서 본문은 주석학적 방법을 통해 본문의 연구와 역사·문화적 배경을 분석하여 신학적 주제를 도출하고, 요세푸스 작품은 문헌사적 접근과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하여 고찰한다.

이를 통해 사도행전에서 갈릴리인이 긍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모습이 사도행전 작 품 전체에서 지리적 구도를 통해 보여주는 선교의 확장과 무관하지 않음 을 확인하고자 한다.

 

Ⅱ. 유대 문헌으로 살펴본 갈릴리인 이해

 

갈릴리인에 대한 기록은 신약성서에서부터 확인된다.

그러나 갈릴리 의 지명은 그 이전 시대인 구약시대부터 등장한다.

비록 갈릴리인에 대 한 기록은 아닐지라도 구약성서에 기록된 갈릴리 지명에 대한 고찰은 갈 릴리인 이해에 필요한 작업이다.

어떠한 인종이나 그들 그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친 지역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도 그들의 그룹화가 되기까지는 그들에 대한 종교와 역사적인 맥락이 있었 다.

그러나 갈릴리인이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과 같이 종교적 신념에 따 라 분류된 부류와는 다르므로 그들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특별히 그들 명칭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바로 갈릴리인이라 불리게 되었던 그 지명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유추 할 수 있다.

이에 구약성서와 중간기 유대 문헌인 요세푸스 작품을 통해 갈릴리 지역에 대한 이해를 고찰하고자 한다.

 

1. 구약성서의 갈릴리

구약성서에는 갈릴리인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로 미루어 갈릴리인 에 대한 표현은 구약시대 이후에 나타난 개념으로 여겨진다.

다만 구약 성서에서 갈릴리 지명의 기록은 그 지역적 상황의 이해를 돕는다.

구약 성서의 갈릴리 지명은 모두 6회의 기록이 있다.2)

그러나 LXX에서는 갈 릴리(Γαλιλαία)라는 기록이 4번 더 확인된다.3)

LXX에 기록된 갈릴리의 내 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여호수아 12장 23절은 길갈을 갈릴리(Γαλιλαία)로 기록한다.

이 기록과 관련하여 학자들이 여호수아 12장 23절에서 길갈을 “갈릴리”로 읽고 있는 칠십인역을 따르는 이유를 이 지역에는 길갈이 없 기 때문이라 한다.4)

 

     2)  구약성서 개역개정의 갈릴리에 대한 기록은 수 20:7; 21:32; 왕상 9:11; 왕하 15:29; 대상  6:76[6:61]; 사 9:1[8:23]로 6회가 있다. 이들의 기록은 히브리어 기록에도 갈릴리로 기록되어 있 다. *[ ]는 LXX구절의 표기이다.

     3)  LXX에서는 수 12:23; 왕상 9:12; 사 33:9; 겔 47:8에도 갈릴리(Γαλιλαία)라는 언어적 표현을 사용 한다.

     4)  손석태, 『여호수아』 대한기독교서회 창립100주년기념 성서주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6), 273. 

 

이사야 33장 9절에는 갈멜에 대하여 ἡ Γαλιλαία로 표기한다.

이어 열왕기상 9장 12절은 개역개정에는 “히람이 두로에서 와 서…”라고만 번역되어 있으나 11절과 이어지는 구절의 원문은 καὶ ἐξῆλθεν Χιραμ ἐκ Τύρου καὶ ἐπορεύθη εἰς τὴν Γαλιλαίαν 로 기록되어 갈릴리의 언 급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에스겔 47장 8절에서 “…물이 동방으 로 향하여 …(εἰς τὴν Γαλιλαίαν τὴν πρὸς ἀνατολὰς …)”라고 기록된 구절에서도 갈릴리라는 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에스겔 47장 8절은 갈릴리 를 동쪽에 있는 갈릴리로 표현하고 있다.

LXX의 기록에서 추가로 확인 되는 갈릴리는 길갈이나 갈멜에 대한 갈릴리 표기와 두로에서 갈릴리로 의 이동의 기록, 그리고 동방의 갈릴리라는 표현으로 볼 때 이들 모두 지 역적인 의미로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적인 언급이 단순히 지리적 위치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들의 기록을 성서 전체의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면 갈릴리 상황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먼저 LXX의 여호수아 12장 23절 을 제외한 개역개정에서 가나안 정복 이후 갈릴리에 대한 기록은 여호수 아 20장 7절에 처음 언급된다.

여기에서 갈릴리 지역은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라고 기록한다.

갈릴리는 곧 납달리 지파의 기업으로 분배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이후 솔로몬 왕정 때에 갈릴리 땅 의 성읍 중 20개가 두로왕 히람에게 선사 되었다.

이와 관련된 성서 기록 은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과 왕궁의 건축을 마친 뒤 히람이 솔로몬 에게 왕궁 건설에 필요한 건축 자재를 제공한 대가로 인해 갈릴리 성읍 들을 그에게 준 것으로 보인다(왕상 9:10-11).

이는 갈릴리 지역의 일부가 다른 국가의 소유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후 분열 왕국의 이스라엘 베 가 왕 때에는 앗수르가 이 땅을 차지한 것에 대하여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였다”(왕하 15:29)고 한다.

갈릴리 지역은 이제 일부가 아닌 전 지역이 앗수르에 속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수 아 시대 납달리 지파가 차지한 갈릴리 땅은 솔로몬 왕정 때 그 일부가 두 로의 영토가 되었으며 분열 왕국에 이르러서는 갈릴리 전체가 앗수르의 소유가 되었다.

구약성서의 많지 않은 갈릴리 지명의 기록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들이 전하는 갈릴리 지역은 역사의 풍파 한가운데서 험난한 시대 를 지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은 이사야의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사야 9장 1절[8:23]은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받던 이방의 갈릴리를 이후에 영화롭게 하였다고 기록한다.

납달리 지파에게 속하였던 갈릴리 땅이 역사의 흐름 가운데 무시당하였고, 갈릴리 땅은 결국 유대 땅이 아닌 ‘이방의 갈릴리’로 불러 졌다.

갈릴리의 지형적인 특 성과 역사적 정황을 통해 확인한 갈릴리의 순탄하지 않은 역사는 그 땅 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삶 역시도 역사의 풍랑 한가운데 놓여 있었음을 인지하게 한다.

구약시대로부터 시작된 갈릴리에 대한 이러한 배경은 그 땅에 거주 하던 사람들, 즉 그 땅의 출신들인 갈릴리 지역 사람들에게 적잖은 영향 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의 영향은 특별히 갈릴리인들의 정체성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갈릴 리의 지리적 상황과 시대적 배경을 토대로 갈릴리인에 대한 정체성은 어 떻게 규명되었는지 갈릴리인에 대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요세푸스의 문헌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2. 요세푸스 문헌의 갈릴리인

 

요세푸스는 제2성전기의 마지막 시대를 살아간 인물로 그의 작품은 신약성서와 동일 시대에 기록되었다.

요세푸스의 작품은 정경에 속하지 는 않으나 유대 문헌 역사로서의 가치는 분명히 지닌다.

또한 그의 작품 은 구약성서 시대와 신약성서 시대를 연결하는 시대적 특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요세푸스 작품에는 그 이전 시대의 문헌에서는 찾아보기 어 려웠던 갈릴리인에 대한 수많은 언급이 있다.

이에 그의 작품에 대한 고 찰은 갈릴리인(Γαλιλαῖος)에 대한 정체성 확인에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 여 겨진다.

연구는 요세푸스의 『자서전』과 『유대전쟁사』를 위주로 살펴볼 것 이다.

요세푸스 『자서전』의 ‘갈릴리인(Γαλιλαῖος)’은 모두 45회의 기록이 있 다.5)

요세푸스는 『자서전』에서 갈릴리에 파견된 자신의 임무를 불만 세 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회유임을 언급한다.6)

요세푸스가 언급하는 불만 세력은 갈릴리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솔로몬 제이틀린(Solomon Zeitlin)은 요세푸스 『자서전』의 ‘갈릴리인들’을 불만 세력을 지닌 반란그 룹으로 설명한다.7)

 

     5)  8.30; 9.39; 14.79; 19.99, 100; 21.102, 103; 22.107(108); 25.125; 35.177; 40.200; 41.206;  42.210; 43.214; 45.228; 45.229(230); 46.237*; 47.242; 48.250; 49.252; 49.253, 258; 50.260;  51.262; 59.305; 59.306; 60.309(311); 65.340; 67.375, 379; 68.381; 69.385; 70.392; 34회(*은 2번 기록)와 아르멘티가 제안한 12.66; 16.84; 29.143; 38.190; 38.198; 58.302; 65.350; 66.368;  68.383; 70.391; 71.398 11회로 모두 45회이다. 아르멘티는 제이틀린이 명시한 요세푸스 『자서전』 의 갈릴리인에 대한 기록 34회에 대하여 제이틀린이 연구를 위한 일반화를 추구한 것으로 실제는  ‘갈릴리인’ 기록이 11회 간과되었음을 지적하며 요세푸스 『자서전』에서의 기록은 모두 45회 임을  밝히고 있다. Joseph R. Armenti, “On the Use of the Term “Galileans” in the Writings of Jose phus Flavius: A Brief Note,” The Jewish Quarterly Review 72/1 (1981/07), 45-49.

    6)  요세푸스, 『자서전』 7.28, 29 (서울:도서출판 달산, 1991), 31.

    7)  Solomon Zeitlin, “Who Were the Galileans? New Light on Josephus’ Activities in Galilee,” The Jewish Quarterly Review 64/3 (1974/01), 189. 제이틀린의 이러한 입장은 요세푸스가 그의 임무를  위해 세포리스에 파견되었을 때 갈릴리 사람들에 의해 약탈을 당할 지경에 놓였다는 기록으로 인 한 것이라 한다. 

 

제이틀린의 갈릴리인에 대한 설명은 그들의 약탈적인 모습으로 정의한 것이며 지리적 상황이나 특성은 배제하였다.

그는 젤롯이나 시카리와 같은 강경파와 같이 예루살렘 파괴에 책임을 갖는 자들로 갈릴리인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8) 반면 루이스 펠드만 (Louis H. Feldman)은 요세푸스가 갈릴리인을 뚜렷한 정치적 정당으로 간 주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9)

그는 또한 『아피온의 반박』 1.48에서 요세 푸스가 갈릴리인들을 지휘한 것을 볼 때, 만일 제이틀린의 주장에 따른 다면 요세푸스가 혁명적 그룹을 이끈 것이므로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반 박한다.10)

요세푸스의 문헌에 언급되는 갈릴리인을 단순한 반란그룹으로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요세푸스의 문헌을 자세히 살펴보면 요세푸스는 『자서전』에서 세포리스 주민들을 위해 갈릴리 군중들을 설득하는 모습이 있다.11)

그러 나 그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티베리아스 주민들은 전쟁 준비를 하였다 (8.31).

그 이유에 대하여 요세푸스는 반란에 열의를 가진 유스투스가 그 의 연설로 군중들을 설득하였고, 이로 인하여 수많은 군중이 아그립바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고 기술한다.12)

이러한 요세푸스의 기술은 갈릴리 인을 반란을 지닌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갈릴리인의 묘사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요세푸스 기록의 세포리스와 티베리아스 그리고 갈릴리 사람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포리스와 갈릴리인이 동 일한 자들이 아니라 추정하면서 티베리아스 거주민 역시 갈릴리인과 같 은 사람들이 아닐 것이라는 견해로 인함이다.13)

 

       8)  Ibid., 193, 203.

       9)  Louis H. Feldman, “The Term “Galileans” in Josephus,” The Jewish Quarterly Review 72/1  (1981/07), 50-52. 펠드만은 또한 헤롯이 혁명자들을 자신의 도시에 두는 것을 설명할 수 없으며  『자서전』 68.381에서 정관사를 사용하지 않은 ‘갈릴리인들’을 갈릴리에서 온 개인들로 구분한다.

     10)  Ibid., 51. 펠드만은 갈릴리인들이 혁명적 그룹이 아님은 그들이 갈릴리 밖에서의 언급이 없으며  갈릴리의 유다에 의해 세워진 제 4철학 운동이 갈릴리 자체에서는 보편적 지지로 세워지지 않았 다고 한다.

     11)  요세푸스, 『자서전』, 8.30, 31.

     12)  Ibid., 9.36-37, 39.

     13)  Zeitlin, “Who Were the Galileans?,” 189. 

 

이 세 집단의 사람들을 같은 집단으로 보지 않는다면 갈릴리인만을 특정하여 반란그룹으로 지칭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생긴다.

요세푸스 문헌에는 유스투스의 연설에 따 라 무기를 든 자들을 티베리아스의 시민들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14)

그리고 갈릴리 사람들이 로마에 복종하는 세포리스 사람들에게 증오를 나타냈다는 기록은 요세푸스의 견해가 아닌 유스투스가 연설한 내용의 기록이다.15)

따라서 이 내용만으로 요세푸스가 갈릴리 사람들을 반란그 룹으로 보고 있다고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유스투스의 설득으로 티베 리아스 사람들이 반강제적으로 무기를 들게 되었고 가다라와 힙포스를 불 지르게 되었다는 요세푸스의 기술은 그들의 자의적이 아닌 강압에 의 한 행동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습은 갈릴리인들을 반란 집단으로 온전히 규명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요세푸스는 자신이 갈릴리의 평화를 지키고자 노력했고, 비록 70인을 인질로 잡았으나 그들을 동료로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16)

그리 고 티베리아스 사람들의 배신에 따른 무장한 갈릴리 사람들과 관련하여, 그들이 티베리아스에 대한 공격을 요구해 온 사실은 맞으나 요세푸스는 그러한 행동을 설득하였고 그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게 하였다고 기록한 다.17)

만일 갈릴리인들이 반란을 주도하는 집단이었다면 요세푸스의 설 득을 쉽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수긍하기 어렵다.

심지어 요세푸스는 자 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습성을 지닌 갈릴리 사람들에 대하여 설명한다.18)

 

     14)  요세푸스, 『자서전』, 9.42.

     15)  Ibid., 9.40.

     16)  Ibid., 14.78-79.

     17)  Ibid., 19.97-100. 18)  Ibid., 25.125. 

 

이러한 요세푸스의 기술은 갈릴리인의 헌신적인 마음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단지 불만 세력으로 언급된 갈릴리인에 대하 여 반란집단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들에 대하여 지나치게 극단적인 정 의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만일 제이틀린의 주장과 같이 갈릴리인을 반란그룹으로 여긴다고 한다면, 그들의 반란적 특성의 근원에 대하여 명확한 설명이 필 요하다.

프란시스 러프투스(Francis Loftus)는 이러한 부분을 면밀하게 연 구하는데 그는 지역과 상관없는 갈릴리인의 반란적 입장을 요세푸스 『유 대전쟁사』에 기록된 ‘σύνταγμα τῶν Γαλιλαίων’의 구절 분석을 통해 설명 한다.19)

그는 이 구절이 예루살렘의 조직된 ‘파견단’으로 번역되어 지리 적 함의를 지녀 왔다는 기존의 견해와 달리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의 유입은 없으며” 지리적 장소를 가리키지 않는 특별한 반란그룹이라 설명한다.20)

그리고 그 반란그룹에 대해 기스칼라의 요한을 따르는 무리 들의 실례를 들어, 그들을 “굶주린 “갈릴리인”의 힘”으로 묘사한다.21) 이 것은 갈릴리인이라는 반란그룹을 로마의 정치적 상황에 대항하는 그룹으 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피폐한 삶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형성된 그룹임을 추측하게 한다.

러프투스도 갈릴리인에 대하여 지역으로부터 기인한 명칭이 아닌 반란그룹으로 정의하지만 제이틀린과 달리 갈릴리인 들의 궁핍한 삶으로 인해 형성된 특수한 사회-정치적 정황이 반영되었 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러프투스의 견해대로 그들이 단순히 삶의 피폐 함으로 반란그룹이 되었다는 설명은 오히려 역설적이다. 지리적 특성이 반영되지 않으면 그들 삶의 형편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그 의 또 다른 연구에서는 갈릴리인들 삶의 어려움이 그들의 지역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22)

 

    19)  Francis Loftus, “A Note on σύνταγμα τῶν Γαλιλαίων B.J. iv 558,” The Jewish Quarterly Review  65/3 (1975/01), 182-83.

    20)  Ibid., 182-183.

    21)  Ibid., 183.

    22)  러프투스는 요세푸스의 저술을 토대로 갈릴리인들의 반-로마 항쟁에서의 역할에 대하여 조명한 다. 그는 갈릴리 지역의 농민들이 B.C 733년부터 63년까지의 지속적 외세의 침략과 지배로 인하 여 전쟁에 익숙하며, 『유대전쟁사』에서는 외세에 대항하는 용기를 지닌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다 고 한다. 한편 그는 요세푸스가 『유대전쟁사』 3.112, 127에서 전쟁의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갈릴리인들에 대하여 단순하게 무장된 농민들 이상으로 갈릴리인들의 반-로마적 성향을 분석하 기도 한다. Loftus, “The Anti-Roman Revolts of the Jews and the Galileans,” 78-98. 

 

이는 갈릴리인들의 반란적인 성향에 는 지리적 정황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조셉 아르멘티(Joseph R. Armenti)는 요세푸스에 언급된 갈릴리 인에 대하여 지역적 의미를 지니지 않은 단순한 반란자들로 보는 견해에 수정을 가한다.23)

그는 요세푸스 『자서전』 8.30에서 로마 대항을 위한 군 대 조직인 요세푸스의 표면적 임무와 달리, 실제 임무는 반란자들의 무 장해제이며 요세푸스에 언급된 갈릴리의 군중(πλήθη)은 일반적 지역 인구 라 설명한다.24)

아르멘티는 갈릴리인에 대하여 정치적 집단보다는 지역 에서 기인한 사람들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요세푸스가 티베리아스인과 세포리스인, 그리고 갈릴리인을 분리하여 언급하는 것 과 관련해 갈릴리인은 갈릴리 전역에 흩어졌던 거주민들로서 주요 도시 인구들로부터 구별되는 소작인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25)

단순한 반란그 룹으로 통칭하는 견해와 달리 아르멘티가 갈릴리인에 대하여 지역적인 함의를 충분히 반영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만일 요세푸스가 갈릴리인 을 반란그룹으로 여기고 있다 하더라도, 어떠한 지역적인 유래를 배제한 채 단순히 로마에 대항하는 반란그룹으로 형성된 것이라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아르멘티가 요세푸스의 자료를 근거로 갈릴리인에 대하 여 일반적 지역 인구라는 제안에 좀 더 무게를 두고자 한다.

한편 갈릴리인에 대하여 지역적 상황이 반영되었다고 보더라도 요세 푸스 『자서전』에서 보이는 무장한 갈릴리인들에 대한 언급이나 그들의 과격한 행동26)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23)  Armenti, “On the Use of the Term “Galileans” in the Writings of Josephus Flavius: A Brief  Note,” 45-49.      24)  Ibid., 46-48. 아르멘티는 요세푸스 『자서전』 12.62에서 카펠라에서 헤롯의 우상을 장식한 장소 에 대한 파괴가 정부에 위임된 요세푸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명령이 실행되기 이전 요 세푸스는 갈릴리 고유 인구와 세포리스의 아들 예수에 의해 인도된 일시적 군중을 구별하고 있 다. 그 밖에 『자서전』 14.77-79에서 요세푸스가 인질로 삼은 70명 갈릴리인들에 대해 강도들 (lestai)로 정의하고 있지 않으며, 『자서전』 후반부 41.205-207에서 자신의 거처로 갈릴리를 언급 하는 가운데, 강도들(lestai)을 두려워하고 있는 갈릴리인들을 언급하며 이 둘을 구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자서전』 에서는 갈릴리인들에 대하여 요세푸스가 젤롯이나 시카리와 같이  반란 정당으로 보이는 증거가 없다고 한다.

     25)  Ibid., 48-49.

     26)  요세푸스, 『자서전』, 19.99; 21.102; 21.103; 35.177 등의 기록이 있다. 

 

이에 대하여 션 프레인(Seán Freyne)은 갈릴리인들에 대하여 반란자들이 아닌 오히려 평화를 위하는 요세푸스의 군사적 지지자로 여기는 견해가 있음을 제시하며 실제적인 갈릴리 상황에 대한 그들의 사회적 종교적 상황들의 분석을 통한 전이해 가 필요하다고 한다.27)

이 시점에서 요세푸스의 또 다른 문헌인 『유대전 쟁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유대전쟁사』에는 갈릴리인들이 헤롯에게 합 세하였다는 기록이 있다.28)

이러한 갈릴리인에 대한 묘사는 『자서전』에 서 보이는 모습과 사뭇 다르게 보인다.

갈릴리인이 반 로마적 반란그룹 이라면 헤롯에게 합세하였다는 상황은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갈릴리인을 유대인과의 연관된 그룹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느 정 도 이해가 가능하다.

나단 티엘(Nathan Thiel)은 요세푸스의 갈릴리인에 대하여 유대에 거주하는 일종의 유대인과 연관이 있는 민족집단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29)

이러한 관점이라면 유대를 다스리는 헤롯과의 합세 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갈릴리인과 유대인이 동일한 민족 집단은 아니다.

티엘 역시도 갈릴리의 유대인과 갈릴리인은 다르며 그들 만의 구별되는 고유한 민족적 특성 집단으로 보고 있다.30)

갈릴리인을 독립적인 민족집단으로 여긴다는 티엘의 연구는 갈릴리인 연구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다만 역사적 정체성의 관점으로 볼 때는 반드시 분 리된 민족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연구들에도 불구하고 갈릴리인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 인 내용들을 간과할 수 없다.31)

 

     27)  션 프레인(Seán Freyne)의 학자들의 견해를 모두 분석함으로 요세푸스의 갈릴리인에 대한 통합 적인 이해와 합의점을 이끌고자 하였다. 그는 특별히 요세푸스 『자서전』에 대하여 자세한 연구나  용어를 올바르게 구별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며, 갈릴리인에 대하여 반란자들로 연결하려는 연구 의 경향에 일침을 가한다. Seán Freyne, “The Galileans in the Light of Josephus’ Vita,” New Tes tament Studies 26/3 (1980/04), 397-413.

    28)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Ⅰ 3.292 (서울:도서출판 달산, 1991), 149.

    29)  Nathan Thiel, “The Use of the Term ‘Galileans’ in the Writings of Flavius Josephus Revisited,”  T he Jewish Quarterly Review 110/2 (2020), 225-228. 30)  Ibid., 244.

    31)  갈릴리인 유다가 백성을 선동해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나 여러 도시를 떠나 요세푸스에게 온 수 만 명의 무장한 사람들인 갈릴리인들에 대한 기록 등이 이를 뒷받침 한다.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Ⅰ 2.118, 622. 

 

또한 요세푸스의 동일한 작품 내에도 갈릴리인에 대한 대립적인 묘사들도 여전하다.

요세푸스의 갈릴리인에 대 한 이해는 어느 기록의 단편적인 상황만으로 정의하기에는 한계가 있음 을 의미한다.

이것은 요세푸스 문헌 연구에서 작품의 내용들에 대한 무 비판적 수용을 경계하고 저자의 숨은 의도를 파악할 필요를 제시한다.32) 지리적 함의에 무게를 두는 프레인 역시 갈릴리인에 대하여 주요 도시 거주민들과 구별되는 지역 사람들인 그들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있으나 반란자들이 아님을 설명하지만 예루살렘과 그 권위에 대한 갈릴리인들의 태도는 연구가 더 필요함을 피력한다.33)

이러한 견해와 제안은 갈릴리인 들에 대하여 섣부른 정의를 내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갈릴리인에 대하여 어느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종족이라고 정의 할 수 없으며, 그들 이 처한 지역적 상황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문화와 정치적 입장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한 집단에 대한 정체성을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34)

 

    32)  천사무엘, “요세푸스의 역사이해,” 「신학사상」 121(2003/여름), 236-237. 천세종은 요세푸스의 기 록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에 대한 경계의 이유와 관련해 요세푸스 역시 유대인과 그들 종교에 대 한 변증의 의도를 가지고 저술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임을 설명한다.

    33)  Freyne, “The Galileans in the Light of Josephus’ Vita,” 411-412.

    34)  임성욱은 요세푸스의 갈릴리인 이해를 인종-종족의 방법론을 통해 새롭게 관찰하여 예수의 갈릴 리인 정체성을 규명하는 연구를 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연구는 다음을 참고하라. 임성욱, “요세푸 스의 갈릴리인 이해를 바탕으로 예수의 갈릴리인 정체성 다시 읽기,” 「신학사상」 196 (2022/봄),  9-38.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지금까지 살펴본 요세푸스 문헌 연구를 토대로 갈릴리인의 특성을 정리하고자 한다.

그들은 과격한 반란집단이 아니다.

다만 그들은 로마나 역사적 시대의 억압으로 인해 생겨난 그들 의 저항적 모습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정치적 전복을 위한 저 항 의식이 아닌 세금 포탈과 주변 국가들의 약탈로 피해당한 경제적인 하층민의 피폐함이 그들의 불만과 저항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라 여겨진 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의 모습은 다음 신약시대의 갈릴리의 역사적 배경을 통해 좀 더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한 갈릴리인에 대한 이해 를 추구하면서 신약성서, 특별히 사도행전의 갈릴리인 묘사와 그 의도를 파악해 볼 것이다.

이러한 연구와 관련하여 요세푸스 문헌에 대한 수사적 문학적 장치가 있다는 연구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35)

요세푸스의 갈릴리인에 불분명한 태도를 일종의 문학적 장치로 보고 해석적 이해를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도행전 저자 역시 자신의 복음 전파의 지리적 확장을 위해 갈릴리인을 요세푸스 작품의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문학적인 가능성으로 확인하게 하 는 것이다.

 

Ⅲ. 신약성서의 갈릴리인 이해

 

1. 신약시대의 갈릴리

 

성서에 기록된 인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 의 사회·정치적 정황과 경제적 상황의 다양한 측면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호슬리는 신약시대 갈릴리와 그 지역 주민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고고학적 자료들과 함께 지리적, 사회적, 역사 연구를 통해 갈릴리가 지 니는 독특한 면모들을 연구할 것을 제시한다.36)

 

    35)  Sung Uk Lim, “Josephus’s Rhetorical Construction of the Galileans as Proximate Others,” Jour 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2025/Jul), 1-29. 임성욱은 요세푸스 갈릴리인에 대해 단 순한 역사적 기술이 아닌 정치적, 수사적 목적에 맞게 사용된 서사로 보고 있다. 갈릴리인은 고 정된 민족집단이 아닌 로마 제국의 맥락 속에서 생존 전략을 위한 요세푸스 문학의 수사적 장치 로 보고 있으며, 유대인과 유사한 면이 있으나 갈등의 상황에서는 분리되는 경계를 지니는 근접  타자로 여긴다고 한다.

    36)  리차드 A. 호슬리/박경미 옮김, 『갈릴리』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6), 9. 

 

특별히 로마 시대 갈릴 리가 촌락과 도시의 형태 가운데 경제적 상황이 맞물려 있음을 설명한 다.

그는 갈릴리가 군대의 식량 공급을 위한 곡식 저장소의 기능이 있었 으며 이를 운반하기 위한 도로 건설의 필요성까지도 있었다고 한다.37)

이는 갈릴리의 지역적 특성이 단순하게 설명될 수 없으며 도시와 경제, 군사와 교통 등 다양한 측면들과 얽혀있음을 의미한다.

성서의 갈릴리가 시골의 소외된 지역으로 보이지만 갈릴리가 단순한 성서적 배경이 아닌 사회의 다층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38)

이것은 또한 신약성서의 갈릴리인 파악 을 위해 시골을 배경으로 예수 운동을 넘어서는 사회현실의 맥락적 이해 가 수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에 호슬리는 갈릴리 사람들이 촌락의 구성원이지만 농업 사회의 생산과 소비의 사회적 주체이며 세포리스나 티베리아스 건설로 인해 갈릴리 촌락들 역시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었음 을 설명한다.39)

갈릴리는 하나의 시골 촌락으로 보는 것이 아닌 세포리 스와 티베리아스와 함께 로마 군대 유지를 위한 지역 경제의 원활한 공 급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된 경제적 사회에는 다양한 계 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에 조태연은 갈릴리에 대하여 당시 팔레스타 인 사회에서의 계층구조를 분석하는 가운데 중산층이나 하류층의 노동과 생산을 착취하여 상류층으로 전달하는 사회제도가 있었음을 언급한 다.40)

임성욱 역시도 갈릴리의 경제적 모습에는 빈부가 공존하는 측면이 있으며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경제적 문제로 인한 갈등과 부의 착취 의 사회구조가 있었음을 언급한다.41)

 

     37)  Ibid., 139-142. 호슬리는 갈릴리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요세푸스 『자서전』 13.71-72을 언급한 다.

    38)  Jacob Ashkenazi, “Kerygmatic Landscapes of the Galilee and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Jesus,”  Early Christianity 10, no. 3(2019): 339-340.

     39)  호슬리, 『갈릴리』, 144-145.

    40)  조태연,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워-갈릴리 경제의 사회계층론적 빛에서 본 예 수운동의 윤리적.해석학적 함의,” 「신학사상」 103(1998/겨울): 129-131.

    41)  임성욱, “성서와 경제: 갈릴리, 양극화, 그리고 예수의 경제 신학,” 「종교와 문화」 47 (2024/12), 235. 

 

이는 갈릴리 거주민들이 단순한 하층민이 아닌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 한 계층 간 이루어지는 착취의 사회적 구조는 갈릴리 구성원들 간의 갈 등을 야기하고 적대적 감정을 형성하게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시 와 농촌이 얽혀있는 역사적 변화의 시대에서는 일종의 생산과 관련된 계 층의 갈등과 분열이 발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42) 그러나 갈등과 분열 로 발생한 적대적인 감정이 무조건적 반란을 일으키는 태도라 할 수는 없다.

이에 호슬리는 갈릴리 사람들의 적대적 반응이 1세기 티베리아스와 세포리스의 정치, 문화, 경제적 영향에 대한 그들 자신의 문화 수호를 위 한 것이라 설명한다.43)

갈릴리 사람들의 저항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는 구 약시대로부터 오랜 세월 지속적인 반복으로 이어진 그들 땅에 대한 침략 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생계와 삶을 위협받는 자들이 그들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모습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호슬리는 갈릴리인들이 지니는 저항적 태도에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헤 롯 죽음 이후 세포리스에서 분출되어 66~67년 반란으로 고조된 갈릴리 인의 저항과 유대 봉기에의 그들의 입장은 친로마적 경향의 세포리스에 대한 것이 아닌 갈릴리 사람들의 오랜 기간 쌓여온 분노의 일부로 여긴 다는 것이다.44)

 

    42)  James G. Crossley, “Class Conflict in Galilee and the Gospel Tradition: A Materialist Sugges tion,” Annali di Storia dell’Esegesi 36/1 (2019), 43-44.

   43)  호슬리, 『갈릴리』, 188-189.

   44)  Ibid., 192-193.

 

즉, 갈릴리 사람들의 적대적 성향에 대한 이해는 오랜 외 세의 침략에 의한 약탈과 세금 추징에 의한 전 촌락민들의 피폐해진 경 제적, 사회적 상황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를 요구한다.

갈릴리인들의 로마에 대한 적대감은 오랜 시대의 역사적 시간을 지 나면서 소외되고 외면당했던 자신들의 서러움의 표출과 동시에 1세기 착 취의 사회적 구조로 인한 박탈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들의 적 대적인 성향을 요세푸스 문헌의 연구를 토대로 한 단순한 반란그룹으로  보는 일부 학자들의 견해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사회와 역사, 그 리고 정치와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다양한 관점에서의 고찰이 요구되 는 바이다.

그러므로 신약성서 갈릴리인을 대하는 태도는 그들의 사회· 경제적 정황을 인지하고 억압과 착취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갈릴리 인의 현실을 고려한 해석에 대한 안목이 필요하다.

이러한 갈릴리인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각 성서 기자들은 그들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2. 신약성서의 갈릴리와 갈릴리인

 

신약성서에는 구약성서와 달리 갈릴리 지역에 대한 다수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45)

각 복음서와 누가-행전의 갈릴리에 대한 기록의 횟수 가 유사한 가운데 갈릴리인(Γαλιλαῖος)에 대한 기록은 누가-행전이 가장 많은 기록을 보유한다.46)

 

    45)  갈릴리 지명에 대한 기록은 마태복음 2:22; 3:13; 4:12, 15, 18, 23, 25; 15:29; 17:22; 19:1; 21:11;  26:32; 27:55; 28:10, 16절 16회, 마가복음 1:9, 14, 16, 28, 39; 3:7; 6:21; 7:31; 9:30; 14:28; 15:41;  16:7절 12회가 있다. 누가-행전의 기록은 누가복음 1:26; 2:4, 39; 3:1; 4:14, 31; 5:17; 8:26; 17:11;  23:5, 49, 55; 24:6 13회, 사도행전 9:31; 10:37; 13:31 3회로 모두 16회이며, 요한복음은 1:43; 2:1,  11; 4:3, 43, 45, 46, 47, 54; 6:1; 7:1, 9, 41, 52(*2); 12:21; 21:2절 17회로 신약성서에는 모두 61회 가 있다.

   46)  갈릴리인에 대한 기록은 마태복음 26:69. 1회, 마가복음 14:70. 1회, 누가복음 13:1, 2(*2); 22:59;  23:6. 5회, 요한복음 4:45. 1회, 사도행전 1:11; 2:7; 5:37. 3회로 모두 11회의 기록이 있다. 그 중  누가-행전의 기록이 8회이다. 

 

이러한 기록은 구약성서와는 달리 신약성서에 서 차지하는 갈릴리의 중요한 입장을 드러낸다.

그러한 배경에는 신약성 서 본문이 전하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시작된 예수 운동과 갈릴리 지역에 서 전하던 예수의 복음 사역에 대한 기록과 무관하지 않다.

신약성서에 서 예수를 따르던 베드로를 갈릴리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이나(막 14:70), 갈릴리에 간 예수를 갈릴리인들이 영접하였다는 기록(요 4:45)은 갈릴리 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그러나 각 복음서가 제시하는  갈릴리에 대한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이에 이러한 서로 다른 갈릴리에 대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션 프레인(Seán Freyne)은 갈릴리인 예수 를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하며 갈릴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47)

그는 먼저 로마 시대 갈릴리인들에 대하여 그들이 유대인들과의 긴장과 적대 적 관계가 예상되는 가운데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48)

 

    47)  Seán Freyne, “A Galilean Messiah?,” Studia theologica 55/2 (2001), 198-218; “The Galilean Jesus  and a Contemporary Christology,” Theological Studies 70/2 (2009/06), 281-297; Jesus, a Jewish Galilean: A New Reading of the Jesus-Story (London: T & T Clark, 2004).

    48)  Freyne, “A Galilean Messiah?,” 200. 

 

이것은 갈릴리에서 예수의 모습을 살펴보면 각각의 복음서에서 보여주는 갈릴리 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확인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각 복음서에 기록된 부분의 비교는 다음과 같다.

먼저 마가복음을 기 준으로 갈릴리 지명과 관련된 기록에서 마가복음은 그 시작부터 “예수께 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라고 기록하면서 예수의 출신 지역을 명확히 밝힌다.

반면 마태복음은 마가를 따르나 이 부분에서 “나사렛”을 삭제한 “갈릴리로부터”라고 언급하며 예수 출신지의 범위를 좀 더 확대 한다. 마가복음은 계속해서 예수가 다시 갈릴리에 와서 복음을 전파하고 (막 1:14), 그의 제자들을 갈릴리 해변에서 불렀음을 기록한다(막 1:16).

그 리고 갈릴리 지역에서 귀신 들린 사람과 병자를 고침으로 갈릴리 사방에 예수의 기적 행함의 소문이 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1:28, 39).

이에 예수 가 행한 치유와 기적, 그리고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갈릴리에서 그를 따 르는 큰 무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3:7).

마가복음의 후반부에서 예수는 자기의 죽음과 다시 살아날 것을 예고하면서 갈릴리에 예수가 먼저 가 있을 것을 예언한다(14:28). 마가복음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에서 그 의 마지막을 지켜보던 자들 가운데 세 명의 여인들을 언급하며 이들이 예수와 함께 갈릴리에서부터 왔고 그를 따르고 섬기던 자들이었음을 밝 힌다(15:41).

그리고 예수의 다시 살아나신 이후 여인들에게 보인 흰옷 입 은 자는 예수가 죽음 이전 예언한 대로 갈릴리에 가셨음을 알려준다 (16:7).

마가복음에서 갈릴리가 기록된 본문들은 대부분 예수와 관련되어 언급되어 있으며 갈릴리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가복 음에서 갈릴리에 대한 긍정적 묘사는 예루살렘과의 대립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부분이기도 하다.

프레인은 마가복음에서 보이는 갈릴리와 예루 살렘의 역할이 대립적임을 언급하는데, 갈릴리 지역에서 예수가 보이는 치유 사역과 자연 기적 등은 ‘위대한 이스라엘’의 회복을 희망하는 것으 로 갈릴리는 예수 정체성의 인식에 긍정적인 제시를 보여주고 있음을 설 명한다.49)

한편 마태복음은 갈릴리에 대한 모습을 마가의 기록에 따라 기록한 치유와 기적과 관련하여서는 긍정적인 서술을 보이기도 하지만(마 4:23; 15:29)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마가복음과는 다른 관점으로 예수와 갈릴리 의 관계를 묘사한다. 마태복음에서 갈릴리가 처음 기록된 곳은 2장 22절 이다.

이 구절에서 마태복음 저자는 마가복음이 예수를 “갈릴리 나사렛” 출신으로 밝힌 것과는 달리 예수의 갈릴리 출신에 대하여 그 이유와 배 경을 먼저 설명한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출생지를 유대 베들레헴으로 밝 히고 있다(마 2:1-12).

그리고 갈릴리는 단지 예수를 해치려고 한 헤롯으 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장소로 제시한다(2:22).50)

또한 요한이 잡혔을 때, 예수의 피난 장소로 갈릴리를 언급하는 모습(4:12)51) 역시 갈릴리를 일종 의 도피처로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프레인은 마태복음은 예 수의 메시아적 신분을 종종 드러내면서 예수와 갈릴리인의 연관을 헤롯 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한 방편으로 본다고 한다.52)

 

     49)  Ibid., 206.

    50)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 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마 2:22).

    51)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마 4:12).

    52)  Freyne, “A Galilean Messiah?,” 206.

 

마가복음이 갈릴리를 예루살렘과 대립적인 위치에서 그 중요성을 부각하는 것과는 달리 마태 복음은 갈릴리에 대하여 단지 도피의 장소로 인식하며 그 중요성을 절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갈릴리인(Γαλιλαῖος)에 대한 이 두 복음서의 입장은 어떠할 까? 갈릴리에 대한 지명의 잦은 언급을 통해 두 복음서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각각 1회씩만 갈릴리인 (Γαλιλαῖος)을 기록한다.

두 복음서는 예수의 잡히시는 사건과 관련하여 베 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장면으로 같은 사건의 기록을 보여준다. 그러나 갈릴리인에 대한 두 복음서의 입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베드로를 향해 예수와 함께 한 자였음을 밝히는 언급에서 마가복음은 베드로를 향 하여 ‘갈릴리 사람’이고 예수와 같은 당임을 지적한다(막 14:70).

반면 마 태복음은 베드로를 향하여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만 말한다 (마 26:69).

마가복음은 직접적으로 베드로를 갈릴리 사람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마태복음은 오히려 예수를 갈릴리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각각의 화자를 살펴보자. 마가복음은 공회에서 심문을 위해 잡혀 간 예수를 보려고 모인 무리들 가운데서 베드로를 향해 갈릴리 사람이고 예수와 같은 당이라고 말한다.

심문받는 장면과 관련해 마가복음의 화자 는 갈릴리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 다. 심문받으려는 예수와 같은 당인 베드로가 갈릴리 사람임을 지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마가복음은 전반적으로 갈릴리와 관련하여 예 수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베 드로를 향해 갈릴리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태도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보 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마태복음과 비교하여 보자. 마태복음은 공 회의 심문에 넘겨진 예수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갈릴리 사람이라고 하며 갈릴리인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드러낸다(마 26:69).

반면 마가복음은 직접적으로 예수를 갈릴리 사람이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가복음의 화 자는 부정적으로 보인 갈릴리에 대한 이미지를 베드로를 향해 직접적으 로 지목함으로써 예수에게 갈릴리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 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갈릴리인에 대한 고찰이다.53)

요한복음에 서 갈릴리에 관한 입장은 마가복음과 같이 긍정적인 서술을 확인할 수 있다.

요한복음은 신약성서에서 갈릴리와 관련하여 가장 많은 언급이 있 다.54)

요한복음에서 처음 갈릴리를 기록하고 있는 본문은 1장 43절로 예 수가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빌립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예수의 첫 표적을 행한 장소가 바로 갈릴리 가나로 기록된다(요 2:1, 11).

이어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두 번째 표적 역시도 갈릴리에서 이루 어졌다고 기록된다(4:46, 47, 54).55)

 

    53)  누가복음의 갈릴리에 관한 입장은 다음 장에서 사도행전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54)  사복음서 중 마태복음 16회, 요한복음 17회로 큰 차이는 없으나 문서의 길이를 고려해 볼 때, 요 한복음에서 갈릴리를 자주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5)  “이것이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요 4:54). 

 

예수의 갈릴리에서의 치유의 모습을 볼 때, 갈릴리에 대한 묘사는 마가복음과 같이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지 는 곳임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요한복음에서는 갈릴리에 대하여 예수가 머무르는 일종의 피난처의 이미지(7:1, 9)나 선지자가 나지 못하는 장소에 대한 언급(7:41, 52)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피난처의 경우 마태복음과 같이 의도적인 도피처가 아 닌 예수가 사역 중에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안전한 장소로 갈릴리를 취하고 있다.

선지자의 출신지에 대한 언급 역시 갈릴리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외부 사람들의 시선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 요한복음 에는 갈릴리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관점이 혼재하나 전반적으로는 갈릴 리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요한복음은 갈릴리인에 대한 1회의 기록을 예수와 직접적으로 연관시키지는 않는다.

요한복음 4장 45절에 기록된 갈릴리인(Γαλιλαῖος)은 이전 44절에서 자신이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의 염려와 는 달리 갈릴리인들이 예수를 환영하고 영접하는 긍정적인 반응으로 묘 사한다.

물론 예수를 따르는 그들의 목적이 예수를 자신들의 필요를 위 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게 되지만(요 6.15), 예수를 환영하고 따르고자 하는  갈릴리인에 대한 인상을 긍정적인 묘사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과 관련하여 프레인은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메시아적 신분과 갈릴리 인과의 결합들은 더 숭고한 신학적 개념을 선호하고 있으며 영광스러운 인자의 모습으로 우회하고 있음을 설명한다.56)

 

     56)  Freyne, “A Galilean Messiah?,” 207. 

 

이로써 각 복음서가 나타내고 있는 갈릴리와 갈릴리인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연구에 따르면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갈릴리와 갈릴리인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반 면 마태복음은 헤롯과 관련하여 갈릴리와 예수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드 러내고 있으며 갈릴리인에 대한 시선 역시도 부정적이다. 이로써 갈릴리 와 갈릴리인에 대한 복음서 입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각 복음서 내부에서의 갈릴리와 갈릴리인에 대한 이미지는 일관성 을 가지고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갈릴리와 갈릴리인에 대하여 어 떠한 관점으로 기록하고 있는지 고찰해 보자.

 

Ⅳ. 누가-행전의 갈릴리인 이해

 

누가복음에서 갈릴리에 대한 13회의 기록은 다른 복음서에 비하면 많지 않다.

그러나 누가복음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는 사도행전 3회의 갈릴리 기록을 추가한다면 누가-행전 전체의 갈릴리 기록의 관점을 더 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누가-행전에 기록된 갈릴리인 (Γαλιλαῖος)에 대한 다수의 기록은 누가-행전의 갈릴리인에 대한 저자의 명확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의 편의상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각각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고찰을 통한 누가-행전 저자의 전체적 인 입장을 토대로 이 논문의 중점적 관심인 사도행전 저자의 갈릴리인 묘사에 좀 더 주목하고자 한다.

 

1. 누가복음의 갈릴리와 갈릴리인

 

누가복음에서 가장 먼저 갈릴리가 기록된 곳은 마리아에게 알려지는 예수 탄생 고지의 장면이다(눅 1:26).

천사 가브리엘은 예수의 나심을 예 고하기 위해 요셉과 그의 약혼자 마리아가 거주하고 있는 갈릴리 나사렛 이란 곳으로 간다(1:26; 2:4).

이는 마태복음에서 헤롯으로부터 예수를 도 피시키기 위한 장소로 갈릴리 나사렛을 언급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 다(마 2:22-23).

마태복음은 예수의 부모 모두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계속 거주하고 있었으며 예수 역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음을 기록한다.

반면 누가복음은 이미 갈릴리를 요셉과 마리아가 거주하고 있었던 지역으로 언급한다.

이를 통해 예수와 그의 부모가 갈릴리와 관련되어 있음을 자 연스럽게 기술하고 있다.

다만 누가복음도 예수의 출생지역을 마태복음 과 같이 베들레헴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이는 호적 조사를 위해 예수의 부모가 갈릴리를 떠나 베들레헴으로 온 것임을 설명한다(눅 2:1-5).

예수 의 출생 이후 그들은 다시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갈릴리로 돌아갔으 며 예수 역시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났음을 기록한다(2:39-40).

예수가 성장한 장소인 갈릴리에 대한 갈릴리에 대한 이미지가 마태복음과는 다 르다는 것을 시사한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도피 장소로 갈릴리를 기록하 고 있으므로 갈릴리에 대한 약자적 이미지를 피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 나 누가복음은 자연스럽게 갈릴리를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성장한 장소로 소개한다.

이는 누가복음이 갈릴리에 대하여 어떠한 도피나 억압 과 같은 약자적인 장소의 이미지를 부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누가복음이 예수의 탄생과 성장에서 보여주는 갈릴리의 모습은 그의 사역의 시작이나 공생애 기간에서 보여주는 갈릴리에 대한 모습과 같은 맥락을 유지한다.

예수는 사역의 시작에서 광야의 모든 시험을 이기고 성령의 능력 가운데 갈릴리로 돌아간다(눅 4:14).

이때 갈릴리에는 예수 에 관한 소문이 퍼지고 회당에서 가르치는 그는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 (4:14-15).

이후 갈릴리는 예수가 병을 고치는 능력이 나타나거나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로 소개된다(4:31; 5:17; 8:26; 17:11).

예수가 자라났던 갈릴 리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곳이자, 그의 기적적인 능 력이 나타나는 장소이며 사람들로 인해 영광을 받는 자리였다.

이는 누 가 저자의 갈릴리에 대한 긍정적인 서술이 지속적으로 반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후 누가 저자는 예수의 죽음의 장면에서 그를 끝까지 지켜 보던 자들 가운데 갈릴리에서부터 온 여인들이 있었음을 설명한다(눅 23:49).

한편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에 대한 언급은 마태복음(27:55-56)과 마가복음(15:40-41)의 병행 본문에도 있으므로 그의 죽음을 지켜보는 자 들에 대한 갈릴리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서술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이 예수의 죽음을 지켜보는 장면에서만 갈릴리를 기록한다.

이후 예수의 시체를 무덤에 두 는 장면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이름은 기록하지만 그들의 출신지에 대해 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마 27:61; 막 15:47).

한편 누가 저자는 예수의 죽음 이후 그의 무덤과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 확인하는 장면에서 마지 막까지 예수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하여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을 강조하고 있다(눅 23:55).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예수의 시 체가 놓인 무덤까지 따라간 여인을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로 한정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누가복음은 갈릴리에서 온 여자들을 언급하 며 갈릴리 지역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 23장 5절에서 갈릴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 이는 기록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해당 장면은 예수가 잡힌 이후의 빌라 도 재판 과정으로 갈릴리에 대하여 백성을 동요시키는 정치적인 반역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에게 끌려 온 예수에 대하여 빌라도가 무죄를 선고하자(눅 23:4) 사람들은 예수에 대하여 더 강력하게 고 발한다.

이때 그들은 예수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갈릴리에서부터 시작 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23:5b)

라고 말한다.

백성 을 소동하게 한 예수의 근원지가 갈릴리임을 밝히며 갈릴리에 대한 부정 적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저자의 입장이 아니라 화 자의 서술로 보아야 한다.

예수에 대하여 설명하는 과정에서 화자는 갈 릴리에서 일어난 예수 운동을 단지 하나의 소동으로 보고자 한 것에 불 과하다.

이것은 당시 갈릴리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정황과 관련 하여 저자가 화자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 기능이며 저자의 입장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저자는 빌라도의 재판 과정에서 갈릴리에 대해 자 칫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기록까지도 화자의 서술로 처리하면서 갈릴 리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외부로 돌리고 있다.

다음은 누가복음에 기록된 마지막 갈릴리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다.

예수가 부활한 날 새벽 여인들은 예수를 보려고 무덤에 갔으나 비어있는 무덤을 보고 근심한다.

이때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는 예수가 갈릴리에 계실 때 그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기억하도록 요구한다(눅 24:1-6).

이 장면은 예수의 부활에 대해 보고하는 다른 복음 서들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예수의 부활 장면을 보도하는 다른 복음 서들은 예수의 시체를 찾는 여인들에게 그가 말씀대로 살아나셨다고 전 하거나(마 28:6), 예수가 갈릴리에 있으며 말씀하신 대로 거기에서 만날 것을 말한다(막 16:7).

그리고 울고 있는 여인에게 부활한 예수가 직접 나 타나기도 한다(요 20:16).

반면 누가복음은 빛나는 옷 입은 두 사람을 통 해 예수가 자기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갈릴리에서부터 말씀하셨 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며 이것을 기억할 것을 요구한다(눅 24:6, 7).

이 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장면까지도 갈릴리에서부터 계획되었다는 사실 과 예수 사역과 관련된 갈릴리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예수의 부활 현현의 장소를 갈릴리 로 기록하는 반면 누가복음이 예루살렘을 예수 부활의 현현 장소로 기록 하는 것은 또 다른 의도가 있다.

이는 저자의 갈릴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 식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갈릴리에 대한 저자의 신학적이고 지리적 관점 을 반영한 것이다.57)

누가복음은 예수의 부활 현현의 장소인 예루살렘에 서 시작되는 복음의 전파를 사도행전에서 이어서 보여주기를 원했기 때 문이다. 누가복음에서 드러나는 갈릴리 지역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인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 지역 사람들인 갈릴리인에게로 확장된다.

누가복음에는 갈릴리인(Γαλιλαῖος)에 대하여 모두 5회의 기록이 있다.58)

그러나 다른 복 음서에 비해 여러 번 기록되는 갈릴리인에 대하여 단순히 문자적인 접근 은 갈릴리인에 대한 이미지의 부정적인 요소를 간과하기 어렵게 한다.

누가복음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갈릴리인(13:1)은 빌라도가 갈릴리 사 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었다는 기록이다.

이러한 기록은 이어지는 누가복 음 13장 2, 3절의 죄 있는 자들과 연결되면서 갈릴리인에 대하여 일종의 재앙과 관련시키고 이들을 멸망 받기 충분한 사람들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누가복음 이외 다른 공관복음의 내용들과 병행되지 않 으며 고대 자료들에서도 확인되지 않는 구절이다.59)

 

    57)  누가복음의 갈릴리에서 시작된 예수의 사역은 예수의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으로 이어진다. 이는  예루살렘 중심성을 보여주며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을 이루는 도시로 예루살렘 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예루살렘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다시 이 예루 살렘을 시작으로 복음이 땅 끝까지 퍼져나가는 지리적 구도가 사도행전에서 이어지고 있다.

   58)  누가복음 13:1, 2(*2); 22:59; 23:6.

   59)  존 놀랜드/김경진 옮김, 『WBC 누가복음 중』 (서울: 솔로몬, 2004), 505-506.

 

이는 해석이 난해하 며 갈릴리인에 대하여 반드시 부정적 태도로 해석할 필요는 없음을 의미 한다.

또한 2절에서 빌라도가 취한 갈릴리 사람들에 대한 행동에 오히려 저자는 이들이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라는 예수의 대답으로 이들에게 닥친 해가 죄 때문만은 아니라는 변증의 태도 를 보인다.

이에 존 놀랜드(John Nolland)는 여기에 언급된 갈릴리 사람 들에 대하여 국가에 적대적 활동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요세푸 스가 지칭한 “갈릴리 사람”을 혁명 집단의 용어로 사용한 것을 지지하고  있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60)

그러므로 이 구절이 명시하는 누가의 갈릴리인에 대한 인상은 다소 중립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중 립적인 모습은 한편 갈릴리인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으로도 해석할 수 있 는 여지를 제공한다.61)

다음에 언급되는 갈릴리인은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장면이다.

이 부분은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 이미 논의한 바 있는데, 누가복음은 베드로를 직접적으로 ‘갈릴리 사람’으로 지적하는 마가복음을 따르고 있 다.

이것은 예수가 갈릴리 출신임에도 공회의 심문을 직면하고 있는 정 치적 상황에서 예수를 직접적으로 갈릴리인으로 밝히지 않으려는 저자의 의도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빌라도 재판에서의 갈릴리 사람은 어떠한가?

빌라도는 무리들의 고발에서 예수가 갈릴리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예수 에 대하여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라고 직접적으로 묻는다. 그리고 누 가복음 23장 7절에서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예수를 헤롯에게 로 보낸다.

누가복음의 본문에서 베드로가 누가복음 22장 59절에서 베 드로가 갈릴리 사람으로 지목된 것에 이어, 예수는 유대에서 태어난 것 과 달리 갈릴리에서 성장한 그의 배경으로 인해 그를 갈릴리 사람으로 여길 수 있었다.62)

 

    60)  Ibid., 507.

    61)  누가복음 13장 1-3절에 언급된 갈릴리인들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이우경은 요세푸스의 갈릴리인 들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을 토대로 지리적인 갈릴리인들과 정치적인 갈릴리인들의 모습으로 구 분한다. 이 구절에서 빌라도에게 죽임을 당한 자들은 정치적인 갈릴리인들이며, 빌라도가 단순 히 갈릴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죽이지는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눅 23:6). 한편 갈릴리 인들이 이러한 변을 당한 이유에 대한 예수의 대답과 관련하여서는 정치적 갈릴리인들이나 지리 적 갈릴리인들 모두를 죄인으로 규명하고 있으며 두 갈릴리 집단의 통합과 회개를 촉구하는 것 이라 한다. 이우경, “정치적 갈릴리인 그리고 지리적 갈릴리인,” 「신약논단」 25 (2018/여름), 340 51.

   62)  존 놀랜드/김경진 옮김, 『WBC 누가복음 하』 (서울:솔로몬, 2005), 460. 

 

그러나 누가 저자는 예수를 애써 갈릴리 사람으로 단 정적으로 말하려는 서술을 피한다.

그래서 빌라도의 질문인 “그가 갈릴 리 사람이냐?”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회피한다.

다만 그가 헤롯이 통 제하는 지역에 속한 자임을 에둘러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누가 저자가 예수를 갈릴리 사람으로 직접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에 놀랜드가 예수를 분명히 갈릴리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은 누가 저자의 의도를 정확히 반영한 해석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누가복음에서 보여지는 갈릴리와 갈릴 리인의 묘사는 대부분 긍정적이지만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미지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저자는 애써 갈릴리에 대 한 부정적인 모습을 감추려고 한다.

그것은 누가복음에 이어 저자의 또 다른 작품인 사도행전과의 연계성 때문이다.

이제 사도행전에서는 갈릴 리와 갈릴리인들에 대해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2. 사도행전의 갈릴리와 갈릴리인

 

복음서를 통해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갈릴리와 갈릴리인의 묘사는 각 복음서 저자의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분명한 것은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갈릴리인에 대하여 긍정적인 태도를 지니지만 마태 복음은 갈릴리와 갈릴리인들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서술한다는 사실이 다.

반면 누가복음은 그 입장 규명에 있어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갈릴리 와 갈릴리인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의 입장을 지니지만 한편 그 입장이 중립적이거나 모호한 면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릴리인에 대한 부 정적 이미지를 애써 감추던 누가 저자의 태도는 사도행전에서 더 분명한 측면으로 전환된다.

사도행전 저자의 갈릴리와 갈릴리인에 대한 묘사에 저자의 의도가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누가복음에서 갈릴리인은 주로 예수의 제자들이자 그의 공생애 기간 기적과 가르침의 현장에 동행했던 자들로 묘사된다.

반면 사도행전은 갈 릴리인들에게 예수 사역의 동행자를 넘어 매우 중요한 역할이 부여된 자 들로 소개한다.

바로 초기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주요한 구성 원의 역할이다.

이러한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바울의 선교여 행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누가의 작품 속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자취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바울의 선교와 이방인 전도를 통 해 그들의 명성이 더 퍼져나가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행 10:37; 13:31).

이와 관련한 논의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도행전에서 갈릴리 와 갈릴리인은 모두 6회의 기록이 있다.63)

사도행전에 묘사된 갈릴리와 갈릴리인에 대한 이미지는 5장 37절의 기록을 제외하고는 모두 긍정적 인 묘사로 보인다.

처음에 기록된 사도행전 1장 11절에는 예수의 승천을 끝까지 지켜본 자들로 갈릴리 사람들을 언급한다.

이것은 곧 갈릴리 사 람들이 예수 부활의 증인들임을 시사한다.

데럴 보크(Darrell L Bock)는 여기에 언급된 갈릴리인들이 전체로서 군중을 나타내는 표현이지만 이들 을 단순히 사람들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갈릴리인들이라고 설명한 것은 사도들이 갈릴리 사람들로 명시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라 한다.64)

예수 부활과 승천의 모습을 지켜본 갈릴리인들이 초기 예루살렘 교회 공 동체를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그들 의 중요성에 대하여는 갈릴리 사람들에 대한 다음의 기록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사도행전 2장 7절은 성령을 체험하고 방언을 말하는 자들에 대 하여 “모두 갈릴리 사람”이라고 통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순절 성령 체험으로 방언을 말하는 자들을 보고 놀라고 신기해한다.

갈릴리인 들에 대한 감탄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ἅπαντες οὗτοί εἰσιν οἱ λαλοῦντες Γαλιλαῖοι;)”

라는 물음은 자칫 이러한 일 들이 일어난 것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갈릴리인에 대하여 부정적인 선입 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65)

 

    63)  갈릴리(Γαλιλαίας)에 대한 기록은 행 9:31; 10:37; 13:31 이며 갈릴리인(Γαλιλαῖος)에 대한 기록은  행 1:11; 2:7; 5:37 이다.

   64)  Darrell L Bock, Acts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7), 69.

   65)  벤 위더링턴(Ben Witherington Ⅲ)은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갈릴리인에 대하여 “문맹인”으로 여기 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Ben Witherington Ⅲ, The Acts of the Apostles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 1998), 136. 

   

다음에 이어지는 8절에서 갈릴리 사람들이 말하는 방언이 각 지역에서 나온 것임을 의아해하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크하르트 슈나벨(Eckhard J. Schnabel)은 이 질문이 갈릴리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그들에 대한 중립적인 표현인지의 불분명함을 지적 하며 질문하는 자들의 신분도 엘리트 계층이 아닌 점을 들어 갈릴리인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아니라고 한다.66)

이는 갈릴리인에 대한 무조건의 부정적 시각을 배제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입견의 배제를 위해 ‘모두’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갈릴리 사람 들’이라는 표현에는 오순절 성령 체험을 한 자들에 대하여 모두 갈릴리인 으로 여기기보다는 그들을 어떠한 대표적인 값으로 보려는 의도가 있다 는 것이다.67)

여기에서 모두를 일종의 “대표값”으로 보는 의도는 ‘교회 탄생’ 모임의 주도적인 역할을 예수 추종자들로 삼고자 하는 누가의 의도 가 반영된 것이다.68)

성령 체험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세워지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 것과 더불어 사도행전 사역 전체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모티프 중 하나이다.

이러한 중요한 경험을 한 자들을 갈릴리인들로 통 칭하여 대표하는 의미로 여기고자 했다는 것은 누가의 갈릴리인에 대한 매우 긍정적 태도임이 분명하다.

갈릴리인들은 예수 승천의 모습을 지켜 본 자들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뿐 아니라 사도행전의 가장 중요 한 사건인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리차드 퍼보 (Richard I. Pervo)는 2장 7절이 현실성의 부족에도 사건의 경이로움과 이 것을 본 자들의 반응을 강조하고 있음을 언급하며 “모든” 부류와 상황, 메시지의 보편성에 대하여 그들 방식으로 복음의 능력을 상징하고 있음 을 설명한다.69)

 

    66)  Eckhard J. Schnabel, Acts: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2), 117.

   67)  유상현, 『베드로와 초기 기독교』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6), 100-101.

   68)  Ibid., 100-101.

   69)  Richard I. Pervo, Act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9), 66.

 

이는 결코 2장 7절에서 묘사하는 갈릴리인들이 부정적인 의구심이 아닌 이들 능력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놀라움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성령 체험으로 일어난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기술될 사 도행전의 성령 사역에 있어 기점이 되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는 사도행전 저자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루는 핵심 구성원들로 갈 릴리 사람들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저자의 긍정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사도행전 5장에 언급되는 갈릴리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감출 수 없다.

갈 릴리의 유다가 망하자 그를 따르던 자들이 흩어졌음을 보고하고 있기 때 문이다(5:37).

이에 제이틀린은 사도행전 저자가 요세푸스를 잘 알고 있 음을 언급하며 5장에 기록된 ‘갈릴리의 유다’가 요세푸스 본문에 언급된 ‘갈릴리의 유다’라 하며 이들의 반란적 특성에 주목한다.70)

사도행전 5장 에 언급되는 갈릴리의 유다에 대해 학자들은 요세푸스 작품에 기록된 갈 릴리의 유다로 여기는 것이 사실이다.71)

 

     70)  Zeitlin, “Who Were the Galileans?,” 198.

     71)  바레트(C. K. Barrett)는 갈릴리 사람 유다에 대해 A.D 6년에 실시한 인구조사(눅 2:2)에 대한 그 의 저항이 당시 요세푸스의 『고대사』 18.4-10, 23, 『유대전쟁사』 2.56, 118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  결과는 언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유다와 드다가 같이 언급되고 있으나 유 다는 드다보다 거의 40년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두 시대가 동일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Barrett,  C. K.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Acts of the Apostles. vol.1 (Edinburgh: T&T  Clark, 1994), 294-295. 부르스(F. F. Bruce) 역시 인구조사와 관련하여 요세푸스의 문헌에 언급 되는 갈릴리 사람 유다에 대한 기록과 역사적 순서에 대하여 설명한다. F. F. Bruce, The Acts of the Apostkes. 3rd rev. and enl. ed.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1990), 177. 

 

그렇다 하더라도 사도행전에서 언급하는 갈릴리인에 대하여 반란그룹으로 지칭하는 것은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 사건에 대한 역사적 시간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 다.

그리고 사도행전에는 ‘갈릴리인 유다’에 대한 언급 이외에도 갈릴리 인(Γαλιλαῖος)에 대한 기록이 두 번 더 있다(1:11; 2:7).

그런데 이 두 본문 모두 갈릴리인에 대하여 예수의 제자들이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로 이들 은 사도행전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형성한 중요한 자들로 묘사 된다.

따라서 5장 37절에 언급된 ‘갈릴리인 유다’를 예로 들어 갈릴리인 에 대하여 반란 성격의 그룹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도행전 전체 본문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갈릴리인 묘사와 충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백성을 선동했다는 갈릴리인 유다와 관련하여 임성욱은 신약성서의 한번의 기록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음과 비록 그의 반란에 대하여 요 세푸스와 사도행전에서 그 기술상의 맥을 같이 할지라도 그의 반란의 주 동과 출신 지역 이외 어떠한 다른 의미를 찾기에 어려움이 있음을 밝힌 다.72)

그러므로 단지 ‘갈릴리인 유다’를 근거로 ‘갈릴리인’에 대하여 반란 성격을 지닌 그룹으로 정의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 5장 37절의 기록은 로마에 적대적인 갈릴리의 유다에 관한 내용으로 유다와 그를 따르던 자들의 멸망에 대하여 설명한다. 갈릴리 유다의 봉기는 사도행전에서 가말리엘 연설의 일부이며 드다 이야기와 함께 등장하는데, 사실 이 내용은 역사적으로 시대성이 일치하지 않는 다.

게르트 뤼데만(Gerd Lüdemann)은 이 두 사건이 누가에 의해 기인 된 것이며 등장하는 인물과 가말리엘의 연설 역시 누가의 창작임을 지적한 다.73)

즉, 가말리엘 연설을 비롯하여 이야기에 삽입된 두 사건이 누가의 편집적 의도임을 알 수 있다.

갈릴리의 유다는 요세푸스 이야기에도 등 장하는 인물이 맞지만, 누가는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인 물인 갈릴리 사람 유다의 사건을 선용(先用)한다.

그리고는 초기 그리스 도교 공동체를 세운 갈릴리인들을 로마에 봉기하여 멸망하였던 갈릴리 유다와 다른 자들임을 구분 짓는다.

왜냐하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갈릴리 유다와 그를 따르던 자들이 아니며 그들과 같이 멸망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세푸스 작품에 언급된 갈릴리 사람 유다에 대 한 결말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오직 누가만이 그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그의 멸망을 기록하는 것은 사도행전의 갈릴리인들과 구분 짓기 위한 것 이다.74)

 

     72)  임성욱, “신약성서 속 갈릴리인(Γαλιλαῖος) 정체성 연구,” 「신학논단」 112 (2023/6), 301-302.

     73)  Gerd Lüdemann, Early Christianity According to the Traditions in Acts, trans. John Bowden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89), 70-71.

     74)  Bock, Acts, 250. 

 

예수를 따르던 갈릴리인들은 사도행전 초반 예수의 승천을 목격 하고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하였으며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선교가 시작되는 13장 이후부터는 그들의 모습이 더 이상 기록되지 않는다.

이로 인하여 자칫 갈릴리인 들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 되거나 ‘갈릴리의 유다’와 같이 멸망한 것은 아 닌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는 바울의 본격적인 선교가 시 작되는 안디옥에서 전하는 전도의 내용을 통해 예수가 그의 가르침을 전 한 자들과 예수의 증인들이 갈릴리에서부터 함께 온 사람들이었음을 분 명하게 명시하고 있다(행 13:31).

사도행전 초반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자들 로 부상한 갈릴리인의 행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바울을 통하여 이방인 의 지역으로 예수와 갈릴리인의 행적이 전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들의 중요성과 역할이 더 두드러지게 되었음을 의 미한다. 사도행전의 갈릴리인에 대한 기록에 이어 갈릴리 지역과 관련된 언 급은 사도행전 9장 31절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구절은 바울의 회심 이야기 종결 부분에 기록되어 있다.

이때 갈릴리는 유대와 사마리 아와 함께 언급되는데 본문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여겨진다.

해당 본문은 갑작스럽게 기록되며 마치 이전 사건에 대한 요약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사도행 전 저자는 이 부분에서 갈릴리를 매우 중요한 장소로 부각하고자 해당 구절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은 1장 8절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b)는 지 리적 관점의 기록에 따라 복음이 이방 지역으로 확산이 될 것을 기술하 고 있다.

이러한 기록과 같이 실제로 2장에서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경험한 제자들을 통하여 예루살렘과 유대에 복음이 전파되고 있으며, 8 장에 이르러서는 빌립에 의해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는 모습이 기록 된다.

그리고 복음의 확산뿐만이 아니라 사도행전 9장 31절에서는 교회 가 세워지고 그 수가 많아지는 결과적인 모습을 언급하며 “온 유대와 갈 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라고 한다.

이는 이 방으로 퍼져나간 복음으로 인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뿐 아니라 갈릴리에까 지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워드 마샬(I. Howard Marshall) 은 9장 31절의 요약에서 보여주는 복음의 확장 가운데 갈릴리 지역에 대 한 구체적인 복음 전파에 대한 내용은 없으나 예수의 제자들이 그들 이 웃에게 복음을 전하였음을 누가는 의심하지 않았다고 언급한다.75)

이는 비록 갈릴리가 지리적 관점에 따른 복음의 확산 구도인 사도행전 1장 8 절에서 언급되지 않았으며, 9장 31절 이전에까지 그 내용의 기록이 없을 지라도 사도행전 저자는 갈릴리라는 특정 지역에도 교회가 세워졌음을 보여주며 갈릴리를 교회가 세워진 중요한 지역으로 염두에 두었음을 의 미한다.

사도행전 10장 37절의 세례의 장면을 언급하며 복음 전파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전하는 설교 가 운데 요한의 세례 이후 갈릴리와 유대 전역에 전파된 복음에 대하여 설 명하며 나사렛 예수에게 부어주신 성령과 능력의 사역에 대해 예수의 제 자들이 증인 되었음을 전한다(행 10:37-39).

세례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 동체의 입교 예식 중 하나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부 분이었다.

그리고 그 중요한 예식은 분명 세례 요한에 의한 것임이 분명 하다.

그러나 누가는 이 중요한 세례의 사건을 두고 요한이 아닌 갈릴리 에서 시작된 예수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슈나벨은 갈릴리가 유 대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며 사도행전 기록 당시 갈릴리는 예수님의 사 역 시기와 달리 정치적 구별이 되지 않은 유대 지역에 속한 곳이었음을 설명한다.76)

 

     75)  I. Howard Marshall, Act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Downers Grove, IL: Inter Varsity  Press, 2008), 186-87.

     76)  Schnabel, Acts: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78-79, 501.

 

복음서에서 유대와 갈릴리가 구분되어 언급되는 것과 달리 사도행전을 기록하던 시기에는 따로 갈릴리를 구분할 필요가 없음을 의 미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저자는 갈릴리를 구분하여 사역이 시작된 지점 을 분명하게 알려줌으로 갈릴리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덧붙인다.

여 기에서 갈릴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ἀρξάμενος ἀπὸ τῆς Γαλιλαίας)은 예수 의 사역을 특징 짓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제자들을 통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될 것(ἀρξάμενοι ἀπὸ Ἰερουσαλὴμ)임을 암시하는 것이다.77)

그리스도교 공동체 입교 예식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된 것보다 사도 행전에서 제자들에 의해 퍼져나간 복음의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이 갈릴리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이로 써 저자는 갈릴리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갈릴리에 대한 언급은 이전에 잠깐 살펴보았던 바울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설교 내용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갈릴리에서 예 루살렘에 함께 간 사람들에게 예수의 부활 현현이 드러났으며 그것을 본 사람들이 증인이 되었음을 분명히 전한다(13:31).

이러한 바울의 설교에 서 증인으로서의 갈릴리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 전파 에 그들의 역할이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보크는 이 증인들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하신 것을 선포하고 그 메시지가 이들을 통해 보증되고 있음을 설명한다.78)

 

     77)  Bruce, The Acts of the Apostkes, 262.

     78)  Bock, Act, 455. 

 

사도행전의 저자는 갈릴리인들에 대하여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와 입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갈릴리와 갈릴리인을 통해 나타나는 누가의 긍정적인 시선은 당시 갈릴리인을 대하는 1세기 사람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위한 그의 의식적인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요세푸스 문헌을 통해 예루살렘 멸망 이후, 그 선봉의 주자로 보여졌던 갈릴리인들에 대한 사회적 오해 의 정황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는 자신의 저술 을 통하여 갈릴리인 예수가 유대 전쟁에서 두드러지게 활동한 정치적 갈 릴리인들과 연루되는 것을 껄끄럽게 여겼다.

예수와 그의 갈릴리인 제자 들로 인해 전파되어야 하는 그리스도교 확장의 사명이 이러한 요인 때문 에 제한되는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은 특히 13장 이후부터 는 바울에 의한 선교사역이 기록된다. 그의 선교여행은 소아시아와 유럽 에까지 이어지며, 복음이 확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 가운데 누가는 복음의 근원이 분명히 갈릴리의 예수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초 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주체가 예수를 추종하던 사람들로 주축을 이루 게 되었음을 제시한다.

사도행전 저자는 갈릴리인들이 유대-로마 전쟁 가운데에서 반란의 모습으로 오인되었던 것을 바로잡기를 원한 것이다.

이는 로마에 대항하는 모습을 지닌 갈릴리인들로 계속 비추어지게 된다 면 자칫 그리스도의 복음 확산 구도에 큰 장애가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저자는 성령강림을 경험하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갈릴리인들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긍 정의 서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긍정의 서술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확장 에 더 큰 도약을 이루고자 하였다.

 

Ⅴ. 나가는 말

 

요세푸스의 문헌자료를 통해 확인되는 갈릴리인에 대한 역사적 사실 성과 중요성은 거듭 강조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요세푸스 문헌의 고찰을 통해 갈릴리인에 대한 더 깊은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음은 자명하기 때 문이다.

초기 학자들은 갈릴리인들을 주로 로마와 예루살렘에 대항하는 반란그룹과 요세푸스를 지지하는 충성된 그룹 그리고 갈릴리 전역에 흩 어져 사는 소작인들로 여겼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갈릴리인들을 유대인 과 밀접한 민족집단으로 보거나 요세푸스 작품에 대해 수사적 장치로 보 고 유대와 유대인 경계에 있는 타자 그룹이라는 새로운 견해도 제시한 다.

이러한 견해들 가운데 갈릴리인에 대한 반란그룹의 이미지는 가장 부정적이다.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는 그들의 오랜 시대적 역사와 함께 신약시대 여러 정황을 살펴볼 때 객관적 이해가 가능하다.

이는 로마 시 대의 억압에 대한 저항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저항 의식은 세금 포탈과 주변 국가들의 약탈로 인해 피폐해진 하층민의 저항 의식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는 역사적 자료의 고찰을 통해 확인하였다.

한편 신약성서에서 보이는 갈릴리인들에 대한 모습 가운데 특별히 사도 행전은 이들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다르게 묘사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요세푸스 문헌이 중요함에도 갈릴리인 연구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온 전히 신약성서에 적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신약성서 갈릴리인에 대한 새로운 해석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누가-행전 저자는 그의 작품에서 요세푸스 작품의 기록이나 다른 신 약성서에서 보이는 갈릴리인에 대한 견해를 완전하게 수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행전 저자 역시도 1세기 팔레스타인과 로마 전역에 팽배하 게 지배하고 있는 갈릴리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간과할 수만은 없었 음은 분명하다.

이에 사도행전에서 저자는 갈릴리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 식을 걷어내기 위하여 의도적인 편집을 하였다.

그는 사도행전에서 초기 그리스도교 확산의 모습이 지리적으로 드러나도록 기술하기를 원했기 때 문이다.

이러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확장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전 지역은 물론이고 사마리아의 문이라 할 수 있는 갈릴리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지 역이었다.

그리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구성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던 자들이 대부분 갈릴리인이었다는 사실은 부정적인 인식으로 비추어진 그 들에 대한 관점에 변화가 필요함을 감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저 자는 갈릴리인에 대하여 주변 인식의 전환을 위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 전에서 갈릴리와 갈릴리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더 부가하여 기술 하고 있다.

이에 사도행전 저자는 자칫 당시 반란의 모습으로만 인식되 던 갈릴리인에 대하여 그리스도교 전파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의도적 으로 갈릴리인들을 긍정적으로 서술한다.

이를 통하여 초기 그리스도교 의 확산과 관련하여 지리적인 구도의 통일성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이러 한 연구를 통하여 예수 운동에 동참했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설립 했던 주체가 되었던 갈릴리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초석이 마련되었다 할 수 있다.

이는 갈릴리인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지속적 연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연구는 초기 그리스도교 형성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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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본 연구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갈릴리 인에 대한 고찰이다.

예수 운동의 발생지인 갈릴리와 갈릴리인 이해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사도행전의 갈릴리인 연구는 요세푸스 및 신약시대의 역사와 정치,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한 다각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형성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정체성 확인에 중요한 방 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요세푸스 작품들의 갈릴리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와 일부 학자들의 갈릴리인에 대한 반란그룹으로의 정의는 사도행전 갈릴리인 연구에 난항을 겪게 한다.

이에 일부 자료에 무게를 둔 갈릴리 인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지양해야 한다.

그들의 저항은 정치적 전복이 아닌 당시 사회의 상황과 경제적 어려움이 반영된 방어적 태도가 내포된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행전 저자는 요세푸스 작품에서 보이는 갈릴리 인의 부정적 모습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을 배제한다.

저자는 초기 그리 스도교 확산에서 갈릴리의 지리적 관점에 중점을 두고 이들을 긍정적으 로 묘사하고자 하였다.

사도행전 저자는 갈릴리인에 대한 부정의 인식을 지속적인 긍정의 서술로 바꾸며 갈릴리인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이해를 제시한다.

이는 초기 그리스도교 확장을 위한 저자 의도의 반영 이다.

 

주제어 갈릴리인, 요세푸스, 방어적 태도, 경제적 피폐함, 초기 그리스도교 확장

 

 

Abstract

Understanding the Galileans in the Acts of the Apostles — Focusing on the Character and Intention of T heir Description Lee, Jinseon( Ph.D Candidate, New Testament Studies Graduate School Yonsei University)

This thesis is a study on the Galileans who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formation of the early Christian community. Understanding Galilee and the Galileans, the birthplace of the Jesus movement, is crucial. In particular, studying the Galileans in the Book of Acts requires a multifaceted interpretive perspective that considers Josephus’s writings and the historical, political, and economic aspects of the New Testament era. This interpretation attempt provides an important direction for confirming the identity of the Galileans, who were key figures in the formation of the early Christian community. While the study of the Galileans in the Acts of the Apostles is facing difficulties due to the unclear attitude toward the Galileans in Josephus’s works and the definition of the Galileans by some scholars as a rebel group, the negative view of the Galileans based on some sources should be avoided. This is because their resistance was not geared towards a political overthrow, but was rather a defensive attitude that reflected the social situation and economic difficulties of the time. The author of Luke and Acts grapples with the unconditional acceptance of Josephus’s negative portrayal of the Galileans. The author attempted to portray Galilee in a positive light, focusing on its geographical inclusion in the early spread of Christianity. The author of Acts consistently transforms the generally negative perception of the Galileans into a positive narrative, offering a fresh perspective on the Galileans. This narrative reflects the author’s intention to expand early Christianity

 

Key Word (Galileans, Josephus, defensive attitude, economic devastation, the early spread of Christianity)

 

논문접수일: 2025년 7월 1일 논문수정일: 2025년 7월 28일 논문게재확정일: 2025년 9월 20일 

神學思想 210집 · 2025 가을

 

사도행전의 갈릴리인 이해 - 그 묘사의 성격과 의도를 중심으로 (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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